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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8일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은 최근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이 예사롭지 않다는 방증이다. 정부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가가 오르면서 주변 아파트 시세가 오르고, 다시 신축 아파트 분양가가 높아지는 집값 상승 고리를 분양가 상한제로 끊겠다는 의도다. 8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5월 서울 민간 아파트 분양가는 m²당 평균 778만6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달 대비 12.5% 상승했다. 한국감정원 조사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 값이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1.96% 오른 것과 비교해 큰 폭으로 상승한 것이다. 인기가 높은 중소형 주택(60m² 초과 85m² 이하)의 경우 서울 지역 평균 분양가는 833만6000원으로 전년 대비 25.7%나 상승했다. 관심은 앞으로 개정될 주택법 시행령이다. 현행 시행령상으로는 민간택지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하려면 최근 3개월간 주택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는 지역 중 △최근 1년간 해당 지역의 평균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거나 △3개월간 주택 거래량이 전년 동기보다 20% 이상 증가할 때 등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는 기준 시점은 △일반 주택(아파트)은 입주자 모집공고 △재개발·재건축 사업 주택은 관리처분계획 인가로 규정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그동안 요건이 까다로워 유명무실했던 분양가 상한제를 집값 안정의 주요 방안으로 보고 시행령 개정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라며 “개정한다면 분양가 상한제 적용 요건과 적용 시점을 한꺼번에 개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적용 요건은 △물가상승률 기준을 현행 2배보다 완화해 대상을 늘리는 방안 △평균 분양가 상승률을 집계하는 기간을 현행보다 늘리거나 해당 기준 자체를 없애는 방안 등이 시장에서 거론된다. 적용 시점은 재개발·재건축의 경우 현재 관리처분계획 인가에서 입주자 모집공고 시점으로 최소 1∼2년 늦추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적용 시점이 이렇게 늦춰지면 이미 관리처분을 받은 서울 강남구의 상아2차, 서초구의 원베일리·반포주공1단지 아파트 등도 분양가 상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분양가 상한제 확대는 9·13부동산대책 이후 강화된 대출 규제에 버금가는 강력한 규제책이다. 특히 후분양제를 도입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통제를 피해 가려던 강남권 재건축 사업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분양가 상한제로 분양가가 낮아지면 일반분양을 통해 수익금을 얻어 사업을 추진하는 재건축·재개발은 사업 추진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업계에서는 상한제가 적용되면 강남권의 재건축 단지 분양가가 HUG가 요구하는 3.3m²당 4500만 원대에 비해 크게 낮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민간택지 아파트에 상한제를 도입하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린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는 상한제 도입으로 새 아파트 분양가가 낮아져 집값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했다. 반면 정부의 지나친 시장 개입으로 재건축, 재개발이 중단돼 주택 공급이 부족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시적으로는 분양가가 안정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사업을 지연시키거나 포기하는 사업자가 늘어나면서 공급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이새샘 iamsam@donga.com·유원모 기자}
정부가 민간 택지에 짓는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검토하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8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민간 택지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정 요건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실시 방법까지 밝혔다. 지난달 26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고분양가를 관리하는데, 그 실효성이 한계에 이르렀다”며 “다른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답한 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공공 택지에서 민간 택지로 분양가 상한제가 확대 적용되면 주변 시세보다 싼 ‘로또 아파트’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론 아파트 공급 부족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분양가 상한제는 새 아파트 분양가를 감정평가된 땅값(택지비)에 정부가 정한 건축비 및 적정 이윤을 더한 기준금액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민간 아파트도 공공 택지의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 분양가 심사위원회의 심의·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에 분양가 상한제가 확대 도입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가 올해 10, 11월 집중적으로 분양 예정인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을 분양가 상한제 적용의 주요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확대 적용 시기와 기준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새샘 iamsam@donga.com·유원모 기자}

정부가 민간택지에 짓는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검토하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8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분양가 상한제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정 요건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실시 방법까지 밝혔다. 지난달 26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고분양가를 관리하는데 그 실효성이 한계에 이르렀다”며 “다른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고 답한 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다. 공공택지에서 민간택지로 분양가 상한제가 확대 적용되면 주변 시세보다 싼 ‘로또 아파트’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적으론 아파트 공급 부족을 초래할 공산이 크다. 분양가 상한제는 새 아파트 분양가를 감정평가 된 땅값(택지비)에 정부가 정한 건축비를 더한 기준금액 이하로 제한하는 제도다. 민간 아파트도 공공택지의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지방자치단체 분양가 심사위원회의 심의·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 중에 분양가 상한제가 확대 도입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부가 올해 10~11월 집중적으로 분양 예정인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을 분양가 상한제 적용의 주요 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시장 상황을 지켜보며 확대 적용 시기와 기준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내년 5월부터 전국의 100채 이상 모든 공동주택은 관리비 명세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다고 4일 밝혔다. 지금까지 관리비 공개 의무 대상은 300채 이상 공동주택이거나 150채 이상이면서 승강기 설치 또는 중앙난방(지역난방 포함) 방식의 공동주택, 150채 이상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관리비 집행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의무 공개 대상을 100채 이상 모든 공동주택으로 확대했다. 제도 도입 초기인 점을 감안해 47개 세분류 공개 항목 중에서 인건비, 제세공과금, 전기료, 수도료, 장기수선 충당금 등 21개 항목만 공개하면 된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올 3분기(7∼9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 총 3만9000여 채가 분양에 나선다.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물량이 비규제 지역에 몰려 있다. 4일 부동산시장 분석업체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7∼9월 수도권 분양물량은 총 3만8913채다. 투기지구, 조정대상지역 등 규제에 묶이지 않는 지역의 물량은 전체의 59.1%인 2만2991채다. 지역별로 보면 전 지역이 규제지역인 서울을 제외하고 경기와 인천 일대의 분양 물량이 많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아무래도 규제지역은 각종 제한과 청약 경쟁으로 진입장벽이 높다”면서 “비규제 지역은 대출, 청약자격 등의 진입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아 실수요자들의 접근이 수월하다”고 말했다. 분당, 판교와 인접한 경기 광주시에서는 포스코건설과 GS건설이 분양에 나선다. 포스코건설은 광주시 오포읍에서 1396채 규모의 오포 더샵 센트럴포레를, GS건설 컨소시엄은 광주시 역동에서 1031채 규모의 광주역 자연&자이를 7월 중 분양할 계획이다. 경강선 개통으로 판교, 강남 등으로 이동하기 쉬워졌고 서울세종고속도로 오포 나들목(IC)이 개통되면 차량 교통도 더욱 좋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정비사업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포스코건설은 경기 수원시 조원동에서 수원111-4구역을 재개발해 짓는 더샵 아파트 666채를 9월에, GS건설 컨소시엄은 의정부시 중앙생활권2구역에 2472채를 짓고 이 중 1122채를 8월경 분양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정의는 무적의 칼이니 이로써 하늘에 거스르는 악마와 나라를 도적질하는 적을 한 손으로 무찌르라…. 육탄혈전(肉彈血戰)으로 독립을 완성할지어다.” 1919년 3·1운동이 펼쳐질 당시 만주 지역에서 공표한 대한독립선언서(일명 무오독립선언서)의 내용이다. 민족대표 33인이 국내에서 작성한 기미독립선언서가 주로 외교적 내용에 치중돼 있는 것과 달리, 강력한 무장투쟁 독립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선언서가 주목 받는 이유는 내용뿐 아니라 작성 시기 때문이다. 3·1운동 관련 독립선언서 가운데 가장 빠른 1919년 2월(음력 1918년 12월)에 제작돼 무오독립선언서라는 별칭을 얻었다. 도쿄 2·8독립선언서와 국내 기미독립선언서에 영향을 줬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대한독립선언서의 작성 시기가 기존 통설과 달리 1919년 3월 11일(음력 2월 10일)이란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성순 단국대 교수는 지난달 28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학술대회에서 공개한 논문 ‘1919년 대한독립의군부와 길림군정사의 역사적 의미’에서 “1919년 대한독립의군부의 핵심 일원이던 지산 정원택(1890∼1971)이 남긴 ‘지산외유일지’에서 1919년 음력 2월 10일 즉, 1919년 3월 11일 대한독립선언서가 만들어졌다는 내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동안 작성 시기를 혼동해 무오독립선언서로 불러 온 용어에 대해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산외유일지에는 1919년 1∼3월 긴박했던 만주 독립운동가들의 움직임이 음력 날짜와 함께 상세하게 적혀 있다. 1919년 1월 24일(음력 1918년 12월 20일) 정원택은 신규식(1879∼1922)으로부터 한 통의 밀서를 전달 받는다. “파리강화회의에 맞춰 국내외 동지들이 독립운동을 추진하고 있으므로 만주에서도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정원택은 이 밀서를 받아들고, 여준(1862∼1932)을 찾아간다. 여준은 서간도의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지내고, 생계회 부민단 등 각종 독립운동단체를 이끈 만주지역 실질적 지도자였다. 여준은 비밀리에 독립운동가들을 규합한 끝에 1919년 2월 27일(음력 1월 27일) 자신의 집에서 조소앙, 김좌진 등과 대한독립의군부를 조직한다. 여준이 총재를 맡고, 군무에 김좌진, 정원택은 서무를 담당했다. 3월 1일(음력 1월 29일) 정원택은 “오후에 상하이로부터 온 전보를 접하니, 한성이 이미 움직인다고 했다”고 기록했다. 이어 3월 2일(음력 2월 1일) “조소앙과 상의해 선언서를 기초했다”는 내용에 이어 3월 11일(음력 2월 10일) “선언서 4000부를 석판으로 인쇄해 서북간도와 상하이, 일본 등 각국에 우편으로 발송했다”는 활동이 날짜와 함께 정확히 적혀 있다. 박 교수는 “대한독립선언서에는 ‘1919년 2월’이라고만 적혀 있고, 관련 사료가 부족하다 보니 무오년에 발표했다는 오해가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한독립선언서를 태동시킨 대한독립의군부는 선언에 그치지 않고, 곧바로 군사단체인 길림군정사로 확대·개편한다. 이후 대한정의단과 합쳐져 북로군정사를 결성해 이듬해인 1920년 한국 독립전쟁사에 길이 남을 청산리대첩의 승리를 이끈다. 박 교수는 “대한독립선언서에 담긴 무장투쟁정신은 훗날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광복군으로까지 이어졌다”며 “그동안 부족했던 만주지역의 독립운동사 연구가 활발해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에는 빗살무늬 토기를 닮은 독특한 건물이 있다. 도자기 컬렉션으로 유명한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이다. 2009년 ‘도심 속 열린 문화 공간’을 지향하며 개관한 지 10주년을 맞은 이곳이 최근 특별전 ‘10년의 기록 그리고 새로운 이야기’를 연다. 그동안 신사분관에서 열린 크고 작은 특별전 36회 가운데 관람객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13개 전시에 등장했던 유물을 엄선해 선보인다. 간송미술관, 호암미술관과 함께 ‘한국 3대 사립박물관’으로 불리는 호림박물관. 지난달 28일 신사분관 내부로 들어가니 2층과 3층 전시장 입구에는 각각 높이만 40cm가 넘는 조선시대 백자대호와 고려시대 청자대호를 마주할 수 있었다. 유현진 학예연구실 팀장은 “높이가 48cm이고, 폭이 50cm가 넘는 청자대호는 국내에서 가장 큰 청자로 알려져 있다”며 “달 항아리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백자대호는 조선 백자의 도자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도자는 물론 회화와 전적(典籍), 각종 공예품 등 호림박물관의 화려한 컬렉션을 즐길 수 있다. 대표적으로 초조대장경으로 불리는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17’(국보 268호)이 출품됐다. 이 유물은 2011년 초조대장경 간행 1000주년을 맞아 열린 특별전 ‘천년의 기다림, 초조대장경’에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국내 현존하는 초조대장경 목판본은 300여 권에 불과한데, 이 가운데 100여 점을 호림박물관이 수집해 ‘국내 최대 초조대장경 소장기관’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밖에 국내에 10여 점만 전해지는 고려 불화 가운데 1점인 ‘수월관음도’(보물 1903호)와 고려시대 화려한 불경 제작 문화를 알려주는 ‘백지묵서묘법연화경’(국보 제211호) 등 국보 2건과 보물 7건을 포함한 유물 95건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유 팀장은 “최근 10년간 특히 사랑을 받은 전시는 고려청자, 백자호, 민화 특별전이었다”며 “앞으로는 문화재와 현대미술을 접목한 전시를 기획하고, 내년부터는 연중 민화전을 개최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인류는 언제부터 술을 마셨을까. 각종 문헌에 술을 먹고 잔치를 벌였다는 기록들은 남아 있지만 금세 휘발돼 사라지는 알코올의 특성상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마땅치 않다. 하지만 고된 발굴 현장에서 술 한잔으로 피로를 씻어내는 고고학자들은 기어코 인류가 술을 마신 흔적을 찾아낸다. 최근 중국 허난성의 신석기 유적지인 자후에서는 한 토기가 발견됐다. 분석 결과 알코올은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았지만 쌀에 꿀과 과일을 섞은 발효주의 성분이 발견됐다. 토기의 밀랍에 섞여 있던 맥주효모균이 곡물 속의 전분과 결합한 채 7000년이라는 시간을 견뎌왔기 때문이다. 덕분에 고대인이 즐겨먹던 막걸리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 됐다. 고고학자인 저자는 유물에 새겨진 흙을 털어내고 깨진 조각을 이어 붙여 유물이 존재했던 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 고고학의 매력을 소개한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서 보여주는 흥미진진한 모험이나 알 수 없는 연대기만 잔뜩 나열된 고고학 개론서와 같은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에 조개껍데기를 통해 젓갈의 맛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형체만 남은 석상에서 화려했던 초원 기마민족의 색을 재현해 내는 현장으로 초대한다. 세계 고고학 자료의 절반 이상은 무덤과 관련돼 있다고 한다. 네안데르탈인 이래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영생 혹은 저세상에서의 행복을 바라며 정성껏 시신을 안치했기 때문이다. 경남 창원시 다호리 지역에서 발견된 2000년 전 변한 사람들의 통나무관이 대표적인 예다. 하늘로 솟는 나무처럼 죽은 자들 역시 하늘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시베리아 일대에서 순록을 치며 사는 에벤키 사람들은 나무에 관을 매달았다. 나무의 열매처럼 다시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고고학에 국한되지 않고 예술과 음악, 문학 심지어 한의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책을 읽고 나면 무심코 지나쳤던 교과서나 박물관 속 유물과 유적이 새롭게 느껴질 것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아! 하늘에서 너를 빼앗아감이 어찌 그렇게도 빠른가? 장차 우리나라를 두드려서 망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인가.” 1830년 21세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들 효명세자(1809∼1830)에게 조선의 제23대 임금 순조는 이 같은 제문(祭文)을 써내려간다. 이 글 속에는 아들을 먼저 잃은 아버지의 슬픔에 더해 왕실의 희망이 사라진 안타까움이 배어 있다. 순조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 정조를 여읜 후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과 외척세력 속에서 힘겹게 왕위를 지켜가고 있었다. 아들이 19세가 되자 순조는 대리청정을 통해 공식적으로 정사를 돌보게 했다. 3년여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기간 동안 정치 문학 회화 건축 궁중잔치와 궁중정재(呈才) 분야에서 이룩한 효명세자의 업적은 또 한 명의 뛰어난 문예군주를 연상케 했다. 2016년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이 연기한 이영이 바로 효명세자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효명세자의 삶을 조명하는 특별전 ‘문예군주를 꿈꾼 왕세자, 효명’이 28일부터 열린다. ‘효명세자 동궁일기’와 대리청정 당시 기록인 ‘대청시일록’, 효명세자 관례(성년식)를 기록한 그림 ‘수교도’, 효명세자가 쓴 시의 초고본인 ‘경헌시초’ 등 유물 110여 건을 선보인다. 1828∼1830년 무렵의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그림인 ‘동궐도’에 묘사된 효명세자의 거처와 창작 공간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다음 달 11일과 9월 5일 특별 강연이 열리고, 다음 달 14일에는 궁중정재 공연도 열린다. 9월 22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8세기의 잊혀진 실학자 유금(1741∼1788). 유득공의 숙부이기도 한 그는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의 한계로 인해 관직에서 재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오늘날의 펌프와 같은 다양한 기계를 제작하는 등 뛰어난 과학자이자 발명가였던 그는 1787년 동아시아 과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발명품을 내놓는다. 바로 서양식 천문시계인 ‘아스트롤라베’를 조선식으로 해석해 만든 ‘혼개통헌의(渾蓋通憲儀)’다. 문화재청은 18세기 조선의 뛰어난 천문학 수준을 보여주는 ‘혼개통헌의’를 보물 제2032호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유금이 만든 혼개통헌의는 동아시아에 현존하는 유일한 실물 제작 사례로 알려져 있다. 혼개통헌의는 17세기 초 명나라 이지조(李之藻·1565∼1630)가 이슬람 천문시계인 아스트롤라베 해설서를 번역한 ‘혼개통헌도설’을 편찬하면서 동아시아에 알려졌다. 기구는 별의 위치와 시간을 확인하는 원반형의 모체판(母體板)과 별을 관측하는 지점을 가르쳐주는 T자 모양 성좌판(聖座板)으로 구성된다. 모체판 앞면 중심 구멍에 핀으로 성좌판을 끼워 회전해 가며 사용하는 방식이다. 모체판 앞뒷면에 걸쳐 ‘건륭 정미년에 약암 윤선생을 위해 만들다’라는 명문과 ‘유씨금’이라는 인장이 새겨져 있어 1787년에 유금이 만든 것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인 1930년경 일본으로 유출돼 한동안 행방이 묘연했다. 이후 2002년 일본 학계에서 알려지며 다시 세상에 등장했고, 2007년 원로 과학사학자인 전상운 전 성신여대 총장(1928∼2018)의 노력으로 국내로 환수했다. 현재 경기 남양주시 실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유금은 혼개통헌의에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독자적인 별을 그려 넣는 등 서양 천문지식을 정확히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조선 지식인의 창의성을 발휘했다”고 밝혔다. 한편 혼개통헌의 말고도 문화재 9건이 이날 보물로 지정됐다. 불교 문화재로는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김천 직지사 괘불도’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이 보물이 됐다. 이 밖에 ‘도은선생시집 권1∼2’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 31∼39’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 등도 함께 지정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통 넓은 한복 바지를 입은 여성이나 치마저고리를 입은 남성도 다음 달부터 고궁과 조선 왕릉에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 내용을 받아들여 성별과 다른 한복을 입어도 고궁과 조선 왕릉 무료입장이 가능하도록 바꾼 ‘궁·능 한복 착용자 무료 관람 가이드라인’을 다음 달 1일부터 적용한다고 26일 밝혔다. 현행 가이드라인은 남성은 남성 한복, 여성은 여성 한복 착용자만 무료 관람 대상으로 인정한다. 상·하의를 모두 입어야 하며, 전통한복이든 생활한복이든 관계없다. 하지만 일부 민간단체가 성에 맞춘 착용 가이드라인은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반발했다. 이에 인권위는 생물학적 성별에 맞는 복장 착용이 오늘날 일반 규범으로 인정되기 어려운 차별이라며 지난달 문화재청에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문화재청은 이 같은 권고를 수용해 관련 내용을 개정했다. 다만 상·하의를 갖춰 입어야 하고, 두루마기만 걸친 경우는 무료입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과도한 노출 역시 금지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고미술 전문 갤러리인 다보성전시관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국의 미(美)’ 특별전을 개최한다. 서울 종로구 다보성전시관 1, 2층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다보성이 수집한 도자기, 금속공예품, 목기, 민속품, 서화 등 1000여 점을 선보인다. 눈에 띄는 작품은 처음 공개되는 13세기 고려시대의 ‘청자상감죽절표형주전자’다. 주로 음각과 양각 기법으로 마디를 새기는 표형주전자들과 달리 백토를 사용해 흰색효과를 내는 백상감이 적용돼 독특한 외형을 자랑한다. 북한의 중앙역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과 동일한 작품인 ‘백자음각연화조문투각합’도 주목할 만하다. 뛰어난 조형미와 동자승을 연상케 하는 미소가 특징인 통일신라시대의 ‘금동여래입상’과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린 노년의 곽자의(697∼781)가 호화로운 저택에서 가족과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담은 궁중화 ‘곽분양행락도’ 등 희귀한 작품들을 대거 만날 수 있다. 다보성전시관은 3·1운동을 주도한 천도교 중앙대교당(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6호) 옆 수운회관에 있다. 중앙대교당은 손병희의 주관으로 1918년 공사를 시작해 1921년 준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음 달 10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걱정거리 중 하나는 날로 부상하는 만주의 후금(청나라) 세력이었다. 랴오둥반도를 차지한 이들로 인해 명나라로 가기 위한 육로길이 막혀 버렸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1621년(광해군 13년) 사신들을 바닷길로 건네 보내는 ‘해로사행(海路使行)’을 개발한다. 이런 역사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광해군일기 등 왕실의 공식 사료가 아니라 당시 해로사행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최응허(1572∼1636)의 ‘조천일기(朝天日記)’다. 한양에서부터 베이징에 도착해 평안도 안주로 되돌아올 때까지의 9개월 여정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조천일기는 지난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조사를 마치고 일반에 공개했다. 이처럼 개인일기는 당시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사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글이 아니기에 정형화돼 있지 않고, 행서(行書)와 초서(草書) 등이 섞여 있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최근 5년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조선시대 개인일기 1500여 편을 지역별로 모아 정리하는 학술사업을 펼쳤다. 28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이 같은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학술 심포지엄 ‘조선시대 개인일기의 가치와 활용’이 열린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일기의 사료적 가치와 문화재 지정 기준, 일기를 편력(編曆), 표해록, 상소일기 등 11종의 세부 기준으로 새롭게 정리한 연구 등을 공개한다. ‘조선시대 개인일기의 종류와 기록자 계층’의 논문을 공개하는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최근 북한 학계에서 임꺽정의 활동을 다룬 조선시대의 일기를 발견하기도 했다”며 “일기의 사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해제, 번역 등 기초 작업이 더 충실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고려시대 청자 문화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북 진안골 청자 가마터가 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전북 진안군 ‘도통리 청자요지’(사진)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24일 밝혔다. 청자요지는 10∼11세기 청자의 초기 형태를 생산한 가마터 2기로 2013년부터 5년여간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발견했다. 길이가 43m인 2호 가마는 지금까지 확인된 호남 최대 규모의 초기 청자 가마다. 조사 결과 벽돌가마(전축요·塼築窯)에서 진흙가마(토축요·土築窯)로 변화하는 한반도 초기 청자 가마 양상이 확인돼 학술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에메랄드빛 하늘에 연분홍색의 구름이 떠다닌다. 그 사이로 피리를 부는 여인 ‘비천(飛天)’이 있다. 고구려의 조우관(鳥羽冠)을 닮은 금관 장식을 머리에 쓰고 있지만 머리색과 눈동자는 짙은 푸른색이다. 한국 전통 회화 같으면서도 서양식 화풍이 배어 있다. 가로 6m, 세로 9m가 넘는 크기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그림은 1915년 조선의 상징과도 같던 경복궁 한가운데에 걸렸다. 일제가 경복궁 근정전 동측의 동궁(東宮) 일대를 허물고 세운 조선총독부 박물관의 1층 천장 벽화다. 광복 이후에도 전통공예관, 학술예술원, 경복궁 관리사무소 등으로 사용된 옛 총독부 박물관은 1995년 진행된 경복궁 복원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과 함께 철거됐다. 다만 ‘비천’은 뛰어난 예술적 가치 덕분에 철거 위기를 모면하고, 20년 넘게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보관 중이다. 하지만 작가와 제작 의도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아 학계의 과제로 남아 있었다. 최근 비천의 작가와 작품의 탄생 배경을 알려주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진행한 ‘일제강점기 공공건물 벽화’ 조사 사업을 통해 일본의 근대 화가 안도 도이치로(1882∼1967)와 다나카 료(1884∼1974)가 비천의 작가임을 확인했다”며 “1915년 조선총독부의 보고서에서 고구려 강서대묘 벽화를 모티브로 한 사실도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1915년은 한일 강제병합이 일어난 지 5년째 된 해다. 당시 조선총독부 통감이던 데라우치 마사타케(1852∼1919)는 경복궁 궐내에 끔찍한 계획을 세운다. 식민 지배의 성과를 홍보하는 조선물산공진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하고, 이때 만든 공진회 미술관 건물을 박물관 용도로 영구히 경복궁에 두도록 한 것이다. 건물의 상징과도 같은 1층 천장 벽화를 무엇으로 채울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총독부는 1912년 일본 도쿄제국대학 연구진이 발굴 조사한 평안도 남포의 강서대묘 벽화에서 모티브를 따올 것을 지시한다. 정미연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일제가 한반도에서 펼친 고적조사사업의 정당성과 성과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시대 배경을 고려하면 주목할 만한 사실이 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에 연합군 측으로 참전한 일제는 독일 등 열강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며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면모를 공고히 한다. 미술사학자인 김영순 전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일제는 숙원사업이던 만주 진출을 위해 육군성 산하에 만주철도조사를 설치하는 등 치밀한 계획에 나선 사실이 최근 일본 측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며 “만주를 호령한 바 있는 고구려 역사를 활용하기 위해 강서대묘의 벽화를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전 관장은 지난해 일본 현지에서 안도 도이치로의 유족을 만나 소장 중인 ‘비천’의 습작을 확인했다. 논란이 분분했던 비천의 작가를 찾아낼 수 있던 배경이다. 안도는 일본 근대 미술의 거장 와다 에이사쿠(1874∼1959)의 제자로, 도쿄미술학교 교수를 지냈다. 김 전 관장은 “간토(關東)대지진(1923년)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대공습(1945년) 등으로 인해 일본에서도 다이쇼 시대(1912∼1926)의 공공 건축물 벽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비천은 근대 미술을 연구하는 귀한 자료”라며 “부정적인 유산이지만 이를 정확히 연구하고 기억하는 것이야말로 식민 역사를 올바로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가족 모임에서 저자가 내뱉은 한마디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시가 식구들 대부분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일부는 눈물까지 쏟아냈다. 도대체 얼마나 극악무도하고, 패륜적인 이야기였을까. “우리 모두 ‘아주버님’ ‘형님’ ‘도련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에 ‘님’자를 붙여서 불러보면 어떨까요?” 모든 것의 시작을 부른 말이었다. 늘 의문이 들던 저자였다. 시가의 모든 이들에게는 ‘님’으로 끝나는 존칭이 붙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막내며느리인 자신에게는 존중의 의미를 담은 호칭을 불러주지 않았다. 제수씨 아니면 동서, 혹은 이름을 부르는 식이었다. 가부장적이지도 않았고, 늘 자상하던 시부모님이었기 때문에 저자는 흔쾌히 이 같은 제안을 수락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밖 일들만 다가왔다. 특히 저자와 동갑이었던 남편 형의 부인인 ‘형님’ 반발이 컸다. 험악한 말이 오고가며 “아랫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아주버님 일갈까지. 사회 관습에 기대던 이들과의 다툼 끝에 저자는 새로운 방식을 준비한다. 저자는 지난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념 대회에 참가했다.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여성차별적인 ‘표준 언어 예절’ 가족 관계 호칭을 개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저자의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고, 새로운 원동력을 얻은 저자는 지금까지 작지만 큰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 이 책은 가족 내에서 실제로 호칭 개선을 위해 싸워 본 저자의 여정을 담아냈다. 가족 호칭 문제를 들여다보며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서열화된 언어문화까지 짚어낸다. 불평등한 친인척 호칭 문제는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4월 동아일보 연중기획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어색한 친인척 호칭 편’이 보도돼 화제를 모았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같은 해 9월 호칭 개선 내용을 담은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을 발표하기도 했다. 늘 쓰는 가족 호칭의 어원을 뜯어보면 시대착오적인 요소가 강하게 배어있다. 손위 형수가 손아래 시동생을 부르는 ‘도련님’은 조선시대 하인이 양반집 아들을 부를 때 사용했다. ‘아가씨’ 역시 종이 주인집 아씨를 부를 때 쓰던 말이고, ‘올케’ 어원은 오라비의 계집을 뜻한다. 저자는 이처럼 가부장 문화에 바탕을 둔 수직적 서열구조로 만들어진 호칭들이 진정한 소통을 막는다고 지적한다. 남성이 윗사람으로 여겨지는 호칭 문화가 바뀌어야 가족 모두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 더 나아가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민정님!” 올해 1월 저자는 시부모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1년여 투쟁 끝에 시작한 가족 내 작은 변화다. 호칭 문제를 넘어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오랜 유랑생활을 한 비운의 고려시대 승탑(僧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이 10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문화재청은 “20일 문화재위원회 건축문화재분과 회의에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을 원래 위치인 강원 원주시 법천사지로 이전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고려 문종 때 국사(國師)를 지낸 승려 해린(984∼1070)의 사리를 봉안한 지광국사탑은 독특한 구조와 화려한 조각, 뛰어난 장엄 장식으로 고려 승탑의 백미로 꼽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108년간 이곳저곳을 떠돌며 겪은 수난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궤를 같이한다. 지광국사탑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문화재 수탈에 혈안이 된 일본인 손에 해체돼 법천사지를 떠났다. 당시 경성시내 명동에 있던 무라카미 병원으로 옮겨진 탑은 이듬해 서울 중구 남창동의 와다 저택 정원으로 또 이동했다. 급기야 그해 5월엔 일본 오사카로 반출되기까지 했다. 조선총독부의 반환 요청으로 1912년 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뜬금없이 경복궁에 자리 잡았다. 광복 뒤에도 시련은 이어졌다.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크게 파손됐고, 1957년 치밀한 고증 없이 급하게 복원됐다. 이후 1990년 국립고궁박물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뒤뜰로 이전해 20여 년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2005∼2015년 진행한 문화재 특별 안전점검과 정밀안전진단 결과, 탑 곳곳에 균열과 탈락 현상 등을 확인했다. 결국 문화재위원회는 2015년 9월 탑의 전면 해체·보존처리를 결정했다. 2016년 5월부터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탑을 보존 처리하고 있다. 연구소는 올해 말까지 보존 작업을 완료할 계획. 현재 법천사지에는 108년 전 이별한 지광국사 탑비(국보 제59호)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문화재청은 “탑을 원래 자리에 전각을 세워 복원하거나 법천사지 부지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전시관 내부에 두는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며 “실제 이전은 2021년 정도가 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가족 모임에서 저자가 내뱉은 한 마디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시가 식구들 대부분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일부는 눈물까지 쏟아냈다. 도대체 얼마나 극악무도하고, 패륜적인 이야기였을까. “우리 모두 ‘아주버님’ ‘형님’ ‘도련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에 ‘님’자를 붙여서 불러보면 어떨까요?” 모든 것의 시작을 부른 말이었다. 늘 의문이 들던 저자였다. 시가의 모든 이들에게는 ‘님’으로 끝나는 존칭이 붙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막내며느리인 자신에게는 존중의 의미를 담은 호칭을 불러주지 않았다. 제수씨 아니면 동서, 혹은 이름을 부르는 식이었다. 가부장적이지도 않았고, 늘 자상하던 시부모님이었기 때문에 저자는 흔쾌히 이 같은 제안을 수락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밖 일들만 다가왔다. 특히 저자와 동갑이었던 남편 형의 부인인 ‘형님’ 반발이 컸다. 험악한 말이 오고가며 “아랫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아주버님 일갈까지. 사회 관습에 기대던 이들과의 다툼 끝에 저자는 새로운 방식을 준비한다. 저자는 지난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념 대회에 참가했다.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여성차별적인 ‘표준 언어 예절’ 가족 관계 호칭을 개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저자의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고, 새로운 원동력을 얻은 저자는 지금까지 작지만 큰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 이 책은 가족 내에서 실제로 호칭 개선을 위해 싸워 본 저자의 여정을 담아냈다. 가족 호칭 문제를 들여다보며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서열화된 언어문화까지 짚어낸다. 불평등한 친인척 호칭 문제는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4월 동아일보 연중기획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어색한 친인척 호칭 편’이 보도돼 화제를 모았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같은 해 9월 호칭 개선 내용을 담은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을 발표하기도 했다. 늘 쓰는 가족 호칭의 어원을 뜯어보면 시대착오적인 요소가 강하게 베어있다. 손위 형수가 손아래 시동생을 부르는 ‘도련님’은 조선시대 하인이 양반집 아들을 부를 때 사용했다. ‘아가씨’ 역시 종이 주인집 아씨를 부를 때 쓰던 말이고, ‘올케’ 어원은 오라비의 계집을 뜻한다. 저자는 이처럼 가부장 문화에 바탕을 둔 수직적 서열구조로 만들어진 호칭들이 진정한 소통을 막는다고 지적한다. 남성이 윗사람으로 여겨지는 호칭 문화가 바뀌어야 가족 모두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 더 나아가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민정님!” 올해 1월 저자는 시부모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1년여 투쟁 끝에 시작한 가족 내 작은 변화다. 호칭 문제를 넘어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내일의 상참(常參)에 빈대(賓對)를 겸하여 설행하겠다. 처소는 중화궁(重華宮)으로 하겠다.”(승정원일기 순조 11년 윤3월 9일) 조선 후기 왕실에서 작성한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는 ‘중화궁’이라는 장소가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19세기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1828년)에선 중화궁을 찾을 수 없다. 과연 실제로 존재했던 곳일까. 이 수수께끼를 풀어줄 귀한 유물이 최근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9일 “조선왕실 유물로 추정되는 ‘중화궁인(重華宮印)’ 인장 1점과 ‘백자 이동궁(履洞宮)명 사각호’ 도자기 1점을 올해 3월 미국 뉴욕 경매에서 국내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이번 환수는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가 후원했다. 중화궁인의 손잡이는 서수(瑞獸·기린을 닮은 상서로운 동물) 모양이고, 도장을 찍는 면인 인면(印面)에는 전서와 해서체로 글자를 새겼다. 7.2cm 정사각형 크기에 높이는 6.7cm.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서울대 규장각에서 소장하는 ‘당시품휘(唐詩品彙)’ 서적에 같은 모양의 인장이 있어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며 “중화궁은 특정 건물이라기보다 창덕궁 동쪽 일대를 뜻하는 권역 개념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백자 이동궁명 사각호는 바닥에 청화기법으로 ‘이동궁(履洞宮)’이라는 푸른색 글자가 적혀 있다. 이동궁은 정조의 딸인 숙선옹주(1793∼1836)가 ‘이동’으로 시집갔다는 기록이 있어 옹주의 궁가일 가능성이 크다. 최경화 서강대 전인교육원 강사는 “조선백자 가운데 청화(靑華) 글씨가 확인된 사례는 이동궁 말고는 흥선대원군 거처인 운현궁(雲峴宮)과 경복궁 재수합(齋壽閤) 정도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미리 준비한 천을 머리에 갖다대니 금세 꽃 한 송이를 닮은 머리띠가 생겨났다. 눈빛과 손짓을 몇 번 주고받더니 “얼쑤”라는 추임새와 함께 장단이 시작됐다. 소고와 꽹과리 장구 등을 둘러멘 단원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자 실내 공연장은 어느새 드넓은 야외마당처럼 신명으로 채워졌다. 호남 서부 평야지대인 전북 익산, 김제, 정읍, 고창 등지에서 전승되는 호남우도농악의 굿판이 펼쳐진 것. 그러더니 단원들 몇 명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이제는 한 편의 신파극을 선보이며 뮤지컬 무대로 변신했다.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 공연장에서 만난 연희단 팔산대의 모습은 종합예술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이들은 20, 21일 서울 중구 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열리는 우리 시대 마지막 예기(藝妓)인 장금도(1928∼2019) 유금선 명인(1929∼2014)의 추모 공연 ‘몌별 해어화’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몌별(袂別)’은 ‘소매를 잡고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별’을 뜻하는 말이다. 김운태 연희단 팔산대 단장(56)은 “옛 권번(券番)처럼 우리 단원들도 춤과 노래, 무대에서 숨쉬는 방법까지 수년에 걸친 합숙 연습을 통해 갈고 닦고 있다”며 “권번에서 가무를 배운 마지막 예기인 장금도 유금선 명인에게 배운 전통 그대로 신명나는 판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까운 과거라 오히려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고 잊히는 경우가 있다. 근현대 예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예기(예술인 기생)와 권번(예기 조합) 문화가 대표적이다. 예기는 술 따르는 기생을 일컫는 나무기생과 달리 수년간 음악, 춤, 예절 훈련을 통해 예술가 정신을 간직한 이들을 가리킨다. 채(회초리)를 맞으며 제대로 학습한 생짜(기생)라는 뜻에서 ‘채 맞은 생짜’라고도 불렀다. 전북 지역에서 큰 잔치를 벌일 때 “임방울 소리에 장금도 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던 장금도 명인은 군산 소화권번 출신으로 민살풀이춤의 대가였다. 부산 동래권번에서 입적한 유금선 명인은 춤을 부르는 구음(口音)이 탁월해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 ‘동래학춤’의 구음 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1950년대에 들어 전국 권번은 대부분 사라져 갔다. 예기의 전통 역시 명맥이 끊겼다. 그나마 1957년 전북 남원권번에서 만든 ‘호남여성농악단’이 1979년까지 유지됐다. 연희단 팔산대는 호남여성농악단장의 아들이자 막내 단원이던 김 단장이 2011년 전통의 부활을 선언하며 시작됐다. 농악단에서 활동하던 옛 단원뿐 아니라 서울 명문대에서 판소리, 무용, 기악 등을 전공한 청춘들까지 불러 모았다. 옛 권번처럼 경기 고양시에 숙소를 만들어 관객의 박수를 받기 위한 구슬땀을 함께 흘리고 있다. 장금도 유금선 두 명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들의 스승을 자처했다. 김 단장은 “오히려 고향에서는 예기 출신이라는 점을 숨기느라 명인들의 춤과 노래가 제대로 전승되기 힘들었다”며 “두 분께서 늘 ‘젖어 있어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두 명인과 함께 마지막 예기 3인방으로 여겨지는 권명화 명인(85)의 소고춤 공연도 선보인다. ‘달구벌춤의 봉우리’로 불리는 권 명인은 대구의 대동권번 출신으로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춤 보유자다.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먼저 가신 두 분을 기리고, 홀로 남은 예기의 증인을 주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연을 준비했다”며 “올해 최고 맛있는 판이라고 감히 자부한다”고 말했다. 3만 원.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