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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김성연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은 덴마크인 예술감독 야코브 파브리시우스의 손에 이끌려 국립민속박물관의 ‘미역과 콘부’ 전시를 봤다. 올해 비엔날레와 관련해 함께 회의하던 파브리시우스가 꼭 봐야 한다며 데려간 것이다. 미역과 콘부(다시마)는 한국과 일본의 바다 문화를 다룬 전시였는데 해외 참여 작가가 궁금해한다는 이유였다. 전시 도록을 받은 작가는 해녀와 관련된 작품을 만들었다.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 비엔날레에는 늘 딜레마가 있다. 국제전을 표방하다 보니 너무 난해해 지역과의 소통이 아쉬웠다. 외부의 예술감독이 사전 구성한 작가진에 전시 장소만 빌려주는 ‘헬리콥터 전시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런데 2020 부산 비엔날레는 과감히 ‘부산’을 주인공으로 세워 눈길을 끈다. 다음 달 5일부터 11월 8일까지 열리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피아노곡 10개와 간주곡 5개로 구성된 무소륵스키의 작품 ‘전람회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람회의 그림’이 무소륵스키의 친구이자 건축가 빅토르 하르트만에 대한 오마주라면 이번 비엔날레는 부산을 위한 오마주라는 설명이다. 전시의 첫 관문은 독특하게 문학이다. 지난해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파브리시우스는 번역된 국내 문학작품을 읽고 저자 11명을 섭외했다. 배수아 박솔뫼 김혜순 김금희 김숨 김언수 편혜영, 마크 본 슐레겔, 아말리에 스미스, 안드레스 솔라노, 이상우다. 이들은 일정 기간 부산에 머무르며 글을 썼다. 그 다음엔 시각예술가와 음악가를 초청해 이들 문학에 맞는 신작이나 기존 작품을 선택해 달라고 했다. 부산에서 나온 문학작품을 출발점으로 음악과 미술이 뻗어 나가는 구조다. 파브리시우스는 “전시가 하나의 몸이라면 문학가는 뼈대, 시각예술가들은 두뇌이며, 음악가들은 근육과 세포”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구조에 대해 “세계 미술 소개뿐 아니라 부산을 중심으로 확장하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화제작 ‘몬도카네’도 포함됐고 ‘소닉 유스’의 베이시스트였던 킴 고든도 참여한다. 이들 모두 부산을 주제로 모였다. 독일 작가 슈테판 딜레무트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구단의 마스코트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김 위원장은 “부산 비엔날레는 1981년 부산청년비엔날레로 시작해, 관이 아닌 지역 작가가 주도한 자생적 비엔날레”라고 말했다. 그만큼 비엔날레에 지역 미술과 소통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지역 작가전을 별도로 구성하는 방법도 있지만 국제전 옆에 부록처럼 끼워진 전시에 회의적인 반응도 많았다. 예술감독을 공모할 때부터 지역 이해도를 우선순위로 뒀다. 김 위원장은 “파브리시우스는 이미 수차례 부산 비엔날레를 찾았고 덴마크에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등 한국 미술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했다. 변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주최 측은 시간당 관객 수를 제한하고 사전 예약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파브리시우스는 “힘든 시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성찰의 자리다. 시각예술과 문학, 음악을 통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지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예술 작품은 사고파는 상품도 된다. 그러나 상업적 가치만 추구하면 금세 천박해지는 ‘상품’이다. 작가는 돈을 넘어서는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갤러리스트(갤러리를 운영하는 사람)는 안목으로 돈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가치를 품고 서로 줄다리기하는 묘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잔에게 볼라르, 피카소에게 칸바일러가 있었듯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갤러리스트와 작가를 ‘예술적 동지’로 보는 두 사람이 있다. 현대미술가 서용선(69)과 갤러리스트 이영희 씨(70)다. 둘이 나눈 대화를 이 씨가 최근 ‘화가 서용선과의 대화’(좋은땅)로 펴냈다. 3일 서 작가의 작업실에서 두 동지를 만났다. ―‘예술적 동지’의 의미는 무엇인가. ▽서용선=내 작품은 색이 강하고 형태도 거칠어 어색해하는 사람이 많다. 나름대로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작가의 편에서 함께 안타까워하고 전달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동지적 관계다. 대부분 (내) 그림 앞에서 머뭇거리는데 이영희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호불호를 표현한다. ―이영희 씨는 서 작가가 주목받기 전부터 알아봤다. ▽이영희=어릴 때부터 그림을 보고 자랐다. 사춘기에는 조르주 루오와 칸딘스키에 심취했다. 어머니가 1세대 플로리스트 임화공(1924∼2018)이다. 동화백화점 지하에서 ‘국내 최초로’ 꽃집을 하셨다. 학교 다녀오면 늘 백화점 갤러리에 올라가 그림을 봤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 씨가 리씨(Lee C)갤러리를 운영하던 2009년 ‘산(山)·수(水)’전으로 시작됐다. 인물과 역사를 주된 소재로 삼았던 서 작가에게 이 씨가 풍경화를 제안해 열린 전시다. 2015년 갤러리를 정리한 이후에도 이 씨는 서 작가의 전시를 돕고 있다. ―두 분의 첫인상이 굉장히 다르다. ▽서=(이 씨의) 느닷없는 솔직함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또 굉장히 상업적인 사람으로 보이는데, 내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도 가끔 이해가 안 된다. ▽이=얄미울 때도 많다. 그림 외에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방 출장을 가다가 내가 잠시 차에서 내렸는데 그것도 모르고 30분을 혼자 운전해 가신 적도 있다(웃음). ―이인범 상명대 교수는 두 분을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로 표현했다. ▽서=해외에서 갤러리가 작가와 일상을 함께하는 좋은 예를 봤다. 일본의 아는 작가는 갤러리에서 작업실 문제부터 재료 구하는 것까지 도와줬다. 독일에서는 (갤러리스트가) 작업실에 들러 작품을 토론하고 논쟁도 하더라. 우리 미술계에서 이런 이야기는 어색하다. ―‘책을 통해 미술이 결국 삶에 관한 것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은 인생을 소개하는 일이다. 이런 기회를 통해 작가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서=인생과 이미지는 별개가 아니다. 그림을 통해 상투적 아름다움을 넘어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젊은 작가, 갤러리스트에게 조언한다면…. ▽서=갤러리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작가의 가장 어려운 문제다. 갤러리도 작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기도 한다. 이럴 때 터놓고 대화한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한 원로 작가에게서 작가와 컬렉터, 갤러리스트의 관계는 동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작가가 컬렉터와 갤러리스트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존감을 갖고 대화했으면 좋겠다.양평=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엄마의 신전엔 종교의 구별이 없다. 부처 예수 마리아 때로는 무속신이 번갈아 자리를 지킨다. 누군가는 그녀의 ‘기복’을 비과학적이라 매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와 구조의 결함을 떠안은 누군가에게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처절하고 단단한 몸부림이다.’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0―낯선 곳에 선’전이 열리는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 3층 전시장 한 곳에 100개의 물그릇이 놓여 있다. 그릇 앞에는 화난 듯 강하게 그은 붓 터치가 눈에 띄는 ‘엄마의 신전’ 회화 연작이 걸렸다. 애틋하고 처절하며 때로는 ‘징글징글’한 엄마의 열망을 담은 문지영 작가(37)의 작품이다. 지난달 24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가족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시각 장애와 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을 ‘고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엄마와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녔다. 동생의 상태가 장애인 줄 모르고 해결책도 알지 못해 끊임없이 헤매고 다녔다. 결혼을 하고 나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작가는 그것이 사회적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 마음을 되돌아보며 작가는 오래된 가족사진을 캔버스에 옮긴다. 어릴 때 법당에서 찍은 사진은 붉게 물들었다. 때로는 너무나 맹목적이어서 두려운 엄마의 염원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예술을 개념으로 접근한 사변적 작품이 한때 유행처럼 번졌다. 이런 가운데 작가가 몸으로 겪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형 언어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젊은 시각…’전은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1999년 3월 시작해 60여 명을 소개해 온 전시다. 이번 전시는 권하형 노수인 유민혜 하민지 한솔 작가를 함께 소개한다. 10월 4일까지.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렇게 해도 안 떨어질 겁니다.’ ‘강남 부동산 불패!’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쟁의 정점엔 서울 강남이 있다. 온갖 정쟁 속에서도 모두가 궁금한 것은 오직 하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강남 부동산 가치의 향방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팀 ‘강남버그’는 제3의 방향에서 강남을 분석한다. 건축가와 미술가, 기획자가 협업한 이 그룹은 그 결과물을 지난달 24일 개막한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전에 선보이고 있다. 강남의 속살이 드러난 이곳에서 강남버그는 이렇게 묻는다. ‘정책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집값보다 더 근본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사교육 1번지’의 천태만상영상 설치작품 ‘강남버스’는 반포 둔치를 시작으로 압구정동 대치동 구룡마을을 돌아 강남역에 도착한다. 배우 노래강사 워킹맘 등 가이드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홍색 가이드북은 ‘강남어’를 소개한다. 화려한 겉모습 속 학벌사회의 민낯이 드러난다. ‘레테(레벨테스트) 돼지엄마(학원과 팀 수업을 결정하는 엄마) 참새아빠(부인, 자녀를 대치동에 유학 보낸 아빠) 과떠리 외떠리 민떠리(과학고, 외고, 민사고에 떨어져 일반고 다니는 학생)….’ 이런 관점의 배경에는 강남버그의 실제 경험이 있다. 멤버인 이정우 박재영(미술가) 김나연(기획자) 이경택(건축가)은 모두 ‘강남8학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스스로가 ‘강남의 버그(벌레)’라는 우스갯소리로 출발했다. “대기업 취직을 통해 사회 주류가 되길 바랐던 부모의 기대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강남의 교육 시스템이 전혀 다른 결과 값을 낳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버그라는 생각이 들었다.”(이경택) 버그들의 자조 섞인 냉소는 ‘천하제일뎃생대회’로 이어졌다. 사전 신청자들이 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서 주어진 시간에 석고상을 그리는 참여 이벤트였다. 행사의 이면엔 ‘대학에 가고 나니 아무 쓸모가 없던 입시교육’에 대한 풍자가 깔려 있다. “대치동에서 선릉역 일대 미술학원 거리는 홍대 입구와 함께 198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미대 입시를 담당했다. 그때는 석고 소묘가 필수였는데 대학에 가니 ‘이제 석고 소묘는 잊어라’고 했다. 그 뒤 입시에서 석고 소묘가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박재영) 당시 미술교육이 예술의 본질보다는 ‘대학에 들어가는 기술’에 치중했다는 이야기다. 강남의 ‘상징’인 사교육도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따져 묻는다. 이때 ‘강남버스’에서는 연극배우가 가이드로 나선다. 잠실에 살지만 ‘뺑뺑이’로 압구정동 현대고를 졸업했다는 그는 말한다. “현대고 출신이라면 다들 제가 여유롭다고 착각해요. 그런데 저도 가끔 그걸 우쭐해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죠. 내가 지금 강남 출신을 연기하고 있나?”○ 깨어나지 못한 ‘마취 강남’‘강남버스’ 뒤편엔 건축 도면이 둘러싼 공간이 펼쳐진다. 도시건축의 시선에서 강남을 바라보는 설치작품 ‘마취 강남’이다. 강남 쏠림을 억제한다고 하는 부동산 정책이 강남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듯 강남은 이미 정책들에 ‘무감각해졌다’고 진단한다. 이렇게 ‘깨어나지 못한 도시’ 강남을 의학용어로 해석한다. 1972년 서울 도심 고등학교의 강남 이전 발표와 이를 전후로 한 인구 분산 정책은 ‘이식(移植)’이라고 본다. 은마아파트의 재개발 움직임에 자극받은 ‘우성-선경-미도 아파트’(우선미) 조합은 ‘유착’이다. 1980년대 강남의 유일한 대형 호텔이던 르네상스호텔의 철거는 ‘절제’다. 이런 끊임없는 증상과 시술의 후유증으로 등장한 것이 구룡마을이다. 전시장 벽면에는 없어졌거나 실현되지 못한 강남의 건축물 도면이 걸려 있다. 단기적 시야에 국한된 개발, 맹목적 사교육, 그 가운데 밀려난 인간적 가치와 본질을 이들은 결국 버그라고 본다. 버그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수 있는 시그널이라는 것이다. 버그의 수정에 미래가 있다고 강남버그는 제안한다. “권력이나 힘에 의해 억지로 개발된 지역, 유흥과 부동산의 도시. 이런 과거 이야기보다 현재의 강남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고 싶다. 강남은 그 지역만이 아닌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라인홀트 메스너는 네팔의 한 사무실에서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일본의 유명 산악인 우에무라 나오미가 1980∼1981년 겨울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 허가를 받았다는 얘기였다. 1978년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정 기록을 세운 메스너는 ‘에베레스트도 충분히 혼자 가능하다’고 내심 생각하면서 다만 구체적 실행 시기를 1980년대 중반으로 미뤄둔 터였다. 우에무라보다 앞서 ‘세계 최초’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는 폭설과 산사태, 따가운 햇살이 번갈아 괴롭히는 몬순 시기에 등반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1980년 여름, 티베트의 북쪽 새로운 루트를 통한 에베레스트 단독 등반 허가를 따낸다. 이 책은 이후 이어지는 극한의 여정을 담고 있다. 메스너는 이탈리아 남티롤 출신으로 1986년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를 완등한 인류 최초의 산악인이 된다. 그를 세상에 알린 것은 1978년 페터 하벨러와 함께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이었다. 당시 산소 공급 장치 없이는 7500m 이상에서 생존이 힘들다는 주위의 경고에도 한계에 도전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후 다시 찾은 에베레스트 북동벽 아래 베이스캠프. 산소도, 동료도 없이 오직 18kg 배낭과 자신뿐이다. 산을 홀로 마주한 메스너의 기록은 위대함이나 희열보다는 외로움과 불확실함, 그리고 고통으로 가득하다. “물밀 듯 밀려오는 두려움의 흐름을 막았을 때에만 출발할 수 있다” “잡념을 놓아버리고 평온한 마음을 갖는 동시에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행동하는 것이 예술” 등 솔직하고 실감나는 서술이 돋보인다. 마침내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 등정이라는 기록을 세운 메스너는 이렇게 회고했다. “진정한 등산의 예술은 정복보다는 절절한 외로움 끝에 일상으로 돌아와 느끼는 ‘살아 있음’의 고마움이다. 진정한 도전은 불확실함의 끝까지, 존재의 한계까지, 몸의 힘이 닿는 데까지 고통을 견디며 나아가는 것에 있을 뿐이다. … 에베레스트 정상은 한계를 이겨낸 사람에게 그 진정한 속내를 열어 보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 작품은 1992년 미국 LA폭동을 기억하기 위해 작년부터 LA 코리아타운에 그리려던 것이다. 그런데 몇 주 전 이걸 한국에서라도 당장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27일 개관한 부산 해운대 영무파라드호텔에 그래피티 작가 로열독(32·심찬양)의 작품 ‘Walk in your shoe 2020’이 등장했다. 호텔 12~15층 사이 보이드(비운) 공간의 복도 벽 11m를 차지한 작품이다. 로열독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빗대 “나는 너의 입장에 서겠다. 당신의 삶이 내게 중요하다(Your lives matter to me)”고 작품을 설명했다. ‘예술 호텔’을 표방하는 이 호텔에는 보이드 공간이 3곳 있다. 한국 1세대 그래피티 작가인 제이플로우의 ‘부산산책’은 8~11층에, 구현주 작가의 ‘부산 풍경’은 4~7층에 자리 잡았다. 꼭대기층 레스토랑에는 에바 알머슨의 대형 회화도 걸렸다. 부산지역 작가들 작품도 객실마다 자리했다. 박헌택 대표는 “일상에서 친근하게 예술을 접하도록 해 저변을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하 2층에서는 앤디 워홀, 키스 해링, 케니 샤프 등의 작품을 선보이는 소규모 전시 ‘피카프로젝트-깔롱 드 팝아트’전과 과일에서 영감을 얻은 체험형 전시 ‘푸룻푸룻아일랜드’도 열린다. 각각 10월 31일, 내년 2월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886년 조선과 수교를 맺은 사디 카르노 프랑스 대통령은 도자기 두 세트를 선물한다. 세브르 도자제작소에서 만든 ‘백자 채색 살라미나병’과 ‘클로디옹병’이다.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신(新)왕실도자’전에서 이 프랑스 도자기가 최초로 공개된다. 그런데 전시장에는 살라미나병만 자리하고 있고, 클로디옹병 한 쌍은 찾을 수 없다. 소장품에 없어 분실된 줄로만 알았던 클로디옹병은 최근 엉뚱하게도 일본 도쿄 프린스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이 도자기가 일본에 가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클로디옹병은 깊고 신비로운 코발트색과 붓 자국이 아지랑이처럼 남아있는 명품이다. 금속 산화물 대다수가 1000도에서 분해되기에 푸른색을 내려면 최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클로디옹병의 푸른색을 ‘세브르 블루’라고도 부른다. 손잡이와 외곽에는 금테두리가 둘러져 있다.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를 선보이는 ‘신(新)왕실도자’전을 준비하던 국립고궁박물관 학예팀은 클로디옹병의 소재를 사진으로 추적했다. 1918년 촬영한 대한제국 황실 가족사진에서 모습을 확인했다. 그런데 1950년대에는 일본 도쿄 영친왕 저택 사진에서 클로디옹병이 발견됐다. 영친왕의 아카사카 저택이 1930년 완공되면서 석조전 가구 일부가 넘어갔는데, 이때 클로디옹병도 함께 간 것으로 학예팀은 추측하고 있다. 1955년 영친왕 저택은 세이부그룹 창업자 쓰쓰미 야스지로(1889∼1964)에게 매각됐다. 이후 세이부그룹 계열사인 프린스호텔로 활용되다가 2016년 리노베이션을 거쳐 현재 프렌치 레스토랑 및 결혼식장으로 운영 중이다. 레스토랑이 영친왕 저택의 구조와 인테리어를 그대로 활용해 클로디옹병도 90년 넘게 그대로 남아있다는 후문이다. 곽희원 연구사는 “일본에서 클로디옹병을 직접 봤을 땐 소름이 돋았지만, 이내 도자기에 담긴 근대 조선 왕실의 슬픈 역사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재 프린스호텔 구관인 영친왕 저택은 철거 위기에도 놓였으나 호텔 측이 마음을 바꿔 다행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클로디옹병은 국내로 돌아올 수 있을까? 현재 사기업인 세이부그룹이 소유해 불투명한 상황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일본 황족의 재산이 몰수될 때 황족 일원이었던 영친왕 저택도 부동산 업자에게 넘어갔다. 학예팀은 작품 대여 협의도 진행했지만 코로나19로 여의치 않았다. 곽 연구사는 “우선은 해외 소재 문화재를 확인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886년 조선과 수교를 맺은 사디 카르노 프랑스 대통령은 도자기 두 세트를 선물한다. 세브르 도자제작소에서 만든 ‘백자 채색 살라미나병’과 ‘클로디옹병’이다. 살라미나병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으로 남았는데, 클로디옹병 한 쌍은 행방불명이었다. 분실된 줄 알았던 클로디옹병이 최근 엉뚱하게도 일본 도쿄 프린스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발견됐다. 고종이 선물 받은 도자기가 일본에 가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클로디옹병은 깊고 신비로운 코발트색과 붓 자국이 아지랑이처럼 남아있는 명품이다. 금속 산화물 대다수가 1000도에서 분해 되기에 푸른색을 내려면 최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클로디옹병의 푸른색을 ‘세브르 블루’라고도 부른다. 손잡이와 외곽에는 금테두리가 둘러져있다.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를 선보이는 ‘신(新) 왕실도자전’을 준비하던 국립고궁박물관 학예팀은 클로디옹병의 소재를 사진으로 추적했다. 1918년에는 대한제국 황실 가족사진에서 모습이 확인했다. 그런데 1950년대에는 일본 도쿄 영친왕 저택 사진에서 클로디옹병이 발견됐다. 영친왕의 아카사카 저택이 1930년 완공되면서 석조전 가구 일부가 넘어갔는데, 이 때 클로디옹병도 함께 간 것으로 학예팀은 추측하고 있다. 1955년 영친왕 저택은 세이부그룹 창업자 스스미 야스지로(1889~1964)에게 매각됐다. 이후 세이부그룹 계열사인 프린스호텔로 활용되다, 2016년 리노베이션을 거쳐 현재 프렌치 레스토랑 및 결혼식장으로 운영 중이다. 레스토랑이 영친왕 저택의 구조와 인테리어를 그대로 활용해, 클로디옹병도 90년 넘게 그대로 남아있다는 후문이다. 곽희원 연구사는 “일본에서 클로디옹병을 직접 봤을 땐 소름이 돋았지만, 이내 도자기에 담긴 근대 조선 왕실의 슬픈 역사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재 프린스호텔 구관인 영친왕 저택은 철거 위기에도 놓였으나, 호텔 측이 마음을 바꿔 다행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클로디옹병은 국내로 돌아올 수 있을까? 현재 사기업인 세이부그룹이 소유해 불투명한 상황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 후 일본 황족의 재산이 몰수될 때 황족 일원이었던 영친왕 저택도 부동산 업자에게 넘어갔다. 학예팀은 작품 대여 협의도 진행했지만 코로나19로 여의치 않았다. 곽 연구사는 “우선은 해외 소재 문화재를 확인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년에 걸쳐 19권으로 집필된 대작 ‘세계인문지리’의 출발점이 된 책이다. 저자는 1871년 파리코뮌 운동에 참여했다 추방당한 뒤 스위스 산골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슬펐다, 살아가는 일에 지쳐버렸다”로 시작하는 책은 점차 산의 곳곳을 걸어보고 바라보며 익숙해지는 명상록으로 변한다. 산이나 바위가 형성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도 한다. 이야기들은 사회에서 유배당한 저자의 개인적 감정과 얽혀 부드럽게 읽힌다.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와추셋 산행’과 함께 산을 다룬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제임스 조이스도 르클뤼의 저서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저자는 지정학, 역사지리학은 물론이고 생태학 이론과 생태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19세기에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자유 동거’와 ‘여성 참정권’등 페미니즘 사상에서도 선구적 주장을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흑인이 원하는 건 이 세상에 머무는 짧은 생의 매 순간 백인에게 머리를 얻어맞지 않는 것뿐이다.” 미국의 문학가이자 민권 운동가인 제임스 볼드윈(1924∼1987)의 에세이다. 1960년대에 발간됐음에도 여전히 유효한 문구들이 눈에 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집회의 여진이 계속되는 요즘 그의 이름이 거듭 거론되는 이유다. 지난해 뉴욕시는 볼드윈이 살았던 집을 랜드마크로 지정했다. 책은 두 개의 편지글로 구성됐다. 첫 번째 편지는 14세 조카, 두 번째는 모든 미국인에게 보냈다. 조카에게는 “백인과 흑인 중 상대를 수용해야 할 주체는 흑인”이라면서 기존 관점의 전복을 주문한다.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두 번째 에세이는 민권운동과 연결됐던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비논리를 지적하고 개개인의 인식과 책임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원제 The Fire Next Time.김민 기자 kimmin@donga.com}

6·25전쟁 때 해외에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시대 불화(佛畵)가 돌아왔다.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조계총림 송광사의 ‘치성광여래도(熾盛光如來圖·사진)’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 송광사와 함께 환수했다고 23일 밝혔다. 앞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달 해외의 한국 문화재 모니터링을 실시한 결과 송광사 치성광여래도가 국외 경매시장에 출품된 것을 확인했다. 재단은 이 불화의 하단에 적힌 기록을 분석해보니 제작 연도와 봉안한 사찰명은 훼손됐으나 송광사의 암자에 봉안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후 소장자와 협의를 거쳐 지난달 28일 영국에서 그림을 돌려받았다. 이 기록에는 향호묘영(香湖妙英)과 용선천희(龍船天禧)라는 스님이 불화 제작에 참여했다는 내용이 있다. 두 스님은 19세기 후반 전라도에서 활동한 화승(畵僧)으로 송광사와 선암사의 많은 불화를 제작했다. 또 1857년 송광사에 치성광여래도를 봉안하는 성산각을 건립했다는 내용도 적혀 있다. 이번에 환수한 치성광여래도가 성산각에 모셔져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치성광여래도는 북극성 북두칠성 등 별자리를 여래와 성군으로 의인화해 묘사한 불화다. 국내에는 고려 후기∼조선 후기에 제작된 작품이 전해지고 있다. 1898년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송광사 치성광여래도는 비단 바탕에 채색한 것으로 크기는 141×102cm다. 중앙에 치성광여래가 있고 좌우에 해와 달을 상징하는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합장하고 있다. 조계종 측은 “과거 운문사 ‘칠성도’, 봉은사 ‘시왕도’, 범어사 ‘신중도’를 환수한 것처럼 국외소재문화재재단과 협력해 국외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환수하겠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코로나19 방역조치 완화로 미술관들이 다시 문을 열고 있다.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도 23일 자체 기획한 개인전 3개를 동시에 시작했다. 올해 부산비엔날레에도 참여하는 프랑스 출신 작가 카미유 앙로와 한국 작가 이미래, 돈선필이 그 주인공이다. 2층에서 선보이는 앙로의 ‘토요일, 화요일’전은 작가의 국내 첫 개인전이다. 중심이 되는 두 작품(토요일, 화요일)은 작가의 2017년 프랑스 파리 팔레드도쿄 개인전 ‘Days are Dogs’에서 선보였다. 당시 일주일을 문화인류학, 신화, 정신분석 등 이론을 토대로 분석해 요일별 작품을 제작했다. 그중 두 작품을 국내에 선보이는 것이다. 앙로는 영상을 통해 “‘토요일’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등 각종 뉴스에서 영감을 얻어 시작했다”며 “일련의 뉴스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종교 집단 등을 통해 탐구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화요일’은 주짓수 선수의 훈련 장면을 담은 영상과 조각, 매트 설치로 구성된다. 그는 “주짓수에서 항복하는 자세가 곧 상대를 제압하는 시도가 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됐다”고 했다. 이 설치 작품 옆으로는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하는 드로잉 연작이 나열돼 있다. 2019년 출산한 후 엄마와 아이 사이의 정서를 탐구하며 느꼈던 감정을 표현한 작품이다. 3층 이미래의 ‘캐리어즈’는 2018 광주비엔날레와 지난해 아트선재센터의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에 선보였던 작품과 유사한 형태다. 다양한 종류의 호스를 촉수처럼 늘어뜨리고 펌프를 이용해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오며 움직인다. 액체가 뿜어져 나올 때마다 소리가 흘러나와 마치 살아있는 동물처럼 보인다. 이 조각의 옆에는 작가의 어머니가 자는 모습을 담은 영상 ‘잠자는 엄마’가 나란히 전시됐다. 돈선필 작가의 ‘포트레이트 피스트’는 1층 프로젝트 스페이스에 마련됐다. 돈선필은 사회 현상이나 여러 사건을 ‘피규어’의 관점으로 정의한다. 이번 전시에도 두상 조각 위에 얼굴 대신 각종 피규어를 얹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부터 샌드위치 모형까지 기호로 규정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는다. 24개의 두상은 모두 같은 모양인데,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인터넷 밈(meme)에서 차용했다고 한다. 31일에는 이미래 작가의 아티스트 토크가 사전 예약제로 진행된다. 9월 13일까지. 2000∼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해 미국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4개월간 미술관 공사를 했다. 증축에 4억 달러(약 4475억 원), 리모델링에 5000만 달러(약 600억 원)가 투입된 대규모 공사였다. 휴관하는 동안 글렌 로리 MoMA 관장은 전 세계를 돌며 미술관 리노베이션을 홍보했다. 그는 “회화, 조각뿐만 아니라 퍼포먼스를 비롯한 다양한 예술 형태를 담고, 관객에게 답이 아닌 질문을 던지는 미술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예술의 의미가 확장되고 시민의 관심도 커지면서 미술관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전북도립미술관도 이런 흐름에 맞춰 개관 이후 첫 리모델링을 진행한다. 지역 곳곳에 공립 미술관이 생기는 가운데 기존 공립 미술관의 새 단장은 흔치 않은 사례다. 16일 전북 완주군 전북도립미술관에서 김은영 관장(사진)을 만났다.○ 높은 계단 치우고 자연 속 놀이터로모악산 자락에 자리한 전북도립미술관은 앞에 구이호수가 펼쳐져 경관이 아름답다. 그러나 입구까지의 높은 계단과 가로수가 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길을 망설이게 한다. 김 관장은 “2004년에 지어졌지만 전형적인 1980년대 스타일의 미술관”이라고 했다. “입지는 좋지만 관람객을 끌어들이는 시각적 매력이 미진했죠. 이 시대 미술관은 소장품으로 공부하는 차원을 넘어서야 해요. 피크닉 온 사람들도 현대미술을 가깝게 느끼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했어요.” 이 같은 생각을 염두에 둔 리모델링은 실시 설계까지 마쳐 9월 시작된다. 높은 계단은 철거되고 입구는 1층으로 옮긴다. 미술관 앞마당에는 가로수 대신에 잔디밭, 야외 카페와 자연 놀이터가 생긴다. 각종 디지털 기기를 활용해 창작을 경험하는 공간인 아트팹랩(Art Fab Lab)도 새로 들어선다. 세계적 미디어아트 연구소인 ZKM,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실험 공간을 일반인 체험 공간으로 변용했다. 1층 현관 입구에서 통유리를 통해 아트팹랩을 볼 수 있게 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의도다.○ “공립 미술관끼리 협업해야”김 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덕수궁 시절부터 함께한 1세대 큐레이터다. 서울대 미대를 다녔지만 유준상 초대 서울시립미술관장의 강연을 듣고 기획자를 꿈꿨다. “해외 미술관에 연수를 가서 충격을 받았죠. 이미 전시 소통 방법론을 활발히 개발하고 있었어요. 그 근원을 알기 위해 미국 JFK대에서 미술관학을 공부했습니다. 이론에만 그치지 않고 SFMoMA, LACMA 등에서 현장 실습을 했고요.” 김 관장은 2014년 MMCA 서울관 개관 당시 교육정보서비스팀장을 맡았다. 미국 댈러스미술관과 협업해 ‘MMCA 프렌즈’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아트팹랩을 개설했다. ‘도심 속 미술관’을 표방한 서울관은 개관 첫해 관객 100만 명을 넘겼다. 미술관은 ‘전북 미술사 시리즈’로 지역 미술 연구도 심화할 예정이다. 한국 미술사에서 저평가된 지역 작가를 조명하는 작업이다. 지난해에는 전북의 서예·문인화 전통을 이은 ‘수묵정신’전을 열었고, 올 하반기에는 비원파 작가인 천칠봉(1920∼1984) 탄생 100주년 기념 전시가 예정돼 있다. “1960, 70년대 컬렉터에게 사랑을 받았던 작가입니다. 미술사적으로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화랑과 옥션에서 거래가 됐는데, 미술사적 맥락을 객원 큐레이터와 함께 연구 중입니다.” 김 관장은 “미술관들이 협력해 전시 방법이나 경영에 관한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며 “매년 세미나와 콘퍼런스로 교류하는 해외처럼 각 미술관이 경험과 정보를 공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완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국 출신 배우 틸다 스윈턴(59·사진)과 홍콩 출신 영화감독 쉬안화(안 후이·73)가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공로상인 ‘명예 황금사자상’을 받는다. 베니스 영화제는 9월 2일부터 12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영화제 조직위는 틸다 스윈턴을 소개하며 “세계적 히트작인 ‘설국열차’와 ‘옥자’로 봉준호 감독과 함께 일했다”고 언급했다. 또 알베르토 바르베라 베니스 영화제 감독은 “독특하고 파워풀한 연기로 20세기 말부터 입지를 다진 배우”라며 “예술과 사회 분야 모두에서 관행에 과감하게 도전했다”고 소개했다. ‘풍겁’(1979년)으로 데뷔한 쉬안화 감독은 홍콩 ‘뉴웨이브’의 주역으로 꼽힌다. 바르베라 감독은 “쉬안화는 이 시대 아시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감독 중 한 명”이라며 “홍콩 픽션 영화에 다큐멘터리적 요소를 처음으로 도입했다”고 평가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선왕조실록의 여러 사고본, 심사정의 ‘촉잔도권’과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를 한자리에서 보는 감동은 다시 만들기 어려운 기회입니다.”(박수희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학예연구관) 기관, 개인, 사찰 등 대여 기관만 34곳에 달하는 국보·보물 83건 196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21일 열리는 ‘새 보물 납시었네, 신국보보물전 2017∼2019’에서다.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이 공동 기획한 이 전시는 2017∼2019년 새롭게 지정된 국보·보물 157건 중 일부를 제외한 유물을 모았다. 주최 측은 이번 전시가 국보·보물을 공개하는 사상 최대 규모라고 강조했다. 국가 지정 문화재를 소개하는 전시 자체는 그간 단 한 차례만 열렸다. 같은 주제의 전시가 열린 것이 2017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재청이 공동 개최한 ‘선인들의 마음, 보물이 되다―신국보보물전 2014∼2015’전이다. 이전까지는 국가가 지정하는 문화재라도 개인이나 사립기관이 소장한 경우 국민이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다. ‘새 보물…’전에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한 보물 22건이 공개돼 눈길을 모은다. 간송재단 소장품에는 국보·보물 40여 건이 포함돼 있는데, 이 중 23건이 2016년 이후 지정됐다. 당시 문화재청이 간송재단과 ‘문화재 보존과 관리에 관한 업무협약’을 맺고 소장품 37점을 조사하고 보물로 지정했다. 특히 현재 심사정(1707∼1769)의 마지막 작품 ‘촉잔도권’과 이인문(1745∼?)의 ‘강산무진도’가 나란히 전시돼 눈길을 끈다. 각각 총길이가 8m, 8.5m에 이르는 두루마리 그림으로 희소성이 높다. 박수희 학예연구관은 “자체 전시를 주로 열고, 외부 대여를 하지 않는 간송미술관의 ‘촉잔도권’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산무진도’를 한자리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선 필 풍악내산총람도’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 ‘김정희 필 난맹첩’ ‘김홍도 필 마상청앵도’ ‘신윤복 필 미인도’도 전시된다. 간송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외부에서 대거 대여해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송 측의 요청으로 서화류가 3주 단위로 교체 전시되므로, 세부 일정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고려청자의 초기 형태를 볼 수 있는 ‘청자 순화 4년명 항아리’(이화여대 소장)도 외부에는 처음 내놓는다. 청자가 푸른빛이 아닌 녹갈색을 띠고 있는데, 굽 안쪽에 제작 시기, 사용처, 장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크다. 1세기 후반 제작된 ‘호랑이 모양 띠고리’와 경주 황오동 무덤에서 출토된 신라 6세기 ‘금귀걸이’는 고대 한반도의 문화를 보여준다. 온라인으로 예약한 후 22일부터 관람할 수 있다. 휴관일 없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2시간 단위로 200명이 입장한다. 9월 27일까지. 3000∼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휴관해온 경복궁을 비롯한 고궁과 왕릉이 다시 문을 연다. 문화재청은 이 시설들을 22일 재개관한다고 20일 밝혔다. 재개관하는 시설은 서울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종묘와 태·강릉 정릉 의릉 선·정릉 헌·인릉, 경기 고양 서오릉과 서삼릉, 양주 온릉, 화성 융·건릉, 파주 삼릉과 장릉, 김포 장릉, 구리 동구릉, 남양주 광릉과 홍·유릉, 사릉 그리고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다. 궁궐과 왕릉은 관람 인원에 제한이 없으나 실내 관람 시설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을 제한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하루 최대 1000명까지 관람할 수 있다. 인터넷 사전 예약제와 QR코드 기반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을 도입한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쓴 개인의 관람만 허용하며 입장에 앞서 체온을 측정한다. 관람객 동선도 겹치지 않도록 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단체관람과 교육 및 행사는 계속 중단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휴관해온 경복궁을 비롯한 고궁과 왕릉이 다시 문을 연다. 문화재청은 이들 시설을 22일 재개관한다고 20일 밝혔다. 재개관하는 시설은 경복궁 창덕궁 덕수궁 창경궁 종묘, 고양 서오릉과 서삼릉, 양주 온릉, 화성 융·건릉, 파주 삼릉과 장릉, 김포 장릉, 서울 태·강릉과 정릉, 의릉, 선·정릉, 헌·인릉, 구리 동구릉, 남양주 광릉과 홍·유릉, 사릉 그리고 국립고궁박물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다. 궁궐과 왕릉은 관람 인원에 제한이 없으나 실내 관람 시설은 동시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 수를 제한한다. 국립고궁박물관은 하루 최다 1000명까지 관람할 수 있다. 인터넷 사전 예약제와 QR코드 기반 전자출입명부 시스템을 도입한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마스크를 쓴 개인의 관람만 허용하며 입장에 앞서 체온을 측정한다. 그리고 관람객 동선도 겹치지 않도록 한 방향으로 유도한다. 단체관람과 교육 및 행사는 계속 중단한다.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인상파 작품은 지금이야 전 세계 대중의 사랑을 받지만 19세기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당시 어느 수집가는 “구입한 풍경화가 피사로 것임을 알고 처분했다. 인상파는 내 이념과 맞지 않고, 집에는 품격 있는 그림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상파가 예술가들의 힘만으로 인정받아야 했다면 그 진가가 드러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인상파는 섬세하고 열린 안목으로 가치를 알아본 사람들과 함께 성장했다. 이 책은 그중 한 사람인 미술상 앙브루아즈 볼라르(1867∼1939)의 자서전이다. 세잔의 그림을 처음 보고 “복부를 맞은 기분”을 느낀 볼라르는 화상이 되자마자 그의 개인전을 연다. 르누아르와도 가깝게 지냈으며 드가, 고갱, 모네, 마네와도 교류했다. 갓 스무 살이 된 피카소를 소개받고 그의 파리 첫 전시도 열었다. 유명한 문학가이자 파리의 아방가르드 예술의 후원자였던 거트루드 스타인의 회고록에서 볼라르는 ‘화랑 문간에 손을 짚고 서서 행인을 지옥에 보낼 것처럼 인상을 쓰고 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를 본 볼라르는 “내가 상냥하고 유쾌한 성품을 타고나지 못해 안타깝다”고 털어놓는다. 그런데 이 묘사처럼 자서전에서도 그는 자신의 개인적 삶이나 화상으로서의 일대기를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세기말적 지각변동을 겪는 파리 미술계의 풍경을 생생하고 신랄하게 늘어놓는다. 책에서는 돈과 허세로 가득한 컬렉터들에 대한 냉소가 포착된다. 유명한 컬렉터인 이작 드 카몽도는 세잔의 ‘목욕하는 여인’을 보고 대뜸 “도대체 뭘 그린 겁니까”라고 묻는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볼라르가 “목욕하는 여자들”이라고 하자 “물이라고는 한 방울도 없는데 어디서 목욕을 하는 겁니까” 하고 다시 묻는다. 이에 볼라르가 말했다. “당신은 모르는 게 없으니 ‘그림보다 바보 같은 소리를 더 많이 듣는 것도 없다’는 말을 누가 했는지 아시겠죠?” 물론 꿋꿋한 후원자도 있었다. 동료 인상파 작가들의 그림으로 가득했던 모네의 집 풍경은 감동적이다. 모네의 소장품을 본 볼라르는 “이 정도 수준의 소장품은 저명한 수집가에게서도 보기 어렵다”고 감탄한다. 그러자 모네는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사지 않으려 하는 그림만 가져왔소. 여기 그림 대부분은 화랑에서 팔리지 않고 굴러다니던 것들이지. 이들을 구입한 것은 대중의 무관심에 대한 항변이라오.” 최근에도 단기 투자용으로만 미술품에 관심을 쏟는 흐름이 있다. 이 책은 예술작품의 단단한 가치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책 말미에 볼라르는 화상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청년의 편지에 답장을 쓴다. “나는 돈을 버는 비결은 알지 못합니다. 미술 애호가들이 화랑에 오면 나는 졸고 있었지요. 손님들은 내 잠꼬대를 거절로 오해하고 금액을 더 높이 불렀고요. 정신을 차려보면 값이 올라가 있더군요. 은총이 있기를 빕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는 내년 여성 작가로만 구성된 기획전 ‘Women in Abstraction’을 연다. 남성 중심의 미술사에서 저평가된 여성의 역할을 재조명하겠다는 취지다. 전 세계 미술가 112명 중 최욱경(1940∼1985)도 이 전시에 포함됐다. 한국 미술의 ‘딥 컷(Deep Cut)’, 숨은 보석인 최욱경의 작품세계를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하찮은 꽃 이파리나 새의 깃털. 보잘것없는 이 대상들이 나에겐 모두 흥미롭고 신비해 보인다. …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의 비상에서 내가 환희와 기쁨을 맛보고 사물의 이입을 연상하며, 움직임의 연결에서 느끼는 자유스러움. 그것을 나는 환희라고 말하고 싶다.” 최욱경은 흔히 ‘요절한 천재’ ‘엘리트 코스를 밟은 화가’로 불린다. 교학도서주식회사를 창립한 최상윤과 조하진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0세 때 김기창(1914∼2001) 박래현(1920∼1976) 부부의 화실에서 첫 미술 교육을 받는다. 서울예고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크랜브룩대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작품과 기록 속 그는 엘리트보다 고독한 이방인에 가깝다. 자화상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1966년)에서 자신을 ‘세 번째 눈’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 그는 스스로를 ‘성난 여자’에 비유하기도 했다. 미국에서 그와 가깝게 지낸 작가 마이클 애커스는 “최욱경은 자신이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성에 맞지 않는다고 자주 농담했다”고 회고한다. 1980년대 글에서 최욱경은 “남성 작가는 ‘화가 ○○○’이면 되는데 여성 작가는 왜 앞에 ‘여자’를 붙여야 하나”라거나 “여자로서의 감성과 체험에서 걸러져 나온 표상을 직접적으로 구사한 시각적 용어로 표현하고 싶다”라고 밝혔다. 자신의 작업실에 그는 ‘무무당(無無堂)’이란 이름을 붙였다. 느껴지는 허무를 그는 몸의 감각으로 극복하고자 몸부림쳤다. 1985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레 생을 마감했지만, 고독할지언정 스스로에게 솔직했던 그의 이야기는 이제야 걸맞은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최욱경 작가 (1940∼1985)▽1940년 서울 출생 ▽1963년 서울대 회화과 졸업▽1968년 미국 프랭클린 피어슨대 조교수▽1971년 서울 신세계갤러리 개인전▽1977년 미국 뉴멕시코 로즈웰미술관 개인전▽1985년 별세▽1987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30대 중반부터 여성화가들 이름 앞에 붙는 ‘규수’ ‘여류’라는 호칭에 조금씩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 남성의 경우는 ‘화가 ○○○’이면 되는데 여성작가는 꼭 여자를 붙이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1983년 7월 2일 일간지 칼럼 중)화가 최욱경(1940~1985)은 1966년 ‘나는 세 개의 눈을 가졌다’는 글귀가 적힌 작품을 내놨다. 캔버스 위에 종이를 콜라주로 붙이고 잉크로 그린 흑백 작품이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3 EYES I DO HAVE’라고 적혀 있고 상단에는 조그마한 검은색 점 세 개가 나란히 박혀 있다. 이 점이 눈이라면 아래쪽 줄무늬는 옷과 일그러진 몸일 것이다. 왼쪽에는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쓴 듯한 ‘WOOK’ ‘KYUNG’ ‘ROOK’이 적혀 있다. 그림 속 형체는 그 자신인 것처럼 보인다. 최욱경이 가진 세 개의 눈은 무엇일까. 세 개의 눈을 가진 성난 여자미술사가 진휘연은 이 작품을 두고 “그가 미국에서 외국인 여성이라는 특별한 정체성에 대해 느끼고 관찰하는 과정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서울에서 태어난 최욱경은 1963년 미국으로 유학한 뒤 평생 이방인처럼 살았다. 아시아인이자 여성으로. 한국에서도 낯선 ‘미국 스타일’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여겨졌다.그에겐 ‘요절한 천재’ ‘엘리트 코스를 밟은 화가’란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교학도서주식회사를 창립한 최상윤과 조하진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10세 때 김기창(1914~2001) 박래현(1920~1976) 부부의 화실에서 첫 미술 교육을 받는다. 서울예고와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크랜브룩대학원을 다녔다. 그러나 작품과 기록 속 그의 모습은 엘리트보다는 고독한 이방인에 가깝다. 남들이 보지 못한 부조리를 포착하는 ‘세 번째 눈’을 가진 사람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처럼 말이다.최욱경이 미 뉴멕시코 로스웰미술관 레지던시에서 작업할 무렵. 친구였던 작가 마이클 애커스는 그가 한국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성에 맞지 않는다며 자주 농담을 했다고 회고한다.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한국에선 성난 여자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1966년 ‘성난 여자’를 그린 최욱경은 1971년 이후 국내에 머무를 때도 여성으로서의 주체적 인식에 대해 일간지 기고나 대담을 통해 분명히 밝혀 나갔다.“이(남존여비) 관습을 고쳐가는 방법은 여자 자신에게 있다고 봅니다. 여성다움을 잃지 않고 자기의 똑똑함을 내세울 수 있어야 어디서든 남녀가 동등한 위치에 서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권 신장은 헌법을 고쳐야만 되는 것이 아니고 해결점은 우리 여성 자신에게 있습니다.”(최욱경 조미미 박미성 대담, 1979년 2월) “아직은 유아기적인 상태지만 여자로서의 감성과 체험에서 걸러져 나온, 여성의 의식에 관련된 표상을 창출시켜 직접적으로 구사한 시각적 용어로 표현, 전달하고 싶다.”(‘공간’ 1982년 5월)‘색채 추상’만으론 담을 수 없는 이야기그에게 붙는 또 다른 수식은 ‘추상화가’. 특히 추상표현주의 영향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폴록과 로스코, 고르키의 추상이 감정과 무의식을 표현하는 데서 출발했듯 최욱경도 모더니즘적인 추상만을 위해 작품을 전개하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방식이 회화라고 말한다.“나는 내 인생에 대해 끝없는 호기심과 기대를 갖고 그림을 통해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한다. 내 그림들은 그러한 추구의 결실이다. 나는 가끔 그림이 창조되는 과정이 내 생활과 꼭 같다고 느낀다.”(여성동아 1982년 3월)또 그가 미국에 머무르기 시작한 1960년대는 반전(反戰)운동과 페미니즘, 민권운동 등 다양한 욕망이 충돌했던 시기다. 그는 그림을 위한 그림에 갇히지 않고, 시대적 분위기를 그림 속에 담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의 승자는 누구인가?’(1968) 속 인물은 젊은 나이에 사망한 친오빠를 상징한다.‘무무당’과 ‘생의 환희’1960년대 추상 회화에서 최욱경은 강렬한 색채 대비를 통해 공간의 활성화를 시도한다. 그런데 1970년대 말에 이르면 그림 속 형태의 질감이 좀 더 살아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흐드러진 꽃이나 깃털 같은 형태다. 1977년 대작 ‘환희’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자연이나 사물에서 내가 순간적으로 느끼는 대상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마음속에서 화초처럼 자라기 마련이다. 나는 길을 걷다가도 하찮은 꽃 이파리나 새 깃털, 부서진 나비 날개 같은 것들을 줍는다. 보잘것없는 이 대상들이 나에겐 모두 흥미롭고 신비해 보일 때가 많다. … 가령 하늘을 가로지르는 새의 비상에서 내가 환희와 기쁨을 맛보고 사물의 이입을 연상하며 움직임의 연결에서 느끼는 자유스러움. 그것을 나는 환희라고 말하고 싶다.”(여성동아 1980년 3월호) 이 무렵 그는 서울 여의도 아파트를 작업실 겸 집으로 쓰면서 그곳을 ‘무무당’(無無堂)이라 이름 붙였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으로는 좀처럼 규정할 수 없는 자신의 정체성,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허무가 느껴진다. 허무를 극복하려는 몸부림은 바로 몸으로 느끼는 감각이었다. 꽃잎과 새의 깃털, 그리고 한국의 곳곳을 여행하며 보았던 산과 바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러나 1985년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짧은 생을 마감했다.1972년 최욱경은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을 발간했다. 시집 속 시 ‘나의 이름은’에서 그는 자신을 ‘이름 없는 아이’라 했다. 그러나 고독할지언정 스스로에게 솔직했던 그의 이야기는 조금씩 걸맞은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 한 때에/나의 이름은/ … 무지개 꿈 쫓다가/‘길 잃은 아이’였습니다./결국은/생활이란 굴레에서/아주 조그마한 채/이름마저 잊어버린 ‘이름 없는 아이’랍니다./나의 이름은/‘이름 없는 아이’랍니다.”최욱경 작가(1940~1985)△1940년 서울 출생△1963년 서울대 회화과 졸업△1968년 미국 프랭클린 피어슨대 조교수△1971년 서울 신세계갤러리 개인전△1977년 미국 뉴멕시코 로스웰미술관 개인전△1985년 별세△1987년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김민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