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종구

양종구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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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건강해야 100세까지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yjongk@donga.com

취재분야

2025-06-23~2025-07-23
건강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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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경기3%
  • “친구가 부러워 근육 만들었더니 시니어 최강 됐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강석헌 씨(77)는 두 살 많은 누나 임종소 씨를 댄스스포츠 동아리에서 만나 10년 넘게 친구로 지내고 있다. 서로 고령에 따른 허리 협착 증세가 와서 5년 전 함께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했다. 근육 운동을 하면 좋아진다는 얘기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임 씨는 열심히 근육을 만들어 허리도 튼튼해졌고 2019년 한 보디피트니스 대회에서 2위를 했다. 이런 임 씨의 소식을 그해 6월 6일 자 이 칼럼으로 전하면서 임 씨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TV에까지 소개되는 등 유명해졌다. 임 씨는 지금 시니어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강 씨는 운동을 등한시해 몸에 큰 변화가 없었다. 이러던 강 씨가 지난해 1월부터 작심하고 근육을 만들어 약 1년 반 만인 5월 WNC(World Natural Championship) 시그니처 보디피트니스대회 남자 피지크 시니어부(50세 이상)에서 정상에 올랐다. “솔직히 제가 너무 느슨했죠. 술도 끊지 못하고 다소 방만하게 지냈죠. 제가 바둑을 좋아하는데 밤샘을 자주 하다 보니 운동도 등한시하고…. 그런데 종소는 열심히 근육을 만들어 잘나가는 겁니다. 따라다니며 응원만 하다 보니 자존심도 상했죠. 뭐 서로 경쟁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래서 저도 독하게 마음먹고 절제하면서 근육을 만들었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하면 되더라고요.” 임 씨가 몸을 만든 경기 용인시 메카헬스짐에서 보디빌딩 국가대표 출신 박용인 관장의 개인레슨(PT)을 주 3회 받으며 근육을 만들었다. 하루 2시간 넘게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하루 쉬는 리듬으로 운동했다. 식단도 바꿨다. 소주 안주로 즐기던 삼겹살, 곱창 등 기름진 음식을 피하고 쇠고기와 닭가슴살 등 단백질과 야채 위주로 먹었다. 그러자 효과가 나타났다. 8개월 뒤 지난해 8월 열린 안성시장배 보디피트니스대회 시니어부에서 4위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우승한 것이다. 근육을 키우자 많은 게 달라졌다. 허리 협착으로 인한 통증이 사라졌다. 자세가 잡히니 옷맵시도 좋아졌다.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강 씨는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힘이 없으면 밤길에 젊은이들에게도 밀릴 수 있다. 힘이 생기니 어떤 젊은이들에게도 밀리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오랫동안 복용하던 고혈압 약과 혈전 약도 끊었다. 강 씨는 젊었을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다. 10대 후반엔 권투를 했다. 권투선수로 성공해보겠다는 목표도 있었고 관장의 기대도 받았지만 부모의 반대, 직장생활과의 병행 등으로 힘들어 포기했다. 군복무를 하면서는 마라톤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달리고 등산하고 댄스스포츠를 하는 등 건강에 신경을 썼지만 어느 순간 허리 협착이 오는 등 힘이 달리기 시작했다. 근육 운동은 과거 하던 운동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하면 할수록 근육이 골고루 채워진다는 느낌이랄까. 안 생길 것 같은 복근이 잡히고, 이두박근도 튀어나오고, 참 신기했다”고 했다. 강 씨는 어느새 근육 운동 전도사가 됐다. 그는 “솔직히 나도 ‘하면 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종소 보면서 하면 된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하니 됐다.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강 씨의 달라진 모습을 부러워하면서도 행동에 나서는 친구는 드물다고 했다. “아파트도 30, 40년 되면 수천만 원, 수억 원 들여 리모델링을 하거나 재건축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우리 몸에는 왜 투자하지 않을까요. 특히 나이 좀 먹은 사람들은 몸 리모델링은 고사하고 먹는 것 등 아끼느라 더 몸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으로서 국보 1호가 우리 몸이잖아요. 우리 몸에 투자해야 합니다.” 강 씨가 근육 운동으로 새 삶을 살면서 입에 달고 다니는 말이다. 뒤늦게 근육 운동을 시작했지만 대회에서 우승하면서는 다른 사람에게 ‘자극제’가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계속 몸을 만들어 대회에 출전하겠다고 했다. 그는 “대회 출전이란 목표가 있으니 더 열심히 훈련하고, 대회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니 동기부여가 돼 더 땀을 흘리는 선순환이 된다”고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더니 강 씨는 친구 덕분에 건강한 노년을 만들어 가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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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동 시간을 최우선으로…” 이영희 전 연대원주병원장의 건강법[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이영희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위원장(66)을 만나 인터뷰하면서 참 멋있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운동과 함께하는 삶. 100세 시대에 딱 맞는 삶이다. ‘운동은 의학(Exercise is medicine)’이란 과학적 연구 결과를 실천하고 있다. 중학교부터 시작한 농구를 지금도 하고 있고, 연세대 의대 시절부터 겨울엔 스키를 타고, 여름엔 윈드서핑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때인 2021년에는 자전거에 집중해 집(원주)이 있는 강원도는 물론 전국을 두 바퀴로 돌았다. “코로나19가 퍼질 때 실내체육관이 폐쇄돼 농구를 할 수 없어 자전거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1995년부터 잠시 타다 잊고 있었는데 거리두기를 하며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였습니다.” 이 위원장은 1994년 연세대 원주의대에 몸담게 된 이듬해부터 산악자전거(MTB)를 타기 시작했다. 집을 원주로 옮기면서 산이 많은 지역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MTB로 산을 올랐다. 1998년 미국 교환교수로 가면서 자전거 탈 기회가 없었지만 코로나19가 자전거를 그의 삶 속으로 다시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는 “미국에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스포츠를 즐겼고, 귀국해서는 보직을 맡아 바쁘다 보니 농구와 스키 타기도 빠듯했다”고 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최고의료책임자였던 그는 올림픽 이후에도 같이 운동하며 봉사활동을 계속하자며 2019년 결성된 ‘오싸디(올림픽 스키경기 의무지원팀 사이클 디비전)’에 합류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이 위원장은 포장도로와 비포장을 함께 탈 수 있는 그래블바이크(Gravel Bike)를 즐긴다. “MTB는 너무 위험해 다칠 수 있다. 포장도로를 달리다 가끔 산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차로는 못 가는 곳을 가서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강원도는 언덕과 산이 많아요. 서울 한강은 10km 달려도 상승고도가 100m도 안 되는데 강원도는 어딜 가든 10km면 100m가 넘어요. 50km 타면 500m가 되는 것이죠. 정말 자전거 타고도 살이 빠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실감했어요.” 이 위원장은 코로나19가 한창 확산세이던 2021년에 주 3회 자전거를 타 주당 평균 약 100km, 한해에 5000km를 달렸다. 그랬더니 체중이 10kg이나 빠졌다. 그는 지금도 주 1~3회 자전거를 타고 한 번에 30~60km를 달리고 있다. “자전거를 죽자 살자 타지는 않습니다. 전 풍광을 즐깁니다. 특히 아무나 가지 못하는 곳을 자전거를 타면 갈 수 있어요. 그런 멋진 곳에서 커피 한잔하는 맛, 안 해본 사람은 절대 모르죠.” 이 위원장의 ‘운동 본능’은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다. 서울 광운중 다닐 때 축구와 농구를 즐겼던 이 위원장은 “발로 하는 것보다 손으로 하는 게 좋았다”며 농구에 빠져들었다. ‘농구 명문’ 용산고, 연세대에 들어가선 자연스럽게 하는 농구와 보는 농구까지 즐겼다. 연세대 의대 농구 동아리 활동을 했고 병원장을 지낸 원주세브란스병원에도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목요일 농구를 했다. “목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 이영희에겐 농구 하는 시간”으로 못 박았다. 그는 “이런 확실한 목표 의식이 없다면 운동을 평생 즐기기 힘들다”고 했다. “다들 ‘바쁠 텐데 어떻게 운동하느냐?’고 묻죠. 전 운동시간을 먼저 정해놓고 제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저 사람에게 저 시간은 언터처블이야 건들지 말자’는 분위기를 만들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운동을 오랫동안 즐길 수 없습니다.” 그는 ‘환갑잔치는 농구코트에서’란 버킷리스트를 2007년 제자들과 함께 실천하기도 했다. 이 위원장은 “원주 국민체육센터에서 제자들과 유니폼 다 맞춰 있고 환갑 기념 농구 경기를 했다. 내 유니폼에는 ‘60세부터 새로운 시작’이란 문구도 달았다. 제자들이 각자 유니폼에 글자를 새겨 ‘이영희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의미로 단체 사진도 찍었다.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고 했다. 대학 1학년인 1977년 겨울 강원 진부령 알프스스키장에서 처음 스키를 접했다. 우연한 기회에 체험했는데 눈과 스키가 너무 좋아서 겨울 방학 때마다 스키장에서 보냈다. 그는 “리프트도 없던 시절이었다. 내가 기타 치며 노래도 불렀는데 산장을 운영하던 분이 방학 때마다 와서 도와달라고 했다. 그래서 겨울 방학 땐 스키 타며 산장에서 일도 도와줬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겨울 시즌에 10회 이상 국내외 최상급 코스에서 스키를 타고 있다. 1982년 경기 양수리에서 윈드서핑을 배웠고, 1990년대 초반 경남 거제 옥포대우병원, 부산 봉생병원 등 바다 근처 파견근무 때 무동력 수상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 위원장은 이렇게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재활의학을 전공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스포츠계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그는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교수가 되고 싶었다. 당시 재활의학이 국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였다”고 회상했다. “제 전공이 척추 손상, 뇌 손상 재활의학 전문이다 보니 치료했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사회에 적응하기 쉽지 않았죠. 그래서 운동을 시켜야겠다고 마음 먹고 휠체어 농구단을 만들었습니다. 당시 농구를 할 수 있는 휠체어 한 대가 500만 원이었습니다. 제 친구하고 강원도 장애인 스포츠 후원회를 만들어 돈을 모아 휠체어 5대를 사서 팀을 만들었죠.” 자연스럽게 장애인 스포츠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이 위원장은 1998년 나가노 겨울 패럴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 패럴림픽 때 한국 대표팀 주치의를 맡았다. 2002년부터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의무분과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 활약하며 유치와 성공 개최에 힘을 보탰다. 2013년부터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서도 일했다. 2019년부터는 세계반도핑기구(WADA) 치료목적면책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런 활약 덕분에 의사로서는 드물게 체육훈장(맹호장)을 받기도 했다. “운동은 모든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꼭 필요합니다. 이는 학술적으로도 이미 증명됐습니다. 전 제자들에게 운동하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뇌도 운동을 해야 다시 채울 수 있습니다. 이런 비유를 해서 설명합니다. 병에다 콩 조 쌀을 넣기만 하면 바로 차죠? 그러면 흔들어줘야 많이 넣을 수 있죠. 뇌도 마찬가지입니다. 뇌를 비우려면 쌓인 것을 밑으로 내려줘야 합니다. 운동이 최고입니다. 농구 할 때 저 공의 속도가 얼마고 무게가 얼마인지 계산해서 받지 않죠. 감각적으로 받죠. 거의 동물과 같은 수준의 레벨로 움직입니다. 이럴 때 머릿속이 비워지게 됩니다. 운동한 뒤 공부가 더 잘 되는 이유입니다.” 이 위원장은 연세대 원주의대를 정년 퇴임한 뒤 디지털로 건강을 관리해주는 ㈜에스알파테라퓨틱스의 사업총괄자문을 해주고 있다. “우리 일상생활 습관을 바꿈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합니다. 매일 운동하는 습관이 중요한데 그것을 스마트폰 앱으로 관리해주는 시스템이죠. 당뇨를 예로 들면 치료의 3요소가 약을 복용하며 식이요법을 하고 운동하는 것이죠. 약은 의사들이 처방해주면 환자들이 꼬박꼬박 잘 챙겨 먹어요. 그런데 식이요법하고 운동은 잘하기 힘들죠.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관리해주는 것입니다.” 이 위원장은 ‘100세 시대’에는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제가 몇 살까지 살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농구를 하고 스키, 자전거를 타야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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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때 한 해 자전거 5000km 타고 10kg 감량했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이영희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위원장(66)은 평생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운동은 의학’이란 과학적 연구 결과를 실천하고 있다. 중학생 때 시작한 농구를 지금도 하고 있고 연세대 의대 시절부터 겨울엔 스키를 타고 여름엔 윈드서핑을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시기엔 자전거에 집중해 집(원주)이 있는 강원도는 물론이고 전국을 두 바퀴로 돌았다. “코로나19가 퍼질 때 실내체육관이 폐쇄돼 농구를 할 수 없어 다시 자전거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거리 두기를 하며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였습니다.” 이 위원장은 1994년 연세대 원주의대에 몸담게 된 이듬해부터 산악자전거(MTB)를 타기 시작했다. 집을 원주로 옮기면서 산이 많은 지역 특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MTB로 산을 오른 것이다. 1998년 미국 교환교수로 가면서 자전거를 탈 기회가 없었는데, 코로나19가 자전거를 그의 삶 속으로 다시 가져다 놓은 것이다. 그는 “미국에선 아이들과 함께하는 스포츠를 즐겼고, 귀국해서는 보직을 맡아 바쁘다 보니 농구와 스키 타기도 빠듯했다”고 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최고의료책임자였던 그는 올림픽 이후에도 같이 운동하며 봉사활동을 계속하자며 2019년 결성한 ‘오싸디’(올림픽 스키경기 의무지원팀 사이클 디비전)에 합류해 자전거를 타고 있다. 이 위원장은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함께 탈 수 있는 그래블바이크를 즐긴다. “MTB는 너무 위험해 부상 위험이 높았다. 도로를 타다 가끔 산속으로 빠져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차로는 못 가는 곳을 가서 즐기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이 위원장은 코로나19가 확산세이던 2021년 주 3회 자전거를 타 주당 평균 약 100km, 한 해에 5000km를 달렸다. 그랬더니 체중이 10kg이나 빠졌다. 그는 지금도 주 1∼3회 자전거를 타고 한 번에 30∼60km를 달리고 있다. 그는 “강원도는 언덕과 산이 많다. 서울 한강은 10km를 달려도 누적 상승고도가 100m도 안 되는데 강원도는 어딜 가든 10km를 달리면 100m가 넘는다. 50km를 타면 누적 상승고도가 500m가 된다. 자전거를 타고도 살이 빠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실감했다”고 했다. 서울 광운중 시절 축구와 농구를 즐겼던 이 위원장은 “발로 하는 것보다 손으로 하는 게 좋았다”며 농구에 빠져들었다. ‘농구 명문’ 용산고, 연세대에 들어가선 자연스럽게 하는 농구와 보는 농구까지 즐겼다. 연세대 의대 농구 동아리 활동을 했고 병원장을 지낸 원주세브란스병원에도 동아리를 만들어 매주 목요일 농구를 했다. “이영희에겐 목요일 오후 7시부터 10시까지가 농구하는 시간”으로 못 박았다. 그는 ‘환갑잔치는 농구코트에서’란 버킷리스트를 2007년 제자들과 함께 실천하기도 했다. 대학 1학년이던 1977년 겨울 강원 진부령 알프스스키장에서 스키를 처음 접했다. 우연한 기회에 체험했는데 눈과 스키가 너무 좋아서 겨울방학 때마다 스키장에서 보냈다. 1982년 경기 양수리에서 윈드서핑을 배웠고 1990년대 초반 경남 거제 옥포대우병원, 부산 봉생병원 등 바다 근처 파견근무 때 무동력 수상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렇게 스포츠를 좋아하다 보니 이 위원장은 재활의학을 전공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스포츠계와의 인연도 시작됐다. 척추 손상 및 뇌 손상 분야 재활의학 전문인 그는 장애인들의 스포츠 참여를 도왔고, 1998년 나가노 겨울패럴림픽,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패럴림픽 때 한국 대표팀 주치의를 맡았다. 그는 “그때 겨울 스포츠 메가 이벤트의 전문적인 의료지원 경험을 많이 쌓았다”고 했다. 2002년부터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에서 활동했고, 대회 유치와 성공 개최에 힘을 보탰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의무분과에서도 일했다. 이런 활동 덕분에 의사로서는 드물게 체육훈장(맹호장)까지 받았다. “운동은 모든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꼭 필요합니다. 이는 학술적으로도 이미 증명됐습니다. 농구를 하고 스키, 자전거 등을 타야 죽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사는 게 중요합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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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핑 없어도 얼마든 가능” 2023 미스터&미즈 코리아 김진호-김연주 씨의 우승 비결[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최근 보디빌딩과 보디피트니스 관련 많은 대회가 있지만 대한보디빌딩협회가 주최하는 대회만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도핑테스트를 받고 있다. 스포츠 공정성을 훼손하는 약물을 복용하는 선수는 절대 참가할 수 없다. 대한보디빌딩협회에서 인정한 선수만 대한체육회 주최 전국체전, 국제보디빌딩연맹(IFBB) 주최 세계선수권에 출전할 수 있다.이런 측면에서 6월 2일부터 4일까지 경북 경산실내체육관에서 대한보디빌딩협회 주최로 열린 2023 미스터&미즈 코리아에서 남녀 그랑프리를 차지한 김진호 씨(36·경기 광명시체육회)와 김연주 씨(47·울산광역시보디빌딩협회)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김진호 씨는 남자 90kg이상급에서 우승한 뒤 각 부문 챔피언들끼리 겨루는 그랑프리에서도 정상에 섰다. 김연주 씨는 여자 보디피트니스 –163cm급에서 우승한 뒤 역시 그랑프리를 차지했다.김진호 씨는 꿈 많은 고교 시절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보디빌더가 동경의 대상이었고, 20년 가까이 근육을 만들어 최근에 빛을 보기 시작했다. 그는 미스터코리아 대회는 물론 전국체전 보디빌딩대회를 직접 보며 “전국체전 무대에 서는 꿈을 키웠다”고 했다.“2000년대 중반이었습니다. 헬스클럽에서 근육운동을 시작했고 20살이 되던 해부터 전국체전을 목표로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선배들의 사진 및 동영상을 보면서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김진호 씨가 처음 전국체전 무대에 선 때는 2018년. 근육운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훨씬 넘어서였다. “몸 좋고 운동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지역 예선부터 경쟁이 심했죠. 그리고 근육이라는 게 바로 키워지지 않더라고요. 근육만 키운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물론 일찍 두각을 나타내는 분들도 있지만 전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요즘은 50세 넘어서도 좋은 몸을 유지하는 분도 많아서 경쟁이 정말 치열합니다. 어느 정도 경력도 있어야 하고 운도 따라야 합니다.”2018년 첫 전국체전 출전에 90kg 이하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2019년 모처럼 서울에서 열린 제100회 전국체전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했다. 아직 금메달을 획득하진 못했다. 올 10월이 금메달을 딸 수 있는 기회다. 김진호 씨는 이번 미스터&미즈 코리아에서 그동안 출전했던 90kg급 이하가 아닌 90kg급 이상으로 출전해 우승했고, 그랑프리까지 차지했다.“운동을 하다 보면 장점은 키우고 단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그동안 90kg급 이하로 출전하면서 체중을 많이 줄여야 했습니다. 무리하게 다이어트를 하다 보니 근육 손실도 많이 일어나고 근육의 볼륨감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체중을 많이 줄이지 않아도 되는 90kg급 이상으로 출전했습니다.”보디빌더는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보디빌딩 선수로 활약하려면 최소 5~7년 이상 운동을 해야 전국대회에서 입상이 가능하다. 하루 아침에 근육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도 음식조절 등 끊임없이 관리하면서 하루 3~5시간 운동해야 한다. 김진호 씨는 “종목 특성이 있을 뿐이다. 다른 운동도 다 힘든 부분이 있다. 이런 상황을 이겨내야 살아남는 것이다”고 말했다.김진호 씨는 매일 3시간 이상 훈련하고 있다. 한두 시간은 웨이트트레이닝에 할애하고 1시간에서 1시간30분은 유산소운동을 한다. ‘근육이 잡혔는데도 유산소운동을 하느냐?’고 묻자 “지방도 계속 쌓이니 걷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음식조절에선 지나친 절제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채소와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지만 탄수화물도 섭취한다고. 물론 대회를 앞두고는 탄수화물은 절제한다.김연주 씨는 2015년 10월 헬스클럽 관장의 권유로 한 대회에 출전해 3위를 한 것을 계기로 보디빌딩에 빠졌다. 당초 댄스스포츠를 전공했는데 결혼한 뒤 그만뒀고, 체중이 불어서 헬스클럽을 찾았고, 관장이 다이어트해서 대회에 나가보라고 했는데 덜컥 3위에 입상한 것이다. “사실 댄스스포츠를 그만둔 뒤 무대가 그리웠어요. 보디빌딩대회도 무대에서 포즈를 잡으며 경쟁하잖아요. 그게 재밌었습니다. 그리고 근육을 만들수록 제 몸이 달라지는 것도 흥미로웠습니다. 이번엔 이렇게 운동해볼까?하면서 상체와 하체를 나눠 다각도로 운동을 합니다.”운동 열심히 하다 좀 먹으면 다시 살이 붙었다. 그런데 다시 운동하면 살이 빠지면서 몸이 다르게 바뀌어 있었다. 웨이트트레이닝에 재미가 붙어 오전 9시에 헬스클럽으로 출근해 점심 잠깐 먹고 오후 4시까지 운동했다. 체중을 10kg 이상 줄였다. 대회 직전엔 다이어트하면서 운동해야 하기 때문에 근육운동 하기 전에 비해 15kg 가까이 준 상태가 된다.김연주 씨는 전국체전 보디빌딩에 여자부가 없어 안타깝다고 했다. 조만간 시범종목으로라도 치러지면 출전해 금메달을 획득하는 게 목표다. 김연주 씨는 이미 국가대표로도 활약했다. 2019년 동아시아 보디빌딩&피트니스 선수권대회에 출전해 피지크 부문에서 정상에 올랐다. 김연주 씨는 최근 보니피트니스 부문으로 바꿨다.보디빌딩 여자부는 여자다움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가고 있다. 국제보디빌딩연맹(IFBB)은 2002년부터 보디빌딩 여자 부문의 심사기준을 여성미를 강조하는 식으로 바꿨다. 요즘 여성 보디빌딩은 근육질 몸매보다는 팔과 다리, 허리, 엉덩이, 가슴 등 부분별 근육을 통해 여성미를 더 부각시킬 수 있도록 바뀌었다. 이에 따라 경쟁 부문도 세분했다. 전반적으로 여성성을 강조하면서도 근육질을 가장 강조하는 부문이 피지크이고 그 다음이 보디피트니스, 비키니피트니스 등의 순이다. 보디피트니스와 비키니피트니스는 피지크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육질을 덜 강조한다. 그러나 근육과 여성성의 조화를 중시하는 점은 같다. 부문별 경쟁 기준도 몸무게가 아닌 키로 정했다김연주 씨는 당초 근육을 강조하는 피지크 부분에 출전하다 지난해부터 보디피트니스 부문으로 바꾼 것이다. 김연주 씨는 지난해엔 –163cm 부문에서 1위를 했지만 그랑프리는 차지하지 못했다. 올핸 그랑프리까지 차지했다.김진호 씨와 김연주 씨는 각종 사설 대회에는 출전하지 않는다. 세계반도핑위원회(WADA)의 기준에 맞춰 정직하게 땀의 결과로만 심판을 받고 싶기 때문이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3-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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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두대간과 100대 명산 완봉했더니 35kg 감량” 정용권 씨의 건강법[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 어머니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걷기 시작해 등산으로 35kg을 감량하며 블랙야크가 인정하는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완봉했다. 백두대간도 종주했다. 그리고 곧바로 대한민국 100대 섬&산 도전에 나섰다. 정용권 씨(54)가 “6월 4일 블랙야크 백두대간을 완주했다. 그리고 바로 대한민국 100대 섬&산 도전에 나섰다. 오늘 임자도 대둔산을 올랐다”고 6일 밝혔다. 임자도는 전남 신안군에 있는 섬이다. 정 씨는 2021년 8월 7일 ‘어머니 돌아가신 후 무작정 걷기 시작… 35kg 감량했어요’란 주제로 양종구 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에 등장했던 인물이다. 그가 지난해 5월 29일 블랙야크가 인정한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완봉했을 때도 그 스토리를 전했고 이번에도 전한다. 100세 시대에 계속 목표를 정하고 도전하는 모습이 많은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정 씨는 2021년 8월 7일부터 올 6월 6일까지 도전 기간 667일 만에 블랙야크 백두대간을 종주했다. 블랙야크 백두대간 종주는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와 주요 봉우리 인증샷으로 인증을 해주고 있다. 정 씨는 “쉬는 날 대한민국 산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도 하고 건강도 챙기고 일석이조의 삶”이라고 했다. 그는 이 모든 도전을 아내 인필선 씨(52)와 함께 하고 있다. 정 씨는 6년 전 시작한 걷기와 등산으로 즐겁고 건강한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정 씨는 당시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계기로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한 달 고생하다 가셨다. 사실 그때까지는 죽음이라는 것을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어머니를 지켜보며 죽음이라는 게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도 죽을 수 있다고 처음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정 씨의 체중이 120kg 정도 나갔다. 그는 “아, 내가 무분별하게 살았구나. 정말 생각 없이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일을 마치고 저녁때 허기진다는 이유로 밥 3공기에 맥주 4캔을 마시고 바로 자는 게 생활이었다고 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그는 “가장 쉬운 게 걷기다. 처음엔 아파트 한 바퀴 도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다음 공원도 가고 마트도 가고…. 조금씩 늘려갔다. 어머니 돌아가신 게 내겐 인생의 전환점이다”고 했다. 1km에서 2km, 2km에서 5km, 5km에서 10km. 걷는 거리가 늘었다. 자연스럽게 걷기가 생활화가 됐다. 정 씨는 어느 순간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몸이 더 많이 걸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운동량을 계속 늘렸다. 그러다 보니 매일 10km 이상을 걷게 됐다”고 했다. 등산을 한 것도 몸이 반응해서란다. 산 오르는 것도 처음엔 집 주변 해발 200m 낮은 산부터 300m, 400m로 차근차근 올렸다. 어느 순간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등 명산도 가게 됐다. 정 씨는 걷기 시작 1년째부터 운동 루틴이 현재 하고 있는 것으로 정해졌다고 했다. 매일 11km를 걷고 주말에는 산으로 가는 게 그의 운동 루틴이다. 2년 정도 지나면서부터 해발 1000m 이상급 산을 오르게 됐다. 2020년 8월부터는 대한민국 100대 명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체력이 좋아지다 보니 한라산을 찾게 됐다. 한라산 7개 코스를 다 돌아봤다. 설악산도 12개 코스를 4, 5번에 걸쳐 훑었다. 산이 너무 좋아졌다. 온갖 나무와 꽃, 바위, 계곡, 능성 등 경관도 좋았다. 산과 하나 되는 느낌도 좋았다. 정상에 올랐을 때의 쾌감이라니…. 어느 순간 능선을 타는 맛을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산 전체의 맛까지 느꼈다. 그러다 산을 좀 체계적으로 타보자는 생각에 대한민국 100대 명산을 오르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번 산에 오르면 3~4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능선을 탈 경우엔 6~7시간 걸린다. 이젠 산을 타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어진다. 내게 등산은 생활의 활력소다”고 했다. 100대 명산에 이어 백두대간 종주에 나선 것도 똑같은 이유다. 등산은 자연 속에서 하는 인터벌트레이닝(Interval Training)으로 에너지 소비가 많다. 인터벌트레이닝은 일정 강도의 운동과 운동 사이에 불완전한 휴식을 주는 훈련 방법이다. 예를 들어 100m를 자기 최고 기록의 50%에서 최대 90%로 달린 뒤 조깅으로 돌아와 다시 100m를 같은 강도로 달리는 것을 반복하는 훈련으로 강도가 높다. 엄격한 의미에서 등산을 인터벌트레이닝과 동급으로 놓을 순 없다. 하지만 산을 오를 때 급경사와 완만한 경사, 평지, 내리막이 반복된다. 이를 휴식할 때까지 1시간 이상 하니 일종의 인터벌트레이닝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등산은 1, 2시간 안에 끝내기보다는 5~8시간까지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운동량이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운동생리학적으로 강도 높은 훈련과 불완전 휴식을 반복하면 그 자체로 엄청난 체력을 소비하게 된다. 어느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가 된다. 하지만 우리 몸은 어느 시간이 지나면 그런 훈련 상황에 적응하게 돼 에너지 소비량을 높이게 된다. 1시간 동안 10km 달리는 것보다 100m 인터벌트레이닝을 10회 하는 게 에너지 소비엔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정 씨는 다이어트를 위해 산을 탄 게 아니라는 것을 강조했다.“솔직히 다이어트를 생각하고 산을 탔으면 지금까지 못 왔을 겁니다. 일찌감치 포기했을 거예요.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걸었고 걷다 보니 산을 올랐고, 산이 좋아 산을 타다 보니 어느 순간 다이어트란 선물이 제게 와 있었습니다. 혹 다이어트를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걷은 것과 등산을 취미로 삼으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그럼 시간이 지나면 살은 자연스럽게 빠집니다.” 정 씨는 요즘 옷 입는 맛이 난다고 한다. 3년 전부터 체중은 그대로지만 몸이 탄탄해져 옷맵시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도 80kg대 초반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정 씨가 이렇게 열심히 산을 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내 인필선 씨였다고 했다. “처음부터 집사람이 함께 해줬어요. 함께 걷고 산에도 함께 갔죠. 제가 흔들리지 않고 지금까지 등산을 즐기고 있는 데는 아내의 도움이 컸습니다. 도시락과 과일 등 필요한 것도 잘 챙겨줬습니다. 산에 가면 먹는 것도 중요합니다.” 정 씨는 걷고 산을 타다 보니 살이 빠졌고 건강도 얻었다. 부부간의 정도 더 두터워졌다. 그는 “평생 아내와 함께 산을 타며 즐겁고 건강하게 살겠다”고 했다. 100대 명산 완봉 필증과 백두대간 종주 필증을 받은 정 씨 부부는 “이젠 100대 섬&산 완봉을 향해 함께 간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3-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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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니스에 빠져 살았더니…연말랭킹 3개 전체 1위” 전업주부 김선영 씨의 건강법[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18년 국내 랭킹대회 운영 3개 단체(대한테니스협회·KTA,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KATA, 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KATO)에서 연말랭킹 여자 국화부 1위를 차지했던 김선영 씨(56)는 “테니스가 좋아 열심히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했더니 따라온 결과”라고 회상했다. 3개 단체 연말랭킹 동시 1위는 김 씨가 처음이었다. 국내 아마추어 테니스 여자 최강으로 우뚝 선 김 씨의 출발은 단순했다. “1990년대 말 직업 군인인 남편을 따라 강원도 양구에서 살 때 테니스를 접했어요. 건강을 위해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남편, 아이들과 가볍게 노는 수준이었죠. 그런데 초등학교 시절 육상 선수를 한 경험 덕에 발이 빨라 성장 속도가 빨랐습니다. 군인 가족들과 어울려 칠 때 여기저기서 ‘잘한다’했죠.”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한 때는 한국축구대표팀이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출해 대한민국이 들썩이던 2002년. 그는 “한국이 포르투갈을 1-0으로 꺾을 때 응원 간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기억한다”고 했다. 남편이 대전 유성에서 교육받을 일이 있어 갔을 때 군인 가족 친선테니스대회에 출전했는데 초반에 탈락해 자존심이 상했다. 그는 “내 스스로 잘한다고 자만했던 것 같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았다. 당시 인천 부평에 살 때였는데 처음 테니스동호회(영화클럽)에 가입해 아이들 학교 갈 때 함께 ‘출근 도장’을 찍으며 훈련했다. 거의 매일 테니스 쳤다”고 회상했다. 2003년 서울 송파에 정착한 뒤 송파화목클럽에 가입했다. 그때 동호인 대회가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회원들이 지도해주고 함께 쳐줘 실력은 좋아졌지만 출전은 쉽지 않았다. 여자부는 개나리부(초급)와 국화부(고급)로 나뉘는데 동호인 대회는 가능한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도록 복식과 혼합복식만 열린다. A~E 등급이 있어 챔피언끼리는 한 조가 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그렇다 보니 초보자는 파트너 정하기가 쉽지 않다. 김 씨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2006년 6월 28일 개나리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개나리부 우승은 국화부로 승격을 의미합니다. 개나리부에 출전하는 모든 사람은 국화부가 되려고 간절하게 노력해요. 하지만 우승 못 하면 국화부에 낄 수가 없어요. 전 2년 반 만에 국화부에 올라갔습니다. 10년을 해도 국화부에 못 오르는 분도 많아요.” 국화부에 올라가자마자 6개월 만에 우승했다. 국화부에선 초보자지만 개나리부에서 실력자였던 터라 국화부 베테랑하고 나가서 거둔 성과였다. 그때부턴 고난이 시작됐다. 챔피언이니 핸디캡을 적용해 하급 선수와 파트너가 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당시엔 8강도 감지덕지했다. 열심히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3위까지 올랐고, 우승도 했다. 또 우승하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우승 트로피만 100개 넘게 쌓았다”고 했다. 2011년 국민생활체육 전국테니스연합회(현 KTA) 연말 랭킹 1위를 차지했다. KATO에서도 한 때 연말랭킹 1위를 했다. 결국 2018년에 3개 단체 1위로 올라선 것이다. 그는 “솔직히 1위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테니스가 좋았고 열심히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했더니 3개 단체 1위가 돼 있었다. 정말 기뻤고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활동하는 동호회가 달라 자주 치지는 못하지만 남편하고도 테니스를 가끔 친다. 김 씨는 “남편하고 혼합복식 대회에 출전하려고 했는데 결국 못했다”고 했다. 사연은 이렇다. “부부 대회가 있어 나가려고 두 번이나 준비를 했어요. 한 번은 비가 와서 연기돼 무산됐고, 한번은 남편이 너무 열심히 훈련하다 엘보(팔꿈치 부상)가 와서 출전을 못 했죠. 제가 랭킹이 높으니 남편으로선 너무 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나봐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함께 안 나가길 잘했어요. 경기하다 싸울 수도 있잖아요. 이젠 수도권엔 부부 대회가 없어져 출전하기도 힘들어요. 지방엔 아직 부부대회가 있지만 둘이 스케줄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그래도 부부동반 친선경기나 초청 경기가 있으면 함께 나가 게임을 하고 있다. 김 씨는 대회에 많이 출전할 땐 부상도 입는 등 힘겨운 시절도 겪었다. 그때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이 힘이 됐다. 김 씨는 “남편도 테니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마음껏 테니스를 할 수 있도록 배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주위에서 보면 전업주부 같은 경우는 남편들이 대회에 나가지 말라고 반대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러나 우리 남편은 늘 배려해주고 지지해줬다”고 했다. 테니스로 많은 것을 얻었다.“테니스를 통해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전업주부지만 취미 활동으로 사회활동을 배운 것 같고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대인관계도 좋아졌어요. 정말 인생 공부 많이 했어요. 물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당연히 따라왔죠.” 김 씨는 “테니스 하는 것은 마치 건강 보험에 가입한 느낌”이라고 했다. “테니스를 치면서 정신적으로도 즐거운 경기를 하고 특히 엄청 건강해졌다. 현재까지도 특별한 지병 없이 즐겁게 테니스를 치고 있다. 주변에서도 건강 미인이라는 소리를 듣는다”고 했다. 김 씨는 아마추어테니스계에선 전국구 스타다. 지방 대회 어딜 가든 알아보는 사람이 많다. 그는 “요즘은 유튜브에 내 게임 영상이 올라가다 보니 대회장에서 알아보고 반겨주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됐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김 씨에게 골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테니스를 치지 못하게 하니 필드로 나가게 된 것이다. 테니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골프에서도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김 씨는 “2년여 ‘외도’ 기간에 76타까지 쳤다”고 했다. 아마추어 골퍼들의 꿈인 ‘싱글 스코어’다. 그는 “테니스도 재밌지만 골프가 주는 매력도 쏠쏠했다. 확 펼쳐진 자연 속에서 맘껏 채를 휘두르다 보면 스트레스도 날아가고 건강이 따라오는 느낌이다. 지금도 테니스가 최애(最愛) 스포츠지만 가끔 지인들과 골프도 즐긴다”고 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저에게는 또 다른 기회였어요. 테니스에만 몰두했었는데…. 골프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으니까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저에겐 행운이었습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다시 테니스에 집중하고 있다. 김 씨의 현재 KATA 국화부 랭킹도 1위다. 하지만 이젠 성적에 연연하진 않는다. 그는 “올해 30개 대회 정도 출전했는데 성적은 들쭉날쭉하다. 8강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우승하기도 하고…. 이젠 사람들 만나 즐겁게 테니스 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좀 욕심을 내면 발목 등에 부상이 온다”고 했다. 김 씨는 “이렇게 여유를 찾는 것도 테니스가 준 교훈이다. 욕심내면 다친다. 이젠 즐기며 100살까지 공 치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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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남편 따라 테니스 치다가 국내 아마추어 최강 됐죠”

    1990년대 말 직업군인인 남편을 따라 강원도 양구에서 살 때 테니스를 접했다. 스포츠라기보다는 남편, 아이들과 가볍게 노는 수준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육상 선수를 한 경험 덕에 발이 빨라 성장 속도가 빨랐다. 군인 가족들과 어울려 칠 때 성적이 좋았다. 2000년대 중반 동호회에 들어가 아마추어 대회를 알았고 본격적으로 출전한 뒤 국내 최강이 됐다. 전업주부 김선영 씨(56)는 2018년 국내 랭킹대회 운영 3개 단체(대한테니스협회,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 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에서 연말 랭킹 1위를 차지했다. 3개 단체 연말 랭킹 동시 1위는 그가 처음이었다. “솔직히 1위를 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어요. 테니스가 좋았고 열심히 훈련하고 대회에 출전했더니 3개 단체 1위가 돼 있더라고요. 기뻤고 자랑스러웠습니다.” 테니스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한 때는 한국 축구대표팀이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창출해 대한민국이 들썩이던 2002년. 남편이 대전 유성에서 교육받을 일이 있어 갔을 때 군인 가족 친선테니스대회에 출전했는데 초반에 탈락해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 스스로 잘한다고 자만했던 것 같았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레슨을 받았다. 당시 인천 부평에 살 때였는데 테니스 동호회에 가입해 아이들 학교 갈 때 함께 ‘출근 도장’을 찍으며 훈련했다. 거의 매일 테니스를 쳤다”고 회상했다. 2003년 서울 송파구에 정착한 뒤 송파화목클럽에 가입했다. 그때 동호인 대회가 있는 걸 처음 알았다. 회원들이 지도해주고 함께 쳐줘 실력은 나아졌지만 출전은 쉽지 않았다. 여자부는 개나리부(초급)와 국화부(고급)로 나뉘는데 동호인 대회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참가할 수 있도록 복식과 혼합복식만 열린다. A∼E등급이 있고 챔피언끼리는 한 조가 될 수 없는 규정도 있다. 그렇다 보니 초보자는 파트너 정하기가 쉽지 않다. 김 씨는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대회에 출전했다. 그리고 2006년 6월 28일 개나리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개나리부 우승은 국화부로의 승격을 의미합니다. 개나리부에 출전하는 모든 사람은 국화부가 되려고 간절하게 노력해요. 하지만 우승하지 못하면 국화부에 낄 수가 없어요. 전 2년 반 만에 국화부에 올라갔습니다. 10년을 해도 국화부에 못 오르는 분도 많아요.” 국화부에 올라가자마자 6개월 만에 우승했다. 국화부 초보자라 베테랑과 나가서 거둔 성과였다. 그때부터 고난이 시작됐다. 챔피언이니 핸디캡을 적용해 하급 선수와 파트너가 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8강도 감지덕지했다. 그런데 계속 노력하다 보니 어느 순간 3위까지 올랐고, 우승도 했다. 또 우승하고…. 지금까지 우승 트로피만 100개 넘게 받았다”고 했다. 2011년 국민생활체육전국테니스연합회(현 대한테니스협회) 연말 랭킹 1위를 차지했다. 한국테니스발전협의회에서도 한때 연말 랭킹 1위를 했고 결국 2018년에 3개 단체 1위로 올라선 것이다. “테니스를 통해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전업주부지만 취미 활동으로 사회생활을 배운 것 같고 각계각층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대인관계도 좋아졌어요. 인생 공부 많이 했어요. 물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은 당연히 따라왔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은 김 씨에게 골프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테니스를 치지 못하게 하니 필드로 나가게 됐다. 테니스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골프에서도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김 씨는 “2년여 ‘외도’ 기간에 76타까지 쳤다”고 했다. 아마추어 골퍼들의 꿈인 ‘싱글 스코어’다. 그는 “테니스도 재밌지만 골프가 주는 매력도 쏠쏠했다. 지금도 테니스가 최애(最愛) 스포츠지만 가끔 지인들과 골프도 즐긴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다시 테니스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동호인테니스협회 국화부 랭킹도 현재 1위다. 하지만 이젠 성적에 연연하진 않는다. 그는 “올해 30개 대회 정도 출전했는데 성적은 들쭉날쭉하다. 8강에서 떨어지기도 하고 우승하기도 하고. 이젠 사람들 만나 즐겁게 테니스 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욕심을 좀 내면 발목 등에 부상이 온다”고 했다. 김 씨는 “이렇게 여유를 찾는 것도 테니스가 준 교훈이다. 욕심내면 다친다. 이젠 즐기며 100세까지 공 치는 게 목표”라며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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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칠십에도 MTB로 몬태나 산악 달려요” 스티븐스 전 미국대사의 자전거 사랑[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충청남도 예산에 왔을 때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죠. 한국을 알고 싶었죠. 시골길이지만 자전거는 저를 어디든 데려다줬어요.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죠.”2008년부터 2011년까지 주한미국대사를 역임한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 소장(70)은 “자전거를 타며 한국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고 했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는 5살 때부터 뉴멕시코와 애리조나에서 오빠, 남동생과 자전거를 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시아에 유독 관심이 많았던 그는 홍콩에서 공부할 때, 외교관이 된 뒤에는 방문한 나라를 자전거로 구석구석 돌아보며 풍경도 감상하고, 사람도 만나고, 문화를 직접 느끼며 배웠다. 중국, 유고슬라비아, 한국, 포르투갈, 인도 등을 거치며 외교관으로 활동한 그는 “외교관은 그 나라를 잘 알아야 하는데 자전거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평소 테니스도 즐기는 그에게 자전거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자 건강 지킴이였다.1980년대 주한미국대사관 정무팀장, 부산 미국영사관 선임영사로 한국에 왔던 그는 대사로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자전거 투어를 많이 했다. 특히 4대강 자전거길이 만들어질 때인 2010년 ‘심은경(스티븐스 소장의 한국명) 대사와 달리는 자전거길 600리’ 행사를 주관하는 등 국내 곳곳을 자전거를 타고 누볐다. 그는 “한국의 강변 자전거 도로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우수한 시설”이라고 했다. 스티븐스 소장은 “큰길과 자전거길도 달렸지만 아무도 모르는 이면도로를 달리며 한국의 곳곳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봄이면 달래와 냉이, 쑥 등 나물도 볼 수 있고 개나리 진달래 등 꽃도 아름답다. 뭐든 주는 시골 사람들의 정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강원도 오대산 정상에 오르는 등 산을 달리며 한국의 자연도 즐겼다.대사를 마치고 1년 뒤 다시 한국을 방문한 그는 경기 양평을 출발해 충주, 새재길, 상주, 구미, 대구, 창녕, 부산 등 한강과 낙동강의 전 구간을 종주해 4대 강 가운데 한강과 낙동강의 자전거 길을 완주한 첫 번째 외국인이 됐다. 스티븐스 소장은 경북 구미시 쌍암고택(중요민속자료 제105호), 대구 달성군 현풍도깨비시장 등을 돌아보며 한국의 멋과 문화도 느꼈다.“낙동강변을 달릴 때는 6·25 전쟁 때 한국과 UN군이 북한을 치열하게 막았던 낙동강방어선전투의 현장에서 전쟁의 처참함을 다시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재의 낙동강 구간은 매우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이었습니다. 먼 옛날 신라와 가야의 싸움터인 가야진을 지날 때는 한국 문화와 역사를 느꼈습니다.”스티븐스 소장은 2017년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미국대사관이 기획한 자전거국토종주단의 일원으로 비무장지대(DMZ)를 달리기도 했다. “강원 철원에 아직 남아 있는 북한 노동당 건물을 보면서 6·25 전쟁을 다시 한번 되돌아봤다”고 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연을 맺고 있는 그는 “근 50년간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다 지켜봤다. 정말 한국은 대단한 나라다. 국민은 성실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정도 많다. 교육열도 대단하다. 창의적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에 충분했다”고 회상했다.워싱턴에 살고 있는 스티븐스 소장은 연 1, 2회 한국을 방문하는데 올 때면 한국 지인들과 꼭 라이딩을 즐긴다. 5월 14일에도 동아사이클대회 챔피언(1982, 1984년) 출신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61)와 마스터스 철인3종 강자 이명숙 씨(61) 등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팔당댐 넘어까지 왕복 58km를 함께 달렸다. 이번엔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지만 가수 김창완 씨와 대한자전거연맹 회장을 역임한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도 스티븐스 소장의 라이딩 친구들이다.한국의 어디가 가장 아름다울까? 스티븐스 소장은 “어머나 세상에…. 너무 아름다운 곳이 많아서 선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50년 가까이 한국을 지켜보며 서울 한강이 변해가는 모습도 봤다. 동해, 남해, 서해에 낙동강 등 4대 강도 멋지지만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강은 시민들이 맘껏 즐길 수 있는 명소다”고 했다.미국에서 가족들을 만나도 자전거를 탄다. 그는 “오빠가 몬태나에 사는데 모이면 남동생과 어울려 MTB를 타고 산을 달린다. 몬태나에는 70세 넘는 노인들도 MTB를 잘 탄다”고 했다. 올해 한국 나이로 ‘망팔(望八)’인 그는 자전거 때문에 건강하다고 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탓에 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 워싱턴의 모든 도로를 자전거 타고 달렸다. 워싱턴엔 미국 50개주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 자전거 덕분에 다 돌아볼 수 있었다. 자전거는 교통수단이자 건강의 도구”라고 했다.스티븐스 소장은 미국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스포츠를 즐긴다. 홍콩에서 공부할 땐 하이킹을 했고 카누도 탔다. 외교관으로 사람들과 친해지기 가장 쉬운 게 스포츠 활동이다. 한국에서는 주기적으로 자전거를 타면서 한국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는 코로나 19 때 요가도 시작했다.“스포츠 활동은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만들어줍니다. 스포츠를 통해 건강도 챙길 수 있지만 리더십도 키울 수 있고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방법도 배울 수 있죠. 그런데 한국의 아이들은 공부에 치여 운동을 많이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열은 정말 대단합니다. 한국이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이렇게 빨리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이 그 놀라운 교육열 덕분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교육열이 큰 문제이기도 합니다. 대학생들하고 낙동강 변에서 자전거를 함께 탔는데 참 버거워하던 표정이 생각납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건강도 중요합니다. 건강해야 공부도 더 잘하고 창의적이 됩니다.”스티븐스 소장은 “건강하니 이렇게 한국도 자주 올 수 있지 않나. 아름다운 제주도를 많이 가봤지만 아직 자전거 타고 돌지는 못했다. 조만간 제주도 한 바퀴를 돌겠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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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전거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이자 건강 지킴이죠”[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스 한미경제연구소 소장(70)은 “자전거를 타며 한국의 진면목을 알게 됐다”고 했다. 미국 텍사스에서 태어난 그는 5세 때부터 뉴멕시코와 애리조나에서 오빠, 남동생과 자전거를 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홍콩에서 공부할 때, 외교관이 된 뒤에는 방문한 나라를 자전거로 구석구석 돌아보며 문화를 직접 느끼고 배웠다. 중국, 유고슬라비아, 한국, 포르투갈, 인도 등을 거치며 외교관으로 일한 그는 “외교관은 그 나라를 잘 알아야 하는데 자전거가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평소 테니스도 즐기는 그에게 자전거는 세상을 바라보는 또 다른 눈이자 건강 지킴이였다. “1975년 평화봉사단원으로 충청남도에 왔을 때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죠. 시골길이지만 자전거는 저를 어디든 데려다줬어요. 한국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죠.” 1980년대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팀장, 부산 미국영사관 선임영사로 한국에 왔던 그는 대사로 다시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자전거 투어를 많이 했다. 특히 4대강 자전거길이 만들어질 때인 2010년 ‘심은경(스티븐스 소장의 한국 이름) 대사와 달리는 자전거길 600리’ 행사를 주관하는 등 국내 곳곳을 자전거로 누볐다. 그는 “한국의 강변 자전거도로는 세계적으로 우수한 시설”이라고 했다. 스티븐스 소장은 “큰길과 자전거길도 달렸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면도로를 달리며 한국의 곳곳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봄이면 달래와 냉이, 쑥 등 나물도 볼 수 있고 개나리 진달래 등 꽃도 아름답다. 뭐든 주는 시골 사람들의 정도 느꼈다”고 했다. 그는 산악자전거(MTB)를 타고 강원도 오대산 정상에 오르는 등 자전거로 산을 달리며 한국의 자연도 즐겼다. 대사를 마치고 1년 뒤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경기 양평을 출발해 충주-문경-상주 새재길, 구미, 대구, 창녕, 부산 등 한강과 낙동강의 전 구간을 종주해 4대 강 가운데 한강과 낙동강의 자전거길을 완주한 첫 번째 외국인이 됐다. 스티븐스 소장은 경북 구미시에 있는 조선시대 가옥 쌍암고택, 대구 달성군 현풍도깨비시장 등을 돌아보며 한국의 멋과 문화도 느꼈다. “낙동강 변을 달릴 때는 6·25전쟁 때 한국과 유엔군이 북한을 치열하게 막았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현장에서 전쟁의 처참함을 다시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재의 낙동강 구간은 매우 아름답고 자연 친화적이었습니다. 먼 옛날 신라와 가야의 싸움터인 가야진을 지날 때도 한국 문화와 역사를 느꼈습니다.” 2017년 스티븐스 소장은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며 미국대사관이 기획한 자전거국토종주단의 일원으로 비무장지대(DMZ)를 달렸다. “강원 철원에 아직 남아 있는 북한 노동당 건물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197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연을 맺고 있는 그는 “약 50년간 한국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다 지켜봤다. 한국은 정말 대단한 나라다. 국민은 성실하고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한다. 정도 많다. 교육열도 대단하다. 창의적이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성장하기에 충분했다”고 회상했다. 미 워싱턴에 살고 있는 스티븐스 소장은 1년에 한두 번 한국을 방문하는데 올 때마다 한국 지인들과 라이딩을 즐긴다. 14일에도 동아사이클대회 챔피언(1982, 1984년) 출신 김동환 프로사이클 대표, 마스터스 철인3종 강자 이명숙 씨 등과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팔당댐 지나서까지 왕복 58km를 함께 달렸다. 이번엔 일정상 참석하지 못했지만 가수 김창완 씨와 대한자전거연맹 회장을 지낸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 등도 라이딩 친구다. 스티븐스 소장은 자전거 덕에 아직 건강하다고 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탓에 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때 워싱턴의 모든 도로를 자전거 타고 달렸다. 워싱턴엔 미국 50개 주 이름을 딴 도로가 있다. 자전거가 있어 다 돌아봤다. 자전거는 교통수단이자 건강의 도구”라고 했다. 최근 요가도 시작한 그는 “건강하니 이렇게 한국도 자주 올 수 있다. 아름다운 제주도를 자전거 타고 아직 돌지 못했다. 조만간 제주도를 한 바퀴 돌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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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운지]장수 승마로드에서 ‘맨발걷기 축제’ 펼쳐져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가 20일 전북 장수군에서 맨발걷기 축제를 벌였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장수군 장수읍 승마레저파크 승마로드 10km에서 5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4회 생명살리기 맨발걷기 축제를 개최했다. 이번 축제는 장수 승마로드 살리기 일환으로 열렸다. 최훈식 장수군수가 박동창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 회장과 함께 잘 활용되지 않는 승마로드를 맨발걷기의 메카로 만들겠다며 시작한 것이다. 박동창 회장은 “이번 장수군과의 공동주최 형식의 맨발축제를 계기로 앞으로 전국의 각 지자체들과 공동으로 맨발걷기를 통해 주민들과 국민들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국민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최훈식 군수는 “폭 8m, 총 길이 10km의 잘 조성된 승마로드와 주변의 마을에 맨발길을 조성하여, 건강한 삶을 추구하는 전국의 국민들이 장수군에 와서 맨발로 걷고 휴양하는 건강한 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장정복 장수군의회의장도 의회 차원에서 장수군이 추진하는 맨발길 사업 등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맨발걷기 활성화 조례’를 제정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맨발걷기국민운동본부는 본부 서울 강남구 대모산과 전국 각지의 30여개 지부, 지회에서 매달 3째주 토요일에 진행하는 ‘온 국민 맨발걷기의 날’ 행사를 동시 다발적으로 개최한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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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육운동 열심히 했더니 또 우승” 80세 보디빌더 임종소 씨의 건강법[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한국 나이 80세인 임종소 씨가 20일 서울 강동구 호원아트홀에서 열린 WNC(World Natural Championship) 시그니처 보디피트니스대회 시니어부(50세 이상) 비키니 부문에서 우승해 화제가 되고 있다.임 씨는 2019년 만 75세에 제24회 WBC 피트니스 오픈 월드 챔피언십 38세 이상 피규어 부분에서 2위를 차지한 뒤 4년 만나 나선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는 “예상치 못했는데 우승해서 얼떨떨하다. 그동안 근육운동을 꾸준히 해온 결과인 것 같다”고 말했다. 2018년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한 그는 이번 대회를 위해 3개월간 체계적인 훈련을 했다. 임 씨는 근육운동을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임 씨는 2019년 6월 6일자 동아일보 ‘양종구기자의 100세 시대 건강법’에 소개됐던 인물이다. 이후 국내 방송은 물론 영국 BBC와 독일 ARD에서도 화제의 인물로 소개됐다.임 씨는 2018년 5월 경기 용인 메카헬스짐을 찾은 게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그는 “허리 협착(요추 3,4번)으로 오른발을 쓸 수 없어 병원을 찾았지만 주사를 맞아도 그때뿐이고 통증이 사라지지 않아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헬스클럽을 찾았는데 새 세상을 만났다”고 했다. 보디빌더 출신 박용인 관장(61)이 “운동으로 충분히 통증을 잡을 수 있다”고 해서 바로 개인 레슨(PT)에 등록했다.주 3회 1시간씩 근육운동을 하니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그는 “신기했다. 통증은 사라졌지만 재발할 수 있어 계속 근육운동을 했다. 그러니 몸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6개월 했을 땐 내가 거울을 봐도 놀랄 정도로 몸이 좋아졌다. 어깨도 펴지고 자세로 좋아지고…. 정말 기분이 날아갈 듯했다”고 회상했다.43kg이던 체중도 46kg으로 3kg 늘었다. 근육량이 많아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35년간 에어로빅을 즐기던 임 씨는 그 때부터 웨이트트레이닝에 빠져 살고 있다. 그러자 건강과 행복이 따라 왔다. 유명세를 탄 뒤에는 시니어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다. 56세 아들에 30세 큰 손녀까지 둔 ‘할머니’지만 나이를 잊고 살고 있다. “솔직히 사람들이 내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른 사람들 만나서 내 나이 얘기하면 놀라면서 ’60 초반 정도로 보인다‘고 하죠. 실제로 제가 나이 때문에 뭘 못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TV를 보다가 나와 비슷한 연령대 분들이 병들어 고생하는 것을 보면 ’나도 저 나이인데‘라고 느끼기는 합니다.”임 씨를 보고 50대 초반인 며느리도 근육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며느리가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야지 하면서 못했는데 ’어머니 보고 용기 얻었어요‘라며 열심히 헬스클럽을 다니고 있다. 주변에서도 나를 보고 운동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내 건강을 위해 하는 운동이지만 나를 보고 다른 사람도 따라 한다면 그보다 좋은 게 어디 있나”고 했다.임 씨는 처음 운동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라고 조언한다.“헬스클럽에 가서 보면 혼자 열심히 운동하는데 근육이 잡히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른 모든 운동이 그렇겠지만 특히 근육운동은 바른 자세와 방법으로 하지 않으면 효과가 없어요. 부상도 예방할 수 있죠. 우리 몸을 젊게 하려면 투자도 해야 합니다. 꼭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운동해야 합니다.”그는 근육운동이 있기에 ’80세 청춘‘을 살고 있다고 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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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합니다]‘국제 노르딕워킹데이’ 성료… 20일 북한산 일원에서

    국제노르딕워킹협회(INWA Korea)는 20일 북한산 둘레길, 경기 고양시 창릉천 솔내음누리길 일원에서 ‘국제노르딕워킹데이’를 진행했다. 이번 행사는 국제노르딕워킹협회(INWA)가 5월 20~21일 사이에 지정한 날로 전 세계 40개국이 각 나라별로 ‘3F(FUN, FREEDOM, FRIENDSHIP)’주제를 가지고 111명의 참가자들이 21Km, 11Km, 5Km 3코스로 나누어 레이스를 하거나 즐겁게 걸었다. 특히, 산학 협동차원에서 우석대학교 스포츠지도학과(학과장 임진선) 등 재학생들이 참여하여 자리를 빛냈다. 주연서 사무국장과 노르딕워킹 인스트럭터 지도자들이 참가자들을 지도하며 걸었다.노르딕워킹은 노르딕워킹 전용폴을 가지고 걸으며 상체와 팔의 힘을 골고루 사용할 수 있어 운동효과가 높고, 체중의 충격을 분산시켜 운동 부상이 거의 없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복근과 허리 근육 등 코어 근육을 강화해 멋진 체형을 만들 수 있어 젊은 여성들의 참여도가 높아지고 있다. 박요한 국제노르딕워킹협회 회장은 “최근 걷기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걸을 거냐?에 대한 물음에 노르딕워킹이 답으로 급부상 했다”면서 “이번 행사를 통해 공인된 노르딕워킹 기술과 문화를 보급하고, 폴란드 등 해외에서 열리는 노르딕워킹 월드컵에 선수단을 파견을 겸한 행사”라고 앞으로 계획을 밝혔다.국제노르딕워킹협회는 매달 11일을 ‘노르딕워킹데이’로 지정하고 전국의 아름다운 명소를 노르딕워킹으로 다니고 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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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림픽 메달리스트 몰리 세이델, 운동으로 뇌질환을 극복했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최근 미국의 한 의료 사이트(WebMD)에서 2020 도쿄올림픽 여자마라톤 동메달리스트 몰리 세이델(29·미국)이 어떻게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극복하고 있는지를 조명했다.세이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탓에 1년 뒤인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 여자마라톤에서 2시간 27분 46초로 동메달을 획득했다. 역사상 올림픽 여자마라톤에서 메달을 획득한 미국 3명의 선수 중 1명이 된 세이델은 비교적 늦은 노트르담대학 재학 시절 강박장애(OCD) 판정을 받았고, 몇 년 뒤 ADHD 판정을 받았다. 이 사이트는 “세이델이 매일 정신 건강을 잘 지켜 가고 있다”고 전했다. 세이델의 말이다.“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것이 어느 순간 마라톤 완주를 준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사람들은 제가 타고난 마라톤 선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닙니다. 전 매일 어떻게 운동할지 고민하고 훈련하고 있어요. 제 정신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세이델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난 운이 좋다. 마라톤 선수로 회복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신도 회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라톤 선수로 나를 조절할 줄 알고, 또 다양한 호흡법으로 진정할 수 있어 버티고 있다. 이런 방법을 하루에도 몇 번씩 하고 있고 상태를 체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세이델은 ADHD 판정을 받은 뒤 약물요법 등 다양한 치료법을 썼지만 “운동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그렇다고 약품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증상이 심할 땐 약물요법을 쓰지만 운동 선수이다보니 도핑에 신경 써야 해 세계반도핑위원회(WADA)와 미국반도핑위원회(USADA)에 자문을 받아 먹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번거롭다.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래서 약물보다는 운동에 집중하며 마인트컨트롤과 호흡법 등으로 버티고 있다.세이델은 지금은 은퇴한 미국의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38)를 연상케 했다. 펠프스도 ADHD를 극복하고 4개 올림픽(2004년 아테네~2016년 리우)에서 금메달 23개 등 총 28개의 메달을 획득한 선수다. 2016 리우올림픽 때 여자체조 개인종합 우승을 차지했던 시몬 바일스(26·미국)도 ADHD를 극복했다. 어렸을 때 ADHD로 진단받은 펠프스와 바일스는 수영과 체조로 ADHD를 극복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세이델은 대학 때 판정받았지만 줄기차게 노력해 올림피언이 됐다. 세이델과 마찬가지로 바일스는 약물도 병행했지만 펠프스는 운동으로만 극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세이델 사례를 계기로 ADHD와 운동과의 관계를 알아봤다.최근 과학적 연구 결과 펠프스와 바일스의 사례를 보듯 운동이 ADHD 극복에 좋은 효과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영이나 체조에 집중하며 몸을 단련시킬 때 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게 과학의 결과물이다.운동을 하면 뇌신경전달 물질인 BDNF(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가 생성되고 활성화된다. 이런 결과는 과거에도 간헐적으로 이어졌지만 존 레이트 하버드메디컬스쿨 교수가 2007년 무렵 ‘불꽃: 운동과 뇌에 대한 혁명적인 신과학’(Spark: The Revolutionary New Science of Exercise and the Brain)이란 책을 쓰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 책은 운동하면 뇌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결과를 집대성한 것이다. 이후 더 많은 연구 결과가 이어지고 있다. 레이티 박사는 이 책에서 “운동하면 머리가 활성화된다. 바로 BDNF가 생성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결과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과거 BDNF는 그저 신경성장 인자로만 인식됐을 뿐이었다. 이 책에서 운동과 BDNF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분석한 것이다. 이 책에선 운동을 하면 BNDN가 활성화돼 공부도 잘하게 되고, 집중도 잘 된다고 했다. 치매도 예방된다고 했다. 물론 ADHD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올 3월 영국스포츠의학저널(British Journal of sports Medicine)에는 ‘고강도 운동이 성인들의 정신 건강을 크게 개선시킨다(High-Intensity Exercise Greatly Improves Mental Health in Adults’)란 논문을 게재했다. ADHD를 전문으로 연구하고 정보를 주는 ‘ADDITUDE’에서 메타 분석한 결과다.연구 결과 짧은 시간 격렬한 운동은 가벼운 우울증이나 불안감 해소에 도움이 됐다. 장기간 고강도 운동은 ADHD가 동반하는 우울증과 불안을 개선해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건강하거나, 정신장애가 있거나, 병이 있는 성인들을 연구한 97개의 논문을 체계적으로 분석해서 나왔다. 무산소 운동인 근육운동, 무산소와 유산소 혼합 운동, 스트레칭, 요가 등 모든 형태의 운동이 정신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ADDITUDE가 2017년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ADHD 질환을 앓고 있는 1563명 중 절반 이상이 ‘운동을 했을 경우 ADHD 증상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었다’고 했다.다시 세이델로 돌아가 보자. 세이델은 ADHD 판정을 받은 뒤 여러 치료법을 사용하다 결국 운동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과잉행동(Hyperactivity)이 긍정적으로 달리기로 이어져 좋은 결과를 가져다 줬다. 과잉행동을 하는 경우 특정 스포츠에 빠지게 되면 보다 더 훈련에 매진하는 경향을 보인다. 달리다 보니 집중할 수 있었다. 운동을 하고 난 뒤 집중력이 좋아져 숙제도 쉽게 할 수 있었다. 운동의 이런 긍정적인 효과 때문에 더 운동에 매진하게 됐다.세이델은 주당 200km를 넘게 달린다. 그는 “뇌가 잘 돌아갈 땐 훈련 중 코스 이탈도 하지 않는다. 42.195km풀코스도 잘 달릴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뇌가 짜증이 날 땐 집중할 수 없고, 컨디션도 엉망이 된다. 그럼 모든 것을 망치게 된다”고 했다. 세이델은 “어떤 측면에선 내 뇌가 내가 해야 할 스포츠(마라톤)에 최적화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조금이라도 운동에 등한시하면 뇌가 통제 불능이 된다”고 했다. 세이델이 모든 신경을 마라톤과 훈련에 두고 있는 이유다.송홍선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 수석연구원(운동생리학 박사)은 “일종의 운동의 선순환 효과로 볼 수 있다. 운동하면 BDNF 등 뇌에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호르몬이 활성화돼 ADHD 등 증상이 호전되니 세이델 등 선수들이 운동하는 좋은 습관에 빠져든 것이다”고 분석했다. 그는 “운동에 빠져들면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그럼 온전히 자신이 하는 운동과 자신의 몸상태(호흡, 피로도 등)에만 집중하게 된다. ADHD 질환을 가진 사람들도 온전히 하나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국내에선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미국 등에선 운동을 ADHD 치료와 개선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세이델은 ADHD를 통제하기 위해 의사의 조언 등 다양한 옵션을 찾고 있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는 ADHD 관련 의학 논문을 읽으면서 자신의 증상과 비교해 연구하고 있다. 자신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이델은 약물보다는 대화 요법, 명상, 호흡 등 조합시켜 뇌를 컨트롤하고 있다. 그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활동도 가급적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후원사와의 관계 때문에 인스타그램 등을 하긴 하지만 SNS가 내 뇌에 가장 해롭기 때문이다”고 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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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밤마다 뛰는 아내 ‘보호’하려다…23년째 함께 달리는 부부[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마라톤으로 참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전 살도 많이 빠졌고 혈압약도 끊었어요. 저나 남편이나 아무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평생 함께 달릴 겁니다.”지금은 다니던 회사에서 정년 퇴임하고 새로운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는 김영례(65)-윤상문 씨(67) 부부는 2001년부터 함께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23년째 매년 42.195km 풀코스를 2회 이상 함께 완주하며 부부의 정을 쌓고 있다. 풀코스 완주 횟수는 김 씨가 50여 회, 윤 씨가 60여 회다. 3월 19일 열린 2023년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 때도 함께 4시간 37분대에 완주했다.시작은 단순했다. 2000년 12월 살을 뺄 요량으로 김 씨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고 이듬해 초 남편 윤 씨가 따라 뛰었다. 윤 씨는 직장 다니기 때문에 밤마다 뛰는 아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같이 달렸다. 당시 한창 마라톤 붐이 일 때는 대부분 남편이 먼저 빠져든 뒤 주말마다 집을 비우는 남편을 ‘감시’하기 위해 아내가 따라 뛰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부부는 그 반대였다. 부부는 처음엔 그저 조깅 수준으로 달렸다.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1년 4월 열린 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참가한 다음부터다.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목표를 가지고 달리는 게 좋을 것 같아 풀코스 완주를 위해 함께 뛰었습니다. 훈련은 주로 저녁때 달렸죠. 주중엔 매일 10㎞ 정도 달리고 주말엔 20㎞ 이상을 달렸어요. 동아마라톤 등 주요 대회를 앞두고는 30㎞ 이상 달렸습니다.”함께 달리자 좋은 점이 많았다. 먼저 닥치는 대로 먹고도 살이 빠졌다. 김 씨는 초창기에 10㎏을 뺐고 지금은 약간 늘어 당초 체중에서 7kg 빠진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처음 목표한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이다. 김 씨는 고혈압 때문에 먹던 약도 달리고 5년 뒤 끊었다. 부부 금실도 좋아졌다. 함께 뛰니 자연스레 부부의 정이 새록새록 커져 갔다. “늘 함께 땀을 흘리며 지내다 보니 서로의 눈치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김 씨는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달리니 부부싸움도 없어졌다.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으니 싸울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지금까지 병치레 한번 없었다. 부부 금실은 아직도 좋다. “솔직히 저희 부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부들도 많아요. ‘이젠 소원할 때도 됐는데 아직도 붙어 다니냐?’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함께 달리면 붙어 다닐 수밖에 없어요.” 부부는 마라톤을 세계여행의 기회로도 삼았다. 가까운 일본은 마라톤 풀코스 대회는 물론 100km 울트라마라톤 대회도 출전했다. 김 씨는 2003년 남편 따라 100km에 출전해 고생하다 컷오프당한 뒤 다시는 도전하지 않고 있다. “마라톤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일본에서 열린 100km 울트라마라톤에 남편과 함께 출전했어요. 남편은 완주했지만 전 컷오프 당했죠. 너무 힘들었어요. 그 이후 다시는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하지 않았죠. 즐겁게 달리는 게 좋아요.” 부부는 2008년엔 도쿄마라톤을 완주했고, 2011년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의 ‘꿈의 무대’ 보스턴마라톤도 달렸다. 보스턴마라톤은 남녀 연령별 기준기록을 통과해야 출전할 수 있지만 대회 조직위가 보스턴마라톤 활성화 차원에서 여행사에 제공하는 쿼터를 받아 다녀왔다. 2018년엔 알프스산맥을 달리는 스위스 융프라우마라톤에도 갔다. 김 씨는 “내 환갑 기념으로 갔는데 너무 오르막 내리막이 많아 난 중도에 컷오프당했고 남편은 완주했다”고 했다. 김 씨는 5년여 전 겨울에 훈련하다 팔이 부러졌는데도 동아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정도로 마라톤에 진심이다. 그는 “발이 부러지지 않아 다행이었다. 깁스한 채로 훈련했고 동아마라톤은 깁스를 풀고 완주했다”고 했다. 윤 씨는 2년 전 발목 인대에 염증이 생겨 수술을 했음에도 달리고 있다. 윤 씨는 “병원에서도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젠 빨리 안 달리고 즐기며 달린다”고 했다. 부부는 요즘은 평일엔 주로 걷는 것으로 훈련을 대신한다. 하루 2만보에서 3만보를 걷는다. 2~3시간 소요된다. 김 씨는 서울둘레길을 걸으며 휴지를 줍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몸이 건강하기 때문에 자원했다. 그는 “서울둘레길 아카데미에서 환경보호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자원했다. 둘레길을 돌며 주변 휴지도 줍고 운동도 한다”고 했다. 부부는 주말에는 20km 이상을 훈련 삼아 달린다. 그리고 봄가을로 풀코스 레이스에 출전한다. 부부는 산행도 자주 한다. 지리산과 한라산, 설악산 등 유명한 산은 다 완등했다. 주말마다 달리거나 산행을 하고 있다. 김 씨의 풀코스 최고기록은 4시간 17분대, 윤 씨는 3시간 40분대. 과거엔 남편이 하프까지 함께 달려준 뒤 각자 달렸지만 지금은 4시간 30분 안팎 페이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즐겁게 달리고 있다. 윤 씨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 함께 달리는 게 더 즐겁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수술받기 전부터 함께 달렸는데 수술받고는 이젠 빨리 달릴 수도 없다”며 웃었다.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걸을 수 있으면 달려야죠. 아직 살날이 많은데…. 건강해야 즐겁게 살 수 있어요. 아프면 삶이 힘들어요. 우리 부부는 평생 함께 달릴 겁니다. 100살까지도요. 남들은 ‘귀찮게 왜 같이 다니냐’고 하지만 우리는 함께 여행하는 게 아주 편하고 즐겁습니다. 부부 여러분 함께 달리면 좋습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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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부가 23년째 함께 달리는 재미… 안 해보면 몰라요”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회사에서 정년 퇴임 뒤 새로운 노년을 만들어가고 있는 김영례(65)-윤상문 씨(67) 부부는 2001년부터 함께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23년째 매년 42.195km 풀코스를 2회 이상 함께 완주하며 부부의 정을 쌓고 있다. 풀코스 완주 횟수는 김 씨가 50여 회, 윤 씨가 60여 회다. 3월 열린 2023 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에서도 함께 달리며 4시간 37분대에 완주했다.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마라톤으로 참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전 살도 많이 빠졌고 혈압약도 끊었어요. 저나 남편이나 아무 병 없이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평생 함께 달릴 겁니다.” 2000년 12월 살을 뺄 요량으로 김 씨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초 남편 윤 씨가 따라 뛰었다. 윤 씨는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밤마다 뛰는 아내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같이 달렸다. 한창 마라톤 붐이 일 때는 대부분 남편이 먼저 마라톤에 빠져든 뒤 주말마다 집을 비우는 남편을 ‘감시’하기 위해 아내가 따라 뛰는 경우가 많았다. 이 부부는 반대였다. 부부는 처음엔 그저 조깅 수준으로 달렸다. 마라톤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1년 4월 마라톤대회 하프코스에 참가한 다음부터였다. “무작정 달리기보다는 목표를 가지고 달리는 게 좋을 것 같아 풀코스 완주를 위해 함께 뛰었습니다. 훈련은 주로 저녁때 했어요. 주중엔 매일 10km 정도 달리고 주말엔 20㎞ 이상을 달렸어요. 동아마라톤 등 주요 대회를 앞두고는 주말에 30km 이상 달렸습니다.” 함께 달리면서 좋은 점이 많이 생겼다. 먼저 마음껏 먹어도 살이 빠졌다. 김 씨는 초창기에 몸무게 10kg을 뺐다. 현재는 약간 체중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7kg 빠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처음 목표한 다이어트에 성공한 것이다. 부부 금실도 좋아졌다. 함께 뛰니 자연스레 부부의 정이 새록새록 커져 갔다. 김 씨는 “늘 함께 땀을 흘리며 지내다 보니 말을 안 해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며 “가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달리니 부부싸움도 없어졌다. 서로를 너무 잘 이해하고 있으니 싸울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병치레도 한번 없었고, 부부 금실은 여전히 좋다. 부부는 마라톤을 세계여행의 기회로 삼았다. 일본에서 열린 마라톤 풀코스 대회와 100km 울트라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 김 씨는 2003년 남편을 따라 100km에 출전한 뒤 다시는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하지 않고 있다. “마라톤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일본에서 열린 100km 울트라마라톤에 남편과 함께 출전했어요. 남편은 완주했지만 전 컷오프 당했죠. 너무 힘들었어요. 그 이후 다시는 울트라마라톤에 도전하지 않았죠. 즐겁게 달리는 게 좋아요.” 부부는 2008년엔 일본에서 열린 도쿄마라톤을 완주했고, 2011년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의 ‘꿈의 무대’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도 함께 달렸다. 보스턴마라톤은 남녀 연령별 기준기록을 통과해야 출전할 수 있지만 대회 조직위가 보스턴마라톤 활성화를 위해 여행사에 제공하는 쿼터를 받아 다녀왔다. 2018년엔 알프스산맥을 달리는 스위스 융프라우마라톤에도 참가했다. 김 씨는 “내 환갑 기념으로 갔는데 너무 오르막 내리막 코스가 많아 컷오프를 당했고 남편은 완주했다”고 했다. 부부는 요즘은 평일에 주로 걷는 것으로 훈련을 대신한다. 하루 2∼3시간씩 2만 보에서 3만 보를 걷는다. 김 씨는 서울둘레길을 걸으며 휴지를 줍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부부는 주말에는 20km 이상을 훈련 삼아 달린다. 그리고 봄가을에는 마라톤 풀코스에 출전한다. 김 씨의 풀코스 최고기록은 4시간 17분대, 윤 씨는 3시간 40분대다. 예전에는 20km 정도는 함께 뛰다가 이후에는 각자 달렸다. 하지만 지금은 4시간 30분 안팎 페이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달리고 있다. 윤 씨는 “빨리 달리는 것보다 함께 달리는 게 더 즐겁기 때문”이라고 했다. 부부는 언제까지 달릴 수 있을까. “걸을 수 있으면 달려야죠. 아직 살 날이 많은데…. 건강해야 즐겁게 살 수 있어요. 아프면 삶이 힘들어요. 우리 부부는 평생 함께 달릴 겁니다. 백 살까지도요.”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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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최초 2시간15분 벽 깬 마라토너, 인생을 돌고 돌아 ‘건강 전도사’ 됐다[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가수로 활동하던 2000년 한 TV 방송에 출연해 건강에 대해서 얘기한 적이 있어요. 담당 PD가 ‘당신 가수 하지 마라. 공부해서 마라톤 전도사가 돼라. 당신만큼 운동 처방 잘하는 사람 없다’고 했죠. 그래서 결심했어요. 참 먼 길을 돌아왔죠. 여러 일을 하면서 고생 많이 했어요. 마라톤으로 돌아오니 포근하고 행복했습니다. 제가 ‘2시간 15분 벽’을 깬 뒤 참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무료 마라톤 교실을 열게 됐습니다.” 이홍열 운동치료연구원 원장(62)은 1984년 3월 18일 열린 제55회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 14분 59초로 ‘마의 2시간 15분 벽’을 깼다. 1974년 제45회 동아마라톤에서 문흥주가 세웠던 한국 최고 기록(2시간 16분 15초)을 10년 만에 1분 16초 앞당긴 대기록이었다. 10년 넘게 마라톤 국가대표로 활약하던 그는 선수 생활을 마친 뒤 다소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 지도자를 하다 건설과 경영컨설팅 사업에 뛰어들었다. 가수로도 활동하며 음반을 4개나 냈다. 하지만 2001년 모든 ‘외도’를 접고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이홍열마라톤교실’을 열면서 다시 마라톤인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건강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다.“가수가 됐어도 제 타이틀은 항상 ‘전 마라토너’였죠. 현재의 직함이 없었어요.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무료 마라톤 교실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마라톤 열풍이 불고 있을 때였어요. 마라톤 하다 다치는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까지 해서 제대로 달리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홍열’이 무료로 지도한다고 하자 사람들이 몰렸다. 한때 전국 18곳에서 무료 마라톤 교실을 운영했다. 1년 참가 연인원이 2만 명 가까이 되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무료 지도를 해달라는 요구를 감당하지 못해 달리면 즐겁다는 뜻으로 ‘런조이닷컴’이란 홈페이지를 만들어 다양한 마라톤 정보를 올리기도 했다.“달리는 게 쉬워 보이지만 동작이 잘못됐을 때 엄청난 악영향을 미칩니다. 42.195km 풀코스 완주는 아주 힘든 과정입니다. 무릎 연골이 닳거나 파열되고 관절 인대도 찢어지기도 합니다. 앞이나 뒤로 몸이 기울어지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보폭을 11자로 해서 달려야 합니다. 착지 때 무릎은 살짝 굽혀져 있어야 합니다. 약 165도로 굽혀주는 게 좋습니다. 팔도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흔들어야 하고요. 고개를 숙이고 달리면 흉부 갈비뼈를 눌러 호흡을 잘할 수 없어요. 그럼 오래 못 달려요. 준비운동과 정리운동도 잘해줘야 합니다. 대부분의 달림이들이 몸도 풀지 않고 바로 달리고 끝나고도 그냥 집으로 가죠. 아주 잘못된 습관입니다.” 이 원장은 ‘미스터 원칙’으로 불린다. 정석대로만 지도한다. 바른 자세로 즐겁게 달리도록 지도하는 게 제1원칙. 잘 달리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의 실력을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했다. 이 원장의 지도로 각 대회에서 우승한 남녀 마스터스 마라토너가 많다. 모교 경희대에서 공부도 시작했다. “제대로 지도하려면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07년 스포츠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가대표 마라톤 선수 출신 ‘1호 박사’였다. 이 원장은 스포츠의학을 공부하며 척추 및 관절 전문가가 됐다.“약 25년 전이었어요. 허리 디스크 통증이 심해 병원에 실려 갔는데 병원 의사가 저를 알아보고 수술을 안 해주는 겁니다. 수술해도 소용없다는 겁니다. 참 양심적인 의사였죠. 그래서 집 근처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꾸준히 운동하자 허리가 아프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체를 공부하고 싶었고 마라톤으로 돌아온 뒤 스포츠의학을 공부하며 특히 허리 쪽에 집중해 연구했습니다.” 이 원장은 “디스크 환자 중 열에 아홉은 수술이 필요 없다. 운동으로 회복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는 “디스크가 터진다고 알고 있는데 대부분 디스크가 밀고 나오면서 약해진 주변 근육이 신경을 건들면서 통증이 오는 것이다. 허리 주변 근육을 키워주는 운동을 꾸준히 해주면 통증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수술 없이 운동으로 척추를 건강하게 해준다’ 소식에 이 원장은 여러 방송에서 강연했고, 기업체와 지방자치단체에도 인기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마라토너와 가수에서 ‘건강 전도사’로 변신한 것이다. 이 원장의 박사 학위 논문 제목은 ‘RPE13에 의한 12분간 보행 테스트의 타당성’. 논문 제목만 보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RPE(Ratings of Perceived Exertion)란 주관적 운동 강도를 뜻한다. RPE13은 약간 힘들다고 느낄 정도의 운동 강도다. 그는 “RPE13 수준, 그러니까 약간 힘들다고 느낄 정도의 강도로 운동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사람들이 달리기를 시작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욕을 부리기 때문이에요. 자신의 수준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리한 강도로 운동하는 사람들이 많죠. 반대로 너무 약한 강도로 운동을 하면 운동 효과를 볼 수 없고요. 마라톤 완주를 꿈꾸고 달리기에 입문했더라도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자신의 수준에 맞게 운동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 원장은 잘못된 정보로 사기를 치는 ‘가짜 전문가’들을 퇴출시키는 데도 앞장섰다. 한때 인기를 끌었던 ‘마사이’ 신발도 그가 퇴출시켰다.“마사이 신발은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한해 그 사람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뒤꿈치가 올라가고 발가락 부분이 내려가 있는데 문제는 발가락 부분이 아주 딱딱하죠. 그럼 발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운동능력을 상실합니다. 제가 이런 말 해서 난리가 났는데 결국 제가 이겼죠. 요즘 마사이 신발 신는 사람 있습니까?” 발바닥 아치를 잡아주는 일명 ‘교정 구(교정 깔창)’도 이 원장이 퇴출시켰다. 그는 “모든 게 자연적이어야 한다. 마라톤 선수 이봉주는 평발인데도 잘 달렸다. 축구선수 박지성도 평발에도 세계적인 선수가 됐다. 아치를 만들어 주면 발 기능이 상실한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현재는 무료 마라톤 교실을 4곳으로 줄여 운영하고 있다.“어느 순간부터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훈련한 뒤 술 한잔 먹는 재미로 오는 사람도 많았죠. 술만 마시면 좋은데 꼭 싸움이 일어나요. 그래서 많이 줄였습니다. 다 관리하기 힘들기도 했고요.” 최근엔 마라톤에 걷기를 추가했다. 그는 “마라톤을 하다 더 이상 못 달리는 분들을 위해 마련했다. 잘 걸으면 달리는 것만큼 운동 효과가 크다. 물론 마라톤 초보자들도 걷기부터 시킨다”고 했다. 그는 마라톤 및 걷기 교실을 돌아가며 함께 달리고 걸으며 지도하고 있다. 평소 피트니스센터에서 주당 3~4회 운동하고 있으니 사실상 거의 매일 걷고 달리고 있는 셈이다. 그는 “환갑을 넘긴 지금은 풀코스 완주는 아예 꿈도 꾸지 않는다. 5~10km 달리거나 2~3시간 10여 km를 걷는 것으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며 웃었다. 이 원장에 대해 현재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스토리 하나. 그는 마라톤 선수론 ‘천재’에 가까웠다. 다른 선수들에 비해 비교적 늦은 대전 대성고 1학년 때 육상에 입문한 그는 3학년 때 전국선수권대회 1만m에서 한국기록에 불과 0·1초 모자라는 좋은 기록을 작성하면서 육상계의 눈길을 끌었다. 이런 놀라운 성장에 그는 대학 대신 실업을 택해야 했다. ‘유망주’ 이홍열 덕분에 진로마라톤팀이 창단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1981년 제52회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21분23초로 우승했다. 이후 무리한 대회 출전과 훈련으로 부상을 입는 등 역경을 맞기도 했지만 경희대로 적을 옮겨 마의 2시간 15분 벽을 무너뜨렸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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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가수 외도 접고 건강 전도사로 사는 게 즐거워요”

    1984년 3월 제55회 동아마라톤에서 2시간14분59초를 기록하며 ‘2시간15분 벽’을 깬 마라톤 국가대표 출신 이홍열 운동치료연구원 원장(62)은 선수 생활을 마친 뒤 다소 굴곡 있는 삶을 살았다. 마라톤 지도자를 하다가 건설과 경영컨설팅 사업에 뛰어들었다. 가수로도 활동하며 음반을 4개 냈다. 하지만 2001년 모든 외도를 접고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 ‘이홍열마라톤교실’을 열면서 다시 마라톤인으로 돌아왔다. “참 먼 길을 돌아왔죠. 다른 일을 하면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어요. 마라톤으로 돌아오니 포근하고 행복했습니다. 10년간 정체된 한국 최고기록을 넘어 2시간15분 벽을 깬 뒤 참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무료 마라톤교실을 열게 됐습니다.” 당시 전국적으로 마라톤 열풍이 불고 있을 때였다. 이 원장은 “마라톤 하다 다치는 사람이 많았고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도 해서 제대로 달리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홍열이 무료로 지도한다고 하자 사람들이 몰렸다. 한때 전국 18곳에서 마라톤교실을 운영했다. 1년 동안 참가 인원이 2만 명 가까이 되기도 했다. 여기저기서 지도해 달라는 요구를 감당하지 못해 달리면 즐겁다는 뜻으로 ‘런조이닷컴’이란 홈페이지를 만들어 다양한 마라톤 정보를 올리기도 했다. “달리는 게 쉬워 보이지만 동작이 잘못됐을 때 우리 몸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칩니다. 42.195km 풀코스 완주는 아주 힘든 과정입니다. 무릎 연골이 닳거나 파열되고 관절 인대가 찢어지기도 합니다. 몸이 앞이나 뒤로 기울어지지 않게 꼿꼿하게 서서 보폭을 11자로 해서 달려야 합니다. 착지 때 무릎은 살짝 굽혀져 있어야 합니다. 팔도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흔들어줘야 하고요. 준비운동과 정리운동도 잘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달림이가 몸도 풀지 않고 바로 달리고 끝나고도 그냥 집으로 가죠. 아주 잘못된 습관입니다.” 이 원장은 ‘미스터 원칙’으로 불린다. 바른 자세로 즐겁게 달리도록 지도하는 게 제1원칙. 잘 달리는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을 업그레이드시키기도 했다. 그의 지도로 각 대회에서 우승한 남녀 마스터스 마라토너가 많다. 이 원장은 모교 경희대에서 공부도 시작했다. 제대로 가르치려면 더 많이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2007년 스포츠의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라톤 국가대표 출신 ‘1호 박사’다. 스포츠의학을 공부하며 척추 및 관절 전문가가 됐다. “약 25년 전이었어요. 허리 디스크 통증이 심해 병원에 실려 갔는데 의사가 저를 알아보고 수술을 안 해주는 겁니다. 수술해도 소용없다는 겁니다. 양심적인 의사였죠. 그래서 집 근처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시작했어요. 꾸준히 운동해 허리 주변 근육이 강화되자 아프지 않았죠. 그래서 마라톤으로 돌아온 뒤 인체를 공부하고 싶었고 스포츠의학을 공부하며 특히 허리 쪽을 집중해 연구했습니다.” 이 원장은 “디스크 환자 중 운동으로 회복이 가능한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그는 “디스크가 터진다고 알고 있는데 대부분 디스크가 밀고 나오면서 약해진 주변 근육이 신경을 건드리면서 통증이 오는 것이다. 허리 주변 근육을 키워주는 운동을 꾸준히 하면 통증은 사라진다”고 설명했다. ‘수술 없이 운동으로 척추를 건강하게 해준다’란 소식에 이 원장은 여러 방송에서 강연하게 됐고, 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인기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젠 ‘건강 전도사’로 불리고 있다. 이 원장은 무료 마라톤교실을 4곳으로 줄여 운영하고 있다. 마라톤에 걷기를 추가했다. 그는 “마라톤을 하다가 더 이상 못 달리는 분들을 위해 마련했다. 잘 걸으면 달리는 것만큼 운동 효과가 크다. 물론 마라톤 초보자들도 걷기부터 시킨다”고 했다. 그는 마라톤 및 걷기 교실을 돌아가면서 함께 달리고 걸으며 지도하고 있다. 평소 피트니스센터에서 주당 3, 4회 운동하고 있으니 거의 매일 걷고 달리는 셈이다. 그는 “환갑을 넘긴 지금은 풀코스는 꿈도 꾸지 않는다. 5∼10km를 달리거나 2∼3시간 10여 km를 걷는 것으로도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며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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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렇게 달렸더니… “마라톤 풀코스 251회 완주해도 무릎 멀쩡”[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봄바람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국내 최고의 메이저 대회인 2023서울마라톤 겸 제93회 동아마라톤이 3월 개최된 것을 시작으로 전국에서 각종 마라톤대회가 열리고 있다. 대회 출전을 위해 훈련하거나 건강을 위해 달리는 사람들이 서울 한강을 비롯해 전국 공원이나 산에 넘쳐나고 있다. 과거 ‘5060세대’들이 주축이었다면 요즘은 ‘2030’ ‘3040’들이 많이 달린다. 달리는 사람이 많으면 그로 인한 부상도 많아지는 법. 특히 마라톤 관련 연골 등 무릎 부상에 대한 우려가 많아 지고 있다. 40년 가까이 달리고 있는 이윤희 파시코스포츠과학연구소 대표(65)를 통해 부상 없이 달리는 법을 알아봤다. 이 대표는 운동마니아로 마라톤 42.195km 풀코스는 물론 100km, 200km를 넘어 300km 넘는 거리도 달렸다. 풀코스는 해외 42개 마라톤대회 포함 251회 완주, 울트라마라톤은 60여회 완주한 철각이다. 지금까지 공식 대회에서 달린 거리만 1만8000km에 아깝다. 매주 3~4회 10~13km를 달리며 훈련도 하고 있으니 실제로 달린 거리는 훨씬 더 많다. 1986년부터 달리기를 즐겼고,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감독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할 때부터 마라톤 풀코스에 관심을 가지고 완주에 도전했다. 울트라마라톤도 시작했다. 울트라마라톤은 정규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넘어 50km 이상 거리를 6시간 이상 달리는 것이다. 이 대표는 2000년엔 한국울트라마라톤연맹(KUMF)을 만들어 2004년 법인화까지 했다. 100km 31회, 200km 6회, 308km 2회, 311km 1회…. 한마디로 평생 달리고 있으면서도 아직 무릎에 이상이 없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천천히 즐기면서 달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달리고 운동하며 운동생리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그는 마라톤 및 울트라마라톤 하는 주자들도 다양하게 분석했다. “제가 오랫동안 달리면서 많은 주자들을 지켜봤습니다. 무릎이 고장 나는 친구들은 속도를 추구하며 빨리 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벌트레이닝하고 내리막을 쏘듯 달리고…. 동호회 내에서 기록이 일종의 서열을 정해주기 때문에 마스터스 마라토너들이 기록 욕심을 많이 냅니다.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꼭 역효과가 나타나더라고요.” 이 대표는 마라톤 풀코스 최고 기록이 3시간 30분이지만 4시간에서 5시간 사이에서 천천히 즐기며 달린다. 일부 정형외과 의사들은 마라톤을 하면 바로 무릎에 이상이 생길 것처럼 얘기하는데 실제로 달리는 의사들은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김학윤 김학윤정형외과 원장(64) 등 ‘달리는의사들’ 의사들은 “달려야 무릎이 건강하다”고 말한다. ‘축구나 농구 등 거친 스포츠를 할 땐 부상 위험이 있지만 천천히 앞으로만 달리는 마라톤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 선천적으로 관절이 좋지 않거나 무릎 주위 근육이 약화된 경우를 제외하면 달리는 게 무릎엔 좋다고 말한다. 2017년 해외 저널(Journal of Orthopaedic & Sports Physics Therapy)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적당한 운동이 관절염 발병을 낮췄다. 11만5000여 명을 연구한 25편의 논문을 메타 분석한 결과 가볍게 달리는 사람은 관절염 발병률이 3.5%였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10.2%였고, 경쟁적인 주자(선수급)는 13.3%였다. 이 대표는 “천천히 달리는 것도 중요하고 쉬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한 뒤 최소 3일은 쉬어야 한다”고 했다. 100~200km 울트라마라톤을 완주한 뒤엔 1주일은 쉬어야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우리나라 러너들은 풀코스 완주한 뒤 술을 마시는 데다 바로 다음 날부터 달리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럼 몸이 망가지죠. 105리를 달리면 무릎에 큰 충격이 가해지고 온몸에도 무리를 주는 것인데 쉬지 않고 바로 달리게 되면 고장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죠. 우리 몸은 회복력이 있습니다. 풀코스는 3~4일, 울트라마라톤은 1주일 쉬면 완전히 회복합니다.” 이 대표는 ”무리하게 달리면 심장에도 악영향을 준다“고 했다.“달리기가 심장에 좋은 영향을 주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경우도 많아요. 현장에서 달리다가 심장 이상을 일으키는 등 좋지 않은 현상도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운동할 때 혈압은 올라가다 어느 순간에 멈춰서 지속해야 하는데 계속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죠. 200여 명을 무작위로 찾아보니 부정맥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를 기록한 사람들에게서 많이 나타났어요. 그래서 3시간 30분, 4시간, 4시간 30분 기록대를 가진 사람들을 다시 분석했더니 4시간 이후 기록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부정맥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 대표는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선 근육운동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특히 나이 들면 근육량이 감소하죠. 이때 관리를 안 해주면 몸의 균형이 틀어집니다. 그럼 달릴 때 여기저기에서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주로 쓰는 무릎과 발목에도 부상이 올 수 있죠. 젊은 사람들도 근육운동으로 균형을 잡아줘야 하지만 특히 나이 든 장노년층 주자들은 근육운동이 필수입니다.” 이 대표는 달리기 등 유산소운동과 근육을 키우는 무산소운동을 50대50 비중으로 하고 있다. 그래야 자세도 좋아지고 오래 달릴 수 있어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요즘은 굳이 피트니스센터에 안 가도 집 주변에 벤치프레스, 레그프레스 등 다양한 운동 시설이 있다. 그것을 활용해도 좋다. 집에서 몸으로 하는 웨이트트레이닝 방법도 많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운동 후 빠른 회복과 오래 운동을 즐기기 위해서 단백질 섭취를 권장한다. 일반적으로 단백질의 하루 필요량은 일반인의 경우 1g/체중 1kg 정도다. 체중이 60kg이면 60g을 먹으면 된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1.5~2g/체중 1kg을 섭취하면 충분하다. “운동을 하면 근육이 미세하게 파열됩니다. 심하게 운동하고 나면 근육이 아픈 이유죠. 단백질을 섭취해야 빨리 복구됩니다. 일반 내분비 대사에도 단백질이 필요합니다. 단백질이 부족하면 회복 기간이 길어집니다. 새 근육이냐 헌 근육이냐의 차이죠. 단백질은 혈액의 성분이기도 합니다. 죽은 세포를 없애고 새로운 세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곤합니다. 염증 반응도 많이 나타납니다. 우리 몸 세포 변화의 사이클을 빠르게 돌려야 피곤하지 않고 건강합니다. 그러려면 잘 먹어야 합니다.” 영어의 단백질인 Protein은 그리스어로 ‘아주 중요한(Very Important)’이란 뜻이라고 한다. “단백질은 영양소 중 가장 중요합니다. 부족하면 머리가 푸석하고 손발이 트죠. 또 외부 충격을 흡수하는 호르몬이 활성화가 안 돼 스트레스를 쉽게 받죠. 운동도 중요하지만 영양도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학창 시절 보디빌더 출신 영화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에게 매료돼 연구하다 단백질의 중요성을 인식한 이 대표는 단백질 보조제를 만드는 ㈜파시코를 창립해 1996년부터 국내산 단백질 보조제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현재는 대부분의 달림이들이 단백질 보조제를 마시며 달리고 있다. 울트라마라톤을 시작하면서부터 운동과 영양, 건강의 상관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한국체육과학연구원(현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을 찾아 공부했고 결국 한국체대에서 운동생리학 박사학위까지 받게 됐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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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갑 앞두고 철인3종 31회 완주… 김민선 씨의 건강관리법[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경기 구리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민선 씨(59)는 지금까지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철인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를 31번 완주했다. 철인3종을 시작한 뒤 1년 만인 2009년 7월 첫 도전에 15시간13분16초에 완주했고 세달 뒤 12시간33분23초로 약 3시간을 단축했다. 최고기록은 2010년 세운 11시간12분36초. 그는 “최고기록은 달리는 대회마다 코스가 다르기 때문에 의미 없다. 그냥 즐길 뿐”이라고 했다. “2008년에 우연히 TV를 보다 철인3종에 도전했다가 완주하지 못 한 사람 얘기를 봤어요. ‘저게 그렇게 힘든가? 나도 해볼까’란 생각에 시작했죠. 뭔가 도전하고 싶었어요. 철인3종을 하기 전까진 수상스키와 스키도 타긴 했지만 운동에 진심은 아니었죠. 그냥 친구들하고 놀러 가는 수준이었죠. 철인3종을 하다 보니 몸은 피곤한데 정신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죠. 몸도 건강해지고 잡생각이 없어져요. 철인3종을 하면서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도 바뀌었죠.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망우산, 아차산을 달리기 시작했다. 평생 가지 않던 수영장에도 등록했다. 어렸을 때 자전거 타던 실력으로 사이클도 시작했다. 바로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에 도전해 완주했고, 1년만 철인코스를 완주했다. 철인3종은 다양한 코스가 있는데 ‘아이언맨(Ironman)’으로 불리는 철인코스는 운동을 즐기는 남성들도 완주하기 쉽지 않다. “제주에서 열린 철인코스에서 첫 완주에 도전했어요. 수영하고 사이클까지 마쳤는데 상당히 빠른 기록이 나와서 마라톤을 좀 천천히 했더니 15시간대가 나온 거예요. 그렇다 보니 마라톤만 5시간 넘게 달렸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3개월 뒤 대회에서는 바짝 긴장하고 마지막 마라톤 레이스에서는 물먹는 급수대를 번갈아 빼고 달렸어요. 그랬더니 3시간 정도 단축했어요.” 김 씨는 2009년 10월 두 번째 철인코스 도전에선 여자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도 연령대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4년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도 출전했다. “세계 최고의 대회에 출전하고 싶었다”며 도전했고 성공한 것이다. 2013년 일본 대회에서 12시간 24분 58초를 기록해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획득했다. 시차 적응 등에 실패해 14시간 27분 53초로 연령대별 51위를 했지만 하와이를 맘껏 즐기고 왔다. 김 씨는 지난해에도 하와이 세계선수권대회를 완주했다. 2018년 말레이시아 대회에서 출전권을 획득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탓에 출전하지 못하다 다녀온 것이다. 요즘 김 씨는 대회 출전을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철인3종 대회 출전으로 14개국을 다녀왔다. 그는 국제대회 출전을 ‘철인 여행’으로 불렀다. 대회 출전과 여행까지 약 2주일을 잡는다. 4~5일 대회 준비 및 출전에 매진하고 나머지는 그 나라 구경에 할애한다. 그의 하루는 새벽 4시 40분에 시작된다. 일어나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가 6시부터 8~9시까지 운동을 한다. 수요일엔 수영을 하고 월금 화목으로 나눠 달리기와 고정식 자전거 타기를 번갈아 한다. 주말엔 야외에서 장거리 달리기나 사이클을 탄다. “대회 출전을 잡아놓으면 최소 6개월 전이나 1년 전부터 훈련에 들어간다”고 했다. 12시간 이상 달리기 위해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는 “이젠 순위보다 즐기는데 초점을 둬 천천히 달리지만 그래도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레이스가 정말 힘들다”고 했다. 김 씨는 철인코스에 출전하면 수영 3.8km에 1시간 25분, 사이클 180km에 6~8시간, 마라톤 풀코스 4~5시간 정도에 달린다. 사이클과 마라톤은 코스에 따라 시간 편차가 많다. 마라톤 풀코스 최고 기록이 3시간34분대이지만 수영과 사이클을 소화한 뒤 달리기 때문에 4시간 이상 걸린다. 그는 “가장 못하는 게 수영이라 수영은 워밍업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한다. 가장 힘든 게 사이클이다. 사이클까지 마치면 마라톤은 그냥 쭉 밀고 나간다”고 했다. “바다나 호수에서 하는 수영은 수영장에서 하는 수영과는 달라요. 파도가 밀려오면 자칫 호흡을 못 하기도 하죠. 그래서 겁을 많이 먹습니다. 하지만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하면 됩니다. 철인3종은 긍정적인 사고를 요구합니다. 긍정적인 사고가 없다면 끝까지 완주하는 것 자체가 힘들죠. 제주도 바다에서 수영할 때 파도가 너무 거칠어서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죠. 하지만 ‘내가 과거에 인어공주였을 것이다, 해녀였을 것이다’라고 마인드컨트롤 하면서 극복했어요.” 김 씨는 2021년 6월 피트니스센터 코치의 권유로 보디빌딩대회에 나갔다. “코치가 몸이 좋으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해 한 달 반 훈련하고 나갔는데 1등을 했다”고 했다. 서울 광진구에서 열린 WNC 시그니처 보디피트니스대회에 출전해 여자 스포츠모델 시니어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철인3종을 오래 해서인지 지방이 없고 근육이 선명해 우승할 수 있었다. 그의 체지방률은 15%도 안 된다. 근육운동은 또 다른 재미를 줬다. 힘이 생겼고 자세도 좋아졌다. 부상도 방지해줬다. 김 씨는 내친김에 2급 보디빌딩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그는 “나이 들면서 시니어 전문 피트니스센터를 하나 차리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이 든 지도자가 어르신들을 지도하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운동하면서 돈도 벌어 ‘일석이조’ 아닌가?”라고 했다. 김 씨는 2019년 히말라야 에베레스트에서 열린 풀코스 산악마라톤도 8시간 51분에 완주했다. 지난해에는 6박 7일간 250km를 달리는 고비사막 마라톤을 완주했다. “사하라사막마라톤을 완주하는 게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그 전초전을 고비사막에서 했다. 사하라는 더 힘드니 여유를 가지고 도전하겠다”고 했다. 4월 16일 듀애슬론(마라톤 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 출전으로 올 시즌을 시작한 김 씨는 5월 대구와 전북 군산에서 열리는 철인3종 철인코스에서 예열을 한 뒤 6월 독일 로스 챌린지 철인3종 철인코스에 출전한다. 그는 “국내에 60세 넘어 철인코스 완주한 여자가 별로 없는데 70세까지 철인코스 완주에 도전하겠다”며 활짝 웃었다. 도전이 있기에 삶이 즐겁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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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인3종 즐기다 보디빌딩 대회에서도 1등 했어요”[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2008년에 우연히 TV에서 철인3종에 도전했다가 완주하지 못한 사람 스토리를 봤어요. ‘저게 그렇게 힘든가? 나도 해볼까’란 생각에 시작했죠.” 경기 구리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민선 씨(59)는 지금까지 철인3종(트라이애슬론) 철인코스(수영 3.8km, 사이클 180km, 마라톤 42.195km)를 31번 완주했다. 철인3종을 시작한 뒤 1년 만인 2009년 7월 처음 도전해 15시간13분16초에 완주했고, 세 달 뒤 12시간33분23초로 약 3시간을 단축했다. 최고기록은 2010년 세운 11시간12분26초. 그는 “달리는 대회마다 코스가 다르기 때문에 최고기록은 의미 없다. 그냥 즐길 뿐”이라고 했다. “뭔가 도전하고 싶었어요. 철인3종을 하기 전까진 스키와 수상스키도 타긴 했지만 운동에 진심은 아니었죠. 그냥 친구들하고 놀러 가는 수준이었죠. 철인3종을 하다 보니 몸은 피곤한데 정신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꼈어요. 몸도 건강해지고 잡생각이 없어져요.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도 바뀌었죠.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은 절대 없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망우산, 아차산을 달리기 시작했다. 평생 가지 않던 수영장에도 등록했다. 어렸을 때 자전거 타던 실력으로 사이클도 시작했다. 바로 올림픽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에 도전해 완주했다. 1년 만에 철인코스에 도전했고 2009년 10월 두 번째 철인코스 도전에선 여자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지금도 연령대별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4년엔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출전했다. “세계 최고의 대회에 출전하고 싶었다”며 도전했고 성공한 것이다. 2013년 일본 대회에서 12시간24분58초를 기록해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획득했다. 세계선수권에서는 시차 적응 등에 실패해 14시간27분53초로 연령대별 51위를 했지만 하와이를 맘껏 즐기고 왔다. 김 씨는 지난해에도 하와이 세계선수권대회를 완주했다. 2018년 말레이시아 대회에서 출전권을 획득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탓에 출전하지 못하다 다녀왔다. 요즘 김 씨는 대회 출전을 세계 각국을 여행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 지금까지 철인3종 대회 출전으로 14개국을 다녀왔다. 그는 국제대회 출전을 ‘철인 여행’으로 불렀다. 대회 출전과 여행까지 약 2주를 잡는다. 4, 5일 대회 준비 및 출전에 매진하고 나머지는 그 나라 구경에 할애한다. 그의 하루는 오전 4시 40분에 시작된다. 일어나 피트니스센터로 달려가 오전 6시부터 8∼9시까지 운동을 한다. 수요일엔 수영을 하고 월금, 화목으로 나눠 달리기와 고정식 자전거 타기를 번갈아 한다. 주말에 시간 날 땐 야외에서 장거리 달리기나 사이클을 탄다. “대회 출전을 잡아놓으면 최소 6개월 전이나 1년 전부터 훈련에 들어간다”고 했다. 12시간 이상 달리기 위해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그는 “이젠 순위보다 즐기는 데 초점을 둬 천천히 달리지만 그래도 훈련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레이스가 정말 힘들다”고 했다. 김 씨는 최근 근육운동도 시작했다. 피트니스센터 코치의 권유로 한 달 반 준비해서 2021년 6월 나간 WNC 시그니처 보디피트니스대회에 출전해 여자 스포츠모델 시니어 부문 1위를 차지한 게 계기가 됐다. 철인3종을 오래 해서인지 지방이 없고 근육이 선명해 우승할 수 있었다. 그의 체지방률은 15%도 안 된다. 근육운동은 또 다른 재미를 줬다. 힘도 붙고 자세도 좋아졌다. 부상도 방지해 줬다. 김 씨는 2급 보디빌딩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 공부도 시작했다. “나이 들면서 시니어 전문 피트니스 지도자로 활동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같은 나이대여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운동하면서 돈도 벌어 ‘일석이조’이기도 하고요.” 16일 듀애슬론(마라톤 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 출전으로 올 시즌을 시작한 김 씨는 5월 대구와 전북 군산에서 열리는 철인3종 철인코스에서 예열을 한 뒤 6월 독일 챌린지 로스 철인3종 철인코스에 출전한다. 그는 “국내에 60세 넘어 철인코스 완주한 여성이 별로 없는데 70세까지 철인코스 완주에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도전이 있기에 삶이 즐겁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 2023-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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