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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글을 쓴다. 한순간 작가가 된다. 이 두 문장 사이에 신인, 즉 새로운 사람이 되는 비밀이 숨어 있다.”(19쪽) 소설가 김연수(44)가 ‘창작의 비밀’을 담은 산문집 ‘소설가의 일’(문학동네)을 출간했다. 1993년 등단한 김연수는 2001년부터 홀수 해마다 동서문학상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을 차례로 수상해 ‘우리 시대의 작가’로 불린다. 이번 산문집에는 김 작가만의 창작론이 담겼다. 신춘문예의 계절인 요즘 예비 문인들이라면 더더욱 그의 창작론이 궁금하지 않을까. 12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난 김 작가는 “처음엔 소설가가 언제 자고 일어나는지와 같은 일상을 썼는데, 쓰다 보니 소설 쓰기에 대해 알게 된 것들, 소설 쓰기가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담게 됐다”고 했다. 김 작가는 언론사 신춘문예에 세 차례 응모했다가 모두 떨어졌다. 데뷔작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를 출간했을 때 한 평론가는 ‘작가 김연수에 대한 단명의 예감’이란 평론을 발표했다. 하지만 세간의 평에 꺾이지 않고 꾸준히 썼다. 그는 “신춘문예를 포함해 한국의 모든 등단 제도가 1등만 뽑는다. 누구나 낙선자가 먼저 됐다가 당선자가 된다. 낙선됐다고 ‘못 썼다’ ‘써도 안 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계속 쓰면 평생 낙선자일 수 없어요. 사다리를 계속 밟고 올라가야 합니다. 이 시점엔 사다리 하나가 굉장히 중요해 보이지만 사실 연연해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쓰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김 작가는 마감이 없을 때는 매일 오전 4시에 일어나 아침 먹을 때까지 2시간 정도 전날 메모해둔 것을 문장으로 만드는 작업을 한다. 소설은 오전 9시부터 점심 전까지 2시간, 그리고 오후에 2시간가량 쓴다. 많게는 6시간씩 쓰기도 한다. 마감을 앞두면 잠자거나 밥 먹는 시간 말고는 모두 소설을 쓰는 데 할애한다. 김 작가는 책에서 “재능은 원자력 발전에 쓰는 건가요”라고 반문하며 “재능 따위는 그만 떠들라”고 말한다. 24시간 내내 문장 한 가지만 생각하란 뜻이다. “처음 썼던 글이 없어지고 완전히 새로운 글이 나올 때까지 씁니다. 고쳐 쓰기가 중요해요. 등장인물이나 단어 하나씩 바꿔 보면서 단계별로 고치다 보면 굉장히 좋아집니다. 일곱 번 고치고 여덟 번째 고칠 때 기하급수적으로 좋아집니다. 한 번 더 고치면 어마어마하겠죠.” 김 작가는 직접 창작론을 가르친다면 30분 시간을 정해놓고 원고지 1장을 쓰고 5분 쉬는 방식으로 오전, 오후 3시간씩 하루 12장씩 100일 정도 진행하겠다고 했다. 한 가지 더. “흔한 인생을 살아가더라도 흔치 않은 사람이 되자. 미문을 쓰겠다면 먼저 미문의 인생을 살자”고 강조했다. “근본적으로 인간을 이해해야 해요. 소설은 특히 그렇죠. 개인적인 이해만으로도 부족하고 궁극적으로 통합된 시야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 시야에서 벗어나기 위해 큰 이야기를 계속 해야 합니다.” 슬쩍 훔쳐본 김 작가의 수첩에는 메모가 빼곡했다. 문학동네 겨울호에 발표할 예정인 단편소설을 완성하는 과정에서도 고쳐야 할 문장이나 설정이 떠오르면 수시로 수첩에 적고 고쳐 쓰기를 반복했다. 더는 힘들어서 여기가 끝이란 생각이 들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소설가의 일’이 신춘문예를 꿈꾸는 예비 작가들의 기를 꺾어 놓지 않을까 걱정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쓴 소설가 황정은(38)이 세 번째 장편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창비)를 출간했다. 황 작가는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2012년 가을호부터 2013년 여름호까지 ‘소라나나나기’란 제목으로 연재한 소설을 1년여 동안 다듬었다. 자매간인 ‘소라’와 ‘나나’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자매의 엄마 ‘애자’는 남편을 잃고 무기력하게 살며 자신과 딸들을 망가뜨렸다. 그래서 ‘소라’는 “나는 어디까지나 소라. 소라로 일생을 끝낼 작정이다. 멸종이야. 소라,라는 이름의 부족으로”라며 엄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나나’가 ‘자그자그’ 태동을 들려주는 아기를 임신하면서 자매는 비로소 ‘계속’을 꿈꾼다. “아기가 태어났는데 세상이 그렇게 끝나버리면 너무 억울하잖아. 모처럼 낳았고 모처럼 태어났는데 그냥, 세계가 끝나버린다면.” 옆집 사는 ‘나기’는 이들이 마음의 문을 여는 데 도움을 준다. 책에는 여느 소설과 달리 ‘작가의 말’이 없다. 황 작가는 “소설을 다 쓰고 나니 더 쓰고 싶은 말이 없었다”고 했다. 인터뷰도 말보다 글이 낫다며 서면으로 하자고 했다. ―소설은 어떻게 구상했나. “이 소설은 ‘야만적인 앨리스씨’처럼 끔찍한 세계를 압도적으로 경험하고 그 세계에 갇혀버린 인간에게 외(外)가 가능한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됐습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란 제목이 계속 울린다. “소라든 나나든 세계의 지속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왔지만 아기를 계기로 ‘계속’을 생각하게 되겠죠. 여태와는 다른 의미로 세계는 어떤가, 내가 어떻게 살아야 좋을까 등을 끊임없이 고민하게 될 테고. 무작정 삶을 계속하는 건 지금 세계의 형편없음이 계속될 뿐이지만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고민을 계속하며 살아보겠다는 의미일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등장인물 이름들이 인상적이다. 한글 이름 같은 소라(小蘿) 나나(娜娜) 나기(7其)를 한자 이름으로 뜻풀이까지 했고 애자 순자도 캐릭터와 잘 어울린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이름이라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굳이 이름으로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이미 유일무이한 존재들이니까요.” 황 작가는 “해가 있을 때, 책상 앞에서, 데스크톱으로 작업”하며 차기작 계획도 “계속 쓰는 것”이라고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박진규는 소설가 이름치곤 조금 고루한데….” 등단 10년 차 소설가 박진규 씨(37)는 이름이 불만이었다. 그는 2005년 ‘수상한 식모들’로 문학동네 소설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장편소설 ‘내가 없는 세월’ ‘보광동 안개소년’ ‘교양 없는 밤’을 출간하며 소설가로서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정작 자신은 스스로 소설가란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박 씨는 “필명을 만들면 소설가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독자들이 그를 이름이 비슷한 소설가 박민규, 같은 문학동네 소설상 출신 김진규와 혼동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우연히 대형 서점에 들렀다가 건강서적 매대 위에서 ‘여자는 생강이 전부다’란 책을 발견했다. 생강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이 좋아 충동적으로 필명을 ‘박생강’으로 정했다. 그는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생각의 강’, 성자(saint)와 악당(gang)의 혼성 같은 심오한 의미로 받아들여 주기도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필명 박생강으로 낸 첫 소설은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열린책들)다. 빼빼로포비아를 가진 남자친구를 둔 시나리오 작가 지망생이 심리 상담소를 찾아오며 시작된 이야기는 메타소설 형식으로 소설 속 가상소설과 현실을 넘나들며 흥미롭게 펼쳐진다. 인간 박진규와 소설가 박생강으로 두 가지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그와 닮았다. 새로 태어난 박생강은 ‘현대 사회에 수없이 쏟아지는 세속적 물신의 기호와 전통적 문학의 기호를 믹스 앤드 매치하는 소설’을 써갈 계획이다. 필명으로 데뷔하는 일은 문단에 왕왕 있지만 왕성한 활동 중에 필명으로 바꾸는 일은 그보다 드물다. 소설가 심상대(54·사진)는 2000년 소설 ‘떨림’을 펴내며 필명을 ‘마르시아스 심’으로 바꾸었다. ‘제우스의 아들 아폴론에 맞서 예술을 겨루고자 했던 신화 속 예술가처럼 외롭고 불우하지만 자신의 예술 앞에서 도도해지겠다’는 포부를 담은 필명이다. 이후 필명을 ‘선데이 마르시아스 심’으로 한 번 더 바꾸었지만 지금은 다시 심상대로 활동하고 있다. 세상은 그의 필명을 잘 불러주지 않은 탓이다. ‘마르시아스 심’으로 신문사에 칼럼을 보내면 ‘심상대’로 게재되는 식이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날 냉소적 장난질과 괴상스러운 자학에 빠진 소설가 ‘심상대’로 인식하고 있었다. 문학인들까지 내 필명에 대해 실실 웃으니 뻗댈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수직적 권위가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를 마르시아스라는 민주적 사고의 예술가가 넘어서지 못한 탓이다. 혁명의 기개가 부족한 제 탓”이라고 했다. 필명을 쓰려면 기존 인지도를 포기해야 하는 용기도 필요하다. 유명 문학상을 받기도 한 젊은 작가는 오로지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다며 ‘최순결’이란 필명으로 소설 ‘4월의 공기’(곰)를 3월 출간했다. 당시 출간을 담당한 소설가 김도언은 “그 작가가 실명으로 책을 출간할 때보다 절반 정도만 팔렸다. 필명을 쓰면 인지도를 활용 못하는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도언도 내년 여름 시집을 출간할 때는 시인 ‘황이리’란 필명으로 낼 계획이다. 그는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에서 따왔다. 내가 쓴 소설과 연결짓지 말고 시만 봐달라는 뜻에서 필명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우리 익히 아는 유명 문인 중에도 본명은 따로 있는 경우가 많다. 고은(고은태) 김사과(김방실) 김지하(김영일) 류시화(안재찬) 박노해(박기평) 신경림(신응식) 유하(김영준) 이인화(류철균) 전경린(안애금) 정이현(홍종현) 황석영(황수영) 등이다. 선배 문인과 이름이 같으면 후배가 필명을 쓰는 일은 문단의 ‘예의’라고 한다. 시인 안찬수는 안도현과, 소설가 김숨은 김소진과 이름이 같아서 바꾸었다고 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 땅의 흙이 되신 선배 작가님들과 동시대의 동료 작가들의 작품과 인생을 다시 확인하면서 자랑스러웠습니다. 이들이 있어서 내가 있을 수 있었음을 깨닫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어서 저는 못내 든든할 것입니다!” 황석영 작가(사진)가 2011년 11월부터 문학동네 네이버 카페(cafe.naver.com/mhdn.cafe)에 연재해오던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선’의 마지막 편을 5일 올린 뒤 따로 쓴 댓글이다. 황 작가는 연재를 시작할 때 “새로운 세대가 한국문학을 가까이 하도록 일종의 안내자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1회 염상섭 ‘전화’를 시작으로 박경리 ‘불신시대’, 박범신 ‘토끼와 잠수함’, 김연수의 ‘뿌넝숴’,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지나 마지막으로 김애란 ‘서른’을 소개했다. 황 작가는 평소 능청스러운 입담처럼 단편들에 대한 감상과 소회, 개인적 인연까지 버무린 글을 선보였다. 문학동네는 “독자를 깔깔거리게 만들면서도 진지하게 성찰하게 했고, 팔뚝에 오소소 소름이 돋을 만큼 감동스럽게 하기도 했다”고 평했다. 황 작가는 본인 단편 중에는 ‘삼포 가는 길’과 ‘몰개월의 새’를 놓고 고민하다 후자를 골랐다. 그는 “베트남전쟁을 나중에 장편소설로 쓴 것이 ‘무기의 그늘’이었고, 단편으로는 ‘탑’ ‘돌아온 사람’ ‘낙타누깔’ ‘몰개월의 새’가 있었다. 이들 중에서 어깨에 힘을 빼고 그야말로 ‘인생파’로 엮어낸 것이 ‘몰개월의 새’라고 생각한다”고 썼다. 황석영은 마지막 연재에서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기를 넘어서 다시 시작해야 할 또 다른 출발점이다. 한국문학은 그런 생명력을 가진 문학이다”라고 밝혔다. 연재 글들은 신수정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덧붙여 올해 말 10권의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2012년 12월 31일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은 62세 아파트 경비원이 자신이 일하는 아파트의 42m 높이 굴뚝 위로 올라갔다. 그는 복직을 요구하며 새해 첫 동이 틀 때까지 섭씨 영하 10도의 강추위 속에 밤새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버텼다. 소설가 김경욱 씨(43)가 쓴 단편 ‘개의 맛’에선 사사건건 ‘빨갱이’를 입에 올리는 공안 출신 중년 사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우두머리 격인 ‘어르신’의 행방을 찾아 떠나고 특유의 촉으로 그가 있다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한다. 그런데 그 어르신이 아파트 굴뚝 위에 올라가고, 그가 내려뜨린 ‘펼침막’에는 ‘우리는 아직 일할 수 있다. 일방적 해고는 살인이다’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궁금했다. 당시 아파트 경비원이 해고에 항의해 굴뚝에 올라갔다는 얘기 자체는 실화다. 당시 필자는 사회부 기자로서 취재해 기사까지 썼는데, 그가 공안 출신이었나. ‘개의 맛’을 포함해 일곱 번째 단편소설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를 출간한 김 작가를 만났다. “노인 실업에 관심이 있었어요. 사회와 나라를 위해 청춘을 바쳤다고 생각할 텐데 나이를 먹어서 일을 못한다면 어떨까. 굴뚝에 올라간 경비원 기사를 보면서 우리 근현대사를, 그분 또래인 산업화 세대의 삶을 생각했어요. 이런 발상이 생겼어요. 공안 쪽에 일하던 사람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노년의 생활고나 실업 문제 등은 과거 무슨 일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닥치지 않을까요.”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계간지에 발표한 소설 9편을 보면 그가 바라본 한국 사회의 오늘과 미래가 정교한 소설적 상상력으로 직조돼 있다. ‘아홉 번째 아이’에선 산업화 세대인 ‘김 상사’가 등장하고, ‘스프레이’에선 아파트 층간소음 문제와 택배 분실 사고가 얽혀 있고, ‘인생은 아름다워’에선 자살 면허를 발행하는 가까운 미래의 한국이 펼쳐진다. ―소설 속에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녹아 있다. “소설은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거다. 뉴스를 관심 있게 보는데, 사회 구조적 문제나 인간이 무엇인지 궁금해지면 소설로 써본다. 해답은 없지만 다른 매체에서 전달하는 것과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싶다.” ―김경욱 하면 ‘영화적 상상력’ ‘문화적 코드’가 수식어로 붙었는데 낯설다. “소설을 쓴 지 20년이 됐다. 20대 때는 나와 가까운 주변에 대한 관심이 컸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내가 아닌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예전에 쓴 소설을 보면 일인칭으로 많이 썼는데 이제는 삼인칭이 익숙하다. 이제 일인칭으로 쓰려면 낯설다. 하나의 징후가 아닐까.” ―세월호도 숙제겠다. “1982년 경남 의령군에서 민간인 56명이 우모 순경의 총에 살해당한 총기 난사 사건을 소재로 계간지 ‘문학과사회’에 ‘개와 늑대의 시간’을 연재하고 있는데, 언론 보도를 보면 당시나 세월호나 구조적인 모순을 지적하는 게 똑같다. 당시 사건의 희생자를 키운 구조적인 모순이 여전히 해결이 안 된 것이다. 다듬고 퇴고할 때 세월호 관련 문제의식도 많이 담을 것이다.” ―단편소설들이 재밌지만 조금 어둡다. “어두운가. 사회의 부조리나 모순,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소설이다. 소설 쓸 필요가 없는 사회가 오면 정말 좋을 것이다. 현미경으로 찾아봐도 문제가 보이지 않으면 소설을 쓸 수 없더라도 좋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망팔(望八)의 시인은 카메라 앞에서 짓궂은 표정을 짓더니 알파벳 ‘L’자 모양으로 만든 손가락을 내밀었다. 사랑(Love)이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스페인어로 싸우자는 ‘Lucha’의 L입니다. 감옥에 서 늘그막 탈출한 탈옥수 같은 제가 시와 한번 싸워보겠다는 뜻입니다.”재일교포 시인 호소다 덴조(71). 2012년 출간한 첫 시집 ‘골짜기의 백합’(사진)으로 지난해 ‘일본 시인의 최고 등용문’이라 불리는 ‘나카하라 추야’상을 수상했다. 역대 최고령 기록을 세웠다. 그는 한성례 시인의 번역으로 한국어판(서정시학)이 이달 출간되자 한국을 방문했다. 》호소다 씨는 일제강점기 가난에 시달리다 일본으로 건너온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중학생 시절 국어시간에 읽은 시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부모 몰래 가쿠슈인대 문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정작 대학에서 문학을 배우고 인생에 대한 고민이 걷잡을 수 없이 깊어졌고 사랑까지 실패하면서 더는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중퇴했다”고 했다. 문학을 접고 돈벌이에 매달렸는데 일이 술술 풀렸다. 산업폐기물업체 호소다상사를 세우고 대표가 됐다. 인생이란 감옥에 한줄기 서광은 2004년에 비쳤다. 그는 시인 마치다 고의 시 ‘여름의 전멸’을 읽고 전율했다. “10행의 시 속에 인간의 인생과 삶, 세상, 사회 등 모든 것이 응축돼 있었어요. 인간이란 대자연의 횡포로 전멸할지 모른다며 미래를 예상하고, 만약 전멸한다면 슬픔과 아픔도 같이 전멸하자, 모두 웃으면서 전멸하자고 했지요. ‘이제 시를 쓰자’ 결심했습니다.” 홀로 습작하던 그는 2008년부터 신문사 문화센터에서 시를 배웠다. 강사는 “당신이 쓴 것은 시가 아니다. 시집 낼 꿈도 꾸지 말라”며 비웃었다. 그래도 그는 컴퓨터 앞에서 묵묵히 자판을 두드렸다. 그는 한국어판 시인의 말에 “시와 씨름하는 일이 유희를 하듯 즐겁다. 누르고 누르다 보면 손가락 사이에서, 또는 행간에서 흘러넘치는 것이 있다”고 썼다. 그는 뿌리를 찾고 싶어 아버지의 집 주소 ‘강진군 작천면 궁시리 507번지’를 여러 번 찾아갔지만 그 주소를 찾을 수도, 아버지를 아는 사람도 찾을 수 없었다. 그 아픔을 담은 시 ‘저기요(あの)’에서 ‘나는/ 고향 말을 할 줄 모른다/ 고향 사람들은 일본말을 할 줄 모른다/ 배가 고프면 저기요 하며 울상을 짓고/ 졸리면 우우 신음했다’고 썼다. ‘조부기(祖父記)’란 시에선 ‘조선의/ 흰 무명옷을 입은/ 그런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손자에게 말한다. 호소다 씨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를 비롯해 전쟁 피해자들이 죽어가고 있다”며 일본의 전쟁 책임을 시로 묻는다. 그는 일제강점기 시베리아에 다녀온 일본인 친구 스기야마에게 조선인 강제징용자의 참상을 기록하라고 요구한다. ‘협박 일기’란 시에서 ‘조선 글자로 쓴 노트 1946이 타들어간다./ 스기야마에 대한/ 내 협박도 점점 괴이해져간다’고 썼다. 시집은 비극이나 슬픔도 유머로 감싼다. ‘철학하는 밤’이란 시에선 ‘나는 왜 태어났을까’ 진지하게 묻는 재일교포 3세 아들에게 ‘간음에서 비롯되었다’고 답하는 식이다. “일본으로 건너온 아버지 세대에겐 유머 감각이 있었어요. 아무리 힘들게 고생해도 웃으면서 일했고, 아버지 형제들이 모이면 서로 웃겼어요. 우리 뿌리에는, 이데올로기에는 유머가 있는 겁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리 내어 제목부터 읽어본다. ‘음…’ 하며 입술을 오므린 채 소리를 모은다. ‘파∼’ 하고 입을 벌려 소리를 뱉는다. 소리가 ‘거대한 나비’가 됐다. 또다시 음파, 음파. ‘거대한 나비의 행렬’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이달에 만나는 시’ 11월 추천작은 강정 시인(43)의 ‘음파(音波)’다. 1992년 ‘현대시세계’에서 등단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귀신’(문학동네)에 실렸다. 추천에는 김요일 신용목 이건청 이원 장석주 시인이 참여했다. 시집은 강 시인을 ‘시 쓰는 남자.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하고 가끔 연극 무대에 서기도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올 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어수선할 때, 꼭 세월호 때문만은 아니지만 이상한 소리들이 막 들렸다. 밴드 연주를 하기 전에 윙윙대는 전자 사운드가 있는데 세상이 그런 느낌으로 왔다”고 했다. “세월호는 대한민국의 정신 상태를 드러내는 사건 같습니다. 총체적인 감각들이 소리로 다가왔고 그에 대해 몸이 반응한 것을 썼습니다. 시에서 깊은 의미를 찾아내고 메시지를 받아내려고 할 필요는 없어요. 자연현상처럼 ‘시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구나’ 받아들이면 좋을 것 같네요.” 이원 시인은 “시인이 된 지 22년, 다섯 번째 시집에 이르러, 몸 있는 것과 몸 없는 것, 여자와 남자, 생물과 무생물, 그것들의 경계를 넘나드는 강정의 ‘우주극장’이 만들어졌다. ‘흑막’에서 포획한 ‘빛’의 언어라는 데 강정 시의 탁월함이 있다”고 추천했다. 신용목 시인은 “언어로부터 도륙당한 정신이 버려진 육체 속으로 들어가 힘겹게 삶을 바라보는 시집”이라고 했다. 김요일 시인은 한국시인협회장인 문정희 시집 ‘응’(민음사)을 추천했다. “칼날을 맨손으로 잡은 채 정면의 언어로 시와 마주했다. 시편마다 벗겨진 허물이 남겨져 있을 만큼 새롭고 독자적이다. 육체와 생명과 우주를 넘나드는 시의 발효는 ‘응’이라는 단 한 글자로 응축하기에는 너무 격렬하고, 눈부시고, 뜨겁다.” 이건청 시인은 김형영 시집 ‘땅을 여는 꽃들’(문학과지성사)을 추천하면서 “정통 서정의 미적 균형이 어떻게 시적 긴장에 닿는 것이고, 너른 공명을 획득하는가를 알 수 있다. 시인은 자신의 내면으로 하강해 가면서 삶의 궁극을 이루는 사물들을 세밀하게 발견해내고 있으며, 그것들을 형이상적 깊이와 품격을 지닌 구조 속에 담아낸다”고 했다. 장석주 시인은 이창기 시집 ‘착한 애인은 없다네’(창비)를 골랐다. “은유와 패러디가 난무한다. 김수영, 이상, 빈센트 밀레이, 김소월, 마야콥스키, 오규원 등이 시를 빌려주고, 그 시들을 비틀고 토막 내고 뒤집으며 이 시대의 말과 이념과 유행을 아이러니와 풍자로 쥐락펴락하며 풀어놓는다.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경제 컨설팅’ ‘경제민주화’에 따라 춤추는 장삼이사의 애환이 활달한 입담 속에서 드러내는데, 곳곳에 유머와 해학이 돌출한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5일 오전 11시 45분경 충남 태안군 마도 앞바다 수심 11m 바닷속. 290t급 수중문화재발굴선 누리안호를 떠난 잠수사 2명이 조명 불빛에 의존해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어디입니까.”(통제실) “선체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선수 부분입니다. 시야가 불투명합니다. 20cm 이상은 보이질 않아요.”(잠수사) 잠시 후 잠수사 머리에 달린 카메라에서 전송된 화면 속에 갯벌에 잠긴 목선의 일부가 드러났다. 보존 상태가 좋아 목선의 나뭇결이 선명했다. 잠수사들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선체에서 10m 떨어진 닻가지를 인양하기 위해 이동했다. 유속이 빨라 갯벌 흙이 일어나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잠수한 지 40분 만에 잠수사가 닻가지를 수면으로 올려 보냈다. 닻가지 길이는 2.1m로 원래 크기는 4∼5m로 추정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홍광희 발굴팀장은 “고선박의 닻은 닻가지에 닻돌을 묶어 쓰는데, 나무 재질 닻가지는 훼손이 잘돼 발굴이 잘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마도 해역에서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고선박(가칭 ‘마도 4호선’)을 발견했다고 5일 밝혔다. 연구소는 “선체 내부에서 조선시대 초기 제작된 사발 형태의 분청사기 2점이 나온 것으로 볼 때 조선시대에 제작된 배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해양에서 발굴된 고선박 12척 중 통일신라시대 선박인 영흥도선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고려시대 배로 조선시대 선박의 발굴은 처음이다. 현재 확인된 마도 4호선의 규모는 길이 11.5m, 폭 6m. 우현으로 기울어져 선체 일부분만 갯벌 위로 올라와 있다. 쇠못 대신 나무못을 사용한 점, 선체의 형태 등이 전형적인 한국 선박의 모습이다. 선수 윗부분에선 18세기 후반 제작된 조선시대 백자도 111점이나 발견됐다. 주로 일상생활용기인 발, 접시, 잔, 촛대 등이 10점씩 꾸러미로 포개져 있었다. 이 중 백자 촛대는 일부 가문에서만 전해져 내려올 뿐 발굴된 것은 처음이어서 매우 희귀한 유물로 평가된다. 홍 팀장은 “배 안에서 조선 초기 분청사기가 발견된 점으로 볼 때 18세기 백자 다발이 마도 4호선에 함께 적재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며 “하지만 이 백자들이 완충재인 볏짚과 함께 발견된 것에 비춰 화물로 이송되다 물속에 잠긴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지금까지 조선 백자는 지역마다 가마가 분포해 인근 지역에만 공급됐다는 것이 학계 정설이었으나 이번 발굴로 원거리 유통을 처음 확인했다”고 말했다. 태안 해역은 “놀란 여울물이 들끓어 오르는 것이 천만 가지로 기괴하여 말로 형언할 수 없다”는 옛 기록이 있을 정도로 많은 배가 침몰한 곳. 2007년 이후 이곳에서만 태안선, 마도 1∼3호선 등 4척의 고려시대 선박과 28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됐다.태안=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당신은 당신 뒤에 ‘이(가)’를 붙이기 좋아하고/나는 내 뒤에 ‘은(는)’을 붙이기 좋아한다//당신은 내‘가’ 하며 힘을 빼 한 발 물러서고/나는 나‘는’ 하며 힘을 넣어 한 발 앞선다”(‘은는이가’에서)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인 정끝별 시인(50·사진)이 다섯 번째 시집 ‘은는이가’(문학동네)를 펴냈다. 그는 1988년 ‘문학사상’에 시가, 199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평론이 당선됐다. 지금까지 낸 시집 제목들은 ‘자작나무 내 인생’ ‘흰 책’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이다. 제목이 보여주듯 그는 명사의 세계에서 부사로 그리고 조사로 시적 탐구를 진행했다. 그는 “명사로서의 세계 혹은 세상에 대한 주체들의 태도, 시선, 자세가 ‘은는이가’에 담겨 있다”며 “사랑이란 이름으로 삶과 시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관계를 탐구하면서 생산된 시집”이라고 소개했다. 시인은 ‘나는’처럼 ‘이가’보다 ‘은는’을 더 많이 써왔다. 그는 “이번 시집이 주격조사인 ‘이가’로 갈 수 있을 것 같은 중요한 터닝포인트가 됐다. ‘이가’라고 했을 땐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다”라고 말했다. 58편의 시는 ‘궁극의 타이밍’ ‘도대체 어떤 삶을 산 거야, 당신은?’ ‘푹’ ‘기타 등등’이란 부제의 4부 아래 모였다. 물음이 담긴 시들이 많다. “나는 나로부터 도망칠 수 있을까/흐름을 가늠하는 물의 말로/마흔넷의 나는 시에게 묻곤 했다.”(‘묵묵부답’에서) ‘끝별’이란 이름은 시인의 필명이 아니라 호적에도 올라간 본명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50년 전 순우리말 이름 ‘끝별’로 지으려고 한자 이름을 요구하는 동사무소 직원과 오래도록 실랑이를 해야 했다. “어릴 땐 튀는 이름이 조금 못마땅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서야 아버지가 주신 ‘끝별’의 의미를 완성할 수 있었는데, 그게 바로 시구나 하는 깨달음이었죠. 누구에게나 다르게 지각되는 ‘끝’이라는 시공간적 지점과, 이미 수억 광년 전에 폭발해 사라진 존재인데 저리 높고 빛남으로써 누군가에게는 어둠 속 지도가 되기도 하는 ‘별’ 같은 존재가 바로 시가 아닐까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고구려 후예이자 당나라 명장인 고선지(高仙芝·?∼755) 장군에 대한 소설 집필에 열정을 바치던 남편의 죽음, 남편의 뜻을 이어받기 위해 직접 1인 출판사를 차려 출간을 준비하다가 당한 큰아들의 죽음. 김수안 도서출판 미르 대표(51)는 최근 출간한 소설 ‘동방 명장 고선지’(전 3권)를 받아들고 남편과 아들을 차례로 잃은 아픔이 되살아나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동방 명장 고선지’는 2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김 대표의 남편이자 중국 지린 성 출신 귀화 작가인 김정호 씨의 유작이다. 소설은 고선지 장군이 서역 정벌 임무를 맡아 6000m 설산을 넘고 적은 병력으로 상대의 대군을 압도해 동로마, 지중해까지 진출하는 과정을 숨 가쁘게 펼쳐낸다. 김 작가는 5년간 전쟁 지역을 답사하고 수백 건의 관련 문헌을 조사했다. 그는 고선지뿐만 아니라 당나라 황제, 이백, 두보, 혜초 같은 역사적 인물 150여 명을 등장시키고 당시 무예 병기 복장 외모 풍습까지 상세히 묘사했다. 1949년생인 김 작가는 1980년 중국 문단에 등단했으며 2006년 한국으로 귀화했다. 이후 소설과 시를 쓰면서 고은 ‘만인보’ 등 한국 시를 중국어로 번역하는 등 한국 문학 소개에 힘썼다. 그는 2008년 국내 한 출판사로부터 중국에서 출간된 고선지 관련 책 번역을 제안 받았다가 “부실한 내용이 소개되면 한국인들이 고선지의 업적을 잘못 알게 된다”며 거절하고 직접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 작가는 2012년 원고지 5000여 장 분량으로 소설을 완성해 출간 준비를 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출판사를 차려 직접 출간에 나섰고 올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기획안으로 선정돼 출판 경비를 마련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결혼을 앞둔 큰아들이 올 5월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사고로 숨지는 아픔을 겪었다. 김 대표는 “생전 남편이 몇십억 원을 줘도 바꿀 수 없다고 한 소설인 만큼 힘들어도 꼭 출간하고 싶었다”며 “세상에 나오게 돼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2006년 당시 부산에 살던 대학 3학년 황동명 씨(32)는 친구들과 함께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나러 오사카행 배를 탔다. 앞으로 뭘 하고 살지 고민 중이던 그의 눈에 할머니 보따리상이 들어왔다. 할머니들은 한국산 김 등을 이민용 가방에 담아 일본에 팔러가는 길이었다. 그는 “학자금 대출 이자 갚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느라 흔한 스펙을 쌓을 시간도 없었는데 ‘이거다’ 싶어 학교를 바로 관두고 소호무역에 뛰어 들었다”고 했다. 황 씨는 9년간 16개국을 243번이나 오갔다. 한 해 절반을 외국에서 보내며 운동화 가방 가죽제품 문구류 명품 등 한국에서 잘 팔릴 것 같은 것을 사서 팔았다. 2012년 창고에 불이 나 빈털터리 신세가 되기도 했지만 그간 쌓은 경험으로 다시 일어나 올해 작은 무역회사도 설립했다. 이런 경험을 담은 소호무역 여행기 ‘나는 세계 어디서나 통하는 장사를 한다’(행간)를 펴냈다. 이미 ‘나는 최고의 일본 무역상이다’(2011년) 등 3권을 출간한 바 있다. 일본 출국을 앞두고 바쁜 그를 29일 전화로 만났다. ―각 나라 상인을 만나 보니 특징이 있던가. “유럽 상인은 상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내가 물건을 사는 갑인데도 을처럼 물건을 팔라고 애걸복걸할 때도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처럼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바가지를 씌우지 않지만 보따리상에겐 비싸게 부르기 때문에 가격 흥정을 세게 해야 한다. 중국 상인들은 콧대가 갈수록 높아진다. 자존심을 세워주지 않으면 복수한다. 동남아시아 상인은 보양식 등을 흥청망청 사는 한국인을 먹잇감처럼 생각하더라. 항상 주의할 필요가 있다.” ―소호무역 여행기지만 낭만보다 정보 위주다. “한 국가를 방문하면 사진 500∼600장을 찍는다. 일일이 메모할 시간이 부족하니 계산기에 숫자를 입력하고 물건과 함께 찍어둔다. 그리고 밤에는 낮에 찍은 사진을 보고 글로 꼭 적어둔다. 창업이든 무역이든 초보자에게 꼭 말한다. ‘무조건 기록으로 남겨라’.” ―당신에겐 책 쓰는 시간에 물건을 하나 더 파는 게 이익 아닌가. “사업 시작 후 다시 대학에서 경영학과 무역학을 공부했는데 수업이 늘 이론 중심이다. 20대들이 이론만 배우니까 학교에만 갇혀서 나올 엄두를 못 낸다. 해외여행에서 돈을 쓰고만 오지 말고 외국에서 뭘 할 수 있을지 아이템도 찾아보란 거다. 책을 쓰면서 경험과 이론을 함께 전하는 교수가 되려는 꿈도 키우고 있다.” ―물건처럼 책도 잘 팔릴 것 같나. “무일푼에서 시작한 경험담을 20대의 눈높이에 맞춰 여행기 형식으로 쉽게 썼으니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아, 정녕 당신이 에쿠니 가오리인가요.” 직장인 박모 씨(32)는 이달 신작 장편소설 ‘등 뒤의 기억’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일본 소설가 에쿠니 가오리(50)의 모습에 어리둥절해졌다. 그는 대학시절 ‘냉정과 열정 사이’를 읽고부터 에쿠니의 팬이 됐다. 당시 띠지에 실린 프로필 사진의 에쿠니의 얼굴은 20대 여성처럼 단아하고 청초한 모습이었다. 묶은 머리 아래로 드러난 목선은 묘한 성적 매력까지 풍겼다. ‘등 뒤의 기억’ 띠지에도 같은 사진이 실렸는데, 한국을 찾은 에쿠니는 중년의 모습이었다. 》소담출판사는 에쿠니 책을 처음 출간한 2000년 이후 ‘그때 그 사진’을 거의 바꾸지 않고 있다. 소담출판사는 딱 한 번 2011년 푸드 에세이 ‘부드러운 양상추’를 출간하며 책 성격을 고려해 젊은 모습의 다른 사진으로 바꿨지만 독자들이 “낯설다”며 반기지 않았다. 소담출판사 곽지희 편집자는 “에쿠니의 프로필 사진에 매력을 느낀 독자들이 워낙 많아 사진을 교체하지 않고 있다”며 “작가가 사진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일본 출판사는 저자의 프로필 사진을 잘 쓰지 않는다. 에쿠니와 정반대인 작가도 있다. ‘결괴’(문학동네)를 쓴 일본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39)의 경우 작품에 1998년 찍은 흑백 사진을 썼으나 2005년경 작가가 직접 ‘사진이 현재 모습과 너무 달라 민망하다’며 출판사에 교체를 요청하기도 했다. ‘향수’(열린책들) 등으로 유명한 은둔형 독일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65)는 신상 공개를 꺼려 20여 년 전 한국에서 처음 출간할 때 사진을 제공한 이후 일절 보내지 않고 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53)는 턱에 손을 댄 자세를 한국 독자들이 좋아한다는 걸 알고 새 책을 낼 때마다 출판사에 비슷한 포즈로 찍은 프로필 사진을 보내온다. 프로필 사진은 작가보다는 출판사가 더 공을 들인다. 출판계에 따르면 문인들은 쑥스러워서, 글로만 말하고 싶어서 등의 이유로 프로필 사진을 찍는 데 소극적이다. 하지만 마음산책 출판사는 최근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신작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출간하며 지금껏 한 번도 프로필 사진을 게재하지 않은 저자를 설득해 사진을 실었다. 마음산책 정은숙 대표는 “독자들은 책을 통해 저자와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는데, 프로필 사진을 보면 소통이 더 잘된다”며 “헤밍웨이 하면 두꺼운 스웨터, 하루키 하면 후드티를 떠올리듯 프로필 사진은 작가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은행나무 출판사 백다흠 편집자는 고은 김연수 김영하 김훈 박범신 신경숙 은희경 이성복 황석영 등 국내 문인 100여 명의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출판사 홍보를 맡다가 우연히 작가 사진을 찍기 시작한 그는 이젠 유명 작가라면 거쳐야 할 사진작가로 꼽힌다. 그는 “프로필 사진이 과거엔 명함사진이나 동료들이 서로 찍어 준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전문 사진작가가 완성도를 높여 찍는 사진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백 편집자는 작가들과 함께 산책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배경이 괜찮은 곳에 서게 한 다음 꾸밈없는 모습을 찍는다. 그렇다면 좋은 프로필 사진은 무엇일까. “작가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기운을 대변하는 사진이 좋은 프로필이다. 프로필 사진은 작품을 읽기 위해 들어가는 문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시인들이 꼽은 자신의 대표작은 무엇일까. 또 자신의 시 중 대중이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시와 낭독하기에 좋은 시는 어떤 작품일까. ‘세 겹으로 만나다: 왜 쓰는가’(삼인·사진)는 이런 세 가지 물음에 답하는 책이다. 한국작가회의가 창립 40주년 기념으로 발간했다. 40주년기념행사준비위원회는 “‘우정’을 천명하며 마련됐고, 망라란 애당초 불가능하고, 수록 필자들이 한국문학을 온전히 대표한다고 할 수도 없지만 밖으로 세대와 유파별, 안으로 작가 개인 작품 세계의 ‘샘플링’으로서는 현재의 최선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책에는 시인 60명이 세 가지 물음에 답하는 시 3편씩 180편이 수록됐다. 고은 민영 신경림 등 원로부터 이성복 정호승 김혜순 황인숙 같은 중견 시인, 이설야 유병록 박준 등 신진까지 두루 참가했다. 게재 순서의 기준은 나이. 고은 시인은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문의마을에 가서’ ‘화살’을 각각 골랐다. 신경림 시인은 ‘농무’ ‘가난한 사랑 노래’ ‘이 땅에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을 위하여’를, 정호승 시인은 ‘자작나무에게’ ‘수선화에게’ ‘바닥에 대하여’를 선정했다. 시인이 아끼는 시와 독자가 사랑하는 시를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 소설가 8명과 평론가 4명은 ‘왜 쓰는가’란 질문에 답했다. ‘책은 없었지만 사람들이 있는’ 집에서 ‘TV 앞에 망부석처럼 앉아 있던 아이’였던 소설가 김숨은 이렇게 답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쓰는 것이 밥을 먹고 산책을 하는 것처럼 저의 일상 중 한 부분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라고, 소설을 쓸 때 스스로 가장 성실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소설이 제게 준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평론가 김형중은 ‘공갈 젖꼭지’에 비유했다. “입에 물 때마다 매번 우리는 ‘절대 젖꼭지’를 기대하지만, 물리느니 항상 애타는 공허뿐이다. (중략) 그 허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쓰고 또 쓴다.” 행사준비위원회는 책에 실린 시를 낭송하는 행사를 다음 달 13, 14, 17, 19, 20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열 계획이다. 40주년 기념행사는 22일 오후 5시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열린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표백’ ‘뤼미에르 피플’을 쓴 소설가 장강명 씨(39·사진)가 신작 장편소설 2권을 잇달아 펴냈다. ‘호모도미난스-지배하는 인간’(은행나무)은 판타지소설이다.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우리 스스로를 통제’하는 정신 조종 능력을 가진 신인류 ‘호모도미난스’ 이야기다.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세력 ‘방바재단’과 그 능력의 광기를 제거하려는 세력 ‘백원단’ 간의 대결이 한국 일본 중국 라오스를 넘나들며 펼쳐진다. 장르소설처럼 빠르게 읽히지만 그 속에서 인류사회의 권력과 힘에 대한 질문을 담았다. 작가는 “작품에 심오한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지만 독자들이 그저 재밌게 읽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8월 발표된 제2회 수림문학상 수상작 ‘열광금지, 에바로드’(연합뉴스)는 작가가 기자 시절 만난 동명 다큐멘터리의 제작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소설은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에 열광하는 주인공 박종현을 내세워 ‘IT 세대’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한국 젊은이의 성장과 오늘을 생생히 담았다. 에바로드는 ‘에반게리온의 길’을 줄인 조어다. 그는 “앞으로 인터넷 여론 조작 업체를 주인공으로 좌파, 우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폭력적으로 배척하는 세태를 풍자하는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제겐 아직 실패할 수 있는 꿈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나이에 상관없이 끝까지 노력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책에 담고 싶었습니다.” ‘7대륙 최고봉 최고령 완등자’로 2007년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된 재미동포 산악인 김명준 씨(71·사진)가 27일 서울 웨스틴조선 호텔에서 신간 ‘라이프 노 리미츠’(동아일보사) 출판 기념회를 열었다. 그는 월간지 ‘신동아’의 제49회 논픽션 우수작으로 뽑힌 ‘나의 에베레스트’를 바탕으로 수없이 생사의 고비를 넘나든 등반과 모험의 여정을 책에 담았다. 김 씨는 평안남도 안주군 출신으로 어머니와 누나 둘과 함께 월남했다. 그는 연세대 전기공학과 졸업 후 KBS와 대림산업에서 근무하다가 197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그곳에서 정착했다. 의류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그는 50대에 인생의 2막을 시작했다. 1999년 56세에 아프리카 킬리만자로부터 시작해 남미 아콩카과, 유럽 엘브루스, 북미 매킨리, 남극 빈슨 매시프, 오세아니아 카르스턴스 등 각 대륙의 최고봉을 차례로 오르고 64세에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에 올랐다. 그는 “산속에는 역경, 죽음, 공포가 가득했지만 크레바스를 넘는 것이 무엇보다 신명났다”고 회고했다. 2003년부터는 북극과 남극 마라톤을 포함해 8개 대륙의 대표적 마라톤을 모두 완주하기도 했다. 김 씨는 실버세대에겐 영감을 주는 존재가, 후배 산악인에겐 목표가 되고 싶다고 했다. “제 또래 세대가 노년에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도전은 끝까지 하는 것이란 영감을 얻으면 좋겠습니다. 후배 산악인은 나를 넘어선다는 목표를 갖길 바랍니다.” 71세 올드보이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다부진 자세로 연단에 서서 “일본 후지 산처럼 주변에 산맥 없이 홀로 우뚝 솟은 세계 50개의 독립봉을 오르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29개를 올라 세계 4위를 기록하고 있는데 달콤한 성취감을 위해서라도 모두 오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윤동주 시인의 유고 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최초본이 27일 공개됐다. 최초본은 1948년 2월 16일 윤 시인의 3주기 추도식에 헌정하기 위해 급히 낸 것이다. 당시 시집은 외솔 최현배 선생의 아들인 최영해 정음사 대표(1914∼1981)가 펴냈다. 최 대표의 장남 최동식 고려대 화학과 명예교수(71)는 이날 “윤 시인의 3주기 추도식에 맞춰 시집을 출간하려 했으나 준비가 부족해 일단 동대문에서 구한 벽지로 겉표지를 만들어 시집 10권을 급히 제본했다고 부친에게 들었다”며 “최초본 10권은 추도식 참석자들이 나눠 가졌고 정식 출판된 초판본은 한 달 정도 뒤에 나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초본은 1000부가량 제작된 초판본과 표지만 다를 뿐 본문은 똑같다. 최 교수는 아버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보관해온 시집을 공개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토지문화재단이 박경리문학상을 해외 작가에게 준다는 사실은 한국이라는 문화적 해상국가가 얼마나 다른 문화에 열려 있고, 얼마나 그에 대한 탐사를 열심히 즐기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입니다.” 제4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독일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씨(70)는 25일 강원 원주시 흥업면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박경리 선생의 위상만큼이나 크고, 이전 수상 작가들의 명성만큼이나 훌륭한 상을 제 이름으로 이어가게 된 것은 영광”이라며 수상 소감을 밝혔다. 박경리문학상은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을 기리기 위해 2011년 제정됐다.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강원도와 원주시, 동아일보가 공동 주최한다. 올해 수상자인 슐링크 씨는 ‘책 읽어주는 남자’ ‘귀향’ 등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반인간적인 학살과 문명의 파괴에 대한 독일인의 무한책임을 중심 주제로 다뤄왔다. 그는 “우리는 열린 마음과 호기심으로 이 문화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다름 속에서 공통적인 것을 발견하고, 서로간의 만남을 통해 풍요로워지며 새로운 인식과 질문에 도달한다”며 “각 나라는 하나의 문화적 섬이며 여러분에게 독일이, 제게는 한국이 꾸준히 탐사해야 할 문화적 섬”이라고 말했다. 슐링크 씨는 박경리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학과 만났다. 그는 “수상 소식을 듣고 박경리 선생의 작품뿐 아니라 다른 한국 작가 작품들을 찾아 읽으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똑같은 유행과 패턴을 따르는 획일화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다양성과 새로움을 접할 수 있는 영역은 저마다의 특색이 살아 있는 문화뿐이다”고 말했다. 이어령 박경리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은 정창영 삼성언론재단 이사장이 대독한 축사에서 “슐링크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독일의 과거 역사와 그 세대의 아픈 상처를 과감히 드러내 열어본 다음 다시 봉합하고 치유하는 데 평생을 바친 용기 있는 작가”라며 “비슷한 상황과 고뇌 속에서 치열한 작가정신으로 글을 썼던 박경리 선생의 문학세계와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오탁번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장, 김동호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장, 김기선 새누리당 의원, 원창묵 원주시장, 최맹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슐링크 씨는 28일 낮 12시 연세대 새천년관에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란 주제로 박경리문학상 수상작가 초청 강연회를 갖는다. 30일 오후 7시에는 주한 독일문화원에서 작가낭독회를 연다.원주=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새누리당 김상민 의원(41)과 KBS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경란 씨(37)가 내년 1월 6일 결혼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두 사람은 7월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신혼집은 경기 수원시 장안구에 차릴 예정이다. 김 의원은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 청년특보, 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청년특별위원장을 지냈다. 김 씨는 2001년 KBS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뉴스9’ 앵커를 지냈고 ‘스펀지’ ‘열린음악회’ 등을 진행했다. 2012년 퇴사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야하다. 살구색 바탕에 청색 브래지어와 팬티가 그려진 표지가. 만져보면 이미 브래지어는 올리고 팬티는 내렸다. 여성의 몸을 흉내 낸 ‘W X V’ 모양을 도톰하게 속옷 아래 처리해 두었다. 읽어 보란 것이냐, 만져 보란 것이냐. 전후좌우를 살피고 스윽 표지를 쓰다듬은 뒤 책장을 넘긴다. 소설은 ‘시작하다’ ‘사랑하다’ ‘다시 시작하다’까지 모두 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프랑스의 클레브란 작은 마을에 주인공인 초등학교 고학년 소녀 솔랑주가 산다. 또래들이 섹스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을 때, 그는 제 안에 “화냥년이 숨어” 있다고 믿는 남다른 소녀다. 교실에서 압정을 몸에 박는 상상을 하며 자위행위를 하고 범퍼카를 타고 돌아온 날 생리를 시작한다. ‘사랑하다’ 장에선 솔랑주와 친구들은 경쟁적으로 첫 경험에 몰두한다. 솔랑주도 여러 남자의 난폭한 손길 속에서 감미롭지 않은 첫 경험을 시작한다. 온갖 성관계를 시도한 끝에 성병까지 얻는다. 그렇다고 섣불리 동정하진 말자. 그는 ‘교접’ ‘음경’ 같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며 스스로 성을 깨칠 정도로 주체적이고 “살아 있는 사람은 나야. 다른 사람들은 모두 죽었어”라고 말할 정도로 자의식이 강하다. ‘다시 시작하다’ 장은 조금 슬픈데, 무관심한 부모를 대신해 자신을 돌봐준 이웃집 아저씨와도 성관계를 맺는 아찔한 과정 속에 여성이 돼 간다. 줄거리만 건조하게 정리했을 뿐 소설 속 적나라한 이야기는 지면에 옮기지도 못했다. 짐작만 하시라. 소설에서 남성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이 63회 나온다(직접 세진 않았다. 옮긴이의 말을 참고했다). 여성의 성기를 비속하게 이르는 말도 그에 버금가는 횟수로 나온다. 저자는 어릴 적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한 일기를 다시 듣고 그 일기에서 많은 부분을 소설로 옮겼다. 일기를 옮겨서일까, 소설은 10대들이 쓰는 비속어로, 그들의 첫 경험을 완벽히 재현했다. 안네 프랑크의 일기를 언급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안네 하면 강제수용소의 비극만 떠올리는 솔랑주에게 친구는 “안네 프랑크는 생리에 관해 쓴 세계 최초의 작가야. 그의 일기는 정확히 그녀가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었을 때 끝났어. 그러니 수용소에 관해서는 쓰지 않았지”라고 말한다. 엄숙주의에 빠진 우리가 안네의 영혼만 보고 그의 호르몬 변화는 외면한 것이 아닐까. 소설 원제는 가상 마을 이름인 클레브(Cl`eves)다. 소설에선 “클레브는 입술(레브르)을 연상시키니까. 그리고 클리토리스로 시작되니까”라고 설명한다. 클레브가 한국 독자에게 낯선 것을 우려한 한국 출판사는 제목을 솔랑주의 이미지에 쩍쩍 달라붙는 ‘가시내’라고 바꿨다. 저자는 현재 프랑스에서 가장 논쟁적인 작가로 꼽힌다. 가난한 여인이 성매매로 많은 돈을 벌지만 점점 암퇘지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1996년 데뷔작 ‘암퇘지’ 등 그의 작품들에 녹아 있는 적나라한 묘사를 불편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가시내’도 프랑스 언론마다 찬반 의견이 엇갈리며 큰 화제를 모았다. 호불호를 떠나 10대 소녀의 실제 속내를 자신의 경험에 빗대 문학이란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만큼은 인정해주고 싶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1500년 동안 잠자던 백제 금동 신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발등 부분에 자리한 용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듯하다. 바닥에 새겨진 연꽃과 용의 얼굴은 화려하면서 위엄이 넘친다. 백제의 뛰어난 공예 기술과 디자인 감각이 결합된 걸작으로 평가된다. 지금까지 발굴된 금동 신발 17켤레 중 가장 빼어나고 완벽하게 보존된 이 신발은 과연 누가 신었을까. 》전남 나주시 다시면 복암리 랑동마을의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한 정촌 고분 정상에 올라서자 시원하게 펼쳐진 영산강 물줄기와 일대 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5세기 후반 묻힌 무덤 주인의 권력을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문화재청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복암리의 기존 고분군과 가까운 곳에서 마한, 백제권 초기 대형 돌방무덤 가운데 가장 크고 도굴 흔적이 없는 정촌 고분이 발견돼 금동 신발 등 유물이 대량 출토됐다고 23일 밝혔다. 정촌 고분은 봉분 하나에 여러 무덤이 있는 ‘벌집형 고분’으로 돌방무덤, 돌덧널무덤, 옹관묘 등 9기의 매장시설이 확인됐다. 금동 신발이 출토된 1호 돌방무덤은 최대 길이 4.85m, 너비 3.6m, 높이 3.1m다. 어른이 허리를 숙이고 간신히 들어설 수 있는 석재 문틀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천장 쪽으로 올라갈수록 좁아지게 만들어졌다. 이번에 출토된 백제 금동 신발은 지금까지 마한, 백제권에서 출토된 17켤레의 금동 신발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돼 있고 작품성도 뛰어나다. 금동 신발은 길이 32cm, 높이 9cm, 너비 9.5cm 크기. 한 짝에는 발등 부분에 용이 승천하는 모양의 장식이 붙어 있다. 탈부착이 가능한데 남은 한 짝에선 사라진 상태다. 발목 부분에 덧댄 금동판도 전북 고창군 봉덕리 1호분에서 출토된 것보다 2cm가 더 긴 4.5cm다. 이 신발은 크기가 너무 크고 재질이 약해 실제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 망자를 사후 세계로 인도하는 의미를 담아 무덤에 넣은 것으로 보인다. 신발 바닥은 정면에서 바라본 용 얼굴과 연꽃 모양을 투조(透彫·금속판을 도려내 무늬를 나타내는 기법)와 선각(線刻·선으로 새긴 그림이나 무늬) 기법으로 꾸몄다. 바닥 중앙에는 연꽃잎을 삼중으로 배치했고 눈을 부릅뜬 채 입을 크게 벌린 용이 묘사돼 있다. 바닥에는 스파이크 모양의 징 24개를 붙였다. 당시 용은 지배 계층의 문장이었다.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백제의 금동 신발 제작 기술의 최정점에 있는 것”이라며 “백제가 영산강 유역의 지배세력인 마한지역 권력자와 협력을 도모하기 위해 금동 신발을 하사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발굴에서는 대도, 금제 귀걸이, 장신구, 마구, 화살통 장식과 화살촉, 옥토기, 석침(돌베개) 등이 함께 출토됐다. 이 물건들에서는 가깝게는 가야와 신라, 멀리는 일본 양식까지 보여 영산강 지역 세력들이 이웃 나라와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볼 수 있다. 도굴 흔적이 없는 고분이 발굴된 것도 이례적이다. 정촌 고분 정상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정자가 일제강점기까지 있었다. 아직도 정자 터가 남아 있는데, 도굴꾼도 정자 아래에 고분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 정자가 철거된 뒤에는 고분 위에 나무가 우거져 겉으로 보기에 고분인지 야산인지 구별하기 어려웠다. 현장발굴에 참가한 오동선 연구사는 “정자 기반 공사와 나무뿌리의 영향으로 돌덩이가 군데군데 무덤 내부에 떨어졌지만 기적처럼 금동 신발을 비켜갔다”고 전했다. 이상준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장은 “이번 발굴을 통해서 마한 세력이 국가 단계에 이르진 못했지만 상당한 세력을 갖고 주변 문화를 흡수한 것을 알 수 있었다”며 “정촌 고분과 주변 고분에서 발굴된 인골의 DNA 조사를 통해 마한인들의 얼굴과 생활상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나주=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