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침에 미얀마 전복…軍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은 누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일 11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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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로 아웅산 수지 국가고문이 이끌던 민주 정부가 하루 아침에 뒤집어졌다. 수지 고문을 감금하고 미얀마의 입법·사법·행정에 관한 전권을 거머쥔 군부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64)에도 관심이 쏠린다.

BBC 등에 따르면 그는 미얀마 군부인 ‘탓마도’ 내부에서 조용히, 꾸준히 승진해 온 인물로 최근 10년 간 총사령관을 지내며 정치적인 영향력을 상당히 발휘해왔다. 미얀마가 민주화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군부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성공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미얀마 내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 학살 사건의 책임자로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AP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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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수 끝 국군사관학교 입학 뒤엔 승진가도
평생의 커리어를 군부 요직에서 보낸 흘라잉은 간부 후보생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미얀마의 국립종합대학인 양곤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3수 끝에 1974년 국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조용한 보병이었던 흘라잉은 정기적 승진으로 계급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2009년 중장으로 제2특수부대(Bureau of Special Operations-2) 사령관이 된다. 이 역할을 맡으면서 흘라잉은 북동 미얀마 작전을 총괄했으며, 이 때 수만 명의 소수 민족 난민들은 중국 국경을 따라 동쪽 샨 지역과 코캉 지역으로 밀려났다.

이 과정에서 흘라잉의 부대원들이 지역에서 살인과 강간을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흘라잉의 승진 가도엔 전혀 영향이 없었다. 2010년 8월 그는 미얀마 군부의 합동참모본부장이 된다.

그리고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2011년 3월, 흘라잉은 자신의 상급자 장군 여러 명을 제치고 오랫동안 집권했던 탄 슈웨의 뒤를 이어 최고사령관이 됐다.

민 아웅 흘라잉이 최고사령관이 됐을 때, 미얀마의 블로거 겸 작가 흘라 우(Hla Oo)는 자신이 흘라잉과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며 그를 “잔인한 미얀마 군의 전투로 단련돤 전사임과 동시에 진지한 학자이자 신사”라고 표현했다.

(AP Pho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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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청소 혐의’ UN 공개 비판에 페이스북 계정도 삭제 당해
흘라잉이 군부 권력을 물려받은 2011년은 미얀마 정부가 수년 간의 군부 통치를 벗어나 민주주의 국가로 전환하는 시기였다. 흘라잉은 군부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힘을 쏟았다. 흘라잉의 정치적 영향력과 소셜 미디어에서 존재감은 군부의 지원을 받는 정당(USDP)가 집권과 함께 커졌다.

2016년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정당(NLD)가 집권한 다음, 흘라잉은 태세를 전환해 수치 여사와 함께 공식 행사에 함께 모습을 나타내며 우호적인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때 흘라잉은 ‘인종청소’(genocide)를 자행했다는 이유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았다. 2016, 2017년. 군부는 로힝야 소수 민족에 대한 탄압을 더욱 강화한다. 북부 라크힌주에서 심각해진 탄압으로 인해 로힝야 무슬림족 다수가 미얀마를 떠나야 했다.

2018년 8월 UN 인권 의원회는 “ 아웅 흘라잉 총 사령관을 포함한 미얀마 군부의 고위 장군들은 북부 라크힌주의 인종 차별에 관한 수사와 처벌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라크힌, 카친, 샨주에서 자행된 전쟁 범죄에 대해서도 수사 및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UN인권위원회의 성명에 이어 페이스북은 흘라잉의 계정을 삭제했다. 페이스북은 “미얀마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를 야기하고 용인한 인물에 대해 취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영국도 흘라잉의 인종 청소를 비판하며 2019, 2020년 그에 대해 제재를 가했다.

○ 선거 패배 후, “가치 없는 헌법은 폐기해야”
2020년 11월 총선에서 NLD가 압승을 거두며 분위기는 반전됐다. 미얀마 군부와 USDP는 지속적으로 선거 결과를 부정했다.

USDP는 부정선거 의혹을 계속해서 제기했으나, 선거관리위원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다 2월 1일 의회에서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기에 이른 것이다.

선거 결과를 두고 정부와 군부가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지며 쿠데타의 조짐이 나타났다. 1월 27일 흘라잉은 “헌법을 지킬 가치가 없다면 폐기해야 마땅하다”고 경고하며 1962년과 1988년 쿠데타를 언급했다. 그러다 1월 30일, 흘라잉 측은 ‘헌법 폐기’라는 말은 언론이 총사령관의 말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2월 1일, 군부는 아웅산 수지 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 여러 정부 고위 인사를 구금하고 계엄령을 선포했다.

민 아웅 흘라잉은 이 기간 동안 총사령관으로서 모든 권력을 쥐게 되었다. 그는 즉각 선거 부정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또 조사가 끝나면 새로운 선거를 치르겠다고 밝혔다. 흘라잉은 올해 7월 65세 정년이 되어 퇴임할 예정이었으나, 쿠데타를 통해 1년 혹은 그 이상의 권력을 연장하게 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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