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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들은 ‘버림의 지혜’를 행동으로 옮기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장 큰 것을 얻었음에도 소아(小我)에 집착하는 권력 행태, 연고자부터 챙기는 소인배(小人輩) 체질, 그리고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권력에 도취한 오만과 독선, 이런 것들이 여러 대통령의 적지 않은 업적까지 퇴색시켰다.” 2003년부터 동아일보에 ‘배인준 칼럼’을 11년째 연재하고 있는 저자의 칼럼집. 2007년 출간한 첫 칼럼집 ‘대한민국 되찾기’ 이후 6년간 쓴 100여 편의 칼럼을 재구성했다. 노무현 정부 말기부터 이명박 정부 5년, 박근혜 18대 대통령의 출발선까지 정치, 경제, 남북문제 이슈를 다뤘다. 저자는 이 책에서 무엇이 미래이고, 누가 미래세력인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는 “대한민국과 5000만 국민을 미래로 이끌 능력과 의지, 책임감과 희생정신이 있어야 비로소 미래 세력”이라고 규정한다. 1부는 ‘대통령의 길’에 관한 글들을 엮었다. 저자는 “답은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위대한 조직에 있다”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책 ‘최선의 결정은 어떻게 내려지는가’의 한 구절을 인용한다. 그는 “대통령의 ‘고독한 결단’으로 국가와 국민을 안전과 행복으로 이끌기엔 벅찬 시대상황”이라며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가려면 ‘나에게 맡기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할 것”이라고 쓴소리를 던진다. 2부는 대한민국의 양지와 음지에 관한 글을 엮었고, 3부는 자유시장경제와 경제민주화에 관한 논쟁을 실었다. 4∼7부에는 우리 사회의 진보-보수 논쟁, 세대 간의 갈등 해법, 정치권 대북인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칼럼이 실렸다. 저자는 “진보는 도전과 변화다. 대한민국의 진정한 진보를 가로막는 세력은 ‘기득권 수구세력’에 불과하다”며 “보수(保守)란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정이’를 아시나요. 된장찌개도, 김치찌개도, 학교 급식도, 심지어 먹는 것이라면 한약까지도 맛있게 먹는 아이 말입니다. 이런 아이에게 장조림을 먹지 말라고 합니다. 입 짧은 오빠를 위한 반찬이라네요. 장조림만 먹을 수 있다면 ‘나도 편식하겠다’고 선언하던 아이입니다. 물론 그 편식, 하루도 못 갔지만 말입니다.(전작 ‘나도 편식할 거야’에서) 이번엔 그 정이가 예민해지겠다고 선언합니다. 엄마의 관심이 예민한 오빠에게 온통 쏠려 있으니 부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한 거죠. 졸린 눈을 비비며 잠이 안 온다고 투정해 봅니다. 엄마가 옆에서 배를 만져주는 것만도 좋아요. 하지만 겨우 1분을 버티고 눈을 감았다 뜨니, 이런…! 아침입니다. 예민해야 하는데…, 예민하고 싶은데…. 캐릭터가 선명하지 않은 우리 동화에서 정이는 새롭게 떠오르는 인물입니다. 정이의 눈높이에서 글을 쓰는 작가의 노력이 보입니다. ‘손님이 온다. 손님은 좋다. 먹을 걸 사온다.’ 이런 문장들을 보면 초등학교 1학년 정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통통하고 씩씩하고 먹성 좋은 초등학교 1학년 정이, 그 아이가 여기 있습니다. 김혜원 어린이도서평론가}

지구 종말 이후의 세상을 그린 영화 ‘더 로드’의 한 장면 같다. 이웃 나라에서 벌어진 대재앙인데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2주년을 앞두고 나온 두 권의 책을 읽고 처음으로 원전 사고의 공포를 실감했다. 대지진과 지진해일(쓰나미)로 피해를 본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 반경 20km 이내 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경계구역(출입금지)이다. 반경 30km 지역은 ‘옥내 대피 지역’ ‘자발적 피난지역’으로 지정됐지만 방사능 수치가 높아 대부분의 사람이 떠났다. 그러나 주인들이 버리고 간 애완견과 고양이, 소, 닭, 돼지, 말들은 남았다.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 내전 등 분쟁지역을 취재했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오오타 야스스케 씨(55)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버려진 개, 고양이를 구조하기 위해 3개월 동안 17회에 걸쳐 후쿠시마를 찾았다. 이 책에 실린 사진에서 느껴지는 것은 ‘비현실적 공포’다. 방사능 수치가 평상시보다 수백, 수천 배 높은 지역인데도 벚꽃은 여전히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푸른 초원에 한가롭게 소가 풀을 뜯고 있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한편에서는 국도변 전자상가 아스팔트 주차장에 일본의 유명한 검은 소 와규(和牛)가 길을 잃고 방황하고, 바닷가 쓰레기 더미 사이로 짧은 다리의 애완견 닥스훈트가 전속력으로 달아나고 있다. 피난을 간 주민들이 미처 문을 열어놓지 못한 축사에서는 수십 마리의 돼지가 죽은 사체 사이에서 굶주림에 울부짖고 있고, 소들은 목이 말라 들어간 농수로에 빠져 반쯤 잠긴 채 죽어간다. 바짝 말라 뼈가 드러난 누렁이는 목줄이 묶여 있지 않은데도 가족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집을 지키고 있다. 동물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방사능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굶어 죽고, 거리에 뒹굴며 썩어가고 있다. 우리나라 구제역 파동 때 도살 처분된 돼지의 처지가 차라리 나아 보일 정도로, 이곳은 지옥이다. ‘원전의 재앙 속에서 살다’는 배송업체 직원들도 무서워 들어오지 않는 지역에 남아 살고 있는 사람의 생존기다. 전직 스페인어 교수였던 사사키 다카시 씨(74)는 원전에서 25km 떨어진 미나미소마 시 하라마치 구에서 98세 노모와 치매에 걸린 아내, 두 살배기 손녀와 함께 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저자는 2년간 ‘모노디아로고스’라는 블로그에 생존기를 쓴다. 미나미소마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옥내 대피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지만 지역주민 3만 명 중 80%가 자발적 피난을 떠났다. 사고 발생 후 일주일 만에 집과 병원을 떠난 노인들이 이리저리 옮겨지는 과정에서 50여 명이 사망했다. 인근 도시의 초등학교에서는 푹푹 찌는 여름에도 교실 창문을 꼭꼭 닫고 수업하고, 창 쪽의 방사선량이 높기 때문에 공평하게 하려고 매일 줄을 바꿔 앉는 일도 벌어진다. 그의 글은 단순한 재난수기가 아니다. 대재앙에 맞선 한 개인이 ‘영혼의 중심(中心)’을 낮게 잡고, 오직 ‘자신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으로 느끼겠다’며 치열하게 사색해낸 결과물이다. 곳곳에서 유머가 빛을 발하는 그의 글은 국가의 역할, 국가와 개인, 인간의 자유와 존엄에 대한 묵직한 물음을 던진다. 저자는 집을 방문한 재일교포 작가 서경식 씨와의 대화에서 “원전 사고 이후 피해 지역민으로서 과거 일본의 침탈로 끔찍한 고통을 당한 동아시아인들, 특히 조선과 중국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한다. 그는 원전 피해지역에서 살아가는 자신 또한 일본 내 디아스포라(이산자·離散者) 같은 존재라고 느낀다. 그는 자신의 생존방식이 절대적으로 안전한 선택이 아닐지 모른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는 “지구상에서 인간을 병이나 죽음에서 안전하게 격리시켜 줄 장소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고 단정한다. 원전 사고 후 3개월 뒤 그는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분홍색 귀여운 옷을 입은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모두들 두려움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 아이는 두 팔을 벌려 하늘을 향해 빙그르 돌며 웃는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현재를 잡아라)!’ 그는 깨닫는다. 그래, 방사능에서 멀리 도망갈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 이 계절을, 이 미풍을 즐겨라!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최우수 작품상은 이례적으로 백악관에서 발표했다. 생중계 화면으로 연결된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는 어깨와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은색 드레스를 입고 영화 ‘아르고’의 수상을 발표했다. 그런데 여성의 복장을 엄격히 규제하는 이란 언론매체가 대통령 부인의 드레스를 포토샵으로 수정한 사진을 내보내 세계적인 웃음을 샀다. 이 장면에서 예전에 이란에 출장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자동차를 이용해 이란 국경을 통과했는데, 당시 국경 검문소에서 우리 일행의 짐 속에 불순한(?) 사진이나 동영상이 들어 있는지 철저히 조사했다. 그들은 내 노트북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일일이 검사하는가 하면 한국에서 가져온 시사 잡지에 실린 남성용 속옷 광고 사진을 검은색 매직으로 시커멓게 칠하며 검열하는 통에 4∼5시간 동안 붙잡혀 있어야 했다. 그러나 실제로 테헤란에서 만난 이란인들의 실생활은 달랐다. 집집마다 베란다에 불법 위성 안테나를 숨겨놓고 수백 개의 해외 채널을 시청하고 있었다. ‘19금 방송’도 포함돼 있음은 물론이다. 신정(神政)국가인 이란의 종교경찰도 음주와 이성교제에 관한 개인의 욕망을 전부 규제할 수 없음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흔히 북한이나 이란 같은 나라를 ‘극장국가’라고 부른다. 철저한 외부 통제와 함께 대규모 군중 동원, 벽화나 공연 같은 상징물, 미사일 핵무기 개발 같은 체제 과시용 퍼포먼스에 몰두하는 나라를 말한다. 극장국가는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19세기 인도네시아 발리 왕국에서 제의정치와 권력의 스펙터클에 대한 연구를 하면서 창안한 개념이다. 그런데 이란은 미국도 세계 최고 영화산업의 메카인 할리우드를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는 극장국가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영화 ‘아르고’는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 억류됐던 미국대사관 직원들을 구하기 위해 중앙정보국(CIA)과 할리우드 영화제작자들이 합심해 벌인 인질구출 작전을 그린 작품. 이를 두고 이란 관영매체는 “CIA가 기획하고, 백악관이 시상한 반(反)이란 정치선동 영화”라고 비판했다. 예전에 문화부 공연 담당 기자를 하다 정치부 국회 출입기자로 발령이 났을 때 국회 본회의장 기자석이 예술의전당 박스석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본회의장은 무대이고, 정치인은 배우처럼 생각됐다. 그런데 문제는 퍼포먼스의 질이었다. 공연은 재미없으면 중간에 나와 버릴 수 있지만 국회는 진흙탕 몸싸움이더라도 취재를 그만둘 수 없어 내 자신이 참 불행하다고 느껴졌다. 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어느 나라나 극장국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문제는 어떤 콘텐츠를 보여줄 것인가에 있다. 취임식이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새 정부의 극장에는 배우들조차 보이지 않는다. 경제난과 북핵 위기 속에 정부조직 개편안 협상도 끝내지 못하는 청와대와 국회를 보고 국내외 관객들은 벌써 하품을 해대기 시작했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다음 네 가지 질문의 답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①남극에 있는 섬 이름 ②만화 ‘신의 물방울’에 나오는 프랑스 명품 와인 ‘샤토 무통 로칠드’ ‘샤토 라피트 로칠드’의 포도밭 소유자 ③기린, 난초를 비롯해 곤충 153종, 새 58종, 포유동물 18종의 이름에 포함된 단어 ④쇼팽과 로시니가 음악을 헌정했으며 발자크와 하이네가 책을 바친 가문. 정답은 ‘로스차일드’다. 18∼20세기 초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이자 가장 부유했던 가문의 이름이다. 메릴린치, 모건스탠리, JP모건, 골드만삭스에 국제통화기금(IMF)까지 합한다면 모를까, 오늘날 어떤 국제은행이나 기업도 로스차일드 가문이 전성기 때 장악했던 세계적인 부의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 이 때문에 로스차일드 가문을 빼놓고는 자본주의 경제사를 논하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또 각국의 왕이나 대통령은 꼭두각시일 뿐 그들이 세계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고 있다는 음모론도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음모론자들은 유대계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 중앙은행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장악해 왔으며 에이브러햄 링컨 암살, 보어전쟁, 이스라엘 건설, 러시아혁명, 산업혁명, 수에즈 운하 건설, 히틀러의 자금 조달까지 모든 것을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로스차일드 가문의 ‘신화’를 벗겨내고 ‘역사적 진실’을 파헤쳐 보겠다고 나선 것이 세계적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하버드대 교수다. 그는 5년의 연구 끝에 로스차일드 가문의 런던 문서보관서에 보관된 135상자의 편지 중 5000여 통을 ‘해독’해 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대인 빈민굴 게토에서 골동품 중개업으로 돈을 번 로스차일드 가문은 다섯 아들이 프랑크푸르트, 런던, 파리, 빈, 나폴리로 진출해 각자 은행을 세우면서 초국적 금융제국을 건설했다. 가문의 파트너들은 수시로 고어체 히브리어와 독일어가 뒤섞인 ‘유덴도이치(Judendeutsch)’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외부인이 읽기 힘든 언어이기 때문에 편지에는 그들이 거래했던 군주와 장관에 대한 비밀, 욕설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왕이나 교황, 제후들에게 대출해주고, 국공채에 투기해 어마어마한 재산을 형성했다. 특히 전쟁을 준비하는 왕은 로스차일드의 주요 고객이었다. 이 때문에 로스차일드 가문이 전쟁을 부추겨 돈을 벌었다는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실제론 로스차일드 가문이 재정보증을 하거나 거절함으로써 전쟁뿐만 아니라 평화를 가져오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5개국에 걸쳐 있던 이 가문은 절대왕정과 입헌군주정, 자유주의자, 혁명세력을 구분하지 않고 사업 기회를 포착해 냈던 진정한 ‘코즈모폴리턴’이었던 셈이다. 이 책은 1, 2권 합쳐 1500쪽이 넘는 분량에, 돈이 영국의 파운드화로만 표시돼 있는 등 독자들에게 친절한 역사책은 아니다. 그러나 천대받던 유대인 가문이 세계 최대 거부로 성장하고 쇠락하는 과정을 묘사한 에피소드는 잘 차려진 성찬을 맛보는 것처럼 지적인 독서의 흥미를 채워준다. ‘유대인의 왕’으로 불렸던 그들이 철저한 족내혼(族內婚)으로 유럽 왕실을 흉내 내고, 수많은 예술가를 후원해 ‘제2의 메디치가’를 꿈꾸었던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로스차일드가를 통해 현대 금융위기를 읽어낸다는 점이다. 국제자본 흐름의 막대한 이동성이 각국의 재정과 중앙은행을 왜소하게 만들고, 채권과 증권시장에 출현하는 혁신을 규제가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19세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전쟁과 혁명이 끊이지 않았던 변덕스러운 시장에서 사소한 실수는 개별 기업과 국가에 무참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200년 이상 살아남은 로스차일드가의 힘을 ‘가족기업의 심리학’(가족적 연대, 종교에 근간을 둔 덕성, 근면)에서 찾는다. 현대의 글로벌 기업이 아무리 세련된 경영기법으로 로스차일드가의 다국적 구조를 흉내 낸다고 해도, 현재의 주주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까지 내다보는 이러한 에토스(집단 특유의 관습)가 없다면 투자자들로부터 지속적인 신뢰를 끌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결론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의 후손인 도예가 심수관 씨(86·오른쪽)와 딸 기요하라 마사코(淸原正子) 씨가 26일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를 방문했다. 심 씨는 전날 열린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세계 속에서 한국을 빛낸 한국인’ 대표로 참석했다. 그는 “1998년 동아일보사 주최로 열린 ‘400년 만의 귀향-심수관가 도예전’을 통해 우리가 한국의 자랑스러운 후예임을 세상에 당당하게 알리게 됐다”며 감사를 표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십자가(시게마츠 기요시 지음·이선희 옮김·예담)=집단따돌림으로 한 중학생이 자살한다. 학생의 유서에는 여러 친구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름이 적힌 한 친구는 이제 성인이자 아빠가 돼 그때 기억을 더듬어 간다. 2010년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수상작. 1만3000원.2013 올해의 문제소설(한국현대소설학회 엮음·푸른사상)=한국현대소설학회가 2011년 10월부터 1년간 문예지에 발표된 단편소설 가운데 ‘문학성’과 ‘문제성’을 기준으로 13편을 추렸다. 최수철 김연수 박민규 한유주 등의 근작을 볼 수 있다. 1만3000원.빈 거울을 절간과 세간 사이에 놓기(송준영 엮음·시와세계)=설악산 신흥사 조실 무산 조오현 스님의 시세계에 관한 평론과 논문을 묶은 책. 9만2000원.생태학의 역사(안나 브람웰 지음·살림)=19세기 말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생태주의 운동과 사상의 흐름을 다룬 책. 생태운동의 이상이 우생학, 마르크스주의, 나치즘, 급진적 여성주의 등과 결합하면서 변질된 과정도 살폈다. 3만 원.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안톤 체호프 지음·동북아역사재단)=러시아의 대문호 체호프가 1890년 시베리아와 사할린 섬을 여행하고 쓴 현장보고서가 국내 최초로 번역됐다. 1880년 전후 사할린에 한국인 노동자가 상당수 거주했다는 기록이 눈에 띈다. 1만8000원.세상을 바꾼 경제학(야자와 사이언스 연구소 지음·신은주 옮김)=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주인공 존 내시부터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 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11명의 사상과 철학, 인생을 통해 본 21세기 경제학의 역사. 1만3000원.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최정호 지음·시그마북스)=세계의 역사가 바뀐 20세기 말, 21세기 초의 30년을 돌아보는 담론집. 주요 주제는 옛 소련의 붕괴, 독일과 한반도 통일, 한국 문화의 ‘제3의 르네상스’. 2만5000원.현대 호주사회의 이해(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호주연구센터·한국학술정보)=호주의 다문화 정책, 복지 문제, 비정규직 정책을 통해 한국 사회에 주는 함의를 살펴본다. 2만 원.내 생애 첫 파티(정소빛 지음·디앤씨북스)=초등학생이 입학 후 6학년 때까지 쓴 단편소설 5편과 콩트 6편을 모았다. 8500원.}

‘다니’라는 이름을 가진 너구리가 주인공입니다. 몸은 제법 통통한 편인 데다 짧은 팔다리에 행동은 조금 둔하지요. 그리고 이제 막 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것이 분명합니다. 책을 읽다 보면 너구리 다니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올라 내내 웃음 짓게 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 읽은 뒤 아직은 행동이 딱 떨어지지 않고 자기표현도 서투른 꼬마 남자아이가 보여요. 언제고 놀이터나 골목길, 횡단보도나 문방구 앞에서 만났던 꼬마입니다. 작가가 디자인을 하던 사람이라 그럴까요? 배경과 너구리의 행동, 생김새, 숲 속 풍경과 물건들, 음식 하나하나가 손에 잡힐 듯합니다. 1984년에 안데르센 상을 받았고, 2003년에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기념상을 받은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가 쓴 이야기입니다. 그는 언제나 평범하면서도 기발하고, 익숙하면서도 미래에 맞닿은 동화로 독자들을 기분 좋게 일깨워주는 작가입니다. 이 책에 실린 짧은 네 편의 글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유쾌합니다. 다니는 우리 주변에 늘 있는 일곱 살이나 여덟 살 아이들이 할 법한 행동을 하지요. 다니가 맞닥뜨리는 상황 역시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일어날 만한 일들입니다. 때로 얄미운 친구를 어쩔 수 없이 도와줘야 하는 일이 생깁니다. 정말 갖고 싶은 물건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기대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고, 진짜 영웅이 된 듯한 기분에 으쓱해지는 사건도 생깁니다. 중요한 것은 다니의 마음입니다. 적절한 판단을 내리거나 그것을행동으로 옮기는 데 그 착한 마음이 마법처럼 실력을 발휘합니다. 서투르고 엉뚱해 보일지 몰라도 다니는 세상을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아갈 힘이 있는 친구입니다. 새 학기가 시작됩니다. 입학하는 친구들도 있겠지요. 그들이 처음 세상을 다니와 같은 마음으로 만나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또 다니와 똑 닮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렵고 외로운 교실 안에서 착한 마음으로 힘이 되어줄 다니를 소개합니다.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

언제부터인지 선수들이 경기에서 이기고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논란이 됐다. 이 퍼포먼스가 “불편하고 당혹스럽다”고 질타를 받는 일도 많아졌다. 그 ‘특정 종교’에 대한 반감은 교회를 새로 크게 짓거나 담임목사직을 세습하고 정치적으로 치우친 발언을 할 때도 가차 없다. 과거에는 사회봉사나 학교 운영 등으로 미더운 시선을 받던 교회이건만….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을까. 전작 ‘나 홀로 볼링’에서 갈수록 개인주의화되고 공동체 의식이 실종되는 미국인들의 성향을 지적했던 저자 로버트 D 퍼트넘 교수(하버드대 케네디스쿨)는 5년간 미국에서 5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미국 사회의 종교관이 지난 수십 년 동안 달라졌음을 밝힌다. 이는 한국에도 참고가 될 만하다. 이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 신앙과 종교에 대한 첫 번째 변화는 기성 체제에 대한 반발이 커졌던 1960년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불거져 나왔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1970, 80년대에는 신보수화 경향을 불러왔고, 다시 1990년대부터 보수화된 교회와 종교를 앞세운 정치인들의 행태에 염증을 느낀 많은 미국인이 종교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종교(주로 개신교)에 대한 강한 집착과 강한 거부감이 동시에 표출되면서 미국 사회는 분열했으며 오늘날 한쪽에서는 ‘오직 성서대로 살자’고 고집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종교가 다 뭐냐’고 하는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교를 둘러싼 미국 사회의 분열이 어떤 나라들에서처럼 종교 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종교 덕분에 무관심의 장벽을 뚫고 정치와 사회에 적극 참여하는 미국인이 많다. 또 서로 다른 종교적 입장을 이해하고 관용하려는 자세가 주류가 됨으로써 미국 사회의 통합을 이루는 측면도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종교 다원주의’ 현상이 공동체 유지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긍정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도 ‘미국의 축복’(아메리칸 그레이스)이다. 생각해 보면 ‘종교 양극화’와 ‘종교 다원주의’가 공존하는 이런 묘한 현상은 종교가 도덕 영역의 보루가 되는 한편으로 국가 운영의 영역에서는 손을 떼는 게 옳다는 공감대에서 비롯하고 있다. 그래서 가령 낙태 문제를 두고는 종교인이냐 아니냐에 따라 견해가 뚜렷이 나뉘지만, 세금을 더 많이 걷을 것이냐의 문제에서는 별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본래 미국처럼 종교에 크게 몰두하는 문화가 아니었다. 한때 ‘잘살아 보세’의 원동력을 제공했던 종교는 보수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공격받고 있다. 이처럼 탈종교화를 넘어 종교혐오 현상까지 빚어질 때, 가뜩이나 기반이 약한 한국의 공동체 의식은 어찌 될 것인가. 이런 문제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라도 방대한 자료와 예리한 혜안을 엮어 써낸 이 책을 한번쯤 읽어볼 만하다. 함규진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

그리스 로마 고전 번역의 권위자로 꼽히는 천병희 단국대 명예교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헤로도토스의 ‘역사’, 플루타르코스의 ‘영웅전’ 등 30여 종을 번역한 그가 1972년 처음 번역한 작품이 플라톤의 ‘국가’였다. 당시 그는 ‘국가’의 후반부만 번역했는데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를 완역했다. 국가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 책은 ‘철인 통치’ ‘동굴의 비유’ 등 서양 철학사의 오랜 주제가 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의역은 피하고, 원전 그대로의 대화체로 풀어내 읽기가 쉽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인류에게 종교는 축복인가, 저주인가, 수많은 사람이 종교를 통해 삶의 위안을 얻고 있지만, 또한 수많은 사람이 종교 때문에 삶의 파탄을 겪고 있다. 굳이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일상적으로 뉴스에서 접하는 충돌과 분쟁의 상당 부분이 종교 간의 갈등이다. 그러한 갈등은 가까이는 이웃 간의 화합을 저해할 뿐 아니라, 심지어 대량살상을 야기하고 국제난민의 발생을 초래한다. 그 원인이 종교라기보다는 종교로 포장된 정치적이거나 기타의 세속적인 욕망에 있다는 진단도 있다. 하지만 종교가 악용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수많은 종교 구성원이 그러한 갈등의 프레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할 수 없다. 망명 티베트의 지도자를 넘어 인류의 정신적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달라이 라마는 이 책을 통해 “종교는 더이상 미래를 이끌 수 없다. 이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고 선언한다. 불교라는 종교의 지도자인 그가 종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달라이 라마의 과감함과 솔직성이 있으며, 그 인격의 위대함이 있다. 종교가 아니라 특정 단체의 지도자라고 해도 그 한계를 스스로 인정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한계를 넘어선다. 여기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달라이 라마가 ‘종교를 넘어’라고 주장한 것이 종교를 무시하거나 인류에 대한 종교의 기여를 평가 절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종교의 역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의 역할을 지구촌 시대라는 새로운 시대에 맞게 그 개별성으로 인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재설정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전제는 종교와 보편적 도덕을 분리하자는 제안에서 뚜렷해진다. 개별 종교는 더이상 그 자체로는 보편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자체의 형이상학적 입장에 입각해 도덕을 확립하려는 시도는 이제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 모두에게 호소할 수 있는 도덕의 확립을 통한 지구촌 인류공동체의 형성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달라이 라마는 그 보편적 도덕에 대하여 현세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현세적으로’라는 말도 조심스럽게 알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는 단순히 세속적 가치를 추종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 그의 책 후반부는 불교적인 도덕을 보편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도덕으로 제시하고자 하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곧, 윤회나 업 등 현대적 합리성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형이상학적 전제를 바탕으로 하지 않고, 보편적 지성에 호소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는 다른 종교전통을 지닌 사람들에게도 불교로 개종하거나 불교적인 내용을 어렵게 배우려 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친숙한 전통을 소중히 하라고 이야기한다. 달라이 라마는 이 책을 통해 인간적 경험과 심리학을 비롯한 최신의 과학적 연구 성과를 활용한다. 그는 권위적인 종교지도자나 난해한 사실을 늘어놓는 학자가 아니라 누구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도록 논의를 전개하는 현명하고 합리적 대화자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말 번역도 깔끔하고, 친절하면서도 간명한 역자 주는 이 책을 더욱 편히 읽을 수 있도록 돕는다.류제동 성공회대 연구교수}

이 책은 여러분 주변에 있을 법한 보통 아이들 이야기입니다. 네 가지의 짧은 이야기 속에 아이들 마음이 아주 재미있게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 대응하는 어른들의 모습도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도를 좋아하는 아이’에 나오는 친구는 누구 말에나 ‘나도 그런데’ 하는 아이입니다. 어느 날 그 아이를 집에 데려갑니다. 그 아이의 ‘나도’에 질린 엄마는 자신의 모든 순발력을 동원해 그 아이를 이겨 버립니다. 그리고 통쾌해하죠. 아이와의 말싸움에서 이겼다고 신이 난 엄마,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의 뒷모습이 쓸쓸합니다. ‘백일떡’의 주인공은 갓난 동생이 못마땅한 맏이의 이야기입니다. 어른들은 동생만 예뻐 하고, 주인공의 마음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동생은 ‘기다려서’ 생기고 자신은 ‘덜컥’ 생겼다는 엄마의 말은 자신의 존재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기도하는 시간’의 주인공은 순진무구형입니다. 아이스크림을 앞에 놓고 기도를 시작한 어른들. 어른들의 삶이 팍팍한 만큼 기도는 길어집니다.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기도보다 녹아가는 아이스크림만 눈에 들어옵니다. 아이스크림이 녹는 만큼 눈에서 눈물이 납니다. ‘내 머리에 햇살 냄새’의 주인공은 햇살 하나만으로도 웃음이 나는 마냥 아이입니다. 지하방에 사는 현실은 가족이 함께한다는 사실 앞에서 그리 무겁지 않습니다. 읽다보면 여기 등장하는 아이들 모습에 여러분이나 여러분 친구들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나도, 나도’ 하면서 끼어드는 얄미운 친구, 우물쭈물하는 답답한 친구, 어른들의 말에는 대꾸도 못하고 눈물부터 나오는 친구. 이런 모습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이 책은 누구나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누구의 모습을 닮은 아이가 꼭 하나는 있으니, 읽으면서 몰입이 잘 됩니다. 마음이 짠하다가도, 등장인물들의 아이다움이 유쾌하고 재미있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한꺼번에 읽어버리지 말고, 조금씩 아껴가면서 등장인물들과 사귀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예림이 보배 지수 선미가 혹 자신과 닮은 구석은 없으신가요? 지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이 넷 중 누구와 가장 닮으셨나요?김혜원 어린이도서평론가}

“국산품의 가치를 알아주는 것 같아 요즘 살맛이 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들고 다니는 ‘타조 백’을 만든 것으로 알려졌던 한 제조업체의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조윤선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은 “국산 제품은 맞지만 이 브랜드는 아니다”라고 해명자료를 냈지만, 유명 인사의 해외 명품만 회자되던 인터넷 공간에서 신선한 사건임은 틀림없었다. 국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기 때문일까. 박 당선인이 취임식 때 입을 의상부터 액세서리까지 관심을 끈다. 국제 무대에서 패션은 중요한 정치적 수단이 돼 왔다.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1997∼2001년 재직)는 외교협상 무대에서 벌, 나비, 거미, 악어 모양 등 200여 개의 브로치를 활용했던 ‘브로치 외교’로 유명했다. 미셸 오바마 미 대통령 부인은 서민들이 즐겨 입는 중저가 기성복 브랜드를 잘 소화해내고, 영국의 세손빈 케이트 미들턴도 자국 디자이너의 제품을 세계에 알리는 패션 아이콘으로 활약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제1비서 김정은의 부인인 이설주가 공식 석상에 입고 나오는 짧은 스커트와 구두, 명품백은 평양에 부는 변화의 바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렇듯 정치 지도자에겐 직접적인 연설보다는 패션이나 제스처, 유머와 같은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대중적 이미지를 높이는 데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대통령이 읽는 책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 위에 넌지시 책을 놓아둠으로써 미디어와 지식인층, 대중과 폭넓게 소통하곤 했다. 대통령이 읽는 책에는 단기적 현안보다는 자신이 지향하는 나라에 대한 비전과 중요한 정책의 통찰이 담겨 있을 때가 많다. 또한 미묘한 관점의 변화를 전달할 때도 안성맞춤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건강보험 개혁 논쟁 과정에서 “우리는 한 세기 동안 건강보험 문제를 얘기해 왔다. 나는 지금 (건강보험 개혁의 선구자였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전기를 읽고 있다”고 밝혔다. 그가 책 이야기를 꺼낸 것은 자신의 노력이 ‘역사와의 대화’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박 당선인은 자전 에세이에서 20대에 부모를 잃고 난 뒤 ‘열국지’ ‘중국철학사’ ‘로마사 논고’ ‘인간석가’ ‘법구경’ 등 동서양 철학과 경전을 탐독하며 내면을 성찰했던 독서 편력을 자세히 소개했다. 인수위원회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출판계 대표를 불러서 현안을 들었던 것도 출판계에선 처음 있는 고무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박 당선인은 자신의 의상이 국내 어느 디자이너의 브랜드라고 확인해 준 적이 없듯이, 정치활동과 관련해 공개적으로 책을 인용해 본 사례가 매우 적다. 대통령이 옷과 책을 정치에 활용하는 것은 꼭 출판계, 패션업계의 활성화를 위한 건 아니다. 이는 앞뒤가 꽉 막힌 위기의 순간에 국민과 소통의 활로를 뚫는 요긴한 수단이다.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2007년 8월의 일이다. 실크로드 탐사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라 비행기를 탔는데 승무원이 물었다. “이 주변에 무슨 유명한 관광지가 있나요. 여기 올 때마다 선생님처럼 배낭을 메신 여행객이 많아서요.” 나는 신장(新疆)이 실크로드 핵심지역이며 여기 오는 사람들 대부분은 실크로드 탐방객일 거라고 설명해주었다. 인사치레인지 알 수 없지만 승무원은 자신도 꼭 실크로드 여행을 하고 싶다고 말하며 지나갔다. 나는 처음에 굉장히 이상했다. 손님들 모시고 신장을 오가는 승무원이 이곳 사정을 그렇게도 모르나. 항공사에서는 이런 교육도 안 하나. 그러나 자리에 앉아 생각해보니 그 승무원이 이해가 됐다. 배우지 않아서다.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은 모두 실크로드를 배운다. 단 학교에서 배우는 실크로드는 모두 옛 이야기다. 그곳이 현재 어디인지 지금 사정은 어떤지는 관심 밖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실크로드 관련 전문서적과 교양서도 다르지 않다. 서역, 장건, 석굴사원, 사람과 상품과 종교가 오갔던 길, 이 길이 한반도까지 이어진다는 것 등 천편일률적이다. 반면에 일부 학자와 저널리스트들은 주로 신장의 환경문제와 민족분규를 이야기한다. 어떤 역사 과정을 거쳐 현재처럼 환경이 파괴되고 민족분규가 발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원적 설명은 하지 않고 현상만 이야기한다. 이런 접근은 신장의 현재 상황에 대한 올바른 진단을 방해함은 물론이고 종종 심각한 과장을 불러온다. 대표적 사례가 베이징 올림픽 전 발생한 폭탄테러와 2009년 7∼8월에 일어난 위구르족과 한족의 폭력충돌이다. 당시 인터넷과 신문 방송에는 사진자료와 함께 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그러나 어디에도 사건 현장이 문명의 십자로인 실크로드의 현장이라는 설명은 없다. 이는 실크로드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현재 문제에 무지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실크로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현재 문제를 애써 외면하고 현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과거에 무지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장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책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실크로드와 현대 신장이 별개로 이해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이 문제를 해결할 책이 출간됐다. 저자는 미국 조지타운대 제임스 밀워드 교수다. 그는 청대 중앙아시아 변경 문제에 관한 현존 최고의 학자다. 저자는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한 1978년부터 이 책을 쓰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전문가와 일반인 모두의 교과서가 될 만하다. 교통의 요충지, 문명의 십자로로서 신장의 지리적 위치와 자연환경, 그 안에서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저자는 치밀한 고증과 요령 있는 설명으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나간다. 이 책을 받고 누구보다도 반가워한 사람은 필자다. 사연이 있다. 원서가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즉시 주문하여 번역을 결심했지만 차일피일 마루다 번역본을 받아보게 됐다. 후회와 반가움이 겹쳤다. 좋은 책을 내손으로 번역해내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고 그래도 누군가 해서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베이징 출장 중 꼬박 이틀을 투자하여 완독했다. 먼 옛날 이 땅에서 살다간 누란왕국의 미녀, 이 땅을 여행한 장건, 이 땅을 침략한 유목민, 이 땅을 거점으로 장사를 한 소그드인, 이 땅을 신장으로 만든 건륭황제 그리고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위구르인과 한족 중국인의 이야기 등 신장의 과거와 현재가 그림처럼 그려진다.이평래 한국외국어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1, 2권 합쳐 800쪽이 넘는 이 책에는 각주가 하나도 없다. 중국의 역사와 외교, 문화와 관련된 묵직한 내용을 담았는데도 말이다. 36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1992년 한중수교부터 6자회담까지 오로지 중국문제에만 매달려온 최장수 주중 대사인 저자는 “자료가 아니라 내가 직접 경험하고 나눈 대화의 기록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그래서 각주가 없다”고 말했다. 김 전 대사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2001년 대사로 발령받아 노무현 정부 5년을 거쳐 2008년 이명박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기 전까지 6년 반을 근무했다. 한중수교 협상의 주역이었던 그는 황장엽 망명사건, 북한 핵문제, 탈북자 문제, 마늘 분쟁, 중국산 김치파동 등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중국 문화에 대한 지식과 중국 내 탄탄한 인맥을 바탕으로 수많은 외교문제를 풀어왔다. 이 책은 외교관의 시각에서 바라본 중국이다. 1권인 ‘떠오르는 용’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책이다. 집필 기간은 1994년부터 8년. 중국어로 먼저 출간돼 런민(人民)일보에 소개된 후 중국의 최고지도자들도 많이 읽는 책이 됐다. 2권 ‘영원한 이웃, 끝없는 도전’에는 저자가 한중관계의 외교 현장에서 겪었던 생생한 비화가 담겨 있다. 책에는 외교관이나 중국 관련 연구자뿐 아니라 사업을 하는 직장인, 유학생까지 참고할 만한 조언이 많다. 저자는 책의 곳곳에 ‘남성 위주의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중국인들이 항상 느리다고 생각하지 말라’ ‘무조건 높은 사람만 만나려고 하지 말라’ ‘인맥은 사람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잡는 것이다’ 등 중국인을 이해하는 법을 적어놓았다. 그는 “중국에는 13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며 “몇 명의 중국인이 이야기하는 것을 가지고 함부로 중국인 전체를 폄하하는 것은 중국인들의 감정을 자극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국익에도 큰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영국의 스타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가 신작 ‘생명의 경이(Wonders of Life)’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전작 ‘우주의 경이’ ‘태양계의 경이’와 마찬가지로 BBC에서 먼저 방영돼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브라이언 콕스는 ‘양자 우주’를 비롯한 여러 대중 과학서를 저술한 작가이자 교수이다. 그는 또 데이비드 애튼버러와 패트릭 무어에 이어 과학 TV프로그램의 진행을 책임질 BBC의 차세대 스타로 꼽힌다. 이러한 인기를 반영하듯 콕스의 신작 ‘생명의 경이’는 지난달 24일 발간되자마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두 권의 전작과 마찬가지로 미국 작가 앤드루 코언과 함께 저술한 이 작품에서 콕스는 생명의 근원과 진화론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한다. 생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에서 오고, 어떻게 끝나는가? 왜 몇몇 동물들은 특정한 방식으로 진화했는가? 콕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해변에서 서식하는 ‘사마귀새우’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사마귀새우는 만 개가 넘는 육각형 렌즈로 구성된 눈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섬세하고 뛰어난 시력이라고 한다. 물론 사마귀새우가 처음부터 뛰어난 시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콕스를 매료시킨 것은 이 엄청난 시력을 사마귀새우에게 안겨준 진화의 법칙이었다. 그에 따르면 지구상에는 10억 종류 이상의 생명이 존재하지만 생명을 정의하는 법칙들은 의외로 몇 가지 단순하고도 핵심적인 것에 그친다. 그는 바깥세상을 탐지하고, 이에 반응하려는 감각이 바로 생명 진화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콕스는 이를 증명하기 위해 유카탄 반도의 지하 담수 동굴과 마다가스카르의 외딴 섬 등 전 세계의 오지들을 여행한다. 다양한 장소들에서 수집한 독특한 동물들은 그가 주장하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마침내 ‘인간의 진화’에 도달한 그는 인간의 진화 또한 이 ‘감각론’으로 설명한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더 많이 진화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인간의 반응 감각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과연 생명의 진화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진화의 끝, 즉 생명의 마지막은 어떻게 찾아오는 것일까? ‘과학서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 없다’는 법칙을 깨고 출간하는 책마다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려놓는 작가는 이번에도 새로운 진화론으로 베스트셀러 작가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런던=안주현 통신원 jahn80@gmail.com}

“진보진영도 이제는 북한에 핵무기 개발과 정치범수용소의 문제점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보수층을 향해 남북한 화해협력과 경제교류를 요구하려면 말이죠.”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멤버였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53)이 최근 책 ‘대한민국 진화론’(미래를소유한사람들·사진)을 펴냈다. 그는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제기해 1년 징역형을 받고 지난해 12월 25일 만기 출소했다.정 전 의원은 지난 대선 이후 갈 길을 잃어버린 진보진영에 “‘멘붕’도 사치다. 좌절은 개나 줘버려라”며 ‘돌직구’를 던졌다. 또 “‘나꼼수’는 다시 하지 않겠다”며 “가족과 함께 경북 봉화의 비나리마을로 내려가 도시와 농촌을 연계하는 생활협동조합형 시민사회운동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의 패인은 무엇인가.“민주당은 단일화만 이루면 이길 수 있다는 정치공학적 안일함에 빠져 있었다. 상대방은 권력의 탐욕에 빠진 보수세력일 뿐이라고 우습게 봤다. 그러나 막상 선거를 치러 보니 민주당은 준비가 부족했다. 정권을 얻겠다는 절실함 간절함 측면에서 새누리당에 패배했다.”―박근혜 정부가 잘하리라고 보는가.“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국민이 행복한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가 성공했으면 좋겠다. 야당도 국민행복을 놓고 여당과 경쟁을 펼쳐야 한다.”―‘대한민국 진화론’에서 하고 싶었던 말은….“미국이나 유럽은 좌우 진영이 정책을 주고받으며 한 단계씩 진화해왔다. 우리나라의 보수 진보도 상대편을 타도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보수층이 남북화해, 한진중공업, 강정마을, 쌍용자동차 문제에 대해 들어주길 원한다면 진보진영도 북한의 핵개발과 인권 문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북한 핵개발은 민족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지 보수의 담론이 아니라고 본다.”현란한 입담과 함께 모든 말은 자기자랑으로 끝난다고 해서 ‘깔때기’란 별명을 가진 그는 1년의 수감생활 탓인지 훨씬 진지해진 분위기였다. ‘나꼼수’에 대해서도 “2011년 10·26 재·보궐선거 이후 재미만 추구했을 뿐 콘텐츠 업그레이드에 실패했다”며 “멤버들이 콘서트하고 팬덤에 빠지면서 나르시시즘에 빠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어준 주진우 씨 등 나꼼수 멤버들이 대선 직후 출국해 귀국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무슨 판단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쫄지 말고 돌아오라”고 말했다.그는 민주당에도 ‘자기부정’을 통해 거듭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의 ‘만화적 상상력’이라는 전제 아래 28명에 이르는 민주당 3선 이상 중진의원이 과감히 지역구를 참신한 인물들에게 양보하고 대구와 경북, 부산으로 지역구를 옮기자고 제안했다.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봄가을은 사라지고 여름과 겨울만 남을 것 같은 시절입니다. 유난히 춥고 눈 많은 올겨울, 반가운 친구처럼 찾아온 책이 있습니다. 책 속 겨울은 그저 지나가는 계절이 아닙니다. 반갑게 만났다 헤어지는 친구이며, 떠났다가도 세 계절 지나 다시 만날 친구입니다. 물론 겨울을 친구 삼아 놀던 아이는 점점 자라겠지만요. 어느새 성큼 다가온 겨울이 아이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아이 손엔 방패연, 뒤서거니 앞서거니 강아지도 따라 갑니다. 아이는 겨울이 안내하는 들판을 지나 숲을 찾고 언덕에 올라 바다와 마을을 봅니다. 겨울이 불러다 준 바람을 타고 방패연은 하늘 높이 오릅니다. 나붓나붓 내려 쌓인 눈 위로 썰매도 타고, 챙챙 고드름 칼싸움도 합니다. 강아지도 신이 나서 뛰어놉니다. 겨울과 아이가 눈사람을 만듭니다. 둘은 정말 좋은 친구가 되었어요. 더, 더 놀고만 싶은 아이는 새로 사귄 친구를 자기 집 안으로 초대합니다. 하지만 겨울은 철모르는 친구가 아닙니다. 내일 또 만나 놀자며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내지요. 한밤중에 자다 깬 아이는 달빛 아래 온통 반짝이는 겨울과 희고 고요한 세상을 봅니다. 겨울은 생각만큼 빨리 떠나진 않을 것 같았지요. 2002년 ‘가을을 만났어요’가 출간되었을 때 아, 이건 사계절 시리즈로 나오겠거니 했지만 10년이 다 되도록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10년, 잊을 만한 때 이 책 ‘겨울을 만났어요’가 나왔습니다. ‘그렇지! 이건 시리즈였어!’ 내심 반가웠답니다. 글은 가을과 마찬가지로 이미애 작가가 썼습니다. 조금 긴 한 편의 시와 같은 글입니다. 겨울이라는 친구의 서늘한 눈빛과 짓궂은 장난기를 노련한 그림 작가 이종미가 차분한 색감과 풍부한 앵글로 벼려냈습니다. 겨울 이야기지만 따뜻합니다. 난방이 충분해 한겨울 칼바람이 아프기만 한 아이들은 진짜 겨울을 만날 기회가, 그렇지 않은 아이들에겐 충분한 공감이 될 것입니다. 떠나보내기 전에 우리가 잠시 잊었던 그 ‘겨울’을 만나세요. 김혜진 어린이도서평론가}

에너지와 국제정치, 지정학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대니얼 예긴은 20년 전 ‘황금의 샘(The Prize)’이라는 책으로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는 에너지 미래학자다. 60대 후반 원숙함의 경지에 접어든 저자의 신작(원제 ‘The Quest’)은 역시 문제를 보는 깊이와 넓이에서 정점에 이른 석학의 면모가 엿보인다. 하지만 원숙함보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저자가 여전히 에너지 분야의 최전선에서 상충된 가치를 지닌 매우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명쾌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견해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가령 석유 문제와 관련해 세계 최고의 권위를 지닌 그는 이 책에서 석유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위기의식의 산물인 ‘피크 오일(Peak Oil)’ 이론의 한계와 회피 방안을 명쾌하게 제시한다. 피크 오일이란 석유 생산의 정점을 의미하며, 동시에 석유 생산의 감소가 시작되는 지점을 의미한다. 이 문제는 에너지 학자들 사이에서 그 존재 여부에 대한 많은 논란을 야기할 뿐 아니라 기업전략과 국가정책 형성에서 혼란과 오류의 근원이 되어 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과거 주장을 번복하면서 지금은 ‘피크 오일’ 이론이 적절치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대신 그는 ‘고원(高原·plateau) 이론’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이 이론은 당분간 석유 생산이 늘어날 것이며, 언젠가 그 생산이 정점에 달하더라도 마치 고원 지대처럼 상당 기간 평탄면을 유지하다가 감소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것이다. 최근에 세계의 주목을 끈 바 있는 셰일가스(퇴적암인 셰일층에 매장돼 있는 천연가스)와 전기차, 풍력, 태양광 같은 재생에너지 등에 대해서도 저자는 현황을 설명하고, 논쟁적인 주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뚜렷하게 밝히고 있다. 그러나 역시 ‘에너지, 안보, 그리고 현대 세계의 재편’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이 이 책의 미덕은 에너지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관한 포괄적인 설명과 개별 사실들의 역동적인 네트워킹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사람들은 에너지의 위기라고 하면 자원에 대한 물리적 고갈을 떠올린다. 특히 화석연료에 관한 전통적인 위기 관념에서 이러한 통념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에너지의 위기라는 관념 자체를 포괄적이고 본질적으로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과거의 역사를 바탕으로 인류가 경험했던 에너지의 위기는 본질적으로 ‘물리적 위기’가 아니라 ‘지상의 위험’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가 말하는 지상의 위험이란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다양한 지정학적 변수들을 일컫는 것이다. 1, 2차 오일쇼크나 걸프 전쟁을 떠올려 보면 저자의 관점은 쉽게 이해된다. 또한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에너지 자원이 국제 금융 시장에서 파생상품의 주된 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도 지상의 위험에 해당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에너지 자원의 물리적 위기는 기술의 혁신을 통해 줄곧 예기치 않게(기술 혁신을 주도한 사람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과 원대한 야망은 결코 예기치 않은 것이라 할 수 없지만) 해결됐으며, 최근에 천연가스 분야에서 ‘진정한 혁신’으로 평가되는 셰일가스의 경우도 물리적 위기에 대한 인류의 문제 해결 능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지적하고 있다. 저자는 석유의 역사를 설명하고 셰일가스의 현황을 분석했으며, 재생에너지의 미래를 조망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 이외에 또 하나의 중요한 에너지 자원을 말하고 있다. 바로 ‘에너지 이용 효율성(Efficiency)’이라는 에너지 자원이다. 그 어떤 에너지 자원보다 중요하고 생태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에너지 자원은 바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는 생활 방식과 기술이라는 점을 저자는 역설하고 있다. 가치관의 변화와 기술 혁신의 진정한 융합을 의미하는 이용 효율성 개념은 극적 반전 효과를 거두며 둔중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올겨울 유난히 추운 날이 이어지고 있다. 연일 정전 위험과 석유 값 상승을 경고하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우리는 효율성이라는 에너지 자원을 잘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최기련 아주대 에너지학과 교수}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박물관에는 제우스의 아들인 카이로스의 조각상이 있다. 카이로스는 무성한 앞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그를 알아보는 사람은 앞 머리카락을 쉽게 붙잡을 수 있지만 그냥 지나치면 다시는 붙잡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뒷머리가 없는 대머리인 데다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왼손에는 저울을, 오른손에는 칼날을 들고 있어 정확한 판단과 빠른 결단을 요구한다. 그는 ‘기회의 신’이다. 이 책은 한국 일본 미국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창업주 9인의 이야기를 담은 경영에세이다. 그들이 어디서 기회를 찾았고, 어떻게 그 기회를 붙잡고 도전했는지 방대한 자료를 통해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이번에 나온 1권 ‘누구의 인생도 닮지 마라’는 한국의 1세대 기업가인 정주영, 이병철, 구인회의 삶을 조명했다. 젊은 시절 현실을 불평하던 가출 소년, 중도 포기가 다반사였던 부적응아, 몰락해가는 선비 집안의 아들이었던 그들이 어떻게 시대적 상황 속에서 기회를 모색해왔는지 추적한다. 2권은 일본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혼다 소이치로, 이나모리 가즈오를, 3권은 미국의 헨리 포드, 존 데이비슨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를 다룰 예정이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