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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남구 27일 ‘책 읽는 강남’ 선포식서울 강남구(구청장 신연희)가 27일 오전 10시 강남구민회관에서 ‘책 읽는 강남, 행복한 강남’ 선포식을 열고 하루 30분, 한 달에 3권의 책을 읽는 ‘1313 독서운동’을 시작한다. 강남문화재단과 (사)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주관하는 이 행사에서는 지역 내 도서관이 발급하는 회원카드를 소지한 사람에게 할인과 서비스 혜택을 주는 ‘강남리더스(Readers)’ 가맹 업체를 발표한다. 강남구 애서가들이 추천하는 도서 100권도 전시된다. 28일 오전 11시 논현정보도서관에서는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준 한마디’를 쓴 정호승 시인과의 만남 행사가 열린다.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library.gangnam.go.kr) 참조.■ ‘대형 세라믹 조형물 제작’ 국제 워크숍단국대 예술조형대학 김혁수 교수팀은 4월 1∼20일 경기 용인시 단국대 죽전캠퍼스 미술관에서 세라믹 소재의 대형 조형물을 제작하는 국제 워크숍을 연다. 김 교수팀은 2010년 지식경제부 후원으로 높이 3.3m, 가로 2m, 세로 2.5m 크기의 전기 가마를 제작한 데 이어 지난해 대형 도자기 제작 기술의 바탕이 되는 흙을 개발한 바 있다.}

재프랑스 사회학자 정수복 박사가 쓴 ‘파리를 생각한다’에는 다양한 종류의 걷기가 등장한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게 ‘플라느리(flanerie)’다. 뚜렷한 목적 없이, 그저 도시의 흐름 속에 자신을 맡기고 그때그때의 기분과 호기심에 따라 서서히 발길을 옮기는 걸음걸이다. 플라느리를 즐기는 ‘플라뇌르(flaneur)’가 되어 걸을 때만이 그 도시의 구석구석에 숨은 진면목을 볼 수 있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봄을 맞은 도시에서는 이런 걸음걸이가 제격이다. 3월 초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기 위해 30분 일찍 집을 나서면서 내게도 출근길 걷기의 여유가 주어졌다. 을지로3가역에서 내려 광화문까지 걷다 보면 청계천 공구상가 아침의 분주함, 물오른 나뭇가지 새순의 솜털까지 매일 새롭게 발견해 나가는 풍경에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머리 위로 자동차가 지나가고 발밑으로는 물이 흐르는 청계천은 미묘한 긴장감과 여유가 교차하는 사색의 터널이다. 공구상가에서 불과 2∼3m 아래로 내려왔는데도 일순간 도시의 소음이 사라지고 물소리가 들리는 공간. 처음엔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곧 이어폰을 집어 던져버렸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버드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새소리를 들으면서 머릿속이 한결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을 보며 걷다 보면 순간적으로 눈의 초점이 흐려지면서 ‘멍 때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신동원 강북삼성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이런 ‘멍 때림’을 “뇌가 휴식하고 재정비하는 시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배불리 먹고 난 뒤에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뇌에게도 정보를 소화하고 배출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면 스마트폰에 집중하느라 풍경의 변화도 알아채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정보의 과부하로 심각한 건망증에 시달린다. ‘피로사회’의 저자인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는 신작 ‘시간의 향기’를 펴냈다. 그는 스마트혁명이 사람들로 하여금 시간을 초단위로 쪼개서 활용할 수 있게 했지만, 오히려 시간이 사람들을 인질로 삼아 꼼짝 못하게 하며 일을 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철학자 몽테뉴가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걸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걸까’라는 유명한 회의주의 명제가 떠오르는 상황이다. 요즘 사람들의 잠자리는 점점 편치 못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덕분에 일의 시간이 휴가지까지, 잠자리까지 연장되기 때문이다. 일의 시간엔 향기가 없다. 한 교수는 빛처럼 날아가는 시간에 향기를 되돌려주기 위해 일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의 뇌는 청개구리다. 뭔가 쓸모 있을 것 같은 일, 목적을 위한 시간에는 지루함을 느낀다. 반면 일이 아닌 순수한 즐거움에는 뇌가 스스로 움직인다. 출근길 청계천을 걸으며 눈과 귀를 활짝 열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리라 다짐해본다. 혹시 아는가. 그 안에 멍 때리는 동안 나의 뇌가 자유롭게 움직이며, 날아가는 시간의 무게를 느끼게 될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곤지곤지 잼잼(최숙희 글 그림·푸른숲주니어)=‘짝짜꿍’ ‘곤지곤지’ ‘잼잼(죔죔)’ 같은 전통 놀이들은 아이를 건강하고 똑똑하게 하고 정서적인 안정감과 자존감을 키워준다. 아이들의 놀이에 담긴 과학적 원리를 상상력 가득한 이야기로 되살린다. 1만 원. 빅뱅으로 내가 생겨났다고?(더그 헨센 글·룬네 마크후스 그림·그린북)=잠들기 전에 딸이 아빠에게 “나는 어디서 왔어요”라고 묻는다. 아빠와 딸은 우주 대폭발 ‘빅뱅’ 이후 150억 년간의 지구 진화와 생명체 탄생의 역사를 담은 시간여행을 떠난다. 1만1000원.사과나무(미라 로베 글·안겔리카 카우프만 그림·은나팔)=사과나무는 나뭇잎을 갉아먹는 나비의 애벌레, 시끄럽게 재잘대는 작은부리울새, 옹이구멍에서 잠을 자는 겨울잠쥐가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내어줍니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도 외롭지 않습니다. 1만 원.미스 히코리(캐롤린 베일리 글·갈현옥 그림·한림출판사)=사람에게 보살핌 받던 시골 아가씨 인형 히코리가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고 자연으로 돌아가 사과꽃으로 다시 피어나는 모험담. 뉴욕타임스는 ‘환상의 서정시’라고 극찬했다. 9500원.}

14일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힉스 입자(소립자에 질량을 부여하는 입자)의 발견을 선언했다. 지난해 7월 힉스 입자 실험 결과를 발표한 후 8개월 만에 2.5배 많은 데이터 분석 자료를 바탕으로 힉스 입자 발견을 공식 선언한 것이다. 이로써 40년 넘게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던 입자물리학 표준 모형의 실험적 검증이 완료됐다. 하버드대 물리학과 첫 여성 종신교수인 저자가 거대강입자가속기(LHC)에서 이뤄진 양성자 충돌 실험의 원리, 힉스 메커니즘의 존재, 입자물리학 표준 모형에 대해 간결하고 명확하게 해설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한국의 식당에서는 울고 보채는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만일 옆자리에서 아이에게 주의를 주면 “왜 남의 아이 기를 죽이느냐”는 부모의 항변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반면 내가 1년 동안 프랑스 파리에서 연수하던 시절 레스토랑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를 본 적이 없었다. 우리 아이가 식당에서 말썽을 피울 때면 “왜 아이에게 ‘안 돼’라고 주의를 주지 않느냐”고 충고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책은 월스트리트저널 경제섹션 기자를 했던 미국인 여성이 파리에 살면서 쓴 육아일기다. 저자에 따르면 프랑스에서 미국식으로 부모가 아이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자유분방하게 키우다간 ‘앙팡 루아(enfant roi·왕아이)’라는 손가락질을 당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다른 프랑스 아이들을 보면서 여러 차례 의문에 휩싸였다고 한다. 프랑스의 신생아들은 어떻게 생후 2∼3개월 만에 밤새 단 한 번도 잠을 깨지 않고 푹 자는 법을 배우는 것일까? 미국 아이들은 파스타나 흰쌀이 포함된 소위 ‘어린이 메뉴’만 먹는데, 프랑스 아이들은 생선이나 채소가 포함된 코스 요리를 어른과 똑같이 가리지 않고 먹는 것일까? 프랑스의 식당이나 놀이터에는 왜 울며 떼쓰는 아이를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을까? 저자는 처음엔 프랑스 아이들이 전근대적 훈육이나 순종적 교육의 희생자가 아닐까 의심한다. 그러나 프랑스 아이들이 누구보다 쾌활하고 자유롭게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프랑스식 육아법을 본격적으로 취재하기 시작했다. 이 책은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면서 미국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 한국의 신혼부부들이 읽어볼 만한 대목은 ‘밤새 잘 자는 프랑스 아이들’이다. 비결은 ‘라 포즈(la pause)’, 즉 ‘잠깐 멈추기’다. 프랑스 엄마들은 아기가 운다고 당장 달려가서 안아주지 않는다. 몇 분간 관찰하면서 아이가 그냥 칭얼대는 것인지, 정말로 배가 고픈지,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지를 살핀다. 신생아는 밤에 약 두 시간 정도 지속되는 수면 사이클 사이사이에 잠이 깨도록 돼 있다. 이를 배고픔이나 스트레스의 신호로 해석해 부모가 곧바로 뛰어들어 아이를 달래주거나 젖을 물리면 아이는 2시간마다 어른이 찾아와 달래줘야만 잠이 들도록 ‘길들여지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의 부모들은 밤에 아이가 칭얼대도 잠시 지켜보면서 생후 4개월 안에 아이가 홀로 잠드는 법을 배우게 해준다. 저자는 프랑스의 육아법을 ‘기다림의 미학’으로 설명한다. 프랑스 엄마들은 통화할 때 옆에서 손을 붙잡고 끄는 아이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기다려’라고 말한다. 심지어 아이들이 젖 먹는 시간도 오전 8시, 정오, 오후 4시, 오후 8시로 정해놓고 기다리게 한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아이들도 케이크, 과자, 사탕은 오후 4시 ‘구테(gouter)’ 시간에만 먹을 수 있다. 군것질을 절제한 아이들은 식사시간에 어떤 음식도 맛있게 먹는다. “아이의 취향, 리듬, 개성은 당연히 존중해야 한다. 다만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곳이 아니며 모두를 위한 시간과 공간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최근 가난한 이를 위한 사목과 청빈을 내건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된 것을 보고 희망을 느꼈습니다. 새 교황은 가톨릭교회 개혁뿐 아니라 삶에 지친 세계인들에게도 희망을 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따르던 사도들의 ‘원체험’(첫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007년 발간 이후 100만 부 이상 팔린 ‘무지개원리’의 저자인 차동엽 신부(55·미래사목연구소 소장)가 20일 신작 ‘희망의 귀환’(위즈앤비즈·사진)을 출간했다. 그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에 절망을 부추기고, 절망을 선동해 ‘장사’를 하려는 상업주의가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이 책을 통해 그는 우리 사회에 빠르게 확산되는 ‘절망의 문화’를 걷어내고, 생존을 위한 ‘희망본능’을 일깨울 것을 호소한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좀처럼 앞이 안 보이는 상황 속에서 젊은이들은 ‘위로’와 ‘힐링’에 빠져들고, 중장년층은 ‘피로사회’를 호소한다. “지난 대선에 등장했던 안철수 현상도 절망의 문화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현상 자체가 젊은이들의 절망에 편승한 분위기에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지요. 젊은이들이 ‘나는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기성체제가, 사회가 나를 절망으로 빠뜨리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스스로 일어설 생각을 못하는 겁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치고 뒤늦게 사제가 된 그는 1년에 400여 차례 강의를 다니는 인기 작가다. 그는 ‘희망의 귀환’에서 공대 출신이자 철학, 신학을 공부한 경력을 살려 과학적 심리적 인문학적인 접근으로 희망의 원리를 조명한다. 우선 그는 희망을 ‘콘텐츠’가 아닌 ‘에너지’라고 해석한다. 희망이란 ‘바라봄(望)’의 법칙이며, 기운(에너지)을 모으는 ‘결기(結氣)’의 과정이라는 것. 소설 ‘큰 바위 얼굴’에서 나오듯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생생하게 바라보는 대상을 결국 닮아가려고 에너지를 모아가는 것이 희망이라는 설명이다. “내 앞에 객관적으로 절망스러운 상황이 전개됐다고 칩시다. 이럴 경우 나에겐 3가지 선택이 주어집니다. 관망, 절망, 희망이지요. 관망은 그냥 사태를 무심하게 주시하는 겁니다. 절망을 택하면 내 몸에서 순간적으로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 다리가 풀리고 주저앉게 됩니다. 반대로 희망을 택하면 에너지가 모입니다. 주먹이 불끈 쥐어지고, 없던 기운을 모으고, 주변의 도움을 끌어들이게 되는 거지요.” 차 신부는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아무거나 붙잡고, 그것을 희망이라고 우겨라!”는 말을 해준다. 아무리 근거 없는 희망이라도, 붙잡을 때 흩어진 기를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절망에 부닥쳤을 때 뿜어져 나오는 오기, 강기(깡다구), 호기(호연지기)도 희망을 표현하는 다른 이름이라는 설명이다. 희망은 절망에 빠진 사람뿐아니라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데도 중요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연설에서 “중국인의 꿈을 이루자”고 역설했듯 우리 정치권도 ‘국민통합’을 말하기 전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총칼에 눌려 절망에 빠진 인도인들에게 용기를 준 것은 간디의 한마디 말이었습니다. 간디는 거리에서 엎드려 우는 이를 보고 주머니에서 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주면서 ‘모든 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지만 나에게는 손이 모자라는군요’라고 했습니다. 인도인들은 이 말에 힘을 얻어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기 시작했고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차 신부는 오히려 젊은 세대들에게 큰 목소리로 되물었다. “펄펄 끓는 심장을 가진 청년은 그 자체가 희망인데, 젊은이들이 기성세대에게 희망이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을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변화와 더 좋은 시기는 기다려봤자 영영 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삶의 ‘구원투수’는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입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국인들 대부분은 아시아란 곧 인도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아마도 인도가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까닭이리라. 그런 만큼 영국의 인도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이는 수케투 메타가 뭄바이 하층민들의 생활을 담은 책 ‘맥시멈 시티’로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 책은 ‘슬럼독 밀리어네어’의 감독 대니 보일이 영화로 제작하기도 했다. 제2의 ‘맥시멈 시티’를 찾아 헤매던 에이전트들은 인도의 뭄바이에서 자라 영국으로 이민 온 저명한 작가 아미트 차우두리를 주목했다. 영국 이스트앵글리아대 교수인 그는 2005년에 처음으로 그의 에이전트로부터 콜카타(옛 캘커타)에 대한 글을 써보라는 권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차우두리 교수는 그 제안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고백한다. 2005년의 콜카타에서는 ‘맥시멈 시티’에 나오는 내용들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1년 자유민주주의에 문을 연 이후 인도는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왔고, 그 중심에는 뭄바이와 뉴델리, 그리고 방갈로르가 있었다. 이 엄청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에 따라 ‘맥시멈 시티’와 같은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도시들에 비해 거대한 콜카타는 큰 변화를 겪지 않았다. 콜카타는 인도의 어떤 도시보다도 사회주의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콜카타 주정부는 지난 28년간 좌파가 집권해 왔고, 선거로 선출된 세계에서 가장 오랜 기간 집권한 좌파 정부라는 기록을 갖고 있었다. 이 때문에 차우두리 교수는 영국의 대중과 평단이 원한 극심한 변화, 그에 따른 혼란의 물결을 콜카타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2009년 오랜 기간 집권했던 좌파 정부가 선거에서 패하면서 콜카타에도 변화가 시작된다. 그제야 차우두리 교수는 콜카타에 대한 책을 쓸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2009년 콜카타로 가서 그로부터 2년간 이 혼란의 도시에서 거주하며 책을 썼다. 2월 출간된 책 ‘캘커타’는 2009년 선거에 이어 다시 한 번 콜카타를 뒤흔든 2011년 총선을 계기로 그 이전과 이후의 콜카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신흥도시로 떠오르기 시작한 19세기부터 엄청난 변화를 겪은 21세기에 이르기까지 콜카타의 역사를 훑는다. 책에는 그가 2년간 콜카타에 거주하며 만났던 노숙인들과 노동자들, 떠오르는 신흥 부자들과 하루아침에 재산을 잃은 부자들, 그리고 부동산 개발업자들이 허문 오래된 집들과 새롭게 지어진 고급 호텔들이 나온다. 2011년 선거에서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여성 정치인 마마타 바네르지에 대한 이야기도 자세히 기술돼 있다. 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이달 초 딸이 중학교에 입학했다. 배치고사 성적에 따라 수학과 영어는 A, B, C반으로 나눠서 수업을 한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우열반 수업이라니…. 딸이 해준 말은 더 놀라웠다. A반에 편성된 10명의 학생 대부분이 학원에서 고등학교 수학을 배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선행학습이 횡행하다 보니, 학교 측은 우열반 수업이 불가피하다고 느낀 것일까. 우리네 학교에서는 갈수록 남을 꺾고 이기는 ‘경쟁’의 기술만 강조한다. 그렇다면 ‘협력’은 언제 배울 것인가. 21세기 들어 강조되는 화두는 소통, 융합, 상생, 동반성장과 같은 단어들인데 말이다. 맬컴 글래드웰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1만 시간의 법칙’을 주창했듯이, 저자는 협력도 수많은 연습을 통해 익히고 훈련해야 하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영국 런던정경대(LSE)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원래 음악도였다.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을 나온 저자는 왼손에 이상이 생겨 결국 첼로 연주자의 길을 포기했다. 그 탓일까. 그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늘 손과 도구, 작업장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사회학뿐 아니라 음악, 건축, 디자인, 문학, 역사, 정치·경제 이론까지 두루 막힘이 없는 그의 글쓰기는 ‘유럽에서 읽히는 미국인’이라는 평을 듣게 했다. 이 책은 저자의 ‘호모 파베르(도구적 인간) 프로젝트’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책 ‘장인(Craftsman)’이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 해내려는 욕망’을 가진 장인의 작업 방식을 다룬 것이라면, 두 번째인 ‘투게더’는 그 일을 타인들과 함께하는 사회적 기술을 다뤘다. 그의 다음 책은 ‘도시를 만드는 기술’이다. 저자는 손자가 다니는 영국의 초등학교에서 한 학생이 교내 방송으로 릴리 앨런의 ‘엿 먹어(fuck you!)’라는 노래를 틀었던 사건에서 이 책을 시작한다. 이 노래의 가사는 ‘네가 싫다. 너네 패거리가 전부 싫다’는 내용이었다. 저자는 이 가사가 요즘 미국이나 유럽 사회에 팽배해 있는 집단적인 폐쇄적 유대감에 기반을 둔 ‘부족주의’를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그는 “20세기 전반에는 민족주의라는 형태의 부족주의가 유럽을 파괴했는데, 21세기에도 페미니스트, 자유주의자, 세속적 인문주의자, 결혼한 동성애자, 무슬림 등의 부족주의가 서로 다른 집단을 공격한다”고 지적한다.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가 말한 ‘소신에 대한 물신적 숭배(fetish of assertion)’가 사회적 협력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셈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중세의 길드 작업장에서부터 파리의 코뮌, 월가의 해고 노동자,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에서의 한인과 흑인 간의 갈등과 협력, 페이스북의 ‘친구 맺기’까지 협력의 의례가 진화해온 과정을 추적한다. ‘협력이란 좋은 것’이라는 단순한 이야기를 솜씨 좋게 풀어내는 기술은 역시 대가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렵다는 첫 느낌을 참고 차분히 읽다보면, 비로소 지적인 책읽기의 맛에 빠져든다. 예를 들어 한스 홀바인의 그림 ‘대사들’은 이 책의 주요한 모티브로 등장한다. 그림 속에는 육분의, 복합태양관측기, 9면체, 수학책, 루터파 성가집, 류트, 해골이 놓여 있다. 홀바인의 탁자 위에 놓인 도구들은 당시에 변화를 겪고 있던 작업장을 대변하는 최첨단 물건들이었다. 저자는 기술혁신과 종교개혁 같은 격동의 시대에 맞춰 변해간 외교와 살롱의 예절 같은 소재들을 엮으면서 ‘대화적 협력’이라는 주제를 끌고 나간다.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21세기에 맞는 협력의 개념도 제시한다. 타자에 대한 단순한 공감(sympathy)이 아니라, 거리를 둔 지성적인 감정이입(empathy)에 기초하며, 타자들과의 동일성이 아닌 차이의 조절과 이해에 기초하고, 위로부터의 정치투쟁에 집중하는 정치적 좌파보다는 풀뿌리 운동에 기초한 사회적 좌파에 협력의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한다. ‘정치적 협력’을 설명한 장은 소통이 안 되는 요즘 우리 정치계와 관련해 시사하는 점이 적지 않다. “정치적 타협을 좌우하는 요인은 정말 면목의 문제, 체면 유지의 문제이다. 체면이란 파트너의 가치를 인정해준다는 뜻이다. 그들을 윽박질러 굴복하게 만들면 역효과가 난다. 온갖 종류의 제휴가 흔히 체면치레용의 소소한 에티켓 문제 때문에 성공하거나 실패하곤 한다. 체면 유지는 협력의 의례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런던과 파리, 로마, 바르셀로나…. 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를 다녀온 여행후기와 사진은 인터넷에 넘쳐난다. 가보지 않아도 왠지 가본 것 같은 느낌. 뭐 새로운 곳이 없을까. 숙제하듯 기념사진 찍으러 다니지 않고, 여유롭게 그들의 일상만 훔쳐보고 오더라도, 다녀오면 남들에게 질투어린 시선을 받을 만한 곳 말이다. 요즘 출판계에서 북유럽이 ‘핫 트렌드’로 뜨고 있다. ‘북유럽처럼’ ‘북유럽 디자인과 만나는 스칸딕 베케이션’ ‘코펜하겐에서 일주일을’ 같은 여행서적뿐 아니라 ‘북유럽에서 날아온 행복한 교육이야기’ ‘살고 싶은 북유럽의 집’ ‘북유럽 핸드메이드’ ‘이케아 그 신화와 진실’ 등 디자인과 교육, 복지,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망라한다. 》특히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들이 ‘복지’ ‘국민행복’ ‘저녁이 있는 삶’ 등을 주요 구호로 내세우면서 북유럽 관련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경제성장은 달성했지만 개인의 행복감, 자존감을 억눌러왔던 한국인들이 북유럽 사회를 들여다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다.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기본적 삶을 보장받는 자들의 여유, 거대한 자연에 적응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의 여유, 복작대는 인간들 속을 헤집고 다닐 필요가 없는 공간의 여유…. 그런 여러 가지 여유로움이 그곳에 있었다. 잠시나마 그 상쾌한 곳에서 지구 반쪽의 파란색 숨을 들이마시며 그들의 여유 만만한 라이프스타일을 구경하고 싶었다.” ‘북유럽처럼’(네시간)의 저자 김나율과 이임경 씨의 말이다. 두 사람은 북유럽의 심플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이 나오게 된 이유를 오후 4시면 해가 지는 북구의 기나긴 겨울밤에서 찾았다.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있어도 질리지 않고 편안하도록 자연을 닮은 디자인을 발전시켜 냈다는 것이다. 북유럽이 각광받는 또 다른 이유는 ‘과거’가 아닌 ‘미래’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우리가 만나야 할 미래’(쌤앤파커스)에서 스웨덴 복지모델을 분석한 최연혁 스웨덴 쇠데르테른대 교수는 “그리스 경제위기는 국가의 역할과 개인의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올해 초 발표한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3년’에서 ‘스칸디맘(스칸디대디)이 온다’고 전망했다. 스칸디맘은 자녀를 엄격히 관리하는 ‘타이거맘’ ‘헬리콥터맘’과 달리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수평적 관계, 자율성을 특징으로 한다. 부모도 자녀를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기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스칸디맘이다. 실제로 퇴근 뒤 한 손에는 카페라테를 들고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미는 멋쟁이 아빠들을 스웨덴에서는 ‘라테파파’라고 부른다. 핀란드에서는 정부가 유모차를 나눠주고, 유모차를 밀고 다니는 부모는 교통비가 공짜다. ‘…스칸딕 베케이션’의 저자 이홍안 씨는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2, 3명의 아이를 한꺼번에 유모차에 태워 산책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 왜 북유럽산 유모차는 바퀴가 크고 튼튼한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스웨덴 국립교육청 교육국장 출신 황선준 박사는 지난해 스웨덴인 부인과 함께 살면서 체험한 가정교육에 관한 책 ‘금발 여자 경상도 남자’(한언)를 펴냈다. 현재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장으로 일하는 그는 “북유럽에서는 오후 4, 5시면 집에 들어와 가족들이 저녁시간을 함께 보낸다”며 “한국의 부모와 자녀들은 회식과 학원에 밀려 언제 한번 저녁을 같이 먹어본 적이 있는가”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전직 대통령들은 ‘버림의 지혜’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큰 것을 얻었음에도 소아(小我)에 집착하는 권력 행태, 연고자부터 챙기는 소인배(小人輩) 체질, 그리고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권력에 도취한 오만과 독선, 이런 것들이 여러 대통령의 적지 않은 업적까지 퇴색시켰다.” 2003년부터 동아일보에 ‘배인준 칼럼’을 11년째 연재하고 있는 저자의 칼럼집. 2007년 출간한 첫 칼럼집 ‘대한민국 되찾기’ 이후 6년간 쓴 100여 편의 칼럼을 재구성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이명박 정부 5년, 박근혜 18대 대통령의 출발선까지 정치, 경제, 남북문제 이슈를 다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이 미래이고, 누가 미래세력인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는 “대한민국과 5000만 국민을 미래로 이끌 능력과 의지,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있어야 비로소 미래 세력”이라고 규정한다. 1부는 ‘대통령의 길’에 관한 글들을 엮었다. 저자는 “답은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위대한 조직에 있다”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책 ‘최선의 결정은 어떻게 내려지는가’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그는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으로 국가와 국민을 안전과 행복으로 이끌기엔 벅찬 시대상황”이라며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가려면 ‘나에게 맡기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할 것”이라고 쓴소리를 던진다. 2부는 대한민국의 양지와 음지에 관한 글을 엮었고, 3부는 자유시장경제와 경제민주화에 관한 논쟁을 실었다. 4∼7부에는 우리 사회의 진보-보수 논쟁, 세대 간의 갈등 해법, 정치권 대북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칼럼이 실렸다. 저자는 “진보는 도전과 변화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진보를 가로막는 세력은 ‘기득권 수구세력’에 불과하다”며 “보수(保守)란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정이’를 아시나요. 된장찌개도, 김치찌개도, 학교 급식도, 심지어 먹는 것이라면 한약까지도 맛있게 먹는 아이 말입니다. 이런 아이에게 장조림을 먹지 말라고 합니다. 입 짧은 오빠를 위한 반찬이라네요. 장조림만 먹을 수 있다면 ‘나도 편식하겠다’고 선언하던 아이입니다. 물론 그 편식, 하루도 못 갔지만 말입니다.(전작 ‘나도 편식할 거야’에서) 이번엔 그 정이가 예민해지겠다고 선언합니다. 엄마의 관심이 예민한 오빠에게 온통 쏠려 있으니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 거죠. 졸린 눈을 비비며 잠이 안 온다고 투정해 봅니다. 엄마가 옆에서 배를 만져주는 것만도 좋아요. 하지만 겨우 1분을 버티고 눈을 감았다 뜨니, 이런…! 아침입니다. 예민해야 하는데…, 예민하고 싶은데…. 캐릭터가 선명하지 않은 우리 동화에서 정이는 새롭게 떠오르는 인물입니다. 정이의 눈높이에서 글을 쓰는 작가의 노력이 보입니다. ‘손님이 온다. 손님은 좋다. 먹을 걸 사온다.’ 이런 문장들을 보면 초등학교 1학년 정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통통하고 씩씩하고 먹성 좋은 초등학교 1학년 정이, 그 아이가 여기 있습니다. 김혜원 어린이도서평론가}

지구 종말 이후의 세상을 그린 영화 ‘더 로드’의 한 장면 같다. 이웃 나라에서 벌어진 대재앙인데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2주년을 앞두고 나온 두 권의 책을 읽고 처음으로 원전 사고의 공포를 실감했다.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피해를 본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반경 20km 이내 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경계구역(출입금지)이다. 반경 30km 지역은 ‘옥내 대피 지역’ ‘자발적 피난지역’으로 지정됐지만 방사능 수치가 높아 대부분의 사람이 떠났다. 그러나 주인들이 버리고 간 애완견과 고양이, 소, 닭, 돼지, 말들은 남았다.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 분쟁지역을 취재했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오오타 야스스케 씨(55)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버려진 개, 고양이를 구조하기 위해 3개월 동안 17회에 걸쳐 후쿠시마를 찾았다. 이 책에 실린 사진에서 느껴지는 것은 ‘비현실적 공포’다. 방사능 수치가 평상시보다 수백, 수천 배 높은 지역인데도 벚꽃은 여전히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푸른 초원에 한가롭게 소가 풀을 뜯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한편에서는 국도변 전자상가 아스팔트 주차장에 일본의 유명한 검은 소 와규(和牛)가 길을 잃고 방황하고, 바닷가 쓰레기 더미 사이로 짧은 다리의 애완견 닥스훈트가 전속력으로 달아나고 있다. 피난을 간 주민들이 미처 문을 열어놓지 못한 축사에서는 수십 마리의 돼지가 죽은 사체 사이에서 굶주림에 울부짖고 있고, 소들은 목이 말라 들어간 농수로에 빠져 반쯤 잠긴 채 죽어간다. 바짝 말라 뼈가 드러난 누렁이는 목줄이 묶여 있지 않은데도 가족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집을 지키고 있다. 동물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방사능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굶어 죽고, 거리에 뒹굴며 썩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구제역 파동 때 도살 처분된 돼지의 처지가 차라리 나아 보일 정도로, 이곳은 지옥이다.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는 배송업체 직원들도 무서워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남아 살고 있는 사람의 생존기다. 전직 스페인어 교수였던 사사키 다카시 씨(74)는 원전에서 25km 떨어진 미나미소마 시 하라마치 구에서 98세 노모와 치매에 걸린 아내, 두 살배기 손녀와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저자는 2년간 ‘모노디아로고스’라는 블로그에 생존기를 쓴다. 미나미소마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옥내 대피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지만 지역주민 3만 명 중 80%가 자발적 피난을 떠났다. 사고 발생 후 일주일 만에 집과 병원을 떠난 노인들이 이리저리 옮겨지는 과정에서 50여 명이 사망했다. 인근 도시의 초등학교에서는 푹푹 찌는 여름에도 교실 창문을 꼭꼭 닫고 수업하고, 창 쪽의 방사선량이 높기 때문에 공평하게 하려고 매일 줄을 바꿔 앉는 일도 벌어진다. 그의 글은 단순한 재난수기가 아니다. 대재앙에 맞선 한 개인이 ‘영혼의 중심(中心)’을 낮게 잡고, 오직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겠다’며 치열하게 사색해낸 결과물이다. 곳곳에서 유머가 빛을 발하는 그의 글은 국가의 역할, 국가와 개인,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저자는 집을 방문한 재일교포 작가 서경식 씨와의 대화에서 “원전 사고 이후 피해 지역민으로서 과거 일본의 침탈로 끔찍한 고통을 당한 동아시아인들, 특히 조선과 중국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원전 피해지역에서 살아가는 자신 또한 일본 내 디아스포라(이산자·離散者) 같은 존재라고 느낀다. 그는 자신의 생존방식이 절대적으로 안전한 선택이 아닐지 모른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지구상에서 인간을 병이나 죽음에서 안전하게 격리시켜 줄 장소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고 단정한다. 원전 사고 후 3개월 뒤 그는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분홍색 귀여운 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모두들 두려움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아이는 두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빙그르 돌며 웃는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잡아라)!’ 그는 깨닫는다. 그래, 방사능에서 멀리 도망갈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 이 계절을, 이 미풍을 즐겨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우수 작품상은 이례적으로 백악관에서 발표했다. 생중계 화면으로 연결된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는 어깨와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은색 드레스를 입고 영화 ‘아르고’의 수상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성의 복장을 엄격히 규제하는 이란 언론매체가 대통령 부인의 드레스를 포토샵으로 수정한 사진을 내보내 세계적인 웃음을 샀다. 이 장면에서 예전에 이란에 출장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동차를 이용해 이란 국경을 통과했는데, 당시 국경 검문소에서 우리 일행의 짐 속에 불순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들어 있는지 철저히 조사했다. 그들은 내 노트북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일일이 검사하는가 하면 한국에서 가져온 시사 잡지에 실린 남성용 속옷 광고 사진을 검은색 매직으로 시커멓게 칠하며 검열하는 통에 4∼5시간 동안 붙잡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테헤란에서 만난 이란인들의 실생활은 달랐다. 집집마다 베란다에 불법 위성 안테나를 숨겨놓고 수백 개의 해외 채널을 시청하고 있었다. ‘19금 방송’도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신정(神政)국가인 이란의 종교경찰도 음주와 이성교제에 관한 개인의 욕망을 전부 규제할 수 없음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 북한이나 이란 같은 나라를 ‘극장국가’라고 부른다. 철저한 외부 통제와 함께 대규모 군중 동원, 벽화나 공연 같은 상징물, 미사일 핵무기 개발 같은 체제 과시용 퍼포먼스에 몰두하는 나라를 말한다. 극장국가는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19세기 인도네시아 발리 왕국에서 제의정치와 권력의 스펙터클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창안한 개념이다. 그런데 이란은 미국도 세계 최고 영화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는 극장국가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영화 ‘아르고’는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 억류됐던 미국대사관 직원들을 구하기 위해 중앙정보국(CIA)과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이 합심해 벌인 인질구출 작전을 그린 작품. 이를 두고 이란 관영매체는 “CIA가 기획하고, 백악관이 시상한 반(反)이란 정치선동 영화”라고 비판했다. 예전에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를 하다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로 발령이 났을 때 국회 본회의장 기자석이 예술의전당 박스석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회의장은 무대이고, 정치인은 배우처럼 생각됐다. 그런데 문제는 퍼포먼스의 질이었다. 공연은 재미없으면 중간에 나와 버릴 수 있지만 국회는 진흙탕 몸싸움이더라도 취재를 그만둘 수 없어 내 자신이 참 불행하다고 느껴졌다.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어느 나라나 극장국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어떤 콘텐츠를 보여줄 것인가에 있다. 취임식이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새 정부의 극장에는 배우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경제난과 북핵 위기 속에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도 끝내지 못하는 청와대와 국회를 보고 국내외 관객들은 벌써 하품을 해대기 시작했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다음 네 가지 질문의 답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①남극에 있는 섬 이름 ②만화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프랑스 명품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포도밭 소유자 ③기린, 난초를 비롯해 곤충 153종, 새 58종, 포유동물 18종의 이름에 포함된 단어 ④쇼팽과 로시니가 음악을 헌정했으며 발자크와 하이네가 책을 바친 가문. 정답은 ‘로스차일드’다. 18∼20세기 초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이자 가장 부유했던 가문의 이름이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JP모건, 골드만삭스에 국제통화기금(IMF)까지 합한다면 모를까, 오늘날 어떤 국제은행이나 기업도 로스차일드 가문이 전성기 때 장악했던 세계적인 부의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로스차일드 가문을 빼놓고는 자본주의 경제사를 논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각국의 왕이나 대통령은 꼭두각시일 뿐 그들이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음모론자들은 유대계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 중앙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장악해 왔으며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 보어전쟁, 이스라엘 건설, 러시아혁명, 산업혁명, 수에즈 운하 건설, 히틀러의 자금 조달까지 모든 것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신화’를 벗겨내고 ‘역사적 진실’을 파헤쳐 보겠다고 나선 것이 세계적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다. 그는 5년의 연구 끝에 로스차일드 가문의 런던 문서보관서에 보관된 135상자의 편지 중 5000여 통을 ‘해독’해 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빈민굴 게토에서 골동품 중개업으로 돈을 번 로스차일드 가문은 다섯 아들이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빈, 나폴리로 진출해 각자 은행을 세우면서 초국적 금융제국을 건설했다. 가문의 파트너들은 수시로 고어체 히브리어와 독일어가 뒤섞인 ‘유덴도이치(Judendeutsch)’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외부인이 읽기 힘든 언어이기 때문에 편지에는 그들이 거래했던 군주와 장관에 대한 비밀, 욕설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왕이나 교황, 제후들에게 대출해주고, 국공채에 투기해 어마어마한 재산을 형성했다. 특히 전쟁을 준비하는 왕은 로스차일드의 주요 고객이었다. 이 때문에 로스차일드 가문이 전쟁을 부추겨 돈을 벌었다는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실제론 로스차일드 가문이 재정보증을 하거나 거절함으로써 전쟁뿐만 아니라 평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5개국에 걸쳐 있던 이 가문은 절대왕정과 입헌군주정, 자유주의자, 혁명세력을 구분하지 않고 사업 기회를 포착해 냈던 진정한 ‘코즈모폴리턴’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1, 2권 합쳐 1500쪽이 넘는 분량에, 돈이 영국의 파운드화로만 표시돼 있는 등 독자들에게 친절한 역사책은 아니다. 그러나 천대받던 유대인 가문이 세계 최대 거부로 성장하고 쇠락하는 과정을 묘사한 에피소드는 잘 차려진 성찬을 맛보는 것처럼 지적인 독서의 흥미를 채워준다. ‘유대인의 왕’으로 불렸던 그들이 철저한 족내혼(族內婚)으로 유럽 왕실을 흉내 내고,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해 ‘제2의 메디치가’를 꿈꾸었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로스차일드가를 통해 현대 금융위기를 읽어낸다는 점이다. 국제자본 흐름의 막대한 이동성이 각국의 재정과 중앙은행을 왜소하게 만들고, 채권과 증권시장에 출현하는 혁신을 규제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19세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전쟁과 혁명이 끊이지 않았던 변덕스러운 시장에서 사소한 실수는 개별 기업과 국가에 무참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200년 이상 살아남은 로스차일드가의 힘을 ‘가족기업의 심리학’(가족적 연대, 종교에 근간을 둔 덕성, 근면)에서 찾는다. 현대의 글로벌 기업이 아무리 세련된 경영기법으로 로스차일드가의 다국적 구조를 흉내 낸다고 해도, 현재의 주주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내다보는 이러한 에토스(집단 특유의 관습)가 없다면 투자자들로부터 지속적인 신뢰를 끌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손인 도예가 심수관 씨(86·오른쪽)와 딸 기요하라 마사코(淸原正子) 씨가 26일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했다. 심 씨는 전날 열린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세계 속에서 한국을 빛낸 한국인’ 대표로 참석했다. 그는 “1998년 동아일보사 주최로 열린 ‘400년 만의 귀향-심수관가 도예전’을 통해 우리가 한국의 자랑스러운 후예임을 세상에 당당하게 알리게 됐다”며 감사를 표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십자가(시게마츠 기요시 지음·이선희 옮김·예담)=집단따돌림으로 한 중학생이 자살한다. 학생의 유서에는 여러 친구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름이 적힌 한 친구는 이제 성인이자 아빠가 돼 그때 기억을 더듬어 간다. 2010년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수상작. 1만3000원.2013 올해의 문제소설(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푸른사상)=한국현대소설학회가 2011년 10월부터 1년간 문예지에 발표된 단편소설 가운데 ‘문학성’과 ‘문제성’을 기준으로 13편을 추렸다. 최수철 김연수 박민규 한유주 등의 근작을 볼 수 있다. 1만3000원.빈 거울을 절간과 세간 사이에 놓기(송준영 엮음·시와세계)=설악산 신흥사 조실 무산 조오현 스님의 시세계에 관한 평론과 논문을 묶은 책. 9만2000원.생태학의 역사(안나 브람웰 지음·살림)=19세기 말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생태주의 운동과 사상의 흐름을 다룬 책. 생태운동의 이상이 우생학, 마르크스주의, 나치즘, 급진적 여성주의 등과 결합하면서 변질된 과정도 살폈다. 3만 원.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안톤 체호프 지음·동북아역사재단)=러시아의 대문호 체호프가 1890년 시베리아와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쓴 현장보고서가 국내 최초로 번역됐다. 1880년 전후 사할린에 한국인 노동자가 상당수 거주했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 1만8000원.세상을 바꾼 경제학(야자와 사이언스 연구소 지음·신은주 옮김)=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 존 내시부터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 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11명의 사상과 철학, 인생을 통해 본 21세기 경제학의 역사. 1만3000원.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최정호 지음·시그마북스)=세계의 역사가 바뀐 20세기 말, 21세기 초의 30년을 돌아보는 담론집. 주요 주제는 옛 소련의 붕괴, 독일과 한반도 통일, 한국 문화의 ‘제3의 르네상스’. 2만5000원.현대 호주사회의 이해(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호주연구센터·한국학술정보)=호주의 다문화 정책, 복지 문제, 비정규직 정책을 통해 한국 사회에 주는 함의를 살펴본다. 2만 원.내 생애 첫 파티(정소빛 지음·디앤씨북스)=초등학생이 입학 후 6학년 때까지 쓴 단편소설 5편과 콩트 6편을 모았다. 8500원.}

‘다니’라는 이름을 가진 너구리가 주인공입니다. 몸은 제법 통통한 편인 데다 짧은 팔다리에 행동은 조금 둔하지요. 그리고 이제 막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것이 분명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너구리 다니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 내내 웃음 짓게 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 읽은 뒤 아직은 행동이 딱 떨어지지 않고 자기표현도 서투른 꼬마 남자아이가 보여요. 언제고 놀이터나 골목길, 횡단보도나 문방구 앞에서 만났던 꼬마입니다. 작가가 디자인을 하던 사람이라 그럴까요? 배경과 너구리의 행동, 생김새, 숲 속 풍경과 물건들, 음식 하나하나가 손에 잡힐 듯합니다. 1984년에 안데르센 상을 받았고, 2003년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을 받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가 쓴 이야기입니다. 그는 언제나 평범하면서도 기발하고, 익숙하면서도 미래에 맞닿은 동화로 독자들을 기분 좋게 일깨워주는 작가입니다. 이 책에 실린 짧은 네 편의 글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합니다. 다니는 우리 주변에 늘 있는 일곱 살이나 여덟 살 아이들이 할 법한 행동을 하지요. 다니가 맞닥뜨리는 상황 역시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입니다. 때로 얄미운 친구를 어쩔 수 없이 도와줘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정말 갖고 싶은 물건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기대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고, 진짜 영웅이 된 듯한 기분에 으쓱해지는 사건도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다니의 마음입니다. 적절한 판단을 내리거나 그것을행동으로 옮기는 데 그 착한 마음이 마법처럼 실력을 발휘합니다. 서투르고 엉뚱해 보일지 몰라도 다니는 세상을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힘이 있는 친구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입학하는 친구들도 있겠지요. 그들이 처음 세상을 다니와 같은 마음으로 만나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또 다니와 똑 닮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렵고 외로운 교실 안에서 착한 마음으로 힘이 되어줄 다니를 소개합니다.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

언제부터인지 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기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논란이 됐다. 이 퍼포먼스가 “불편하고 당혹스럽다”고 질타를 받는 일도 많아졌다. 그 ‘특정 종교’에 대한 반감은 교회를 새로 크게 짓거나 담임목사직을 세습하고 정치적으로 치우친 발언을 할 때도 가차 없다. 과거에는 사회봉사나 학교 운영 등으로 미더운 시선을 받던 교회이건만….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전작 ‘나 홀로 볼링’에서 갈수록 개인주의화되고 공동체 의식이 실종되는 미국인들의 성향을 지적했던 저자 로버트 D 퍼트넘 교수(하버드대 케네디스쿨)는 5년간 미국에서 5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미국 사회의 종교관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달라졌음을 밝힌다. 이는 한국에도 참고가 될 만하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신앙과 종교에 대한 첫 번째 변화는 기성 체제에 대한 반발이 커졌던 1960년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불거져 나왔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1970, 80년대에는 신보수화 경향을 불러왔고, 다시 1990년대부터 보수화된 교회와 종교를 앞세운 정치인들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많은 미국인이 종교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종교(주로 개신교)에 대한 강한 집착과 강한 거부감이 동시에 표출되면서 미국 사회는 분열했으며 오늘날 한쪽에서는 ‘오직 성서대로 살자’고 고집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종교가 다 뭐냐’고 하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교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분열이 어떤 나라들에서처럼 종교 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종교 덕분에 무관심의 장벽을 뚫고 정치와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미국인이 많다. 또 서로 다른 종교적 입장을 이해하고 관용하려는 자세가 주류가 됨으로써 미국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측면도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종교 다원주의’ 현상이 공동체 유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긍정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미국의 축복’(아메리칸 그레이스)이다. 생각해 보면 ‘종교 양극화’와 ‘종교 다원주의’가 공존하는 이런 묘한 현상은 종교가 도덕 영역의 보루가 되는 한편으로 국가 운영의 영역에서는 손을 떼는 게 옳다는 공감대에서 비롯하고 있다. 그래서 가령 낙태 문제를 두고는 종교인이냐 아니냐에 따라 견해가 뚜렷이 나뉘지만, 세금을 더 많이 걷을 것이냐의 문제에서는 별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본래 미국처럼 종교에 크게 몰두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한때 ‘잘살아 보세’의 원동력을 제공했던 종교는 보수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공격받고 있다. 이처럼 탈종교화를 넘어 종교혐오 현상까지 빚어질 때, 가뜩이나 기반이 약한 한국의 공동체 의식은 어찌 될 것인가.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도 방대한 자료와 예리한 혜안을 엮어 써낸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함규진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그리스 로마 고전 번역의 권위자로 꼽히는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헤로도토스의 ‘역사’,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등 30여 종을 번역한 그가 1972년 처음 번역한 작품이 플라톤의 ‘국가’였다. 당시 그는 ‘국가’의 후반부만 번역했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완역했다. 국가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 책은 ‘철인 통치’ ‘동굴의 비유’ 등 서양 철학사의 오랜 주제가 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의역은 피하고, 원전 그대로의 대화체로 풀어내 읽기가 쉽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인류에게 종교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수많은 사람이 종교를 통해 삶의 위안을 얻고 있지만, 또한 수많은 사람이 종교 때문에 삶의 파탄을 겪고 있다. 굳이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뉴스에서 접하는 충돌과 분쟁의 상당 부분이 종교 간의 갈등이다. 그러한 갈등은 가까이는 이웃 간의 화합을 저해할 뿐 아니라, 심지어 대량살상을 야기하고 국제난민의 발생을 초래한다. 그 원인이 종교라기보다는 종교로 포장된 정치적이거나 기타의 세속적인 욕망에 있다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종교가 악용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수많은 종교 구성원이 그러한 갈등의 프레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할 수 없다. 망명 티베트의 지도자를 넘어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달라이 라마는 이 책을 통해 “종교는 더이상 미래를 이끌 수 없다. 이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불교라는 종교의 지도자인 그가 종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달라이 라마의 과감함과 솔직성이 있으며, 그 인격의 위대함이 있다. 종교가 아니라 특정 단체의 지도자라고 해도 그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한계를 넘어선다.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달라이 라마가 ‘종교를 넘어’라고 주장한 것이 종교를 무시하거나 인류에 대한 종교의 기여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역할을 지구촌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그 개별성으로 인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재설정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종교와 보편적 도덕을 분리하자는 제안에서 뚜렷해진다. 개별 종교는 더이상 그 자체로는 보편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자체의 형이상학적 입장에 입각해 도덕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이제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모두에게 호소할 수 있는 도덕의 확립을 통한 지구촌 인류공동체의 형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그 보편적 도덕에 대하여 현세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현세적으로’라는 말도 조심스럽게 알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세속적 가치를 추종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그의 책 후반부는 불교적인 도덕을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도덕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곧, 윤회나 업 등 현대적 합리성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전제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보편적 지성에 호소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는 다른 종교전통을 지닌 사람들에게도 불교로 개종하거나 불교적인 내용을 어렵게 배우려 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친숙한 전통을 소중히 하라고 이야기한다. 달라이 라마는 이 책을 통해 인간적 경험과 심리학을 비롯한 최신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활용한다. 그는 권위적인 종교지도자나 난해한 사실을 늘어놓는 학자가 아니라 누구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논의를 전개하는 현명하고 합리적 대화자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말 번역도 깔끔하고, 친절하면서도 간명한 역자 주는 이 책을 더욱 편히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류제동 성공회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