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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잘라야겠는데요.” 의사에게서 설암(舌癌) 4기라며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은 지 1년 5개월이 지났다. 한유경 씨(28·사진)는 혀의 절반 이상을 절제한 뒤 거기에 허벅지 근육을 떼어내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어 글로 하루하루를 기록했다. 그 투병일기를 엮어 에세이집 ‘암병동 졸업생’을 자신이 차린 독립출판사에서 최근 펴냈다. 1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한 씨는 “아프다고 집에만 숨어 지내는 이들에게 ‘내 삶을 공개하는 건 두려운 일이 아니다’라는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장 첫 출근을 앞둔 평범한 20대이던 한 씨의 삶은 지난해 5월 송두리째 바뀌었다. 암은 혀와 목, 허벅지에 수술 흔적을 남겼다. 한 씨의 옷장은 목과 다리를 가릴 수 있는 옷들로 채워졌다. 아직 항암 치료가 남아있다. 완치 판정을 받을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허벅지 근육을 이식한 혀는 말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지만 미각은 느끼지 못한다. 한 씨는 “먹는 즐거움을 잃은 게 가장 아쉽다”며 “수술 자국 때문에 앞으로 웨딩드레스는 입을 수 있을지, 수영장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많다”고 했다. 암 때문에 잃은 것이 많지만 얻은 것도 적지 않다. 한 씨는 3개월에 한 번씩 유서를 새로 쓴다. 그는 “가족과 친구에게 전하지 못한 미안함, 고마움, 칭찬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됐다”며 “작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물건을 누구 앞으로 남길 건지 고민하다 보면 고마운 사람들이 떠오른다”고 했다. 투병일기를 책으로 내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크게 반대했다. 하지만 한 씨에게 책 출간은 ‘아프면 숨어 지내야 한다’는 사회적 편견에 맞서 싸우는 과정이었다. 그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항암 및 우울증 치료 이야기를 올렸더니 다른 암 환자들이 ‘공감한다’ ‘멋지다’며 응원해줬다. 앞으로 암 병동을 ‘졸업하실’ 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쉽게 세상에 꺼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독성을 없앤 잉크와 친환경 종이를 써서 책을 제작한 것도 항암 치료를 받으면 화학물질에 예민해지는 이들을 배려해서였다. “암을 이겨낸 사람이든, 이겨내고 있는 사람이든 모두 멋진 사람이란 걸 스스로가 알았으면 좋겠어요. 세상 사람들은 암 환자를 ‘보호받아야 하는 약한 존재’로 보지만 사실 다 이겨내고 더 강한 사람이 되어 나오는 거니까요.”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경오년 2월 여종 말금은 수령에게 죽은 남편의 사촌인 승운을 고발하는 소지(所志)를 제출했다. 증조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경작해온 남편의 땅을 승운이 땅문서를 조작해 빼앗으려 한다는 것. 말금은 소지에서 “이 과부를 도우셔서 제 땅을 빼앗으려는 승운의 못된 계략을 멈춰 달라”고 호소한다. 수령은 판결에서 “원고의 사실이 확인되면 승운을 체포하라”고 명했고, 승운의 문서 조작이 확인돼 말금은 땅을 되찾았다. 소지에서 언급한 경오년은 1750년, 1810년, 1870년 중 한 해로 추정된다. 조선시대는 신분 세습과 남녀 차별이 엄격한 사회였지만, 신분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소송 제도가 있었다. 모든 신분의 여성이 법적 주체가 돼 관아에 소송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지수 미국 조지워싱턴대 역사학과 교수(44)는 조선시대 여성들의 소지 600여 건을 분석해 학술서 ‘정의의 감정들’(너머북스·사진)을 최근 출간했다. 김 교수는 양반, 평민, 노비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이 작성한 소지를 분석했다. 지방의 도와 군현에서 제기된 소지 155건 중 한글로 쓴 것도 30건이 남아있다. 남성 중심의 한자 문화에서 벗어나 있던 여성들이 한글로 소지를 쓴 것이다. 양반 여성은 입양으로 인한 장자의 권리, 재산 분배, 노비 소유 등에 대해 소송을 주로 제기했고, 하층민 여성들은 세금, 토지 분쟁, 채무, 구타 등에 대한 것이 많았다. 양반인 부인 임씨는 1652년 전라도 관찰사에게 가문의 계승과 재산 문제에 대해 소지를 제출했다. 죽은 남편이 노비 출신 등의 첩에게서 난 딸이 둘 있지만, 나중에 대를 잇기 위해 들인 양자에게 더 많은 재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충청도 공주의 평민 정조이는 전라도 금산의 수령에게 소지를 제출해 시아버지 묘지 앞에 조상의 시신을 몰래 묻은 이순봉이라는 자를 고소한다. 당시 묘지 자리를 빼앗는 것은 토지를 빼앗는 것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송할 권리는 기생에게도 있었다. 1705년 제주도의 기생 곤생은 바다를 건너 전라도 관아까지 나와 억울하게 죽은 세 딸에 대해 호소했다. 제주 수령 이희태가 개인적 원한으로 자신의 딸들에게 누명을 씌우고 고문을 하다 딸들이 모두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사안은 숙종에게까지 보고됐고, 숙종은 이희태를 유배 보냈다. 누구나 소송할 수는 있었지만, 역시 차별은 존재했다. 소송 제기자가 여성이라서 무시당하고, 한자가 아닌 한글로 소지를 작성해서 무시당한 경우도 많았다. 김 교수는 “현대적인 ‘평등’의 관념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신분 경계 내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박탈당한 백성들에게 최소한 국가에 소송을 제기할 동등한 기회는 준 것”이라고 설명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도시의 난개발 문제를 지적할 때 성냥갑같이 빼곡히 지은 아파트가 늘 등장한다. 지난해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인구 절반이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아파트는 여전히 ‘환경적이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곤 한다. 10년 넘게 이라크 베트남 인도 등 세계의 토목건설 현장에서 일한 저자는 ‘인공적인 것이 환경을 파괴한다’는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이를 사회적 비용을 절감시키는 인프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 댐, 터널, 교량 등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도심의 아파트에 사는 것이 교외의 전원주택에서 사는 것보다 환경을 덜 오염시킨다고 주장한다. 교외에서 도심으로 장거리 출퇴근하는 자동차에서 내뿜는 온실가스가 도심 아파트에 살면서 직장까지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경우보다 훨씬 더 많고, 아파트 인근 대중교통 시설이 더 잘돼 있어 1인당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적다는 것. 저자는 스위스가 댐 1만8000개를 지어 수력발전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알프스산맥에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을 뚫어 산을 돌아서 이동할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 양을 줄였다고 주장한다. 책은 인공 건축물에 대한 근거 없는 거부감을 한 번쯤 돌아보게 한다. 하지만 아파트 투기, 건축 허가 시 졸속으로 진행되는 환경평가, 인구 과밀화에 대한 부작용 등은 여전히 우리가 해결할 과제라고 지적하고 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경략복국요편(經略復國要編)’은 명나라가 임진왜란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다. 맥아더 장군이 쓴 ‘6·25전쟁기’ 정도로 이해하면 쉽다.”(구범진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51)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대 총괄 지휘관을 지낸 송응창(1536∼1606)의 ‘경략복국요편’을 번역한 ‘명나라의 임진전쟁’(국립진주박물관) 1, 2권이 출간됐다. 국립진주박물관의 국내외 임진왜란 관련 사료 국역사업의 하나로 명나라 관점에서 임진왜란을 기록한 자료의 국내 번역은 처음이다. 번역을 맡은 한중관계사료연구팀 7인을 9일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구 교수를 좌장으로 하는 연구팀은 김창수 충북대 산학협력단 연구원(40), 박민수 이화여대 사회과교육과 교수(41), 정동훈 서울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39)와 서울대 역사전공 박사과정 이재경(34) 김슬기(32) 서은혜 씨(30) 등이다. 경략복국요편은 임진왜란 때 전선의 배후에서 병력과 물자 조달을 총괄하는 문관을 뜻하는 경략을 지낸 송응창이 1595년경 펴냈다. 조선 국왕과 관료, 북경의 황제와 고관, 전선의 사령관들과 주고받은 공문서와 개인 편지들로 이뤄져 있다. 빗발치는 병력 지원 요청과 미지근한 명나라 조정의 반응 사이에서 고뇌하는 송응창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정 교수는 “국내에서는 임진왜란을 조선과 일본의 전쟁으로만 보는데 사실 명나라가 큰 축을 차지했다. 연구 관점을 동아시아로 넓힐 필요가 있다”고 연구 배경을 설명했다. 당시 명나라 공문에 쓰인 행정용어 해독이 까다로워 1, 2권 번역에만 꼬박 2년이 걸렸다. 3∼5권은 내년에 나온다. 박 교수는 “이번 번역작업으로 조선시대 사료와 역사적 사실들을 대조해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송응창은 일본과 강화해 전쟁을 끝내려는 행보를 보여 선조는 물론 명나라 조정 강경파에게 주화론(主和論)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최영창 국립진주박물관장은 발간사에서 “송응창이 명 조정 일각으로부터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엮은 책”이라며 “(그럼에도) 각종 전투와 강화 교섭의 진행을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귀중한 사료”라고 평가했다. 책에서는 명군(明軍)의 목적이 단지 조선을 돕기 위함이 아니라 왜군의 명나라 본토 침략을 막는 것에 있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임진왜란을 항왜원조(抗倭援朝·왜적의 침략에 맞서 조선을 도움)라 칭하지만 사실은 조선을 방어막 삼아 명나라를 지키려 한 의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송응창은 ‘일본을 차단해 곧바로 산동(山東) 요동(遼東) 등으로 건너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조선의 힘이다’ ‘전라, 경상을 지키지 못하면 조선을 잃는 것’이라고 여러 번 강조한다. 이재경 씨는 “송응창에게 내려진 명령은 ‘왜를 막아라. 그리고 가능하면 조선을 도와줘라’ 정도였다. 철저하게 명나라 방어가 목적”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이 책이 임진왜란의 전모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입을 모았다. 구 교수는 “명군이 군량을 비롯한 군수물자 확보를 얼마나 중시했고 이를 마련하는 데 얼마나 곤란을 겪었는지 등 그동안 확인 안 된 내용을 많이 알게 됐다. 많은 사람이 더 노력해야 진실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빙산의 일각에 접근 가능하도록 했다는 데 이 책 번역의 의의가 있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잔다리’ ‘오름’ ‘새절’….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정작 왜 이런 독특한 이름이 붙여졌는지 설명하기는 어려운 지명들이다. 우리 땅 이름의 어원을 설명한 책 ‘우리말 땅 이름’(도서출판 b) 2권이 나왔다. 저자는 등단 시인이자 고등학교 국어 교사로 은퇴한 윤재철 시인(67)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소됐지만, 매년 가을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에서는 인디음악 축제 ‘잔다리 페스타(Zandari Festa)’가 열린다. ‘잔다리’는 영어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고, ‘잔다리(里)’로 보이기도 한다. 국토지리정보원의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잔다리는 마포구 서교동과 동교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이곳에서 한강을 가려면 작은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이를 ‘잔다리’라 불렀고, 한자 표기로는 ‘세교(細橋)’가 됐다. 훗날 동쪽 잔다리는 ‘동교’, 서쪽 잔다리는 ‘서교’가 됐다. 서울 강남구와 은평구의 신사동은 동네 이름은 같지만 지하철역은 각각 ‘신사’ ‘새절’이다. ‘고려사’(1202년) 등에 따르면 강남구 신사동은 한강 모래 벌이 있어 ‘사리(沙里)’ ‘사평(沙坪)’으로 불렸다. 인근 ‘신촌’이라 불린 옛 지명의 ‘신(新)’과 모래의 ‘사(沙)’가 합쳐져 ‘신사’가 됐다. 반면 은평구 신사동은 옛날에 이곳에 ‘새로운 절(新寺)이 있었다’고 전해진 데서 유래해 ‘새절’로 불렀고 지하철 역 이름이 됐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往十里)의 지명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도성 위치를 정하러 다닐 때 어느 노인으로부터 ‘10리를 더 가라’는 말을 들었다는 설화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고려 말 성리학자 이색(1328∼1396)이 지은 시에는 이미 ‘왕심(旺心·왕성한 중심)’이란 지명이 등장한다. 다른 한자로 ‘왕심(枉尋)’을 써서 무학대사가 ‘가서 찾아본 동네’에서 유래했다는 설화도 있다. 제주에는 독특한 땅 이름이 유독 많다. 소형 화산체인 ‘오름’은 ‘오르다’에서 유래됐다. 오래된 제주 방언으로, 조선시대 김상헌의 ‘남사록’(1601년)에 ‘오름’을 한자 음으로 표현한 ‘오로음(吾老音)’이라는 기록이 있다. 산책 코스로 알려진 ‘올레’는 원래 의미와 크게 달라졌다. 원래 올레는 제주 주택 구조에만 있는 ‘큰길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좁은 진입로’를 의미하는 제주 말이다. 산이 많은 지역에서는 유독 부엉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전남 장성군 부흥리는 ‘부엉부엉’에서 따와 한자로 ‘부흥(富興)’을 쓰다가 ‘부흥(扶興)’으로 바꿨다. 발음을 줄여 ‘봉(鳳)’이 된 사례는 대전 유성구 봉명동, 충남 공주시 봉갑리, 경북 칠곡군 봉암리 등이 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잔다리’ ‘오름’ ‘새절’….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정작 왜 이런 독특한 이름이 붙여졌는지 설명하기는 어려운 지명들이다. 우리 땅 이름의 어원을 설명한 책 ‘우리말 땅 이름’(도서출판 b) 2권이 나왔다. 저자는 등단 시인이자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은퇴한 윤재철 시인(67)이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취소됐지만, 매년 가을 서울 마포구 홍대 앞에서는 인디음악 축제 ‘잔다리 페스타(Zandari Festa)’가 열린다. ‘잔다리’는 영어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고, ‘잔다리(里)’로 보이기도 한다. 국토지리연구원의 ‘한국지명유래집’에 따르면 잔다리는 마포구 서교동과 동교동 일대를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이곳에서 한강을 가려면 작은 다리를 건너야 했는데, 이를 ‘잔다리’라 불렀고, 한자 표기로는 ‘세교(細橋)’가 됐다. 훗날 동쪽 잔다리는 ‘동교’ 서쪽 잔다리는 ‘서교’가 됐다. 서울 강남구와 은평구의 신사동은 동네 이름은 같지만 지하철역은 각각 ‘신사’ ‘새절’이다. ‘고려사’(1202년) 등에 따르면 강남구 신사동은 한강 모래벌이 있어 ‘사리(沙里)’ ‘사평(沙坪)’으로 불렸다. 인근 ‘신촌’이라 불린 옛 지명의 ‘신(新)’과 모래말의 ‘사(沙)’가 합쳐져 ‘신사’가 됐다. 반면 은평구 신사동은 옛날에 이 곳에 ‘새로운 절(新寺)이 있었다’고 전해진데서 유래해 ‘새절’로 불렀고 지하철 역 이름이 됐다. 서울 성동구 왕십리(往十里)의 지명 유래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조선 초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의 명으로 도성 위치를 정하러 다닐 때 어느 노인으로부터 ‘십리를 더 가라’는 말을 들었다는 설화가 가장 유명하다. 하지만 고려 말 성리학자 이색(1328~1396)이 지은 시에는 이미 ‘왕심(旺心·왕성한 중심)’이란 지명이 등장한다. 다른 한자로 ‘왕심(枉尋)’을 써서 무학대사가 ‘가서 찾아본 동네’에서 유래했다는 설화도 있다. 제주에는 독특한 땅 이름이 유독 많다. 소형 화산체인 ‘오름’은 ‘오르다’에서 유래됐다. 오래된 제주 방언으로, 조선시대 김상헌의 ‘남사록’(1601년)에 ‘오름’을 한자 음으로 표현한 ‘오로음(吾老音)’이라는 기록이 있다. 산책코스로 알려진 ‘올레’는 원래 의미와 크게 달라졌다. 원래 올레는 제주 주택구조에만 있는 ‘큰 길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좁은 진입로’를 의미하는 제주 말이다. 산이 많은 지역에서는 유독 부엉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전남 장성군 부흥리는 ‘부엉부엉’에서 따와 한자로 ‘부흥(富興)’을 쓰다가 ‘부흥(扶興)’으로 바꿨다. 발음을 줄여 ‘봉(鳳)’이 된 사례는 대전 유성구 봉명동, 충남 공주시 봉갑리, 경북 칠곡군 봉암리 등이 있다.최고야기자 best@donga.com}

2020년 미국 대선의 승자가 유력시되는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의 자서전 ‘조 바이든, 지켜야 할 약속’(지켜야 할 약속) ‘약속해 주세요, 아버지’(약속해 주세요)가 국내에서 나란히 출간됐다. ‘지켜야 할 약속’은 2007년, ‘약속해 주세요’는 2017년 미국에서 나왔는데 올해 뒤늦게 번역된 것이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조력자라는 인식이 강할 뿐, 그의 정치인생 전반에 대해 알려진 바는 적다. 두 책에는 바이든의 어린 시절과 정치 입문, 아들의 죽음, 부통령으로서의 삶, 생사를 넘나들었던 뇌동맥류 수술 등 질곡과 야망의 인생사가 담겨 있다. ‘지켜야 할 약속’은 2007년까지 그가 살아온 인생 전반을 돌아본다. ‘왕따’당했던 암울했던 어린 시절, 겨우 구애에 성공한 재혼 과정 등 개인사까지 진솔한 어조로 소개한다. 그는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왜소한 체격에 말까지 더듬어 놀림을 받는 외톨이였다. 스스로도 “나는 모스부호처럼 말했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끊임없이 마틴 루서 킹 목사,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등이 들어와 있어 정치를 향한 야망으로 부풀게 했다. 그는 로스쿨 진학 후 짧은 변호사 생활을 접고 1972년 29세에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당선돼 2009년까지 36년간 연방상원의원을 지냈다. 1988년, 2008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지만 두 번 다 중도하차했다. 미미한 존재감으로 2008년 경선을 중도 포기한 후에는 스스로도 정치인생에 큰 반전은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다. ‘약속해 주세요’에서는 오바마 행정부의 조력자로 살았던 ‘부통령 바이든’과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바이든’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부통령 시절의 외교 이야기와 아들을 떠나보낸 아픈 가정사가 버무려져 인간적이면서도 국정운영 능력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들을 함께 담아냈다. 아들 보는 델라웨어주 법무부 장관과 미 육군 대장을 지낸 유망 정치가였지만, 2013년 뇌종양 진단 후 2년 만인 2015년 5월 세상을 떠났다. 보는 생전에 아버지의 대선 출마를 원했다. 하지만 2016년 폴리티코에서 “2016년 (대선 출마) 계획을 죽은 아들에 대한 이야기로 만들고 있다”고 보도하자 출마 계획을 접었다. 아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오명을 얻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부통령을 지내며 ‘조력자’ 혹은 ‘2인자’ 이미지가 각인된 그에게 ‘카리스마가 없다’는 비판은 쓰라린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09∼2017년 부통령 경험은 꺼져가던 정치인생의 불씨를 살려준 중요한 전환점이 된 것이 분명하다. 벌써부터 국내에서는 그동안 그가 해온 외교적 발언들로 본 미국의 한반도 정책 전망을 내놓기 바쁘다. 이 책에는 인간 바이든의 모습 외에도 부통령 시절 쌓은 외교적 신념들에 대해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한 부분이 많아 참고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사회학자로 살다 3년 전 돌연 장편소설 두 편을 썼다. 학자로서 40권 넘는 책을 썼으나, 시대가 흘러가면 지식도 함께 흘러가버려 공허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64)가 ‘인민의 탄생’(2011년), ‘시민의 탄생’(2013년)에 이어 7년 만에 ‘국민의 탄생’(민음사)으로 ‘탄생’ 3부작을 완결했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송 교수는 “‘탄생 시리즈’는 10년이 넘는 동안 탄탄한 연구 끝에 쓴 책이라 공허함이 들지 않는 책이다. 다른 책을 쓰더라도 늘 이 책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는 조선 말기와 일본 제국주의 시기 한반도의 공론장이다. 종교, 정치(사회운동), 매체(문예) 세 가지 축의 공론장에서 나타난 인민, 시민, 국민 의식의 발전 양상을 좇는다. ‘인민의 탄생’에서는 한글 확산으로 평민 사이에 담론장이 발생해 인민으로 발전한 과정을, ‘시민의 탄생’에서는 인민을 넘어 근대 시민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이번 책에서는 1905∼1919년 가혹한 일제 탄압 아래서 암암리에 싹튼 시민의식에 민족주체성이 더해지며 국민의식을 갖게 되는 과정을 분석했다. 송 교수는 고종이 승하하면서 ‘인민’들에게 ‘망해가는 나라를 우리가 붙잡아야 한다’는 주체의식이 생겼다고 봤다. 문예와 종교의 공론장에서 꿈틀댄 시민의식이 민족성 및 역사성과 만나 저항운동으로 변모해 3·1운동에서 꽃을 피웠다고 분석했다. 그는 “시민과 역사성이 결합하면 국민이 된다”며 “역사적으로 시민사회에서 국민국가로 진입할 땐 혁명이나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한반도에선 3·1운동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송 교수는 당시의 소설에서 문예 공론장의 실마리를 찾아냈다. 송 교수는 “일제 탄압으로 소설밖에 읽을 게 없었다. 당시 1700만 인구 중 20%는 신소설을 봤을 것”이라며 “독서를 통해 대화가 오가며 공론장이 형성됐을 것”이라고 했다. 특히 시민의 정체성을 가진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광수의 소설 ‘무정’(1917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중요한 공론장의 축인 종교에 대해 송 교수는 ‘시민종교’라고 명명했다. 송 교수는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이 설명했듯 인간종교가 성(聖)이라면, 시민종교는 속(俗)이다. 종교를 세속화한 것이 시민윤리의 발현”이라며 “종교 공론장은 시민을 배양하는 인큐베이터였다. 여기에 민족정체성이 더해져 항일운동, 즉 3·1운동의 일등공신이 됐다”고 했다. 이 시리즈를 집필해온 13년간 공론장에 천착한 그에게 현재 우리 사회의 공론장은 어떤 모습일까. 송 교수는 “문재인 정권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정의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장벽을 쌓았다”며 공론장의 부재를 지적했다. 그는 “지향과 경력이 동질적인 성(청와대) 안의 집권세력이 1980년대부터 지켜온 ‘그들의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며 오히려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있다. 외부 공격이 들어오면 문을 닫아버린 박근혜 정부와 결과적으로 모양이 똑같아졌다”고 비판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탄생 시리즈 4편을 기대해도 되느냐는 물음에 송 교수는 “아직 이르다”고 했다. 그는 “6·25전쟁 이후 다종교 사회로의 발전 등을 고려할 때 이후의 공론장을 연구하는 건 엄청난 과제”라며 “구한말 개화사상가 유길준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써볼까 한다”고 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조금주 도곡정보문화도서관 관장(52)은 자비를 들여 세계의 도서관을 300곳 넘게 방문했다. 여행에 나서면 관광지는 뒷전이고 도서관만 찾아다녔다. 2일 서울 강남구 도곡정보문화도서관에서 만난 조 관장은 “외국 도서관의 좋은 점을 한국 사서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의지가 컸다”고 했다. 그는 최근 세계의 도서관 문화를 소개하는 ‘내 마음을 설레게 한 세상의 도서관들’(나무연필)을 펴냈다. 그가 본격적으로 도서관 탐방에 나선 것은 2015년. 그해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그동안 보내드린 생활비를 모아 꽤 큰돈을 남긴 것. 이 돈을 의미 있게 쓰자고 고민한 결과가 도서관 여행이었다. 미국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한국과 미국에서 10년가량 도서관 사서를 했던 조 관장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2017년 4월 관장으로 취임하기 전에는 유럽 미국 아시아의 도서관을 부지런히 다녔다. 취임 후에도 코로나19 사태 전까지는 명절 연휴에 연차를 붙여 각국 도서관을 찾았다. 재난정보 시스템을 갖춘 일본 도서관, 환경 파괴를 최소화한 대만 도서관, 쇼핑몰보다 큰 중국 도서관 등 입이 떡 벌어지는 곳이 많았지만 그의 마음을 유독 잡아끈 곳은 ‘유미디어(Youth+Media)실’을 갖춘 미국과 유럽의 도서관이었다. 유미디어실은 10∼15세 전용 공간으로 또래끼리 모여 끼를 발산하고 쉴 수 있는 시설이 망라된 복합문화공간이다. 미 일리노이주 볼링브룩시의 파운틴데일 공공도서관은 영상과 오디오 장비를 대여해주며 창작활동을 독려하고, 시카고의 헤럴드워싱턴 도서관센터는 정숙을 강조하는 대신 밴드 연습실을 제공한다. 노르웨이 비블로 트위엔 도서관에서는 요리를 해먹고 잘 수도 있다. 조 관장은 “국내 도서관에도 청소년 공간을 만드는 게 도서관 여행의 최종 목표가 됐다”고 했다. 그가 미 도서관을 찾았을 때 “강남구의 대표 도서관”이라고 소개하면 싸이의 ‘강남스타일’ 덕에 호화 도서관에서 온 줄 알고 사서들이 격하게 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인구 4만∼8만 명의 소도시에서도 도서관세(稅)를 걷고 기부를 받아 예산이 풍족한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지난해 강남구민 1000명의 서명을 받아 강남구의 예산 투자 약속을 받아냈다. “한국은 아이들이 불행하잖아요. 교육열 높은 강남구가 더 심할 겁니다. 학원을 대체할 수 있으면서 부모가 안심하고 보낼 곳은 도서관이 유일해요. 당장은 돈이 들더라도 시설에 투자하고, 전문가 멘토까지 상주하면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꿈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현대 소설의 전범(典範)이 될 만한 작품을 소설가 이문열 씨(72)가 묶은 ‘이문열 세계명작산책’(무블)이 최근 다시 나왔다. 1996년 이 작가가 해외 중단편 명품 100편을 주제별로 10편씩, 모두 10권의 전집으로 출간한 것을 판형을 바꾸고 시대에 맞게 번역도 바꿨다. 기존 100편 가운데 12편을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이나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교체했다. 일본어 중역(重譯)이 포함된 옛 번역도 원전의 언어에서 바로 번역했다. 이렇게 바뀌거나 새롭게 번역된 것이 전체 작품의 30%에 이른다. 이번 개정판 역시 전체 10권으로 기획됐으며 1권 ‘사랑의 여러 빛깔’(왼쪽 사진)과 2권 ‘죽음의 미학’(오른쪽 사진)이 먼저 나왔다. 사랑의 본질이나 속성을 다룬 작품을 모은 1권에서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슌킨 이야기’와 오 헨리의 ‘잊힌 결혼식’이 보태졌다. 이 작가는 “어릴 때 (안톤) 체호프, 모파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단편작가로 외운 오 헨리에 대한 예우”라고 했다. 2권은 ‘고대로부터 문학의 가장 진지한 주제이면서 또한 가장 감동적인 장치’인 죽음을 다룬 작품을 모았다. 매 작품 끝에 달린 이 작가의 작품 해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좋은 글이다. 특히 새로 쓴 ‘슌킨 이야기’ 해설은 흥미롭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태상(太上) 4년 고구려가 다시 사신을 보내 천리인 열 명과 천리마 한 필을 바쳤다.’(‘십육국춘추·十六國春秋’)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5호 16국 시대 중국 남연(南燕)의 왕인 모용초(慕容超)에게 ‘천리인’과 천리마를 선물로 보냈다. 천리인은 먼 길을 빠르게, 잘 뛰는 사람이다. 말은 당연히 사람보다 빠르지만 유지비가 비싼 게 문제였다. 말을 대신해 달리는 직업이 생겨났고, 조선시대에는 이들을 보장사(報狀使)라고 불렀다. 폭설이 오거나 밥을 굶어 제대로 달리지 못해 하루라도 늦으면 벌금을 물었다. 최근 택배 종사자의 과로사로 문제가 되는 상황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수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업(業)의 고단함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출신 연구자 4명이 현재와 다른 듯 같은 조선시대의 ‘잡(job·일)’에 집중한 ‘조선잡사(朝鮮雜史)’(민음사)를 펴냈다. 동아일보에 2017년부터 1년 3개월 동안 기고한 칼럼에 살을 붙였다. 연고 없는 시신을 처리하는 매골승(埋骨僧)은 고독사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1614년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峰類說)’에는 “굶주린 백성이 대낮에 서로 잡아먹고 역병까지 겹쳐 죽은 자가 이어졌다. … 승려들을 모집하여 그들을 매장하니 이듬해에 끝났다”는 기록이 있다. 매골승은 가족 없는 시신을 찾아 불교식 장례를 지내주고 묏자리를 봐줬다. 나라에서 주는 곡식을 받아 생계를 꾸린 매골승은 준공무원 신분이었다. 군 면제를 받으려고 멀쩡한 치아를 뽑거나, 의료 기록을 조작하는 등 편법이 난무하는 요즘과 같이 조선시대에도 병역 기피 현상이 있었다. 다만 당시에는 가난한 백성이 생계를 이유로 군대를 못 가는 이유가 컸다. 군역(軍役)을 대신 해주는 품팔이들을 대립군(代立軍)이라 불렀다. 양반은 대립군을 불법 행위에 악용하기도 했다. 1700년 이세종은 과거시험장을 지키는 군졸을 매수한 뒤 자신의 종을 대립군으로 대신 들여보내 그 틈에 부정 행위를 해서 급제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관직에 오른 뒤 이 사실이 탄로나 지방으로 쫓겨났다. 해외에서 인기인 K뷰티의 DNA를 짐작해볼 수 있는 직업도 있다. 조선시대 왕실과 사대부 여성들은 화장에 관심이 많았다. 유일한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는 ‘규합총서(閨閤叢書)’에서 얼굴 화장과 머리 모양의 실상을 상세히 서술했다. 이때 활동한 이들이 화장품 판매상 매분구(賣粉嫗)다. 이들은 도매와 방문판매를 도맡았고 19세기에는 약방 형태의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기도 했다. 자영업 창업이 치킨집에 쏠리는 것처럼 과거엔 만만한 게 짚신, 돗자리 장사였다. 재료비가 저렴한 짚신은 ‘끝없이’ 소비되는 소비재였고, 돗자리 역시 별 기술 없이도 쉽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필진인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교수는 “기술이 발전해도 먹고사는 문제는 형태만 달라질 뿐 근본적으로 유사한 점이 많다”며 “어느 직업이든 각 분야 1등은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지금과 유사하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신뢰와 조롱 사이를 외줄타기하듯 오가는 언론의 지위는 언제부터 출렁이기 시작했던가. 현장 기자들이 정도(正道)를 가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것에 비해 ‘기레기’라는 말로 ‘기자’라는 이름의 무게가 속절없이 가벼워져 버린 요즘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에 많은 이가 의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저자는 세계적 통신사인 AP 특파원 61명을 인터뷰해 기자들이 마주하는 취재 현장 이야기를 담았다. 때로는 욕받이가 되면서도 왜 언론은 존재해야 하며, 관찰자의 사명감을 가진 기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1864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된 이후 AP는 6·25전쟁, 베트남전쟁, 9·11테러, 시리아 내전 등 전 세계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함께해 왔다. 책에는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한 특파원 테리 앤더슨 이야기도 등장한다. 1980년 앤더슨은 광주에서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참혹한 현장을 9일간 취재했다. 그가 묵던 호텔 방 벽에 총탄이 박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사실을 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거리에 나가 방치된 시신 수를 셌다. 그날 군부가 발표한 사망자는 3명이었지만 그가 본 시신은 179구였다고 한다. ‘라떼는 말이야’ 같은 모험담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취재하다 중국 인민군에게 총살 위협을 당했다거나,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의 양민 학살 현장에서 헬기로 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 진실을 보도했다거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로 진격하는 탈레반의 심장으로 들어가 처형당한 전 대통령의 시신을 목격했다는 얘기 등이다. 역사의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무용담이 대부분이라 현실 기자의 삶과는 괴리가 있다. 대부분의 기자는 책에 소개된 사례들과 달리 (가끔 살해 협박을 받을 순 있어도) 생명을 걸고 취재하는 경우는 드물며, 데스크(상사)가 특파원 부임 통보를 하면서 “죽으면 네 시체는 찾으러 갈게”라고 말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우보천리(牛步千里). 서두르지 않고 우직한 걸음을 차근차근 내디뎌 온 대우재단의 학술사업이 올해 40주년을 맞았다. 주목도 높은 응용학문 대신에 당장 빛을 보지 못하더라도 기초학문에 꾸준히 지원해 국내 학계의 기초체력을 튼튼히 하자는 게 40년간 지켜온 운영 철학이었다. 서울 용산구 대우재단 사무실에서 23일 만난 김광억 대우재단 학술사업운영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인류학과 명예교수·73)은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뿌리와 줄기가 튼튼해야 한다. 학문의 뿌리를 세워 간다는 자부심이 40년을 이끌었다”고 했다. 대우재단의 학술사업은 1980년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200억 원을 출연하면서 시작됐다. 국가 차원에서 투자가 잘 이뤄지지 않는 기초과학, 인문학 등 순수학문에 지원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었다. 현재까지 1547건의 연구 지원이 이뤄졌고, 연구 저서는 784권이 출간됐다. 40년간 학술사업에 들어간 투자비용은 445억 원에 이른다. 2018년 취임한 김 위원장은 1981년부터 자문을 맡으며 재단과 오랜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기초학문 분야에 특히 주목한 것은 국내 학계가 ‘지식 식민지’ ‘지식 수입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 석학의 연구 결과를 수입해 들여오기만 하는 풍토에서 벗어나려면 지식 생산 기반인 기초학문에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우리 학계에선 왜 노벨상 수상자가 안 나오느냐는 비판이 많은데, 학문적 자생력이 튼튼한 나라여야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대우재단이 펴낸 고전 학술총서를 보면 재단이 추구하는 운영 철학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철학, 윤리학,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의 동서양 고전을 현대적 관점에서 번역한 시리즈다. 김 위원장은 “서양에서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반으로 현대철학이 계속 발전해 가는데, 우리 학계는 과거를 잊고 앞만 보며 달려간다”며 “이 책이 필요한 사람이 국내에 100명도 안 될지라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고전 연구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단에서는 모든 연구 결과를 책으로 낼 수 있도록 출판비용까지 지원한다. 수요가 적어 빛을 보기 어려운 학술서 특성상 출판사에 손해를 보전해 주고서라도 연구 결과를 세상에 내놓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대우그룹 해체 후에는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있어 지원 대상이 축소돼 안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출간을 위해 학문적 관점에서 연구 진행에 문제는 없는지, 결과물이 나오면 더 보강할 것은 없는지 중간, 마무리 평가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올해 발간한 학술서 15권 중 8권이 정부에서 선정하는 우수학술도서에 선정됐다. 지난해에는 16권 중 9권이 선정됐다. 대우재단은 4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으로 ‘인간·새로운 지평: 융합적 성찰, 의제와 전망’을 30일 진행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변화하는 학문 생태계에서 융합학문의 차원으로 기초학문 연구를 확장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행사다. 김 위원장은 “과학기술 사회에서 인간의 소외현상이 심화되는데, 이럴 때일수록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인간과 자연, 사물에 대한 융합적 연구를 위해 동양적 세계관이나 동서양 철학 융합연구에도 앞으로 많은 지원을 하겠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48)가 중학교 1학년 시절 물리 선생님은 매달 과학동아가 학교에 배달될 때마다 정 교수를 따로 불렀다. 마음에 드는 기사나 칼럼을 하나 정한 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변화할 미래의 모습을 상상해 글짓기를 해오는 숙제를 내줬다. 최근 서울 용산구 사무실에서 만난 정 교수는 “교과서 수식을 외워 문제를 푸는 것보다 과학자들이 개발한 기술로 우주와 자연의 신비를 밝히는 기사를 읽는 게 훨씬 재밌었다. 과학동아를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정 교수는 KAIST 석사 과정을 밟던 1995년 과학동아와 인연의 끈이 다시 이어졌다. 영화 동아리 회장이었던 정 교수가 학내 신문에 영화 칼럼을 연재하던 것이 대학 선배인 당시 곽수진 과학동아 기자의 눈에 띄었던 것. 이를 인연으로 정 교수는 과학의 눈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시네마 사이언스’라는 칼럼 연재를 시작했다. 정 교수는 “어렸을 때 과학동아를 보면서 과학자의 꿈을 키웠는데, 원고 청탁을 받으니 감격스러웠다. 첫 회가 나간 달 과학동아가 완판됐다고 한 게 기억난다”고 했다. ‘시네마 사이언스’는 원래 6개월만 연재할 계획이었지만 5년 6개월간 이어졌다. 당시 정 교수는 칼럼 원고 첨삭을 담당했던 기자들에게 다양한 글쓰기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연재하는 동안 정 교수의 원고를 담당한 ‘글쓰기 선생님’은 6명이었는데, 원하는 글쓰기 스타일이 전부 달랐기 때문. “누구는 짧고 명료한 글쓰기를 원했고, 누구는 예시를 들어 쉽게 설명하길 원했어요. 대중적 눈높이에서 과학적 글쓰기를 할 수 있도록 ‘과외’를 받은 거죠.” 정 교수는 동아일보에서 2001년 ‘정재승의 음악 속의 과학’, 2009년 소설 ‘눈먼 시계공’을 연재했다. 2011년 출간 이후 120만 권 가까이 팔린 저서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에도 그동안 연재한 칼럼 일부가 들어갔다. 소설가 김탁환과 함께 동아일보에 연재한 SF소설 ‘눈먼 시계공’은 2010년 단행본 출간 이후 10만 권 가까이 팔렸다. ‘다윈 지능’ ‘통섭의 식탁’ 등을 펴낸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도 정 교수와 비슷한 시기인 1999∼2001년 ‘최재천의 책꽂이’라는 동아일보 칼럼을 연재했다. 정 교수는 “동아일보가 2000년대 이후 국내 과학계 저자들을 발굴하면서 해외 석학의 책을 그대로 번역하던 국내 과학출판계 문화를 바꿔놨다”며 “우리 과학자가 우리말로 과학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글쓰기를 배운 것이 과학자로서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지난해 영국 네이처지에 3년 반 동안 연구한 내용을 4, 5쪽 분량의 논문으로 압축해야 했는데, 칼럼을 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다는 것. “과학자가 실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원하는 결과를 얻더라도 그걸 세상에 알리려면 글쓰기를 통해야 합니다. 동아일보와 함께 쌓은 글쓰기 경험이 결국 더 나은 과학자가 되도록 도움을 준 거죠.”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연애는 필수, 결혼은 선택.’(김연자 ‘아모르 파티’) 유행가 가사처럼 이제 결혼은 선택의 영역이 됐다. 조선시대에는 자식을 낳아 노동력을 확보하고 대(代)를 이어야 했기에 결혼은 필수였다. 신분과 상관없이 결혼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다.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사업팀이 펴낸 ‘조선의 결혼과 출산문화’(은행나무)를 통해 익히 알려지지 않은 조선의 결혼 문화를 살펴봤다. ○ 하층민, 노동력 확보 위해 나라에서 중매 ‘하늘과 같은 성덕과 바다와 같은 은혜로/좋은 날로 이미 혼인날을 정하였으니/예전에는 옷도 먹을 것도 없는 가난을 한탄하는 소리만 있었지만/오늘은 신랑 신부의 좋은 일을 즐겁게 여기는 소리만 있네.’(작자 미상 ‘동상기(東廂記)’)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지금의 ‘N포 세대’가 있듯, 18세기 조선에도 가난 때문에 혼기를 놓친 이들이 있었다. 이때 관리들이 나서 미혼 남녀를 조사해 중매하고, 결혼자금 500냥과 혼수를 나눠줬다. 출산으로 인한 양민의 증가는 곧 노동력 증가를 의미하고, 이는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사족(士族)의 딸로 서른 살이 넘어서도 결혼하지 못하는 사람은 호조(戶曹)에서 왕의 허락을 받아 혼수를 제공한다”는 기록이 있다. 법전인 속대전에도 “혼기를 넘긴 자에 대해 한성부와 각 도에 명령해 이들을 찾아내 호조 및 영읍(營邑)에서 혼인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하층민 사이에서는 열 살 미만 여자 어린이를 데려가 15세 전후에 결혼시키는 예부제(豫婦制)도 성행했다. ‘꼬마 며느리’를 키워 노동력에 보탰고, 나중에 물품으로 친정에 대가를 치렀다. 이는 혼례에 드는 비용을 줄이는 효과도 있었다. ○ 아들 낳으려… 연상연하 커플 많았던 양반층 양반층에게 혼인은 가문의 존속이 달린 문제였다. 여성의 혼인 연령은 임신이 가능한 17세 전후로 고정됐지만 빨리 후손을 얻기 위해 양반 남성의 혼인 연령은 점점 내려갔다. 1500년대 후반 양반 남성의 평균 혼인 연령은 18.3세에서 꾸준히 낮아져 1800년대 후반에는 15.5세가 됐다. 경남 산청 지역의 호적 기록(1686∼1799년)을 보면 당시 연상연하 부부의 비율이 중·하층민에서는 각각 36.2%, 36.4%였는데, 상류층은 44%에 달했다. 양반가 여성들은 남편이 일찍 죽더라도 재혼을 금지당했다. 정절을 중시한다는 명목도 있었지만 자녀들이 새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되면 대가 끊길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중매로 힘겹게 혼인하는 경우도 있었던 하층민과 달리 상류층에서는 집안끼리 마음만 맞으면 청혼서 발송부터 혼례까지 10일 안에 끝났다. 결혼 성수기는 날씨가 좋은 봄, 가을이 아니라 농번기와 식중독 위험을 피한 겨울이었다. 책을 집필한 박희진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현재의 출산, 혼인 등 인구지표는 과거의 (남아 선호 등) 사회문화적 현상에 영향을 받은 결과”라며 “한국 사회에 연속적으로 작용하는 조선의 제도문화적 맥락과 인구 동태 사이의 연관을 조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전염병의 대유행, 환경오염에 의한 기후변화, 핵전쟁 위협…. 현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요소는 수없이 많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전 세계 누적 확진자 4100만 명을 기록하고 있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맨얼굴이 ‘비정상’인 시대가 끝날 기약이 없다. 하지만 저자는 “조상들보단 우리가 좀 더 낫지 않느냐”며 인류가 견뎌온 비참한 역사적 현장들로 독자를 데려간다. 언론인 출신이자 종말론을 주제로 한 미국 팟캐스트 ‘하드코어 히스토리’를 진행해온 저자는 역사에서 반복된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짚어보고, 앞으로 벌어질 위기 시나리오를 논한다. 먼저 수많은 사망자를 낸 전염병의 역사에 주목했다. 가장 심각했던 전염병은 1300년대 중세 유럽에서 유행한 흑사병이다. 전염병에 대한 기본적 의학 지식조차 없었던 시절 유럽인들은 “세계 종말이 왔다”고 믿었다. 쥐를 숙주로 하는 페스트균이 인간에게 전염돼 반세기 동안 7500만 명 정도가 죽었다. 치료제가 개발돼 더 이상 인류를 위협하지 않게 됐지만 저자는 흑사병 이후 무너진 국가 시스템과 종교의 권위에 대해 설명하며 우리가 이제부터 대비해야 할 사회문화적 후유증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류는 로마 등 거대 제국의 몰락, 세계대전, 대공황 같은 위기를 겪었다. 미국의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이후 핵무기 위협은 현재진행형이다. 저자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핵전쟁 위험을 안고 사는 상황을 ‘지옥으로 가는 길’에 빗대 경고한다. 현재 상황이 ‘조상들보단 낫다’고 말하면서도 이 책은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다. 미국에서 발간된 책의 원제 ‘The End is Always Near(종말은 언제나 가까이에 있다)’처럼 위협은 늘 있어 왔고, 우리는 이에 맞서 싸워 이겨야 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대기 순, 주제별 분류 등이 일목요연하지 않고 산발적이어서 전달력이 부족한 것은 아쉽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19세기 한반도 지도에 라틴어로 ‘동해’를 명기한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조선전도’ 사본이 추가로 공개됐다. 미국 해군에서 당시 조선의 지리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한 지도다. ‘19세기부터 ‘일본해’ 표현이 국제적으로 정착됐다’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하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종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20일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이 소장한 김대건 신부의 조선전도 사본을 국내 처음으로 공개했다. 지도 이름은 프랑스어로 ‘Carte de la Coree’, 우리말로 ‘한국 지도’라는 의미다. 김 신부가 1840년대에 포교를 위해 그려서 해외로 보낸 여러 장의 한국 지도를 통틀어 ‘조선전도’라고 부른다. 이번에 공개된 조선전도는 1868년 3월 미 해군 J R 펠란 장교가 김 신부의 지도를 모사한 것으로, 원작자가 ‘김대건 신부’라고 명기돼 있다. 미국 정부는 1866년 조선인들이 미국 상선을 불태운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해군을 파견했다. 이 지도는 미 해군의 항해를 위한 지리 정보 파악을 위해 사용됐다. 김 연구위원은 “지도 원본은 김 신부가 포교를 위해 1845년 작성해 마카오의 천주교 파리외방전교회 지부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의 지리에 대한 정보가 없던 미 해군에서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에 공개된 조선전도에는 동해라는 뜻의 라틴어 ‘MARE ORIENTALE’와 독도가 표기돼 있다는 점에서 김 신부가 작성한 다른 지도들과 다르다. 앞서 공개된 프랑스 파리 국립도서관(BnF)에 소장된 김 신부의 또 다른 조선전도에는 울릉도 동쪽에 독도의 옛 지명인 우산도를 로마자로 ‘Ousan’이라고 표기했으나 동해라는 표기는 따로 없었다. 김 연구위원은 BnF에서 라틴어로 ‘동해’ 표기가 된 또 다른 조선전도도 발견했다. 역시 김 신부가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김 연구위원은 “작자 미상의 라틴어 지도지만 지명 일부에 한글 표시가 있고, 김 신부의 다른 지도와 하천, 해안선 등이 대부분 일치한다”며 “미국 프랑스에서 사용한 지도에 ‘동해’가 명기됐다는 것은 19세기부터 ‘일본해’ 표현이 정착됐다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같은 내용을 동북아역사재단이 독도의 날(25일)을 맞아 22일 여는 ‘독도 주권 연구의 역사·지리적 성과와 과제’ 포럼에서 발표할 예정이다.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친구들, 모여라!” 움직이는 작은 도서관 ‘책 읽는 버스’가 16일 경기 파주시 임진각평화누리 캠핑장에 멈춰 섰다. 보라색 머리의 마녀로 분장한 구연동화 선생님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치자 마스크를 쓴 아이 20여 명이 버스 앞에 모여들었다. “쿵덕쿵덕 시소 타며 박수쳐 봐요, 짝짝짝, 이제 바닷속으로 들어가 볼게요.” 구연동화가 시작되자 아이들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구연동화 선생님이 가방에 있던 쓰레기를 바다에 휙휙 버리는 시늉을 하자 아이들은 “안 돼! 버리는 거 다 봤어요!”라며 함께 쓰레기를 주웠다. 45인승 버스를 개조한 ‘책 읽는 버스’는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운영하고 KB국민은행이 후원하는 이동식 도서관이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은 도서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환경의 농어촌을 찾아가거나, 전국의 지역축제나 캠핑장 등을 찾아다니며 책 읽기 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책 대여도 해주고 구연동화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책 읽는 버스’는 올 추석 연휴 이곳에 시범 삼아 왔을 때 캠핑객들의 반응이 좋아 25일까지 연장 운영하고 있다. 7, 8월 휴가철에 강릉 연곡해변 솔향기캠핑장에 다녀간 ‘책 읽는 버스’ 기사를 보고 캠핑장이 먼저 초청했다. 최민희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사무국장은 “부모님들이 주로 텐트를 치거나 요리하는 시간에 아이들이 버스에 와서 책을 읽고 놀다간다”고 했다. 아이들이 드나드는 만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을 위해 하루에 수차례 버스 안팎을 소독하는 등 방역을 하고 있다. 이번에 환경 관련 퀴즈가 적힌 보드에 ○, X 칸 중 맞는 답에 스티커를 붙이는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미세먼지 크기는 사람의 머리카락 지름과 같다’ ‘플라스틱 포장 같은 일회용품은 분해되기까지 수세기가 걸린다’ 등 어린이가 풀기엔 쉽지 않은 문제였지만 엄마 아빠와 상의하고 정답 칸에 스티커를 붙이는 어린이들이 많았다. 구연동화를 본 강지우 군은 “캠핑장에 쓰레기가 있으면 주워서 버리겠다”며 “내일도 구연동화 선생님이 오면 좋겠다”고 했다. 동생과 함께 책 버스에 오른 김은영 양은 “버스에 도서관이 있어서 신기하다. 날씨가 추워졌는데 버스 안에서 따뜻하게 책을 읽을 수 있다”고 했다. 엄마 손을 잡고 책 버스를 찾은 안해윤 군은 “아직 한글을 모르지만 엄마가 집에 있는 책 말고 다른 책을 읽어주니까 좋다”고 했다. 어른들의 반응도 좋았다. 이날 휴가를 내고 5세 딸과 함께 캠핑장을 찾은 구태훈 씨(44)는 “버스 도서관은 처음 봤다. 소외지역이나 캠핑장을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책 읽을 기회를 주니 굉장히 뜻깊어 보인다”고 말했다. 딸을 데리고 구연동화를 들은 조혜정 씨(37)는 “아이들이 무료해지면 스마트폰을 달라고 조르는데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겨서 좋다”고 했다.파주=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잉글랜드 시골마을의 숲이 꽉 차게 보이는 통창을 가진 오두막, 카리브해 바하마에 지은 바다가 보이는 2층 집, 인도네시아 발리의 사방이 트인 대나무집…. 자연 속에 지은 집에 대한 모든 로망을 담은 이 책은 2017년 세계 200여 곳의 통나무집을 소개한 ‘캐빈 폰’의 후속편이다. 캐빈 폰은 오두막을 뜻하는 캐빈(cabin)과 포르노(pornography)를 합친 말. 책 속 사례들은 동영상 웹사이트 비메오(Vimeo)의 공동 창업자인 저자가 2010년부터 운영하는 오두막집 짓기 정보 공유 사이트 캐빈 폰에 소개된 것들이다. 전편에서 소개하지 못한 세계 30개국 80여 채 오두막의 안과 밖 모두에 주목했다. 작고 소박한 오두막 내부는 외관만큼이나 자연친화적이다. 사슴이 종종 찾아온다는 칠레 프루티야르의 호숫가 오두막은 바닥과 벽을 100% 재활용 나무로 했다. 호주 브리즈번의 통나무집도 무너진 건물을 뒤져 찾아낸 폐(廢)건축자재로 지었다. 대부분 오두막은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얻는다. 싱크대 선반 위의 침대, 1층 부엌에서 바깥 테라스까지 이어진 기다란 일체형 테이블 등 좁은 공간을 기막히게 활용한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보는 재미도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에 ‘갇힌’ 우울한 현실은 잠시 잊고 책 속으로 글로벌 집들이를 떠나보면 어떨까.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열리는 전시회에 북한 정권을 미화하는 듯한 전시품이 다수 공개돼 논란이 예상된다.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공개 등 적대 행위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출판도시입주기업협의회는 경기 파주시 출판단지의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에서 남북 문화교류 행사의 하나로 ‘Book(北)녘의 책 읽는 풍경’ 전시를 9일부터 18일까지 열고 있다. 15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문화체육관광부와 출판진흥원은 이 전시에 국고 보조금 9200만 원을 지원했다. ‘걸어서 개성공단 가자’ 같은 걷기 운동을 벌이는 단체 ‘평화의길’이 북한 사진, 도서 등 350여 점의 저작물 대여 및 행사 관리를 맡았다. 15일 전시장에 배치된 ‘남북통일 팩트체크 Q&A’라는 어린이 책에는 6·25전쟁이 북한의 남침임에도 “(광복 후 남북이) 서로 고집만 피우다 싸웠다” 등 남한의 책임을 강조하는 대목이 있다. 서울의 인구 과밀을 지적하며 “평양이 (살기에) 꿀이구나”라는 표현도 보인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해 “나름 잘 생기지 않았냐”거나 동요 ‘곰 세 마리’를 개사해 “김정은은 뚱뚱해/문재인은 날씬해/서로 웃네, 너무 귀여워”라는 대목도 있다. 또 다른 책 ‘맛있게 읽는 북한 이야기’에는 “김정일 장군님께서는 소년단원들이 당과 수령에 충성하고”라고 말하는 북한 어린이 일러스트가 실려 있다. 신식 전자도서관에서 바라본 주체사상탑, 포토샵 교육을 받는 북한 어린이들, 새로 지은 과학기술전당 등 북한의 이른바 ‘발전된 생활상’을 홍보하는 사진도 많다. ‘경애하는 김정은 장군님 고맙습니다’라는 간판 앞에서 찍은 유치원생 기념사진도 눈에 띄었다. 전시 관계자는 “과거 불온서적 등으로 분류됐을 법한 내용들이 남북 교류로 전시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 의원은 “우리 국민을 사살한 북한 미화를 위해 국민 혈세를 낭비하는 꼴”이라고 말했다.파주=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