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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전 대통령(88) 측이 자신이 거주하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 대한 공매 절차를 진행 중인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낸 사실이 6일 확인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장낙원)는 지난달 18일 전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씨(80) 등 2명이 캠코를 상대로 낸 공매처분 취소소송을 심리하고 있다. 또 같은 날 공매 절차를 일단 멈춰달라며 낸 집행정지 신청도 심리 중이다. 집행정지 사건은 지난달 27일 심문을 마쳤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 씨 등은 1996년 대법원 판결로 전 전 대통령에게 부과된 2205억 원의 추징금 중 1055억 원의 미납금을 환수하기 위해 연희동 자택을 공매하는 것은 위법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가 범죄수익이 발생한 1980년 이전에 연희동 자택을 취득했으므로 이른바 ‘전두환추징법’에 따라 압류할 수 있는 범죄 행위자의 제3자 재산이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미납금 회수를 위해 캠코에 의뢰해 연희동 자택의 공매 절차를 진행했다. 세 차례 공매가 진행했으나 모두 유찰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명박 전 대통령(78)이 6일 법원에서 보석 허가를 받고 구치소에서 석방됐다. 다스의 회삿돈 349억여 원을 횡령하고 뇌물 111억여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지난해 3월 22일 구속 수감된 지 349일 만이다. 지금까지 구속됐던 전두환 노태우 박근혜 전 대통령 등 4명의 전직 대통령 중 처음 보석으로 풀려난 것이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이 전 대통령이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요청한 보석 청구를 받아들였다. 이날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석방된 이 전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10월 5일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뒤 올 1월 29일 항소심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했다. 법원 인사로 지난달 14일 항소심을 새로 맡게 된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 구속만기인 4월 8일까지 선고를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조건부 보석을 허가했다. 병보석은 허용하지 않았다. 보석 조건은 ‘자택 구금’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자택에만 머물러야 한다. 법원의 허가 없이는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없다. 배우자와 직계 혈족, 직계 혈족의 배우자, 변호인 외에는 만나거나 통화를 할 수 없다. 이 조건을 어기면 이 전 대통령은 재수감된다. 이호재 hoho@donga.com·김예지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 기소하는 등 책임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은 점을 감안해서 오늘 기소 범위는 최소화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5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58) 등 전·현직 고위법관 10명을 재판 개입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직후 이렇게 밝혔다. 또 지난해 6월부터 8개월 넘게 수사한 결과 범죄의 중대성과 적극적 가담 여부, 진상 규명에 기여한 정도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해 기소 대상자를 선별했다고 설명했다.○ 전·현직 대법관 불기소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법원행정처 처장과 차장을 각각 지낸 차한성 전 대법관(65)과 권순일 대법관(60)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양 전 대법원장 공소장에는 차 전 대법관이 2013년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재판에 개입했고, 권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과 공모해 ‘물의 야기 법관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돼 있다. 검찰 관계자는 “차 전 대법관과 권 대법관이 법원행정처 보고 라인이었던 것은 분명하나 범행이 구체화하고 본격화해 심각한 수준에 이르기 전에 퇴직하거나 보직 이동 등으로 범행에서 이탈한 점 등을 고려해 기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검찰은 윗선의 지시를 받고 사법행정권 남용에 수동적으로 가담한 정다주(43) 박상언 부장판사(42) 등 전직 법원행정처 심의관들을 모두 불기소했다. ○ “국민의당 리베이트 사건 재판 정보 유출” 이 전 실장의 공소장에는 옛 국민의당(현 바른미래당) 소속 박선숙, 김수민 의원의 선거비용 리베이트 의혹 사건 재판 정보를 유출하기 위해 부당한 지시를 한 혐의가 포함됐다. 박, 김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광고업체로부터 리베이트 2억여 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로 2016년 8월 기소됐다. 하지만 1심과 2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당시 이 전 실장은 2016년 11월 서울서부지법 판사에게 연락해 박, 김 의원에 대해 “피고인 측 변명이 완전히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재판부의 심증을 파악해 국민의당 국회의원에게 전달했다는 게 검찰 수사 결과다. 이 전 실장의 묵비권 행사로 어려움이 있지만 검찰은 청탁한 국회의원이 누군지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은 또 재판 청탁 의혹 등에 연루된 여야 정치인들의 기소 여부를 올 상반기 내에 결정할 방침이다.○ 성창호 부장판사 등 영장전담 2명 기소 검찰은 ‘댓글 여론 조작’ 공모 등의 혐의로 김경수 경남도지사(52·수감 중)를 법정 구속한 성창호 부장판사(47) 등 전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2명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성 부장판사는 2016년 영장전담 부장판사로 근무하면서 ‘정운호 게이트’ 수사기록과 영장청구서 등 수사 기밀을 신광렬 당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54)에게 누설한 혐의를 받고 있다. 신 전 부장판사로부터 기밀을 전달받은 법원행정처는 ‘정운호 게이트’에 연루된 법관과 가족 등 31명의 명단을 불법 수집해 영장전담 재판부에 전달하면서 영장발부 심사를 더 엄격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성 부장판사는 당시 법관 가족의 계좌추적 영장을 기각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오늘이 이 사건 수사의 마지막이라고 이해하지 말라”며 “필요한 부분 수사는 계속할 것이고 추가 기소자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전주영 aimhigh@donga.com·이호재 기자}
재판 개입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수감 중)이 불구속 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법원에 요청한 보석 청구가 5일 기각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보석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이날 밝혔다. 통상적으로 법원이 보석을 인용하거나 기각할 땐 구체적인 이유를 공개하지 않는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필요하다는 양 전 대법원장 측 주장보다 증거 인멸 우려가 높다는 검찰 주장을 더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또 양 전 대법원장의 건강이 악화됐을 가능성이 낮고, 재판 개입 혐의 등의 중대성이 크다고 본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19일 보석을 신청하며 A4 용지 296쪽에 달하는 공소장 등 방대한 기록을 검토하기 위해선 불구속 재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첫 공판준비기일은 25일 오전 10시 열린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홀로 입소하게 돼 부담감도 있지만 잘하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4일 오후 2시 10분경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 대회의실. 사법연수원 50기 입소식에 참가한 유일한 입소자 조우상 씨(33)가 연수원 교수와 직원 등 30여 명 앞에서 포부를 밝혔다. 조 씨는 “(교수님들이) 제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지켜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대회의실 맨 뒤편에 앉아 있던 조 씨의 어머니는 두 손을 꼭 모은 채 해맑게 웃었다. 조 씨의 아버지는 스마트폰으로 아들의 모습을 찍었다.○ 12개 과목 중 10개 ‘나 홀로 수업’ 1971년부터 법조인을 양성해 왔던 사법연수원은 이날 마지막 입소자를 받았다. 2017년 사법시험이 폐지됐기 때문이다. 2008년 사법연수원 39기 입소 때는 역대 가장 많은 1001명이 입소했지만 이날 입소자는 조 씨 1명뿐이었다. 조 씨는 만 29세였던 2015년 제57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이듬해 8월 법무관이 아니라 사병으로 군에 입대했다. 만 30세 이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해 변호사 자격을 따야지만 법무관이 될 수 있는데 조 씨는 연수원 입소 전 입대했기 때문이다. 조 씨는 지난해 5월 군 복무를 마친 뒤 연수원에 입소해 50기가 됐다. 연수원은 2년제 과정이다. 올해 2년 차 과정을 밟는 연수원생은 지난해 3월 입소한 49기 61명, 복학생 4명 등 65명이다. 1년 차 과정을 밟는 연수원생은 조 씨 혼자다. 조 씨는 1학기 정규 강의 12개 중 10개를 교수들에게서 ‘개인 교습’을 받거나 지난해 수업을 녹화한 영상으로 수강한다. 일반 법률 과목의 경우 절대평가를 받게 된다. 선배 연수원생들은 상대평가를 받았지만 조 씨는 혼자이기 때문이다. 과목에 따라 시험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따야 통과하거나 ‘A, B, C, D’ 등급 중 한 가지를 받는 방식 등이다. 연수원 교수는 모두 33명이다. 조 씨는 취재진에게 “강의 영상을 보고 공부하는 것에 대해 불이익이라는 생각은 없다. 앞으로 ‘수료 후 얼마나 잘할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뿐”이라며 활짝 웃었다. 조 씨는 정규 강의 2개와 특별 강의를 2년 차 연수원생들과 함께 듣는다. 효율성을 고려해 내년 수업을 미리 당겨 듣는 일종의 ‘선행학습’을 하는 것이다. 2년 차 연수원생들과 함께 수강하는 강의는 같은 문제로 시험을 보지만 평가 기준은 별도다. 조 씨는 입소식 직후 ‘첫 수업’을 2년 차 연수원생들과 함께 들었다.○ 일본 사법시험도 합격 조 씨는 도쿄(東京)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졸업하고 2011년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가깝지만 먼 나라인 두 나라의 법률을 안다면 굉장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일 관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진로는 아직 고민 중이지만 한일 관련 기업 변호사나 검사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다”고 했다. 조 씨와 연수원 동기가 될 가능성이 거론됐던 한인섭 서울대 교수(60) 등 2명은 연수원 입소를 하지 않았다. 김문석 사법연수원장(60·사법연수원 13기)은 축사를 통해 “사법연수원은 이 자리에 있는 조 씨를 끝으로 새 법조인 양성을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법관연수, 국제 사법화에 초점을 맞춰 새로운 시대를 대비하겠다”고 밝혔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김경수 경남도지사(52·수감 중)를 1심 선고 당시 법정 구속한 성창호 서울동부지법 부장판사(47·사법연수원 25기)가 법원으로부터 신변보호 조치를 받았던 것으로 3일 확인됐다. 올해 법관에 대한 신변보호가 실시된 처음이자 유일한 사례다. 성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근무 당시인 올 1월 30일 ‘댓글 여론조작’ 공모 혐의로 김 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법원 측은 1심 선고 직후 성 부장판사의 출퇴근길에 법원 방호원을 동행시켜 신변보호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지사가 법정 구속된 후 성 부장판사 앞으로 서울중앙지법에 조화(弔花)가 배달되는 등 판사 개인에 대한 위협이 이어졌다. 김 지사가 소속된 더불어민주당은 성 부장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수감 중) 재직 중 대법원장 비서실 소속 판사로 근무한 이력을 언급하며 ‘사법농단 적폐세력의 조직적 반격’이라고 비판했다. 성 부장판사에 대한 법관 탄핵까지 거론하는 등 당 차원의 재판 불복 운동이 거셌다. 앞서 선고 당시 법정은 재판부를 비난하는 김 지사 지지자들의 고성으로 가득 찼고, 법원 방호원은 방청객이 법대 쪽으로 오지 못하게 제지했다. 공소 유지를 담당했던 허익범 특별검사팀 소속 관계자들도 당시 지지자들을 피해 법관 이동 통로를 이용해야 했다. 대법원은 2007년 1월 이른바 ‘석궁 테러 사건’ 이후 법관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법질서 문란 행위를 막기 위해 2008년 1월 ‘법관 신변보호 관련 내규’를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내규에 따르면 각급 법원의 신변보호 총괄책임자와 신변보호협의회는 직권 또는 판사의 요청으로 법관 신변보호 조치를 취한다. 각급 법원은 신변보호가 급박한지 등을 따져 단계별로 △개인 경호 △가족 및 자택 경호 △경찰관 파견 요청을 결정한다. 성 부장판사 소속이었던 서울중앙지법은 경찰 측에 인력 파견을 요청하지는 않았다. 성 부장판사가 신변보호를 법원 측에 직접 했는지, 서울중앙지법이 직권으로 신변보호 조치를 했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성 부장판사는 인사발령으로 지난달 25일부터 서울동부지법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법관 신변보호는 단 1건도 없었고, 2017년에는 1명뿐이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5건으로 늘어났다. 박근혜 전 대통령(67·수감 중) 국정농단 사건 1심 재판장이었던 김세윤 수원지법 부장판사(52·25기)와 배석판사 2명 등은 지난해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김 부장판사는 당시 “재판에 불만을 가진 개인이나 단체의 돌발 행동으로부터 신변보호가 필요하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했다. 정치적인 사건이 아닌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으로 찾아온 피고인이 “A 판사를 만나면 칼로 찌르겠다”는 말을 하자 A 판사는 법원 측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판결에 불만을 품은 피고인이 판사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다고 판단해 법원이 신변보호를 결정한 것이다. 법원 관계자는 “내규가 생긴 지 10년이 넘었지만 법관이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사례가 거의 없었다”면서 “최근 신변보호가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국민들이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법원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법원은 법관들에 대한 신변보호를 강화하되 국민들의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예지 yeji@donga.com·이호재 기자}
이르면 내년부터 강도, 성폭행 등 3년 이상 징역형의 중범죄를 저질러 수사기관에 체포된 피의자들이 무료로 국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법무부는 이 같은 내용의 ‘형사공공변호인제’를 실시하기 위한 법률구조법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3월 중순 입법 예고할 계획이라고 28일 밝혔다. 형사공공변호인제는 고문 등의 인권 침해나 자백 강요 등 불법 수사를 막기 위해 국가가 수사 단계부터 변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제도다. 앞서 법원은 2004년부터 ‘피고인 국선 변호인제’를 통해 구속영장 실질심사 등 재판 단계에서 국선 변호인을 지원해왔다. 정부가 입법 예고할 법률구조법 등의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피의자가 검찰의 기소로 피고인이 돼 재판을 받기 이전 수사 단계에서도 국선 변호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법무부는 변호사 풀(pool)을 구성해 피의자가 수사부터 재판까지 국선 변호인 1명의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황형준 constant25@donga.com·이호재 기자}

강도 상해 용의자인 A 씨가 경찰에 긴급 체포됐다. 실직으로 어려움을 겪던 A 씨가 돈을 훔치러 빈집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들어온 집주인을 밀어 다치게 한 혐의였다. 돈이 없던 A 씨는 사선변호인을 선임할 생각조차 못했다. 하지만 피의자가 체포됐다는 통지를 받은 형사공공변호인 B 변호사가 즉각 경찰서로 달려갔다. B 변호사는 ‘형사공공변호인제’를 설명한 뒤 “무료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고 A 씨에게 설명했다. B 변호사는 A 씨의 조사 과정을 지켜보며 피의자의 주장이 왜곡되지 않는지, 인권 침해는 없는지 등을 살펴봤다. A 씨는 향후 진행될 수사 절차와 법률적인 조언까지 들었다. 검찰은 48시간이 지나기 전 경찰이 신청한 A 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흘 뒤 영장실질심사에서 B 변호사는 A 씨가 초범인 점, 우발적인 범죄라는 점 등을 판사 앞에서 강조했다. 형사공공변호인제가 도입될 경우를 가정한 가상의 사례다. 고문과 강압수사에 의한 허위 자백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삼례 나라슈퍼 사건’ 피해자 등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피의자 신분일 때부터 무료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가 3월 중순 입법 예고할 형사공공변호인의 지원 대상은 체포된 피의자 중 3년 이상 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만 해당한다.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뿐만 아니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횡령, 배임 등 경제범죄 혐의자가 포함된다. 법무부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연간 8000여 명의 피의자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형사공공변호인은 법무부 산하 법률구조공단 소속으로 활동하게 된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당초 “법무부가 법률구조공단을 지휘, 감독하므로 기소를 하는 기관인 검찰과 형사변호를 하는 기관 모두 법무부의 영향력 아래 놓일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해 왔다. 법무부는 이 같은 우려를 반영해 형사공공변호인 관리위원회의 실질적인 운영권을 대한변협에 넘길 계획이다. 변협이 위원 과반수 임명권을 갖게 되면 법무부 권한 집중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법무부는 향후 정부 부처 협의를 거쳐 단계적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제도의 취지가 사실상 변호인 선임 없이 검경 수사를 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어서 수사 패러다임의 큰 변화가 예상된다. ‘변호인 없는 수사’가 사라지면 피의자를 심리적으로 압박해 자백을 받는 기존 수사 관행 대신 증거를 중심으로 한 수사로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조계 시각이다. 앞서 법원의 국선변호인 제도는 2004년 법원별로 국선전담변호인을 두기 시작한 뒤 15년간 자리를 잡으면서 피고인의 ‘자기방어권 보장’이 확대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옥에 가지 않을 변호사는 국선변호사밖에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선변호사의 사회적 위상과 평가가 달라졌다. 여야 정치권은 형사공공변호인법 통과에 큰 이견이 없는 만큼 법무부는 올해 안에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황형준 constant25@donga.com·이호재 기자}
자유한국당이 재정 악화 등을 이유로 당직자들을 해고한 것은 ‘부당 해고’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김정중)는 한국당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전 당직자 A 씨 해고가 부당하다는 결정을 취소해 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25일 밝혔다. 재판부는 “한국당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오히려 신규로 13명의 직원을 고용했다”면서 “인원 감축이 필요한 상황이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A 씨 등이 해고된 시기에 한국당이 6800만 원을 들여 혁신위원회 사무실을 새로 임차하는 등 비용 절감 조치를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당은 2017년 12월 전년 대비 국고보조금이 37억 원, 당비 수입이 51억 원 줄었다며 A 씨 등 3명을 해고했다. 하지만 A 씨는 “한국당의 해고 사유가 부당하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했다. 지방노동위원회는 “근로기준법상 해고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해고된 다른 2명은 한국당과의 협의를 거쳐 이미 복직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稼動年限)을 만 60세로 유지할지 치열한 공방이 있었고, 각계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21일 오후 2시 4분경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은 선고 결과를 말하기 직전 이렇게 밝혔다. 지난해 11월 29일 공개변론 등을 통해 주요 쟁점과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거쳤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만 60세를 넘어 만 65세까지 육체노동자가 일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다수의견입니다”라고 말했다. 가동연한을 기존보다 올려야 한다는 데는 전원합의체 12명 전원이 동의했고, 그중 9명이 만 65세를 새 기준으로 제시했다. ○ 평균수명 연장에 따른 사회 변화가 주요 근거 김 대법원장 등 9명의 다수의견은 ‘평균수명 연장’을 육체노동자의 가동연한을 5년 더 늘린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로 들었다. 198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결정할 당시 평균수명은 남성 67세, 여성 75.3세였다. 그러나 가장 최근 통계인 2017년엔 남성 79.7세, 여성 85.7세로 평균수명이 10세 이상 늘어났다는 것이다. 국민이 ‘더 오래 사는 시대’가 됐고, 이에 따라 ‘일하는 나이’가 과거보다 더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평균수명 연장으로 정년이 늘어나고, 정년 뒤에도 일하는 노인인구가 증가하는 사회구조적 변화에도 주목했다. 다수의견은 “1989년 판결 당시 기능직 공무원 중 주로 육체적 업무를 하는 철도원, 토목원 등의 정년이 만 58세였는데, 2013년 이후에는 대부분 만 60세로 연장됐다”며 유사직군의 정년을 언급했다. 또 한국의 2011∼2016년 실질 은퇴 연령은 남성 72.0세, 여성 72.2세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다수의견에는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와 산업구조 지표 등을 검토한 내용이 반영돼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989년 6516달러에서 지난해 3만 달러를 넘어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생계를 보장하는 노인을 65세 이상으로 정하고 있는 만큼 65세까지는 육체노동자가 일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 “일본은 1960년대부터 67세까지 인정” 다수의견 중 박상옥 김선수 대법관은 핵가족화와 1인 가구 증가가 급격하게 진행되는 한국 사회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법관은 이번 사건의 주심이다. 두 대법관은 “가장이 모든 가족을 부양하고 은퇴 후에는 자식에게 부양을 받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면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신의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갈수록 확대되고, 경제활동 기간도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대법관은 2015년 기준 60∼64세 국민 중 본인 및 배우자가 생활비를 부담하는 비율이 86.3%에 이를 만큼 고령자들이 경제활동을 할 이유가 크다고 판단했다. 이어 “일본은 1960년대부터 가동연한을 67세로 인정하고 있다”고 했다. 김 대법관은 공개변론 때 “(가동연한이 상향된)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하는 게 진보 아닐까요”라고 말하는 등 36차례나 질문을 했다. ○ ‘만 63세’, ‘만 60세 이상’ 의견도 조희대 이동원 대법관은 가동연한을 ‘만 63세’로 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두 대법관은 “일반적인 법정정년 및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2018년 기준 63세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며 만 65세로 가동연한을 정하는 건 사회 변화에 비춰 지나치다고 지적했다. 김재형 대법관은 대법원이 가동연한을 일률적으로 60세나 65세 등으로 정하는 건 옳지 않고 ‘만 60세 이상’으로만 정한 뒤 개별 사건마다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확정되지 않은 손해배상 소송 하급심에서 배상금액을 늘려야 한다는 판결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사고 피해자가 미성년자여서 1심에서 배상 금액을 계산할 때 기존 가동연한을 기준으로 삼았다면 2심에서 배상 금액이 늘어날 수 있다. 이호재 hoho@donga.com·김예지 기자}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지만 미성년자 자녀를 키워야 하는 이른바 ‘장 발장형 여성 수감자’ 등 20여 명이 3·1 특별사면 대상에 추가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이에 따라 사면 대상은 한일위안부 합의 반대 집회와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파업 집회 등 7개 집회 시위 사범 100여 명을 포함해 모두 3400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는 2017년 12월 말에 단행된 문재인 정부 첫 특사 대상 6444명의 절반 수준이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21일 2차 사면심사위원회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이 같은 내용의 사면안을 확정한 뒤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면 대상자 3400여 명은 일반 형사범이 대부분이고, 미성년자 자녀를 양육해야 하는 여성 수감자와 간병인이 필요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된 신체 허약자 등 20여 명이 포함됐다. 음주운전과 보이스피싱 등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 20일 1차 회의에서는 7개 집회 참가자 중 실형을 받은 이들은 제외하기로 했다. 하지만 2차 회의에선 실형을 받은 이들 중에서도 범죄 가담 정도가 낮은 사람들을 일부 추가하면서 사면 대상이 100여 명으로 늘어났다. 문 대통령은 늦어도 26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사면 대상자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이호재 hoho@donga.com·황형준 기자}

육체노동을 주로 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일할 수 있는 기간인 이른바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기존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해야 한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판례를 변경했다. 1989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55세에서 60세로 정년을 상향한지 30년 만에 다시 한번 대법원 판례가 바뀐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1일 박모 씨가 수영장 운영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가동연한을 만 65세로 인정해 배상액을 다시 계산하라”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 환송했다. 재판부는 다수의견으로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만 60세로 봐야 한다는 견해는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고, 이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만 60세를 넘어 만 65세까지도 가동할 수 있다고 보는 게 경험칙에 합당하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는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구조와 생활여건이 급속하게 발전하고 법제도가 정비·개선됨에 따라 기존 가동연한을 정한 판결 당시 경험칙의 기초가 됐던 제반 사정들이 현저히 변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과 대법관 11명이 전원합의체 심리에 참여했고, 김 대법원장 등이 다수의견으로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65세로 상향하는데 동의했다. 다만, 대법관 3명은 가동연한을 65세가 아닌 63세나 60세 이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앞서 박 씨는 2015년 인천 소재 한 수영장에서 사고로 4세 아들을 잃자 수영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김예지 기자 yeji@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한일 위안부 합의 반대 집회와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파업 집회 등 7개 집회에 참가해 형사처벌을 받았지만 실형을 선고받지 않은 사람들이 3·1절 특별사면 대상자로 선정됐다. 규모는 100명 미만인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 사면 대상자는 민생사범을 포함해 모두 수천 명이다.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는 20일 전체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사면 대상에는 △세월호 관련 집회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집회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반대 집회 △광우병 촛불 집회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집회 등에 참가해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들이 포함됐다. 쌍용차 파업을 주도한 한상균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법원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또 사면심사위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촛불 집회 및 태극기 집회 참가자는 사면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이석기 전 의원도 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 정치인과 대기업 총수, 뇌물·배임·횡령 등 부패사범은 사면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음주 운전자의 처벌을 강화한 이른바 ‘윤창호법’의 입법 취지를 감안해 음주운전 범죄자도 사면 대상에서 제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늦어도 26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사면 대상자를 최종 확정할 예정이다. 이호재 hoho@donga.com·황형준 기자}

고은 시인(86)이 자신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58)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 1심에서 15일 패소했다. 지난해 2월 최 시인이 폭로한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법원이 1년 만에 ‘사실’로 인정한 것이다. ○ “일기장, 조작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이상윤)는 이날 고 시인이 최 시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최 시인은 지난해 2월 동아일보에 1000자 분량의 글을 보내 “1992년 겨울에서 1994년 봄 사이 서울 종로구의 한 술집에서 고 시인의 성추행을 목격했다”고 폭로했다. 재판부는 “최 시인의 글 내용과 법정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되며, 제보한 동기와 경위 등을 따져보면 허위라 의심할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최 시인이 증거로 제출한 1994년 6월 2일 일기장이 조작됐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광기인가 치기인가 아니면 그도 저도 아닌 오기인가-고 선생 대(對) 술자리 난장판을 생각하며’라고 써있는 일기장을, 성추행을 목격한 최 시인이 괴로워한 증거라고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최 시인은 이 일기장을 지인의 은행 금고에 보관하다가 재판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최 시인이 성추행 목격 시기를 1994년 늦봄으로 뒤늦게 구체화한 것에 대해 재판부는 “약 25년이란 시간의 경과로 인한 인간 기억력의 한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봤다. 재판부는 고 시인 측 증인들이 허위 증언을 했다는 최 시인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고 시인과 최 시인이 주점에 있었던 횟수가 두 번뿐이라는 것을 제3자인 (증인) A 씨가 기억한다는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했다.○ 최 시인 “나 같은 피해자 없었으면” 최 시인은 판결 직후 동아일보와 만나 2017년 12월 시 ‘괴물’을 통해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익명으로 폭로한 뒤 1년 2개월간 느꼈던 부담감에 대해 털어놨다. 최 시인은 “한국 문단 권력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의 성추행을 글로 썼을 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해 7월 고 시인이 민사소송을 제기한 뒤엔 “타인의 송사에 개입하길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입을 열게 하는 게 어려웠다”고 했다. 최 시인은 “그러나 후세대 여성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들을 했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나 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 시인의 변호를 맡은 여성변호사회는 “피해자가 피해를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가해자가 스스럼없이 잘못을 부인하고 이를 옹호하는 분위기는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고은 시인 명예회복대책위’는 “최 시인의 편을 든 여론재판”이라고 비판했다. ○ 동아일보, 고 시인에게 배상책임 없어 재판부는 고 시인의 1994년 성추행 의혹을 보도한 동아일보가 고 시인에게 손해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최 시인이 성추행이 벌어진 시기, 장소, 구체적인 말과 행동, 사건 후 정황에 대해 취재기자에게 구체적으로 진술해 이를 믿을 만한 근거가 있었다는 것이다. 고 시인이 2008년 지방의 한 대학 초청 강연회에서 대학원생을 성추행했다고 보도한 동아일보 기사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배상책임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다만 재판부는 고 시인의 2008년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박진성 시인(41)에 대해 “피해 여성을 특정하지 못했다”며 고 시인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이호재 hoho@donga.com·김예지·이지훈 기자}

고은 시인(86)의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최영미 시인(58)과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가 고 시인에게 손해배상을 할 책임이 없다고 법원이 15일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판사 이상윤)는 이날 고 시인이 1994년 종로의 한 술집에서 고 시인의 성추행을 목격했다고 폭로한 최 시인과 이를 보도한 본보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원고가 이 사건 보도내용이 허위임을 입증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 최 시인이 제보하고 동아일보가 보도한 1994년 사건이 허위임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고 시인이 최 시인과 함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박진성 시인(41)에 대해선 “고 시인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통상임금 소송 제2라운드’로 불렸던 시영운수 통상임금 사건에서 대법원이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다. 2013년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판결 이후 이에 비례해 늘어난 시간외수당을 소급해 지급하라는 근로자 측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재계는 “기업이 여력이 있다는 근거를 당기순이익이 아닌 이익잉여금, 매출 등을 기준으로 삼은 것은 기업 회계를 모르는 ‘엉터리’ 판결”이라며 반발했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14일 인천 시영운수 소속 버스기사 박모 씨 등 22명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파기 환송했다. 이번 사안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서 시영운수가 추가로 지급해야 할 임금이 지나치게 커서 회사의 존립이 위협받는지, 심각한 경영 어려움을 초래하는지(이른바 신의성실의 원칙)가 쟁점이었다. 회사는 심각한 경영 어려움을 초래하므로 추가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했고 노조는 그렇지 않다며 팽팽히 맞섰다. 통상임금은 휴일·야근수당 등 법정수당과 퇴직금을 계산하는 기준이다. 재판부는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가 사용자에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지는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추가 법정수당은 4억 원 상당으로 추산된다. 이는 회사 연간 매출액의 2∼4%, 2013년 총 인건비의 5∼10% 정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회사의 2013년 이익잉여금이 3억 원을 초과해 추가 법정수당을 상당 부분 변제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또 재판부는 “버스회사가 2009년 이후 5년 연속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한 데다 버스준공영제의 적용을 받고 있어 안정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시영운수의 이익잉여금 대부분이 버스, 부동산 같은 생산시설에 이미 투입돼 있고 대부분 현금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며 “버스 팔아서 임금을 주라는 소리냐”라고 했다. 법원이 회계상 개념인 이익잉여금을 현금으로 잘못 이해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여전히 기업마다 판결 기준이 달라 예측 가능하지 않다는 점도 비판 대상이 됐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공공회사인 시영운수가 ‘경영상 어려움이 없다’는 것은 국민의 세금으로 기업의 어려운 사정을 메우라는 뜻”이라며 “민간 기업들도 일일이 매출액, 이익잉여금 등을 추가 법정수당과 비교할 수밖에 없어 건건이 판결이 달라질 수 있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통상임금 소송은 100여 건 진행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헷갈릴 수 있는 적용 기준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명확하게 정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배석준 eulius@donga.com·이호재 기자}
현직 부장판사가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돼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대법원은 지난달 25일 서울중앙지법 소속 김모 부장판사(51·사법연수원 26기)에게 법관으로서 품위를 손상했다는 이유로 감봉 1개월의 징계처분을 내리고, 13일 관보에 게재했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7월 3일 0시 30분경 경기 시흥시 목감 나들목 인근 도로에서 면허정지 상태인 혈중알코올농도 0.092%로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의 일제 단속에 적발됐다. 김 부장판사는 서울 동작구에서 시흥시까지 약 15km를 음주 상태로 운전했다. 적발 당시 김 부장판사는 “아버지가 갑자기 위중해 경기 안산시 요양병원으로 가던 길”이라며 경찰에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부장판사는 약 20일 뒤 부친상을 당했다고 한다. 약식 기소된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100만 원의 벌금형이 확정됐다. 김 부장판사는 지난해 11월 9일 서울중앙지법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재판을 위해 형사합의부 3곳을 증설할 당시 형사합의35부 재판장을 맡았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12월 5일 35부 재판장을 박남천 부장판사(51·26기)로 교체하며, 김 부장판사의 ‘개인적 사유’로 사무분담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개인적 사유’가 음주운전으로 뒤늦게 확인된 것이다. 35부에는 12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수감 중) 사건 등이 배당됐다.이호재 hoho@donga.com / 수원=이경진 기자}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으로 형사 사건의 피고인이 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법연수원 2기·수감 중)이 사법연수원 24기수 아래 후배 판사에게 1심 재판을 받게 됐다.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이 11일 기소한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을 ‘적시(適時)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선정하고,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에 배당했다”고 12일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과 함께 11일 기소된 박병대(62), 고영한 전 대법관(64) 사건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수감 중)의 추가 기소 사건도 35부에 배당됐다. 재판장인 박남천 부장판사(52·사법연수원 26기)는 1997년 법관으로 임용된 뒤 광주지법과 서울중앙지법, 서울고법 등을 거쳤고 법원행정처 및 대법원 재판연구관 근무 경력이 없다. 지난해 2월 정기인사 때 서울중앙지법으로 발령받은 박 부장판사는 민사 단독 재판부를 맡다 지난해 11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재판을 앞두고 신설된 형사합의35부 재판장으로 옮겼다. 박 부장판사와 배석판사인 심판(47·36기), 김신영 판사(37·38기) 중 진보 성향 판사들의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과 박, 고 전 대법관 등의 공소장에 따르면 2013년부터 매년 전국의 법원장들은 법관들의 사법행정에 대한 비판 및 반발 행적 등을 정리한 ‘인사관리 상황보고’를 작성했다. 그리고 대법원장에게 신년 인사를 하기 위해 대법원을 방문할 때 이 보고서를 ‘인비(인사비밀)’라고 적은 봉투에 담아 법원행정처장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 보고서는 ‘법관 블랙리스트’의 기초 자료가 됐다. 또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과 관련해 2013년 3월경 피고 측인 일본 전범(戰犯)기업의 법률 대리인을 만나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 선고 전 김능환 대법관이 귀띔도 안 해주고 선고해 전원합의체로 결론을 내지 못했고, 한일 관계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데 결론이 적정한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범기업 측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에 불만을 나타냈다는 것이다.이호재 hoho@donga.com·황형준 기자}
전직 대법원장이 피고인으로 처음 법정에 서게 되면서 법원은 공정성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재판부 배당이라는 난제부터 풀어야 한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1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수감 중)의 1심 재판부는 이르면 12일 배당될 수 있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 사건은 ‘적시(適時)처리 필요 중요사건’으로 분류된 뒤 형사합의부 재판장들이 협의해 재판부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부는 총 16개다. 이 중 21, 23, 24, 25, 28, 30, 32, 33부 등 8개 합의부는 정기 인사와 퇴임, 사무분담 변경으로 인해 배당 가능성이 거의 없다. 재판부를 먼저 결정하고 법관 인사 이동일인 이달 25일 재판장을 배치할 경우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관련자가 있는 2개 합의부도 배당에서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31부 김연학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일하면서 법관 사찰 등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7부 정계선 부장판사는 법관 사찰의 불이익을 받은 피해자로 지목됐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1심을 심리 중인 36부(부장판사 윤종섭)에 추가 배당하긴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22부(부장판사 이순형), 26부(부장판사 정문성), 29부(부장판사 강성수), 34부(부장판사 송인권), 35부(부장판사 박남천) 등 5개 합의부 중에 사건이 배당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34, 35부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재판을 앞두고 36부와 함께 신설된 재판부라 배당 확률이 더 높다. 5개 합의부의 재판장은 사법연수원 25∼28기라 사법연수원 2기인 양 전 대법원장보다 최소 23기수 아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피고인, 공개 재판으로 전환되기 전에 한마디 하시겠습니까.” 지난달 9일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4)의 항소심 결심 공판. 2심 재판장인 홍동기 서울고법 부장판사(50·사법연수원 22기)는 수행비서 성폭행 등의 혐의로 기소된 안 전 지사에게 물었다. 비공개 재판 때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옛 측근들의 발언을 공개 재판 전에 반박할 마지막 기회를 준 것이다. 하지만 안 전 지사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 아무 말이 없었다. 3주가량 뒤인 이달 1일 안 전 지사는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 2심, 5회 중 4회 비공개 재판 A4용지 144쪽 분량의 2심 판결문에 따르면 1심 무죄가 2심에서 뒤집힌 것은 비공개 재판 때 나온 제3자의 증언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2심은 공판 준비기일을 포함해 모두 5번의 재판 가운데 4번을 전부 또는 일부 비공개로 진행했다. 모두 9번의 재판 중 2번만 비공개로 했던 1심과 크게 달라진 것이다. 1심에서 자신의 신원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적극적인 진술을 꺼리던 증인들이 2심 비공개 재판 때는 피해자 김지은 씨(34)에게 유리한 ‘추가 증언’을 했다. 안 전 지사의 비서실장이었던 A 씨는 2심 법정에서 “1심 때는 공개 재판이라 (제대로) 말하지 못했는데, 피해자가 정무비서로 옮길 때 호소한 취지는 ‘공무원들이 자기를 깔본다. 한직인 거 아니냐’였다”고 말했다. 김 씨는 10번의 피해 가운데 9번이 정무비서로 옮기기 전인 수행비서 시절 발생했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이 진술을 판결문에 그대로 인용하며 “김 씨가 정무비서로 보직이 바뀌는 것이 실제로는 퇴출되는 수순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전 수행비서 B 씨는 2심 법정에서 “안 전 지사의 4번째 성폭행 직후 김 씨로부터 피해 사실을 전해 들었다”고 진술했다. 안 전 지사의 옛 측근들이 비공개 재판에서 일관되고 상세한 증언을 한 점이 2심 재판부의 유죄 판단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김 씨는 1심보다 2심에서 더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털어놨다. 2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자신에게 다소 불리하게 평가될 수 있는 부분도 솔직하게 진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위력 행사’ 입법 공백 아니다” 현행 법률에 따른 ‘위력 행사’ 여부에 대한 1, 2심 판단도 달라졌다. 1심 재판부는 폭행, 협박 같은 유형의 위력 행위가 없으면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성관계가 있더라도 처벌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공백이 발생할 수 있는 현실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입법 공백’이라고 표현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피고인의 지위나 권세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인 세력에 해당한다”고 반박했다. 판결문을 통해 “안 전 지사는 김 씨가 권력적 상하관계에 있어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하는 등 성적 자기결정권을 자유롭게 행사하기에 취약한 상태임을 인식한 상태에서 이를 이용해 간음 행위에 나아갔다”고 밝혔다.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의 성립 요건에 대한 판단 기준을 1심이 매우 협소하게 설정하고 있다”는 검찰의 항소를 2심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 대법원과 동일 2심 판결문 16쪽에는 ‘성인지(性認知) 감수성’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판결문에는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씨에게 ‘피해자다움’이 없었다는 안 전 지사 측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성인지 감수성 관련 부분은 지난해 4월 대법원 판결문에 사실상 똑같이 나온다. 여학생에게 신체 접촉을 해 해임당한 대학교수의 소송에서 당시 대법원은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고 2차 피해를 우려한 피해자를 고려해 증거 판단을 해야 한다”며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2심 재판부는 친구의 아내를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30대 남성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자 피해자 부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의 대법원 판결문을 언급했다. 지난해 10월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고, 파기환송심은 최근 이 남성에게 징역 4년 6개월 형을 선고했다.김예지 기자 yeji@donga.com·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