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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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6-03-03~2026-04-02
문화 일반24%
문학/출판23%
인사일반13%
역사10%
언론10%
칼럼7%
사회일반7%
바둑3%
기업3%
  • 사대부 무덤 파헤치기 20여 년 “묘비 양식 보면 시대가 읽혀져”

    “조선시대 묘제(墓制)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는 막연한 인식이 있는데 실제론 끊임없이 변했습니다. 불교 성리학 풍수지리설 음양론 등이 반영되고 조정의 정책과 죽음에 대한 인식 등이 계속 변했기 때문입니다.” 조선 묘제 전문가인 김우림 전 울산박물관장(55)이 최근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 이야기’(민속원)를 펴냈다. 김 전 관장은 고려대박물관 학예사 출신으로 2002년 국내 최초의 모자(母子) 미라였던 파평 윤씨 미라 발굴과 후속 연구를 주도했다. 2004∼2009년 서울역사박물관장을 지낸 뒤 2014년까지 울산박물관장으로 일했다. 김 전 관장이 1990년대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조선 사대부 묘제 연구는 황무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시에는 조선 시대 무덤 200기를 발굴하고도 달랑 2페이지짜리 보고서만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 사대부 무덤 양식이 전기에는 ‘회격묘’, 후기의 ‘회곽묘’로 달랐다는 것을 처음 밝혀냈다. 회격묘는 땅을 파고 먼저 목곽·목관을 안치한 뒤에 땅과 목곽 사이를 삼물(三物·회, 마사토, 가는 모래를 섞은 것)로 채웠다. 후기에는 삼물로 회곽을 먼저 만들고 목관을 나중에 안치했다. 김 전 관장은 “임진왜란 이후 성곽 등을 복구하느라 회가 부족해지자 회가 덜 들어가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묘비를 비롯한 석물 양식도 크게 변화했다. 조선 초기엔 불교의 연화화생(蓮花化生·무덤 주인이 불교의 정토에서 태어나길 소망하는 것) 사상을 반영해 비석 상부에 연잎, 하부에 연꽃을 새겼다. 김 전 관장은 “이는 중국에도 없었고 조선 초기 200년간의 무덤에서만 보인다”고 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조상의 업적을 적은 비문을 비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지붕 모양의 옥개석을 얹는 것이 일반화돼 현대까지 이어졌다. 그는 기존 학설의 오류도 지적했다.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워 묘역을 밝히는 석물)은 종1품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만 세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조사 결과 정3품 이상이면 세울 수 있었다. 책은 또 왕릉 발굴 보고서의 서술 오류, 분묘 출토 미라의 생성 메커니즘 등도 소개했다. 김 전 관장은 ‘남들이 안 하는 조선 묘제 연구를 해 보라’는 대학 은사의 권유에 따라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30여 기의 무덤을 발굴해 보고서를 냈고, 재개발과 문중의 이장 사업 등으로 파묘하는 무덤 수천 기를 조사했다. 그는 “묘제에 관한 문헌 기록이 별로 없다”며 “잘못된 주장이 최근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지 않고 인터넷은 물론 학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점은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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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조종엽]인터넷, 강의개방, 성공적?

    “원래는 비싼 강의다 얘들아.” KAIST 경영대가 목요일마다 아프리카TV에서 방송하는 경영학 강의(afreeca.com/kaistbs)의 채팅창에 한 시청자가 남긴 말이다. KAIST 경영대는 지난해 9월 졸업생과 동문을 위한 ‘애프터서비스’ 개념으로 실시간 인터넷 강의를 선보였는데, 올해부터는 이를 일반 누리꾼에게도 공개하고 있다. “고객관계관리(CRM)를 잘할수록 고객에 대해서 깊이 알게 되니까 조심해야 할 것도 많아요. 미국의 어느 유통회사는 한 여고생이 임신 테스터, 임산부 영양제를 구매했던 자료를 분석해 (자녀에게 필요하다며) 부모에게 임산부 용품 소개를 잔뜩 보냈어요. 부모는 화가 나 오히려 회사에 항의했죠. CRM을 기계적으로, 마케팅으로만 보면 안 됩니다.” 김영걸 KAIST 경영대 부학장이 했던 인터넷 강의 내용이다. 교수 7명이 릴레이로 강의를 하는데 대체로 꽤 알차다. 퀴즈를 맞히는 시청자에게 작은 상품을 주는 등 인터넷 방송의 장점도 적극 활용한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려고 교수가 우스꽝스러운 모자를 쓰고 나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해프닝도 벌어진다. ‘코드 커팅’(케이블에서 모바일, 인터넷TV로 시청자가 이동하는 것)을 설명하며 잠시 ‘만담’을 했던 정재민 교수는 “이분 진짜 KAIST 교수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는 명함을 카메라 앞에 들이밀며 ‘교수 맞다’고 해명했다. 미국의 공개 강연 테드(TED)를 비롯해 지식을 공유하는 동영상 강의는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KAIST 강의는 채팅창을 통해 실시간으로 ‘즉문즉답(卽問卽答)’까지 할 수 있다. 시청자가 “‘FUN 경영’ 중 ‘slack(느슨한)’은 회사에서 누리기는 힘든 요소 같네요”라며 의견을 제시하자 교수는 “그것을 보여준 회사를 알려드릴게요”라고 답했다. 5일까지 116시간 방송에 누적 시청자 수는 1만4295명. KAIST 경영대가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재민 교수는 “열린, 쌍방향 교육을 실험하는 장”이라고 말했다. 아직 실험에 불과하고 개선할 점도 있는 강의지만 여러 고민거리를 던져준다. 분필과 칠판만 있던 대학 강의실에 기자의 대학 시절 오에이치피(OHP)가 등장했고, 인터넷에 연결된 컴퓨터와 빔 프로젝터가 설치된 지 오래다. 그러나 ‘강의실 안’에서 교육이 이뤄진다는 것은 대학이라는 존재가 생긴 이래 변하지 않았다. 교수님의 강의노트보다 훨씬 많은, 인류가 쌓은 지식의 대부분이 손안의 스마트폰에서 검색되는 시대다. 20∼50년 뒤에는 지금과 같은 대학은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반론도 있다. 대학 강의실에서는 지식 전수뿐 아니라 ‘토론과 질문’이 이뤄지기 때문에 대학의 역할은 여전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우리의 대학 강의실에 언제 토론과 질문이 있었던가? 더구나 토론과 질문이 강의실에서 벌어진다는 것도 낡은 관념이 돼 버렸다. 우리 대학이 미래 개척에 성공할지 주목된다. 조종엽 문화부 기자 jjj@donga.com}

    • 201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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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우림 박물관장 “무덤 200기를 발굴하고도 보고서는 달랑 2장”

    “조선시대 묘제(墓制)가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는 막연한 인식이 있는데 실제론 끊임없이 변했습니다. 불교 성리학 음양론 등이 반영되고 조정의 정책과 죽음에 대한 인식 등이 계속 변했기 때문입니다.” 조선 묘제 전문가인 김우림 전 울산박물관장(55)이 최근 ‘조선시대 사대부 무덤 이야기’(민속원)를 펴냈다. 김 전 관장은 고려대박물관 학예사 출신으로 2002년 국내 최초의 모자(母子) 미라였던 파평 윤씨 미라 발굴과 후속 연구를 주도했다. 2004~2009년 서울역사박물관장을 지낸 뒤 2014년까지 울산박물관장으로 일했다. 김 전 관장이 1990년대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조선 사대부 묘제 연구는 황무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시에는 조선 시대 무덤 200기를 발굴하고도 달랑 2페이지짜리 보고서만 나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그는 조선 사대부 무덤 양식이 전기에는 ‘회격묘’, 후기의 ‘회곽묘’로 달랐다는 것을 처음 밝혀냈다. 회격묘는 땅을 파고 먼저 목곽·목관을 안치한 뒤에 땅과 목곽 사이를 삼물(三物·회, 마사토, 가는 모래를 섞은 것)로 채웠다. 후기에는 삼물로 회곽을 먼저 만들고 목관을 나중에 안치했다. 김 전 관장은 “임진왜란 이후 성곽 등을 복구하느라 회가 부족해지자 회가 덜 들어가는 방식으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묘비를 비롯한 석물 양식도 크게 변화했다. 조선 초기엔 불교의 연화화생(蓮花化生·무덤 주인이 불교의 정토에서 태어나길 소망하는 것) 사상을 반영해 비석 상부에 연잎, 하부에 연꽃을 새겼다. 김 전 관장은 “이는 중국에도 없었고 조선 초기 200년간의 무덤에서만 보인다”고 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조상의 업적을 적은 비문을 비바람에서 보호하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지붕 모양의 옥개석을 얹는 것이 일반화돼 현대까지 이어졌다. 그는 기존 학설의 오류도 지적했다.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워 묘역을 밝히는 석물)은 종1품 이상의 벼슬을 한 사람만 세울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조사 결과 정3품 이상이면 세울 수 있었다. 책은 또 왕릉 발굴 보고서의 서술 오류, 분묘 출토 미라의 생성 메커니즘 등도 소개했다. 김 전 관장은 ‘남들이 안 하는 조선 묘제 연구를 해 보라’는 대학 은사의 권유에 따라 연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30여기의 무덤을 발굴해 보고서를 냈고, 재개발과 문중의 이장 사업 등으로 파묘하는 무덤 수천 기를 조사했다. 그는 “묘제에 관한 문헌 기록이 별로 없다”며 “잘못된 주장이 최근의 연구 결과를 반영하지 않고 인터넷은 물론 학계에서도 그대로 반복되는 점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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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거석 前 전북대 총장 대학개혁 성과 담은 책 펴내

    서거석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62)가 2006년부터 2014년까지 전북대 총장(15, 16대)으로 재임할 당시 실행했던 개혁의 성과와 그 과정을 담은 책 ‘위기의 대학, 길을 묻다’를 최근 펴냈다. 서 교수는 1년 가까이 이어진 총장 공백 사태로 어수선한 당시 총장을 맡은 뒤 강력한 개혁 정책을 구사했다. 그는 재임 중 교수 승진 요건을 강화하고 교수 퇴출 제도, 우수 교수에 대한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했다. 서 교수는 책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그것을 해결한 대학을 찾아 벤치마킹을 했고, 이중 삼중으로 학내에서 논의해 검증한 뒤에 밀어붙였다”며 “혁신을 추구하면서도 원칙과 상식을 버리지 않았다”고 썼다. 전북대는 2000년대 중반 국내 대학 랭킹에서 40위권이었으나 서 교수가 총장에서 물러날 땐 10위권에 진입했다. 그는 책에서 ‘보상과 격려는 구성원을 춤추게 한다’ 등 ‘11가지 대학 경영론’을 제시했다. 특히 평생 모은 재산을 전북대에 기증한 할머니의 묘소를 총장과 장학금을 받는 학생이 함께 성묘한 사례 등을 소개하며 ‘디테일의 힘’을 중요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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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9년간의 이혼소송… 가부장제에 맞선 조선여성

    “마누라가 하늘 같은 남편한테 욕하고, 시부모에게 욕하고, 조상님께 올릴 술에다가 더러운 것 섞고, 사당에서 난리쳤어요. 마누라를 집에서 쫓아낸 지 14년입니다. 이제 이혼하게 해주세요.”(남편 유정기) “‘나쁜 년’이네. 거기다 싸우고 밤에 혼자 나갔다며? 어떤 놈한테 손목이라도 잡혔을지 누가 알아요. 아내 말은 들어볼 것도 없어요. 이혼시킵시다.”(사헌부 장령 임방) “남편 말이 사실이면 이혼이 문제가 아니라 아내를 형사처벌해야 합니다! 그래도 한쪽 말만 듣고 이혼시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아내 말은 들어 봐야죠.”(예조판서 민진후) “남편하고 사는 동안 애들을 다섯이나 낳았고, 나도 남편도 바람피운 적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노비를 첩으로 들이고 저를 쫓아낸 거예요! 남편 말은 다 거짓말이에요. 본 사람 있으면 나와! 그리고 저 밤에 혼자 안 다녔거든요?”(아내 신태영) 책이 소개한 사건 내용을 현대식으로 바꾼다면 이쯤 되리라. 충남 논산의 명문 종손 유정기는 아내와 사별한 뒤 1678년 신태영과 재혼하지만 1690년 그를 집에서 내쫓는다. 이혼은 또 별개 문제다. 숙종 30년(1704년) 유정기가 예조에 이혼을 신청하면서 9년에 걸친 조선 최대 이혼소송이 시작된다. 신태영은 영리한 여성이었다. 옥에 갇혀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음에도 논리적으로 자신을 방어한다. 숙종실록에는 “신태영이 수천 마디를 한글로 진술했는데 모두 조리가 있어서 어떤 문사가 대신 써준 것 같다”는 기록이 나온다. 신태영은 재판부 기피 신청을 하기도 하고, 남편의 ‘변태적’ 잠자리 취향을 언급하는 전략도 구사한다. 조선의 공식 기록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발견되는 것은 희귀한 일이다. 부산대 교수로 ‘열녀의 탄생’ 등을 내며 조선 가부장제의 억압을 연구해 온 저자는 축첩 문제 등에서 조선 후기 여성의 권력이 얼마나 약화됐는지를 심도 있게 재구성한다. 이 사건에서 가장 약자는 의지와 무관하게 유정기의 첩이 됐던 여자 노비일 것이다. 저자는 “노비 예일의 말과 생각은 완전히 폐기되었다. 소수자 중의 소수자였던 예일의 입장은 어디서도 고려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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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술∼술 이책]체체파리의 비법

    외계인이 인류를 멸종시키려고 ‘여성 혐오 바이러스’를 퍼뜨린다. 감염된 남성들이 여성을 학살하기 시작한다.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아내는 외계인이 내려오는 것을 목격하는데….1970년대 페미니즘 공상과학(SF)의 기수로 평가받는 저자의 단편 7개를 묶은 이 책의 표제작 내용이다. 저자는 세계적 네트워크 망과 원격 조작 신체, 여자들만 사는 세상 등을 묘사하며 성, 자아, 환경, 인간성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준다. 필명과 달리 저자는 앨리스 브래들리 셸던이라는 여성. 중견 SF 작가인 듀나는 “작가는 남성적인 톤으로 당대 여성의 분노와 고통, 두려움을 생생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를 썼다”고 평했다. 1만4800원.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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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성 독립운동가들 역사적 공로 제대로 평가 못받아

    “안경신은 십사일 오후에 형기 몇 달을 남겨놓고 출옥해 평양 신양리 오라버니 안세균 씨 집에 체류 중인데, 기미년 운동이 있은 후 상해에서 오인(五人)동맹을 맺어 남자가 믿지 못할 용기로 폭탄을 품고 국경을 넘어 들어와 평남도청에 던져 세상을 놀래게 하고 몸을 함흥으로 피하여 있던 중 만삭되어 어린애를 낳은 지 열이틀 만에 경관의 손에 잡히게 되어….” ‘평남도청 폭파범 안경신 여사 재작(再昨·그저께) 출옥’이라는 동아일보 1927년 12월 16일자 기사다. 1920년 8월 임신한 몸으로 동지들과 평안남도 도청 청사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의 사연을 다뤘다. 1일 창간 96주년을 맞는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당시 여성 독립운동가를 꾸준히 조명했다. 1928년 5월 25일자에는 조선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일본으로 폭탄을 안고 날아가겠다”며 중국 공군에서 복무하던 권기옥이 난징에서 체포된 소식을 전했다. 이 기사는 ‘전진(戰塵)의 중국 상공에 고상(고翔)하든 조선 여 조인(鳥人) 호송’이라는 제목으로 권기옥에 대해 “뛰어난 재주와 활발한 성격과 남의 혁명을 내 일로 알아 심혈을 다해 중국 비행사들에게 다대한 환영을 받던 터라더라”라며 사진과 함께 실었다. 일제의 수탈에 항거한 해녀들의 시위와 여성 노동운동도 자세히 보도했다. 1932년 1월 26일자는 일제 어업조합의 수탈에 맞서 제주 해녀 500여 명이 세화리 주재소를 습격한 사실을 다뤘고, 1931년 5월에는 ‘평양 을밀대에 체공녀(滯空女) 돌현(突現)’ 등의 제목으로 고무공장 여성 노동자 강주룡이 을밀대 위에 올라 파업을 벌였다는 내용을 이틀에 걸쳐 게재했다. 이처럼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가 있었지만 여전히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우선 국사 교과서에서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술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방원 한국사회복지역사문화연구소장이 학술지 ‘여성과 역사’에 실은 논문에 따르면 고교 국사 교과서 8종에 모두 수록된 여성 독립운동가는 유관순뿐이었다. 다른 여성 독립운동가로 차미리사 유영준 등이 나왔지만 각각 1종씩에서만 나왔다.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서훈도 마찬가지다. 국가보훈처는 2700여 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확인했지만 막상 훈포장이나 표창을 받은 사람은 270여 명에 그친다. ‘자료 부족’ 등이 주된 이유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활동이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서훈에는 폭넓은 기준이 새로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독립군의 군복을 만들고, 군수품을 나르고, 임시정부의 살림을 도맡고, 자금을 마련하고, 남성 독립운동가의 뒷바라지와 옥바라지를 했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활동은 기록이 부족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임시정부 비서장을 지낸 차리석 선생의 아내로 임시정부 요인들의 뒷바라지를 했던 홍매영 여사(1913∼1979)도 서훈을 받지 못했다. 아들 차영조 씨는 최근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가족을 돌보며 충칭에서 남편의 뒷바라지를 열심히 했다. 당시 충칭 시 경시청이 발행한 어머니 신분증에 ‘한국독립당 당원’이라고 적혀 있는데도 보훈처는 ‘구체적 활동을 증명해야만 서훈할 수 있다’고만 한다”며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으려면 일제가 (재판 기록으로) 인정해야만 한다’는 비아냥거림이 충분히 이해된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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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유럽의 승리’는 우연? 승패는 19세기에 갈렸다

    서구를 기준으로 중동(미들 이스트)과 극동(파 이스트)이라는 명칭은 있지만 반대로 ‘중서’(미들 웨스트)와 ‘극서’(파 웨스트)라는 지리 관념은 없다. 서구, 동양은 지리적 지칭이지만 사실상 우열 관계를 함축한다. 유럽은 ‘대항해 시대’와 산업혁명을 거친 뒤 한때 동아시아 일부를 포함한 세계 각지를 식민 지배했다. 왜 유럽이 승리했고 동양은 ‘먹잇감’이 되었나. ‘대(大)분기’, 즉 번영의 승패가 크게 갈라진 건 언제이고 무엇 때문일까. 유럽의 시각이 반영된 정통적 주장은 서구가 여러 면에서 일찍부터 내부에 우월한 조건을 갖고 있었고, 번영은 필연이었다고 설명한다. 유럽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오래 전부터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동양보다 높았고, 시장경제와 사유재산권을 확립했으며, 노동자의 임금이 비교적 높아 기계에 투자할 요인이 있었고, 대규모 자본을 조달하는 제도를 만들어 냈고, 헬레니즘 전통을 르네상스로 이어받아 과학혁명을 했고, 민주정치를 확립해 상업을 억눌렀던 동양과는 달랐다는 등의 주장이다. 2000년 출간되자마자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은 이 책은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한다. 유럽의 번영은 우연에 가깝고, 내부 요인보다 외부의 자원 확보 덕이며, ‘대분기’는 기존 학설보다 훨씬 늦은 19세기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시카고대 교수로 경제사 분야의 수정주의를 대표하는 캘리포니아학파의 주요 학자인 저자는 1750년경 영국과 중국의 주요 지역은 경제 수준에 별다른 격차가 없었다고 설명한다. 농촌의 생산력과 공업, 시장의 효율성, 사람들의 열량 섭취량, 기대수명 등에서 우열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1인당 연료 공급량은 중국이 유럽보다 많았다. 그러나 19세기 들어서 동아시아는 인구 압력을 견뎌 내지 못해 생태적 위기를 맞았다. 인구가 급증하자 숲이 파괴됐고 토양이 침식됐다. 양쯔 강 삼각주 지역은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한 곳이었지만 자원 부족을 화석 에너지원 사용으로 해결하기에는 석탄 매장량이 적었고, 채굴 비용도 비쌌다. 반면 영국은 달랐다. 같은 위기에 처했지만 값싸게 캘 수 있는 노천 탄광이 널려 있었다. 이런 자연조건은 필연이 아니라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영국은 신대륙에서 식량과 자원을 수급해 생태적 압박을 이겨 냈다. 중국은 그와 같은 배후지를 만들지 못했다. 책은 서유럽과 중국, 영국과 중국의 양쯔 강 삼각주 지역을 비교한다. 발전 정도가 다양한 유럽 전체와 중국이라는 국가 하나, 유럽의 국가 하나와 동아시아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했던 특정 지역을 비교하는 것이 온당치 않다는 반론도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18세기 중국 강남 지방은 러시아를 제외한 다른 유럽 국가보다 인구가 많았고, 경제적 기능은 유럽에서의 영국 역할과 비교할 수 있다고 말한다. ‘16∼18세기 아시아가 유럽 못지않은 경제 발전 과정에 있었다’는 이 책의 요지는 일단 기분 좋다. 그러나 서구의 ‘내재적 발전론’(유럽 중심주의)을 비판하며 아시아의 ‘자본주의 맹아’를 주장하는 듯한 저자의 연구는 여전히 서구적 발전론의 틀 안에 있다. 경제사 연구자로서는 당연한 것일 수 있겠다. 내용이 방대하고 다소 복잡해 책장이 넘어가는 데 오래 걸리지만 세계적 주목을 받은 저작을 공들여 읽는 일에는 그만한 쾌감이 있겠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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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술∼술 이책]에논

    미국 뉴잉글랜드에 사는 찰리 크로스비는 열세 살 딸 케이트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전화를 받는다. 크로스비는 진통제를 남용하고 술을 마시며 슬픔을 잊으려 하지만 약에 취해 딸의 환영을 보는 등 괴로움은 더욱 심해진다. 1년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가 딸의 무덤가에 선 그는 케이트를 기억하고 있는 또래 소녀들을 만나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기 시작한다. 데뷔작 ‘팅커스’로 2010년 퓰리처상을 받은 작가는 극복할 수 없는 상실의 고통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섬세하게 소설로 풀어냈다. 1만4000원.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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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쁨-평화가 온세상에 가득하길”… 염수정 추기경 부활절 메시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사진)은 부활절(27일)을 앞둔 21일 ‘희망과 사랑의 빛을 세상에 비추자’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염 추기경은 “부활의 빛과 기쁨, 평화가 한반도 방방곡곡과 북녘의 동포들, 나아가 온 세상 곳곳에 가득하기를 바란다”며 “북한의 핵 문제가 잘 해결되고, 남북 관계도 소통과 협력 관계로 변화돼 한반도에 평화가 넘치길 기도드린다”고 밝혔다. 개신교계도 이날 잇달아 메시지를 발표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김영주 총무 명의의 입장에서 “이 시대 주님의 양은 누구이며, 부활하신 예수께서 가장 먼저 찾아가신 갈릴리가 어디인지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인 이영훈 목사는 “우리의 삶 속에서 부활의 생명이 나타나야 한다”며 “우리 주변의 약한 자, 소외된 자, 고통 속에 있는 자를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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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적 소명 다한 내재적 발전론, 식민사학과 쌍둥이”

    《 한국사학계가 한국사학의 ‘50년 기둥뿌리’를 스스로 뒤흔들고 있다. ‘내재적 발전론’ 얘기다. ‘세계사 발전의 보편성 속에서 한국사·민족사의 발전 양상을 체계화한다’는 내재적 발전론은 1960년대 이후 식민사학 극복의 일관된 방법론이었고 사실상 근현대사뿐 아니라 전체 한국사 연구와 서술의 근간이 돼 왔다. 국내 최대 규모 한국사 연구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는 계간지 ‘역사와 현실’ 100호 기념 기획발표회 ‘한국 역사학의 위기-진단과 모색’을 19일 열었다. 최종석 동덕여대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내재적 발전론을 토대로 한 연구 성과의 한계와 문제점이 드러나면서 한국사학계가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 역사적 소명 다해 내재적 발전론에 대한 비판은 10여 년 전부터 종종 제기돼 왔다. 한국역사연구회가 이번 발표회를 통해 전면적인 문제 제기에 나선 것은 식민지 근대화론이나 재야학계의 낙랑군 요서설 등 상고사학, 고교 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논란 등 위기에 몰린 한국사학계에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내재적 발전론은 식민사학 극복이라는 과제에서 비롯됐다. 일제의 식민사학은 반도 국가인 조선의 운명이 외부에서 결정된다는 ‘타율성론’과 조선은 고대부터 발전 없이 정체된 사회라는 ‘정체성론’으로 요약된다. 한국사학계는 1960년 4·19혁명이 촉발한 민족주의 바람 속에서 식민사학 극복을 과제로 내세웠고 조선 후기 경영형 부농이 등장해 자본주의 이행의 싹이 생겼다는 ‘조선후기농업경제사’(김용섭)를 비롯해 새로운 연구 결과가 줄을 이었다. 내재적 발전론은 이후 1980년대 민중적 민족주의와 결합하며 민중사학으로도 이어졌다.○ 목적론 한계 넘어서야 최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의 ‘내재’와 ‘발전’이 모두 비판의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내재’는 한국사에서 외부 충격과 영향, 문화 교류를 소홀하게 취급했다. ‘발전’에 대한 비판은 더 근본적이다. 내재적 발전론이 식민사관의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을 반대로 뒤집어놓았을 뿐 인식의 틀은 같다는 비판이다. 일본인들이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을 수용해 조선을 식민화하면서 적용한 목적론, 즉 근대 국민국가로의 발전이 역사의 방향이라는 인식에 여전히 갇혀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은 역사의 주체를 ‘네이션’(민족, 국가)으로 한정하고 근대적 가치를 과거 역사에 투영시킨 문제가 있다”며 “서구적 발전론을 탈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한민족이 과거 만주와 중국 북부에 거대하고 강력한 국가를 이뤘다는 상고사 인식도 이 같은 인식과 무관치 않다고 분석한다. 그는 “민족의 발전 정도와 주체성에 집착하는 인식 틀에서는 과거에도 일류 민족이었다고 해야 열등감이 소멸된다”며 “상고사에서 일류 민족을 찾으려는 열망이 분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인 이지원 대림대 교수는 “1990년대 세계화와 지역화를 조화시키는 문제가 대두됐지만 국사학계가 (민족, 국가의 틀에 갇혀) 갈 길을 못 잡은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 지역사 등 대안 제시 내재적 발전론 ‘이후’에 대한 방향 모색은 이제 시작 단계다. 토론자로 나선 하일식 연세대 교수는 “연구자의 가치와 희망을 과도하게 투영하거나, 새로운 사료를 통해 변화를 보면 너무 쉽게 발전이라고 규정하는 데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며 “변화하지 않는 것의 이유와 구조적 배경을 질문하는 등의 방법론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우 서울대 HK연구교수는 “내재적 발전론이 시대적 맥락에서 주목받은 것처럼 생태, 평화, 소수자 인권 등의 가치를 역사학이 수용하고 연구 성과로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발표자로 참여한 신주백 연세대 교수는 ‘지역사’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그는 “국가 대신 지역을 중심으로 시대와 주제를 구분하고, 그 시야 속에서 동아시아 등의 역사를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이익주 서울시립대 교수는 “대학 역사교육의 커리큘럼을 재검토하는 공동 연구를 제안한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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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모호한 경계… 어디까지가 사이보그인가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지 얼마 안 된 요즘 ‘포스트휴먼 시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이 책의 부제는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최근 가장 유명한 사이보그는 가슴 중앙에 아크 원자로를 심은 영화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일 게다. 거리에 아이언맨이 나다니는 세상은 아직 아닌 이상 ‘탈인간시대’를 고민하는 것은 호들갑 아닐까? 저자가 말하는 사이보그의 범주는 생각보다 넓다. 책은 사이보그를 ‘자연적 요소와 인공적 요소를 하나의 시스템 안에 결합시킨 자가 조절 유기체’로 정의한다. 저자에 따르면 낙마사고를 당해 전동침대와 휠체어 등 기계장치의 도움을 받아 살았던 영화배우 크리스토퍼 리브(‘슈퍼맨’의 그 배우다)는 사이보그다. 심장 질환을 앓는 환자가 심장박동 조절장치를 이식받았다면 그도 사이보그다. 저자는 이 같은 정의를 바탕으로 사이보그가 가져올 수 있는 정치, 윤리, 문화적 문제를 고민한다. 미래 사이보그의 시민권 문제도 그중 하나다. 저자는 ‘튜링 테스트’(기계가 인간과 비슷한 수준으로 대화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지능을 가졌는지 판별하는 실험)를 거쳐 정치 공동체의 담론에 참여할 수 있다면 사이보그를 시민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너무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시민권 문제도 그렇다. 훼손된 신체 기능을 보완한 정도의 인간이라면 시민권이 있는 게 당연하고, 자의식이 있고 시민권을 논의할 정도로 지능이 높은 기계 중심 사이보그라면 아직 영화 속의 일이다. 사이보그를 너무 폭넓게 정의한 것부터가 문제다. 저자의 논지대로라면 독감 백신을 맞아도 사이보그이고, 라식 수술을 받았어도 사이보그다. 책은 사이보그라는 명명에 너무 신경 쓰지 않고 읽을 때 오히려 재미있는 부분이 많다. 향정신성 약물의 증가, 인공 달팽이관이나 음경을 비롯한 각종 인공 장기 이식, 이종 장기 이식, 인공수정, 유전공학 치료 등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았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생물과 무생물, 사람과 기계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고 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어떤 도구 기계 사이보그를 보유해야 하며, 어떤 것을 축출하고 또 만들지 않아야 할지 판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캐릭터가 떠오를 때가 있다. 저자는 아마 다소 수다스럽고, 본인이 위트가 넘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 같다. 저자는 ‘감사의 글’에 “모든 오류가 다 나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세가 나의 것이므로, 당연히 그 책임은 내가 질 것이다”라고 썼다. 책에 종종 등장하는 이런 말투가 영어로는 재미있을 수도 있겠다. 문장이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것은 아쉽다. 번역 탓이라기보다 저자의 원래 글이 다소 산만한 편인 것 같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지만 바쁜 이라면 책 앞부분 해제를 꼼꼼히 읽어봐도 좋을 것 같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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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술∼술 이책]당신이 남겨두고 간 소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에 점령당한 프랑스의 작은 마을. 호텔을 운영하던 소피 르페브르 부인은 독일 장교들의 저녁을 준비하는 일을 떠맡게 된다. 독일군과 싸우고 있는 남편의 소식은 거의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 남편이 그려준 자신의 초상화에 새로 부임한 점령군 사령관이 매력을 느낀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 독일군 몰래 돼지 키우는 일을 사령관에게 들키지만 사령관은 왠지 이를 눈감아준다. 저자는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미 비포 유’의 작가다. 로맨스에 추리적 요소가 섞였고, 긴장감 있는 장면 묘사와 군데군데 숨은 위트가 매력적이다. 1만5000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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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판 커버스토리]“알파고, 나랑 붙자!”

    프로기사인 손근기 5단(29)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한창일 때 어머니에게서 깜짝 놀랄 만한 부탁을 받았다. 바둑을 가르쳐줄 수 없느냐는 얘기였다. “제가 바둑 배운 지 20년이 넘었고 입단한 지 13년이 됐는데 그동안 바둑 두는 아들에겐 정성을 쏟으셔도 바둑 자체에는 한 번도 관심을 보인 적이 없는 어머니가 처음으로 그런 말씀을 하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세돌이 형과 알파고 대결이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대결 덕에 바야흐로 바둑 붐이 일고 있다. 바둑을 전혀 몰랐던 사람들은 바둑을 알고 싶어 하고, 바둑을 조금이라도 알던 사람들은 다시 바둑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대결 5국은 지상파 3사를 비롯해 방송사 10곳이 생중계를 했으며 승부의 고비였던 오후 4시 반경 한 포털사이트의 동시접속자 수는 45만 명을 넘었다. 이쯤 되면 올림픽이나 월드컵 못지않은 열기다. 바둑 책과 사이트, 학원 등 모든 분야에서 폭발적인 관심 증가가 피부로 느껴진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9∼16일 바둑 책 판매량은 전주보다 97% 상승했고 특히 이 9단의 자서전 ‘판을 엎어라’는 대결 초기엔 하루 200∼300권 나가다가 최근엔 1000권씩 팔리고 있다. ▼ “바둑의 매력 재발견!”… 학원 강습문의 10배로 늘어 ▼바둑 붐이 인 것은 70년 한국 현대바둑사에서 두 차례 있었다. 1980년 일본에서 조치훈 9단이 명인을 쟁취했을 때와 1989년 조훈현 9단이 녜웨이핑 9단을 3-2로 물리치고 응씨배에서 우승함과 동시에 이창호 9단이 혜성같이 등장했을 때였다. 조훈현 9단이 응씨배에서 우승한 뒤 귀국했을 때는 김포공항부터 한국기원(당시 서울 종로구 관철동)까지 카퍼레이드를 하기도 했다. 바둑계는 이번이 앞선 두 번보다 더 강한 ‘세 번째 바둑 열풍’이라고 반기고 있다. 이세돌 9단-알파고의 최종 대국이 끝난 다음 날인 16일 찾은 서울 성동구 왕십리로에 있는 ‘이세돌 바둑연구소’(연구소)는 바둑 열기로 뜨거웠다. “학원 강습 문의가 평소보다 10배는 많은 것 같아요.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연구소 김정열 대표(53)는 전화를 받느라 바빴다. 그는 이번 대국으로 바둑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게 피부로 느껴진다고 했다. 연구소에는 이 9단과 형 이상훈 9단이 이사로 있다. 형제는 바둑도장을 오래 꾸려온 김 대표와 함께 2014년 12월 문을 열었다. 연구소 원생은 50여 명으로 대부분 프로기사 지망생들이다. 이세돌 9단은 경기가 없을 때면 주 1∼3번 예고 없이 연구소에 온다. 연구소 사범인 류동완 3단(27)은 “이 9단이 바둑판 앞에 앉을 때면 원생 수십 명이 몰려들어 그를 둘러싸고 한마디 한마디를 경청한다”고 말했다. 형 이상훈 9단은 보통 오후 1시부터 연구소에 나와 끝날 때까지 원생들을 지도한다. 그는 “어린이들이 컴퓨터 게임에 빠졌다고 걱정하는 부모가 많은데, 바둑은 3개월만 배우면 게임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재미있어 한다”고 했다. 일반인에게 바둑을 가르치는 학원에 대한 관심도 크게 늘었다. ‘꽃보다 바둑’은 여성 프로기사인 이다혜 4단, 문도원 배윤진 김미리 3단, 김혜림 2단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문을 연 바둑 학원이다. 이 4단은 “최근 전화와 블로그를 통해 바둑을 배우고 싶다는 문의가 10배쯤 늘었다고 보면 된다”며 “특히 젊은 여성의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바둑은 보통 남성들의 오락으로 알려졌지만 ‘꽃보다 바둑’이 최근 새로 만들 예정인 입문반엔 정원 12명 중 11명이 여성이다. 이 4단은 “지난해 드라마 ‘미생’과 올해 극중 바둑 천재 최택(박보검)이 나온 ‘응답하라 1988’을 통해 젊은 여성들의 바둑 관심도가 서서히 높아지고 있었는데 이번 대결로 폭발한 것 같다”며 “인터넷에서 ‘수읽기에 집중하는 이 9단의 표정이 섹시하다’ 등의 글을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바둑 사이트도 접속자가 폭주하고 있다. ‘사이버오로’의 경우 하루 평균 동시접속자 수가 대결 전보다 40% 가까이 늘었고 회원 가입도 3배 이상 늘었다. 타이젬의 경우도 동시접속자와 회원 가입이 큰 폭으로 늘었을 뿐 아니라 추가 서비스인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은별’의 이용자도 크게 늘었다. 이 같은 열풍에 한국 바둑의 핵심 축인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는 고무된 상태다. 대한바둑협회 박장우 사무처장은 “유치원 바둑 강의 지원 사업,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의 바둑 수업 개설, 바둑 특성화고 추가 설립 등 지원책을 실행하고 있으며 바둑 인구 확충에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둑 관계자들은 바둑 중흥을 위한 인프라가 현재 너무 부족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우선 이번 대결 이후 바둑을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딱히 적절한 대답을 해주기가 쉽지 않을 정도다. 최근 일부 프로기사들이 세운 학원 외에는 성인이 바둑을 배울 곳이 마땅치 않다. 요즘 세대에 맞는 바둑용 교재나 전문적인 바둑 강사도 부족하다. 김만수 8단은 “바둑은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어서 초반에 잘 이끌어주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재미있는 동영상이나 게임 등을 통해 바둑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는 교재, 강의 등을 시급히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기원이 그동안 프로 기전과 아마 고수 대회 위주의 행정을 펼치다 보니 아마 바둑계 전반의 진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바둑 인구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다. 한때 1000만 명까지 헤아리던 바둑 인구는 현재 50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바둑계 내부에선 실제 바둑에 관심 있는 인구를 200만 명 정도로 본다. 특히 1997년 체스에서 딥블루가 세계 1인자 가리 카스파로프에게 이긴 뒤 잠시 체스 붐이 불었지만 이후 체스 인기가 크게 떨어진 점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수현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는 “한국기원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바둑 붐을 타고 바둑 인구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며 “바둑에 대한 해외의 관심도 높아진 만큼 바둑을 한류 상품으로 키우는 것도 생각해볼 때”라고 말했다.서정보 suhchoi@donga.com·조종엽 기자}

    • 201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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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서까지 읽고 쓰고… “우리 고전 세계에 알리고 싶어요”

    한문 고전과 스무 살 꽃처녀. 통념으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대학원생 등 전문 고전번역자가 되려는 30∼50대 학생이 대부분인 한국고전번역교육원에 지난달 김소은 씨(20)가 역대 최연소로 입학했다. 최근 서울 은평구 은평로 고전번역교육원에서 만난 그는 “한문은 압축적이어서 매력적”이라며 “더 빨리 많이 배워서 즐길 수 있는 수준에 이르고 싶다”고 말했다. 고려대 한문학과 2학년인 그는 흘려 쓴 글씨체인 초서(草書)를 어느 정도 읽고 쓰는 실력을 이미 지녔다. 묵향이 은은한 집에서 그는 성장했다. 김 씨의 부친은 2010년 제1회 원곡서예학술상을 받은 서예가 김병기 전북대 중문과 교수(61)다. 김 씨는 아버지가 한문 서예를 하느라고 바닥에 펼쳐 놓은 종이 위에서 공기놀이를 하며 자랐다. 김 교수는 통화에서 “썩 잘 쓴 작품이 망가져도 아이들이 한자와 고전에 관심을 갖도록 내버려뒀다”고 했다. 딸은 그런 아버지가 초서를 쓸 때 “붓이 휘청휘청하는 게 정말 멋있다”며 자연스레 심미안도 생겼다고 했다. 김 교수는 “학교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사람이 되고, 스스로 하는 공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사자소학이나 명심보감만이라도 읽히고 고전의 맛을 느끼게 해 주면 아마 생활지도를 따로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집안 분위기 때문인지 김 씨의 언니는 중국어 교사, 오빠는 동양 고미술품 경매 관련 일을 한다. 김 씨가 좋아하는 우리 고전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다. 그는 “문장이 담담한데도 나라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이 뭉클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김 씨가 고전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초등학교 4, 5학년 때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살면서 우리 문화를 중국의 아류라고 생각하는 중국 학생들을 보고 나서다. 김 씨는 “한문을 잘 읽어야 고전 속에서 우리만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아직 아는 게 부족하지만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이 담긴 고전을 번역해 중국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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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 3人이 본 ‘알파고 이후’

    《 ‘인간보다 뛰어난 인공지능(AI)는 우리를 지배하게 될까.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지난 일주일간 구글의 AI인 알파고는 한국 사회에 이 같은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이른바 ‘알파고 쇼크’로부터 인간과 AI가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국내 석학들로부터 들어봤다. 》 ○ 정재승 KAIST 교수 “이세돌 1승은 인간지성의 위대함… 뇌과학이 AI연구 큰 흐름될 것”“알파고의 결과값대로 무표정하게 바둑돌을 놓는 아자 황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교수(사진)는 15일 동아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인간의 뇌를 모방한 알파고가 인간과 맞대결을 펼치는 걸 넘어서 마치 인간을 조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며 소회를 밝혔다. 정 교수는 “인간보다 뛰어난 기계의 등장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라며 운을 뗐다. 이미 자동차나 굴착기 등이 인간의 느린 속도나 부족한 힘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했고 인간이 통제권을 쥐고 있었다. “이번에 알파고는 통제권의 대부분을 쥐고 있었어요. 오히려 인간을 가르치는 듯한 장면도 연출됐죠. ‘실수’라고 했던 수들이 이후 묘수로 밝혀진 사례처럼 말입니다.” 정 교수는 인간의 뇌에서 실마리를 찾은 것이 알파고의 우승 비결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뇌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데미스 허사비스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CEO)가 알파고에 인간의 직관과 추론 능력을 더했다. 이 시도는 21세기 AI 연구를 지배하는 흐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정 교수는 “이세돌 9단이 거둔 1승에서 AI의 미래를 발견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9단은 불과 세 경기 만에 상대를 파악하고 허점을 간파했다. 인간 지성의 위대함이다”라고 말했다. ○ 배철현 서울대 교수 “인공지능이 일부 일자리 대체… 무한한 도전은 여전히 사람몫”“인간은 도구를 만들고 불을 사용하고 농업을 하고 문자를 사용하면서 오늘날까지 왔습니다. 이런 도전과 혁신이 인간을 오늘날의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인공지능도 그러한 혁신의 계기가 될 겁니다.” 신과 인간의 존재를 성찰한 ‘신의 위대한 질문’ ‘인간의 위대한 질문’을 최근 낸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54·사진)는 1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인공지능이 수많은 전통적 일자리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인간의 노동과 직업의 의미를 새롭게 정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인간의 창의성을 강조했다. 그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과 창조가 인간을 인간이게 만든다. 이는 인공지능은 하지 못하는 일”이라며 “앞으로 인간은 창의적인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 교수는 또 “이미 기계가 신체 기능 일부를 대체하는 등 기계와 공존하는 시대에 들어섰다”면서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한국 사회가 기존의 것을 잘 적용하는 데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길로 나아가는 일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다만 배 교수는 인공지능에 대한 최근의 공포는 다소 지나친 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알파고는 아직 경우의 수를 잘 따지는 성능 좋은 전자계산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 송해덕 중앙대 교수 “현 교육체계로는 창의성 못키워… 교과 중심서 역량위주로 바꿔야”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 이후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송해덕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47·사진)는 1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9단에게는 창의력, 융합능력, 실패에도 포기하지 않는 반성적 사고가 있었다”며 “현재의 교육 시스템에서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역량을 길러줄 수 없다”고 진단했다. 송 교수는 교육과정을 교과 중심에서 역량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는 대안을 제시했다. 현 교육과정은 학생이 국어 영어 수학 등을 배우면 나중에 창의력, 협동심, 소통능력 같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송 교수는 “‘어떤 역량을 키우기 위해 A과목의 무슨 영역을 배워야 한다’는 식으로 교육과정을 바꿔야 한다”며 “핀란드도 창의성, 비판적 사고, 협동심,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네 가지 역량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직업의 전문성 개념이 바뀔 것이라고도 전망했다. 송 교수는 “약사 자격증이 있다고 무조건 전문가라고 할 수 없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조제 능력 외에 환자와 교감할 줄 아는 능력도 키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 반복 업무를 인공지능이 대체한다면 인간에게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 공감 능력 등 인성이 중요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201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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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조종엽]AI에게 외교를 묻는다면

    연재 중인 네이버 웹툰 ‘나이트런’은 인간들이 우주를 배경으로 괴수의 공격에 맞서는 얘기다. 괴수와 싸웠던 ‘기사단’ 체제가 혼란에 빠지자 ‘신(新)연맹’이 떠오르고, 두 세력은 세계대전을 벌인다. 그림체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거대 서사와 공상과학(SF)물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자신 있게 권할 만한 작품이다. 흥미로운 것은 만화에 등장하는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무기 ‘스퀘어 오브젝트’다. 공리주의에 바탕을 두고 작동하는 이 인공지능은 최종 피해 규모 최소화를 목표로 민간인이 죽더라도 괴수를 향해 폭탄을 날리도록 설계됐다. 기상 예보, 행성 개조에 활용될 뿐 아니라 정책 제안 능력까지 가졌다. 만화 속 인공지능에 미국 중국의 지역 내 경쟁, 식민 지배를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재군비에 나서려는 일본 사이에서 우리가 취할 외교정책을 물어보면 뭐라고 답할까? 피도 눈물도 없는 이 인공지능이라면 아마 현실주의적 입장에 가까우리라. 최근 발간된 책 ‘외교 상상력’(김정섭 지음·MID)은 “일본의 정치군사적 역할 확대에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고 말한다. 동북아 안보의 최대 불확실성은 존재감이 커진 중국이고, 일본의 역할 확대가 지역 내 힘의 균형을 맞출 수 있다는 얘기다. 책은 “다만 한일 안보 협력이 중국 대(對) 미일의 견제구도에 종속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중국 전국시대의 합종연횡책(合從連橫策)과 비교하면 이해가 쉽겠다. 대체로 진나라가 급부상한 상황에서 나머지 여섯 나라가 세로 방향으로 연합해 진나라에 맞서자는 게 합종책이고, 진나라와 가로 방향으로 힘을 합쳐 다른 나라를 공격하자는 게 연횡책이다. 합종책이 실패하자 나머지 국가들은 진나라에 의해 멸망당한다. 국제정치학의 동맹 이론도 연횡보다 합종 쪽으로 기운다. 강국이 등장하면 비교적 약한 주변국들이 뭉쳐 견제하며 ‘세력균형(밸런싱)’을 이루는 게 자연스럽다는 얘기다. 강국에 영합하는 ‘편승(밴드왜거닝)’ 전략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강국의 전횡에 대처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는 탓이다. 지난해 말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를 인터뷰했을 때 그는 “동북아 평화를 위해 한일 간 안전 보장과 군사적 협력을 포함한 큰 평화 시스템의 구축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아시아여성기금’ 이사로 일해 논란도 있는 인물이지만 평화주의자로 살아온 그의 입에서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강조하는 듯한 얘기가 나왔을 때는 좀 의아했다. 아마 이 같은 맥락에서 한 말일 것이다. 만화 ‘나이트런’의 주인공은 인공지능 무기를 두고 “저건 기계일 뿐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야. 나아지기 위해 변해야 하는 것도 (인간이야)”라고 말한다. 만화 속 인공지능이 실재한다고 해도 일제의 포학을 겪은 한국인의 역사와 감정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리와 역사적 정의의 실현을 조화시키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리라. 조종엽 문화부 기자 jjj@donga.com}

    • 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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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술∼술 이책]삶의 끝에서

    “저는 지금 길을 떠나려 합니다. … 여러분이 지금 어디 사는지, 혹시 내게 하룻밤 소파를 내어줄 수 있는지 알려주세요.” 미국 마이애미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다 2006년 가을 뇌종양 선고를 받고 투병하던 저자는 2012년 이 같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자신이 제자들을 잘 키워온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이틀 만에 50개 도시에 사는 제자들이 답해 왔고 저자는 101일간 미국 전역에 흩어져 사는 75명의 옛 제자를 찾아가 만난다. “숨이 멎는 그날까지, 나는 사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마지막 모습은 사람이 죽음을 앞두고도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듯하다. 1만3800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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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격동의 근현대사, 관류하는 6개의 키워드는?

    사과라는 이름이 없다 해도 사과라는 과일은 존재하지만 민주주의라는 개념 없이 민주주의 제도가 운영될 수 있을까? 비교적 안정적 질서를 구가하다가 19세기부터 모든 분야의 급변을 겪은 동아시아에서 각종 정치, 철학적 ‘개념’의 실체를 따지는 일은 중요하다. 책은 이용후생, 철학, 자강, 공화, 민주주의 등 6가지 개념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맥락으로 사용돼 왔는지 추적한다. 역사학자 6명이 개념 하나씩을 맡아 썼다. ‘이용후생’ 하면 흔히 박지원 등 북학파 실학자를 떠올리지만 연원은 유교 경전인 서경(書經)이다. 신하 우(禹)가 순(舜)임금에게 “정치를 잘하고(선정·善政) 백성을 잘 기르면(양민·養民) 백성들의 도덕심이 높아지고(정덕·正德) 물화가 넉넉해지며(이용·利用) 삶이 윤택해진다(후생·厚生)”고 아뢴다. 서경에는 이용, 후생과 정덕이 같은 범주에 놓여 있다. 성리학은 정덕을 기본에 뒀지만 실학자들은 이용과 후생을 묶어 강조했다. 정조 때가 지나며 사용이 뜸했던 이용후생은 대내외 격변을 맞은 고종 때 다시 등장하고, 20세기 들어 ‘주체성 있는 근대’의 싹으로 다시 조명됐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이후 ‘민족적 근대’를 우리 역사에서 실증하려던 학자들의 활약에 힘입은 것. 저자는 “박지원이 살아 있다면 정덕 개념을 불러내 이용후생만을 강조하는 현대를 비판할 것 같다”고 말한다. 헌법 제1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제정한 임시헌장 제1조를 계승한 것. 한일강제병합으로 대한제국이 사라진 지 불과 9년 지난 시점에 ‘대한제국 망명정부’가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생긴 것은 사실 놀라운 일이다. 3·1운동 당시 여러 전단에 등장하는 임시정부안도 모두 공화제를 전제로 했다. 학자들은 1907년 안창호 등이 결성한 신민회에서 그 뿌리를 찾는다. 독립협회까지만 해도 대체로 군주권 제한과 의회 설립을 골자로 하는 입헌군주제를 지향했다. 신민회는 공화제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국민국가’와 ‘국민주권’을 주장했다. 이후 1911년 중국에서 청 왕조를 무너뜨린 신해혁명, 1917년 해외 독립운동 세력의 ‘대동단결선언’ 등을 거치며 공화제가 대세가 된다. ‘아메리카’가 여타 개념에 병렬돼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는 미국이 ‘우리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상상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너머 아스라이 존재하는 모호한 나라였던 미국이 광복을 맞은 뒤 조선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됐다는 것. 저자는 해방군 미군에 대한 환호, 군정의 실정에 대한 절망, 6·25전쟁의 혈맹, 공중 폭격으로 인한 공포, 물질문명에 대한 양면적 인식 등 미국이 한국인의 내면에 맺은 심상의 변화를 좇는다. ‘개념’이라는 말 때문에 얼핏 딱딱한 내용일 것 같지만 저자들이 대중 교양강좌를 바탕으로 쉽게 쓰겠다고 마음먹고 낸 책이어서 책장이 쉽게 넘어간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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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국 교수 “내 主관심은 형법 연구… 정치에 참여할 뿐 전업은 없다”

    《 평소 억울할 것 같아서 만나자고 했고, 만나 보니 억울해 보였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51) 얘기다. 2003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학문으로 평가받고 싶다”고 했던 그는 여전히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외모로 더 회자된다. 4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그를 만났다. 》―어떻게 지내나. “법철학자 아이리스 영의 ‘정의와 차이의 정치학’을 번역 중이고, 책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의 개정판을 준비하고 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로스쿨이 내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하겠다고 해 보완 중이다. 박사과정 학생 13명을 지도하고 있다. 벌여 놓은 게 많다.” ―일과는…. “오전 9시부터 오후 8, 9시까지 강의가 없으면 연구실에서 논문과 책을 읽고 쓴다. 단순한 삶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하루에 얼마나 하나. “한 30분? 짬짬이 한다. 트위터는 1년에 반 정도는 쉰다. 요즘은 페이스북에 별생각 없이 쓴 글도 기사화되니 조심스럽다. 나도 공개 일기장 같은 공간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남 욕도 하고.” ―페이스북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계도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고 썼다. “비상 상황에서 정당에 계몽 절대군주가 영입돼 비상한 정치효과를 내고 있다. 정상은 아니다.” ―본인 연구로 뭔가 달라졌나. “2005년 ‘위법수집…’ 내고, 2007년 위법수집 증거를 배제하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2000년 ‘남편의 아내 강간이 성립한다’는 논문을 냈고, 2013년 이를 인정하는 대법원 판례가 나왔다. 내 연구 방법론은 헌법 정신, 사회과학, 국제인권법에 기반을 두고 형법을 재해석하는 것이다. 소수의견을 내고 5, 10년 뒤 법과 판례가 바뀌는 일이 적지 않았다.” ―아예 국회의원이 돼서 법을 바꾸는 게 빠르지 않나. “선출되는 사람은 유권자를 고려하기 때문에 자기 발언을 규제할 수밖에 없다. (선거에 나가면) 학문적 소신을 부분적으로 접어야 한다.” ―소신을 안 접으면 되지 않나. “맞는 말인데, 당선되면 달라진다. 정치의 주 관심은 내 형법 연구 같은 게 아니다. 나도 전업(정치)을 하게 되면 관심이 달라질 것이다. 형법 연구가 내 역할이다. 대학 연구실과 여의도는 협업이 필요하지만 분리될 필요도 있다. 정치는 중요하지만 다는 아니라는 게 소신이다.” ―지난해 쓴 책에서 “(선거에서) 후보로 거론될 때마다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분명히 거절했다”고 했다. 준비되면 출마할 수 있다는 뜻인가. “2017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를 위해 다시 정치에 개입할 것이다. 나는 정치 참여를 해 왔고, 앞으로도 할 거다. 그러나 전업(정치인)할 생각은 없다. 정치인은 조기축구회, 초중고 동창회 가고, 하루저녁에 약속 5, 6개 잡으면서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들과 벌거벗고 호흡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나중에 정치인의 능력이 생겼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지 않나. “그럴 확률은 0.001%도 아니고 0%다.” ―출마는 영원히 안 한다는 얘긴가. “그리 생각해도 상관없다.” ―대중을 만나는 게 문제라면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하면 되지 않나. “비례대표도 출마다. 나는 그 위에 올라탈 생각이 없다.” ―폴리페서라는 지적은 어떻게 받아들이나. “교수의 정당 가입과 정치활동은 법으로 보장된다. 나는 당원도 아니고 휴직도 안 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은 방학 때 했다.” 조 교수가 참여적 지식인인지, 폴리페서인지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다만 한 조사에서 2002∼2012년 그의 발표 논문 인용횟수는 법학분야 1위였다. 조 교수는 “바깥의 환호에 빨려들기보다 내면의 동력과 호기심에 충실해야 성공한다고 본다”고 했다.:: 조국 교수 약력 ::1986년 서울대 법대 졸업1993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 사건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국제사면위원회 양심수 선정1997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법학박사2001년 서울대 법대 교수2007년 국가인권위 비상임위원, 대법원 양형위원2012년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위한 국민연대’ 상임대표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혁신위원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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