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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15~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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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은택]역대 최악의 임금체불, 나락에 떨어지는 사람들

    지난해 9월 25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기자실에서 입 모아 말했다. “임금체불 근절이야말로 노사법치 확립의 핵심이다.” 그로부터 네 달이 지났다. 상황은 좀 나아졌을까. 고용부 등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임금체불액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봐도 소규모 금형·부품 공장이 밀집한 경기 부천시에선 지난해부터 임금체불 피해를 호소하는 근로자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영세 사업장에서 50, 60대 여성들이 2∼6개월 치 임금을 못 받는 사례가 많다. 지역 노동상담가는 “하루 10건 정도 상담이 들어온다”고 했다. 피해자 대다수가 저소득 근로자인 임금체불은 일상생활의 토대를 단번에 무너뜨린다. 어느 날 갑자기 월급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건 생활비를 빌려야 하고, 대출을 못 갚고, 아이들 학원을 줄여야 한다는 의미다. 말 그대로 근로자와 가족이 함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미국은 임금체불을 ‘임금 절도(Wage theft)’라고 표현한다. 미국 미네소타주가 상습 임금체불의 경우 최대 징역 20년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법적 처벌도 강한 편이다. 미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임금체불액 규모는 1억5615만 달러(약 2059억 원), 피해자는 13만5067명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한국의 임금체불액은 1조7000억 원 이상이며 피해자는 30만 명을 넘을 전망이다. 경제 규모(GDP·국내총생산)는 미국의 15분의 1인데 체불액은 8배가량이나 된다. 현장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임금체불은 사법경찰 권한을 가진 근로감독관이 수사한다. 그런데 범죄로 보기보다 개인 채무 관계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한 노동상담가는 “사업주가 도망가 행방을 모르겠다고 사건을 종결하거나, 체불임금이 지급되지 않았는데도 ‘처벌불원서를 쓰고 사장과 합의하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임금체불은 반의사불벌죄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시민단체 참여연대는 2021년 보고서에서 “2007년 반의사불벌조항 도입 이후 체불이 증가했다”며 “근로감독관의 과도한 합의 종용을 줄일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임금체불은 최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재판까지 가는 경우가 드물고, 재판으로 가더라도 실제 처벌은 평균 200만 원가량의 벌금에 그친다. 못 받은 임금은 민사 소송을 내서 받아야 하는데 당장 내일 생계가 막막한 저임금 근로자들이 장기간 소송전에 매달리긴 쉽지 않다. 감독관은 수사 의지가 없고 벌금은 체불임금보다 훨씬 적으니 가해자는 도망가거나 버티는 게 이익인 구조다. 4개월 전 발언 때문에 제 발 저린 탓인지 고용부는 최근 “장관이 임금체불 근절에 나섰다”는 자료를 수시로 낸다. 지난해 1월에도 고용부는 “설 명절 대비 집중지도기간 운영으로 체불임금이 신속하게 해결됐다”며 자화자찬했다. 올해도 집중지도기간이 끝나면 비슷한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는 동안 현장에선 임금체불로 나락에 빠지는 근로자들이 늘고 있다.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4-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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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세업체, 27일 적용 중대재해법 준비 못해… 사장 구속땐 폐업”

    근로자가 중대재해로 다치거나 숨졌을 경우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부터 예정대로 근로자 50인 미만(5∼49인) 영세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대비할 여력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왔음에도 여야의 개정안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9일 본회의 처리가 불발됐기 때문이다.● 2년 추가 유예안 본회의 통과 실패 중대재해법은 사망자 1명 이상 또는 6개월 이상 치료받아야 하는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했을 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는데 소규모 기업의 경영 여건을 감안해 5∼49인 사업장에는 2년간 시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사이에서 “준비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야는 법 확대 적용 시점을 유예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을 2026년 1월 27일까지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1월 “정부 사과를 전제로 유예기간 연장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히고,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6단체에서 “ 유예기간 2년 연장 후에는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법사위에 계류된 채 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정부의 공식 사과 등 ‘3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법안 처리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들 “사장 구속되면 폐업해야” 2022년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이달 1일까지 사업주 총 12명이 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모두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처벌 사례가 나오면서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들은 안전관리자를 임명하고 현장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지만, 인력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제대로 대비도 못한 채 한숨만 내쉬는 상황이다. 경영계에선 중대재해법 유예가 최종 무산될 경우 사업주가 구속 또는 처벌되면서 경영 공백으로 폐업에 몰리는 중소기업이 적잖게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우리 회사는 내가 구속되면 20년 넘게 운영해 온 사업을 한순간에 접어야 한다”고 했다. 수도권에서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중소기업은 일반 직원도 구하기 어려운데 안전 관리 인력 채용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주변에 물어보니 임시방편으로 기존 인력을 교육시켜 안전관리자로 임명하겠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안전 관련 자격증이 없는 경우 법적으로는 안전관리자로 인정받기 어렵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는 9일 입장문을 내고 “유예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소규모 사업장의 절박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27일 법 시행 전까지 법안을 통과시켜주기를 다시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이날 관계 부처 합동으로 낸 입장문에서 “정부와 경제단체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적극적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적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법 전면 시행 전까지 적극적인 개정안 논의와 신속한 입법 처리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 반면 노동계는 추가 유예 없이 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그동안 정부와 경제 단체 등이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유예를 주장한 것은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죽음의 위험에 방치한 채 사업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말”이라고 주장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 2024-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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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세업체, 중대재해법 준비 못해…사장 구속되면 폐업해야”

    근로자가 중대재해로 다치거나 숨졌을 경우 경영책임자를 처벌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이달 27일부터 예정대로 근로자 50인 미만(5~49인) 영세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중소기업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대비할 여력이 없다”는 하소연이 나왔음에도 여야의 개정안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면서 9일 본회의 처리가 불발됐기 때문이다.● 2년 추가 유예안 본회의 통과 실패중대재해법은 사망자 1명 이상 또는 6개월 이상 치료받아야 하는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했을 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면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내용이다.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는데 소규모 기업의 경영 여건을 감안해 5~49인 사업장에는 1년간 시행을 유예하기로 했다. 하지만 중소기업 사이에서 “준비가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여야는 법 확대 적용 시점을 유예하는 방안을 논의해 왔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50인 미만 사업장에 중대재해법 적용을 2026년 1월 27일까지 2년 더 유예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1월 “정부 사과를 전제로 유예기간 연장을 생각할 수 있다”고 밝히고,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6단체에서 “ 유예기간 2년 연장 후에는 추가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의견 접근이 이뤄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결국 법사위에 계류된 채 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민주당은 △정부의 공식 사과 △산업현장 안전 확보 계획과 재정지원 방안 제시 △더이상 추가 유예 요구를 하지 않을 것 등 ‘3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며 법안 처리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들 “사장 구속되면 폐업해야” 2022년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이달 1일까지 사업주 총 12명이 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모두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됐다. 처벌 사례가 나오면서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들은 안전관리자를 임명하고 현장 안전조치를 강화하고 있지만, 인력 확보가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제대로 대비도 못한 채 한숨만 내쉬는 상황이다.경영계에선 중대재해법 유예가 최종 무산될 경우 사업주가 구속 또는 처벌되면서 경영 공백으로 폐업에 몰리는 중소기업이 적잖게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우리 회사는 내가 구속되면 20년 넘게 운영해온 사업을 한 순간에 접어야 한다”고 했다.수도권에서 의류 업체를 운영하는 한 기업인은 “중소기업은 일반 직원도 구하기 어려운데 안전 관리 인력 채용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주변에 물어보니 임시방편으로 기존 인력을 교육시켜 안전관리자로 임명하겠다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안전 관련 자격증이 없는 경우 법적으로 안전관리자로 인정받기 어렵다.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6단체는 9일 입장문을 내고 “유예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에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83만이 넘는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들의 절박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논의조차 하지 않은 것은 민생을 외면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또 “소규모 사업장의 절박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27일 법 시행 전까지 법안을 통과시켜주기를 다시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정부도 이날 관계부처 합동으로 낸 입장문에서 “정부와 경제단체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적극적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영세 중소기업의 현실적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현장의 절박한 호소를 고려해 법 전면시행 전까지 적극적인 개정안 논의와 신속한 입법 처리를 간곡히 요청드린다”고 했다.반면 노동계는 추가 유예 없이 법을 시행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그동안 정부와 경제 단체 등이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며 유예를 주장한 것은 5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을 죽음의 위험에 방치한 채 사업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말”이라고 주장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 2024-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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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상청 “일본 지진, 강원 일부 해안 지진해일…안전에 주의”

    기상청은 1일 오후 4시 10분 00초에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 북쪽 90km 해역에서 규모 7.4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일본 기상청에 따르면 이 지진으로 일본 북서부 해안 일대에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다.기상청은 강릉에 오후 6시 29분 높이 0.2m, 양양에 오후 6시 32분 0.2m, 강원 고성에 오후 6시 48분 0.3m, 포항에 오후 7시 17분 0.3m 높이 파도가 일 것으로 예상했다.기상청은 “강원 일부 해안에선 지진해일로 해수면 변동이 나타날 수 있으므로 해안가 안전에 주의하기 바란다“며 ”지진해일의 높이는 조석의 차이를 포함하지 않으며 최초도달 이후 점차 높아질 수 있으므로 유의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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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적십자사, ‘乙질 자가진단 해보자’ 우수 아이디어로 선정 논란

    대한적십자사가 청렴한 내부 조직문화 조성을 위해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공모 받아 우수작을 선정하면서 “부하 직원이 약자라는 것을 내세워 상사를 괴롭히진 않는지 ‘을(乙)질’ 자가진단을 해보자”는 제안을 우수작으로 선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 29일 적십자사에 따르면 지난달 적십자사는 ‘청렴제안대회 결과’라는 문건을 작성했다. 직원들이 제출한 아이디어 중 우수한 것들을 선정해 조직문화 정책에 반영하자는 취지다.그런데 선정된 우수작에 ‘을질 자가진단’이 있었다. 여기에는 “MZ(밀레니얼+Z세대) 사원들이 정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갑질로 허위 신고하는 을질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고 적혀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보직자를 제외한 직원들이 이런 ‘을질’을 하고 있지 않은지 자가진단을 해보자는 제안도 함께 있었다.이 아이디어는 총 228건의 제출 작품들 중 2등으로 뽑혀 회장 표창을 받았다.그러자 적십자사 내부 직원 익명 게시판에는 “시대에 역행한다”, “내일도 팀장에게 을질하러 가야겠다” 등의 비판 글들이 잇달아 올라왔다.이에 대해 적십자사는 처음에는 “담당 직원들이 심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가, 적십자 부회장을 비롯한 기획조정실장, 법무지원팀장 등이 심사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나자 “고위직이 심사한 것이 맞다”고 말을 바꿨다. 적십자사는 “이 아이디어는 실제 정책에는 반영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앞서 3월 28일 적십자사는 과거 ‘직장 내 괴롭힘’ 2차 가해자로 지목된 한 지방 혈액원 원장을 서울 동부 혈액원장으로 인사 발령 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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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은택]교육부는 어떻게 대학을 망쳐왔나

    어느 날 산업통상자원부 차관이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에 고물가, 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삼성전자, 현대차는 스마트폰과 신차 가격 동결에 동참해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말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동결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고 지원금도 줄인다면. “여기가 평양이냐”는 힐난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데 이 자유시장경제 원칙이 당연한 듯 배제되어 온 분야가 있다. 대학 등록금이다. 26일 오석환 교육부 차관은 내년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을 5.64%로 발표하며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해 등록금 동결에 동참해 달라”고 밝혔다. 말은 당부인데, 당사자에게는 협박으로 들린다. 10년 넘게 되풀이 중이다. 땅도 자원도 빈약한 한국은 교육과 똑똑한 인재들 덕분에 이만큼 발전했다. 그런데 그 교육이 대학부터 무너지고 있다. 최근 만난 한 대학 관계자는 현실을 털어놨다. “학부는 스카이(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이공계조차 무너졌다. 입학하자마자 반수 시작해서 제주대 약대라도 가려 한다. 메디컬(의약학 계열) 빼고는 초토화됐다. 대학원은 정원도 못 채우고 고도의 학문 연구 기능은 없어진 지 오래다. 국내외 인재를 모셔 오고 싶어도 희망 연봉을 지급할 여력이 없다.” 대학은 교육 기관이지만 다른 기능도 해야 한다. 최정상급 인재를 교수나 연구자로 흡수해서 지식을 재생산하도록 해야 한다. 학생들이 창업에 뛰어들어 기존에 없던 부와 가치를 창조하도록 해야 한다. 기업이 제품 개발에 쓸 원천 기술, 기초 과학 기술도 결국 최초 생산자는 대학이다. 한 국가의 지식과 가치 창출의 핵심이 대학이어야 하는데, 이는 규모의 자본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국대학경영협회 2021년 자료에 따르면 하버드대 기금은 494억 달러(약 63조9927억 원), 스탠퍼드대가 353억 달러(약 45조7029억 원)다. 한국 최상위권 사립대 작년 수입이 6000억∼9000억 원 수준(이월금 포함)이다. 적립금은 5000억∼7500억 원 수준이다. 영유아 영어학원(일명 ‘영어유치원’) 학비가 연 2000만 원을 넘는데 사립대 연평균 등록금이 그 절반도 안 되는 757만3700원이다. 등록금 싸다고 좋아할 상황이 아니다. 미국이 등록금 비싸기로 유명하지만 미국 연방교육부가 등록금 상한을 정하진 않는다. 대신 장학금 확대, 학비 대출 지원에 주력하고 소비자(학생)가 좋은 대학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덕분에 미국 대학은 자가발전이 가능하다. 최강 기술 강대국의 원천이다. 우리 교육부는 어떤가. ‘표(票) 떨어질 일’이라며 10년 넘게 대학 재정을 묶어놓고, 얼마 안 되는 재정사업으로 대학을 쥐고 있다. 그 결과 모든 한국 대학이 자생력을 잃고 교육부가 꽂아놓은 ‘지원금 링거’로 연명 중이다. 한국 고등교육이 재기하기 위해서는 이제라도 교육부 권한을 유치원 및 초중고교와 국공립대 범위로 축소해야 한다. 사립대에 대해서는 감사, 감독 권한 정도만 남겨야 한다. 등록금이 가계 부담이라면 조(兆) 단위 대학사업을 장학금으로 돌려 직접 학생을 지원하는 편이 낫다. 교육부가 권한을 놔야 ‘돈값’ 못 하는 대학은 자연스레 퇴출되고, 경쟁에서 살아남는 대학은 나라를 먹여 살릴 것이다. 가장 시급한 교육 개혁은 ‘교육부 개혁’이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3-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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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문과 놀자!/풀어쓰는 한자성어]舍己從人(사기종인)(버릴 사, 자기 기, 따를 종, 사람 인)

    ● 유래: 서경(書經)과 맹자(孟子)에서 유래한 성어입니다. 서경에 우(禹)가 순(舜)임금에게 아뢰기를 “임금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자리를 어렵게 여겨야 하며, 신하도 자신의 위치를 어렵게 생각해야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백성들은 덕을 숭상하려고 힘쓸 것입니다”라고 하자 순임금이 대답하기를 “그렇소. 그렇게 하면 충언이 받아들여지고 어진 사람이 등용되어 온 나라가 다 평안하게 될 것이오. 나를 버리고 남을 좇으며(舍己從人), 의지할 곳 없는 이를 학대하지 않고 곤궁한 이들을 내버려두지 않는 일들은 오직 임금만이 할 수 있는 것이오”라고 하였으며, 맹자(孟子)에서도 “자로(子路)는 사람들이 그에게 잘못이 있다고 일러 주면 기뻐하였고, 우임금은 옳은 말을 들으면 절을 하였으며, 위대한 순임금께서는 착한 일은 남들과 함께하고, 선하지 않은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랐으며(舍己從人) 남에게 착한 것을 취하여 행하기를 즐겼다”라고 하였습니다.● 생각거리: 퇴계 이황(李滉) 선생이 제자들에게 말하기를 “자기를 버리고 남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배우는 사람의 큰 병이라. 천하의 의리는 끝이 없는데 어찌 자기만 옳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고 하겠는가. 다른 사람의 질문이 있으면 하찮은 말이라도 반드시 생각하여 대답하고, 묻는 말에 바로 대답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한 데서 퇴계 선생의 인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상조 전 청담고 교사}

    • 202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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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능 성적표를 받은 그대들에게[광화문에서/이은택]

    연말 시릴 때마다 떠오릅니다. 보온도시락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자 보였던 시퍼런 새벽하늘. 근심을 삼킨 채 “잘 다녀와” 손 흔들던 부모님. 버스 의자에 몸을 구겨 넣고 영어 단어장을 최후까지 곱씹던 시간. 이해찬 세대, 최악의 불수능. 2001년 11월 7일, 21세기 첫 수능을 치른 우리 2002학번을 규정한 말들이었습니다. 그때 수능을 마친 교실은 볼만했습니다. 운전면허 필기시험 문제집을 당당하게 푸는 친구도 있었지요. 하교하면 게임방으로 몰려가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에 접속했습니다. 그래도 수능 전의 일상을 크게 벗어나진 못했습니다. 세상을 끝낼 듯 놀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닥치니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2024학년도 수능을 치른 수험생들이 어제 8일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정부는 한사코 ‘킬러(killer) 문항’이 없었다는데 사상자는 즐비합니다. 오징어 게임 최후 관문 같았던 수학 22번에서는 응시생 99%가 좌절했습니다. 전국 유일한 만점자는 정부가 ‘사교육 카르텔’이라며 세무조사와 압수수색을 벌인 바로 그 강남 대형 학원에서 나왔습니다. 이쯤이면 사교육의 필요성을 정부가 수능으로 증명해준 셈입니다. 어찌 됐든 시험은 끝났습니다. 수능을 본 친구들은 무얼 하고 있을까.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펴봤습니다. “어제는 배추전 여섯 장, 오늘은 배추 볶음에 가까운 떡볶이, 저녁은 배추 된장국이래요.” 김장철이죠. 공부하느라 소화 불량에 시달렸을 텐데 배추는 식이섬유가 풍부하답니다. “그냥 내 실력이 처참했다”, “약을 먹어도 먹어도 속이 답답함.” 12년 마라톤 결승점을 통과했는데 자책이 앞섭니다. “학벌을 따기 위해 재수한 이유. (나를) 구차한 말 없이 한 단어로 증명할 수 있어서. 그것 말고는 없다.” 대학명이, 좀 지나면 직장명이, 연봉이, 보유한 아파트 이름이 나를 규정하는 세상을 우리는 대물림하고 있네요. 마음 쓰이는 글이 있었습니다. “매몰 비용이 너무 아쉬움. ㄹㅇ(레알·‘정말(real)’).” 매몰 비용은 이미 지출해서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말합니다. 매몰 비용의 오류라는 말도 있는데, 실패했거나 실패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에 시간, 노력, 돈을 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잠을 줄여가며 모든 것을 쏟아부은 12년이 시험 점수 낮다고 매몰 취급당한다면 얼마나 허탈할까요. 그래도 말입니다. 지금은 소진한 시간이 매몰 비용 같지만 훗날 돌아보면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요. 2점짜리 문제를 풀기 위해 온몸으로 부딪치면서, 붉은 소낙비로 점철된 시험지를 물러서지 않고 마주하면서, 그대들은 단단해졌을 겁니다. 그것은 매몰이 아니라 퇴적입니다. 좌절과 실패, 노력한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인고(忍苦)의 지층을 구축하고 있을 겁니다. 언젠가 당신의 삶이 흔들릴 때, 누가 뭐래도 단단하게 붙잡아줄 화강암층. 끝으로 좋아하는 글을 빌려 위로와 응원을 전합니다. 수험생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뜨겁게 지져봐라/나는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 거세게 때려봐라/나는 단단한 돌덩이, 깊은 어둠에 가둬봐라/나는 홀로 빛나는 돌덩이, 부서지고 재가 되고 썩어버리는 섭리마저 거부하리/살아남는 나, 나는 다이아.’(웹툰 ‘이태원 클라쓰’ 중)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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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대노총 지난해 수입, 한국노총 392억-민노총 246억 원

    양대노총이 정부의 노동조합 회계공시시스템에 재정 규모와 조합원 수 등을 공개했다. 지난해 수입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392억 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246억 원이었다. 30일 고용노동부의 회계공시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노총의 수입은 392억5718만원이었다. 전년도 이월금이 229억 원, 조합비 59억9000만원, 수익사업 수입 56억2000만원, 보조금 수입 39만8000만원이었다. 한국노총 이지현 대변인은 “수입 항목으로 잡혀있는 금액 중 212억 원은 임대보증금”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노총 여의도 본부 건물은 한국노총 소유인데 그 안에 들어와있는 다른 업체들의 임대 보증금이라는 뜻. 이는 매년 새로 들어오는 돈이 아니고, 언젠가 업체들이 나가면 반환해야 할 돈이기 때문에 새로운 수입으로 보긴 어렵다는 것이 한국노총의 설명이다. 이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작년 수입은 180억 미만으로 추산된다. 작년 지출 내역에서는 인건비가 42억9000만 원이었다. 기타 운영비 30억3000만 원, 조직사업비로 4억5000만 원, 교육·홍보사업비 4억3000만 원이었다. 나머지 240억 원은 다음 년도로 이월했다.한국노총 조합원은 132만882명, 자산 총계는 약 523억 원이었다.민노총은 작년 수입이 246억3300만 원(전년도 이월금 46억 원 포함)이었다. 민노총은 조합비 대신 하부조직 부과금(180억9000만원)으로 수입을 집계했다. 보조금과 수익사업 수입은 별도로 기재하지 않았다.작년 지출 내역은 인건비가 90억6000만 원, 하부조직 교부금이 46억3000만 원이었다. 43억8000만 원은 다음 회계로 이월했다.조합원은 112만199명, 자산 총계는 87억7000만 원이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3-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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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은택]또다시 건설 현장에서 콘크리트가 얼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이 펴낸 ‘중대재해 사고백서―2023 아직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35쪽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한중콘크리트(cold weather concrete) 시공 조건, 즉 양생(養生)이 어려운 5도 미만의 기온에서 골조 공사를 할 때는 콘크리트 품질관리가 필수다.’ 2022년 1월 11일 오후 3시 46분 무너진 광주 서구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의 사고를 분석한 기록이다. 당시 사람들은 생중계로 지켜봤다. 무너진 아파트 단면에 드러난 철근 가닥들과 콘크리트 더미, 그 위로 날리던 눈발. 백서는 기록했다. ‘겨울철에는 콘크리트가 굳으면서 강도를 확보하는 양생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지므로 충분한 양생 기간을 확보하며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더불어 영하의 낮은 온도에 노출되면 콘크리트가 양생 중 얼어버리는 치명적인 결함이 발생할 수도 있다.’ 추운 날씨 탓에 아직 굳지도 않은 콘크리트가 얼어버린 뒤, 기온이 올라가 녹는 현상을 ‘동결융해(凍結融解)’라고 한다. 콘크리트 속에 함유된 수분이 얼면 그 부피가 9%가량 팽창한다. 이 얼음이 녹으면 콘크리트는 구멍 숭숭한 골다공증 환자의 뼈처럼 약해진다. 간단하지만 틀림없는 물리 법칙이다. 이 물리 법칙을 무시해서 현장 노동자 6명이 숨졌다. 그런데 물리 법칙을 어긴 사람과 그 결과로 숨진 사람은 동일인이 아니다. 이윤을 더 남기고 손해를 줄이기 위해 공기(工期)를 앞당기고 영하 날씨에도 콘크리트를 부어야 한다고 결정, 결재, 재촉한 사람은 사망자가 아니다. 백서는 적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그 위험을 피하고자 한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위험을 감수할 것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자신도 모르게 가해지는 위험을 모르고 불나방처럼 위험 속으로 들어간다. 특히 건설 현장에서 공기 단축 압박이 그러하다.’ 사건 현장 근로자들은 참사 이후 익명으로 언론에 말했다. “눈이 오는 날에는 타설하면 안 됐는데 했다.” “빨리 좀 해야 할 것 같다는 지시가 있었다.” 그런데 백서에 빠진 것이 있다. 기록 어디에도 정부의 이야기가 없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저 모든 시스템의 붕괴는 건설 현장과 근로자의 안전을 관리하는 중앙정부와 관련 부처(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가 엄연히 존재하는, 그리고 관련 법 제도와 공무원, 사법행정 인력이 운용되고 있는 국가 테두리 안에서 벌어졌다. 정부의 관리감독 책임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현장 실태를 왜 몰랐고(혹은 알았다면 왜 방치했고), 왜 막지 못했는지. 정부는 자신의 잘못을 함께 기록해야 했다. 콘크리트가 물리의 법칙을 따른다면, 기업은 이윤 추구의 법칙을 따른다. 건설 근로자들은 오늘도 두 법칙 사이에 끼여 위태롭다.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싶다면 마땅히 물리 법칙이 이윤 추구 법칙보다 먼저 적용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라고 국민은 정부에 법과 강제력을 부여했다. 올해 연말 날씨가 변화무쌍하다. 11월 역대 최고기온을 돌파하더니 한파가 찾아오고, 날이 풀리더니 다시 영하권이다. 틀림없는 물리 법칙에 따라 전국 건설 현장 곳곳에 숨은 수분들이 팽창하며 얼고 녹기를 반복할 것이다. 어딘가에서 또 콘크리트가 얼고 있다.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3-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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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은택]근로시간 개편 재도전… 세 번째 기회는 없다

    정부가 이달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근로시간 개편은 원래 이 정부 노동개혁(근로시간과 임금체계)의 한 축이었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 이후 ‘노조 법치’가 끼어들었지만 양대 노총의 회계공시 참여 결정을 기점으로 법치 이슈는 끝물이다. 정부는 킬러 문항보다 어려운 본래 숙제를 풀어야 한다. 이쯤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3대(교육, 연금, 노동) 개혁과제 중 하나였던 노동개혁, 특히 근로시간 개편이 상반기에 왜 좌초됐는지 복기할 필요가 있다. ①메시지=올해 3월 6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주당 최대 69시간까지 근로를 가능하게 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불과 9일 뒤(15일) 윤 대통령이 “60시간 이상 근로는 무리”, “상한 캡을 씌우지 않은 것은 유감”이라며 뒤집었다. 이후 20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상한선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며 대통령 발언을 반박하는 듯한 입장을 밝혔다. 그랬더니 다음 날 윤 대통령이 “상한을 정해야 한다”고 또 뒤집었다. 장관, 대통령실 관계자, 대통령이 서로의 말을 되치기하는 과정을 보면서 도대체 뭐 하자는 건가 싶었다. 정부 안에서 메시지가 정리되지 않아 정책 실패로 이어진 대표 사례였다. ②현실성=정부는 근로시간제가 바뀌면 직장인에게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했다. 예금 계좌에서 내 돈 꺼내 쓰듯 근로시간을 모았다가 장기간 휴가로 쓸 수 있다는 말인데…. 현장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몰아서 일하게 될 것을 의심하는 국민은 없었고, 몰아서 쉴 수 있을 거라 믿는 국민도 없었다. 이 구상을 만든 고용부조차 공무원이 휴가를 다 못 쓴다. 중소기업 근로자의 애환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불티났다. “여름내 몰아서 일했으니 한 달 쉬겠습니다”, “그럼 자네 업무는 누가 해?”, “정부가 그렇게 해도 된답니다”, “그건 대기업 이야기고. 우리는 중소잖나”. 현실성 없는 ‘한 달 유럽 휴가’보다는 초과근로에 상응하는 급여, 수당을 인상하고 이를 철저히 지급하도록 법제도를 정비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③의지=근로시간제를 개편하려는 이유의 본질은 기업이 원하기 때문이다. 일감, 수출 주문이 특정 시기에 폭증하는 산업은 그 타이밍에 소화 못 하면 매출에 타격을 입고 경제, 고용 타격으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제조업, 중소기업 등을 중심으로 이런 요구가 쭉 있었다. 그런데 이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소중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돌봐야 할 어린 자녀가 있는 3040 직장인의 가치나 삶의 형태와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고심 끝에 필요한 개혁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면 솔직하게 취지를 밝히고 떨어지는 지지율에도 좌고우면하지 말았어야 했다. 양쪽의 박수를 받을 순 없다. 설문 결과 발표를 앞둔 고용부는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다. 발표 시기를 미루고 또 미뤘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무산된 연금개혁처럼 눈치보기용 ‘맹탕 개편안’이 나올 우려도 제기된다. 개혁을 할지 말지, 한다면 어떤 계획을 내놓을지는 최종적으로 정부가 결정하고 책임 질 일이다. 하나는 분명하다. 이번에도 실기(失期)하면 세 번째 기회는 없다.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3-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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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작가 성추행 범행으로 전태일동상 위상 실추…새 상징물로 교체해야”

    “작가의 범행으로 인해 그가 제작한 전태일동상마저도 위상이 실추됐다.” 전태일동상 존치·교체 숙의위원회가 12일 전태일 재단에 전달한 권고문에서 지금의 청계천 전태일 동상을 새로운 상징물로 교체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옥상 작가의 성추행 사건이 결국은 동상 교체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앞서 재단은 고문단, 운영위원회, 이사회 논의를 거쳐 노동계, 여성계, 법조계, 종교계 등 인사가 참여하는 위원회를 구성해 이 문제를 논의해왔다. 16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권고문에 따르면 위원회는 재단에 “소중한 역사의 상징이었던 전태일동상은 상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며 “동상을 제작한 작가가 최근 성추행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어 “재단의 제안을 받은 위원회는 9월 11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다양한 의견을 놓고 토론하고 숙고하는 과정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18년 전 전태일동상의 건립 과정을 살펴봤다”며 “노동자와 시민들의 의견과 정성을 모아내고, 전태일다리에 동상을 건립하는 과정에 책임을 지셨던 분들의 ‘동상 존치 입장’도 경청했다”고 밝혔다. 또 “현재의 동상 철거를 반대하시는 시민들의 의견도 들었다”고 덧붙였다. 위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거’를 결정했다. 이에 대해서는 “숙의위원들은 ‘성범죄를 저지른 작가가 제작한 현재의 동상만이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상징할 수 있는가? 다른 동상으로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작가의 성추행은 약자에 대한,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위치한 창작 노동자에 대한 폭력이자 착취”라며 “이는 약자를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바친 전태일 열사의 정신에 반하는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라고 임 작가를 비판했다. 이어 “안타깝게도 이 동상을 찾는 사람들은 약자의 위치에 있던 여성 노동자에게 고통을 주었던 작가를 떠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그러면서 위원회는 다음과 같은 권고 사항을 재단에 밝혔다.-현재의 동상은 전태일 정신을 상징하는 새로운 상징물로 교체하기를 권고드립니다. -새로운 상징물의 건립은 전태일 열사와 이소선 어머니의 사랑과 연대의 정신을 이어가는 노동시민사회가 폭넓게 의견을 모아서 추진하기를 권고드립니다.-현 동상 또한 역사이므로 새로운 상징물이 건립될 때까지 현재의 장소에 유지하며 교체한 이후 전태일재단이 보관하기를 권고드립니다. 이에 대해 재단은 “이사회를 개최해 권고문과 관련된 후속 조치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16일 밝혔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3-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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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은택]교문을 더 열어야 학교가 살아남는다

    출근길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차들 틈새로 버스 옆면 광고 문구가 보였다. ‘우리 아이를 위한 완벽한 식사.’ 이유식 광고일까. 차량 대열이 움직이자 가려져 있던 강아지 사진이 드러났다. 아하, ‘우리 아이’가 저 아이였구나. 걷다 보니 버스 뒤편에도 광고가 있었다. ‘잠만 자는 우리 아이를 위한 영양제.’ 이 아이도? 이내 반려견과 영양제 캡슐 사진이 나타났다. 딸 둘 아빠로서 ‘현타’가 왔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 20, 30대들은 어쩌면 ‘부모’라는 호칭이 붙는 마지막 세대일지 모른다. 한때 80만 명을 넘었던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생은 올해 45만4588명이다. 출생아는 2016년 40만6000명에서 작년 24만9000명으로 줄었다. 취업은 바늘구멍이고 결혼은 맞벌이가 필수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 국가 중 29위인데 집값은 치솟고 있다. 자산가 집안이 아니라면 요즘 젊은이들에게 결혼, 출산, 육아는 골고다 언덕길이다. 정치권은 출산율을 높이겠다면서 ‘아이를 낳으면 100만 원 준다’ 식의 정책을 남발하지만 이를 보고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블랙 코미디다. 정부는 그저 돈을 쓸 곳이 필요한 것뿐이다. 애를 키우는 입장에서 가장 절실한 것은 돈, 시간, 아동학대 걱정 없이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다. 한 달에 절반을 야근해야 할 때에도 말이다. 사설 교육, 보육 기관이 난립하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 아이(강아지 말고 진짜 아이)를 가장 믿고 맡길 곳은 학교다. 거대하고 촘촘한 국가 행정 시스템, 국가고시를 통해 선발된 공무원들이 잘 돌봐주고 가르쳐줄 것이라는 신뢰가 남아있다. 이런 관점에서 초등돌봄교실을 오후 8시까지 운영하는 늘봄학교 확대를 환영한다. 하지만 교사들은 이를 반대하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결국은 업무가 늘어난다는 것이 골자다. 일리도 있는 것이, 요즘 학부모와 학생들은 무척 까다롭다. 요구도 많고 안전사고, 민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를 막으려면 교사, 전문 인력, 예산을 늘리고 법규도 정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교원 선발 축소는 교육부가 방향을 잘못 잡았다. 아이가 줄어도 일은 오히려 과거보다 늘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교사들도 각성이 필요하다. 학생이 요즘처럼 가파르게 줄면 장기적으로 학교와 교사도 살아남을 수 없다. 서울조차 문 닫는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더 다양한 연령의 더 많은 아이들이 더 오랜 시간 학교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고 머물러야 학교가 산다. 교육과 보육 사이 장벽을 없애야 한다. 배움이 필요한 성인, 노인들도 누구나 집 근처 학교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사의 ‘지식 전수’ 역할 상당수는 이미 사교육, 온라인 강의, 검색 포털, 유튜브, 인공지능(AI)에 빼앗기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역할은 무엇일까. 업무가 많아진다고 늘봄학교 확대를 마치 교권 침해라도 되는 양 반대할 일은 아니다. 해야 할 일이지만 지원이 필요하다고 그렇게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교사도 학교도 산다.nabi@donga.com 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3-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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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한 대립 勞-政, 11월 秋鬪 전운… “총선까지 갈등 해법 안 보여”[인사이드&인사이트]

    《#장면1. 첫인상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233일 앞둔 2021년 7월 19일.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필요한 경우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한 뒤 쉴 수 있는 예외조항을 둬야 한다”고 말했다. 단기간 고강도 업무가 필요한 정보기술(IT), 게임 업계의 애로사항을 들은 뒤 나온 발언이었지만 ‘120시간 노동’ 논란이 커졌다. 다음 날 윤 후보는 대구 서문시장에서 “120시간 일 시켜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월 단위나 분기, 6개월 단위로 해서 평균 주 52시간을 해도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을 노사 간의 합의로 변형할 수 있게 예외를 뒀으면 좋겠다는 얘기”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노동계는 싸늘했다. 같은 달 21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게임업계 사장들의 ‘납기만 맞추면 죽도록 일하고 얼마든지 쉬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전달한 것”이라고 일갈하며 ‘친(親)기업, 반(反)노동’이라고 비판했다. 노동계가 윤 후보를 향해 낸 첫 공식 입장이었다.》 #장면2. 야속한 당신 2021년 9월 15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노총 본부에 윤 후보가 찾아왔다. 그는 “독일, 네덜란드, 덴마크의 플렉시빌리티(flexibility·노동시장의 유연성)라는 건 자유로운 해고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선 이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동계 표심을 돌리려는 노력이었다. 이를 들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은 “노동을 적대시하고 억눌러왔던 권력자들은 역사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응수했다. 말에 뼈가 있었다. 윤 후보의 노동계 달래기는 계속됐다. 같은 해 10월 23일에는 한국노총 울산본부에도 찾아갔고, 기자간담회에서는 “노동 가치를 존중하지 않으면 경제 산업 발전도 있을 수 없다”고 했다. 그해 12월 4일에는 비공개로 김 위원장을 만나 대선에서의 지지를 요청했다. 12월 14일에는 윤 후보는 “정치인은 노동자 편일 수밖에 없다. 솔직히 말하면 표가 그쪽에 훨씬 많다. 저는 사용자 편이 아니다”고도 했다. 구애(求愛)에도 불구하고 2022년 2월 8일 한국노총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지지를 공식 발표했다. 윤 후보 입장에서는 ‘야속한 당신’이었다.#장면3. 변함없는 친구 2022년 4월 15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국노총 본부를 방문했다. 앞서 대선 결과가 발표되자 한국노총은 “당선을 축하한다”는 논평을 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우려스럽다”고 한 것과 비교하면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것. 윤 당선인은 “한국노총의 변함없는 친구로 남을 것”이라고 했고, 김 위원장도 “적극 대화에 임하겠다”고 화답했다. 카메라 앞에 선 두 사람의 표정은 밝았다. 고용노동부 장관에는 한국노총 ‘정책통’ 출신 이정식 전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이 임명됐다. ‘정부와 노동계의 가교 역할을 기대한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왔다. 돌아보면 매우 짧은 허니문이었다.#장면4. 헤어질 결심 약 1년 반이 흐른 2023년 9월.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사이 정부는 ‘노동개혁’에 착수했다. 화물연대 파업 이후에는 ‘법치(法治)’ 드라이브도 걸었다. 노조 회계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며 노조 회계장부 공개도 추진했다. 김준영 한국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금속노련) 사무처장은 농성 도중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구속됐다. 한국노총은 노사정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한국노총과 민노총은 11월 11일 ‘추투(秋鬪·가을 투쟁)’를 예고했다. 김 위원장이 9월 13일 “윤 정부는 노동을 적대시하고 노동개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고, 다음 날 민노총은 임시 대의원회의에서 내년 4월 총선을 겨냥해 ‘진보 4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진보당)과 공동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민노총이 총선 대응 방침을 세운 것은 2012년 이후 10년 만이었다. 이대로라면 11월 한국노총이 민노총과 한날한시에 총궐기를 하고 총선까지 정부와 맞설 태세다. 정부와 노동계의 화해 계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변함없는 친구’가 ‘헤어질 결심’을 앞두고 있다.● 정부 “법치 지킬 때만 대화 재개”정부와 노동계가 대치를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추석 연휴 이후 전망에도 관심이 쏠린다. 산적한 현안을 풀기 위해서는 노사정 대화 복구, 정부와 노동계의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고용부의 기류는 여전히 강경하다. 복수의 고용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정부의 입장은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 들어오고 싶으면 오라. 단, 법치를 지켰을 때 이야기”로 압축된다. 건설현장에서의 각종 돈 봉투 의혹, 노조의 위법 관행, 집회 때마다 문제가 되는 위법 사례, 그리고 정부가 요구하는 회계 장부 공개에 대해 노동계의 태도 변화가 있어야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대 노총 입장에서는 ‘백기투항’을 요구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정부의 태도는 다소 이례적이기도 하다. 보통 앞선 정부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의 표심을 잡기 위해서, 또는 산적한 법안들을 국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서라도 양보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고용부 관계자는 “선거를 고려하라는 지시도, 분위기도 없다”고 단언했다. 오히려 “지금까지 해온 것에 자신감이 붙은 것 같다”고 했다. 5월 국무조정실은 ‘국정과제 30대 핵심 성과’ 자료집을 내며 현 정부 출범 이후 1년간의 근로손실일수를 ‘28만 일’로 집계했다. 근로자 1만 명이 28일간 파업한 셈이다. 국무조정실은 “역대 정부 최저치”라고 자평했다. 같은 기간을 따졌을 때 노무현 정부는 114만 일, 이명박 정부는 69만 일, 박근혜 정부는 65만 일, 문재인 정부는 106만 일이었다. 화물연대 파업을 포함시키지 않은 것을 놓고 논란이 있지만 정부는 “법치 정책이 효과를 봤다”는 생각이다. 최근 현대자동차 노조가 5년 연속 무분규 임·단협 타결을 결정한 것, 철도노조가 2차 총파업 계획을 중단한 것도 정부에 자신감을 줬다는 분석이 나온다.● 노동계 “총선까지 갈등 이어질 듯”노총은 노총대로 ‘마이웨이’ 중이다. 한 노동계 관계자는 “추투 전까지 노정 관계가 풀릴 모멘텀은 없다”며 “현재 국면이 총선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한다”고 내다봤다. 그나마 역대 정부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한국노총마저 냉랭하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지금의 정부는 마치 ‘노동계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노조 회계장부 공개, 근로시간 개편 등 주요 정책을 철회하거나 입장을 바꾸기 전까지는 노총도 타협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섣부른 대화 제스처를 취했다가는 지도부가 내부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정부와 노동계가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갈 경우 정부의 노동 정책에도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장 근로시간 개편 여론조사,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방안, 계속 고용 법제화 등 중요한 정책들이 발표, 논의를 앞두고 있다. 양대 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반발하고, 민주당 등 야당과 연계한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시련의 가을’이 될 수 있다. 화해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곳으로 국민의힘이 8월 23일 출범시킨 여당 산하 ‘노동위원회’가 언급되기도 한다. 변호사, 노무사, 학계 인사 등 50명으로 구성됐는데, 위원장인 김형동 의원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원장을 지냈고 21대 국회에 입성했다. 김 의원은 6월 한 노동전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취임 직후 한국노총에 ‘친구’라고 했던 에피소드를 언급하며 “친구는 한 번 틀어진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정부와 노동계 모두 강경하고 그나마 다소 조율의 여지가 있는 것은 국회”라며 위원회의 역할을 기대했다. 양대 노총에 정통한 한 인사는 “한국노총 출신 인사가 지금 고용부 장관인데 소통의 역할은 못 하고 있다”라며 “노사 관계 회복의 열쇠는 결국 윤 대통령이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은택 정책사회부 기자 nabi@donga.com}

    • 202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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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하대 의대 661 대 1… 올 수시도 ‘의대 열풍’

    2024학년도 대학입시에서 전국 의대 수시모집 경쟁률이 평균 46 대 1로 나타났다. 인하대 의대 논술전형은 661 대 1을 기록했다. ‘의대 광풍’의 여파로 의대 경쟁률은 계속 오르는 추세다. 17일 종로학원, 유웨이 등에 따르면 13∼15일 마감한 원서접수에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한양대, 중앙대, 경희대, 이화여대, 가톨릭대, 울산대 등 주요 10개 대학 의대의 평균 경쟁률은 45.59 대 1로 집계됐다. 지난해에는 44.67 대 1이었다. 서울대는 12.30 대 1로 전년도(10.49 대 1)보다 소폭 올랐다. 고려대, 성균관대, 중앙대, 가톨릭대(서울)도 경쟁률이 상승했다. 가장 높은 경쟁률을 보인 곳은 인하대 의예과 논술전형으로 8명 모집에 5286명이 몰렸다. 수험생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데 인하대 의예과 등은 다른 수도권 의대에 비해 합격선이 다소 낮아 ‘인(in) 수도권 의대’의 마지노선으로 꼽혀 학생들이 몰린다. 성균관대도 논술우수자전형에서 5명 모집에 3158명(631.60 대 1)이 몰렸다. 지난해와 선발 인원은 같지만 지원자는 712명 늘었다. 반면 의대 열풍을 경계하고 미래 반도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주요 대학에 만든 반도체학과들은 경쟁률만 놓고 보면 다소 부진한 모습이다. 주요 7개 대학(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서강대, 한양대, 이화여대)의 반도체, 첨단학과 수시 경쟁률은 평균 16.49 대 1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대학의 의학 계열을 제외한 나머지 이공계열 학과 평균 경쟁률(19.22 대 1)보다 낮은 수치다.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가 43.30 대 1로 가장 높았고, 성균관대(반도체 및 첨단학과 4곳 평균)가 31.10 대 1이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고3 학생 수는 줄었지만 상위권 의대 선호 현상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며 “특히 최상위권 학생들은 의대와 반도체학과 등에 동시 합격할 경우 반도체 등 첨단 학과 등록을 포기하는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수시 전체 경쟁률은 서울 지역 주요 대학이 대부분 상승했고 지방 대학들은 하락했다. 경북대, 부산대 등 주요 지역 거점 대학들도 경쟁률이 하락했다. 경쟁률이 6 대 1에 못 미친 제주대, 경상국립대, 전남대, 강원대 등은 “사실상 정원 미달”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일반대 수시는 1인당 6곳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3-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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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이은택]과거제 논쟁만도 못한 21세기 킬러문항 논쟁

    21세기 한국에서 가장 중요한 인재 선발 시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다. 그 역할을 600년 전 조선에서 과거(科擧) 시험이 했다. 지금 대학에 가려면 수능을 잘 봐야 하고, 조선 시대 성균관(지금의 국립대 격)에 들어가거나 관료가 되려면 과거를 통과해야 했다. 과거를 어떻게 운영할 것이냐. 당시 일종의 교육, 혹은 입시 논쟁이 있었다. 조선 초기 ‘강경(講經)과 제술(製述) 논쟁’이다. 강경은 시험관이 수험생을 한 명씩 불러 ‘압박 면접’을 통해 사서오경을 체득했는지 묻는 방식이다. 윤리성을 갖춘 인재를 선발할 수 있지만 시간, 비용이 많이 들고 인맥에 당락이 좌우될 우려가 있었다. 제술은 수험생들이 과거장에서 주어진 주제에 대한 생각을 답안지에 논술하는 방식이다. 문장력을 검증하기 좋아 공문서 작성에 능한 사람을 뽑을 수 있고 채점이 공정하다. 무엇이 좋은 인재 선발 방법이냐는 논쟁에 세종까지 참전했다. 이는 세종 중기 ‘시학(詩學)과 경학(經學)의 논쟁’으로 이어졌다. 시학은 작시(作詩·시 짓기), 즉 문예 창작이다. 경학은 유교 경전을 토대로 국가 운영에 필요한 지식을 공부하는 일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당시 시(詩)는 조선과 명나라의 외교전 수단 중 하나였다. 요구 사항을 시로 써서 주거니 받거니 했는데 문전(文戰·글의 전쟁)이라고도 했다. 경학은 백성의 삶을 논했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경학자가 목민심서를 쓴 정약용이다. 겉보기에는 뜬구름 잡는 이념, 당파 논쟁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조선의 고뇌가 있었다. 인재를 선발할 때 윤리성이 먼저인가 능력이 먼저인가. 약소국이 강대국을 상대로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백성의 삶을 어찌할 것인가…. 교육과 입시는 궁극적으로 국가의 존망(存亡)과 백성의 생사(生死)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2023년 한국은 외교, 기술, 경제의 격변기에 첨단 인재가 절실하다. 기초과학을 지탱할 물리학 인재, 저출산 고령화를 해결할 인문사회 인재도 필요하다. 그런데 학생은 줄고 아이들은 의대만 바라본다. 자원도 없고 땅도 좁은 나라가 생존할 길은 인재뿐이다. 교육은 그 전략적 방향을 제시해야 하고 그게 교육 논쟁의 본질이어야 한다. 최근 벌어진 우리의 ‘킬러(초고난도) 문항 논쟁’을 돌아본다.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빼라고 6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이 갑자기 지시했고 논란 끝에 9월 모의평가로 일단락됐다. 수험생 사이에선 ‘9모’가 아니라 ‘윤모(윤석열 모의평가)’였다는 말도 나온다. 그런데 3개월간 대통령, 교육부, 국세청이 동원되고 교육 현장이 뒤집힌 논쟁은 무엇을 남겼나. 킬러 문항이 사라진 자리는 덜 어려운 준(準)킬러 문항이 채웠고 교육은 변한 게 없다. “킬러는 없었다”는 발표에 대통령은 흡족할지 모르나, 남은 것은 이례적으로 급증한 N수생과 내심 웃는 재수학원들뿐이다. 잡겠다는 사교육비가 오히려 늘어날 판이다. 국가 존망, 국민 생사 같은 것들은 근처에도 안 갔다. 이런 무익한 논쟁에 세 달간 온 나라가 들썩이고 국력이 소모되는 사태는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 교권 침해와 교사들의 죽음으로 무너진 학교를 추스르기도 버거운 요즘 아닌가.이은택 정책사회부 차장 nabi@donga.com}

    • 2023-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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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 모의평가 사진 오류… ‘도쿄’ 자유의 여신상을 ‘뉴욕’으로 제시

    6일 실시된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에서 일본 사진이 마치 미국 사진인 것처럼 출제되는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문제의 문항은 사회탐구 영역 세계지리 3번이다.이 문제는 경도와 위도, 도시 상징물의 사진, 설명이 제시된 각각 두 개의 도시를 보여주고 선택지에서 옳은 정답을 찾는 문제다.도시 (가)는 서경 73도 56분, 북위 40도 44분에 있고 여신상이 손에 횃불을 들고 있는 곳이다.도시 (나)는 동경 151도 31분, 남위 33도 52분에 있고 조개껍데기를 닮은 건축물이 바닷가에 있다.문제는 (가)에서 생겼다. 이 문제는 (가)를 미국 뉴욕, (나)를 호주 시드니로 제시하려는 의도에서 출제됐다. 제시된 위도와 경도가 각각 뉴욕과 시드니를 가리킨다.그런데 (가)에서 여신상이 횃불을 들고 있는 사진의 도시는 뉴욕이 아니라 일본 도쿄 해변도시 오다이바다. 1889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자유의 여신상을 1998~1999년 한시적으로 오다이바에 옮겨 전시했는데, 일본과 프랑스 양국 우호 차원에서 이후 파리시의 허가를 받아 복제품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언뜻 보면 뉴욕 자유의 여신상과 헷갈릴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뒤에 도쿄 레인보우브리지(다리)가 보이는 등 뉴욕과는 확실히 다르다. 출제 과정에서 자유의 여신상 사진을 검색하면서 일본의 것을 미국의 것인줄 알고 잘못 쓴 것으로 보인다.한 입시업체 관계자는 “오다이바 자유의 여신상이 맞다. 뉴욕이 아니다”고 말했다. 수험생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사진을 대충 찾은 듯 하다”, “레전드 오류”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3-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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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킬러문항 빼라” 교수 출제문항 걸러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출제에는 교수와 교사가 출제위원으로 참여한다. 그간에는 교수 비율이 55%, 교사가 45%로 ‘교수 중심’이었다. 고교 과정을 넘어선 대학 수준의 수학 문제나 킬러(초고난도) 문항이 출제된 데에는 이런 구조도 한몫했다는 지적이 계속 있어 왔다. 교수들은 저마다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문 분야들이 있고, 수능 출제는 오류나 논란 등을 최소화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출제 단계에서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에서 출제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전공 분야가 바로 출제 분야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수능 출제 시즌이 되면 유명 학원가는 출제위원 후보들로 거론될 만한 교수들의 집이나 연구실로 전화를 돌렸고 ‘출장’ ‘부재중’ 등의 답이 돌아오면 ‘출제위원으로 합숙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해당 교수의 논문 등을 연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6월부터 킬러 문항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뒤 교육부는 ‘공정수능출제점검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위원회의 위원들은 전원 경력 10년 차 이상 현직 고교 교사들이다. 국어 영어 수학 각 3명, 사회탐구 8명, 과학탐구 8명 등 총 25명으로 구성된다. 이들의 역할은 출제위원이 문제를 만들면 그 문제들 중 킬러 문항이 있는지 검토하고 그 문항들을 들어내는 것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따르면 6일 치러진 9월 모의평가도 출제 과정에서 이 위원회가 운영됐다. 평가원 관계자는 “위원인 교사들이 상당수 킬러 문항을 지적했고 모두 배제했다”고 말했다. 앞서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점검위원회의 지적이나 의견은 출제위원이 반드시 반영하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교수가 낸 문제들을 교사들이 배제할 수 있다는 것으로, 출제의 무게 중심이 교수에서 교사로 넘어갔다는 것을 의미한다. 9월 모의평가를 분석한 전문가들이 대체적으로 “킬러 문항이 배제됐다”는 평가를 내린 것을 감안하면 위원회는 실제로 제 기능을 했고, 이는 앞으로 수능, 모의평가에서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는 “9월 모평에서 국영수 세 영역에 가동한 공정수능출제점검위원회를 수능에선 전 영역으로 확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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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험 문제 때문에… 대통령 고개 숙이고 학부모 소송까지

    《6월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서 시작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킬러(초고난도) 문항’ 논란 이후 석 달이 지났다. ‘수능 문제를 출제할 때 학교에서 가르치는 공교육 과정을 넘어선 문제들을 배제하라’는 윤 대통령 지시는 원론적이고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역대 어느 정부도 대통령이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 지시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외신도 관심을 갖고 이 문제를 보도했다. 6월 21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의 대입 시험은 매우 어려운 문제들로 악명이 높고 대통령이 불만을 토로했다”며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사퇴,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 경질 등을 다뤘다. 열흘 뒤에는 미국 CNN이 “킬러 문항은 학생들로 하여금 두통을 유발하게 하는 고급 미적분학부터 매우 모호한 문학 지문까지 다양하다”며 “2022년 한국인들은 사교육에 총 200억 달러(약 26조2000억 원)를 지출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는 아이티(210억 달러), 아이슬란드(250억 달러) 등 작은 국가들의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 규모라고 했다.》6일 전국에서 치러진 9월 모의평가(9모)는 앞서 전개된 사태들의 ‘분기점’이었다. 정부는 전에 없던 점검위원회, 자문위원회까지 만들어 문항을 점검했다. 9모가 끝난 뒤 입시업체들은 대체로 “대통령의 지시대로 킬러 문항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험은 쉽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놨다. ● 대학 지식 묻는 문항까지… 오류 시비도 킬러 문항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이명박 정부였던 2010년 즈음이다. 한 현직 고교 교사는 “그전에도 수능 문제가 어려울 때도, 쉬울 때도 있었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이 축적되고 있었다”며 “1994학년도에 처음 시행된 수능이 15년 가까이 이어지는 동안 교육과정,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은 크게 바뀌지 않았고 출제자 입장에서는 새로운 문제를 낼 수 있는 여지가 자꾸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기출 문제가 쌓이고 쌓이면서 학생들이 수능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교육당국은 학업 부담을 줄이겠다며 고교생이 배워야 할 학습 범위를 자꾸 줄였다. 하지만 수능은 한국에서 여전히 가장 객관적인 대입 평가 수단이었다. 특히 최상위권 학생들을 ‘객관적으로’ 줄 세우는 역할을 해야만 했다. 이 때문에 출제위원들은 ‘더 어려운, 더 복잡한’ 문제를 찾았고 각종 논문, 고전 철학, 경제금융 분야 전문 지식 서적, 대학 과정의 수학 이론까지 수능에 동원했다. 그 결과로 태어난 것이 ‘킬러 문항’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킬러 문항은 주로 수능이나 모의평가 국어, 수학 영역에서 출제됐다. 2019학년도 국어에는 만유인력 지식이 있어야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왔다. 2020학년도 국어에는 자기자본비율(BIS), 위험 가중 자산, 바젤 협약 등 전문 용어가 지문에 등장했다. 2022학년도에는 헤겔의 변증법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수학은 2018학년도에 복잡한 미분 문제가 출제됐는데 정답률이 2%대였다. 문제가 어렵고 꼬인 형태로 출제되다 보니, 출제 오류 시비도 있었다. 2021년 수능 때는 생명과학 문제에 오류 시비가 일었고 당시 수험생 92명이 평가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여기에 미국 명문대 교수까지 등판했다. 소를 제기한 학생들이 미국 대학 생물학 전공 교수들에게 e메일을 보내 이 문제가 틀리게 출제됐는지 물었고 유전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조너선 프리처드 미국 스탠퍼드대 석좌교수가 트위터에 “문제에 수학적 모순이 있다”고 밝혔다. 결국 강대중 당시 평가원장은 사퇴하고 전원 정답 처리됐다. 대표적인 ‘불수능’(어려운 수능)으로 꼽혔던 2002학년도 당시에는 수능이 전년도보다 심각할 정도로 어려워져 김대중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쉽게 출제한다는 정부 약속을 믿었다가 충격을 받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럽다”며 사과까지 했다.● 대통령 말에 ‘발칵’… ‘카르텔’ 조사로 이어져 이 같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6월부터 시작된 ‘킬러 문항’ 사태는 준비 없이 급박하게 벌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능을 불과 155일을 앞둔 6월 15일 윤 대통령은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고,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은 부분을 출제에서 배제하라”고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당일 대통령실이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출제하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로 발언을 수정한다고 밝혔다. ‘물수능’(너무 쉬운 수능) 우려가 일자 16일 대통령실은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공정한 변별력은 모든 시험의 본질”이라고 대통령 발언을 수정하는 자료를 다시 냈다. 같은 날 오후에는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공정한 수능에 대한 지시였다”고 말했다. ‘학교 수업’에서 ‘공교육’으로, 다시 ‘공정한 변별력’으로, 또 ‘공정한 수능’으로 미묘하게 조금씩 바뀐 것이다. 사태는 인사로 번졌다. 6월 16일에는 입시를 담당하는 이윤홍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이 대기발령 조치됐다. 같은 달 19일에는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임기 도중에 사임했다. 수능도 아니고 모의평가 때문에 교육부 국장, 평가원장이 물러난 적은 처음이었다. 다음은 학원가였다. 윤 대통령이 교육 당국과 사교육 업체를 겨냥해 “한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고 한 여파였다. 서울 강남구 일대 주요 학원들, 유명 ‘일타 강사’들이 세무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한 사교육 관계자는 “학원들은 거의 공안 정국 분위기다. 다들 숨죽이고 있다”며 “암암리에 수능이나 모평 관련 분석 자료를 내지 말라는 압박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문제의 원인을 찾기 전에 범인부터 색출하고 나섰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킬러 문항이 문제라면 이런 형태의 문항이 왜 수능에 등장하게 됐는지를 먼저 고민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한 고교 교사는 “학습 범위 축소, 장기간 이어진 수능 문제 고갈, 의대 등 일부 인기 학과의 치솟는 커트라인(합격선)과 학생 쏠림 현상, 수능 외에는 다른 객관적 평가 지표가 부족한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가 킬러 문항”이라며 “정부가 이런 포인트를 먼저 찬찬히 짚어봤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사람부터 자르고 봤다”고 지적했다.● 韓 교육열 과열… 전설적인 ‘무즙 파동’도 한국의 과도한 교육열도 현상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대입 시험에 어떤 문제를 넣고 빼느냐’는 논란에 대통령이 가세하고 국세청 등이 동원되는 사태는 해외에서는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이 교육 문제에 극도로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의 과열된 교육 현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으로 종종 거론되는 것이 1964년(1965학년도) 경기중 입학시험 출제 오류 사태였다. 당시 경기중 입학은 경기고-서울대 진학 지름길로 꼽혔고 전국 수재들이 몰렸다. 입학시험 자연 과목 18번에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정답은 ‘디아스타아제’였으나 문제는 다른 보기에 ‘무즙’이 있었던 것. 일부 학생들은 무즙을 정답으로 선택했다가 틀렸다. 어릴 때 무즙으로 엿기름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는 학부모들은 “무즙도 정답이다”며 항의 집회를 시작했고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시교육감이었던 김원규 씨가 “무즙으로 엿을 만들 수 있다면 무즙을 답으로 쓴 학생들을 구제해보겠다”는 발언을 했고, 일부 학부모들이 실제로 솥에 무즙으로 엿기름을 만들어 서울시 교육위원회에 가지고 나와 시의원들에게 “엿 먹어보라”며 항의 시위를 했다. 결국 반년이 흘러 경기중은 ‘무즙’을 정답으로 선택한 학생들 중 일부의 전학을 받았다. 당시 한상봉 문화체육교육부 차관, 시교육감 등이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이는 1969년 중학교 입시 폐지의 단초가 됐다. ● 교육계 “경쟁 구조에 대한 고민 필요” 문제는 앞으로다. 킬러 문항이 배제된 9월 모의평가는 ‘변별력’ 측면에서 일부 불안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수학 과목이 ‘쉬웠다’는 평가가 나온 것. 6일 시험을 마치고 나온 고교생들 중 상위권 상당수에서는 “이럴 거면 수학을 왜 공부했는지 모르겠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수능이 변별력을 상실한다면 대학 입장에서 정시에 지원한 학생들을 변별, 즉 ‘줄 세우기’ 할 수 있는 다른 자료들은 뻔하다. 수학이나 특정 과목에 가중치를 높인다든지, 논술 혹은 면접에서 보다 더 어려운 문제, 어려운 질문들은 던진다든지 하는 방법뿐이다. 교육계에서는 킬러 문항 논란을 계기로,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한 고교 교사는 “상대평가와 경쟁 체제의 현재 입시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킬러 문항과 유사한 논란은 벌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우리나라는 교육부가 각 대학에 일정 비율 이상의 신입생을 반드시 정시(수능 성적)로 선발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수도권 주요 대학은 약 40%를 정시로 선발한다. 수능 성적 100%로 선발하는 정시의 구조상 주요대 의대, 약대, 수의대, 한의대, 치대와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최상위권 대학들로 올라가면 한 문제 차이가 당락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대학들은 이런 기능을 수능이 해주길 원하고 출제위원들이 이를 위해 고안한 것이 킬러 문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일부 대학에서는 이 같은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신입생을 뽑을 때 아예 과, 학부 칸막이 없이 ‘1학년’으로만 뽑는다거나 인문계 혹은 자연계로만 뽑는 식이다. 이렇게 학생을 뽑으면 굳이 1등부터 100등까지 가려낼 필요가 없다. 일단 이렇게 선발한 뒤 1학년 과정을 거치는 동안 우수한 성적을 보이는 학생들이 2학년이나 3학년 때 좋은 과로 진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한 사립대 교수는 “그간 일명 명문대라고 하는 곳들은 학생을 잘 가르치려는 노력 없이 처음부터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는 데에만 집중해왔다. 그 결과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진 측면도 있다”며 “잘하는 학생을 뽑는 것보다는, 일단 뽑아서 우수한 인재를 만드는 방향으로 변해야 대학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3-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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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지털-기후위기 등 미래문제 대응… 25개大 융합인재양성사업 출범

    우리나라의 혁신성장을 이끌 ‘인문사회 융합인재양성사업’이 29일 단국대 천안캠퍼스 보건과학관에서 출범했다. 이 사업은 교육부가 디지털시대, 기후위기 등 미래 문제에 대응할 5개 분야의 인재를 육성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에는 2025년까지 분야별로 90억 원씩 총 450억 원을 지원한다. 참여 대학은 총 25곳이다. 대학들은 5곳씩 컨소시엄을 구성해 학과, 대학 간 경계를 허물고 학문 간 융합교육 시스템을 도입한다. 교육 과정, 교육 방법, 교육 인프라도 혁신하고 비전과 교육모델도 공유한다. 참여 대학의 재학생들은 정규 과목 외에 인턴십이나 현장 전문가 특강, 경진대회 등의 활동을 통해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얻게 된다. 또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다른 대학의 강의를 들을 수 있고, 산업체 현장실습의 기회도 주어진다. 이날 행사에는 교육부 최은희 인재정책실장, 박대현 한국연구재단 학술진흥본부장, 안순철 단국대 총장 등이 참석해 토론을 진행했다. 안 총장은 “미래 산업분야의 인재 육성과 산학협력 생태계 조성에 의미 있는 진전이 있도록 대학의 기본 역량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3-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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