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신광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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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광영 논설위원입니다.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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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5~2025-08-04
칼럼100%
  • [광화문에서/신광영]성폭력 가해자 사망했다고 ‘없었던 사건’으로 덮는다면

    성추행을 당한 뒤 사건 무마 압력에 시달리다 지난달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는 가해자로부터 이런 문자를 받았다.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가해자의 이 말은 이 중사를 향한 그 어떤 협박보다 비열한 것이었다. 진실은 묻어버리고,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멍에까지 씌우려는 엄포였으니 말이다. 다른 부대에선 여군 숙소에 침입해 불법 촬영한 부사관 사건을 맡은 군사경찰이 피해를 호소하는 여군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너, 얘 죽이려고 그러는구나.” 가해자의 목숨을 운운하며 피해자의 입을 막는 일들이 이렇듯 흔하게 벌어진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사망하면 수사기관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한다.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라도 이 다섯 글자가 전부인 ‘한 줄 사건’이 되고 만다. 나름의 이유는 있다. 가해자가 없으면 실체 규명에 한계가 있고 방어권 행사도 어렵다. 수사해 봐야 실익이 없는 사건에 한정된 수사력을 마냥 투입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는 형사사건 처리를 ‘국가 vs 가해자’의 구도로만 본 것이다. 형사사법제도는 가해자에 대한 단죄뿐 아니라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시키는 데 궁극적인 존재 이유가 있다. 성폭력 사건은 대개 명확한 물증이 없다. 그래서 가해자가 사망해 실체 규명이 중단되면 피해자는 곧바로 ‘가해자’로 몰린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로펌 대표변호사 성폭행 사건 등 많은 피해자들이 이런 2차 피해를 겪고 있다. “어떤 자살은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라고 소설가 정세랑은 책에 쓰기도 했다. 정치적 파장이 컸던 박 전 시장 사건은 관련 사건 판결과 국가인권위원회 조사로 간접적으로나마 피해가 인정됐다. 하지만 개인 간의 사건에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나면 피해를 인정받을 길이 없다. 로펌 대표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가해자의 극단적 선택으로 신원이 드러날 위기에 놓였다. 같은 로펌에 근무했던 여성 변호사들 명단이 각종 단톡방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피해자는 지난 6개월간의 수사로 사건이 거의 마무리된 만큼 수사 결과를 통보해 달라고 경찰에 요청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2019년 성범죄로 기소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이 재판 도중 구치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자 의외의 결정을 내렸다. 검찰의 공소기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피해자들이 법정에 나와 증언하도록 했다. 피해자가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말할 권리를 보장하는 ‘범죄 피해자 권리법(Crime Victim’s Rights Act)‘을 근거로 그들의 피해를 공식화한 것이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 2013년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육군 오모 대위는 이런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국가가 어떤 경우에도 성범죄를 끝까지 밝힐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피해자는 삶을 부여잡을 용기를 낼 수 있고, 가해자 역시 남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극단적 선택을 피하게 된다. ’공소권 없음‘ 처리 관행이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수사기관을 찾은 피해자를 좌절시키고, 가해자에겐 자살하면 덮어준다는 그릇된 메시지를 주고 있다면 대안을 찾아야 할 때가 됐다.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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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한강 의대생 사건’은 어떤 사건으로 기억될까

    아버지는 서울 강남경찰서장 또는 세브란스병원 교수, 외삼촌은 전 서울 서초경찰서장, 큰아버지는 법무부 차관…. 손정민 씨(22)가 반포한강공원에서 친구와 술을 마신 뒤 숨진 채 발견된 사건에 관심이 쏠리면서 동석했던 친구의 가족에 대한 갖가지 추측이 나왔다.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억측들이 이어지고 있다. 스물두 살의 장성한 아들로 키워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힘들게 의대에 간 아들이 젊음을 누리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게 얼마나 황망한지 공감하는 40, 50대 엄마들의 반응이 특히 뜨거운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바라는 요구 역시 정당하다. 한강공원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건장한 청년이 하룻밤 새 유명을 달리한 사건이라면 누구나 같은 비극을 당할 수 있다. 수사와 재판은 시민의 평온한 일상을 보호하려는 국가의 공적 서비스다. 시민들은 형사사법제도의 ‘고객’이자 ‘주주’로서 발언권이 있다. 17일 5주년을 맞은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젠더 범죄를 근절하자는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계기였다. 이후 여성 상대 범죄를 대하는 수사기관과 법원의 태도가 보다 단호해졌다. 하지만 합리적 근거 없이 수사 결과를 예단하고, 수사 방향에 영향을 미치려는 여론몰이는 실체 규명에 치명적인 장애 요인이다. 수사 경험이 많은 경찰과 검사들은 “수사는 사람의 인생을 다루는 일이다. 신중함과 절제력을 잃는 순간 실패의 길로 들어선다”고 한다. 1988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이 진범인 이춘재는 돌려보내고 윤성여 씨를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나, 1972년 ‘파출소장 딸 피살사건’ 수사팀이 영화 ‘7번방의 선물’ 실제 인물인 정원섭 씨를 범인으로 내몬 것도 섣부른 수사 프레임과 확증 편향이 겹친 결과다. 실패한 수사는 무고한 시민을 20년, 15년씩 감옥에 가두고 살인마인 진범이 거리를 활보하게 해준다. 손 씨 사건을 수사하는 서초경찰서 앞에서 며칠 전 집회가 열렸다. “○○○ 자수하라” “○○○를 체포하라”는 친구의 실명이 담긴 구호가 울려 퍼졌다. 참가자들은 친구와 그의 가족을 ‘신발군’ ‘신발군네’라고 불렀다. “친구가 아무리 힘들어도 죽은 것만큼은 아니다” “우리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면 (친구 측이) 아니라고 할 것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14일 가해 양모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된 ‘정인이 사건’ 역시 여론의 뜨거운 공감을 불러일으킨 사례다. 담당 재판부에는 “정인이 또래 두 딸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20개월 된 손녀의 할머니입니다” “두 돌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로 시작하는 진정서 수만 통이 접수됐다. 학대 피해 아동을 보호하는 위탁가정이 되겠다는 신청은 사건 이후 두 달간 630건 넘게 들어왔다. 지난해 1년간 신청 건수(467건)보다 훨씬 많다. 개인에게 큰 아픔을 안긴 사건이라도 실체가 규명된 뒤에는 사회적 선순환을 만드는 동력이 된다. 하지만 손 씨 사건을 두고 벌어지는 일부의 억측과 공격은 이 사건이 우리에게 남기게 될 소중한 메시지를 왜곡할 수 있다.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1-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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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재형 감사원장 부부, “난 엄마 배에서 안 나왔대” 아이의 말에…

    《“배로 낳은 자식이든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든 예쁠 때는 뭘 해도 예쁘고, 말 안 들을 때는 얄밉죠. 하하하….” 최재형 감사원장(65·사법연수원 13기)과 부인 이소연 씨(61)는 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배로 낳은 두 딸과 가슴으로 낳은 두 아들 이야기를 하며 큰소리로 웃었다. 최 원장은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는 것은 인생이라는 하나의 우주를 만들어 내는 일”이라며 “입양이든 출산이든 똑같이 힘들고 또 그만큼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최 원장과 부인 이 씨는 두 딸이 중고교생이던 중년의 나이에 두 아들을 입양했다. 2000년 생후 9개월의 진호 씨(21)를 입양한 뒤 2006년 열 살이던 영진 씨(25)를 입양했다. 부부는 입양 부모로서 겪었던 희로애락을 2004년부터 2011년까지 8년간 한국입양홍보회 홈페이지에 약 150편의 일기로 꾸준히 남겼다.》○ “망태 자루 속의 고양이”“영진이를 낳은 어머니로부터 입양 동의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우리 딸이 대학 입학했을 때보다 더 기뻤어요.” 최 원장 부부는 2006년 초등학교 4학년이던 영진 씨를 가족으로 맞았을 때 기쁨으로 벅차올랐다. 당시 최 원장은 50세, 이 씨는 46세였다. 6년 전 입양한 둘째 아들 진호 씨가 아직 유치원생이라 초등학생을 키우면 보다 수월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영진 씨는 아들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사고뭉치가 되어버렸다.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기도 했다. 마치 10년간 부리지 못했던 응석과 말썽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것 같았다. 겉으로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아이였지만, 상처 입고 깨져버린 마음은 쉽게 아물지 않는 걸까. 이 씨가 동생인 진호보다 책을 30분 더 보라고 하면 “엄마는 내가 미워서 잠을 못 자게 하려고 그런다”며 화를 내곤 했다. 지인은 그런 영진이를 마치 ‘망태 자루 속에 있는 고양이’ 같다고 했다. 구멍이 숭숭 뚫려 사랑을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망태. 최 원장은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입양 후 몇 년간은 힘들었죠. 어느 날 꿈에서 내가 회초리를 들었는데 영진이가 내 손을 낚아채더니 ‘아버지, 왜 이러세요’ 하는 겁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이해와 인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4년간 찾아 헤맨 아들의 여린 본심 어떻게든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영진 씨를 바꿔 보려던 최 원장 부부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세 아이를 키우며 정립해온 양육 방식을 내려놓고 전문가의 조언을 구했다. 여러 종류의 가정심리상담을 받았고 소아정신과 의사와 정기적으로 상담했다. 그러자 안갯속 같던 큰아들의 여린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영진이가 태어나자마자 엄마로부터 분리되면서 생긴, 그리고 그 이후에 아물지 않은 상처가 해결되어야만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최 원장은 “영진이의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가 다 나올 수 있도록 부모가 마치 쓰레기통처럼 있는 그대로 다 받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진 씨의 마음이 다시 채워지는 데는 4년이 넘게 걸렸다. “몇 년을 같이 살면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영진이가 내가 예상했던 대답을 한 기억이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뭔가 말을 건넸는데 영진이가 부드러운 반응을 보였어요. ‘이 아이가 달라지는구나’ 생각이 들었죠.”(최 원장)입양될 때 아이의 나이가 많을수록 아이와 부모가 겪는 어려움은 어릴 때 입양한 경우보다 몇 곱절 커진다는 게 최 원장의 생각이다. “아무리 좋은 가정으로 입양되더라도 아이가 겪는 정신적 충격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데 뉴욕 타임스스퀘어 앞에 홀로 서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영진이도 그런 충격을 받았을 거예요. 시간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죠. 정말 많이 힘들었겠구나….” 부모가 어릴 적 속 썩이던 이야기를 꺼낼 때면 미안한 듯 소리 내 웃는다는 영진 씨는 8월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난다. 네덜란드의 유명 예술 교육기관인 ArtEZ예술대에서 4년간 유학할 예정이다. “영진이 떠나면 이제 맛있는 라면이랑 떡볶이, 부침개는 누가 만들어 주나 걱정이에요.”(최 원장)○ 공개 입양 했지만 편견에 상처받았던 아들 2000년 9개월 아기일 때 최 원장 부부의 품에 안긴 진호 씨. 이 씨는 성가정입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갓난아기인 진호를 돌보다 입양을 결심했다. 최 원장 부부는 진호 씨가 입양 사실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공개 입양을 했다. 어려서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입양 사실을 받아들이면 상처를 보다 잘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한 결정이었지만 진호 씨가 입양에 대한 편견에 부딪혀 상처받는 모습에 가슴 아팠던 순간이 많았다고 한다. 진호 씨가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와 다투다가 ‘고아’라는 말을 듣고 큰 상처를 입은 일은 최 원장의 기억에 아직도 뚜렷이 남아있다. “진호에게 ‘크면 누구랑 결혼할래?’라고 장난스레 물었더니 친한 입양 가족의 또래 여자아이 이름을 대더라고요. ‘자기 마음을 잘 이해할 것 같다’라고 하면서…. 표현은 못 하지만 아픔이 있다는 걸 알았죠.”(최 원장) 이 씨는 2004년 9월 일기에서 “진호가 요즘 ‘내가 말 안 들으면 나 버릴 거지’라는 말을 가끔 한다. 지원이 예원이도 똑같이 야단을 맞고 컸지만 한 번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진호한테 이런 말을 듣자면 가슴이 덜컹 내려앉고 마음이 서글퍼진다”고 썼다. 그래도 최 원장 부부에게 진호 씨는 사랑스러운 ‘껌딱지’ 막내아들이라고 한다. 고인이 된 최 원장의 모친은 생전 진호 씨의 사진을 항상 지갑에 넣어 간직했다.○ “정인이 사건, 가슴 아프지만 입양 위축돼선 안돼” 최 원장은 입양 제도에 대해 “어쩔 수 없이 원래 가정에서 양육되기 어려운 아이들이 가정의 품에서 사랑을 먹으며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대안”이라고 했다. 최 원장은 “열 달간 아이를 포기하지 않고 출산한 부모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갖고 가능하면 원가정을 보호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그게 불가능한 경우 아이들이 위험에 내던져지지 않도록 국가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원장은 그러면서 국내 입양이 우선 고려돼야 하는 것은 맞지만 아이의 행복을 위해 필요하다면 해외 입양에 대해서도 보다 전향적인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 원장은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정인이 사건’에 대해선 입양보다 가정에서의 아동학대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인이 사건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입양 이후 사후 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다. 다만, 이번 사건 때문에 입양 자체가 위축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원장은 국내 아동학대 가해자 중 친부모의 비율이 72.3%였던 반면 입양 부모의 비율은 0.3%에 그친다는 보건복지부 자료(2019년 기준)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인터뷰가 끝나자 이 씨가 불쑥 휴대전화를 꺼내 영진 씨가 만든 미술 작품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주책”이라며 부인을 말리던 최 원장도 어느덧 휴대전화를 꺼내 군 복무 중인 진호 씨와 입대 직전 찍은 가족사진을 보여줬다. 영락없는 ‘자식 바보’였다. “두 딸을 키울 때랑 마찬가지죠. 보람도 있고 때론 화도 나는 것. 입양을 했다고 다를 게 뭐 있나요.”(최 원장) “아이들에게 우리가 많이 준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우리가 받은 게 더 많았네요.”(이 씨)인터뷰=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정리=권기범·유채연 기자}

    • 2021-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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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클림트 명작 되찾은 미국… 위안부 책임 못 묻는 우리

    천재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명작들은 60년 넘게 주인 손을 떠나 있었다. 1938년 독일 나치정권이 한 유대인 가족에게서 클림트 그림을 약탈했고 이후 오스트리아 정부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당시 미국으로 망명했던 그림 주인 마리아 알트만은 2000년 빼앗긴 그림들을 되찾으려 나섰다. 미국 캘리포니아법원에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반환 청구 소송을 냈다. 하지만 장애물이 있었다.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상대로 재판할 수 없다는 ‘국가면제’라는 국제관습법 원칙이다. 우여곡절 끝에 알트만은 그림을 돌려받았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미국에 ‘외국주권면제법(FSIA)’라는 법이 있었다. 외국 정부가 정당한 보상 없이 자국민의 재산을 빼앗아 상업적으로 활용한 경우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국내법을 마련해놓은 덕분이었다. 일본도 외국 정부가 국가면제를 방패삼아 책임을 피하지 못하도록 2009년 법을 만들었다. “자국민을 죽거나 다치게 하는 외국의 행위에 대해 국가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못 박은 것이다. 일본은 국가면제의 예외를 확대해야 한다는 ‘UN 국가면제협약’까지 비준한 전 세계 22개국 중 하나다. 일본의 법대로라면 ‘위안부’ 피해를 야기한 가해국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우리는 어떨까.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하느냐를 두고 서울중앙지법에서 최근 3개월 사이 정반대 판결이 나왔다. 한 재판부는 1월 “일본에 배상 책임이 있다”고 했고, 다른 재판부는 지난 21일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두 재판부는 국가면제를 다르게 해석했다. ‘1월 재판부’는 반인도적 범죄를 저지른 국가가 배상을 회피하려고 국가면제 이론 뒤에 숨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법적 절차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어야 하므로 일본의 위안부 운영은 국가면제의 예외라고 봤다. 법과 실체적 정의가 따로 떨어질 수 없다는 상식에 가까운 논리였다. 2015년 한일 정부 간에 ‘위안부 합의’가 있긴 했지만 피해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아 재판이 유일한 구제 수단이라는 점도 고려됐다. ‘4월 재판부’ 역시 국가면제를 만고불변의 가치로 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외국 정부의 책임을 물은 판례가 거의 없고, 개별 소송보다 국가 간 외교로 해결하라는 게 국가면제의 취지라고 했다. 눈길이 간 대목은 우리 정부와 국회가 국가면제의 예외를 정립하는 등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대내외적인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점이다.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적 의사결정이 없는 상황에서 사법부가 추상적인 기준으로 새로운 기준을 창설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은 국익을 지키려 국가면제의 예외를 적극적으로 넓혀왔다. 약소국의 설움을 알기에 더욱 절실하고 치밀했어야 할 우리는 위안부 문제에 분노하는 데 그칠 뿐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2015년 위안부 합의를 비판하면서 화해치유재단을 없앤 뒤 3년 넘게 무대책이다. 문 대통령은 1월 일본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을 때 “당혹스럽다”고 했고, 일본이 4월 판결에 대해 “적절한 판결”이라고 입장을 내자 반박하지 못하고 있다. 1월과 4월의 두 판결은 얼핏 정반대로 보이지만 “대한민국이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해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고 한목소리로 묻고 있다.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1-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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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7번방의 선물’ 실제 주인공, 그에게 법은 무엇이었을까

    정원섭 씨가 ‘파출소장 딸 살해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1972년 감옥에 갇힐 때 그에겐 9세 아들이 있었다. 15년 복역 후 모범수로 풀려난 정 씨는 장성한 아들에게 유서를 미리 써놓았다.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남은 재를 강 말고 산에 뿌려줘라. 살인범의 더러운 흔적으로 강물을 오염시키고 싶지 않다.” 그는 누명을 벗어 유서를 고쳐 쓰고 싶었다. “더 살고 싶고, 더 살아야 한다. 아들에게 진실을 물려주고 죽어야 한다”는 말을 주변에 자주 했다고 한다. 정 씨는 다시 재판을 받고 싶었다. 다행히 사건 당시 정 씨가 범인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던 증인들이 어렵게 입을 열어줬다. 증인들은 “당시 어린 나이에 겁이 나 경찰이 시키는 대로 증언했지만 그렇다고 책임을 모면할 수 있겠는가. 지금까지도 정말 가슴이 무겁다”고 했다. 하지만 정 씨의 재심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2001년 “사건 후 29년이 흐른 뒤에 이뤄진 증인들의 진술 번복을 믿기 어렵다”며 재심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정 씨는 출소 후에도 달라진 게 없다고 느꼈다. 29년 전 그를 통닭구이처럼 거꾸로 매달아 코에 물을 들이부으며 거짓 자백을 강요한 경찰,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법정에서 바로잡으려던 증인을 위증죄로 구속한 검찰, “고문에 허위 자백했다”고 해도 1, 2, 3심 내리 무기징역을 선고했던 법원…. 그 때 그 모습대로였다. 법원은 2005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권고를 받고서야 재심을 열었다. 고문에 의한 허위 자백이 인정돼 대법원이 정 씨에게 무죄를 확정했다. 국가배상 소송도 이어졌다. 2013년 1심 법원은 국가가 정 씨에게 26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정 씨가 40년 가까이 사회적 냉대를 당하고 가족들마저 그릇된 낙인으로 고통을 겪었다. 민주주의 법치국가에서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고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심 법원이 국가에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을 뒤집었다. 과거사 사건은 형사보상 확정일로부터 6개월 내에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정 씨는 그보다 10일이 늦었다는 게 이유였다. 40년을 빼앗긴 사람에게 10일이 늦었다고 국가 책임을 면책한 것이다. 더구나 ‘소멸시효 6개월’은 1심에서 26억 원 배상 판결이 나올 땐 없었던 규정이다. 2심 판결 한 달 전인 2013년 12월 대법원에서 내놓은 이 판례가 이미 진행되던 정 씨 사건에 소급 적용됐다.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이 ‘과거사 사건 소멸시효 단축’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운영 뒷받침 사례로 추진했다는 게 검찰의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로 드러났다. 그래도 정 씨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헌법재판소가 2018년 ‘소멸시효 6개월’ 조항이 위헌이라고 결정한 게 불씨가 됐다. 헌재는 “국가기관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일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취급한다는 헌법 원칙에 위배된다”고 했다. 하지만 헌재마저 “국가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을 취소해달라”는 정 씨의 헌법소원을 지난해 기각했다. 대법원에서 이미 판결을 확정해버려 소급 적용이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평범한 30대 가장이었던 정 씨는 지난 49년간 국가로부터 고문 수사, 재심 거부, 배상 거부를 당했다. 한 시민의 소중한 삶을 대하는 우리 사법제도의 수준을 엿보게 된다. 정 씨 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7번방의 선물’이다. 정 씨는 2018년 뇌경색이 재발해 기억이 흐릿해졌다. 그 와중에도 사건 관련 기억은 끝내 부여잡으며 “정의가 살아있는 한 국가에서 바로잡아 줄 것”이라고 아들에게 유언했다. 그는 3년간 요양병원에 머물다 지난달 28일 생을 마쳤다.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1-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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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벼락거지’ 되는 것 말고도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들

    “몇 달째 집 알아보다 대상포진 걸렸어요. 아이 계획은 없습니다. 집 사면 둘이 평생 갚아야 하는데… 아이까지 이 끝없는 불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네요.” 한 유명 경제 유튜버가 진행하는 생방송 부동산 상담에는 무주택자들의 고군분투 사연이 매주 수백 통씩 몰린다. 사연자들은 가족관계와 거주지, 현 자산, 월 소득 같은 각종 현실적인 용어들로 자신을 소개하는데 자녀 계획이 없다고 딱 잘라 말하는 신혼부부가 많다. 사연은 하나하나가 ‘인간극장’이다. 남편의 사망보험금 3억 원으로 ‘정신지체’ 아들과 살 집을 찾는 50대 여성, 은퇴한 부모와 취업준비생인 동생 생활비 대느라 월급이 남아나질 않는데 다음달이 전세 만료인 30대 남성, 미용실 보조로 최저시급 받으며 6년 간 3000만 원을 모았지만 최근 임신해 프로포즈를 받고도 집구할 길이 막막해 결혼을 포기하려는 20대 여성까지. 미국 아칸소에 정착해가는 한국 이민자 가족을 그린 영화 ‘미나리’에는 가장인 제이콥(스티븐 연)이 농장에 우물 만들 곳을 찾다가 어린 아들에게 “한국 사람은 머리를 써”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병아리 감별사로도 일하는 그는 병아리가 수컷으로 분류되는 순간 버려진다면서 아들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 돼야한다”고 한다. 미나리처럼 어디에 심어도 살아남는 한국인의 ‘DNA’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사연 속의 무주택자들에게도 그런 한국인의 생명력이 엿보이곤 한다. 사는 게 바빠 성실히만 살아오다 어느 순간 벼랑 끝에 몰렸지만 이대로 포기할 순 없다는 집념이 전해져올 때가 있다. 배우자가 남긴 피 같은 보험금을 허투루 쓸까봐, 아기가 방긋 웃어주고 정비사와 택배기사로 ‘투잡’ 뛰는 남편이 고마워서, 암 투병 사실을 숨기고 숨을 거두기 한 달 전까지 일용직을 하며 결혼자금을 보태준 아버지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되고 싶어서…. 진행자가 사연을 읽어 내려가다 다음 문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들도 종종 있다. 하지만 정부에 기대할 수 있는 게 없어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든 이들은 나름의 절박한 사연을 안고 ‘영끌’의 세계로 불나방처럼 뛰어든다. 각각의 치열한 삶들이 한국의 비좁은 땅을 두고 맞부딪히는 형국이다. 무주택자들이 독한 현실에 단련되는 사이 우리를 지탱해온 소중한 가치들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땅 투기하다 잘려도 시세차익이 평생 월급보다 많을 수 있는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정직, 근면, 절제는 허무한 슬로건일 수밖에 없다. 열정과 도전 같은 가치는 이제 사치로 여겨진다. 2030세대 상당수에게 직장은 대출을 받고, 갚기 위해 다니는 곳이 되어 버렸다. 결혼 상대마저도 ‘나만큼의 자산을 갖고 있어서 둘이 합치면 상급지 아파트로 갈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최근 출간된 베스트셀러 ‘돈의 심리학(저자 모건 하우절)’에 이런 대목이 있다. “사람들은 세상의 원리에 대해 저마다의 경험을 갖고 있다. 내가 겪은 일은 간접적으로 아는 내용보다 훨씬 설득력이 강하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돈의 원리에 대한 나름의 관점을 닻으로 삼아 인생을 살아간다.” 투기와 반칙을 일상적으로 목격하고, 유주택자가 아니면 언제든 실패한 인생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집단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우리는 무너져가는 가치들을 다시 세울 수 있을까.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1-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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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가라앉을 때 스태프가 되어버린 지휘부[광화문에서/신광영]

    “사람이 한 명도 안 보인다. 갑판에도 바다에도 하나도 없다. 배가 50도 기울었고 계속 기울어지고 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37분 목포해경 김경일 123정장이 세월호 앞에 도착해 상황실에 했던 이 보고는 당시 사태의 핵심을 정확히 담고 있다. 배 기울기 50도는 이미 복원력을 잃어 언제든 침몰할 수 있다는 의미였고, 그런데도 승객 등 476명이 아직 배 안에 있다는 보고였다. 그 시각 단원고 학생들은 배 갑판으로 나가는 문 앞에 줄지어 앉아 퇴선 안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호 생존자의 마지막 탈출 시각은 오전 10시 13분. 돌이켜보면 구조 작업에 주어진 시간은 36분이었다. 김 정장의 현장 보고 27분 전인 오전 9시 10분 해경에는 중앙구조본부가 꾸려졌다. 해경청장이 본부장을, 서해해경청장과 목포해경서장이 각각 광역·지역본부장을 맡았다. 이들 지휘부가 그 때 했어야 할 최우선 지시는 신속한 퇴선 조치였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들은 감사원 조사에서 이렇게 진술했다. “현장 지휘는 서장이나 지방청장이 하고 본청은 정책 지휘나 상급부서 보고가 역할이다.”(해경청장) “중앙구조본부가 설치돼 지방청장은 지휘 라인이 아니라 스태프가 되었다.”(서해해경청장) “123정장이 다 알아서 판단해서 잘할 것이라고 믿었다.”(목포해경서장) 구조 작전은 처참히 실패했다. 문만 열면 바로 갑판인데 지휘부가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바닷물이 문을 열고 아이들을 덮쳤다. 사건 후 6년 만에 업무상과실로 기소된 했다. 123정에 영상송출 시스템 등이 없어 통신이 원활하지 않았고, 세월호 선장이 그토록 무책임할 줄은 몰랐으며, 배가 화물 과적으로 그렇게 빨리 가라앉을지 예상하기 어려웠다는 게 이유다. 대형 참사는 예상 밖이어서 대형 참사다. 겹겹의 악조건에 대비하라고 지휘부에게 높은 지위와 권한을 부여한다. 예측 불허 상황에 대응할 수 있게 조직을 정비하고, 유사시 긴박한 상황에서 시야가 좁아질 수 있는 현장 대원들에게 적절히 임무를 주는 게 지휘관의 존재 이유다. 하지만 해경 지휘부는 해난구조 인력과 예산을 전체의 10%도 할애하지 않을 만큼 무관심했고 세월호가 뒤집힐 땐 ‘스태프’를 자임했다. 구조 실패에 형사책임을 진 해경은 123정장이었던 김경일 경위가 유일하다. 크기가 세월호의 68분의 1에 불과한 123정에는 당시 김 경위 등 해경 10명과 의경 3명이 타고 있었다. 소형 경비정이어서 마땅한 구조장비도 없었지만 이들 13명에게 476명 구조 임무가 맡겨졌다. 2015년 김 경위에게 징역 3년을 선고한 재판부는 “김 경위로 하여금 구조에 전념하기 어렵게 하고 평소 해경들에게 조난사고 교육훈련을 소홀히 한 지휘부도 공동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번 판결은 그 공동책임의 고리를 끊어줬다. 그 결과 말단 현장 지휘관에게 책임을 몰아 지우고, 수뇌부는 “현장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웠다”며 면책해준 셈이 됐다. 권한이 크면 책임도 커진다는 상식과는 정반대다. 안전과 생명을 다루는 종사자에겐 엄격한 직업윤리와 책임감이 요구된다는 게 304명의 희생을 통해 우리가 얻은 교훈이다. 이번 판결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어렵게 진전시킨 사회적 합의를 후퇴시킨 면이 있다. 이 그래서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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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조계 “6대범죄 수사 역량 약화될 가능성” 우려 목소리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배제하기 위해 중대범죄수사청(수사청)을 설치하겠다고 나서자 법조계에서는 중대범죄 대응 역량이 오히려 취약해질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17일 법조계와 국회 등에 따르면 민주당은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방위사업, 대형 참사 등 6대 범죄 관련 수사권을 갖는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입법을 이달 중 발의하고 6월에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세웠다. 수사청이 설치되면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범죄는 없어지고 검사는 영장 청구와 공소유지만 담당하게 된다. 수사청은 미국 법무부 산하에 있는 연방수사국(FBI)처럼 운영되며 영장 청구나 기소권은 없다. 수사권이 없어진 검찰은 공소청으로 개편된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 권한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집중되고 수사청과 경찰이 나머지 범죄를 맡는다. 검찰은 공수처 등 일선 수사기관에서 맡은 사건에 대해 영장을 청구하거나 기소하는 역할로 업무가 조정된다. 법조계에서는 권력형 부패 등 중대 범죄일수록 오랜 수사 노하우가 필수인데 새로운 수사 기관을 만들 경우 수사력이 확보될 때까지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는 “국정농단 사건,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등의 경우 고도의 수사역량과 법률 전문성이 필요하다”며 “그렇지 않으면 재조사 등 중복수사가 벌어져 오히려 인권침해와 실체적 진실 발견에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는 중대범죄의 경우 검사가 수사하도록 하는 게 대체적인 추세다. 국제형사재판소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에서는 검사의 직접수사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경수사권 조정안이 올해 1월부터 시행돼 6대 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인정했는데 새 제도가 안착하기도 전에 또 다시 수사기관을 만들 경우 혼선이 가중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수사청의 소속 부처를 법무부로 할지 행정안전부로 할지도 의견이 갈린다. 법무부에 둘 경우 기존 검찰 조직과 중첩될 수 있고, 행정안전부 산하로 할 경우에는 이미 수사권을 갖고 있는 경찰의 권력 집중 현상이 심화될 우려가 크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2018년 1월 14일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재직 당시 권력기관 개편 발표를 하면서 “이미 검찰이 잘하는 특수수사 등에 한해 직접수사를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과 배치된다는 지적도 있다. 수사청 설립을 주도하는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이나 조 전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이 검찰에서 수사를 받거나 기소된 신분이어서 부적절하다는 비판도 있다.배석준기자 eulius@donga.com신광영기자 neo@donga.com고도예기자 yea@donga.com}

    • 202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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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 앞에 피해자 이름, 이번이 마지막이어야[광화문에서/신광영]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는 자신의 책 ‘김지은입니다’에서 사건 이후 세탁소에 옷을 찾으러 갔던 일화를 소개했다. “세탁소 주인은 PC로 김지은을 검색해 일련번호를 본 후 ‘김지은, 김지은’ 중얼거리시며 옷을 찾았다. 그동안 PC 모니터에 내 이름이 계속 떠 있었다. 갑자기 다른 손님이 불쑥 들어올까 봐 초조해졌다. 몇 번이고 마우스를 잡아 ‘김지은’ 이름을 없애고 싶었다.” 2018년 방송에 직접 출연해 피해 사실을 밝혔을 정도로 고난을 각오했던 김 씨에게도 타인에게 이름을 노출하는 것은 큰 부담이었던 것 같다. 2008년 발생한 조두순 사건의 피해자는 최근 조두순 출소 사태로 고통을 겪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 주거 지역으로 돌아오는 게 직접적 원인이지만 사건 후 12년이 지난 지금, 또다시 피해자의 이름이 회자되는 게 힘들다고 한다. 이제 성인이 된 피해자와 가족들은 “제발 잊어 달라”고 호소한다. 지난해 10월 서울 양천구에서 생후 16개월 입양아가 학대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피해 아동의 이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이의 해맑게 웃는 얼굴도 뇌리에 생생히 새겨졌다. 그전까지 ‘방관자’에 머물던 많은 이들이 ‘목격자’로 바뀌는 효과가 있었다. 사회적 공분이 일었고 검찰은 가해 양모를 더 무겁게 처벌하기 위해 주요 죄명을 아동학대치사에서 살인죄로 바꿨다. 각종 아동학대 대책도 쏟아져 나왔다. 뒤늦게나마 여론의 조명을 받은 것은 다행이지만 이제는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이번 사건이 ‘피해 아동 보호’라는 중대한 가치를 후퇴시켰다는 점이다. 아이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진심 어린 선의와 연민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의 이름과 얼굴이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지 누구도 통제할 수 없고, 2차 피해가 생겨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가해 양부모의 친딸인 피해자의 언니는 벌써 신원이 특정되고 있다. 다섯 살인 언니 역시 부모의 학대를 간접 경험한 피해자다. 아동학대처벌법에서 피해자 신상 공개를 금지한 것은 이런 부작용 때문이다. 피해 아이는 자기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는 것에 동의한 적이 없다. 너무 일찍 생을 마감해 의사표현 자체가 불가능했다. 아이에겐 자신을 대변해줄 가족도 없다. 아동학대 피해자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약자 중의 약자였다. 사건의 공론화를 위해 피해자의 인격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이미 많은 것을 빼앗긴 아이에게 공익을 명분으로 또다시 희생을 요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토록 심각한 사건이 석 달 전 ‘생후 16개월 입양아 학대 사망사건’이란 이름으로 보도됐을 땐 왜 주목받지 못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사건에 지나치게 감정을 이입하고 가해자를 악마로 부각시켜 분노의 힘으로 제도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길들여져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여론의 공분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 정부와 정치권의 무사안일이 이런 극약 처방을 손쉽게 동원하는 사회적 관성을 만들었다. 범죄 피해자들은 심리적 안정을 되찾아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아무리 선의라도 피해자의 이름이 언급될수록 ‘낙인 효과’가 생긴다. 사건의 이름은 길고, 밋밋하더라도 가치중립적으로 지어서 피해자를 무대 뒤로 숨겨주는 게 더욱 성숙한 선의다. 피해자는 적절한 시기에 잊혀지고, 사건의 교훈만 남도록 말이다.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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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실에 계속 빚을 진다[광화문에서/신광영]

    7, 8일 치르는 의사 국가시험 필기시험 응시자 중에는 합격해도 기뻐할 수만은 없는 응시자가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모 씨다. 조 씨는 어려서부터 장래 희망이 외과의사였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외국어고와 명문 사립대를 거쳐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에서 공부하며 14년 만에 꿈에 거의 다가섰다. 그에겐 대학의 생리를 아는 교수 부모의 열성적인 지원이 있었다. 조 씨가 고교 1학년일 때 어머니인 정경심 동양대 교수는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방학 2주밖에 없으나 리서치 페이퍼 반드시 쓰도록 할 것. 졸업할 때까지 2개 나오게.’ 정 교수는 목표대로 의학 논문 두 건에 고교생 딸의 이름을 올렸다. 조 씨가 2013년 서울대 의전원에 지원하며 낸 자기소개서 경력란은 각종 연구소 인턴, 동양대 총장 명의 최우수봉사상 등 허위 스펙들로 줄줄이 채워져 있다. 1년 넘게 이어진 정 교수 재판은 조 씨의 ‘7대 스펙’을 한 줄 한 줄 지워가는 과정이었다. 재판이 끝났을 때 자기소개서의 풍성했던 경력란은 거의 공란이 됐다. 정 교수가 총장 표창장까지 위조하며 온갖 반칙을 감행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조 씨가 간발의 차로 서울대 의전원에 떨어지고, 역시나 간발의 차로 부산대 의전원에 붙는 과정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 씨는 70명을 뽑는 서울대 전형에서 72등이었다. 100점 만점에 0.05점 차로 떨어졌다. 부산대에서는 불합격자 중 1등과 고작 1.16점 차였다. 시험 점수는 실력에 따라 매년 갱신되지만 잘 만든 스펙은 해를 거듭해도 감가상각이 되지 않는다는 점도 정 교수 재판에서 확인됐다. 조 씨는 대학입시에 쓴 스펙을 4년 뒤 의전원 입시 때도 요긴하게 재활용했다. 조 씨가 다녔던 외고 유학반에는 ‘학부모 인턴십 프로그램’이란 게 있었다. 엄마들이 자녀의 입시용 스펙을 쌓아주려고 남편 또는 자신이 소속된 대학이나 공공기관, 기업에서 인턴을 할 수 있게 서로 주선해줬다. 보통의 부모들은 엄두도 못 낼, 그들만의 ‘스펙 품앗이’ 시스템이었다. 숙명여고 교무부장 아버지와 함께 문제 유출 혐의로 기소된 쌍둥이 자매의 재판에서 검사는 실형을 구형하며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거짓에는 대가가 따른다”고 했다. 두 자매는 1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세상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기본적인 진리일 텐데 쌍둥이 자매와 조 씨는 교육자인 부모로부터 이런 교육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조 씨는 지난해 9월 의사 국시 실기시험을 통과해 7일 필기에 응시할 수 있었다. 그가 국시 시험장에 오기까지 순수한 노력으로 이룬 결실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 결실은 거짓으로 덧칠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1심에서 징역 4년이 선고된 정 교수의 입시비리가 유죄로 확정되면 조 씨의 의전원 합격이 취소될 수 있고 자연히 의사 국시 합격도 무효화된다. 입시의 성공이 국시의 실패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우리가 거짓을 말할 때마다 진실에 대한 빚이 쌓인다.” 화제를 모았던 미드 ‘체르노빌’에서 정부가 원전 폭발 가능성을 알면서 숨겼다고 폭로한 과학자의 이 대사처럼, 진실에 진 빚이 불어나면 갚아야 할 때가 온다.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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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장에 밝은 건설부동산 전문가 포진…도시정비와 중재 등 토털 법률서비스

    “현장은 법을 모르고, 법은 현장을 모릅니다. 변호사가 현장을 제대로 알아야 의뢰인들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고객의 신뢰도 깊어집니다.” 법무법인 한결의 건설부동산 그룹을 이끌고 있는 이인호(사법연수원 25기) 신길호(29기) 전성우 변호사(30기)는 현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차별화된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노동 관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한결은 2011년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 새로 둥지를 튼 이후 지난 10년간 과감하게 외연을 확장해왔다. 현재는 노사 균형을 통한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근로관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건설 법무―분쟁 해결사로 전방위 활약 한결의 건설부동산 그룹은 기업법무, 금융, 인사노무, 지식재산권, 선거법컨설팅과 함께 주력 부서 중 하나다. 도시 정비, 건설 분쟁, 부동산 개발 등 핵심 분야를 망라하는 토털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도시 정비 부문을 이끄는 이인호 변호사, 건설 분쟁 부문의 신길호 변호사, 부동산 개발 부문 전성우 변호사는 해당 분야 소송과 중재 경험을 20년 이상 쌓아온 법률전문가다. 15일 광화문 한결 사무실에서 만난 신 변호사는 “건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껴야 분쟁의 실체를 이해하게 되고 공법이나 재료 등 건설 용어에도 익숙해진다”며 현장 친화적인 접근을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공사 지연에 따른 공동원가 분담 소송에서 동부건설을 대리해 도급공사대금을 초과해 발생한 공동원가에 대해서는 분담 의무가 없다는 승소 판결을 이끌어냈다. 또 현대엔지니어링, 대림산업, SK건설, 관세청, 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을 대리해 민간과 공공 분야의 각종 분쟁에서 의미 있는 승소 판결을 끌어냈다. 한결은 건설 클레임 연구소와 분쟁 아카데미 등 내부 연구개발(R&D) 부서도 활발히 운영하며 건설 분쟁 해결에 참여하는 변호사, 엔지니어, 전문 감정인, 공무원들이 모이는 공론의 장을 제공하고 있다. 한결은 지방공기업이 주도하는 공공 주도 부동산개발 프로젝트뿐 아니라 대형건설사, 시행사 등 민간이 주도하는 산업단지개발사업, 도시개발사업 등 각종 사업에서 세부 단계별로 전문적인 법률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사업 공모절차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사업시행을 위한 특수목적법인 설립, 사업 수행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법률 자문을 성공적으로 제공해왔다. 과천지식산업센터 건립사업, 창원 사화공원 민간개발특례사업, 광주경안2지구 도시개발사업 등 전국의 굵직굵직한 사업들을 도맡아 하고 있다. 2020년만 해도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가 20여 개에 달한다. 전성우 변호사는 “부동산 개발은 참여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있어 단계별로 면밀한 법률 검토가 필수”라며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리스크를 예방할 뿐 아니라 적법하고 공정한 사업 진행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선거법 컨설팅 등 시장 개척해 ‘탄탄 성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법률 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도 한결은 주요 분야별로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오고 있다. 탄탄한 전문팀 라인업을 갖춘 23년 차 로펌의 저력이 위기 속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위해 업계 최초로 만든 선거법컨설팅팀은 지난 4·15 총선과 재보궐선거에서 다수 후보에 대한 선거법컨설팅을 진행했다. 인공지능 기반의 부동산 권리분석 서비스 역시 다방, 피터팬 등 여러 플랫폼의 유료화 성공을 지원해 법률 시장 개척에도 앞장서고 있다. 기업들은 ‘경제3법’ 등에 따른 경영 환경 악화에 고심하고 있고 국민들 또한 급변하는 부동산 금융 조세 관련 제도 변화를 따라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결은 규제 환경과 법령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며 고객의 불안을 해소하는 체계적 전략을 제공하고 있다. 안식 한결 대표는 “한결은 1997년 설립 이래 23년 동안 한 번도 머뭇거리거나 주저한 적이 없다. 이러한 담대함과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2021년 소띠 해에도 단단하게 성장을 이어갈 것을 확신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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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규칙 사소히 여기다 참사의 ‘공범’ 된 사람들[광화문에서/신광영]

    두 살 아이가 세상을 뜬 지난달 17일 아침, 광주 운암동의 한 아파트 단지 횡단보도로 되돌아가 본다. 주변 폐쇄회로(CC)TV에 찍힌 사고 발생 시각은 오전 8시 40분.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이 많은 때였다. 어린이보호구역에 놓인 횡단보도에서 유모차를 끄는 30대 여성이 네 살 딸과 함께 건너고 있었다. 유모차에 두 살 둘째딸과 생후 6개월 된 아들이 타고 있었다. 엄마와 세 자녀는 서로 꼭 붙어 있어 한 몸처럼 보였다. 이들이 신호등이 없는 왕복 4차선 도로의 횡단보도를 중간쯤 건너왔을 때였다. CCTV 화면에서 갑자기 엄마와 세 자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육중한 8.5t 화물트럭이 와 있었다. 트럭이 네 사람을 덮치는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눈이 감겼다. 눈을 다시 떴을 땐 유모차가 트럭 바퀴 틈에 구겨져 있었다. 호흡을 가다듬고 영상을 10~20초 뒤로 되감았다. 이 사건의 결정적 장면 하나가 거기 있었다. 횡단보도 중앙까지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는 나머지 절반을 건너기 위해 우측에 차가 오는지 살피고 있었다. 네 살 큰딸은 6, 7m 떨어진 횡단보도 끝에 나와 있던 어린이집 교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엄마는 한 손으로 큰딸을 감싸고 다른 손으로 유모차를 잡은 채 남은 6, 7m를 건너갈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이들 앞으로 차량 10여 대가 무심히 지나갔다. 엄마와 세 자녀는 밀려드는 차들을 보고 뒤로 물러서기를 반복했다. 물러설수록 8.5t 트럭과 점점 가까워졌다. 곧 어떤 일이 닥칠지 알고 있어서인지 이들이 횡단보도에 갇혔던 10초가량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횡단보도 위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뒷걸음치다 급기야 트럭에 치이고 마는 장면에서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유모차에 있던 두 살 둘째딸이 숨지고, 네 살 큰딸과 엄마는 중상을 입었다. 사고 현장에 있던 한 노인은 이 참상을 바라보던 일곱 살 손자의 눈을 손으로 가렸다. 손자는 5개월 전 같은 횡단보도에서 차에 치인 뒤 겨우 회복해 그날 처음 다시 등교하던 길이었다. 아이의 눈에 세상은 어떤 곳으로 비칠까. 경찰은 주변 CCTV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해 엄마와 세 자녀를 보고도 횡단보도를 그냥 지나간 차량 5대를 특정했다. 운전자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도 건너려는 사람이 있으면 다 건널 때까지 무조건 정지해야 한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엄마와 세 자녀를 위험으로 내몬 운전자 5명은 사고의 간접적 원인을 제공했다. 평범한 사람도 작은 규칙을 사소히 여기면 언제든 참사의 ‘공범’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두 살 아이의 가슴 아픈 희생을 보며 절감한다. 나 역시 운전대를 잡고 횡단보도를 무심코 지나쳤던 적이 종종 있었다. 운전자 5명에게 내려진 처분은 교통 범칙금 12만 원이 전부다. 언니의 어린이집 등원길에 함께 나섰다가 숨진 두 살 아이, 중상에서 회복한 후에도 후유증과 죄책감에 시달릴 엄마와 남매의 앞날을 생각하면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경찰이 ‘보행자 보호 의무 위반’으로 범칙금을 통지하면 화를 내거나 이의를 제기하는 운전자가 많은데 그 5명은 아무 말이 없었다고 한다. 그날 아침 횡단보도로 다시 되돌아가 본다. 차 5대 중 1대만이라도 위태롭게 서성이던 엄마와 세 자녀 앞에서 멈춰 섰더라면…. 규칙을 지키는 운전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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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승준 괘씸죄 단죄하면서 놓치고 있는 건 없을까[광화문에서/신광영]

    2002년 초 경기도의 한 포병부대에서 제대하고 나왔을 때 바깥은 유승준의 병역 기피 파문으로 충격에 잠겨 있었다. 유승준은 헌정 사상 최악의 ‘괘씸죄’를 저질러 만장일치의 미움을 받고 있었다. 그 후 19년간 그의 이름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곤 했다. 지난달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쓴 편지가 도마에 올랐다. 유승준은 “이미 잊혀져도 한참 잊혀진, 아이 넷을 둔 중년 아저씨”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한국 입국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지난해 대법원에서 외교부의 비자 거부가 위법하다는 판결을 받은 뒤 다시 비자를 신청했다가 재차 거부당한 처지였다. 우리 정부의 유승준 입국 불허 의지는 여전히 물샐틈없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강 장관은 “입국 거부는 정당하다”고 했다. “입국 금지 해제 가능성은 0.0001%도 없다”는 병무청 간부의 말도 있었다. 유승준은 2002년 공익근무요원 소집을 앞두고 미국으로 출국해 시민권을 취득하는 방식으로 병역을 회피했다. 그로 인한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병역 기피 목적으로 외국 국적을 취득한 경우 36세가 될 때까지 국내 입국을 금지하는 조항이 신설됐다. 이후 개정을 거치며 비자 발급 제한 연령은 38세, 41세로 계속 올라갔다. 올해 44세인 유승준은 나이 조건을 충족하긴 했지만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을 때 입국을 제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자타공인’ 비겁하고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누렸던 영향력만큼 책임이 무거워지는 게 당연하다. 공인으로서 결격 사유가 있으면 공익 자격을 박탈하면 되듯 연예인이라면 인기를 잃고 시장에서 퇴출되어야 맞다. 19년 가까이 팬들과 단절된 망각의 지대로 유배된 것은 그가 달게 받아야 할 징벌이다. 다만 정부 부처들이 ‘유승준 무기한 입국 금지’를 위해 일치 단결하는 모습에는 국민정서법에 기댄 보복 감정이 서려 있는 듯하다. 국민을 배신한 비도덕적 행위에 대한 공분이 국가적 행위로까지 거침없이 확장되는 양상이다. 유승준에 대한 비자 발급 불허가 위법이라고 본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는 이에 대한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 대법원은 “기한이 없는 입국 금지 조치는 법령에 근거가 없는 한 신중해야 한다”며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강제 퇴거를 당한 외국인도 5년 뒤에는 입국이 가능한 것과 비교해 유승준에 대한 무기한 입국 금지는 형평이 맞지 않는다”고 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도 지난달 국감에서 “유승준에 대한 인권 침해 여부를 논의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정부는 그의 입국을 허가할 경우 병역 의무의 신성함이 훼손되고 장병들의 사기가 저하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정부가 특정인에게 마치 화풀이하듯 병역에서 도망치면 끝까지 용서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보인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병역의 신성함이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병무청의 2015년 자료를 보면 고위 공직자 26명의 아들 30명이 국적 상실을 통해 병역을 기피한 사실이 확인되는데 이런 공직자들을 걸러내는 게 더 중요한 국가의 역할이다. 병역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보다 본질적인 대안을 찾는 쪽으로 나아갈 때가 된 것 같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0-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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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각장애 아버지의 코로나 시대 위암수술기[광화문에서/신광영]

    며칠 전 한 대학병원 진료실에서 아버지는 의사와 마주 앉았다. 간호사와 어머니, 나를 포함해 진료실에 있던 5명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아버지는 10년쯤 전 청력을 거의 잃어 상대 입 모양을 봐야 겨우 알아듣는다. 의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마스크 속을 맴돌았다. “수술을 하는 게 좋겠습니다. 70% 정도 잘라내야 할 거 같네요.” 얼마 전 아버지는 위암 판정을 받고 내시경 시술로 암 조직을 떼어냈다. 하지만 암세포가 일부 남아 있어 위를 절제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아버지는 의사와 가족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의사는 메모지에 3과 0.3이라고 써보였다. 수술을 안 할 경우 암이 번져 사망할 확률이 3%, 수술 후 합병증으로 고생할 확률이 0.3%였다. 10배 차이인 두 숫자에 아버지의 눈길이 머물렀다. 수술을 받아들이는 대가를 가늠할 수 없어 혼란스러운 눈빛이었다. “수술 대신 1년 정도 경과를 보면 안 될까요?” 의사는 말없이 친절한 표정을 유지했다. 수술의 불가피성을 이미 자세히 설명했던 터였다.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이날 상담은 전공의 파업으로 미뤄지다 어렵게 잡은 예약이었다. 전공의들이 복귀해 수술이 가능해진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었다. 어머니와 나는 ‘수술해야 한다’는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의학의 답은 나와 있었지만 자신의 답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환자의 몫이었다. 아버지는 체념한 듯 눈으로 미소를 지었다. 진료실에서 나오자마자 간호사는 준비해 놓은 병원 내부 약도를 건넸다. 수술 전 받아야 할 검사가 빨간 펜으로 빽빽이 표시돼 있었다. 아버지에겐 이제는 사라질지 모를 예전의 자신을 애도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럴 틈이 없었다. 우리는 ‘드라이브스루’ 하듯 혈액검사실, 폐·심장검사실 등을 바쁘게 통과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아버지는 가급적 이날 검사를 마쳐야 했다. 말없이 뒤따르던 아버지는 딱히 누가 들을 것이란 기대 없이 말했다. “내시경으로 끝나는가 보다 했는데 결국 잘라내야 한다고 하니까….” 아버지는 점심으로 설렁탕에 찬물을 섞어 몇 숟갈을 드셨다. 식도락을 누구보다 즐겼던 아버지에게 이제 허락되는 음식이 많지 않았다. 30년 넘게 105사이즈를 입었던 아버지는 얼마 전부터 100사이즈를 입는다고 했다. “수술하고 나면 95 입어야 된다”며 호탕하게 웃는 아버지의 웃음소리에 예전의 식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상실감이 배어 있었다. 식사 후 원무과 앞에서 입원실 예약을 할 때였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마스크 쓴 사람들 틈에선 아무 말도 들을 수 없는 아버지는 어머니의 간병이 필요했는데 동반 입원을 하려니 선택지는 1인실뿐이었다. 원무과 직원은 “코로나에 의료파업 여파로 입원실이 별로 없다”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다인실이 좋다고 고집을 부렸다. “1인실에 혼자 있으면 죽을병에 걸린 것 같잖아.” 어머니와 내가 입원 예약을 하는 동안 아버지는 대기석 맨 앞줄에서 TV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브라운관 속 배우들은 마스크를 쓰지 않은 거의 유일한 현대인이었다. 아버지는 그들의 입을 바라보며 병원에 온 것을 금세 잊은 듯 환하게 웃었다. 어느덧 백발이 된 아버지의 어깨에 부쩍 헐렁해진 셔츠가 흘러내릴 듯 걸쳐 있었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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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는 분열을 먹고 자란다[광화문에서/신광영]

    텅텅 비어가는 마트의 생필품 진열대에서 미국의 코로나는 시작됐다. 올해 봄 나는 미국에 머물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정부의 물자 관리를 믿지 않았다. 코로나가 퍼질수록 마트 계산대 앞 카트 행렬이 길어졌다. 방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여부에 따라 갈렸다. 민주당 주지사들이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며 빗장을 내걸 때 텍사스, 조지아 등 트럼프 지지자가 많은 주는 영화관, 미용실 등을 열어젖혔다. 주지사들은 서로 비난했고, 트럼프는 한쪽 편을 들었다. 많은 미국인들이 정치 성향에 따라 마스크를 쓰거나 안 썼다. 이런 분열과 불신이 코로나에게 좋은 주거 환경을 제공해 준 듯했다. 요즘 거리 두기는 ‘시대정신’이 됐지만 불신으로 벌어진 거리는 코로나에게 ‘틈새시장’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악성 확진자’들이 잇따르는 건 위험신호다. 광화문 집회에 참가해놓고 동선을 숨겨 자녀와 이웃을 감염시키고, 수백 명을 진단검사로 내모는 행태에 우리는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다. 이들을 향한 분노가 커질수록 잠재적 확진자들은 낙인과 배제의 공포에 갇힌다. 그로 인해 결국은 공멸로 이어질, 자멸적 선택을 하기 쉽다. 감염자와 비감염자 간의 정서적 균열이야말로 코로나에겐 최적의 생태계다. 코로나는 비집고 들어갈 틈새를 찾으려 숙주들을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한다. 최근 광화문 집회 허용을 두고 법원은 상반된 결론을 내놓았다. 서울행정법원의 5개 재판부가 10건의 집회 신청을 나눠서 심사해 4개 재판부가 8건을 금지했다. 다만 1개 재판부가 2건의 집회가 열리도록 허용했다. 집회 장소와 규모가 비슷했지만 재판부의 시각은 엇갈렸다. 4개 재판부가 “집단 감염 등 최악의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고 본 것을 1개 재판부는 “집회의 자유는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봤다. 4개 재판부가 “방역상 안전하다고 확신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봤다면 1개 재판부는 “위험하다고 확신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일부 집회가 허용될 경우 다른 시위대까지 몰려들어 통제가 어려워질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집회 금지는 최후 수단이어야 한다’는 재판부의 문제의식 또한 가볍지 않다. 정치권에선 이 판결을 비난하며 또 다른 갈등을 만들고 있다. 이는 우리를 딜레마에 빠뜨린 뒤 자중지란을 부추기는 전략을 취해온 코로나가 바라던 바일 수 있다. 전공의 집단파업 역시 우리가 직면한 고난도의 시험이다. 의료인들이 ‘국민영웅’에서 이익집단으로 변질되는 프레임의 전환을 코로나는 몹시 기다릴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의료공급 확대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 결정적 계기인 동시에, 그렇다고 공급 확대를 밀어붙이면 의료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이 연일 “엄정한 법 집행” “살아있는 공권력”을 강조하는 낯선 풍경을 요즘 자주 보게 된다. 그만큼 방역은 절체절명의 국가적 과제다. 하지만 폐쇄, 추적, 구속 등의 험한 언어에 주눅 들지 않는다는 게 코로나가 가진 지독한 저력이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유명순 교수가 올 상반기 진행한 국민위험인식조사에 따르면 코로나 위기 경보가 주의→경계→심각으로 격상될수록 확진 시 돌아올 비난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다고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 3단계로 올라갈수록 방역 철학도 보다 유연하고 균형을 잡는 쪽으로 성숙해져야 함을 보여주는 결과다. 단호함은 선을 긋고 누군가를 고립시킬 때보다 분열과 불신을 메우는 데 쓰일 때 더 강력할 수 있다. 코로나는 이런 ‘신뢰 방역’이 가장 두려울 것이다.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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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 제보 여성 성추행 혐의 前 MBC기자 벌금 1000만원

    전직 지상파 방송사 기자가 기자 시절 제보자인 여성을 모텔로 데려가 추행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26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서부지법 형사6단독 신진화 판사는 강제추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전 MBC 기자 A 씨에게 올 4월 10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신 판사는 A 씨에게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을 이수하도록 명령했고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에 1년 동안 취업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A 씨는 MBC 기자로 근무하던 2015년 제보자였던 B 씨(29·여)를 모텔로 데려가 강제로 껴안고 신체 일부를 만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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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처럼 경찰 될래요” 끝내 울어버린 윤성이[광화문에서/신광영]

    순직한 아빠 대신 상을 받는 자리에서 일곱 살 윤성이는 내내 의연했다. 빳빳한 제복 차림의 어른들 틈에서 아빠 이름이 적힌 상패를 가슴 한가득 안고 고개를 빠끔히 내밀어 기념촬영도 했다. 시상식 팸플릿에 윤성이 아빠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교통사고 현장을 수습하다가 차량에 치여 순직한 이상무 경위였다. 윤성이는 그의 3, 5, 7세 아들 중 첫째다. 아이와 얘기를 나누게 된 건 23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이 끝날 무렵이었다. “팸플릿 보니까 윤성이 장래 희망이 경찰관이네. 아빠처럼 훌륭한 경찰관이 되고 싶어?” 시상식에서 아빠 이름이 호명될 때도 의젓한 눈망울을 반짝이던, 경찰관인 엄마가 흐느낄 때마다 담담히 손 잡아주던 큰아들 윤성이는 그제야 어린이로 되돌아왔다. 윤성이는 엉엉 소리 내 울었다. 엄마는 무릎을 꿇고 앉아 아들의 눈가에 손수건을 갖다 댔다. 윤성이의 바람처럼 아버지가 끝내지 못한 길을 걷는 자녀들이 적지 않다. 아버지와 같은 제복을 입고, 아버지가 쓰던 장비를 들고, 아버지가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현장에 출동하는 사람들이다. 아버지와 생전에 함께 보낸 시간이 많지 않지만 같은 제복을 입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와 교감하고 동시에 그의 부재를 실감한다고 그들은 말한다. 경남 김해서부경찰서 김도균 경사(38)는 윤성이의 30년 뒤 모습일지 모른다. 김 경사의 아버지는 2006년 도로에 자갈을 흘리는 덤프트럭을 단속하던 중 다른 차량에 치여 순직했다. 윤성이와 동갑인 김 경사의 아들 역시 “아빠처럼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한다. 김 경사는 윤성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그 아이가 훗날 제복을 입게 된다면 아버지의 제복도 함께 입는 거예요. 그게 큰 힘이 될 거예요.” 순직한 아버지의 직업은 자녀에겐 애증의 대상일 수 있다. 2018년 경북 영양경찰서 김선현 경감이 조현병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순직했을 때 그의 딸은 경찰 필기시험을 두 달 앞두고 있었다. 대학에서 경찰행정학을 전공하고 시험을 준비해 왔지만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순직은 오랜 꿈을 뒤흔들 만큼 충격이었다. 딸 김성은 순경은 결국 마음을 다잡고 그해 경찰시험에 합격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도 제가 경찰이 되길 원하실 거 같아 힘을 냈다”고 했다. 경남 창원소방본부 김동수 소방경의 아버지는 1996년 지리산에 조난된 등산객을 구하고 돌아오다 헬기 추락으로 순직한 구조대원이었다. 당시 여섯 살이었던 김 소방경은 유품을 정리하다가 아버지가 헬기 옆에서 제복 차림으로 찍은 사진과 빼곡히 적은 근무일지를 보고 소방관의 꿈을 품게 됐다. 하지만 막상 성인이 되었을 땐 진로를 정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위험한 현장에 가장 먼저 뛰어들어야 하는데 저는 운동신경이 뛰어나지도 않고 겁도 많은 평범한 사람이라….” 그는 2015년 결국 소방관이 돼 화재진압대원으로 일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랑 목욕탕을 못 가본 게 아쉬웠는데 아버지처럼 방화복을 입고 호스를 들고 있으면 그때 빈자리가 채워지는 것 같아요. 불구덩이를 만나도 아버지가 옆에 계신 것 같아 덜 무섭더라고요.” 순직한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것은 제복 공무원의 가족으로서 불안과 빈자리를 감당했던 데 이어 아버지가 짊어졌던 위험과 책임까지 승계하겠다는 결심이다. 제복에는 책임감이 묻어 있다고 한다. 제복을 입는 순간 위험에 처한 사람이 눈에 들어오고 몸이 먼저 그쪽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제복의 DNA’가 그런 것일까. 똘똘한 한 채를 대물림하거나 각종 ‘아빠 찬스’가 적지 않은 요즘, 아버지의 못다 이룬 숙명을 이어받는 모습에 숙연해진다.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

    • 2020-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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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집까지 따라온 남자가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 피의자 조모 씨(30·구속)는 여성이 간발의 차로 문을 닫고 집에 들어가자 스마트폰 손전등을 켰다. 도어록에 묻은 지문을 보고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했다. 그날 새벽 여성은 현관문 너머의 낯선 남성이 비밀번호를 눌러대는 소리를 홀로 들었다. 23일 광주에서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김모 씨(39·구속)는 20대 여성을 집까지 뒤따라가 문 자물쇠를 여는 것을 훔쳐본 뒤 쪽지에 자물쇠 비밀번호를 적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여성이 잠들면 문을 열고 들어가 성관계를 맺으려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남성이 여성을 뒤따라가 집에 침입하려고 한 사건은 그동안 숱하게 있었다. 하지만 이를 중대한 범죄로 보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신림동 사건’ 현장 폐쇄회로(CC)TV에 담긴 아찔한 순간을 목격하고 나서야 여성들의 오래된 공포를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피해자의 고통은 남성이 문을 열지 못하고 되돌아간 뒤 비로소 본격화된다. ‘그놈’은 여성의 집 동·호수를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안식처였던 집은 그놈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범행 예정지’로 바뀐다. 여성들은 길을 걷거나 지하철을 타는 등 평범한 일상의 와중에도 표적이 되는 경험을 한다. 이런 일상성은 같은 사건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공포로 고스란히 되돌아온다. 악몽이 곧 현실이 돼 집 근처에서 가해 남성과 마주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 때도 별다른 신체 접촉이 없는 한 처벌하기 어렵다. 그 결과 가해자는 활보하고 피해 여성은 멀리 이사를 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반복된다. 지난해 3월 40대 남성이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오피스텔로 들어가는 여성을 뒤따라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탔다. 그는 여성이 자기 집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재빨리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도어록이 잠기기 전 문을 열어젖혔다. 현관에서 낯선 남성과 맞닥뜨린 여성은 너무 놀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남성은 여성을 강제추행한 뒤 달아났다. 얼마 뒤 경찰에 붙잡힌 이 남성은 부인과 자녀를 둔 금융기관 간부였다. 법원은 “주거가 일정해 도주 우려가 없다”며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3월 1심 판결에서도 “추행이 중하지 않고 가족들이 선처를 탄원하는 등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하다”는 등의 이유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피해 여성은 가해자가 또 찾아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결국 집을 옮겼다. 그는 사건 후 1년이 지난 지금까지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다. 경찰이 ‘신림동 사건’ 피의자 조 씨를 강간미수 혐의로 구속한 것을 두고 무리한 법 적용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조 씨가 성폭행을 시도한 것으로 의심되긴 하지만 강간을 위한 ‘실행의 착수’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실행의 착수’ 여부가 모호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이 이미 심각한 피해를 입은 이상 처벌의 공백을 방치할 수는 없다. 최근 검거된 주거침입 범죄자들은 대부분 스토킹이나 성추행 등 동종 전과를 여러 건 갖고 있다. 잠재적 성범죄자들이 서서히 수위를 높여가며 중범죄를 저지를 때까지 우리 법체계가 이들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행의 착수’가 확인되지 않았더라도 엄중히 책임을 묻는 제도는 여러 분야에서 시행되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자가 시험을 치르는 동안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가 발각되면 그 자체로 부정행위로 간주된다. 음주 측정에 3회 이상 불응한 운전자는 면허취소 등 만취운전과 동일한 수준의 처벌을 받는다. 현행 ‘성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은 남성이 여자 화장실이나 탈의실, 목욕탕 등 에 침입하는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본다. 예전에는 건조물 침입 정도로 여겨 훈방했지만 몰카 촬영·유포 범죄의 피해가 워낙 심각해 법이 개정됐다. 여성을 뒤따라가 주거 침입을 시도하는 행위 역시 피해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성범죄를 위한 ‘예비·음모’로 간주해 처벌하는 법을 도입할 때가 됐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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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끝장 맞짱 박살 깡다구… 뒤로 가는 민노총의 언어 [광화문에서/신광영]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이 무턱대고 불법 시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널리 알리고 싶은 그 나름의 주장이 있어서다. 며칠 전 법원 결정을 무시하고 현대중공업 주주총회장을 점거한 것은 조선업이 불황인 와중에 고용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의 표출이었다. 3월 국회 난입 사태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3개월에서 6개월로 늘리는 정책에 반대한다는 의사 표시였다. 지난해 11월 서울 마포대교를 점거해 퇴근길을 마비시켰을 땐 건설근로자 복지 개선 법안이 국회에서 홀대받자 불만을 드러낸 것이었다. 폭력 시위를 주도해 법정에 선 민노총 간부들은 “절박감에서 비롯된 우발적 행동”이라며 선처를 호소한다. 법원은 그런 사정을 감안해 양형 기준보다 낮은 형량을 선고하고 집행을 유예해준다. 민노총은 폭력 시위로 일부가 구속되더라도 곧 ‘거물’이 되어 복귀하는 패턴을 반복하며 누구도 건들 수 없는 철옹성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불법 집회가 민노총에 ‘남는 장사’는 아니다. 폭력이 지나간 자리에는 여론의 싸늘한 시선이 남는다. 조합원들이 휘두른 폭력의 피해자는 주로 시위 현장 최전선에 있는 순경이나 의경 등 경찰 내부의 하급자들이다. 공사장 등에서 한정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노조 조합원인 경우도 많다. 시위대의 폭력은 강한 자를 향한 저항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민노총 집회에서 현장을 통제하는 공권력은 거추장스러운 방애물 정도로 여겨진다. 민노총 시위 현장에서는 조합원들을 향한 노조 간부들의 이런 지시가 종종 들려온다. “자, 주변에 있는 경찰들 다 걷어주시기 바랍니다.”(2015년 11월 서울 민중총궐기) “지부장이 명령합니다. 완력을 행사하기 바랍니다. 경찰 무장해제시키십시오.”(2016년 6월 울산 플랜트건설노조 집회) 민노총 간부들은 법정에서 “평화로운 집회로는 여론의 관심을 끌 수 없어 과격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과격할수록 ‘깨어 있는 시민’들이 동조할 것이라는 민노총의 바람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그럴 때면 민노총은 시위의 폭력성을 부각시킨 보도 탓이라며 언론에 화살을 돌린다. 지난달에는 ‘집회 시위를 부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노동보도 준칙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불법 폭력 시위가 벌어졌을 때 수단의 불법성을 문제 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주장에 더 귀 기울인다면 합법적으로 시위하는 대다수 시민은 설 자리가 좁아진다.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포장할 수 없는 인간성을 짓밟는 행위다. 머리띠에 ‘열사정신 계승’ ‘노동인권 보장’ 같은 고귀한 문구가 적혀 있더라도 복면 차림에 각목을 든 시위대에 둘러싸인 사람은 극한의 공포를 느낀다. 지난달 22일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에서 민노총 조합원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한 경찰관은 “피투성이가 된 내 모습이 너무 수치스러워 집에 갈 수 없었다”고 본보 기자에게 말했다. 민노총 시위 현장을 취재하다 보면 그들만의 전투적 언어가 생경하게 느껴지곤 한다. “오늘의 분노를 담아 끝장냅시다.” “맞짱 뜹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똑같습니다.” “노동자의 깡다구로 박살내야 합니다.” 일상 언어와 동떨어진 이 날 선 구호에는 평범한 시민의 공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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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긴급한 현장일수록 ‘非긴급’으로 위장한다

    “제가 112 신고했는데 별일 아니에요. 돌아가셔도 돼요.” 지난해 8월 한 사내가 집 문틈으로 얼굴을 빼꼼히 내민 채 말했다. 전남 여수경찰서 최모 경위는 “친구가 술에 취해 때린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참이었다. 흔한 주취폭행 신고였다. 어느새 문은 닫히고 있었다. 최 경위가 문을 잡았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합니다.” 사내는 목소리를 높였다. “신고자가 별일 아니라고 하잖아. 집에 아무도 없다고.” 그때 집 안에서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함께 출동한 동료가 신고자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사내는 순간 뒤를 돌아봤다. 최 경위가 내부를 힐끔 보니 바닥에 사람의 다리가 어렴풋이 보였다. 최 경위는 문을 밀고 들어갔다. 피범벅이 된 채 의식을 잃은 한 남자의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 벨소리가 났다. 그는 응급수술 후 목숨을 건졌다. 2월 10일 새벽 경남 창원 마산동부경찰서 문모 순경은 “언니가 어딘가에 갇혀 성폭행을 당한 것 같다”는 신고를 받았다. 휴대전화 위치추적 결과 언니는 마산의 한 시장 주변 150m 반경에 있었다. 문 순경은 불이 켜진 집들을 찾아가 현관문에 귀를 대봤다. 2층 원룸 문에 귀를 대보려는데 문손잡이가 미세하게 움직였다. 몇 번의 움직임 후 이내 안에서 불이 꺼졌다. 수상했지만 그것만으로 수색에 나서기는 어려웠다. 발길을 돌리려던 순간이었다. “살려주….” 소리는 들릴 듯 말 듯했다. “경찰입니다. 문 좀 열어 보시죠.” 문을 몇 번 두드리자 중년 남자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뭡니까, 새벽에. 잠자는 시민을 막 깨워도 되는 겁니까.” 문 순경은 멈칫했다. 잘못 짚은 거라면 민원감이다. 그래도 감(感)을 믿기로 했다. “안 열면 강제 개방합니다.” 얼마 뒤 도어록 풀리는 소리가 났다. 문 순경은 문을 열어젖혔다. 한 여성이 손을 벌벌 떨며 털썩 주저앉았다. 3월 26일 대구지법은 가정폭력 신고를 받고 집에 들어온 경찰관에게 유리병을 던지고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 남성에게 1심에 이어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관은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자 열려 있던 문으로 진입했다가 공격을 당했다. 법원은 허락 없이 집에 들어간 경찰의 행위가 적법하지 않다고 봤다. 이미 범행을 저질렀거나, 당장 범행을 저지를 것처럼 위급하지는 않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상황에선 경찰을 폭행해도 공무집행방해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결론이다. 긴급한 현장일수록 ‘비긴급’ 징후들로 위장돼 있는 경우가 많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지 않으면 현관문 너머의 피해자를 지나치기 쉽다. 현장은 살아 움직이는데 고정된 잣대로 현장 대응을 평가하면 경찰관들은 소극적인 대응을 합리적 선택으로 여길 수 있다. 그들 역시 한 사람의 가장이자 직장인이기 때문이다. 진주 방화·살해범 안인득의 난동 신고를 8번이나 받고도 범행을 막지 못한 무심함, 이영학 살인사건 때 피해 여중생이 그의 집에 갔다는 걸 알고도 즉시 집에 가보지 않은 안이함은 학습된 무기력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법정에 선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돼야 하고 수사 받는 피의자는 방어권이 보장돼야 한다. 이미 벌어진 일을 다루는 재판과 수사는 넘치지 않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한 번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경찰의 초동 대응은 모자라지 않는 게 중요하다. 위험한지 아닌지는 들어가 봐야 안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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