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승무원이 기내에서 쏟은 라면 때문에 화상을 입은 승객에게 항공사와 승무원이 1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동부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강화석)는 17일 30대 여성 장모 씨가 아시아나항공과 승무원 A 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 측은 공동으로 1억862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장 씨는 2014년 3월 인천국제공항에서 프랑스 파리행 아시아나항공기 비즈니스석을 타고 가다 그릇에 담은 라면이 몸에 쏟아져 아랫배와 허벅지, 생식기 등에 2, 3도 화상을 입었다며 2억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장 씨는 “기내에 의사가 있는지 찾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화상용 거즈 등 응급처치 의약품도 갖추고 있지 않아 연고와 봉지얼음 등으로 버텨야 했다”고 주장했다. 또 병원에서 10년 이상 피부이식수술을 받아도 완전히 회복하기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고 주요 부위 안쪽에도 화상을 입어 임신과 출산이 어려워졌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측은 “장 씨가 라면그릇을 올린 쟁반을 실수로 쳐서 라면이 쏟아졌다. 기내에 있던 의사에게 부탁해 적절한 응급처치를 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병원에 장 씨의 신체 감정을 의뢰하고 실제 여객기에서 현장 검증을 하는 등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경찰이 국가정보원 대신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방안이 추진되자 일선 경찰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수사역량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대공수사권을 넘겨받을 경우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다. 국정원 대공수사요원 중 일부가 경찰 간부로 옮겨올 계획에 대한 부정적 반응도 나온다. ‘이질감’이 있는 두 조직 출신이 상하관계를 구성해야 하는 ‘불편한 동거’에 대한 걱정이다. 대공수사 독점으로 경찰 위상이 향상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다. 대공수사는 고도의 전문성과 오랜 경험,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등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를 필요로 한다. 국정원은 대공수사 경험이 풍부한 전문 요원들을 양성했다. 하지만 전국 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를 제외하고 일선 경찰서의 보안담당 경찰관들은 사실상 대공수사 업무에서 손을 뗀 지가 오래된 상황이다. 대부분 탈북자 관리나 첩보 수집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대공수사에 필요한 수단도 미흡하다는 게 경찰관들의 걱정이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간부는 “감청 등 수사에 필요한 법원의 영장을 확보하는 절차가 국정원에 비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국정원보다 효과적으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정원의 전문 수사인력을 경찰직으로 전환하고 대공수사기법을 전수받을 계획이다. 이 역시 반가워하는 분위기는 크지 않다. 한 경사급 경찰관은 “경찰 업무를 해본 경험이 없는 국정원 직원이 현실에 맞지 않는 지시를 내리면 반발을 살 수 있다. 국정원이 경찰을 하부 기관으로 여겨온 관행이 있어 반감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 지방경찰청의 경정급 간부는 “4급 총경은 수백 명의 부하직원을 지휘하는데 국정원의 팀장급(4급) 간부는 부하직원 수가 10명 안팎”이라며 “지휘 경험이 부족한 국정원 출신 간부가 리더십에 한계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대공수사 요원들이 실무가 아닌 관리 업무를 맡게 되면 현장 경찰관들이 실질적인 노하우를 배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대공수사의 특성을 고려할 때 팀장과 과장 서장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결재구조가 유지될 경우 수사 기밀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지방경찰청 보안 담당 간부는 “일선 경찰서의 여러 경찰관들이 대공수사에 대거 참여할 경우 수사 관련 내용이 새어나갈 구멍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대공수사권 이전과 관련해 아직 세부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경찰의 대공수사에 부족함이 없도록 국정원과 긴밀히 협의해 보완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구특교 kootg@donga.com·이민준·김자현 기자}

10일 오전 제7회 영예로운 제복상 수상자들은 시상식에 앞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양성우 경감(50)과 정상은 대위(34), 이상훈 준위(52), 하종우 경감(53), 오정근 지방소방위(45), 천희근 지방소방장(44). 제복을 입은 이들 수상자는 참배하는 20분 내내 경건한 표정이었다. 도열한 의장대 사이를 지나 현충탑 앞에 선 6명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기리며 묵념했다. 양 경감이 수상자 대표로 헌화와 분향을 했다. 위패봉안관을 둘러본 하 경감은 아버지 생각에 코끝이 찡하다고 했다. 그는 “4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도 6·25전쟁 참전 용사였다. 제복을 입고 이곳을 찾으니 감회가 새롭다. 아버님께서 하늘나라에서 많이 자랑스러워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하 경감은 이날 오후 시상식이 끝난 뒤 아버지가 안장된 국립영천호국원을 찾았다. 하 경감의 아들 태욱 씨(23)와 재균 군(16)도 현충원을 찾았다. 참배를 마치고 하 경감과 두 아들은 말없이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태욱 씨는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제복을 입은 아버지 모습을 보니 늠름하셨고 자랑스러웠다. 초등교사 임용 최종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데 순국선열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이 세워지고 지켜졌다는 사실을 잘 알려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오 소방위는 순직한 동료들 생각에 마음 아파했다.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동료들을 떠올리던 그는 “2014년 세월호 사고 당시 수색 지원 헬기가 추락해 순직한 형, 동생 같은 동료들이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저보다 뛰어난 선후배들이 많이 계신 만큼 미안함과 영광스러운 마음이 교차한다”고 말했다.구특교 kootg@donga.com·조응형 기자}

“제복 공무원은 평화와 안전을 지키는 든든한 파수꾼입니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역사의 이정표에는 수많은 제복 공무원의 땀과 눈물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제7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 개최를 축하하는 축전을 보내 제복 공무원의 노력과 헌신을 격려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제복 공무원들의 희생과 헌신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며 “제복 공무원의 처우 개선과 제도기반 정비에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제복 공무원 여러분도 투철한 사명감으로 더 안전하고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열과 성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정경두 합참의장은 시상식 축사에서 “영예로운 제복상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묵묵히 소임을 다하는 ‘영웅’들이 존중받고 신뢰받는 문화를 조성하는 데 기여해왔다”며 “헌신을 기억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확산될 때 국민들은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정상명 전 검찰총장(68·사법연수원 7기)은 경과보고를 통해 “사건을 해결한 것도 의미가 있지만 본연의 임무를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했는지 심도 있게 논의했다”며 “대상 수상자는 경찰로 재직하며 학교 밖 청소년 보호에 22년을 헌신해 경찰의 따뜻한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힘쓴 분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어, 어, 부딪친다. 조금만, 조금만 오른쪽으로 돌려요, 조심!” 5일 오후 서울 구로구 개봉초등학교 근처 주택가에 구로소방서 최정운 소방사(32)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 소방사는 빨간색 5t 펌프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마치 초보 운전자를 가르치듯 펌프차를 향해 손을 크게 휘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펌프차 운전석에 앉은 장세웅 소방장(52)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장 소방장은 수시로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 펌프차와 주차 차량 사이 간격은 3cm 남짓. 그야말로 ‘삐끗’하면 부딪힐 상황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장 소방장이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수십 차례 반복해 밟은 끝에 가까스로 현장을 탈출했다. 폭 5m, 길이 50m의 골목길 전체를 빠져나가는 데 걸린 시간은 15분. 다행히 훈련 상황이었지만 실제 비상출동 때라면 이미 ‘골든타임(5분)’을 넘겼다.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후 전국 소방서별로 길 터주기 훈련을 실시 중이다. 소방차 통행을 가로막는 불법 주차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주차 차량이 많은 주택가에서 ‘마의 구간’은 커브길이다. 덩치 큰 소방차가 통과할 최소 회전반경 확보가 어려운 탓이다. 주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전신주도 소방차에는 걸림돌이다. 전신주 옆에 차량이 서 있다면 골목길이 더 좁아져 소방차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날 훈련 때도 소방차는 구로구 고척근린시장 근처 골목의 커브길을 통과하느라 애를 먹었다. 근처 골목길 한쪽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함 앞에는 지름 1m 남짓한 대형 화분이 놓여 있었다. 비상소화장치함은 소방차 도착이 늦어질 경우 초기에 불을 끌 수 있게 각종 소화장비를 모아놓은 보관함이다. 백승택 소방위(55)는 “한 주민이 비상소화장치함 앞 공간을 자신의 전용 주차장처럼 쓰려고 갖다 놓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법 주차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장단기로 나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우선 불법 주차 단속을 교통이 아니라 안전 차원에서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는 “미국처럼 수십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강제성 있는 조치를 도입해야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부족한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한 도시정책이 필요하다. 공하성 경일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주차 공간이 부족해 불법 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공공장소 내 무료 주차장 확대 같은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날 다중이용업소가 밀집한 지역의 불법 주정차 금지를 강화하는 내용의 대형화재 인명구조 대책을 발표했다. 불법 주정차가 빈번한 구역에는 폐쇄회로(CC)TV 설치를 확대하고 주차문화 개선을 위한 홍보도 강화한다.구특교 kootg@donga.com·권기범·김예윤 기자}

“어, 어 부딪친다. 조금만, 조금만 오른쪽으로 돌려요, 조심!” 5일 오후 서울 구로구 개봉초등학교 근처 주택가에 구로소방서 최정운 소방사(32)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 소방사는 빨간색 5t 펌프차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마치 초보운전자를 가르치듯 펌프차를 향해 손을 크게 휘저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펌프차 운전석에 앉은 장세웅 소방장(52)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장 소방장은 수시로 창문 밖에 얼굴을 내밀고 주변을 살폈다. 펌프차와 주차 차량 사이 간격은 3cm 남짓. 그야말로 ‘삐끗’하면 부딪힐 상황이었다. 두 사람 모두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장 소방장이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을 수십 차례 반복한 끝에 가까스로 현장을 탈출했다. 폭 5m, 길이 50m의 골목길 전체를 빠져나가는데 걸린 시간은 15분. 다행히 훈련 상황이었지만 실제 비상출동 때라면 이미 ‘골든타임(5분)’을 넘겼다. 지난해 12월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후 전국 소방서별로 길 터주기 훈련이 실시 중이다. 소방차 통행을 가로막는 불법 주차에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주차 차량이 많은 주택가에서 ‘마의 구간’은 커브길이다. 덩치 큰 소방차가 통과할 최소 회전반경 확보가 어려운 탓이다. 주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전신주도 소방차에는 걸림돌이다. 전신주 옆에 차량이 서 있다면 골목길이 더 좁아져 소방차 진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날 훈련 때도 소방차는 구로구 고척근린시장 근처 골목의 커브길을 통과하느라 애를 먹었다. 근처 골목길 한쪽에 설치된 비상소화장치함 앞에는 지름 1m 남짓한 대형 화분이 서 있었다. 비상소화장치함은 소방차 도착이 늦어질 경우 초기에 불을 끌 수 있게 각종 소화장비를 모아놓은 보관함이다. 백승택 소방위(55)는 “한 주민이 비상소화장치함 앞 공간을 자신의 전용 주차장처럼 쓰려고 갖다 놓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불법 주차 해결을 위한 대책을 장단기로 나눠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우선 불법 주차 단속을 교통이 아니라 안전 차원에서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원철 연세대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는 “미국처럼 수십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강제성 있는 조치를 도입해야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부족한 주차 공간 확보를 위한 도시정책이 필요하다. 공하성 경일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주차 공간이 부족해 불법 주차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공공장소 내 무료주차장 확대 같은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시는 이날 다중이용업소가 밀집한 지역의 불법 주정차 금지를 강화하는 내용의 대형화재 인명구조 대책을 발표했다. 불법 주정차가 빈번한 구역에는 폐쇄회로(CC)TV 설치를 확대하고 주차문화 개선을 위한 홍보도 강화한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권기범 기자 kaki@donga.com사진=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입주민대표회의가 31일자로 경비원 94명을 해고하겠다고 통보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관리비 부담 증가가 이유다. 입주민대표회의는 경비원을 직접 고용하는 대신 용역업체에 맡기고 재고용을 추진할 계획이다. 5일 구현대아파트 경비원 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8일 이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경비원들에게 해고 예고 통지서를 전달했다. 그 대신 용역업체에 경비 업무를 맡겨 해고된 경비원을 재고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입주자대표회의 측은 해고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관리비 부담을 들었다. 2일 입주자대표회의 측이 작성한 안내문에 따르면 “전년 대비 2018년도 임금 인상분과 퇴직금 부담금이 6억6000만 원 증가한다. 용역업체로 전환하면 임금 인상에 따른 퇴직금 충당 부담이 사라져 관리비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고 적혀 있다. 하재광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40%가량이 세입자인데 경비원 월급이 오르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경비 업무의 전문성을 확보하고 아파트 관리 및 경비 업무를 분리해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입주민 부담을 덜기 위해 휴식시간 연장과 퇴직금 산정방식 변경 등을 제안했지만 묵살당했다고 주장했다. 경비원 A 씨(62)는 “최저임금이 16.4% 인상되면 월급 32만 원을 더 받는다. 이 돈을 안 받더라도 정규직으로 일하고 싶은 생각인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용역업체로 전환하면 고용 불안정에 시달릴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이에 하 회장은 “용역업체가 마음대로 해고하지 못하게 매달 보고서를 내게 할 방침이다”라고 해명했다. 입주민 중에는 경비원 해고 결정을 모르거나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 입주민 B 씨는 “입주자대표회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민도 많다. 가진 사람들이 너무 심하게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조응형 기자}

4일 오후 서울 은평구 연서로의 6층 상가. 건물 뒤 타워주차장 입구 근처에 ‘연결살수설비송수구’ 3개가 눈에 띄었다. 연결살수설비는 지하실 등에 불이 났을 때, 스프링클러처럼 자동으로 물을 뿌려 불을 끄는 장치다. 송수구는 건물과 소방펌프차를 잇는 연결 부위다. 마침 송수구 앞에는 차량 두 대가 서 있었다. 사람 한 명이 접근할 틈도 없었다. 주차장 입구가 막다른 골목에 있어 소방차가 진입할 경우 차를 옮길 공간도 없었다. 건물 관리인 권모 씨(79)는 “주차장 승강기를 개조하느라 임시로 차량을 여기에 세웠다. 소방호스만 연결하면 되는데 좁은 게 뭐 그리 문제냐”고 반문했다.○ 부실 관리에 사라진 소화전 도로교통법(제33조)에 따르면 소방용 기계나 소화전, 송수구 등에서 5m 이내에는 주차할 수 없다. 위반 시 과태료 4만∼5만 원이 부과된다. 방화시설 주위에 물건을 쌓아 놓는 행위도 금지다. 그러나 시민들은 “눈에 잘 띄지 않으니 어떤 용도인지도 잘 모른다”고 입을 모은다. 그리고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며 불법 주차를 서슴지 않는다. 화재 발생 초기에 소방설비 사용이 불가능하면 자칫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보통 불이 났을 때 현장에 출동한 소방펌프차에서 나오는 강한 압력의 물로 진화한다. 그러나 소방펌프차나 건물 물탱크에 물이 바닥나면 소화전과 각종 송수구를 동원해 불을 꺼야 한다. 서울 지역의 한 소방관은 “대형 화재 때는 소화전을 무조건 쓴다고 봐야 한다. 소규모 화재 때도 인근 소화전을 확보하는 게 원칙”이라고 말했다. 소화전은 옥내, 옥외 소화전으로 구분된다. 옥외 소화전은 다시 지상식, 지하식으로 나뉜다. 옥내 소화전은 건물 내부의 복도나 실내 벽면에 설치돼 있다. 화재 초기 소화기로 진압이 어려울 때 강력한 수압으로 화재를 진압할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연면적 3000m² 이상 건물에 설치해야 한다. 옥외 소화전은 화재 현장에서 소방펌프차의 물이 떨어졌을 때 용수를 공급받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됐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빨간색 소화전이다. 주로 차도와 보도의 경계에 설치한다. 소방차가 다가가기 어려운 장소의 불을 진압할 때도 연결해서 사용한다. 통행에 불편을 주고 혹한에 얼어붙을 우려가 큰 지상식 소화전의 단점을 보완한 것이 지하식이다. 맨홀 뚜껑 아래 지하에 소화전을 매립한 방식이다. 뚜껑을 열고 막대 형태의 렌치를 꽂아 돌리면 소화전이 지상으로 올라온다. 건물 외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각종 연결 송수구도 중요하다. 하지만 송수구의 역할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송수구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소방차의 물을 실내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송수구 근처에 불법 주차를 하면 소방호스를 연결해도 호스가 꺾이기 때문에 물이 제대로 공급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내 집 앞 소화전부터 확인해야 현장에서 상하수도 등 다른 맨홀과 지하식 소화전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소방청에 따르면 옥외 소화전은 기술 기준에 맞춰 제작하고 ‘옥외 소화전’이란 표시만 하면 된다. 지하식 소화전은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별도의 표시 규정이 없다. 지방자치단체나 관할 소방서가 맨홀 뚜껑에 노란색 페인트를 칠해 놓지만 이 역시 강제 조항은 아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건 송수구도 마찬가지다. 서울 중구 장충동1가 한 건물 송수구 앞에 트럭을 세워놓은 택배기사 최모 씨(42)는 “송수구 앞 주차금지 규정을 아는 사람이 100명 중에 한 명이나 되겠느냐”며 “잘 보이는 곳에 ‘전방 5m 앞 주차금지’라는 문구라도 넣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민들도 내 집과 사무실 주변에 소화전과 송수구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평소 자신의 집 앞 지하식 소화전 위에 승용차를 세운 최모 씨(57·여)는 “자칫하면 내가 세워놓은 차량 탓에 큰일이 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해서 사람들이 스스로 확인하는 습관을 갖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구재현 목원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기본적인 안전 마인드를 갖출 수 있게 초중고교 때부터 교육을 강화해 소방설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구특교 kootg@donga.com·서형석·김자현 기자}
미국에 ‘가짜 대학’을 세운 뒤 학위를 팔아 돈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학교 인가를 받지 않은 대학을 세우고 학생들을 모집한 뒤 학비 약 17억 원을 챙긴 혐의(사기 및 고등교육법 위반 혐의)로 T 대학 이사장 김모 씨(45)를 구속하고 같은 대학 경영학부 학장 박모 씨(36)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T 대학을 세운 이들은 2015년 5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홈페이지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학생들을 모집했다. 온라인 수업으로 학위만 받으면 국내 4년제 대학에 학사 편입하거나 석사 과정에 입학할 수 있다고 홍보했다. 입학만 하면 유학 비자를 받아 미 현지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총 199명의 학생들이 돈을 내고 입학했다. 경찰 수사 결과 T 대학의 설명은 거짓이었다. T 대학은 미 연방정부나 국내 교육부 인가를 받지 않고 학교를 세운 것으로 드러났다. 2015년 5월경 미 캘리포니아주에 ‘T 대학교’라는 상호의 일반 회사로 법인 등록을 했을 뿐, 학교 인가는 받지 않은 것이다. 홈페이지에 올린 대학 건물 사진도 모두 거짓이었다. 교회 사진을 교묘한 각도로 촬영해 마치 실제 대학처럼 보이게 조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학교 명칭으로 비슷한 사기 행각을 벌였다는 추가 첩보를 들은 만큼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고 말했다.구특교기자 kootg@donga.com}
1일 새해 첫날을 맞아 윤모 씨(24)는 친구와 함께 서울 강북구의 한 게임방을 찾았다. 윤 씨는 카운터 밖에 서서 스마트폰을 보는 여주인 A 씨를 봤다. 그는 게임을 멈춘 뒤 스마트폰을 들고 A 씨 쪽으로 향했다. A 씨와 가까워지자 몰래 스마트폰 플래쉬를 켜고 옆에 섰다. 여전히 A 씨는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다. 윤 씨는 바닥에 앉아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한 연기를 시작했다. 가방 위 올려져 있던 스마트폰은 A 씨의 치마 속을 찍고 있었다. 몰래카메라(몰카) 촬영을 마친 윤 씨는 태연히 자리로 돌아가 게임을 즐겼다. 윤 씨의 ‘완전 범죄’는 A 씨 남편 B 씨(47)때문에 들통났다. 손님들을 안내한 뒤 카운터로 돌아온 B 씨는 아내 뒤에 앉아 가방을 뒤지는 윤 씨를 목격했다. 무언가 수상쩍었다. 하지만 손님인 윤 씨를 함부로 의심할 수는 없었다. 당장 신고했다간 순식간에 영상을 지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B 씨는 모르는 척 윤 씨를 지나치는 ‘기지’를 발휘했다. B 씨는 곧바로 현장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플래쉬를 켠 채 대담하게 몰카를 찍는 윤 씨의 모습이 보였다. 조용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 경찰에 신고했다. 게임을 즐기던 윤 씨는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 관계자는 “윤 씨 스마트폰에는 같은 날 강남의 한 식당에서 촬영한 여성들의 치마 속 몰카 영상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윤 씨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아찔했습니다.” 강원 강릉소방서 경포119안전센터 소속 이모 소방장(41)이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새해 첫날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상황 탓이다. 이날 오전 7시 50분경 이 소방장 등을 태운 펌프차와 구급차가 경포대 입구 안전센터 근처에 다다랐다. 오전 6시 경포해변에서 열린 해돋이 행사에 지원 나갔다가 복귀하는 길이었다. 안전센터에 도착했을 때 소방대원들 눈앞에 믿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다. 소방차량이 드나드는 안전센터 앞마당에 차량 10여 대가 빼곡히 차 있었다. 해돋이를 보러 온 관광객들이 주차할 곳이 없자 소방서 앞마당을 ‘점령’한 것이다. 이곳에서 경포해변까지 거리는 약 200m다. 소방대원들은 일일이 차량에 남겨진 번호를 확인해 전화를 걸었다. 이렇게 운전자를 불러 차량을 모두 이동시키는 데 40분 넘게 걸렸다. 과거 해맞이 때나 피서철에도 안전센터에 차량을 세우는 운전자가 있었다. 그때마다 남아 있던 소방대원이 다른 곳을 안내했다. 하지만 이날은 아무도 없었다. 해맞이 행사 참석자가 20만 명으로 예상돼 대원 6명이 펌프차 1대와 구급차 1대에 나눠 타고 모두 나간 것이다. 그사이 관광객들은 아무도 없는 경포안전센터 앞마당을 차지했다. 40분 동안 긴급 차량 2대가 오도 가도 못했고 남아 있던 다른 펌프차 1대도 꼼짝할 수 없었다. 만약 비상상황이 발생했더라도 출동이 불가능했다. 이 소방장은 “당시 안전센터 안팎은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만약 화재 신고가 들어왔다면 출동이 불가능해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라고 말했다. 하루 전 상황도 다를 바 없었다. 지난해 12월 31일 해넘이 행사를 앞두고 경포해변 도로에 러버콘(차량 통제를 위한 원뿔형 차단용품)이 설치됐다. 긴급 소방로 확보를 위해 불법 주차를 막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설치 후 얼마 안돼 러버콘은 도로 위에서 자취를 감췄다. 운전자들이 러버콘을 인도 등 다른 곳으로 치워버린 뒤 주차한 탓이다. 처음 한두 명이 시작하자 나중에는 너도나도 따라하면서 기다란 불법 주차 행렬이 만들어졌다. 소방차 등 긴급차량 통행에 지장을 초래하면 도로교통법에 따라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이날 경포안전센터를 점령한 차량 운전자에게는 과태료가 부과되지 않았다. 안전센터 측은 새해 첫날 경포를 찾은 타 지역 관광객이 많고 전화통화 후 차량을 옮긴 점을 감안해 계도 및 주의 조치로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다양한 제야행사가 펼쳐진 서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됐다. 1일 0시를 전후해 서울 송파구를 지나는 올림픽대로는 출퇴근길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정체가 심했다. 이곳을 지나던 차량 운전자들이 근처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새해맞이 불꽃쇼와 레이저 조명쇼를 구경하느라 서행하거나 아예 정차시킨 것이다. 올림픽대로와 연결된 송파구 일대 도로도 주차 차량으로 몸살을 앓았다. 택시를 이용해 올림픽대로를 지나던 강모 씨(30·여)는 “운전자들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거나 휴대전화를 꺼내 촬영하면서 앞으로 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은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후에도 안전의식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최진근 경포119안전센터 팀장은 “아무리 관광객이지만 편하다는 이유로 119안전센터에까지 주차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어렵다. 소방차량 출동 과정에서 불법 주정차 차량에 손상을 입혀도 책임을 묻지 않도록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강릉=이인모 imlee@donga.com·구특교·김자현 기자}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때 ‘최초 신고 전 1시간’의 구체적인 정황이 동아일보 취재 결과 상당부분 확인됐다. 29일까지 건물주 이모 씨(53·구속), 건물관리인 김모 씨(66), 여직원 양모 씨 등 10여 명의 핵심 증인을 만나고 폐쇄회로(CC)TV 확인한 결과다. 취재 결과 유족들이 주장하는 오후 3시 25분 화재가 발생해 진압에 나섰다는 내용은 오후 3시 52분 상황으로 확인됐다.▽오후 2시 42분 액화석유가스(LPG)충전소 이모 직원(59)이 차량을 타고 스포츠센터 건물 1층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 옆에 설치된 LPG통에 가스를 충전하기 위해서다. 이 직원은 근처에서 천장 작업을 하고 있던 김모 과장(51)을 봤다고 말했다. 김 과장은 사다리에 올라 막 천장을 뜯어내고 있었다. 이 씨가 “바쁘시죠”라며 말을 건네자 김 과장이 “작업하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오후 3시 2층 여탕에 가기 위해 권모 씨(36·여)가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했다. 권 씨는 “사다리에 올라가 있는 한 남성이 뜯겨진 천장 안에 있는 전선을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오후 3시 10분 이 직원이 가스 충전을 마치고 주차장을 떠났다. 그는 “차를 타고 이동하기 전까지 김 과장은 계속해서 사다리 위에서 무언가 작업을 이어갔다”고 말했다. 차량이 떠나고 곧이어 김 과장이 작업을 중단한 뒤 사다리를 치운다. ▽오후 3시 27분 김 과장이 작업한 천장 부근에서 10초간 3, 4차례 불꽃이 발생하는 게 CCTV에 포착됐다. 천장 작업을 끝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장 내부에서 연소가 이미 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국과수 감식 결과가 나와야 김 과장의 작업과 불꽃 사이의 정확한 인과관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 30분경 이때까지도 스포츠센터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지 못했다. 주차장을 지나 1층으로 들어간 이모 씨(54·여)와 김모 씨(68·여)는 모두 “3시 반쯤에는 주차장에서 천장 공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불길과 연기 어떤 것도 보이지 않고 주차된 차량들만 있었다”고 말했다. ▽오후 3시 51분 천장 내부에 불이 붙은 모습을 본 최초 목격자가 등장했다. 2층 남탕에서 목욕을 마치고 내려오던 구모 씨(25)는 천장 한 곳에서 작은 연기가 나오는 것을 봤다. 연기가 나는 곳으로 이동하자 성인 남성이 들어가기 충분한 크기로 천장이 뚫려있었다. 올려다보자 동그란 형태의 불과 천장 좌우로 내려오는 연기가 보였다. 약 20초간 천장을 지켜본 그는 “4~5명이 함께 담배를 피는 양의 연기가 뿜어져 나왔고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크기의 불꽃이 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날씨가 워낙 추웠고 주차장 천장 공사하는 모습을 자주 봤기 때문에 ‘무언가 녹이는 작업’을 한다고만 생각하고 자리를 떴다. ▽오후 3시 52분 뒤따라 목욕을 마친 뒤 1층 입구에서 나온 A 씨(72)는 매캐한 냄새를 맡고 불길이 커져버린 천장을 목격했다. 천장에서 ‘펑’하며 무언가 터지는 소리도 들었다. 화재를 인지한 그는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불이 났다”고 소리쳤다. 1층 카운터 여직원 양모 씨가 주차장으로 뛰어나왔다. 마침 건물 관리인 김 과장과 김 부장도 지하 1층에서 올라왔다. 김 부장은 “김 과장이 지하실로 평소와 같이 내려왔는데 그의 몸에서 ‘열 받은 냄새’가 나 함께 1층으로 뛰어 올라갔다”고 진술했다. 유족들은 “지인 A 씨가 오후 3시 25분경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 조사와 증언들에 따르면 A 씨가 목격한 상황은 오후 3시 52분경 벌어진 일로 확인됐다.▽오후 3시 53분 카운터 여직원 양 씨가 김 과장에게 소화기를 전달했으나 고장 난 소화기였다. 다른 소화기를 찾아 건넨 뒤 다시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 다급하게 119에 신고했다. A 씨는 주차한 본인 차에 탑승한 뒤 주차장을 황급히 빠져나왔다. 불길이 순식간에 커져버렸기 때문이다. 오후 3시 30분경 4층 헬스장 IPTV를 고치러 온 통신사 직원도 매캐한 냄새를 맡고 황급히 차량을 근처 마트로 이동시켰다.▽오후 3시 54분 119에 신고한 뒤 양 씨는 1층 사무실로 들어가 건물주 이 사장에게 불난 사실을 알렸다. 이 사장과 김 과장, 김 부장이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소화기를 주차장 천장에 쐈다. 하지만 이미 천장 전체로 번져버려 불길이 쉽게 잡히지가 않았다. 김 부장이 일부 천장을 떼어내 불길을 제압하려 했지만 불길이 천장 아래로 떨어지며 차량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김 부장은 “1층에 올라왔을 때 이미 천장판 아래로 벌건 불길이 쭉 펼쳐져 보였다”며 “불똥과 열기가 너무 강해 더 이상 진압이 불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이후 스포츠센터 건물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제천=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당시 2층 여탕의 욕탕에서는 화재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 생존자들은 화재 당시 경보음은 울리지 않았고 탈의실 경보음도 아주 작았다고 말했다. 타는 냄새를 맡고서야 불이 난 것을 알았다는 얘기다. 희생자 29명 가운데 20명이 이곳에서 숨졌다. 2층 생존자 김모 씨(57·여)는 27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욕탕 내부에 화재 경보음이 울리지 않아 희생자가 많았던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김 씨는 욕탕에서 족욕하다 옆의 여성에게서 “고무 타는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들었다. 경보음이 울리지 않았던 만큼 일부는 계속 목욕을 했다. 김 씨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욕탕을 빠져나왔다. 탈의실에서는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젖은 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목욕탕을 빠져나와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중간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3년 전부터 이 목욕탕을 다녔다는 김 씨는 “평소 전선 타는 누린내가 자주 났고 경보도 종종 오작동했다. 이 때문에 불이 난 처음에는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강모 씨(53·여)는 탈의실 경보음도 너무 작아서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 씨는 “탈의실에 경보음이 울렸지만 전화 벨소리로 착각할 정도여서 불이 난 줄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불이 난 1층에서 연기가 2층으로 올라오자 욕탕으로 대피한 여성이 많았던 점도 피해를 크게 했다. 강 씨는 “불이 난 걸 알았을 때 욕탕에는 연기가 전혀 없었다. 뒤늦게 빠져나오던 사람 일부가 연기를 뚫고 나가지 못하고 욕탕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제천=구특교 kootg@donga.com·전채은·정다은 기자}
“불이 났다는 말에 소화기를 건넨 뒤 119에 신고했습니다. 2층 여탕에도 올라가 ‘불이 났으니 대피하라’고 외쳤습니다. 그래도 끝까지 건물에 남아 사람들을 구했어야 하는데….”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에 불이 났을 때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한 A 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스포츠센터 건물 1층 카운터에서 근무하는 여직원이다. A 씨는 지난달 27일 처음 출근했다. 화재 당일이 25일째 근무일이었다. 오후 3시 53분 화재 신고 전후의 상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불이 났을 당시 A 씨는 1층 카운터에서 일하고 있었다. 갑자기 50, 6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건물 안으로 들어오며 “불이 났다”고 소리쳤다. 주차장에는 건물 관리인 김모 과장(51·체포)과 김모 부장(66)이 나와 있었다. A 씨는 카운터 근처에 있던 소화기를 급히 집어 들고 김 과장에게 건넸다. 하지만 소화기는 고장이었다. 김 과장이 “고장 난 것 같다”고 외치자 A 씨는 주차장 입구에서 두 번째 소화기를 찾았다. 경황이 없어 누구에게 전달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리고 카운터로 돌아가 내선전화로 119에 신고했다. 그리고 1층에 있는 사무실로 뛰어갔다. 이곳에 있던 건물주 이모 씨(53·체포)에게 불이 난 사실을 알렸다. 당시 이 씨는 직원 채용을 위해 면담 중이었다. A 씨는 다시 통로에 놓여 있던 세 번째 소화기를 들고 이 씨와 함께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A 씨는 “건물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난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2층 여탕으로 향했다”고 말했다.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자 세신사와 여성 손님 몇 명이 보였다. A 씨는 “아래층에서 불이 났으니 빨리 피하세요”라고 소리쳤다. 세신사도 함께 “불이 났다”고 외쳤다. A 씨는 “탈의실에 있던 사람이 (사우나) 안으로 들어가 불이 났다고 알리는 모습도 봤다”고 말했다. 이어 A 씨는 다시 1층으로 향했다. A 씨가 내려오자마자 ‘펑’ 하는 차량 폭발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그리고 오후 4시 첫 번째 119구조대가 도착했다. 그는 “119가 오기까지 7분이라는 시간이 정말 길게만 느껴졌다”고 말했다. 경찰은 정확한 화재 발생 경위 등을 파악하기 위해 A 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 중이다. 제천=구특교 kootg@donga.com·김자현·정다은 기자}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에 불이 난 당일 건물 관리인 두 명이 같은 병실에 입원해 입을 맞춘 의혹을 경찰이 수사 중이다. 경찰은 “화재 50분 전 천장의 얼음을 깨고 있었다”는 관리인들의 진술이 허위이고 대신 열선 관련 작업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25일 경찰 수사본부에 따르면 건물 관리인 김모 과장(51·체포)과 김모 부장(66)은 21일 화재 발생 직후 제천서울병원으로 이송돼 같은 병실에 입원했다. 당시 두 사람과 같은 병실에 있던 A 씨는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죽은 듯 누워 있다가 밤에 몰래 얘기를 나눴다”며 “그날 밤 둘이 ‘전기 공사를 하다가 누전이 돼 불이 난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화재 다음 날 두 사람이 같은 병실에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김 부장을 다른 병실로 옮기게 했다. 경찰은 또 25일 김 과장의 자택과 차량, 휴대전화 그리고 김 부장의 휴대전화를 압수수색했다. 건물주 이모 씨(53·체포)의 자택과 차량도 압수수색했다. 김 과장은 경찰 조사에서 1층 천장 공사를 했다는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경찰이 공사 장면이 찍힌 폐쇄회로(CC)TV 자료를 제시하자 진술을 번복했다. 김 과장은 “떼어낸 천장판에 서린 얼음을 무릎과 손으로 깼고 막대기로 배관의 얼음을 털어냈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도 “당시 천장의 얼음을 깨던 중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이들의 진술이 거짓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CCTV 확인 결과 천장에서 얼음이 떨어지는 모습이 없고 일부 목격자 진술도 다르기 때문이다. 화재 당일 오후 3시경 건물 1층 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했던 B 씨는 “당시 남성 두 명이 천장을 한두 칸 뜯고 배선 작업 같은 것을 하는 걸 봤다”며 “얼음 깬 건 아닌 것 같고 선을 만지는 것 같았다”고 진술했다. 김 부장은 “오후 2시경 출근하며 김 과장이 천장 작업을 하고 있길래 ‘뭐 하냐’고 물어본 게 전부다. 이후 작업 모습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김 과장 등이 천장 위 배관을 덮은 열선과 얽혀 있는 전선 등을 잘못 건드려 불이 났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재는 김 과장이 천장 작업을 마치고 50분이 지난 뒤 처음 발견됐다. 경찰은 열선에서 튄 불꽃이 천장으로 튀면서 불이 커졌을 가능성을 수사 중이다.제천=구특교 kootg@donga.com·이민준 기자}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1층. 주차장에 있던 한 남성이 “불이야!”라고 외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1층에 있던 직원 A 씨는 옆에 있던 소화기를 들고 관리인 김모 씨에게 건넸다. 불은 아직 1층 주차장 천장에서만 번지고 있었다. 소화기로 진화가 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소화기는 먹통이었다. 김 씨가 “소화기가 안 돼!”라고 소리쳤다. A 씨가 급하게 다른 소화기 두 대를 찾았다. 이미 불붙은 차량에서 ‘펑’ 하고 폭발음까지 났다.○ 무시당한 소방점검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소방설비의 총체적 부실이 빚은 참극이었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4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건물 소방점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민간 소방점검업체 J사는 경보와 피난, 소화 등 5개 부문에서 30개 항목 67곳을 수리 대상으로 판정했다. 불이 시작된 1층에서만 19곳이 확인됐다. 1층 비상계단에 있던 소화기는 사용 연한(10년)을 넘겼다. 스프링클러 밸브는 배관 누수로 알람밸브가 폐쇄된 상태였다. 화재 시 벨소리를 울리는 경종(警鐘)도 불량이었다. 필로티 구조 건물에 반드시 설치해야 하는 호스 릴과 이산화탄소 소화설비에는 표지판이 붙어 있지 않았다. 표시등도 파손돼 있었다. 화재감지기는 1층에서만 5곳이 고장 난 상태였다. 피난구 유도등도 4개나 꺼져 있었다. 이런 문제는 여탕이 있는 2층 사우나 내부를 제외한 모든 층(1, 3∼8층)에서 비슷했다. 하지만 20명이나 숨진 2층 여탕 내부에서는 별다른 지적 사항이 없었다. 당시 2층 내부에서는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건물 세입자들에 따르면 11월 말 당시 남성 3, 4명이 소방점검을 실시했지만 여탕이 영업 중이라 내부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목욕용품 수납장이 비상구 위치를 가리고 탈출로 폭이 50cm 정도로 좁아진 문제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상구는 가장 중요한 소방점검 대상이다. 비상구 근처 물건 방치는 곧바로 시정 조치를 내려야 한다. 비상구 구조에 문제가 있으면 일정 기간 내 반드시 보수하도록 해야 한다. 해당 건물의 소방점검 결과를 살펴본 한 소방전문가는 “2층 여탕 안에 들어가서 비상구를 봤다면 문제점을 지적했을 것이다. 아무 지적이 없었다는 건 점검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건물주 이모 씨는 “보수공사 규모가 클 것 같아 직원들에게 손을 대지 말라고 지시하고 나중에 따로 업체를 불러서 공사하려 했다”고 말했다.○ 누수로 인한 합선 가능성 수사 경찰은 24일 건물주 이 씨와 관리인 김 씨를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불이 난 당일 김 씨 등은 1층 주차장 천장에서 얼음 제거 작업을 했다. 그로부터 1시간도 안 돼 화재가 발생했다. 건물주 이 씨에 따르면 이전에도 1층 천장 배관이 동파돼 하루 1, 2회씩 물을 퍼냈다고 한다. 또 겨울이 되자 천장에 고인 물이 얼어 생긴 고드름이 주차장으로 떨어져 아침마다 이를 제거하는 일을 했다. 경찰은 약 한 달 전 천장에 설치한 배관 동파 방지용 보온덮개가 화재에 영향을 미쳤는지 살피고 있다. 김 씨가 얼음을 제거하다가 보온덮개에 엉켜 있는 전기회로나 전선 등에 물이 스며들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지인에게 “누전으로 인한 화재인 것 같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재 때 사우나를 이용했다가 가까스로 탈출해 치료를 받고 있는 한 생존자의 부인 박모 씨는 평소에도 물이 새는 천장에서 공사하는 모습을 자주 봤다고 말했다. 박 씨는 “천장에서 무슨 공사 같은 걸 할 때마다 전선들이 물에 젖은 채 축 늘어져 있어 불안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 다른 곳으로 사우나를 옮겼는데 남편은 계속 다녔다”고 말했다.제천=구특교 kootg@donga.com·김자현·이민준 기자}

“관장님이 다 살렸어요. 사람들 대피시키다 크게 다치신 거 같은데 원주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들었어요.”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건물 화재 당시 5층 헬스클럽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운동을 하다 탈출한 이재혁 군(15)은 헬스클럽 관장 이호영 씨(42)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강조했다. 이 군은 “관장님 덕분에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던 20여 명 중 혼자 위층으로 올라간 여자 분 한 명 빼고 모두 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강원 원주시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한 이 씨는 22일 오후 링거를 꽂은 채 병상에 누워 있었다. 연기를 많이 들이마셔 폐가 좋지 않은 상태였다. 목소리엔 힘이 없었고 눈은 반쯤 풀려 있었다. 이 씨가 불이 난 사실을 안 것은 21일 오후 4시 5분경. 화재 발생 후 15분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이 씨는 4층 헬스클럽에서 개인 교습 중이었다. 창문 밖으로 까만 연기가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평소 아래층 사우나에서 올라오는 수증기가 아니었다. ‘불이 났구나’ 직감했다. 그때까지 헬스클럽에서 운동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불이 났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 씨는 “불이 났다”고 큰 소리로 외쳤다. 4층과 5층 헬스클럽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화재 발생 사실을 알렸다. 비상구 위치도 알려줬다. 혹시 남은 사람이 있을까봐 남녀 샤워실과 탈의실, 화장실까지 샅샅이 뒤졌다. 트레드밀(러닝머신) 위의 일부는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설마 불이 났겠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이 씨는 기계의 전원을 꺼버렸다. “불났으니까 빨리 대피하세요”라고 소리쳤다. 20여 명을 헬스클럽에서 나가게 하는 데 5분이 넘게 걸렸다. 이 씨는 사람들을 아래층으로 이동시켰다. 대부분 2층과 1층 사이 계단 옆 유리창을 통해 건물 밖으로 빠져 나갔다. 이 씨는 마지막으로 헬스클럽 비상구 문을 열고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다 포기했다. 짙은 연기 때문에 계단을 내려가는 게 불가능했다. 이 씨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가 저승사자 같았다”고 회상했다. 방향을 바꿔 건물주 이모 씨, 그리고 다른 노인과 함께 위로 올라갔다. 연기를 피할 곳은 8층 레스토랑 베란다 난간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그곳에서 구조를 기다렸다. 1시간 가까이 사투가 이어졌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바로 그때 베란다 난간 한쪽에서 갑자기 사다리가 나타났다. 사설 사다리차 업체 ‘제천스카이카고’ 이양섭 대표(54)와 아들 기현 씨(28)가 구조에 나선 것이다. 세 사람은 이 사다리에 올라타 안전하게 내려왔다. 이 씨는 “내려오면서 유리벽에 막혀 뛰어 내리지 못하고 갇혀 있는 사람들을 봤다.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난다“며 눈물을 흘렸다. 또 이날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마치고 계단을 내려오던 양석재 씨(27)는 2층 바닥에 쓰러진 여성 2명을 구조했다. 학창 시절 씨름을 했던 그는 여성 1명을 어깨에 메고 다른 여성은 팔로 안은 채 건물을 빠져 나왔다. 그중 1명은 곧 의식이 돌아왔다. 양 씨는 의식을 찾지 못하는 여성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다. 의식을 되찾은 여성은 병원으로 이송됐다. 양 씨는 “5년 전 군대에서 배운 기억을 떠올려 심폐소생술을 했다”고 말했다.제천·원주=구특교 kootg@donga.com·윤솔·전채은 기자}

21일 발생한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는 대낮인데도 29명(오후 11시 50분 현재)이나 숨졌다. 사망자 20명은 2층 목욕탕 여탕에서 발견됐다. 외부와 밀폐되고 비상구가 가려진 목욕탕 구조를 감안하면 연기 및 유독가스가 순식간에 빨려 들어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 내외부가 불에 취약한 소재로 지어진 것도 화마를 키운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필로티 구조가 1층 화염 빨아들여” 스포츠센터 건물은 1층이 필로티 구조(벽체를 없애고 기둥만으로 건물을 떠받치는 방식)다. 1층 주차장에서 처음 난 것으로 보이는 불에서 나온 화염과 유독가스가 1층 출입구를 막았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 1층의 유일한 탈출구를 막은 셈이 된다. 건물 안에서 봤을 때 사방이 뚫린 필로티 구조에서 1층 출입구는 사실상 외부 공기 유입구이자 화염을 건물 내부로 끌고 들어오는 입구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1층이 막혀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공기가 좁은 1층 출입구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식이다. 밀려 들어온 유독가스는 상당 시간 건물 안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방 관계자에 따르면 건물 2~4층은 한쪽 외벽이 통유리 구조였던 점도 쉽게 깨고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불에 타기 쉬운 건물 내부 마감재에 붙은 불과 유입된 유독가스가 ‘최악의 시너지’를 냈을 것으로 보인다. 스포츠센터의 2~3층은 목욕탕이고 4~7층은 피트니스센터다. 이들 공간 바닥은 타일로 된 욕탕을 제외하면 장판이나 카펫, 또는 나무 등 불에 잘 타는 소재로 돼 있었다. 피트니스센터 운동 장비와 매트 등에 쓰인 고무도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외장재도 화재에 취약 스포츠센터의 외벽은 드라이비트(dryvit) 공법으로 지어졌다. 인화성이 크고 불에 타면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물질로 구성돼 있다. 석재를 사용할 때보다 공사비가 50% 이상 저렴하고 공기(工期)도 줄일 수 있어 이 공법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2015년 5명이 숨지는 등 사상자 약 130명을 낸 경기 의정부시 원룸형 도시형생활주택 화재와 판박이다. 당시 건물도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지어졌다. 또 필로티 구조의 1층 주차장에서 불이 났다. 정부는 의정부 참사를 계기로 6층 이상 건축물에 불연(不燃) 또는 준불연 외부 마감재 사용을 의무화하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법 개정 전에 지은 건축물에는 적용되지 않아 실효성이 적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스포츠센터 역시 2011년에 지어져 적용 대상이 아니다. 주택보다 유동인구가 훨씬 많은 다중이용시설에서 발생한 것도 큰 피해가 난 요인이다. 스포츠센터에는 목욕탕 피트니스센터 레스토랑 등이 들어 있어 불특정 다수가 드나든다. 다중이용시설은 관리자가 유사시 대피계획 등 안전대책을 세우도록 돼 있지만 현장에서는 형식에 그치는 실정이다. 올 2월 약 40명의 사상자를 낸 경기 화성시 동탄 메타폴리스 대형 화재도 다양한 상가가 몰린 다중이용시설이었다. 스포츠센터 주변에 주차된 차량들은 소방차량의 현장 진입을 방해했다. 또 고층 건물 재해 시 구조에 쓰이는 소방 사다리차량이 출동했지만 추운 날씨 탓에 사다리를 올리는 유압 밸브가 고장 나 한동안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7, 8층으로 피한 사람들의 구조가 지연됐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제천=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21일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희생자 중에는 지난달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른 여고생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건물 7층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모 양(18·제천여고 3학년)이다. 김 양은 수시전형으로 서울의 한 사립여대에 합격해 내년 입학 예정이었다. 공부를 잘해 4년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김 양은 숨지기 전 아버지와의 통화에서 “위로 올라가고 싶은데 문이 안 열린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김 양의 아버지는 “딸이 학교에서 배운대로 고개를 숙이고 위로 올라갔다고 한다. 연기를 피하려 내내 고개를 숙인 채 통화했는데 그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유족들은 김 양의 검게 그을린 목걸이를 보고 신원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흰색 꽃잎 모양의 목걸이다. 김 양이 얼마 전 단짝 친구와 함께 맞췄다고 한다. 김 양의 어머니는 아직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듯 장례식장을 찾지 않았다. 김 양 어머니는 “우리 딸이 잘못됐다는 게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데 내가 왜 거기를 가느냐”며 집으로 향했다. 제천여고는 다음 주 애도 기간을 가질 예정이다. 학교 관계자는 “김 양이 기숙사 생활을 했다. 4인실에서 함께 지냈던 다른 친구 3명이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라고 전했다. 희생자 중에는 노모와 딸, 그리고 여고생 손녀 등 모녀(母女) 3대가 포함돼 가족들이 망연자실해하고 있다. 민모 씨(49)는 딸 김모 양(18)과 함께 제천 친정을 찾았다. 민 씨 딸 역시 지난달 수능시험을 치렀다. 두 사람은 친정엄마이자 외할머니인 김모 씨(80)와 함께 이날 목욕탕을 찾았다가 한꺼번에 변을 당했다. 김모 씨(64)는 이날 아내(54)와 함께 스포츠센터 4층 헬스클럽에서 운동 중이었다. 오후 4시경 불이 난 사실을 알고 김 씨는 건물 밖으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는 탈출 당시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병원에서도 멍한 표정으로 라커룸 키를 손에서 놓지 못했다. 화재 당시 김 씨는 헬스클럽 안으로 연기가 스며들어오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2층으로 내려갔다. 연기 때문에 1층으로 가지 못한 사람들이 창문 앞에 몰려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창 밖으로 밀어낸 뒤 1층으로 뛰어내렸다. 아내를 찾았지만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김 씨는 “아내와 같이 내려오려고 했지만 이미 연기를 피해 5층으로 올라가버린 상태라 함께 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오후 4시 20분경 아내와 통화했다. 아내는 “창문이 깨지지 않는다”며 고통스러워했다고 한다. 김 씨의 아내는 5층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씨는 “아내가 한쪽 눈이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안 들려 많이 무서웠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 씨의 아들은 “엄마에게 이제야 효도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가버리면 어떻게 하느냐”며 흐느꼈다. 제천서울병원 빈소의 한 20대 여성은 “엄마는 왜 건물 옥상으로 못 갔어?”라고 소리치며 오열했다. 부인의 시신을 확인한 한 남성은 중학교 1학년생인 외동딸을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제천명지병원 장례식장에서는 한 중년 여성이 여동생의 영정 앞에서 “평소 안 가던 목욕탕을 왜 갔느냐”며 절규했다. 그는 여동생 시신을 확인한 뒤 “아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이날 화재 참사로 22일 제천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봉송 행사는 취소됐다.제천=김동혁 hack@donga.com·구특교 기자}

“당신 뒤에서 치료 받으려고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저들도 당신과 똑같이 아픈 사람들입니다. 줄을 서서 다시 오세요.”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의 주인공 고 이태석 신부(1962∼2010)가 남수단에 파견돼 의료봉사를 시작할 무렵인 2001년. 당시 톤즈주의 22개 군 중 한 곳의 군수였던 아케치통 알루 씨(49)는 이 신부의 진료소에서 새치기를 하다가 혼쭐이 났다. 당시 남수단의 부자와 관료들은 줄을 서지 않는 걸 당연시했다. 하지만 이 신부는 단호했다. 진료소를 찾은 이들은 모두가 아픈 이들이므로 공평하게 순서대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알루 씨는 “처음에는 이 신부의 말에 무척 화가 났다”고 했다. 하지만 1시간 반가량 줄을 서서 기다려 진료를 받고서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진료소를 찾은 주민들에게 “군수인 나도 줄을 서서 진료를 받았다. 모두 똑같이 줄을 서라”고 지시했다. 이후 이 신부의 진료소에서는 누구나 줄을 서는 일이 당연한 규칙이 됐다. 톤즈 주지사가 된 알루 씨는 9∼16일 한국을 방문했다. 이 신부의 친형이 운영하는 ‘이태석 사랑 나눔 재단’과 함께 보육시설과 학교를 견학하며 톤즈의 교육을 업그레이드할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그는 “10여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쫄리(John Lee·이 신부의 애칭)’의 꾸지람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알루 씨의 방한은 이 신부의 가르침을 톤즈에서 이어가기 위해서다. 2010년 선종할 때까지 혼신을 다해 교육과 의료봉사에 힘쓴 이 신부는 ‘남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린다. 톤즈주는 이 신부의 기일(忌日)인 1월 14일을 매년 공식 추모일로 챙기고 있다. 이 신부의 잔소리는 알루 씨에게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생전에 이 신부는 알루 씨와 길거리나 진료소에서 마주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Work hard for your people)”고 했다. 가끔은 잔소리를 하러 알루 씨의 사무실까지 찾아왔다. 알루 씨가 이 신부와 처음 만난 2000년대 초반은 톤즈에 꿈도, 희망도 없던 시기였다. 오랜 내전으로 마을은 폐허가 됐고 가난과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일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 신부의 잔소리는 알루 씨에게 고역이었다. 그는 “이 신부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피하거나 도망치는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신부의 오랜 잔소리는 알루 씨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별다른 목표 없이 군수 생활을 하던 그에게 ‘이 신부처럼 톤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그 꿈은 알루 씨를 군수에서 부지사, 그리고 톤즈의 주지사 자리로 이끌었다. 11일 알루 씨는 전남 담양군에 있는 이 신부의 묘소를 찾아가 다짐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며 호통 치던 당신의 가르침을 톤즈에서 이어가겠습니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