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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거부와 한국의 준비 부족.’ 정치, 외교안보 분야 리더 20명이 2045년 통일한국 비전의 걸림돌로 본 문제점이다. 동아일보 설문에 응답한 14명 중 각각 6명이 이 두 가지를 꼽았다. 중국의 반대, 미국 등 국제사회의 비협조가 걸림돌이라고 답한 리더는 2명에 불과했다. 정치, 외교안보 리더들은 남북이 모두 잘못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북한은 현재 한국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 주변국과 대화의 문을 굳게 닫고 있다고 봤다. 미국과 중국 모두 겉으로는 한반도의 통일을 지지하면서도 그 속내는 자국에 도움이 될지 계산이 복잡하다고 분석했다. 대북 통일정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외교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해 북한의 제의나 도발에 반응하는 수동적 리액티브(reactive)에서 벗어나 상황을 선제적으로 주도하는 프로액티브(proactive)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은 “국가 지도자는 기다리는 통일정책보다 만들어가는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은 “통일 뒤의 비전이 확실하지 않다”며 “대통령직속 통일준비위원회의 준비도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로가 우위라고 흡수통일만 생각하면 통일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 설문조사에 참여해 주신 분들분야별 가나다순.<정치> 김광웅 전 중앙인사위원장·명지전문대 총장, 김병준 국민대 교수·전 대통령정책실장, 김상민 국회의원, 김황식 전 국무총리, 남궁영 한국국제정치학회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 박영선 국회의원, 박찬욱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위원장,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언주 국회의원,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외교안보> 김성한 고려대 교수·전 외교부 차관,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통일부는 동아일보와 남북하나재단이 기획한 남북 주민 생애 나눔 프로젝트(13일자 A1, 3, 4면)를 남북통합문화센터 프로그램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는 13일 “생애 나눔 프로젝트는 남북 간 통합과 상호 이해로 가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기존 탈북민 정착 지원이 한반도 통일 준비로 한 단계 올라서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생애 나눔 프로젝트는 남북 출신 주민이 진솔한 소통을 통해 서로 갖고 있던 편견과 마음의 장벽을 극적으로 넘을 수 있음을 확인시켜 줬다. 또 다른 관계자는 “남북통합문화센터에서 남북 주민 생애 나눔 프로젝트를 상시적으로 운영하면 좋겠다”며 “이번 프로젝트에서 나타난 남북 언어 이질화 극복을 위한 교육과 민주주의 시민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생애 나눔 프로젝트에 통일부 산하 탈북민 정착시설인 하나원 관계자를 보내 참관하게 하는 등 큰 관심을 보였다. 통일부는 독일 통일 이후 시행된 동·서독 주민들의 소통 및 통합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남북통합문화센터를 2017년까지 건립한다. 이 센터에서 남북 주민의 상호 이해를 높이고 편견을 극복하는 통합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동아일보와 남북하나재단은 다양한 연령층의 남북 시민 각각 5명이 참여한 생애 나눔 프로젝트를 8, 9일 경기 연천군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진행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채정민 교수는 “통일 과정에서 국민들이 남북 주민의 이질적인 생활방식, 언어, 심리 등의 갈등과 충돌을 조화롭게 통합해 가는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 추진을 담당했던 남북하나재단 한윤석 차장은 “북한 출신 주민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서는 남북 주민이 서로 소통과 이해를 통해 하나가 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남북하나재단은 남북 주민 통합을 통해 사회적 갈등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북한 출신 주민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저게 뭐야? 하하하! 패스.” 남북 단어 알아맞히기 게임에서 북한어 ‘뿌무개’를 본 남한 출신 이아영 씨(24·여)는 크게 웃었다. 8일 남북 출신 참가자들이 짝을 이룬 게임에서 이 씨가 북한 출신 운송 씨(21)에게 단어 뜻을 설명하는 자리였다. ‘튀기 눈기 쓸림 모습갈이 기름밥….’ 북한에서 쓰는 말이 나올수록 이 씨는 혼란스러워졌다. “저걸 뭐라고 하지? 패스해 주세요! 패스! 진짜 모르겠어요!” 북한 출신 백춘숙 씨(48·여)에게 북한어를 설명해야 하는 남한 출신 한상옥 씨(61·여)의 사정도 비슷했다. ‘안슬프다 다님표 발쪽찜 동약….’ 연신 “통과!”를 외쳤다. “우리 팀은 그만두겠습니다. 호호호. 식은땀이 다 나네.” 다음엔 10명의 참가자가 5명씩 팀을 나눠 남북 언어가 섞인 문장을 전하는 게임. “야들개와 낙지를…이게 도대체 뭐야?” 이아영 씨가 당황한 표정으로 외쳤다. 정답 문장은 ‘말린 명태와 다리 8개인 낙지를 주면서 밑도 끝도 없이 요리를 해달라고 한다.’ 운송 씨가 ‘야덜 개’라고 발음하자 알아듣지 못한 것. 게임이 끝나자 참가자 모두가 “충격적”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남북 언어의 이질화를 보여주는 단면이었다. 북한 출신 김수향 씨(26)는 “남북 사이에 언어 차이로 오해가 생길 부분이 많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정답: 뿌무개=분무기, 튀기=튀김, 눈기=눈치, 쓸림=마찰, 모습갈이=동물의 변태, 기름밥=볶음밥, 안슬프다=안쓰럽다, 다님표=운행표, 발쪽찜=족발찜, 동약=한약}

남북 출신 주민들이 삶의 고민을 나누며 서로를 힐링(치유)하는 일이 가능할까. 상당수 북한 출신 주민들이 ‘도움을 받아야 할 2등 시민’ 취급을 받는 현실이라면 어렵지 않을까. 국내 최초로 시도된 한국판 생애 나눔 프로젝트에서 실제로 발견한 힐링의 가능성은 놀라웠다. 8일 밤 경기 연천군 한반도통일미래센터. 남북 출신 참가자들은 그래프로 인생의 궤적을 소개하는 ‘생애 곡선’을 그려 다른 이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눴다. 남한 출신 이아영 씨는 어린 시절 부모의 이혼,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난관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고 당차게 살아왔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던 17세에 닥친 할아버지의 죽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꿈을 포기하게 됐다고 담담히 얘기했다. 비싼 대학 등록금으로 쌓이는 빚,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전전하며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예전보다 힘이 약해진 것 같다고 고백했다. 그가 북한 출신 주민의 성공 정착 사례를 발굴하는 남북하나재단의 프로젝트에 참여해 각종 사연을 알게 되면서 힘을 얻었다고 했다. “한국에 와 처음에 세 식구가 함께 사는데 생계비 90만 원. 너무 적은 돈이지만 50만 원씩 저축했대요. 그 얘기를 들으니 금수저 물고 태어난 삶을 부러워한 게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그래서 요즘 내려갔던 제 생애 곡선이 살짝 올라가고 있답니다.” 캘리그래피(손글씨) 작가인 그는 이젠 새로운 꿈을 쌓고 있다. 북한 출신 김수향 씨는 최근 꿈을 잃은 채 취직 걱정으로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이 씨에게 편지를 썼다. “다른 사람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어요. 남한 출신 젊은이들도 다들 똑같이 고생하고 있구나. 북한 출신 대학생들은 학비라도 지원받잖아요. 힘들어도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한 출신 정광성 씨도 같은 생각이었다. ‘어려움에도 꿋꿋이 버티며 꿈을 위해 잘하고 있는 모습이 대단하다….’ 남한 출신 신병노 씨(50)는 한국에 온 뒤 시련을 용기 있게 극복한 정 씨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였다. “(정 씨 같은) 인재들이 북한에선 발굴이 안 된 거잖아요. 큰일 할 청년의 말에 감동했습니다.” 남한 출신 한상옥 씨는 인생을 되돌아본다. “젊은이들의 열정을 보니 가슴속에서 뜨거운 게 올라왔어요. 응원해주고 싶어요.” “가족 얘기는 하기 싫은데…” 하면서도 악몽 같던 어린 시절을 고백한 북한 출신 운송 씨도 프로젝트 최종 인터뷰에선 속내를 열었다. “인생에서 어떻게든 목표만 이루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그런데 저를 응원하는 편지들을 받고 보니 나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신병노 한명옥 씨는 남남북녀 부부. 한 씨는 생애 곡선을 소개하며 “남편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볼펜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자세히 알려줘 고마웠다”고 했다. 이아영 씨는 이 부부가 로맨틱하다고 느꼈다. “결혼이 행복일까 생각했는데 서로 의지하는 남남북녀가 아름답게 보였거든요.” 어느덧 남북 주민 서로가 힘을 주고, 또 얻고 있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피의 숙청을 벌이며 공포통치를 이어가고 있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5월에 최영건 내각 부총리(사진)도 처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4월 말 군부 2인자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처형하는 등 집권 이후 올해까지 70명 이상의 핵심 간부를 처형했다. 12일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최 부총리는 김정은이 중시하는 산림녹화정책에 불만을 표출하고 성과도 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형됐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은 올해 1월 북한 임업성 부상이 산림녹화에 불만을 토로했다는 이유로 처형됐다고 4월에 밝혔다. 김정은은 지난해 11월 ‘본격적인 나무 심기 운동’을 지시하는 등 산림녹화를 강조하고 있다. 북한 매체들은 이달 1일 나무 관리가 부실한 기관에 “한심하다”고 비난하기도 했을 정도로 나무 심기는 김정은의 주요 관심사업으로 떠올랐다. 따라서 산림녹화 담당자의 처형과 북한 매체들의 비난은 산림녹화 사업이 김정은의 생각만큼 잘 안되고 있다는 증거로 풀이된다. 64세인 최영건은 지난해 6월 내각 부총리에 임명됐다. 내각 총리는 박봉주이고, 최영건을 포함해 7명의 부총리가 있다. 내각은 노동당이나 군부에 비해 실권은 없다. 최영건은 2003∼2005년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북측 위원장을 맡아 남북 장관급 회담 북측 대표로 나선 바 있다. 그는 지난해 10월 이후 북한 매체에 나오지 않았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분단 70년을 전혀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남북 출신 주민들은 문화와 생각의 벽을 쉽게 뛰어넘지는 못한다. 한국판 생애 나눔 프로젝트 이틀째인 9일 오전부터 참가자들이 그 벽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북한 출신 김수향=저를 비롯해 탈북 학생들은 많은 걸 혼자 결정해요. 남한 친구들은 옷 사는 것부터 작은 것 하나까지도 부모님께 다 여쭤 봐요. 남한 친구들은 부모 아래서 교육을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북한 출신 친구들은 대부분 부모랑 헤어져 살다 보니 주체적(독립적)이에요. ▽남한 출신 신병노=북한 출신 남자를 만나 보면 허풍이 있어요. 생활총화(자기비판모임) 문화가 있어서인지 북한 출신 여성들은 모였다가 헤어지면 뒷말이 돌아요. ▽북한 출신 백춘숙=북한 출신을 많이 접해 보지 못해서 그래요. 북한 속담에 ‘개구리 한 마리가 우물 물 흐리듯’이 있는 것처럼 우리가 듣기에도 허풍 떠는 북한 출신이 있지만 개인의 문제죠. 이 대목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채정민 서울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는 “통일한국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 좋은 출발의 하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신병노=북한 출신들이 잘못 알고 있는 6·25전쟁, 김일성에 대한 만들어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해요. 북한에서 온 지 3년이 안 된 사람들과 얘기하면 대화가 안 돼요. ▽북한 출신 운송=몇십 년 교육받은 것을 한순간에 바꾸기는 어려워요. 시간이 필요해요. ▽북한 출신 정광성=남북 모두 6·25전쟁을 겪은 분들과 함께 이야기해야 해요. 전쟁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 이념 갈등이 생겼으니까요. ▽남한 출신 주경옥=용어도 생각해봐요. 일본교포, 미국교포인데 왜 새터민이죠? ‘북한에서 왔어요’보다 ‘고향이 함경도예요’라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할 분위기가 필요해요. ▽정광성=새터민 탈북민 북한이탈주민 다 국가가 만든 거예요. 경상도 출신 부르듯 함경도 출신으로 부르거나 남한 북한 출신으로 평등(동등)하게 불렀으면 좋겠어요.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전 새터민(북한 출신 주민)이 많이 사는 아파트에 살아요. 새터민 구분 없이 살아왔어요. 어느 새터민은 저희 집에서 식사도 하고 놀고 가곤 했죠. 그런데 어느 날부터 ‘조심해야 한다’며 뜸해진 거예요. 인사도 깍듯이 잘하던 그 집 아이들은 침을 뱉으며 욕을 하고 지나갔어요. ‘나는 스스럼이 없는데 왜 저렇게 바뀌었지?’ 많이 의아했어요.” 시원하게 웃는 게 좋아 별명을 ‘하하’로 지었다는 주경옥 씨(49·여)가 경쾌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막 끝낸 직후였다. 여장부 스타일의 북한 출신 백춘숙 씨(48·여)가 걸걸한 목소리로 맞받아쳤다. “교회 나가세요? 저희 사람(북한 출신 주민)과 친하게 지내다 춤(침) 받은 데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우리 사람들 돕는 이들이 교회로 자꾸 유도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아 전화(연락)를 다 두절해버려요. (남한 주민들이) 잘해주다가 무시한다는 생각에 적응도 못하고요.” “저는 그저 이웃으로…. 그렇게 생각하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주 씨) “그러셨겠죠.”(백 씨) 백 씨는 웃었지만 불편한 표정이었다. 주 씨도 마찬가지였다. ‘오해가 더 커지면 걷잡을 수 없겠다.’ 대화를 이끌던 채정민 서울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교수가 다음 참가자를 소개하는 것으로 화제를 돌렸다. 8일 오후 경기 연천군 한반도통일미래센터. 남북 간 마음의 장벽을 넘기 위해 국내 최초로 마련한 남북 주민 생애 나눔 프로젝트 ‘하나 되는 남북 주민, 만나면 통해요’가 진행된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동아일보는 광복과 분단 70주년을 맞아 한반도 통일의 첫 과제를 ‘통일의 미래상을 보여줄 북한 출신과 남한 출신 주민의 통합’이라고 봤다. 그래서 독일이 통일 이후 동서독 주민의 심리적 장벽과 선입견을 허문 생애 나눔 프로젝트에 주목했다. ▼ “너무 달라” 서먹했던 남북, 작은 통일의 손뼉 맞추다 ▼남북 생애나눔 프로젝트한국판 첫 생애 나눔 프로젝트에는 20∼60대 다양한 연령층의 시민 10명(남북 각 5명)이 참가했다. 이질성을 이해하고 다가서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1박 2일의 문화·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동아일보와 남북하나재단이 공동 기획하고 통일부가 후원했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프로젝트에 들어가기 전에 “남북 통합을 위해 큰 의미를 갖고 있다”고 반기면서도 “남북 주민들이 기대만큼 마음을 열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그 우려가 첫 단계인 자기소개 시간부터 현실화됐다. 분단 70년은 한국에 같이 사는 남북 출신 주민들의 마음을 이토록 갈라놓았다. 과연 이들은 마음의 장벽을 넘어 서로 통(通)할 수 있을까.○ “아, 우린 아직 다르다.” 8일 밤. 참가자들이 지난 삶을 공유하는 ‘생애곡선 나누기, 상대 마음 이해하기’ 시간. 주 씨가 말문을 열었다. “이웃의 한 새터민 부부를 집에 초대했더니 부부가 정장을 차려입고 왔어요. 편하게 생각한 건데. 초대에 최대한 예의를 갖췄다는 거예요. 그 집 아이가 학교 적응을 어려워했어요. 편한 마음으로 그 어머니에게 미술치료를 권했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칼에 거절하기에 서운했죠. 나중에 슬픈 이야기를 들었어요. 아이를 임신한 채 강제 북송을 당한 경험이 있었던 거예요. 부부에게 너무 절박한 아들 얘기를 다른 학부모에게 하듯 너무 쉽게 말했구나….” 얘기를 듣던 북한 출신 정광성 씨(26)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아, 우리는 아직도 다르구나. 남북 8000만 국민이라면 얼마나 더 다를까. 같이 살아가기가 쉽지 않겠다….’ 정 씨의 차례. 자신의 의지보다는 부모를 따라온 한국행. 심한 사투리로 학교에서 ‘왕따’가 됐다. ‘북에 좋은 친구들을 두고 여기서 수모를 당해야 하나.’ 부모님에게 상처 주고 싶어 목숨을 버릴 생각을 했지만 담임교사의 도움으로 절망에서 벗어났다. ‘북한은 수치가 아니다. 한반도를 위해 일하자.’ 황해도가 고향인 운송 씨(20)는 가난에 시달리던 아홉 살 때 벼랑에 올라 죽음을 생각했다. 악몽 같은 어린 시절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열심히 살아 가족을 지키고 꿈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주 씨는 깨달았다. “젊은이들이 고생을 통해 우뚝 설 수 있구나. 무기력한 사춘기 아들과 만나게 해주고 싶을 정도로 와 닿는다. 그간 새터민 이웃들의 삶을 묻는 데 주저했다. 그들을 잘 알 수 없었던 이유다. 허심탄회하게 대화했으면 더 가까워졌을 텐데…. 아픔을 어루만지면 이해의 폭도 커질 수 있었다. 편견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부끄럽다.”○ 남이 북에게 건넨 편지 어느덧 자정이 됐다. 참가자들끼리 편지를 써서 우편함에 넣는 시간이다. 내용은 다음 날(9일) 오전에 볼 수 있다. 주 씨는 백 씨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백 씨와 북한 출신 한명옥 씨(49·여), 남한 출신 한상옥 씨(61·여)와 같은 방을 썼다. 백 씨가 같이 자자고 권해 한 방에 누웠다. 오전 3시까지 도란도란 일상에 관한 얘기를 나눴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은 묻어뒀다. 백 씨는 봉사단체를 만들어 홀몸노인을 돕는 얘기를 들려줬다. 주 씨가 어떤 편지를 썼는지 백 씨는 몰랐다. 9일 아침. 채정민 교수가 참가자들에게 남북 출신 주민 간 마음의 벽을 들려달라고 했다. 백 씨 얘기다. “같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어르신이 면전에서 욕해요. ‘나는 70년 살아 겨우 입주했는데 너희는 한국에 오자마자 아파트에 온다. 우리 세금 받아 뭐 하는 거냐’고.” 주 씨가 조심스레 물었다. 새벽에 이야기꽃을 피웠을 때 ‘세금’ 얘기를 살짝 꺼낸 게 마음에 걸렸다. “저도 어떤 점에선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할머니께 어떻게 말해주셨어요?” “(나라가 멀쩡해) 고향에 살았으면 임대아파트에 살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도 대한민국 사람이고 세금을 내고 산단 말이에요. 지나가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건 아니죠(잘못됐죠).” ○ 편견의 장벽을 넘다 백 씨는 주 씨의 편지를 읽었다. “(자기소개 때 백 씨의 얘기에) 살짝 화가 났다”고 솔직히 얘기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가진 선입견을 알게 됐다는 마음을 전했다. 9일 낮 프로젝트를 마칠 때 주 씨는 백 씨에게 다시 편지를 보냈다. “바꾸는 게 쉽진 않지만 선입견과 오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기자가 주 씨를 따로 만났다. “(백 씨) 말을 들었을 때 밑도 끝도 없이 저를 편견 있는 이로 몬다는 생각에 화가 났어요. (하지만) 그분 이야기를 들으며 내 생각이 선입견일 수 있음을 되돌아봤어요. 마음의 변화가 있었죠.” 백 씨는 프로젝트가 끝나기 직전 가장 마음에 남는 편지로 주 씨의 편지를 꼽았다. “처음에는 화가 났죠. 우리를 잘못 이해하는구나. 하지만 편지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나도 ‘남한 사람들이 우리에 대한 편견을 잘 바꾸지 않는다는 생각’이 편견임을 깨달았어요.” ○ 먼저 온 통일 프로젝트가 끝난 다음 날인 10일 뜻밖의 휴대전화 메시지가 도착했다. 주 씨가 보낸 것이었다. “(전엔) 통일이라는 거창한 주제는 아무래도 저와 멀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통일을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입견을 줄이는 방법은 먼저 (선입견을) 줄인 사람의 경험을 나누는 것입니다. 가장 강력한 마케팅 수단인 입소문을 만드는 거죠. 제 주변 가족부터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습니다. 행사에 연결해준 북한 출신 친구 가족과 주말에 함께 경치 좋은 곳에서 캠핑하는데 이 이야기가 주제가 될 듯합니다. 약간 흥분되네요.” 주 씨의 메시지는 하나의 명제를 확인시켜준다. ‘통일(統一)하기 전에 먼저 소통하는 통일(通一)이 중요하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정부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방북한 5일 북한에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의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10일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당국 대화 의지가 없는 북한에 정부의 대화 제의를 이 여사 방북과 연관해 거부할 핑계를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이 북한 소행으로 드러나자 정부는 당분간 대북 대화 동력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에 8·15 전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대북 제안 시점을 결정했다.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5일 경원선 남측 구간 기공식 직후로 확정됐다. 북한이 중단을 요구하는 한미 연합 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이 17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시간 차를 둔 것이다. 지난해 8월 남북 고위급 접촉을 제의하면서 회담 개최 시점을 을지프리덤가디언 시작 이후인 19일로 정했다가 북한이 반발한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기공식 직후로 잡은 이유는 기공식 전에 대북 제의를 했다가 거부당하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박 대통령 기공식 대북 메시지가 퇴색될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이 여사 방북이 기공식과 겹치자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대화 의지가 있다면 정부-민간이 동시에 대화 뜻을 밝혀 윈윈할 수도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정부는 5일 오전 11시 반 판문점 남북 연락관 직통전화를 통해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앞으로 보내는 고위급 회담 제의를 담은 서한을 전하겠다. 오후 1시에 만나자”고 했다. 서한에는 한국이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광복 70주년 공동기념 행사 개최와 북한이 원하는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양측 관심사를 포괄적으로 논의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금강산 관광은 북한의 눈길을 끌 만한 유연한 제안. 관례에 따라 북한에 미리 의제를 알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북한 연락관은 이날 오후 1시 “상부의 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서한 접수를 거부했다. 10일까지 같은 답을 되풀이했다. 대화 거부의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남북관계에 대한 초보적 예의조차 없는 것으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북측은 대화 제의 시점을 두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 여사 측 관계자는 “방북 다음 날인 6일 맹경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이 여사 방북 기간에 대화 제의가 온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안 받겠다고 했다”며 “첫날부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면담이 어렵다는 뉘앙스를 보였던 북측은 6일 면담을 못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통일부는 “이 여사 방북과 대화 제의는 연관관계가 전혀 없다”며 “북한이 자기들 주장을 합리화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애초 남북 대화에 나올 생각이 없었던 북한이 이 여사 방북을 연결해 남남(南南) 갈등을 일으키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부는 ‘이 여사를 통해 대화 제의를 할 수 있었지 않느냐’는 지적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에 북한이 부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정부가 김대중평화센터를 통해 정부 관계자 1, 2명의 동행 의사를 묻자 “이 여사 일행에 왜 끼어서 오느냐”며 거부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4일 지뢰 폭발이 일어난 다음 날 대화를 제의한 데 대해 외교안보 부처 간 엇박자를 의심하기도 한다. 지뢰 폭발 이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대화 제의 시점에는 북한의 관련성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우경임 기자}

북한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15일부터 지금보다 30분 늦춘 표준시를 정하고 ‘평양시간’으로 명명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노동신문은 7일 1면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표준시간까지 빼앗았다”며 “조국해방(광복) 70돌 일제패망 70년을 맞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을 표준시간으로 정한다”고 보도했다. 15일부터는 한국이 오후 4시면 북한은 오후 3시 반이 되는 것. 표준시에서도 남북이 분단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셈이다. 북한의 표준시 변경을 두고 전문가들은 집권 4년 차를 맞은 김정은 정권의 복잡한 정치적 셈법이 숨어 있다고 봤다. 김정일이 주체연호를 만든 것처럼 김정은도 ‘평양시간’을 새로 만들어 정권의 정통성과 주체성을 주민들에게 과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 공교롭게도 김정일이 김일성의 출생연도인 1912년을 1년으로 하는 주체연호를 만든 1997년은 김일성이 사망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2012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도 승계 3년이 지난 시점에 자신의 브랜드로 권력 공고화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와 분쟁을 벌이던 네팔이 인도의 속국이 아니라며 1956년 인도보다 15분 빠르게 표준시를 조정한 사례도 떠올리게 한다. 북한이 광복 70주년에 맞춰 한국보다 먼저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섰음을 선전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표준시는 일본 중심을 지나는 경도 135도를 기준으로 한다. 1908년 대한제국은 처음으로 표준시를 도입하면서 한반도 중심을 지나는 경도 127.5도를 기준으로 했다. 지금보다 30분 늦었던 것. 강제병합 뒤인 1912년부터 일본 표준시가 도입됐다. 1954년 일제 청산을 위해 표준시를 30분 늦췄지만 1961년 박정희 정부가 다시 일본 기준으로 돌렸다. 한일 간 시간이 다르면 양국에 주둔하는 미군 작전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정부는 1993년 표준시 조정을 검토했다가 현행 유지로 결론을 내렸다. 국회에서는 탈북민 중 첫 국회의원인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2013년), 박대해 한나라당 의원(2008년), 조순형 새천년민주당 의원(2000년) 등이 표준시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묻혔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북한의 표준시 변경에 대해 “개성공단 출입 등 남북 교류에 지장이 생기고 장기적으로는 남북 통합, 동질성 회복 등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며 “금융, 항공(관제) 등 여러 경우에서 비용이 발생해 기회비용 측면에서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북 간 시차가 난 적이 처음은 아니다. 표준시를 1시간 앞당기는 일광절약시간(서머타임)제가 서울 올림픽을 전후한 1987, 88년에 실시된 바 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15일부터 지금보다 30분 늦춘 표준시를 정하고 ‘평양시간’으로 명명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노동신문은 7일 1면에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표준시간까지 빼앗았다”며 “조국해방(광복) 70돌 일제패망 70년을 맞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동경 127.5도를 기준으로 하는 시간을 표준시간으로 정한다”고 보도했다. 15일부터는 한국이 오후 4시면 북한은 오후 3시 반이 되는 것. 표준시에서도 남북이 분단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셈이다. 북한의 표준시 변경을 두고 전문가들은 집권 4년 차를 맞은 김정은 정권의 복잡한 정치적 셈법이 숨어 있다고 봤다. 김정일이 주체연호를 만든 것처럼 김정은도 ‘평양시간’을 새로 만들어 정권의 정통성과 주체성을 주민들에게 과시하려는 의도가라는 분석. 공교롭게도 김정일이 김일성의 출생연도인 1912년을 1년으로 하는 주체연호를 만든 1997년은 김일성이 사망한 지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2012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도 승계 3년이 지난 시점에 자신의 브랜드로 권력 공고화를 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도와 분쟁을 벌이던 네팔이 인도의 속국이 아니라며 1956년 인도보다 15분 빠르게 표준시를 조정한 사례도 떠올리게 한다. 북한이 광복 70주년에 맞춰 한국보다 먼저 일제 잔재 청산에 나섰음을 선전하는 효과를 노렸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표준시는 일본 중심을 지나는 경도 135도를 기준으로 한다. 1908년 대한제국은 처음으로 표준시를 도입하면서 한반도 중심을 지나는 경도 127.5도를 기준으로 했다. 지금보다 30분 늦었던 것. 강제병합 뒤인 1912년부터 일본 표준시가 도입됐다. 1954년 일제 청산을 위해 표준시를 30분 늦췄지만 1961년 박정희 정부가 다시 일본 기준으로 돌렸다. 한일 간 시간이 다르면 양국에 주둔하는 미군 작전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정부는 1993년 표준시 조정을 검토했다가 현행 유지로 결론 내렸다. 국회에서는 탈북민 첫 국회의원인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2013년), 박대해 한나라당 의원(2008년), 조순형 새천년민주당 의원(2000년) 등이 표준시 관련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묻혔다. 통일부 정준희 대변인은 북한의 표준시 변경에 대해 “개성공단 출입 등 남북 교류에 지장이 생기고 장기적으로는 남북 통합, 동질성 회복 등에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며 “금융, 항공(관제) 등 여러 경우에서 비용이 발생해 기회비용 측면에서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남북 간 시차가 난 적이 처음은 아니다. 표준시를 1시간 앞당기는 일광절약시간(서머타임)제가 서울 올림픽을 전후한 1987~88년에 실시됐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5일 평양에 도착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일행이 탄 이스타항공 전세기의 항공 편명은 ‘ZE2815’다. 이스타항공 관계자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의미로 815를 넣었다”며 “이를 이 여사 측에 전하자 반겼다”고 전했다. ‘815’ 앞의 2는 이스타항공을 나타낸다. 이 여사의 방북 수행단장인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이사는 이날 김포공항에서 출국 전 기자회견을 하고 “이 여사는 우리 민족이 분단 70년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평양에 간다고 말했다”며 “이번 평양 방문 길이 앞으로 (남북) 대화와 왕래, 교류 협력의 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평양에서) 돌아올 때는 이 여사가 직접 (방북 결과를) 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여사가 직접 발표할 만한 이슈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 여사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면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흘러나왔다. 이 여사 측은 숙소인 평양 백화원초대소와 묘향산호텔에 통일부와 연결되는 직통전화(핫라인)를 설치했다고 밝혔다. 김 이사는 “정기적으로 소식을 전하고 급한 연락도 나눌 수 있다”고 말했다. ‘급한 소식’은 김정은 면담 성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은 5일 “오늘은 우리 모두가 평화통일을 반드시 이루고, 실질적인 통일 준비로 나아가고자 했던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라며 “북한은 우리의 진정성을 믿고 용기 있게 남북 화합의 길에 동참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강원 철원군 백마고지역에서 열린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 기공식 축사를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경원선을 다시 연결하는 것은 한반도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복원해 통일과 희망의 미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더 나아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통해 우리 경제의 재도약과 민족사의 대전환을 이루는 철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 대통령은 “남과 북이 함께 DMZ의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살아 숨쉬는 터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면서 “비무장지대를 뜻하는 DMZ가 남북 주민은 물론이고 세계인의 꿈이 이뤄지는 지대인 ‘Dream Making Zone’으로 탈바꿈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오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김포공항에서 이스타항공 전세기를 이용해 3박 4일간의 평양 방문길에 올랐다. 이 여사는 첫 일정으로 평양산원(여성종합병원)과 옥류아동병원을 찾았다. 평양 순안공항에서는 맹경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이 여사 일행을 맞았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와의 면담이 성사될지는 아직까지 불확실한 상태다.박민혁 mhpark@donga.com·윤완준 기자}
분단 이후 70년간 끊어졌던 경원선 철도의 복원 사업이 첫 삽을 떴다. 정부는 비무장지대(DMZ)와 북측 구간 연결을 위해 대북 제안 등을 통해 경원선 복원을 위한 남북 간 협의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는 5일 오전 강원 철원군 철원읍 백마고지역에서 경원선 복원 공사 착공식을 연다고 4일 밝혔다. 이번에 복원되는 구간은 백마고지역∼월정리역(9.3km) 구간이다. 철도시설공단은 10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 2017년 말 이 구간의 복원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1914년 개통된 경원선은 서울∼원산(223.7km)을 운행하던 한반도의 간선철도였으나 1945년 남북 분단으로 단절됐다. 6·25전쟁 이후에는 남북 접경 구간이 파괴되며 제 기능을 잃었다. 정부는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과 병행해 DMZ와 북측 구간 연결을 위한 남북 간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르면 5일 기공식에서 남북 철도 연결과 관련한 대북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이상훈 january@donga.com·윤완준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5∼8일 평양을 방문할 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날지에 관심이 쏠린다. 정부는 김정은이 이 여사를 대남 메시지 창구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김정은이 1월 신년사에서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수뇌(정상) 회담도 못 하겠느냐”고 말했듯이 이 여사를 만나 비슷한 발언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여사를 통해 우리 정부에 우회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셈이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 여사를 통해 북한에 전할 대북 메시지가 없다고 선을 긋고 있다. 당초 예상과 달리 이번 방북단에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과 임동원·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등은 배제됐다. 이 여사 방북에는 김성재 전 문화부 장관 등 실무진 18명이 동행한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일제에 의해 유배된 러시아 사할린 섬 한인들에게 광복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무책임한 일본, 무력한 조국, 옛 소련의 차별. 남겨진 한인 일부가 북한행을 택하면서 이산(離散)의 아픔도 겪어야 했다. 광복 70주년을 맞는 재외 한인 역사에서 사할린만큼 특별한 궤적을 지닌 곳도 드물다. 그런 이곳에 1인 공관(사할린출장소)이 배치돼 있다. 한인 규모 2만5000명(재외 국민 약 200명), 1990년 시작된 한인 1세 영주 귀국, 묘지 조사, 유골 봉환, 각종 영사·교류 사업을 감당하기엔 버겁다. 가해자인 일본이 약 80명의 사할린 재외 국민을 위해 12명 규모의 총영사관을 설치한 것에 비하면 “역사에 무책임하다”는 탄식까지 나올 정도다. 동아일보가 사할린 한인의 70년 자취를 밟았다. 》 “한국 영주 귀국 허용한다지만 자식 두고 오라는데 어떻게 가”‘임자 없이 버림 받은 사람들.’ 사할린 한인 1세들의 ‘어제’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들은 일제의 국적으로 동토의 땅 사할린에 왔다. 패망한 일제는 이들을 버렸다. 광복된 고국은 데려갈 힘이 없었다. 상당수가 오랫동안 무국적자로 방치됐다. 고향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에 생면부지 북한으로 가기도 했다. 분단은 사할린에서도 이산(離散)을 낳았다. “내가 여기 안 올 긴데. (태평양) 전쟁으로 바빠진 일본 놈들이 마을마다 강제 징용을 나왔지.” 김윤덕 씨(92). 고향은 경북 경산. 1943년 아버지 대신 장남인 그가 사할린행 배를 탔다. 동짓달 열이레(음력 11월 17일)에 도착한 사할린의 추위는 살을 에었다. “2년만 고생하면 돌아갈 기다.” 2년에 70년을 더했다. 사할린 주도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차로 2시간. 일제강점기 때 가와카미 탄광으로 불렸던 시네고르스크에 그는 아직 살고 있다. “탄을 지고 엎드려 팔꿈치로 갱도를 올라야 했지.” 지금도 팔꿈치가 새카맣다. 1981년까지 탄광에서 일했다. 언제 고향에 갈지 몰라 1990년까지 무국적자로 살았다. 직업도 아이들 교육도 불이익을 받았다. 거주 지역 밖으로도 못 나갔다. 1950, 60년대. 북한이 이들의 귀환을 부추겼다. “조선(북한)에 가면 대학 교육도 공짜로 시킬 수 있시다!” “(무국적자 대상) 임시공민증의 일본 이름을 없애고 북조선(북한) 공민증을 받아 자기 이름을 가지라!” 경남 밀양이 고향인 이쾌임 씨(80·여)의 부모는 1964년 함경북도 김책으로 갔다. “그때 북조선에 많이 갔지…. 통일 되면 제일 먼저 고향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셨던 거야.” 시집을 간 그만 남겨 둔 채 친정 식구가 다 갔다. 그 뒤로 딱 네 번 북한을 찾아 가족을 봤다. “영양 부족으로 고생하는 걸 보며 마음이 아팠어…. 통일 됐으면 고향에 가실 수 있었을 텐데, 돌아가셨지….” 이들처럼 영주 귀국을 하지 않은 한인 1세가 수백 명이다. 정태식(83) 황순녀 씨(81) 부부는 “내 조국은 한국이지만 자식 손자 두고는 못 간다”고 했다. 정부가 1세들만 영주 귀국을 허용한 탓이다. 한인 1세들은 “자식 없이는 그저 죽으러 가는 것”이라며 “지금 방식은 또 다른 이산을 만든다”라며 고개를 떨궜다.‘국적 없는 부모’ 설움이 나의 힘 “고국서 우리말방송국 도와주길”‘이국에 태(胎)를 묻고 부모의 고향을 그리워하네.’ 사할린에서 태어난 2세들은 성공을 향해 악착같이 달려왔다. 부모가 국적이 없어서 받는 진학과 취업의 불이익도 이들을 막지는 못했다. 부모는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희생했다. 이젠 부모가 목 놓아 부르던 고향을 바라보며 분단을 뛰어넘는 꿈을 꾼다. 김영순 유즈노사할린스크 경제법률정보대 부총장(56)은 평양에서 태어났다. 잠시 북한을 찾은 아버지가 평양에 살던 어머니를 만나 사할린으로 돌아왔다. 김 부총장의 시부모는 경북 출신이다. 그의 부모와 시부모는 ‘동상간(의형제)’이었다. 사할린 한인들은 동향끼리 마음 맞는 이들끼리 가깝게 지내며 외로움을 달랬다. 이를 “동상간 놓다”라고 한다. 어릴 적 지금의 시어머니를 고모라 불렀다. 남편은 그의 아버지를 삼촌이라 했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졌다. 양가의 결사반대를 극복한 남남북녀의 결혼. 그는 “남북은 분단됐지만 사할린에서 가족의 통일을 이뤘다”고 표현한다. 사할린주한인협회 임용군 회장(61), 사할린주한인여성회 권행자 회장(67)은 호텔업 건설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사할린 한인들의 위상을 높인 대표적 한인 2세다. 장태호 전 러시아 노보시비르스크대 교수(65)는 1983년 모스크바국립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자마자 사할린으로 날아왔다. 눈물을 쏟으며 부모에게 절했다. 그는 시를 쓴다. 2005년 영주 귀국한 어머니를 보러 갔다가 지하철에서 눈물을 흘리며 쓴 ‘멀고도 가까운 한국’은 201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페스티벌 그랑프리를 받았다. 분단의 아픔을 노래한 ‘두 개의 체제, 두 개의 슬픔’도 펴낸다. 사할린의 유명 동포 시인 허남영 씨(60)는 김소월 윤동주의 시를 올해 러시아어로 번역해 출판한다. 고향을 그리다 화병으로 세상을 뜬 아버지에 대한 연민이 시를 쓰게 했다. 김춘자 씨(64)가 국장으로 있는 사할린우리말방송국은 사할린국영TV 채널을 통해 한국어로 전통·대중문화를 알려 오다 러시아 정부 지원이 중단된 뒤 재정 위기를 맞았다. 1960년대 초 옛 소련이 한글을 가르치던 조선학교를 폐지해 한국어를 못 하는 2세도 많다. 김 국장은 호소한다. “사할린 한인의 민족애를 키워 온 우리말방송을 한국이 외면할 겁니까?”“전통예술-한식 러시아인도 찬사… 자녀에게 한국 이름 지어줬어요”‘부끄러움은 잊는다. 되찾는 한민족 자부심.’ 사할린 한인 3세는 부모(2세)와는 달리 한국의 높아진 국력을 보며 어른이 됐다. 버림받고 차별받던 무국적자의 기억 속에 갇혀 있기를 거부한다. 1세는 고향에 뼈를 묻고 싶어 했다. 3세는 세계 속의 한인으로 도약하려 한다. 6월 30일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국제교류재단, 농어촌희망재단 주최로 ‘광복 70주년 농어촌 청소년 희망 나눔 사할린 연주회’가 열렸다. 한인 가야금 연주자들은 금난새 씨가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와 멋진 앙상블로 애국가, 아리랑, 그리운 금강산을 들려줬다. 사할린 에트노스 아동예술학교 한민족과 신 율리야 과장(40)의 제자들이었다. 신 과장은 1995년 사할린에서 북한의 개량 가야금(21현) 연주를 보는 순간 매력에 빠져들었다. 2005년 한국 국악단이 사할린에서 공연한 전통 가야금(12현)은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의 학생들은 지난해 러시아 소치 겨울올림픽 문화 프로그램에서 사할린을 대표해 사물놀이와 전통 무용을 공연했다. “북한 가야금은 기술이 중요하고, 한국 가야금은 한민족의 느낌(혼)이 중요해요.” 어린 시절, 한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북한 개량 가야금이 인생을 바꿨고 한국 전통 가야금이 한민족의 혼을 깨닫게 했다. 그는 남북 가야금을 모두 연주한다. 임 엘비라 씨(41)는 사할린국립종합대 한국어과 학과장이다. 그가 1992년 1회로 입학할 때만 해도 한국을 몰랐다. “어렸을 때 3세들은 까만 머리에다 김치를 먹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죠.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어요.” 한국의 경제 성장 덕분이다. 한류의 영향도 크다. 한국어과 학생의 85%가 비(非)한인이다. 지난달 1일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열린 ‘사할린 한국 요리 콘테스트’ 참가자 18명 중 12명이 러시아인일 정도다. 한국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3세들은 자녀들에게 사할린 한인 역사와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가르친다. 3세들의 이름은 대부분 러시아식이지만 자녀들에겐 한국 이름을 지어 준다. 임 학과장이 묻는다. “1세 영주 귀국이 올해로 끝난다지요? 귀국이 끝나면 사할린 한인의 역사도 끝인가요? 사할린에 남은 더 많은 한인이 새로운 미래를 일구는 게 안 보이시나요?”:: 사할린 한인 ::주로 1939∼1945년 강제 징용 등으로 러시아 사할린 섬 탄광에서 노역한 한인과 그 후손을 가리킨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4000여 명의 한인 1세가 영주 귀국했다. 유즈노사할린스크=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분단 이후 70년 간 끊어졌던 경원선 철도의 복원 사업이 첫 삽을 떴다. 정부는 비무장지대(DMZ)와 북측 구간 연결을 위해 대북 제안 등을 통해 경원선 복원을 위한 남북간 협의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는 5일 오전 강원 철원군 철원읍 백마고지역에서 경원선 복원공사 착공식을 연다고 4일 밝혔다. 이번에 복원되는 구간은 백마고지역~월정리역(9.3km) 구간이다. 철도시설공단은 10월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해 2017년 말 이 구간의 복원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1914년 개통된 경원선은 서울~원산(223.9km)을 운행하던 한반도의 간선철도였으나 1945년 남북분단으로 단절됐다. 6·25 전쟁 이후에는 남북 접경 구간이 파괴되며 제 기능을 잃었다. 정부는 경원선 남측 구간 복원과 병행해 DMZ와 북측 구간 연결을 위한 남북 간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르면 5일 기공식에서 남북 철도 연결과 관련한 대북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남북을 연결하는 철도인 경의선, 동해선이 2003년과 2006년 각각 복구됐지만 현재 열차가 운영되지 않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경원선은 수도권에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잇는 최단거리 노선”이라며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추진의 동력을 유지하는 한편 DMZ평화박물관, 철새 도래지 등과 연계한 안보-생태관광 활성화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5~8일 방북에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명예대표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18명이 동행한다. 김대중평화센터는 3일 “김성재 센터 이사를 단장으로 하는 방북 수행단은 18명”이라며 “북한으로부터 방북 초청장이 와 방북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수행단에는 대한적십자사 이사장을 지낸 장충식 단국대 이사장, 최용준 천재교육 회장 등이 포함됐다. 수행단은 김대중평화센터 임원과 이 여사가 설립한 인도 지원 단체인 ‘사랑의 친구들’ 관계자들과 경호원 등으로 구성됐다. 이 여사의 방북을 이틀 앞둔 이날 오후 휴가 중인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서울 동교동 자택을 찾아 이 여사를 20여 분간 비공개로 면담해 배경에 관심이 쏠렸다. 김성재 이사는 “ 박근혜 대통령이나 정부의 대북 메시지를 전달해 달라는 부탁은 없었다”며 “잘 다녀오라는 인사의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홍 장관은 “정부의 남북대화 의지가 강하지만 대화가 잘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통일부는 이날 “이 여사를 통한 대북 메시지 전달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주중 한국대사관 다롄(大連) 출장소(소장 백범흠)는 1일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뤼순(旅順)감옥 박물관 안 의사 기념관에서 태극기 전달식을 가졌다. 뤼순 감옥이 외국인에게 개방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이곳에 비치된 태극기가 새것으로 교체된 것이다. 백범흠 소장은 “매년 3월 26일 안 의사 순국일에 맞춰 기념관에서 추념식이 열리는데 태극기가 낡아 공관 예산으로 구매해 전달한 것”이라며 “안 의사를 포함해 단재 신채호, 우당 이회영 선생 등 다롄에서 순국한 애국 열사를 숭모한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했다. 뤼순감옥에는 연간 70만 명의 중국인이 방문하고 한국인 관광객도 매년 7만~8만 명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롄 출장소는 지난달 31일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과 관련한 세미나를 열었다. 세미나에 참석했던 호남대 안태근 교수는 “뤼순 향양공원 내 항일투쟁자 묘지에 안 의사 유해가 묻혀있는 것이 확실하다”며 “지표투과레이더(GPR) 기술로 이 지역을 탐사한 뒤 땅을 파서 안 의사 유해를 수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미국이냐 중국이냐. 세계 초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 자리 잡은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운명은 우리 외교에 어려운 선택을 강요한다. 중국이 주요 2개국(G2)으로 대접받으며 미국에 대해 신형 대국관계를 요구하고 나서면서 한반도는 ‘아시아로의 귀환’을 선언한 미국과 지역패권을 인정받으려는 중국 간 세력 대결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4강 외교가 아니라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한 양강(兩强) 외교의 성패가 우리의 사활적 이익의 가늠자가 된 셈이다. 미국 최고의 외교안보전략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저서 ‘전략적 비전’에서 2025년을 콕 집어 “미국이 세계 지도국의 지위를 상실하고 중국이 동북아 지역의 안정 보장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한미동맹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는 상태를 대비하라는 경고다. 미국은 우리에게 중대한 지정학적 요소(geopolitical factor)지만 중국은 한국에 지리(geography) 그 자체라는 말은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미국을 방문 중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7월 27일 “우리에게는 역시 중국보다 미국”이라며 “미국이야말로 유일한, 대체 불가능한, 독보적인 동맹”이라고 강조했다. 차기 유력 대권 주자 중 한 명인 김 대표가 던진 도발적이고 직설적인 화두는 박근혜 정부가 친중(親中) 노선으로 기울고 있다는 워싱턴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적 발언이자 보수층을 의식한 행보다. 당장 “(집권 여당 대표가) 미중 사이에서 배타적 선택을 한 것은 외교적 무지”(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정책위의장)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질서의 근본이 바뀌는 패러다임 변환기를 맞은 한국은 미국 일변도의 외교를 탈피해야 한다는 ‘균형파’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운명적으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즉 미국과 중국 중 한쪽을 선택할 여유조차 없는 나라라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봤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일방을 택해야 하는 상황이 오지 않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현실은 우리의 희망과 달리 전개될 수도 있다. 동아일보가 그 해답을 찾아봤다. ▼ “美 강력한 안보자산” “中 등지고 못 살아” 복잡한 외교퍼즐 ▼美中 사이 ‘동맹 vs 균형’ 논란 동맹파는 누구? vs 균형파는 누구? 4월 초 전남 여수의 한 호텔. 외교부 산하 국립외교원 주최로 한미동맹 연구 프로세스 워크숍이 열렸다. 국립외교원의 전신 격인 외교안보연구원 시절이던 1999년부터 열리고 있는 이 비공개 워크숍은 한미동맹의 현안을 점검하고 바람직한 미래상을 그려 내는 것을 목적으로 1년에 두 차례씩 민관 합동으로 진행해 왔다. 이른바 동맹파의 모임이다. 이날 가장 중요하게 다뤄진 내용은 6월 13∼19일로 예정됐지만 메르스 사태의 여파로 연기된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복안 마련이었다고 한다. 직전에 이뤄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방미 외교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청와대와 정부의 외교안보 부처 내에도 비상이 걸렸다. 16년 전 처음 발족할 당시에는 옛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의 몰락으로 냉전이 종식됨에 따라 한미동맹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해 나가야 하는가가 주요 관심사였다. 1차 북핵 위기가 제네바 합의(1994년)로 가닥을 잡았고 북-미 수교 분위기가 무르익는 상황이었던 만큼 한반도 평화 체제 문제도 화두였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등장과 함께 북-미 관계는 일순간에 얼어붙어 버렸고 2002년 선거에서 승리한 노무현 정권의 탄생과 함께 한미 관계도 난기류에 휩싸이게 된다. 동맹파의 주된 주장은 1953년 체결된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시작된 군사동맹을 근간으로 대외 정책의 틀을 짜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 외교부와 국방부 관료들이 그 중심에 있다. 중국 전문가 학자 그룹 중심의 ‘균형파’는 중국의 부상, 미중 관계-동아시아 질서의 변화에서 한국이 생존할 새로운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과거처럼 한미동맹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논리. 균형파가 중국을 중시하지만 “한미동맹의 틀 안에서만 한중 관계를 풀어 갈 수는 없다”는 공감대는 있다. “미국을 버리고 중국과 가까워지라는 게 아니다”라는 부분도 명확하다. 균형파는 ‘친중파’로 불리는 데 거부감이 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성균중국연구소장)는 “(균형파에) 중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친중파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균형파의 주축을 이루는 중국 전문가 학자 그룹 1세대는 대부분 미국에서 중국을 공부한 70대 이상 학자다. 2세대는 미국, 대만, 국내에서 학위를 받았지만 중국에서 수학한 경험도 함께 갖춘 50대 이상 학자고 3세대는 주로 중국에서 학위를 받은 40대 학자들.왜 미국인가? vs 왜 중국인가? 아산정책연구원은 4월 28, 29일 양일간 서울에서 국제 세미나인 ‘아산플래넘’을 개최했다. 주제는 ‘미국의 귀환’이었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팩트’로 보였던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쇠퇴가 틀렸다는 것이 이 회의의 대전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중국이 급속히 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뜻밖에도 미국 경제가 고속 성장을 하고 있으며 실업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증시 역시 사상 최대의 활황을 맞기 시작하면서 팍스 아메리카나 3.0시대를 구가하기 시작했다고 보았다. 군사력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미국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제임스 스타인버그 시러큐스대 교수는 세미나에서 “중국의 군사적 역량이 증대하고 있지만 미국의 군사적 역량의 절반에 불과하다”며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책임감(commitment)은 확고하며 결코 동맹국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맹파의 눈에 미국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명확하다. 세계 최강국을 동맹국으로 삼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포기할 수 없는 외교 안보적 자산이라는 것.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토적 야욕이 없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 가는 데 있어 정직한 중개자(honest broker)의 역할을 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아산정책연구원 최강 부원장은 “강한 한미동맹은 한국이 주변국에 당당한 외교를 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중국과의 관계 강화 역시 한미동맹이 공고한 틀에서 이뤄져야 더욱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최 원장은 미국은 한 지역을 보지 않고 전 세계의 관점에서 국제관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을 넘나드는 연합(coalition)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나라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균형파에 따르면 중국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다. 서진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중국 경제를 무시하고 한국 경제의 미래를 생각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중국은 미국 유럽 일본으로 대변되는 국제 경제 리더십의 빈틈을 보완할 새로운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희옥 교수는 “중국이 주도하는 질서가 장기 추세로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세계 시장과 기술의 표준을 만들어 가면 한국이 중국 시장을 우회해 성장할 길을 당분간 찾기 어렵다”는 것. 아주대 김흥규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는 “중국과의 갈등을 전제한 정책으로는 한국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으로는 먹고사는 문제부터 안보 문제까지 미국과 거의 동일한 수준에서 중국을 고려하지 않을 때 받을 타격이 한미 갈등에서 올 타격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게 김 교수의 생각. “중국 경도론 위험” vs “친미 일변도 안돼” 중국이 미국의 힘을 능가하는 세계 패권국이 될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하지만 중국이 머지않아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국이 될 가능성은 농후해 보인다. 중국이 부쩍 강조하고 있는 신형 대국관계는 미국에 대해 동아시아 지역 맹주는 바로 중국이니 이 지역의 영향력을 인정해 달라는 주장으로 들린다.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은 최근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북한의 핵문제를 거론하며 “한반도를 신형 대국관계의 시험장(testing ground)으로 삼자”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세계 질서가 아니라 지역 질서가 바뀔 때 굳건한 한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한국의 국익이 희생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동맹파의 시각이다. 외교통상부 차관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정경 분리의 원칙을 믿지 않는 미국은 한국이 균형외교(balanced diplomacy)를 펼치는 것에 유쾌하지 않은 감정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며 “중국에 의해 균형 맞춰지는(balance out)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연구소 이상현 안보전략연구실장은 현재의 질서를 급격히 변경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국이 팍스아메리카나를 구가한 것은 단순히 국내총생산(GDP)이나 군사력의 우위가 아니라 국제 질서를 만들어 내는 능력, 인류가 공감할 수 있는 글로벌 어젠다를 추진해 나가는 힘, 소프트 파워 등에서 기인했다는 것. 이명박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정책기획관을 지낸 이 실장은 “중국의 급부상을 걱정하는 것은 과거 글로벌 패권국이 보여 줬던 세련된 권력의 투사가 아니라 지역 패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균형파는 중국발(發) 국제 질서의 세력 전이가 이어지는 현실에서 한국이 언제까지 미국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고 얘기한다. 중국대사관 공사를 지낸 신봉길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은 “지정학적으로 중국은 한국 외교의 변수가 아니라 중요한 상수(常數)”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이 자유주의 시장경제 확산의 ‘뉴 프런티어’(새로운 개척), 유럽이 유럽 통합이라는 비전을 내놓은 이후 현재 유일하게 세계적 비전을 표방한 국가가 중국”이라고 말했다. 유라시아 대륙을 잇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지와 바다의 실크로드)’는 중남미까지 향한다. 중국이 설립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미국의 동맹국들까지 빨아들이고 있다. 김재철 가톨릭대 교수는 “힘의 우위 유지가 힘들어지기 시작한 미국은 동아시아 전략 유지를 위해 과거보다 동맹국들이 더 많은 역할을 해 주길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 역사 문제보다 한미일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일 관계 개선을 압박하는 미국 정부의 태도가 대표적”이라는 것. 미국 중심의 패러다임만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아시아로의 귀환 :: 2011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국무장관이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기고한 ‘미국의 태평양 시대’라는 글에서 선언한 개념. 처음에는 ‘피벗 투 아시아’라는 용어를 사용했지만 이후 아시아로의 귀환으로 수정했다. 미국 외교·군사정책의 중심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겠다는 뜻으로, 아태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신형 대국관계 ::2012년 2월 시진핑 당시 중국 국가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공식화한 개념. 중국과 미국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서로의 전략적 핵심 이익을 존중하자는 것. 중국이 미국의 핵심 이익을 존중할 테니 미국도 아시아태평양지역에서의 중국의 지위를 인정하라는 압박의 뜻도 담겨 있다.:: 세력전이 이론 ::러시아 출신 미국 정치학자 케네스 오르간스키가 정립한 이론. 패권 국가는 국제질서 정립에 필요한 기본적인 공공재를 제공하고 패권국이 지도국의 지위를 유지할 때 안정을 유지한다. 하지만 기존 패권국 중심의 질서에 불만을 가진 국가의 국력이 급성장하여 도전 세력으로 등장할 때 불안정이 가중된다. 세력전이 현상이 일어날 때 전쟁 가능성도 높아지고 무력충돌이 일어날 확률도 높아진다. ▼ “발상의 전환… 美-中이 서로 한국을 잡아끌게 만들어야” ▼우리 외교 현주소 동맹파의 관점 vs 균형파의 관점 주미 대사를 지낸 한 인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시사점이 있다. 1950년 6·25전쟁에서 피를 나눈 혈맹(血盟)을 대하는 태도와 당시 총부리를 겨누었던 적성국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우리의 외교가 제대로 된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는 지적. 한미동맹에 안주하다가는 큰일 난다는 담론은 결국 빨리 ‘떠오르는 태양’인 중국을 잡아야 한다는 압박처럼 들린다는 것이 익명을 요구한 이 인사의 푸념이다. 호사가들 사이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대외 정책 기조를 ‘친중(親中) 비미(非美) 반북(反北) 혐일(嫌日)’이라는 8자로 정리할 수 있다는 말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고 한다. 반면 동맹파는 우리 정부가 중국에 대해 과연 할 말을 하는 상태냐는 부분에서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2000년 한중 마늘 분쟁 당시 중국에 무역 보복을 당한 이후 한국의 대중 저자세 외교는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균형 외교를 표방한 박근혜 정부이지만 핵심 외교안보 라인은 여전히 미국 편향적인 것처럼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 전문가는 “핵심 외교 라인인 외교부 장관, 제1·2차관,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인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차관보, 청와대의 대통령국가안보실 제1차장,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대통령외교비서관, 대통령국가안보실 정책조정비서관 9명 중 7명이 외교부 북미과장 출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9명 가운데 중국 근무 경험자는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있는데 한국의 대(對)중국 정책은 별로 없다. 중국의 변화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외교로는 안 된다”고 말했다.한미정상회담의 성공 vs 안보 어젠다 관리 그래서 동맹파는 연기된 한미정상회담이 조속히 열려야 하고 그 결과 또한 성공적이어야 한다고 본다. 한미 관계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좌우할 회담은 아니라고 해도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회담을 이뤄 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결국 한미동맹이 양자 관계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가치 동맹으로서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그리고 번영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전을 이뤄 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일 관계 개선과 관련한 의지 표명과 더불어 이른바 중국 경사론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처럼 “우리에겐 역시 중국보다 미국”이라는 식으로 직설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워싱턴 정가에 한국이 한미동맹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 줄 필요가 있다는 것.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양국 이익의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큰 성과가 될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영향력을 키워 가고 있는 남중국해 등에서 자유무역 원칙이랄지 항행의 질서, 해상 경계선과 영토의 존중 등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도 한미동맹의 틀 속에서 중국과 교량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균형파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국 배치론에 대한 중국의 노골적인 반대와 불만 등 안보 관련 이슈를 적절히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사드 논란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안미경중(安美經中)론을 중국이 수용하지 않음을 잘 보여 주는 사례라는 것. 문흥호 한양대 교수는 “중국 학자들은 ‘우리한테서 돈만 벌고 안보는 미국과 함께하겠다는 것이냐’고 드러내 놓고 비아냥거린다”고 전했다. 중국 학자들은 ‘군사 안보의 주체 역량이 없는 한국이 미국 눈치를 봐도 너무 본다. 사드는 한국이 필요하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안 쓰면 되지 않느냐’라는 주장을 펼친다는 것. 익명을 요구한 외교 전문가는 “이는 중국 최고지도자부터 일반인까지 갖고 있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정서”라고 전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한중 두 정상이 표면적으로는 눈을 마주치고 소통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중 간에 정치적 신뢰의 기초가 상당히 부족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우리 외교가 걸어야 할 길 아주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에 대한 정확하고 냉철한 현실 인식이 선행되어야 우리의 외교가 걸어야 할 길에 대한 해답이 나올 수 있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안미경중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설명해 주는 개념일 수는 있지만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이나 전략이 될 수는 없다”며 “늙어 가는 한미동맹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분단 극복과 통일에 필수적인 도구로 활용할 수 있도록 동맹을 재조정하고 역할을 진화시켜 나가야 한다”며 “핵을 가진 북한의 도발을 막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최후의 보루가 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균형파는 미국에 지나치게 기운 운동장을 중국 쪽으로 조금만 기울이는 유연성을 발휘하라고 말한다. 서진영 고려대 교수는 “미국 대신 중국이라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중 관계는 냉전시대 미소 관계처럼 적대적 대결 관계가 아니라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하는 이중적 성격이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 선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미중에 대한 사안별 지지(issue-based support) 전략”을 제안했다. 미중의 정책 가운데 국익에 부합하는 정책을 선택하는 ‘세련된 헤징’이다. 박 실장은 “한국이 확고한 원칙과 기준에 따라 사안별 지지 전략을 구사하면 미중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을 때도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사안별로 한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생각해 한국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新조선책략을 찾아서 김흥규 교수는 현재 한국에 가장 필요한 전략을 연미화중(聯美和中)이라고 본다. 지금은 중국에 한국이 전략적으로 필요한 시기이니 중국과의 협력 면을 넓혀 한중 간 차이를 빨리 줄여 가야 한다는 것. 주중 대사 출신인 신정승 국립외교원 중국연구센터장은 “북핵 문제는 미중이 협력할 공동 목표이니 협력이 잘 이뤄지도록 한국이 역할을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주미 대사를 지낸 최영진 연세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는 한미동맹과 한중 협력을 동시에 선택할 수 있다고 봤다. 윤영관 교수가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한 적극적인 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지적한 것과 같은 맥락. 결국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불신이 깊어지는 상황이 한국의 국익에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문제는 우리 외교가 중국의 꿈(中國夢)과 미국의 가치가 조화롭게 상생할 수 있도록 조정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갖고 있는지가 아닐까.하태원 triplets@donga.com·윤완준 기자}

“21세기 패권 경쟁은 태평양에서 벌어질 것이다.” 올해 타계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2009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미중 패권 경쟁론은 서양에서 동양으로 권력이 이동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21세기가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시대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고 그 중심에는 중국의 부상이 자리 잡고 있다. 필연적으로 ‘포스트 아메리카’ 시대가 왔다는 관측과도 맞물린다. 미중 패권 경쟁론의 뒤에는 국제정치학의 세력전이이론(power transition theory)이 버티고 있다. 경제력 군사력이 가장 센 패권 국가는 국가 이익에 유리한 국제 질서를 만든다. 이를 따르는 국가는 동맹 세력이 된다. 질서에 만족하지 못하는 국가가 없을 리 없다. 힘이 약하면 불만이 있어도 패권 국가에 순응한다. 하지만 경제력 군사력이 강해져 패권 국가가 만든 질서를 바꿀 힘을 갖춘다면 패권에 도전하게 된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쟁이다. 현재까지는 군사적 긴장과 갈등보다는 경쟁과 협력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009년 중국을 방문해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지 않는다”고 했고, 중국은 신형 대국관계를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면에서 양국 간 패권 경쟁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중국 주도로 올해 탄생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미국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의 질서에 대한 도전장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해 제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 회의에서 ‘아시아 신(新)안전 개념’을 발표했다. 한마디로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가 지키자는 것으로 미국이 만든 질서에 대한 변경 선언으로 들린다. 남중국해는 영유권 문제로 미중의 해양력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지점이다. 미국이 주장하는 ‘통항의 자유’는 중국의 패권에 대한 노골적 견제다. 물론 미중 양국이 금융과 무역에서 상호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갈등보다 협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반론도 많다. 20세기 초 미국은 영국을 밀어내고 새로운 패권 국가로 등장했지만 전쟁은 없었다. 미국과 영국은 정치 체제, 가치,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화로운 세력 전이’가 가능했다. 중국이 책임 있는 강대국으로서 민주주의, 인권 등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허용하면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만드는 새로운 질서를 미국이 수용할 수도 있다. 미국의 쇠퇴, 중국의 부상이라는 미중 패권 경쟁론의 전제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증시 폭락에서 보듯 중국의 경제성장에 구조적 한계가 왔다는 것이다. 중국계 미국인인 고든 창 변호사는 지난달 28일 동아일보 부설 화정평화재단 한미안보연구회, 통일연구원 주최로 열린 국제안보 콘퍼런스에서 “권력 내부 갈등, 경제 퇴보, 군부 분열로 중국이 북한보다 먼저 붕괴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멀리 내다보면 중국의 국력은 ‘미국에 도전할지, 미국의 질서에 편승할지’ 결정해야 할 시점까지 계속 성장할 것이다. 강윤희 국민대 교수는 니어재단이 펴낸 ‘미중 사이에서 고뇌하는 한국의 외교 안보’에서 “단기적으로 보면 미국이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중국은 지역 패권에 도전하지 않는 시나리오가 가장 현실성이 높다”며 “하지만 10∼30년 후 중국이 지역 패권에 도전해 미국이 미일동맹을 통해 견제하거나 군사력 등을 동원해 직접 개입하는 시나리오로 변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지적했다. 10년 이상을 내다본 생존 전략이 한국에 절실해졌다는 뜻이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