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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메다 소고는 일본의 성공한 백화점 사업가다. 곧 미수(米壽·88세)를 맞는 그가 밤마다 있지도 않은 보석을 찾아 헤매자 가족들은 치매를 의심한다. 그러나 우메다가 찾는 보석의 이름이 실존했던 고가의 보석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립탐정을 찾아가 미수연에 동행해 달라고 요청한다. 우메다의 생일을 축하하러 파티에 참석하는 건 가족과 탐정 말고도 또 있다. 15년 전 정년퇴직한 경찰 사카마키 조이치로다. 우메다가 오래전 한 주부 실종 사건의 수사 선상에 올랐던 일이 인연이 됐다. 당시 우메다는 아무런 용의점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름 햇살이 반짝이는 가운데 우메다가 소유한 절해고도에서 파티가 열린다. 우메다는 나이에 걸맞게 살은 빠졌지만 여전히 건장한 체구에 햇볕에 탄 얼굴이 인왕(仁王) 같은 인상을 준다. 유쾌한 분위기에서 그는 대뜸 “이런 상황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잖아요?”라며 농담을 던진다. 그리고 다음 날, 우메다가 갑자기 사라진다. 대만으로 향하던 태풍이 진로를 바꿔 폭풍우를 몰고 오는 가운데, 섬엔 긴장이 흐른다. 현대 사회의 그늘을 비춰 온 일본 인기 소설가가 지난해 출간한 미스터리 소설이다. 최근 일본 역대 실사영화 흥행 1위 기록을 새로 쓴 ‘국보’도 이 작가가 원작을 썼다. 고립된 섬에서 여러 인물이 자신의 기억을 들려주며 추리를 이어간다. 작가가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겠다”는 영화 ‘중경삼림’의 대사에서 영감을 얻어 작품을 썼다는 점이 힌트가 될까.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독자들은 역사적 인과관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통쾌한 반전을 주는 이야기에 특히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웹툰과 웹소설의 시장 규모가 지난해 2조5000억원을 넘어선 가운데, 역사 관련 웹콘텐츠의 특징을 분석한 발표가 나왔다. 박성환 한국영상대 교수(웹소설 전공)는 14일 서울 중구 동국대에서 개최된 ‘2025 전통기록문화 창작 콘퍼런스’에서 ‘역사 소재 웹툰, 웹소설 현황과 특성’을 발표하고 “다양한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대체 역사 웹 소설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국학진흥원 등이 주관한 이날 콘퍼런스에서 박 교수는 웹툰 및 웹소설 플랫폼에 올라온 역사 소재 판타지 작품들을 분석해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현대의 지식이 있는 주인공이 과거로 이동해 역사에 개입하는 설정의 콘텐츠가 많았다. 이를 테면, 현대 의학 지식으로 역병을 퇴치하거나 근대식 군대로 구식 군대를 물리치는 것을 비롯해 오늘날의 과학 기술, 경제학 등 지식을 활용해 과거를 변화키는 이야기다. 또 대부분의 역사물에선 전쟁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고, 정치적 음모와 난(亂)도 많이 그려졌다. 웹소설의 인기 설정인 ‘환생’이나 ‘회귀’ ‘빙의’는 역사물에서도 핵심 장치로 활용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대 배경은 조선 시대가 723편 중 264편으로 전체의 36.5%를 차지했다(‘리디’ 플랫폼).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 전쟁기, 세도정치와 왕위계승 분쟁 등의 혼란기가 자주 배경으로 등장했다. 독자들은 특히 조선과 개화기를 배경으로 한 ‘애국물’을 열광적으로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는 “독자들은 신선함을 갈망하면서도 기본기에 충실한 대체역사물을 원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노블 코믹스(웹소설 기반 웹툰)가 시각적 요소를 통해 몰입도를 높이면서 독자 저변을 확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지도는 세상에 대한 인식을 함축하고, 만들어 내기도 한다. 튀르키예 남부, 신석기 시대 초기의 대규모 정착지였던 차탈회위크 유적의 마을 지도로 시작해 우리 은하가 속한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의 이미지까지 40개의 지도를 소재로 고정관념을 깨는 여러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2014∼2018년 남극을 방문한 선박의 항구 간 통행망을 그린 지도를 보면 남극이 더 이상 고립된 곳이 아니라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해마다 선박 약 200척이 남극 대륙을 방문한다. 그중 3분의 2는 관광용이다. 선박을 통해 유래한 홍합과 같은 외래종으로, 수천만 년 동안 독자적으로 진화한 남극의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고 한다. 책엔 참신한 지도들이 적지 않게 담겼다. 아프리카가 식민지가 되지 않았다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상상해 그린 ‘알케불란(인류의 어머니)’ 지도는 국경선이 불규칙하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를 대고 국경을 그려 만들어진 오늘날의 실제 지도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미국인의 가계 혈통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어디일까. 멕시코나 푸에르토리코 등 중남미 어느 곳일 것 같지만 지역별 최대 혈통 분포도에 따르면 사실은 독일이다. 지도엔 제작자의 특별한 의도가 반영되기도 한다. 중국과학원이 2013년 제작한 세로형 지도는 동아시아를 중심에 놓았다. 아메리카 대륙은 주변부로 밀려나 싹둑 잘려 있다. 상단의 북아메리카는 옆으로 누워 기어가는 모양새다. 오래된 중화사상이 되살아난 느낌을 준다.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세계지도는 아래위가 오늘날 지도와는 반대여서 남쪽이 위쪽에 그려졌다. 이슬람 지리학자들의 오랜 전통을 반영한 것이다. 영국 뉴캐슬대 지리학 교수인 저자는 이 밖에도 인간 대뇌피질 조각의 뉴런들이 복잡하게 뻗어 나간 모습, 나무와 균류의 네트워크, 지구의 지오이드(중력장 지도) 등 다양한 지도 이미지를 통해 인류뿐 아니라 자연과 우주를 넘나드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책에 담았다. 이미지 자체도 다채로워 보는 즐거움이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뒤 “들이민 목을 벨 수밖에 없다”고 극언을 퍼부은 쉐젠(薛劍) 주오사카 중국 총영사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자진 귀국’을 요청했지만 중국 정부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다카이치 총리 발언의 철회를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는 가운데 일본이 맞대응으로 쉐 총영사를 강제 추방할지 여부에 관심이 집중된다. 20일 NHK에 따르면 전날 다카이치 총리는 최근 베이징에서 류진쑹(劉勁松) 중국 외교부 아주사장(아시아국장)과 회담을 하고 돌아온 가나이 마사아키(金井正彰)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의 보고를 받았다.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NHK는 18일 베이징 회담에서 일본 측이 쉐 총영사가 ‘참수’ 관련 글을 온라인에 올린 것에 대해 강하게 항의했고, 일본 내에서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 인물)’로 지정해 추방하자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런 상황을 감안해 자진 귀국을 포함한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지만, 중국은 긍정적인 답변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중국은 다음 날인 19일 일부 수입을 재개했던 일본산 수산물에 대해 다시 전면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이에 일본 정부는 쉐 총영사에 대한 ‘외교적 기피 인물’ 지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이 타국 외교관을 ‘기피 인물’로 정한 사례는 총 4차례. 이 중 첫 번째 사례가 1973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 도쿄 납치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의 김동운 1등 서기관이었다. 쉐 총영사를 ‘기피 인물’로 지정하면 중국으로선 첫 번째가 된다. 다만 개인적 범죄가 아닌 외교 사안으로 추방할 경우 상대국에서 ‘맞불 추방’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게 일본의 고민이다.이런 가운데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국이 추가 압박 카드로 ‘단기 체재 비자 면제’ 조치를 취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3일 중국은 올해 말까지인 면제 조치를 1년 연장하기로 했지만 이런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는 것. 중국은 경제안보적으로 파장이 큰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도 취할 수 있다. 또 중국군은 19일 소셜미디어에 게재한 남중국 함대 관련 영상에 군인이 “명령만 내려지면 전장으로 달려갈 것”이라고 외치는 장면을 담았다. 사실상 일본을 겨냥한 메시지란 분석이 나온다. 한편 중일 갈등 여파로 24일 마카오에서 열릴 예정이던 ‘한중일 문화장관회의’는 취소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중국 문화여유부가 18일 이 회의를 잠정 연기한다고 알려왔다”고 20일 밝혔다. 세 나라의 문화 교류와 협력을 증진하기 위한 이 회의는 2007년 시작돼 해마다 한중일 3국이 번갈아 개최해 왔다.도쿄=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오늘날 문화 선진국의 바탕에는 오랫동안 쌓은 우리의 기록문화가 있습니다. 고전번역은 과거의 문화를 현재에 되살리는 일입니다.”김언종 한국고전번역원장은 국가적 한문 고전번역이 본격 시작된 지 60년을 맞아 고전번역원이 13일 개최한 학술대회 ‘한국 문화와 문명의 지평’ 개회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전번역은 1965년 서울에서 학계와 예술계 원로 50명이 중심이 돼 창립한 사회단체 민족문화추진회(민추)를 기점으로 본다. 민추는 일제강점기 단절의 위험을 겪은 민족의 문화를 계승하고, 새로운 문화 창조의 바탕을 만들기 위해서 설립됐다. 42년 동안 한국 고전의 현대화를 표방하며 국역 및 편찬, 전산화, 국역자 양성 등 사업을 벌였고 2007년 교육부 산하에 학술연구기관 고전번역원이 출범해 이를 이어가고 있다.이날 학술대회에서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뉴노멀 시대, 고전번역 사업의 역할’을 발표하고 “지난 60년은 번역 대상을 확대하고 정확성을 높이는 것이 가장 큰 미덕이었지만 앞으로는 한국인의 언어 감각과 콘텐츠 유통 방식이 완전히 변했다는 걸 고려해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상 언어에선 한문의 사용 빈도가 대폭 줄었지만 고전번역 결과물은 여전히 직역투와 만연체, 난해한 전문용어 사용 등 재래의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장 교수는 “현재의 언어 환경에서 고전번역 사업 결과물의 언어는 ‘외계어’에 가깝다”며 “(앞으로도) ‘학술번역’이 주류를 이룬다면 대중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독자 저변을 넓힐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그 관건은 언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이어 “‘민족 문화’라는 명분이 예전과 같은 힘을 지니지 못하는 가운데, 고전번역은 전문성과 대중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덧붙였다.이날 학술대회에선 안병걸 안동대 명예교수의 기조 강연을 시작으로 ‘한글 고전 집대성 및 번역의 필요성과 가치’(엄태웅 이승은 고려대 교수) 등 발표가 이어졌다. 엄 교수 등은 전근대, 근대, 구비 한글 고전의 수량을 총 44만여 건으로 추산한 뒤 번역과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들은 “한글 고전의 체계적 집대성과 번역,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연구와 교육을 통해 한국 문화의 정체성을 자각하고 미래 세대에게 전승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는 디지털 및 인공지능(AI) 시대에 발맞춰 문화적 기억을 기술적 형태로 계승하는 일”이라고 했다.27일엔 ‘한국고전번역원 60년 기념식’이 서울 종로구 HW컨벤션센터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 나의 직업에서 나머지 전부보다 훨씬 더, 아주 많이 좋아하는 것은 초상화 작업이야. … 내가 한 세기 후의 사람들에게 환영처럼 보일 초상화들을 그렸으면 좋겠어. … 현대적 색채 감각을, 개성을 고양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여 그렇게 하려고 노력해.” 1890년 6월 5일 빈센트 반 고흐가 여동생에게 보낸 편지다. 오늘날엔 반 고흐의 그림 가운데 ‘별이 빛나는 밤’이나 ‘해바라기’ 등이 특히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생전 화가는 인물화에 큰 애착이 있었다. “나는 인물, 인물, 여전히 인물을 그리고 싶다네. 그 갈망을 다스릴 수가 없네.”(1888년 에밀 베르나르에게)와 같은 편지가 이를 뒷받침한다. 전시 기획자이자 프랑스 파리8대학에서 미술사를 오래 가르쳤던 저명 학자가 반 고흐가 남긴 편지 수백 통과 초상화 및 자화상 150여 점을 통해 화가의 내면과 예술 세계를 조명한 책이다. 반 고흐가 그린 인물은 소수를 제외하면 거의 제3신분(성직자와 귀족이 아닌 농민과 도시민)이었다. 노인, 어부, 매춘부, 농부 등이 화가의 캔버스 앞에 섰다. 초상화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저자는 “중요한 인물이었던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자리를 내어주는 것을 빈센트는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다”고 했다. 모델료는 오랫동안 반 고흐의 걱정거리였다. 드물지만 화가의 어려운 형편을 모델이 알아차릴 때도 있었다. 1882년 편지에 따르면 어느 날은 ‘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모델이 찾아왔다. 포즈를 취하러 온 게 아니라, 먹을 것은 있는지 보러 왔던 것이었다. 강낭콩과 감자를 갖고. 반 고흐는 “인생에는 그래도 애쓸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있구나”라고 썼다. 모델을 구하기 어려웠던 반 고흐는 결국 자신을 그렸고, 그렇게 걸작으로 손꼽히는 그의 자화상들이 탄생했다. 저자는 에턴과 헤이그를 시작으로 뉘넌, 안트베르펜, 파리, 아를, 생레미드프로방스를 거쳐 종착지 오베르쉬르우아즈까지 화가의 행적을 따라가며 그의 초상화를 좇는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초상화엔 “화가의 영혼 깊은 데서 우러난 독자적 생명력”이 있다던 화가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최근 서울 종묘(宗廟) 맞은편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종묘가 세계유산지구로 지정된다. 이에 따라 국가유산청은 종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재개발 사업에 대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유산청은 13일 “문화유산위원회 산하 세계유산 분과에서 ‘종묘 세계유산지구(19만4000여 m²) 신규 지정 심의’ 안건을 논의해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세계유산법)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장은 필요한 경우 세계유산지구를 지정해 관리할 수 있다. 유산청은 “국내법인 세계유산법에 따라 종묘가 세계유산지구로 지정 고시되면 세계유산영향평가의 대상이 된다”며 “유산청장은 종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세계유산지구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구역 주변에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세계유산 완충구역’도 설정할 수 있다. 이날 심의에서 완충구역은 별도 지정되지 않았으나, 추후 논의를 거쳐 추가 지정할 수 있다. 유산청은 “다음 달까지 종묘 세계유산지구 지정 관련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며 “서울시에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강력하게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올 4월 서울시에 전체 재정비 계획에 대한 유산영향평가를 받으라고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이를 거부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최근 서울 종묘(宗廟) 맞은 편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종묘가 세계유산지구로 지정된다. 이에 따라 국가유산청은 종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재개발 사업에 대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요청할 수 있게 됐다.유산청은 13일 “문화유산위원회 산하 세계유산 분과에서 ‘종묘 세계유산지구(19만4000여 ㎡) 신규 지정 심의’ 안건을 논의해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세계유산법)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장은 필요한 경우 세계유산지구를 지정해 관리할 수 있다.유산청은 “국내법인 세계유산법에 따라 종묘가 세계유산지구로 지정 고시되면 세계유산영향평가의 대상이 된다”며 “유산청장은 종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업에 대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요청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게다가 세계유산지구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세계유산 구역 주변에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세계유산 완충구역’도 설정할 수 있다. 이날 심의에서 완충구역은 별도 지정되지 않았으나, 추후 논의를 거쳐 추가 지정할 수 있다. 유산청은 “다음 달까지 종묘 세계유산지구 지정 관련 행정 정차를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유네스코는 올 4월 서울시에 전체 계획에 대한 유산영향평가를 받으라고 요청했으나, 서울시는 이를 거부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러일전쟁’이라고 하면 아마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이끄는 일본 함대가 쓰시마 해전(동해 해전)에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대파한 걸 먼저 떠올리는 이가 대부분일 것이다. 1904년 발발해 이듬해까지 이어진 러일전쟁은 대한제국의 운명을 바꾼 전쟁이었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세계가 주목한 사건이었음에도 다소 단편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학술 연구 측면에서도 기존엔 주로 지배정책사나 수탈사, 항일민족운동사 측면에서만 다뤄진 것이 많았다고 한다. 이 책은 러일전쟁의 외교, 군사, 경제적 측면을 한국의 입장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하려고 시도한 연구서다. 러시아 모스크바국립대 역사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자들(이항준 서울여대 사학과 교수,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이 러시아와 일본, 대한제국의 외교문서와 군사기록을 종합하며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연구, 서술한 것이 특징이다. 러일전쟁 당시 전투의 전개 과정도 담았지만 특히 전쟁이 일어난 배경과 전쟁의 영향을 종합적으로 서술하는 데 대부분의 분량을 할애했다. “러시아 정부는 압록강을 일본과의 군사 경계 지역으로 설정하려는 의도에서 압록강삼림회사를 민간 사업으로 추진했다. 그런데 일본은 압록강삼림회사에 대해서 한국을 지배하려는 러시아의 의도라고 판단했다.…압록강을 넘어 간도까지 대륙 진출을 계획했기 때문에 압록강 지역을 양보할 수 없었다.”(에필로그에서) 책은 러일전쟁 직전의 외교적 협상, 대한제국의 이권과 조차지를 둘러싼 러-일의 대립, 러시아와 일본의 군부와 해군부의 전략, 러일전쟁을 바라보는 양국의 시각, 포츠머스 조약과 일본의 한국 강점, 을사늑약과 헤이그회의 전후 고종의 대응 등의 역사를 차근차근 추적한다. 저자들은 “일본의 대륙 진출을 계기로 교섭 국가가 바뀐 간도 문제, 일본에 강제 편입된 독도, 일본의 대한제국 강점, 사할린 할양 문제 등 오늘날 동북아 역사 문제의 대부분이 러일전쟁에서 기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황석영 작가가 7일 문화예술 분야 정부포상의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은희경 작가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날 문화예술발전 유공 시상식을 열고 문화훈장 17명 등 총 33명을 포상했다. 황 작가는 ‘한국문학의 흐름을 이끌며 사회적 치유와 성찰에 기여하고,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려 위상을 높인 공로’를 인정받았다. 은관문화훈장은 한국문학 발전과 한불 문화교류에 기여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와 한국 연극의 독자적 미학을 정립한 한태숙 연극연출가, 독창적 양식을 구축한 유희영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선유도공원’ 등을 설계한 조성룡 건축사사무소 대표 등 4명에게 돌아갔다. 보관문화훈장은 현대문학의 역사적 체계화와 한국문학 세계화에 기여한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등 5명이 받았다. 수훈자는 나인용 대한민국예술원 회원과 양성원 연세대 관현학과 교수, 이강소 작가, 정영선 조경설계서안 대표 등이다. 옥관문화훈장은 김형배 만화가 등 4명이, 화관문화훈장은 최신규 초이크리에이티브랩 대표 등 3명이 받았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은 은 작가와 최우정 서울대 작곡과 교수 등 5명에게 수여됐다.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은 토니상 수상작 ‘어쩌면 해피엔딩’의 박천휴 뮤지컬 작가와 성해나 소설가 등 8명에게 돌아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문화체육관광부는 7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2025년 문화예술발전 유공 시상식’을 열고 △‘문화훈장’ 수훈자 17명 △‘대한민국 문화예술상(대통령 표창)’ 수상자 5명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체부 장관 표창)’ 수상자 8명 △‘예술가의 장한 어버이상(문체부 장관 감사패)’ 수상자 3명 등 총 33명을 포상한다.금관 문화훈장은 황석영 작가가 받는다. 문체부는 “황 작가는 반세기 이상 한국문학의 흐름을 이끌며 깊이 있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사회적 치유와 성찰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황 작가는 ‘장길산’ ‘바리데기’ ‘삼포 가는 길’ 등의 작품들을 통해 민중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현장 체험과 심층 취재를 토대로 한 사실주의적 접근은 한국문학의 사회적 역할을 환기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2024년엔 ‘철도원 삼대(영어판 제목 ‘Mater 2-10’)’가 영어권에 소개되며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고, ‘낯익은 세상’ 등 22개 작품은 22개 언어로 번역되어 65종으로 출간되는 등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린 1세대 작가로서 한국문학의 위상을 높였다.은관 문화훈장은 김화영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등 4명이 받는다. 김 교수는 50년간 프랑스 대표적 문학작품 ‘알베르 카뮈 전집’, 장 그르니에 작품 등을 번역해 한국문학 발전과 한불 문화교류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이밖에도 50여 년간 ‘첼로’, ‘덕혜옹주’, ‘오이디푸스’ 등 활발한 창작 활동을 펼치며 한국 연극의 독자적 미학을 정립하고 연극예술 발전에 기여한 한태숙 연극연출가, 평생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색면추상’이라는 독창적인 양식을 구축하고 한국미술 발전에 기여한 유희영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40여 년간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선유도공원’, ‘이응노 생가기념관’ 등을 설계해 우수한 건축 유산을 창출하고 한국 건축문화 발전에 기여한 조성룡 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은관 문화훈장을 받는다.보관 문화훈장은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 등 5명이 받는다. 권 교수는 50여 년간 ‘한국현대문학비평사’ ‘한국현대문학사 1, 2’ 등 다수 작품을 출간해 한국 현대문학의 역사적 체계화와 한국문학 세계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또 50여 년간 합창곡, 교향곡, 협주곡, 기악곡, 오페라 등 150여 곡의 작품을 작곡하며 한국음악 발전에 기여한 나인용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파리 샹젤리제극장과 뉴욕 링컨센터 등 해외 유수의 무대에서 첼로 연주자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한국 음악의 위상을 높인 양성원 연세대 관현학과 교수, 1970년대 현대미술 그룹 ‘신체제’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 활동을 통해 실험적인 현대미술 운동을 주도하며 전국적인 활동 기반을 마련하고 파리비엔날레와 시드니비엔날레 전시를 통해 한국미술 발전과 세계화에 기여한 이강소 작가, 한국의 1세대 조경가로서 ‘광화문광장’ ‘경춘선 숲길’ ‘선유도공원’ 설계 등으로 조경디자인 분야 발전에 기여한 정영선 조경설계서안(주) 대표 등이 보관 문화훈장을 받는다.옥관 문화훈장은 김형배 만화가와 최경만 서울특별시 무형유산 삼현육각 보유자, 김아라 연극연출가, 신상호 도예가 등 4명이 받는다. 화관 문화훈장은 최신규 초이크리에이티브랩 대표, 윤석구 (사)한국동요사랑협회 고문, 허영일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등 3명이 받는다.‘대한민국 문화예술상’은 재단법인 종이문화재단(문화일반 부문), 은희경 소설가(문학), 최우정 서울대 작곡과 교수(음악), 임도완 극단 사다리움직임연구소 소장(연극), 고(故) 박영숙 사진작가(미술) 등에게 수여한다.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자는 대통령 표창과 함께 상금 각 1000만 원을 받는다.‘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은 8개 부문에서 수상자가 각 1명씩 선정됐다. 성해나 소설가(문학 부문), 이하느리 작곡가(음악), 김준수 국립창극단 단원(국악), 토니상 수상작 ‘어쩌면 해피엔딩’ 창작뮤지컬 작가 박천휴(연극), 최호종 무용가(무용), 양정욱 작가(미술), 유의정 도예가(공예), 김영배 드로잉윅스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 등이다. 이들에게는 문체부 장관 표창과 함께 상금 각 500만 원을 수여한다.자녀를 훌륭한 예술가로 키운 ‘장한 어버이상’은 드럼 연주자 이태양 씨의 어머니 김혜영 씨 등이 문체부 장관 명의의 감사패와 함께 400만 원 상당의 부상을 받는다.김영수 문체부 차관은 “탁월한 독창성과 빛나는 예술 감성으로 한국 문화예술을 세계에 알리며 대한민국 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수상자 33명에게 진심을 담아 축하와 존경의 인사를 드린다”라며 “문체부는 한국문화의 근간인 문학과 음악, 공연, 미술 등 문화예술에 집중 투자하고, 예술인들이 안심하고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창작 환경 조성, 미래세대인 어린이·청소년·청년 예술인 성장 지원 등 한국문화예술의 지속 발전을 제도와 정책적으로 뒷받침해 ‘문화강국 대한민국’이라는 꿈을 실현하겠다”라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인간은 한 위기에서 다음 위기로 비틀거리며 나아갑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우리를 압도하는 상호작용의 그물에 걸려 있는 존재라는 점을 반복해서 배웁니다. 그게 우리를 좀 더 겸손하게 만듭니다.”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환경사(環境史) 학자로 꼽히는 프랑크 위쾨터 독일 보훔 루르대 교수(55)는 3일 서울 강남구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이렇게 강조했다. 환경사는 “인간의 논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연의 순환과 고유의 논리를 가진 동식물과 엮여 있다는 통찰”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 위쾨터 교수는 환경사의 초석을 놓은 요아힘 라트카우 독일 빌레펠트대 교수의 제자다. ‘The Vortex(소용돌이)’ ‘Exploring Apocalyptica(종말론의 세계 탐험하기)’ 등의 저서를 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날 그는 ‘도곡 만남과 문화의 집’에서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한국생태환경사학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제정한 ‘에코히스토리아(ecohistoria) 상’을 받았다. 위쾨터 교수는 단일 작물 재배(monoculture)가 토양에 미친 영향과 단작(單作) 체제가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유지돼 온 역사를 주로 연구해왔다. 그는 “슈퍼마켓의 값싸고 안전한 식품 배후에는 거대한 기술과학적 체계가 존재하며, 이는 매우 불안정한 환경적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며 “생태적 관점에서 현대 농업은 ‘끊이지 않는 위기(perennial crisis) 모드’로 작동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앞서 한 인터뷰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종말론적 수사(apocalyptic trope)가 소통을 방해하고 논쟁을 억누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세상이 멸망한다’는 식의 시나리오는 사람들이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뜻이다. 위쾨터 교수는 이에 대해 “가속적으로 커지는 단일 위기를 가리키는 대재앙(apocalypse)은 잘못된 비유”라며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은 ‘수천 번의 작은 상처’다. 그런 위기가 축적돼 사회에 점점 더 큰 부담을 지운다”고 강조했다. “환경사는 해충이 질병을 옮기거나 곡식을 먹어치우는 것과 같은 작은 과정을 존중하며 역사에 담아내는 일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깨물지(bite)에 대해 너무 자신하지 말라는 거죠.” 전근대 사회에서도 인간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았을까. 그는 “근대의 새로운 점은, 특히 풍요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멀리 떨어진 곳에 두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근대 사회는 인간이 토지와 숲에 미친 영향이 바로 눈앞에 보였고, 그걸 부인하거나 무시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문제는 지역적이었고, 생계에 당장 영향을 줬기 때문. 하지만 현대 사회는 시간과 공간, 사회적으로 환경 문제를 ‘외부화’한다. 위쾨터 교수는 사람과 환경을 휩쓴 수많은 근대사의 흐름을 ‘거대한 소용돌이’에 비유했다. “우리는 환경적 곤경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게 됐지만,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적어지고 있어요. 우리가 소용돌이의 중심 가까이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죠. 거대한 소용돌이 바깥쪽에선 그다지 걱정이 안 됩니다. 하지만 중심으로 가면 (남은) ‘시간’이 결정적입니다. 항해가 급박해지죠.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곳에 와 있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서울 종묘에 들어서서 고전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정전(正殿) 앞에 서면, 그 숭엄한 분위기에 방문객은 숨이 잠깐 멎는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건물 자체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보는 이를 압도하는 이 공간의 힘은 ‘단절’에서 나온다. 정전은 담장 뒤 노거수들에 둘러싸여 현대 도심의 번잡함으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분리된 것처럼 느껴진다. 새들의 지저귐 속에서, 이곳에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가 봉안돼 있다는 것을 되새기는 순간 관람객은 자연스레 영원에 대한 사색에 빠져들게 된다. 불멸을 상상하게 하는 이만한 공간이 서울에 또 있을까. 다만 월대 위에 올라서면 ‘시간여행’의 환상은 아슬아슬해진다. 청계천 남쪽 ‘세운3구역’을 재개발해 세운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 1·2단지’(지상 27층)와 을지로 남쪽 ‘세운6구역’에 들어선 을지트윈타워(높이 약 90m)가 우듬지 위로 머리를 내미는 탓이다. 그래도 아직은 참아줄 수 있다. 현대 서울의 건축물이란, 스리슬쩍 종묘를 엿보며 질투하고 싶지 않겠는가. 문제는 종로와 청계천 사이, 이들 건물보다 종묘에 220m 이상 가까운 ‘세운4 재개발구역’이다. 코앞에 이와 비슷하거나 더 높은 고층건물이 들어선다면 종묘는 이에 짓눌린 듯한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한 건축문화유산 전문가는 “그럴 경우 종묘의 경관은 고층건물에 압도당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서울시가 최근 ‘세운4구역’ 재개발지구의 높이 규제를 완화한 것이 걱정되는 건 이 때문이다. 시는 지난달 30일 새 정비계획을 고시하고 종묘 쪽은 55m에서 98.7m로, 청계천 쪽은 71.9m에서 141.9m로 건축물의 고도 상한을 높였다. 경복궁 안에서도 고층 빌딩은 보인다. 하지만 종교적 장엄함이 중시돼야 하는 종묘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일각에선 일본이 도쿄역 주변의 높이 제한을 완화해 업무지구로 탈바꿈시킨 것을 예로 드는데, 근대 건축물인 역사(驛舍)와 종묘는 비교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정말 ‘종묘에 그늘을 드리우지 않으면’ 충분한 것일까. 오늘날의 번영은 중요하지만 서울시의 행보는 언뜻 잘 이해가 되진 않는다. 높이 규제를 완화하지 않으면 ‘사업성’이 낮아 걸림돌이 된다는데, 규제 완화 전 국가유산청과 협의해 마련된 정비계획상 용적률이 660%다. 원래 단층∼저층 건물이 차지했던 도심 땅을 이 정도 용적률로 재개발하는데 사업성이 안 나온다니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더구나 세운지구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는 구조여서 종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구역도 종로에 붙은 2구역과 4구역뿐이다. 녹지 확보를 위해 고층 개발하자는 건 이해가 가지만 굳이 종묘 코앞까지 그래야 할까. 대법원이 6일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에서의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고 판결한 것은 개정 권한을 따졌을 뿐 중요 문화유산의 보존과 관련해 가치 판단을 한 것은 아니다. 1995년 종묘의 세계유산 등재 당시 유네스코는 ‘경관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고층건물 인허가는 없음을 보장할 것’을 명시한 바 있다. 현대적 건물이 종묘를 발밑으로 내려다보는 구도가 우리가 정신문화를 대하는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박제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조종엽 문화부 차장 jjj@donga.com}

“인간은 한 위기에서 다음 위기로 비틀거리며 나아갑니다. 우리는 우리가 주인이 아니라, 우리를 압도하는 상호작용의 그물에 걸려 있는 존재라는 점을 반복해서 배웁니다. 그게 우리를 좀 더 겸손하게 만듭니다.”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환경사(環境史) 학자로 꼽히는 프랑크 외쾨터 독일 보훔 루르대 교수(55)는 3일 서울 강남구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이렇게 강조했다. 환경사는 “인간의 논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은 자연의 순환과 고유의 논리를 가진 동식물과 엮여 있다는 통찰”에서 시작한다는 것이다.외쾨터 교수는 환경사의 초석을 놓은 요아힘 라트카우 독일 빌레펠트대 교수의 제자다. ‘The Vortex(소용돌이)’ ‘Exploring Apocalyptica(종말론의 세계 탐험하기)’ 등의 저서를 내며 큰 주목을 받았다. 이날 그는 ‘도곡 만남과 문화의 집’에서 한국생태환경사연구소·한국생태환경사학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제정한 ‘에코히스토리아(ecohistoria) 상’을 받았다.외쾨터 교수는 단일 작물 재배(monoculture)가 토양에 미친 영향과 단작(單作) 체제가 불안정성에도 불구하고 유지돼 온 역사를 주로 연구해왔다. 그는 “슈퍼마켓의 값싸고 안전한 식품 배후에는 거대한 기술과학적 체계가 존재하며, 이는 매우 불안정한 환경적 기반 위에 세워져 있다”며 “생태적 관점에서 현대 농업은 ‘끊이지 않는 위기(perennial crisis) 모드’로 작동한다”고 지적했다.그는 앞서 한 인터뷰에서 “(환경 문제에 대한) 종말론적 수사(apocalyptic trope)가 소통을 방해하고 논쟁을 억누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세상이 멸망한다’는 식의 시나리오는 사람들이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뜻이다. 외쾨터 교수는 이에 대해 “가속적으로 커지는 단일 위기를 가리키는 대재앙(apocalypse)은 잘못된 비유”라며 “우리가 맞닥뜨리는 것은 ‘수천 번의 작은 상처’다. 그런 위기가 축적돼 사회에 점점 더 큰 부담을 지운다”고 강조했다.“환경사는 해충이 질병을 옮기거나 곡식을 먹어치우는 것과 같은 작은 과정을 존중하며 역사에 담아내는 일입니다. 무엇이 우리를 깨물지(bite)에 대해 너무 자신하지 말라는 거죠.”전근대 사회에서도 인간은 환경을 파괴하지 않았을까. 그는 “근대의 새로운 점은, 특히 풍요한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멀리 떨어진 곳에 두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근대 사회는 인간이 토지와 숲에 미친 영향이 바로 눈앞에 보였고, 그걸 부인하거나 무시할 방법이 거의 없었다. 문제는 지역적이었고, 생계에 당장 영향을 줬기 때문. 하지만 현대 사회는 시간과 공간, 사회적으로 환경 문제를 ‘외부화’한다. 그는 “현대는 에너지 수요가 과거와 비할 수 없이 클 뿐 아니라, 삶과 문제 사이의 거리를 두는 놀라운 기술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외쾨터 교수는 사람과 환경을 휩쓴 수많은 근대사의 흐름을 ‘거대한 소용돌이’에 비유했다.“우리는 환경적 곤경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게 됐지만,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더 적어지고 있어요. 우리가 소용돌이의 중심 가까이로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죠. 거대한 소용돌이 바깥쪽에선 그다지 걱정이 안 됩니다. 하지만 중심으로 가면 (남은) ‘시간’이 결정적입니다. 항해가 급박해지죠.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곳에 와 있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서울 종로구에 있는 푸르메센터 어린이재활의원(현 푸르메어린이발달재활센터) 로비에는 미국 유명 작가 피터 오페임의 ‘비행하는 강아지와 아기 조종사’가 걸려 있다. 늘 꼬마들로 붐비는 이 그림 옆에는 작은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어린이를 사랑한 이철재 키다리 아저씨가 기증했습니다.” 이철재 전 쿼드디멘션스 대표는 10대 시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당한 교통사고로 가슴 아래가 마비됐지만, 버클리대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정보기술(IT) 회사를 차렸다. “미국 사회는 저에게 4000만 원이 넘는 전동 휠체어와 각종 보장구를 지원하고, 원하는 공부를 할 기회를 줬습니다. 그래서인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우리 어린이들에게 늘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전 대표는 회사를 매각하면서 받은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푸르메재단에 거액을 기부했다. 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을 지원하는 비영리 공익법인 푸르메재단의 창립 20주년을 맞아 백경학 재단 상임대표가 재단에 힘을 보탠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부제 ‘희망을 심은 20인’. 글을 청탁하며 2005년 처음 맺은 고 박완서 작가와 재단의 인연은 고인이 2011년 별세할 때까지 계속됐다. 매달 재단 통장에는 ‘박완서’라는 이름이 꼬박꼬박 새겨졌고, 작가는 신간을 냈을 때나 연말에는 적지 않은 금액을 따로 보냈다. 백 대표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살아온 어린 시절의 경험과 갑자기 막내아들을 잃은 어머니로서의 아픔을, 장애어린이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하셨다고 생각한다”고 썼다. 이 전 대표의 기부 기사를 읽은 고 김정주 넥슨 창업주가 재단을 찾아오고, 국내 최초로 신체장애와 발달장애를 아우르는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서울 마포구) 건립에 200억 원을 기부한 일화도 소개된다. 이 밖에도 김성수 대한성공회 주교, 이지선 이화여대 교수, 정호승 시인, 가수 션과 배우 정혜영 부부, 이해인 수녀, 고 권오록 할아버지, 조무제 전 대법관 등과의 인연이 펼쳐진다. 그렇게 시민 1만여 명과 기업 약 500곳이 이 재단에 힘을 보탰고, 재단은 창립 뒤 1124억 원을 모금해 815만 명의 장애인과 그 가족을 지원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맞아 한국을 방문하는 세계인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결제와 언어, 교통 등의 장벽을 낮추는 다양한 방안이 마련됐다. 한국관광공사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외국인들의 편의를 위해 관광 인프라를 정비했다”고 29일 밝혔다. 관광공사는 먼저 QR코드 결제를 선호하는 중화권과 동남아에서 온 방문객을 위해 7월부터 경주를 포함한 경상권의 식당과 상점 등 2만여 곳에 모바일 간편결제 표준 QR을 배포했다. 기존에도 해외 페이 앱을 통한 QR 결제가 가능했지만 점주와 외국인 방문객 모두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표준 QR은 코드 아래쪽에 결제가 가능한 앱 20여 개를 표시했고, 위쪽엔 위챗페이와 알리페이, 유니온페이 등 결제 회사와의 공동 할인 행사를 소개했다. 미주에서 온 방문객은 근거리무선통신(NFC) 결제가 익숙한 편. 이들을 위해선 더페이와 네이버페이 등의 관련 결제 인프라 보급을 지원하는 한편, NFC 결제가 가능한 경상권 5000여 곳의 위치를 한국관광통합플랫폼 ‘VISITKOREA’(visitkorea.or.kr)를 통해 알렸다. 선불카드를 선호하는 일본, 홍콩 등의 외래객을 위해선 국내 선불카드사와 협업해 경상 지역에서 결제한 외국인에게 캐시백(1만 원 이상 결제 시 2000원)을 지급한다. 관광공사는 또 언어 장벽을 낮추기 위해 다국어 관광 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경주 지역 우수 식당과 카페, 기념품점 등 124곳의 정보를 경주컨벤션뷰로 홈페이지를 통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3개 언어로 제공한다. 또 ‘VISITKOREA’ 내에 APEC 정상회의 특집 페이지를 개설하고, 관련 QR코드를 웰컴카드에 탑재해 참가자들이 관광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관광공사는 외국인 관광객의 이동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수도권과 경북 지역을 오가는 고속버스와 렌터카 등에 최대 30%까지 할인을 제공한다. 경북 주요 관광지와 쇼핑점 등에서 혜택이 있는 외국인 전용 ‘경북 투어패스’ 상품을 글로벌 여행 종합 플랫폼을 통해 출시했다. 숙박시설과 관광지 등에 대한 점검도 마쳤다. 7월과 9월엔 경주 지역 민박업 운영자와 예비 창업자 250여 명을 대상으로 안전, 위생, 마케팅 교육 및 세부 컨설팅을 하는 한편 관련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또 국민이 참여한 ‘경주 특별 누리살핌단’을 꾸리고 관광객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 불만 요소 등을 점검했다. 살핌단은 APEC 정상회의 기간에도 관광 서비스 점검에 나선다. 이 밖에도 공사는 각국 매체와 여행업계 관계자를 초청해 경주를 중심으로 한 관광 상품을 소개하는 등 지역 고유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서영충 관광공사 사장 직무대행은 “APEC 정상회의는 경주와 대한민국의 관광 매력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라며 “참가자들에게 최고의 K관광 경험을 선사하고, 지역 관광 활성화와 지속적인 방한 증가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맞아 한국을 방문하는 세계인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결제와 언어, 교통 등의 장벽을 낮추는 다양한 방안이 마련됐다. 한국관광공사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외국인들의 편의를 위해서 관광 인프라를 정비했다”고 29일 밝혔다.관광공사는 먼저 QR코드 결제를 선호하는 중화권과 동남아 출신의 방문객을 위해 7월부터 경주를 포함한 경상권의 식당과 상점 등 2만여 곳에 모바일 간편결제 표준 QR을 배포했다. 기존에도 해외 결제 회사를 통한 QR결제가 가능했지만, 점주와 외국인 방문객 모두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표준 QR은 코드 아래 쪽에 결제가 가능한 앱 20여 개를 표시했고, 위쪽엔 위챗페이와 알리페이, 유니온페이 등 결제 회사와의 공동 할인 행사를 소개했다.미주에서 온 방문객은 근거리 무선통신(NFC) 결제가 익숙한 편. 이들을 위해선 더페이와 네이버페이 등의 관련 결제 인프라 보급을 지원하는 한편, NFC결제가 가능한 경상권 5000여 곳의 위치를 한국관광통합플랫폼 ‘VISITKOREA’(visitkorea.or.kr)를 통해 알렸다. 선불카드를 선호하는 일본, 홍콩 출신의 방문객을 위해선 국내 선불카드사와 협업해 경상 지역에서 결제한 외국인에게 캐시백(1만 원 이상 결제 시 2000원)을 지급하기로 했다.관광공사는 또 언어 장벽을 낮추기 위해 다국어 관광정보도 제공하고 있다. 경주 지역 우수 식당과 카페, 기념품점 등 124 곳의 정보를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 3개 언어로 제공한다. 또 ‘VISITKOREA’ 내에 APEC 정상회의 특집 페이지를 개설하고, 관련 QR코드를 웰컴카드에 탑재해 참가자들이 관광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관광공사는 외국인 관광객의 이동을 지원하는 방안도 마련했다. 수도권과 경북 지역을 오가는 고속버스와 렌터카 등에 최대 30%까지 할인을 제공한다. 경북 주요 관광지와 쇼핑점 등에서 혜택이 있는 외국인 전용 ‘경북 투어패스’ 상품을 글로벌 여행 종합 플랫폼을 통해 출시했다.숙박시설과 관광지 등에 대한 점검도 마쳤다. 7월과 9월엔 경주 지역 민박업 운영자와 예비창업자 250여 명을 대상으로 안전, 위생, 마케팅 교육 및 세부 컨설팅을 하는 한편 관련 가이드라인을 배포했다. 또 국민이 참여한 ‘경주 특별 누리살핌단’을 꾸리고 관광객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 불만 요소 등을 점검했다. 살핌단은 APEC 정상회의 기간 중에도 관광서비스 점검에 나선다.이밖에도 공사는 각국 매체와 여행업계 관계자를 초청해 경주를 중심으로 한 관광 상품을 소개하는 등 지역 고유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서영충 관광공사 사장직무대행은 “APEC 정상회의는 경주와 대한민국의 관광 매력을 세계에 알릴 절호의 기회”라며 “참가자들에게 최고의 K관광 경험을 선사하고, 지역 관광 활성화와 지속적인 방한 증가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45.10.30. 미 군정청, 신문발행 ‘허가제’를 없애고 ‘등기제’ 실시. … 한국 언론 역사상 처음으로 신문발행의 등록제를 명문화했다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총독부의 발행 ‘허가’를 받아야 신문 등 정기간행물을 발행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80년 전 한국 언론 역사의 주요 변곡점이다. 이 분야 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86)가 최근 발간한 ‘한국언론 연대기’(민속원·사진)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한국언론 연대기’는 조선의 ‘필사신문 조보(朝報)’로 시작해 지난해 6월 방송통신위원회(현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소송비용 증가 소식까지, 언론 관련 사건을 날짜별로 세세하게 정리한 언론 역사의 백과사전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필생의 연구를 728쪽에 이르는 분량으로 집약했다. 정 교수는 “항일과 독립, 민주화, 산업화의 과정에서 민중과 고락을 함께했던 언론과 언론인이 걸어온 발자취를 기술하고자 했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해마다 일본 야스쿠니신사(사진)를 참배해 온 강경 우파 성향의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신임 일본 총리는 이달 4일 자민당 총재 선출 뒤 이 신사를 두고 “전몰자 위령을 위한 중심적인 시설”이라고 했다. 야스쿠니신사가 현충 시설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한국과 중국은 A급 전범이 합사된 이 신사를 정치인이 참배하는 건 침략전쟁 미화라고 비판해왔다. 야스쿠니신사엔 실제 누가 합사돼 있을까. 문제는 A급 전범뿐일까.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교육홍보실장은 25일 역사학대회(‘국가는 어떤 죽음을 기리는가’ 분과)에서 발표한 ‘야스쿠니신사의 합사 대상 배제와 포섭의 논리’에서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이 일으킨 무모한 침략전쟁으로 사망한 국민이 마치 국가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숨을 바친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남 실장에 따르면 야스쿠니신사는 원래 보신(戊辰) 전쟁(1868∼1869년)에서 사망한 정부군 장병 등을 위령하기 위해 세워졌다. 하지만 일본의 침략전쟁이 확대되면서 그 대상이 급격하게 늘어나 합사자 수는 246만여 명으로 증가했다.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사망자가 약 95%를 차지한다. 이 신사는 창건부터 1894년 청일전쟁 전까진 내란에서 사망한 메이지 정부 측 군인과 ‘존왕양이’ 지사를 합사했는데, 초기엔 전투에서 숨진 전사자로 대상이 제한됐다. 하지만 청일전쟁 이후엔 침략전쟁에서 사망한 군인, 군속과 함께 민간인 가운데 ‘전쟁 협력자’도 포함시켰다. 특히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한 주민들도 ‘전쟁 협력자’로 합사한 점이 주목된다. 태평양전쟁 당시 오키나와에서 스파이 혐의를 쓰고 일본군에게 살해된 주민, 전쟁에 휘말려 목숨을 잃은 돌이 안 된 아기도 ‘군에 협력했다’라고 인정돼 합사됐다. A급 전범이 갖는 상징성에 가려져 있지만 B, C급 전범 합사도 문제다. 일본군 위안소 사쿠라클럽 경영자였던 아오치 와시오(青地鷲雄)는 네덜란드군 바타비아 군사법정에서 금고 10년 형을 받고 복역 중 사망했는데, ‘법무 사망자’라는 명목으로 1967년 합사됐다. 야스쿠니신사가 범죄 사실은 묻지 않고 이들 모두를 ‘국가를 위한 죽음’으로 포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신사엔 조선인도 2만1000여 명이 합사돼 있다. 1945년 8월 강제 동원 조선인 귀국선 우키시마마루 침몰 당시, 사고를 당한 한국인 가운데 468명이 해군 군속으로 처리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되기도 했다. 사망 여부를 확인하지 않아 생존자 60명도 합사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남 실장은 “야스쿠니신사는 한국인도 국가(일본)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민의 일부였다고 평가한다”며 “일본 정치 지도자의 참배는 식민 지배를 사죄하고 반성한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2030년 이후엔 기업이 인재를 채용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노동시장에 지금은 1990년대 후반 출생자 65만 명가량이 진입하지만, 곧 출생자가 40만 명대인 2002년생들이 진입하게 된다. 저출생 때문에 ‘사람이 기업을 선택하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이런 시대엔 기업이 인재를 영입하고 지키기 위해 연봉만큼 중요한 게 ‘일할 맛이 나는 직장’이라고 강조하는 책이다. 서울대 경영대 교수인 저자는 직장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업무 환경과 인간관계, 성장 기회 등 비(非)금전적인 보상을 ‘정서적 연봉’이라고 부른다. 이런 것들이 만족스러울 때 직원은 더 오랫동안 회사에 머무르고 열정적으로 일할 가능성이 크다. 창의성, 전문성이 필요한 직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정서적 연봉이 높을 땐 직원의 동기와 몰입도도 향상된다. “심리적 청구권, 다시 말해 직원의 정서적 연봉을 높이면 이직률을 낮출 수 있을 뿐 아니라 미래 기대 화폐 연봉의 감소로 인한 이직률 상승 또한 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중견,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고민인 인건비 지급 여력의 한계 속에서 높아만 가는 이직률을 낮추는 확실한 방법입니다.”(4장 ‘직장인은 왜 이직을 결심할까?’에서)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의 리뷰 데이터를 사용하면 각 회사의 정서적 연봉을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한다. 블라인드는 ‘직장인 행복도 지수’를 측정해 발표하는데, 의외로 2023년 이 지수 베스트 회사엔 4대 그룹 계열사나 대기업은 별로 없었다. 그보단 공공기관이나 공기업, 글로벌 기업의 한국 자회사, 정보기술(IT) 및 게임 회사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기업의 규모나 연봉 수준과는 다른 척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지수가 높은 기업은 장부가치 대비 시장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았으며, 12개월 누적 주식 수익률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의 행복을 위한 공간 마련, 성장의 기회를 아끼지 않는 문화, 자율성과 책임을 주는 환경, 일과 삶의 균형을 존중하는 태도…. 저자는 “직원이 회사와 일을 좋아하면 회사가 설사 재무적인 곤경에 처해도 ‘탈출은 지능순’ 현상은 빈번히 발생하지 않는다”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