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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본 등 20개국이 남북 대화를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동시에 유엔 결의를 넘어선 초강경 대북제재에 동참하겠다는 뜻도 분명히 했다. 남북 대화가 무르익는 시점에 국제사회에선 ‘최대한의 압박’ 기조를 확인하는 목소리가 나온 셈이다. 16일(현지 시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한반도 안보와 안정에 관한 외교장관회의’에선 “남북 대화가 긴장 완화로 이어질 것을 희망한다”는 내용의 공동 의장성명을 채택했다. 참가국 장관들은 또 “외교적 해법이 필수적이며 (실현) 가능하다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밴쿠버 회의에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18개국과 한국, 일본 등 20개국의 장관이 참석했다. 하지만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협상의 길을 선택하지 않으면 스스로 (군사) 옵션의 방아쇠를 당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틸러슨 장관은 “북한이 우리의 의지를 이간질시키도록 놔두지 않겠다”고도 했다. 중국이 주장하는 북핵 문제 해법인 쌍중단(북한의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동시 중단)에 대해선 “합법적, 방어적인 군사훈련을 북한의 불법 행동과 동일한 수준에 놓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북-미 대화에 대해서도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밝혔다. 캐나다 외교장관과 가진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아직 스스로 신뢰할 만한 협상 상대임을 증명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날 참가국 장관들은 대북제재와 관련해 △북한의 밀수 방지를 위한 해상차단 작전 협력 △새로운 위협에 대한 새로운 대북 제재 △중국과 러시아에 제재 이행 촉구 등에 합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길 바란다는 장관들의 의지가 확인돼 유익했다”고 평가했다. 강 장관은 환영사에서 “우리는 평창 올림픽을 전후해 대북 관여 노력을 경주하며 비핵화 목표도 견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의 종료 후엔 “제재와 압박은 외교적 수단이지 북한에 벌을 주기 위한 게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재와 대화는 꼭 하나를 골라야 하는 충돌하는 선택지가 아니고 ‘투 트랙’으로 병행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일부 참석자들은 강 장관에게 최근 남북 대화와 관련한 북한의 의도를 거론하며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소식통은 “일부 장관은 ‘한국이 또 북한에 속는 것 아니냐’며 직설적으로 얘기한 걸로 안다”고 전했다. 한편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중국과 러시아를 배제한 채 열린 이번 회의에 대해 독설을 날렸다. 왕 부장은 17일(현지 시간) 아프리카 4개국 순방을 마친 뒤 상투메프린시페에서 중국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눈을 크게 뜨고 누가 한반도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는 추동자인지, 누가 정세를 다시 긴장으로 돌리려는 파괴자가 되려는지 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남북은 17일 북한 대표단이 경의선 육로를 이용해 남측으로 온다는 데 합의했다. 북측이 대표단과 선수단, 응원단, 태권도 시범단, 기자단 등이 모두 서해 경의선 육로를 통해 이동하는 안을 제시했고 우리 정부가 수용한 것이다. 경의선 육로는 2000년 경의선 도로가 연결되고 2006년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가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개성공단 개발 과정에서부터 차량으로 남북을 오가면서 주목받은 경로다. 경의선 육로는 2015년 연인원 12만9804명과 9만9518대의 차량이 이용하는 등 남북교류의 핵심 축 역할을 했지만 2016년 2월 이후 완전 차단됐다. 개성공단이 전면 가동 중단되면서 통행도 중단된 것. 하지만 북측이 경의선 육로로 방남하기로 하면서 2년 만에 다시 육로가 열리게 됐다. 북측이 경의선 육로를 이용하기로 하면서 방남 경로와 관련한 대북제재 위반 논란도 다소 잠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각에선 북한 대표단 이동을 위해 남측이 전세기나 유람선 등을 제공할 경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위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경의선 육로는 2007년 10월 노무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하면서 이용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 부부가 차에서 내려 군사분계선(MDL)을 도보로 넘어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2주가 2년 같았다.” 16일 정부 당국자는 최근 진행된 남북 대화 국면을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1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평창 참가’ 신년사 이후 내달려온 남북 대화 국면이 그만큼 급박했다는 것. 하지만 한반도의 근본적 긴장완화를 위한 고위급 대표단의 평창행 등 대화의 ‘본게임’은 이제부터라는 지적이 나온다. ○ 2년여 만의 대화, 물꼬는 텄지만 9일 고위급 회담은 2년 1개월 만에 열렸지만 공동보도문을 내며 관계 진전의 첫발을 내디뎠다. △군사적 긴장 완화 △한반도 문제에서 대화로 해결 등 합의 내용도 발표했다. 남북은 3일 판문점 연락채널에 이어 9일 서해 군 통신선을 복원했다. 북측은 고위급을 포함해 역대 최대 규모의 대표단을 보낼 의사를 밝히고, 그 ‘선봉’에 삼지연 관현악단 140여 명을 보내기로 했다. 평창을 남북 축제의 장으로 만들자는 정부 기대에 화답하는 동시에 김정은 체제 선전의 장으로 삼으려는 의도도 감추지 않고 있는 것. 물론 이런 흐름이 ‘평창 모멘텀’에 속도를 더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이 무리하게 체제 선동 시도만 하지 않는다면 일단 공연 자체는 남북 화해 무드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럼에도 아직 북한의 속내는 분명치 않다. 정부가 요구한 군사회담 개최는 합의됐지만 일정이나 의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일각에선 김정은 신년사 이후 북한의 페이스대로 지나치게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우리와 국제사회가 북한에 요구하는 사항은 회담 기간 중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놓고선 첨예한 입장 차만 확인했다. 고위급 회담 북측 수석대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9일 “(비핵화 여론이 조성되는 등) 오도되는 소리가 나오면 좋지 않은 모양새를 가져온다”고 쏘아붙였다. 이산가족 상봉 문제도 마찬가지. 북한은 탈북 여종업원의 북송 등을 조건으로 내걸어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평창 너머’로 의제 넓혀야 일각에선 북한이 평창 올림픽 때 여종업원 문제를 이슈화해 역공할 가능성까지 점친다. 예술단이나 참관단 속에 여종업원 가족 몇 명을 포함시켜 한국에 내려와 “내 딸이 보고 싶다”는 식의 퍼포먼스를 통해 여론전을 펼칠 수도 있다는 것.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정부가 지나치게 평창 올림픽에 매달렸다는 지적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협상의 3박자인 일정, 의제, 발언권 모두 북한에 내줬다. 이제라도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북은 17일 차관급 실무회담에서 북한의 올림픽 참가와 관련한 제반 사항을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개막식 공동입장, 단일팀 구성, 한반도기 사용 등을 놓고 논의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20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회의에 남북한의 합의안을 내놓기 위해서다. 북측의 평창 참가에 정부가 ‘편의 제공’을 약속한 만큼 대북 제재 위반 논란을 피할 지원책 마련을 놓고도 논의가 오갈 수 있다. 북한은 협상에 나서면서도 대남 공세의 수위를 낮추지 않고 있다.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16일 논평에서 “진정으로 북남관계 개선을 바라고 조선반도의 평화적 환경 마련을 위해 노력할 용의가 있다면 ‘키리졸브’ ‘독수리’ 연합 군사연습을 연기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중지해야 한다”고 엄포를 놨다. 조선중앙통신은 15일 “남조선 당국이 여론 관리를 바로 못하고 입 건사(간수)를 잘못하다가는 잔칫상이 제상으로 될 수 있다”고 협박했다.신진우 niceshin@donga.com·주성하·신나리 기자}

15일 남북 실무접촉을 위해 판문점 통일각 내 회담장으로 들어선 북측 인사 중 가장 관심을 모은 인물은 현송월 관현악단 단장이었다. 김정은의 옛 애인 중 한 명으로 알려진 현송월은 특히 ‘북한판 걸그룹’으로 불리는 모란봉악단 단장까지 겸해 우리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런데 이날 현송월 못지않게 그가 손에 든 녹색 클러치 백이 눈길을 끌었다. 이 백을 꼭 쥐고 온 현송월은 백에서 검은색 수첩을 꺼내 테이블에 놓기도 했다. 인터넷에선 현송월이 들었던 백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의 악어가죽 제품(사진)과 비슷하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진품일 경우 판매 가격이 2500만 원에 달한다. 논란이 일자 에르메스코리아 관계자는 일단 “현재 시중에 특정 디자인으로 나와 있는 제품 중에서 현 단장이 들고 나온 것과 같은 디자인이 없다. 영상을 돌려봤지만 우리 제품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하지만 현송월은 과거 공연을 위해 중국을 찾았을 당시 역시 프랑스 명품인 샤넬 백을 들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어 에르메스는 아니더라도 다른 명품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일각에선 서방사회에서 대북 수출을 금지한 사치품목이 어떻게 북한에 들어갔는지를 놓고서도 궁금증이 일고 있다. 지난해 말 유럽연합(EU)은 핸드백 등 가죽 제품을 포함해 22개 항목의 대북 금수 사치품목을 정한 자체 대북제재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은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엔 싱가포르의 한 무역회사가 북한 노동당 외화벌이 기관인 ‘노동당 39호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유엔이 대북 금수 조치를 내린 사치품을 북한에서 판매해 왔다는 주장도 제기됐다.신진우 niceshin@donga.com·손가인 기자}

북한이 15일 남북 실무접촉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에 ‘삼지연 관현악단’ 140여 명으로 구성된 예술단을 파견키로 하면서 이른바 ‘평창 모멘텀’이 다시 무르익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선수단 구성보다 예술단 파견을 먼저 결정하는 등 이번 올림픽을 김정은 체제를 선전하고 ‘핵무력’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기 위한 장으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도 드러내고 있다. ○ 예술단 육로행 대표단 전체로 이어지나 이날 접촉 결과는 ‘대규모 예술단을 육로로 파견한다’로 압축된다. 북한이 먼저 육로행을 밝혔다는 게 정부 대표단의 설명이다. 북측은 판문점을 경유해 서울과 평창까지 육로로 이동하는 방안을 공식적으로 제기했고, 수송 수단 등 편의를 제공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는 확답하지 않았지만 이는 북한 평창 겨울올림픽 대표단의 예상 이동 루트를 시사하는 대목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파주세관 등 관세청이 남북 고위급회담 제안 당시 육로행을 우선순위에 두고 사전 검토했던 사실이 확인됐고, 인력 지원 방안 등이 세관에서 추가로 논의된 것으로 알려져 북측의 요청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관계자도 “아직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140명이 넘는 대규모 인력이 내려오기에는 육로가 가장 현실적이라는 판단에는 별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 배후에서 원격조종하는 북한 지도부 남북 실무접촉 결과가 담긴 공동보도문은 접촉 시작 후 10시간도 안돼 비교적 빨리 공개됐다. 30분짜리 단타 회담을 거듭했던 오전 회의 시간은 공개된 반면 오후 회의는 몇 차례를 했는지, 언제 시작해서 끝났는지 알 수 없는 ‘깜깜이 진행’ 속에서 이뤄져 궁금증을 낳았다. 복수의 당국자들은 “실무 내용을 그동안 판문점 채널을 통해 팩스로 주고받았고 문서를 통해 비교적 의견 접근이 많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북측이 관현악단 실무자들을 앞세워 짧게 회의를 진행한 것은 뒤에서 지도부가 원격조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사전 답사를 보내고 문서로 갈음하겠다는 것 역시 불필요한 오해 소지를 줄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초반 환담은 훈훈했다. 양측 수석대표인 권혁봉 북한 문화성 예술공연운영국 국장과 이우성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악수를 한 뒤 6일 전 고위급회담처럼 날씨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권 국장이 “지금 대한(大寒)이 가까워 오는데 날씨가 아주 훈훈하다. 올해 봄이 아주 빨리 오려나 보다. 우리 예술단이 남측에 나가는 계절로 보면 입춘이 지나고 봄의 열기가 아주 환할 때 좋은 계절이다”라고 건네자 이 실장도 “며칠 전부터 계속 추웠는데 오늘 회담도 좋은 성과가 날 것으로 예상된다. 날씨가 도와주는 것 같다”고 화답했다. ○ 선수단, 이산가족 등 향후 난제 적지 않아 이젠 17일 차관급 회담에서 개막식 공동 입장과 단일팀 구성이 어떤 식으로 결론 날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이번 회담에선 북한 선수단의 방한에 따른 이동 방법과 수송, 숙박, 안전 등이 전반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남북 동시 입장이 성사된다면 한반도기가 2007년 창춘 동계아시아경기 이후 11년 만에 등장할지도 관심사다. 개막식에 입장할 남북 선수단 규모도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다. 겨울올림픽에서 유일하게 남북이 공동 입장했던 토리노 올림픽 때는 한반도기를 앞세운 남북 선수단 56명(남측 44명, 북측 12명)이 함께 들어섰다. 하지만 평창 대회에선 남측이 200명이 넘는 역대 최대 규모를 파견하는 반면 북한은 10명 안팎으로 꾸려 어느 때보다 균형이 맞지 않는다. 실무접촉의 첫 단추는 끼웠지만 올림픽 의제 외 남북관계 개선 관련 문제는 어떻게 논의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앞서 접점을 찾지 못한 이산가족 상봉 문제는 계속 꼬이고 있다. 북한은 9일 고위급회담에서도 지난해부터 주장해 온 탈북 식당 여종업원들의 북송을 요구했다는 점이 알려졌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 기자}

15일 판문점 내 북측 회담 장소인 통일각. 남북 대표단이 평창 겨울올림픽에 파견될 북측 예술단 관련 사안들을 논의하기 위해 마주 앉은 가운데 예고되지 않은 한 인물이 회담장에 들어섰다. 북측이 공연 전문가라고만 언급한 이 관계자는 수시로 우리 측에 의견을 개진했다. 북한은 남북 대표단을 4 대 4로 하기로 한 당초 약속을 뒤집고 애초부터 회담장 대형 탁자 양편에 의자를 5개씩 놓아 총 10자리를 마련했다. 북측은 ‘준비된 5명’이 앉은 반면, 우리 측은 애초 대표단인 4명만 나서고 한 자리는 비워뒀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처음부터 우리에게 알리지 않고 5명이 나설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당초 관현악단 지휘자 윤범주를 이번 실무접촉 대표로 통보했지만 전날 돌연 안정호 예술단 무대감독으로 바꿔 한국에 통보했다. 안정호는 전자악단의 대가이자 모란봉악단의 부실장. 이에 일각에선 ‘북한이 전자악단으로 승부를 보려는 것’, ‘남쪽에 모란봉악단만 보내려는 것’ 등의 해석이 나왔다. 한편으론 북한이 의도적으로 판을 바꿔 역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도 있었다. 공연 전문가로 기습 참석한 이 관계자가 이번 회담에서 북측 대표단을 이끄는 ‘실세’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윤범주의 경우 북한군 대남심리전 부대인 ‘적군와해공작국(적공국)’에서 10년 동안 장교로 근무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적공국은 대남방송 등 심리전에 특화된 부대다. 이에 이 관계자가 결국 불참한 윤범주를 대신해 북측 대표단의 ‘지휘’를 맡았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15일 북한 예술단 파견 협의를 위한 남북 실무접촉은 판문점 ‘통일각’에서 열린다. 남북은 그동안 관례에 따라 한 번씩 오가며 회담을 진행했다.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이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열린 만큼 이번엔 북측 통일각에서 열리는 것. 통일각은 공동경비구역(JSA) 북쪽 지역에 세워진 지상 1층, 지하 1층의 전체 규모 1500m²인 건물이다. ‘통일각’이란 이름은 1985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2012년 내부 공사 도중 화재가 났을 땐 개성공단에 있던 소방차가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한국은 9일 고위급 회담에선 ‘홈그라운드’ 이점을 누렸다. 평화의집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북측 대표단의 미세한 표정 변화 하나까지 남북회담본부 상황실과 청와대에서 실시간으로 지켜봤다. 15일엔 상황이 역전된다. 북한이 통일각 CCTV를 통해 그 이점을 고스란히 챙긴다. 우리는 남측 상황실에서 회담장 대화만 음성으로 확인해 실시간으로 서울에 전송한다. 정부 소식통은 “통일각 CCTV의 화질이나 기능도 남측 못지않은 것으로 안다”고 했다. 한편 조선중앙통신은 14일 문재인 대통령이 나흘 전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대화 시작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이 크다’고 언급한 것 등을 거론하며 “화해 국면에 찬물을 끼얹는 온당치 못한 망언” “(평창에 참가할) 대표단을 태운 열차나 버스도 아직 평양에 있다”는 등 비난과 위협의 목소리를 높였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적들이 10년, 100년을 제재한다고 하여도 뚫지 못할 난관이 없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새해 첫 공개 활동으로 국가과학원을 찾아 이렇게 밝혔다고 노동신문이 12일 보도했다. 김정은이 직접 연구자들을 찾아 기술 발전을 통한 경제성장과 대북제재 돌파를 새해 벽두부터 주문한 셈이다. 이날 혁명사적관과 과학전시관 등을 둘러본 김정은은 “조선혁명이 모진 시련과 난관을 과감히 박차고 승승장구하고 있다”며 “우리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가 비상히 강화될 수 있는 비결의 하나가 바로 과학기술에 있다”고 말했다. “자립적 민족경제의 토대가 있고 우리가 육성한 든든한 과학기술 역량과 그들의 명석한 두뇌가 있다”며 ‘제재 돌파’를 언급했다. 김정은의 이 같은 언급은 새해 벽두부터 남북회담을 갖는 등 적극적인 대화에 나선 게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뒷받침하고 있다. 김정은이 새해 첫 공개 활동으로 연구소를 찾은 것은 처음이다. 집권 이듬해인 2012년 ‘근위서울 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을 찾은 뒤 김정은은 군과 민생시설을 번갈아 찾았다. 지난해 1월 5일 가방공장을 시찰한 것을 감안하면 이번엔 군 시설 차례였지만 ‘관례’를 깨고 군 시설을 찾지 않은 것. 한 대북 전문가는 “대화 의지를 보인 김정은이 바로 군 시설을 찾지 않으며 수위 조절에 나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일성 집권 때인 1952년 창립된 국가과학원은 1실, 21국, 21위원회의 기술행정부서가 있고 은정분원, 7개의 연구분원, 함흥분원, 천문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주로 순수과학 연구에 집중하는 곳으로, 직접 핵과 미사일 개발에 나서는 국방과학원과는 차이가 있다. 김정은은 지난해 8월 국방과학원을 찾았지만 국가과학원은 2014년 10월 이후 첫 방문이다. 이번에 국가과학원을 찾은 것은 대화 국면 속에서도 기존의 ‘병진노선(핵과 경제발전)’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은 “훌륭한 과학 연구 성과들을 이룩하며 그것을 (경제) 현실에 제때에 도입하여야 한다”며 특히 기술혁신을 통한 경제성장을 강하게 독려했다. 이날 김정은 시찰엔 박태성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최동명 당 중앙위 부장, 조용원 당 중앙위 부부장이 동행했다. 남북 대화가 시작됐고, 더 나아가 북-미 대화 가능성까지 점쳐지지만 북한이 뒤로는 꾸준히 추가 도발을 준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위해 풍계리 핵실험장의 서쪽 갱도에서 굴착활동에 속도를 더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LANL)의 핵실험 전문가 프랭크 파비안 등은 11일(현지 시간) 북한 전문매체 38노스 기고문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촬영한 상업용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작년 12월 내내 서쪽 갱도 입구 주변에서 광차(석탄 등을 실어나르는 차)와 인력들이 목격됐고, 파낸 흙을 쌓아둔 흙더미가 현저하게 늘어났다”고 밝혔다.● 정부, 北에 15일 평창실무회담 제안 정부는 12일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를 논의할 실무회담을 15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집에서 갖자고 북측에 제안했다. 천해성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안문현 국무총리실 심의관, 김기홍 평창 올림픽 및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기획사무차장이 참가한 3 대 3 회담을 제안했다. 황인찬 hic@donga.com·신진우 기자}

10일(현지 시간) 오후 미국 백악관. 올해 첫 국무회의를 주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은 엄청난 성과를 낸 해였다”고 운을 뗐다. 규제혁신과 세제개혁, 낮은 실업률 등 지난해 성과를 언급하면서도 팔짱을 끼고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날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로 화제를 넘기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로소 팔짱을 풀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문 대통령이 우리(미국)가 북한에 해온 것에 대해 매우(very) 감사해했다”고 두 차례에 걸쳐 또박또박 힘줘 말했다. 문 대통령과의 대화에 대해 “매우매우 좋았다”고 한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우리의 태도(attitude)가 없었다면 그것(남북 대화)은 결코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대화 공로 부각 나선 트럼프 한미 정상 통화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첫 번째 해외 이슈였다.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와 남북회담 재개로 무르익고 있는 대화 분위기를 자신의 외교적 성과로 가장 먼저 앞세운 셈이다. 그러면서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 상황이) 어디로 이를지 누가 알겠나. 남북 대화가 우리나라(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3시간이 지난 뒤 에르나 솔베르그 노르웨이 총리와의 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선 발언의 강도가 더욱 세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과의 전쟁은 없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없다(No). 나는 전쟁을 예상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지난해까지 대북 선제타격 가능성에 대한 질문엔 “나는 미래 일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지켜보자”고 해왔던 트럼프다. 실제로 8일 전 김정은의 신년사에 “내 핵 단추는 (김정은의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하며 실제로 작동 가능하다”고 트위터를 날렸던 것과는 확연히 달라진 태도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달라진 태도는 북핵 문제를 둘러싼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한반도 국면 전환이 자신의 공로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김정은과 거친 말 폭탄을 주고받는 자신의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이 북한을 남북 회담과 평창 올림픽 참가로 이끌어 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두 차례의 전화 통화를 통해 “남북 대화로 북한을 비핵화 협상으로 이끌겠다”고 설득하며 미국 조야의 우려를 불식시킨 것도 이런 언급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워싱턴의 외교소식통은 “미국의 입장이 일단 대화로 큰 흐름이 바뀐 건 분명하다. 남북 대화를 지켜보면서 북한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대화를 시작할지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눈에 띄게 트럼프와 주파수 맞추는 문 대통령 문 대통령도 미국과 한층 거리를 좁히며 트럼프 대통령과 주파수를 맞추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 대화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기여가 어느 정도인지 말해 달라’는 워싱턴포스트 기자의 질문에 “공이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한미 정상 통화에선 남북 고위급 회담의 성과가 “트럼프 대통령의 확고한 원칙과 협력 덕분”이라고 했다. 하루에만 두 차례 공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공로를 치켜세운 것이다. 문 대통령이 미국의 공로를 부각하면서 한미 공조를 더욱 강조하고 나선 것은 미국의 확고한 지지를 끌어내야 북핵 외교의 입지를 넓힐 수 있다고 본 데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4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남북 대화 성사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며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연기할 뜻을 밝혀 달라”고 기습 제안해 트럼프 대통령의 약속을 받아내기도 했다. 외교소식통은 “군 당국 차원에서 논의되던 훈련 연기를 정상 차원의 발표로 이끌어낸 것이 북한의 조속한 고위급 회담 수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북한과의 대화 가능성을 내비치면서 북-미 접촉이 어떻게 구체화할지도 관심이다. 가장 유력한 창구는 뉴욕 채널이다. 뉴욕에 있는 유엔 본부를 중심으로 만나는 이 채널을 통해 양국은 당국 간 직접 접촉이 가능하다. 정부 관계자는 “북-미는 지난해 말부터 이미 뉴욕 채널로 의사를 교환해온 걸로 안다. 1, 2주 안에 어떤 식으로든 자리를 함께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에 북-미 고위급 접촉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평창에 파견하기로 한 가운데 북한 역시 고위급 대표단에 ‘2인자’인 최룡해 당 조직지도부장을 파견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진우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김정은에 이은 북한의 2인자로 통하는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사진)이 당 조직지도부장을 맡고 있다고 정부가 11일 공식 확인했다. 통일부는 이날 배포한 ‘2018 북한 권력기구도 주요 변경사항’에서 공석이던 당 조직지도부장에 최룡해가 임명됐다고 밝혔다. 최룡해는 지난해 10월 열린 노동당 제7기 2차 전원회의에서 당 전문부서의 부장으로 임명됐지만, 보직이 공식 확인되지는 않은 상태였다. 조직지도부장은 당 인사정책을 책임지는 요직으로,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은 1973년 조직지도부장에 올라 2011년 사망할 때까지 이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최룡해는 북한의 평창 대표단을 이끌 인사 중 한 명으로 거론되고 있다. 또 국가보위상(옛 국가안전보위상)은 김원홍에서 정경택으로,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노동당 39호실의 수장은 전일춘에서 신룡만으로 교체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처벌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은 일단 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당 중앙군사위원에 이름을 그대로 올렸다. 통일부 당국자는 “황병서 상태가 공식 확인되지 않아 직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최룡해가 맡아오던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에는 최휘가 이름을 올렸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독립기구에서 내각으로 들어갔고 외교위원회가 신설된 것도 확인됐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정부가 ‘12·28 한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 파기나 재협상을 일본 정부에 요구하지 않겠다고 9일 밝혔다. 일본의 자발적인 보완 조치를 촉구하면서도 위안부 합의는 유지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을 하고 “당시 합의가 양국 간 공식 합의였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를 감안해 일본 정부에 재협상은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진실과 원칙에 입각해 역사 문제를 다뤄 나가겠다. 동시에 한일 양국 간 미래지향적 협력을 위해 계속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7월 31일 한일 위안부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 출범 후 6개월 동안 이어진 위안부 합의 논란을 ‘봉인’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강 장관은 “일본이 스스로 국제 보편 기준에 따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과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한 노력을 계속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또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합의로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했던 10억 엔(당시 송금 기준 108억 원)은 정부 예산으로 충당해 동결해 두기로 했다. 합의를 파기하지 않으면서 그동안 반발해 온 위안부 피해자와 유가족을 배려하는 절충안이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이 향후 ‘진정성’ 있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10억 엔을 언제든 전액 반환할 수 있다는 압박의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위안부 합의의 핵심 조치였던 10억 엔 출연금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외교적 논란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은 이날 강 장관의 발표 후 “합의는 국가와 국가 간 약속이라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도 책임지고 이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국제법적·보편적인 원칙”이라고 반발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정부가 9일 ‘12·28 한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와 관련해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는 대신 ‘자발적인 조치’를 주문했다. 위안부 합의 파기로 인한 외교적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일본에 과거사 문제 해결의 공을 넘긴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즉각 반발하고 나선 가운데 위안부 피해자들도 정부의 재협상 불가 원칙에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국내외에서 모두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이번 발표를 앞두고 일찌감치 대일(對日) ‘투 트랙’ 기조를 잡았다.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에 대해서는 당장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만큼 일단 이견을 봉인해두고, 한일관계 복원은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 북핵으로 동북아 정세가 출렁이는 상황에서 한일관계 악화가 한미일 공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 소식통은 “합의 자체를 부인하는 재협상은 과거사 해결을 위해 한일관계 발전을 희생하는 사실상의 ‘원 트랙’이라 부담스러운 선택지였다”고 토로했다. 위안부 합의 재협상과 파기를 제외하면서 위안부 합의에 대한 어떤 대안을 내놓느냐가 후속조치의 관건이 됐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위안부 합의 파기와 재협상을 약속했던 만큼 상징적인 조치가 필요했다는 설명이다. 정부가 일본이 제공한 출연금 10억 엔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한 결정은 이런 복합적인 고민의 결과물로 나왔다. 합의를 파기하지 않으면서 출연금을 동결시키는 절충안을 찾은 셈이다. 일본이 ‘배상금’ 대신 ‘치유금’ 명목으로 제공한 출연금을 인정하면 일본으로부터 위안부 강제동원의 정부 책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막힌다는 지적이 영향을 미쳤다. 다만 정부는 향후 일본과의 협의 결과에 따라 10억 엔을 어떻게 쓸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가 따르지 않는다면 일본에 반환할 가능성까지 열어둔 셈이다. 정부가 일본에 촉구한 자발적인 후속조치는 ‘위안부 강제동원 책임 인정과 사과’, ‘명예훼손에 대한 재발방지 약속’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 장관은 이날 “국제 보편 기준에 따라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고 일본에 요구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 지도자가 위안부 피해자에게 편지를 쓴다든지 하는 가시적인 조치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방한도 과거사 문제 해결의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정부의 이날 발표 이후 일각에선 정부가 국내 여론과 한일 관계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모두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위안부 합의 절차를 문제 삼아 6개월 넘게 조사했는데 결과적으로 일본에 가시적인 조치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한일 과거사 문제가 재연될 수 있는 불씨만 남겼다는 지적이다. 한일 위안부 합의 태스크포스(TF)가 지난해 12월 위안부 합의의 ‘중대한 흠결’이 있다고 발표한 뒤에도 합의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면서 일부 위안부 피해자 등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위안부 합의에 깊숙이 관여했던 전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이 ‘조용하지만 매서운’ 보복에 나설 수 있다. 일방통행식 위안부 문제 제기로 대북 문제 등 공조까지 힘들어진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지적했다.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결혼하자마자 바로 세 쌍둥이 낳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까지 못 만난 시간도 너무 긴데….” 문재인 정부 첫 남북 고위급 회담을 하루 앞둔 8일, 통일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회담 의제와 전망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정부는 북한의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문제 외에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여러 논의를 기대하고 있지만 섣불리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지난해) 7월 17일 제의한 시급성이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중심적으로 논의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지난해 제안했다가 여태껏 아무런 답을 듣지 못했던 △군사회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회담을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것. 이를 위해 정부는 관련 부처가 모두 모이는 전략기획단회의와 전략회의, 그리고 모의회의를 수차례 열었다. 북측에 수행원과 지원인력 명단을 통보하는 것을 끝으로 회담 준비 실무 작업도 마쳤다. 남북 양측은 회담 시작부터 치열한 탐색전을 벌일 듯하다. 정부는 이날 “9일 오전 10시(우리 시간) 회담이 시작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북측은 2015년 8월 고위급 접촉 당시 우리 시간보다 30분 늦은 ‘평양시(時)’에 맞춰 나왔고, 이번 회담 준비 과정에서도 평양시에 따라 업무 개시와 종료를 통보해왔다. 북한이 돌발 요구로 회담을 지연시킬 가능성도 있다. 2004년 남북 장성급 회담 당시 식량지원을 요구하며 회담 진행을 꽁꽁 묶은 것이 대표적이다. 우리 측이 평창 올림픽을 넘어 의제를 확장할 경우 북한이 올림픽 대표단 구성 등에 확답을 미루며 우리 속을 태울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 장웅 북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이번 주 스위스 로잔 IOC 본부에서 평창 참가를 논의할 예정이라고 AFP통신은 7일(현지 시간) 보도했다. 북측이 별도로 IOC에 평창행을 타진하는 만큼 남북회담에서 ‘평창 합의’를 도출하기에는 무리가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회담 성사까지 북한이 무리한 요구나 제안을 하지 않았다. 평창과 관련해서는 무난하게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 기자}

2015년 ‘12·28 한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로 일본이 제공한 출연금 10억 엔(약 107억 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정부가 직접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재정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정부는 위안부 합의 파기나 재협상을 일본에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외교부는 이 같은 내용의 한일 위안부 합의 후속조치를 마련해 9일 발표한다. 핵심은 일본이 위안부 합의로 내놓은 출연금의 처리다. 일본은 10억 엔을 위안부 피해자 ‘치유금’ 명목으로 박근혜 정부 당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했다. 화해·치유재단은 이를 위안부 피해 생존자에게는 1억 원, 사망자 유족에게는 2000만 원씩 지급했다. 하지만 상당수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은 합의에 반대하며 ‘치유금’ 수령을 거부해왔다. 일본이 위안부 강제동원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치유금’ 대신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107억 원의 출연금 가운데 미지급되고 남은 금액은 61억 원이다. 이에 정부는 일본이 낸 107억 원을 고스란히 금융기관에 예치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지급한 46억 원은 정부 예비비로 마련해 107억 원을 맞추겠다는 것. 일본이 위안부 합의에 대한 성의 있는 조치를 내놓을 때까지 출연금을 사용하지 않고 원금 그대로 동결해두겠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출연금을 어떻게 할지는 나중에 상황을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 대신 정부 예비비로 61억 원을 조성해 치유금 수령을 거부했던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화해·치유재단이 피해자들에게 이미 지급한 46억 원은 되돌려 받지 않고 정부 예산에서 나간 것으로 이해를 구할 계획이다. 정부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일본이 낸 10억 엔은 한 푼도 쓰지 않고 정부가 똑같은 액수의 돈을 마련해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지급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화해·치유재단은 해체하지 않기로 했다. 위안부 합의 재협상이나 파기로 비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위안부 문제가 단기간 내 해결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 간 합의를 섣불리 파기했다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 별개로 일본과의 미래지향적 관계 복원은 지속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과거사 이견을 봉인하는 ‘사드식 해법’을 통해 장기적으로 해결 방안을 찾자는 것”이라고 말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신진우 기자}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처음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될 남북 고위급 회담 대표단이 7일 확정됐다. 하루 뒤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양측 수석대표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을 중심으로 양옆에 차관급 등 인사가 2명씩 앉아 첫마디를 나누게 된다.○ 남북회담 베테랑들 간의 만남 정부는 7일 오전 판문점 채널로 업무 개시 통화를 나눈 뒤 북한으로부터 회담 대표단 명단을 받았다. 수석대표인 리 위원장 외에 전종수 조평통 부위원장, 원길우 체육성 부상(이상 차관급), 황충성 조평통 부장(국장급), 리경식 민족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 등 5명이다. 통일부는 “북한이 정부 대표단에 균형을 맞춰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전날 정부는 조 장관 이하 천해성 통일부 차관과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안문현 국무총리실 심의관, 김기홍 평창 동계올림픽대회조직위원회 기획사무차장을 대표단으로 선정했다. ‘돌부처’ 스타일의 조 장관과 상대를 기선 제압하는 능력이 뛰어난 리 위원장이 각각 이끄는 대표단의 면면에도 관심이 쏠린다. 남북회담 전문가로 꼽히는 천 차관은 논리적이고 판단력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다. 통일부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2006년 김대중 전 대통령 방북 관련 실무접촉 등은 물론이고 2014년 10월 당시 북한 황병서 총정치국장 겸 국방위원회 부위원장과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인천을 방문했을 때도 한국 측 대표로 참석했다. 천 차관의 상대인 전 부위원장은 북측 단골 회담 대표다. 통일부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남북 각급회담에 참여한 횟수만 17차례다. 1992년 사망한 전인철 북한 외교부 부부장의 아들로 ‘남북 문제 금수저’라 할 만하다. 과거 회담에서 전 부위원장을 만난 한 고위 당국자는 “인상의 처음과 끝은 차분하고, 행동도 가볍지 않고 절제돼 있는 편이다. 질문하면 말이 짧고 잠시 생각하고 답변하는 스타일”이라고 전했다. 협상 스타일이 사뭇 다른 수석(리 위원장)과 차석의 역할 분담이 점쳐진다.○ ‘민족적 사변의 해’ 기리려 조직 신설했나 체육 고위급 대표 노 차관과 북측 원 부상은 평창 겨울올림픽 대표단 파견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좌장인 리 위원장이 대표단 파견 규모 등 말길을 열면 이동 동선, 예상 참가 종목 등 구체적인 제안들이 오고갈 것으로 보인다. 원 부상은 2013년 일본 언론에 마식령스키장 건설 현장을 공개하면서 “남북 공동으로 (올림픽을) 주최하면 뜻깊을 것”이라며 평창 분산 개최를 주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문체부에 해당하는 국가체육지도위원회가 빠지고 체육성 인사로 대체된 게 아쉽다는 평도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평창 올림픽 전에 무리하게 남북관계와 관련된 민감한 내용을 포괄적인 의제로 내놓게 되면 정작 올림픽을 제대로 논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북한이 평창에 보낼 대표단을 집중 논의하는 장으로 이번 회담을 생각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민족올림픽조직위원회라는 생소한 조직도 눈에 띈다. 홍 실장은 “민족이라는 표현이 들어간 올림픽 상설기구가 있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이 어렵다. 다만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정권 수립 70주년과 함께 올림픽 개최를 ‘민족사의 특기할 사변적인 해’로 가리킨 만큼 새롭게 조직을 구성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북한이 평창 올림픽에 적극 협력했다는 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요구도 가능 한편 군 일각에선 북한이 올림픽에 북측 대표단을 보내는 조건으로 우리 측에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북한은 우리 군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틀 만인 2016년 1월 재개한 최전방 전역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비무장지대(DMZ) 내에서의 대표적인 적대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올림픽 기간에 멈추지 않으면 대표단 파견도 없다는 식으로 회담의 판 자체를 엎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의 시작이라며 올림픽 기간에 1차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멈추게 한 뒤 올림픽 폐막 이후에도 방송 중단을 이어가게 하는 단계적 전략을 수립하고 회담장에 나올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정부가 이를 거부하면 회담 결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말도 나온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손효주 기자}
9일 남북 고위급 당국 회담은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열린다. 평화의집은 공동경비구역(JSA)에 설치된 한국 측 회담용 건물이다. 한국의 ‘홈그라운드’인 만큼 협상 과정에서 얻는 이점도 있다. 일단 폐쇄회로(CC)TV를 통해 회담장에서 나누는 대화는 물론이고 회담 장면을 남북회담본부 상황실과 청와대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CCTV는 줌인, 줌아웃 등 카메라를 원격으로 조종할 수 있는 기능도 갖추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 대표의 표정 변화 하나까지 관찰이 가능해 더 신중하고 꼼꼼한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북측은 회담장 내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없다. 그 대신 북측 상황실에서 회담장 대화를 음성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북측 상황실은 회담장 음성을 실시간으로 평양에 전송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담장 인근 남북 상황실에는 각각 상대의 도청 시도를 막아낼 수 있는 비화(秘話) 전화기와 팩스가 설치돼 있다. 정부 소식통은 “과거엔 북측 관계자들이 회담 내내 수시로 평양을 오가며 상황을 전달하곤 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남북 접촉에선 회담 시간보다 정회 시간이 더 긴 적이 많았다. 예상치 못한 의제가 튀어나오거나 민감한 의제를 다룰 때면 각자 청와대와 평양 주석궁에서 ‘훈령’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2015년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남북 대표단은 ‘무박 4일’ 동안의 마라톤협상 끝에 북측은 ‘목함지뢰 도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남측은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같은 해 성사된 남북 적십자 실무자 접촉도 23시간 20분에 걸친 ‘무박 2일’ 협상으로 진행됐다. 북측은 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의도적인 ‘시간 끌기’ 전술을 꺼내 들기도 한다. “윗선의 승인을 받는다”는 이유로 남측 대표단을 초초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2007년 장성급 군사회담에선 공동보도문에 잠정 합의하고도 북측이 평양의 최종 결재를 받아야 한다며 5시간 넘게 최종 합의를 늦추기도 했다. 남북 회담 경험이 많은 전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일부러 일정을 지연시켜 우리를 지치고 조급하게 만드는 사례가 많았다. 북측의 핵심 전략 중 하나”라고 말했다.신진우 niceshin@donga.com·손효주 기자}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진 한일 위안부 합의를 어떻게 할지를 놓고 문재인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당초 한일 외교 관계를 고려해 위안부 합의 파기 또는 재협상까진 요구하지 않을 거란 기류가 강했지만 지난해 12월 합의 재검토 태스크포스(TF) 발표 후 전면 재협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8일 “피해 당사자와 국민이 배제된 정치적 합의였다는 점에서 매우 뼈아프다”며 위안부 합의에 중대한 흠결이 있다고 강조했다. 빠른 후속 조치까지 주문했다. 다만 청와대는 당시 “합의 무효화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당국자들 역시 문 대통령이 상황의 심각성을 표현했다는 수준으로 해석하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4일 돌연 라디오 인터뷰에서 ‘위안부 합의를 파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파기나 재협상 등까지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도 이날 동아일보와 만나 “위안부 합의 과정의 문제점이 명백히 드러난 만큼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국가 간 합의 파기에 따른 국가 신뢰도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대해선 “‘공식 합의’인지 성격조차 불분명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정부가 재협상이나 파기로 가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여전히 우세하다. 당장 재협상을 하려면 일본과 위안부 합의 자체의 법적 정당성 다툼을 벌여야 한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mm도 움직일 수 없는 합의”라고 밝힌 상황에서 단기간에 결론을 내기는 어렵다. 남북관계 복원을 놓고 미국이 불편한 감정을 내비치는 상황에서 한일 공조까지 휘청거리면 정부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로선 당장 다음 달 평창 겨울올림픽에 아베 총리를 초청할 계획인 데다 올봄 개최를 목표로 한중일 정상회담 논의가 3개국 사이에 오가는 상황에서 한일 관계가 얼어붙는 것도 부담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4일 강 장관 발언에 대해 “여러 가능성이 있다는 수준으로만 이해해 달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이 때문에 정부가 일본을 겨냥한 ‘압박용 카드’로 재협상이나 파기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합의 후속 조치를 언급할 것으로 보인다. 한 정부 소식통은 “일단 ‘가장 센 카드’부터 예고해야 이후 상대국이 받을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향후 국내 여론의 반응이다. 정부는 위안부 이슈라는 과거 문제 해결과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이라는 ‘투 트랙’으로 접근하겠다는 큰 틀은 유지하면서 일본에 요구할 ‘추가 조치’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일본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된 추가 조치를 따로 요구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완전 재협상이 아닌 ‘맞춤형’ 추가 협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방한을 추진하는 것도 한일 관계를 풀 해법으로 꼽히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왕이 한국을 다녀간다면 일본 내 혐한 감정이 많이 누그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일왕이 홍릉(고종과 명성황후의 능)을 방문해 명성황후의 묘에 꽃 한 송이 바치며 ‘안타까운 일’이라고만 언급해도 한일 간 과거사가 정리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라고 했다. 다만 일왕의 방한 여부는 일본 정부가 결정하는데 아베 총리가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문제로 꼽힌다.신진우 niceshin@donga.com·문병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4일 박근혜 정부에서 체결된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해 “(위안부) 할머니들의 뜻에 어긋나는 합의를 한 것에 대해 죄송하고 대통령으로서 사과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공식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 8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갖고 “지난 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날 뿐 아니라 정부가 할머니들의 의견을 안 듣고 일방적으로 추진한, 내용과 절차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를 찾아 “과거 정부가 공식적으로 합의한 것도 사실이니 양국 관계 속에서 풀어가야 하는데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언급했다. 일본이 재협상이나 파기 불가 방침을 확실히 한 가운데 한일관계를 복원하면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 데 대한 어려움을 밝힌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일 위안부 합의 TF 보고서 발표에 따른 후속 조치 방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후속 조치에는 위안부 강제동원의 불법성 인정과 명예훼손 방지 대책 마련, 위안부 피해 진상 규명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진우 기자}
3일 오후 3시 반경. 전화벨이 울렸다. 남측 연락관이 먼저 수화기를 들고 “○○○입니다”라고 말하자 북측에서도 통성명을 했다. 이어 남측에서 “오래간만입니다”라고 하자 북측 연락관은 “반갑습니다”라고 화답했다. 1년 11개월 만에 남북 간 직통전화가 복원되는 순간이었다. 오랜만에 함께 수화기를 든 남북 연락관은 주로 통신선을 점검하며 2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판문점 평화의집 내 연락사무소에 설치된 전화기는 녹색과 붉은색 두 대. 한 대가 마비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남측은 주로 녹색 전화기로 북측에 전화를 걸고, 붉은색 전화기로 북측의 전화를 받지만 반대로 할 경우도 있어서 딱히 구분은 없다. 이날은 녹색 전화기로 북측의 전화를 받았다. 북측 연락사무소는 판문점 내 통일각에 있다. 이 채널은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남북 연락선이 끊기기 전에도 사용됐던 직통전화다. 오랜만에 사용했지만 이날 통화에서 목소리를 방해하는 잡음은 거의 없었다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남북 간 연락이 단절된 뒤에도 통일부 소속 연락관(사무관급)들은 2교대로 평일 오전 9시, 오후 4시 근무 개시와 종료를 알리려 북측에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은 없었다. 우리 측은 이날 첫 번째 접촉을 마치며 “더 할 얘기가 있으면 전화를 달라”고 한 뒤 기다렸다. 북측은 오후 6시 7분경 전화를 걸어와 “오늘은 마감하자”고 밝혔다. 이에 첫날 남북 접촉은 2시간 37분 만에 마감됐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북한이 3일 문재인 정부의 남북 고위급 회담 제안에 23시간 뒤 화답하면서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 끊겼던 판문점 남북 연락채널이 1년 11개월 만에 재개됐다. 지난해 김정은의 핵 폭주로 경색 일변도였던 남북 교류 및 대화가 새해 벽두부터 급물살을 타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기다리던 북한 화답에 “의미 크다” 리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은 이날 오후 1시 19분경 조선중앙TV를 통해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3일 15시(한국 시간 오후 3시 반)부터 판문점 연락통로를 개통하는 데 대한 지시를 주셨다”고 밝혔다. ‘평창 참가 용의’를 밝힌 신년사에 이어 이틀 만에 김정은이 연락채널 복원을 직접 지시한 것이다. 리 위원장은 이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적극적인 공식 지지 입장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높이 평가하며 환영의 뜻을 표명했다”고도 말했다. 정부는 ‘고위급 남북 당국회담’을 제시한 뒤인 전날 오후 4시와 이날 오전 9시 두 차례 북측에 전화를 걸었지만 전화 신호음만 들어야 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정부는 북한의 전격 호응으로 화색이 돌았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도 “연락망 복원의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북한은 자신들이 예고한 시간에 먼저 연락해 통신선이 정상 가동되는지 점검했다. 이제 관심은 연락채널 정상화로 대화의 물꼬를 튼 남북이 과연 ‘언제, 누가, 어디서 회담할지’에 쏠리고 있다. 우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고위급 회담 날짜로 제안한 9일에 회담이 가능할지가 핵심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상임공동대표는 “북한이 날짜를 수정 제의할 수도 있다. 남북은 습관적으로 샅바싸움을 해왔다”고 말했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이 우리 정부의 애간장을 태우며 한 번에 쉽게 가진 않을 것이다. 본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이 빠르면 이번 주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개최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어떤 조직들이 회담에 관여할지도 주목된다. 리 위원장의 발표대로라면 김정은이 실무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한 조직은 ‘당 중앙위원회 통일전선부와 조평통, 국가체육지도위원회를 비롯한 해당 단위들’이다. 리 위원장은 “최고지도부의 뜻을 받들어 진지한 입장과 성실한 자세에서 남조선 측과 긴밀한 연계를 취할 것이며 우리 대표단 파견과 관련한 실무적 문제를 논의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강 부원장은 “동시다발적으로 회담을 추진할 인력으로 포괄적인 팀을 구성할 테니 우리 정부도 준비해 달라는 취지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조명균 vs 리선권 양측 대표단 이끌 듯 조 장관이 역제안하고 리 위원장이 화답한 만큼 두 사람이 양측 수석대표로 나설 가능성이 점쳐진다. 물론 북한이 남북 관계 주도권을 쥐겠다며 일부러 회담대표 급을 낮춰 기 싸움에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정세현 전 장관은 “리 위원장보다 낮은 단계 인사가 나오면 성실히 협의하라는 김정은의 지시를 거스르는 것이라 회담의 진정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단언했다. 아울러 “체육 당국끼리만 만나면 북한만의 화법과 관용문법 등 고유의 언어를 몰라 낭패를 볼 수 있으니 훗날 쪼개져 나갈지라도 처음엔 통일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회담 초기부터 함께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의제와 관련해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문제만 테이블에 오를지도 두고 볼 일이다. 평창이 최우선이지만 북핵, 한미 연합 군사훈련 연기 및 취소 등 한반도 이슈도 협의 과정에서 논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성락 전 주러시아 대사는 “북한이 군사훈련 연기 이상의 요구 사항들을 걸고 올림픽 참가 여부를 놓고 정부와 밀고 당기기에 나설 수 있겠지만 이는 종국적으로는 미국과 풀어야 하는 문제라 기대만큼 얻어가진 못할 것”이라며 “일단 한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다음 게임을 이어가기 위한 전술적 의도 때문에라도 김정은이 대표단을 평창에 보낼 것”이라고 분석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