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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하면 싸우는 형제들. 몇 살 터울이 나지 않는 이들은 같은 장난감을 두고 서로 갖고 싶어 다툰다. 심한 장난을 치다 누군가가 토라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언제나 함께하며 서로를 응원해주는 사이라는 것. 형제는 가족이면서도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 같은 관계가 아닐까. 다섯 남매의 일상을 통해 형제애를 그렸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형제끼리 이야기해주면 좋겠다는 당부와 멀리 있더라도 항상 마음을 활짝 열고 서로를 안아주겠다는 이들의 고백이 사랑스럽다. “폭풍우가 몰아치거나 밤의 그림자가 우리에게 닥쳐와도 문제없어. 우리가 함께하는 한 모두 이겨낼 수 있어” “우리는 언제나 함께하며 서로를 응원해 줄 거야” “멀리 있더라도 내 마음을 활짝 열고 너를 안아줄게.” 1인칭 시점으로 형제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네는 대화체의 문장에선 따뜻함이 묻어난다. 형제의 일상을 담은 일러스트 느낌의 그림도 깜찍하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너구리가 산책 중인 강아지를 놀라게 하고 족제비가 카페를 기웃거린다. 대한민국에서 최근 일어난 일들이다. 2017년에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멧돼지가 나타나 뛰어다녔다.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뉴욕 부근 뉴저지 주에는 흑곰 5000마리가 산다. 반세기만에 200배 이상으로 늘었고 알래스카보다 면적당 곰 밀도가 높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바라캠퍼스 환경학 교수인 저자는 1970년대 이후 북아메리카와 유럽, 동아시아의 도시들이 야생동물들과 함께 사는 ‘어쩌다 숲’이 되고 있다고 보고한다. 인간을 위해 설계된 도시는 어떻게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공간으로 바뀌게 됐을까. 신간 ‘어쩌다 숲’에 따르면 19세기 말 조경사 옴스테드는 미 전역에 수많은 도시 공원을 설계했다. 뉴욕 센트럴 파크가 대표적이다. 같은 시대의 에버니저 하워드는 도심 주변에 외곽 마을들이 방사형 도로로 연결된 ‘정원 도시’ 개념을 수립했다. 야생동물들을 배려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들의 아이디어는 동물들이 모이는 계기로 연결됐다. 대부분의 도시는 본디 동물들이 살기 좋은 지역에 터를 잡았다. 기후가 쾌적한데다 깨끗하고 풍부한 물, 풍족한 식물군이 있는 곳에 사람이 모였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도시들을 광범위한 교외 마을의 군집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물들은 낮에 교외 마을에서 음식과 물을 얻고 밤에 은신처로 돌아갔다.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 모기잡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새가 야생동물의 도시 귀환에 중요한 주역이 됐다. 1991년 새크라멘토 시는 이 새가 사는 관목의 서식지를 보존하기 위해 자연사회보존계획(NCCP)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를 본 딴 프로그램을 26년 뒤 29개 도시가 마련했고 11개 도시가 도입을 추진 중이다. 도시 교외 주민들은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해 건설을 억제하고 주거 밀도의 한계를 정했다. 사람이 살기 좋은 교외는 야생동물에게도 덜 적대적인 장소가 됐다. 야생동물의 개체 수가 늘어도 도시에서 살 수 있는 종(種) 수는 한정되기 마련이다. 도시 야생동물의 이야기는 결국 ‘소수의 성공 스토리’다. 도시는 치열한 진화의 실험실이기도 하다. 삼색제비는 배수로에 집을 지으면서 날개가 짧아졌다. 도시 하천에 출몰하는 연어는 화학물질에서 배아를 지키는 생체 시스템을 발전시켰다. 도시의 도마뱀은 콘크리트 벽을 타기 위해 다리가 길어지고 발바닥이 더 끈끈해졌다. 남부 프랑스에서는 메기가 물에서 튀어 올라 비둘기를 사냥한다. 새들은 시끄러운 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새소리를 바꿨다. 야생동물이 모일 수 있는 도시는 인간에게도 이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동물의 서식지를 보존하고 복원하면 녹지가 늘어나고 도시 열섬이 줄어든다. 하천을 잘 가꾸면 수변 공원이 생기고 홍수의 위험도 줄어든다. 숲을 잘 가꾸면 공기를 정화하고 물을 저장해준다. 결국 인간과 동물이 서로 잘 살 수 있는 배경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 도시의 과제라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미국보다 도시화가 훨씬 진행된 아파트 숲 속의 한국인에게 더 절실한 과제일지도 모른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경기 부천시의 한 산하기관이 문화체육관광부의 후원을 받아 주최한 만화축제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전시해 논란이다. 그림은 이 기관이 최근 주최한 공모전에서 해당 부문 중 최고인 금상을 받았다. 4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진흥원)에 따르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진흥원 주최로 열린 부천국제만화축제 기간 중 부천시 한국만화박물관에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만화 작품이 전시됐다. 한 컷으로 된 이 작품을 보면 윤 대통령의 얼굴을 한 열차가 철도 위를 달리고 있고, 조종석에는 아내 김건희 여사로 보이는 사람이 타고 있다. 또 객실에는 검사복을 입은 4명의 사람이 칼을 들고 있으며 열차 앞에는 4명의 사람이 놀란 표정으로 달아나고 있다. 열차가 지나온 철도 주변에는 건물들이 파괴된 모습도 그려졌다. 지방의 한 고등학생이 그린 이 그림은 올 7~9월 진흥원 주최로 진행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고등부 카툰 부문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아 금상(경기도지사상)을 받았다. 공모전은 고등부 카툰·웹툰, 중등부 카툰·웹툰·캐릭터 등 5개 부문으로 진행돼 모두 209개의 작품이 접수됐다. 진흥원 관계자는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해당 작품을 포함한 이 공모전의 수상작들을 이번 축제에 전시한 것”이라며 “외부 인사로만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공모전 심사를 맡았으며, 수상작 선정에는 어떠한 의도도 없다”고 해명했다. 진흥원은 경기 부천시의 산하 기관으로, 진흥원장과 부천시장은 모두 더불어민주당 인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논란이 불거지자 해당 공모전의 심사 기준과 선정 과정 등을 살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체부는 이날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에서 정치적인 주제를 노골적으로 다룬 작품을 선정해 전시한데 대해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며 “심사 과정에 문제가 있을 경우 행사에 문체부 후원 명칭을 사용하고 대상에 문체부 장관상을 수여하는 것을 취소하겠다”고 했다.부천=공승배기자 ksb@donga.com김정은기자 kimje@donga.com}
세 살 남짓한 남자아이가 뛰어다니다 블록을 밟고 자빠진다.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운다. 아이의 울음에 엄마는 한걸음에 달려온다. “블록이 범인이었구나, 어제 거실에서 블록 놀이 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엄마의 질문에 아이는 울음을 멈추고 답한다. “내가 했어….” 엄마는 아이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논 다음에는 스스로 정리하기로 한 약속을 상기시킨 뒤 아이를 도와 장난감 정리에 나선다. 아이와 엄마는 놀이터로 향하던 중 횡단보도 앞에서 발길을 멈춘다. 아이는 차가 없으니 그냥 건너자고 재촉하고, 엄마는 그런 아이에게 “안 돼. 횡단보도는 신호등이 초록불일 때 건너가기로 약속한걸”이라고 타이른다. “여럿이 함께 잘 지내기 위해 만든 규칙도 약속이야.” 각각의 에피소드는 엄마와 아이가 일상에서 한번씩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로 구성됐다. 부모 입장에선 아이에게 규칙과 약속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팁을 얻을 수 있고, 아이들 입장에선 지켜야 할 약속을 배울 수 있다. 따뜻한 색감의 삽화도 인상적이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1942∼2020)의 기증 1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했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다음 달부터 지역순회전을 갖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다음 달 5일 국립광주박물관과 광주시립미술관을 시작으로 2024년까지 각 지역을 대표하는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지역순회전’을 개최한다고 26일 밝혔다. 지역 국립박물관에서는 올 4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던 기증 1주년 기념 특별전 ‘어느 수집가의 초대’를 토대로 박물관별로 전시를 연다. 지역 미술관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선별한 명작 50여 점을 포함해 기관별 상황에 맞춰 전시를 한다. 첫 주자인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조선 회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등 271점을, 광주시립미술관에서는 이중섭의 ‘오줌 싸는 아이’ 등 90여 점을 선보인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중세 시대 서양 미술’을 다룬 미술시간. 화면에 뜬 중세 시대 그림을 감상하던 중 한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왜 그림 속 사람들의 머리에서 빛이 나는 건가요?” 그러고 보니 각 그림마다 인물 가운데 몇몇은 머리 위에 둥근 해가 뜬 것처럼 빛이 난다. 선생님은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인물들이라 숭고한 영혼의 증표로 머리에서 빛이 나도록 표현했다”고 설명한다. “실제 눈에 보이진 않지만 인품이 훌륭하거나 다른 이들을 돕고 배려하는 사람들에게서 빛이 난다고 하지요.” 소녀는 하굣길에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평소에는 볼 수 없었던 점을 발견한다. 소방관과 구급대원, 노숙자를 돕는 할머니, 연탄 배달을 하는 봉사자들 머리 위에 나타난 ‘밝은 빛’이다. 저자는 타인에 대한 배려, 약자를 향한 관심, 희생을 ‘빛’으로 형상화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타심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다는 따뜻한 메시지를 담았다. 3D그래픽으로 그린 그림은 애니메이션을 한 장면 한 장면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다부진 체격에 힘이 센 친구들이 모인 ‘청팀’과 다소 마르고 왜소한 친구들이 뭉친 ‘홍팀’. 양 팀이 줄다리기에 나선다. 한판 붙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예측이 쏟아진다. “힘센 애들은 다 청팀이야.” 하지만 승부는 겨뤄봐야 아는 법. 위축돼 있던 홍팀을 향해 군중 속 누군가가 외친다. “줄다리기는 힘보다 기술!” 첫 경기에선 청팀이 가볍게 이기지만, 두 번째 경기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청팀을 향해 날아온 꿀벌 한 마리 때문에 잠시 우왕좌왕하는 사이 홍팀이 힘을 합쳐 간발의 차로 이긴다. 세 번째 경기에선 홍팀 선생님이 “우리가 이기고 있어”라고 한 선의의 거짓말에 홍팀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다. 결국 홍팀의 승리로 경기는 끝난다. “실패를 실패로 끝내지 말아야 마지막에 웃을 수 있단다” “그저 묵묵히 걷는 거야. 지나간 일은 잊고. 앞을 향해”와 같은 글귀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팽팽한 줄다리기 경기 모습을 생생하게 그린 삽화도 인상적이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내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오가는 고물가 시대다. 그 여파는 문화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최근 뮤지컬 업계에선 티켓 가격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불렸던 ‘VIP석=15만 원’ 공식이 깨졌다. 카카오M이 인수한 공연제작사 쇼노트가 11월 개막하는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의 VIP석 가격을 16만 원으로 책정한 것. 팬들은 “커플이 뮤지컬을 보려면 30만 원 넘게 필요하다”, “연말에 4인 가족 관람은 어려울 것 같다”는 원성을 쏟아냈다. 최근 4년간 대극장 뮤지컬 티켓 가격은 7만(A석)∼15만 원(VIP석)을 유지했다. 작품별로 제작비가 달라도 경쟁작들이 내건 티켓 가격대를 맞췄다. ‘시장의 통상 가격’을 따른 셈이다. 쇼노트의 행보에 다른 제작사들도 티켓가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한 제작자는 “욕을 먹을까 봐 선뜻 티켓 가격 인상에 나서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많은 제작사들이 VIP석 16만 원 책정을 고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팬들의 아우성에 제작사들은 “물가가 다 올랐지 않느냐”며 억울해한다. 국내 뮤지컬 시장을 들여다보면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된 작품을 로열티를 내고 라이선스 공연으로 들여오거나 대본과 음악, 의상, 무대세트, 자잘한 소품까지 해외 프로덕션에서 국내로 들여오는 레플리카 작품이 상당수다. 1400원대를 향하고 있는 원-달러 환율과 제작비 인플레이션으로 티켓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제작사의 아우성이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뮤지컬 티켓 가격은 크게 제작비(대관료+배우 개런티+인건비 등), 공제비용(로열티+티켓 수수료 등), 제작사 수입의 3개 항목으로 구성된다. 적정 티켓가는 정해져 있고 작품별 제작비는 다르다 보니 제작사는 손익분기점을 정한 뒤 VIP석, R석, S석, A석 등 좌석의 비율로 수익을 맞춰 왔다. 극장 1층 전체를 VIP석으로 정한 공연도 있었다. 하지만 고물가 시대에 VIP석 비율을 높여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게 제작자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1인당 16만 원의 티켓 가격은 소비자에게 큰 부담이다. 간만에 문화생활을 해볼까 마음먹었다가도 통장 잔액을 보며 두 번 세 번 고민하게 만드는 가격임에 틀림없다. 뮤지컬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브로드웨이는 티켓 가격을 철저하게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정한다. 관객이 많으면 값을 올리고, 적으면 할인하는 ‘가격 탄력제’가 시장을 지배하는 것. 공연 시작 2시간 전 추첨을 통해 남은 VIP석을 할인하는 로터리 티켓 제도와 최대 75% 할인가에 즐기는 입석 티켓 제도도 운영한다. 주중 티켓 가격은 주말보다 저렴하다. 1000석 이상 대극장용 공연이면 천편일률적으로 ‘VIP석=15만 원’을 적용하는 한국에선 흥행 작품은 수익을 내지만, 흥행 실패작은 좌석을 채우지 못해 손해를 보기 일쑤다. 이참에 한국 뮤지컬 시장에 가격 탄력제를 도입하는 건 어떨까. 수익을 맞춰야 하는 제작사에도 유리하고, 관객에겐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 무엇보다 작품의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서우는 뭐든 조금 느린 아이다. 친구들은 서우를 ‘북이’라고 부른다. ‘거북이’에서 따온 별명이다. 학교에서 반별 계주대회가 열렸다. 서우네 반은 내내 1등으로 달렸지만, 서우가 마지막 주자로 나서면서 꼴찌로 결승선에 들어온다. 친구들은 화가 나 “우리 반이 이길 수 있었는데, 북이만 아니었어도…”라고 투덜댄다. 서우는 미안함과 속상한 마음에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집으로 향한다. ‘달빛 수족관’이란 가게 앞에서 서우는 수조 한 귀퉁이에 홀로 떨어져 있는 거북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서우는 거북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집에 오자마자 제일 자신 있는 종이접기로 거북이를 만든다. 그리고 책상 서랍을 비워 바다로 꾸민 뒤 종이 거북이를 풀어줬다. 갑자기 마법처럼 바다가 생겨나고 거북이가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조금 느리고 서툰 서우와 거북이가 바닷속에서 우정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장점이 있다’는 메시지는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엄마가 안아 주니깐 힘이 나.” 매번 엄마가 음식을 먹여주고, 옷을 직접 입혀줘야 하는 작고 소중한 아이. 그런 아이가 몇 년 후 혼자서도 음식을 먹고 스스로 옷을 챙겨 입을 정도로 자랐다. 하루는 아이가 오늘은 중요한 날이라며 단추가 달린 카디건을 스스로 입겠다고 말한다. 엄마는 그런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그래, 네가 한번 해보렴”이라고 응원해준다. 작은 손으로 단추를 구멍 사이에 끼워 넣지만, 짝을 못 맞춰 단추 하나가 남는다. 아이는 다시 도전해 단추 끼우기에 성공하지만 의기소침해진다. 그런 아이에게 엄마는 “그래도 끝까지 혼자 입었잖아. 그게 더 대단한 거야”라고 다독여 준다. 엄마는 아이에게 앞으로 커가면서 새로운 것을 더 많이 배울 것이고, 처음엔 서툴고 어렵더라도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힘들 땐 엄마 아빠에게 상의해 함께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해결책도 제시한다. 다양한 조언과 응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새삼 ‘엄마’라는 단단한 울타리의 존재를 생각하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1세대 한복 디자이너의 전통 한복부터 방탄소년단(BTS), 블랙핑크의 한복 디자이너들이 손수 만든 생활한복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 D2홀에서 25∼28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한복 박람회 ‘2022년 한복상점’이 열린다. 올해 5회를 맞는 한복상점에서는 1세대 한복 디자이너인 서영희 디자이너(사진)가 예술감독으로 참여한 기획전시도 열린다. 블랙핑크가 ‘How You Like That’ 뮤직비디오에서 입어 화제가 된 한복을 디자인한 김단하 씨(32), 2018 멜론 뮤직 어워드에서 BTS 멤버 지민이 입은 한복을 만든 황이슬 씨(35) 등 주목받는 젊은 한복 디자이너 10명도 한복상점에 참여한다. 서영희 예술감독은 24일 “한복 박람회지만 단순히 한복을 구입하는 단계를 넘어 한복의 아름다움과 최신 트렌드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를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기획전시관에 들어서면 김진이 작가의 동양화가 담긴 병풍을 배경으로 곳곳에 전통한복부터 생활한복을 입은 마네킹들이 즐비해 있다. 시대를 달리하는 복장이지만 색깔은 ‘쪽빛’으로 통일했다. 서 예술감독은 “한복의 시대별 변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한복홍보대사인 가수 송가인이 직접 만든 한복 장신구 20여 점도 전시된다. 올해 한복상점에는 총 74개 한복업체가 참여한다. 각 업체들은 한복과 장신구 등을 정상 판매가의 평균 30%, 최대 80% 할인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은 “올해 한복상점 박람회는 사전등록자만 6000명을 넘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며 “한복상점을 통해 한복업계가 새로운 유통 판로를 개척하고 한복을 즐기는 문화가 더욱 확산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신진 디자이너 육성을 위한 한복디자인프로젝트 공모전과 한복 디자인 개발 사업을 하고 있다”라며 “공모전 수상작과 함께 새롭게 디자인된 한복 교복 및 근무복 등을 한복상점에서 만나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복을 입었거나 사전 등록을 마친 관람객은 한복상점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사전 등록은 28일까지 한복상점 누리집에서 하면 된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전북 부안에서 나고 자란 저는 아홉 살 때 ‘꿈의 오케스트라’에 입단해 처음 바이올린을 접했어요. 10년 뒤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을 만나 지도받게 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어요.” 바이올린을 전공하며 음대 진학을 준비하는 박은수 씨(19)가 말했다. 세계 22개국에서 온 18∼27세 연주자 100여 명이 지난달 19일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모였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41)이 이끄는 두다멜재단과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 ‘엔쿠엔트로스’에 참가한 것.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운영하는 청소년 오케스트라인 ‘꿈의 오케스트라’ 졸업 단원인 박 씨는 한국 대표로 참여했다. 엔쿠엔트로스에 한국인이 참여한 건 처음이다.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그는 “2주간 각국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LA필하모닉 단원들에게 연주 지도를 받았다”며 “이달 2일과 4일엔 LA의 대규모 야외 음악당인 할리우드볼과 UC버클리 허스트 그릭시어터에서 두다멜의 지휘로 두 차례 열린 공연에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두다멜은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가 낳은 스타 지휘자다. “두다멜이 ‘평범한 길을 걷던 우리가 악기를 지니면 무한한 힘을 갖게 된다. 음악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말했어요. 감동받았죠. 제가 음악을 해온 이유이기도 하거든요. 두다멜을 만난 뒤 음악을 통해 느낀 행복을 전하는 연주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박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 ‘꿈의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 부모님이 다섯 남매 중 셋째인 그에게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어 권유했다. 악기를 선택하는 날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엘가의 ‘사랑의 인사’를 우연히 듣게 됐고 이에 매료돼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그리고 10년간의 오케스트라 활동은 그에게 바이올리니스트의 꿈을 심어줬다. 박 씨는 “‘꿈의 오케스트라’는 시골에서 평범하게 지내던 저의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줬다”며 “고등학교 진학 후 진로를 고민하다 연주할 때 가장 행복했다는 걸 깨닫고 음대에 진학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2010년부터 운영 중인 ‘꿈의 오케스트라’는 전국 청소년이 일상에서 클래식 음악을 가까이 접하고 연주도 할 수 있게 구성한 프로그램이다. 현재 51개 지역에서 2900여 명이 단원으로 활동 중이다. 박 씨는 “요즘 진학 준비로 바쁘지만 ‘꿈의 오케스트라’의 멘토로 활동하며 단원들과 여러 무대에 함께 서고 싶다”고 말했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쓰레기가 점령해 버린 세상. 바닷속엔 물고기 등 생명체가 살지 않고 온통 쓰레기뿐이다. 수난과 카이 자매는 자신들의 이름을 딴 섬 ‘수나카이’에 산다. 수나카이는 바다에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들이 쌓여 생긴 섬이다. 두 자매는 바닷속 쓰레기 중 쓸 만한 물건을 찾아 상인들에게 팔며 생계를 이어 나간다. 카이는 평소처럼 바닷속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중 금시계를 발견한다. 하지만 상인이 들고 온 딱 하나 남은 노란 물고기에게 마음을 빼앗겨 바꾼다. 물고기는 며칠 뒤 죽고, 물고기를 바다로 돌려보내려던 카이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바닷속 아주 깊은 곳의 생명체가 죽은 물고기를 품자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 것. 이후 그간 죽은 줄만 알았던 바다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그림 곳곳에 등장하는 해양쓰레기와 생명체가 살지 않는 바다의 모습은 자연 앞에 이기적인 인간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책 전반부와 후반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바다의 삽화를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2007년에 에투알(수석무용수)로 임명돼 15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대. 2014년생 딸을 둔 마흔 살 워킹맘이기도 해. 대단하지 않아?” 지난달 28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파리오페라 발레 2022 에투알 갈라’ 공연에서 단연 눈에 띈 건 파리오페라발레단(BOP)의 에투알 도로테 질베르였다. 현대 발레 ‘아모베오’의 파드되(2인무) 공연을 펼친 그는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움직이듯 유려하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춤으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왜 그의 이름 앞에 ‘BOP의 자존심’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니는지 실력으로 납득시켰다. 또 하나 눈길을 끈 건 그녀가 2014년생 딸을 둔 워킹맘이란 점이었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딸의 모습을 종종 공개해 온 그는 한국 공연을 앞두고 분장실에서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공개했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엄마’ 정체성을 대중에게 드러내곤 했다. 그녀와 비슷한 시기에 국내 최정상 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로 활동하며 주목받았던 한국의 발레리나들이 떠올랐다. 그중 아이를 갖기 위해 발레단에서 은퇴한 경우도 있고, 은퇴 후 육아에 매진하는 무용수도 있다. 이들을 보면 마치 발레리나들에게 출산과 육아는 은퇴의 결정적 계기가 되는 것 같았다. 미혼이지만 젊은 발레리나를 선호하는 대중의 시선을 고민하던 발레리나도 있었다. 국립발레단 전 수석무용수인 김주원은 서른일곱이던 2014년 한 방송에 출연해 “한국 사회는 나이가 있는 발레리나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며 마흔을 앞둔 발레리나로서의 고민을 토로한 바 있다. 외국은 어떨까. 도로테 질베르 외에도 2015년 BOP와 미국 아메리칸발레시어터(ABT)에서 각각 은퇴한 스타 발레리나 오렐리 뒤퐁과 줄리 켄트는 모두 마지막 무대에 남편과 아이들을 대동한 것으로 유명한 ‘워킹맘 발레리나’였다. 특히 줄리 켄트는 임신한 상태에서도 여러 작품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러시아의 전설적인 발레리나 마이야 플리세츠카야는 볼쇼이 발레단에서 65세까지 무용수로 활동했다. 한국에선 왜 이런 광경을 보기 어려울까. 한 무용 평론가는 “발레는 무용수가 미세한 근육까지 관리해야 해 발레리나에게 출산은 은퇴 선고로 여겨진 부분이 있다”며 “특히 발레리나의 이미지 중 젊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국내 관객의 기대치가 높다 보니 20대 발레리나 위주로 활약했다”고 분석했다. 다행히 최근 몇 년 새 국내에서도 소수의 ‘워킹맘 발레리나’가 등장했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리회가 2019년 딸을 출산하고 100일 만에 복귀한 것. 당시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 발레리나들은 결혼과 출산을 했던 사례가 거의 없어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김리회의 복귀는 국립발레단 내 또 다른 워킹맘 무용수를 낳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솔리스트 한나래 역시 지난해 출산 후 발레단에 복귀했다. 은퇴의 잣대로 나이와 출산이 아닌 기량이 우선시되는 게 마땅하지 않을까. 적어도 10년 뒤엔 우리 사회에서도 “우리 엄마는 무대에 서는 발레리나야”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
숲에도 여름 휴가철이 다가왔다. 두더지는 땅파기 연습에만 몰두하던 따분한 일상을 뒤로하고 무작정 길을 나선다. 그리고 잠시 머문 나무 그늘 아래서 처음 만난 거북이와 금세 친구가 된다. “거북이는 바다에 사는데…. 길을 잃어버렸나 봐. 거북아! 나랑 같이 바다에 갈래?” 붙임성 좋은 두더지는 바다로 향하는 내내 조잘거린다. 반면 거북이는 말이 없다. 밤이 되자 숲은 어두워졌고, 두더지와 거북이는 들짐승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열심히 땅을 파며 길을 만든다. 바다로 가는 도중 뜻하지 않게 워터파크, 야외 결혼식장도 가게 된다. 좌충우돌 여정이지만, 매사 즐겁다. 드디어 도착한 바다. 두더지는 거북이와 이제야 좀 친해졌는데 곧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슬퍼진다. 그때 드디어 입을 연 거북이의 한마디…. 예상치 못한 깜찍한 반전에 웃음이 터진다. 서로 다른 둘이 만나 서툴지만 진한 우정을 나누는 과정을 따뜻한 문체로 그렸다. 쨍한 색감의 그림은 여름빛을 머금은 듯 싱그럽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비 내리는 일요일, 할아버지 집을 찾은 루이와 리즈는 심심해 죽을 지경이다. TV도 없는 데다 비가 와서 놀이터에서 놀 수도 없기 때문이다. 두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말을 건넨다. “내 비밀 통로를 찾아보렴. 두고 봐라. 아주 신기할 테니.” 둘은 집 곳곳에 숨겨진 통로를 찾기 위해 안방과 화장실, 지하실, 욕실 등을 헤집고 다닌다. 그러다가 증조할머니의 보석과 에밀 아저씨의 오래된 그림 등을 발견한다. 둘은 마치 탐험가가 된 듯 비밀통로 찾기에 집중한다. 과연 아이들은 진짜 비밀 통로를 찾을 수 있을까? 한참 뒤 외출하고 돌아온 할머니가 알려준 ‘비밀통로’의 존재는 반전 그 자체다. 2D 애니메이션 같은 생생한 그림은 주인공들과 함께 탐험에 나서는 느낌을 준다. 벽돌 통로를 표현한 그림책 표지 한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고, 구멍 너머엔 마치 구멍 안을 들여다보는 듯한 루이와 리즈가 있다. 종이책의 물성을 적극 활용한 점이 인상적이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배우 오영수 씨(78)가 ‘한국 공연관광 홍보대사’로 25일 위촉됐다. 안무가 모니카(신정우·36) 씨는 공연 관광 축제 ‘2022 웰컴 대학로’의 홍보대사가 됐다. 오 씨는 1967년 극단 광장 단원으로 입단해 55년간 대학로를 중심으로 연극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깐부’ 할아버지로 유명해진 그는 올해 초 한국 배우 최초로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tvN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모니카 씨는 댄스팀 ‘프라우드먼’을 이끌고 있다. ‘2022 웰컴 대학로’는 9월 24일부터 10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일대에서 열린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평화로운 바다에 험버트라는 이름의 물고기가 등장한다. 시종일관 허풍과 거짓말로 바닷속 친구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험버트. “이건, 아주 중요한 소식이니깐, 얼른 친구들에게 알려야 해”라는 말로 친구들에게 접근한 험버트는 바위 너머에 물고기 친구들을 위협하는 못된 물고기 떼가 있다는 등 거짓말을 일삼는다. 무지개 물고기를 비롯한 여러 친구들은 험버트에게 속지 않으려고 조심한다. 그가 허풍을 떨기 시작하면 모두들 웃어대는 식이다. “험버트는 그냥 우스운 이야기꾼일 뿐이야. 그의 말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결국 외톨이가 된 험버트는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친구들은 결국 그를 돕기로 맘먹고, 험버트의 재주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60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에서 3000만 부 이상 판매된 ‘무지개 물고기’ 출간 30주년을 기념한 신작이다. 한국에서 처음 출간됐다. 험버트를 변화시킨 물고기 친구들의 선함이 마음 깊이 다가온다. 다양한 색과 반짝이는 은박을 곳곳에 활용한 그림도 인상적이다.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74년 만에 국민에게 개방된 청와대가 미술관으로 거듭난다. 청와대 소장 미술품 609점을 비롯해 ‘이건희 컬렉션’ 등 국내외 유명 작품을 유치해 상설 및 기획 전시를 이어갈 방침이다. 올해 5월 청와대가 일반에 개방된 후 구체적인 활용방안이 처음 나왔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청와대 활용방안을 포함해 5대 핵심 과제를 밝혔다. 청와대 본관·관저·영빈관·춘추관은 ‘프리미엄 근·현대미술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본관은 1층의 로비를 포함해 세종실(335m²), 충무실(355m²), 인왕실(216m²)을 미술품 상설 전시장으로 운영한다. 단, 본관 2층의 집무실과 회의실 등은 원형을 유지한다. 관저는 본채 거실과 별채 식당, 춘추관은 2층 기자회견장(450m²)을 전시공간으로 활용한다. 특히 춘추관 2층 전시공간은 민간에 대관할 예정이다. 주요 외빈을 위한 행사장으로 이용된 영빈관(496m²)은 10m 높이의 내부 홀 층고를 활용해 특별 기획전시장으로 꾸밀 계획이다. 박 장관은 “영빈관에서는 609점의 청와대 소장품으로 구성한 기획전을 비롯해 ‘이건희 컬렉션’ 등 국내외 최고 작품을 유치해 전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르면 올가을 ‘청와대 컬렉션 특별전’이 개최된다. 청와대 소장 미술품 609점 가운데 김기창 장우성 허백련 서세옥 등 한국화 거장 24인의 작품 30여 점을 추려 첫 공개전시를 연다. 박 장관은 “이승만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기증받은 당대 최고의 한국화 작품이 나올 것”이라며 “오랜 세월 소수의 권력자만 즐겼던 고품격 작품을 국민이 향유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춘추관 2층 기자회견장에서는 다음 달 장애인 미술 특별전이 열린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집무실과 사저에 작품을 걸어 유명해진 발달 장애화가 김현우 씨를 비롯해 드라마 출연으로 화제가 된 캐리커처 작가 정은혜 씨의 작품 등 회화 50여 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녹지원 등 청와대 야외공간은 조각공원, 수목원으로 재단장한다. 청와대 내 수령 740년이 넘는 최고령 주목을 비롯해 180여 종 5만여 그루의 나무를 활용할 계획이다. 특히 본관 앞 대정원은 종합 공연예술 무대로 활용한다. 본관과 관저, 1993년 철거된 구 본관 터를 중심으로 대통령 역사문화공간도 조성한다. 이를 위해 역대 대통령 유가족과 대통령학 전문가 등으로 자문위원회를 꾸릴 예정이다. 김정은 기자 kimje@donga.com}
“나이가 들수록 인생에 목표가 없어지잖아요. 근데 여정 언니가 보여줬죠.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기에 결코 늙지 않았다는 걸요.” 74세의 나이로 한국 배우 사상 첫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거머쥔 배우 윤여정. 그의 오랜 지인이자 미국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타이밍 디렉터로 일하는 김정자 씨(68)가 tvN ‘뜻밖의 여정’에 출연해 한 말이다. 김 씨 역시 2018년 에미상을 수상하는 등 탄탄대로를 걷고 있지만 배우 윤여정이 열어준 ‘가능성’에 희망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배우 오영수는 78세에 한국인 사상 첫 골든글로브 남우조연상을 받은 데 이어 최근 에미상 남우조연상 후보에도 이름을 올렸다. 지난달 작고한 ‘최고령 MC’ 송해는 은퇴 나이로 언급되는 61세에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잡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이는 윤여정 오영수 송해 외에도 2011년 작고한 작가 박완서가 대표적이다. 나이 마흔에 자식을 다섯이나 둔 엄마이자 전업주부였던 그는 1970년 ‘나목’으로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돼 등단했다. 이후 여든까지 ‘그 남자네 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같은 작품을 남겼다. 백세 시대를 맞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여러모로 귀감이 되는 인물들이다. 유명한 사람들이라 노년에 빛을 본 것 아니냐고 단정하기엔 이들이 달려온 과정 군데군데 눈여겨볼 부분이 상당하다. 윤여정은 신념이 확고하다. 일제강점기 고향을 떠난 조선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파친코’에서 ‘선자’ 역을 맡은 그는 외신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한국의 역사에 대해 영어로 써내려간 이면지를 공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파친코’는 일제강점기 이야기라 잘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준비했다”고 말했다. 수년 전 한 걸그룹의 멤버가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보고 “긴또깡?”이라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 오버랩되며 한국 배우로서 자부심을 갖고 인터뷰에 임하는 윤여정의 태도가 남달라 보였다. 그런 신념과 변치 않는 노력이 오늘날의 그를 만든 게 아닐까. ‘죽기 전까지 마이크를 잡고 싶다’던 송해는 34년간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하며 단 한 번도 지각한 적 없는 프로였다. 녹화 30분 전엔 무대에 올라 묵상하고 머릿속으로 자신만의 리허설을 진행했다. 후배 이상벽과의 생전 인터뷰에선 “각 동네만의 정서를 읽어내야 하기에 준비를 꼭 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34년간 사회자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건 그의 이름값이 아닌 ‘노력’ 덕분이었다. 박완서 작가는 말년까지 창작욕을 불태웠다. 생전 인터뷰에서 “욕심이라는 게 한이 없어요. 돈 욕심은 사라졌는데 아직 남아있는 욕심이 있다면 ‘이런 거 하나 더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라고 고백했을 정도다. 이들의 행보를 되짚어 보며 ‘사회적 활동의 종착점이라 여긴 만 60세는 어쩌면 예쁘게 피운 꽃을 떨구고 열매를 맺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시작점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이루기에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윤여정 송해 오영수 박완서가 앞서 보여줬듯 말이다. 김정은 문화부 차장 kimj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