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이태석 신부 ‘잔소리’가 주지사 되게 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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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수단 톤즈 알루 주지사, 묘소 찾아

남수단 톤즈 주지사 아케치통 알루 씨가 11일 전남 담양의 이태석 신부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이태석 사랑나눔재단 제공
남수단 톤즈 주지사 아케치통 알루 씨가 11일 전남 담양의 이태석 신부 묘소를 참배하고 있다. 이태석 사랑나눔재단 제공
“당신 뒤에서 치료 받으려고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저들도 당신과 똑같이 아픈 사람들입니다. 줄을 서서 다시 오세요.”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의 주인공 고 이태석 신부(1962∼2010)가 남수단에 파견돼 의료봉사를 시작할 무렵인 2001년. 당시 톤즈주의 22개 군 중 한 곳의 군수였던 아케치통 알루 씨(49)는 이 신부의 진료소에서 새치기를 하다가 혼쭐이 났다. 당시 남수단의 부자와 관료들은 줄을 서지 않는 걸 당연시했다. 하지만 이 신부는 단호했다. 진료소를 찾은 이들은 모두가 아픈 이들이므로 공평하게 순서대로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이유였다.

알루 씨는 “처음에는 이 신부의 말에 무척 화가 났다”고 했다. 하지만 1시간 반가량 줄을 서서 기다려 진료를 받고서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는 진료소를 찾은 주민들에게 “군수인 나도 줄을 서서 진료를 받았다. 모두 똑같이 줄을 서라”고 지시했다. 이후 이 신부의 진료소에서는 누구나 줄을 서는 일이 당연한 규칙이 됐다.


톤즈 주지사가 된 알루 씨는 9∼16일 한국을 방문했다. 이 신부의 친형이 운영하는 ‘이태석 사랑 나눔 재단’과 함께 보육시설과 학교를 견학하며 톤즈의 교육을 업그레이드할 지혜를 얻기 위해서다. 그는 “10여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쫄리(John Lee·이 신부의 애칭)’의 꾸지람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알루 씨의 방한은 이 신부의 가르침을 톤즈에서 이어가기 위해서다. 2010년 선종할 때까지 혼신을 다해 교육과 의료봉사에 힘쓴 이 신부는 ‘남수단의 슈바이처’로 불린다. 톤즈주는 이 신부의 기일(忌日)인 1월 14일을 매년 공식 추모일로 챙기고 있다.

이 신부의 잔소리는 알루 씨에게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생전에 이 신부는 알루 씨와 길거리나 진료소에서 마주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Work hard for your people)”고 했다. 가끔은 잔소리를 하러 알루 씨의 사무실까지 찾아왔다.

알루 씨가 이 신부와 처음 만난 2000년대 초반은 톤즈에 꿈도, 희망도 없던 시기였다. 오랜 내전으로 마을은 폐허가 됐고 가난과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일은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이 신부의 잔소리는 알루 씨에게 고역이었다. 그는 “이 신부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피하거나 도망치는 날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신부의 오랜 잔소리는 알루 씨를 조금씩 변화시켰다. 별다른 목표 없이 군수 생활을 하던 그에게 ‘이 신부처럼 톤즈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꿈이 생긴 것이다. 그 꿈은 알루 씨를 군수에서 부지사, 그리고 톤즈의 주지사 자리로 이끌었다.

11일 알루 씨는 전남 담양군에 있는 이 신부의 묘소를 찾아가 다짐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며 호통 치던 당신의 가르침을 톤즈에서 이어가겠습니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이태석신부#이태석#울지마톤즈#아케치통알루#알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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