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경찰이 시위 진압 과정에서 쏜 물포를 맞고 두개골이 골절돼 숨진 농민 백남기 씨의 유족으로부터 민사소송을 당한 경찰관 2명이 백 씨 유족의 손해배상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고 사죄한다는 뜻을 밝혔다.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2015년 11월 서울 광화문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살수차를 조종했던 한모 경장과 최모 경장의 소송대리인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2부(부장판사 김한성)에 백 씨 유족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겠다는 내용의 청구인낙서를 제출했다. 백 씨 유족은 지난해 3월 정부와 한 경장 등 경찰관 5명을 상대로 총 2억4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유족은 소장에서 정부와 경찰관 5명이 배상 금액을 나눠 낼 것을 요구하면서 한 경장에게는 6000만 원, 최 경장에게는 5000만 원을 청구했다. 한 경장 등은 청구인낙서에서 “고인의 사망으로 고통받았을 유족의 아픔을 생각하면 하루하루 숨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우며 그 죄스러운 마음을 어찌 전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하다”고 적었다. 이어 “유족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려고 하루에도 수십 차례 고민하고 고민하였으나, 경찰의 최고 말단 직원으로서 조직의 뜻과 별개로 나서는 데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사죄했다. 두 경찰관은 또 “저희가 속한 조직이 야속했다”, “경찰청의 의사와 무관하게 힘겨운 결단을 내렸다”며 백 씨 유족의 손해배상 요구를 수용하기로 한 결정이 개인적 차원의 사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는 다음 변론기일인 29일 한 경장 등이 청구인낙서를 낸 이유 등을 확인한 뒤 이들의 재판을 끝낼지 판단할 것으로 알려졌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28일로 시행 1주년을 맞는다. 청탁금지법이 사회 청렴도를 높였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일부 불명확한 규정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며 법 개정을 요구하는 의견이 적지 않다. 일각에선 현실적으로 준수하기 어려운 규정 때문에 범법자가 늘면서 법 경시 풍조까지 생기고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20일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이찬희)와 청탁금지법연구회(회장 신봉기)가 공동 주최한 ‘청탁금지법 시행 1년, 법적 과제와 주요 쟁점’ 심포지엄에서는 이 같은 쟁점에 대한 활발한 토론이 벌어졌다. ○ “부정청탁 개념·적용 범위 명확해야” 서울 서초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청탁금지법의 ‘부정청탁’ 개념과 적용 범위를 명확하게 규정하는 등 청탁금지법을 손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청탁금지법의 입법 경과와 개선방안’ 주제 발표를 맡은 정형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부정청탁 개념이 광범위하거나 모호해 명확하게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가령 채용, 승진, 전보 등 공직자 등의 인사에 관하여 ‘법률을 위반해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도록 하는 행위’라는 조항은 뜻이 불분명하므로 ‘법령을 위반해 처리하도록 하는 행위’라는 식으로 구체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강기홍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인 사립학교 교육(사립학교 교원)의 공공성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공무원이 아닌 사립학교 교원까지 청탁금지법의 적용을 받도록 한 것은 공직자의 범위를 과도하게 확장시켰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청탁금지법 피해’ 논란 또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외식업계 등 여러 업종이 피해를 봤다는 주장에 대해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강 교수는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피해를 본 분들이 많다”며 “법 개정을 통해 사회적 약자의 생계도 보호하는 법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문상섭 한국화원협회장은 “법이 10만 원 이상의 경조사비를 규제하면서 화훼업계는 확실히 몰락하기 시작했다”며 “공무원들이 가액과 관계없이 무조건 꽃 선물을 돌려보내는 경우가 많아 꽃집 매출은 청탁금지법 시행 전보다 40% 이상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길준규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업계의 매출 감소는 국가경제 침체에 따른 현상일 뿐 청탁금지법의 영향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길 교수는 “국민 다수는 청탁금지법 시행을 지지하고 있으며, 업종별 문제점이 크지 않다는 점은 밝혀졌다”며 “업종별 피해를 인정하더라도 공직자에 대한 접대비용을 올린다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준길 법무법인 지평 고문은 “(일부 업종) 매출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법 집행을 완화시킨다는 것은 타당한 근거가 되기 어렵다”고 거들었다. ○ 청탁금지법 위반 기소 7명 대검찰청에 따르면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올 8월 말까지 111명이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수사 대상이 됐다. 이 가운데 재판에 넘겨진 7명 중 3명은 구속됐다. 불구속 기소된 사람은 2명이었으며 나머지 2명은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됐다. 71명은 아직 수사가 덜 끝난 상태다. 25명에 대해서는 각각 무혐의(3명)와 각하(22명) 등 불기소 처분이 내려졌다. 한국사회학회가 성인 1566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명 중 2명은 청탁금지법 시행 이전에 비해 식사 후 각자 비용을 치르는 ‘더치페이’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답했다. ‘직무 관련 부탁이 줄었다’, ‘선물 교환이 줄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52.9, 55.4%였다. 이호재 hoho@donga.com·김윤수·김동혁 기자}

전직 프로야구 선수 양준혁 씨(48·사진)에게 코스닥 상장사의 전환사채를 넘겨주겠다고 속여 10억 원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동갑내기 사업가가 재판에 넘겨졌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부장판사 이영훈)는 양 씨를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정모 씨(48) 사건을 심리 중이다. 정 씨는 아버지가 대표이사인 부동산컨설팅업체 A사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정 씨는 2014년 12월 스포츠 베팅 업체 B사의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양 씨와 만났다. 정 씨는 양 씨에게 “내가 운영하는 A사가 B사에서 빌린 돈이 10억 원 정도다. 당신이 B사에 빌려준 돈이 10억 원 정도 되니 둘을 상계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정 씨는 양 씨에게 “그 대신 코스닥 업체 P사의 전환사채(CB) 10억 원어치를 2015년 3월까지 주식으로 전환해주거나 채권 만기에 현금 10억 원과 발생된 이익금의 10%를 얹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정 씨는 “P사 주가가 오르고 있다”며 양 씨를 꼬드겼다. 양 씨는 정 씨의 말을 믿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 씨는 당시 CB 우선인수권만 보유한 상태여서 양 씨에게 줄 CB를 갖고 있지 않았다. 검찰은 정 씨가 양 씨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보고 정 씨를 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달 24일 열린 첫 공판에서 정 씨는 “양 씨와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서로 오해가 있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현역 시절 뛰어난 실력으로 ‘양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양 씨는 2010년 9월 은퇴해 현재 방송사 야구 해설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검사님. 드디어 진범이 잡혔습니다.” 13일 창원지검 형사2부장 김완규 검사(47·사법연수원 29기)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전화를 건 사람은 김 검사가 춘천지검 강릉지청에 근무할 때 만난 경찰관 A 씨였다. A 씨는 “늘 마음속 짐으로 남아있던 사건이 해결됐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다. 당시에 현명한 판단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12년 전 기억이 차츰 되살아났다. 2005년 5월 13일 강원 강릉시 구정면에서 B 씨(사망 당시 70세·여)가 숨진 채 발견됐다. 얼굴과 입은 포장용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고 손발도 전화선으로 묶인 채였다. 장롱 서랍은 모두 열려 있고 귀금속 80만 원어치도 사라졌다. 일명 ‘강릉 노파 피살 사건’이었다. 경찰은 금품을 노린 강도가 저지른 살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수사 착수 한 달이 넘도록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애가 탄 경찰은 숨진 B 씨의 친인척과 마을 주민 수십 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B 씨에게 200만 원을 빚진 마을 주민 C 씨(당시 45세·여)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됐다. 경찰은 C 씨에게서 자백을 받아냈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당시 수사팀 소속이던 A 씨는 구속영장을 신청한 뒤에도 마음이 끝내 불편했다. C 씨가 범인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이 가시지 않아서였다. A 씨는 동료들 몰래 김 검사에게 “영장을 청구하기 전에 C 씨 이야기를 꼭 한번 들어봐 달라”고 부탁했다. 김 검사가 수사 기록을 들여다보니 허술한 부분이 많았다. 경찰은 “C 씨가 청소 도구 손잡이로 쓰는 길이 1m가량의 알루미늄 막대로 B 씨를 때려 숨지게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증거로 제출된 막대는 비닐 커버를 벗기지 않은 새 것이었고 표면에는 흠집 하나 없었다. 두께가 얇은 알루미늄 막대로 때렸다고 보기에는 B 씨 얼굴에 난 상처가 너무 면적이 큰 점도 의심스러웠다. C 씨에게는 남편과 시아주버니가 “사건 당시 함께 집에 있었다”고 진술한 알리바이도 있었다. 김 검사는 C 씨를 불러 “당신이 범인이 맞느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C 씨는 “경찰과 마을 사람들이 의심하고 추궁해서 허위 자백을 했다”고 실토했다. C 씨는 “지나가던 비구니가 ‘자백을 안 하면 어린 자녀가 위험해진다’고 해서 겁이 났다”고 말했다. 김 검사는 C 씨의 구속영장을 반려했다. 경찰은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해 C 씨에 대해 보강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C 씨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12년 만에 진범이 잡힌 건 B 씨 얼굴에 감겨 있던 포장용 테이프에 남은 1cm짜리 ‘쪽지문’(완전하지 않은 부분 지문) 덕이었다. 경찰은 최신 지문 감식 기술로 문제의 쪽지문이 마을 주민 D 씨(49)의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D 씨는 강도 범행 전과도 있고 범행 당일 알리바이도 거짓이었다. 김 검사는 본보와 통화에서 “지금이라도 진범이 잡힌 게 기쁠 뿐이다. 그걸로 됐다”고 담담하게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을 위반해 형사처벌이 확정된 첫 법원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9월 28일 청탁금지법 시행 이후 이 법 위반에 따른 과태료 부과 등 행정처분은 있었지만 검찰의 기소로 형사처벌이 이뤄진 것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적발돼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된 사건은 모두 12건이다. 수원지법 여주지원 형사2단독 이수웅 판사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한국도로공사 도로개량사업단장을 지낸 김모 씨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고 17일 밝혔다. 김 씨가 항소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됐다. 김 씨는 도로개량사업단장으로 재직하던 지난해 10월 도로 포장공사를 하는 A업체 회장 안모 씨로부터 현금 200만 원을 받았다. 도로개량사업단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을 위해 영동·중부·중부내륙고속도로 개량 공사를 담당하는 조직이다. A업체는 도로개량사업단이 발주한 공사를 재하도급 받았다. 김 씨가 만약 구체적인 직무 관련 청탁과 함께 돈을 받았다면 뇌물죄로 처벌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검찰은 그렇지 않다고 보고 김 씨에게 청탁금지법을 적용했다. 이 판사는 “김 씨가 공공기관 임직원으로서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아 청탁금지법을 위반한 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청탁금지법은 공직자 등이 직무 관련성이나 기부·후원·증여 등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 원, 1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및 약속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 판사는 “김 씨가 범죄 전력이 없는 초범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반성하고 있는 사정 등을 참작했다”며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배경을 설명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국내 최대 방위산업체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이 KAI 임원 박모 씨(58)에 대해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14일 법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앞서 8일 국가정보원의 민간인 댓글부대 ‘사이버 외곽팀’ 관련자 구속영장과 유력 인사들의 청탁을 받고 채용비리를 저지른 KAI 임원의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 거친 설전을 벌였던 법원과 검찰이 불과 엿새 만에 다시 충돌한 것이다. 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43·사법연수원 32기)는 13일 오후 11시경 KAI의 고정익 개발사업 관리실장(상무)인 박 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형사사건 증거를 인멸해야 한다. (박 씨에게) 증거인멸 지시를 받은 A 씨가 본인의 혐의 관련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분식회계에 연루된 혐의 등을 받고 있는 박 씨는 같은 부서 소속인 부하 직원 A 씨에게 회사 문서 파쇄를 지시했다. 검찰은 박 씨의 행동을 증거인멸을 지시한 것으로 보았다. 하지만 법원은 A 씨가 한 일이 박 씨가 아닌, A 씨 본인의 범죄 증거를 없앤 것으로 볼 측면이 있어서 증거인멸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약 한 시간 뒤인 14일 0시 12분경 출입기자들에게 500자 분량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영장 기각에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검찰은 “수긍하기 어렵다. 이 사건에서 인멸된 증거는 경영진과 회계담당자의 분식회계에 대한 것”이라며 “박 씨는 회계부서와 직접 관련이 없는 개발부서 실무자들(A 씨 등)에게 직무상 상하관계를 악용해 분식회계 혐의와 관련된 중요 증거를 세절하도록 시켰다”고 반박했다. 법원이 밝힌 영장기각 사유는 사실관계와 법리 면에서 옳지 않다는 것이다. 검찰의 격한 반응과 달리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 내부에서는 “검찰의 언론플레이가 금도를 넘어섰다”며 불쾌해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강경석 coolup@donga.com·이호재 기자}

12일 국회에서 열린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선 올해 3월 9일 열린 전국법원장회의 때 김 후보자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자유한국당 주광덕 의원은 이날 “그 자리에서 김 후보자는 법원행정처 차장을 직위해제시켜야 한다는 등 사법행정권을 농락하고 사법부를 유린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장회의는 양승태 대법원장과 고영한 법원행정처장, 법원장 등 30여 명이 참석해 진보 성향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주최 학술대회를 대법원이 축소했다는 의혹과 관련한 대응책을 논의했다. 김 후보자는 이 모임의 1, 2대 회장을 지냈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전국 법원장 간담회 결과 보고’ 문건에 따르면 이 회의에서 김 후보자는 18차례나 발언했다. 김 후보자 다음은 7차례 발언한 모 법원장이었다. 김 후보자는 사법권 행정 남용 의혹에 대해 “최근 2, 3일 사이의 일에 경악하고 있다”면서 진상조사위원회의 구성과 위원장 선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당시 김 후보자는 “양승태 대법원장과 큰 인연이 없는 전직 대법관 중 신뢰를 얻고 행정처와 연관이 없는 분이 적절하다”고 말한 것으로 나와 있다. 김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A, B 대법관을 빼야 한다고 발언한 사실을 시인했다. 또 조사 범위에 대해 김 후보자는 당시 “이번 사태로만 한정할 것이 아니라 법관 독립을 해하는 사례가 있는지, 사법행정권 남용 사례는 없는지 조사해야 한다”며 “법원행정처장이 대법원장에게 건의해 차장 보직을 사법행정권을 행사하지 않는 곳으로 변경해 주시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직무해제를 요구한 것이다. 법원행정처가 국회에 제출한 보고서에는 김 후보자의 발언만 요약 정리돼 있다. 주 의원은 “당시 참석한 법원장들이 김 후보자의 발언에 대해 ‘사법부를 탈취하려는 사람 같았다’, ‘춘천지법원장이 처장 이상의 권한을 행사한다’, ‘대법원장 위에 있는 사람이다’와 같이 전했다”고 말했다. 이에 김 후보자는 “그날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로) 너무 놀란 상황이라 격앙됐을 수 있지만 (그런) 의도나 취지는 갖고 있지 않았다”며 “철저히 진상 조사해야 하는데 현 차장이 자리에 있으면 안 되니까 사법행정권과 관련 없는 곳으로 피해 주면 어떻겠느냐는 취지였다”고 답했다. 야당은 “회의 녹음파일이 존재한다”며 제출을 요구했으나, 김 후보자 측은 자료가 없다며 거부했다. 김 후보자가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청문회 준비팀 외에 국제인권법연구회 핵심 판사들을 만나 청문회 대책을 논의했다는 의혹이 새롭게 불거졌다. 9월 3일 일요일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의 서울동부지법 C 부장판사와 서울고법 D 판사가 서초동 빌딩을 찾아온 사실을 후보자가 시인했다. 김 후보자는 “저와 인연이 있고 국제인권법이라고 하니 못 만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주호영 인사청문특위 위원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 간사였던 김형연 전 인천지법 부장판사가 5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에 대해 김 후보자는 “아무리 개인적 사정이 있어도 사직하고 바로 정치권으로 가거나 청와대로 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한편 김 후보자는 법원행정처가 문제가 되는 판사의 명단을 작성해서 보관 중이라는 이른바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현재까지 증거가 없다고 돼 있는데 제대로 조사가 안 됐다는 주장도 있다”면서 “양승태 대법원장이 추가 조사를 거부하며 사정을 말씀하신 것도 있어서 다시 살펴볼 것”이라고 했다. 현 대법원과 달리 재조사에 나설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이호재 기자}

“영장전담 판사들이 방향을 정해놓은 것 아닌가.”(10일 검찰 관계자) “법원에 인민재판을 요구하나.”(고등법원 부장판사) 국가정보원 민간인 댓글부대 관계자 등의 구속영장 기각 문제로 정면충돌한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기에 여당이 검찰 편을 들면서 갈등은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검찰을 압박하던 여당이 이번엔 구속영장 기각 문제로 사법부를 압박한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방향 갖고 영장 기각” vs “서울중앙지검 오버” 서울중앙지검(지검장 윤석열)은 올 2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오민석(48·사법연수원 26기) 권순호 부장판사(47·26기)와 강부영 판사(43·32기)가 부임한 뒤 구속영장 기각이 많아지자 부글부글 끓었다. 한 검찰 관계자는 “법원 전체를, 판결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라며 “새 영장전담 판사 3명이 주요 사건의 구속영장뿐 아니라 체포, 통신, 계좌추적 영장을 대부분 기각했다”고 말했다. 검찰 일각에선 법원이 올 초까지 국정농단 사건의 회오리 속에서 너무 쉽게 많이 영장을 발부한 게 문제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8일 검찰이 영장전담 판사들을 비판하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국민들 사이에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서울중앙지검의 문제 제기 방식이나 입장문의 비판 수위가 과도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오버했다”고 얘기하는 검사가 적지 않다. 여당의 시각도 검찰과 비슷하다. 더불어민주당 적폐청산위원장을 맡고 있는 판사 출신 박범계 최고위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원이 국가기관이 동원된 조직적인 국기문란 사범들에 대한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법원이) 작심하고 기각한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국정원의 일명 ‘사이버 외곽팀’의 팀장으로 활동했던 국정원 퇴직자 모임 ‘양지회’의 전·현직 간부 2명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비판받는 게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런 여당의 시각에는 사법부의 보수적인 판사들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양승태 대법원장 중심의 사법부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추진에 제동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여당에선 “대법원 법원행정처 출신이 많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들과 형사합의부의 판단을 양 대법원장 체제와 떼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여당이 사법부 의도적으로 흔드나” 이에 많은 판사들은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12, 13일)를 앞두고 여당이 양 대법원장 체제를 의도적으로 흔드는 것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다. 진보 성향 판사들 중심으로 사법부를 재편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지역 지방법원의 A 판사는 “정치권이나 검찰은 자기네 입맛에 맞지 않을 경우 무조건 흔들고 비판하면서 다 적폐라고 하는데 황당하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B 판사는 “정치세력이 적폐로 규정하면 모두 영장을 발부하고 구속하라는 것인데 이러한 것을 막기 위한 게 헌법상 영장주의고 죄형법정주의”라고 반박했다. C 판사는 “(박 최고위원이 얘기한) 국가기관이 동원된 조직적 집단적 범죄라는 게 형법에 있나. 개념도 없는 범죄를 가지고 영장을 발부하라는 것은 법원에 인민재판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황형준 constant25@donga.com·이호재·허동준 기자}

법원과 검찰이 구속영장 기각 문제로 정면충돌했다. 검찰은 8일 국가정보원의 ‘사이버 외곽팀’ 사건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방위산업 비리 사건 주요 피의자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연달아 기각되자 공식 보도 자료를 내고 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법원은 반박 의견을 발표하며 검찰에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다.○ 서울중앙지검 “적폐 청산 수행 어려워”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새벽 국정원 사이버 외곽팀장으로 활동했던 국정원 퇴직자 모임 ‘양지회’의 전현직 간부 2명에 대해 서울중앙지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또 서울중앙지검이 유력 인사 자녀 등의 입사시험 성적을 조작한 혐의(업무방해 등)로 이모 KAI 경영지원본부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도 기각했다. “구속을 꼭 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고 도망 및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게 기각 사유였다.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오전 11시 40분경 출입기자단 e메일로 공식 입장문을 배포했다. “2월 말 서울중앙지법에 새로운 영장전담 판사들이 배치된 후 주요 국정 농단 사건을 비롯해 국민 이익과 사회 정의에 직결되는 핵심 수사의 구속영장들이 거의 예외 없이 기각되고 있다”며 “이전 영장전담 판사들의 판단 기준과 차이가 많아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 사이에 법과 원칙 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작용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50)과 정유라 씨(21)의 영장 기각(각각 2차례)을 사례로 들어 “이런 상황에서 국정 농단이나 적폐 청산 등과 관련된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검찰 사명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원이 적폐 청산을 방해한다고 비판한 것이다. 여권 일부 인사도 검찰의 법원 비판에 가세했다. 초점은 이날 양지회 전현직 간부 2명의 영장을 기각한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48·사법연수원 26기)에게 맞춰졌다.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법리로 판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청래 전 민주당 의원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판사”라고 했다. 앞서 오 부장판사는 올 2월 우 전 수석의 1차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대검찰청 수뇌부는 확전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대검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이) 대검과 사전에 조율한 바 없다”고 밝혔다. ○ 서울중앙지법 “도 넘어선 억측 부적절”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의 입장문 배포 약 4시간 만인 이날 오후 3시 반경 형사공보관을 통해 반박 의견을 발표했다. “도망이나 증거 인멸의 염려 등 구속 사유가 인정되지 않음에도 수사 필요성만 앞세워 구속영장이 발부돼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어긋난다”며 “향후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가 포함된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도를 넘어선 비난과 억측이 섞인 입장을 공식 표명한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법원 내부에선 검찰에 대한 강한 성토가 쏟아져 나왔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구속이 수사 성공’이라는 잘못된 관행에서 검찰이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양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인 뒤 이날 오후 9시 반경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47·26기)는 서울중앙지검이 공군 훈련기 등의 납품장비 원가를 100억여 원 부풀린 혐의로 공모 KAI 생산본부장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 법원 vs 검찰 11년 만에 다시 충돌 법원과 검찰이 영장 기각 문제로 심각한 파열음을 낸 것은 2006년 론스타 사건 이후 11년 만이다. 당시 대검 중앙수사부가 외환은행 주가조작 혐의로 유회원 론스타코리아 대표에 대해 4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모두 기각했다. 유 대표를 포함해 론스타 임원들에 대한 체포·구속영장 기각 횟수는 12차례에 달했다. 당시 검찰은 법원을 향해 “남의 장사에 인분을 들이붓는 격”이라고 비판했고, 법원은 검찰에 대해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고 맞받아쳤다. 이 수사를 지휘한 중수부장이 바로 국정 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다. 특검팀에 파견 근무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당시 중수부 소속이었다. 이번 서울중앙지검의 입장문 발표는 윤 지검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강경석 coolup@donga.com·이호재·허동준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65·구속 기소)의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가 박 전 대통령의 1심 구속기한(10월 16일) 직전까지 증인 신문 일정을 확정했다. 박 전 대통령 재판 선고가 1심 구속기한인 6개월을 넘겨 이뤄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이 연장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재판부는 7일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61·구속 기소) 등의 공판에서 10월 10일 이영선 전 청와대 경호관(38·구속) 등 증인 4명을 증인 신문하기로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의 1심 구속기한 불과 엿새 전까지 증인 신문 일정을 잡은 것이다. 예정대로 재판이 진행되면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는 구속기한인 10월 16일 이전에 열리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선고 기일은 결심 공판이 열린 뒤 2, 3주 후에 열리는 경우가 많다. 재판부가 심리 내용을 정리하고 판결문을 쓰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의 1심 재판에서도 8월 7일 결심 공판이 열리고 18일 뒤인 같은 달 25일 선고가 이뤄졌다. 선고 일정이 1심 구속기한 이후가 될 경우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을 석방하고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진행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법원 안팎에서는 국정 농단 관련자들이 1심 재판에서 대부분 유죄를 선고받은 점을 감안하면 재판부가 박 전 대통령을 석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은 기소 단계에서 구속영장 발부 때는 없던 혐의(롯데·SK에 K스포츠재단 추가 출연 요구 등)가 추가됐기 때문에 재판부가 직권으로 최대 6개월까지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재판부 결정만으로 내년 4월까지 박 전 대통령을 구속할 수 있는 것이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을 추가 기소할 경우에도 법원은 새로운 혐의 내용을 토대로 구속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재판 진행 속도로 볼 때 박 전 대통령의 1심 선고는 10월을 넘길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재판부는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48·구속 기소)이 최 씨 등과 공모해 광고업체 컴투게더를 협박해 포스코 계열 광고업체 포레카의 지분을 강탈하려 한 혐의(강요 미수 등)에 대한 심리를 11월 26일(차 전 단장의 구속 만기) 이전에 하겠다”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 재판부는 차 전 단장 사건도 함께 맡고 있지만 두 사건을 병합하지 않고 따로 심리해 왔다. 이날 재판부의 발언은 차 전 단장 사건 선고 이전에 박 전 대통령과 최 씨가 검찰의 기소 내용처럼 차 전 단장과 공범인지 등을 확인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날 최 씨와 딸 정유라 씨(21) 모녀를 변호해온 이경재 변호사(68)는 “더 이상 정 씨를 변호할 수 없다”며 서울중앙지검에 6일 사임계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는 정 씨가 자신과 상의 없이 올 7월 이 부회장 등의 재판에 출석해 어머니 최 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일 때문에 사임을 결심했다고 한다.권오혁 hyuk@donga.com·이호재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58·사법연수원 15기·사진)가 춘천지법원장 임기를 9개월가량 남겨둔 시점에 서울에 전셋집을 계약한 사실이 6일 확인됐다. 곽상도 자유한국당 의원실에 따르면 김 후보자는 5월 12일 부부 공동 명의로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한 아파트를 7억 원에 전세 계약했다. 잔금 6억3000만 원은 6월 중순에 모두 치렀다. 김 후보자는 지난해 2월 춘천지법원장으로 부임하면서 서울 종로구에 보유하고 있던 아파트를 4억1400만 원에 처분했다. 또 부인과 함께 살던 서울 서초구 방배동 아파트 전세계약도 종료하고 춘천지법에서 제공하는 관사에 입주했다. 이처럼 관사 생활을 하던 김 후보자가 춘천지법원장 임기를 한참 남겨둔 상황에서 서울에 전셋집을 계약한 사실이 알려지자 법원 안팎에서는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김 후보자가 전세 계약을 체결한 시점은 김 후보자가 회장을 지낸 법원 내 학술모임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중심으로 사법개혁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던 때다. 당시 김 후보자는 이상훈(61·10기) 박병대 전 대법관(60·12기)의 후임으로도 유력하게 거론됐다. 이 때문에 법원에서는 “김 후보자가 본인이 대법관에 지명될 경우를 대비해 서울에 집을 구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그러나 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이 같은 의혹을 부인했다. 법원 인사 관행상 2018년 2월 정기 인사에서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돌아올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에 연말쯤에는 서울에 집을 구할 계획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는 “아내가 ‘서울 전셋값이 폭등한다’는 얘기를 듣고 서둘러 집을 구하자고 해 전세 계약을 하게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경제력 범위 내에서 구할 수 있는 집이 있어 계약을 했고, 주말에는 서울 집에 머물렀다”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는 국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자녀가 결혼할 때 결혼식이나 이후 생활을 위해 지원한 일이 있느냐’는 질문에 ‘해당 사항 없음’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는 2013년 공직자 재산신고에서는 은행 대출이 3300만 원가량 증가한 이유로 ‘(2012년 10월)장녀 결혼 비용 지원 등’이라고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배석준 eulius@donga.com·이호재 기자}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노조가 승소한 데 이어 동종업계 경쟁사인 한국GM의 통상임금 소송 3건에서도 노조가 승리했다. 한국GM 사건에서는 전년도 인사평가 결과를 기준으로 그 다음 해에 직원에 따라 차등 지급해온 ‘업적연봉’도 통상임금으로 인정됐다. 서울고법 민사합의1부(부장판사 김상환)는 한국GM 사무직 근로자와 퇴직자 148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3건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회사는 근로자들이 청구한 92억 원 중 90억 원을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재판부는 한국GM의 업적연봉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2015년 11월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가 한국GM 사무직 근로자들의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사건을 돌려보낸 취지를 파기환송심은 물론이고 관련 사건들에서도 그대로 따른 것이다. 사측이 주장한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은 이번에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업적연봉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 신의칙이 적용된다고 판시한 정기상여금으로 보기 어렵다”며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는 노사 관행이나 묵시적 합의가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없다”고 밝혔다. 한국GM은 2000∼2002년 연봉제 실시 당시 정기상여금을 업적연봉으로 바꾸면서 업적연봉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했다. 이에 반발한 사무직 근로자와 퇴직자가 2007년, 2008년 각각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회사 측에 승소 판결했지만 대법원은 2015년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주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1심 소송에서 31일 근로자들이 일부 승소할 수 있었던 것은 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위반 여부를 판단하면서 근로자들의 추가임금 지급 요구가 지나치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기아차의 경영 상태가 근로자들이 요구하는 추가임금(새로운 통상임금 기준에 따른 각종 수당 미지급분) 규모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신의칙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통상임금 소송에서 신의칙 위반 여부는 판결에 결정적인 기준이다. 하지만 신의칙 판단의 전제인 기업 경영 상태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점은 큰 문제라는 지적이 많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12월 통상임금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한 잣대를 제시하지 않았다. 최근 법원 판결을 보면 같은 기업, 같은 사건에서도 재판부에 따라 신의칙 판단을 달리하는 경우가 있다. 현대중공업 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다. 울산지법 정우철 민사4단독 판사는 2015년 2월 현대중공업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회사는 상여금 800%를 통상임금에 포함해 근로자에게 6295억 원을 지급하라”며 근로자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당시 추가임금을 지급하면 경영 상태가 악화된다는 사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항소심 판단은 달랐다. 부산고법 민사합의1부(부장판사 손지호)는 지난해 1월 “회사는 추가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며 원심을 깨고 회사 측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현대중공업이 2014년 이후 거액의 당기순손실을 보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추가임금 지급은 재무위기를 악화시킬 것”이라며 근로자들의 요구가 ‘신의칙 위반’이라고 봤다. 금호타이어의 통상임금 소송도 비슷한 상황이다. 광주고법 민사합의1부(부장판사 구회근)는 지난달 18일 근로자들이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사측 승소 판결을 내렸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만 회사 경영이 악화되고 있어 추가임금 지급은 금호타이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근로자들의 추가임금 요구를 신의칙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것. 반면 앞서 1심은 근로자 측의 승소 판결을 하면서 신의칙 위반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이런 논란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향후 대법원이 신의칙 위반 판단의 구체적 기준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기업은 현대자동차와 두산중공업, 현대모비스 등 115곳에 달한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법원 내부에서 ‘사법(司法)의 정치(政治)화’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진보 성향 판사들을 중심으로 법관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을 인정하는 게 바로 ‘법관의 독립’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법관의 정치색은 판결의 공정성 침해로 이어진다는 반박이 나오고 있다. 법원 안팎에선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을 지낸 김명수 춘천지법원장(58·사법연수원 15기)이 새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뒤 판사의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 공론화됐다는 분석이 많다.○ “정치색 없는 법관 동일체… 환상” 주장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으로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오현석 인천지법 판사(40·35기)는 30일 법원 내부 게시판에 ‘재판과 정치, 법관 독립’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과거 엄혹한 군사정권 시절에 판사들이 법률기능공으로 역할을 축소시켜 근근이 살아남으려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심리적 작용이 있었을 것”이라며 “정치색이 없는 법관 동일체라는 환상적 목표 속에 안주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재판이 곧 정치라고 말해도 좋은 측면이 있다”며 “개개의 판사들 저마다의 정치적 성향들이 있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 판사는 법관의 정치적 성향을 인정하는 게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논리를 편 뒤 “남의 해석일 뿐인 대법원의 해석, 통념, 여론 등을 양심에 따른 판단 없이 추종하거나 복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우에 따라 대법원의 판례를 무시한 판결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오 판사는 이달 중순 대법원 법원행정처의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10여 일간 단식을 했다. 하지만 김 대법원장 후보자가 22일 양승태 대법원장을 면담한 뒤 법원행정처 차장이 인천지법을 방문하자 단식을 중단했다. 또 일부 진보 성향 판사들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선 결과 등과 관련한 정치색 짙은 의견을 공개해 논란이 됐다.○ “정치권력과 결탁하자는 건가” 법원 내부엔 오 판사의 주장에 반대하는 판사들이 적지 않다. 설민수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48·25기)는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오 판사의 주장을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설 부장판사는 “(법관의 정치적 성향) 논의가 법관이란 지위와 결합되었을 때는 그런 논의조차 삼갈 필요가 있다”며 “정치적 논리로 보기 쉬운 판결을 지속적으로 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에서 공격을 차단하고 재판과 재판기록, 그리고 법리에 의해 판단했다고 우리 자신을 변호할 수 있는 방어 방법을 스스로 걷어차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또 한 고등법원의 부장판사는 “공정한 재판을 할 의무가 있는 판사는 정치 지향성이나 어떤 예측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며 “그게 사법부의 존립 근거”라고 강조했다. 부산지법의 한 판사는 “‘법관의 독립’은 판사가 자신의 신념대로 판단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게 아니고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오 판사의 주장은 정치권력과 결탁하자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정치 성향을 드러낸 채 재판하는 판사들은 헌법상 탄핵 대상”이라고 말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 헌법 103조에 위배된다는 의미다. 한 원로 법조인은 “헌법이 규정한 법관의 양심은 일반 개인의 양심이 아니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법관의 직업적 양심을 뜻한다”고 설명했다.배석준 eulius@donga.com·이호재 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6)에게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하면서 법원은 “국정원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은 직무범위를 벗어난 정치 관여이며 불법 선거운동”이라고 결론 내렸다. 1심에서 무죄, 항소심에서 유죄로 결론이 엇갈렸던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 개입 혐의(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에 대해 다시 유죄가 선고된 것이다. 원 전 원장이 2009∼2012년 국정원에서 주재한 ‘전 부서장 회의 녹취록’ 원본과, 원 전 원장 시절 국정원이 청와대에 올린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보고서 등 검찰이 제출한 추가 증거들은 재판부의 유죄 판단에 유력한 근거가 됐다. 이날 파기환송심의 최대 쟁점은 국정원 심리전단 활동이 불법 선거운동으로 인정될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심리전단의 사이버 활동 중 △18대 대선 입후보자들의 출마 선언일 이후 특정 후보를 지지 또는 반대한 글 △각 정당의 대선 후보자 확정일 이후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글을 올린 행위는 선거운동으로 판단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재판부는 심리전단의 트위터 활동 10만6513회, 인터넷 게시물 또는 댓글 작성 93회, 인터넷 게시물 찬반 클릭 1003회가 불법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재판부는 “심리전단 직원들의 게시물 등은 여당과 여당 후보를 노골적으로 옹호, 지지하거나 야당 및 야당 후보자를 반대, 비방하는 내용이어서 선거운동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원 전 원장이 국정원 내부 회의에서 ‘야당이 승리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점 △국정원이 평상시 각종 선거에서 여당의 승리를 목표로 여론조사 등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선거법 위반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지난달 24일 결심공판에서 검찰이 추가로 낸 증거들이 결정타가 된 것이다. 1심과 항소심에서 모두 유죄가 인정됐던 국정원법 위반(정치 관여)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직접 거론하며 지지나 반대를 표명한 글, 현직 대통령 지지 및 옹호 글 등은 모두 정치 관여 행위로 판단했다. 심리전단 직원의 이메일에서 발견된 ‘425지논 파일’과 ‘시큐리티 파일’의 증거능력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이어 이날 선고에서도 인정되지 않았다. 두 파일을 증거로 쓰려면 형사소송법에 따라 파일 작성자로 추정되는 국정원 직원이 작성 사실을 법정에서 인정해야 하는데, 그 같은 증명이 안 됐으므로 증거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425지논 파일’은 2012년 4월 25일부터 같은 해 12월 5일까지 원 전 원장의 지시사항 요점을 정리한 문서 파일이다. ‘시큐리티 파일’은 심리전단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트위터 계정 269개의 정보가 담긴 파일이다. 재판부가 두 파일을 증거로 인정하지 않음에 따라 심리전단이 사용한 트위터 계정 수는 항소심(716개)보다 적은 391개만 인정됐다. 원 전 원장의 형량은 항소심(징역 3년, 자격정지 3년) 때보다 무거워졌다. 재판부가 원 전 원장에게 선고한 징역 4년은 검찰 구형량과 똑같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이 한 일은) 절대 허용될 수 없는 행위이며 위법성이 크다”며 “30년 이상 공직에 근무한 공직자가 이런 일을 했다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고 비판했다. 원 전 원장은 앞서 건설업자에게서 금품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년 2개월간 만기복역했다. 출소 직후인 2015년 2월 ‘댓글 사건’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8개월간 복역했던 원 전 원장은 2015년 10월 파기환송심 중 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날로 3번째 구치소에 수감된 원 전 원장은 대법원의 재상고심에서 파기환송심대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면 2020년 12월까지 복역해야 한다. 이날 원 전 원장은 흰색 셔츠에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법정에 나타났다. 선고가 이어지는 동안 원 전 원장은 유죄 판결을 예감한 듯 시종 무거운 표정이었다. 가끔 눈을 감거나, 숨을 깊게 들이쉬는 모습도 보였다. 원 전 원장의 변호인 배호근 변호사는 “판결에 수긍할 수 없다”며 재상고 의사를 밝혔다. 권오혁 hyuk@donga.com·이호재 기자}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6·사진)이 30일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2012년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댓글 작성 등을 지시해 선거에 개입한 혐의(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가 유죄로 인정됐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원 전 원장의 지시를 받은 국정원 직원들이 391개의 트위터 계정으로 총 29만5636차례에 걸쳐 글을 올리거나 리트윗했고 인터넷 게시판에 2124회 댓글을 달아 정치와 선거에 개입했다고 밝혔다. 원 전 원장이 재직 당시 주재한 국정원의 전(全) 부서장 회의 녹취록 등 검찰이 지난달 24일 재판부에 제출한 추가 증거가 원 전 원장 유죄 판단에 결정적 근거가 됐다. 앞서 원 전 원장은 건설업자에게서 공사 수주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아 구속 수감돼 1년 2개월 복역 후 만기 출소했지만 2015년 2월 ‘댓글 사건’ 항소심에서 법정 구속됐다. 이후 대법원이 선거법 위반의 근거가 된 텍스트 파일 등의 핵심 증거 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한 뒤 2015년 10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리고 1년 10개월 만에 이날 다시 구속 수감된 것이다. 원 전 원장과 같은 혐의로 기소된 이종명 전 국정원 3차장과 민병주 전 심리전단장은 모두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배우 하지원(본명 전해림·39·사진) 씨가 화장품 회사와 10억 원대 소송에 휘말렸다. 화장품 회사 ‘골드마크’는 “브랜드 홍보 활동 계약을 지키지 않아 입은 피해액 등 11억6000만 원을 배상하라”며 하 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고 29일 밝혔다. 골드마크 측은 “하 씨가 회사 주식 30%를 받는 조건으로 골드마크 브랜드 홍보 약정을 맺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 씨는 친언니가 운영하는 화장품 브랜드 제품 개발과 판매를 위해 2015년 골드마크와 동업계약을 맺었다. 자신의 초상권도 골드마크가 전속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하 씨는 수익 배분 문제 등으로 골드마크와 갈등을 빚으며 소송전을 시작했다. 하 씨는 지난해 7월 “골드마크가 운영 수익을 나눠 주지 않았다”며 초상권 사용 금지 소송 등을 제기했다. 골드마크도 “계약을 위반한 건 하 씨 쪽”이라며 맞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62부(부장판사 함석천)는 올 6월 하 씨에게 패소 판결하면서 골드마크 측의 손해배상 청구 등도 함께 기각했다. 이날 하 씨 측은 “소장을 보지는 못했지만 골드마크의 주장은 이미 지난 초상권 소송에서 법원이 기각한 것과 같은 내용일 것”이라며 “(하 씨가 출연하는) 드라마 방영 직전에 악의적 언론플레이가 이뤄져 유감”이라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66)의 ‘댓글 사건’ 파기환송심 담당 재판부가 30일 열리는 선고 공판의 방송 생중계를 허용하지 않기로 28일 결정했다. 앞서 2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49·구속 기소)의 1심 선고 공판도 재판부의 결정으로 방송 생중계가 안 됐다. 많은 국민의 관심을 모은 두 사건의 방송 생중계가 잇따라 무산되자 법원 안팎에서는 “방송 생중계 관련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원 전 원장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피고인들이 모두 동의하지 않은 점, 촬영 허가가 공익을 위한 것이라고 인정하기에 부족한 점 등에 비춰 (방송 생중계를) 허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이 부회장 1심 재판부가 선고 공판의 방송 생중계를 불허하며 내세운 것과 비슷한 논리다. 한 변호사는 “원 전 원장 사건의 방송 생중계 허용이 안 되면 도대체 어떤 사건을 생중계하느냐”며 “이런 식이면 박근혜 전 대통령 1심 선고 공판도 생방송으로 보기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법원 내부에서는 재판부의 방송 생중계 불허 결정을 이해한다는 반응도 나왔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박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헌법재판관들이 신변 위협에 시달렸던 일을 생각해 보라”며 “재판부에는 방송에 본인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큰 부담일 수 있다”고 말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방송 생중계의 목적이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이라면, 그 허가 주체는 재판장이 아니라 법원장이나 법원 내 별도 기구가 되는 게 옳다”고 말했다. 직접 방송에 나오게 되는 피고인이나 재판장이 생중계에 동의할 가능성이 높지 않으므로, 중립적인 제3자가 판단을 하자는 것이다. 반면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선고 공판의 방송 생중계 허용 여부도 재판의 일부”라며 “재판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재판부가 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법관들이 방송 중계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찬희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뿐 아니라 피고인이 자신의 혐의에 대해 전 국민에게 항변할 기회를 주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며 “재판부는 전향적으로 방송 생중계 허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원 전 원장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부는 검찰의 변론 재개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예정대로 30일 선고를 하기로 했다.이호재 hoho@donga.com·권오혁 기자}

“이재용 피고인 입정시켜 주시지요.” 25일 오후 2시 29분. 김진동 부장판사(49·사법연수원 25기)의 지시가 떨어지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으로 들어섰다. 법정을 가득 채운 200여 명의 시선이 이 부회장에게 쏠렸다. 이 부회장은 김 부장판사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 부회장은 침착한 표정과 태도를 유지했던 앞선 재판 기일과 달리 이날은 선고가 진행되는 동안 꽤 초조한 기색이었다. 판결 선고가 이어진 1시간 동안 이 부회장은 줄곧 재판부만 바라봤다. 간혹 입이 타는 듯 종이컵에 담긴 물을 마셨다. 수시로 침을 삼키고, 손등으로 입가를 닦거나 립밤을 입술에 바르는 모습도 보였다. 김 부장판사가 삼성의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금을 뇌물로 인정한다고 말하는 순간, 이 부회장의 입가는 잠시 파르르 떨렸다. “피고인 이재용을 징역 5년에 처한다.” 김 부장판사가 주문을 낭독하자 방청석 곳곳에서 낮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 부회장은 표정 변화 없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정면만 응시했다. 두 손은 앞으로 가지런히 모은 채였다. 오후 3시 29분, 재판이 모두 끝난 뒤 이 부회장은 차분해진 모습으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교도관들은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66)과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63)에 대해 법정구속 절차를 진행했다.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64)과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55)는 빠른 걸음으로 법정을 떠났다. 방청석에 앉아 있던 삼성 변호인단 30여 명은 예상치 못한 재판 결과에 당황한 듯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법정에 그대로 서 있었다. 삼성 측 변호인단 송우철 변호사(55)는 “1심은 법리 판단, 사실 인정 모두에 대해 법률가로서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며 즉각 항소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송 변호사는 ‘1심 판결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무엇이냐’, ‘삼성 승계 작업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항소심에서 상식에 부합하는 합당한 중형이 선고되고 일부 무죄 부분이 유죄로 바로잡힐 수 있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법원 정문 앞에서는 태극기혁명국민운동본부 등 보수단체 회원 350여 명이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이 부회장이 탄 호송차가 법원에 도착하자 태극기를 흔들며 “이재용”을 연호하는 모습을 보였다. 부근에서는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보수단체에 맞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이호재 hoho@donga.com·최지선 기자}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은 대법관 13명이 전원일치로 유죄를 선고했는데 대법관 전부가 곡학아세(曲學阿世)하고 법을 자의적으로 판단하고 정의가 마비됐다는 것이냐.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유죄를 선고한 13명의 대법관이 속된말로 ‘제정신이 아니다’, ‘또라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국회 법제사법위원장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 “말이 좀 심하다. 집권당 대표와 관련해 ‘또라이’ 표현을 쓴 것을 시정해 달라.”(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년간 복역하고 23일 만기 출소한 한명숙 전 총리(73)를 놓고 정치권이 하루 종일 들끓었다. ○ 秋 “기소도 재판도 잘못”…野 “법치주의 파괴” 논란은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전날 한 전 총리에 대해 “기소도 잘못됐고, 재판도 잘못됐다. 기소독점주의의 폐단으로 사법 부정의 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하면서부터 일기 시작했다. 추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 회의에서도 “그분(한 전 총리)의 진실과 양심을 믿기에 매우 안타까웠다”고 했다. 여기에 김현 민주당 대변인이 불을 더 지폈다. 김 대변인은 한 전 총리가 출소한 직후인 오전 5시 15분경 서면 논평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 추도식 때 추모사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한명숙 총리를 향한 정치보복이 시작됐다”며 “정치탄압을 기획하고 검찰권을 남용하며 정권에 부화뇌동한 관련자들은 청산되어야 할 적폐세력”이라고 사법부를 정면 겨냥했다. 야당 의원들은 사법부 독립을 침해하는 발언이라며 추 대표를 일제히 비판했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추 대표의 발언에 대해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무책임한 발언이며 자기들만 옳다는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이라면서 “구악 중의 구악”이라고 했다. 바른정당 주호영 원내대표도 “여당 지도부가 3권 분립 체제하에서 대법원의 판결을 부정하는 웃지 못할 일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며 “정말로 한 전 총리의 재판이 잘못된 것이라 믿는다면 국정조사를 제안해 달라”고 역공을 폈다. 법사위에 출석한 김소영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근거 없는 비난은 사법부의 신뢰에 영향을 많이 미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대법관으로서 한 전 총리에 대한 전원합의체 판결에 참여했다.○ 추징금 8억8000만 원 중 250만 원만 환수 논란에 휩싸인 한 전 총리는 이날 오전 5시 10분경 경기 의정부교도소 문 밖으로 나왔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해 이해찬 문희상 홍영표 정성호 민병두 유승희 유은혜 전해철 기동민 김경수 의원 등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등 전·현직 의원 20여 명을 포함해 지지자 200여 명이 한 전 총리를 맞았다. 친노(친노무현) 진영의 상징색인 노란색 풍선이 출소 길을 장식했다. 한 전 총리는 수척해진 얼굴로 10여 분간 짧은 소회만을 밝혔다. 눈물을 흘리지도,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않았다. 한 전 총리는 “짧지 않은 2년 동안 가혹했던 고통이 있었지만 새로운 세상을 드디어 만나게 됐다”며 “앞으로도 당당하게 열심히 살아 나가겠다”고 말한 뒤 현장을 떠났다. 2015년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300만 원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2007년 대통령 선거 후보 당내 경선 과정에서 한 전 총리가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세 차례에 걸쳐 현금과 수표, 달러 등 9억 원을 받은 혐의를 인정했다. 검찰은 선고 직후 추징금 환수팀까지 꾸렸지만 현재까지 한 전 총리의 교도소 영치금 250만 원만 추징했다. 한 전 총리 명의였다가 남편 이름으로 바뀐 아파트 보증금 1억5000만 원은 환수 대상이라고 법원이 판단했지만 한 전 총리가 불복해 관련 절차가 진행 중이다. 한 전 총리는 사면받지 않으면 만 83세까지 선거에 출마할 수 없다. 박성진 psjin@donga.com·이호재·홍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