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신광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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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신광영 논설위원입니다.

neo@donga.com

취재분야

2024-03-27~2024-04-26
칼럼58%
국제일반13%
미국/북미10%
중동10%
인사일반3%
국제인물3%
중국3%
  •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 “교통경찰 등 3900명 배치, 시민 불편 최소화”

    “올해 90회를 맞는 서울국제마라톤은 한국 마라톤 신기록의 요람입니다. 기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이 최우선입니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사진)은 13일 “대회 참가자들이 갈고닦은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는 데 집중할 수 있도록 안전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원 청장은 “각종 돌발 상황과 테러 위험 등에 대비해 서울 광화문과 잠실 주경기장 주변에 경찰특공대와 경찰견을 배치할 계획”이라며 “세계인이 지켜보는 국제대회답게 안전과 질서도 최고 수준으로 관리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국제마라톤 중계 영상은 해외 103개국에 송출된다. 서울경찰청은 교통경찰 775명과 모범운전자 524명 등 진행요원 약 3900명을 코스 곳곳에 배치해 대회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고 시민 불편을 최소화할 계획이다. 원 청장은 “대회 성공을 위해선 무엇보다 주변 주민들의 성원과 협조가 필수적이다. 교통통제 플래카드와 입간판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대회 당일인 17일 오전 5시부터 8시 40분까지 출발지인 세종대로(광화문 앞∼세종대로 사거리) 양방향 전 차로의 교통을 통제한다. 오전 7시 50분부터 오후 1시 35분까지는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잠실주경기장에 이르는 구간에서 순차적으로 진행 방향 전 차로 교통이 통제된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9-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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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룸살롱 황제’ 이경백이 강력부 검사에게 한 얘기

    2012년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의 한 조사실. 당시 서울 강남 유흥업계를 주름잡던 ‘룸살롱 황제’ 이경백 씨는 검사에게 진술하며 ‘월정’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논현지구대가 4개 팀인데 각 팀 총무에게 월정 200만 원씩 줬죠.” 이 씨는 총무를 맡은 고참 경찰관에게 매월 정해진 금액을 상납했다. 일원화된 수금 창구를 무시하고 따로 이 씨의 업소를 찾아오는 경찰관도 있었다. 그들은 대개 정복 차림으로 나타나 “내 이름을 못 들어봤나 보지? 깐깐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을 텐데…”라고 말하곤 했다. 이 씨는 이들을 ‘각개전투’, ‘독고다이 슈킹’ 등의 속칭으로 분류했다. 이 씨가 아무에게나 준 것은 아니다. 총무가 “팀을 정리했다”는 의사표시를 해야 부하 직원들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보고 거래를 텄다. 태도가 미지근하면 “다른 총무들처럼 착착 치고 나오지 않는다”며 적게 줬다. 말이 상납이지, 경찰관들을 방패로 고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씨는 당시 룸살롱 13곳을 운영하며 5년간 약 3000억 원을 벌었다. 단속 공무원들에게 매달 수천만 원 정도 쓰는 것은 사업 리스크를 줄이는 가장 ‘가성비’가 좋은 수단이었다. 그의 상납 리스트에 오른 경찰관 중 18명이 구속되고 66명이 징계를 받았다. 이 씨는 검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자선사업가라서 돈을 줬겠습니까. 단속을 제대로 맞으면 그만큼 피해가 크고, 안 맞으면 그만큼 이익이 크니까 상납하는 거죠.” 유흥업의 경쟁력은 고객의 욕망을 채워주면서도 문제가 안 되도록 막아줄 때 극대화된다. VIP들은 그런 곳에서 돈을 뿌린다. 버닝썬, 아레나 등 유명 클럽들이 화류계의 강자로 떠오른 요즘에도 업(業)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잘되는 클럽일수록 경쟁업소의 신고가 많고, 단속에 걸려 영업정지라도 당하면 기회비용이 크다. 그때나 지금이나 단속을 차단하려는 동기가 강할 수밖에 없다. 폭행시비로 시작된 버닝썬 사건이 마약 투약과 유통, 약물 성폭행 의혹 등으로 커지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렸던 욕망의 치부가 드러나고 있다. 클럽 안으로 공권력이 미치지 않도록 단속 경찰관들을 관리해야 할 절실한 사정이 있었던 것으로도 보인다. 실제로 버닝썬 대표가 전직 경찰관을 통해 경찰에 2000만 원을 건네려 했던 정황도 나왔다. 수익 모델을 지키려는 업주와 유혹 앞에 선 경찰관이 존재하는 이상 ‘빅딜’이든 ‘스몰딜’이든 거래는 계속된다. 유흥업주와 경찰관의 유착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경찰 수뇌부는 강수를 둬 왔다. 강남지역 관서 경찰관들을 수백 명씩 물갈이했고, 업주와 전화 통화만 해도 징계를 하기도 했다. 버닝썬 사건 수사를 지휘하는 원경환 서울경찰청장도 4일 기자간담회에서 “유착이 확인된 경찰관은 용서하지 않겠다. 연루된 직원이 아무리 많아도 모두 처벌하겠다”고 결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유착 경찰관들을 ‘썩은 사과’로 간주해 도려내는 식의 대책은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업주가 단속 경찰관과 ‘직거래’하거나 경찰관이 유흥업소에 직접 투자해 수익을 챙기는 등 수법이 한층 정교해질 뿐이었다. 한때 음주단속에 걸린 운전자들이 경찰관에게 뒷돈을 찔러주는 일이 흔히 있었다. 요즘 그런 관행이 사라진 것은 둘 간의 거래가 오가던 시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경찰은 ‘1인 단속’을 없애고 의경 등 여러 명이 공개단속을 하도록 했다. 또 음주측정기에 저장된 기록은 바로 출력해 음주운전 입건자 명단과 매일 대조하도록 의무화했다. 경찰관이 봐줄 수 있는 여지가 없으니 운전자 역시 기대할 게 없어져버렸다. 뒷돈 주고받는 사람도 잡아야겠지만 거래가 이뤄지는 시장을 잡아야 버닝썬 같은 사건이 줄어든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9-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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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어느 날 내 계좌에 100억 원이 들어온다면

    #. 오전 9시 31분. 지난해 4월 6일 그 시각, 서울 서초구 삼성증권 본사 사무실에서 한 여직원이 손을 덜덜 떨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있는 그의 눈에 초점이 없었다. 조금 전 마우스 버튼을 눌렀던 손을 한 번씩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날은 삼성증권 주식을 보유한 자사 직원들에게 배당금을 주는 날이었다. 지급 담당인 그 여직원은 너무 ‘비싼’ 실수를 하고 말았다. 주당 1000원의 배당금을 지급해야 하는데 주당 1000주의 주식을 입고시켰다. 100주를 가진 직원이라면 배당금 10만 원 대신 한순간에 주식 10만 주(398억 원)를 갖게 됐다. #. 오전 9시 44분. 본사 12층 회의실에서 기업금융2팀 4명이 영업회의를 하고 있었다. 팀원들은 이날 아침 갑자기 자사 주가가 떨어지는 게 의아했다. C 대리는 무슨 일인가 싶어 자신의 주식 계좌를 열어봤다. “어! 이거 뭐야.” 계좌에 200억 원이 넘는 주식이 들어와 있었다. A 팀장, B 과장, D 주임도 계좌를 확인했다. 평소 잔액보다 끝자리 ‘0’이 3개 더 붙어 있었다. #. 오전 9시 47분. 사측은 내부 전산망을 통해 ‘잘못 입고된 주식이니 팔지 말라’고 3차례 전파했다. 회의실에 있던 팀원들은 이를 못 본 듯했다. B 과장은 ‘매도 주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팝업 창이 떴다. ‘30억 원 이상 거액 주문입니다. 주문처리하시겠습니까?’ 그는 7만 주씩(29억여 원) ‘쪼개기 주문’을 했다. C 대리, D 주임도 따라 했다.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팀원들을 A 팀장은 막지 않았다. 함께 건넜다. 불과 3분 사이 이들이 팔겠다고 내놓은 주식 가치는 각각 205억~414억 원이었다. 회사가 즉각 봉쇄 조치에 나서면서 현금화는 되지 않았다.지난달 30일 서울남부지법 304호 법정. 말끔한 정장차림 남성 8명이 모여 있었다. 잘 닦인 구두에, 가지런히 빗어 넘긴 머리칼, 뿔테안경. 20대 후반~40대 초반의 지적인 인상이었다. 다만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기업금융2팀 4명 등 주식을 팔아치우려 한 혐의로 기소된 삼성증권 직원들이었다. 검찰은 세 가지 죄명으로 이들을 법정에 세웠다. ‘나의 이익은 누군가의 손해’인 주식시장에서 불공정 경기를 한 죄, 실제 갖고 있지도 않은 주식을 팔겠다고 속인 죄,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돕기는커녕 일확천금을 시도한 죄가 있다고 봤다. 이들은 대부분 검찰 조사에서 “순간 욕심이 났다”고 진술했다. 카카오톡으로 ‘주식을 팔면 어떻게 될까’ ‘회사 그만두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상의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표로 될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 해고됐다. 회사로부터 5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당했다.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실제 손에 돈을 쥐지는 않았지만 손대지 말았어야 할 ‘매도’ 버튼을 누른 대가다. 10개월 전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선망받던 ‘엘리트 증권맨’이었던 피고인들은 이날 재판에서 최후진술을 했다. “한순간의 어이없는 행동을 반성합니다. 그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두 자식의 아버지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갈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이익을 취할 생각이 없었고 얻지도 않았습니다.” 삼성증권 오류배당 사고는 비슷한 판례를 찾기 힘든 초유의 사건이다. 담당 판사도 “짧은 시간에 벌어진 일이 너무 어마어마해졌다. 법리를 치열하게 따져보겠다”고 했다. 그날 주식을 배당받은 직원 2018명 중 시장에 주식을 내놓은 직원은 22명이었다. 100명 중 1명꼴이다. 우리는 살면서 한번쯤 그 ‘1%의 선택’ 앞에 놓일 때가 있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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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연민이 불법과 만나면 더 이상 선의가 아니다

    지난해 1월 그날은 국립암센터 정규직 필기시험을 한 달쯤 앞둔 날이었다. 이 병원 방사선과 임시직 민수(가명·28)는 직속 상사인 A 씨(44·여)의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달 뒤 치르게 될 정규직 필기시험 문제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그제야 민수는 A 씨가 출제위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자신의 호출에 영문도 모른 채 달려온 민수를 앞에 두고 A 씨는 태연하게 마우스를 만지작거렸다. “민수 씨, 문제에 오탈자가 있는지 봐봐.” ‘이걸 왜 나한테 보여주지?’ 민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A 씨에게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국립암센터 정규직은 방사선사 자격증을 가진 사회 초년생들에게 꿈의 직장이다. 하루 8시간 근무에 300만 원이 넘는 월급, 게다가 정년보장까지. 민수는 다른 종합병원에서 2년간 경력을 쌓은 뒤 어렵게 임시직 자리를 얻었다. 이때부턴 정규직이 되려고 낮에 일하고 밤에 시험 준비를 하며 1년 넘게 ‘주경야독’했다. 간부들은 민수에 대해 “착실하고 빠릿빠릿하다”며 좋게 평가했다. 정규직 입성이 코앞이었다. 모니터 화면 속 시험문제들은 순식간에 머리에 입력됐다. 묘한 흥분과 함께 죄책감이 뒤섞였다. 15분쯤 지났을까. 뒤에서 “어!”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근처를 지나던 다른 부서 간부가 모니터 화면을 보고 만 것이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민수와 A 씨를 번갈아 봤다. A 씨는 황급히 환자의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을 모니터에 띄웠다. 몇 초간 적막이 흘렀다. 며칠 뒤 병원에 소문이 퍼졌다. 시험문제를 미리 본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민수는 공들여 쌓아올린 탑이 무너질 것만 같아 걱정이었다. 고심 끝에 다른 임시직 동료들에게 문제를 알려주기로 했다. 한 명씩 카카오톡으로 대화하며 시험문제를 보냈다. ‘고마워 오빠. 근데 이렇게 해도 돼?’ ‘야 빨리 봐. 나도 겁나.’ 필기시험은 지난해 2월 예정대로 치러졌다. ‘문제 유출’이라는 불씨를 안고 있는 이 시험에 178명이 몰렸다. 민수 같은 임시직이 12명, 외부 지원자가 166명이었다. 서울과 수도권 종합병원에서 2년 이상 근무한 방사선사 대부분이 응시할 정도로 격전이었다. 정규직 합격자는 단 3명. 그중 한 명이 민수였다. 매사에 열심이고 일처리가 꼼꼼했던 민수의 합격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그의 안도감은 오래가지 못했다. 합격자 발표 한 달 뒤 정기 감사를 나온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에게 ‘문제 유출’ 제보가 날아들었다. 민수와 A 씨는 조사를 받았고 바로 시인했다. 민수의 합격은 취소됐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A 씨는 물론이고, 혼자만 시험을 잘 볼까봐 동료들에게 문제를 알려준 민수의 행위 역시 형사처벌 대상(업무방해)이었다. 민수 한 명을 위해 175명의 ‘민수’들을 들러리로 만든 대가는 가볍지 않았다. A 씨는 지난달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18년간 일했던 직장 암센터에서도 해임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자책했다. “민수가 궂은일을 도맡아했어요. 그 절박한 모습에 연민이 들어서 도와주고 싶었던 건데….” 본의 아니게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문 민수 역시 재판에 넘겨질 처지다. 유죄 판결이 나면 앞으로 공립 병원에 취업하기 어렵다. 경기북부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23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A 씨와 민수 사이에 금전 등의 대가가 오간 건 없었다고 밝혔다. A 씨는 민수를 돕고 싶었을 것이고, 민수 역시 호의를 마다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기성세대의 그릇된 온정에 한 청춘이 허망하게 무너졌다. 법의 경계를 넘는 순간 이타심은 더 이상 선의가 아니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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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그렇게 가해자가 된다

    그날 아침 경기 동두천시 어린이집 여교사 A 씨(28)는 통학버스에서 벌어질 일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기온이 32도를 웃돌던 7월 17일이었다. 버스가 어린이집에 도착한 오전 9시 26분, 인솔교사였던 A 씨는 봐야 할 것을 못 보고 하차했다. 맨 뒷자리에 4세 원아가 잠들어 있었다. 버스 운전사도 그냥 시동을 끄고 문을 잠갔다. 담임교사는 아이가 안 온 것을 알았지만 ‘부모가 데려다주나 보다’ 하고 넘겼다. 7시간 뒤 아이는 숨진 채 발견됐다. 사고 전까진 평범한 어린이집 교사였던 A 씨는 지난달 1심에서 금고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혔다. 올해 대형 안전사고의 책임자로 지적된 사람들 대부분이 A 씨처럼 졸지에 운명이 바뀌었다. 고3 10명이 여행을 갔던 강원 강릉시 펜션 주인은 사고 전날 학생들에게 고기를 구워줬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친절한 펜션 아저씨였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가 나자 보일러 부실 관리 관련자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공사장에서 일하다 호기심에 풍등을 날린 스리랑카인 역시 중실화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신세다. 동료들의 신망이 높았던 이 합법체류 노동자는 풍등이 저유소로 날아가 화재의 불씨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일용직 등 7명이 숨진 서울 종로고시원 화재는 또 어떤가. 이 고시원은 3년 전 서울시의 간이 스프링클러 무료 설치 대상으로 선정됐지만 건물주의 반대로 무산됐다. 스프링클러 물방울이 언젠가 생명수가 될 것이라고 실감했다면 건물주는 그런 결정을 했을까. 사회가 복잡해지면 각자가 분업 관계로 얽혀 자신의 생명을 타인의 관리에 맡긴 채 살아가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나의 작은 부주의가 언제든 다른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안전사고에 관한 한 우리 누구든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위험 인지 감수성’을 높이는 제도가 절실히 필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금처럼 평소엔 위험을 과소평가하다 사고 후에 책임자 색출에만 급급한다면 아무리 많은 참사를 겪어도 나아질 수 없다. 요즘 유행하는 놀이시설 중 ‘방탈출 카페’라는 곳이 있다. 이용객들은 어둡고 감옥 같은 방에 갇혀 게임을 시작한다. 퀴즈를 맞히면 다른 방으로 옮겨가고 그렇게 몇 단계를 거쳐야 직원이 밖에서 문을 열어준다. 게임 도중 불이 나면 속수무책인 구조다. 화재 대비가 그 어느 곳보다 중요하지만 이상하게도 안전 규제를 받지 않는다. 다중이용업소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소방 관계자의 설명은 더 충격적이다. “아직 거기서 죽은 사람 없잖아요.” 위험이 현실화되지 않았는데 점검 대상에 넣었다가는 업계의 불만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푸념도 한다. 그렇게 우리의 안전 정책은 수많은 인명을 잃은 뒤에야 더디게 나아갔다. 참담한 희생을 딛고 만든 정책마저 ‘행정 편의’ 규정들로 누더기가 된다. ‘면적 몇 ㎡ 이상’, ‘층수 몇 층 이상’, ‘건립연도 몇 년 이후’ 등 온갖 제한을 걸어 단속 대상을 좁힌다. 자연히 공무원들이 책임질 범위는 줄어든다. 그 결과 사각지대가 생기고 사고는 거기서 또 터진다. 안전에 대한 정부의 책임 회피식 태도는 공기업과 민간에 전염된다. 위험을 ‘외주화’한다. 위험한 일은 하청업체에 맡겨 비용을 줄이고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까지 떠넘긴다. 충남 태안 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에 몸이 끼여 숨진 김용균 씨(24)처럼 먹이사슬 맨 아래에 있는 하청 근로자들이 위험을 떠안는다. 강릉 펜션 사고 희생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뒤 이런 말을 했다. “우리 아이들은 하라는 대로 열심히 공부했고 착하게 생활했습니다. 밤늦게 돌아다니지 말라고 해 숙소에 있었습니다.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이 잘못되어지는 현실에 응답해주길 바랍니다.” 위험에 둔감하고 책임 회피에 민첩한 사회에서는 ‘잘못 없는 사람이 잘못되는’ 비극을 멈추기 어렵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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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콩밥’보다 ‘돈줄 차단’… 양진호의 아킬레스건

    ‘구속되면 3억 원, 집행유예 1억 원, 벌금형 받으면 그 돈의 2배로 보상.’ 양진호 한국미래기술 회장(47·구속)의 측근이었던 한 내부 고발자는 지난달 양 회장의 독특한 ‘임직원 인센티브’를 폭로했다. 경찰 수사로 드러난 양 회장의 핵심 경영방침은 자신을 숨기는 것이었다. 그는 국내 1, 2위 웹하드 업체를 거느리면서 측근들을 바지사장으로 앉히고 배후 조종했다. 음란물 유포나 저작권 침해가 적발되면 이들이 처벌을 받았다. 그 대신 출소 후 승진하거나 거액의 성과급을 받았다. “양진호 왕국은 별들의 천국”이란 말도 있다. 양 회장이 몇 개월 감옥살이나 벌금 몇백만 원을 두려워한 것 같지는 않다. 사업에 지장이 생기는 게 싫었을 것이다. 그가 구축한 불법 음란물 유통 카르텔은 감시망을 벗어난 황금알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일단 원료 값이 안 든다. 성관계 몰카 등 불법 촬영물은 저작권료를 달라는 사람이 없다. 인터넷에 대량으로 콘텐츠를 올리는 ‘헤비 업로더’를 조직적으로 운영하며 매출의 10∼18%만 떼어준다. 이들이 물어오는 불법 촬영물은 인기가 많아 일본 성인물(AV)보다 수익이 10배 이상 높다. 이들이 ‘콩고물’로 받아가는 돈만 수천만 원이다. 양 회장은 정부 규제를 사업 다각화에 역이용했다. 웹하드 업체는 불법 촬영물 등을 걸러내는 필터링 업체의 감시를 받아야 하는데, 양 회장은 ‘셀프 감시’용 필터링 업체를 차명으로 세웠다. 리벤지 포르노 등 금지 품목은 무사통과됐다. 게다가 온라인에 퍼진 불법 촬영물을 지워 주는 디지털 장의사 업체까지 운영해 추가 수익을 냈다. 벼랑에 몰린 피해자들이 영상을 지워 보겠다며 어렵게 마련한 돈까지 양 회장의 주머니로 갔다. 경찰은 양 회장이 이렇듯 ‘깔때기’로 쓸어 담은 부가 10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본다. 그동안의 검경 수사는 이 비즈니스 모델을 건드리지 못했다. ‘빨간 줄’을 각오하고 고용된 바지사장들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정보통신망법)을 선고받을 뿐이었다. 대표 이름만 바뀔 뿐 이 수지맞는 사업은 고속 성장을 지속했다. 몰카 유포 같은 디지털 성범죄는 범죄인 동시에 산업이다. 일반 성범죄자와 달리 디지털 성범죄자는 잔인무도한 사업가에 가깝다. 유포 피해자의 인생 위기를 사업 기회로 본다. 이들에겐 ‘콩밥’도 필요하지만 ‘돈줄’을 끊는 게 더 치명적이다. 하지만 이들을 단죄할 수단이 아직 부족하다. 음란물 유통 수익에 대한 몰수·추징은 2012년부터 가능해졌다. ‘범죄수익 은닉 규제법’이 적용되는 중대 범죄에 음란물 유통이 그때서야 포함됐다. 실제 몰수가 이뤄진 경우는 별로 없다. 경찰이 최근 양 회장의 범죄수익 일부인 71억 원을 ‘기소 전 몰수 보전’ 조치한 게 거의 유일한 사례다. 71억 원도 빙산의 일각이다. 양 회장과 거래한 헤비 업로더들이 받았던 10∼18%의 수수료 수입을 경찰이 역산한 액수가 그 정도일 뿐이다. 양 회장이 누군가의 사회적 죽음을 이용해 번 돈을 모조리 토해내게 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몰카 등 불법 촬영 피해자들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내 사진, 내 영상을 봤을까” 하는 불안을 떨치지 못한다고 한다. 노출 사진이 온라인에 유포되는 피해를 본 유튜버 양예원 씨의 변호인은 7일 마지막 재판 직후 “피고인이 했다고 생각하는 잘못과 피해자가 짊어질 무게 사이엔 괴리가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음란물 유포 혐의로 법정에 선 피고인들은 “제가 강간이나 성추행을 한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선처를 호소하곤 한다. 이들에게는 범죄수익을 철저히 환수해 정확한 금액으로 죄의 무게를 실감하게 해줘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양진호 같은 사람들이 만든 더러운 생태계를 무너뜨릴 수 없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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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조두순 왜 심신미약인지 설명 한줄 없는 판결문

    ‘심신미약’이라는 법률 용어를 국민 상식으로 각인시킨 조두순 판결에는 심신미약이 딱 한 번 등장한다. 2009년 1심 판결문 4쪽 법령적용 항목에 ‘심신미약 감경’이란 여섯 글자가 적혀 있을 뿐이다. 워낙 예민한 판결이라 감경 이유가 설명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재판부가 심신미약이라고 판단한 근거는 판결문 어디에도 없다. 그 대신 조두순이 범행 당시 심신미약 상태였다면 하기 어려웠을 언행이 자세히 나온다. 그는 오전 8시 반 등교하던 나영이(당시 8세)에게 “교회에 다녀야 한다”며 교회 화장실로 유인해 범행했다. 30분 뒤 귀가해서는 부인에게 “사고를 쳤다”고 말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고 있었던 정황이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심신미약 감경’을 결정했고 이 여섯 글자의 위력은 대단했다. 애초에 재판부도 조두순의 죄를 무겁게 보긴 했다. 그가 범한 강간상해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데 재판부는 무기징역을 택했다. 그런데 심신미약 감경을 거치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무기징역을 감경할 때는 7년 이상 징역을 택한다’는 당시 법규에 따라 징역 12년으로 줄었다. 1심 재판부가 이런 결정을 하며 심신미약으로 본 근거를 밝히지 않았지만 2심과 3심 둘 다 이를 따지지 않았다. 조두순 판결 논란 이후 음주감경 판결은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심신미약 인정 근거를 판결문에 제대로 적시하지 않는 관행은 여전하다. 최근 5년간 살인 피고인 음주감경 판결은 26건. 이 중 인정 이유를 밝히지 않은 게 58%(15건)에 달한다. 객관적 판별 기준이 없어 설명할 방법이 마땅찮다는 게 판사들의 항변이다. 일부 판사는 죄질에 비해 법정형이 너무 높아 가혹한 판결을 해야 할 때 ‘심신미약으로의 도피’를 감행하기도 한다고 토로한다. 음주감경 규정을 ‘용도변경’해서 형을 깎아주는 것이다. 최근 심신미약 감경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는 배경에는 흉악범을 면책해준다는 불만뿐 아니라 법원 판단을 믿기 어렵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이런 불신이 커지면 ‘책임 없이 처벌 없다’는 형법의 기본원칙까지 뒤흔드는 부작용을 낳는다. 봉건시대에는 타인을 죽이거나 다치게 하면 경위와 상관없이 전적인 책임을 물었다. 가해자 혼자 죗값을 감당하지 못하면 가족까지 벌하는 연좌제가 정당화됐던 이유다. 범행 결과만 놓고 무조건적 복수를 하기보다 가해자가 책임져야 할 만큼만 벌하자는 게 근대 형법의 원칙이다. 범행 당시 정신질환 등 불가항력으로 사리 분별과 의사 결정을 할 수 없었다면 일반 피고인보다 가볍게 처벌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피해자는 이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가해자가 누구든 참혹한 피해에 신음할 뿐이다. 이에 비해 법관은 피해의 무게 못지않게 죄의 무게를 따진다. 둘이 수평을 이루면 좋겠지만 심신미약 감경은 피해에 비해 죗값이 가벼워지는 불균형을 수반한다. 국가의 형벌권 독점은 피해자가 사적 복수를 자제하고 공권력에 처벌을 위임한다는 사회계약에 따른 것이다. 그 대신 국가는 피해자에게 처벌 결과를 납득시킬 의무가 있다. 심신미약으로 판단해 가해자의 책임을 덜어줬다면 그만큼 생기는 책임의 공백을 국가가 메워야 한다. 설득력 있는 심신미약 기준을 세우고 감경된 처벌을 치료 등 다른 수단으로 대체하는 사후 조치가 있어야 피해자가 원통함을 내려놓을 수 있다. 하지만 심신미약 기준은 아직 모호하고 정신감정과 치료감호를 할 수 있는 기관은 국립법무병원 1곳뿐이다. 이 열악한 인프라를 그대로 두고 심신미약 감경 근거를 밝히지 못하는 판사만 탓할 수도 없다. 2년 뒤인 2020년 12월 13일 조두순이 만기 출소한다는 소식에 여론이 다시 들썩인다. 조두순은 10년 전 죄에 맞는 형벌을 받았다면 어느새 잊혀진 범죄자가 됐을 것이다. 그렇지 못해 온 국민이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떠올리며 치를 떤다. 조두순은 그 자체로 흉악범이지만 세상에 일찍 나오게 되면서 더 흉측한 존재가 됐다. 부실한 사법체계가 괴물을 더 큰 괴물로 만든다.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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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교무부장 아버지가 쌍둥이 제자에게 남긴 것

    경찰은 숙명여고 시험답안 유출 사건 수사결과를 최근 검찰에 넘기며 쌍둥이 자매를 법정에 세워야 한다는 의견을 달았다. 아버지인 전 교무부장 A 씨와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학사비리의 수혜자인 미성년자가 기소된 사례는 거의 없다. ‘정유라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에서도 어머니 최순실 씨와 교수들은 실형 선고를 받았지만 정 씨는 기소되지 않았다. 경찰은 A 씨와 쌍둥이 딸이 줄곧 혐의를 부인해 엄격한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A 씨의 변호인이 “자백하면 아이들은 기소도 안 되고 조사도 안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을 때도 A 씨는 “끝까지 가보겠다”며 굽히지 않았다. 학사비리 피의자들은 대체로 범행을 시인하며 선처를 구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A 씨는 “경찰이 정황증거만으로 유죄로 몰아간다”고 항변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결정적 물증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교무실에 폐쇄회로(CC)TV가 없어 A 씨가 금고 속 시험답안을 빼돌리는 장면은 누구도 보지 못했다. 그 대신 경찰은 간접증거 20여 개로 퍼즐을 맞췄다. 자매는 시험지 귀퉁이 가로 3cm, 세로 3cm의 작은 공간에 정답 30여 개를 깨알처럼 적었다. 2학년 1학기 기말고사 전 과목(12개) 정답을 기록한 암기장과 포스트잇도 발견됐다. 휴대전화에서는 시험 3일 전 메모한 영어시험 정답이 나왔다. A 씨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며칠 전 야근하며 시험지가 보관된 금고를 열어봤는데 유독 이때만 야근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A 씨는 “시험 후 반장이 불러주는 정답을 받아 적은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고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자매가 미리 정답을 외운 뒤 시험지를 받자마자 깨알처럼 적었다”는 경찰 판단에 신빙성이 높다고 봤다. 만약 A 씨가 거짓으로 혐의를 부인한다면 아직 열일곱 살인 두 딸의 미래가 염려되기 때문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체절명의 압박 속에서 계속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야말로 딸들에게 씻기 힘든 상처가 될 수 있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도 스스로를 거짓의 상자에 가두는 것은 청소년에겐 인격이 무너지는 경험이라고 심리학자들은 지적한다. 이미 친구들과 학부모들로부터 “더는 괴물이 되지 말라”는 비난을 받는 자매가 다시 세상에 나올 기회마저 막아버릴 수 있다. 부모라면 자식에게 해선 안 되는 일이다. 2년 전 경기 성남시의 한 고교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자 교무부장이 같은 학교 3학년이던 딸의 학교생활기록부를 위조해 성균관대에 합격시킨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법정에서 “딸을 가진 어머니로서 욕심에 눈이 멀었다”며 울먹였지만 법원은 징역 1년을 선고했다. 그는 범행 당시 ‘딸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결국 딸의 인생에 큰 멍에를 안겼다. 훗날 자신의 어머니가 같은 처지에 있던 다른 부모들의 가슴을 찢어놓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딸은 정체성의 파괴를 피하기 어렵다. 대학입시는 성공이든 실패든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인생의 첫 성취 경험이다. 이때 경험을 밑천삼아 인생 항로에서 만나는 여러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이 귀한 첫 단추를 거짓으로 끼워 당당함과 자신감을 앗아가는 게 자녀를 향한 부모의 사랑일지 의문이다. 숙명여고에서 22년 근무하며 교무부장까지 오른 A 씨는 평소 제자들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상한 선생님으로 평판이 좋았다고 한다. 쌍둥이 자매에게도 아버지인 동시에 그런 선생님이었을 것이다. 두 딸에게 ‘부끄럽게 이기기보다 지더라도 정정당당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스승이어야 한다는 것을 그 역시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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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배우 신성일, 폐암으로 위독…사망설은 와전

    영화배우 신성일 씨(81)가 3일 별세했다는 보도가 일부 나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신 씨는 현재 전남 화순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해있으며 이 병원 측은 “신 씨가 사망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 현재 살아있고 아직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6월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신 씨는 이 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아왔다. 신 씨의 가족 측은 이날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예약했다가 얼마 뒤 취소했다. 성모병원 관계자는 “유족으로 추정되는 분이 예약을 했는데 다시 연락이 와 취소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신 씨의 조카인 자유한국당 강석호 의원은 이날 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촌 동생(신 씨의 장남 강석현 씨)으로부터 ‘아버지가 사망하신 것 같다’는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조금 뒤 다시 연락이 와 ‘호흡이 돌아오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신 씨는 현재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건강 상태는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 씨의 가족은 부인 엄앵란 씨와 장남 강석현 씨, 장녀 강경아 씨, 차녀 강수화 씨가 있다. 신 씨는 투병 중에도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지난달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등 꾸준히 활동을 이어왔다. 신 씨는 193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경북중·고, 건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0년 ‘로맨스 빠빠’로 데뷔한 뒤 1960~70년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간판 남자배우로 왕성한 활약을 보였다. 신광영 기자neo@donga.com}

    • 201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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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암수살인’에 사라진 엄마… 아들은 등에 문신을 했다

    영화 ‘암수살인’에는 살인자에게 엄마를 잃은 고교생이 나온다. 실제 있었던 사건이며 영화 속 고교생 역시 실존한다. 올해 나이 서른둘, 이경민(가명) 씨다. 그가 2003년 마지막으로 봤던 엄마는 당시 서른여덟이었다. 그해 집에는 벽과 바닥에 피를 닦아낸 얼룩이 많았다. 엄마가 동거남에게 맞아 흘린 피였다. 동거남은 일본식 장검을 자주 뽑아 들었다. 경민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면 엄마는 “우리 둘 다 죽는다”며 말렸다. 견디다 못한 엄마는 경민을 데리고 달동네 단칸방으로 도망쳤다. 화장실이 없는 굽이굽이 숨겨진 방이었다. 동거남은 모자(母子)를 수소문했고 결국 장검을 든 손으로 방문을 열었다. 며칠 뒤 엄마는 “잠깐 나갔다 온다”며 방을 나섰다. 이불 위에 지갑까지 두고 나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경민은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며 동거남을 조사해 달라고 애원했다. “빨리 안 잡으면 우리 엄마 죽어요”라고 소리쳤다. 경찰은 실종자 명단을 내밀었다. “밀려 있는 게 많다. 차례를 기다려라.” 1년 넘게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경민은 단칸방에 머물 수 없었다. 동거남이 완전 범죄를 시도한다면 다음은 나였다. 경민은 PC방 밤샘 알바를 했다. PC방에 있어야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아침에 귀가해 5분 만에 옷을 갈아입고 등교했다. 그 5분간 방문이 열릴 것 같아 눈을 떼지 못했다. 나마저 당하면 누구도 엄마를 찾지 않을 것 같았다. 7년 뒤인 2010년 9월 경민이 해군 부사관으로 소말리아 해역에 있을 때였다. 군함의 헌병 간부가 물었다. “부대에 너랑 동명이인 있나?” 경민은 직감했다. 입대하며 유전자(DNA) 확인 용도로 머리카락을 냈던 게 떠올랐다. 엄마는 토막 난 시신으로 발견됐다. 동거녀 살인죄로 징역 15년형을 받고 복역하던 남자가 여죄를 털어놨는데 피해자 중 한 명이 엄마였다. ‘7년 전 잡아달라고 했던 그놈이 맞느냐’고 묻자 경찰은 고개를 떨궜다. 그때 잡았다면 추가 희생도 없었다. 경민은 2015년 법정에서 그를 다시 봤다. 엄마 실종 12년 만이었다. 도저히 맞설 수 없는 거인 같았던 그는 왜소한 늙은이에 불과했다. ‘저런 놈한테서 엄마를 지키지 못했다니.’ 형벌은 무기징역으로 무거워졌지만 경민의 자책감은 가벼워지지 않았다. 얼마 뒤 경민은 등을 뒤덮는 문신을 했다. ‘다시 태어나도 당신의 아들로 태어나겠다’고 새겼다. 엄마가 겪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시신이 나오지 않아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는, 아무도 모르는 살인. 이 암수살인(暗數殺人)의 피해자는 ‘4중고’를 겪는다. 가족이 사라진 슬픔, 무관심에 대한 분노, 또 당할 수 있다는 공포, 희망도 절망도 할 수 없는 암흑. 경민은 엄마의 피살이 입증된 뒤에도 범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범죄 피해자가 국가의 구조금을 받으려면 범죄일로부터 10년 내에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범인을 법정에 세웠을 땐 이미 12년이 지난 뒤였다. 엄마가 동거남에게 수없이 폭행당했을 때, 그 손에 살해되고도 생사를 몰랐을 때, 그리고 범인이 잡힌 뒤에도 그는 혼자였다. 며칠 전 경남 창원시에서 만난 경민은 훤칠한 외모에 깔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아내와 세 살배기 딸을 둔 직장인이다. “그땐 경찰이 야속했지만 저도 사회생활 해보니 이해가 됩니다. 여력이 없었을 거예요.” 사회를 탓하며 분노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고군분투한 흔적이 엿보였다. 이제 말문이 트인 딸은 그의 문신을 만지작거리며 “아빠, 왜 등에 낙서를 했어”라고 묻는다고 한다. 그는 “아이가 크면 ‘너에게 엄마가 있듯 아빠도 소중한 엄마가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언젠가 그의 딸은 아빠가 오래도록 외롭게, 참담한 물음표와 싸웠던 것을 특히 아파할 것 같다. 신광영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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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싸워서 이기는 공권력… 싸움을 안 만드는 공권력

    한국의 집회·시위를 접한 해외 경찰들은 두 가지에 놀란다고 한다. 시위대의 조직적인 투쟁력에 놀라고, 경찰의 진압능력에 놀란다. 경찰버스를 밧줄로 묶어 넘어뜨리고 새총으로 나사볼트를 쏘는 것은 해외에선 드문 광경이다. 우리는 경찰 14만 명(의경 포함) 중 3만여 명이 시위를 관리하는 ‘경비 경찰’이지만 미국과 유럽에는 이런 경찰이 따로 없다. 큰 집회가 있을 때 일반 경찰관들이 잠시 차출될 뿐이다. 우리의 막강한 경찰력과 투쟁력은 서로 맷집과 화력을 키우며 진화해온 결과다. 집회를 하는 쪽이건 막는 쪽이건 세계적 인프라와 노하우를 갖고 있지만 시위문화는 아직 후진국에 머물러 있다. 도로나 건물 점거 등 불법을 동원해서라도 여론의 주목을 끌려는 ‘시위 적폐’가 남아 있고, 경찰 역시 시위대를 통제 대상으로 보는 관성을 버리지 못했다. 최근 불거진 불법 시위 면죄부 논란은 투쟁과 진압 일변도의 시위문화가 낳은 소산이다. 11일 국정감사에서 여야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경찰에 ‘쌍용차노조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라’고 권고한 것을 두고 오랜 공방을 벌였다. 문재인 대통령도 12일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불법 시위로 유죄 판결을 받은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해 확정판결이 나오는 대로 사면복권을 검토하겠다고 밝혀 논란에 불을 지폈다. 진압이 과했다는 이유로 국가에 인적·물적 피해를 끼친 시위대의 책임을 덜어주는 것이 맞는지를 떠나, 폭력 집회가 여론 분열 등 지속적인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논란이 소모적 공방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경찰의 집회 시위 관리 철학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폭력 집회는 원래부터 존재한다기보다 경찰과 시위대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집회 현장 경험이 많은 경찰 정보관들은 시위대가 단일한 집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참가자들 간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는 얘기다. 경찰의 폭력성을 과장하며 결사항전을 부추기는 전문 ‘시위꾼’도 섞여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경찰이 시위대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진압 장비를 앞세우면 이들은 공동의 적에 맞서는 단일팀으로 결집한다. 시위대가 거칠어지면 경찰도 예민해진다. 작은 적대감이 큰 적대감으로 발전한다. 경찰이 이달 전국으로 확대한 대화경찰(Dialogue police) 제도는 의미 있는 진전이다. 기존에도 경찰 정보관이 사복 차림으로 은밀히 시위대 지도부와 접촉하긴 했지만 이제는 ‘대화경찰’이라고 쓰인 조끼를 입고 시위 현장을 다니며 투명하게 소통하겠다는 것이다. 2004년 스웨덴에서 처음 도입된 이 제도는 이 같은 ‘가시성(visibility)’이 핵심이다. 시위대의 요구를 공개적으로 조율하는 경찰관들이 자주 눈에 띄면 시위 참가자들이 부당하게 궁지에 몰린다는 생각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불법적 수단 없이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회에서는 참가자들이 선동가 편에 서는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때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은 경찰이 청와대로 가겠다는 시위대를 막는 최후 저지선이었다. ‘명박산성’이라고 불리는 컨테이너를 쌓아올렸고 사이사이 차벽을 쳤다. 시위대는 이 철통경계를 허물겠다며 경찰버스를 흔들고 기어올랐다. 경찰이 이 범법자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 여러 명이 다쳤다. ‘명박산성’은 불법을 막는 동시에 유발하는 장치였다. 지난해 말 법원 결정으로 청와대 앞 100m까지 시위대 행진이 허용된 이후 그런 불법 사태는 아직 없다. 막지 않으니 들이받을 의지도 생기지 않는 듯하다. 시위대와 싸워서 이기기보다 애초에 싸움을 만들지 않는 게 더 강한 공권력일 수 있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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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주민 서울경찰청장 “경찰 등 안전요원 480여명… 불편 최소화”

    “시민들이 청명한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도심을 달릴 수 있도록 안전 확보에 만전을 기하겠습니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사진)은 11일 “올해로 16회째인 서울달리기대회는 참가자 1만여 명이 서울 도심을 달리는 만큼 교통경찰 320여 명, 모범운전자 160여 명 등 480여 명을 곳곳에 배치해 원활한 진행을 지원하면서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청장은 “서울국제마라톤 등 많은 행사를 치른 경험을 토대로 참가자들이 좋은 기록을 낼 수 있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대회 당일인 14일 원활한 흐름을 위해 탄력적으로 교통을 통제한다. 출발지인 세종대로(서울시청 앞∼세종대로 사거리)와 도착지인 무교로(시청 삼거리∼모전교) 구간은 이날 오전 6시부터 10시 반까지 순차적으로 통제된다. 마라톤 코스인 종로(세종대로 사거리∼흥인지문)→동호로(흥인지문∼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지로(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지로1가)→청계천로(청계광장∼청계5가∼청계광장) 구간은 오전 7시 50분부터 9시 반까지 차례대로 통제된다. 청계천로(청계6가∼제2마장교) 구간은 오전 7시 50분부터 9시 10분까지 통제한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2018-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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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빡셀수록 많이 배울까… ‘주52시간’이 던진 질문

    한 직업에 입문하는 게 쉬울 리 없고 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언론사의 수습기자 교육은 혹독하고 고생스럽기로 악명이 높다. 몇 년 전 ‘극한직업’이라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응급실 의사, 스턴트맨, 강력반 형사 등과 함께 시리즈로 소개됐을 정도다. 미국의 유력 신문인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국내 언론의 수습기자 교육을 대서특필하며 군대 신병훈련소를 뜻하는 ‘부트 캠프(boot camp)’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기자들은 수습 시절 고단한 추억을 무용담으로 꺼내곤 하지만 6개월 남짓한 교육 당시에는 하루하루 한계를 시험당하며 절벽에 내몰린다. 수습기자들은 밤낮 없이 경찰서 소방서 등 뉴스가 있을 만한 곳을 돌아다니며 선배 기자에게 보고할 거리를 찾는다. 1, 2시간 주기의 보고시간에 맞춰 새로운 ‘팩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간신히 몇 줄 건졌더라도 육하원칙을 갖춰 명료하게 보고하지 못하면 호된 질책을 받는다. 기삿거리를 찾아 온종일 헤매다 보면 2, 3시간의 쪽잠이 전부인 날이 허다하다. 입사 전에는 뉴스 소비자로서 ‘잘 차려진 밥상’만 받아 봤던 수습기자들은 ‘식재료’ 하나를 구하는 게 얼마나 힘겨운지, 실제 요리를 하는 것은 또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를 깨닫는다. 수습기자들은 경찰서 내 숙소에서 그나마 긴장을 풀고 몸을 누인다. 형사들이 농담 삼아 경찰서에서 가장 지저분한 장소로 꼽기도 하는 곳이다. 수습기자 숙소는 마루 곳곳에 노트북 전원선이 어지럽게 엉켜 있고 그 사이로 벗어놓은 양말과 수건이 나뒹군다. 이불에는 누군가 파카를 입고 드러누웠다가 그대로 다시 일어난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베개 뒷면에 납작하게 붙은 바퀴벌레 사체를 무심한 표정으로 털어낸 뒤 베고 눕는 여기자도 있었다. 필자 역시 수습기자였던 어느 겨울 서울남대문경찰서 숙소에서 잠을 자다 악취에 눈을 뜬 적이 있다. 옆에 한 노숙인이 누워 있었다. 그는 “서울역이 너무 추워 몸 녹일 곳을 찾다가 여기는 누워도 될 것 같았다”고 했다. 이런 풍경이 더 이상은 재현되기 어려울 것 같다. 올해 7월부터 여러 언론사에 주 52시간 근무제가 도입돼 수습 교육도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지향하게 됐다. 경찰서에서 숙식하며 새벽까지 일하는 관행이 대폭 축소되거나 없어졌다. 주간과 야간으로 조를 나눠 경찰서를 돌리는 등 언론사마다 대안을 찾느라 분주하다. 대학병원 의사인 한 지인은 최근 레지던트(수련의) 교육에 대한 고충을 토로했다. 올해부터 주 80시간 근무제가 시행돼 레지던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나아지긴 했지만 환자에 대한 이들의 책임감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다. 과거엔 레지던트가 거의 매일 병원에 묶여 있다 보니 담당 환자 근처에 24시간 상주했다. 이젠 야간이 되면 대부분 퇴근하고 당직의사 1, 2명이 동료의 환자들까지 함께 돌본다. 환자의 이력에 훤한 담당 레지던트에 비해 신속하고 정확한 조치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인은 “예전 제도에 불합리한 면이 있지만 ‘나보다 환자가 우선’이라는 것을 체득할 수 있었는데 요즘 레지던트들은 ‘누군가 알아서 하겠지’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 같다”고 했다. 근로시간 단축은 단기간에 집중적인 성과를 내야 하는 직업교육이 맞닥뜨린 새로운 도전이다. 짧은 시간에 실무를 숙달시켜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직업의식을 갖추게 하는 접근법도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밑바닥에서 잡초처럼 살아남는 훈련을 거쳐야 기자에게 요구되는 끈기와 투지를 키울 수 있다는 오랜 통념을 새로 정립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더 스마트해지는 수밖에.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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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엘리트 법률가의 기민함, 어설픈 잡범들의 무모함

    요즘 경찰에 잡히는 소매치기는 대부분 머리가 희끗한 60, 70대다. 현금 거래가 줄어 ‘밭’이 말라가지만 배운 게 도둑질이라 달리 먹고살 기술이 없는 이들이다. 이 ‘원로’ 도둑들은 가끔 형사에게 세대교체가 안 된다는 한탄을 늘어놓는다. “요즘 것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어. 쉽게 훔치려고만 하고.” 범죄도 구조조정을 겪는다. 한때 유행하다 시대가 변하면 소멸한다. 1990년대에는 택시강도가 들끓었다. 경찰이 곳곳에 택시 검문소를 두고 강도가 탔는지 살필 정도였다. 널린 게 택시이고, 10만 원 남짓한 현금을 손쉽게 쥘 수 있어 진입장벽이 낮았다. 하지만 그만큼 쉽게 잡혔다. 타고 내린 곳이 특정되고, 지문을 남기며, 피해자이자 목격자인 택시 운전사가 거의 살아있어 용의자 인상착의가 금방 나왔다. 아파트 배관을 타는 ‘스파이더맨 도둑’들도 퇴장을 앞두고 있다. 단지 내 폐쇄회로(CC)TV가 늘어나고 고층화된 덕분이다. 배관을 타고 오르다 스스로 지치거나, 오르던 중 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도 애환을 토로한다. “이제 ‘3D 도둑질’로는 먹고살기 힘들어요.” 요즘 은행강도는 대표적인 ‘시대 부적응’ 범죄다. 저지르는 족족 잡힌다. 10일 충남 당진의 한 농협에 52세 여성 강도가 찾아왔다. 은행에서 500m 떨어진 고깃집 사장이었다. 장사가 안 되자 빚 9억 원을 갚으려고 일을 벌였다. 그는 양봉용 그물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자동 못총을 들었다. 범행 3시간 만에 인근 야산에서 만취 상태로 붙잡혔다. 돈을 향한 절박감 말고는 가진 게 없는 이들의 허접한 범행은 거의 백전백패다. 은행 직원을 포박하려 청테이프로 둘둘 감는다고 감았지만 금방 풀어지거나, 문구점에서 산 장난감 총으로 위협하다 들통이 난다. 종이비행기를 창구 안으로 날린 뒤 “비행기 주우러 간다”며 뛰어넘었다가 중심을 못 잡고 휘청대다 흉기를 뺏기기도 한다. 시골 은행에서 1억 원을 훔친 한 일용직 근로자는 전광석화의 속도로 오토바이와 승용차를 갈아타며 근처 대도시의 모텔로 숨었다. 그가 돈 가방과 함께한 시간은 4시간. 샤워 중 형사들을 만난 그는 “으악” 비명을 질렀고, 수사관에게 “도대체 나를 어떻게 찾았느냐”고 여러 번 물었다고 한다. 시골은 CCTV가 드물어 안 잡힐 것 같지만 한적할수록 몇 안 되는 CCTV에 특정되는 대상이 적어 골라내기가 쉽다. 어설픈 은행털이범이나 배관 도둑과 달리 ‘범죄 지능’이 높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처벌받을 리스크를 최소화하면서 기대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안다. 검찰이 18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52)은 죄가 되는지를 떠나 적어도 범죄 지능 면에선 수준급이다. 유 전 수석연구관은 후배 연구관들이 만든 보고서 수만 건을 2월 퇴임 때 무단 반출했다. 대법원의 재판 개입 의혹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받는 자료들이다. 그는 검찰에 문건을 파기하지 않겠다고 서약하고도 법원이 자신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틈을 타 문건을 모두 없앴다. 중대한 진실을 ‘절도’한 큰 잘못이지만 처벌받을 리스크는 낮다. 형사소송법상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없앤 행위는 증거인멸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반면 기대 이익은 무한하다. 본인으로선 공문서 반출 책임만 지면 될 뿐 사건 본류인 재판 거래 피의자가 될 가능성을 줄였다. 의혹에 연루된 다른 고위 법관들의 범죄 증거까지 없애줬다. 그는 25년간 판사로 일하며 차관급 법관(고등법원 부장)까지 지냈다. 궁지에 몰린 엘리트 법률가의 기민함 앞에 잡범들의 무모함이 새삼 초라해 보인다. ‘유식무죄 무식유죄(有識無罪 無識有罪)’라는 말이 떠오른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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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알츠하이머’라는 전두환… 기억에서 탈출할 자격 있나

    2014년 베니스 영화제 수상작 ‘침묵의 시선’에는 대량 학살 주범들이 47년 전 살해 행위를 몸소 재연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인도네시아 군부정권이 1965년 한 해 동안 독재에 저항한 국민 10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을 다루며 당시 주범들을 찾아가 묻는다. “(살해 장소가) 이 숲인가요?” “(피해자는) 어떤 자세였죠?” “칼로 몇 번 찌른 건가요?” 놀랍게도 가해자들은 손짓 발짓 해가며 당시 상황을 충실히 보여준다. 처형단장이었던 70대 노인은 함께 학살에 가담했던 친구까지 대동해 감독 앞에서 역할극을 한다. “잘 봐, 이 친구가 죄인이라고 해 봐. 이렇게 목을 쭉 늘여 빼게 해. 그때 바로 칼로 내려치는 거야. 그러곤 발로 차버려. 강물 속으로.” 당시 희생자의 유가족인 안경사 아디는 감독이 찍어 온 가해자 인터뷰 영상을 담담히 바라본다. 아디는 영상 속 가해자들을 한 명씩 찾아가 안경을 맞춰준다. 이 다큐멘터리의 백미는 아디가 이들의 시력을 재던 중 불쑥 학살자 유가족 신분임을 밝히는 순간이다. 의기양양했던 이들은 당황한 듯 눈의 동공이 흔들린다. 이가 다 빠져버린 입은 “다 지나간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쉼 없이 씰룩거린다. 아디는 “학살자들이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던 것은 사람을 죽인 게 후회되고 죄책감이 느껴져 그런 것 같다”고 독백한다. 학살자들은 사건 이후 처벌은커녕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죄책감만은 피하지 못한 듯했다. 47년 전 그날을 하나하나 재연할 만큼 자신이 한 짓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이들의 죄책감이 옅어지지 않도록 집요하게 기억을 상기시키는 게 아디의 복수 방식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87)은 얼마 전 광주지법 재판에 불출석하며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다”는 사유를 댔다. 알츠하이머는 기억력이 약화돼 치매로 이어지는 병이다. ‘지난해 회고록을 낸 사람이 알츠하이머를 앓아 왔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진위 논란은 둘째 치고, 그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는 ‘비극’이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 그는 가해의 기억에서 탈출할 자격을 아직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군의 발포 경위 등 그가 보다 소상히 밝혀야 할 진실이 여전히 많다. 전 전 대통령이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직후인 1981년 중학교 교사 주영형이 1학년 제자를 유괴해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도박 빚 1000만 원을 갚기 위해서였다. 사형이 확정된 주영형은 감옥에서 기독교에 귀의해 교수대에 오르기 전 “하나님 품에 안겨 평온한 마음으로 떠난다”는 말을 남겼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용서도 받지 않은 채 가해의 기억을 구원의 기억으로 바꿔버린 사례였다. 이 부조리에서 모티브를 딴 이청준 소설 ‘벌레 이야기’가 영화 ‘밀양’의 원작이다. 전 전 대통령이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면 그 역시 국민의 용서가 없는 상황에서 가해의 기억으로부터 무단 해방되는 셈이 된다. 다만 그는 죄책감을 가질 만한 가해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는 지난해 출간한 회고록에서 ‘나의 대통령 취임은 시대의 요청이었다. 나의 회고록은 참회록이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뒷공론을 개의치 않으련다’라고 썼다. 5·18 당시 군 발포에 대해선 ‘군인 개개인의 정당방위였을 뿐 사격 명령은 없었다’고 했다. 국회가 올 2월 결의한 ‘5·18진상규명특별위원회’가 이달 출범한다. 그동안 5번의 정부 조사에도 발포 명령자 등 핵심 사안은 충분히 규명되지 않았다. 사건 후 38년이 지나 관련자들의 기억도 사라지고 있다. 전 전 대통령에게는 진실을 말할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다. 알츠하이머 발병 같은 안타까운 소식에 진정 위로를 받으려면 말이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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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그 정도 ‘No’는 ‘No’가 아니다… 안희정 무죄에 담긴 통념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53)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문 전문을 보면 피해자 김지은 씨(33) 주장에 대한 판사의 불신이 엿보인다. 재판부는 김 씨의 진술을 검증하는 데 전체 114쪽 중 80쪽을 할애했다. 판결문의 약 70% 분량이다. 김 씨의 진술 요지 뒤에는 ‘한편 같은 증거에 비추어 보면 아래와 같은 사정들도 인정된다’는 표현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 아래로 김 씨의 진술을 믿기 어려운 사유가 상세히 따라붙는다. 재판부는 안 전 지사가 성관계 당시 범죄임을 알았는지 등은 따로 살피지 않았다. 김 씨의 피해 주장 자체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피고인 안희정’의 재판에서 그의 ‘가해자다움’은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다는 판단에 가로막혀 심판대에 오르지 않았다. “내가 너무 외로우니 안아 달라” “나를 안게” “씻고 오라” “침대로 오라”…. 안 전 지사는 김 씨를 자신의 숙소로 불러 이런 말을 했다고 판결문에 나와 있다. 말만 봐서는 폭력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네 차례 성관계를 요구하면서 인사 혜택이나 불이익을 언급한 적도 없다. 그런데 안 전 지사는 성관계를 갖고 나면 김 씨에게 ‘미안하다’ ‘잊어라’는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열풍이 한창이던 올 2월에는 김 씨를 불러 “너한테 했던 것들이 상처가 된 걸 알았다. 괜찮니”라고 물었다. 그는 이날도 김 씨와 성관계를 한 뒤 ‘내 자신이 참 무책임하고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생각이 밀려왔어’ ‘나 때문에 상처받고 실망하고 그러지 말길’이라고 문자를 보냈다. 안 전 지사는 김 씨의 폭로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고 바로잡기도 했다. 김 씨가 성관계에 동의하지 않았음을 안 전 지사 스스로 인정하는 듯한 정황이다. 하지만 판결의 초점은 안 전 지사의 상황 인식이 아닌 ‘강압으로 느꼈다’는 김 씨의 주장을 믿을 수 있는지였다. 재판부는 성관계 요구를 받은 김 씨가 고개를 숙이고 “아니요. 모르겠어요. 아닌 것 같아요”라고 중얼거린 행위는 충분한 거절이 아니라고 봤다. 안 전 지사가 호텔 방으로 담배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도 성관계 요구 가능성을 예상했다면 객실 앞에 담배를 갖다놓을 수도 있었는데 충분히 회피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판결문에는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오히려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대목이 있다. 김 씨처럼 고학력에 정상적인 성인 여성이라면 실체가 불분명한 위력에 굴복할 정도로 종속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논리다. 미성년이거나 장애인이 아닌 여성이 폭행이나 협박이 없는 상황에 있다면 성적 자기결정권은 권리인 동시에 책임이라고 본 것이다. ‘No’라고 했다지만 충분한 ‘No’가 아니었다는 시각에는 여성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다른 모든 가치를 제쳐둘 것이란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첫 여성 수행비서로서 보좌 업무를 잘해내고 싶은 자아실현 욕구, 직장을 유지하면서 이직에 대비해 좋은 평판을 유지하려는 신분 안정 욕구는 성적 자기결정권 못지않은 기본권이다. 유력한 대선주자이자 자신의 생살여탈권을 쥔 보스로부터 “나를 안으라”는 요구를 받은 여비서는 거절의 대가로 잃게 될 다른 기본권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정중한 언어로 포장돼 있어도 은밀한 요구의 무게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사람은 마음에서 가치관이 충돌할 때 나름의 방식으로 머뭇거린다. 재판부는 ‘여성에게 정조는 생명과 같다’는 통념이 전근대적이라고 지적했지만 위력 앞에 선 여성의 머뭇거림을 바라보는 인식은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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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1학년 학점이 인생 성적… ‘상대평가 지옥’ 로스쿨

    로스쿨 학생들은 중간·기말고사 때 시험지에 이름을 쓰지 않는다. 그 대신 무작위로 부여되는 수험번호를 문자로 전송받아 적는다. 교수의 ‘채점 특혜’ 시비를 막기 위해서다. 조교가 답안지를 앞자리부터 걷으면 “뒷자리 학생에게 몇 초를 더 줬다”는 항의가 빗발친다. 학점이 좋은 학생들은 서로 수강과목이 안 겹치도록 학기 초 평화협정을 맺기도 한다. 칼같이 적용되는 상대평가가 빚은 풍경이다. 수강 인원이 적어 절대평가가 이뤄지는 과목도 있지만 이때도 전쟁은 피할 수 없다. 추가 신청자가 생겨 상대평가로 바뀔 위기에 처하면 ‘마지막 신청자’ 색출·토벌 작전이 전개된다. 기존 신청자들이 해당자를 단톡방(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초대해 수강을 철회할 때까지 회유하거나 협박한다. 8월은 이제 첫 학기를 마친 1학년생들이 휴학을 고민하는 시기다. 주요 로펌들이 1학년 성적 우수자를 ‘입도선매’하기 때문이다. 휴학 후 학원에서 다음 학기 예습을 하는 1학년생이 적지 않다. 휴학 요건이 출산이나 심각한 질병 등으로 제한돼 있지만 학생들은 우울증, 공황장애 소견서를 내민다. 자살 기도라도 할까 봐 학교는 거부하지 못한다. 서울대 로스쿨은 입학생 5명 중 1명꼴로 휴학한다. 첫 학기를 마친 뒤 휴학하는 학생이 가장 많다. 최근 서울대 등 주요 로스쿨이 1학년에 한해 절대평가를 도입하려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미국 최상위급인 예일대 로스쿨은 3년 내내 학점을 매기지 않는다. 이미 검증된 학생들 간 우열을 가리는 게 무의미하다고 본다. 치열한 경쟁이 나쁜 것은 아니다. 로스쿨이 기존 사법시험 제도를 완전히 대체하게 된 만큼 내실을 갖춰야 한다. 우수 인재를 선별할 잣대도 필요하다. 하지만 사법연수원 성적으로 줄 세우던 폐해를 줄이려 도입한 로스쿨이 지금처럼 학점 노예를 양산한다면 바라던 변화는 아니다. 연세대 의대는 4년 전 본과생 대상 절대평가를 시작했다. 매 학기 과목별 기준치를 제시하고 도달 여부만 따졌다. “이를 악물고 하면 A학점 받을 학생들이 C학점 수준에 안주할 것”이란 우려가 많았다. 올해 초 졸업한 첫 ‘절대평가 세대’ 122명이 보여준 결과는 반대였다. 의사국가고시 합격률 98.6%. 이 대학 최근 5년간 합격률 중 최고치다. 합격자 120명의 평균 점수(301점)도 전체 합격자 평균(286점)보다 월등히 높다. 상대평가는 우열을 가리는 데 유용하지만 정작 학생이 요구되는 능력을 갖췄는지는 살피기 어렵다. 실력이 모두 미달이어도 1, 2등은 나오기 마련이다. 이에 비해 절대평가는 등수보다는 학생이 꼭 필요한 실력과 자질을 갖췄는지에 중점을 둔다. 경쟁적인 환경에서 더 뛰어낸 인재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미국 스포츠과학 저널(Journal of Sports Sciences) 연구를 보면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소도시(5만 명 이하)에서 자란 선수가 프로 리그에서 뛰는 비율이 인구 분포 대비 2배가량 높았다. 미국 인구의 25%가 소도시에 사는데 미국미식축구리그(NFL)와 미국프로골프(PGA) 선수 중 소도시 출신은 50%에 달했다. 덜 경쟁적인 여건에서 지속적인 격려를 받은 선수가 더 큰 잠재력을 갖는다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었다. 의사와 법률가는 사람의 신체적 생명과 사회적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다. 이미 바늘구멍을 통과해 고등 교육기관에 들어온 의대생과 로스쿨생을 또다시 상대평가의 틀에 욱여넣는 것은 무엇보다 의료와 법률 소비자에게 손해다. 누군가를 이기려고 불행하게 공부하며 서열의식을 내면화한 ‘반쪽 인재’에게 삶의 중요한 문제를 맡기기엔 망설여진다. 상대평가에 단련된 일부 변호사는 노트 필기와 시험 족보를 꽁꽁 숨기던 습관이 몸에 배어 같은 사건을 맡은 동료 변호사들과도 소송 기록을 잘 공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절대평가를 경험한 연세대 의대생들의 소감은 사뭇 다르다. “남을 제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내 실력으로 수술방에 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됐다.” “홀로 투쟁한 4년이 아닌 동기들과 함께 성장한 4년.” 이들은 절대평가였기에 할 수 있었던 일로 ‘연구’와 ‘봉사활동’을 가장 많이 꼽았다. 우리는 큰 병에 걸리거나 인생의 고비를 맞았을 때 어떤 교육을 받은 의사와 법률가에게 의지해야 할까.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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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여자는 공중화장실에서 ‘이상 무’ 3번 속삭인다

    남자는 알 길이 없는 여성들의 공중화장실 이용법. 화장실에 들어섬과 동시에 문 잠긴 칸이 있는지부터 확인한다. ‘모두 비었음. 이상 무.’ 빈칸에 들어갈 땐 카메라에 얼굴이 찍힐까 봐 고개를 푹 숙인다. 그 다음엔 휴지통 발로 차기. ‘달려 있는 거 없음. 이상 무.’ 이어 동서남북 벽면을 살핀다. 구멍이 보이면 틀어막는데 쓸 호신용 스티커를 손에 쥐고. 다행히 ‘구멍 없음. 이상 무.’ 비로소 앉는다. 눈은 ‘몰카’ 렌즈를 찾아 계속 움직인다. 밤에 택시를 탄 여성은 홀로 스릴러 영화를 찍는다. 남자 운전사가 평소 가던 길로 안 가면 심장이 쿵쾅거린다. 도망쳐야 할 것 같아 신호 정지 때마다 택시 문고리를 잡았다 놓는다. 귀갓길 낯선 남자가 뒤따라오는 느낌이 들 때면 휴대전화를 보는 척 걸음을 멈춘다. 남자가 지나가야 다시 발걸음을 뗀다. 엘리베이터에 남자와 단둘이 탔을 땐 얼어붙는다. 남자가 내리기 전까지 집 층수를 누르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사이 ‘타지 말걸’ 후회가 밀려온다. 치킨 주문도 용기가 필요하다. 배달원 도착 전 집 현관에 남자 신발을 갖다놓는다. 여자 혼자 산다는 걸 들키면 안 된다. 아예 1층으로 내려가 받는 날도 있다. 따끈따끈한 치킨을 베어 물면서도 신경이 쓰인다. 주문할 때 남겨진 휴대전화 번호로 이상한 문자가 날아들진 않을까. 여성의 하루는 이런 ‘돌다리 두드리기’의 연속이다. 여자라면 거의 누구나 의식하지만, 남자라면 거의 누구도 의식하지 못하는 불안과 공포다. 위험은 남녀에게 불평등하다. 그걸 알면서도 약한 자의 숙명이라고 남자는 당연시하고, 여자는 체념해왔다. 이 오랜 관성을 더는 못 참는다는 울분이 최근 혜화역 시위에 여성 6만 명(주최 측 추산)을 불러 모았다. 안전에 관해서도 남녀가 ‘기울어진 운동장’에 있다는 자각은 1020 ‘영(Young)페미니즘’의 눈에 띄는 특징이다. 딱딱한 담론이 아닌 당장의 절실한 일상 문제다. 폭발력이 셀 수밖에 없다. ‘한남충(한국남자 벌레)’ 같은 남성 혐오 표현에는 적대감 못지않게 절박감이 엿보인다. 여성들의 날 선 언어에는 위협적인 존재를 향해 강하게 말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공포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고 싶은 간절함이 배어 있다. 혜화역 시위는 각자 짊어져 온 두려움을 결집해 자신감으로 바꾸는 장이었다. 천주교 성체 훼손, 남성 누드 사진 유출 등 워마드의 극단적 행태 이면에는 다른 가치관이 설 자리가 없을 만큼 강력한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예수도, 어린이도, 난민도 단지 남자라는 이유로 경계한다. 피해의식으로 보일 수 있지만 여자로 살아보지 않은 남성들이 피해와 피해의식의 경계를 섣불리 재단할 수는 없다. 얼마 전 법정에서 난민을 돕는 20대 여성 통역사를 본 적이 있다. ‘난민 불인정 처분이 잘못됐다’며 무슬림 남성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을 판사에게 전하던 그의 표정은 간절해 보였다. 그런데 통역사는 재판 뒤에도 한참 동안 텅 빈 방청석에 혼자 있었다. 자신이 통역했던 난민들이 모두 법원 밖으로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 남자인 난민들이 “물어볼 게 있다”며 다짜고짜 연락처를 달라고 조르거나 무작정 뒤따라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공포는 그 어떤 대의명분보다 절실하다. 다만 갈수록 격렬해지는 ‘남혐’ 움직임이 우려된다. 혐오는 껍데기만 거칠 뿐 상대가 귀를 닫으면 그만이다. 남성에게 위협이 되지 않으니 역설적으로 온건한 투쟁이다. 오히려 남성들을 분열시켜 포섭하는 게 위력적일 수 있다. 남성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여성인 경우가 많다. 공감 세포를 자극할 약한 고리가 적지 않다. ‘너희도 우리와 똑같이 당해보라’는 겁박보다 ‘이러면 아프지 않겠느냐’는 설득 앞에서 ‘한남충’은 더 초라해진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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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청탁자, 전달자, 실행자… 채용비리, 참 어려운 수사

    강원랜드 채용비리의 최고위급 청탁자라는 혐의를 받아온 3선 중진의원은 국민의 시선이 쏠린 포토라인에서 자기 지역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4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으러 서울중앙지법에 나와 “우리 강릉시민들께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했다. “검찰의 무리한 법리 구성에 대해 (판사에게) 잘 소명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의 지적대로 ‘법리 구성’은 채용비리 수사의 아킬레스건이다. 응당 입사해 월급 받아야 할 사람을 무직자로 만들고 그 자리에 무자격자를 꽂는 일. 이 누가 봐도 나쁜 짓을 응징하기 어려운 게 채용비리의 고약함이다. 채용비리는 외부의 ‘청탁자’, 내부의 고위 ‘전달자’, 인사부서 ‘실행자’ 등 3자 공동 범행이다. 이들의 언어는 선의로 위장한다. 특정인을 거명하며 “인재를 놓치지 않게 세심히 살펴 달라”거나 “열심히 했으니 필기는 보게 하자”며 인간애를 자극한다. 지령이 실행자에게 전달될 땐 ‘전략적 모호함’이 절정에 달한다. 포스트잇에 이름 세 글자만 적어 건네거나, 조선시대 임금이 관료를 뽑을 때 ‘낙점(落點)’하듯 지원자 명단 옆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는다. 합격자 발표를 한참 앞두고 “아무개 붙었느냐”고 묻는 수법도 있다. 나중에 문제가 되면 ‘사람 잘 챙기는’ 청탁자와 ‘융통성 있는’ 전달자는 빠지고, ‘말귀 잘못 알아들은’ 실행자가 독박을 쓴다. 3자 간 연결고리는 흐릿하고 꼬리가 밟혀도 자를 수 있게 설계된, 완성도 높은 범죄다. ‘전화 한 통’에 관대한 문화 탓에 그나마 범죄로 여긴 것도 2000년대 중반 이후다. 오래된 ‘신종 범죄’다. 검찰이 재판에 넘기는 사건은 1년에 3, 4건 정도로 드물다. 가해자를 겨우 찾아 법정에 세우면 이젠 피해자가 모호해진다. 현행법상 채용비리는 ‘회사의 채용 업무를 방해한 죄(업무 방해)’다. 법은 억울하게 떨어진 지원자 대신 사측을 피해자로 본다. 채용 책임자가 비리 직원한테 속았다는 게 입증돼야 비로소 업무를 방해받은 것으로 인정된다. 문제는 채용을 관장하는 회사 수뇌부가 대개 청탁의 전달자 또는 방조자라는 것이다. 한통속인 고위 간부가 실행자에게 속았다는 절묘한 사실관계가 구축돼야 처벌이 가능하다. 그래서 법정에선 꼬리를 자르는 임원과 ‘물귀신’ 인사팀장이 종종 격돌한다. “서류 위조까지 할 줄 몰랐다”는 임원 앞에서 팀장은 “혼자 못 죽는다”며 임원과의 통화 녹취를 내민다. 실행자까지 구제하려는 기업은 “업무를 방해받은 적이 없다”는 대담한 전략을 편다. 합의하에 더 필요한 인재를 뽑았을 뿐이라는 식이다. 전형 도중 채용기준을 바꾸고 서류를 꾸며 지원자 순위를 뒤바꾼 일을 경영적 결단으로 둔갑시킨다. 채용비리로 요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정관계 인사나 수백억 원을 맡긴 VIP 고객의 자녀를 뽑아야 은행에 이익인데 왜 채용의 자유를 막느냐”고 푸념한다. 업무 방해는커녕 ‘업무 촉진’이라는 것이다. 법률상 피해자가 “피해가 없다”고 항변하는 난센스가 벌어지는 사이 실질적 피해자들은 가슴이 미어진다. 합격증을 ‘절도’당하고 입사전형에 들인 시간과 노력을 ‘사기’당하면서도 자신이 피해자인지 알 수 없어 가슴 미어질 기회조차 박탈당한 이들이다. 그래서 엄연한 권력형 범죄의 피해자지만 ‘미투(#MeToo·나도 당했다)’에 나서지 못한다. ‘비리 기업’ 직원도 피해자다. ‘뒷구멍 신입’은 그 자체로 리스크일뿐더러 동료에게 무력감과 불신을 심는다. 비리 가담자들은 내밀한 이익을 위해 조직의 잠재력을 ‘횡령’한 것과 다름없다. 기회 균등이라는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사회적 범죄이기도 하다. “무리한 법리 구성”이라던 권 의원의 소신이 통했는지 법원은 5일 ‘법리상 의문점이 있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권 의원은 “설령 추천을 했다고 해도 청탁자를 처벌한 사례가 없다”고 지적했다. 검사 출신답게 채용비리 기소에 애먹는 후배 검사들의 애환을 이해하고 있는 듯 했다.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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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신광영]그놈 구속영장 꺾인 날, 피해자는 집에 구속됐다

    A는 남자친구 배웅을 받으며 귀가하는 한 여성의 뒤를 밟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아파트 입구에 도착한 여성에게 손을 흔들며 돌아서던 순간을 A는 놓치지 않았다. 같은 동 주민인 듯 남자친구를 스쳐 지나 여성을 따라갔다. 집 안에 들어선 여성은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이 이상했다. 문틈으로 낯선 손 하나가 들어와 있었다. 불 꺼진 집에서 여성은 A와 맞닥뜨렸다. 처음 보는 남성이었다. 집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아는 듯 A는 망설임 없이 여성을 추행했다. 집 밖까지 울려 퍼진 피해자의 비명소리에 남자친구가 발길을 멈췄다. 밖으로 나온 A는 남자친구의 얼굴을 힐끗 본 뒤 어둠 속으로 내달렸다. 폐쇄회로(CC)TV에 찍힌 A는 숙련된 도주자였다. 도망치면서 옷을 여러 번 갈아입었다. CCTV마다 모습이 제각각이었다. 집으로 곧장 가지도 않았다. 동네 주변을 3km 넘게 빙빙 돌았다. 자기 집을 코앞에 두고 여러 이웃집을 서성였다. 형사들은 동선을 추적하려 CCTV 100여 개를 몇 번씩 돌려봤다. 한 달 넘게 걸려 찾은 A의 집은 피해자 집에서 불과 몇십 미터 거리였다. 피해자는 형사들과 CCTV를 살펴보다 경악했다. 화면 속 A는 피해자와 같은 길로 출퇴근했다. A의 시야에 아침저녁으로 노출돼 있었다. 조사 결과 A는 성추행 전력으로 신상정보등록 대상자였다. ‘등록’된 성범죄자 신분으로 퇴근길 여성을 뒤따라가 몸을 만진 적도 있다. A는 동네 여성을 덮쳤고, 동네에 남아 또 다른 동네 여성을 노렸다. 범인의 정체를 알고 나자 공포는 더 커졌다. 남자친구의 ‘출퇴근 경호’가 시작됐다. 어느 날 피해자가 버스에 오르는 A를 눈앞에서 목격했다. 그는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피해자는 버스 앞에서 남자친구 팔을 잡고 몸을 덜덜 떨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피해자는 A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잠시 안심했다. 하지만 며칠 뒤 형사의 전화를 받자마자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찾았다. ‘무조건 빨리 처분’ 조건으로 살던 집을 내놨다. 그날 법원이 A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하고 석방시켰기 때문이다. ‘범행을 반성하고 있고, 증거가 수집돼 있어 인멸될 우려가 없으며, 직업과 주거가 일정해 도주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였다. 경찰에서 혐의를 모두 부인하던 A가 영장전담판사 앞에선 시인한 모양이었다. A는 이후 경찰 조사에서 갑자기 ‘음주 감경’ 카드를 꺼내들었다. “당시 술에 취해 기억은 없지만 피해자가 그렇게 주장한다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야간주거침입 강제추행은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는데 정상 참작이 되면 3년 이하 형이 선고돼 집행유예도 가능하다고 기대하는 듯했다. A는 한 회사에 장기 근속한 직장인이다. 현재 집에서도 가족들과 오래 살았다. 법원이 구속 필요성이 없다고 판단한 주요 근거였다. 하지만 A의 ‘일정한 주거’와 범행 후에도 이어지는 출퇴근 ‘동행’ 탓에 정작 피해자는 집에 ‘구속’됐다. 그녀는 이제 ‘현관 앞에 왔다’는 남자친구의 문자를 봐야만 문을 열 수 있다. 밖에 나가 쓰레기 분리 배출을 하지 못해 베란다에 쌓아둔다. 구속을 피한 범죄자가 피해자를 찾아가 흉기를 휘둘렀다는 보도를 본 날에는 밤새 불을 켜둔다. 버튼만 누르면 112 신고가 되는 스마트 워치를 차고 있지만 A가 마음먹고 보복에 나서면 별 소용이 없다. 피해자는 집에서 ‘석방’되기 위해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집은 더 이상 안식처가 아니다. A가 언제든 다시 찾을 수 있는 범행 장소일 뿐이다. 피해자가 외딴 곳으로 숨어버리거나 보복이 두려워 진술을 포기한다면 이 사건의 ‘살아있는 증거’는 사라진다.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보다 치명적인 증거 인멸이 또 있을까.  신광영 사회부 사건팀장 neo@donga.com}

    • 2018-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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