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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가장 많이 팔린 자동소총이자 전 세계 분쟁지역에서 인명살상용 무기로 악명이 높은 ‘AK 소총’을 개발한 러시아의 미하일 칼라슈니코프(사진)가 23일 지병으로 숨졌다. 향년 94세. 그는 모스크바 항공연구소 연구원 시절인 1947년 AK-47 소총을 개발했다. AK-47이란 명칭은 ‘자동소총 칼라슈니코프(Avtomat Kalashnikova·러시아어로 ‘칼라슈니코프의 자동소총’이라는 의미)’의 머리글자와 개발 연도를 합쳐 붙여졌다. AK 소총은 미국인 유진 스토너가 개발해 친서방국가의 군대에 널리 보급된 M-16 소총과 함께 자동소총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수단에서 독립한 지 2년 만에 내전에 휩싸인 남수단에 미국이 해병대를 파병하고 유엔이 평화유지군을 추가로 보내기로 하는 등 국제사회의 개입이 본격화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24일 오후 3시 회의를 열어 남수단에 군사병력과 경찰 등 약 6000명을 증강하는 결의안을 채택한다. 이에 앞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23일 남수단에 병력 5500명과 경찰 423명을 추가 파병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안보리에 제출했다. 반 총장은 “전 세계가 남수단을 주목하는 만큼 평화유지군과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안보리는 서한을 받자마자 긴급회의를 개최했다. 안보리 이사국들은 추가 파병에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남수단 인근 국가인 콩고민주공화국과 수단 등에 배치되어 있는 평화유지군 가운데 일부 병력을 긴급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유엔 고위관계자는 “남수단 상황이 워낙 급박해 회원국 의회의 인준을 기다릴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남수단에는 현재 민간인 약 2000명을 포함해 한국의 한빛부대 280여 명 등 7000명의 평화유지군과 경찰 900명이 활동 중이다. 안보리의 추가 파병안이 승인되면 평화유지군은 1만2500명, 경찰은 1300여 명으로 늘어난다. 평화유지군은 반군이 장악한 주요 유전지대인 유니티 주의 파리앙과 종글레이 주의 주도 보르 등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3일 스페인에 주둔하던 해병대와 군용기를 추가로 아프리카 북동부에 배치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미국민의 안전을 위해 언제라도 대비할 수 있게 병력을 일부 재배치했다”며 “남수단 국경 안팎에 배치되는 군사력은 해병대 150명과 수직 이착륙 수송기 오스프리, C-130 수송기 등 군용기 10대로 늘어난다”고 소개했다. 이 병력 중 45명은 남수단 내에서 공관 보호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아프리카 북동부에 있는 지부티의 미군 기지에서 대기할 계획이다. 영국 정부도 자국민 철수를 지원할 항공기를 현지에 보냈고, 남수단의 이웃 국가인 케냐 에티오피아 우간다 지부티 나이지리아 등에 특사를 파견했다. 유엔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남수단엔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 케냐 등 약 3000명의 외국인이 있으며, 유엔기지로 피신한 난민도 4만5000여 명에 이른다. 한편 남수단 정부군은 반군 세력이 장악한 보르 지역을 재탈환하기 위한 대규모 군사 작전을 준비하면서 이 일대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반군을 이끌고 있는 리에크 마차르 전 부통령은 구금된 자신의 정치적 동지들을 풀어준다면 교전을 끝내기 위한 협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정부 측은 ‘조건 없는 대화’를 요구하고 있어 사태 해결은 여전히 어려운 상태다. 파리=전승훈 raphy@donga.com 뉴욕=박현진 특파원}
내전을 통해 독립을 성취한 남수단이 이번에는 옛 동지들끼리 벌이는 새 내전으로 나라가 다시 둘로 갈라질 위기에 처했다. 15일 시작된 두 부족 간의 내전으로 22일 현재 10만 명 이상의 난민도 발생했다. 수도 주바에서 현 대통령 지지 부족과 부통령 지지 부족 간 교전이 치열해져 미국 등 국제사회가 본격적인 사태 개입에 나섰다. AP 등 외신에 따르면 반군으로 표현되는 리에크 마차르 전 부통령 지지 부족 누에르족은 나라의 핵심 유전지역인 유니티 주의 주도 벤티우를 점령했다. 국가 재정 수입의 99% 이상을 석유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남수단에선 유전지역 장악이 곧 국가의 실질적 권한을 장악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최근 5개월 동안 석유 수출로 남수단이 얻은 재정 수입은 13억 달러(약 1조4000억 원)에 이른다. 수도 주바에서도 수단 최대 부족 딘카족의 지지를 업은 살바 키르 대통령의 부대와 반군 사이의 격렬한 교전이 벌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대략 1000여 명이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올 뿐 정확히 몇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는지는 집계할 수 없는 상황이다. 원래 딘카 부족과 누에르 부족은 남수단이 2011년 수단에서 독립할 때까지 수단인민해방운동(SPLM)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연합했다. 하지만 7월 키르 대통령이 마차르 전 부통령을 전격 해임한 이후 두 부족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됐다. 정부군으로 개편돼 한솥밥을 먹었던 SPLM은 지금 다시 부족별로 나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상황이다. 두 부족은 오랜 내전으로 단련돼 전투력과 무장 상태도 상당히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수단 내전이 격화됨에 따라 유엔은 22일 민간인 보호를 위해 반군이 장악한 파리앙과 보르 등의 도시에 더 많은 유엔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했다. 미국 정부는 지난주 위험 지대의 미국인 380명과 다른 국적 외국인 300명을 대피시켰다고 22일 밝혔다. 전날까지 군인 46명을 파견했던 미국은 이날 45명을 추가로 파견하기로 했다. 남수단과 이웃한 케냐 에티오피아 우간다 지부티 나이지리아는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외교부 장관을 특사로 파견했다. 현재 주바에는 외국인 3000여 명을 포함한 약 4만 명의 난민이 미처 피란을 가지 못해 유엔 평화유지군 캠프 등으로 몰려와 피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국인의 신체와 재산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추가 군사조치를 내릴 수도 있다”고 의회에 보낸 편지에서 밝혀 군사 개입 가능성이 높아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남수단의 원유 생산도 급감해 국제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남수단과 수단의 총 석유매장량 50억 배럴 중 35억 배럴이 남수단 쪽에 있다. 최근 반군세력이 유전지대를 속속 장악하면서 하루 25만 배럴 수준이던 남수단의 원유 생산량이 급감하고 있다. 남수단 내 최대 석유개발 투자자인 중국천연가스집단공사(CNPC)는 20일 직원들을 수도 주바로 철수시켰다. 다른 외국계 석유회사 간부도 “교전이 지속되면 유정(油井)을 폐쇄하고 직원들을 철수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주보다 2.7% 상승한 배럴당 111.72달러를 기록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브렌트유 가격은 2012년 평균 배럴당 111달러와 2011년 110달러에 이어 3년 연속 최고치를 갈아 치울 것으로 전망된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에서 5년간 심장 전체의 역할을 대체하는 100% 인공심장 이식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21일 “프랑스 인공심장 개발 기업인 카르마가 18일 파리의 조르주 퐁피두 병원에서 장착 후 5년간 사용할 수 있는 100% 인공심장을 이식하는 수술을 처음으로 성공시켰다”며 “25년 전 처음 시작된 인공심장 개발 역사를 한 단계 올렸다”고 보도했다. 카르마는 75세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수술이 만족스럽게 진행됐으며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는 아직까지 거부 반응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카르마 측은 “수술이 전체적으로 성공적인지를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에서 개발된 인공심장은 혈전(피떡)이 자주 생겨 임시 대체용으로 이용돼 왔다. 이번에 프랑스에서 개발된 장치는 면역 거부 반응이나 혈전을 줄이기 위해 혈맥과 연결되는 부분이 소(牛)의 생체 조직으로 만들어져 최장 5년간 사용할 수 있다. 이번에 개발된 인공심장의 무게는 900g이며, 리튬이온 외부 배터리로 작동된다. 카르마는 “심장이식을 기다리는 동안 매년 사망하는 수천 명의 심장병 환자들의 목숨을 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인공심장의 가격은 14만∼18만 유로(약 2억∼2억6000만 원)가 될 것으로 알려졌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반군이 핵심 유전지대인 유니티 주(州)를 장악하고, 자국민 피난 작전을 펼치던 미군 수송기가 피격되는 등 남수단 유혈사태가 1주일 만에 내전으로 비화하고 있다. 반군 지도자로 알려진 리에크 마차르 전 부통령은 21일 BBC방송과의 전화인터뷰에서 “반군이 유니티 주를 포함해 전국의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 정부와 맞서 싸우는 반군은 내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말해 자신이 반군 쿠데타의 실질적인 주역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정했다. 북부 국경지대에 있는 유니티 주는 2011년 수단으로부터 분리 독립한 남수단 경제의 95%를 책임지는 유전지대다. 남수단 정부군인 인민해방군(SPLA) 대변인은 유니티 주를 방어하던 지휘관 제임스 코앙 출 소장이 반군에 가담했다고 발표했다. 자국민 탈출 작전을 펼치던 미국 군용기 3대가 피격돼 미군 4명이 다쳤다. 미 국방부 존 커비 대변인은 21일 미국인을 철수시키기 위해 종글레이 주의 주도 보르에 내리던 수직이착륙 수송기 오스프리 CV-22 3대가 무장괴한의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수송기들은 남수단 내 유엔 직원을 포함한 미국인 40여 명에 대한 소개 작전을 포기하고 우간다 은베테로 돌아갔다. 부상당한 병사 4명은 케냐 나이로비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휴가지인 하와이로 향하던 에어포스원에서 보고를 받고 “무력으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세력의 움직임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미국과 국제사회의 원조를 중단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남수단 수도 주바에서는 정부군과 반군의 유혈사태로 최소 500명이 사망했고 주민 4만여 명이 현지 유엔기지 3곳에 대피 중이다. 반군이 수도 주바에서 북쪽으로 200km 떨어진 종글레이 주를 장악하면서 유혈사태가 확대되고 있다. 20일에는 종글레이 주 아코보 유엔기지에서 인도 평화유지군 2명과 민간인 11명이 살해됐다. 남수단 유혈사태가 딩카족(살파 키르 마야르디트 대통령 지지) 대 누에르족(마차르 전 부통령 측)의 내전으로 계속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노력도 분주하다. 필리핀을 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마야르디트 남수단 대통령과 반군 지도자인 마차르 전 부통령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즉각 무력행위를 중단하고, 정치협상 테이블로 나와 위기를 수습하라”고 요구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0일 양측의 정치적 협상을 중재하기 위해 도널드 부스 대사를 수단-남수단 특사로 파견했다. 아프리카연합의 의장인 은코사자나 들라미니주마 의장도 남수단 정부군과 반군에 크리스마스 휴전을 촉구했다. 전투가 격렬해지자 남수단에 진출한 외국 석유회사들은 직원을 철수시키기 시작했다.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CNPC)은 현지 직원을 대피시키고 있다고 확인했다. 케냐는 이날 1600명에 이르는 남수단 내 케냐 국민의 출국을 돕기 위해 케냐 방위군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국제 언론감시단체인 ‘국경 없는 기자회(RSF)’는 장성택의 반역과 처형에 대한 북한의 언론 보도는 ‘대중에 대한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19일 성명을 통해 “비록 세계 최악의 독재국가에서 벌어진 일이기는 하지만 뉴스와 정보 조작은 충격적”이라며 “김정일 추모 2주기에 맞춘 장성택 처형에 관한 광범위하고도 계획적인 보도는 북한 주민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보내는 협박성 메시지”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조선중앙통신이 13일 장성택의 처형에 관한 판결을 상세히 보도했다”며 “이는 북한 체제가 노동당의 고위 관료이며 4성 장군이자 현 지도자의 고모부의 처형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한 공포 분위기가 북한사회 내부의 정보의 자유를 짓누를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경 없는 기자회는 또 9일 장성택의 체포 혐의를 상세히 밝힌 전후로 북한의 관영매체가 마치 장성택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이었던 것처럼 과거 기사와 이미지를 삭제해 정보 조작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장성택 관련 기사는 노동신문 홈페이지에서 2만 건 넘게 삭제됐으며, 조선중앙통신에서는 한국어, 외국어 기사를 포함해 총 11만여 건이 삭제됐다고 이 단체가 밝혔다. 북한은 국경 없는 기자회가 올해 발표한 ‘2013년 언론자유지수’에서 전체 179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178위를 차지했다. 최하위는 ‘아프리카의 북한’으로 불리는 에리트레아였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아프리카 북동부의 산유국인 남수단에서 정부군과 반군세력 간에 총격전이 사흘째 이어져 10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등 유혈 사태가 격화되고 있다. 제라르 아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의장(주유엔 프랑스대사)은 17일 안보리 비공개 회의에서 남수단 수도 주바의 병원에 시신 400∼500구가 실려 왔고 부상자가 약 8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주바 전역에는 야간통행금지령이 내려졌으며 주민 2만여 명이 인근 유엔기지 영내로 피신했다. 이번 충돌은 15일 밤부터 살파 키르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군과 반대파 군인들이 벌인 총격전으로 시작됐다. 수전 페이지 남수단 주재 미국대사는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통화에서 “거리에서 사람을 사냥하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라고 말했다. 키르 대통령은 16일 “여당인 수단인민해방운동(SPLM)의 회의 도중에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총격을 하기 시작했다”며 “쿠데타 시도를 완전히 격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17일에도 대통령궁 인근에서 총성이 들렸다고 CNN이 보도했다. 이번 쿠데타의 주동자로 지목된 리에크 마차르 전 부통령은 SPLM 내 대통령 반대파의 수장으로 7월에 전격 해임됐다. 마차르 전 부통령의 행방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그의 집은 탱크 포격으로 완전히 부서졌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정부는 이날 전직 재무 법무 내무장관 등 고위 정치인 10명을 쿠데타 기도혐의로 체포했다. 이 밖에도 정부는 수단과 석유 협상을 책임지고 있던 파간 아뭄 오케치 전 SPLM 사무총장 등 4명을 수배했다. 남수단은 2011년 7월 수단에서 분리 독립한 이후 종족 간 갈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키르 대통령은 최대 종족인 딩카 족, 마차르 전 부통령은 두 번째인 누에르 족 출신이다. 수단과의 석유 협상이 난항을 겪으면서 경제난도 심화돼 키르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종족 분열이 가중돼 왔다. 그러나 2015년 대선 출마를 공언해 온 마차르 전 부통령은 18일 자신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당국의 주장이 모두 음모라고 주장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마차르 전 부통령은 이날 ‘수단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수도 주바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근 사태는 키르 대통령 정부군의 내부 분열에 따른 것”이라며 “쿠데타 시도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와 집권 여당인 SPLM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쿠데타 음모를 씌워 우리를 제거하는 것이 키르 대통령이 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더이상 그를 남수단의 대통령으로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이날 자국민의 남수단에 대한 여행 금지 경보를 발령하고 주재 외교관들에게는 공관 업무를 중단하고 비상 인력만 남긴 채 즉시 철수하라고 지시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키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반대파에 대화를 제안하고 평화적으로 갈등을 해결하라고 촉구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의 여제(女帝)’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59)가 이끄는 3기 정부가 17일 공식 출범했다. 이날 오전 9시 독일 연방하원에서 메르켈 총리는 전체 의석(631석) 중 462석의 압도적인 찬성표(73.2%)로 3선 총리로 선출됐다. 이로써 2005년 처음 집권한 메르켈은 2017년 하반기까지 12년간 독일을 이끌게 됐다. 임기를 무사히 마치면 메르켈 총리는 헬무트 콜(16년)과 콘라트 아데나워(14년)에 이어 역대 3번째로 장수하는 총리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1기 집권에 이어 사회민주당(SPD)과의 대연정에 성공한 메르켈 총리는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대(對)유럽 정책을 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독일 공영방송 ARD의 여론조사 결과 메르켈의 지지율은 68%, 사민당 전체 당원들의 대연정 찬성률도 78%에 달했다. 지난 총선에서 압승한 메르켈의 기민당-기사당 연합은 군소 정당과 합병해 추가로 5석만 확보하면 단독 과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민당과의 긴 협상 끝에 최저임금제를 받아들이고, 내각 14명의 국무위원 중 6개의 장관직을 야당에 내주며 대연정에 합의했다. 메르켈 총리는 유로존 위기 탈출을 위한 정책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그는 18일 프랑스 파리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19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유럽 정상회담에서 유럽 단일은행감독기구(SSM) 설립을 논의할 예정이다. 독일은 유럽과 글로벌 안보정책에서도 강력한 목소리를 낼 것으로 보인다. 1기에 이어 3기 외교장관을 맡은 외교전문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장관(사민당)은 독일, 프랑스, 폴란드 간 ‘바이마르 트라이앵글’ 안보체제를 강화하고, 발칸 지역과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추진 등 적극적인 대외전략을 펼칠 예정이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험그룹인 영국의 ‘런던 로이즈’에서 325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탄생했다. 16일 영국 언론에 따르면 로이즈는 30년 보험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잉가 빌 씨(50·캐노피우스 대표·사진)를 새로운 CEO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빌 씨는 8년 만에 CEO직에서 물러나는 리처드 워드 씨의 뒤를 이어 내년 1월부터 로이즈를 이끌게 된다. 영국 국적인 빌 씨는 생명보험사 프루덴셜에서 처음으로 이 업계에 발을 들인 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보험분야 계열사에서 14년간 근무했다. 또한 스위스 취리히보험그룹에서 글로벌 보험계약 인수책임자로 일했으며, 스위스 재보험사 컨버리움에서 CEO로 있는 동안 적자에 시달리던 회사를 살려 흑자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빌 씨는 CEO 선임 직후 “로이즈는 이미 세계 보험업계의 리더이지만 전문 보험과 재보험 분야의 글로벌 허브로서 영향력과 역할을 강화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맞고 있다”며 “새로운 기술 도입을 통한 보험업 현대화 프로젝트와 아시아, 남미에서의 시장 확대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200여 개국을 망라하는 80개 보험회사들의 공동 출자 방식으로 운영되는 로이즈는 폭풍우, 홍수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축구선수의 다리에서부터 가수의 목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보험 상품을 취급한다. 지난해 로이즈의 세전 이익은 27억7000만 파운드(약 4조7504억 원) 규모였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손자이자 김정남의 아들인 김한솔(사진)이 16일 프랑스 사복 경찰의 경호를 받으며 파리 기숙사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김한솔은 이날 기숙사를 나서 경찰차를 타고 등교했다. 13일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처형 이후 학교와 기숙사에서 자취를 감췄던 김한솔은 16일 오후 6시경 프랑스 사복경찰관 2, 3명의 경호를 받으며 르아브르에 있는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 기숙사로 돌아왔다고 17일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이날 기숙사 주변에는 프랑스 경찰들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섰으며, 김 군이 귀가하는 모습을 촬영하려는 취재진을 제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장성택 처형 이후 프랑스의 정보 당국이나 경찰이 김 군을 보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프랑스 경찰은 이달 14일 본보 기자에게 “김한솔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원하지 않는다”며 취재 자제를 요청했다. 김 군은 시험 준비 기간인 지난주와 시험 기간인 이번 주 초에 학교와 기숙사에 나오지 않았다. 특히 14일 김 군이 머무는 기숙사의 우편함의 이름표가 사라지면서 신변이 위험해 몸을 피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일본 언론은 김한솔의 우편함 이름표 제거는 김한솔이 기숙사 측에 직접 요청한 것이라고 기숙사 관계자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동료 학생들과 시앙스포 관계자들도 김 군의 기말시험 일정이나 거주 장소에 대한 질문에 일제히 함구했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유럽연합(EU)과 우크라이나의 협력협정 논의가 결렬되자 4주째로 접어든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가 다시 격화되고 있다.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17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규모 시위도 예고됐다. 15일 슈테판 퓔레 EU 확대담당집행위원이 우크라이나와의 협상 중단을 선언한 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독립광장에 시위대 약 30만 명이 운집했다. 광장과 인근 거리를 가득 메운 시위대는 우크라이나 국기와 EU 깃발 등을 들고 EU와의 협력협정 체결 준비를 잠정 중단한 정부의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특히 존 매케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이 이 자리에서 우크라이나와 EU의 협력협상 체결을 촉구하자 시위는 더욱 거세졌다. 매케인 의원은 “우크라이나는 스스로의 운명을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결정할 주권이 있다”며 “당신들이 좇는 운명은 바로 유럽에 달려 있다”고 주장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러시아산 수입가스 가격을 낮추고 경제 원조에 관한 확답을 얻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반정부 시위대 측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모스크바가 주도하는 관세동맹에 참여하기 위한 포석이라며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이런 가운데 EU는 우크라이나와의 협상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퓔레 집행위원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세르게이 아르부조프 우크라이나 제1부총리와 협력협정 체결 문제를 논의했으나, 우크라이나 정부로부터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해 협상을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며 “우크라이나 정부의 말과 행동의 괴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가 EU와의 협정을 곧 체결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러시아와 옛 소련권 관세동맹 가입을 추진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취한 데 대해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반정부 시위는 지난달 21일 우크라이나가 EU와의 협력협정 체결을 맺으려다 러시아의 압력으로 무산되면서 촉발됐다. 10만여 명의 시위대는 EU와의 협정 체결 재추진과 함께 친러시아 성향인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미국은 무력 진압 사태가 불거진 뒤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재를 검토해왔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에 유학 중인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조카인 김한솔(19·사진)의 기숙사 내 우편함 이름표가 14일 갑자기 제거돼 관심을 끌고 있다. 김한솔은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의 아들.13일 오후 2시경 프랑스 북부 오트노르망디 주의 항구도시 르아브르에 있는 파리정치대학 르아브르 캠퍼스 기숙사. 입구 로비에 있는 우편함 중에는 ‘237호 김한솔(Kim Han Sol)’이라는 이름표가 선명히 붙어 있었다. 우편함에는 온라인 서점 아마존의 배달원이 12월 12일 주문 상품을 배송하기 위해 방에 들렀으나 사람이 없어서 되돌아갔다는 통고문(Avis de Passage)이 놓여 있었다. 또 2층에 있는 김한솔의 숙소 초인종을 여러 차례 눌러 보았으나 방안에서도 인기척이 없었다.14일 오후 다시 르아브르 기숙사를 찾았을 때 우편함에 ‘김한솔’이라는 이름표가 제거돼 있었고 우편함도 비워져 있었다. 이 이름표는 8월 말 이곳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이후 계속 붙어 있었다. 최근까지도 한국 취재진의 카메라를 피하지 않던 그가 장성택 처형 이후에는 외부의 시선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기숙사에서 100여 m 떨어진 시앙스포 학교 건물에서 만난 같은 학년 친구 가브리엘 씨(19)는 “김한솔은 학교에도, 기숙사에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아직 르아브르 시내를 떠나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음 주에는 시험기간이기 때문에 그가 학교에 다시 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경찰은 장성택 숙청 이후 김한솔의 신변 보호에 경계를 곤두세우고 있다. 13일 오후 3시경 경찰 5명이 출동해 “신고 전화를 받고 나왔다”며 기자에게 “북한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경찰은 “북한의 ‘넘버2’(장성택을 지칭)가 처형됐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들었다”며 “기숙사 근처에 김한솔의 거취를 묻는 동양인이 나타나면 학생들로부터 신고가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르아브르 시 경찰서에 불려가 2시간을 넘게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여권과 체류증, 프랑스 정부가 발급해준 외신기자증 등을 확인하면서 북한에서 온 공작원이 아닌지 점검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인종차별의 벽을 넘어 인류화합의 상징이 된 ‘역사의 거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15일 고향인 쿠누에서 영원히 잠들었다. 만델라의 장례식은 이날 오전 8시 남아공 이스턴케이프 주 쿠누에서 추도객 45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장(國葬)으로 거행됐다. 10일 요하네스버그 FNB경기장에서 열렸던 국가 추도식 때 하루 종일 비가 내린 것과 달리 이날은 쾌청한 여름의 태양이 만델라의 마지막 가는 길을 비춰 주었다. 장례식은 만델라의 고향 쿠누에 임시로 설치된 타원형 돔 모양의 초대형 천막에서 진행됐으며 TV를 통해 남아공과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장례식은 21발의 예포 발사와 함께 남아공 국기로 덮은 만델라의 관을 운구하면서 시작됐다. 만델라의 출신 부족인 코사족은 ‘당신은 약속을 지켰다’라는 찬송가로 그의 용기와 자유, 화해의 삶을 찬양했다. 이날 장례식에는 영국의 찰스 왕세자, 은코사자나 들라미니주마 아프리카연합(AU) 집행위원장, 조이스 반다 말라위 여성대통령,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자카야 키퀘테 탄자니아 대통령 등 아프리카 정상 10여 명과 미국의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인사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부족 전통에 따라 진행된 매장 의식에는 만델라의 부인인 그라사 마셸 여사와 전 부인 위니 마디키젤라만델라 여사 등 친지 450명만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헌사에서 “오늘은 자유의 투사(만델라)가 95년간 벌여왔던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여정을 마치는 날”이라며 “그의 삶은 전 세계 불평등과 차별을 겪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횃불이 돼 왔다”고 말했다. 만델라와 함께 로번 섬에서 27년간 복역한 친구인 아메드 카트라다도 “당신은 용서와 화해의 화신이었다”며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자유를 향한 먼 여정을 달린 당신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은 데즈먼드 투투 전 대주교는 혼선 끝에 결국 참석했다. 만델라와 함께 반(反)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투쟁 동지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그는 14일 “정부 초청명단에 없어 장례식에 가지 않겠다”고 했으나 정부 측이 “공식초청 명단에 있다”고 해명하자 이날 장례식에 참석했다. 한편 만델라 타계 이후 그의 이름이 전 세계에서 인기 있는 브랜드로 떠오르고 있으며 수년 내 수십억 달러에 이르는 가치에 도달할 것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 전했다. 요하네스버그 시내에선 차량 운전자를 상대로 만델라의 초상화를 팔고 있으며 고급 쇼핑몰에는 만델라의 수감 시절 죄수번호인 ‘46664’ 상표를 단 셔츠도 판매되고 있다. 이 신문은 만델라 타계 이후 넬슨 만델라 재단에 만델라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는 라이선스 신청이 주당 평균 10건에 이른다고 덧붙였다.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역사의 거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시신이 11일 공개됐다. 이날 공개된 만델라의 모습은 마지막까지 인류에게 용서와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듯 평온하게 잠든 모습이었다. 이날 새벽부터 남아공 수도 프리토리아 정부종합청사 건물인 유니언 빌딩 앞에는 투명 유리관에 안치된 만델라 전 대통령을 보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먼저 만델라의 유가족과 외국 사절단이 조문을 마쳤으며, 정오부터는 남아공 국민들의 참배 행렬이 수 km까지 이어졌다. 유니언 빌딩은 1994년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한 만델라가 일하던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곳. 만델라의 시신은 이날 오전 7시 국군병원에서 이곳으로 운구됐다. 대형 남아공 국기로 감싼 만델라의 관을 실은 운구차량 주위에는 경찰 오토바이가 호위했다. 거리에 나온 수만 명의 시민들은 국기를 흔들고, 흐느끼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만델라의 시신을 배웅했다. 두 아이와 함께 2시간이나 기다렸다는 교사 타펠로 들라미니 씨(48)는 “이번이 만델라를 볼 마지막 기회”라며 “나와 아이에게 너무도 소중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운구 행렬은 만델라 전 대통령이 1962년 내란죄로 체포된 직후 머문 중앙교도소 앞을 지나고 1964년 종신형을 선고받은 프리토리아 대법원 앞을 통과했다. 이곳에서 만델라는 확정 판결을 받은 뒤 악명 높은 교도소 로번 섬에서 27년간 복역했다. 남아공 정부는 11일부터 13일까지 사흘간 하루 9시간씩 만델라의 시신을 공개할 예정이다. 1시간에 약 2000명씩 참배를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사흘간 5만여 명이 조문을 할 것으로 보인다. 조문객들에겐 사진 촬영이 엄격히 금지됐으며, 한 사람이 여러 번 참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문을 통한 신분확인 절차도 진행됐다. 이를 위해 선거에서 투표자 확인용과 똑같은 잉크가 사용됐다고 남아공 정부 관계자가 밝혔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전날 추도식에서 “유니언 빌딩을 ‘넬슨 만델라홀’로 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인종차별과 압제의 상징이었던 유니언 빌딩을 평화와 단합, 민주주의와 진보의 상징으로 바꾼 것이 만델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만델라 전 대통령의 시신은 14일 남아공 국기에 덮여 고향인 쿠누로 이동하게 된다.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비행기가 출발하는 공군기지에서 추도식을 가질 예정이다. 15일 쿠누에서 열리는 장례식에는 가족 친지와 남아프리카 정부 요인 등 5000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리토리아=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전 세계 ‘인권과 화해의 상징’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는 피부색도, 적국도, 우방국도 넘어섰다. 10일 새벽부터 하루 종일 폭우가 내린 가운데 요하네스버그 FNB스타디움에서 열린 만델라의 공식 추도식에는 100여 개국의 정상 등이 참여해 사상 최대 규모의 조문외교가 펼쳐졌다. 이날 요하네스버그 소웨토 지역에는 아침부터 세찬 비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이른 새벽부터 걸어서 경기장을 찾은 추모객들은 “아프리카에서 지도자가 돌아가셨을 때 비가 오는 것은 행운의 징조”라며 오히려 즐거워했다. 오전 6시부터 입장이 시작된 후 수천 명이 인종과 피부색을 넘어 함께 손뼉을 치고 노래하며 ‘무지개 나라’를 세운 건국의 아버지 만델라를 기렸다. 추모객들은 마치 월드컵 축제에 참가한 듯 국기를 온몸에 휘감거나 만델라 티셔츠를 입고 발을 구르며 춤을 추고, 부부젤라도 불어댔다. 8세 딸을 데려 온 콜레카 줄루 씨(31)는 “만델라와의 이별에 눈물을 흘리지만 이것은 슬픔이 아니라 기쁨의 눈물”이라며 “그가 우리에게 준 자유를 축하하기 위해 춤을 춘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온 추모객 엘리나 크리스틴 씨(42·여)는 “믿을 수 없도록 아름다운 광경”이라고 말했다. 이날 낮 12시(한국 시간 10일 오후 7시)에 시작된 공식 추도식은 4시간가량 진행됐다. 추도식에서 장내 아나운서의 소개와 함께 전 세계 지도자들의 얼굴이 전광판에 비칠 때마다 관중석에서는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은 것은 “아프리카 땅이 낳은 아들”이라고 소개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었다. 만델라와 오바마는 각각 남아공과 미국에서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데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러 차례 만델라를 자신의 멘토라고 밝혀 왔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만델라를 ‘역사의 거인’으로 칭하며 “만델라의 투쟁은 당신의 투쟁이었고 그의 승리는 당신의 승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만델라를 마하트마 간디, 마틴 루서 킹과 비교하면서 “우리에게 행동과 이상(理想)의 힘을 가르쳐 주었으며, 법을 넘어 사람들의 ‘심장’까지 바꾼 사람”이라며 “만델라가 가르쳐준 ‘자아 성찰’을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전 미국과 아직 냉랭한 관계에 있는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악수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추도사에서 “무지개는 비와 태양이 어우러져 탄생하듯이, 만델라와 남아공 국민들의 고통과 영광이 무지개 국가를 탄생하게 했다”며 “만델라는 위대한 정치 지도자를 넘어 이 시대의 위대한 인류의 스승”이라고 추모했다. 이어 리위안차오(李源潮) 중국 국가부주석과 카스트로 의장도 추도사를 했다. 이날 추도식에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부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와 딸 첼시 씨도 참석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도 정적인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나란히 입장했다.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와 찰스 왕세자, 일본의 나루히토(德仁) 왕세자,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등 정치적 외교적 대립관계를 뛰어넘어 지구촌 지도자들이 총출동했다. 또한 미국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와 흑인 인권 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 록그룹 U2의 보컬 보노, 할리우드 영화배우 샬리즈 시어런 등 유명인들도 다수 참석했다. 이날 추도식은 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70여 개국 정상 참석)을 웃도는 사상 최대 규모로 기록됐다. 이날은 만델라가 1993년 12월 10일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전 남아공 대통령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지 20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행사가 열린 FNB스타디움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폐막식 당시 만델라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장소이다.요하네스버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10일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공식 추도식에서 제이컵 주마 현 남아공 대통령이 시민들의 야유를 수차례 받았다. 만델라 전 대통령을 추모하러 모인 전 세계 지도자들 앞에서 자국민에게서 수모를 당한 것이다. 이날 시민들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타보 음베키 전 남아공 대통령, 만델라의 전처 위니 만델라가 소개될 때 엄청난 환호를 보냈다. 그러나 주마 대통령이 소개될 때는 두 차례나 야유를 보낸 데 이어 마지막 연설을 하러 다시 등장할 때도 ‘우∼’ 하는 함성을 보냈다. 만델라 전 대통령에 이어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의장을 맡아 이날 행사의 주빈인 주마 대통령은 가장 빛나야 할 순간에 참석자 중 유일하게 야유를 받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1년 반 동안 남아공은 광산업 근로자들의 지속적인 파업과 ANC의 지도력 부재 및 파벌 문제, 사회 지도층과 빈곤층 간의 분열 심화 등 사회적 불안정에 직면해 있다. 주마 대통령은 부패 혐의에도 휩싸였다. 2009년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 부패 의혹을 받고 있었지만 검찰이 불기소처분을 내린 바 있다. 주마 대통령은 지난해 줄루랜드에 위치한 자택을 개조하는 데 2700만 달러(약 285억 원)를 들인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받았다. 남아공은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만델라의 꿈은 이제 ‘경제적 아파르트헤이트’ 해소로 완성돼야 한다.” 1994년 남아공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된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를 철폐한 이후에도 남아공의 경제적 불균형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9일 남아공 국회는 만델라의 정치적 유산을 기리는 특별 국회를 개최했다. 남아공 여야 정치인들은 만델라의 서거를 계기로 정치적 통합을 넘어 경제적 불평등과 가난, 부패 추방에 힘을 쏟자는 자성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만델라 하우스’의 두 얼굴 9일 남아공의 경제중심지 요하네스버그의 명품 쇼핑몰인 샌드턴시티.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빛나는 쇼핑몰 내부의 만델라 광장에 설치된 6m 높이의 만델라 동상 앞에는 수많은 백인과 흑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줄지어 서 있었다. 명품 시계, 보석, 구두 매장의 쇼윈도에도 만델라 사진이 놓여 있다. 현재 남아공에서 만델라의 이름은 40개의 상표에서 쓰이는 ‘명품 브랜드’로도 통한다. 반면 만델라가 지냈던 요하네스버그 남서부 소웨토 지역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8일 ‘국가 기도의 날’에 찾아간 소웨토 주변 골목은 술에 취한 남자들이 어슬렁거리고 쓰레기가 나뒹구는 ‘흑인 게토(집단거주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요하네스버그 북동쪽의 알렉산드라에 있는 만델라의 옛집 주변은 더 심각했다. 이곳은 만델라가 23세의 나이에 고향에서 상경해 처음 정착한 곳. 그는 당시 화장실도 없고, 수돗물도 나오지 않는 집에서 변호사로서 본격적인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70여 년이 지난 뒤에도 이곳의 풍경은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만델라가 마지막까지 머물던 요하네스버그 하우턴 지역의 중산층 주택가나 프리토리아의 대통령 집무실 앞 빈소에서처럼 화려한 꽃다발도, 춤추고 노래하는 추모객들을 이곳에선 찾아볼 수 없었다.○ 경제적 아파르트헤이트 만델라 전 대통령은 1994년 취임 당시 “모두를 위한 정의와 평화”와 함께 “모두를 위한 일과 빵, 물과 소금에 대한 희망”을 약속했다. 실제로 최근 10년간 남아공에서는 흑인 중산층이 2배로 확대됐고, 평균소득도 169% 늘었다. 그러나 이는 여전히 백인가구 평균소득의 6분의 1에 불과하다.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소득 불균형은 오히려 확대됐다. 1994년 남아공의 상위 10% 계층이 전체 소득의 55%를 차지했으나 지난해엔 상위 10%가 전체의 70%를 차지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특히 하루 1.25달러(약 1316원) 미만으로 연명하는 빈곤층도 26%에 이른다. 소득 불균형은 흑인사회 내부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이웃 나라 짐바브웨에서 온 이주민에게 일자리를 뺏긴 남아공 흑인들이 지난해 170여 차례나 시위를 벌이는 등 ‘흑-흑 갈등’도 심각하다. 요즘 백인들은 수백 채의 고급주택 전체가 전기펜스로 보호되며 24시간 경비가 삼엄한 주거단지를 선호한다. 내부에 골프장, 수영장, 레스토랑 등 호화 시설을 갖춘 곳이다. 지난날 흑인을 격리시키려 했던 백인은 치안 문제 때문에 이제 스스로를 좁은 공간에 가두는 길을 택했다. 돈 많은 흑인들도 강도의 위험을 피해 백인들과 함께 이곳에 같이 살기 시작했다는 점이 흥미로운 대목이다. 저소득층 흑인들의 자활을 돕는 단체를 이끄는 도나 카친 사무총장은 “생전에 만났던 만델라가 해준 ‘가난을 만든 것도, 가난을 묵인해 온 것도 사람이다. 노예제도나 아파르트헤이트처럼 가난도 결국 사람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말에 희망을 걸어 본다”고 말했다. 한편 10일 전 세계 70여 개국의 정상들이 참석하는 추도식을 앞두고 요하네스버그와 프리토리아 시내에는 호텔방 확보 전쟁이 벌어졌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3인의 전·현직 대통령 부부가 추도식에 참석하는 미국의 비밀경호국은 경호 준비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남아공 정부는 장례기간에 군인 11만 명을 동원해 안전 유지에 만전을 기할 예정이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이끄는 한국 조문사절단은 9일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했다.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마디바(존경받는 어른이라는 뜻을 가진 만델라에 대한 애칭)는 제 인생을 바꿨습니다. 당신 덕분에 자유를 얻었습니다.” “하늘나라의 천사들도 춤을 추고 있을 거예요. 고귀한 분이 막 도착했으니까요.” “타타, 당신은 신께서 인류에게 내려준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 8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국 곳곳의 교회에서는 ‘인종 화합의 성자(聖者)’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을 기리는 예배가 열렸다. 이날을 ‘국가 기도의 날’로 선포한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고인의 부인인 위니 만델라 여사와 함께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브라이언스톤 감리교회에서 열린 예배에 참석했다. 주마 대통령은 이날 교회 연설에서 “우리를 위해 희생한 만델라의 발자국을 따라 ‘무지개 나라’를 건설하자”고 호소했다. 이날은 이슬람 사원과 유대교 회당에서도 기도회가 열려 종교를 초월해 만델라를 애도했다. 또한 요하네스버그 교외에 있는 만델라의 자택 앞에도 참배객들이 몰려들어 수천 송이의 꽃이 산처럼 쌓였다. 언덕 아래부터 손에 꽃을 들고 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노란색 국화를 들고 온 백인 여성, 보라색 수국을 손에 든 흑인 남성, 들꽃을 꺾어 온 소녀들까지…. 그들은 커다란 만델라의 사진 밑에 깨알 같은 글씨로 편지를 썼다. 5일 세상을 떠난 ‘타타(아버지) 마디바’에게 쓴 글이었다. 특히 추모 장소마다 추모객 수백 명이 “넬슨 만델라”를 외치며 엉덩이를 흔들고, 발을 구르며 격렬하게 춤을 추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이들에게 슬픈 날에 왜 춤을 추느냐고 물었다. 헤이잘 마지무코 씨(45·여)는 “아프리카 사람들은 행복할 때도 춤추고 노래하고, 슬픔을 감당할 수 없을 때도 노래를 한다”며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시절에는 감정도 맘껏 표현을 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자유롭기 때문에 춤을 춘다”고 말했다. 이날 자택 앞에는 흑인이든 백인이든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손을 잡고 온 참배객들이 많았다. 이곳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용기, 용서와 화해를 가르쳐준 만델라를 기리는 거대한 교육의 장이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30년간 남아공에서 살아온 백인 세르히오 씨(56)는 “우리는 20년 전만 해도 내전 당시 유고나 르완다에서처럼 서로가 서로를 죽이던 사람들이었는데 지금은 만델라를 함께 추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세계 언론은 만델라 사후에 실업이나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불안과 폭동, 주식과 통화가치 폭락으로 남아공 경제가 혼란에 빠지는 ‘만델라 크래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다. 오히려 현지 분위기는 만델라의 죽음이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단합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프리토리아 대통령 집무실 앞 추모장소에서 만난 버턴 조지프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 대변인은 “남아공이 현재 빈부격차, 실업,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과거에도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왔듯이 곧 이겨낼 것”이라며 “우리 모두 만델라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면 전 세계에 다시 화합과 번영의 빛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요하네스버그·프리토리아=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넬슨 만델라의 ‘자유를 향한 길고도 먼 여정’이 막을 내렸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만델라 전 대통령이 5일 오후 8시 50분경(한국 시간 6일 오전 3시 50분경)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제이컵 주마 남아공 대통령은 긴급 성명을 내고 “존경하는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가 떠났다. 만델라가 우리를 하나로 뭉치게 했으니 작별인사도 함께 보내자”고 애도했다. 롤리랄라는 그의 원래 이름이며 ‘장난꾸러기’라는 뜻이다. 백인 정권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 정책)에 맞서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이끌다 투옥돼 27년 6개월간 옥살이를 했다. 남아공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그는 ‘진실화해위원회’를 출범시켜 잘못을 고백한 백인을 사면해 평화로운 공존을 도모하는 용서와 화합의 지도력을 발휘했다.요하네스버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라는 걸 나는 알았습니다. 용감한 사람은 무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는 사람입니다.” 넬슨 롤리랄라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나약한 인간이 용서와 화해를 통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해낼 수 있는지 직접 보여준 아름다운 지도자였다.○ 아파르트헤이트로 갈라진 남아공 만델라는 1918년 7월 18일 트란스케이 움타타에서 템부족 족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해 친구와 함께 요하네스버그로 피신한 그는 친절한 한 백인의 도움으로 포트헤어대에서 공부했다. 하지만 1940년 학내에서의 정치활동을 이유로 퇴학당한다. 1942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본격적으로 흑인 인권 활동에 나선다. 1943년 아프리카민족회의(ANC)에 가입한 그는 1944년 ANC 청년리그를 만들었다. 특히 1952년 백인이 아닌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요하네스버그에 법률상담소를 열고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 반대 운동에 나서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 법률상담소는 흑인들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정권이 1948년 법으로 제정한 인종 분리 차별 정책을 뜻한다. 84%의 유색인종에 대한 16% 백인의 우월주의 정책이었다. 네덜란드 출신 이주자의 후손들이 쓰던 네덜란드어가 변화해 남아공의 공용어가 된 아프리칸스어(語)에서 ‘분리, 격리’를 뜻하는 말이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모든 사람을 백인 흑인 유색인 인도인으로 나눠 인종별 거주지 분리, 통혼 금지, 출입구역 분리 등을 하며 유례없는 백인지상주의 국가를 지향한 정책이었다. 심지어 성행위도 불법으로 규정했다. 그 골격은 영국이 케이프타운 식민지 등에 도입한 통행법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려는 흑인에겐 통행증이 필요한 시절이었다.○ 무장투쟁을 이끄는 전사로 변신 만델라는 1960년 3월 통행법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던 흑인 69명이 무차별 사살된 샤프빌 학살 사건을 계기로 평화적 시위운동을 중단하고 무장투쟁을 이끌었다. 1961년 지하 무장조직인 ‘움콘토 웨 시즈웨’(민족의 창)를 결성해 전국적인 파업을 주도하고 게릴라 활동에 나섰다. 흑인 해방을 위해 무기를 든 지 17개월 만인 1962년 8월 체포된 그는 1964년 6월 리보니아 재판소에서 국가 전복기도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4시간에 걸친 리보니아에서의 법정 진술은 역사의 기록으로 남았다.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조화를 이루고 동등한 기회를 누리는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 대한 이상을 간직하고 있다. 그런 사회야말로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고 이루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그런 이상을 위해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다.” 수감 기간 대부분을 케이프타운 앞바다에 있는 로번 섬에서 보낸 그의 명성은 점점 커졌다. 심지어 그의 죄수번호인 ‘46664’(1964년에 수감된 466번째 죄수라는 의미)까지 저항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그는 옥중에서 자와할랄 네루상(1979년), 유네스코의 시몬 볼리바르 국제상(1983년)을 받는 등 석방될 때까지 27년 넘게 복역하면서 세계 인권운동의 아이콘이 됐다. 남아공의 대표적인 아파르트헤이트는 ‘반투 홈랜드(Bantu Homeland)법’이었다. 백인 정권은 줄루, 코사족 등 약 10개에 이르는 흑인 부족에 명목상의 자치정권을 수립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체 영토의 약 13%에 불과한 데다 대부분 황무지였던 홈랜드에서 사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법으로 1960∼1994년 약 350만 명이 생활 터전을 잃고 극빈층이 됐다. 만델라의 석방 이후에야 아파르트헤이트 철폐의 전기가 마련된다.○ 화해와 평등의 ‘무지개 국가’ 건설을 슬로건으로 72세에 출감한 그는 정계에 복귀한다. 그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실용노선의 창을 들었다. 그는 수감 시절인 1985년 ANC와 별도로 정부와 흑백 갈등 종식을 위한 협상을 추진하기도 했다. 1990년 2월 프레데리크 데클레르크 정권이 탄생하면서 결정적 전기가 마련됐다. 데클레르크 대통령은 만델라를 석방했다. 백인을 향한 무장 투쟁을 외치던 만델라는 수감생활을 마치면서 한 연설에서 “무기를 바다에 버려라”라고 촉구했다. 협상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만들어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1991년 아파르트헤이트에 관련된 법들은 협상을 통해 평화로운 방식으로 폐지됐다. 만델라는 1993년 데클레르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어 ANC 의장이었던 만델라가 1994년 5월 자유 총선거에 의하여 구성된 다인종 의회에서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만델라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뽑히면서 350년 넘게 계속돼 온 아파르트헤이트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만델라의 위대한 면모는 대통령에 선출된 다음에 드러났다. 만델라는 피로 점철된 과거에 대한 복수와 응징이 아닌 화해와 용서를 통한 국민 통합을 택했다.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만들어 과거 국민당 백인 정부 시절에 일어난 사건들을 규명하되 그 가해자들을 용서했다. 만델라가 정권을 잡고 TRC를 출범시켰을 때만 해도 대부분 흑인은 과거에 대한 단죄를 요구했다. 극도로 긴장한 백인들은 흑인에 맞서기 위해 무장했다. 국제사회는 남아공에서 인종 간 유혈 참극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했으나 이는 기우였다. 만델라의 남아공은 다인종이 공존하는 ‘무지개 국가’ 건설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그는 ‘종신 대통령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을 단호히 뿌리치고 1999년 6월 퇴임했다. 건강 악화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대회 폐회식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그는 올 6월 오랜 수감 생활의 후유증으로 인한 폐 감염증이 재발해 3개월간 입원했다. ‘마디바’(만델라의 애칭)는 그렇게 투병을 한 뒤 세계인의 애도 속에 세상을 떠났다.○ 비운의 가족사 만델라의 가족사는 바람 잘 날 없었다. 두 번의 이혼을 겪었고 두 아들과 큰딸 등 세 자녀를 먼저 떠나보냈다. 만델라의 장남 마디바는 만델라가 로번 섬에서 수감생활을 하던 1969년 23세의 젊은 나이로 트란스케이에서 차 사고로 숨졌다. 차남 마카토도 2005년 에이즈로 사망했다. 큰딸은 생후 9개월 만에 숨졌다. 남아있는 자녀들은 재산 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다. 장녀 마카지웨는 첫 부인 에벌린, 둘째 딸 제나니와 셋째 딸 진지스와는 인권 운동 동료이자 두 번째 부인인 위니의 소생이다. 마카지웨와 제나니는 올해 4월 만델라가 수감 시절 그린 그림 및 핸드프린팅을 판매해 벌어들인 수익을 관리하는 신탁기금 두 곳의 경영권을 주장하며 맞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요하네스버그=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