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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5월 프랑스 베르됭 전투 50주년 기념식. 공연이 열리는 동안 꼿꼿하게 서 있던 샤를 드골 장군이 갑자기 자리를 떠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가장 참혹한 전투였던 베르됭 전투에 참여했던 드골도 당시 부상을 입고 포로가 됐다. 저자는 “얼음처럼 차가운 거인도 고통의 기억은 참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베르됭 전투는 프랑스 북동부의 요새 도시 베르됭에서 1916년 2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간 독일군과 프랑스군 사이에 벌어졌다. 한쪽이 나가떨어질 때까지 물량과 인원을 투입하는 ‘소모전’의 전형적인 형태였다. 프랑스의 공식 전쟁사나 독일군 명부, 윈스턴 처칠의 ‘세계 위기’(1929년) 등 저서를 참고하면 양측 사상자가 최소 70만 명에 달한다. 전투의 유해가 50년이 지난 1960년대까지 발견될 정도였다. 영국의 역사가인 저자는 병사의 일기와 편지, 지휘관 회고록, 기사, 공식 사료와 참전 군인의 증언을 바탕으로 베르됭 전투를 재현한다. 학술적인 분석보다는 전투 자체의 분위기를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 마치 역사 드라마를 보듯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다. 숫자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참혹한 전투의 현실은 과연 전쟁에서 승자가 존재하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이 전투에서 인간은 대포와 싸웠고 무참히 쓰러졌다. 급조된 참호의 벽에는 죽은 동료의 머리와 팔다리가 박혀 있고, 포탄 구덩이에는 시체들이 떠다녔다. 독일군 참모총장은 프랑스를 말려 죽이려 했고, 프랑스군 총사령관은 독일을 죽을 때까지 공격했다. 이들의 머릿속에서 병사들의 목숨은 파리 떼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는 건물 잔해와 하얀 유골로 쓰레기더미가 된 베르됭이었다. 저자는 “인간의 생명을 한낱 미물처럼 여긴 지도자들의 오싹한 섬뜩함은 제1차 세계대전의 증후”라고 말한다. 1962년 처음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은 50여 년간 재판(再版)을 거듭하며 영어권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국내 출간은 이번이 처음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연등회’를 다각적으로 조망한 전시가 열린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원장 채수희)은 연등회보존위원회(보존위원장 원행)와 함께 18일부터 ‘천 갈래의 빛, 연등회(燃燈會)’ 특별전을 국립무형유산원(전북 전주시) 누리마루 2층 기획 전시실에서 연다. 특별전은 연등회의 역사를 시작으로 오늘날 연등회가 이뤄지는 과정, 연등회에 참여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연등을 소개한다. 전시 구성은 △1부 연등회, 의례에서 축제로 △2부 역동의 시대, 변화하는 연등회 △3부 화합의 한 마당, 오늘날의 연등회 △4부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연등회로 기획됐다. 불교 경전 ‘현우경’ 속에 나타난 연등의 기원,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역사 문헌을 통해 연등회가 전개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와 근대를 거치며 연등 행렬로 재정비되는 과정, 연등의 제작 방법도 볼 수 있다. 연등회의 핵심인 관불의식(아기 부처 정수리에 관정수(灌頂水)를 붓는 의식으로 부처 탄생을 축하하고 마음의 번뇌를 씻음을 상징)과 연등 만들기 체험도 준비돼 있다. 연등회는 고대 인도에서 시작해 불교와 함께 통일신라에 전파됐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국가 의례나 민간의 세시 명절로 진행됐고, 오늘날에는 외국인도 참여하는 문화축제가 됐다. 이런 가치를 인정받아 202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내년 2월 28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4일 전남 광양시의 전남도립미술관 지하 1층 수장고에는 프랑스 작가 그자비에 베이앙의 커다랗고 새빨간 조각이 운반되고 있었다. 베이앙은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의 로비를 장식한 작가로 국내에도 친숙하다. 그런데 남종화와 서예 대가를 배출한 ‘예향’ 남도에 베이앙이 무슨 일일까. 내년 3월 정식 개관을 앞둔 미술관의 이지호 관장은 “베이앙 작품은 로비나 주요 장소에 전시될 예정”이라며 “남도의 전통도 중요하지만 국제적 미술사에 발맞춘 ‘새로운 예향’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지역의 열망이 크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베이앙의 조각 맞은편에는 한국의 근대 회화 작품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수장고 속 풍경처럼 개관 전시도 전통에 현대적인 색채를 가미했다.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다’라는 가제가 붙은 전시의 중심은 의재 허백련과 남농 허건. 전통적인 ‘대가’로 여겨지는 이들과 프랑스 현대미술 작가 로랑 그라소(48)의 신작이 전시된다. 그라소는 미술사나 역사, 과학에서 소재를 차용해 회화부터 설치, 비디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는 작가다. 프랑스 미술을 세계화하는 데 기여한 젊은 작가들에게 주는 ‘마르셀뒤샹 프라이즈’를 2008년 수상하고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국내에서는 2010년 삼성미술관 리움의 재개관전에 참가했고, 근현대 미술 작품을 전시하는 뮤지엄2의 외벽에 네온사인 작품 ‘Memories of the Future(미래의 기억)’를 설치했다. 국내 미술관에서 그라소 작품이 대규모로 선보이는 것은 처음이다. 이 관장은 “해외 유명 작가들이 국내 그룹전에 종종 참여하지만, 작품 수가 적어 제대로 된 맥락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며 “이번에는 그라소의 작품을 4개의 전시실에서 ‘미니 개인전’급으로 보여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라소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의 수묵화나 전통화법을 학습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낼 예정이다. 한창 신작을 작업 중인 작가는 풍경화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고 한다. 나머지 5개 전시실에서는 회화의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도록 구성한다는 것이 학예팀의 설명이다. 최근 국제 미술계는 시각적인 효과를 강조한 회화 작품이 다시 각광받고 있는 추세다. 이에 비해 국내 미술관에서는 개념이나 설치 미술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개관전은 남도의 전통을 회화의 맥락에서 다시 짚어볼 예정이다. 특히 폭이 7∼10m에 이르는 대작이 다수 출품될 예정이어서 기대를 모은다. 참여 작가는 이이남 허달재 김선두 허진 등 국내외 작가 9명이다. 미술관이 개관하기 전 빈 공간에서는 사전 전시도 열리고 있다. 프랑스 루시드 리얼리티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가상현실(VR) 작품 3점을 선보인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에 걸린 모네의 작품, 네덜란드 작가 피터르 브뤼헐의 ‘아이들 놀이’와 프랑스 생토메르 성당에서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듣는 ‘모차르트 360°’를 감상할 수 있다. 지역주민의 호응이 높아 내년 1월까지 주말 사전 예약분은 모두 마감됐다. 미술관은 장기적으로는 자료 수집과 작품 보존 등 미술사적 기반을 다지는 데 집중할 예정이다. 이 관장은 “남도는 의재와 남농은 물론 서예에 소전 손재형과 회화에 김환기, 오지호, 천경자 등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을 배출했다. 이와 관련된 기록을 발굴·정리하고 연구해 출판하는 등 미술관의 기본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종이 작품이 많은 남도의 특성에 맞춰 지류 작품의 보존 수복에 관한 국제 세미나도 열 예정이다”라고 말했다.광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 불교 전통행사인 ‘연등회(燃燈會)’가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문화재청은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연등회’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1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연등회는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로 연등법회와 연등행렬, 회향 등으로 이뤄진다.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비춰 차별 없고 풍요로운 세상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매년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에 거행되는 연등회는 불교 행사로 시작됐으나 오늘날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문화 행사로 발전했다. 연등회와 관련해 삼국사기에는 신라 경문왕 6년(866년)과 진성여왕 4년(890년)에 ‘황룡사에 가서 연등을 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됐다. 우리나라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은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 처음 등재됐으며 △판소리(2003년) △강릉단오제(2005년)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이상 2009년) △가곡, 대목장, 매사냥(2010년), 택견, 줄타기, 한산모시짜기(이상 2011년) △아리랑(2012년) △김장문화(2013년) △농악(2014년) △줄다리기(2015년) △제주해녀문화(2016년) △씨름(2018년)이 인류무형유산에 이름을 올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 불교 전통행사인 ‘연등회(燃燈會)’가 인류무형문화유산이 됐다. 문화재청은 “16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정부간위원회에서 ‘연등회’가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21건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연등회는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행사로 연등법회와 연등행렬, 회향 등으로 이뤄진다. 진리의 빛으로 세상을 비춰 차별 없고 풍요로운 세상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매년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에 거행되는 연등회는 불교 행사로 시작됐으나 오늘날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문화 행사로 발전했다. 연등회와 관련해 삼국사기에는 신라 경문왕 6년(866년)과 진성여왕 4년(890년)에 ‘황룡사에 가서 연등을 보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2012년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됐다. 우리나라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은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이 처음 등재됐으며 △판소리(2003년) △강릉단오제(2005년)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이상 2009년) △가곡, 대목장, 매사냥(2010년), 택견, 줄타기, 한산모시짜기(이상 2011년) △아리랑(2012년) △김장문화(2013년) △농악(2014년) △줄다리기(2015년) △제주해녀문화(2016년) △씨름(2018년)이 인류무형유산에 이름을 올렸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신문을 보고 직접 신청한 독자부터 젊은 디자이너 20여 명과 도예가까지. 올해 동아일보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 로비에 놓은 ‘내일을 담는 100년의 상(床)’은 1년 동안 많은 이야기와 작품을 올려놓았다. 길이 3m의 백색 도자기 상판과 옆에 놓인 분청사기 기법의 의자로 이뤄진 이 상은 도예가 이헌정(53·사진)의 작품이다. 이 작가의 새로운 도자(陶瓷) 조각 41점을 서울 용산구 박여숙화랑에서 만날 수 있다. ‘이헌정의 도자, 만들지 않고 태어난’전(展)의 작품들은 각지지 않은 덩어리 모양이다. 의자를 목적으로 만들었지만 등받이나 팔걸이는 없다. 작가는 이 모양을 ‘가장 오래된 의자의 모양인 스툴(stool)’이라고 설명한다. 투박하게 덩어리진 형태들에 각기 다른 색상의 유약을 발라 장식적인 효과를 더했다. 작품은 갤러리 바깥까지 이어진다. 지난해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용산구 이태원으로 이전한 박여숙화랑 2층에는 공예 갤러리 ‘수수덤덤’이 자리한다. 수수덤덤 밖 테라스 빈 공간에도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 작가가 이곳에서도 전시를 하고 싶다고 한 것. 갤러리 이전 후 첫 야외 전시도 이뤄지게 됐다. 이 작가는 서울 종로구 청계천의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陵幸 班次圖)’ 도자 벽화로도 대중에게 친숙하다. 홍익대 미대에서 도예를 공부한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조각을, 귀국해 건축을 공부했다. 해외 도자 아트페어를 통해 건축가 노먼 포스터, 설치예술가 제임스 터렐, 배우 브래드 피트, 래퍼 퍼프 대디 같은 명사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박여숙 대표는 “이헌정 도예가의 작품은 통상적인 도예 작품보다 사이즈가 크다는 것이 강점이고 실험정신도 넘친다”며 “이번에는 상업 갤러리 공간에 맞는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3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일제강점기 대구의 한 시내버스 안. ‘아이고!’ 하며 올라탄 조선인 아주머니가 자리를 잡고 선다. 그는 자기 옆에 선 일본인 소녀를 보고는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러고는 치마 속에서 잔돈을 꺼내 건네는데…. 일본인 엄마는 얼굴이 붉어지며 ‘괜찮다’고 거절한다. 식민 통치의 비극을 모른 채 조선 땅에서 나고 자란 소녀는 이름 모를 한국 어머니들의 따스함이 자신을 만들었다고 회고한다. 이 책을 쓴 이 일본인 소녀는 1927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교사인 아버지가 대구공립보통학교에서 일하게 돼 가족의 한국살이가 시작됐다. “조선의 마음, 풍물과 풍습, 자연이 나의 원형을 만들었다”는 그는 자신의 유년기 기억을 상세히 기록한다. 거창한 사건은 일어나지 않지만 일제강점기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하나의 관점으로 흥미롭다. 그의 기록 속에서 조선인은 흰 옷을 입고 노래를 부르며, 결혼하는 새색시가 가마를 타고 오면 모두가 구경하고, 시장에서는 중국인 러시아인도 등장한다. 경주로 이사 간 뒤 왕릉과 유적을 돌아본 이야기도 생생하다. 담담하고 건조하게 기록된 이야기들 속에서 당시 사람들의 옷과 행동, 분위기를 자유롭게 상상해 볼 수 있다. 조선인과 직접적인 교류는 없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조선과 일본이 동등하다’는 국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조선의 땅을 소유하는 일본인들의 탐욕을 비판한다. 잘못된 것을 바꿀 용기는 없지만 인간을 향한 선량한 마음은 잃지 않았던 부모님 아래 자란 소녀는 패전 후 일본 규슈 지역 탄광촌에서 생활하며 작가가 됐다. 이 책이 한국어로 번역된 스토리도 흥미롭다. 2001년부터 대구 향토사를 직접 조사하고 복원하려는 시민운동 ‘대구읽기모임’을 통해 책은 한국인과 만나게 됐다. 대구읽기모임과 민간 한일 교류 거점 공간을 운영하는 박승주, 저자가 태어난 대구 삼덕동의 적산가옥을 조사하던 일본인 마쓰이 리에, 두 사람이 함께 번역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올 미국 대선에도 출마했던 힙합 뮤지션 카녜이 웨스트의 2010년 앨범 표지엔 이 작가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음산한 기운을 자아내는 녹색 배경에 와인잔을 든 발레리나가 겁먹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다. 몸은 사람이지만 눈은 만화 캐릭터 같아 인간인지 동물인지 알 수 없다. 미국 작가 조지 콘도(63)의 작품이다. 웨스트와의 협업 이후 웨스트의 아내이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타 킴 카다시안의 에르메스 버킨백에 그림을 그려주고,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과 함께 스케이트보드를 만든 콘도는 화가라기보다 셀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인기 덕에 국내에도 마니아가 적지 않은 콘도의 작품 20여 점이 한국을 찾았다. 서울 성동구 더페이지갤러리 ‘조지 콘도’전은 그의 대형 회화 작품과 드로잉, 청동조각을 선보인다. 미 뉴햄프셔 출신의 콘도는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장에 전시된 그림 중 가장 최근작인 ‘Red and Green and Purple Portrait’(2019년)는 그의 자화상이다. 만화처럼 기괴하고 큰 눈, 신경질을 내는 듯한 이빨, 시점이 각기 달라 뒤틀어진 얼굴, 화가 난 듯 그은 검고 굵은 외곽선은 콘도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그는 현재 뉴욕에서도 개인전을 열고 있는데 자신의 최근 그림에 대해 “미국을 분열시키는 불평등에 관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스타일의 초상화는 2010년에도 볼 수 있었다. 콘도는 영국 여왕을 광대 같은 캐릭터로 묘사한 작품을 영국 테이트 갤러리에 전시한다. 당시 인터뷰에서 콘도는 “여왕의 누드를 그리고 싶었는데 영국 법에 금지돼 못 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이처럼 대중에게 친숙한 인물을 소재로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찾는 것은 앤디 워홀이 메릴린 먼로를 그렸듯 미 팝아티스트들의 전형적인 전략이다. 콘도는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워홀의 ‘팩토리’에서 조수로 일했고 장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과 절친한 사이였음을 밝혔다. 워홀이 사망했을 때 그의 침대 옆에는 콘도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고 한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2009년 작품들(‘Choo Choo’ ‘Michael J. Frog’ ‘Daffy Duck’)에서는 워홀의 영향도 보인다. 그림 속 주인공은 만화 캐릭터 모습을 하고 있다. 콘도는 캐릭터의 부리를 두 개 그리거나, 등에서 입이 자라나는 것처럼 형태를 왜곡해 음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카녜이 웨스트의 앨범 제목 ‘나의 아름답고 어둡고 뒤틀린 판타지(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가 콘도의 작품과도 딱 들어맞는 이유다. 2005년 그린 작은 그림들은 콘도가 멤피스 지역에 머물며 작업한 것이다. 자신이 다녔던 레스토랑, 슈퍼마켓, 공연장 등을 일기처럼 기록한 뒤 정사각형 캔버스에 기호화해 담았다. 바비큐를 먹었던 ‘Bozo‘s Bar-B-Q’, 맥주를 마신 ‘그린 비틀’, 공연을 감상했던 아티스트 ‘앨 그린’이 캔버스에 담겼다. 뉴욕에서 콘도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바스키아의 작품과 비교해 봐도 재미있을 듯하다. 전시는 내년 1월 23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올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프리즈 아트페어를 가보니 백남준 작품이 국내보다 훨씬 높은 가치를 인정받더라고요.” 3일부터 ‘백남준’전을 열고 있는 리안갤러리 서울 안혜령 대표의 말이다. 안 대표는 “비디오아트를 시작한 백남준은 팝아트의 창시자 앤디 워홀만큼이나 중요한 작가인데 정작 우리는 아직도 그를 잘 몰라 안타깝다”고 했다. 백남준(1932∼2006)의 작품 27점을 한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는 평면 작품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많다. 캔버스 회화가 6점, 판화 10점이다. 텔레비전 조정화면 같은 오방색 배경 위에 그림을 그린 ‘무제’(1994년)나 조각 작품을 토대로 한 판화 ‘진화, 혁명, 결의’(1989년) 등을 볼 수 있다. 회화 작품에서는 한자, 한글, 로마자 등 문자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안 대표는 “설치 작품보다 소장하기 쉬운 회화 작품이 해외에서도 인기”라며 “한자와 한글이 재밌는 요소로 여겨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론 백남준의 비디오 조각도 볼 수 있다. 전시장 지하에 설치된 ‘볼타’는 안 대표가 25년간 소장한 작품이다. “‘볼타’는 제임스 코한 갤러리에서 구매한 뒤 줄곧 집의 식탁 옆에 놓았던 작품이에요. 백남준을 너무 좋아해 그가 세상을 떠난 날 제가 가진 작품의 불을 전부 껐다가 켜는 ‘추모식’도 했어요. ‘볼타’는 개인적 애착이 많아 판매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갤러리스트가 되기 전 컬렉터였던 그는 2007년 갤러리 개관 전부터 백남준의 설치 작품만 9점을 갖고 있었다. 안 대표는 “진짜 컬렉터라면 미술사적으로 이미 입지가 확고한 백남준 작품 한 점은 소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컬렉터들이 유독 고장 같은 이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대담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미국 작가 댄 플래빈 작품도 형광등이 깨지거나 수명이 다하면 현지에 주문해 바꿔야 하거든요. 저도 직접 해본 적이 있어 잘 알아요. 네온이나 형광등보다 더 수명이 긴 브라운관을 이제는 조금 덜 두려워해도 되지 않나요?” 전시는 내년 1월 1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번에 발굴된 유물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둑돌입니다. 고분의 주인공은 여성으로 추정되는데, 바둑이 신라 때도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7일 온라인으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심현철 연구원은 이렇게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경북 경주시 쪽샘지구 신라고분 44호 발굴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이 무덤에서는 금동관, 금드리개 같은 장신구, 돌절구·공이, 운모 등과 함께 바둑돌이 함께 발굴됐다. 44호분의 주인공은 키가 150cm 전후인 신라 최상위 계층 여성으로 추정된다. 금·은·유리구슬을 4줄로 엮어 곱은옥을 매단 가슴걸이는 천마총 같은 최상위 계층의 무덤에서만 확인되는 디자인이다. 또 금동관, 귀걸이, 팔찌 등 장신구가 작아 미성년자일 가능성이 높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무덤 주인공의 발치에서 나온 바둑돌 200여 점이다. 지름 1∼2cm, 두께 0.5cm 내외의 작은 돌로, 가공한 흔적이 없어 자연석을 그대로 채취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경효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모두 신라에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많아 중국에서 사신을 보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통일신라시대 효성왕도 왕위에 오르기 전 친한 사람과 바둑을 뒀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그간 신라시대 바둑돌은 황남대총 남분, 천마총, 금관총 등 최상위 계층 남성의 돌무지덧널무덤에서만 출토됐다. 역사 기록에 남성만 바둑을 뒀다는 이야기는 없지만, 그간의 발굴 결과와 통념상 바둑은 남성의 전유물로 인식됐다. 그런데 이번 발굴로 신라 여성도 바둑을 뒀다는 해석이 가능하게 됐다. 비단벌레의 딱지날개를 겹쳐 만든 장식품도 수십 점 발견됐다. 녹색과 금색 빛이 나는 비단벌레의 날개 2개를 겹쳐 물방울 모양으로 만들고, 가장자리를 금동판으로 고정했다. 비단벌레는 삼국시대 동아시아에 광범위하게 서식했으나 지금 한반도에서는 멸종위기생물이다. 이 장식품은 마구에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44호분의 발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부장궤에 겹겹이 쌓여 있는 유물의 진면모를 확인하고,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와 축조 과정을 복원해 그 결과를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삼성출판박물관(관장 김종규)이 개관 3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 ‘책으로 걸어온 길’을 열고 있다. 삼성출판박물관은 1990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개관해 2003년 종로구 구기동으로 이전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지난 30년간 개최한 26회 전시 중 중요 자료를 엄선해 선보인다. ‘교과서 특별기획전’ ‘한국 신문학 특별기획전’ ‘한국 여성문화자료 특별기획전’ ‘저자 서명본전’ ‘50∼70년대 우리 출판물 특별전’ ‘우리 책의 표지화와 삽화’ ‘잡지를 읽다’ ‘근현대 여성 작가 특별전’ ‘금서(禁書) 특별전’ 등의 하이라이트와 만날 수 있다. 전시 자료 중 이인직의 ‘은세계’(1908년),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년) 등 희귀 자료가 적지 않다. 또 박물관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학촌 이범선 작가(1920∼1981)의 ‘학촌서실’도 개관·운영 중이다. 소설 ‘오발탄’으로 유명한 작가의 도서, 일기장, 창작 노트, 미정리 원고, 서간철, 안경, 인장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작가 10주기 당시 유족이 기증한 것이다. 삼성출판박물관은 국내의 유일한 출판 박물관으로 인쇄문화, 포스터류, 작가 유품, 친필 원고, 출판 관련 문화 자료 10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특별전은 29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소아 변비부터 잦은 복통과 설사, 그리고 하루에도 100번씩 이어지는 트림. 저자의 진료실을 찾은 이 환자들 증상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잘못된 음식을 먹어서, 아니면 위장 기관에 문제가 있어서? 문제의 원인은 의외의 곳에 있었다. 바로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 ‘소확혐(小確嫌)’이다. 책 서두에 소개된 18개월 된 수미는 반년이 넘도록 변비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어 저자를 찾는다. 아이의 부모에게 저자는 “‘현상’에 불과한 변비에 초점을 맞추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 변비는 병이 아니다”라고 한다. 문제는 이유식을 시작한 아이의 변이 딱딱해지면서 느끼는 통증이었다. 이것이 두려운 기억이 되었는데 가족들은 연유도 모른 채 계속해서 아이의 배변에 집착하고 있었다. 강요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이겨내도록 지켜보라는 처방이 내려진다. 시간이 지나고 수미는 더 이상 배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됐다.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에 매달리는 요즘, 저자가 정반대인 ‘혐오스러운 기억’을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나쁜 기억을 회피하거나 어설프게 컨트롤하면서 잠깐의 위안을 얻는 동안 더 큰 문제를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감기다. 감기는 치료약이 없다. 그런데 ‘혹시’를 염려하는 부모와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한 의사의 합심으로 항생제 처방이라는 결과가 탄생한다. 항생제를 과도하게 복용하면 정작 필요할 때 내성 때문에 기능을 발휘하지 못함에도 순간의 소확혐 때문에 부모와 의사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이다. 저자는 “놀랍게도 병이 없던 아이를 환자로 만든 사람이 가족이나 의사”라고 꼬집는다. 이 책은 강도 높은 나쁜 기억인 트라우마에 비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일상적 나쁜 기억에 집중한다. 매일의 평범한 삶에서 대다수가 저마다의 소확혐을 갖고 살아가는데도 그것을 다루는 데 미숙하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1장의 기억에 관한 뇌과학적 지식으로 출발한다. 기억이 인지에서 출발해 저장되는 과정에 대한 기본적인 과정을 보고 나면 심리학은 물론 경제학, 공학이나 영화,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용된 사례들이 등장한다. 왜 인간은 나쁜 기억을 피하는지, 그 방법은 무엇이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이 대목에서 책은 소아청소년의 질병을 넘어 일상을 살아가는 방법론이 된다. 매일매일 ‘소확행’을 이룬다고 해도 나도 모르게 풀지 못한 소확혐을 쌓아가고 있다면 그것을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 ‘치유’로 가면 결국 문제는 똑바로 선 자신의 자아, 주변에 대한 신뢰와 연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소확혐에 시달리는 아이에게 어설프게 개입해 사태를 악화시키기보다 중심을 잡고 스스로 헤쳐 나가도록 믿고 지켜봐주는 것처럼 말이다. 진료실을 넘어선 폭넓은 이야깃거리와 인간을 향한 따스한 눈길이 돋보이는 책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병풍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사진)’가 약 한 달간 공개된다.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4일 개막해 내년 1월 10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해학반도도, 다시 날아오른 학’을 통해서다. 지난해 7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데이턴미술관의 업무협약을 통해 국내에 들어와 약 16개월간의 복원 작업을 거친 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공개되는 것이다. 해학반도도는 장수(長壽)를 상징하는 ‘십장생도’의 소재 가운데 바다와 학, 복숭아를 강조해 그린 그림을 말한다. 조선 말기 궁중에서 크게 유행해 왕세자 혼례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를 위해 수십 점이 제작됐다. 해학반도도의 복숭아는 3000년마다 한 번 열매를 맺어 오랜 수명을 의미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해학반도도는 높이 244.5cm, 폭 780cm로 현재 남아 있는 10여 점 중 가장 규모가 크다. 금박을 사용해 데이턴미술관이 입수할 때만 해도 일본 회화로 알려졌다. 그러다 2017년 이도 미사(井戶美里) 일본 교토공예섬유대 교수와 김수진 성균관대 초빙교수가 현지 조사를 통해 19세기 말∼20세기 초 한국에서 제작된 것으로 분석했다. 이 그림은 1920년대 미국인 찰스 굿리치가 서재를 꾸미기 위해 구매했고 그의 사후 데이턴미술관에 기증됐다. 굿리치가 그림을 구매한 경위는 확인되지 않았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문화재청과 한국조폐공사의 후원으로 여섯 개의 판 형태로 변형된 병풍을 원래 12폭으로 되돌려 보존 처리했다. 온라인 국제 학술행사도 개최된다. 25일까지 데이턴미술관 관계자, 한일 회화 전문가, 보존처리 담당 전문가의 주제 발표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유튜브 계정에 순차적으로 공개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 부동산 버블 붕괴로 인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퍼져나가기 직전인 2007년. 영국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중국 작가의 회화 작품이 590만 달러(약 65억 원)에 낙찰된다. 당시 중국 현대미술 최고가를 기록해 화제가 됐던 이 작품은 웨민쥔(岳敏君·58)의 ‘처형’이다. 이 무렵 폭발적으로 성장했던 중국 미술 시장은 주목과 동시에 ‘거품’이라는 회의적 시각도 받았다. 시장의 지속 가능성과 관계없이 분명한 건 자국 작가에게 흔쾌히 지갑을 여는 중국 ‘큰손’의 존재감이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생겨난 중국 현대미술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는 전시 두 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는 ‘유에민쥔 개인전: 한 시대를 웃다!’가 열린다. 웨민쥔의 작품은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남자가 등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작가를 닮은 이 남자는 동구권 붕괴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등 중국이 겪은 일련의 현대사에 대한 냉소를 상징한다. 2007년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처형’에 대해 당시 소더비는 “톈안먼 사태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라며 “중국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회화”라고 설명했다. 전시장에서는 웨민쥔의 회화와 조각 작품 40여 점을 볼 수 있다. 비록 ‘처형’은 복제화가 걸렸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만든 대규모 회화 작품들이 전시됐다. ‘잔디에서 뒹굴다’(2009년)와 해골이 등장하는 ‘연인 1’(2012년)이 있으며, 한 전시실은 ‘웃음이 웃음이 아니다’ 조각 연작 시리즈로만 구성됐다. 근작에서는 정치적인 상황에 대한 언급보다 팝적인 요소가 두드러진다. 작품에 배트맨이나 도라에몽 같은 대중문화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차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최근 작품들을 통해 한때 ‘정치 팝’으로 분류되기도 했던 웨민쥔의 작품세계가, 정치적 상황을 떠나 어떻게 작용할 수 있는지 관객이 직접 판단해볼 수 있을 듯하다. 1만∼1만5000원. 내년 3월 28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에서는 ‘중국동시대미술 3부작: 상흔을 넘어’가 열린다. 회화보다는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설치 미술이나 퍼포먼스 작품이 주를 이루는 전시에는 주진스, 쑹둥, 류웨이 등 세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각각 1954년생, 1966년생, 1972년생으로 세대가 나뉘어 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작품들의 커다란 스케일이다. 쑹둥만 해도 초기 작품은 ‘입김’(1996년)처럼 퍼포먼스를 하고 사진을 찍거나, 거울을 활용한 재치 있는 영상 작품 ‘조각난 거울’(1999년)이 눈에 띈다. 그런데 최근 작품 ‘상흔’(2020년)은 전시장 입구 로비를 가득 채울 정도로 수많은 잡동사니로 구성됐다. 종이를 활용한 주진스의 ‘남과 북’(2020년)도 현재 전시장에 맞게 사이즈를 줄였다고 한다. 2000원. 내년 2월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국화가 산정(山丁) 서세옥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사진)가 지난달 29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대한민국예술원은 3일 “유족 측이 조문객의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가족장으로 장례를 치른 후 별세 사실을 알려드리게 됨을 양해 바란다”고 밝혔다. 고인은 1960년대 수묵 추상으로 한국화의 현대화를 시도했다. 1970년대에는 인체의 형태를 단순화한 ‘사람들(군무)’ 시리즈를 선보였다. 대표 브랜드가 된 이 시리즈는 간결한 붓질로 사람이나 집 등을 상징적인 기호의 형태로 화폭에 담았다. 고인은 192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한학자이자 독립운동을 지원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문을 공부하다 광복 후 미술로 진로를 바꿨다. 1946년 서울대 미술학부가 설립됐을 때 1회생으로 입학해 근원 김용준(1904∼1967)의 영향을 받았다. 20세 때인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26세에 서울대 교수, 32세에 국전 심사위원이 됐다. 40년간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과 회장을 지내는 등 명성과 권위를 함께 누렸다. 1960년대에 민경갑 정탁영 전영화 등과 ‘묵림회’ 활동을 했다. 이때 전통재료를 활용한 추상 작업을 시작했다. 1963년 제7회 상파울루 비엔날레, 1969년 이탈리아 국제회화 비엔날레에 참가했다.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008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됐다. 201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 자신의 작품 100점을 기증했다. 고인의 아들 서도호 씨도 ‘집’과 ‘군상’을 활용한 설치미술로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80년 1월 1일 서울대 미대생 김병종은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당선 주인공이 됐다. 그가 응모한 ‘자유와 동질화의 초극’이라는 제목의 평론은 200자 원고지 100장에 가까운 방대한 분량이었다.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만난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67)는 “그림과 글로 창작 욕망을 분출했던 제 개성을 일찍부터 알아준 곳이 동아일보”라고 했다. “어릴 적부터 글과 그림은 저에게 밥과 반찬처럼 어우러졌습니다. 신춘문예를 시작으로 동아일보의 기획 시리즈 ‘새로 쓰는 선비론’의 삽화도 그리고, 객원논설위원으로 글을 쓰기도 했지요.” 40년 전 하숙방에서 그가 꼼짝 않고 썼던 미술평론은 한국 미술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학파 문예 이론가와 동양의 고전을 참고했다. 작가로서 자신의 좌표를 짚어보려 했던 시도가 신춘문예라는 장(場)을 통해 공적 이론으로 발전했다”고 했다. 그해 김 교수는 중앙일보 희곡 신춘문예에도 당선됐고 전국대학생미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 덕분에 그를 인터뷰하러 온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와 동아일보 옛 사옥(현재 일민미술관)을 찾았던 기억도 생생하다고 했다. “일민 김상만 회장을 복도에서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단아하고 인자한 모습이 기억납니다.” 소설가 최명희(1947∼1998)가 그와 같은 해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함께 등단해 김 교수는 최명희의 작품에 서평을 써주며 오랜 인연을 맺었다. 김 교수는 고교 2학년 때 여성동아에 ‘에디트 피아프’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문화계에서는 ‘여성동아’의 영향력이 특히 컸다고 말했다. “박수근 화백이 등장하는 박완서 선생의 '나목'은 1970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 당선작이지요. 1972년 여성동아 공모에 당선된 정혜연의 장편소설 ‘배회하는 바위들’에는 주인공의 남편이 동아일보 입사시험에 줄줄이 낙방해 동아일보 앞을 지나가면 침을 ‘퉤’ 뱉었다는 문장도 등장합니다(웃음).” 그는 2001년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으로, 2013년에는 ‘동아광장’의 필진으로 활동했다. “문화와 예술론, 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삶을 훈훈하고 윤기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죠.” 그의 지론은 2018년 서울대 정년퇴임 연설에도 반영됐다. 미대 교수로는 서울대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 연설을 한 그는 “훌륭한 농부가 되기 위해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눈앞의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여전히 모든 글을 직접 손으로 쓴다는 그는 ‘글로 된 매체’의 힘은 축소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는 수십 년간 종이를 다룬 미술가입니다. 아무리 인터넷 문화가 가속되어도 신문을 넘겨 읽고 행간의 의미를 되새기는 맛 때문에 신문은 죽지 않을 겁니다. 프랑스의 르몽드,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 선진국 매체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문의 건재함은 그 나라의 독서층, 혹은 지식인층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한성 백제시대(1∼5세기)의 왕성 터로 유력한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의 축조 방법에 대한 단서가 확인됐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폭 40∼50m, 추정 높이 11m에 둘레가 약 4km로 대규모인 풍납토성 축조의 비결은 나무 기둥이었다고 1일 밝혔다. 연구소는 최근 풍납토성 서쪽 성벽을 평면으로 절개해 단면을 확인했다. 그 결과 성벽을 쌓아 올리기 위해 세운 나무 기둥들이 발견됐다. 풍납토성의 몸체를 이루는 흙더미인 ‘토루’마다 길이 60∼70cm의 나무 기둥이 88∼162cm 간격으로 설치됐다. 풍납토성은 중심 골조인 1토루를 쌓아 올린 다음, 그 위에 토루를 덧대어 2·3토루를 쌓아 올리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2토루와 3토루의 경계에서는 성벽 경사면의 반대 방향으로 박힌 나무 기둥과 기둥을 받치기 위한 석재도 확인됐다. 그간 풍납토성은 수차례 증축한 것으로 추정됐지만 여러 가설이 제기되며 의견이 분분했다. 이번 발굴에서 처음에 지어진 부분(1·2토루)과 증축된 부분(3토루) 사이 얇게 깐 석재가 발견돼 새로운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소는 “2021년 정밀조사를 진행해 축조 방식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할 것”이라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권순철 화백(76)은 1989년 프랑스로 이주한 뒤 서울과 파리를 오가며 살았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귀국해 보낸 1년이 근래 고국에서 보낸 가장 긴 시간이다. 이 기간에 권 화백은 1000호짜리 대작들에 몰두했다. 그중 한 작품인 ‘백두’(284×680.5cm)를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흔적 Trace’에서 볼 수 있다. 권 화백의 개인전은 2016년 대구미술관 전시 이후 4년 만이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권 화백은 “체력이 버텨줄 때 큰 작품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작가라면 대작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세계적 작가들이 대규모 작품을 하는데, 한국에서도 스케일 큰 작품이 많이 나와야죠.” 권 화백은 대작 시리즈를 위해 프랑스에서 캔버스도 가져왔다. 그러나 작업 공간이 마땅치 않아 서울 광진구 중곡동 화실을 정리하고 경기 고양시에 새 화실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백두는 물론이고 ‘얼굴’ 같은 대작 여러 점을 작업하고 있다. 권 화백은 “작가로서 스스로의 생각이나 스타일을 종합적으로 완성할 수 있는 기회”라며 “한라산도 파노라마로 펼쳐 보이고 싶다”고 했다. “이번 전시장에 내놓은 ‘한라’는 4∼5년 작업한 작품입니다. 기존 작업실에서는 가로로 길게 펼칠 수 없어 한계가 있었는데, 한라산의 평평하고 긴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어요.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진 산이 한국에 많습니다. 화가에겐 조형적으로 행복한 일이죠.” 그에게 산은 얼굴만큼 오래된 주제다.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기 전 서울 성북구 집에서 살 때는 캔버스를 들고 나가 수락산 도봉산 관악산을 현장에서 하루 종일 그리곤 했다. ‘쉬르 플라스’(sur place·현장에서)로 그리지 않은 그림은 생명력이 약하고 형상만 나온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침에 산을 가면 복잡한 기운이 돌아요. 그 후 점심, 저녁으로 가면 점점 해가 저물며 산의 색도 잦아들고 형상만 남죠. 저는 그것을 산의 ‘뼈’만 남는다고 합니다. 프랑스에 가서도 이 이야기를 늘 했는데, 해가 완전히 지고 컴컴해지면 산의 바위 같은 것들이 튀어나와 웅크린 사람 같은 모양이 되거든요.” 산은 동양화의 전통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를 꺼내자 권 화백은 원(元)대 황공망(1269∼1354)의 ‘부춘산거도(富春山居圖)’를 언급했다. “손으로 그린 것 같은 흔적이 없으면서 빈틈없는 자연스러움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그만한 산의 정수(精髓)를 표현한 서양화가가 폴 세잔”이라고 덧붙였다. ‘정수’나 ‘본질’이란 말을 그는 자주 꺼냈다. 그림은 사람 손에서 시작하지만 작위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자연의 본질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그는 “지금도 너무 늦었다”며 “이제 복잡한 것들을 최대한 줄이고 싶다”고 했다. “파리에도 조그마하지만 그 나름의 사회가 있어 어른 노릇을 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은 줄이고 한곳에 오래 머물며 작업에 전념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희망보다는 조급함이 앞선다”는 말에서 비로소 그가 자신과의 승부에 전념할 태세를 갖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2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가 대중을 또 한 번 놀라게 한 건 2017년이다. 40대 일본인 사업가가 그의 작품 ‘무제’(1982년)를 1억1050만 달러(약 1245억 원)에 낙찰받으면서다. 미국 작가 경매 사상 최고가여서 대중의 눈길이 쏠렸다. 그 사업가 이전에 바스키아의 작품을 소장한 대표적 컬렉터가 둘 있다. 루이비통을 비롯한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과 뉴욕의 아트 딜러 호세 무그라비다.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국내 최대 바스키아 회고전 ‘장미셸 바스키아: 거리·영웅·예술’은 무그라비의 소장품으로 구성했다. 구혜진 수석 큐레이터는 2년 전 겨울, 뉴욕 중심가 호화로운 빌딩에 있는 무그라비 사무실을 찾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앤디 워홀, 제프 쿤스, 카우스 등 값비싼 팝아트 작품이 그를 맞았다. 바스키아의 작품 두 점은 무그라비의 집무실 가장 깊숙한 곳에 걸려 있었다. 나머지 작품은 외부인 출입이 금지된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바스키아의 미술사적 가치와 문화적 영향뿐 아니라 경제적 가치도 눈길을 끈다. 바스키아의 첫 개인전 작품으로 높이 2m, 가로 4m를 넘는 대작 ‘The Field Next to the Other Road’는 보험가액이 2000억 원을 넘는다. 이 작품을 비롯한 회화, 드로잉 150여 점의 보험가액은 1조 원이나 된다. 전시장 보험료만 5억 원 이상이다. 화려한 면면만큼 전시를 준비하는 데도 무척 까다로웠다고 한다. 전시를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 예술 전문 변호사가 대동해 결정을 내렸다. 바스키아가 거리에서 활동을 시작했기에 작품의 상태도 제각각이어서 회화 작품에 붙은 먼지 한 톨까지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작품이 올 때와 갈 때의 상태를 비교하는 ‘컨디션 체크’를 하기 위해서다. 바스키아 작품에는 소장자뿐 아니라 저작권사와 재단도 관여한다. 이들 모두에게서 전시 내용과 텍스트, 도록까지 동의를 얻어야 했다. 전시장 초입의 ‘SAMO’ 사진들도 사진가가 직접 배열 순서까지 정했다. 미술관 관계자에 따르면 일반 전시 기획에 5억∼10억 원이 소요된다면 바스키아전은 비용이 5배 이상 들었다. 미술관이 이 모든 ‘수고’를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 충분히 그렇다고 미술계는 평가한다. 바스키아전 개최가 미술관의 평판을 좌우하는 레퍼런스가 되기 때문이다. 공연으로 유명한 영국 바비컨센터는 바스키아 개인전으로 개관 사상 최다 관객을 모았다. 구 큐레이터는 “원화를 고집해 어렵게 만든 전시”라며 “바스키아 작품을 이 정도 규모로 보는 것은 10년 내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19년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인 조덕현 작가(63)의 신작이 대구미술관 개인전 ‘그대에게 to thee’에서 전시되고 있다. 사진을 기반으로 한 회화 작업을 선보인 조 작가는 2015년 일민미술관 개인전 ‘꿈’을 통해 가상의 이야기를 선보여 화제가 된 바 있다. 이번 전시는 이때 만들어진 ‘조덕현 서사’의 연장선에 있다. 당시 조 작가는 동명이인의 영화배우 조덕현, 소설가 김기창과 협업해 가상의 인물 ‘조덕현’을 만들어냈다. 1914년 태어나 1995년 사망한 가상의 인물 조덕현은 영화배우가 되기 위해 1930년대 중국 상하이로 건너간다. 이곳에서 중국 감독 쑨유의 ‘The Big Road’에 단역으로 출연하고 큰 역할을 제안받지만 중국 공산당과의 마찰로 출연이 무산된다. 말년에는 영화 제작자에게 사기를 당해 가산을 탕진하고,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기에 이른다. 이인성미술상은 지난해 그에게 상을 수여하며, 서사적 구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2019 이인성미술상 선정위원회는 “조덕현 작가의 작품은 역사를 재현해 밀도 높은 구성력으로 인간의 대서사시를 표현했으며, 미술의 본원적인 의미와 사회와의 관계를 꾸준히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고 선정 사유를 밝혔다. 이번에 새롭게 공개한 ‘플래시포워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모티프로 했다. 유다의 자리에 가상의 조덕현을 배치했으며, 2014년 아프가니스탄 ‘국경 없는 의사회’ 병원 폭격 현장, 폼페이 화산 폭발, 17세기 루벤스의 그림, 1950·60년대 한국 영화계 등의 도상을 합성했다. 이 작품을 마주 보고 있는 ‘1952, 대구 1―8’은 6·25전쟁에 참여한 미군 장교 에드거 테인턴 주니어가 촬영한 대구 능금시장의 사진을 토대로 한다. 조 작가는 “이 작품을 그리며 이인성과 박수근 등 선배 화가 작품들이 떠오르며 깊이 이해가 됐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2017년 선보였던 ‘에픽상하이’ 시리즈, 일민미술관에서 선보인 작품을 새로운 형태로 구성한 ‘박싱 언박싱’(2020년), 내성천의 모래를 재료로 한 설치 작품 ‘모래성’(2020년), 대형 스크린에 식물을 투영하고 윤이상의 음악을 삽입한 설치 작품 ‘음의 정원’(2020년) 등 50여 점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플래시포워드’에 이르기까지 관객을 고려한 세심한 공간 연출과 동선이 흥미롭다. 조 작가는 “이번에 내놓은 신작은 인간의 탐욕과 서구 문명의 한계를 노출한 코로나19라는 재난을 다양한 도상을 통해 은유적으로 담아 관객이 자유롭게 상상하고 유추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인성미술상은 올해 20주년을 맞는다. 이인성미술상은 한국 근대미술사의 대표적 작가인 이인성(1912∼1950)을 기리기 위해 대구시가 제정한 상이다. 이를 기념해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선정된 역대 수상자 18명의 작품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수상자로 김종학 이강소 이영륭 황영성 김홍주 김구림 이건용 김차섭 안창홍 등이 있다. 전시는 내년 1월 17일까지. 입장료 700∼1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