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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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대기자입니다.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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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2024-04-26
칼럼100%
  • [김순덕의 도발]언론중재법도 ‘위헌 운명’ 따라갈 텐가

    꼭 15년 전 동아·조선이 동시에 청와대 취재 거부를 당한 적이 있다. 2006년 7월 28일 동아일보에 ‘세금 내기 아까운 약탈정부’ 칼럼이, 조선일보 1면엔 ‘계륵 대통령’이라는 홍준호 선임기자(현 대표이사 부사장)의 분석기사가 실린 날이었다. 청와대홍보수석은 이날 공개 브리핑에서 “조선일보는 국가 원수를 먹는 음식에 비유했고 동아일보는 대한민국을 약탈정부로 명명했다”며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당연히 두 신문은 가만있지 않았다. 다음 날 동아일보는 1면과 4면에 비판기사를 내보냈고, 7월 31일자엔 ‘국민의 알권리 빼앗는 청와대의 취재 거부’라는 사설로 “청와대는 즉각 위헌적인 취재 거부를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조선도 해외 사례까지 들어 대응한 건 물론이다. ● 문 정권과 비교하면 참여정부는 양반…그 약탈정부 칼럼을 쓴 사람이 바로 이 몸이다. 논설위원실에 입성한 지 4년 차, 그때만 해도 젊었던 나는 ‘나 때문에 회사가 해코지당하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선배들은 은근히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청와대 출입기자는 한 달이나 고생을 했다. 미안하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허위·조작보도’를 언론중재법에 규정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개정안을 이달 중 강행 처리할 태세다. 이 법안 2조는 허위·조작보도를 이렇게 정의한다.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 정부를 약탈정부라고 하거나 대통령을 감히 먹는 음식에 비유할 경우, 허위·조작보도로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며 3배 이상 5배 이하 손해배상을 청구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한국 언론의 문제가 가짜뉴스라고?더불어민주당이 이 개정안을 들고 나온 이유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언론수용자 조사’다.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네 명 중 한 명이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를 꼽았다는 거다(둘째 문제는 편파적 기사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순하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수용자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뉴스를 주로 TV(54.8%) 인터넷포털(36.4%) 온라인동영상플랫폼(2.8%)으로 봤지 동아일보 같은 종이신문(1.7%)이나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직접 접속(1.3%)하는 수용자는 많지 않다(이 훌륭한 독자들은 가짜뉴스가 문제라고 답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자유언론을 위한 학자·전문가단체인 미디어연대는 2019년 토론회에서 “지상파방송이 민주노총 산하의 본부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정파성 때문에 당연히 가짜뉴스, 이념 성향의 편파보도가 판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같은 해 선문대 황근 교수도 문 정권 방송정책의 핵심을 ‘공공채널의 정치선전도구화’로, 신문정책은 ‘정부광고에 의한 친여신문사 지원’으로 꼽았다. ● 근대에 이르기까지 언론 자유는 없었다노조가 장악한 공영방송·정부·지자체 소유 방송사, 그래서 판치는 가짜뉴스. 그런데 문 정권은 뉴스 보는 사람들이 가짜뉴스를 문제로 꼽는다며 위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인단다. 노무현 정부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 표현을 빌자면, 호호호 코미디야 코미디다. 그럼 가짜뉴스를 그냥 두란 말이냐? 라고 성내는 분들이 냅다 댓글을 달기 전에 잠깐. 우리가 언론 자유를 중시하는 이유는 언론(인)이 잘나서가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보면 너무나 오랜 시간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못 하고 살았다. 표현의 자유는 물론 사상의 자유도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갈릴레오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은 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혼잣말을 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동화(또는 신화)가 나라마다 존재하겠나. ● 어떻게 얻은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인데자유를 지향하는 인류 역사 발전에 따라, 민주주의 체제가 나타남에 따라 표현의 자유는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다(박용상 ‘언론의 자유’). 문 대통령도 2019년 신문의 날 축사에서 “영국 명예혁명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언론의 자유를 쟁취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87년 6·29선언 이후 비로소 언론의 자유가 신장된 나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문 정권, 그 문 정권이 강행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헌법 제21조에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할 소지가 크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가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뉴스, 수사정보를 흘리는 검찰의 인권침해와 그것을 받아쓰기하던 언론의 횡포에 당하셔야 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천기누설함으로써, 문 정권은 고인의 비극을 검찰‘개혁’에 이어 언론‘개악’에 이용할 모양이다. 다름 아닌 집권세력의 비호를 위하여. ● 종합청사 앞 거대한 신문사가 그리 무섭나문 정권의 ‘노무현 따라하기’가 한둘이 아니지만 검찰 장악에 이은 언론 장악 역시 판박이가 될 공산이 크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살아생전 주요 신문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곤 했다. “행정수도 반대 여론을 앞장서서 주도해가고 있는 기관들이 서울 한복판 종합청사 딱 앞에 거대한 빌딩 가지고 있는 신문사.”(2004년 7월 8일)“삐뚤어진 것을 바로잡는 개혁은 이제 거의 마감질 단계다. 딱 남아있는 데가 정부 바깥에서는 언론 한 군데가 남아있고 정부 안에서는 검찰이 남아있다”(2007년 3월 13일 청와대 업무보고회의)고 했다. 단언컨대 집권세력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처리를 끝내 강행할 경우, 2006년 6월 29일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였던 신문악법처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 2006년 노무현 언론악법 위헌 판결6·29선언으로부터 꼭 19년이 되는 2006년 6월 29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핵심 쟁점이던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 조항과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면 신문발전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신문법 조항에 대해 각각 재판관 7 대 2와 전원 일치로 위헌 판정을 내렸다. 동아일보는 2005년 3월 신문법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었다. 더불어민주당 전신(前身)인 열린우리당은 1개 신문의 시장점유율이 전국 발행부수 기준 30% 이상, 3개 이하 신문의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일 때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해 불이익을 주는 법을 만들었고, 2004년의 마지막 날 야당과 야합해 통과시켜 버렸다. 헌재는 “다른 일반 사업자와 비교해 합리적 이유 없이 신문사업자를 차별하는 것이어서 헌법에 위배된다”고 위헌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민주당이 만든 언론중재법 개정안 역시 합리적 이유 없이 언론사를 차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규정된 다른 법률은 손해액이 최대 3배의 배상책임밖에 부과할 수 없는 반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최대 5배다. 위헌적 운명이 빤히 보이지 않는가. ● 사람만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칠 수 있다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꼭 언론이 아니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믿는다(댓글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월급에는 악플을 감수하는 값도 포함돼 있으므로).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타인의 명예를 침해한 경우 피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그러나 공직자의 경우는 다르다. 2011년 대법원은 광우병을 다룬 MBC PD수첩의 다우너소, 아레사 빈슨, MM형 유전자 보도가 허위라고 판단하면서도 쇠고기 수입 협상을 한 공직자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공무원의 명예는 공무원이 일한 결과에 대해 국민이 인정해주고 칭찬해줄 때에만 외부로부터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공무원에게는 애당초 본인이 나서서 보호하고 지켜야 할 명예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이승선 충남대 교수가 ‘표현자유 확장의 판결’에서 소개한 판결문 일부다(서울남부지방법원이 2010년 2월 16일 선고한 2008가단96240판결). 공직자 방마다 액자로 걸어놓고 외워야 할 명구가 아닐 수 없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동화는 괜히 나오지 않았다. 권력자가 감추려는 진실을 말하지 못하면, 구덩이라도 파고 외쳐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문 정권의 언론중재법은 그걸 못 하게 겁박하는 법이다. 사람이 먼저라던 문 정권. 대체 무엇이 그리 무서워 사람의 입을 막으려 드는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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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차라리 ‘문정권 수호법’이라고 하라

    이것은 거의 천기누설이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가 지난달 말 언론 ‘개혁’을 강조하다 말해 버리고 말았다.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뉴스, 수사정보를 흘리는 검찰의 인권침해와 그것을 받아쓰기하던 언론의 횡포에 당하셔야 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고인의 죽음을 언급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왜 정권 말 징벌적 손해배상까지 물리는 언론중재법을 서두르는지 이제 확실히 알 것 같다. 그들은 두려운 거다. 검찰을 고분고분하게 만들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권력비리 수사를 마비시키고, 사법부와 헌법재판소까지 모조리 제 사람으로 채워 놓고도 불안한 것이다. 아직도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한줌 언론이 남아 있어서. 그러나 집권세력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권경애 변호사의 ‘무법의 시간’을 인용하면, 정상문 당시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횡령한 12억5000만 원의 대통령 특수활동비는 권양숙 여사에게 전달됐다. 유시민은 “권 여사가 노건평을 통해 박연차에게 받은 명품시계를 대통령 퇴임 후 갖고 있었고 노 전 대통령이 망치로 깨버렸다”고 2017년 밝힌 바 있다. 즉 노 전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은 가족 관련 부패 때문이지 가짜뉴스 때문이라고 할 순 없다는 얘기다. 집권세력의 이런 불안을 귀신같이 이용한 사람이 이스타항공 창업주 이상직 의원이었다. 2월 25일 국회 문체부 소위 1차 회의 때 정부여당이 언론중재법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자 그는 흥분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여기 앉아 있는 분들이 가짜뉴스와 싸울 수 있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라며 “망신 주기나 아니면 자살을 유도하는 가짜뉴스도 온라인상에 돌아다닌다”고까지 했다. 당시 이상직은 이스타항공 대량 해고 사태에 회삿돈 555억 원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 초읽기에 몰린 상태였다. 그는 보통 기업인이나 정치인이 아니다. ‘대통령 저격수’ 곽상도 국민의힘 의원은 2019년 “문 대통령 사위 서모 씨가 이상직과 관련된 ‘타이이스타젯’이라는 회사에 2018년 7월 입사해 3주간 근무했다”며 특혜 채용 의혹을 폭로한 바 있다. 이상직 구속 직후인 5월 초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는 이상직과 타이이스타젯 대표 등을 전주지검에 고발했다. 이스타항공 자금 71억 원이 타이이스타젯 설립 자금으로 쓰인 것으로 의심된다는 거다. 문 대통령 딸 일가족의 태국 이주와 수상한 자금 흐름, 이상직의 2018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취임과 2020년 민주당 단수 공천 등을 김어준 식으로 말한다면 ‘냄새’가 나는 것이다. 느긋했던 민주당이 5월 말 돌연 미디어혁신특위를 꾸리고 강경파 김용민 의원을 내세워 언자완박(언론자유 완전박탈)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대통령 가족 비리 보도가 터져 나오는 것을 막고, 터질 경우 ‘허위·조작보도’로 인격권 침해 또는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최고 5배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언론사와 기자들은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 문 정권이 노리는 것이 바로 이 점일 터다. 전두환 정권 시절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안기부에 붙잡혀가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이에 비하면 손해배상 따위가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이고 민주주의 시대다. 그래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불렀다는 문 정권의 위선이 더 가증스러운 거다. “진실과 허위는 일도양단 식으로 선명하게 나눠지지 않는다…자신에 대한 허위사실 적시, 공표, 유포 당하였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공적 인물인 경우에는 법적 제재를 가동하는 것은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비교법적으로 볼 때도 허위사실 유포를 형사처벌 조항으로 보유한 민주주의 나라는 한국뿐이다.” 조국은 2012년 서울대 교수 시절 ‘일부 허위가 포함된 공적 인물 비판의 법적 책임’이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이 정권의 내로남불이 하나둘도 아니지만 실제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적 인물 비판은 고의적 명예훼손이 아니면 민사적 책임도 묻지 않는 추세다. 암만 헌법재판소에 코드인사로 가득해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위헌 결정이 날 수밖에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친문 적자(嫡子)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대선 여론조작을 한 죄로 수감되면서 “문 대통령을 지켜달라”고 집권세력 모두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 정권이 기어이 위헌적 언론악법을 만들겠다면 ‘문정권 수호법’이라고 개명이라도 하기 바란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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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김경수는 왜 “문 대통령을 지켜달라”고 했을까

    2017년 대선 여론을 조작한 죄로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가 26일 오후 수감 됐다. 그가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와 통화에서 “대통령을 부탁드린다. 잘 지켜달라”고 부탁했고, 이에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이 발끈했다는 건 시사하는 바 간단치 않다. 먼저 단순한 해석. 대선주자 지지율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낙연 측 최인호 의원은 마치 어명을 받들었다는 듯 24일 SNS로 이 사실을 공개했다. 문심(文心)이 친문 적자(嫡子) 김경수를 통해 이낙연으로 이어졌음을 대깨문들에게 공식화한 거다. 이낙연은 23일 경남도청을 찾아간 자리에서 위로차 김경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제가 버티는 건 잘 버티지 않나” 하면서 “대통령님을 잘 부탁한다”고 먼저 입을 뗀 쪽은 김경수였다. 그러자 이낙연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대통령을 잘 모시겠다. 잘 지켜드리겠다”고 화답했다는 것이다.● 문심은 친문 적자를 통해 이낙연으로?최인호는 ”이렇게 김경수, 이낙연, 문재인 그리고 당원들은 하나가 됐다“고 신이 난 듯 공개했다. 당연히 여권 대선주자 지지율 1위 이재명 경기도지사 측은 가만있지 않았다. 이들 못지않게 단순한 이재명의 수행실장 김남국 의원은 다음날 SNS를 통해 ”김 지사님이 누구에게나 똑같이 ‘문재인 대통령님을 잘 지켜달라’고 하신 말씀을 (이 전 대표 측이) 어떤 생각으로 공개하게 됐는지 궁금하다“고 세계만방에 광고한 것이다(자칫하면 친문 적통자리를 뺏길까 걱정했을지 모른다. 이 얼마나 봉건적 사고방식이냐). ‘지켜준다’는 말이 연애용어처럼 아름다운 건 사실이다. 그러나 징역 2년의 형을 살러가는 사람이 남은 누군가를 다른 사람에게 ‘지켜달라’고 한다는 건 단순한 의미라 할 수 없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이 유행했기에 더욱 그렇다. 이 대목을 통해 우리가 유추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 문 대통령의 안위가 크게 걱정된다첫째, 김경수는 누구에게나 문 대통령을 잘 지켜달라고 말할 만큼 문 대통령 퇴임 뒤 후속 수사 등으로 이어질 안위 문제를 크게 걱정하고 있다. 즉 김경수는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했고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다. 둘째, 이재명 지지층 가운데는 솔직히 이재명이 집권할 경우 문 정권의 잘못을 모조리 단죄할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이재명에게도 ”대통령을 지켜달라“고 할 만큼 김경수는 절실하게, 모두를 붙잡고 부탁을 했다는 얘기다. 셋째, 이처럼 중요한 부탁을 하면서 비밀 유지를 당부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렇다면 이낙연 측이 당장 문파를 잡기 위해 약속을 깼을 공산이 크다. 하하 그 경우, 이낙연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대통령을 지킨다는 약속은 과연 지킬 수 있을까? ● 후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 처벌 막는다고? 이보다 더 궁금한 게 있다. 설령 퇴임한 대통령 문재인을 지켜준다고 현 집권세력 모두가 맹세했다고 치자. 그러나 후임 대통령이 전임 대통령의 ‘법적 처벌’을 가로막는 것은 법치주의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그러고 보니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이달 초 한 인터뷰에서 검찰을 떠난 이유를 설명하며 김경수가 검찰‘개혁’에 개입했음을 시사한 적이 있다.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 설치와 관련해 문 대통령의 속도 조절 주문 해석이 있었을 때 박(범계) 장관이 2월 25일에 ‘저는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라며 당론에 따르겠다는 뜻을 피력했어요. 김경수 경남지사까지 나서 ‘대통령 한 말씀에 일사불란하게 당까지 정리되는 게 과거 권위적인 정치’라고 주장했고요. 김 지사는 문 대통령의 복심이잖습니까? 그래서 아, (중수청, 검수완박) 가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구나 생각했죠.“● 끝까지 ‘검수완박’ 거들었던 김경수 쉽게 풀이하면 이런 얘기다. 문 대통령은 지난 2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을 위한 중수청 설치가 시기상조라며 여당에 속도조절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여당은 물론 법무부 장관도 2월 25일 중수청 설치를 서두르고 나섰다. 그런데 윤석열은 달리 파악했다. 김경수가 24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고 당이 일사불란하게 정리되는 것은 과거 권위적인 정치행태다, 오히려 정부여당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즉 김경수가 대통령 복심이니, 대통령 역시 중수청, 검수완박이 급하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고 보고 윤석열 자신이 검찰을 떨치고 나왔다는 설명이다.(물론 김경수 측은 즉각 반발했다. ”그동안 중수청 설립과 관련해 어떤 공식적 입장을 내거나 공개 발언한 사실이 없고 자치단체장으로서 이를 추진할 위치에 있지도 않다“고 했다. 당연히 그랬어야 했다.) 문 정권 핵심은 검경수사권을 조정해 검찰에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권만 남기고도 끝내 못미더웠던 것이다. 김경수는 문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선거범죄 등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까지 완전 박탈하고(검수완박) 중수청을 설치할 것을 끝까지 거들었음을 윤석열이 폭로한 것이다.● 2017년 대선 여론조작 ‘몸통’ 재수사하라윤석열이 누군가. 2012년 대선 관련 국정원 댓글 조작사건을 수사하다 좌천까지 당했던 사람이다. 그가 25일 “문 대통령이 여론조작을 지시하거나 관여했을 거라는 주장은 지극히 상식적”이라며 문 대통령 수사를 위한 특검 연장 및 재개를 요구하자 다음날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배은망덕을 넘어 균형감각이 상실된 논리”라며 공격을 퍼부었다. 급소를 찔린 듯한 모습이다. 2017년 대선 여론조작 사건의 피해자를 자처하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문 정권을 ‘도둑정권’이자 ‘장물정권’으로 규정하는 것도 당연하다. 허익범 특검 역시 드루킹의 댓글 조작이 대선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본다. 이 때문에 2등 후보가 1등으로 당선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선거 승리를 위해선 무슨 짓을 해도 된다는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수사는 반드시 재개돼야만 한다. 이미 구속됐던 77일을 빼고 징역 2년의 형을 살아야 하는 김경수는 앉으나 서나 주군을 지킬 걱정이겠지만 우리는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재인 지키기를 놓고 저희들끼리 아무리 ‘정치적 거래’를 해도, 법치와 민주주의는 함부로 무너뜨릴 수 없음을 투표로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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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그래도 우리나라엔 사법정의가 살아있다

    어젯밤 문재인 대통령은 편히 잠들지 못했을 듯하다. 21일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2017년 대선 댓글 여론을 조작한 죄가 대법원에서 확정된 날이다. 판결에 대한 청와대 입장은 공식적으로 “없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무심할 순 없을 것이다. 전 법무부 장관 조국에게도 마음의 빚이 있다는 대통령이다. ‘친문 적자(嫡子)’ 김경수가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포털 사이트 뉴스 8만여 건에 무려 8840만 번이나 당시 문 대선 후보에게 유리하게 댓글 조작을 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게 되레 기이하다.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해가 적지 않지만 장점도 있다. 그중 하나가 정권 말까지 참고 견디면 적어도 5년에 한 번은 사법정의가 실현된다는 거다. ‘김명수 대법원’에서 과연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지 미심쩍었던 것도 사실이다. 김경수 역시 무죄 판결을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대법원장 김명수를 포함해 대법관 7명은 뚜렷한 진보 성향이어서다. 만일 이번 재판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면 뒤집혔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출범 초부터 ‘사법 농단’을 서슴지 않았던 문 정권이다. 물론 그들은 사법개혁이라고 주장했다. 차관급인 지방법원장 출신 김명수를 대법원장에 임명한 것도 사법부의 충성을 담보하기 위해서였다. 아니, 정권 심장부가 단죄당하는 꼴을 면하기 위해서라고 봐야 옳다. ‘적폐청산’과 인사를 무기로 대한민국 판사 3000여 명을 모조리 장악하진 못해도 대법관 14명쯤은 가볍게 주무를 수 있다고 자신했을 것이다. 천만다행히도 사건은 대법원2부에 배당됐다. 이동원 주심을 비롯해 만장일치로 소부에서 유죄를 확정지은 4명의 대법관에게 경의를 표한다. 2019년 초 김경수 1심에서 유죄를 선고했다가 ‘적폐 판사’로 몰렸던 성창호 부장판사(그러나 1,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2심을 선고하기 전에 자신의 인사 조치를 예감한 듯 김경수가 킹크랩 시연을 본 사실을 못 박았던 차문호 부장판사, 그리고 이런 파행 인사를 목격하면서도 2심 유죄 판결을 내린 함상훈 부장판사를 기억한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시퍼렇게 살아 있음을 보여준 이들 법관이 있어 우리는 다시 대한민국에 가슴 벅차는 희망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김경수 유죄 판결을 받아낸 허익범 특검은 검찰의 독립성이 왜 중요한지 똑똑히 보여준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 2018년 서슬 퍼런 문 정권 초기, 약체 특검이라는 비아냥거림에 하루 3시간 이상 자본 적 없는 불면의 밤을 보내면서, 특검팀 전원이 포렌식 자격증까지 따면서 최선을 다해 준 데 감사한다. 특검이 이 사건을 맡기 전, 검경의 정권 눈치 보기 수사는 두 눈 뜨고 봐주기 힘들 정도였다. 대통령이 인사권을 휘두르는 검찰과 달리 특검은 대한변호사협회가 4명을 추천하면 그중 2명을 야3당 교섭단체 합의로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이 그중 1명을 임명한다. 그래서 정권 눈치를 보지 않는 수사가 가능했던 것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찰 수사지휘권마저 사라진 지금, 김경수 사건보다 더 큰 사태가 벌어져도 경찰이 뭉개면 국민은 모르고 넘어가기 십상이다. 공수처장 임명에는 야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 여당 혼자 추천해 대통령이 임명한 공수처장이 과연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러고 보면 문 정권이 국정 제1과제로 내세운 검경개혁, 사법개혁, 국정원 개혁 등 권력기관 개혁은 국민을 위한 개혁이 아니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사퇴를 불러온 월성 원전 조기 폐쇄 사태에서 드러났듯, 결국 대통령 수호를 위한 친위대 개편이었던 셈이다. 헌법 66조는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대통령은 외국에 대해서만 국가 원수일 뿐, 국민에게는 봉사자이고 삼권분립 아래선 행정부의 수반으로 봐야 옳다. 이 나라가 자기네들 것인 양, 법치(法治) 꼭대기 위에 올라앉은 문 정권이어서 김경수는 대법원 판단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친문세력이 김경수의 범행을 인정한다는 건 2017년 대선 결과를, 문재인 정부의 정통성을 무너뜨리는 일이어서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대한민국의 정의(正義)가, 희망이 살아있음이 확인됐다. 이렇게 우리나라는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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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문 정권의 거짓말, 백신뿐이던가

    이건 사기다! 12~17일까지라던 55~59세 모더나 백신 접종 예약이 14시간 만에 종치자 나는 혼자 부르짖었다. 1962~66년생 인구가 352만4000명이다(나도 여기 해당된다). 당연히 모더나 352만4000만 명분을 확보해놓고 예약 받을 줄 알았다. 이 당연한 상식을 문재인 정부는 사정없이 깨버린 것이다. ● 국민이 분노하는 건 거짓말 때문12일 문 대통령은 청와대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방역을 짧고 굵게 끝내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낯이 좀 간지럽지는 않았는지 궁금하다. 예약에 성공한 절반의 50대 후반이 백신을 맞는다 해도 7월말이나 돼야 가능하다. 26일까지 2주간 아무리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도 4차 대유행을 잠재울 순 없다는 얘기다. 김부겸 총리가 14일 오후 8시부터 접종 예약을 재개한다고 밝히긴 했다. “도입 물량에 차질이 생긴 것이 결코 아니고 행정 준비에서 사려 깊지 못한 점이 있었다”고도 했다. 그러나 문 정권은 아직도 뭐가 잘못인지 모르는(실은 모르려고 안간힘 쓰는) 눈치다.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문 정권의 거짓말 때문이다. 여기서 거짓말이란 무엇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사실을 말했는데 사실 아님이 드러났을 경우, 우리는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는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대는 말’이 거짓말이다. ● 대통령이 나서 백신 구매 앞당겼다며?즉 거짓말의 핵심은 거짓말하는 사람이 사실을 알 뿐 아니라 사실을 존중한다는 데 있다. 거짓말로 밝혀지면 사과하는 시늉이라도 한다. 그게 거짓말계의 예의고 상식이다. 문 대통령은 작년 12월 28일 모더나 대표이사와 화상 통화를 하고는 모더나 백신 4000만 회 분을 2021년 2분기, 그러니까 4월부터 도입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구매 물량 확대와 함께 도입 시기도 당초 내년 3/4분기에서 2/4분기로 앞당겼다”고 청와대는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이것이 팩트다. 12일 드러난 사실은 딴판이었다. 이미 들어와 있는 물량은 달랑 80만 회분(40만 명)이고 일정이 확정된 것도 105만 회분(52만5000명)에 불과하다. 그럼 작년 말 그 요란한 청와대 발표는 거짓말이 아니고 뭐냔 말이다. ● 거짓말 변종…대안적 사실은 더 무섭다거짓말 역시 바이러스처럼 변종이 더 무섭다. 2005년 미국 프린스턴대 철학과 명예교수 해리 프랑크푸르트는 ‘On Bullshit’이라는 책을 썼다. 뉘앙스를 살려 옮긴다면 ‘X같은 소리에 대해’쯤 된다. 거짓말과 X같은 소리의 차이는 진실을 존중하느냐다. X같은 소리를 하는 자는 설사 진실이 드러나도 그게 뭐 중요하냐고 주장한다는 거다. 그래서 듣는 이들은 X같은 자라며 돌아선다. 코로나19 변종 같은 최신 거짓말 변종은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s)이다. 문 정권은 거짓이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사실처럼 주장하고, 듣는 문파는 기꺼이 속아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월성 원전 부당 조기 폐쇄 의혹, 조국 일가 의혹 등 문 정권 비리 의혹 사건이 여기 속한다. 청와대는 ‘결백’이라는 대안적 사실을 주장하며 ‘윤석열 검찰’을 ‘적폐청산’했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 야당과 국민은 정권교체를 통해 정의와 진실을 구현하려 든다. 과연 사필귀정(事必歸正)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대통령 취임사부터 거짓말 행진곡코로나19 변종처럼 거짓말 변종도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다. 문 정권의 치명적 문제는 ‘대안적 믿음’을 말한다는 데 있다. 그것도 남들이 다 믿어야 마땅하다는 듯 당당하게 말한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는 믿음, 소주성(소득주도성장정책)만이 옳은 경제정책이라는 믿음, 한명숙 전 총리가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믿음 말이다.취임사부터 문 대통령은 대안적 믿음을 말했다. “오늘부터 저는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부터 “광화문 시대 대통령이 되어 국민들과 가까운 곳에 있겠습니다”, “따뜻한 대통령 친구같은 대통령으로 남겠습니다”까지. 지금은 단 한 대목만 빼고 모조리 거짓말이라는 농담 같은 진담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 그 한 대목은 바로 “지금 제 가슴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나라가 정말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세상이긴 하지만, 절대 가볍게 받아넘길 수 없는 의미가 내포돼 있어 두렵다. ●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 백 살이 넘은 ‘국민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해준 말씀이어서 더욱 그렇다.“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라고 하지요. 그게 유토피아 개념에서 나온 겁니다. 우리가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게 되면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회라고 하는 거죠. 김일성이 이야기하는 게 뭔가 하니, 우리가 해방되면 과거와는 달리 삶을 살게 된다는 거지요.”지난 3월 북한인권법 통과 5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북한이 고향인 그는 북한이나 중국 같은 공산주의 국가엔 자유가 없고 진실이 없다며, 그걸 권력자들도 안다고 했다. 그래야만 정권을 유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회주의를 하겠나 싶지만, 권력자의 거짓말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2018년 9월 19일 평양 능라도 경기장을 가득 메운 15만 평양 시민들은 북한 지도자와 남쪽 대통령에게 열렬한 함성과 박수를 보냈다. 나는 그것이 북한 주민들의 자유롭고 진실한 표현이라고 결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민족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나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봤다”고 했다.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유토피아를 봤는지 알 수 없다. 대통령이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도 자유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유토피아를 다수 국민이 동의하지 않는 정책으로, 국시(國是)로, 심지어 도덕으로 강요하는 전체주의에 나는 반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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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요만큼의 측근 비리도 없다”는 문재인 청와대

    권력은 궁극의 최음제(aphrodisiac)라고 했다. 현실주의 외교의 대가, 헨리 키신저가 들려준 명언이다. 우리나라에선 ‘정치는 연애’로 보면 맞을 것 같다. 김어준이 2011년에 쓴 책 ‘닥치고 정치’에 등장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문파의 감정으로 이보다 절절한 건 없다. 정치학 박사인 이철희 대통령정무수석의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다. “요만큼의 권력 비리나 측근 비리가 없잖아요.” 그는 6일 유튜브 채널에서 손가락 한 마디를 내보이며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처럼 주변 관리도 잘되고 부패 스캔들도 없는 정부는 없다는 거다. 이광철 전 민정비서관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에 개입한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것이 일주일 전이다. 그런데도 측근 비리가 없다니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다. 월성 1호기 원전 조기 폐쇄에 부당하게 관여한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도 직권남용 혐의로 6월 30일 전격 기소됐다. 심지어 2일로 예정된 검찰 인사에서 수사팀이 교체되기 직전이었다. 이로써 라임이나 옵티머스 관련 행정관 등은 빼고, 울산시장 선거 개입 같은 굵직한 사건으로 ‘문재인 청와대’에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비서관급 이상 고위직만 12명이 됐다. 문 대통령은 ‘세계적 아티스트’ 아들이 하나뿐이어서 ‘무슨 무슨 트리오’ 소리가 안 나왔지, 대통령 사위까지 치면 무슨 소리가 나올지 모를 일이다. 게다가 내막을 들여다보면 모두 문 대통령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간단치 않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은 문 대통령의 ‘30년 친구’인 송철호 울산시장의 당선이 ‘소원’이라는 말 한마디에 대통령비서실 조직 8곳이 나섰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역시 언제 가동 중단하느냐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서 비롯됐음이 지난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김학의 사건 또한 “검경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규명하라”는 대통령 하명에 따라 시작된 사건이었다. 특히 김학의 사건은 인권에 관한 문제여서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다. “검찰을 개혁하겠다는 세력이 법치주의를 무시하고 기본권을 침범하는 행태를 함부로 자행했다면, 그러한 검찰개혁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민변 출신 권경애 변호사가 최근 발간한 ‘무법의 시간’에서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한 나쁜 사람도 법이 정한 절차와 한계를 넘어 처벌할 수는 없다.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해 국가가 정해둔 법치주의이고 헌법의 대원칙이다. 문 정권은 불법으로 김학의를 붙잡음으로써 적법절차 원리와 헌법의 법치주의를 무너뜨린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정권에 밉보인 사람은 적법절차와 법치주의와 상관없이 얼마든지 잡아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권 변호사는 용감하게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재인의 운명’과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 권양숙 여사나 형님 노건평 등 가족과 측근의 부패 때문이 아니라 검찰과 언론 때문이라는 프로파간다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정치적 적을 악마화해서 집단 내부의 공격적 열정을 결집시키는 것이 파시즘이다. 노무현 트라우마를 바탕으로 “우리 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는 달님 신드롬이 나왔다는 점에서 ‘문재인 파시즘’은 한 수 위라고 봐야 한다. 덕분에 문 대통령은 공수처 설치와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검찰‘개혁’에 성공했다. 수혜자는 단연 문 대통령이다. 줄줄이 기소된 전현직 비서관은 물론 최종 몸통인 문 대통령 자신을 향한 수사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문재인 파시즘’은 최소한 20년 장기 집권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지만 국민은,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후퇴를 눈뜨고 지켜보는 상황에 처해버렸다. 1년 반 전 “조국 사태가 부끄럽다”며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이철희는 이제라도 ‘권력 중독’을 깨닫기 바란다. 그는 “청와대나 정부는 대통령이 법”이라고 했지만 대통령이 마음대로 통치하는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시민 개개인의 권리가, 자유가, 인권이, 기본권이 지켜지는 나라를 위해 우리는 촛불을 들었던 거다. 이철희는 요만큼의 측근 비리도 없다고 손마디를 내밀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잘라내야 한다. 그것이 정치학 박사로서 ‘문재인 파시즘’ 근절에 손톱만큼이라도 기여하는 길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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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중국공산당 100년과 더불어민주당 ‘100년 집권론’

    7월 1일 오늘은 중국공산당(중공) 창당 100주년이다. 대한민국 건국을 놓고도 우리는 1919년이 100주년이네, 아니네 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남의 나라, 그것도 건국도 아닌 집권당의 창당 100주년을 놓고 경사 났네 할 일인지 잠깐 고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뭐가 그리 급했는지 신년 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전화로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경하(慶賀)를 했다. 2020년 10월 시진핑이 “중국 인민지원군이 정의의 기치를 높이 들고 북한 인민과 군인들과 함께 싸웠다”며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의 승리는 정의의 승리이자 평화의 승리”라는 우리가 듣기엔 염장 지르는 말을 했는데도 말이다(중국 헌법상 중국 군대는 국가의 군대가 아닌 공산당의 군대다. 중국이 ‘참전’했다는 빌미를 안 주려고 인민‘지원군’의 탈을 썼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 건국 이래 일당독재, 축하할 일인가‘색깔 빼고’(분명히 강조했다) 순전히 당(黨)만 보면, 중공은 더불어민주당의 전범(典範)일지 모른다. 작년 총선 9개월 전 양정철 당시 민주연구원장은 중공 중앙당교에서 뭔가를 벤치마킹한다며 보도자료까지 뿌렸다. 민주당 청년조직인 전국청년당은 지난달 28일 중공 청년조직인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과 온라인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물론 중공 창당 100년을 기념해서다. 우리처럼 당명까지 수시로 바뀌는 나라에서 100년이나 그 이름을 유지해온 중공은 부럽기…라기보다 주목할 만한 정당인 건 분명하다. 집권당이 오래, 계속 집권하는 것을 대한민국 대통령이 주목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연 진심으로 축하할 일인가?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1조는 ‘중국 공산당의 영도는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다’라고 적시돼 있다. 이 나라는 1949년 중공에 의해 건국됐고 72년째 영도 중이다(심지어 조선노동당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73년째 영도하고 있다). 우리는 이를 일당독재라고 부른다. ● 리영희 제자 수십만이 나라의 주인이다2012년 11월 15일 만면에 웃음을 띠고 중공 중앙위원회 총서기에 등극한 시진핑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실현”을 선언했다. 2017년 집권 2기 때는 창당 100년인 2021년에 샤오캉(小康·모든 인민이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을, 신중국 100주년인 2049년까지 중국몽 달성을 또 선언했다. 2년 전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100년 집권론’을 밝힌 바 있다. “202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이를 기반으로 2022년 대선에서 재집권해 한반도 평화를 가져오는 100년이 전개돼야 한다”는 거다. 어쩌면 지금 문 정권이 전개하는 모든 일이 바로 ‘100년 집권’으로 가는 대장정일지 모른다. 세계가 황당해하는 문 대통령의 북한 김정은 평가, 정권 수사 인력들을 모조리 좌천시킨 검찰 인사, 내 돈 아니니 마구 퍼준다는 황당 추경도 이런 시각에서 보면 아주 쉽게 이해 가능하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분명히 강조했다, 유머라고!) 따지고 보면 민주당과 중공은 묘하게 닮은 점이 없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문 대통령도 감명 깊게 읽었다는 ‘전환시대의 논리’ 저자 리영희는 “수십만을 헤아리는 전국의 ‘전론(轉論)’의 사상·정신적 제자들이 사회와 나라의 주인으로 자랐다”고 2006년 개정판 서문에서 자랑한 바 있다. 그렇다면 제대로 배워볼 일이다. 창당 100주년을 맞아 외신이 쏟아낸 중공의 힘은 다음과 같다. ● 중공, 세상에서 제일 잘 적응하는 정당소련은 1991년 공산당과 함께 붕괴했다. 거꾸로 중국은, 중공은 더욱 번창했다. 권력 유지를 위해선 뭐든지 한다! 세상에서 제일 잘 적응하는 정당이기에 소련보다 오래갔다는 게 ‘뉴욕 서평’의 분석이다.중일전쟁 때 중공은 국공합작으로 되레 조직을 키웠다. 1970년대부터는 미국과 손잡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여 결국 소련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시장을 개방하면, 소득이 올라가면 자유도 강물처럼 흐를 거라던 서방의 기대는 착각이었던 것이다. 덕분에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8년마다 두 배씩 뛰어올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라가 됐다. 이젠 개인정보 따윈 우습게 여기는 인권의식에다 최첨단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시켜 역사상 가장 강력한 감시 시스템으로 놀라운, 심지어 끔찍한 디지털 전체주의를 구현할 태세다. ● 이보다 더 무자비할 순 없다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중국 공산주의자들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독재자들”이라며 첫째 비결을 무자비함이라고 했다. 1989년 톈안먼 사태 때 무자비한 진압이 단적인 예다. 2차 세계대전 종전 당시로 돌아가 보자. 승전국은 미국 영국 소련과 함께 중국의 국민당 정부였다. 국공내전에서 국민당이 패배한 이유가 부패하고 무능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일본의 엔도 호마레 쓰쿠바대 명예교수는 종전 무렵 만주국 수도 신징(지금의 창춘)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 한 사람이다. 그때 일곱 살짜리 꼬마였던 그는 1948년 5월 23일부터 10월 19일까지 5개월간 중공군이 창춘을 무자비하게 포위해 최소한 12만 명, 국민당 발표로는 65만 명이 굶어죽는 홀로코스트가 벌어졌다고 ‘모택동, 인민의 배신자’라는 책에서 증언했다. 시체가 산처럼 쌓이는 생지옥에 전세가 역전되면서, 중공군은 단숨에 중국을 제패하고 1949년 10월 마오쩌둥은 신중국 탄생을 선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면 전체주의냐이런 중국 턱 밑에서 대한민국이 건국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온 것은 기적이었는지도 모른다. 국민의힘에 따르면, 문 정권이 최근 대통령직속 탄소중립위원회에 제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에는 북한을 경유해 심지어 중국에서 전기를 수입하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니 통탄할 일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을 겨냥해 “우리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와의 싸움 속에 있다”고 지난 5월 미 공군기지에서 연설했다. “시진핑은 2035년 이전에 중국이 미국을 패배시킬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독재체제에선 결정을 빨리 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인권과 자유와 이상(理想) 위에 세워진 나라다.”바이든이 특히 시진핑 앞에 자신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12년 시진핑이 정적을 꺾고 중공 총서기로 올라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바이든이기 때문이다(이 부분은 다음번에 쓸 예정이다). 시진핑이 강박적으로 내부 통제를 하는 것도 어쩌면 중공이 ‘종이호랑이’이기 때문일 수 있다. 시진핑이 중공 간부들을 이끌고 충성맹세를 하는 비디오를 보라. 조폭도 아닌 최고지도자들이 당기(黨旗) 앞에서 “배신하면 죽는다”라니, 섬뜩하지 않은가.● 2022년 대선, 중국처럼 될 것인가그렇다고 중국과 상종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중국 앞에 작아질 것이 아니라, 중국처럼 일당독재로 갈 것이 아니라, 더 자유롭고 더 민주적으로 본때를 보였으면 좋겠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다시 한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는 2020년 논문에서 “대통령이 초집중화된 권력을 통해 통치해 삼권분립을 불가능하게 하고 법의 지배가 가능하지 않은 ‘전제정’적 상황을 만들어낼 위험이 크다”고 지적을 했다. 해답은 대통령 권력의 축소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대선은 우리나라가 중국처럼 될 것이냐 아니냐의 선택일 수 있다. 삼권분립도 없고 법치도 없는 나라, 성인 인구 10%도 안 되는 최고 엘리트 공산당원만 출세할 수 있는 나라, 최고지도자에 대해 비판적인 소리나 생각을 하면 몸조심해야 하는 나라에선 정말이지 100년은커녕 100일도 끔찍하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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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문 정권의 모습은 어디 정상적인가

    김부겸 국무총리가 첫 국회 답변에서 맞는 말을 했다. “사퇴한 지 얼마 안 된 전직 검찰총장과 현직 감사원장 등 소위 권력기관 수장들이 대선에 뛰어드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22일 여당 의원의 질문에 대해서다. “두 자리가 가져야 할 고도의 도덕성, 중립성을 생각해 본다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임기를 보장해준 취지 자체가 바로 고도의 도덕성과 중립성을 지키라는 취지였는데 그런 부분들이 지켜지지 않은 것은 안타깝다.” 문재인 정부에서 옳은 말 듣기도 오랜만이어서 모처럼 신선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시침 뚝 떼고 입 다문 건 안타깝다. 문 정권이 임기만 보장했을 뿐, 권력기관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사정없이 흔들었다는 사실 말이다. 문 대통령이 ‘우리 윤석열 총장님’에게 2019년 7월 25일 임명장을 주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돌쇠 같은 윤석열은 괄호 속에 들어 있는 (나와 내 측근은 빼고)를 못 알아먹고 8월 27일 조국 일가 강제 수사에 들어가 열흘 만에 정경심 교수를 동양대 표창장 위조 혐의로 기소한 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흘 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2019년 10월 15일 ‘나쁜 선례 남긴 조국 사태… 갈라진 사회, 상처 입은 민심’부터 2021년 6월 9일 ‘김오수도 “정치중립 훼손”이라는 박범계의 검(檢) 조직개편안’까지 검찰의 독립성 파괴 문제점을 지적한 동아일보 사설이 무려 32개다. 2020년 초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추미애는 일 년 내내 윤석열을 찍어내겠다고 미친 듯 칼춤을 추었다. 그랬던 추미애가 어제 대선 출마선언에서 “사람이 돈보다 높은 세상, 땅보다 높은 세상을 향해… 추미애의 깃발을 들고자 한다”고 당당 뻔뻔하게 밝혔다. 대한민국 검찰총장에게 “장관 지시를 잘라먹었다”던 사람이 대통령 되어선 무슨 수로 국민을 드높이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최재형 감사원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공직자이자 문 정권에는 가장 아픈 아킬레스건이다. 그가 그 자리에 없었다면 문 대통령의 책임까지 시퍼렇게 지적한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타당성’ 감사보고서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감사원법 2조는 ‘감사원은 대통령에게 소속하되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진다’고 돼 있다. 2019년 10월 감사원이 월성 1호기 감사에 들어가자 감사원 독립성을 뒤흔든 것은 집권세력이었다. 최재형은 “이렇게 심한 감사 저항은 처음”이라며 385일이나 ‘감사 투쟁’을 벌이면서도 그래도 조용하게, 감사원장까지 6명의 감사위원 중 확실한 친여 위원이 3명인 합의제 기관에서 모두의 동의를 받아서는, “월성 1호기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이냐”는 문 대통령의 발언을 적시해 두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나중에 세상이 바뀌면 문 대통령의 법적 책임까지 물을 수 있도록. 그 7000쪽 분량의 수사 참고자료를 받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가 지난달 청와대 수사에 나서기는커녕 최재형 수사에 착수했다는 건 경악할 일이다. 그것도 환경단체의 고발에 따른 직권남용 혐의 수사다. 국민을 개돼지로 알거나 최재형을 대통령 후보로 나가라고 꽃가마를 태워주는 일이나 다름없다. 이런 ‘아사리판’에서 나라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최재형은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할 것이다. 선출된 독재자들이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방법이 바로 심판 매수다.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이 생명인 검찰, 감사원, 헌법재판소, 사법부, 선거관리위원회, 권익위원회 등을 코드인사로 채워 넣는다고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이 일러주고 있다. 그래서 나는 윤석열과 최재형뿐 아니라 올 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에 합헌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유남석 소장도 부끄러움을 안다면 사직하고 대선 출사표를 내는 상상을 해봤다. 김명수 대법원장도 대선 출사표까지는 모르겠고, 사표는 제발 내줬으면 한다. 오늘도 여권에선 최재형을 두고 “문 대통령의 선택을 받아 임명된 고위공직자들이 야권 대선 주자가 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가 나온다. 대한민국을 문씨 왕조로 아는 모습은 정상적인가. 헌법기관을 사조직처럼 여기는 집권세력은 제정신인가.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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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文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진짜 이유

    영국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방문했다. 두 나라를 찾아갈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태평성대 시절이면 또 모른다. 코로나19에다 백신 부족사태 때문에 국민은 옴짝달싹도 못 해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른다. 믿고 싶진 않지만 김정숙 여사한테 벨베데레궁 국빈 만찬 같은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기획한 건 아닌지, 몹시 궁금했다. 그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됐다. 바로 문 대통령이 15일 2박 3일간의 오스트리아 국빈방문을 끝내고(유럽의 소국치고는 일반인 단체관광으로도 매우 긴 기간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서다. ● 좌우 연립정부로 완전한 통일국가를? “오스트리아는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지만 좌우를 포괄한 성공적인 연립정부 구성으로 승전국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이후 10년의 분할 통치 끝에 완전한 통일국가를 이뤘습니다. 지금도 이념을 초월한 대연정으로 안정적인 정치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여기에서 끝났으면 오스트리아에 대한 덕담이구나,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는 선도국가,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어 세계사에 새로운 시작을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충분한 자격이 있고 해낼 능력이 있습니다. … 이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을 때라는 생각을 합니다.” 즉 문 대통령은 여야가 함께하는 대연정을 생각한 게 아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오스트리아는 성공했고 한반도에선 실패했던 좌우합작이 이제 우리 차례라는 거다. ‘평화의 한반도’라는 명분으로 남북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을 임기 내 돌이킬 수 없게 만들 작정이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공산주의와 좌우합작은 불가능하다오스트리아는 나치 점령국이자 패전국으로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분할 점령됐던 독특한 나라다(그래서 미국과 소련에 분할점령됐던 한반도와 비교되기도 한다). 소련은 1945년 4월 빈을 비롯한 오스트리아 동부지역을 장악하자마자 서둘러 사회주의자 카를 레너를 앞세워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다른 연합국이 진입하기 전에 소련의 영향력을 굳히려는 속셈이었다. 사회당 출신으로 제1공화국(1918~1934년) 총리를 지낸 레너는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의 적(敵)임을 간파한 그는 한때 적대세력이던 천주교 보수계의 국민당과 함께 공산당을 적절히 견제했고, 임시정부 관할권 밖의 정치 지도자들과 유대를 강화해 오스트리아를 공산화의 마수로부터 지키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2006년 11월 안병영 연세대 교수가 정년퇴임 고별강연에서 강조한 얘기다. 이 같은 정치인들의 좌우협력 덕분에 연합국 분할점령에도 불구하고 1945년 11월 25일 자유총선에서 오스트리아 전역을 관할하는 단일정부가 수립됐다. 보수계 국민당이 85석, 사회당이 76석을 차지한 반면 공산당은 꼴랑 4석에 불과했다. 1947년 공산당이 제 발로 내각을 떠나면서 오스트리아에선 이념을 초월한 좌우합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같은 민족, 다른 나라 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쓴 ‘완전한 통일국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만일 ‘같은 민족은 같은 나라여야 완전한 통일국가’라고 문 대통령이 믿고 있다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통일되어야 마땅하다.1919년 1차 세계대전 뒤 오스트리아 임시정부는 독일과의 병합을 강력히 주장한 바 있다. 전쟁 패배로 경제난이 극심해진 나머지 같은 게르만 민족끼리 합치지 않는 한, 살 방도가 없다고 믿었고 승전국 반대로 못했을 뿐이다. 1934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이 무너진 것도 또다시 독일과 병합하자는 전체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이 가까워졌을 때, 오스트리아와 관련해 연합국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과제 중 하나가 독일과의 분리였다(박수희, 2021년, ‘오스트리아식 영세중립화 통일방안의 한반도 적용 가능성에 대한 재고’). 다시는 게르만 민족이 합치려고 꿈도 꾸지 않게끔 한 민족 두 국가로 끊어두고 싶었을 것이다(세계평화를 위해서). 복잡하고, 또 슬픈 문제이지만 우리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반드시 통일해야만 하는가. 심지어 북조선은 김정은 왕조와 핵을 가진 김일성민족인데도? ● 우리의 좌우합작은… 실패해서 다행이다물론 문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동부지역을 분할 점령 중인 소련군을 내보낸 것을 완전 통일로 봤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문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이 미군에 분할 점령돼 있다고 믿고 사력을 다해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선언을 추진하는 것인지를. 우리나라에서도 통일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1946년 초부터 1947년 말까지 좌우합작운동이 존재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오스트리아 상황과 다르다. 소련군의 목표는 한반도 전체에 걸친 좌익정부를 세우는 것이었다. 신탁통치반대운동을 벌인 우익은 제외하려 했다. 반면 미군의 목표는 김규식 여운형 등 중도파를 중심으로 미국의 민주당 정부 같은 진보적 정부를 세우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1945년 오스트리아에는 레너라는, 공산당의 속성을 꿰뚫어본 온건 사회주의자가 존재했다. 우리나라에선 천만다행히도 공산당의 속성을 꿰뚫어본 민족주의자들이 존재했다. 독립운동가이자 미군정에서 경무국장을 지낸 조병옥은 “민족진영과 공산진영이 혈투하는 한국의 사회적 현실에 비춰 볼 때 중간노선이라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 남북연방제 개헌으로 갈 참인가2018년 판문점선언 이후 오스트리아식 통일과 영세중립화에 관한 연구와 한반도 적용 주장이 스멀스멀 나오기는 했다. 주로 좌파학자들 사이에서다. 그래도 그것이 문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방문과 소감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젊은 날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쳤던 집권세력이다. 설령 내년 대선에서 진다 해도 순순히 정권을 내놓기 쉽진 않을 것이라고 걱정은 했다. 그렇다고 해서 ‘평화의 한반도’를 만드는 좌우합작, 이를 위한 체제변혁이나 심지어 개헌 같은 판 바꾸기를 궁리할 수도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스트리아의 좌우연정과 통일정부, 여기서 이어지는 평화의 한반도에 대한 상념을 문 대통령이 혼자, 즉흥적으로 페이스북에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 정권이 앉으나 서나 북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문 대통령 위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그림자 정부’가 또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알고 싶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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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이준석과 ‘10원 한 장’의 公正

    1985년생 이준석이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 11일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36세 최연소 당대표가 된대도 한껏 기뻐할 수 없을 것이다. 내년 3월 9일 국민의힘 대선후보를 당선시키지 못하면 천하 죄인으로 정계 은퇴를 해야 할 운명이다. 물론 다른 후보자들도 당대표가 되면 혼신의 힘을 다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실패해도 지금껏 그래왔듯, 다음에 또 출마하거나 외유를 하거나 탈당 또는 마라톤을 하면 된다. 이준석은 다르다. 그는 방송 인터뷰에서 “내게 당대표는 독이 든 성배”라며 “유승민이든 윤석열이든 홍준표든 아니면 안철수든 누구든 대통령을 만들어야지, 대통령 후보를 만드는 게 내 목적이 될 순 없다”고 했다. 대권 창출을 못 하면 조기 정계 은퇴를 할 각오라는 얘기다. 젊은 세대의 정치는 이렇게 다르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이 모처럼 핫하고 힙해진 이유다. 세대교체 바람과 함께 이준석이 몰고 나온 또 하나의 화두가 공정한 경쟁이다.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 정세균 전 총리는 “대선 관리라는 게 간단하지 않다. 우리나라의 특별한 문화인 장유유서(長幼有序)도 있고…” 했다가 당장 이준석한테 “시험 과목에서 장유유서를 빼는 것이 공정한 경쟁” 소리를 들었다. 발칙하다. 정권교체만 할 수 있다면 어린 고양이면 어떻고 늙은 고양이면 어떠냐는 소묘노묘론(少猫老猫論)이 나올 판이다. 일각에선 공정 아닌 ‘경쟁’에 방점을 찍고 “이준석은 실력주의자”라고 공격한다. 이 정권처럼 운동권 네트워크끼리 봐주는 패거리주의자나 시대착오적 마오쩌둥주의자보다는 백배 낫다. 실제로 이준석은 교육봉사로 뒤처진 아이들을 공부시켜선 스스로 꿈을 이루게 도와준 경험도 있다. 여자라고, 청년이라고, 계속 약자로 살게 만드는 할당제보다는, 공정한 실력주의가 훨씬 유쾌하고 정의롭다. 2022년 대선을 관통할 시대정신이 공정이다.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는 다시 입에 올리기도 싫지만 이게 무너졌기에 반드시 세워야 하는 거다. 계간 철학과 현실 봄호는 ‘공정의 문제와 능력주의’ 특집에서 문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에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붕괴가 낳은 불공정과 부정의가 심각해져 공정과 정의가 다시 시대정신으로 부상했다고 지적했다. 2019년 7월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취임사를 통해 강조한 핵심 가치가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이었다. 그는 사퇴 직후 터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부동산 투기 사태 관련 인터뷰에서도 “이 나라 발전의 원동력은 공정한 경쟁이고 청년들이 공정한 경쟁을 믿지 못하면 나라 미래가 없다”고 개탄했다. 심지어 차기 대선주자로 윤석열을 지지하는 전문가들 모임의 이름도 공정과 상식이다. 문제는, 문 정권의 공정은 다르다는 점이다. 내로남불이라는 ‘선택적 정의’가 횡행한다. 이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면 국민의힘이라도 당헌·당규를 공정하게 적용해 국민 분노를 풀어줘야 옳다. 차기 대선 경선은 7월 12일부터 예비후보 등록을 시작해 전국 순회경선과 온라인·현장투표를 거쳐 11월 9일 대통령후보를 선출하도록 돼 있다. ‘윤석열 대망론’에 대해선 나도 기대가 크다. 그러나 아직 입당 의사도 밝히지 않은 특정인을 기다릴 게 아니라 ‘버스 정시 출발’해야 한다는 당대표 후보는 이준석 정도다. 나경원은 대선 경선 일정을 추석인 9월 21일 이후로 늦춰서 명망가들을 모두 영입해 원샷 경선을 치르자고 주장한다. 하지만 윤석열을 위해 제1 야당 당헌·당규를 어기는 건 과연 공정한가.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가 2012년 단일화 놀음을 하면서 국민을 희망고문했던 것과 뭐가 다른가. 어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기념관 개관식에 참석한 윤석열은 “(재판 받는) 장모가 10원 한 장 피해 준 것이 없다고 말한 입장 그대로인지” 묻는 기자들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며칠 전 “검사의 전문적 식견으로서 사안을 들여다보고 판단했다면 나중에 그 결과까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했던 이준석 말은, 아프지만 옳다. 내년 대선에서 우리는 법치와 민주주의를 무너뜨린 제왕적 대통령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불행한 역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윤석열은 10원 한 장의 불의도 미리 밝힐 의무가 있다. 11일 누가 국민의힘 당대표가 되든 대선 경선도, 대선도 공정해야 할 것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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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국가채무 속이지 않았다”는 文정권, 못 믿겠다

    지난번 (https://www.donga.com/news/dobal/article/all/20210601/107219613/1)이 나간 다음 날, 기획재정부 재정혁신국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팩트가 잘못됐다는 거다. 논평은 자유라 해도 팩트는 신성한 법이다.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자료를 보내주면 고쳐 쓰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밤 11시26분에 기재부 사무관이 정말 자료를 보내왔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다니, 감동이었다(그 시간에 정부부채를 줄이는 데 힘썼다면 더욱 감동적이었을 것이다).그렇다고 정부 자료를 그대로 받아쓰는 건 기자(대기만 하는 대기자^^)가 할 일이 아니다. 건설적 논쟁은 나라경제는 물론 도발의 발전과 지적 자극에도 도움이 된다. 다시 살펴본 국가채무의 진실은 다음과 같다.● 국가채무비율, 국제기준과 다른 건 맞다‘국가채무비율까지 국민 속일 텐가’라는 제목부터 잘못됐다는 게 기재부 주장이다. “정확히 국제기준에 따라 국가채무비율(D2)을 산출하고 있고, 결단코 국민 속이는 일은 없다”는 것이다. 지난번 칼럼에서 나는 “국제통화기금(IMF)이 2014년 개정한 정부재정통계(GFS)는 국가채무(D1)에 일반정부 채무(D2), 공공부문 부채(D3)까지 합산하도록 기준을 정했다”고 썼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달랑 국가채무(D1·2018년 680조5000억 원)만 따져 국내총생산(GDP) 대비 35.9%라고 발표하는 게 국민을 속이는 일이라고 나는 봤다. 정부가 국제기준에 따라 국가채무를 계산하고 있다면, 2018년 국가채무는 759조7000억 원(D2)이라고 발표했어야 마땅하다. 비영리공공기관부채를 포함한 일반정부 채무가 680조5000억 원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기재부가 담당하는 국가채무 지표엔 D2가 없다<표 참조>. 국제기준대로 산출하고 있다면서 굳이 궁금한 사람만 D2를 찾아보라는 건 국민 속이는 짓이 아니고 뭔가. ● 홍남기 별명은 왜 ‘홍두사미’인가“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 대비 60%로 정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확 늘릴 모양이다…작년 10월 시행령을 만들 때 적용시기를 2025년부터로 정했는데 2차 추경까지 하면 2024년 벌써 60%를 넘기 때문이란다.” 지난번에 나는 이렇게 썼다.이에 대해 기재부는 “수정계획 전혀 없음”이라고 밝혔다. 제발 그러기를 바란다. “2024년에도 60%를 넘지 않도록 총량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고마울 따름이다. 그러나 경제부총리 홍남기 별명이 ‘홍두사미’다. ‘홍백기’라고도 한다. 재난지원금이든 4차 추경이든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척 하다 집권세력이 밀어붙이면 번번이 물러났던 공직자가 이 나라 곳간 지기다. 기재부 공직자들은 그런 장관이 X팔리지 않은지 묻고 싶다. 2018년 말 적자국채 발행 문제로 괴로워하다 양심선언까지 했던 신재민 같은 기재부 사무관이 더는 없단 말인가.● 기재부 지적이 맞은 부분도 있다 내가 잘못 쓴 부분이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14년 개정한 정부재정통계(GFS)는 국가채무(D1)에 일반정부 채무(D2), 공공부문 부채(D3)까지 합산하도록 기준을 정했다‘고 썼는데 ’합산‘이라는 게 틀렸다. 기재부 지적대로 D2는 D1을 포괄하고, D3는 D2를 포괄한다(지적 감사합니다). 따라서 ”선진국 하는 대로 D1+D2+D3로 계산하면 2018년 국가채무는 2017조9000억원, GDP대비 106.8%로 훅 늘어난다“는 칼럼의 문장은 잘못됐다. D1, D2가 포함된 D3가 1078조다. 중요한 건 다음이다. 국민에게 정말 무겁고 무섭게 다가오는 부담이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부족분을 혈세로 채워주는 연금충당부채인데 이게 939조9000억원이나 된다. 그래서 D3에 연금충당부채까지 합쳐 ”2018년 국가채무는 2017조9000억원, GDP대비 106.8%로 훅 늘어난다“고 칼럼에 쓴 것이다. 이 대목에 대한 기재부 지적은 다음과 같다. ”2019년 기준 D3는 (GDP대비) 59%임. 국제기준상 D3에 연금충당부채가 포함되지 않음.“● IMF 2014년판 정부재정통계 안 쓴다그건 기재부 주장일 뿐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국가채무의 국제비교와 적정수준‘ 보고서에서 ”OECD와 EU회원국들은 모두 IMF에서 2014년에 개정한 GFS 기준을 적용해 공기업 적자나 공적연금 충당금 등도 국가부채에 포함해 관리하고 있음“이라고 지적했다(2020년 9월).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IMF가 1986년에 제정한 ’협의의 국가채무‘ 개념을 따르고 있다는 거다.IMF는 2012년에도 ’공공부문 부채 기준‘ 산출 가이드를 세계은행, OECD 등 9개 주요 국제기구와 공동으로 내놓은 바 있다. 여기엔 일반정부 부채 뿐 아니라 공기업부채와 공무원연금충당부채까지 포함된다. 그럼에도 기재부는 2014년 IMF 기준이나 2012년 공공부채 기준을 적용한다고 절대 언급하지 않았다. 당연하다. IMF의 2001년 지침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2015년만 해도 연금충당부채를 IMF매뉴얼대로 일반정부부채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됐었다. 그러나 문 정권에선 이런 논의가 쑥 들어갔다. 심지어 지난해 기재부는 이런 보도자료까지 날렸다. ”GFS’14는 GFS‘01 내용을 일부 보완한 것으로 각각의 기준에 따른 부채비율 수치가 거의 동일하여 OECD국가도 혼용.“● 연금충당부채 왜 세금으로 메워주나”그럼 왜 한국은 (2014년) 바뀐 기준을 적용하지 않느냐. 다른 선진국과 달리 공기업 부채와 공무원연금이 너무나 많아서다. 한마디로, 국민 속이는 짓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칼럼의 이 대목에 대해 기재부는 ”우리나라는 국제기준에 따라 D2, D3를 산출해 공개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13개 국가만이 연금충당부채를 포함한 재무제표상 부채를 산출하고 있으며 이 경우에도 우리나라 재무제표상 부채비율은 주요국보다 낮은 수준. 국민 속이는 일 결코 없음“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나도 다시 한 번 강조하자면, 한국은 미국 같은 기축국가가 아니다. 영국이나 일본처럼 미국의 막강한 동맹도 못 된다. 백번을 양보해 한국이 미·영·일보다 부채비율 적어 만만세라고 치자. 그럼 나랏빚도 아닌데 왜 국민 세금으로 공공귀족 연금을 메워줘야 하나? 공무원연금법과 군인연금법은 국가 지급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국민연금은 그런 규정 없다). 그래서 나랏빚이라는 거다. 감사원이 2월 발표한 국가결산검사보고에 따르면, 정부가 대 준 보전금이 2019년 공무원연금 2조1000억 원, 군인연금 1조6000억 원이나 됐다. ● 재정위기 몰고 오는 공무원연금부채 국민 혈세로 대줘야 할 연금충당부채는 앞으론 더 늘어난다. 공공노조에 포획된 문 정권이 공무원연금 개혁은 외면한 채 공무원 증원만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버티고 있는 감사원은 ”연금충당부채 등은 해외 사례 등을 고려해 국가채무(D1)나 일반정부부채(D2), 공공부문 부채(D3) 등에 포함하고 있지 않으나 미래의 재정위험 등에 대비해 공적연금 관련 부채 등에 대한 관리가 중요하다“고 못 박았다. 10여 년 전 PIGS(포르투갈·이태리·그리스·스페인) 국가에서 재정위기가 발생한 건 재정지출 확대로 인한 정부부채 급증 탓이 컸다. 특히 공적연금 지출이 GDP의 9~15.4%나 되는데도 공무원 서슬에 줄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 같은 나라가 세계은행 지원을 받는 조건으로 ’강요된 연금개혁‘을 해야만 했던 이유다. ● 나랏빚 절반은 공공귀족 때문이다국가채무, 특히 공무원연금 얘기만 나오면 기재부는 격렬하게 반박한다. 그런 에너지를 나랏빚 줄이는 데 쓰면 좋으련만 기재부는 오히려 국민연금 개혁이 시급하다는 주장까지 했다(공무원연금 아닌 국민연금 개혁을 강조하면 나부터 죽창 들고 나선다고 말해두었다).기재부는 연금충당부채를 재무제표 계상하는 나라가 한국을 포함해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13개국뿐이라고 자랑한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한국을 제외하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부분통합해서 운영하고 있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공무원연금을 우리처럼 따로 운영하면서, 특공(특별공급) 아파트 특혜까지 누리는 나라는 없단 말이다. 구한말 외국인들은 이 나라를 ’흡혈귀가 지배하는 나라‘라고 했다. 관료들이 백성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뜻이다. 위정척사파 같은 시대착오파가 지배하는 문 정권도 다르지 않다. 공공귀족들은 나랏빚이 늘수록 연금도 늘어 좋겠지만 국민은 피눈물이 난다. 내 자식이 짊어져야할 부담이 너무 커서.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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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국가채무비율까지 국민 속일 텐가

    2차 재난지원금이든, 대선용 재난지원금이든, 이번엔 주는 대로 받을 작정이다. 작년 4월 첫 전 국민 지급 때는 신청 안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직장 탄탄한 나 같은 사람이라도 ‘자발적 포기’를 해야 나라 살림에 보탬이 될 거라는 소박한 선의는 갖고 있었다. 지나고 보니 ‘자발적 기부’는 달랑 0.2%였다(전체 수령금 13조6000억 원 중 겨우 282억 원). 대통령 아들도 긴급 예술지원금이라는 ‘공돈’을 1400만 원이나 받아먹는 나라에서 괜히 시민의식을 발휘할 이유가 없다 싶어졌다. ● 2021년 채무비율 48.2% 아닌 120%이상정부가 국가채무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로 정한 ‘한국형 재정준칙’을 확 늘릴 모양이다. 작년 10월 시행령을 만들 때 적용 시기를 2025년부터로 정했는데 2차 추경까지 하면 2024년 벌써 60%를 넘기 때문이란다. 매우 양심적인 정부 같지만 그 전에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국가채무비율 계산은 국제기준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2018년 35.9%였다는 국가채무비율을 국제기준대로 바꾸면 무려 106.8%다. 2021년 48.2%를 국제기준으로 고치면 120%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런데도 집권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이 80%수준이므로 한국형 재정준칙 60%가 타당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봉창을 두드리고 있다. ● 국제기준과 다른 국가채무비율 계산법국제통화기금(IMF)이 2014년 개정한 정부재정통계(GFS)는 국가채무(D1)에 일반정부 채무(D2), 공공부문 부채(D3)까지 합산하도록 기준을 정했다. OECD 회원국들은 다 이렇게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달랑 국가채무(D1·2018년 680조5000억 원)만 국가부채로 쳐서 35.9%라는 거다. 국제기준과는 달리 D2 즉 비영리공공기관부채를 포함한 일반정부 채무(2018년 759조7000억 원), D3 즉 비금융공기업 부채를 추가로 포함한 공공부문 부채(2018년 1078조 원), 그리고 비확정 부채지만 정부가 세금으로 채워줘야 하는 연금충당부채 939조9000억 원은 마치 정부가 갚을 의무가 없는 것처럼 국가부채가 아니라고 우기는 꼴이다. 선진국 하는 대로 D1+D2+D3로 계산하면 2018년 국가채무는 2017조9000억 원, GDP대비 106.8%로 훅 늘어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작년 8월 발표한 결과다. 공기업 부채 등 가장 최근의 자료로 조경엽 공공정책연구실장이 새로 계산한 2019년 국가부채비율은 111.1%였다.그럼 왜 한국은 바뀐 기준을 적용하지 않느냐.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공기업 부채와 공무원연금이 너무나 많아서다. 한마디로, 국민 속이는 짓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 야당 때는 “재정건전성 40%” 질타했던 文꼭 2년 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국가채무비율이 미국은 100%, 일본은 200%가 넘는데 우리 정부는 40% 안팎에서 관리하겠다는 근거가 뭐냐”고 물었다(2017년 기준 미국 136%, 일본 233%). 야당 대표 때인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지출을 3% 늘린 새해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자 “국가채무비율이 사상 처음으로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인 40%가 넘었다”고 맹비난했던 자신을 망각한 모양이다. 미국은 그래도 된다. 아무리 빚이 많아도 달러를 찍어 막을 수 있는 특권이 있어 국가부도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일본 국채 역시 국제금융시장에서 높은 신뢰를 받는 안전자산이다. 더구나 미국과 무제한 통화스와프 계약을 맺고 있는 한 몸 같은 동맹이다. 작년 3월 600억 달러(당시 환율 약 76조800억 원) 통화스와프를 맺었고, 6개월씩 연장해 9월 30일이 만기인 문 정권과는 차원이 다르다.● 홍남기 연금까지 대주고 싶지 않다 나라의 곳간지기여야 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홍남기는 심지어 “국가채무와 국가부채는 전혀 다른 개념”이라고 국민을 가르치려 들었다. 통상 ‘나랏빚’으로 지칭되는 국가채무는 국가재정법에 따라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갚을 의무가 있는 것이지만 공무원연금 같은 비확정 부채는 그렇지 않다는 거다. 우하하. 국가 의무가 없다면 작년 3조원의 공무원·군인연금 적자는 왜 피 같은 내 돈으로 메꿔줬는지 답하기 바란다. 공무원연금은 28년째 , 군인연금은 48년째 적자여서 세금으로 충당된다. 과거엔 공무원들 박봉이어서 혈세로 노후보장을 해줬다지만 지금 그들은 귀족이다. 문 정부 들어 공무원 숫자도 대폭 늘었다. 군대는 그래도 나라를 지킨다지만 특공(아파트) 특권까지 누리는 공공귀족은 국민의 피를 말리는 족속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백번을 양보해 코로나19 사태로 확장재정이 불가피하다고 치자. 그렇다면 국제기준대로 국가부채 계산부터 고치기 바란다. 그 다음에 한국형 재정준칙인지, K재정준칙인지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혈세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써댈 것이 아니라, 홍남기 당신 돈을 쓰듯 제대로 써달란 말이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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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나는 이준석 찬성이다

    자꾸 실실 웃음이 난다. 요새 국민의힘을 떠올릴 때 내가 그렇다. 별로 관심도 없고, 굳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당이었는데 갑자기 그 당이 재미있어졌다. 85년생 이준석이 당 대표가 돼 문재인 대통령과 영수회담 한다고 상상해보라. 얼마나 재미나겠나!나경원이나 주호영이나, 또는 홍문표나 조경태가 문 대통령과 백번을 마주 앉는대도 미안하지만 아무 느낌 없다. 획기적 결과 따윈 기대도 않는다. 내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면… 입당 안 할 것 같다. 하지만 이준석이 국힘당 대표라면 다르다. 생각지도 못한 정당이 될 것이다.물론 이 모든 건 상상이다. 당연히 정치를 좀 아는 이들 사이에선 그게 되겠어? 소리가 나온다. 그래서 정치를 모르는 내가 정리해보았다.● ‘0선’이 대표? 리더십 있겠어?그렇게 치면 0선인 윤석열도 대통령 못 한다. 윤석열은 선거 한번 안 해보지 않았나(새롭게 떠오르는 최재형 감사원장 역시 0선이다).국힘당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9년 초 0선인 황교안을 대표로 잘만 뽑았다. 2020년 총선은 황교안이 0선이어서 당을 말아먹은 게 아니다. 한국당 이미지에 꼭 맞는 꼰대여서 폭망한 거다. 이건 인품이나 능력과도 무관하다. 문 대통령은 어디 인품과 능력 보고 뽑았던가.32만 당원 전체가 참여하는 당 대표 본선은 예선과 다르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협위원장들 ‘오더’가 들어가면 TK 기득권 세력이 본때를 보여줄 것이란 예측이다. 아직도 그런 오더가 통하는 정당이면 대선 때 희망은… 없다.● ‘유승민 키즈’가 윤석열 모셔오겠어?이준석이 2019년 말 “유승민 대통령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 전과가 있어 당 대표가 되면 공정한 대선후보 경선 관리를 못 한다는 주장이다. 헹. 그때는 윤석열이 대선 주자로 뜨지도 않았을 때다. 겁 없이 법무부 장관 조국을 전격 수사해 정권에 미운털이 박히기 시작했을 뿐이다.설령 이준석이 유승민 키즈라 해도 당 대표 된 다음 대선 관리를 편파적으로 하진 않을 것이다. 그건 198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MZ세대(밀레니얼-제트 세대)한테 신앙과도 같은 ‘공정’에 어긋난다.친하다고 봐주는 구린 짓을 이준석이 할 리도 없다. 진중권과 친한 사이면서 격하게 페미니즘 논쟁을 벌인 걸 보면 모르겠나(에고.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단 말이 있긴 하다). 한때 보스는 영원한 보스라는 봉건적 의리에 목매달 것 같지도 않다. 자신을 정치로 이끈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고, 그래도 탄핵은 옳았다고 말한 걸 보면 안다.● 反페미당 되면 이대녀 잃지 않겠어?문 정권에서 진짜 지식인의 상징으로 거듭난 진중권이 이준석을 손절한 건 안타깝다. “특정 지지층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메시지를 계속 던지고 있다”는 비판이다. 페미니즘에 반감을 갖는 이대남(20대 남성)을 겨냥해 이준석이 여성할당제처럼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정책을 반대한다는 거다.최근 페미니즘의 격발성(激發性)을 모르지 않는다(그래서 나도 페미니즘 이슈를 피해 왔다). 손가락 모양 따위를 놓고 남혐이다 여혐이다 싸움을 벌이는 건 에너지 낭비라고 본다. 진중권-이준석, 신지예-이준석 논쟁도 끼어들고 싶진 않지만 (칼럼을 위해 굳이 밝히자면) 난 이준석에 가깝다.그래서 이준석을 찬성한다는 건 아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해서 현실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정책과 주장을 강요하는 좌파는 아주 신물이 난다(이 정권의 부동산정책이 대표적이다).페미니즘에 대해선 아무리 쓴대도 지면이 모자랄 게 분명하다. 다만 한마디만 하자면, 진중권은 기본적으로 좌파다(그의 글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다). 국힘당 대표가 진중권 노선을 따른다? 말이 되나? 이대녀(20대 여성) 표가 걱정이면 정책을 더 정교하게 잘 만들 일이다.● 당을 걱정하는 입장에선 또 다르다?그럼에도 이준석이 되면 당이 깨진다고 보는 이들이 꽤 있다. 국힘당을 매우 사랑하거나, 아니면 미워하는 측에서 주로 나오는 얘기다(자기네한테 위협적이니까 뽑지 말라는 역공작일 수도 있다).30대 당 대표 밑에서 어떤 원내 인사가 주요 당직을 맡겠느냐는 걱정은 이해한다. 그런 분은 제발 당직 맡지 말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정권교체를 하든 말든, 당직만 한 자리 하면 생큐라는 웰빙 인사가 너무 많아 지금껏 국힘당이 고 모양 고 꼴이었다.미안하지만 국민에게는 당신네 당보다 대한민국이 훨씬 더 중요하다. 국힘당이 깨지거나 사라진대도 다수 국민은, 괜찮다. 국힘당 지키자고 내년 대선 때 야권 후보 단일화를 못 해낸다면, 국힘당은 최소한 백 년은 야당이나 해야 할 것이다. 부디 그때 당직 맡아서 행복하게 늙어 죽기 바란다.● 2027년 대선 주자가 될 수도 있다!그리고 권력이라는 건 그렇게 몰랑하지 않다. 당 대표가 되면 사람은 모이게 돼 있다. 설령 이번에 이준석이 당 대표 못 된다 해도, 그는 이제 겨우 서른여섯 살이다. 2027년이면 마흔두 살! 이준석은 이미 신선한 40대 차차기 대통령감으로 우뚝 서버린 것이다.재기발랄과 건방을 넘나드는 이준석의 명석함이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진중치 못하고 말 많은 점이 걱정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건 걱정도 팔자인 꼰대 생각이다. 젊은 날 읽은 몇 권의 책(또는 의식화 교육)으로 평생을 우려먹으면서, 나이 먹어서도 싸가지 없는 집권세력보다는 이준석이 백 번 낫다(그럼에도 ‘겉으로 보이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전해주고 싶다).여기까지 썼음에도 국힘당 당원들이 이준석을 안 찍으면? 그럼 나도 대선에서 국힘당 안 찍으면 그만이다. 행운을 빈다. Good luck!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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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문 대통령은 왜 ‘親美·反中’으로 돌변했나

    미국서 문재인 대통령이 ‘전향’을 한 것 같다. 2003년 5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첫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53년 전 미국이 우리 한국을 도와주지 않았다면 저는 지금쯤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 국내외에 충격을 안겼다. 문 대통령의 돌변은 그때처럼 놀랍고 생경하다. 한 달 전 중국 보아오포럼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가 글로벌 거버넌스의 중요 가치와 원칙이라고 했던 문 대통령이다. 구동존이는 1955년 중국 저우언라이가 미(美) 제국주의 반대를 기치로 열린 반둥회의 연설에서 한 말이고, 중국공산당은 자기네 정치구호를 따라하는 표태(表態)를 충성맹세로 본다. 21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은 양국이 ‘국내외에서 민주적 규범, 인권과 법치의 원칙이 지배하는 지역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고 명시했다. 삼권분립 등 민주적 규범이 무너지고, 친문세력의 인권만 중시하며, 청와대는 치외법권의 원칙이 지배하는 국내에선 반갑고 고맙기 짝이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마침내 중화제국의 중국몽에서 깨어났다고 나는 혼자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어제 5개 정당대표 초청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8월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대면 훈련이 여건상 어렵다”며 사실상 반대를 밝혔다. 올 초 북한 김정은이 “3년 전 봄날로 돌아가려면 한미 군사연습을 중지하라”고 협박한 대로 굴종하겠다는 얘기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한국군 55만 명을 콕 찍어 코로나19 백신 제공을 밝힌 건 한미 훈련을 위해서라고 봐야 상식적이다. “한국군뿐 아니라 미군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 것만 봐도 안다. 북핵과 맞서는 장병들에게 오징어 없는 오징어국이나 먹이는 대통령이 대한민국 안보뿐 아니라 한미동맹에서도 핵심인 한미 훈련을 컴퓨터게임으로 격하시키는 형국이다. 그러고 보니 문 대통령이 왜 돌연 친미·반중으로 전향한 표태를 보였는지 이제 알겠다. ‘그놈의 남북대화’를 노려서다. 미국 측에 정통한 전문가에 따르면, 한국은 한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작업 때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 등 중국의 신경을 건드리는 문구를 막판까지 거부하다 미국서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삽입에 동의하자 즉각 반대를 철회했다고 한다. 결국 문 대통령한테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자유민주 가치와 국제질서보다 북한 김정은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기회는 공평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 식의 내 귀에 캔디 같은 말로 국민을 속여 집권한 건 그래도 내 나라 안에서 벌어진 참사다. 한미 공동성명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외교 참사는 벌어지기 시작했다. ‘조건에 입각한 전시작전권 전환에 확고한 의지’를 놓고 딴소리하고 “대만해협 언급은 원론적 내용”이라며 깎아내리는 한국을 국제사회가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로 볼지 의문이다. 문 대통령이 대체 왜 그렇게 남북대화에 집착하는지는 더 궁금하다. 선거를 위해서라면 차라리 낫겠다. 문 정권을 종북굴중혐미반일(從北屈中嫌美反日)로 규정한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는 북한에 민족적 정통성을 둔 것으로 읽힌다고 했다. ‘남쪽 대통령’이어서 대한민국 아닌 북한에 민족의 이익이 있다고 믿는다면, 모골이 송연할 판이다. 이런 분위기를 미국이 모를 리 없다. 바이든 행정부가 4월 발표한 대북정책에는 기존의 ‘북한 비핵화’ 목표가 ‘한반도 비핵화’로 달라져 있다. 외교부 장관 정의용은 같은 뜻이라고 강변했지만 국민을 개돼지로 아는 소리다. 한반도 비핵화는 주한미군 철수, 핵우산 폐기까지 의미하는 북한 선호 용어다. 미국이 한국의 신뢰성에 의문을 품고 ‘향후 양보를 위한 포석’으로 표현을 바꿨다고 해석될 수 있다는 게 아산정책연구원 차두현 수석연구위원 분석이다. 최악의 경우, 미국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 한미동맹을 포기할 수도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선의는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퇴임 1년도 안 남은 대통령이 국가 운명을 뒤흔드는 ‘통치행위’를 하는 건 온당한가.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는 과천연구실은 “연방제 통일이 문 정부의 진정한 목표라는 악의적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고 ‘문재인 정부 비판’에 썼을 정도다. 그리고 이렇게 경고했다. “만에 하나 이 주장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정권교체 이후 문 대통령과 핵심 인사들은 ‘내란음모죄’로 고발·처벌될지도 모를 일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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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국민 등골 빼먹는 가렴주구, 더는 못 참겠다

    세종시 이전 대상도 아닌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이 세종시에 신청사를 짓고 ‘공무원 특별공급(특공)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물론 관세청은 특공을 노리고 세금 171억 원을 들여 새 청사를 지은 게 아니라고 17일 해명했다. 미안하지만 못 믿겠다. 특공을 노린 게 아니라면 관평원 당시 직원 82명 전원이 아파트 분양 신청을 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이 중 49명이 성공했다. 일반분양이면 최소한 150 대 1, 특공이래도 7.5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데 관평원은 무슨 재주인지 2 대 1도 안 되는 당첨률을 기록했다. 당장 판대도 다섯 배 이상 앉은 자리에서 불로소득을 거둔 것이다. 이들 중 몇 명이나 새 아파트에 이사해 대전청사로 출퇴근하는지 알 수 없다. 재수 좋게 국토교통부 장관 자리에 안착한 노형욱처럼 분양받은 특공 아파트를 전세 놓고 서울 강남에서 출퇴근하다 몇 년 뒤 팔아 차액을 챙길지도 모를 일이다. ● 혈세로 지은 세종시 신청사·특공 아파트금항아리의 맛있는 술은 천백성의 피요(金樽美酒千人血·금준미주천인혈)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일세(玉盤佳肴萬姓膏·옥반가효만성고)춘향전에 등장하는 이몽룡의 시 구절이 떠오른다. 관평원이 세종시에 지은 호화청사는 국민의 혈세로 지었다. 멀쩡한 대전청사를 두고 유령 건물로 비워 놓았으니 이런 혈세 낭비가 없다. 그들의 세종시 아파트 역시 민간인은 당첨되기 어려운 옥쟁반의 좋은 안주다. 이 정부 공직자들은 아주 작당을 한 듯 국민의 고혈(膏血·사람의 기름과 피)을 짜내 흥청망청 누리고 있다는 얘기다.김부겸 총리가 이 문제를 엄정 조사할 것을 명했다. 신청사 착공을 강행한 당시 김영문 관세청장(현 한국동서발전 사장)이 수상한 건 사실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경남고 출신이고 참여정부 시절 문재인 민정수석 밑에서 행정관을 지낸 ‘빽’을 믿고 밀어붙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2018년 3월 행정안전부가 관세청에 “이전 불가 통보”를 할 때 행안부 장관이 바로 김부겸이다. 그때 자신이 무슨 도장을 찍었는지 기억도 안 난단 말인가?● 춘향전 때나 지금이나 쥐어짜는 게 관료냐‘숙종대왕 직위초의 셩덕이 너부시사…’로 시작하는 춘향전은 숙종 재위(1674~1720) 때를 요순 시절로 묘사한다. 당연히 그렇지 않다. 임란과 호란을 거친 뒤 너무나 삶이 힘겨운 나머지 ‘열녀춘향수절가’는 이상적 사회를 노래했다는 분석이 많다. 실제로 17세기 한시 중에는 관의 가렴주구(苛斂誅求·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이고 무리하게 재물을 빼앗음)를 다룬 내용이 적지 않다. 사극에서 익히 보듯 숙종이 장희빈을 끼고 돌 때 영국에선 명예혁명(1688년)에 이어 권리장전(1689년)을 제정하고 있었다. 숙종이 변덕이 죽 끓듯 해서인지 권력놀음에 지쳐서인지 장희빈 내치고 인현왕후를 복위시킬 때 서양의 제국들은 더 큰 시장과 세계를 찾아 동양으로 밀려들고 있었다. 마치 문 정권 주류세력이 요 좁은 땅덩어리에서 쪼금이라도 더 해먹겠다고 아귀다툼을 벌이는 지금, 바깥에선 미국 중심의 자유민주주의와 중국의 전체주의가 세계의 패권을 놓고 패러다임 전쟁을 벌이는 것처럼. ‘서양인들이 관찰한 조선의 모습들’을 쓴 김학준에 따르면(2009년 한국정치연구), 조선은 극소수의 벼슬아치들이 대다수의 백성들을 쥐어짜내서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였다. ‘쥐어짜낸다’는 표현에 주목하기 바란다. 서양인들의 조선관찰기에서 자주 반복되는 게 바로 이 ‘쥐어짜는’ 현상이다. ● 조선의 가난은 흡혈귀 관료 때문1830년대 조선을 찾아온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 카를 귀츨라프는 관리들이 옷도 우아하게 입고 잘사는 반면 백성들은 가난하게 사는 나라라고 기록했다. “정부가 주민들이 노동의 열매를 즐기도록 허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지적은 수도 없이 반복된다. 1866년부터 2년간 세 차례 조선을 탐사한 뒤 ‘금단의 나라: 조선기행’을 쓴 독일의 유대계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모든 관직은 가장 높은 값을 낸 사람한테 주어지고 관직을 차지한 사람들은 아랫사람을 상대로 강도와 수탈, 약탈과 착취를 저지른다”고 썼다. 1898년부터 10년간 4쇄나 찍은 이사벨라 비숍의 ‘코리아와 그의 이웃나라들’을 보면 소오름이 일어난다. 적폐청산이니, 개혁이니 주장하면서 세금만 다락같이 올려선 지네들 잇속만 챙기는 그들이 생각나서다. “개혁작업을 수행했던 때 조선에는 강도와 강도를 당하는 사람이 두 계급이 존재했다. 강도는 물론 군대를 포함한 관료체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 이르기까지 관리들은 백성들을 쥐어짰으며(squeezing) 공금을 횡령했다. 모든 관직들은 매관매직됐다. 조선 의 관리는 백성의 생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다.” ● 누구 마음대로 조세법정주의 무시하나프랑스 출신 달레 신부가 ‘꼬레의 교회의 역사’(1874년)에서 소개한 당시 세정(稅政)은 문 정권으로 바꿔놔도 이상하지 않다. “법정세금은 실제에 있어선 탐욕스러운 수령과 관리들이 백성에게서 빼앗아가는 금액의 작은 부분을 나타내는 데 지나지 않는다. 세금 징수의 기준이 되는 호구조사대장도 도무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기업들이 법인세 말고도 반드시 내야만 하는 준조세가 법정세금과 거의 맞먹는다. 2018년 법인세로 71조 원을 냈음에도 기업이 흑자든 적자든 기부금 등의 명목으로 63조 원을 바쳤다는 게 전국경제인연합회 분석이다. 부동산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지가도 도무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심지어 두 달 전 경실련은 “1990년 공시지가 도입 이후 국토교통부가 표준지 가격 조사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다”며 “엉터리 변명으로 과세 기준을 왜곡하고 있다”고 질타했을 정도다. 그렇다고 경실련 주장대로 공시지가를 대폭 올리는 것도 옳지 않다.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져 모두가 살기 힘든 때는 세금도 내려주는 게 선정(善政)의 기본이다. “국민 재산을 함부로 여기고 엉망진창으로 징벌적 세금을 부과하는 일은 불공정하다. 조세는 반드시 법률로만 매기게 한 헌법의 조세법률주의를 어기는 것”이라고 준열히 지적한 원희룡 제주지사 말이 백번 맞다.● 당신들의 폭정, 언제까지 참아줄 것 같은가고종의 시의(侍醫)로 봉직했던 독일인 리하르트 뷘슈는 1903년 “나라가 재정적으로 놀랍게 메말라버렸고 남부지방에서는 세금이 혹독하다고 폭동이 일어났다”고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 “한국 정부는 병원을 짓는 것과 같은 일에는 한 푼도 안 쓰고 유치한 일에는 수천 냥을 바치니 계산능력이 의심스러울 지경”이라는 대목은 문 정권이 제발 좀 읽어봤으면 좋겠다. 더불어민주당의 실질적 ‘오너’인 이해찬은 2019년 당 대표 시절 “정조 대왕 이후 219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10년과 문 대통령 2년 등 12년을 빼고는 일제강점기거나 독재 또는 아주 극우적인 세력에 의해 나라가 통치됐다”며 ‘20년 아니라 더 오래 집권욕’을 드러낸 바 있다. 미안하지만 정조는 계몽군주가 아니고(왕권 강화에 매달린 절대군주였다), 당신들은 개혁세력이 아니다. 국민을 쥐어짜내 제 배만 불리는 가렴주구 세력일 뿐임을 국민은 진작 알아버렸다. 4월 재·보선 야당 승리가 그 증거다. 한때 운동권이었던 자기편은 법 위에 존재하고, 공공기관 공귀족들은 국민 위에 존재하는 당신들의 계급의식은 소련과 함께 사라졌어야 할 구태에 불과하다. 대깨문 아닌 진짜 깨시민(깨어 있는 시민)이 세금으로 흥청대는 당신들의 학정(虐政)을 언제까지 참아줄 것 같은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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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文 땡큐! 정권의 끝이 보인다

    고구마도 이런 고구마가 없다. 10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4주년 특별연설과 기자회견을 본 다음부터 삶은 고구마 먹고 체한 것처럼 명치끝이 답답하다. 대선 주자 시절 문 대통령 별명이 고구마였다. “이재명은 빠르고 명쾌한데 문재인은 느리고 모호하고 답답해서 고구마란다”는 교통방송 김어준의 지적에 그는 “고구마는 배가 든든하다. 저는 든든한 사람”이라고 큰소리 쳤다. 만일 이번에 문 대통령이 “보선을 통해 엄중히 심판한 민의를 받들어 국정 전반을 재검토하겠다”고 겸허히 밝혔다면 차라리 든든했을 거다. 탁현민식의 쇼라는 게 나중에 드러나도 잠시는 나라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대통령은 그러지 않았다. “부동산정책에 대해 엄중한 심판이 있었기 때문에 기존 부동산정책 재검토”를 밝혔을 뿐이다.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기는커녕 아직도 고구마처럼 왜 참패했는지 모른다는 얘기다. 부동산 실정(失政) 하나 때문에 ‘서울 25 대 빵(0)’의 선거 결과가 나올 리 없다. 작년 총선 압승 뒤 일당 독재로 치달은 집권세력의 오만과 무능에 대한 심판이라고 주요 일간지들은 도배를 했다. 대통령이 휴대전화로 문파 댓글은 열심히 보는지 몰라도 주류 신문은 쳐다보지도 않는 모양이다. 정세균 전 총리는 모를 리 없다. 그는 지난달 사퇴하기 이틀 전 대선 준비 모임에서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사태’가 선거 패배에 크게 작용했다는 강의까지 들었다. 민심은 민생 안정을 원하는데 대통령과 친문세력은 검찰총장 윤석열 찍어내기와 대북관계에나 골몰했다는 게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의 분석이다. 당심(黨心)과 민심의 괴리가 심각하다는 더불어민주당 선거 패인 보고서와 거의 일치한다. 그가 서둘러 총리직을 던진 것도 이들 세력과 거리 두기를 위해서가 아닌가 싶다. 선거 패인 같은 중요한 문제를 당정과도 소통하지 않는 대통령이 대선 주자들에게 ‘국민과 소통하며 시대정신 찾기’를 강조했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문 정권의 시대정신 내로남불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러니 “부동산 부분만큼은 정부가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됐다”고 나머지는 다 잘한 척 자화자찬을 한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4년을 앞두고 “부동산정책 말고는 꿀릴 게 없다”고 자부했던 과거가 절로 떠오른다. “따지고 보면 경제도, 북핵 위기관리도 잘못한 게 없다”고 살아생전 고인이 역설했던 그날, 열린우리당 의원 워크숍에선 분당(分黨) 소리가 터져 나왔다. 문 대통령이 인사검증 실패는 없다며 장관 후보자 3인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국회에 재요청한 11일, 여당 초선 의원들이 최소 1인 낙마를 요구한 것과 비슷하게 가는 형국이다. 심지어 야권에선 ‘문나땡(문파가 나대면 땡큐)’이란 말이 나온다. 집권세력이 문파에만 매달릴수록 대선에 이롭다는 뜻이다. 곧 ‘문땡큐’ 소리도 나올 것이다. 문 대통령이 나설수록 야권 정권교체에 도움 될 게 명백해서다. 자신을 비판한 국민까지 고소하면서 ‘무오류’를 고수하는 대통령이면 앞으로 지지율 떨어질 일만 남았다. 작년 2월부터 몇 차례나 “코로나 (긴 터널의) 끝이 보인다”더니 10일도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대통령이다. 코로나 끝은 모르겠고 내 눈엔 문 정권의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다만 “남은 임기 1년이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다”고 문 대통령이 강조했듯, 실제로 나라의 근본이 달라질까 걱정이다. 문 대통령과 비교하면 새삼 노 전 대통령이 존경스럽지만 난형난제다. 2007년 대선 전처럼 “선관위의 선거 중립 의무 위반 결정과 선거법 준수 요청은 개인 노무현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헌법소원을 냈다가 기각당하는 일도 반복돼선 안 될 것이다. 그래도 그때는 헌법재판소와 선관위 등 헌법기구가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문 대통령과 같은 성향으로 그득한 지금은 과연 살아있는지 불안하다. 그럼에도 4년 전 ‘트럼프 시대 미국에서 살아남는 법’을 쓴 예일대 티머시 스나이더 교수의 행동강령 중 딱 세 개만 공직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첫째, 미리 알아서 복종하지 말 것(정권의 끝이 보이고 있다). 둘째, 법원, 언론, 의회 같은 제도를 보호할 것(인사청문회는 삼권분립에 따라 대통령의 인사권을 의회가 견제하는 제도다). 셋째, 애국자가 될 것(이 나라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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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부적격 인사, 가만히 있으면 국민을 가마니로 안다

    집권당이 또 국민의 간을 보는 모양이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박준영 해양수산부,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부적격자라는 사실이 인사 청문회에서 확인됐다. 재·보선 참패 뒤 민의를 겸허히 받들겠다고 고개 숙인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상식적 정당이라면 “이런 인사 더는 안 된다”고 청와대와 맞서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익히 보다시피 민주당은 상식적이지 않다. 청와대가 직접 정한 인사원칙을 어긴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다.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 또 ‘깜’도 안 되는 장관들을 내놨군, 그럼 그렇지 청와대가 어디 변하겠어… 국민이 이렇게 체념하고 넘어가면 민주당도 그냥 넘어간다(이게 바로 집권세력이 노리는 바다). 여론이 심상치 않으면? 민주당은 송영길 대표가 공언한 것처럼 ‘당 주도’ 당청관계로 획기적 변신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당이 국민의 간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 태영호 망명할 때 도자기 사 모은 외교관부인 문재인 정권 4년 실패 이유 중 하나가 인사임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대깨문 빼고). 퇴임 1년 전 선거에서 완패했으면 청와대는 마지막 인사라도 제대로 해서 국민의 용서를 구해야 옳았다. 재·보선 패배 열흘도 안 돼 발표한 장관 인사를 보면, 청와대는 개전(改悛·행실이나 태도의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바르게 고쳐먹음)의 여지가 손톱만큼도 없다. 아니면 문 정권 임기 내 챙겨줘야 할 빚이 너무 많거나. 박준영 부인의 도자기 사진이 신문에 나온 날, 나는 신안 앞바다 보물선이 또 나온 줄 알았다. 예쁜 그릇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단박에 아는 로얄 알버트, 로얄 덜튼 같은 명품 브랜드 접시, 커피잔, 장식종 등이 무려 1250점이란다. 박준영이 2015~18년 주영국대사관 참사관으로 있을 때 사 모았다는 거다. 영국에 잠깐 여행이라도 해본 사람은 안다. 커피 잔 몇 개 사오고 싶어도 비행기 갈아타면서 안 깨뜨리고 갖고 올 재간이 없어 많이 못 산다는 걸. 그런 꿈의 그릇들을 박준영 부인은 ‘외교관 이삿짐’으로 곱게, 관세 한 푼 안 내고 들여왔다. 그래서 묻고 싶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이 2016년 북한의 주영국대사관 공사 시절 목숨을 걸고 망명할 때, 이 나라 외교관들은 그따위로 특권을 누리며 살았는지. 소형어선으로 중국산 담배 밀수도 단속하는 해경청이 해수부 장관 소속으로 돼 있다. 다른 부처면 몰라도 박준영이 절대로 해수부 장관을 맡아선 안 되는 것이 이 때문이다. ● 청와대 판단력이 의심스럽다‘여자 조국’ 타이틀을 거머쥔 임혜숙에 대해선 인사 검증 자체를 안 한 게 분명하다. 나중을 위해 기록해두자면 부동산투기, 다운계약, 13차례 위장전입, 증여세 탈루, 민주당 당적 보유, 연구윤리 위반, 제자의 논문 표절, 자녀 연금보험료 대납, 자녀 복수국적, 종합소득세 체납, 탈세,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업무 공백, 외유성 출장 등 의혹만 13가지다. 특히 해외출장 때 가족 동반을 ‘관행’이라고 변명한 대목은 가증스럽다. 해외에서 양해한다고 해도 그건 대개 초청자 측 부담일 때다. 국가예산으로 딸과 남편까지 동반해 호텔 방값을 아낀 깍쟁이한테 집권당은 퀴리 부인이라고 헌사를 바쳤다니, 마리 퀴리에 대한 모독이다. 노형욱이 2011년 공무원 특별분양제를 이용해 세종시 아파트를 분양받고는 관사에 살다 2017년 판 것도 용서하기 어렵다. 이런 인물이 “부동산 부패 청산이라는 국민적, 시대적 요구를 충실히 구현”(청와대 발표)할 리 없다. 그때는 투기가 아니라 해도 이 정권의 ‘투기 기준’이 변했기 때문에 국토부 장관 자격이 없는 것이다. 차액을 기부하고 말고가 아니라 이런 인사를 밀어붙인 청와대 판단력이 의심스럽다. ● 뭘 믿고 이런 인사를 밀어붙였나 깨끗한 줄 알았던 김부겸 총리 후보자도 실망이다.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테티스11호 가입자 6명 중 김부겸 차녀와 사위, 여섯 살 세 살짜리 손자 손녀 등 4명이 들어 있는 건 김부겸네를 위한 펀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총리에 지명된 것은 라임 수사를 막기 위한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아닌가 싶다. 평판 조회가 아니라 인터넷 클릭 몇 번만 해봐도 알 만한 사실을 청와대 인사 검증팀은 완전 외면했다. 몰랐다면 무능이요, 알고도 그냥 밀어붙였다면 무책임하다는 말을 반복하기도 지쳤다. 그러나 국민이 이렇게 지쳐서 관두길 문 정권은 바란다는 게 이 글의 핵심이다.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인사라인만 무능하고 무책임한 게 아니다. 한 달 전 이철희 정무수석이 내정될 때만 해도 여권에서 “국민들도 청와대 인사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만큼 상징적 측면에서라도 김외숙 인사수석 교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는데 무슨 이유인지 쑥 들어갔다. 김외숙의 권력이 막강하거나 김외숙이 뭐라고 해도 안 통할 만큼 막강한 측에서 이번 인사를 밀었기 때문일 터다. 그래서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누가 이 따위 인사를 밀어붙였는지. ● 개구리도 물이 끓으면 튀어 나온다역치(閾値)라는 게 있다. 생물체가 자극에 대한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도의 자극의 세기를 말하는데, 같은 역치가 주어지면 생물체는 점점 무감각해지는 게 사실이다. 독일 나치 때도 그랬다. 갑자기 유대인들을 잡아 죽여 점잖은 독일인들을 경악시킨 게 아니다. 처음엔 비(非)유대인 상점에 ‘독일인 사업체’라는 표지를 붙이게 한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다음엔 ‘유대인’이라는 명찰을 붙이게 한다. 그래도 가만히 있으면 다음엔… 이런 식으로 차츰 강도를 높이면 나중엔 유대인 가스 학살이 있어도 놀라지도, 흥분하지도 않더라고 했다. 2022년 대선 때까지 어떤 충격적 일을 자행하려고 이따위 인사를 밀어붙이는지 정말 궁금하다. (단, 개구리를 물솥에 넣고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튀어나오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예는 들지 말자. 미국 MIT 박사 등이 1995년 실제로 해보니 찬물을 넣고 끓일 때는 4분 20초 만에, 미지근한 물을 넣고 끓일 때는 1분 57초 만에 개구리가 튀어나왔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국회가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았는데도 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장관급이 무려 29명이다. 이번에도 그럴 공산이 크다. 검찰총장 후보자 김오수 역시 ‘문지기’로 앉히고 말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반대해야 한다. 들불 같은 반대를 무릅쓰고 문 대통령이 인사를 강행했음을 기록에 남겨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그들은 진짜 국민을 가마니로 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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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운동’이 벼슬이라는 교육감, 남의 자식은 ‘가·붕·개’로

    민주화운동 세력은 ‘법의 지배’를 안 받는 귀족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해직교사들을 부당하게 특채했다는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반박은 요렇게 요약된다. 그는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공적가치 실현에 높은 점수를 받은 대상자를 채용한 것”이라며 부당한 일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감사원이 어떤 곳인가. 온갖 압력에도 꿋꿋하게 청와대의 원전 비리 의혹을 밝혀낸 최재형 감사원장이 있는 곳이다. 그 감사원이 4월 “서울시교육청이 2018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 등을 위반해 당연 퇴직한 5명을 교육공무원(중등 교사)으로 특채했다”며 조희연 징계를 교육부 장관에게 요청했다. 그렇다면 핵심은 법을 위반했느냐, 아니냐다. ● ‘전교조 해직교사’에 딱 맞춘 특채 지원자격교육공무원법 10조 2항은 ‘교육공무원의 임용은 임용을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능력에 따른 균등한 임용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특별채용 역시 ‘경쟁시험을 통한 공개전형으로 한다’고 교육공무원임용령 9조2항에 못 박았다. 특채라는 제도를 이용해 뽑을 사람을 미리 정해놓고 그에게 유리하게 절차를 맞추는 비리를 막기 위해 2016년 신설한 조항이다. 조희연은 기자회견에서 전교조 서울지부가 해직교사들 특채를 요구했고, 이에 응한 사실은 인정했다. 그러나 5명을 특정한 게 아니라 “교육양극화 및 특권교육 폐지,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확대를 위해 노력한 교사들(즉 전교조 해직교사)에 대한 특채 요청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말씀 잘하셨다. 5명이든 아니든 채용대상자는 그때 정해졌다는 얘기다. 그럼 채용절차는 공정했나? 시교육청 감사관은 “모든 심사는 블라인드 처리해서 진행했고 독립성 전문성을 지닌 심사위원들이 판단한 것”이라고 감사관답지 않은 말을 했다. 서울시교육청이 밝힌 특채 지원자격이 ‘교육양극화 해소와 특권교육 폐지 및 교원의 권익확대 등 공적 가치 실현에 기여한 자’다. 전교조 요구에 딱 맞춘 자격요건이다. 전형서류엔 자기소개서가 있어 암만 블라인드 처리해도 전교조 해직교사인지 단박에 알 수 있다. 2차 응시자 14명 중 5명이 이렇게 뽑혔다. 그래도 최재형 감사원이 잘못했다고 우길 텐가?● 조희연의 비합법정치운동, 선거로 공교육 접수심지어 5명의 특채 합격자 중 한 명은 2018년 교육감 선거에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조희연과 단일화 경선에서 패하자 조희연 선거운동을 도운 사람이다. 또 한 명은 2014년과 2018년 조희연의 선거참모였다. 전교조에 빚졌다는 이유만으론 이렇게까지 못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교육보다 비합법조직운동에 천착해온 정치적 교수였다. 1950년대 통일혁명당(통혁당), 1970년대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1980년대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등 대한민국 전복을 노렸던 좌파조직들을 연구한 그의 박사논문 ‘현대 한국사회운동과 조직’이 책으로 나와 있다. 성공회대 교수 때도 조희연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소장, 교수들의 전교조라 함직한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민교협) 상임의장을 하는 등 끊임없이 ‘운동’을 한 사람이다. 즉 비합법정치운동을 선거라는 합법적 제도를 통해 공교육에 침투시킨 지식운동가로서 제대로 ‘정치’를 해낸 셈이다. ● ‘친미반공분단체제’ 속의 통혁당 사건그가 우리나라 정치사를 보는 눈은 평범한 국민과 같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는 신영복,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 박성준은 통혁당 사건으로 복역한 바 있다. 일각에선 ‘조작’된 사건이라고 주장하지만 조희연은 그렇게 안 본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조선은 독립된 국가의 발전 방향을 둘러싼 전면적 투쟁기로 들어서게 된다. … (남한에는) 이른바 극우적인 ‘친미반공분단체제’가 출연했다”(1960~70년대 공안조직사건과 ‘비합법정치’). 조희연의 눈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국가라 할 수 없다. 북한은 1960년 남한에 ‘(민족해방)혁명참모부로서의 지하당’ 필요성을 제기했고, 통혁당은 북과 연계된 비합법정치운동의 형태로 나타난 전위정당이었다. ● ‘일제고사를 안 볼 권리’는 급진민주주의다!과거 혁명조직 연구에 그치지 않았다는 데 조희연의 ‘미덕’이 있다. 2010년 그는 “마르크스주의 연구‘지에 ”’일제고사를 보지 않을‘ 급진적 자유권이 확장되어가야 한다“고 논문 ’급진민주주의론의 정립을 위한 한 탐색‘을 썼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쉽게 말해 대의민주주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고 제도정치, 대중의 직접행동, 운동정치 등의 상호작용 속에서 민주주의적 변혁주의를 포착‘한 결과, 조희연은 2014년과 2018년 서울시교육감에 연거푸 당선된 것이다. 전교조 해직교사를 불법적으로 특채해놓고 잘못한 게 없다는 조희연 주장은 숱한 내로남불의 일각일 뿐이다.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한 좌파들의 나라임을 실감나게 알려준 조희연에 경의를 표한다. ● 내 자식은 변호사, 남의 자식은 모른다?그가 지향하는 급진민주주의, 민주주의적 변혁주의(혁명주의-라고 조희연이 써 놨다)란 자본주의를 넘어 평등성을 급진적으로 확장한 것을 뜻한다(베네수엘라 차베스식 사회주의, 아니면 북한식 사회주의라는 합리적 의심을 금할 수 없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즉 대의민주주의)를 폄훼하는 그로선 대한민국 법치도, 감사원도 우습게만 보일 것이다. 자기 아들은 외고 나와 (외국어 교사나 교수도 아닌) 로펌 변호사로 만들어놓고 외고·자사고 폐지를 주장한 행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 제 자식은 용 만들겠다고 기를 쓰면서 남의 자식들은 혁신학교 나와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로 살게 함으로써 급진민주주의를 실현시킨 좌파 운동꾼들 위선에 치가 떨린다.매년 10조 예산을 주무르는 조희연이 속죄할 방법이 딱 하나 있긴 하다. 코로나19까지 겹쳐 아이들 교육에 더 무심해진 교사들 월급 깎아 불쌍한 학부모들 위해 학원비를 대주는 것이다! 그것도 못한다면 ’부모계급‘이 똘똘 뭉쳐 내년 교육감 선거에서 쫓아내는 길밖에 없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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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중국 앞에만 서면 文은 왜 작아지나

    너무나 멋진 배우 윤여정의 아카데미상 수상 장면은 다시 봐도 참 좋다. 타인을 배려하면서도 자부심과 위트가 넘치는 소감을, 그것도 영어로 말하는 모습에 내가 다 뿌듯해진다. 아시아 여성 최초로 감독상을 받은 클로이 자오는 ‘사람은 본래 착하게 태어난다(人之初 性本善)’는 중국 시 한 대목을 중국말로 읊었다. 안타깝게도 중국에선 이런 장면을 볼 수 없다. 시상식 중계도, 인터넷뉴스도 중국 공산당이 미리 막았다. 자오가 8년 전 “중국은 도처에 거짓말”이라고 미국 잡지와 인터뷰한 것이 죄라면 죄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다룬 다큐멘터리 ‘분열시키지 말라’가 수상 후보에 오른 이유도 있다. “자오가 오스카상 받았다”고 친구끼리 나눈 문자까지 검열받는 나라는 관광이면 몰라도 살고 싶진 않다. 대한민국이 그쪽으로 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비판 전단을 뿌린 30대가 대통령 모욕죄로 처벌받게 생겼다. 모욕죄는 친고죄여서 대통령이나 대리인이 고소해야 한다. 문 대통령은 “한미 양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등 가치를 공유하는 70년 동반자”라고 했다. 대통령 자신도 가치를 같이하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중국이 강조하는 중화 문명의 가치와 더 가깝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중국이 주최한 보아오포럼 연차총회 20일 개막식에서 문 대통령은 “포용성을 강화한 다자주의 협력을 새로운 시대로 가는 디딤돌로 삼아야 한다”고 영상 메시지를 날렸다. ‘포용적 다자주의’는 중국이 주장하는 패권구도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등 원칙을 갖춘 국가 간 협력이라는 뜻으로 ‘원칙적 다자주의’라는 표현을 쓴다. 다분히 의도적 용어 선택이다. 우리가 전통적으로 중국과 같은 유교문화권에 속해 공자 맹자 같은 중국 사상과 한자 문화에 친숙하긴 하다. 문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에 대해 “예의 바르고 솔직담백하면서 ‘연장자들을 제대로 대접하는’ 리더십을 갖고 있다”고 유교적 평가를 한 적도 있다. 대통령이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라는 통일혁명당 사건의 신영복도 중국 고전을 강의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유교 사상의 핵심 가치로 조화를 든다. 이를 포함한 중화 문명에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난제를 해결할 중요한 계시가 담겨 있다며 보편 가치로 세계에 전파하려 한다. 시장경제 아닌 국가가 시장에 간여하는 경제,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아닌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당(黨)이 영도하는 법치 같은 중국모델을 문 정부가 앞장서 따라가는 형국이다. 심지어 동맹도 갈아탈 기세다.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에게 전임 도널드 트럼프가 변죽만 울린 북-미 회담을 이어받으라고 종용한 뉴욕타임스 인터뷰는 외교의 기본을 의심케 한다. 두 달 전 통화에서 “포괄적 대북전략을 함께 만들겠다”고 해놓고 과거 레퍼토리를 반복한 꼴이다. 전임 대통령이 성사시킨 한일 위안부 피해자 합의를 뒤집어 한일 관계를 파탄 낸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할 순 없다. ‘한미동맹의 탄생비화’를 쓴 남시욱 화정평화재단 이사장은 “대통령이 주장하는 종전선언을 통해 북한은 미군을 철수시키려 한다”며 “문 대통령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런 전개를 모를 리 없다”고 했다. 아예 임기 안에 한미동맹을 파탄 내 미군을 철수시키기 위해 마지막 안간힘을 쓰는 게 아닌지 더럭 겁이 난다.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로 전락한 데는 1907년 일본-영국-프랑스-러시아 4국 협조체제를 탄생시킨 ‘외교혁명’ 영향이 컸다는 지적이 있다. 전 지구적 세력 판도가 급변하면서 러시아가 일본의 한국 보호국화를 지지하게 됐음에도 우물 안 한국은 국제 사정에 어두워 망국의 비극을 맞았다. 미국과 중국의 가치가 충돌하고, 미국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중심으로 동맹을 규합하는 지금이 또 한 번의 외교혁명기일 수 있다. 미국이 중시하는 인도태평양 전략, 쿼드(Quad) 체제에 한국이 참여해야 미국도 북한과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형편이다. 북한 아니라 당장 코로나19 백신 절벽에 불안한 우리 국민을 위해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꽉 잡고 쿼드 참여를 검토해야 한다. 중국 앞에만 서면 대통령이 작아지는 이유는 알고 싶지도 않다. 11월까지 집단면역 된다는 정부 발표도 믿기 어렵다. 중국이 자랑하는 손자병법 36계 중 첫째가 만천과해(瞞天過海), 즉 속이기 아니던가.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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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미안하지만 文보유국과 비교되는 미얀마

    “미얀마처럼 군복 입은 사람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쉽게 인식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 투사라는 망토를 입은 사람들에 의해 선동됐을 때는 그 위협을 알아채고 예견하기가 훨씬 어렵습니다.”15일 미 의회 사상 최초로 한국의 인권을 주제로 열린 청문회에서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 상황을 미얀마에 비교해 (고급영어로) 설명했다. 쿠데타로 민간정부를 전복시킨 미얀마 군부가 전통적 독재의 룰을 따랐다면, 선거로 집권한 요즘 민간정부는 쿠데타 없이도 자유민주주의를 잘만 전복시킨다. 신종 ‘스텔스 독재’다.● 쿠데타 없이 민주 뒤집는 ‘스텔스 독재’군부 재집권 반대 시위에 나선 시민들 학살이 700명을 넘어섰다.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될 수 없는 군부 만행이다. 이 교수가 용감하게 미얀마와 비교했지만 ‘문재인 보유국’은 자국민 학살만 없을 뿐(정신적 학살도 포함시켜야 하나…) 미얀마를 연상케 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먼저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해둔다. 첫째, 미얀마 군부가 친중(親中)이고 ‘민주의 꽃’ 아웅산 수지 국가자문역 겸 외교장관이 친미(또는 친서방)라고들 아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아웅산 수지의 친중 성향은 군부를 능가한다. 둘째, 여릿여릿한 외모와 달리 아웅산 수지의 독재자 기질도 군부 뺨친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문 대통령이 친중적, 독재적인 점과 슬프게 흡사하다. 미얀마는 우리처럼 1948년 식민지에서 독립했고, 5·16쿠데타 1년 뒤인 1962년 쿠데타로 군부독재를 시작했다. 1988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학생시위가 일어났지만 신군부가 철권통치를 이어갔다는 점에선 우리보다 불행하다. 군부독재 54년간 중국과 가까웠던 건 서방의 제재로 기댈 데가 중국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영토적 야심을 아는 군부는 오히려 지나친 종속을 경계했다. ● 친중 독재자를 둔 국가의 비극 2016년 첫 민주선거로 집권한 아웅산 수지가 첫 해외 방문지로 택한 곳은 중국이었다. 우리로 치면 문 대통령이 방미보다 방중을 먼저 감행해 친중 외교노선을 만방에 알린 것과 마찬가지다. 2017년 소수민족 로힝야 학살사태로 국제사회가 일제히 아웅산 수지를 비난했을 때는 중국이 종주국처럼 감싸고 나섰다. 지금도 유엔안보리에서 중국은 미얀마 군부를 편든다. 반(反)민주·반인권 국가의 흑기사로 늘 중국이 등장하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정불간섭’이라는 고상한 명분을 대지만 중국은 북한을, 러시아와 베네수엘라와 미얀마 같은 불량국가의 독재자를 비호한다. 물론 그 나라들의 전략적 이익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필 인권과 법치와 민주주의를 발톱의 때로 여기는 국가들하고 이익과 가치를 같이 한다는 건 기막힌 일이다. 미국에 패권 도전을 한 나라여서 중국 편에 서면 위험하다는 얘기가 아니다(그래도 미국은 인권과 법치,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나라이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를 외교 원칙으로 재차 천명했다). 심지어 코로나19 백신이 없어 제 국민을 위험에 빠뜨린 이 시기에 문 대통령이 중국과 구동존이(求同存異)를 외치다니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 국제사회가 미얀마를 돕기 힘든 이유미얀마 군부가 2월 1일 쿠데타를 일으키자 미얀마 사람들은 군부 뒤에 중국이 있다며 반중감정을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서방 분석가들은 되레 중국이 낭패로 여긴다고 본다. 중국은 군부보다 아웅산 수지와 더 가깝다. 그가 실각하는 건 봉을 놓치는 일인데 왜 중국이 군부 쿠데타를 지원하겠나. (여기서 왜 아웅산 수지가 친중·독재적인지 따지다간 날 새고 만다. 식민지배와 군부독재의 유산일 수도 있고, 20여 년 군부에 연금당했던 개인적 경험 탓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미얀마 사람들은 아웅산 수지를 열렬히 지지한다. 마치 달님을 떠받드는 것처럼). 국제사회가 선뜻 개입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섣불리 개입했다간 군부가 친중으로 돌아설 우려가 있다. 개입이 성공해 아웅산 수지가 복귀해도 위험하다. 지난 4년간 못한 민주주의, 소수민족을 포함한 인권의 정치와 경제성장의 정책 능력을 앞으로 보여준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더 친중, 더 독재로 갈 공산이 크다. 미안하지만 미얀마는 너무 오랫동안 잘못된 줄에 서 있었던 것이다.● 굳이 교훈을 찾자면… 줄이라도 잘 서자?바야흐로 민주주의 쇠퇴의 시대라고들 한다. 20년 전 민주화시위는 70%가 성공했지만 오늘날 성공률은 30%에 불과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홍콩도, 태국의 민주화 시위도 맥없이 막을 내렸다. 2016년 한국의 촛불시위 역시 ‘촛불혁명’이라 주장하는 세력에 네타바이(일본말 미안합니다)당했다. 원인을 캐고 들자면 한도 끝도 없다.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로 살았던 200여 년 역사, 소수민족을 이용한 제국의 식민 지배가 한스럽겠지만 그건 과거일 뿐이다. 조상 얼굴도 본 적 없는 로힝야에게 갈등과 분열의 책임을 묻는 건 멀쩡한 자국민을 ‘토착왜구’로 모는 것과 다름없는 인권침해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현실을 바꾸기 위해 나라가 이사를 갈 수도 없다. 요컨대 과거와 지리는 현재의 우리가 바꿀 수 없는 부분이다.미얀마와 달리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에게는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나를 바꾸는 것은 더 쉽다(솔직히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나의 업(業)을 또박또박 해나가는 것부터 충실히 할 일이다. 그것도 어려우면 어디서든 줄을 잘 서는 일이라도.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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