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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신경숙 씨와 출판사의 어이없는 해명을 보면서,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기분이었어요. 당분간 한국 소설은 덮어두고 외국 소설만 골라 읽을 거예요.”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 소설 코너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 씨(26·여)의 목소리엔 실망감이 가득했다. 한국 소설을 매달 꾸준히 사서 읽었다는 그는 “신경숙 씨 책은 중고서점에 곧 내놓을 것”이라는 말까지 했다. 해외 소설 코너에서 만난 직장인 신모 씨(33·여)는 “한국 소설이 표현, 소재, 줄거리가 비슷하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지만 우리 작가니까 애정을 갖고 읽었다”며 “신 씨 표절 논란을 보면서 그마저도 베낀 것 같은 생각에 해외 소설을 고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소설의 하락세가 가파르다. 24일 동아일보가 온라인서점 예스24와 함께 2005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국내 문학 판매량을 분석한 결과 2010년까지 상승세를 유지했던 것이 2011년 이후 기세가 꺾였다. 2011년에는 13%, 2013년 16.6%, 2014년에는 무려 17%나 전년 대비 판매가 감소했다. 2012년 한 해만 전년 대비 6.1%의 상승세를 보였는데 이는 문인이 아닌 혜민 스님의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안철수의 생각’이 그해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기 때문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전년 상반기 대비 33%나 판매량이 감소했다.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 안에 국내 문학은 12권이 포함됐지만 그림책 또는 에세이였을 뿐 창작 소설이나 시집은 단 한 권도 없었다. 예스24 관계자는 “이야기나 형식 면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젊은 세대의 요구에 한국 문학이 아직 대답을 못 찾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문학이 독자들에게 외면받은 이유는 뭘까. 출판 현장에선 무엇보다 독자 중심이 아닌 문단 중심의 출판 방식을 꼽는다. 출판사의 문학 편집자 5명은 전화 인터뷰에서 문학 문예지 게재를 위한 단편 위주 집필과 요즘 독자가 원하는 스토리텔링 발굴이 아닌 문체 미학에의 집착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실제 독자들은 단편소설집보다는 장편을 선호한다. 하지만 우리 문단의 경우 등단 뒤 단편을 발표해 문예지에 게재하고 평단의 인정을 받은 뒤에야 장편 집필에 들어가는 구조가 정착돼 있다. 편집자 A 씨는 “단편은 삶의 찰나에 깊이 파고들어가는 문학성은 깊지만 정작 사람 사는 이야기를 충분히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며 “스토리텔링을 원하는 독자들에겐 읽기 어렵거나 재미없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했다. 문체 미학에 집착해 ‘골방 문학’에만 갇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편집자 B 씨는 “문장에만 집착하느라 책상머리에 앉아 필사를 하고 있으니 현장 취재를 통한 새로운 소재나 스토리텔링 발굴이 되지 않고 있다”며 “어설픈 디테일을 보면서 편집자로서 답답할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미문과 감성에 주력하는 단편과 달리 장편은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 ‘종목’이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국내 작가들은 서사 구조가 취약한, ‘단편 같은 장편’을 쓰는 경우가 많다. 편집자 C 씨도 “국내 작가들은 자신의 소설이 스마트폰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며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스토리텔링 없이는 이젠 소설이 읽히기 어려운 때”라고 말했다. 기존 글쓰기의 답습이 아닌, 독자의 마음을 얻기 위한 방향 전환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순문학의 죽음이 회자되는 상황에서 이야기의 힘을 계속 무시했다간 앞으로 문단은 권력이라는 말을 갖다 쓰기도 민망한 종이호랑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지영 기자}

“신경숙은 문학이란 땅을 황폐하게 만들었습니다.” 표절 논란에 휘말린 소설가 신경숙 씨(52)가 마침내 입을 열었지만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셌다. 신 씨는 22일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했지만 표절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답변하지 않았다. 특히 신 씨가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국’을 읽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독자에게 사과한다”고 밝힌 부분에 비판이 집중됐다. “마지못해 사과했다” “논점을 교묘하게 피하는 느낌” “말장난에 불과하다” 등이 주류를 이뤘다. “당신 자전거를 훔치지는 않았는데, 당신 자전거가 우리 집에 있다. 나는 당신 자전거에 가지도 않았는데, 왜 자전거가 내게 있을까란 답변이나 다름없다”고 비꼬는 글도 눈에 띄었다. 인터뷰 기사에 달린 댓글 2000여 개 중 90% 이상이 부정적인 내용이었다. 문학, 출판계도 술렁였다. 문단에선 “신 씨가 자기 혼자 살기 위해 문단 전체의 고민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왔다. 신 씨의 발언이 오히려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를 더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 주요 문학상 수상자인 중견 소설가 A 씨는 “신 씨는 애매한 표현 대신 (표절을) 했으면 했다, 안 했으면 안 했다고 명확하게 인정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소설가 B 씨는 “상당 기간 신간을 출간하기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문단에서 주를 이룬다”며 “독자들이 의심의 눈으로 한국 소설을 읽을 텐데 오해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C출판사 대표는 “이건 사과가 아닌 말장난 수준이다. 진정성이 없다”고 말했다. 신 씨의 해명이 철저히 준비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출판인 D 씨는 “대형 출판사들이 여론의 추세상 더이상 침묵하면 곤란하다고 신 작가를 설득했을 것이고 사전 논의를 거쳐 ‘꼬투리’ 잡히지 않는 수준을 정해 인터뷰한 것 같다”고 밝혔다. 이번 일을 계기로 ‘자기 검열’의 기준을 높이자는 목소리도 나왔다. 등단 10년 차 소설가 D 씨는 “문장 하나하나 쓸 때마다 더욱 신경을 쓰게 될 것 같다”면서 “글을 쓸 때는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젠 스스로 더 엄격하게 경계해야겠다”고 말했다. 소설가 E 씨도 “소설의 사소한 부분이라도 영향을 받은 대목이나 아이디어가 있다면 출처를 확실하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신 씨를 사기 및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23일 본보와 한 통화에서 “고발을 취하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표절 의혹을 제기할 만하고 이에 대해서는 사과한다’는 신 씨의 말은 변명”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고의성’ 여부고 이를 법적으로 가려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종 zozo@donga.com·박훈상 기자}

《 표절 논란에 휩싸인 소설가 신경숙 씨(52)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후폭풍은 오히려 거세졌다. 신 씨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힌 것에 대해 ‘사과 아닌 말장난’이란 비판이 잇따르고 있는 것. 23일 열린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 주최 긴급토론회에서도 의식적이고 명백한 표절이라는 의견들이 나왔다. 기획 시리즈를 통해 우리 문단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와 대안을 찾아본다.한국문학이 어느 때보다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소설가 신경숙 씨의 표절 논란 사태가 불거지면서다. 신 씨는 22일 표절한 것으로 지목된 소설 ‘전설’에 대해 “출판사와 상의해서 ‘전설’을 작품집에서 빼겠다”며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절필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출판사 창비는 “‘전설’이 실린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의 출고를 정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신 씨 개인이 아닌 한국문학의 구조적 문제를 들추는 계기가 됐다.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23일 서울 마포구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개최한 긴급토론회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문학 권력의 현재’에 참석한 발제자들은 오늘의 한국문학의 위기를 지적하면서 “문단의 패거리화, 권력화로 빚어진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 “정당한 비판과 성숙된 논의로 한국문학의 썩은 곳을 도려내야 한다.” 정우영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은 토론회에 앞선 인사말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국문학의 ‘썩은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이 문단 내부에서도 공유됐다는 뜻이다. 23일 긴급토론회 참석자들은 한국 문학권력을 정조준하면서 비판적인 발언들을 쏟아냈다. 오창은 중앙대 교수는 ‘신경숙 표절 국면에서 문학권력의 문제’를 주제로 ‘전투적인 평론가’들의 끊임없는 지적에도 신경숙 표절을 옹호한 문학권력의 폐쇄성을 비판했다. 그는 “문학권력 내부에서 작가 양성과 매체 발간, 문학상 수여와 단행본 발간까지 이뤄지다 보니 독자와의 관계보다는 내부적 질서가 우위에 놓이게 된다”며 “이 질서의 ‘신화적 상징’이 바로 신경숙 문학”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출판자본의 이익만 우선시하는 출판사가 자신만의 문학적 색채를 가지려는 노력부터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교수가 말하는 문학권력은 이른바 3대 주요 문학출판사인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를 가리킨다. 이 출판사들이 단순히 문학 단행본을 많이 내서 문학권력으로 불리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각각 출간하는 문예지 ‘창작과비평’, ‘문학동네’, ‘문학과사회’가 한국문단의 ‘권력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들 문예지에 편집위원으로 소속된 평론가들이 각 사에서 출판되는 문학 작품에 대한 비평을 문예지에 게재하면서 작가의 명성을 굳히는 요인이 됐다. 이 잡지들은 순문학의 부흥을 꾀한다는 목적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독자들의 반응, 즉 ‘시장’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문학의 생산과 유통 과정이 이들 문학권력의 ‘닫힌 체제’ 안에서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2000년대 이후 일부 비평가들이 문학권력들의 칭찬 일변도 평론을 ‘주례사 비평’으로 비판하기도 했지만, 이는 권력의 안과 밖을 가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정은경 원광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도 신 씨의 문학 이력이 이런 ‘문단 카르텔’의 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993년 신 씨가 소설집 ‘풍금이 있던 자리’로 큰 주목을 받은 이후 문학과지성사, 문학동네, 창비에서 고르게 책을 출간하며 “대중성에 이어 창비가 상징하는 진보적 가치와 문학적 상징자본을 일거에 획득해 한국문학의 정상에 우뚝 서게 됐다”고 밝혔다. 이명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이에 대해 “신경숙은 ‘환금성(換金性)’이 탁월한 작가였고 그가 쓴 책을 발행하는 출판사는 그를 ‘한국문학의 보람’이라고 칭하며 떠받들었다”며 “이를 견제해야 할 비평가들은 출판사의 압력 속에서 반체제 지식인이 아닌 산업적 메커니즘의 일부로서 기능을 잃어버렸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신경숙 사태는 한국 문학이 돈과 패거리 권력으로 무장됐던 십여 년의 실험이 희·비극적으로, 어떤 희망 없는 변곡점에 도달한 사건으로 인식돼야 한다”며 “치매 상태에서 집 나가 행적을 알 수 없는 것은 신경숙 소설 속 ‘엄마’가 아니라 오늘의 ‘한국문학’”이라고 했다. 토론자로 참가한 심보선 시인은 “이번 사태는 문학 시장과 문학 비평을 독점한 권력화된 시스템과 거기 결부된 작가와 평론가들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며 “나쁜 관행이 작가들에게 시스템 안에만 들어오면 구미에 맞춰 대충 써도, 표절을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나쁜 시그널(신호)을 보냈다”고 지적했다. 심 시인은 이어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다. 다수의 에이스를 육성하고 발굴해야 한다”고 발언해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지영 기자}

《 소설가 신경숙 씨(52)의 표절 논란이 확산되는 추세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지적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18일 신 씨를 검찰에 고발하자 문학계는 “문단 내부에서 해결할 일”이라며 고발 철회를 주장했다.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는 문단의 자정능력을 강조하며 23일 ‘표절사태와 한국문학권력의 현재’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개최한다. 시인 이종섭 씨는 페이스북에 “작가회의를 탈퇴했다. 가망성이 없다”고 문단에 대한 실망을 밝히기도 했다.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동아일보는 19∼21일 문단과 출판계, 저작권 전문가 10명으로부터 문학작품 표절의 근본적 원인과 근절을 위한 제언을 들었다. 》○ 문단 내 카르텔, 전무(全無)한 표절 기준이 근본 원인 전문가 10명 중 절반 이상이 국내 문학계에 표절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신인 작가로 등단해 기성 작가로 자리 잡는 과정의 폐쇄성을 꼽았다. 계간 ‘작가세계’ 편집위원 박철화 씨(50)는 “과거에 사과하고 인정했다면 이런 사달도 나지 않았을 텐데”라며 ‘문단의 닫힌 구조’를 이야기했다. 그는 1999년 작가세계 가을호에서 신 씨의 소설 ‘작별 인사’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을 표절했다며 처음으로 신 씨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출판사들이 철저하게 신 씨를 감싸면서 이런 의혹이 묻혔다는 게 박 씨의 주장이다. 실제 황석영 등 원로작가부터 유력 문학상을 수상한 권지예, 조경란까지 그동안 문단에서는 유명 작가들의 표절 시비가 여러 차례 있었다(표 참조). 하지만 문단 내부에서만 시끄러웠을 뿐 작가가 부인하고 출판사가 보호해 금세 묻혔다. 출판인 A 씨는 “작가가 되려면 대형 출판사나 신춘문예 같은 좁은 관문을 뚫어야 하는 ‘문학 고시생’이 돼야 한다. 등단 후엔 선후배, 선생과 제자로 묶이면서 서로에 대한 비판이나 표절 의혹에 눈감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등단 후엔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문학 메이저 출판사의 계간지 등에 작품을 연재하고 책으로 묶어 출판해야 ‘밥벌이’가 가능하다. ‘뜨는’ 작가가 되려면 대형 출판사의 편집위원, 평론가가 ‘하사’하는 ‘주례사 비평’과 문학상도 필요하다. 소설가 B 씨는 “많은 작가들이 ‘신경숙은 가더라도 출판사 권력은 영원하다’며 출판사에 밉보이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문학평론가인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문학동네 편집위원 신형철 권희철 씨가 신 씨를 비판한 것에 대해 “대세에 밀린 사후약방문이다. 창비 이상으로 문학동네의 책임이 크다. 문학동네 지면을 통해 이뤄진 신경숙 소설에 대한 글과 대담, 리뷰는 상당 부분이 확대 해석, 문학적 애정 이상의 과도한 의미 부여였다”고 밝혔다. 표절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문학계 내에 존재하지 않는 점도 지적됐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김찬동 법제연구팀장은 “‘몇 개 단어, 문장이 겹치면 표절’이란 구체적 기준이 국내 저작권법 조항에는 없다”며 “저작권 침해 여부는 법원에서 원저작물을 봤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의거성’과 두 작품의 ‘실질적 유사성’을 기준으로 상황에 따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음악계와 학술계 등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표절 문제에 대처해 왔다. 음악계는 핵심 부분 두 소절(8마디)이 똑같을 경우, 학계는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거나 명제 또는 데이터가 유사한 경우 등을 표절로 인정한다는 기준이 마련돼 있다. C출판사 편집자는 “문학계는 작품 표절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문단도 표절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 “문인윤리조사위원회서 백서 만들자” 본보의 제언 요청에 응한 전문가들은 ▽대형 출판사의 지나친 이기주의 버리기 ▽문단의 도덕성 높이기 ▽표절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처벌규정 마련하기 ▽표절 문제에 대한 백서 제작하기 등을 제시했다. 박철화 작가세계 편집위원은 “신 씨의 잘못도 있지만 대형 출판사의 상업주의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베스트셀러 유명 작가의 표절 문제니까 용서해주겠단 생각은 문단의 낮은 도덕 수준을 보여준다”며 “정치인도 자기 표절로 낙마하는 시대에 문단만 사회의 양심 기준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연구윤리규정이 있는 학술계처럼 문학계도 법률가 등을 참여시켜 명확한 윤리강령과 처벌규정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가칭 문인윤리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지금까지의 표절 행위를 종합적으로 담은 백서를 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윤종 기자}

독자가 시집의 가격을 정하고, 백지가 시보다 많다. 독자를 잡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담은 이색 시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시집 ‘명랑생각’, ‘자명한 연애론’의 최명란 시인(52)은 새 시집 ‘복합과거’를 출판하면서 가격란에 ‘책값은 독자가 매깁니다’라고 썼다. 그는 이메일(1210pearl@hanmail.net)로 독자의 주문을 받고 택배로 시집을 보낼 계획이다. 책값은 보통 시집 한 권 가격보다 저렴한 5000원 이상만 내면 된다. 그는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아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실험으로 독자를 붙잡아야 한다”며 “독자에게 책을 부치러 갈 때 설렘도 기대된다”고 했다.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펴낸 시선집 ‘동시’는 시가 인쇄된 쪽보다 없는 쪽이 더 많다. 최수연 편집자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빽빽하게 시가 실려 있으면 읽고서 생각할 여유가 없다”며 “시와 시 사이에 공간을 마련해 빈 종이 위에서 천천히 몽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시’엔 ‘지만지 한국근현대동시작가선집’ 100권에 실린 작가 113명의 작품 9940편에서 고른 방정환, 강소천 아동문학가 등 30명의 35편이 실려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독자가 시집의 가격을 정하고, 백지가 시보다 많다. 독자를 잡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담은 이색 시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시집 ‘명랑생각’, ‘자명한 연애론’의 최명란 시인(52)은 새 시집 ‘복합과거’를 자비 출판하면서 가격란에 ‘책값은 독자가 매깁니다’라고 썼다. 그는 이메일(1210pearl@hanmail.net )로 독자의 주문을 받고 택배로 시집을 보낼 계획이다. 책값은 보통 시집 한 권 가격보다 저렴한 5000원 이상만 내면 된다. 그는 “사람들이 시를 읽지 않아 시집이 팔리지 않는다고 많이 이야기하는데, 다양한 실험으로 독자를 붙잡아야 한다”며 “독자에게 책을 부치러 갈 때 설렘도 기대된다”고 했다.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펴낸 시선집 ‘동시’는 시가 인쇄된 쪽보다 없는 쪽이 더 많다. 최수연 편집자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빽빽하게 시가 실려 있으면 읽고서 생각할 여유가 없다”며 “시와 시 사이에 공간을 마련해 빈 종이 위에서 천천히 몽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시’엔 ‘지만지 한국근현대동시작가선집’ 100권에 실린 작가 113명의 작품 9940편에서 고른 방정환, 강소천 아동문학가 등 30명의 35편이 실려 있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1934년 스물둘이던 저자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횡단여행’을 읽고 집을 나선다. 그는 미국 중북부 미니애폴리스에서 최남단 키웨스트까지 3200km를 이동했다. 대공황 시절 가진 돈도 없어 부랑자처럼 차편을 구걸해 이동해야 했다. 이유는 딱 하나. 숭배하는 작가에게 단 몇 분이라도 글쓰기에 관한 조언이 듣고 싶어서였다. 거지꼴로 무작정 헤밍웨이의 집에 찾아갔지만 헤밍웨이는 예상과 달리 친절했다. 그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절대로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말라는 것” “무얼 쓰든 초고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 “절대로 훌륭한 작가인지 알 길 없는 살아있는 작가들과 경쟁하지 말라” 같은 조언을 들려줬다. 게다가 저자에게 깜짝 제안까지 했다. 자신의 낚싯배 필라호에서 재워줄 테니 뱃일을 도와달라고. 저자는 1년간 헤밍웨이와 함께 필라호를 타고 키웨스트와 쿠바 아바나를 누비며 받은 특별한 작가 수업을 생생히 기록했다. 그는 헤밍웨이가 인정한 유일한 문하생이다. 책을 읽으며, 겉은 무뚝뚝하지만 속은 따뜻한 ‘상남자’ 헤밍웨이를 만나 반갑다. 헤밍웨이는 저자의 원고를 연필로 일일이 수정해 다듬어주고, 작가가 되기 위한 내적 동기를 이끌어 준다. 자신과의 경험을 글로 써서 상업적으로 팔아도 좋다는 통 큰 배포도 보여준다. 헤밍웨이 소설의 팬이라면 소설 뒷이야기가 궁금할 터. 어느 날 헤밍웨이와 저자 앞에 바다가 검게 변할 정도로 수많은 쇠돌고래 떼가 나타나 물 위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오른다. 헤밍웨이는 “묘사가 불가능해. 이런 감격은 세상의 어떤 작가라도 독자들에게 전달할 수 없어”라며 감탄했던 장관을 훗날 ‘노인과 바다’ 속 어부의 꿈속 장면으로 묘사한다. 유명 작가의 표절로 시끄러운 한국 문단이 귀담아들어야 할 이야기도 있다. 헤밍웨이의 말이다. “좋은 작품이란 작품은 몽땅 읽어둬야 해. 그래야 이제껏 어떤 것들이 쓰였는지 알 수 있을 테니.(중략) 그리고 남을 흉내 내지 말게.” 저자는 작가 수업을 받고도 널리 알려진 소설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바다 위에서의 1년을 멋진 기록으로 남겼다. 닮고 싶은 남자와 물보라 일으키는 고래를 사냥하고, 작가 수업까지 받았다니, 같은 남자로서 어찌나 부러운지…. 읽고 또 읽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국내 문학계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해 이른바 ‘문단 권력’으로 불려온 출판사 창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쏟아지는 독자들과 문인들의 비판에 굴복했다. 18일 창비는 강일우 대표이사 명의로 창비 홈페이지 등에 게재한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전날) 보도자료는 ‘표절이 아니다’라는 신경숙 작가의 주장을 기본적으로 존중하면서 문제가 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과 신경숙의 ‘전설’이 내용과 구성에서 매우 다른 작품이라는 입장을 전하고자 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독자들이 느끼실 심려와 실망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야 했다”고 했다. 강 대표는 이 글에서 “17일 본사 문학출판부에서 내부 조율 없이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내보낸 점을 사과드린다”고 했다. 창비의 입장 변화는 독자와 문인, 평론가들의 비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이지만 출판계 안팎에서는 “경박하고 기회주의적이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는 애매한 표현이나 명백한 사과가 아닌 적절치 못한 보도자료를 낸 것에 대해 사과한다는 내용 때문이다. 하지만 출판사 대표 A 씨는 “그렇게 중요한 내용을 대표이사와 상의 없이 문학출판부가 자체 판단을 내리는 것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며 “오히려 백낙청 편집인의 허락을 받고서 창비와 편집인의 이름을 더럽힐 수 없어 ‘창비 문학출판부’ 명의로 낸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출판사 대표 B 씨는 “창비가 과거 SNS가 없던 시절처럼 출판사와 평론가만 덮어주면 해결된다는 식으로 자료를 냈다가 화들짝 놀란 것 같다”며 “백 편집인을 위시로 수직의사결정 구조로 이름난 창비에서 내부 조율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코미디’”라고 했다. 한 창비 관계자는 “(기자가) 다 알 거 아니냐. 더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출판계에선 창비가 자사 직원들을 동원해 신 씨의 소설 표절 논란과 창비의 입장에 대한 분위기를 살피고, 소설가 이응준 씨가 표절 논란 의혹을 제기한 이유를 알아봤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불과 하루 만에 창비가 한발 후퇴한 입장을 밝힌 것은 거센 비난 여론이 집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창비는 전날 표절이 의심되는 대목을 두고 “(신 씨의)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고 해명했다가 질타를 받았다. 창비 홈페이지에는 수십 개의 글이 올라왔다. 게시글에는 ‘창작과 비평이 아닌 표절과 두둔’ ‘일개 기업으로 전락한 창비, 스스로 망조의 길로 들어서다’ ‘이참에 출판사 이름도 바꾸라’ 등 비난 일색이었다. 트위터, 페이스북에도 비난 여론과 함께 ‘창피하다’ 대신 ‘창비하다’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문단에서는 소설가 장강명 씨가 자신의 트위터에 “이게 표절이 아니라면, 한국 소설은 앞으로 짜깁기로 말라죽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학평론가 오길영 충남대 교수는 “창비마저도 문학의 시장논리에 굴복하는구나 싶다. 자본주의 현실에서 출판사도 살아남아야 한다는 시장논리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시장논리만을 중시하는 태도가 문제란 뜻이다”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내부 직원으로 추정되는 창비직원A(@unknownmembera)는 트위터에 “내년은 창작과비평이 세상에 나온 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를 위해 곳곳에서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신경숙 작가의 표절 논란과 관련해 처음의 입장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모두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창비는 이날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자유롭고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언제나 공론에 귀 기울이겠다”는 의견도 밝혔다. 김명인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표절 문제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고 가이드라인과 처벌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며 “그보다 앞서 창비뿐 아니라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도 자사에서 책을 내는 베스트셀러 작가에 대한 외부의 비판을 봉쇄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제안했다. 내년 50주년을 맞는 창비는 문학과지성사와 함께 한국 문학의 요람으로 불렸지만 2000년대 들어 문단 권력으로 군림해 문단의 건강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미시마 유키오는)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憂國)’)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 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신경숙) 소설가 신경숙 씨(52)가 자신의 단편소설 ‘전설’이 일본 작가 작품의 표절이라는 소설가 이응준 씨(45)의 주장이 나온 지 하루 만인 17일 출판사 창비를 통해 입장을 내놓았다. 신 씨는 창비를 통해 발표한 ‘신경숙 작가 표절 논란에 대한 입장’에서 “해당 작품은 알지 못한다”며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씨가 표절 근거로 제시한 두 소설의 흡사한 대목에 대해선 일절 해명하지 않았다. 이 씨는 16일 인터넷매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신 씨의 ‘전설’이 일본 탐미주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 신 씨의 사과에도 문단과 독자들 비판 여론 거세 신 씨의 해명이 나온 후 문단에서는 신 씨에 대한 비판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전날 이 씨의 표절 주장이 나왔을 때만 해도 적지 않은 동료 문인들이 “소설 습작 과정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감싸준 것과는 다른 분위기다. 김명인 인하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신 씨가 우리 문학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작가로 존중하지만 ‘모르는 작품’이라는 해명은 최악의 대답”이라며 “예비 작가 시절 수련할 때 여러 작품을 베껴 써봤을 텐데 모른다는 식의 대답은 자충수”라고 말했다. 소설가 A 씨도 “습작 과정의 실수라고 사과했다면 이해했겠지만 저런 고백은 신 씨가 일본 극우소설가와 문학적 유전자가 같다는 해명밖에 안 된다”고 했다. 독자들의 반응은 더 차갑다. 누리꾼들은 “‘국민 작가’로 불린 신 씨가 표절로 작품을 쓴다면, 어떤 작가를 믿고 한국 문학을 읽겠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누리꾼은 신 씨의 다른 소설 ‘깊은 슬픔’ ‘딸기밭’ 등에서 찾은 해외 유명 작가의 소설과 유사한 문장을 인터넷에 정리해 올리며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 해당 대목 외에도 유사한 부분 나와 창비도 ‘문학출판부의 입장’을 내고 이 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창비는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 데다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라며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아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우국’의 번역자인 김후란 시인은 “(문제가 된 대목이) 미시마 원작의 발상, 표현 방식과 무척 많이 닮아 있다”며 “소설을 보든, 보지 않았든 창작자는 다른 작가와 비슷한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보가 직접 두 작품을 비교해보니 주제나 분위기는 달랐지만 흡사한 문장 외에 설정의 유사점도 눈에 띈다. ‘우국’에선 천황을 위한 쿠데타에 참여하지 못한 신혼의 다케야마 중위가 등장한다. ‘전설’은 6·25전쟁이 일어나자 새신랑인 남자가 아내를 두고 전쟁에 참전하는 내용이다. 신혼의 주인공이 거사(쿠데타 또는 전쟁)에 참여하려 하자 친구들이 만류하는 설정도 비슷하다. 다케야마 중위가 “내가 신혼이라고 나만 안 껴준 걸까” 하는 장면과 ‘전설’의 새신랑이 “내가 신혼이라 친구들은 내게 말도 없이 자원했소”라고 말하는 대목이다. 표절 의혹을 제기한 이 씨는 신 씨와 창비 측의 반박에 대해 “한국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들이 추상같은 판단을 내려줄 거라 믿는다”며 “다만 문인으로서 너무도 치욕스러워 그저 죄스러울 뿐”이라고 밝혔다. 문학평론가 B 씨는 “문학계는 표절에 대한 명백한 규정도, 처벌하는 기구도 없어 표절 논란이 일어나도 그대로 넘어가기 일쑤였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로 공개된 정보를 독자가 실시간 공유하는 만큼 문학의 권위 회복을 위해서도 문학계 표절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전혀 다른 새로운 소설!’ 소설가 편혜영(43)의 새 장편소설 ‘선의 법칙’ (문학동네·사진)의 띠지에 적힌 문구다. 소설을 여러 번 읽은 편집자가 독자에게 읽히고 싶어 고른 문구일 터이다. 1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등단 15년 차 작가가 이전과 전혀 다른 소설을 쓸 수 있을까. 》 “(제게 붙은) ‘혈흔 낭자’ ‘그로테스크’ ‘엽기’ 인장(印章)에 익숙한 독자에겐 낯선 소설이에요. 예전 소설이 절망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그렸다면, 이번 소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삶을 조금씩 연장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려져요. 소설 시작점이 다른 셈이죠.” 소설 속 주인공은 윤세오와 신기정, 둘이다. 윤세오는 가스 폭발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불법 다단계에 빠져 모든 것을 잃은 딸을 조건 없는 애정으로 품은 아버지였다. 세오는 아버지를 괴롭혔던 이수호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기정은 이복동생 하정이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녀는 동생의 휴대전화 발신 기록을 좇아 하정의 발자취를 더듬기 시작한다. 장마다 두 사람의 궤적이 번갈아 진행되며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함께 연결되어 있던 시절에는 그들도 차마 몰랐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 몇 년 후 외로이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 누구도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120쪽) 띠지의 또 다른 문구는 ‘생의 마지막 순간 보내온 간절한 발신음’이다. 편 씨는 독자에게 어떤 발신음을 보내고 싶었을까. 그는 “등장인물들이 고독하게 인생에서 큰 실패를 한 것 같지만, 실패의 순간에도 끝이라 생각 않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우리 옆에 누군가는 실패를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고, 그런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2011년부터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편 씨는 민망한지, 여러 차례 답을 부탁받고서야 짧게 답했다. “가진 운의 총량이 있다면 한 시기에 몰아서 받은 것 같아요. 운이 쌓일수록 ‘빚’도 늘어나는 것 같아 그걸 갚아 나가려면 더 열심히 소설을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재능과 성실 중에서 성실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문학적 재능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뭘 잘하는지 찾으려고 성실하게 썼다”며 “천부적으로 참신한 표현이 툭 튀어나오거나 단어를 편하게 다루지 못해 초고를 쓰고선 퇴고를 많이 한다”고 했다. 글이 쓰고 싶어 늦깎이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고, 2000년 등단 후에도 2008년까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소설을 쓴 그다. “난 한 놈만 팬다”던 영화 속 ‘무대포’ 캐릭터처럼, “오늘은 이 소설만 팬다”는 각오로 소설을 쓸 것 같아 정이 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소설을 다시 읽었다. 편혜영의 소설은 편안한 편혜영이 쓰는 불편한 소설이다. 그 사이 문학이 있기에 일독을 권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설가 신경숙 씨(52)가 일본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소설가 이응준 씨(45)는 16일 인터넷매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란 글을 올리고, 신 씨가 1996년 발표한 단편 ‘전설’이 미시마의 ‘우국(憂國)’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소설 ‘금각사’를 쓴 미시마는 1970년 일본 군국주의 부활을 주장하며 할복자살했다. 1990년 시인으로, 1994년 소설가로 등단한 이 씨는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 ‘내 연애의 모든 것’ 등을 발표한 중견 작가여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 씨는 이 글에서 표절이 의심되는 부분을 인용해 나란히 올려 두었다. 각각 4개와 7개 문장으로 이뤄진 해당 부분은 같은 글이나 다름없이 비슷하다는 게 이 씨의 주장이다. 김후란 시인이 번역한 ‘우국’(1983년)은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라고 돼 있다. 신경숙의 ‘전설’은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고 표현돼 있다. 이 씨는 해당 글에서 “‘다른 소설가’의 저작권이 엄연한 ‘소설의 육체’를 그대로 ‘제 소설’에 ‘오려붙인 다음 슬쩍 어설픈 무늬를 그려 넣어 위장하는’, (중략) 순수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표절’”이라며 “의식적으로 도용(盜用)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는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문단에서 10여 년 전부터 제기됐던 신 씨의 ‘우국’ 표절 의혹을 공개적인 공간에 기록하기 위해 글을 썼다”며 “신 씨에게 개인적인 감정은 없지만, 표절에는 공소시효가 없다”고 말했다. 이 씨는 지금까지 보도됐던 신 씨의 표절 논란에 대한 언론 보도도 정리해 올렸다. 신 씨는 1999년 당시 소설 ‘딸기밭’ ‘기차는 7시에 떠나네’ ‘작별인사’가 국내외 작가를 표절했다는 의혹에 휘말렸다. 이 씨의 표절 주장에 대해 출판계의 의견은 엇갈렸다. 한 문학평론가는 “표절 의혹을 받는 부분이 소설 전체에서 얼마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고려해야 한다”면서도 “해당 대목의 문장들이 흡사한 정도를 볼 때 표절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신 씨의 소설을 출간했던 한 출판사 관계자는 “해당 대목이 아니라 전체 소설을 읽어보면 전혀 다른 소설이기에 표절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 씨의 주장과 관련해 여러 차례 신 씨와 측근에게 연락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전혀 다른 새로운 소설!’ 소설가 편혜영 씨(43)의 새 장편소설 ‘선의 법칙’(문학동네)의 띠지에 적힌 문구다. 소설을 여러 번 읽은 편집자가 독자에게 읽히고 싶어 고른 문구일 터이다. 12일 서울 광화문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등단 15년 차 작가가 이전과 전혀 다른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제게 붙은) ‘혈흔 낭자’ ‘그로테스크’ ‘엽기’ 인장(印章)에 익숙한 독자에겐 낯선 소설이에요. 예전 소설이 절망에 이르기까지 상황을 그렸다면, 이번 소설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삶을 조금씩 연장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그려져요. 소설 시작점이 다른 셈이죠.” 소설 속 주인공은 윤세오와 신기정, 둘이다. 윤세오는 가스폭발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불법 다단계에 빠져 모든 것을 잃은 딸을 조건 없는 애정으로 품은 아버지였다. 세오는 아버지를 괴롭혔던 이수호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다. 기정은 이복동생 하정이 한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녀는 동생의 휴대전화 발신기록을 좇아 하정의 발자취를 더듬기 시작한다. 장마다 두 사람의 궤적이 번갈아 진행되며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함께 연결되어 있던 시절에는 그들도 차마 몰랐을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 몇 년 후 외로이 죽음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그들 누구도 그 죽음을 애도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리라는 것을.”(120쪽) 띠지의 또 다른 문구는 ‘생의 마지막 순간 보내온 간절한 발신음’이다. 편 씨는 독자에게 어떤 발신음을 보내고 싶었을까. 그는 “등장인물들이 고독하게 인생에서 큰 실패를 한 것 같지만, 실패 순간에도 끝이라 생각 않고 누군가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우리 옆에 누군가는 실패를 이겨내려고 애쓰고 있고, 그런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2011년부터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연거푸 수상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편 씨는 민망한지, 여러 차례 답을 부탁 받고서야 짧게 답했다. “가진 운의 총량이 있다면 한 시기에 몰아서 받은 것 같아요. 운이 쌓일수록 ‘빚’도 늘어나는 것 같아 그걸 갚아 나가려면 더 열심히 소설을 써야 할 것 같아요.” 그는 재능과 성실 중에서 성실을 자신의 장점으로 꼽았다. 그는 “문학적 재능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서 뭘 잘하는지 찾으려고 성실하게 썼다”며 “천부적으로 참신한 표현이 툭 튀어나오거나 단어를 편하게 다루지 못해 초고를 쓰고선 퇴고를 많이 한다”고 했다. 글이 쓰고 싶어 늦깎이로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고, 2000년 등단 후에도 2008년까지 직장 생활을 병행하면서 소설을 쓴 그다. “난 한 놈만 팬다”던 영화 속 ‘무대뽀’ 캐릭터처럼, “오늘은 이 소설만 팬다”는 각오로 소설을 쓸 것 같아 정이 갔다. 인터뷰를 마치고 소설을 다시 읽었다. 편혜영의 소설은 편안한 편혜영이 쓰는 불편한 소설이다. 그 사이 문학이 있기에 일독을 권한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한 해를 마무리하는 성탄절. 당신이 연말 인사가 담긴 성탄절 편지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갈까. 책에 답이 있다. 저자가 만난 미국 노스다코타주립대 앤 버넷 교수는 평범한 소도시 사람들의 성탄절 편지를 모았다.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수천 장 분량이다. 버넷 교수는 편지 속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와 구절을 분류했다. 감사 인사보단 ‘정신없다’ ‘분주하다’ ‘허덕이다’ ‘피곤하다’ 같은 말이 주를 이뤘다. 버넷은 “다들 ‘당신보다 내가 더 바쁘다’고 자랑한다. 자신이 이웃들만큼 바쁘지 않으면 더 분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저자는 미국 워싱턴포스트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다. 일과 가정에 얽매이다 보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미처 하지 못한 일, 해야 할 일을 떠올리는 밤이 이어진다. 함께 사는 남편은 별 도움이 안 된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잡다한 일 더미뿐이었다고 후회할까 싶다. 저자는 ‘왜 이렇게 쫓기며 사는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삶이 가능할까’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한다. ‘시간활용 학술대회’에 참가해 시간연구가 여러 명에게 조언을 듣고 사회학자, 인류학자, 뇌과학자를 만나 학문적 배경을 탄탄히 쌓는다. 발로 뛰면서 시간에 쫓기는 자와 시간을 즐기는 사람을 만나고 ‘균형 잡힌 삶’을 보장하는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의 현장을 취재한다. 그렇게 모은 취재기록을 바탕으로 저자는 일, 사랑(가정), 놀이(여가) 영역에서 균형을 달성하는 법을 알려준다. 일터의 상황은 절망적이다. 아버지는 바빠서 얼굴도 못 보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더 바쁘게 일하고, 어머니는 육아 부담에 일을 줄였다가 한직을 전전하게 되는 ‘마미 트랙’에서 허우적거린다. 그나마 아이 있는 아버지는 ‘아빠 보너스’라도 받지, 아이 있는 엄마는 ‘엄마 벌점’ 속에 더 나쁜 일자리로 내몰린다. 저자는 주간 60∼70시간 근무를 강요하면 단기 효과를 거둘 순 있지만 장기적으론 비생산적임을 강조한다. 창조성과 생산성을 높이려면 첨단 정보기술(IT) 기기를 지급할 것이 아니라 ‘다르게 일하는 방식’을 존중하고 탄력 근무제를 선택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 인건비 줄이기에 혈안이 돼 있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이런 연구 결과는 뜬구름 잡는 소리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 하지만 저자의 경고까지 외면할 수 있을까. 저자는 1990∼2000년대에 나고 자라 막 노동 시장에 진입하는 Y세대(18∼35세)에 주목한다. 미국에만 800만 명이다. 그들은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받지 못하면 과감히 회사를 떠나 자신의 능력만으로 모험을 시작하거나 자발적 실업을 택한다. 최근 수많은 젊은이가 직장을 관두고 나와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도전하는 한국도 귀담아들어 볼 만하다. 사랑(가정) 영역에선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골라 하고 기분 좋을 때만 아이를 돌보는 남자들의 반성을 촉구한다. 여자들도 첫아이가 태어났을 때 ‘좋은 엄마’란 규범에 휘둘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남자에게 일을 맡기는 변화가 필요하단다. 여가 부분에서는 너무 피곤해서 TV에만 빠지는 어리석음만 저지르지 않길 강조한다. 저자는 느긋하게 사는 사람들의 나라 덴마크를 소개한다. 그곳에서 배운 것은 단순하고 소박한 지금 이 순간에서 아름다움과 따스함을 발견하는 ‘휘게’(hygge·소박하고 여유로운 시간을 뜻하는 덴마크어)의 미학이다. 시간에 쫓기는 삶을 바꾸려면 세상과 나를 동시에 바꿔야 한다. 세상을 향해 “시간은 권력이다. 나의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줄 수 없다”고 요구해야 하고, 나를 향해선 현재의 순간을 몰입하고 만끽하는 노력을 해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다. 시간은 공짜가 아니다. 원제 Overwhelmed.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미국 알래스카 출신인 소설가 데이비드 밴(49)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두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옮겼다. 아들에게 알래스카에서 함께 살자고 청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거절한 다음 해 권총으로 자살했다. 충격으로 장기간 불면에 시달린 밴은 아버지의 죽음을 견디고,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 그렇게 10년을 써서 완성한 소설이 ‘자살의 전설’이다. 소설에선 아버지와 함께하기 위해 알래스카로 건너간 소년이 아버지의 절망을 목도하고 대신 목숨을 끊는다. 》‘자살의 전설’은 20여 년 가까이 출판사를 찾지 못해 빛을 보지 못했다. 2008년 한 대학 출판부에서 소량 출간됐고, 뉴욕타임스(NYT)에서 이를 극찬한 리뷰 기사를 쓰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세계 12개 문학상을 수상하고 20개 언어로 번역됐다. 지난해 한국에 소개돼 황현산 문학평론가와 여러 소설가들이 ‘특별한 소설’로 추천했다. 밴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번역된 소설 ‘고트 마운틴’(아르테)의 출간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이번 소설엔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사슴 사냥을 떠났다가 세 번의 살생을 저지르는 소년이 등장한다. 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입주 작가로 머물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의 소설을 흥미롭게 읽은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의 조해진 작가(39)와 함께였다. ▽조해진=소설 속에 개인적인 상처를 드러내기란 쉽지가 않다. ▽밴=글쓰기는 인생에서 두 번째 기회를 준다. 아버지가 알래스카로 오라고 할 때 거절했는데 글쓰기를 통해 인생을 다시 구성할 수 있었다. 글쓰기는 추하고 나빴던 경험도 아름답게 바꿔 줄 수 있다. 또 비극을 겪었기에 재료가 있어 글도 쓸 수 있었다. ▽조=첫 소설 출간까지 집필 시간도 길고 진통도 많았다. ‘고트 마운틴’은 어떻게 썼나. ▽밴=나는 ‘무의식 글쓰기’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 명상을 하고, 전날 쓴 글을 다시 읽고, 아무런 계획 없이 빠르게 써 나간다. 소설 결말도 정해 두지 않는다. 이번 소설도 마지막 15페이지를 남겨 두고 ‘이렇게 쓰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의 전설’에서도 무의식 중에 소년이 자살한다는 문장을 써 놓고서 놀랐다. 그때부터 무의식으로 쓰고 있다. ▽조=놀랐다. 난 미리 플롯(plot)을 짜고, 결말도 가능한 한 생각을 하고 쓴다. 특히 장편 같은 경우엔 더 그렇다. 영국 워릭대 문예창작과 교수인데 학생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나. ▽밴=작가마다 다르다는 전제로, 내 이상한 글쓰기도 이야기해 준다. 다만 매일 아침 글을 쓰라고, 어떤 순간에도 쓰라고 요구한다. 특히 풍경, 자연 묘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배경 묘사 속에서 주인공의 내면, 갈등이 드러나고 비극도 그 안에서 나온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기 멋대로라 제어할 수가 없다.(웃음) ▽조=이번 소설 이야기를 들려 달라. ▽밴=고대 그리스 비극은 늘 인간이 구현한 지옥을 그린다. 현재라는 단절된 시공간 속에서 서로 잘 아는 인간들이 어떻게 서로 상처를 주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지를. ‘고트 마운틴’은 단 이틀 반 동안의 시간, 사냥터라는 밀폐된 공간 속에서 재현된 현대판 그리스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지옥의 정점을 소년의 회고로 그리고 싶었다. ▽조=첫 책 출간까지 20년 넘게 걸렸는데,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했거나, 등단했지만 무명에 머물러 있는 작가에게 해 줄 말이 있나. ▽밴=모든 작가는 불안하기 마련이다. 나도 아침마다 전날 쓴 원고를 읽으면 쓰레기(shit) 같다. 데뷔 전엔 8년간 항해사로 일했고 6년간 글을 쓰지 않기도 했다. 30대를 허송세월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작가에겐 행운(luck)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웃음)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알래스카 출신인 미국 소설가 데이비드 밴(49)은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두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함께 캘리포니아로 옮겼다. 아들에게 알래스카에서 함께 살자고 청했던 아버지는 아들이 거절한 다음해 권총으로 자살했다. 충격으로 장기간 불면에 시달린 밴은 아버지의 죽음을 견디고,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썼다. 그렇게 10년을 써서 완성한 소설이 ‘자살의 전설’이다. 소설에선 아버지와 함께 하기 위해 알래스카로 건너간 소년이 아버지의 절망을 목도하고 대신 목숨을 끊는다. ‘자살의 전설’은 20여 년 가까이 출판사를 찾지 못해 빛을 보지 못했다. 2008년 한 대학 출판부에서 소량 출간됐고, 뉴욕타임스(NYT)에서 이를 극찬한 리뷰 기사를 쓰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후 세계 12개 문학상을 수상하고 20개 언어로 번역됐다. 지난해 한국에 소개돼 황현산 문학평론가와 여러 소설가들이 ‘특별한 소설’로 추천했다. 밴이 국내에서 두 번째로 번역된 소설 ‘고트 마운틴’(아르테)의 출간을 맞아 한국을 찾았다. 이번 소설엔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사슴사냥을 떠났다가 세 번의 살해를 저지르는 소년이 등장한다. 9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입주작가로 머물고 있는 그를 만났다. 그의 소설을 흥미롭게 읽은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의 조해진 작가(39)와 함께였다.▽조해진=소설 속에 개인적인 상처를 드러내기란 쉽지가 않다.▽밴=글쓰기는 인생에서 두 번째 기회를 준다. 아버지가 알래스카로 오라고 할 때 거절했었는데 글쓰기를 통해 인생을 다시 구성할 수 있었다. 글쓰기는 추하고 나빴던 경험도 아름답게 바꿔줄 수 있다. 또 비극을 겪었기에 재료가 있어 글도 쓸 수 있었다.▽조=첫 소설 출간까지 집필 시간도 길고 진통도 많았다. ‘고트 마운틴’은 어떻게 썼나.▽밴=나는 ‘무의식 글쓰기’를 한다. 아침에 일어나 한 시간 명상을 하고, 전날 쓴 글을 다시 읽고, 아무런 계획 없이 빠르게 써나간다. 소설 결말도 정해두지 않는다. 이번 소설도 마지막 15페이지를 남겨두고 ‘이렇게 쓰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살의 전설’에서도 무의식중에 소년이 자살한다는 문장을 써놓고서 놀랐다. 그때부터 무의식으로 쓰고 있다.▽조=놀랐다. 난 미리 플롯(plot)을 짜고, 결말도 가능한 생각을 하고 쓴다. 특히 장편 같은 경우엔 더 그렇다. 영국 워익대 문예창작과 교수인데 학생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나.▽밴=작가마다 다르다는 전제로, 내 이상한 글쓰기도 이야기해준다. 다만 매일 아침 글을 쓸 것을, 어떤 순간에도 쓰라고 요구한다. 특히 풍경, 자연 묘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배경 묘사 속에서 주인공의 내면, 갈등이 드러나고 비극도 그 안에서 나온다. 하지만 학생들은 자기 멋대로라 제어할 수가 없다.(웃음)▽조=이번 소설 이야기를 들려 달라.▽밴=고대 그리스 비극은 늘 인간이 구현한 지옥을 그린다. 현재라는 단절된 시공간 속에서 서로 잘 아는 인간들이 어떻게 서로 상처를 주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지를. ‘고트 마운틴’은 단 이틀 반 동안의 시간, 사냥터라는 밀폐된 공간 속에서 재현된 현대판 그리스 비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만든 지옥의 정점을 소년의 회고로 그리고 싶었다.▽조=첫 책 출간까지 20년 넘게 걸렸는데,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되지 못했거나, 등단했지만 무명에 머물러 있는 작가에게 해줄 말이 있나.▽밴=모든 작가는 불안하기 마련이다. 나도 아침마다 전날 쓴 원고를 읽으면 쓰레기(shit) 같다. 데뷔전엔 8년간 항해사로 일했고 6년간 글을 쓰지 않기도 했다. 30대를 허송세월로 보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작가에겐 행운(luck)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웃음)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호박꽃을 따서는/무얼 만드나./무얼 만드나.//우리 애기 조그만/초롱 만들지./초롱 만들지.//반딧불을 잡아선/무엇에 쓰나./무엇에 쓰나.//우리 애기 초롱에/촛불 켜 주지./촛불 켜 주지.”(동시 ‘호박꽃 초롱’) 아동문학가 강소천(1915∼1963·사진)의 동요시집 ‘호박꽃 초롱’이 강소천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복간됐다. 1941년 출간된 ‘호박꽃 초롱’은 강소천이 1930년 이후 동아일보와 ‘아이생활’, ‘신소년’ 등 지면에 발표한 작품을 모은 시집이다. 생동감 있는 시적 언어, 깊이 있는 관조와 사색을 담은 것으로 평가받는 동시 33편, 동화 2편이 수록돼 있다. 시집의 서시(序詩)는 백석 시인이 맡아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는 강소천을 예찬했다. 서석규 아동문학가는 해설에서 “우리말과 우리글을 없애려고 총칼을 휘두르며 억압하던 일제 말기에 펴낸 매우 소중한 겨레의 유산”이라며 “한결같이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동심의 바탕 위에 하늘과 구름 등을 통해 아득히 멀리 있는 그리운 꿈길로 우리들을 안내한다”고 추천했다. 출판사 재미마주는 세로쓰기를 가로쓰기로 바꾸고 맞춤법만 수정해 초간본 형태로 복간했다. 동화집 9권도 올해 복간될 예정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960년대 초 아버지는 네다섯 살인 딸과 단둘이 기차를 타고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딸에게 바다 냄새를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고 해변을 걷다가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을 우연히 만났다. 밤이 되자 아버지는 해수욕장 모랫바닥에 세운 판자 방에 딸을 재우고선 바로 옆 텐트로 옮겨 친구들과 문학을 안주 삼아 술을 마셨다. 한참이 지나서야 딸 생각이 나서 헐레벌떡 달려갔다. 껌껌한 방에서 잠이 깬 딸은 가냘픈 목청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가 달려갔을 땐 목이 쉰 채로 지쳐 소리도 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너와 나에게 완벽한 행복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 텐데”라며 후회했다.》아버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81)이 딸 이민아 목사(1959∼2012)의 3주기를 맞아 딸에게 건네지 못했던, 가슴속에만 묻어뒀던 이야기를 담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열림원)를 최근 출간했다. 딸의 죽음 이후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1인칭 독백이 딸과의 2인칭 대화가 되고, 그러다 마음을 남과 나눌 수 있는 3인칭이 되면서 산문으로 묶었다. 그는 9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딸이 이혼하고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때, 제 아이를 잃고 주저앉았을 때, 병에 걸려 고통받을 때도 그때 그 바다에서처럼 나는 딸 곁에 없었다”며 “눈물과 모래로 범벅이 돼 있던 딸의 작은 손가락에 입을 맞추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딸을 잃고서 딸의 죽음 자체보다 평소 ‘굿나잇’같이 평범한 말을 해주지 못한 게 더 아프게 다가왔다. 딱 한 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밤이 있다. 딸은 아버지에게 새 잠옷을 자랑하고, 굿나잇 키스를 받고 싶었지만 글쓰기에 푹 빠진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그저 방 밖에서 “아빠, 굿나잇” 하고 인사했다. 글의 호흡이 끊길까 봐 아버지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흔들었다. “아이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내가 다 잘해줄 텐데, 죽고 나서 후회했어요. 책을 통해서 그런 후회를 아버지들이 겪지 않도록 해주고 싶어요. 제 솔직한 고백과 참회가 아버지와 딸을 화해하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책에는 ‘지성인’ 이어령의 모습이 아닌 ‘초보 아빠’, ‘보통 아버지’ 이어령의 고백이 절절하다. 아내를 입덧으로 고생하게 만든 배 속의 딸을 잠시 원망하고, 첫 시험을 치르고 첫사랑을 겪는 딸에게 적절한 충고를 해주지 못해 고민하고, 이발소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딸 결혼식에 늦은 이야기 등이다. 그는 “딸에 대한 글을 쓰다가 여러 번 중단했고 차마 다시 읽지 못해서 직접 교정도 보지 못했다”며 “문장이 많이 흔들렸지만 잘 쓰려고 하면 감정을 속일 것 같아 다듬지 않고 솔직하게 썼다”고 했다. 향불 앞에서 독백하듯 낭독했던 딸에게 쓴 시도 수록했다. 딸의 전화기가 꺼진 걸 알고서도 단축번호 1번을 누르고, 장례를 치르고 진한 눈물을 삼킨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며 살아서 미안하다면서 딸의 이름을 부른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네가 혼자 긴 겨울밤을 그리도 아파하는데/나는 코를 골며 잤나 보다.” 이 전 장관은 책 인세 수입을 딸이 생전에 했듯 희망을 잃은 청소년을 돕는 일에 쓸 계획이다. “인세는 딸이 번 것과 마찬가지예요. 슬픔을 넘어서려면 딸이 하려고 했던 일을 이어서 해야겠지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매년 공예 전공자 2만 명이 졸업하지만 전공을 살려 일자리 구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게다가 결혼, 출산으로 인한 경력단절 문제로 고충을 겪고 있죠. 이들이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1일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스타트업 기업(신생 벤처기업)인 백패커 김동환 대표(33)의 목소리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강단이 묻어났다. 백패커가 지난해 6월 출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아이디어스닷미는 수공예 작가가 직접 만든 귀걸이 반지 목걸이 팔찌 등을 판매하는 핸드메이드 소품 전문 모바일 쇼핑몰이다. 문을 연 첫 달 거래액은 76만 원에 불과했지만 11개월 만인 지난달 월 2억 원으로 크게 성장했다. 누적 다운로드가 27만 건, 제품 조회는 1억1200만 회에 달한다. 참여 작가도 71명에서 현재 458명으로 늘었다. 인기 작가가 월 1000만 원 이상 수입을 올리는 등 현재까지 작가들에게 9억 원의 수익을 안겼다. 공예 전공자가 아이디어스닷미를 통해 스스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단녀(경력단절녀)’들은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됐다.○ 사기꾼 취급도 받았지만… 아이디어스닷미가 성공을 거두기 전엔 작가들에게 사기꾼 취급도 여러 번 받았다. 김 대표는 소품을 판매할 작가를 모으려고 오프라인 장터를 찾아다니며 작가 100여 명을 만났다. 작가들은 손님인 줄 알고 반기다가 명함을 건네자 인상부터 찌푸렸다. 온라인 쇼핑몰에 입점했다가 수수료나 납품한 작품만 날리고 쇼핑몰이 갑자기 문을 닫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 주변에서도 수공예 온라인 쇼핑몰은 상품성이 없다고 만류했다. 김 대표는 작가들을 설득하는 한편 철저하게 그들의 편의를 우선시했다. 웹 기반이 아닌 모바일 기반으로 아이디어스닷미를 만든 이유다. 그는 “손으로 늘 작업하는 작가들은 컴퓨터 앞에 앉을 시간도 내기 힘든데, 스마트폰으로 판매할 작품을 올리고 구매자 관리도 할 수 있어 작업 중에 쇼핑몰을 관리하기 편리하다”고 했다. 수수료도 월 5만5000원만 받아 판매자 부담을 줄였다. 1개도 판매할 자신이 없으면 판매한 만큼 수수료를 낼 수 있다. 수수료를 챙기려고 마구잡이로 판매자를 모으기보다 사전 심사를 거쳐 제품 완성도가 뛰어난 판매자만 섭외해 경쟁력도 높였다. 지금까진 수공예 작가들이 자신의 소품을 판매하려면 오프라인 장터나 길거리에 무작정 좌판을 깔고 온종일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소품을 만들거나 아이디어를 구상할 시간이 부족했다. 새로운 시장을 찾게 된 작가들은 ‘지방에선 판매할 경로를 찾기가 더 힘들었는데 시장을 만들어주어 고맙다’ ‘판매가 부진해도 소비자에게 냉정하게 평가를 받을 수 있어서 도움이 됐다’ 등 감사 메일을 백패커에 보내온다.○ 집회 현장에서 키운 꿈 김 대표는 2000년 한양대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세상이 아름다운 줄 알고 살았는데 대학에 들어와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세상을 바꾸기 위해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했다. 각종 집회 현장 맨 앞에서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다가, 훗날 사면됐지만 전과 기록도 남았다. 2학년 1학기엔 전 과목에서 F학점을 받았지만 현장에서 학교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배웠다. 그는 “집회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 농민은 다들 능력도 의식도 있었지만 사회적 약자란 이유로 많은 핍박을 받았다. 그때부터 실력 있는 사람들이 인정받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2008년 대학을 졸업한 후 대형 포털사이트 업체에서 서비스기획 업무를 했다. 사내 분위기는 자유롭고 일도 재밌었지만 커다란 조직 안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범위는 정해져 있었다. 1년 반 만에 회사를 나와 한창 모바일 분야를 개척하던 스타트업 기업 인사이트미디어로 자리를 옮겼다. 스마트폰 열풍 속에 회사는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3년을 일하고 회사가 시스템으로 잘 굴러가는 것을 보고 새로운 걸 하고 싶어 미련 없이 관뒀다. 이후 2012년 11월 100만 원으로 개발자 김동철 씨(31)와 함께 백패커를 창업했다. 백패커는 ‘푸시 단어장’ ‘굿슬립’ 등 유료 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2013년 6월엔 직원들과 함께 45일간 베트남,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등 4개국 20개 도시를 돌며 여행도 하고 일도 하는 파격을 선보였다. 지금까지 개발한 유료 앱으로 회사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 오래 소원하던 아이디어스닷미를 출시하고 성공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우리 공예는 수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만큼 토양이 비옥하다. 손재주가 뛰어난 한국 공예 작품을 미국, 일본 등지에 알릴 수 있도록 더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960년대 초 아버지는 네다섯 살인 딸과 단둘이 기차를 타고 바다로 여행을 떠났다. 딸에게 바다 냄새를 선물하고 싶어서였다. 아버지는 딸의 손을 잡고 해변을 걷다가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을 우연히 만났다. 밤이 되자 아버지는 해수욕장 모랫바닥에 세운 판자 방에 딸을 재우고선 바로 옆 텐트로 옮겨 친구들과 문학을 안주삼아 술을 마셨다. 한참이 지나서야 딸 생각이 나서 헐레벌떡 달려갔다. 껌껌한 방에서 잠이 깬 딸은 가냘픈 목청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가 달려갔을 땐 목이 쉰 채로 지쳐 소리도 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다시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너와 나에게 완벽한 행복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을 텐데”라며 후회했다. 아버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81)이 딸 이민아 목사(1959~2012년)의 3주기를 맞아 딸에게 건네지 못했던, 가슴 속에만 묻어뒀던 이야기를 담은 ‘딸에게 보내는 굿나잇 키스’(열림원)를 최근 출간했다. 딸의 죽음 이후 3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1인칭 독백이 딸과의 2인칭 대화가 되고, 그러다 마음을 남과 나눌 수 있는 3인칭이 되면서 산문으로 묶었다. 그는 9일 동아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딸이 이혼하고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때, 제 아이를 잃고 주저앉았을 때, 병에 걸려 고통 받을 때도 그때 그 바다에서처럼 나는 딸 곁에 없었다”며 “눈물과 모래로 범벅이 돼있던 딸의 작은 손가락에 입을 맞추며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이 전 장관은 딸을 잃고서 딸 죽음 자체보다 평소 ‘굿나잇’같이 평범한 말을 해주지 못한 게 더 아프게 다가왔다. 딱 한 번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면 돌아가고 싶은 밤이 있다. 딸은 아버지에게 새 잠옷을 자랑하고, 굿나잇 키스를 받고 싶었지만 글쓰기에 푹 빠진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그저 방밖에서 “아빠, 굿나잇”하고 인사했다. 글의 호흡이 끊길까봐 아버지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손만 흔들었다. “아이가 살아서 돌아온다면 내가 다 잘 해줄 텐데, 죽고 나서 후회했어요. 책을 통해서 그런 후회를 아버지들이 겪지 않도록 해주고 싶어요. 제 솔직한 고백과 참회가 아버지와 딸을 화해하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책에는 ‘지성인’ 이어령의 모습이 아닌 ‘초보 아빠’, ‘보통 아버지’ 이어령의 고백이 절절하다. 아내를 입덧으로 고생하게 만든 뱃속의 딸을 잠시 원망하고, 첫 시험을 치르고 첫 사랑을 겪는 딸에게 적절한 충고를 해주지 못해 고민하고, 이발소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딸 결혼식에 늦은 이야기 등이다. 그는 “딸에 대한 글을 쓰다가 여러 번 중단했고 차마 다시 읽지 못해서 직접 교정도 보지 못했다”며 “문장이 많이 흔들렸지만 잘 쓰려고 하면 감정을 속일 것 같아 다듬지 않고 솔직하게 썼다”고 했다. 향불 앞에서 독백하듯 낭독했던 딸에게 쓴 시도 수록했다. 딸의 전화기가 꺼진 걸 알고서도 단축번호 1번을 누르고, 장례를 치르고 진한 눈물을 삼킨 목구멍으로 밥을 넘기며 살아서 미안하다며 딸의 이름을 부른다.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네가 혼자 긴 겨울밤을 그리도 아파하는데/나는 코를 골며 잤나 보다.” 이 전 장관은 책 인세 수입을 딸이 생전에 했듯 희망을 잃은 청소년을 돕는 일에 쓸 계획이다. “인세는 딸이 번 것과 마찬가지에요. 슬픔을 넘어서려면 딸이 하려고 했던 일을 이어서 해야겠지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초로(初老)의 수녀가 태어나 립스틱을 처음 바른 날이 있었다. 일탈이고 사건이었다. 하얀 종이 위에 동백꽃 닮은 분홍색 입술 도장을 찍고선 사랑의 정의에 대해 썼다. ‘사랑은 자신도 모르게.’ 9년 전인 2006년 12월 1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출판사 마음산책 사무실. 정은숙 대표는 사무실을 찾은 이해인 수녀에게 자신의 립스틱을 건넸다. 당시 정 대표는 마음산책에서 ‘기쁨이 열리는 창’, ‘사랑은 외로운 투쟁’을 출간한 수녀의 육필 원고, 편지 등을 모으고 있었다. 대화 중에 수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입술에 시선이 가 닿았다. “그래, 입술 도장을 받아보자.” “평생 한 번도 발라본 적 없는데….” 수녀는 거절하고 잠시 망설이더니 입술에 립스틱을 엷게 발랐다. 화장이라기보다 소녀가 색연필로 색칠놀이하는 듯했다. 엽서 크기의 켄트지 위에 입술을 찍고선 ‘삶은 끝도 없는 보물찾기입니다’라고 썼다. 정 대표는 “재미없게 삶이 뭐예요. 사랑에 대해 써주셔요”라고 했다. 수녀는 다시 입술 도장을 찍었다. 사랑을 물어서일까, 분홍빛이 더 선명해졌다. 마음산책이 8일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했거나 출간 예정인 여성 작가의 입술 사진을 동아일보에 공개했다. 모두 30여 명으로 고 박완서 작가를 비롯해 천양희, 강석경, 황인숙, 나희덕, 정이현 등이다. 서양화가 고 김점선 작가도 포함됐다. 작고한 박완서 작가는 2008년 2월 당시 77세 나이로 입술 도장을 찍었다. 나이에 비해 입술 자국도, 메시지도 도발적이다. 박 작가는 입술을 살짝 벌리며 여배우처럼 과감하게 찍었다. 그러고선 입술 아래 ‘당신께 드릴 것은 오직 이뿐’이라고 썼다. 지켜보던 정 대표와 직원들은 “야해요”라며 열광했다. 박 작가는 “너무 심한가. 독자들은 문학적으로 이해해 줄 거야”라며 웃었다. 김점선 작가는 사랑에 대한 정의를 적어 달라고 청하자 “너네 미쳤느냐. 사랑에 정의가 어딨어. 그냥 하는 거야”라며 소리쳤다. 그러더니 힘찬 글씨로 썼다. ‘사랑을 정의 내릴려고 덤비는 자들은 지금 당장 죽어!’ 그다웠다. 나희덕 시인 입술엔 물집 잡힌 자국이 선명하다. 지난해 12월 세월호 참사 기억 달력 ‘기억하라. 그리고 살아라’ 제작에 참가한 직후였다. “올해는 너무 아픈 해”라던 시인은 ‘부르튼 입술로 사랑을 말하다’라고 남겼다. 입술 도장을 찍은 여성 작가들은 처음엔 쑥스러워서 거절하다가 일단 시작하면 아이처럼 즐거워하면서 원하는 작품(?)이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찍었다. 그러면서 다른 작가의 입술 모양, 색깔, 글귀를 궁금해하기도 했다. 천양희 시인은 딱 한 번만 입술을 찍었다. 갈색 립스틱을 바른 그의 입술은 작심하고 그린 것처럼 산을 닮았다. 천 시인은 캘리그래피 같은 글씨로 ‘사랑은 산이다’라고 아래에 썼다. 정 대표는 “2020년 마음산책 설립 20주년이 되는 날 비매품 책으로 묶어 독자들에게 선물할 계획”이라며 “독자들은 작가가 펜 같은 도구를 빌리지 않고 입술로 남긴 흔적을 통해 독특하고 진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