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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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대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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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5~2024-04-24
칼럼100%
  • [김순덕의 도발]윤석열은 안철수를 보쌈이라도 해오라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선 후보가 잘나서 지금의 지지율이 나왔다고 보면 오산이다. 국민은 정권교체가 절실해서, 국민의힘이 제1 야당이어서, 그 당 대선 후보가 윤석열이어서 지지하는 것이지 당신들이 예뻐서가 아니다. 확실한 정권교체를 위해선 후보 단일화가 필수다. 자강론? 웃기지 마시라. 22~24일 한국갤럽 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38%, 윤석열이 37%다. 일주일 만에 다시 뒤집힌 거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의 단일화가 결렬되면서 이재명은 전주보다 4%포인트 올랐고 윤석열은 4%포인트 빠져버렸다. 정당 지지도도 뒤집혔다. 민주당은 전주보다 4%포인트 올라 39%, 국민의힘은 5%포인트 빠져 34%다. 20일 안철수 단일화 결렬 선언 이후 민주당은 24일 결선투표와 다당제 등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개혁안’을 제안하는 등 죽을힘을 다했다. 국민의힘은 뭘 했는가. 안철수 조롱하기? 국민은 오만한 정치를 용서하지 않는다. 그 결과가 바로 나온 것이다. ● 1997년 DJP도 결선투표하면 패배 후보 단일화 요구도 지겹지만 제도 탓이다. 우리 헌법에 결선투표제만 있으면 이런 고생 않는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당시 김영삼, 김대중의 분열을 노린 대통령 전두환이 요렇게 만들어 놨다. 그때 피눈물을 흘렸던 김대중(DJ)은 1997년 후보 단일화에 성공했다. 새정치국민회의 후보로 김종필(JP) 자민련 후보에게 내각제 개헌, 총리 임명 등 DJP연합을 약속한 것이다. 결과는 40.3% 득표,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였다. 한나라당 이회창은 38.7%까지 따라붙고도 패배했다. ‘IMF 사태’가 터졌음에도 불과 1.6%, 39만 표 차이로 진 것이다. 국민신당의 이인제 후보도 19.2% 득표했다. 보수 진영으로선 단일화를 못해 정권을 내준 것이다. 윤석열도 이 꼴 될까 봐 국민이 끌탕을 하는 거다. 결선투표가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1위 DJ의 득표율이 50%가 안 되므로 1, 2위(이회창)가 다시 투표를 치러야 한다. 이 경우 최종 당선자는 이회창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2019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간 ‘선거연구’에 실린 ‘대통령선거의 결선투표제 도입에 있어 실시요건에 관한 연구’ 결과다. ● 이회창도, 이인제도 “천추의 한을 남기지 마라”이회창은 2017년 회고록에서 “언론이나 논평가들은 패배 원인을 ①여권분열(이인제 탈당 출마) ②야권연대(DJP연합) ③병풍 ④IMF 위기로 꼽지만 사후약방문”이라고 했다. 선거에 진 것은 자신의 잘못이지 누구 탓이 아니라는 거다. 바람직한 정치인의 자세가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이회창은 최근 “윤석열-안철수가 단일화를 해야 하느냐”를 묻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단일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DJP연합이 1.6% 차이로 내가 대통령이 안 된 (여러 요인 중 하나의) 요인이 된 건 틀림없다”며 “이번에도 만일 1%든 2%든 3%의 차이로 떨어진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때 그 이인제도 24일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두 사람이 결단하면 끝난다”고 했다. 전직 여야 국회의장과 국회의원 100여 명의 윤석열 지지선언 행사장에서 그는 “국민들을 안심시키고, 압도적 지지로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도록 자유우파 세력이 통합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는 절박한 후보가 이긴다국민의힘 대표 이준석은 “단일화에 대해선 우리 후보의 의중이 최우선”이라고 했지만 그건 젊고 건방진 당신 생각이다. 설령 윤석열이 원치 않는다 해도 단일화는 절박하다. 정권교체를 국민이 원하기 때문이다. 안철수도 25일 TV토론 뒤 단일화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막말로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은, 윤석열이든 안철수든 누가 대통령 돼도 상관없다. 이재명만 아니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핵관이나 국민의힘 사람들이 지방선거 공천권 놓칠까, 내각이나 공공기관 밥그릇 줄어들까 막아서는 것이라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과거 DJ 측은 이회창처럼 대의명분을 따지지 않았다(오인환의 ‘김영삼 재평가’). 이회창은 대선에서 이기려면 충청의 JP를 잡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3김 청산’을 내건 그로선 JP와 손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DJ는 유신세력 JP와도 포옹했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아니 국민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다는 자세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 당신들이 예뻐서가 아니다나는 안철수가 교만하고, 인색하다고 쓴 적이 있다. 사람을 모으지 못해 정치에 맞는지 의문이라고 썼다. 그럼에도 안철수는 다른 사람을 낙선시킬 순 있다. 윤석열이 안철수를 잡아야 하는 이유다. 28일 투표용지 인쇄에 들어간다. 오늘 윤석열이 안철수에게 전화를 걸었으면 한다. 직접 찾아가서 만나기 바란다. 어쩌면 안철수는 전화를 받지 않을지 모른다. 집에 없다며 문밖에 덩치 큰 윤석열을 세워 둘 수도 있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 실패 후 되풀이됐던 일이 또 반복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 윤석열은 한밤중 안철수를 보쌈이라도 해 와서 정치개혁에 힘을 합쳤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나라 좋은 나라 만드는 압도적 정권교체에 함께 나아가기 바란다. 이제는 제발 정치인이 국민들 마음 편하게 해줄 때도 되지 않았는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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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나랏빚 늘리는 ‘경제 대통령’도 있나

    ‘경제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덕분에 온 국민이 경제 공부 참 많이 한다. 일단 ‘기축통화국’이 뭔지 알게 됐다. 21일 TV토론에서 “우리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며칠 전 보도에 나왔다”고 알려줬기 때문이다. ● 이재명이 잘못 읽은 보도자료 한국은행의 온라인 경제용어사전은 기축통화를 ‘여러 국가의 암묵적인 동의 하에 국제거래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통화를 지칭한다’고 정의한다. 국제무역결제에 쓰이고, 환율평가 할 때 지표가 되며, 대외준비자산으로 보유되는 통화가 기축통화다. 객관적으로 보면 우리나라가 곧 기축통화국이 될 것 같진 않다.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에 따르면 국제결제 시 사용하는 통화 비율이 미국 달러화(39.92%) 1위, 유로(36.56%)가 2위다. 영국의 파운드(6.3%) 3위이고 원화(0.2%)는 20위에도 들지 못했다. 이재명이 봤다는 보도는 1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낸 ‘원화의 기축통화 편입 추진 검토 필요’라는 제목의 자료였다. 제목만 딱 봐도 원화가 곧 기축통화국으로 편입되는 건 아니라는 건 금방 알 수 있지 않은가. ● 틀려도 인정하지 않는 고집은 뭔가이쯤 되면 기축통화국에 대해선 잘못 알았다고 후퇴할 만하건만 이재명은 그러지 않았다. 23일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기축통화국 발언도 얘기해 달라”고 하자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좀 길다. 참고 봐주시기 바란다). “그게 우리나라 국채비율이 너무 높다. 다른 나라에 비해서 높다. 다른 나라보다 훨씬 낮으니까 나온 논리가 기축통화국이 아니다, 였어요. 예를 들면 기축통화국이 아닌 나라도 (국채비율) 100% 넘는 나라가 훨씬 많고 그리고 그런 나라들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기축통화국 얘기는 제가 하자고 한 게 아니고 전경련에서 그런 발표를 했고, IMF에서 특별인출권이라고 이게 기축통화냐 아니냐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인데 거기서 SDR에 원화를 포함시키는 검토 이번에 합니다. 전경련에서 한 거고요. 우리나라는 기축통화국으로 인정된 나라보다 국가신용등급이 훨씬 높고 예를 들면 외환 돈 빌릴 때 이자도 다른 나라 기축통화국보다 훨씬 낮아요. 국가신용 정도나 화폐 객관적 가치나 훨씬 높은 상태라서 기축통화국이 형식적으로 아니니까 부채비율이 더 낮아야 된다 이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고요. 국가부채는 대외부채가 아닙니다. 국내 기관들이 사잖아요. 우리 국내에서 채권 채무를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국제평가에 해악될 정도로 심각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IMF가 오는 건 아니거든요. IMF는, 그때 당시 국채비율은 엄청나게 낮았습니다. 거의 없다시피 했죠. 그 당시하고 연결되면 안 된다 말씀드리고요. 기축통화국은 실제로 SDR 얘기 특별인출권 대상으로 검토 중이다, 라는 보도 확인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23일) 中유창하되 장황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다(독자들 실감하시라고 일부러 그대로 실었다). 그래서 그의 말만 들으면 사람들은 그냥 넘어갔다가 나중에 그게 뭐였더라…혼돈스러워지기 십상이다. 대장동이 그랬고, 기축통화국이 그렇다. 자칫하면 ‘경제 대통령’ 선전도 홀랑 넘어갈 공산이 크다. ● 전경련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헷갈리지 말기 바란다. 전경련이 ‘기축통화’를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 기준’으로 판단한 건 맞다. 여기엔 달러화,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위안화가 들어간다. 전경련은 원화도 SDR에 ‘편입’되도록 ‘추진’할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희망’했을 뿐이지, 곧 기축통화국이 된다고 하지는 않았다. TV토론 후 논란이 커지자 전경련은 22일 입장문까지 냈다. “한국이 비(非)기축통화국의 지위로서 최근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고, 국제원자재 가격 고공행진으로 무역수지마저 적자가 지속될 수 있어 신용등급 하락 등에 따른 경제위기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차원에서 원화의 SDR 편입을 희망한다는 메시지였던 것”이라고 분명히 설명했다. 그런데도 23일 이재명은 “기축통화국은 실제로 SDR 얘기 특별인출권 대상으로 ‘검토 중’이다, 라는 보도 확인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며 전경련을 거짓말쟁이처럼 만든 것이다. 방송만 들은 사람들은 이재명을 정말 유식한 ‘경제대통령’처럼 인식할 판이다. ● 벌지는 못할망정 나랏빚 늘리겠다니지겨운 기축통화국 얘기는 끝났다고 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건 이재명이 이 논리를 국채발행 여력이 많다는 근거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TV토론에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재정건전성이 중요한 이슈인데 국채는 얼마든지 발행해도 된다는 뜻인지?” 물었다. 그러자 이재명은 “국채발행 비율이 다른 나라는 110%가 넘는데 우리나라는 50%가 안 된다. 이유는 국가가 가계소득지원을 거의 안했기 때문”이라며 “IMF나 국제기구들은 85%정도까지 유지하는 것이 적정하니 너무 낮게 유지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또 IMF가 그랬다, 안 그랬다며 논란을 벌이고 싶진 않다(그러지 않았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이 소득을 늘려도 시원치 않을 판에 대체 왜 나랏빚만 늘리려 드느냐는 것이다. 빚만 늘리고도 경제 대통령이라면, 성적을 떨어뜨려 빵점만 맞고도 우등생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말이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나랏빚의 두려움우리에게는 나랏빚 트라우마가 있다. 1997년 ‘IMF 위기’라는 외환위기 이후 생긴 병이다. 이재명은 “국가채무 비율이 100%를 넘겨도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외환위기는 단기채무가 과다한 상태에서 국가 및 금융기관의 신인도가 급격히 하락한 것이 직접적 원인이었다. 당시는 채무비율이 11.4%여서 그나마 빠르게 극복했지만 국민은 금 모으기까지 하며 절감했던 나랏빚의 무서움을 잊지 못하고 있다. 진정 이재명은 ‘경제 대통령’이고 싶은가. ‘전환적 공정성장’이라는 공약은 좋다. 기회의 총량이 증가한 사회, 기대하겠다. 그러나 나랏빚은 꿈도 꾸지 말았으면 한다. 수내동 집에서 한우는 법카로 사서 먹었으면서 왜 미래세대에게는 빚부터 안길 작정이신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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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대장동으로 본 ‘경제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식 슬로건은 ‘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 대통령’이다. 마침 내일 열리는 TV토론 주제가 ‘코로나 시대의 경제 대책’과 ‘차기 정부 경제 정책 방향’. 이재명에게 내일 토론은 지지율을 만회할 절호의 찬스일 터다.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이재명은 뭘 물어도 청산유수다. 그래서 좀 미심쩍은 답을 들어도 그게 잘못된 답인지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꽤 있다.‘위기에 강한, 유능한 경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도 그렇다. 마치 세계가 경제위기를 겪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세계은행이 내다본 올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이 4.1%다(선진국 3.8%, 신흥국 4.6%).● 좌파 정책으로 한국만 위기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전망을 보면 우리만 2.7%로 나쁘다. 영국 5.6%, 독일과 캐나다는 4.2%, 미국 3.8%, 일본도 3.0% 성장이 예상된다. 심지어 전쟁 날까 조마조마한 우크라이나도 4.1%로 우리보다 낫다. 그러니까 우리만 이 모양이라는 얘기다. 왜 그렇겠나. 최저임금 급진적 인상, 공공부문 급격한 확대, 노동시간 과격한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28차례의 미친 부동산정책…. 이 정도면 좌파 경제학자들이 30년 간 골방에서 외쳐온 정책들을 거의 다 실천한 거다. 결과는 참담했다. 이재명이 소속된 바로 그 더불어민주당과 그 대통령 때문이다. 그래서 이재명이 ‘위기에 강한’이라는 슬로건을 만들었을 거다. ‘경제 대통령’이라고 작명도 했다. 하지만 따져보자. 그가 왜, 어떤 점에서 경제 대통령이란 말인가? ● 이재명의 최대치적 대장동 개발나라 경제를 망친 민주당의 대선 후보가 더 왼쪽의 해법을 내놓은 것도 참 독특하다. 소득주도성장 뺨치는 국가주도성장이다. 이재명은 ‘전환적 공정 성장’을 통해 ‘5.5.5. 공약(국력 세계 5위, 국민소득 5만 달러 및 코스피 5000)’을 이루겠다고 했다. 국가주도성장으로 성공한 사례로 이재명은 1930년대 대공황 시기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을 든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뉴딜정책 아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살아났다는 게 정설이다. 그보다 진짜 이재명이 유능한지 알아보려면, 미래 공약보다는 이미 해놓은 일을 보는 게 빠를 터다. 그는 작년 9월 “대장동 개발은 지금도 제가 자랑하는 성남시장 시절 최대 치적”이라고 했다. “뚝심 있게 공공개발로 전환해 개발이익 5503억 원을 환수한 단군 이래 최대 규모 대표적 모범개발행정 사례”라는 것이다. 맞다! 대장동이다. ● 대장동 국감에서 유동규 잡아뗐던 이재명3일 첫 TV토론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대장동 얘기를 꺼내자 이재명은 “제가 자청한 국감에서 탈탈 털다시피 검증했다”고 말했다. “시간 낭비하기보다 민생 경제얘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국감 때 모든 의혹이 다 해소된 줄 알았다. 아니었다. 뒤져보니, 10월 대장동 국정감사에서 이재명은 야권에서 요구한 관련 자료 200여 건 중 단 한 건도 제출하지 않았다. 측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사장 직무대리에 대해서도 이재명은 “잘 모른다”고 딱 잡아뗐다. 국감 이후 얼마나 많은 사실이 새로 드러났는지 우리는 안다. 다만 세세히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고 이재명은 3일 토론에서 “이미 검증 끝났다”고 또 국민을 속였던 거다. ● ‘대장동 모델’이 국가주도성장이다이재명이 대통령 된다면 ‘대장동 모델’이 결국 국가주도성장 정책이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TV토론에서 윤석열도 말하지 않았던가. “대장동 개발로 김만배 등이 3억 5000만원을 투자해 6400억 원을 챙겼는데 이 후보는 ‘내가 설계했다’ ‘다시 (설계)하더라도 이렇게 하겠다’고 말했다”고. 안철수도 말했다. “본질은 1조원 가까운 이익이 민간에게 갔다는 것”이라고. 심지어 심상정도 말했다. “이재명이 투기세력과 공범이냐, 아니면 활용당한 무능이냐.” 백만 번 양보해서, ‘대장동 개발’에 이재명 잘못은 한 개도 없다고 치자. 그럼에도 이재명이 주장하는 공공환수는 5503억 원이 아니라 1800억 원이라고 이재명 최대 치적을 ‘깎아서 볼’ 필요가 있다. 공원이나 터널은 공공환수한 돈에서 조성할 것이 아니라 당연히 시행사가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 법카로 소고기, 세금으로 퍼주기민주당은 19일 새벽 정부가 제출한 14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단독으로 기습 처리했다. 이재명의 ‘유능한 경제 대통령’ 캠페인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영업자·소상공인 320만 명에게 방역지원금 300만원 씩 지급해야 한다는 거다. 이재명은 추경 통과 뒤 페이스북에 “늦어서 죄송한다”며 “곧 추가로 더 하겠다”고 썼다. 이재명의 배우자 김혜경은 법카로 소고기, 초밥 등등을 사 먹었다. 이재명은 세금으로 국민에게 300만원 씩 뿌리려 한다. 그래서 경제가 나아지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경제 대통령’이라는 소리는 말기 바란다. 법카로 얼마나 재미났는지 몰라도, 퍼주기로 거덜 나지 않은 나라는 없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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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안철수는 죄가 없다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주로 야권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가 있다. 정권교체가 아니다. 후보 단일화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는 “완주한다고 계속 얘기해도 ‘단일화 꼬리표’만 붙이려 한다”며 13일 여론조사 경선을 국민의힘에 제안했다. 5자 구도로 치러진 2017년 대선에선 선거 2주일 전 ‘중도·보수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위한 시민사회 원탁회의’까지 열렸다. 2012년 좌파인사들이 단일화를 강요했던 ‘희망 2013 승리 2012 원탁회의’를 본뜬 모임이었다. 그렇게 ‘대선 단일화’ 역사를 파내려가다 나는 혼자 탄식을 하고 말았다. 후보 단일화는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대선 때마다 불거졌던 구조적 문제였던 것이다. 야권에선 후보가 여럿 나오니 표가 분산될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를 위해선 제발 후보들께서 단일화해 달라고 유권자들이 애걸해야 한다. 그러나 1, 2위 후보끼리 한 번 더 겨루는 결선투표제만 있으면 국민은 ‘전략적 투표’로 속 썩일 필요가 없다. 후보들은 비생산적 논란으로 시간 낭비 않고 더 중요한 문제를 논할 수 있다. 프랑스를 비롯해 2014년 현재 대선 결선투표제를 둔 89개국이 그 증거다. 그렇다면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던 1987년 개헌 때 왜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지 않았는지 기이하지 않은가. 민주당 김영삼 총재, 김대중 고문은 곧 대통령이 된다는 생각에 세심한 고려를 못 한 것 같다. 개헌안을 논의한 7월 15일 의총에서도 결선투표제는 언급되지 않았다. YS는 대통령 되는 게 급해선지 “대선을 빨리 앞당기자”고 했을 뿐이다. 민정당 개헌안에 결선투표제가 있을 리 만무하다. 전두환은 2017년 회고록에서 “김대중 씨를 사면복권했을 때 나는 이미 양 김씨의 동시 출마를 예상했고, 양 김씨가 동시 출마하면 노태우 후보에게 승산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썼다. ‘4자 필승론’은 DJ 아닌 전두환에게서 먼저 나왔던 거다. 여야가 각기 마련한 개헌안을 토대로 7월 31일∼8월 31일 ‘8일 정치회담’을 13차례나 가졌음에도 누구의 입에서도 결선투표제의 ‘결’자도 언급되지 않았다. 이 개헌안을 의결한 10월 12일 국회에서도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을 말한 의원이 없다는 점 역시 놀라운 일이다. 당시 신민당 이철승 의원이 “투표자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지 않아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며 “소수의 의사가 다수를 지배하는 것으로서 이는 다수의 저항과 도전에 부딪히게 된다”고 우려했으나 귀 기울이는 의원은 많지 않았다. 만일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1987년 13대 대통령은 노태우 아닌 YS가 당선됐을 것이라는 예측 결과가 있다. 2019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발간한 ‘대통령선거의 결선투표제 도입에 있어 실시요건에 관한 연구’ 논문이다. 제도가 역사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뒤늦게 깨닫고 1990년 결선투표제를 주장한 김대중 당시 평민당 총재를 비롯해 야권과 정치학자들은 끊임없이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2017년 대선 전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무리하게 단일화를 할 필요가 없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2018년 청와대발 개헌안에 결선투표제를 포함시키기는 했다. 그러나 그 개헌안은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강화시키고 사법부 독립을 무너뜨리는 등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어서 야 3당이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지긋지긋한 ‘단일화 사슬’에서 풀려날 방법이 있다. 2017년 대선 전 결선투표제를 주장했던 안철수가 바로 결선투표제 개헌을 조건으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만 실현돼도 안철수가 요구하는 ‘더 좋은 정권교체, 즉 구체제 종식과 국민통합을 위한 정치교체’는 가능해진다. 대통령의 대표성과 정통성, 통치의 안정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정당연합이나 정책공조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군소 정당의 영향력이 커져 사회경제적 갈등 완화에도 도움 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와 있다. 이렇게 안철수가 진정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된다면, 국민은 감동한다. 안철수는 새정치를 펼칠 수 있고, 그와 나라의 미래도 탄탄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이 독을 품고 기다리는 여론조사 단일화만 고집하다 완주한다면, 안철수는 5년 후 또 출마해 단일화 요구에 시달릴 공산이 크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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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대선 TV토론 인상비평을 해보았다

    대선 TV토론은 ‘내 눈에 콩깍지’라고 한다. 애들 학교에서 단체 사진을 찍어도 내 눈엔 내 아이가 제일 예쁜 것과 마찬가지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지지하는 대선 후보가 제일 낫다’ 싶다. TV토론을 보고 지지 후보를 바꿨다는 유권자는 많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그래서 11일 TV토론 후보 인상 비평을 해보기로 했다. 오늘은 일요일^^독자들도 재미 삼아 자신들의 시청 소감과 비교해주었으면 한다.● 이재명에게 ‘회피’는 생존본능인가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성남시장 재직 시절 성남산업진흥원 등 산하기관에 선거대책본부장 자녀가 들어간 것이 공정한가”를 묻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의 질문에 즉각 “사실이 아니다”며 넘어가려 했다.TV토론에선 시간이 부족해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조선일보 1월 3일자에 따르면, 성남산업진흥원이 2011년에 뽑은 김 모씨의 아버지가 ‘백현동 특혜 의혹’과 관련된 김인섭 씨다. 바로 어제 TV토론에서 이재명이 “패배한 (2006년 성남시장) 선대본부장이고 최근에 본 적이 없다”고 발뺌했던 바로 그 사람 말이다.윤석열의 부친이 화천대유 대주주인 김만배의 누나에게 집을 팔았다고 이재명은 “국민의힘이 (대장동) 부정부패를 설계했다”고 주장했다. 성남시의 인허가권을 휘두르며 “측근 아니다”라던 유동규 등에게 천문학적 이익이 나게 설계해줬다는 의혹을 받는데다, 얼굴도 못 봤다는 측근의 자식들에게는 신의 직장 공공기관 일자리를 줬던 이재명이 어떻게 ‘유능’과 ‘공정’을 자부할 수 있는지 난 납득할 수 없다.● 윤석열의 ‘귀’를 잡은 자가 누구인가윤석열이 답변에 나서면 불안하다. 정치권에 들어선 지 얼마 안 된 데다, 족집게 과외를 받았대도 말솜씨가 능란하진 않은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가 중요하다. 윤석열은 참모만 잘 쓰면 된다는 듯 말했지만 누가 유능한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안타깝게도 노동이사제 관련 말하는 걸 보면 참모진은 탁월한 것 같지가 않다.“강성 귀족노조가 청년 일자리를 막고 있는데 윤 후보가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찬성하는 이유가 뭐냐”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질문에 윤석열은 “공공기관은 국민의 것이니까 정부가 임명한 간부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이사가 돼 도덕적 해이를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공공기관이 국민의 것? 자기들만의 것으로 아는 ‘철밥통’이 수두룩하다.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는 노조원 처우 개선, 고용보장 요구를 늘려 철밥통을 금밥통으로 만들고 청년취업 기회는 절멸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 윤석열 자신이 공무원 출신이라 “공공기관 개혁 필요!” 외칠 수 없으신가? 그렇다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안철수는 작은 데 집착이 강하다안철수가 준비를 많이 한 티는 역력하다. 그러나 2차 토론에서 또 노동이사제와 연금개혁을 들고나온 건 패착이라고 본다. 같은 문제에 집착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그는 윤석열에게 “국민연금에는 출산율에 대한 가정이 들어있다”며 “(처음 연금을 설계할 때) 출산율이 어느 정도로 돼 있는지 아는지?” 물은 것도 쪼잔해 보인다. TV토론은 장학퀴즈가 아니다. 대통령 후보가 현재 출산율도 아니고 당시 출산율까지 외우고 있을 수도 없다.나는 연금개혁이 차기 대통령의 최우선 순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철수가 진정 연금개혁이 중요하다고 믿는다면, 어제 토론에선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위원회 설치’ 같은 원칙에만 합의하면 충분했다. 그런데 수급 연령, 대체율같은 문제를 꺼내다니…안철수는 연금개혁위원장을 맡아도 어렵겠다 싶다. 이미 답을 갖고 있는데 어떻게 갈등을 타협으로 이끌어 내겠나(13일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 국민경선 제안도 쪼잔한 데 집착하지 않기 바란다).● 심상정은 주 4일제 행복한 나라에서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외치는 ‘복지국가’가 희망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대선 도전도 벌써 네 번째다. 이제 심상정이 입을 열면 무슨 말을 할지, 말투까지 익숙하다. 그래선지 토론에서조차 다른 후보를 훈계하고 가르치려 드는 모습은 썩 유쾌하지 않다.그는 선진국들이 모두 주4일제를 하고 있다며 윤석열에게 “주 4일제 하실 생각 없으세요?” 물었다. 윤석열이 “현실적으로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라고 답하자 심상정은 난데없이 “법을 전공한 분들이 왜 이렇게 진실되지 않은지 모르겠어요. 여러분들이 다 언론에서 말해 놓고, 행사 때 말해 놓고 나중에 말 바꾸고 그러면서 여기 와서 이렇게 우기는 게 정당합니까?”라고 야단을 쳤다.이런 식이면, 귀한 TV토론 시간을 4명의 후보자에게 똑같이 기계적 배분해서 유권자들이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지적을 안 할 수 없다. 그래서 미국에선 지지율 15%이상 후보자만 TV토론 하도록 만들어 ‘양자토론’을 제도화하고 있는 거다.요것도 아나 모르나 보자 식의 유치한 질문, 1분 30초 안에 재치문답 식으로 답변하게 만드는 형식도 제발 검토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TV토론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 작정인지, 차라리 거대담론을 말하고, 질문하고, 같이 고민해보는 시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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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안철수는 이재명과 단일화할 터인가

    지금까지 이렇게 흠 없는 대선 후보는 없었다. 공약 탄탄하고, 기업과 정당을 경영해본 경험도 있다. 무엇보다 도덕성 결함이나 ‘가족 리스크’가 없다!그렇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다. 하지만 6일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 결과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안철수를 뽑겠다”는 응답은 10.1%에 불과했다. 국민의힘 윤석열(41.7%), 더불어민주당 이재명(37%)에 한참 못 미친다는 얘기다. 안철수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터다. 작년 11월 출마선언에서 밝힌 대로 ‘여당 후보는 부동산 부패카르텔의 범죄를 설계해서 천문학적인 부당이익을 나눠가지게 하고도 뻔뻔하게 거짓을 늘어놓고’ ‘야당 후보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비전은 제시하지 못한 채 전근대적인 주술논란’을 벌였다. 그런데 흠 없는 촬스는 왜 지지율이 10%대에 불과하단 말인가.● 교만하고 인색한 장수는 쓰지 말라 8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그는 “제가 어떤 사람이고, 비전과 정책에 대해 말씀드리면 국민들이 인정해주실 것”이라고 했다. 국민은 안철수의 진가를 몰라서 지지율이 안 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안잘알’(안철수를 잘 아는 사람들)일수록 부정적인 것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정파 안 가리고 바른말 잘하는 것으로 이름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달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철수와 함께 했던 사람들 90%가 척지고 떠났다”고 했다. 대체 그 이유가 뭐냐 말이다. 제갈량은 병법서 ‘장원(將苑)’에서 절대 장수(將帥)로 쓰면 안 될 두 가지 품성을 교만함과 인색함, 즉 장교린(將驕恡)이라고 했다. 교만하면 무례를 범하게 되고, 무례를 범하면 인심이 떠난다. 인색하면 상을 주지 않게 되고, 상을 주지 않으면 부하들이 목숨 바쳐 싸우지 않는다는 거다.● 안철수도…교만하고 인색하다 “내 멘토는 300명”이라던 안철수의 멘트를 기억하는가. 서울시장 보선 출마설이 파다하던 2011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시절, 그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내 멘토라고 하는데 내 멘토는 김제동, 김여진 등 300명 정도”라고 건방을 떨어 윤여준, 김종인 등 그를 도우려던 노(老)정객들을 경악시켰다. 그때는 정치적 문법에 미숙해서였다고 치자. 출발부터 대선 후보급이기 때문일까. 안철수는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마땅하다는 ‘교만’을 왕관처럼 쓰고 사는 것 같다. 2016년 2월 안철수와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했던 이상돈 전 의원은 지난해 낸 회고록 ‘시대를 걷다’에서 안철수에 대해 “자기가 대통령이 된다는 집념 내지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썼다(바른미래당은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당선돼 4년 뒤 대선에 나가기 위해 만든 ‘1회용 플랫폼’이었고ㅠㅠ). 인색한 것도 사실로 봐야 한다.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그는 “지금까지 국민의당이 누구 돈으로 운영돼왔나요. 다 제 돈으로 했지”라고 말했지만 나중에 국고보조금이 들어오면 영수증 첨부해서 전부 돌려받는다는 점은 말하지 않았다. 안철수는 자기 돈 쓰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서 100원 단위까지 받아내 당내에선 혀를 내둘렀다는 게 국민의당 사람들의 전언이다. ● 내가 당선돼야 정권교체라고?이제 이해되지 않는가. 한때 안철수 곁에 있던 사람들이 왜 좋은 소리 않고 떠나갔는지. 정치는 사람이 따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안철수에게 세(勢)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이 있다면 사람은, 안철수는 발전을 한다는 거다. 나는 지난해 초 서울시장 선거 전 ‘도발’에다 안철수 부친이 “큰아이는 경선할 아이가 아냐”라고 했던 말을 인용하며 ‘안철수는 경선하지 않는다’고 썼다. 내가 틀렸다. 안철수는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을 제의했고, 경선했으며, 자신이 패배하자 오세훈 후보를 도와 국민의힘 승리에 기여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안철수는 자기가 당선돼야 정권교체가 가능하다고 믿고 싶을 것이다. 정말 미안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보다는, 지 알고 내 알고 모두가 아는 정권교체 방법이 존재한다. 바로 야권 후보 단일화다. 그래서 지금 지지율 10%대에 불과한 안철수에게 국민의힘도, 더불어민주당도, 안철수를 껴안고 싶어 난리다. ● 안철수가 이재명과 단일화로 대통령 되면안철수는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끝까지 갈 것”이라며 “만약 단일화가 안 돼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 책임은 큰 정당에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책임은 큰 정당인 국민의힘에 있다는 경고이자 협박이다. ‘10분 담판’으로 야권 후보 단일화가 가능하다는 윤석열의 메시지가 안철수로선 무례하고 불쾌했을 것이다.윤석열이 안철수를 성나게 만든 건 실수였다. 안철수는 9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이재명과의 ‘물밑 접촉설’을 부인하지 않은 바 있다. 이재명으로선 안철수를 윤석열과 단일화시키지 않는 게 최선이고, 차선이 자기와 단일화하는 것일 터! 이미 대통령 자리도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는 루머까지 나돈다(왜? 그쪽은 대선에서 지면 죽으니까!)‘나로 정권교체’ 하겠다고 안철수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대통령이 돼서 할 수 있는 일은…거의 없다. 사람도 없고 세(勢 )도 없기 때문이다.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책임총리 이재명’이 안철수를 청와대에 위리안치 시킨 채 170여석 민주당을 지휘해 이석기의 통진당 부활은 물론, 남북연합이나 고려연방제를 포함한 개헌까지 모든 일을 해버릴 수도 있다. ● 안철수가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게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따져보기 바란다. 설령 그런 일까지 벌어지진 않더라도, 생각을 해보면 알 것이다. 아무리 이재명이 자기가 당선돼도 “정권교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건 국민 55% 이상이 바라는 진정한 정권교체가 아니라는 것을.“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거대 양당에 대한 신뢰가 바닥일 때 3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궁지에 몰릴 때마다, 그리고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마크롱 모델’을 들먹이는 안철수가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게 있다. 프랑스에는 있고 우리나라에는 없는 것, 바로 결선투표제다.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우리 국민도 당선 가능성을 따지는 ‘전략적 투표’ 없이 맘 편하게 원하는 후보를 찍을 수 있다. 안철수한테 단일화해달라고 10년 째 애걸할 것도 없다. 그래서 89개 국가에선 이미 이런 제도를 도입해놓고 있는 것이다. 젠장. ● ‘한국적 결선투표’의 길을 열어주시라그렇다면 이번에 안철수가 ‘살아있는 결선투표’로 진정한 정권교체의 주역이 되어주면 어떤가. 윤석열과의 진지한 협상을 통해 자신이 간절히 원해왔던 ‘새 정치’를 얻어내고 그의 손을 들어주면서 장렬하게 사퇴하는 것이다.윤석열도 교만한 ‘10분 담판’이 아니라 안철수와의 정치협상으로 진정한 정치교체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암만 좋게 보려 해도 과학기술이나 미래 비전에 대한 윤석열의 식견은 한참 부족하다. 지지기반도 안철수를 통해 중도 쪽으로 넓혔으면 한다. 특히 당선 뒤 국정운영과 국민통합을 위해서는 안철수와 손잡는 외연 확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안철수에게도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당신은 아직 젊다. 호랑이띠. 이제 60세다. ‘10분 협상’이든 ‘당신들의 혁명’이든 국민을 감동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지금껏 모이지 않던 사람들도 차츰 구름같이 모여들 것이다. 그렇게 교만과 인색에서 벗어나다보면, 5년도 잠깐이다. 대통령은 그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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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북핵을 머리 위에 두고 ‘3不’ 유지한다고?

    대선 후보들의 첫 TV토론 후폭풍이 뜨겁다. 그중 하나가 3불(不) 문제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추가 배치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 안 하며, 미국 주도 미사일방어체계 않는다는 문재인 정부의 대(對)중국방침 말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3불 정책’이 유지돼야 하느냐”는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의 질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3불 정책은 아니고 3가지 한국 정부의 입장”이라며 “적정하다고 생각한다. 중국과 경제협력 관계 때문”이라고 답했다. 안철수는 “그럼 너무 굴욕적인 중국 사대주의 아닌가” 반문했다. ● 노영민 “국힘당 요즘 귀신 들렸나”여기서 끝났으면 문 대통령 ‘후계자’도 아닌 이재명은 차라리 좋았을 뻔했다. 4일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문 정권의 초대 주(駐)중국 대사와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낸 노영민이 ‘3불 폐지’ 즉 사드 추가 배치를 주장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느닷없이 비판하고 나선 거다. 그는 “2017년 10월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사드 추가 배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며 “그게 한미 간에 합의된 내용”이라고 했다. 심지어 노영민은 “요즘 국민의힘이 하는 말을 보면 귀신들린 것 같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문 정권이 아무리 ‘청와대 정부’라 해도 비서는 비서일 뿐이다. 대통령 후보들의 정책토론에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는 얘기다. 노영민은 신임 주중 대사로 부임하자마자 “중국의 사드 반대를 이해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환추시보는 한국대사가 중국의 경제보복이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며 인용했고, 급기야 강경화 당시 외교장관이 “유사한 일이 재발하면 책임을 묻겠다”고 국회에서 사과를 하게 만든 전과가 있다.● 한중회담과 안보주권 바꿔먹은 그놈의 3불 노영민의 상관이었던 강경화가 국회 답변 형식을 통해 ‘3불’을 말한 것은 맞다. 그러나 ‘한미 간’ 합의임을 노영민이 확실히 알고 말하는지는 의문이다. 3불이란 2017년 5월 18일 문 대통령의 취임 특사로 방중했던 이해찬이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으로부터 “양국 관계의 걸림돌을 제거하라”는 굴욕적 발언을 듣고서, 또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는 ‘보고자 자리’에 앉아 알현하는 굴욕을 겪고 돌아와서 애써 짜낸 해법이기 때문이다.문정인 외교특보에 따르면 ‘한-중 간’ 두 차례 비공식 접촉을 가진 다음에 2017년 10월 30일 강경화가 국회 답변을 통해 3불을 밝힌 것이다. 사드 추가 배치를 검토하지 않고, 한미일 군사동맹에 참여하지 않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같은 날 강경화는 “조만간 한-중 정상회담과 관련한 소식을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는 의미심장한 발언도 빼먹지 않았다. 3불이란 국민의 생명과 안위가 걸린 안보 주권을 한-중 정상회담과 바꿔먹은 외교 참사였음을 기록에 남긴 셈이다. 게다가 강경화는 2020년 10월 26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3불에 대해 “합의가 아니라 협의”라고 분명히 밝힌 바 있다. 3불에 구애받을 의무가 없다는 뜻이다. 2017년 10월 중국과 ‘그놈의 3불’ 협의를 주도했던 남관표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합의도, 약속도 한 적 없다”고 그해 주일 대사관 국감에서 밝히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야당이 “정부의 공식입장이냐” 묻자 강경화가 외교장관으로서 “남 대사가 잘 대답한 것”이라고 공식 입장임을 재확인해준 거였다.● 북한은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포기했다이 대목에서 “그럼 전쟁하자는 말이냐” 하지 말기 바란다. 좌파는 꼭 그런 소리를 해서 나라와 국민을 갈라치곤 한다.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다. 그러나 모든 나라는 군대를 둔다. 전쟁을 원해서 군대를 두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북한은 1월에만 벌써 일곱 번이나 미사일 도발을 했다. 그럼에도 홍길동 정부도 아닌 문 정권은 “도발”이란 말도 못 한다. 문재인 ‘후계자’도 아닌 이재명은 5일도 “안보와 평화가 밥이고 경제”라며 윤석열을 비난했다. 5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하늘에서 파편이 비처럼 쏟아진다고 해서 ‘강철비’라고 불리는 KN-24형 미사일 도발 직후인 1월 19일, 북한은 “국가의 존엄과 국권, 국익을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강력한 물리적 수단들을 지체 없이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국방정책과업들 재포치”를 선언했다. 2018년 4월 북한이 정했던 핵·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모라토리엄 선언을 포기한다는 소리다. 머리 위로 북핵이 이고 앉아서도 얌전히 머리 조아리며 우리는 사드 추가 배치 안 해요, 한미일 군사협력 안 해요, 미국과 미사일 협력 안 해요…그런 대통령을 당신은 진정 원하는가? ● 이재명의 안보 공약은 믿을 수 없다동북아시아를 연구하는 순수 민간 독립 싱크탱크 NEAR재단은 2021년 11월 발간한 ‘외교의 부활’에서 3불에 대해 “주권 포기 행위”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MD를 본토 및 동맹국에 대한 핵 위협에 대비하는 핵심 기제로 발전시키고 있다”며 미사일 방어 상호 운용성 강화는 기술 발달에 따라 거부할 수 없는 협력 방향이라고 했다. 이재명에게는 대단히 미안하지만 이 책은 “한국이 개발 중에 있는 L-SAM(장거리요격)미사일이 서로 따로 작동하면 북한의 핵공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했다. 그가 TV토론에서 “사드에 버금가는 L-SAM미사일 조기개발”을 밝힌 것을 미리 안 것처럼 말이다. 순수 민간 독립 전문가들의 말을 믿는다면, 이 책은 또 사드 추가 배치 역시 우리 국방계획에 따라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치외법권 지역인 주한 미군기지에 미국이 그들의 국방전략계획에 따라 배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 천만다행이다 싶다. 미국 소고기 먹으면 당장 광우병 걸릴 듯 시위하던 좌파의 광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놈의 3불을 수호하고 싶은 정치인들은 정말 미안하지만 중국에 가서 살아줬으면 한다. 이 나라에선 자유와 민주와 인권을 수호하는 대통령 뽑아 마음 편히 살 수 있게.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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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이재명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다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엔 이재명 대선 후보의 새해 인사가 맨 앞에 올라가 있다. 선거운동을 마치고 돌아온 이재명은 이순신 장군처럼 한밤중에 홀로 앉아 국민들께 편지를 쓴다. 잔잔하고도 감동적인 음악과 함께 그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첫마디가 하필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었다. ‘존경하는’이라는 단어에 반사적으로 긴장했다. 이 말은 이재명이 작년 12월 7일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말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라고 할 때 썼던 수식어다. 그는 “표 얻으려고 존경하는 척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데 전혀 아니다”라며 펄쩍 뛰었다. 선거대책위원회에선 “‘존경하는’이란 단순한 수사(修辭)”라는 해명까지 내놨다. 나는 이재명의 가장 큰 잘못이 이 발언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의 ‘욕설 녹취록’도 있긴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건 10년 전 발언이다. 최근 다시 공개된 뒤 재차 사과도 했다. 그러나 ‘존경하는’이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는 말은 차원이 다르다. 민주당 의원들은 국회에서 상투적으로 ‘존경하는 의원님’ 하고 붙이는지 몰라도, 일반인은 그렇지 않다. 존경(尊敬)이라는 단어는 선생님이나 은사님한테, 그것도 가려가며 쓴다. 그 말을 이재명은 농담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이라는 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그의 공약은 물론이고 이재명의 어떤 말도 믿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재명의 위기도 이 발언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진짜인 줄 알더라”는 발언을 한 시기 이재명의 지지율은 36%,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35%였다(갤럽 여론조사). 윤석열은 당 내분 사태로 1월 초 지지율 26%까지 떨어졌지만 지난해 11월 초 대선 후보로 선출된 다음엔 컨벤션 효과에 힘입어 42%까지 치솟은 기록이 있다. 그러나 이재명은 40% 이상 올라가 본 적 없이 30%대 지지율에 갇힌 상태다. 설 연휴 직전 갤럽 조사에서 이재명, 윤석열은 35% 동률이었다. 1주 전에 비해 이재명은 1%포인트, 윤석열은 2%포인트 오른 수치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지난달 29일 조사한 결과에선 윤석열 43.5%, 이재명 38.1%였다. 윤석열이 상승세를 타는 반면 이재명은 정체 내지 하락세인 상황이다. 박스권의 지지율이 답답했던지 이재명은 지난달 26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여의도 정치를 확 바꾸겠다. 앞으로 일체의 네거티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효력은 2시간도 가지 않았다. 경기 고양시 문화광장 즉석연설에서 “리더가 주어진 권한으로 술이나 마시고 자기 측근이나 챙기고… 환관 내시들이 장난치고… 이런 나라가 어떻게 됐나”라며 국민의힘 윤석열을 향해 네거티브를 날린 거다. ‘네거티브 안 한다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알더라’는 식으로 유권자를 우롱한 꼴이다. 자기 말 뒤집기는 차라리 약과다.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을 놓고서는 국민의 속이 뒤집힐 판이다. 이재명의 첫 대응은 “단군 이래 최대 규모 공익환수 사업”이었다. 2일 CBS 라디오를 통해 방송된 양자토론에서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는 “대장동은 (이 후보가) 책임자로 있을 때 일이다. 국가 지도자가 신뢰를 줄 수 있으려면 (대장동에 대한) 분명한 입장과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것을 해줬으면 어떨까 한다”고 요구했다. 그런데 이재명은 답변을 피했다. 김동연이 ‘지도자의 신뢰 문제’라고 강조했음에도 이재명이 답하지 않는 건 기이한 일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 공자는 국가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백성의 신뢰라고 했다. 단군 이래 최대 비리 사건이 될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집권여당의 대선 후보가 불투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외교안보 문제를 놓고 국제무대에서 오락가락한다면 국가 위신이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나라 안보가 위태로워질 우려가 있다. TV토론에서 이재명 캠프의 전략은 ‘유능한 경제 대통령’임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한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했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 동안 이재명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고 싶다. 다만 눈물로 호소하진 말기 바란다. 지난달 25일 그는 “(전날) 울었더니 속이 시원하다”며 “더 이상 울거나 그러지 않겠다”고 말해버렸다. 만일 또 운다면 자기 말을 또 뒤집는 것이고 그 눈물조차 거짓처럼 보일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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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3% 후보가 TV토론 꼭 끼어야 하나

    대선이 5년 만에 열리다보니 다들 잊은 모양이다. 5년 전 대선주자 5명이 전부 참가한 TV토론이 얼마나 중구난방이었는지. 오죽하면 2017년 4월 14일 동아일보 1면 제목이 ‘5명 뒤엉켜 난타전’이고 부제목이 ‘양자 끝장토론 필요성 제기돼’였겠나.2012년 TV토론도 여당 박근혜, 야당 문재인, 그리고 지금은 해산된 통진당 이정희까지 달랑 3명이 나왔음에도 전혀 알차지 못했다. 이정희는 주제가 바뀔 때마다 첫마디로 박근혜를 공격하며 토론을 방해했다. “박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출마했다”는 전설적 어록까지 남겼다. 다음날 동아일보 사설 제목이 ‘겉핥기… 동문서답… 한계 드러낸 3자토론’이다. 새누리당은 1차 TV토론 뒤 TV토론 참가자격을 지지율 15% 이상인 후보자로 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미국의 기준도 그렇다. 그래서 양자토론이 이뤄진다. 당시 이정희의 지지율은 0.6%였다. ● 우리가 보고 싶은 건 양자토론이다법원이 26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간 양자 TV토론을 열면 안 된다는 결정을 내렸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지상파 3사를 상대로 각각 낸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거다.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는 대선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후 공식 TV토론을 3번 개최하게 돼 있다. 초청 자격은 소속 의원이 5석 이상인 정당의 후보, 지난 대선이나 총선에서 3% 이상 득표한 정당의 후보, 선거 기간 개시일 30일 전 여론조사에서 5%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후보자다. 하지만 이번에 양당이 추진했던 양자토론은 중앙선거방송토론위의 공식 TV토론이 아니었다. 공직선거법 제82조는 언론기관이 초청할 경우 양자가 합의만 하면 얼마든지 토론할 수 있고, 보도할 수 있음을 명시해 놨다. 공정보도만 하면, 법적으로 모든 언론기관이 대선일까지 횟수 제한 없이 양자 끝장토론을 자유롭게 개최할 수 있다. 그걸 안철수, 심상정이 못하게 막은 것이다. 이번에!! ● 미안하지만 심상정 이번엔 아니다생각해보시라. 유권자는 설 전에, 적어도 설 연휴에 이재명-윤석열, 또는 윤석열-이재명이 대선 공약을 놓고 치열하게 겨루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애초에 양자토론을 하자고 했던 것도 이재명의 제안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여기에 안철수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은 불쾌하지만, 이해할 수는 있다. 양당구도를 깨고싶은 그로선 절박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심상정은 용서하기도, 납득하기도 어렵다. 뉴스핌이 여론조사 기관 코리아정보리서치에 의뢰해 23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심상정 지지율은 허경영(5.6%)보다 낮은 3.1%였다(윤석열 42.4%, 이재명 35.6%, 안철수 8.8%). 당선가능성이 있다고 전혀 볼 수 없다. 게다가 심상정의 포부는 2017년 대선에서도 들었다. 2012년엔 심지어 대선 후보 등록 마감일 스스로 사퇴했다. “야권 대표주자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정권교체의 열망을 모아내자”며. 그래놓고 이번엔 양자토론을 듣고 싶은 유권자 열망을 막는단 말인가?● 유권자 중심으로 양자토론을!법원은 ‘방송국 재량의 한계를 일탈했다’고 판단했지만 TV토론까지 간섭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모르겠다. 다수 후보자가 참여하는 TV토론이 벌어졌기에 내용도, 토론형식도 기계적 공정성과 형평성 유지에 초점이 맞춰졌고, 토론이 실질적 논쟁이 되지 못했다는 한계점이 지적됐으며, 참여기준도 군소 후보자의 형평성 논란에서 시작해 지지율이 낮은 후보와 당선권에 있는 후보가 같은 수준에서 참여시키는 것이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타당하느냐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이게 다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에서 나온 얘기다(논문을 옮겼기에 이렇게 딱딱하답니다).미국은 선거방송토론 관련 법 규정이 없다. 1988년부터 비영리 민간법인인 대통령토론위원회(Commission on the Presidential Debates·CPD)가 주관해 토론 초청 후보자 기준으로 15% 이상 지지율 규정을 만들었을 뿐이다. 제3당 후보를 배제한다는 비판이 있으나 이젠 관행이어서 그러려니 한다. 2015년 선거방송토론위는 ‘유권자 중심의 TV토론 법·제도 연구’ 연구용역을 맡긴 바 있다. 정당이나 후보자 아닌 ‘유권자’를 중심으로 본다면, 답은 분명하다. 유권자는 적어도 지지율 15%이상 되는 후보자 간의 양자토론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것도 빡쎈 토론을! 여럿이 나오는 공식 TV토론은 3회가 기다리고 있다. 안철수, 심상정은 그때 참가하면 된다. 이번엔 제발 참으시기 바란다. 유권자는 양자토론도 볼 권리가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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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문 대통령이 신년회견을 취소한 이유

    청와대가 24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중동 해외 순방(15~22일)을 마친 뒤 금주 중으로 신년기자회견 일정을 계획했다”며 “그러나 오미크론 변이가 우세종이 된 현 상황에서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설 연휴가 끝나봤자 2월 3일이다. 그런데 박수현은 “설 연휴가 끝나면 바로 2월 15일부터 대통령 공직선거운동이 시작된다”고 납득 못할 소리를 했다. 2월 3일 다음이 15일이라니, 그의 눈앞에 달력을 들이대 주고 싶다. 박수현은 “국민을 대신해 질문해주시는 언론인 여러분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가 여의치 않게 된 점이 매우 아쉽다는 말씀드린다”고 했지만 그게 아닌 듯했다. 쉽게 말해 대통령은 기자회견하기 싫은 것이다. ● 기자들이 오미크론 우세종인가문 대통령이 오미크론 대응에 집중하기 위해 신년회견을 취소한다는 것부터 납득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15일 무려 6박8일간 중동 3개국 순방길에 나설 때 이미 “오미크론 변이 확산이 우려되는 만큼 국무총리 중심으로 방역 상황을 잘 챙기라”고 환송 나온 유영민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국민에게도 방역에 적극 협조해달라고 당부했었다. 그렇게 우려스러웠다면 중동순방을 떠나지 말고 청와대를 지켰어야 했다. 순방은 순방대로 다 하고 와서는 뒤늦게 오미크론 대응을 하겠다며 기자회견까지 취소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자들이 무슨 오미크론 변이 우세종 대마왕이라도 된단 말인가.게다가 문 대통령은 박수현을 통해 24일 “총리가 중심이 돼 범정부적으로 총력 대응해 새로운 방역 치료체계를 조속히 구축해야 한다”고 지시까지 내렸다. 그럼 됐지 무슨 대응을 더 집중한다고 신년회견까지 취소한단 말인가. 임기 마지막 신년회견에서 나올 질문이 그렇게 겁나고 두려우신가. ● 선거관리위원회가 일어섰다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다. 문 대통령의 사표 반려로 위원직을 유지했던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상임위원이 2900여명의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떠밀려 재차 사표를 내고, 중동 순방 중인 대통령이 해외에서 사표를 수리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바로 며칠 전에 벌어진 것이다. 나는 3년 전 ‘김순덕의 도발’ 첫 회 ‘독재자 감별법을 아십니까’에서 문 대통령이 대선캠프 특보 출신인 조해주를 인사 청문회도 없이 임명 강행한 것을 독재자 조짐으로 소개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3년 간 그는 선관위가 불공정하다는 오명을 얻는데 핵심적 역할을 한 인물로 꼽히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1963년 선관위 설립 이래 전 직원이 조해주의 사퇴를 촉구하는 유례없는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래도 선관위는 살아있었던 것이다!이번 신년기자회견에서 어떤 기자든, 문 대통령에게 이에 대한 설명과 사과 요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자폭을 해야 마땅하다. 그 기회를 청와대가 신년회견 취소로 원천봉쇄하고 만 것이다. ●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들 기자회견이 별것 아닌 듯해도...기자는 권력을 감시하는 감시견이다. 문 대통령에게 날카롭게, 때로는 가슴이 철렁해지게 물어야 한다. 저널리즘이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은 대통령도, 우파도, 좌파도 아닌 ‘시민’이기 때문이다. “60년 만에 처음으로 선관위 전 직원들이 조해주 재임명에 반대했습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대통령님께서는 국민 앞에 사과하실 의향이 없으십니까?” 기자들이, 국민들이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문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것을 독자들이 여기 아래 댓글로 달아주면 어떨까 싶다. 청와대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신년회견을 하는 게 나을 뻔 했다 싶도록.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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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대통령 부인이 잡을 권력은 없다

    기자 생활하면서 특종 한번 못했던 나는 일요일 밤 MBC를 보면서 가슴을 쳤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에 대해 궁금했던 내용이 ‘스트레이트’에서 줄줄 쏟아지고 있었다. 저 인터뷰를 내가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윤석열은 “집사람이 정치할 거면 가정법원 가서 도장 찍고 하라고 했다”고 했었다. 김건희가 걸걸한 목소리로 “권력이라는 게 무섭다”면서 정치적 분석과 판단을 술술 하는 걸 보니 그는 권력을 모르는 사람이 결코 아니었다. 안다. 이른바 공영방송인 MBC가 인터넷 매체 ‘서울의소리’ 기자로부터 통화 녹음 파일을 건네받아 내보냈다는 걸. 맨 처음 소속 매체와 기자 이름을 밝혔다지만 누나, 동생 하면서 척척 오가는 그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과연 보도될 걸 알면서 저럴 수 있나 싶으면서 김건희의 담대함에, 기자의 수완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말 김건희가 눈을 내리깔고 ‘거짓 이력’을 사과할 때의 모습은 방송 속의 원더우먼 같은 목소리와 딴판이었다. 그래서 김종인 전 국민의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이 연기(演技)의 중요성을 말했을 거다. MZ세대에선 ‘걸크래시’ ‘김건희에 반했다’ 같은 반응이 나오면서 심지어 후보 교체를 해야 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까지 터져 나왔다. 윤석열을 김건희로 바꿔야 한다는 거다! 방송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사적(私的) 대화를 몰래 녹음한 것이라며 방송금지 가처분신청까지 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 배우자의 정치적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견해는 비판과 감시 대상이라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공교롭게도 19일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가 제정한 언론윤리헌장이 선포됐다. 반론권 보장 등의 측면에서 이들 방송은 언론윤리 위배 소지가 없지 않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선 이번 방송으로 김건희 인기가 되레 올라갔다며 MBC가 야당을 도와줬다는 소리까지 나오는 판국이다. 미안하지만 국민의힘이 만세 부를 때가 아니다. 방송엔 안 나왔지만 “내가 정권을 잡으면 가만 안 둘 것”이라는 김건희 발언은 섬뜩하다. 법원의 방송금지 가처분 결정문이 유출되는 바람에 상당수 국민들이 알게 된 발언이다. 어떻게 ‘영적인’ 김건희가 언론윤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기자를 몰라보고 이런 말을 함부로 했는지 모골이 송연해진다. 아무리 보도되지 않을 줄 알고 발언했다고 해도 유력 대선 후보의 부인이면, ‘내 남편이’도 아니고, ‘국민의힘’도 아니고, “내가 정권을 잡으면 가만 안 둘 것”이라는 말은 함부로 입 밖에 내선 안 될 말이다. 정권은 대통령 부인이 잡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 부인이 누구를 가만 안 두겠다는 것인가. 자기를 비판한 언론을 잡아넣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검경이 알아서 잡아넣는 국가가 된다는 의미인가. 그런 나라로 가자고 정권교체를 할 순 없다. 지금 문재인 정권과 지배 세력만 교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18일 장영하 변호사가 공개한 음성파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형 이재선 씨가 “너 마누라 혜경궁 홍씨가 체어맨 타고 다녔다며…공무원이냐” “너 마누라가 댓글 쓴다고”라는 대목이 있다. 그 유명했던 트위터 계정 ‘혜경궁 김씨’의 소유주가 이재명의 부인 김혜경 씨임을 시사한다. 만약 사실이라면 혜경궁 김씨보다는 김건희가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청와대 안주인이 누가 되더라도 국민은 불안할 판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윤석열이 집권할 경우 대통령 배우자를 보좌하는 청와대 제2부속실을 폐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청와대정부’ 출신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청와대에는 많은 인력과 세금으로 영부인 활동을 지원한다”며 윤석열 방침이 잘못됐다고 말했으나 그렇지 않다. 전두환도, 노태우도, 노무현도, 역대 대통령들의 부패는 부인과 처가에서 비롯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사코 청와대 내부를 감시하는 특별감찰관을 두지 않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차기 대통령은 반드시 특별감찰관부터 임명하되 그것도 여성으로 임명해 대통령 부인부터 밀착 감시했으면 한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보다 똑똑하다던 힐러리도 대통령 부인 때는 넘치도록 비판받았다. 선출되지 않고,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정치에 적극적인 대통령 부인은 미국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통령 부인의 역할은 내조로 충분하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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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공약이라고 했더니 진짜인줄 알더라

    “선거 때 무슨 말을 못 하겠느냐.” 이 말이 또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의 13일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공약 발표장에서다. 문재인 정부 정책과 딴판이라는 지적이 안 나올 수 없다. 작년 말 재건축·재개발 신속 추진을 공약한 국민의힘 후보 윤석열과도 비교됐다. 기자들 지적에 이재명은 “정책엔 저작권이 없고 결국 실천이 문제”라며 이렇게 말했다.● 선거 때 무슨 말을 못하겠느냐고?“국민의힘은 과거 유명한 어록을 남겼다. 대통령 되신 분께서 ‘선거 때 무슨 말을 못 하느냐’는 말과 국민의힘 고위 당직자께서 ‘선거 때 한 약속 다 지키면 망한다’는 말을 했다. 국민의힘이 지금까지 그렇게 국민들을 속여 왔기 때문에 국민들이 정책공약을 잘 안 믿는 경향이 있다.”이 말만 들으면, 국민의힘은 ‘아무 말 대잔치’나 벌이는 당 같다. 그래서 팩트체크가 필요하다. ‘대통령 되신 분’이 이명박 전 대통령인 건 맞다. 하지만 전후맥락이 중요하다. 이명박이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당선인에 대해 한 말이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미국 방문 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관해 오바마가 자동차 분야를 놓고 반대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이명박은 말했다. “오바마는 시카고에서 자동차 노조의 절대적 지지로 당선됐는데…선거 때 무슨 말인들 못하겠느냐.”● 문 대통령 선거공약 다 지키다 망해 “선거 때 한 약속 다 지키면 망한다”는 말도 이재명이 할 말은 못 된다. 2018년 1월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김성태가 문 정권을 비판하며 했던 말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16.4%나 인상해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김성태의 비판에 방송 진행자가 “최저임금 1만원은 홍준표의 공약”이라고 꼬집었다. 그러자 김성태는 말했던 거다. “대선 공약대로 실천하면 나라는 망한다고 그러잖아요.”이재명의 ‘탈모 공약’도 700억 원 정도로 예상한다지만 진짜가 되면 달라진다. 지금껏 아무렇지도 않게 잘 살던 탈모인들이 돌연 나도 약 먹겠다고 나서면 1조원도 모자란다. 비만인은 또 가만있을쏘냐. 나라가 망할 수도 있는 것이다. ● “선거는 선수끼리 국민 속이기”선거와 공약(空約)에 대해 꼭 말하고 싶다면 불후의 명언이 있다. 말로써 화끈했던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다. 2006년 2월 “선거는 선수들끼리 국민 속이는 게임”이라고 폭탄발언을 한 것이다.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권 심판론이 무성한 때였다. 노무현은 “선거라는 게 속셈을 뻔히 알면서도 비실비실 웃으면서 나가서 시비하고, 선수들끼리 알면서도 부분적으로 국민을 속이는 게임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고 기자들 앞에서 대놓고 말했다. 후보의 진정성과 공약을 믿었던 유권자에게 이건 거의 배신이었다! 안타깝게도 이재명은 이 명언에 들어맞을 말을 자기 입으로 해버렸다. “‘존경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라고 말하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아는데 전혀 아니다”고 스스로 밝힌 사람이 바로 그였다. ● 앞으로 어떤 공약도 믿을수 없다차라리 가만있었으면, 그의 말대로 국민의 집단지성이 알아서 새겨들었을 거다. 그러나 굳이 아니라고 외치는 바람에 이재명의 얕고도 얍삽한 두뇌회로가 드러나고 말았다. 심지어 선대위에선 ‘존경하는’이란 정치인들이 크게 싸운 상대에 대해 통상적으로 붙이는 단순한 수사(修辭)라고 말도 안 되는 해명을 내놨다. 그렇게 치면 ‘존경하는’만 단순한 수사일 것이냐. ‘공약하는’ ‘철회하는’도 단순한 수사일 수 있다. 작년 10월 29일부터 전국민재난지원금 지급을 주장하더니 정부여당까지 반대하자 11월 18일 “고집하지 않겠다”고 했다가 철회했다는 지적이 나오자 “철회한 적 없다. 철회가 아니고 기본적 원리를 말한 것”(12월 7일)이라고 했다가 올 들어선 “소상공인·자영업자가 원하는 지원은 전국민재난지원금이라는 이름의 소비쿠폰”이라고 또 말을 바꿨다. 이쯤 되면 이재명의 새 캐치프레이즈 ‘앞으로 제대로’도 못 믿는다. “앞으로 제대로, 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안다”는 소리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아들은 남이라고 했더니 진짜인 줄 안다” “규제 완화라고 공약했더니 진짜인줄 안다” 소리가 줄줄이 이어질 수도 있다.● ‘나를 위해’라니, 대통령이 애인이냐 ‘나를 위해, 이재명’ 슬로건은 차원을 달리한다. MZ세대를 겨냥했다지만 남친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대통령후보가 ‘나를 위해’라니, 간지럽다 못해 심각해진다. 아파트 동대표 선거 때도 “우리 아파트를 위해”라고 하지 “나를 위해”라고는 안 한다. 대통령이 나만을 위한다면, 그럼 내 옆집은 외면할 건가.그 합리적인 독일인들을 나치가 사로잡은 것은 거창한 독트린이 아니었다. “히틀러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줬다”는 것이 ‘비극의 불가피성; 헨리 키신저와 그의 세계’를 쓴 배리 그웬의 통찰이다. 무책임한 국민은 나치도, 공산당도 투표로 선출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국민이 지금 여기, 대한민국이어야 하는가.정치(politics)의 어원이 그리스어 폴리스(polis·도시국가)다. 폴리틱스는 폴리스로 간 자유인들이 폴리테이아(politeia·公的영역) 즉 공화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일이라고 함재봉은 최근 저서 ‘정치란 무엇인가?’에 썼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면 “나를 위해” 같은 유혹적 언사 말고, 사적(私的) 이기심을 자극하는 간사한 약속 말고, 최소한 공선사후(公先私後) 바라건대는 시대적 흐름과 세계를 파악하며 큰 그림과 국익을 말해야만 한다. 우씨, 아무리 선거가 선수끼리 국민 속이는 게임이래도 말이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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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北의 최후통첩, 우크라 사태보다 끔찍하다

    만약, 북한이 휴전선 가까이 북한군 10만 명을 집결시켰다고 가상해보자. 그리고는 미국에 ①대북 적대행위 중단 ②남한에 군사기지 건설 중단 ③사드 등 미사일 배치 중지 ④핵우산 제공 금지를 요구하며 거부할 경우 쳐들어온다고 최후통첩을 보냈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런 일이 지금 우크라이나를 놓고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접경지대에 러시아군 10만 명을 집결시키고는 작년 12월 15일 미국과의 협정문 초안을 일방적으로 작성해 보냈다. ①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진 중단 ②구 소련국가와 군사협력 금지 ③미사일, 전략폭력기와 군함 배치 중지 ④미국 밖 모든 핵무기 철수 등을 요구하며 침공불사를 밝힌 거다.도저히 받지 못할 푸틴의 협박문도대체 말이 되는 내용인가. 협상을 위한 문안이 아니라 파투를 내려는 협박문이다. 나토 동진 중단은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반대한다는 소리다. 미국과의 군사협력 금지란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해도 미국은 지원군을 보내지 말란 얘기다. 그러고 보면 소름이 돋는 내용이다. 러시아 근처에 미군 전략폭격기나 군함을 배치 못하게 만들면, 유럽은 물론 한국에도 전략자산을 배치 못하게 된다. 미국 밖 모든 핵무기를 철수하라는 건 미국이 동맹국을 방어하는 핵우산 시스템 자체를 깨버리겠다는 의미다. 러시아의 최후통첩을 미국이 받아들인다면, 그게 더 끔찍해질 판이다. 다행히 10일(현지 시간) 스위스에서 열린 전략안정대화(SSD)에서 미국은 러시아에 “주권과 영토 보전, 주권국가가 동맹을 선택할 자유에 대한 미국의 결의를 강조했다”고 밝혔다(이 대화에 우크라이나는 끼지도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거의 실제상황이다. 푸틴은 핵·미사일 위협까진 안 했다북한은 5일과 11일 극초음속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했다. 북한 미사일 도발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우리도 무감각해진 듯하지만 이건 장난이 아니다. 마하 10, 최대 음속의 10배의 극초음속미사일로 서울까지 1분, 한반도 전역을 3분이면 핵탄두로 타격할 수 있다. 한미 미사일 방어체계로 요격도 불가능하다. 북이 ‘최종시험’이라고 밝혔으니 실전배치도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11일 청와대는 “종전선언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고 했다. 작년 10월 북한이 ‘종전선언 논의를 위한 만남’을 위한 선결 조건으로 제시했던 것이 ①적대행위 금지, 즉 한미합동군사훈련 중단이었다. 종전선언을 하면 북이 밤낮 주장하는 ②③④은 당연히 따라온다. 11일 우리 땅에선 도입된 지 36년 넘은 공군의 F-5E 전투기가 추락해 조종사가 목숨을 잃었다. 북은 핵탄두를 실어 한반도 전역을 타격할 신무기 개발에 여념이 없는데 문 정권은 우리만 무장해제하겠다며 미국에다 북한 요구를 받으라고 성화를 부리는 형국이다. 제국의 역사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우크라이나힘없는 나라는 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 국제질서다. 우리나라가 그랬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폴란드도 세 번이나 강대국에 분할돼 사라졌던 역사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우크라이나는 지도에 등장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라다. 9세기 동슬라브 민족 최초의 봉건국가인 ‘키예프 루시’가 지금의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1240년 몽골에 망한 뒤 리투아니아, 폴란드,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번갈아 흡수됐다.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 선포된 건 1921년이었다. 마침내 1991년, 70년 만에 소련이 해체됐고 우크라이나가 독립했다. 지금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 옛날 소련 국가들을 다시 러시아 세력권으로 두고 싶은 것이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 도시들의 어머니’ 키예프가 있는 우크라이나를! 어찌 보면 인류 역사의 대부분은 제국의 역사라 할 수 있다. 1900년 유럽 지도만 봐도 국가라는 것이 많지 않다. 정복과 통합의 DNA가 있는 유럽 제국들은 오스만 제국이 지중해를 가로막자 아시아의 부와 이윤을 찾아나서 식민지 경쟁을 벌였다. 2차 세계대전 뒤, 그리고 1991년 소련 붕괴 뒤 민족국가들이 대거 탄생했지만(현재 국제 승인을 받은 주권국가는 195개) 오래도록 살아남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한국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 성공지금 세계질서에 도전하는 국가는 모두 제국의 역사를 지닌 나라들이다. 러시아가 그렇고, 중국이 그러하며, 과거 페르시아라고 불렸던 이란도 마찬가지다. 공교롭게도 한국은 이들 나라와 무관하지 않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반도 꼭대기와 국경을 맞대고 있고, 이란은 핵·미사일 협력으로 북한과 내밀한 관계다. 그러고도 제국이 아닌 우리나라가 살아남은 게 용하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당대 최고 제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를 때 발전했다. 조선은 14세기 말 당대 최고의 경제체제와 이에 상응하는 정치, 사회체제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한 명나라 문명을 받아들여 200년 간 번성할 수 있었다고 함재봉은 역저 ‘한국사람 만들기1’에서 분석했다.그러나 17세기 초 명-청 교체기, 망해버린 명나라 주자성리학을 붙들고 쇄국을 고집하다 조선은 국권을 잃었다. 해방 후 주권국가로 거듭난 대한민국은 미국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랐기에 오늘 같은 발전이 가능했다. 북한처럼 소련과 중국의 길을 따르지 않았던 ‘건국의 아버지들’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거꾸로 간 문, 이재명은 한술 더 뜬다중국과 ‘공동운명체’라며 한사코 따르는 문 정권은 400년 전 이미 망한 명나라를 좇는 위정척사파를 연상케 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중국에 ‘사드 3불’(사드 추가 배치, 미국 미사일방어망,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을 천명함으로써 총 한번 맞지 않고 군사주권을 내주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정권교체’를 강조하는 집권당 대선 후보 이재명도 외교안보에선 문 정권과 다르지 않다. 종전선언 찬성은 물론이고 전시작전권 전환을 놓고도 “주권의 핵심을 (타국에) 맡겨놨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고 했다미안하지만 말 잘하는 이재명은 틀렸다. 1978년 한미연합사를 창설할 때 모델로 삼은 것이 나토의 군사지휘체계다. 나토 역시 미4성 장군이 ‘유럽동맹군 최고사령관’으로서 지휘한다. “그냥 환수하면 되지 무슨 검증이 필요한가”라는 말까지 한 걸 보면, 안보와 국제정치의 엄중함을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체결했던 통화스와프 계약이 2021년 12월 31일 종료됐다. 5일 새해 첫 북한 미사일 도발 뒤 일본과 통화하며 방위약속을 재확인했던 미국은 그러나 한국과 통화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손떼라는 북의 최후통첩을 미국이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안팎에서 번지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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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정권교체 위해서라면 연기인들 못하랴

    대선 두 달 전 야당 후보 캠프의 핵심 참모들이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눈물을 머금고 퇴진했다. 대선 한 달 전엔 말(言)로 표를 깎아 먹는다고 공격받던 당 대표까지 전격 사퇴했다. 하지만 연기(演技)에 불과했다. 이후 대선 토론회 등을 할 때도 핵심 측근이 실권을 행사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대선이 끝난 뒤 “후보와 직접 연결된 ‘내부서클’이 선거를 이끌어 선대위 공식 조직이 제 기능을 못 하고 패했다”는 데 당 주요 인사의 60.5%가 동의했다고 대선평가위원회는 밝혔다. ‘친노 패권주의’ 딱지를 못 떼고 있던 2012년 민주통합당 얘기다. 어제 국민의힘 선대위 해체가 연기라고 보고 싶지는 않다. 윤석열 대선 후보는 “저와 가까운 분들이 선대위에 영향을 미친다는 국민들의 우려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인 전 총괄선대위원장은 선대위에서 빠졌다는 ‘윤핵관(윤석열측 핵심 관계자)’에 대해 “지금도 직책도 없는 사람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앞으로 그런 걱정 끼치지 않겠다”는 윤석열 말이 진심이라고 믿고 싶다. 사실 ‘측근 정치’와 ‘연기’는 문재인 정권의 속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7년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에도 선대위에 속해 있지 않은 비선 라인이 존재했다.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꼽히는 광흥창팀의 13인 중 양정철, 윤건영은 2012년 퇴진했다던 핵심 9인 중 2인이었다. 2012년과 차이가 있다면 더불어민주당에선 친문 아닌 계파가 모조리 탈당하는 바람에 잡음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광흥창팀은 대선 승리 후 대거 청와대 1기 참모진으로 들어가 ‘청와대정부’가 됐다. 대통령 보좌조직이 내각과 집권당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민주정부의 퇴행이다. 86그룹 운동권 출신에 이념으로 뭉친 그들은 삼권분립까지 뒤흔들며 이 나라를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몰아갔다. 이 광흥창팀 가운데 탁현민이 있다. 대선 사흘 전 사전투표 25%를 넘기면 문 후보와 프리허그를 하는 불법 선거운동 연기를 기획하는 등 탁월한 연출력을 발휘했다. 문 대통령의 연기 중독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를 나갔던 그를 못 잊고 불러들일 만큼 탁현민의 연출력에 매혹된 모습이었다. 임기 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나드는 데는 대통령의 ‘쇼통’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김종인이 윤석열에게 “우리가 해달라는 대로 연기만 잘하면 선거는 승리할 수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충정에서였을지 모른다. 성공한 정치인은 현란한 연기력과 말솜씨, 강심장 아래 그들만의 신념과 이기심, 때로는 큰 뜻을 감추고 있다. 이걸 알아챌 수 있는 날카로운 눈을 모든 유권자가 갖고 있지 않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측근 정치가 좋은 정치라고 할 순 없다. 특히 후보 중심의 선거캠프는 국익과 공익을 추구하기보다 선거 승리를 지상과제로 삼는 조직이다. 집권 후엔 나라가 사유재산이나 되는 것처럼 논공행상을 요구한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지만 전임 대통령의 탄핵도 비선 실세와 그로 인한 국정의 사유화 때문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기를 쓰고 ‘윤핵관 제거’를 요구했던 이유가. 아직도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여론이 절반을 넘는다. 그럼에도 제1야당이 당내 분란에 파묻혀 정권교체에 실패한다면 국민에게 죄를 짓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은 좋은 정부란 사회의 당면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정부라고 했다. 눈앞의 어려움과 한계, 우발적 상황 등을 파악해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 정치가라는 말도 남겼다. 어제 북한이 동해상에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을 자행했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남북 대화 노력을 이어가겠다며 임기 끝까지 종전선언을 추진할 태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역시 “최대한 빨리 종전선언을 하는 게 좋다”며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윤석열을 겨냥해 “친일을 넘어선 반역행위”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자식도 남”이라고 연기하듯 말하는 이재명을 대통령선거에서 이기려면 윤석열은 연기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말하기 과외’라도 받을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정권교체를 통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면 말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2-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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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소련 붕괴 30년…중국은 무엇을 배웠나

    “인민들이 번영된 민주사회에서 살게 될 날이 조만간 도래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1991년 12월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사임 연설을 이렇게 마쳤다. 다음 날 소련최고회의는 우크라이나 등 15개 신생 독립국의 독립을 공식 승인하며 소련 해체를 선언했다.30년 후인 2021년 12월 26일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소련 붕괴의 교훈이 중국 사회주의 발전을 성공적으로 돕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서구에선 소련이 붕괴한 이유를 군사적 팽창, 미국과의 패권 경쟁, 계획경제와 실패한 경제개혁으로 보지만 중국의 판단은 다르다. ● “소련은 사회주의를 배신해서 망했다”중국의 주류 해석은 사회주의가 옳다는 거다. 덕분에 소련은 파시즘을 패배시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고 전후 미국과 겨루는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고 글로벌타임스는 주장한다. 리셴밍 전 중국사회과학원 부원장은 “우리가 수많은 연구 결과 도달한 결론은, 소련이 망한 진짜 이유는 니키타 흐루쇼프부터 고르바초프까지 소련 지도부가 점차 사회주의를 배신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라며 이렇게 분석했다. 소련은 ‘인민에 대한 봉사’라는 본연의 의무를 저버리고 중국을 비롯한 사회주의권 ‘동지’들을 위협했다. 군사적 팽창을 추구해 인공위성을 우주에 쏘아 올렸지만 식량과 생필품 문제는 해결하지 못해 사회 갈등이 증폭됐다. 고르바초프와 옐친은 자유화 서구화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으나 그 또한 실패로 끝났다. ● 더 강한 공산당으로 달려간 중국 그들은 소련 해체가 ‘중국을 위한 백신’이라고 했다. 중국은 소련으로부터 교훈을 배워 중국 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반면 미국은 소련의 교훈을 전혀 배우지 못했다고도 했다. 지금의 미국이 해체 직전의 소련 같다고는 할 수 없어도 중국이 소련 해체에 사로잡혀 있는 건 분명하다. 시진핑이 2012년 11월 중국 공산당 총서기에 취임해 광둥성을 방문한 자리에서 질문한 것이 “왜 소련이 해체되고 공산당은 붕괴했는가”였다. “그들은 이상과 신념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답이다. 그래서 더 강한 사회주의로 매진했고, 더 센 1인 독재로 달려가는 추세다. 중국공산당이 11월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를 폐막하며 발표한 ‘역사결의’엔 개인숭배 금지, 종신제 금지 등 독재에 제동을 걸 문구도 완전 사라졌다.● 정말 리더십 때문에 소련이 망했다면?최근 ‘붕괴: 소련의 멸망(Collapse: the fall of the Soviet Union)’을 출간한 역사학자 블라디슬라프 주복은 군사적 팽창이나 경제 실패보다 고르바초프의 개방 정책을 소련 몰락의 큰 이유로 꼽는다. 역사에서 군사제국이 전쟁에서 패하지 않고 사라진 경우는 없다. 그러나 글라스노스트가 도입돼 생각을 말하고 비판할 수 있게 되면서 소련은 달라졌다. 특히 스탈린 치하 수백만 명이 사망한 역사기록까지 공개되자 공산당 통치의 이데올로기와 합법성은 흔들렸다. 부패하고 비효율적이며 자유와 복지에도 취약한 일당 독재를 견딜 국민은 없었다. 주복은 고르바초프의 나이브한 리더십, 캐릭터, 믿음이 소련의 자멸을 불러왔다고 결론짓는다. 거꾸로 보면, 시진핑처럼 인민을 꽉 틀어잡아야 독재정권이 유지된다는 얘기다. 리더십은 그래서 중요하다. 해피 뉴 이어.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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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베이징 종전선언은 ‘항복선언’으로 악용될 수 있다

    ‘이재명은 합니다’의 원조는 문재인 대통령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의 선거 구호이지만 고집은 문 대통령도 만만치 않다.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임대차3법…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지적해도 문 대통령은 그냥 밀어붙였다. 그 결과가 이재명조차 외쳐대는 “정권교체!”다.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는 황소고집의 문 정권이 5년 임기 대단원을 장식할 최종 병기로 주무르고 있는 것이 바로 종전선언이다. ● 임기 끝까지 밀어붙일 최종병기, 종전선언북에선 27일부터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열리고 있다. 이 자리에서 국무위원장 김정은이 종전선언 관련 입장을 내놓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통일부와 외교부는 이미 ‘2022 정부 업무보고’에서 “종전선언이 현재 교착 국면인 남북 및 북-미 대화를 다시 시작하는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말이 내게는 소득주도성장을 국제무대로 확대한 논리처럼 들린다. 최저임금부터 올려야 성장도 가능하다고 문 정권은 강조하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종전선언부터 무작정 해버려야 대화도 가능하다는 게 문 정권의 담대한 논리다. 문 정권 집권 이후 한국경제는 2017년 3.2%→2018년 2.9→2019년 2.2%→2020년 마이너스 0.9%로 ‘거꾸로 성장’했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족보 없는 정책을 ‘문재인은 합니다’ 밀어붙인 결과였다. ● 평화협정 맺고도 침공당한 나라 수두룩 종전선언주도대화 역시 대화가 아니라 거꾸로 대화, 거꾸로 평화를 불러올 공산이 작지 않다. 문 정권과 같은 생각을 하는 세력을 제외한 상당수가 종전선언에 선뜻 찬성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7월까지 주한미군사령관 겸 한미연합사령관을 지낸 로버트 에이브럼스는 25일 종전선언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9월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의미다. 실제로 세계를 둘러보면 평화협정까지 맺고도 망해버린 약소국 흑역사가 수두룩하다. 베트남 공산화로 끝난 파리평화협정(1973), 뮌헨평화협정(1938)을 맺고도 히틀러의 독일이 침공해버린 폴란드가 대표적이다. ● 대체 왜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 밀어붙이나종전선언이 되면 북한은 유엔사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쟁이 끝났으니 ’정전협정 관리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유엔사가 지금처럼 존재할 경우, 북한이 도발하면 유엔안보리 결의안 채택 없이도 다국적군 전력을 신속히 구성해 한미연합사(또는 미래연합사)가 수행하는 전구작전을 즉각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유엔사가 해체되면 달라진다. 주일 유엔사 후방기지 역시 90일 이내 철수한다. 북이 도발할 경우 유엔군이 나서려면 유엔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돼야 하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찬성할리 없다. 북한 요구대로 주한미군까지 철수하고, 북한이 속전속결전으로 밀고 내려온다면 더 끔찍하다. 미군 지원전력이 한반도에 닿기도 전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를 모를 리 없는 김대중 대통령은 생전에 종전선언을 추진하지 않았다. 오히려 남북대화를 하려면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민주정부 3기‘라는 문 정권이 의심스러운 거다. 대체 왜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밀어붙이는 것인지. 민주당 정권 재창출을 위해? 진정 화해와 협력을 위해? 아니면…조선노동당 규약대로 ’전국적 범위에서 사회의 자주적이며 민주주의적인 발전의 실현‘을 위해?● 태영호 “베이징에서만은 절대 안 된다”문 정권의 종전선언이 성사된다면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서 ’세기의 이벤트‘로 펼쳐질 수도 있다. 이미 미국은 베이징 올림픽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기 때문에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인 미국(유엔군 측 대표) 없이 종전선언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23일 한중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나눈 한국 측은 “종전선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어떻게든 ’베이징 종전선언‘을 살리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러나 만약 종전선언이 성사되더라도 절대 베이징에서 해선 안 된다는 것이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경고다.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그는 “북한이나 중국이 베이징을 종전선언 장소로 채택하자고 하면 청와대가 받아들일 것이냐”고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따졌다. 한국은 6·25전쟁의 피해자이고, 북한과 중국은 전쟁의 주범이며 공범이다. 피해자인 우리가 가해자의 땅인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종전선언을 할 경우 ’항복 선언‘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 정전협정 때 그들은 개성을 선택했다 1951년 정전협정 때도 이런 경험이 있다. 6·25전쟁에 참전했던 역사저술가이자 칼럼니스트 시어도어 리드 페렌바크가 1963년에 쓴 ’이런 전쟁‘이라는 책에서 발견한 대목이다. “공산주의자들은 힘으로 이길 수 없으면 협상을 준비한다. 당시 38선 남쪽에서 유일하게 공산군의 수중에 있는 장소인 개성을 (정전)회담 장소로 선택한 것부터 유엔군 협상단이 공산군 점령지에 들어올 때 마치 항복하러 오는 것처럼 백기를 들게 한 것까지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열린 회담은 우여곡절 끝에 10월 26일 판문점으로 옮겼다.)그러나 페렌바크가 한반도 전역에서 소부대들을 이끈 소대장들을 인터뷰해서 쓴 이 책에서 내가 진짜 가슴을 친 대목은 따로 있었다. “미군들 중 자신이 왜 한국에 있는지, 또는 왜 미국이 북한 공산당과 싸우는지 설명을 들은 이는 없었다. 이들은 그저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싸울 준비가 안 돼 있다면 항복할 준비나 하라프린스턴대학 출신 저자조차 “이런 종류의 전쟁(This Kind of War)은 필요하기는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더러운 일”이라고 했을 만큼, 당시의 한국은 미군부터 미국 대통령까지 발을 빼고 싶어 했던 나라였다. 민주주의가 가능할 것 같지도 않고, 생존 가능한 경제가 되려면 2000년은 돼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국가로 도약했다. 문 정권이 절대 인정하지 않는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상호방위조약과 장기 경제원조를 받아내지 않았다면 가능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70년 전 한국에서 서둘러 떠나고 싶어했던 미국이 지금은 거꾸로 한국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한다. 임기 마지막까지 우리 대통령은 5년 내내 국민을 가난하게 만들고도 모자라 안보위기로 몰고 갈 태세다. 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겨냥해 “한국 정치인이 종전선언에 반대하는 일본 입장에 동조한다면 친일을 넘어 반역행위”라고 했다. ’이런 전쟁‘은 “싸울 준비가 되지 않은 국민은 정신적으로 항복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맨 마지막장 ’교훈‘에 써두었다. 그래도 문 대통령은 끝내 베이징에서 종전선언을 하고 말 것인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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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건희의 江’이 그리 중한가

    한국사를 보다 보면 복장 터질 때가 적지 않다. 효종 승하 뒤에 벌어진 예송논쟁도 그중 하나다. 효종의 계모 자의대비가 상복을 1년 입느냐, 3년 입느냐가 뭐 그리 중요한가 말이다. 물론 전문가들은 단순한 예법 논란이나 당파싸움이 아니라고 말한다. 국가 정통성을 둘러싼 사상적 논쟁이라는 거다. 조선은 주자성리학자들이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유교 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나라다. 1차(1659년) 2차(1674년) 예송논쟁의 결론은 더 극단적인 주자성리학이었다. 효종이 왕통은 이었지만 장자가 아니므로 적통(嫡統)이라고는 할 수 없다. 비록 명이 망하고 청이 들어섰으나 적통은 명에 있다고 당시 잘난 근본주의적 주자성리학자들은 주장했다. 이미 망한 명나라 대신 조선이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며 정치적 사상적 쇄국을 감행한 17세기, 세계질서는 급변하고 있었다.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으로 위계적 봉건질서가 무너지고, 근대 주권국가체제로 전환하는 계기가 마련된 것을 눈귀 닫은 선비들이 알았을 리 없다. 영국과 네덜란드가 아시아 개척에 나섰고, 일본도 네덜란드와 교역하며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을 추월하고 있었다. 청나라는 1750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2.8%나 차지하는 부국이 됐는데도 우리만 숭명반청(崇明反淸)질을 했으니 잘난 척하다 망국으로 전락한 게 아닌가 싶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들추는 이유는 간단하다. 2022년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갤럽 조사 결과 55.5%다. 그럼에도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 씨의 결혼 전 이력을 놓고 벌이는 공론(空論)이 과거 예송논쟁이나 다름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21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교육위원회를 단독 소집해 “김건희 씨의 허위 학력 기재에 대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검증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내년 3월 9일 대선까지, 아니 윤석열이 대선에서 승리를 하더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질 태세다. 대선 후보 부인 결혼 전 사인(私人) 시절의 이력이 중요하다고 나는 보지 않는다. 김건희가 결혼할 사람이 검사일지, 나중에 검찰총장이 될지, 심지어 대선 후보가 될지 젊은 날 짐작도 못 했을 것이다. 알았다면 보톡스 맞듯 그렇게 과장해서 이력을 쓰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어쩌면 김건희는 남편 아니라 검찰총장에게도 사실을 말하기 싫을지 모른다. 그러나 김건희가 국민 앞에서 진심으로 사과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진도를 나갈 수가 없다. 윤석열이 아내를 보호하겠다고 직접 사과하는 걸 막는다면, 그의 판단력과 분별력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김건희를 위해 ‘윤핵관’을 통해 의원 기자회견을 연출했다는 것도 경악할 일이다. ‘공정과 상식’이라는 윤석열의 대선 구호는 이미 흔들렸다. 윤석열이 대선 기간 중 부인을 선거운동에 동반하지 않는대도 마찬가지다. 설령 그가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 제2부속실을 폐지한대도 김건희는 절대 국민 앞에 나설 수 없다. ‘건희의 강’을 건너지 않고는 어떤 식으로든 문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2021년은 100년 만에 닥친 팬데믹으로 세계의 흐름이 급변한 한 해였다. 양극화와 디지털 혁명이 급진적으로 가속화됐고,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경쟁은 신냉전 소리가 나올 만큼 격렬해졌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대통령 후보 부인의 결혼 전 이력 문제로 공론을 벌이는 것 자체가 분하기 짝이 없다. 2022년 초 세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중국의 대만 침공, 이란의 핵무기 생산 등 세 개의 전쟁구름이 몰려오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세 지역 모두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러시아에 우크라이나는 중국에 대만과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상황에서 미국의 국가적 위엄이 손상되면 이는 한미동맹, 우리의 국가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이 대만 문제로 한국을 압박할 수도 있다. 북한은 초강경 반미 이란을 반기는 상황이다. 사방이 첩첩산중인데 문재인 대통령은 내년 2월 베이징 올림픽 때 남북 (화상)정상회담과 종전선언을 성사시켜 민주당 대선 승리에 기여할 눈치다. 그리하여 유엔사 해체와 미군 철수가 완료된다면 이 나라에 더 이상 희망은 없을 것 같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건희의 강’에 이대로 빠져 죽고 말 것인가.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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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대통령의 애처증은 병이다

    아마도 국민의힘 대선후보 윤석열은 오늘까지도 정확한 사실 파악을 못 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아내 김건희 씨의 허위 이력 의혹 말이다.17일 오후 윤석열이 포괄적 대리사과를 하긴 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아내의) 경력 기재가 정확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는 것임을 말씀드린다.”이런 젠장. 안 한 것보다 낫지만 잘했다고도 볼 수 없는 사과다.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들여다보지 않았을 리 없다. 그날 밤 윤석열이 아내에게 확인해보지 않았을 리도 없다. 그러나 아무리 검찰총장 출신이래도 김건희가 입 꼭 다물고 말을 안 하면 어쩔 텐가. 그래서 18일 “허위 이력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인지 논란이 있다”는 취재진 물음에 윤석열은 “앞으로 어떤 사항이 생길지 모른다”며 “노코멘트하겠다”고 했을 것이다. ● 남편에게도 말하기 싫은 게 있다대부분의 여자들은 성형수술 사실을 남자에게 말하지 않는다. 결혼 전 가벼운 미용시술을 알려줄 필요는 당연히 없다. 결혼 후에도 ‘수술 사고’가 생기지 않는 한 굳이 남편에게 충격을 줄 이유는 없다는 게 여자들 생각이다.허위 이력 기재라는 엄청난 사안을 성형수술과 비교한다는 게 무엄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굳이 비교를 한다면, 김건희한테는 아 몰라 몰라 정말이지 남편 아니라 검찰총장이 캐물어도 말하기 싫은 것이다. 어디까지 성형, 아니 가짜로 이력을 써넣었는지.어쩌면 김건희는 속으로 억울할지 모른다. 그가 살아온 이력은 그의 자존심이다. 돋보이고 싶어서, 부족한 부분은 성형수술하듯 부풀려가며, 다행히 안 들키고 성공적으로 살아왔다. 내가 결혼할 남자가 검사일 줄, 나중에 검찰총장이 될 줄, 아니 대통령 후보가 될 줄 어떻게 알았겠나. 그럴 줄 알았으면 그렇게 안 썼을 텐데!● 욕심이 정권 비리 낳는 것그러나 윤석열이 사과한 것으로 끝날 것 같진 않다. 김건희 리스크로 윤석열 지지율이 삐지는 추세다. 김건희 등판 없이 대선을 치르고, 다행히 윤석열이 승리한다고 해도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김건희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가짜 경력 기재는 “돋보이려고 한 욕심” 때문이어서다.이 욕심이 바로 정권 비리를 만든다는 게 사안의 핵심이다.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공동상황실장 조응천 의원은 17일 김건희에 대해 “한림, 성신대, 서일대, 수원여대, 안양대, 국민대에 쭉 들어가면서 학력, 경력, 수상 이력에 계속 반복적으로 문제 되는 자료가 들어간다”고 했다.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반복적으로, 결혼 후에도 돋보이려는 욕심을 주체 못 하는 성격이라면, 김건희가 대통령 부인이 된대도 그 ‘돋보이려는 욕심’을 갖고 가만히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무슨 사달을 내도 낼 것만 같은 것이다.● 정권비리의 씨는 처족이다건국 이래 최대 어음 사기 사건을 기억하는가. 1982년 ‘이철희·장영자 사건’의 장영자는 전두환의 처삼촌인 이규광 광업진흥공사 사장의 처제였다. 당시 이순자 여사는 “당신이 대통령 끝날 때까지만이라도 우리 따로 헤어져 있었으면 좋겠다. 이곳에 제가 있어 당신에게 폐가 되는 것만 같아 괴롭고 억울하고 미안하다”고 말했다고 2017년 자서전에 썼다. ‘정말 그이를 위해서라면 이혼, 아니 목숨이라도 끊고 싶은 심정이었다는 거다.그래도 그 경우는 대통령 부인 본인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래도 이순자는 본인의 잘못처럼 받아들였다. 그리고 당시 전두환은 처삼촌까지 구속하고 대규모 개각을 단행해 국정쇄신의 의지를 보여주었다.그런데 윤석열은 끔찍한 부인 사랑에 대수롭지 않은 실수, 대수롭지 않은 시간강사 경력쯤으로 대충 넘기려 들었다. 이쯤 되면 대통령의 애처증은 치명상이 되고, 윤석열의 대선 구호인 ’공정과 상식‘은 개뿔이 되고 마는 것이다.● 김건희의 사과가 필요하다내가 김건희라면, 검은 블라우스나 소복 차림의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와서 말할 것 같다. 차라리 남편 곁을 떠나거나, 이혼하거나, 딱 죽어버리고 싶다고. 젊은 날 돋보이고 싶은 욕심에 몇 가지 잘못을 저질러(이 부분은 정직하게 밝혀야 한다) 남편의 앞길에 장애가 된 점을 깊이 반성하고 사과한다고(굵은 눈물을 뚝뚝 흘려도 좋다).이렇게 하지 않으면 국민은 김건희를, 윤석열을 용서하기 어렵다. 설령 대통령에 당선돼 청와대 안주인이 된대도 마음으로부터 받아들일 순 없다. 심지어 ’쥴리‘에 대한 의혹도 사라지지 않을지 모른다. 수사나 재판 중인 범죄 의혹은 유죄 판결이 나올 경우 상응한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물론이다.대통령 부인이 공직은 아니지만 공인인 건 분명하다. 과거를 보면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과거의 잘못을 이렇게 처절하게 뉘우치는 모습을 국민 앞에 보이지 않으면, 설령 청와대에 들어간대도 같은 잘못을 반복할 공산이 크다. 김건희가 대선 등판은 안 해도 좋다. 그러나 공식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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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참 공교로운 대통령의 호주 국빈 방문

    생각지 않았거나 뜻하지 않았던 사실이나 사건과 우연히 마주치게 돼 기이하다고 할 만하다. 국어사전에 나와 있는 ‘공교롭다’의 낱말 풀이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호주 국빈 방문이 참 공교롭다고 본다.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해 민심이 흉흉한 시기다. 청와대 홈페이지엔 “앞으로 4주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시기”라며 “정부는 특별방역대책의 성공에 K-방역의 성패가 걸려있다는 각오로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7일 문 대통령 국무회의 발언이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호주 abc방송은 그 나라 정부 고위당국자들이 오미크론 창궐로 인한 세계적 불확실성 때문에 한국 대통령 방문을 연기하는 것을 검토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니까 호주도 문 대통령의 방문이 적잖이 부담스러웠던 거다. 청와대는 코로나 발발 이후 호주가 맞는 첫 국빈 방문이라고 자랑스러운 듯 발표했지만 그게 과연 자랑할 일이었나…싶다. ● 호주는 왜 굳이 초청했을까 문 대통령의 6월 오스트리아·스페인 국빈 방문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다르다. 그때는 왕궁에서 수십 명의 귀빈들을 초청해 오케스트라 공연과 함께 호화찬란하게 국빈 만찬이 진행됐다. 문 대통령 부부는 13일 데이비드 헐리 연방 총독 내외와 국빈 오찬을, 14일 스콧 모리슨 총리 내외와 국빈 만찬을 했을 뿐이다. 단출하게. 그럼에도 호주 방문이 강행된 것을 abc방송은 모리슨 총리의 뜻이라고 했다. 호주로선 지금 이 시기,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인 한국 대통령의 지지가 절실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내년 3월이면 5년 임기를 마치는(3월은 대선인데 잘못 알고 쓴 듯) 문 대통령은 중국과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염려 없이 호주와 안보를 강화할 수 있는 외교적 자유를 갖고 방문할 수 있다”고 했다(^^).호주가 어떤 나라인가. 최근 들어 대만 빼고 중국에 가장 직빵으로 당하는 나라가 호주다. 표면적 이유는 코로나였다. 호주가 작년 4월 코로나 바이러스의 발원지 국제 조사에 참여하겠다고 발표하자(중국이 발원지라는 속뜻이 있음은 물론이다) 중국은 전방위 무역보복을 자행했다(우리도 당해 봐서 아는 일이다).●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Moon의 동상이몽호주는 우리처럼 가만히 있지 않았다. 작년 여름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 협의체)에 이어 올해 9월 미국 영국과 함께 중국과 맞서는 3국 안보협약 AUKUS(Australia-UK-US)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번 13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모리슨은 “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AUKUS에 대해 지지를 보내주고 계신 점에 감사한다”고 우리 대통령을 은근하게, 실은 강하게 끌어당겼다. “역내에서 주권을 훼손 받고 있는 경우가 있고(중국을 겨냥한 소리다) 그런 경우에는 파트너십을 형성해 역내에 있는 국가들의 주권을 방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중국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게 아니라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의 가치를 함께 하는 국가들이 연대해야 한다는 국가지도자의 의지가 끓어 넘치는 발언이다. 안타깝게도 모리슨은…문 대통령을 잘못 알고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말한 것이다.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 외교적 보이콧을 미국으로부터 권유받은 바 없고, 한국 정부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중국이 만세 부르게 만들고, 초청국과 동맹국을 실망시키는 발언이다. ● 자유와 안정은 타협할 수 없다문 대통령이 14일 호주 제1 야당인 노동당 앤소니 노만 알바니스 대표를 접견한 것도 참 공교롭다. 호주는 노동당 정부가 집권하던 2010년대 초반까지 문 정권 못지않은 친중(親中) 정권이었다. 문제는 중국이 호주 정재계, 학계, 언론계까지 ‘조용하게 침공’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반중감정이 늘고 정권까지 교체됐다는 데 있다. 지난해 코로나 바이러스 근원지 국제조사 발표가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문 대통령이 노동당 대표에게 “종전선언은 정전체제를 공고한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첫걸음이며 비핵화를 위한 중요한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굳건한 지지와 협조를 요청한다”고 말했다면 위험하다. 모르고 말했다면? 안타까울 따름이다. 차라리 한반도와 관련해 이렇게 말한 모리슨 총리가 훨씬 고맙고 든든하다. “타협해선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자유와 안정을 한반도에 구축해야 한다”고. 한국정부가 종전선언을 추진한답시고 지나치게 중국이나 북한을 고려해 타협을 해선 안 된다는 의미다. 천만다행히도 우리에게는 대통령을 교체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때까지 우리는 코로나도 이겨내고, 종전선언도 막아내야 한다. 무슨 수를 쓰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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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민주 對 독재의 2022년, K대선은 민주 회복이다

    해마다 12월이면 토정비결을 보듯 영국 이코노미스트지(誌)가 내놓는 새해 세계 전망을 들여다본다. 회사와 집만 오가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일상을 전 지구적으로 확장시키는 혼자만의 연말 행사다. 천재지변에 가까운 코로나19 발발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은 2020년, 2017년 전망에서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2년 “이명박의 뒤를 이을 막강한 (대통령) 후보는 한나라당 내부의 주요 경쟁자인 박근혜 전 대표”라고 똑 부러지게 예측했던 이코노미스트다. 2021년 전망도 신통하게 들어맞았다. 100년 만에 찾아온 팬데믹으로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되고 불평등을 악화시켰으며 미중 간의 지정학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고 했다. 여기서 이어지는 2022년의 세계는 민주주의 대 독재의 대결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민주당은 중간선거에서 상하원 우위를 지켜낼 수 있을지 불안한 상태다. 반면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은 내년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3연임을 통해 종신집권을 내다보는 여유 만만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실은 그렇기 때문에 중국은 법치와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전체주의 독재국가다. 9, 10일 미국이 여는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중국을 겨냥한 행사이기도 하다. 전 지구적 현상인 ‘민주주의 후퇴’는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2022년 우리나라 대선의 의미 역시 민주주의냐, 독재냐에 있다고 본다. “특권과 반칙에 기반한 강자의 욕망을 절제시키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抑强扶弱) 정치로 대동 세상을 향해 가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당내 경선 출마 선언에서 이렇게 밝혔다. 누가 강자인지, 약자인지를 자신이 정하는 지도자 중심의 국가 주도적 정치라는 점에서 사뭇 독재적이다. 아직 대통령도 아니면서 의원들을 앉혀놓고 “(여당) 위원장이 방망이를 들고 있지 않느냐”며 “단독처리 할 수 있는 건 하자니까요”라며 ‘입법독재’를 독려하는 모습은 섬뜩하다. “(홍남기 부총리) 두드려 패는 건 안 되고 맴매”라며 자신의 공약 예산을 받아내는 것도 여당이기에 가능한 관권선거이자 매표행위로 보인다. 발언 하루 만에 철회하긴 했지만 그는 ‘음식점 허가 총량제’를 실시하겠다고 한 적도 있다. “망할 자유를 보장하는 게 국가의 역할이냐”고 말했던 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권력으로 국민을 통제하고 관리하며, 심지어 국민의 자유나 기본권조차 줬다 뺏었다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그러니 사상의 자유를 빼앗는 역사왜곡금지법, 2%의 부자는 인민의 적으로 취급해 모두가 똑같이 나눠 갖자는 국토보유세를 밀어붙일 작정인 것 아닌가. 국민의힘이 수권능력을 갖췄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반(反)독재의식을 갖춘 것은 분명하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질서를 사사로이 무너뜨렸다. 사법부를 행정부의 부속품처럼 다뤘고 입법부는 청와대의 친위대처럼 만들었다. 자신들의 부정부패가 드러나자 검찰의 수사권까지 빼앗고 충견 노릇을 할 이상한 수사기구를 설치했다”는 김종인 총괄선대위원장의 지적은 문 정권 독재의 본질을 날카롭게 꿰뚫는다. 윤석열 후보는 6일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코노미스트지는 2022년 국가별 전망에서 “국민의힘 후보로 나선 윤석열이 현 정부의 부진한 백신 대응에 대한 불만에 힘입어 청와대를 차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예측이 들어맞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다면, 문 정권이 후퇴시킨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키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기 바란다. 윤석열은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인터뷰에서 “청와대 민정수석 폐지”를 밝혔다. 5년 단임 대통령이 이루기 힘든 엄청난 대규모 프로젝트보다는, 청와대비서실 권력을 확 줄이고 총리와 내각을 일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진짜 개혁이다. 특히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청와대 권력의 ‘자제’와 ‘관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법부와 헌법재판소의 중립성,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문 정권과 거꾸로만 한다면 민주주의 만세 소리가 절로 나올 게 틀림없다. 아, 그렇게만 된다면 2022년 대한민국은 정말 행복해질 것 같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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