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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대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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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7~2024-04-26
칼럼100%
  • [김순덕의 도발]사시 9수 윤석열, 대선도 9수할 참인가

    국민의힘 대선 후보 윤석열이 사법시험에 아홉 번 떨어졌다는 건 유명하다. 법무부 장관 추미애와 충돌하던 검찰총장 시절 “사시를 9수해서 내 인내심은 갑(甲)”이라며 받아넘겼다는 것도 유명하다. 하지만 문파 황교익이 지적했듯, 웬만한 재력 집안 아니고선 사시 9수는 쉽지 않다. 너덧 번 떨어지면 먹고 살기 위해서라도 포기하고 일자리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흙수저 출신’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도 “단기간에 사법 고시에 합격해야겠다는 부담감이 컸다”고 ‘나의 소년공 다이어리’에서 고백했었다. ● 국민의힘 벌써 배가 불렀다 굳이 아픈 과거를 들먹이는 건 윤석열이 배가 불러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는 내년 대선쯤 패배해도 괜찮다고 여기는지 모른다. 부인이 재력 집안이니 사시 9수 하듯 대선 9수를 할 참인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후보는 ‘문고리 3인방’ 원성을 듣고도 외면하고, 당 대표는 중2처럼 연락을 끊고 후보 따로 대표 따로 콩가루당이 될 순 없다. 반드시 정권교체를 해내고야 말겠다고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이다. 대선에서 망해도 지방선거에서 공천만 따면 장땡이라고 눈이 벌겋지 않다면, 저렇게 자리다툼이나 하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애타는 건 오히려 국민들이다. 윤석열이 좋아서 정권교체 원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집권세력 잘한 것 없고, 그런데도 당당하게 정권 연장 꾀하기에 못 살겠다 갈아보자 싶은 거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이 내년 대선에서 실패한다면, 그때는 국민 앞에 석고대죄 할 염치도 없으니 차라리 이대로 서서 죽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손톱만큼이라도 있다면, 당신들이 국민에게 이럴 순 없다.● 2002년 초 ‘이회창 대세론’처럼 2002년 대선이 치러지기 24일 전까지 선거를 주름잡은 건 ‘이회창 대세론’이었다. 민주당은 4월과 8월, 10월에 각각 이회창 10만 달러 수수설, 이회창 부인 기양건설 뇌물 수수설, 김대업의 이회창 두 아들 병풍(兵風)을 각각 터뜨렸다(그 설설설은 수사와 판결에서 모조리 거짓말로 밝혀졌다. 물론 대선이 다 끝난 뒤였지만). 이회창을 누른 것은 선거 24일 전 전격 실시된 노무현-정몽준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 승부수였다. 물론 그 전까지 야금야금 이회창 지지율을 깎아먹은 것이 있었다. 그가 2017년 회고록에서 고백한 바에 따르면 선거를 실제로 좌우하는 핵심 요인은 유권자를 ‘설득’하는 능력과 ‘이미지’ 연출이라는 거다. 이회창 말씀이 20년 전 교훈이긴 하다. 우리가 탁현민의 연출에 이미 질려 있어서 이재명의 쇼가 빤히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윤석열은 고만큼의 설득도, 이미지 연출도 못하는 정치인이다. 같은 당 젊은 대표 이준석도 설득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2030을 설득한다는 건가. 문고리에 둘러싸인 왕(王)의 이미지로 감히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은가. ● 갈등을 풀어내는 것이 리더십이다 이 모든 갈등을 풀어내는 것이 바로 리더십이다. 개인, 학연, 지연, 파벌, 친소관계 등 모든 사적 이해관계를 희생하고 오로지 공적 영역만 중시하는 것, 즉 지금 국민의힘으로선 정권교체를 위해서 무조건 포용하는 것이 정치이고, 당장 윤석열에게 주어진 숙명이다. 안타깝게도 대선에 도전한 이후 윤석열은 우리에게 어떤 설득력도, 리더십도, 감동도 보여준 적이 없다. 지금이 바로 그것을 보여줄 때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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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이재명은 대선도 안 치르고 입법독재부터 시작했다

    대선을 6개월 앞둔 2002년 7월 4일.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공정선거를 위한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김대중(DJ)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2주 전 DJ는 비리로 구속된 세 아들 때문에 육성으로 사과하며 선거 중립과 엄정한 법적 처리를 약속한 상태였다. ‘노풍’은 이미 폭삭 꺼진 채 지지율은 20%대에서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었다.노 후보 주장이 획기적이긴 했다. 그의 말대로 국무총리, 행정자치부 장관, 법무부 장관 등 선거 주무 책임자를 ‘야당 추천을 받아’ 임명했다면 너무나 공정한 거국중립내각으로 역사에 남았을 거다(1992년 현승종 내각이 있기는 했으나 김기춘의 “우리가 남이가” 사건이 그때 벌어진 일이었다). 생각해 보시라. 문재인 정부에선 김부겸 총리,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모조리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대선이 코앞인데 선거 주무 장관들을 여당으로 채워놓고 공정한 선거관리가 가능하겠나. ● 아직 대통령에 뽑히지도 않았는데이보다 심각한 건 민주당과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가 나라와 국민에 끼치는 영향이다. 민주당이 21일 긴급 의원총회에서 전권을 이재명에게 위임한 건 좋다. 그건 당과 후보 간의 문제다. 그래서 이재명의 지지율을 올리겠다는 게 당신들의 목적일 터다.그러나 부동산개발이익환수법 같은 이재명의 대선공약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법안으로 통과시키겠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국민적 합의도 이뤄진 바 없지만 이재명은 국회의원도 아니다. 아직 대선을 치르지도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에 당선된 건 더더구나 아니다. 이재명으로선 대장동 의혹이 목덜미를 조이고 있어 어떻게든 개혁적 성과를 보여주고 싶겠지만, 어림도 없다. 그가 당선될지 낙선될지 모르는 판에 왜 그의 공약을 당장 법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대장동 의혹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특검을 받으면 된다. 부동산개혁 입법이라니, 아무데나 개혁이란 말을 쓰지 말란 말이다. ● ‘이재명은 합니다’가 무서운 이유 이재명은 24일 민주당 ‘민생·개혁입법 추진 간담회’에서 국민 앞에 사과의 큰절을 올렸다. 그리고는 국회 상임위원장과 간사들을 앉혀놓고 담임선생처럼 법안 처리방침을 번호로 써주기까지 했다. ▲여야 합의 처리(0번) ▲정기국회내 신속 책임 처리(1번)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2번) ▲당론 정리 필요(3번) 이런 식으로.그의 선거 공약인 개발이익환수법안·공공기관 노동이사제·노조전임자 타임오프제 등은 패스트트랙 안건으로 분류됐다.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개입을 보장하는 노동관계3법을 놓고 이재명은 “(여당) 위원장이 방망이를 들고 있지 않느냐”며 “단독처리할 수 있는 건 하자니까요”라고 노골적으로 ‘입법독재’를 독려하는 모습이었다.‘이재명은 합니다’가 그의 자서전 제목이자 선거 모토다. 여기엔 목적어가 없다. 이재명의 추진력, 실행력을 말해준다지만 나는 그게 더 무섭다. 무엇을 할지 알 수 없어서다. 좋은 일을 할지, 나쁜 일을 할지, 미친 짓을 할지 모르는 거다. 이재명의 선거 공약을 이번 국회에서 법안으로 만드는 건 초유의 ‘국회 선거개입’이 될 수 있다. 2018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떠올려보시라. 86그룹은 그 정도쯤 아무것도 아닌 걸로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이번 대선엔 민주당이 몽땅 나서 이재명 선거를 도울 작정인 듯하다. ●사상 초유의 ‘국회 선거개입’ 나올 판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재명은 의원이 아니다. 대통령에 당선된대도 행정부 소속이다. 만에 하나, 이재명이 대통령에 당선돼 지금처럼 입법을 강요한다고 상상해 보시라. 삼권분립 위배다! 아무리 여당 의원들이라고 해도 국민의 대표이지 대통령 꼬붕도, 청와대에서 월급 받는 것도 아닌데 “그건 아니다” 한 마디 하는 의원이 없다는 건 심각하다. (내가 이들 여당 의원 지역구의 주민이라면 엄청 자존심 상할 것 같다.)1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 안건은 2022년 예산안이었다. 그런데 민주당이 개발이익환수법 상정을 먼저 처리하자고 주장하는 바람에 예산안 심의도 못하고 말았다. 22일도 똑같은 문제로 국회가 파행되자 이재명은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개발이익환수법을 막는 자가 ‘화천대유’를 꿈꾸는 공범.”(미안하지만 웃기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눈에 예산안 심의가 그리 가볍게 보이는가.) ● 독재자의 속내 드러내 고마울 따름2016년 1월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단체들이 성남시 판교역 광장에 마련한 ‘민생구하기 입법 촉구 1000만 서명운동’ 부스를 찾아 서명했다. 경제활성화법, 노동개혁법, 테러방지법 등 민생법안이 야당(현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통과되지 않자 “애가 탄다”며 벌인 ‘장외투쟁’이었다. 당시 박근혜는 야당 의원들과 대화나 설득할 시도조차 않던 불통의 대통령이었다. 신년연설과 3·1절 연설에서는 “국회를 심판해 달라”고 했다. 의회와 법치를 능멸했던 대통령의 말로(末路)를 우리는 안다. 그것은 다시 보고 싶지 않은 비극이었다. 26일 목포에서 이재명은 “국민이 괜히 다수석을 준 게 아니다. 발목을 잡으면 그 잡은 손을 차고 앞으로 나가겠다”고 했다. 그가 여당 의원들에게 말했듯, 야당을 “저들”이라 칭하면서 “입법기구는 입법하고 집행기구는 집행하며” 청와대는 초법적기구라고 믿는 게 바로 독재자의 특성이다. 자칭 ‘3실(실력·실천·실적) 후보’라는 이재명. 그가 대선을 치르기 전 그 속내를 노출해준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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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86 집권세력’은 전두환의 사생아였다

    지난 주말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에서 뜻밖의 발언을 남겼다. 한국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달라면서 이렇게 말한 거다. “우리 정부만이 이룬 성취가 아닙니다. 역대 모든 정부의 성취들이 모인 것이고 결국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국민이 노력해서 이룬 성취입니다.” ‘제3기 민주정부’를 자처하며 김대중-노무현 정부만 1, 2기 민주정부로 인정했던 문 정권이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역대 모든 정부’에는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운 이승만 대통령은 물론, 23일 세상을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도 포함된다. 전두환 집권기(1980∼1988년)는 연평균 9%의 고도성장기였다. 그때는 대학생이 많지도 않았지만 1980년대 학번, 60년대생은 데모만 해도 졸업 후 취업 걱정은 안 해도 괜찮을 만큼 일자리가 넘쳐났다. 전두환이 12·12쿠데타와 5·18광주민주화운동 무력진압으로 우리나라에 씻을 수 없는 해악을 남긴 건 분명하다. 그러나 12·12 직후만 해도 대부분의 정치인은 전두환 같은 정치장교들이 정치공작에 능숙한 집단임을 몰랐다고 오인환은 최근 저서 ‘김영삼 재평가’에서 지적했다. 김영삼은 유신과 함께 군부 시대도 끝났다고 속단했고, 군 출신이 역사를 망쳤는데 또 나올 수 있겠느냐며 ‘민주화 대세론’을 믿었다고 했다. 당시 “전두환 독재 타도”를 외쳤던 86운동권 출신 중에서도 현 집권세력은 신군부세력이 낳은 사생아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을 뿐 민주주의를 제대로 배우지도, 실천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사파 전대협 출신들이 상당수인 청와대비서실은 ‘청와대 정부’로 문 정권 내내 우리의 자유민주주의를 뒤흔든 게 사실이다. 젊은 날의 그들은 광주시민을 학살한 전두환 군사독재를 타도할 수만 있다면, 마르크스-레닌 아니라 김일성과도 손잡겠다며 더러는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쳤을 것이다. 이들이 총학생회 시절부터 정치공작에 능숙한 집단임을 국민은 알고 있는지 의문이다. 2018년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이 한 예다. 문 대통령의 30년 절친 송철호 시장을 당선시키려고 청와대비서실은 과거 전대협 때처럼 총출동해 아무렇지도 않게 선거 공약을 만들어주었던 모양이다. 조국은 민정수석 시절 대통령발 개헌안을 국무회의 심의도 안 거친 채 들고나와 감히 국민을 가르치려 들었다. 이들이 검찰개혁, 사법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삼권분립을 뒤흔든 것이 전두환도 울고 갈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다. 문 정권이 조문조차 거부하는 철권통치자 전두환도 참모진을 그렇게 만들진 않았다. 김재익 경제수석에게 “경제는 당신이 대통령”이라고 일임하면서도 비서는 어디까지나 지휘관의 참모인 만큼 장관의 권한을 침해하지 못하게 단속했다고 회고록에서 밝힌 바 있다. 민주주의의 개념도 ‘86세대의 민주주의’는 달랐다. 주사파 이론가 민경우는 “선거에 승복해야 한다는 개념이 주사파에는 없다”고 했다. 우리가 아는 민주주의는 1987년 선거에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되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다음 선거를 기약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당장 타도 투쟁에 나섰다. 선거에서 볼셰비키가 패하자 무력으로 뒤엎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 알 것 같지 않은가.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소고기 광우병 시위든, 민노총 시위든, 무슨 구실이든 붙여 정권 타도 투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불리하면 ‘조작’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그들만의 특징이다. 그러다 보니 나중엔 옳고 그름 자체가 흔들리는 위험한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어쩌면 내년 대선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전두환의 죽음과 함께 불행했던 한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역대 모든 정부의 공(功)은 끌어안고 과(過)는 교훈으로 삼아야 할 때가 되었다. 악마를 타도하겠다고 악마를 닮아서는 안 될 일이다. ‘조국흑서’ 저자인 변호사 권경애는 “광주학살 원흉 감옥 보내야 한다고 데모하고… 의원 배지 달고… 그 귀착점이 이재명이냐”고 취중진담을 페이스북에 썼다 지우기도 했다. 86 집권세력이 변하지 못한다면 국민의힘이 먼저 변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성숙한 자유와 권리와 민주주의를 누리며 사는 듯 살아볼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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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이재명이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이유

    나는 겁이 많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측은 연일 ‘나쁜 언론 환경’을 비난한다. 15일에도 “기본소득토지세(국토보유세)를 반대하는 것은 악성 언론과 부패정치세력에 놀아나는 바보짓”이라고 공격했다. 이재명의 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에 대해 잘못 썼다간 악의적 언론의 바보 글로 찍힐 것 같아 겁난다.● 우리는 기본소득에 합의한 적 없다우선 팩트부터 반듯이 하면 이렇다. 이재명이 국토보유세를 새로 걷겠다고 밝힌 것은 집권할 경우 임기 내 청년에게 연 200만 원을, 전 국민에게는 연 100만 원(4인 가족 400만 원)을 나눠주겠다는 기본소득 공약 때문이다. 이재명은 7월 22일 기본소득 공약 발표회에서 재원 마련 방안을 밝힌 바 있다. ‘국민적 합의’를 전제로 기본소득목적세 도입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기본소득은 충분한 검증과 재원 확보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일시 전면 시행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우리는 기본소득이나 기본소득목적세 도입에 관해 어떤 국민적 합의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이재명은 느닷없이 모든 토지에 세금을 매겨 기본소득으로 나눠주는 국토보유세에 반대하면 바보짓이라고 국민을 비판했다. 놀랍지 않은가. ● 사회주의로 가는 이행기 강령, 기본소득이재명이 왜 기본소득에 집착하는지, 그 이유를 나는 ‘이재명 현상’ 관련 논문에서 발견했다. 오늘 후보 직속 기본사회위원회 고문으로 공식 합류한 강남훈 한신대 교수(기본소득국민운동본부 상임대표)는 2009년 자신이 개발해 이재명에게 소개한 기본소득제도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강조했다고 한다.“진보정당이 사회주의를 당면목표로 내세울 수 없는 상황에서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가능한 이행기적 강령을 내세워야 하며, 기본소득이 이행기 강령이 될 수 있다.”(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채진원 교수의 2019년 논문 ‘포퓰리즘의 이해와 이재명 현상에 대한 시론적 논의’) 쉽게 말해, 사회주의를 내세울 수 없다면 기본소득을 사회주의로 가는 이행기의 강령으로 내걸어야 한다는 얘기다. 강남훈은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기본소득 제도를 실현하려면 무상교육, 무상의료, 토지국유화가 전제돼야 하고 불로소득에 높은 과세를 적용할 수 있도록 조세변혁을 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그게 바로 이재명이 강조한 국토보유세다. ● 자본주의 해체에 도움되는 매커니즘거칠게 해석하자면, 이재명의 기본소득과 국토보유세 주장은 자본주의를 폐기하고 사회주의로 가는 이행기 강령이라고 할 수도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논문에 나와 있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이재명 측에서 악성 언론이 악의적 해석으로 바보 글을 쓰고 있다고 마구 공세를 펴기에 똑 알맞은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지난 4월 경기도에서 3년이나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를 주최해 막대한 예산을 쓰면서 “모든 인류의 경제적 기본권을 실현할 수 있는 복지적 경제정책인 ‘기본소득’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축사를 날린 이재명으로선 괘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팬데믹 시대의 기본소득’에 대해 발표한 가이 스탠딩 영국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공동의장 역시 “기본소득은 ‘지대추구 자본주의’를 해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매커니즘”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심지어 그는 “대한민국의 유력 대선후보가 기본소득을 제안하는 중대한 시기에 발언할 기회를 갖게 돼 영광”이라며 “지대추구 자본주의 아래서는 더 많은 소득과 부(富)가 소유자에게 흘러들어가며 이런 체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강조를 했다. ● 그 좋다는 기본소득, 현실에선 없다이재명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주장했던 기본소득을 현실에 도입한 나라는 그러나, 없다. 더불어민주당조차 2017년 대선 핵심 어젠다 연속토론회에서 “현실세계에서 기본소득 원형에 ‘가까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지역은 미국 알래스카 주가 유일하다”고 했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좌파진영에서도 사민당 주류는 기존 복지국가 체제 유지를 선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재명은 국민에게 상위 10%(이하 토지보유 기준)로부터 걷은 돈을 하위 90%는 나눠 갖게 된다며 국토보유세에 반대하면 바보짓이라고 했다. 국민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누는 증오의 정치다. 우리는 아직 어떤 국민적 합의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반대를 하면 바보짓, 역적 짓으로 찍히게 됐다. 죽창만 안 들었을 뿐 공산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나는 이재명이 노리는 이 혁명적 체제 이행이 겁나고 무섭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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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예비 영부인을 어떻게 모셔야 하나

    참 유별난 경험이다. 지난주 내내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선 후보 부인 김혜경 씨의 9일 ‘낙상(落傷) 사고’를 놓고 거의 재난사고 수습을 하는 모습이었다.12일 선거대책위원회 ‘배우자 실장’이라는 이해식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흘 전 김혜경이 병원으로 실려가는 CCTV 캡쳐본을 공개했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이 후보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담요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서까지 손을 잡았다.” 1963년생으로 환갑이 내일모레인 그가 페이스북에 쓴 설명이다. 국회의원답지 않게 오글거리는 안물안궁(안 물어봤고 안 궁금한)이고, 영어로 하면 TMI(Too Much Information)다.13일 저녁 이재명은 옥계해수욕장에서 진행한 ‘명심 캠프’ 토크쇼 도중 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때려서 그랬다는 소문이 있잖아” “그건 누가 일부러 한 것” “딱 그게 몇 시간 만에 전국에 카톡으로 뿌려지고 그랬잖아”라고 대화하는 상황을 연출하며 ‘가짜뉴스’ 통제를 하는 듯했다.● 의원이 왜 후보 부인을 시중드나민주당은 이미 11일 김혜경의 사고 관련 가짜뉴스를 퍼뜨린 2명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와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그러고도 같은 날 서영교 등 현역의원 무려 5명이 기자회견을 열어 “김 씨의 부상을 둘러싸고 악의적이며 의도된 조직적 가짜뉴스를 엄단하겠다”고 국민을 겁박했다.이 사실이 내게 놀라운 이유는 이들이 혈세로 봉급받는 ‘국민의 대표’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꼬붕도, 대통령 부인의 꼬붕도 아닌 국민의 대표다. 국회의원이 받는 세비가 1억 5000만 원이 넘는다. 의원은 입법부에 속해 있고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다.그럼 대통령 부인은? 그냥 대통령의 배우자일 뿐이다. 통상 대통령비서실에서도 대통령 부속실은 ‘비서실 안의 비서실’로 불린다. 그 중 제2 부속실이 대통령 부인을 챙기는데 주로 의전을 담당한다. 대통령 부인에게 무슨 법적 지위나 역할, 책임이 있다는 규정은 어디에도 없다.● 삼권분립 무너진 이 더러운 개천심지어 대통령도 아닌 대통령 후보, 그것도 대통령 후보의 배우자를 담당하는 직책으로 ‘배우자 실장’이 생겼다는 건 금시초문이다(대개 팀장급에서 한다). 여성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대통령 부인에게 특별한 지위나 책임, 역할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국회의원이 그 일을 한다는 건 삼권분립이 통곡할 일이다.미국선 현직 의원이 대선 후보 지지 선언은 해도 선거캠프에서 공식 직함을 갖고 일하진 않는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헌법기관이다. 세비를 국회에서 받는데 남의 선거캠프에서 일한다는 건 국민에게 미안한 일이다. 더구나 후보 배우자 밑이라니 ‘내시’를 자처하는 일 같지 않은가.미안하지만 나는 김혜경이 어쩌다 낙상했는지 별 관심 없다(빠른 쾌유를 바랄 뿐이다). 무슨 가짜뉴스가 나도는지도 이재명이 “내가 때려서 그랬다는 소문이 있잖아” 해서 알았다. 그런데 막대한 세비 받는 의원들이 대뜸 고 노무현 대통령의 ‘논두렁 시계’를 언급하며 국민 입단속을 한다? 마치 황제와 황후는 뜨거운 금슬을 확인했고 의원님들은 충성을 입증했는데, 삼권분립 무너진 이 더러운 개천의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기분이다.● ‘쥴리’는 상관없다, 내로남불이 문제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측도 고민이 깊을 것이다. 부인 김건희 씨는 아직 국민 앞에 등장하지도 못했다. 한동안 ‘쥴리’를 놓고 말들이 많았지만 나는 2012년 그가 윤석열과 결혼하기 전 사생활에 대해선 1도 관심 없다.그가 결혼한 다음 대학 임용을 위해 경력을 허위로 써냈다거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연루된 의혹은 반듯이(그리고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조국 사태 때 분노했던 2030이 “조민과 김건희가 다른 게 뭐냐”며 마음을 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도이치모터스는 특히 돈 문제여서 개운치 않다. 청와대 안주인이 만에 하나, 돈에 관심 많다면 큰 문제여서다.사랑에 눈 먼 윤석열으로선 죽어도 아니라고 하고 싶겠지만…부인 리스크 소리가 계속 나온다는 건 윤석열이 이미 ‘폭탄 조끼’를 두르고 있다는 얘기다. 3월 10일 “배신자” 소리 듣지 않으려면, 더 늦기 전에 남자답게 털어내기 바란다. 윤석열 사전에 내로남불은 없다고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분명히 밝히지 않았던가.● 대통령에게는 처가가 원수다국정원장인 정치9단 박지원은 한때 “권력은 측근이 원수, 재벌은 핏줄이 원수”라는 명언을 날렸다. 하지만 우리 대통령사(史)를 돌아보면 대통령 부인과 자식, 처가 때문에 생긴 문제가 대통령 얼굴을 못 들게 했다. 측근 비리는 차라리 나중 문제였다.2002년 이맘때 나는 노무현 후보 부인 권양숙 씨,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부인 한인옥 씨를 연속 인터뷰한 적이 있다. 두 분은 청와대에 들어가면 친인척과 가족 단속을 철저히 하겠다고 모범답안처럼 강조했다. 그해 초 김대중 대통령의 처조카부터 시작해 차남 김홍업, 3남 김홍걸이 줄줄이 수뢰 혐의로 구속됐기 때문이다.그랬던 권 여사도 태광실업 박연차로부터 뇌물과 시계를 받는 바람에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고 말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몰락시킨 것도 대통령 처남이 표면상 대주주였던 그놈의 다스였다. 여성인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은 자신의 옷차림까지 챙겨준, 남자로 치면 처가 식구 같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대통령 부인의 불행을 반복하지 마시라건국 이래 최대 어음 사기 사건을 기억하는가. 1982년 ‘이철희·장영자 사건’의 장영자는 전두환의 처삼촌인 이규광 광업진흥공사 사장의 처제였다. 전두환도 처삼촌의 구속까지는 막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당시로선 어마어마했던 거금 1억원 수뢰가 드러나 박철언(당시 정무수석·노태우 전 대통령의 고종사촌 처남)의 건의에 구속할 수밖에 없었다.박철언도 6공화국의 황태자로 군림했지만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자 몰락하고 말았다. ‘슬롯머신 사건’으로 박철언을 구속한 ‘모래시계 검사’가 바로 윤석열과 자웅을 겨뤘던 국민의힘 대선주자 홍준표였다(물론 박철언은 터무니없는 정치보복이라고 주장한다)!이처럼 대통령 처가와 피붙이는 대통령의 폭탄 조끼와 다름없다. 그래서 대통령 부인은 더욱 단단한 마음과 태도가 요구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에게는 안 그러한가. 대통령의 딸 다혜 씨는 지금 태국 아닌 청와대에서 지내고 있다. 대통령의 사위, 그리고 타이이스타젯항공과 이상직에 얽힌 미스터리는 문 대통령 퇴임 뒤 누군가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그러므로 대통령 후보 때부터 예비 대통령 부인은 제대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황후마마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에 걸맞게. 취임하면 특별감찰관의 감시와 견제를 받으며. 그리하여 다시는 대통령 부인의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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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윤석열 대선캠프’는 달라야 한다

    선거 전략가들은 55 대 35를 정권교체의 변곡점으로 본다.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55%를 넘고 재집권을 원하는 여론이 35%를 밑돌 때,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정권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거다. 노무현 정부 임기가 반년 남았던 2007년 8월. 한국리서치 조사 결과 정권교체 여론이 58.4%였다(재집권 여론은 32.1%). 그해 말 대선에서 대통령은 바뀌었다. 5년 후 한겨레신문-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에선 정권교체론이 52.5%였지만(재집권 여론은 39.9%) 여당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됐다. 박근혜 지지층은 그의 당선을 정권교체로 본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선 정권교체를 원한다는 응답이 무려 57%다(이달 초 갤럽·현 정권 유지는 33%). 여당이 참패한 4·15서울·부산 보궐선거 때 마(魔)의 55 대 35는 이미 넘어갔다. ‘대장동 사태’를 거치면서는 날로 벌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다고 해서 야당이 마음 놓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이번 대선에선 여야 할 것 없이 후보마다 비호감도가 유독 높아서다. 그나마 홍준표 후보가 5일 경선 패배 뒤 “깨끗하게 승복한다”며 물러날 때 국민의힘이 멋져 보이긴 했다. 컨벤션 효과로 윤석열 후보의 지지도가 40% 넘게 치솟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홍준표의 쿨한 모습이 오래가진 못했다. 2030의 지지도가 높았던 그도 이틀 뒤 “비리 의혹 대선엔 참여할 생각이 없다”며 좁쌀영감 같은 뒤끝을 드러내고 말았다. 잠시 잊었지만 홍준표는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반대와 태극기집회 등 수구 보수정당의 퇴행을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2021년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다시 선택하지 않은 건 현명한 판단이었던 거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벌써 청와대라도 차지한 양, 선거대책위원회를 둘러싸고 자리싸움을 하는 듯한 행태를 보인다는 데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총괄선거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는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하이에나와 파리 떼’ 없는 선대위 구성을 주문했고, 윤석열 캠프에선 반발이 터져 나왔다고 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 여망을 배반하는 일이다. 다른 건 몰라도 윤석열이 측근 위주로 선대위를 만들지 않겠다고 밝힌 것은 백번 잘한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광흥창팀 같은 대통령 선거운동이란 것이 결국 집권 후 소수 측근 인사에 의한 유사 독재로 흐른다”고 단호하게 말했다는 거다. 임종석, 윤건영, 탁현민 등 13인의 사조직 광흥창팀 중 10명은 문 대통령 당선 뒤 대통령비서실로 옮겨가 ‘청와대 정부’를 이끌었음은 이미 책으로 나와 있다. 청와대실장과 수석들이 장관과 집권당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선 대통령 뜻이라며 입법·사법·행정을 무너뜨린 결과가 자유민주주의 파괴이고, 촛불파시즘이었다. 윤석열 대선캠프는 당 중심이어야 하고 또 외연 확장이어야 한다고 본다. 정권교체에 성공한 뒤 장관이나 청와대 자리 차지할 욕심을 갖고 있다면 하이에나, 파리 떼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더 이상은, 86그룹 같은 ‘이권 네트워크’ 꼴은 안 보고 살았으면 한다. 부패정치의 온상이 아니라 진정 나라와 국민에 봉사할 생각만 있다면, 과거 박근혜-이명박 정부 때 사람이면 또 어떤가. 윤석열은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자신을 정치로 부른 국민의 뜻을 “내 편 네 편 가르지 않고 국민을 통합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반드시 안철수, 김동연 등 중도의 제3세력과 함께 해 ‘자유주의 연대’를 꾸렸으면 좋겠다. 문파나 명파가 아니라면 민주당 사람도 상관없다. 한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지지했다 지금 창피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도 함께 한다면 더 큰 대한민국으로 갈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 과정에서 다름에 대한 인정, 관용과 화해, 다양성의 존중 같은 자유주의적 가치를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나라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 것이다. “윤석열의 사전에는 ‘내로남불’은 없을 것”이라는 그의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은 이 한마디만으로도 감동적이었다. 대통령도 책임져야 할 일에는 책임지는 것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 대선캠프를 놓고 시시하게 자리싸움하지 않는 것, 그것부터가 정권교체를 원하는 우리 국민의 ‘거지 같은 사랑’에 응답하는 길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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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우리에겐 왜 메르켈 같은 정치인이 없나

    한번 상상을 해봤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해 평화적 통일을 했다. 그리고 16년 뒤. 북한 출신 여성이 통일한국, 그것도 보수정당의 대통령으로 선출될 수 있을까.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전체주의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 동독 출신의 그가 2005년 중도보수 정당인 기독민주연합(CDU) 대표로서 독일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된 것이다. 그리고 16년 간 3연임이라는 ‘장기집권’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세계인의 찬사를 받으며 새 내각이 구성되는대로 물러날 채비를 하고 있다.정권교체 돼도 평화롭게 잠 잘 수 있어야 선진국 안다. 독일은 의원내각제이고 우리처럼 대통령제가 아니라는 걸. 대통령제라서 국민이 직접 선출해야 했다면 동독 출신 대통령은 어려웠을 수 있다.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해본 이유는 마냥 부럽기 때문이다. 메르켈은 야당인 사회민주당에 정권을 넘기고도 잠을 잘 자고 있느냐는 쥐트도이체차이퉁과의 인터뷰에 “우리가 정치적으로 차이는 있겠지만 평화롭게 잘 잘 수 있다”고 평화로운 답변을 했다. 내각제 개헌 같은 뜬금없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 중인 헝가리는 내각제 아래서도 삼권분립을 뒤흔들어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나라다. 문 정권의 헌법재판소와 사법부와 검찰을 장악해 법치 훼손하기, 언론 독립성 뒤흔들기나 민족감정 악용 같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 행태는 헝가리를 그대로 본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독재국가 출신이 독재자 되는 아이러니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1998년부터 4년간, 그리고 2010년부터 2018년 4월 총선까지 내리 압승한 유럽 포퓰리스트의 대표선수다. 공산 헝가리 시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우리로 치면 86그룹이 오늘날 독재자가 됐다는 사실은…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그게 경로의존성의 법칙이라고 주장하고 싶진 않다(집권하면 뇌가 달라진다는 연구도 있다고는 한다). 왜 하필 반(反)민주화-포퓰리즘 경향이 동유럽과 구소련, 아시아지역으로 번졌는지 통탄스러울 뿐이다. 메르켈에게 존경스러운 점이 바로 이 점이다. 전체주의 체제에서 35년을 살았으면서도 독재에 중독 되기는커녕, 자유민주주의 대표선수로 비자유주의와 포퓰리즘에 맞섰다는 사실! 그것을 메르켈 자신은 이렇게 표현했다. “인생의 35년을 자유가 없는 체제에서 살았던 누군가가, 그래서 자유의 특별한 가치를 잘 이해하는 누군가가…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욕구를 가진 사람이 부족합니다.”그래서 자신을 통일독일의 장관으로 발탁한, 정치적 아버지인 헬무트 콜 기민당 대표가 1999년 불법정치자금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도 “콜은 해당(害黨)행위를 했다”고 비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오직 메르켈만이!메르켈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았다1999년 12월 2일 아침, 앙겔라 메르켈의 이름으로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테차이퉁지에 실린 기사는 독일 정계에 폭탄을 안겼다. “당은 걸음마를 배울 필요가 있고 노병(old warhorse) 없이 정적들과 과감히 맞서 싸워야 한다.”독일 통일을 이끌어냈고, 16년이나 총리를 지냈던 기민당 거물에게 동독 출신의 ‘길거리 꼬맹이’가 폭탄을 던지리라 상상했던 사람은 없었다. 더구나 콜은 불법정치자금 수사를 은근히 방해하는 중이었다. 메르켈은 그런 무시무시한 인물을 상대하는 게 겁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고는 기이하다는 듯 대답했다. 나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 당의 미래를 생각할 뿐(하하. 우리나라의 어떤 사람이 연상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듬해 메르켈은 기민당 대표직에 출마했고 반대 없이 당선됐다. 45세 물리학자 출신의 새 대표 기민당의 새 출발이었다. 거짓선동으로 집권한 자, 히틀러뿐이랴흔히 메르켈 리더십으로 경청과 합의를 들기도 한다. 하지만 독일 정치는 연정(聯政)이 기본이고, 연정은 경청과 합의의 과정이다. 연정은 나치와 세계대전, 영토분할 등을 겪으며 교만과 분열, 극단주의를 철저히 반성한 결과라는 연구결과가 적지 않다. 경청과 합의가 메르켈만의 리더십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경청과 합의는 물론 중요하다. 우리나라 같은 현실에선 더더구나 당연히). 그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메르켈은 집권 뒤에도 끊임없이 지키고 확대하는 신념과 정치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메르켈 리더십’을 쓴 케이티 마틴은 메르켈만큼 오르반 빅토르 총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등에 맞서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맹렬하게 지켜온 지도자는 없다고 했다. 전체주의 경찰국가에서 살아온 메르켈은 거짓선동의 위력을 잘 안다. 과거 독일에서 히틀러가 선거로 집권한 것도 “빨갱이와 유대인들이 독일의 등을 찔렀다”는 거짓선동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면 거짓선동으로 집권한 지도자가 어디 히틀러뿐이랴.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것도 변할 수 있다메르켈처럼 동독에서 살아본 경험도 없으면서 정말 심한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대선 주자를 보면 안타깝다. 메르켈은 지난 16년간 독일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적이 한번도 없다고 했다. 히틀러의 현란한 연설과 괴벨스의 대중선동에 속았던 독일 국민들이었다. 이 나라가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포퓰리즘에 휘둘리지 않은 것도 사이다와 거리가 먼 메르켈의 단조로운 연설 덕이 컸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생물과 같다. 세금으로 월급 받는 공복(公僕)과 전문가집단과 시민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또박또박 제 몫을 다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무너지기 십상이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우리나라에도 메르켈 같은 정치인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메르켈의 2019년 미국 하버드대 연설을 보며 위안을 삼았으면(또는 경각심을 가졌으면) 한다. “변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것도 변할 수 있습니다. 세계적 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당연하게 받아들일 일이란 세상에 없습니다. 개개인이 누리는 자유는 보장된 게 아닙니다. 민주주의와 평화, 번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충동이 아니라 가치 옆에 굳건히 서십시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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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文-李의 오징어게임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만났다. 청와대는 “대장동의 ‘대’자도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이 가붕개(가재, 붕어, 개구리)라 해도 척 하면 삼천리다. 자칫 선거 개입 빌미가 잡힐 대화를 대명천지에 할 리 없다. 공개된 대화는 암호를 방불케 한다. “지난 대선 때 좀 모질게 했던 부분에 대해서 사과한다.” 비문(非文) 이재명의 사과에 문 대통령은 “이제 1위 후보가 되니 그 심정을 아시겠죠?”라고 답했다. 거의 뒤끝 작렬이다. “다 지나간 일이고 다 잊었다” 같은 너그러운 반응이 아니다. 그러니 친문 지지층도 흔쾌히 이재명에게 가기 힘든 것이다. 대선을 다섯 달 앞둔 이 시점이면 보통 여당 후보가 주도권을 쥐고 선거전에 나선다. 26일 세상을 떠난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87년 6·29선언을 한 것도 이 시기였다. 더구나 지금은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무려 52%다. 임기 말 문 대통령 지지율이 38%나 돼도 역대 대통령에 비해 높을 뿐,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75%)에게 견주면 턱도 없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대선 후보 당선도 정권교체”라고 주장한 것도 현 정권과의 차별화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재명은 문재인 정부 계승을 강조했다. “대통령과 생각이 너무 일치해서 놀랄 때가 있다”고도 힘주어 말했다.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이 뒤통수를 짓누르기 때문일 거다. 검경에 공수처, 사법부까지 한 손에 틀어쥔 대통령 앞에서 이재명은 한없이 작아져야만 했을 터다. 문 대통령은 “끝까지 도와달라”고 화답했다. 임기 끝까지인지, 그 뒤까지인지 알 수 없다. 덕담으로 보는 게 온당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현직 대통령이 대선 후보에게 도와달라고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진심으로 궁금했다. 공교롭게도 어제 문 대통령이 “역사적 과오가 적지 않지만 성과도 있었다”고 애도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자신을 대선 후보로 지명해준 전임 전두환 대통령을 한겨울 백담사로 ‘유배’시킨 장본인이었다. 전두환은 2017년에 낸 회고록에서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고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고락을 함께한 평생 동지 노태우가 후임 대통령이 되었으니 걱정할 일은 없어 보였다’고 썼다. ‘나의 친구 노태우에 대한 나의 신뢰는 확고했다’는 문장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건 물론이다. 한 페이지만 넘어가면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대선 TV연설에서부터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더니 당선 뒤 여소야대 국회가 되자 5공 청산을 명분으로 전두환 사과→재산 헌납→백담사 귀양을 밀어붙이더라는 거다. 문 대통령은 5공 청산을 고인의 성과로 언급하진 않았다. 전두환이 믿었던 친구를 대통령으로 세웠으나 개인적으론 배신당했고, 결과적으로 민주주의가 일보 전진할 수 있었다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다. 문 대통령도 믿었던 대선 후보를 위해 ‘김오수 검찰’의 얼렁뚱땅 수사로 대장동 의혹을 덮고 대선을 치른다면 정권 재창출에는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대통령이 된 이재명이 전임 대통령의 은혜를 언제까지나 기억할지는 알 수 없다. 현 정권이 끝나도록 1심 판결도 안 난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이나 ‘문재인’이라는 단어가 3번, ‘대통령’이라는 단어가 40번 넘게 등장하는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의 책임을 묻는 ‘적폐청산’에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다. 문 대통령 입장에선 인간적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럴 바엔 차라리 26일 유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국정감사에서 밝혔듯, 대장동 특검을 하는 것이 당당하다. 유영민은 “청와대도 굉장히 비상식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대장동 의혹은 국민 70%가 특검을 요구하는 사안이다. 이미 상설특별검사법이 존재한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핑계일 뿐 국회 의결을 하든가, 법무부 장관이 요청하면 될 일이다. 신속히 특검을 출범시키되 검찰은 그때까지 망신당하지 않게 수사하면 그만이다. 이재명은 잘못이 없다면 깨끗하게 털 수 있어 좋다. 전화위복이 돼 대선 승리를 거머쥘 수도 있을 것이다. 특검이 더러운 진실을 밝혀낸다면, 설령 정권을 잃더라도 문 대통령은 박수 받으며 떠날 수 있다. 권력을 놓고 겨루는 오징어게임에서 깐부는 미안하지만, 없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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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대장동 게이트’는 파크뷰사건 판박이었나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이 당당한 이유가 있다. 나는 그가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한푼도 챙기지 않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한 달 전 경선 때 “단 1원이라도 부당한 이익을 취했으면 후보 사퇴할 것”이라고 큰소리 쳤을 거다. 야당이 국회 국정감사장에 이재명을 앉혀놓고 ‘그분’이 누군지 자복하라고 호통 친 것도 작전 미스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공장노동자로 산전수전 다 겪은 그다. 부패 잡는 시민운동을 하다 정치에 뛰어든 이재명이 미쳤다고 표 나게 돈 받아먹겠나? 대장동 의혹을 파악하려면 이재명이 20여 년 전 파헤쳤던 분당 파크뷰 특혜분양사건을 볼 필요가 있다. 괴물을 공격하다 괴물이 돼버리는 것처럼 파크뷰에서 배운 교훈을 대장동에 적용하는 비극을 목도할 수 있을 것이다. 핵심은 ‘용도변경’이다‘고위공무원 판검사 국정원직원 등 130여명 분당 고급아파트 특혜분양’. 2002년 5월 3일 동아일보 1면 톱기사다. 김은성 전 국정원 차장이 항소심 재판부에 낸 탄원서를 동아일보가 단독 입수한 충격적 기사였다. 분양 첫날부터 1만 명이 몰렸던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일부가 빼돌려졌다니! 국민은 분노했지만 성남의 시민운동가 이재명은 혀를 찼다. 특혜분양은 지엽 말단일 뿐 진짜 문제는 용도 변경이라는 거다. 2017년에 낸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에선 이렇게 썼다. ‘2000년 5월 성남시는 주민 여론조사를 조작하면서까지 분당구 백궁·정자지구 중심상업지구를 아파트 단지로 바꿔주었다…나는 이 사업이야말로 성남시가 사업자에게 특혜를 준 사건이라고 판단했다.’권력을 통해야 용도변경 가능용도 변경이 중요한 이유는 노다지가 쏟아지기 때문이다. 대장동도 처음엔 고속도로에, 터널에, 반딧불이 서식지와 인접해있어 2015년 환경영향 평가는 개발밀도를 낮추라고 돼 있다. 중대형 아파트만 지어선 분양도 힘들고, 돈이 안 될 게 뻔하다. ‘권력’은 이럴 때 필요한 것!유동규가 개발본부장으로 있던 성남도시개발공사는 이 택지의 전용면적 조건을 과감히 변경한다. 85㎡초과 중대형 아닌 4인 가족에 알맞은 85㎡이하로 바꾼 거다(성남시장 이재명이 알았다면 공범이고, 몰랐다면 바지저고리다). 화천대유는 대장동 택지 5곳 모두 30평형 이하 중소형을 적용받았고, 결과는 완판이었다.성남 백현동 ‘옹벽 아파트’도 제2의 대장동 사태로 비화할 조짐이다. 이재명이 성남시장 시절 깎아지른 옹벽이 버티고 있어 도저히 아파트 못 지을 ‘녹지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4단계나 올려 사인했다는 거다. 부동산업체는 2년이나 아파트 못 짓다 2015년 이재명의 선거운동본부장 출신을 영입했더니 금방 용도변경했다는 환상적 성공스토리가 나돈다. 정치와 권력, 그리고 선거여기서 ‘선거’가 등장한다. 정치인에게는 돈보다, 집권보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당선이 제일 중요하다. 다시 파크뷰 사건으로 돌아가면, 아파트 못 짓는 상업용지를 사들였다 용도 변경을 성사시킨 개발사가 에이치원이라는 급조된 업체였다. 당시 김병량 성남시장은 당연히 홍원표 에이치원 회장과는 일면식도 없다고 했다. 거짓말이었다. “(1998년 성남시장) 선거 때 홍 사장이 직원들한테 휴가를 보내서라도 (나를) 지원하겠다고 한 건 사실입니다. 직원들이 나가 홍보한 거지요. 아는 사람들한테 일일이 지지하라고.” 2002년 5월 성남시민운동의 이재명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열어 김병량 시장의 전화통화 녹음테이프를 공개해 버린 거다. 홍 회장이 다음달 실시될 지방선거에서도 김 시장의 선거를 돕겠다고 충성 맹세한 육성도 들어가 있다. 용도 변경이라는 은혜를 베푸셨는데 뭘 못하겠는가. 이재명 선거와 유동규와 대장동19년이 흐른 2021년.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15일 녹음파일을 공개했다. 2014년 4월 남욱 변호사가 성남 대장동도시개발추진위원회 간담회 자리에서 한 발언이다. “이재명 시장이 (재선) 되면 아주 급속도로 사업 진행 추진이 빨라질 것 같다. 다른 분이 되면 조금 시간이 걸릴 수 있다.” 당시는 지방선거를 두 달 앞둔 시점이었다. 이 정도면 이재명을 찍으라는 노골적 선거운동 아닌가? 결국 이재명이 파크뷰에서 배운 건 부동산과 선거, 그리고 권력의 끈끈한 관계 아닌가 싶다. 거미줄 같은 생명력을 지닌 그는 죽기 살기로 뛰어 성남시에서 경기도를 거쳐 마침내 청와대 턱밑까지 살아왔다. 다시 파크뷰로 돌아가 보자. 파크뷰 개발회사가 H1이었음을 기억하는가. 유동규가 실소유주인 회사 이름이 우연찮게도 유1홀딩스였다. 대선 1년 전에 터진 대장동 게이트…진상은 규명될 수 있을까할 수만 있다면 이재명은 유동규와 일면식도 없다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지금까지 한사코 측근설을 부인했던 이재명은 20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마침내 “제 선거를 도와준 건 맞다”고 인정을 했다. 그러면서도 “충성을 다한 게 아니라 배신한 것”이라고 말하고 말았다.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입사와 퇴사를 반복하며 이재명 선거를 도왔던 유동규가 검찰 압수수색 때 약을 먹었다고 이재명이 발설한 것은 실수였을까. 그가 극단적 선택을 ‘당했다’고 믿고 싶진 않다. 이재명의 형 고 이재선 씨가 2012년 6월 5일 이재명 부인 김혜경씨와 했다는 통화가 떠오른다. “(이재명이) 파크뷰를 반대했는데 뭐하러 대장동 개발을 하느냐” “유동규 뭐하던 사람이냐” “이재명이 옆에는 전부 이런 사람(유동규)만 있어요. 협박하고…”용도변경까지 해주면서 에이치원 대표에게 떼돈을 벌게 해줬던 김병량 당시 성남시장은 결국 무사하지 못했다. 선거 때 자기를 도와준 건축사무소에 파크원 설계용역을 주라고 에이치원을 압박한 혐의로(제3자 뇌물수수) 2007년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 받은 것이다(그럼에도 당시 한나라당 박종희 의원은 대선 비자금의 진상을 다 밝혀내지 못했다고 개탄했었다). 여당 대선후보가 된 이재명이 내년 3월 대선에서 당선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렇지만 눈에 보이는 돈만 뇌물이 아니다. 땅덩어리가 꿀단지고, 주민은 그저 표밭에 불과하다면, 대통령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면 된다. 괴물을 공격하다 스스로 괴물처럼 되어버린 정치인을 당신은 대통령으로 뽑을 자신이…있는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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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대통령의 품격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글도 잘 쓴다. 2017년 대선 전에 내놓은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의 첫 문장이 ‘나는 겁이 없다’다. 첫 문장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마술적 시작인지. ‘나는 겁이 없다. 살아가면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그 이전에도 나는 옳지 않은 일에 맞닥뜨릴 때마다 저항했다…’는 다음 문단까지 순식간에 읽히지 않는가. 자서전에서 보여준 이재명의 삶은 감동적이다. 가난 때문에 어린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장애를 입고, 검정고시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성공 스토리는 고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극적이다. 팔자를 바꿀 수 있었던 그때, 판검사 같은 출세의 길 대신 자신이 어렵게 자란 성남에서 노동변호사의 길을 택한 젊은 날의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안타깝게도 이재명의 개인사 아닌 사회에 대한 인식은 거칠고 불길하다. ‘친일세력을 등에 업고 편법으로 정권을 창출한 이승만 정권’ 같은 대목은 그가 법대 시절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영향일 것이다. 7월 대통령 출마 선언 후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유지했다”는 그의 발언은 지금껏 역사 공부 한번 제대로 않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걸 시사한다. ‘(기득권 정치가) 대한민국 10% 부유층에 감세를 해주는 만큼 90%의 서민층 국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대목도 국가경영 자질을 의심케 한다.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노동자가 10명 중 4명이나 되는 사실을 모른다면 무능하고, 알고도 선동할 작정이라면 조악하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뭘 하겠느냐는 김어준의 질문에 “작살부터 내야죠” 했을 것이다. 2017년 대선 도전 이유를 이재명은 분노 때문이라고 했다. 분노의 근원은 정경유착이라며 ‘민주주의를 망치는 부정부패의 꼬리를 잡아 대한민국에서 몸통이라 으스대는 자들을 뒤흔들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이 생각 역시 진화하지 않은 것 같다. 이재명 자신이 설계했다고 밝힌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을 ‘부패기득권과의 최후대첩’이라고 거꾸로, 재빨리 규정한 걸 보면 그의 의식구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격과 삶’을 쓴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재명의 성격을 ‘외향적 감각형’으로 봤다. 성과가 뛰어나고 임기응변에 능하지만 직관과 감정 부분이 열등해 옳고 그름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거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지도자로 적합하지 않다고도 했다. 권력에 대한 이재명의 의지와 분노, 그리고 여당 대선 후보 등극은 전국(戰國)시대 말 이사(李斯)를 연상케 한다. 비천하고 곤궁했던 그는 순자(荀子)에게 제왕학을 배우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대는 총명함이 남다르고 무엇이든 빨리 터득하니 언젠가 꼭 크게 출세할 것”이라는 스승의 칭찬에 이사는 우쭐해 “사람이 가장 비통한 건 빈궁한 것이고 이 모든 것은 권력이 없는 탓이며 권력은 모든 이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으로 치면 사이다 발언이다. 이사가 방에서 나가자 순자가 말했다고 한다. “이사는 내 제자 중 가장 뛰어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 깊고 권력을 지나치게 좋아하며 자신을 가리는 데 미숙하니 결국 끝이 좋지 않겠구나.”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하고 권세를 누린 이사가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은 역사는 세세히 언급하고 싶지 않다. 겁 없는 이재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철저하고도 신속한 수사 지시에도 눈도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성남시장으로 있던 2015년 5월 민간업체 초과이익환수 조항이 삭제됐고 자신에게 무죄를 준 대법관도 업체와 관련돼 있다는 게 사태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이재명이 성과만 강조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옳고 그름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거나, 뻔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복잡한 개인사로 인해 언행이 거칠 수도 있다. 그러나 윤리적 가치를 가볍게 아는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도 흔들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마이클 블레이크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지적했다. 존경할 만한 대통령까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멸스러운 대통령은 더 이상 없기 바란다. 대통령의 품격은 우리나라의 품격이어서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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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사이다냐 콜라냐, 아니면 감자냐 고구마냐

    내년 이맘때면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갖고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같아선 저 사람이 대통령 되면 우리나라 참 좋겠다 싶은 대선 주자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내 맘 속에 있긴 한데 당내 경선을 통과할 것 같지가 않다. 내 안타까움과 상관없이 당내 경쟁을 뚫고 등장할 후보는 사이다 아니면 콜라, 또는 감자 아니면 고구마일 것이다(순서에 의미 없음). 더불어민주당의 사이다 이재명은 요즘 언변이 통쾌하다 못해 잔인해지기까지 해서 불안하다. 국민의힘의 (홍카)콜라 홍준표는 고질적 막말을 못 고치고 있어 볼 때마다 불편하다.● 청와대가 엄중하게 보고 있다매사 엄중하게 지켜보기만 하던 민주당 고구마 이낙연이 뒤늦게 드라이브를 걸기는 했다. 시원한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뒤늦게 청와대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 대해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고 메시지도 내놓았다. ‘엄중 낙연’으로선 동아줄이라도 잡은 기분일 것이다. 국민은 고구마 먹은 듯 답답하다. 수사를 철저히 하라는 건가, 가려서 하라는 건가? 그럼 감자는? 국힘당 윤석열이 감자나 먹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굳이 짜내자면, 감자를 닮았다는 느낌이어서 붙여본 별칭이다(스스로 ‘엉덩이탐정’을 자처했으니 외모 차별은 아니라고 본다) 어쨌든 내년 이맘때 우리는 이 중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두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찍고 싶은 후보가 없어 과거 대통령선택에 관한 논문을 뒤져봤다. 지난 대선에서 우리는 뭘 보고 투표했기에 이토록 손가락 자르고 싶어 했을까. ● 가장 큰 선택요인은 지역주의시대정신을 잡는 자가 승리한다고들 한다. 국가비전이나 정책이, 인물이, 구도가 중요하다는 분석도 줄을 잇는다. 다 맞는 말일 게다. 2017년 전임 대통령이 탄핵당한 뒤끝, 3자 구도 선거에서 문재인 아닌 누가 당선될 수 있었겠나(그렇게 뽑은 대통령이 ‘남자 박근혜’처럼 불통이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하지만 14대(1992년)~19대(2017년) 대선을 두루 살핀 ‘정체성의 관점에서 본 대통령 후보선택요인’(2020년 강명세) 논문에 따르면 우리 대선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것은 지역주의였다. 여기서 정체성이란 정당정체성을 의미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을 가깝게 느끼는 이들의 특징은 호남이라는 출신지역(또는 거주지역)이고, 이는 진보적 이념과 중첩된다는 거다. 이 지역주의가 2017년 대선에서 역대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영남 출신의 민주당 지지경향이 2000년대 초에 줄어들다가(맞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이다) 2012년 대선에서 상승한 뒤 2017년엔 급격히 증가했다. 맞다. 탄핵 때문이다. 그 결과 19대 대선에서 지금의 국힘당과 홍준표는 역대 가장 큰 차이로 패하고 말았다. 흔히 ‘망국적 지역주의’라며 개탄했던 한국적 특성도 탄핵 같은 역사적 사건 아래선 힘을 잃은 것이다. ● 대장동 사태에도 ‘명빠’가 뭉치는 이유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민주당은 ‘호남이 미는 영남후보’로 집권해왔다(호남 출신 김대중 대통령 빼고). 사이다 이재명이 TV예능프로 ‘집사부일체’에서 공개한 집 역시 경기도지사 공관도, 분당의 164㎡ 아파트도 아닌 고향 안동의 마을회관이었다. 선거공식을 아는 이재명으로선 자신이 영남출신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해야만 했던 모양이다. 호남 출신 이낙연 총리는 민주당 ‘영·호남 전략동맹’의 충실한 상징이었다. 당 대표에 당선돼 ‘호남 대망론’에 불을 지피기도 했으나 부자 몸조심은 역시 고구마였다. 호남도 계산이 복잡했을 것이다. 광주·전남 순회경선 결과는 눈물겹다. 영남의 아들(46.95%) 아닌 호남의 아들(47.12%) 선택! 바로 다음날 전북은 다시 이재명에게 54%라는 압승을 안겨주었지만. 대장동 의혹 사태가 터지고도(심지어 터질수록) 이재명에 쏠리는 이유가 불가사의한가. 우리 편이 아무리 나빠도 상대편 당선은 더 끔찍하다는 감정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다. 문파가 ‘명파’ 되면서 결선까지 고생 안하게 확실히 밀어주자는 전략적 투표가 더 기승을 부릴 공산도 크다. 최종 경선에서 이재명이 승리한다면 광주·전남에 빚지지 않은 첫 민주당 대선 후보가 탄생하는 셈이다. ● 트림 나올까 걱정, 소화 안 될까 걱정속이 더부룩할 때 사이다나 콜라를 마시면 속이 뻥 뚫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시적 기분일 뿐, 탄산가스 들어간 음료를 계속 마셔 몸에 좋을 건 없다. 소화 장애에다 심하면 역류성 식도질환, 위벽이 상할 수도 있다. 당분과 콜라 속 카페인이 해로울 건 뻔한 이치다. 무엇보다 트림처럼 못 참고 터져 나오는 ‘삑사리 정치’는 국민적으로 창피하고 국가적으로도 위험하다. 그렇다고 고구마나 감자가 안심스러운 것도 아니다. 고구마의 운명이야 며칠 새 결정되겠지만 감자 역시 검찰총장 시절 집권세력에게나 지금 야권지지층에게나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뜨거운 감자’다. 뱉자니 정권교체 실패할까 걱정이고, 삼키자니 체할까봐 걱정스럽다(요즘 ‘대깨윤’은 대깨문 뺨치고 있다).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싶진 않다. 그게 우리의 수준이라고 믿고 싶지도 않다. 그렇다고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가 제3후보를 외치며 나오진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미안하지만 그가 희망이던 때는 지났다. 광 팔고 정권교체에 기여하면 몰라도 잘못하면…괜히 역적이 되는 수가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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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국민 재산이 약탈당하고 있다

    헛살았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 수 없다. 성남시장이 그렇게 대단한 자리인 줄 몰랐다. 수도권 중소도시 시장 자리가 누군가를 수천억 부자로 만들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인지 처음 알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주자는 특혜 의혹의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에 대해 “사실 이 설계는 제가 한 것”이라고 14일 밝혔다. “성남시 공영개발 시스템을 유동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이 한 것으로 아는데 지금 (대선) 캠프에 있느냐”는 질문에 나온 대답이다. 의혹의 인물이 대선 참모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려다 그만 천기누설을 한 것 같다.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 조성은도 “사실 9월 2일이라는 (보도) 날짜는 우리 (박지원 국정)원장님이나 제가 원했던 날짜가 아니다”라고 발설했다. 박지원과 만나 제보 의논을 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려다 엉겁결에 ‘정치공작’을 자백한 모양새다. 물론 이재명은 자신의 설계 덕분에 민간기업이 독식할 뻔한 개발이익 5503억 원을 공공 환수했다고 자랑해 마지않았다. 화천대유라는 민간업체에 비리 세력이 있는지 어찌 알았겠느냐는 주장이다. 그 화천대유가 짠 컨소시엄을 왜 유동규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이 선정해 사업을 맡겼으며, 유동규는 왜 평소 이재명과의 친분을 과시했는지는 수사로 밝혀낼 일이다. 그보다 내가 충격 받은 건, 지방자치단체장 결심에 따라 특정 지역을 개발할 수도 있고, 특정 집단이 막대한 이득을 보도록 행정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권력은 그렇게 대단하다. 관(官)이 쥔 인허가권이 민간에는 생사여탈권이다. 이재명은 대선 출마 선언문에서 “강자가 규칙을 어겨 얻는 이익은 규칙을 어길 힘조차 없는 약자의 피해”라고 했다. “억강부약(抑强扶弱) 정치로 모두 함께 잘사는 대동세상을 향해 가야 한다”는 거다. 그 규칙을 만드는 권력이 상식과 헌법정신에 어긋나는 규칙을 고집해도, 국민은 약자일 뿐이다. 공영개발의 탈을 쓴 민영개발로 헐값에 토지를 내놔야 했던 대장동 땅주인들도, 분양가상한제를 비켜가 값비싼 아파트를 산 입주민들도 힘없이 재산을 약탈당한 셈이다. 어디 성남시뿐이랴. 권력이 공공의 이름으로 국민 재산을 뺏어가는 행태는 문재인 정부 들어 도를 더해 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민간의 땅을 강제 수용하는 공공개발은 문자 그대로 사유재산 강탈이다. 1980년 ‘전두환 국보위’가 만든 택지개발촉진법으로 문 정권이 적폐를 양산하고 있다. 시범사업으로 시행한다는 ‘누구나집’ 역시 공기업이 강제 수용한 택지를 민간업자에 팔아넘기는 민관이익사업이라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통탄을 했다. 일본도 1960년대 폐지한 민간아파트 분양제도를 두고 있는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땅 한 뼘 없다고 문 정권의 약탈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다. 호환 마마보다 무서운 세금 때문에 옴치고 뛸 수가 없다. 집값을 잡겠다며 거래세와 보유세를 올려대 집을 팔 수도, 살 수도, 이사를 할 수도 없다. 심지어 집권당은 집 한 채 달랑 가진 사람도 그 집에 오래 살수록 팔 때는 양도세를 더 내게 설계해 버렸다. 아파트가 빵이면 뜯어서라도 세금 낼 텐데 그럴 수도 없다. 후려쳐 팔고 줄여 사서는 세금만 바치다 죽든가, 무산자(無産者)가 돼 공공주택에 의지해 살 판이다. 차라리 내 집에서 늙어 죽겠다고 결심했던 나는 7월 다락같이 오른 재산세를 9월 또 내야 한다는 고지서에 기함하는 줄 알았다. 평생 일해 갖게 된 전 재산이 남편과 공동명의 아파트 한 채다. 그런데 감히 지아비와 부동산을 함께 가진 부녀자는 나이 먹을수록, 오래 가질수록 무겁게 종부세를 때린다니 이런 징벌이 어디 있나 싶다. 그렇게 뜯어간 혈세로 국정이나 잘하면 또 모른다. 능력은 없으면서 공권력만 강해 공물 거두기에 골몰하는 나라를 약탈국가라고 했다. 국민을 강자와 약자로 편 가르는 정치가 포퓰리즘이다. 자유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포퓰리즘 독재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거창한 이념 아닌 권력자의 이권(利權)네트워크, 약탈정부를 위해서라고 포린어페어스지는 지적했다. 소유가 사라진 나라는 자유도 사라진다. 문 정권보다 더한 포퓰리즘 정치에서, 공공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의 소유와 자유를 박탈해 권력자 이권네트워크만 떵떵거리는 약탈정부에서 5년 더 살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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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아수라 백작과 화천대유

    김성수 감독의 ‘아수라’를 왓차에서 뒤늦게 찾아봤다. 성남시 대장동 개발 의혹을 놓고 꼭 ‘아수라’를 보는 기분이라던 홍준표 국민의힘 대선 주자 말대로, 영화는 “요즘 재개발 열풍에 한몫 챙기려 서로 물고 뜯고 아주 난리가 났다”는 정우성의 독백으로 시작한다.무대는 분당 부근 가공의 소도시 안남이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안남시장이 항소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고 설치는 장면부터 어디서 본 듯하다. 영어 제목인 ‘Asura: The City of Madness’도 madness를 우리말로 하면 분노, ‘성나다’의 명사형 ‘성남’ 아닌가.● 만일 실제와 같더라도 이는 우연일 뿐물론 감독은 2016년 영화에서 모든 게 모두 허구라고 밝혔다. 그러나 영화 속 안남 시장이 ‘천당 위에 분당, 분당 위에 안남’이라며 재개발을 역설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뉴타운 설명회장에서 안남을 부자동네로 만들겠다면서 시장은 청중에게 묻는다. “무슨 동네요?” “부자동네!” 청중이 소리치자 안남시장은 대선 후보처럼 외친다. “저 박성배가 이 손으로 꼭 한번 만들어보겠습니다!”당장 이 영화를 패러디한다면 “화천대유?” 물으면 “천화동인!” 답할 것이다. 아수라를 사랑하여 김성수를 영화의 신으로, 정우성을 연기의 신으로 모시는 아수리언들로부터 칼 맞을 소리겠지만.● “제가 다 엮을 게요” 검사가 충성 맹세권력과 금력,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답게 아수라에는 조폭과 검경이 다수 등장한다. 안남시장은 조폭 두목을 재개발위원회에 꽂아선 테러를 사주하고, 시장에 반대하는 재개발위는 경기지방검찰청 특수부장과 결탁한 상태다.그래도 결국은 주인공 형사 정우성이 정의의 검사와 손잡고 안남시장을 잡아넣을 줄 알았다. 그러나 육덕(肉德) 있는 검사는 막판에 칼을 맞자 덩치값 못하고 악덕시장에게 충성맹세를 해버린다. “앰뷸런스 불러주면 제가 다 엮을 게요...”‘판 짜는 독종검사’라고 영화 포스터에 나와 있거늘 대한민국 검사가 어찌 이럴 수 있나. 나는 잠시 경악했다. 실제로 2015년 대장동 개발 로비 의혹 수사 당시 피고인(변호사 남욱)과 그의 변호인(박영수 전 특검), 수사 책임자인 관할 지방검찰청장(강찬우 수원지검장)이 대장동 개발사업의 자산관리회사인 ‘화천대유’와 그 관계사인 ‘천화동인’에 참여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실은 상상을 능가하는 것이다.● 그게 이재명과 무슨 상관이냐고?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 라고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일 거다. 그렇다면 작년 7월 이재명이 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 받는 데 기여했던 권순일 당시 대법관이 어째서 화천대유에서 수억 원의 고문료를 받게 됐는지 합리적 설명을 대줘야 한다. ‘뉴스공장’ 공장장 김어준 식으로 표현하면, 냄새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물론 김어준은 방송을 통해 신박한 프레임 전환을 퍼뜨리고 있다. 민간이 통째로 먹을 뻔한 대장동 개발 이익을 우리의 이재명이 공공으로 가져와 5500억 원을 회수했다는 논리다.성남시장 이재명이 대장동 개발을 성남시 주도로 바꾼 건 맞다. 성남시 100%출자 공기업인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지분의 절반을 갖는 민간합작회사 성남의뜰(주)은 시행을 맡았다. 당연히 사업은 대박이 났다. 반값에 ‘땅작업’을 마칠 수 있어서다. 민간의 탈을 쓴 공공개발! 이런 초절정 노다지를 설계한 사람이 이재명의 핵심 측근 유동규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었다.● 대장동 프로젝트는 LH사태의 확장판우리가 LH사태에 분노했던 건 공공개발 관련 공적 정보를 LH 일부 직원이 빼돌려 땅을 사서 사적 이익을 챙겼다는 데 있다. 대장동 개발은, 일부 공적 정보를 공기업 몇몇 직원이 빼돌리는 정도가 아니라, 공적 정보를 통째로 이용할 목적으로 아예 공기업을 낀 민간기업을 만들어선 쌈 싸 먹은 것과 다름없다.그 성남의뜰 주인이 누구냐. 실소유주는 (주)화천대유라는 자산관리회사다. 대주주 김만배 전 경제지 부국장은 회사 차리기 얼마 전 이재명을 인터뷰한 바 있다. 화천대유의 관계사로 천화동인 1호부터 7호까지 7명이 SK증권을 통해 투자했는데 이들이 3년 간 챙겨간 배당금이 무려 3460억원이다(화천대유는 577억 원).나는 이재명이 스스로 밝힌 대로 대장동과 관련해 1원도 받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성남시라는 관(官)이 성남시민들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특정 사기업이 수천억을 벌게끔 판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머리 잘 돌아가고 판단력 빠른 이재명이 이런 판을 몰랐다는 건 LH사장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보다 더 웃긴다.LH 당시 사장이었던 변창흠 건설교통부 장관은 감독 부실의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쫓겨났다. 대선주자 여권 1위인 이재명은? 몰랐다면 천하무능이고, 알았다면... 그 책임은 하늘을 찌를 수밖에 없다.● 대선까지 무한 이기주의로 무한도전“원래 인간은 남 입장에서 생각해지지 않는 거야. 다 지만(저만) 생각하는 거라고. 우리 도경이(정우성)만 빼고.” 아수라에서 안남시장은 말했다. 무한이기주의 법칙이다.이번 대선이 아수라판으로, 대선 후보가 두 얼굴의 아수라 백작으로 등장하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철저하고도 신속한 수사로 국민의 합리적 의구심을 탈탈 털어주는 수밖에 없다. 신뢰를 잃은 ‘김오수 검찰’이 어떤 수사결과를 내놓든 국민이 믿어줄 지는 잘 모르겠지만.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

    • 202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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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박지원 국정원장의 5시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의 시간은 가볍지 않다. 그는 의원 시절인 2019년 8월에도 “일본 오사카에 와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과 5시간 45분 의견을 교환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일본이 수출 규제에 들어간 엄중한 시기에 집권 자민당 2인자와 묵직한 대화를 나눴다는 의미다. 국정원장의 5시간이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 조성은의 페이스북에 등장한다. 2월 15일 “어제 다섯 시간 넘게 나눴던 말씀이 생각나서 엄청 웃었네”라고 썼다. 다 공개하면 이혼할 사람 많을 거다. 제대로 한판 해볼까? 하면 십리 밖으로 줄행랑칠 것들이 같은 박지원 발언까지 옮겼다. ‘쪽수가 안 되어서 아무것도 못하는 쪽’이 꼭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쓴 걸 보면 박지원은 야당 인사들의 내밀한 정보를 발설했을 공산이 크다. 2월 14일이면 설 연휴가 끝나는 일요일이다. 휴일이지만 국정원장이 국민의당 전직 의원들과 ‘똑똑한 신세대 후배’ 조성은을 공관에 불러 다섯 시간 넘게 희희낙락한 사실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그 직전 ‘이명박 국정원’이 의원 등 각계 인사 1000여 명을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2월 10일자 동아일보는 “누가 어느 호텔에 들어갔다는 것까지 문건에 담겨 있는 것으로 안다”는 여권 핵심 관계자의 말을 보도했다. 하태경 국민의힘 대선주자가 최근 확인했듯, 박지원이 2월 정보위에서 밝힌 비공개 발언과 똑같은 소리를 외부인에게 했다는 건 국정원장 자격을 의심케 한다. 국정원은 여당의 사찰 정보 ‘목록’ 공개 요구조차 개인정보보호법에 저촉될 수 있다며 거부한 바 있다. 국정원장이 대놓고 개인정보보호법과 국정원 보안안보규정을 어긴 꼴이다. 조성은 말마따나 박지원이 공개되면 이혼할 내용을 쥐고 제대로 한판 한다면, 당사자들은 선거 출마나 공직에 나섰더라도 줄행랑칠지 모른다. 그게 바로 국정원의 공작정치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부 출범 전부터, 박지원은 작년 말 국정원 개혁을 브리핑하며 “앞으로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던 바로 그 짓인 거다. ‘윤석열 검찰’이 야당 의원에게 윤석열 당시 총장 관련 사건을 고발하라고 시켰다는 조성은의 언론 제보는 철저히 수사할 일이다. 여당 의원인 법무부 장관 박범계의 국회 발언대로 국민의힘 대선주자 “윤석열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규명해야 한다. 그러나 조성은이 ‘핵심적 증거’라는 휴대전화 이미지 파일을 몽땅 내려받은 다음 날(8월 11일) 박지원을 만난 것은 ‘뉴스공장’ 김어준 식으로 표현하면, 냄새가 난다. 그날은 조간신문 1면마다 북한 김여정이 남북통신선을 끊었다는 기사로 도배된 날이다. 그 엄중한 시기에 호텔 식당에서 점심을 같이 하며 ‘사적 얘기’만 했다는 국정원장에게 국가안보를 맡겨도 되는지는 의심스럽다. 더구나 그들이 만나기 일주일 전엔 국정원장 사퇴설까지 나돌았다. 7월 말 국정원이 북한의 지령을 받은 간첩 혐의자들을 검거하자 국정원 실력자가 박지원을 못마땅해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국정원장의 충성을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그 점심시간은 가볍지 않다. 조성은이 “9월 2일이라는 (보도) 날짜는 사실 우리 (박지원) 원장님이나 제가 원했던, 배려 받아서 상의했던 날짜가 아니다”라고 불쑥 말할 만한 무게가 있다. 정신분석가인 정도언 서울대 명예교수는 “말실수는 ‘덮고 싶은 무의식적 소망’이 자신의 의도와 달리 불쑥 튀어나온 것”이라고 어제 동아일보 칼럼에 썼다. 이런 말실수는 그 사람이 살아온 길에 쌓여 있는 관련 자료와 비교해 검토하면 객관적 해석에 접근할 수 있다고 ‘답안’까지 알려줬다. 조성은은 당원가입서 등을 위조해 청년정당 창당을 시도한 전력이 있다. 박지원의 살아온 길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열린민주당 의원 김의겸이 기자 시절 ‘박지원, DJ(김대중)를 세 번 부인하다’라는 칼럼을 썼을 정도다. 정치 개입을 근절한다면서 대선까지 갈 국정원장에 ‘정치 9단’을 앉힌 문 정권의 의도와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친여단체 고발장을 접수한 지 나흘 만에 윤석열을 피의자로 전격 입건했다. “죄가 있냐 없냐는 나중 문제”라는 말실수 같은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조성은과 박지원도 국정원법, 공직선거법,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공수처는 윤석열 수사와 똑같은 속도와 강도(强度)로 두 사람을 수사하기 바란다. 죄가 있냐 없냐는 나중 문제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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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9·11, 세상의 끝에서 부르는 이름

    9·11테러는 내 인생도 바꿔놓았다. 20년 전 그날, 나는 맨해튼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인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에 있었다. 그날따라 오전 9시 강의에 늦게 도착한 교수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It‘s War!”한번 기자는 영원한 기자다. 방문연구학자로 미국 연수를 온 상태였지만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기사를 써야 한다!다음 날, 마침 생일을 맞은 6학년 딸을 혼자 집에 두고 나는 맨해튼으로 갔다.“폼페이 최후의 날이 이랬을까. 자본주의를 상징했던 빌딩의 잔해는 참혹했다. 110층 타워를 지탱하던 강철은 롤러코스터의 레일처럼 휘어져 있다. … 연기 속에서 구조대원들은 마스크도 벗어던진 채 생존자를 한 명이라도 더 찾기 위해 열심이었다. …”(2001년 9월 14일 동아일보)● 기자로서 미안한 행운 9·11테러기자들은 알겠지만 큰 사건을 만난다는 건 일종의 행운이다. 특히 미국 연수 전까지 생활부 편집부 문화부에서만 일했던 나는 한계를 시험해 볼 기회조차 못 가진 기자였다(정치.경제.사회부 같은 부서에서 일해보지 못했다는 소리다. 슬프지만 1980년대 초반까지 남기자들과 달리 여기자들은 대개 그랬다).그때만 해도 뉴욕엔 특파원이 없었고 나는 맨해튼과 그중 가까운 데 살았다. 기자 본능대로 세계사가 바뀌는 현장을 취재하면서 내 안의 월드트레이드센터도 무너졌다. 그리고 다시 세우는 경험을 동아닷컴에 ’김순덕의 뉴욕일기‘로 전했다(덕분에 논설위원이 될 수 있었다고 나는 믿는다).책으로 출간된 ’마녀가 더 섹시하다‘를 오늘 아침 다시 보니 글발은 그때가 더 나은 것 같다. 9·11테러 직후 미국의 미세한 변화를 쫄깃하게, 때론 톡 쏘듯 썼다 싶다. 지금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 이후의 지정학적 변화를 논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일상의 소중함과, 그 일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미국의 가치로 하나 돼 있었다.● If Only… 죽기 전에 우리가 볼 수 있다면2001년 9월 말 뉴욕타임스는 뉴욕 시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월드트레이드센터 붕괴로 가족이나 친척 아니면 친구를 잃었다고 전했다. 월드트레이드센터 희생자가 2753명.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 중에 변을 당한 사람이 태반이었다.죽음이 예감되는 이 세상 끝에서 그들이 안타깝게 부른 이름은 가족이었다. 가족이 희생된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오히려 살아남은 것을 괴로워하고 죄스러워했다. 그날 아침 부부싸움을 안 했더라면… 사랑한다고, 늘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직장에 다니지 말라고 진작 말릴 걸…. ’If Only‘라고 불리는 마음의 병이다.그래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살아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시간을 보내는 일이 부쩍 늘었다. 아무리 원수 같다 해도 죽기 전에 생각나는 사람은 역시 내 딸, 내 아들, 그리고 내 부모라는 깨달음에 뉴욕 사람 모두가 가족천사로 변한 듯했다.● 우리는 모두 같이 살아야 할 사람들그때 얻은 교훈이 있다. 그 사람이 내 앞에 있는 그때그때, 말로 또 친절한 태도로 표현하지 않으면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사실이다.사실, 가장 만만한 것이 가족이다. 특히 딸들은 엄마를 우습게 안다. 하지만 전화를 받을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바로 그 시기에 우리는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앞으로 잘하겠다고 말해야 했다(지금처럼 마음 놓고 만날 수 없는 코로나 시국이 닥칠지 미리 알았나 말이다).어디 내 가족들뿐이랴. 설령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가족이다. 또 미국인뿐이랴. 무슬림도, 흑인도, 아시안도, 당연히 여성도 함께 살아야만 한다(좀 더 확대하면 어려워진다. 중국인도, 북한 주민도 결국 같이 살아야 할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 사람을 존중 않는 지도자는 반대다9·11테러를 응징하기 위해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9·11로부터 불과 63일 만에 탈레반 정권은 무너졌다. 그러나 20년 후 그 탈레반이 다시 아프간을 장악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민주주의 확산과 국가 건설‘ 20년이 헛되고 헛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한 생명이 스무 살에 죽었다고 20년간 살아온 삶이 헛되다고 할 순 없다. 죽을 때 죽더라도 그 경험을 안 해본 것보다 낫다. 아프간 탈출에 목숨 건 사람들이 증거다. 여성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같이 미국이 제공한 가치는 사람 사는 세상에 너무나 중요하다.20년 전 “미국의 미션은 문명과 야만 사이의 투쟁을 이끄는 것”이라고 조 바이든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선언했다. 어떤 종교든, 또는 이데올로기든 내 가족의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는 야만이다. 탈레반 정권이 그랬다. ’악의 축‘이란, 이라크, 북한은 물론 9·11 최대 수혜자 중국엔 인권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같이 살긴 살아야겠지만 미국보다 중국의 가치를 따라가는 문재인 보유국이 그래서 걱정스럽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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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여도 야도 싫다…제3세력은 성공할까

    못 살겠다 갈아보자, 싶다. 하지만 여(與)도 야(野)도 싫다. 젊은 대표가 나오면 달라질까 했는데 국민의힘 하는 꼴 보니 정권교체도 물 건너간 것 같다. ‘증말’ 저렇게 밖에 못한단 말인가. 이런 국민을 겨냥한 대선 주자가 나왔다. “지금 여·야 정당의 경선과 후보들 간의 논쟁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 살림은 생사의 기로에 내몰리고 있는데 미래준비는 턱없이 부족한데도 정치권은 권력쟁취만을 위해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8일 대선 출마 선언문을 발표한 김동연이다. 문재인 정부 첫 경제부총리를 지낸 그는 “보수는 의지가 부족하고 진보는 능력이 부족하다고들 하지만 진보와 보수 모두 의지도, 능력도 부족하다”고 기득권 정당을 싸잡아 비판했다. “조직도, 돈도, 세력도 없지만 정치판의 기존 세력과 맞서는 스타트업을 시작한다”는 출사표다. ● 김동연이 내세운 ‘마크롱 전략’ 그러나 정치스타트업도 기존 정치문법을 완전 무시할 순 없는 모양이다. 유튜브 채널로 출마선언문을 발표한 것으론 모자랐는지 김동연은 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기자들 질문이 야권후보 단일화로 모아진 건 당연하다. 그는 단호했다. “단일화문제는 제 머릿속에 없다.” 안 그래도 ‘고발 사주’라는 복잡한 의혹으로 이 당 저 당 죄 짜증나는 상황이다. 후보는 좋은데 당이 싫어서 투표장 못 간다는 사태가 벌어질 판이다. 이런 양당구조를 깨고 ‘아래로부터의 반란’을 하겠다는 김동연의 모델이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이다. 8월 20일 고향인 충북에서 출마 선언을 할 때도 그는 “마크롱도 고향에서 출마선언 했다”고 프랑스를 언급했다. 인기 없는 좌파 정부의 경제관료 출신인 점도 비슷하다. 그러나 결정적 차이가 있다. 프랑스엔 결선투표제가 있다는 사실이다.● 결선투표제 프랑스는 ‘단일화’ 필요 없다 프랑스는 1962년 제5공화국 개헌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했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안 나오면 1, 2위 득표자만 놓고 2주 뒤 결선투표를 치른다. 1962년부터 2017년까지 매번 결선투표를 했는데 1974년 지르카르 데스탱,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 1995년 자크 시라크 대통령은 1차에선 2위였지만 결선에서 당선된 역전의 용사들이다. 1차 투표 후 각 정파들이 치열한 ‘선거연합’이 벌이는 건 이 나라에서 보통이다. 3위 이하 후보들이 “나 대신 X번을 찍어달라”고 공개적으로 합종연횡을 하는 것이다. 덕분에 프랑스는 우리처럼 선거 전 굳이 야권 후보 단일화를 할 필요가 없다. 마크롱은 2017년 4월 1차 투표 1위지만(24%) 2위(국민전선 마린 르펜 21.3%), 3위(우파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 20%)와 바짝 붙은 상태였다. 그가 5월 7일 결선에서 66.1%로 압도적 득표를 올린 데는 야당인 공화당 피용 후보는 물론 마크롱이 원수처럼 미웠을 대통령까지 “극우세력 집권은 안 된다”며 거국적 지지를 보낸 영향이 컸다. ● 단일화 거부하면 제3지대 역적 될 판우리나라도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2012년 박근혜 당선 때 51.55% 득표를 제외하곤 과반수를 넘긴 대선이 없다. 1987년 양김(김영삼·김대중) 분열로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1991년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이 생겨난 이래, 후보 단일화는 야권 절체절명의 과제였다.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이 없었으면, 2002년 정몽준이 노무현에 단일화 당하지 않았다면, 민주당 정권은 탄생할 수 없었다. 안철수는 2012년 문재인 측의 거센 단일화 압력에 역적처럼 밀리다가 결국 출마를 포기했고, 2017년엔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겠다고 완주했다 3위로 밀려난 흑역사를 갖고 있다. 당시 득표율이 문재인 41.1%, 홍준표 24.0%, 안철수 21.4%다. 촛불시위가 일어나고 전임 대통령이 탄핵 당했음에도 1위 후보는 과반수 득표를 못한 것이다(그래서 국민 절반의 지지도 못 받은 대통령에게 민주적 정당성이 있느냐! 등의 이유로 세계 89개국에선 대선 결선투표제를 한다). ● 결선투표 있다면 문재인 대통령 가능했을까현재 문 대통령 지지율이 당시에 못 미친다. 2017년 대선 때 2위와 3위 후보를 합치면 무려 44.4%! 1위를 능가했다. 제3지대라던 국민의당 안철수와 당시 자유한국당 홍준표가 야권후보 단일화를 했다면, 아니 결선투표로 1, 2위 후보가 재대결할 수 있었다면 문재인 대통령은 안 나올 수도 있었던 것이다.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이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단일화를 하네 마네 또 희망고문하는 후보는 국민의 역적이다. 결선투표제가 있으면 유권자는 사표방지 심리 없이, 당선 가능성을 따져보는 ‘전략적 투표’ 없이도 마음 편히 원하는 후보를 찍을 수 있다. 2차 투표라는 또 한번의 기회가 있으니까. 2017년 7월 문 정권이 들어선 뒤 법과역사학회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연구 용역보고서에서 “결선투표제를 통해 우리사회 고질병인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세대 간, 계층간 화합을 도모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는 목표는 헌법정신에 지극히 부합하는 태도”라고 밝힌 바 있다. 프랑스 정치학자 모리스 뒤베르제는 결선투표가 유연한 다당제를 초래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 보험이 못 된다면 막판 사퇴해주시길개헌 없이 결선투표제를 도입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김동연 같은 제3지대 후보의 ‘단일화 없음’ 포부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교체 열망이 드높던 프랑스에서 그 똑똑한 마크롱도 2016년 12월까지 지지율 18% 3위에 불과했다. 1위를 달리던 우파 후보는 2017년 1월 가족 부패 사건이 불거지면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1위로 올라선 극우파 후보를 마크롱이 제친 것은 3월 20일 첫 TV토론 이후라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 작지 않다. 어쩌면 김동연 같은 제3지대 후보는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에게는 보험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그러나 국민의당 대표 안철수가 또 출마하면 어떤 보험을 끝까지 유지할지 고민될 것이다). 누구든 정치를 바꿀 작정이라면, 마크롱은 좌(左)도 우(右)도 아닌 것이 아니라 선명한 자유주의 비전을 들고 나왔음을 더 공부했으면 한다. 정권교체에 걸림돌이 될 경우, 결선투표제 필요성을 외치며 막판에 장렬하게 사퇴할 필요가 있는 건 물론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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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패륜적 태도 역시 ‘정권 대물림’인가

    이것도 대물림인가 싶다. 사회의 어른을 공격하는 그들의 태도 말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유족 측 변호인 정철승은 철학자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에 대해 “100세를 넘긴 근래부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발언들을 작심하고 하고 있다고 한다”며 “이래서 오래 사는 것이 위험하다는 옛말이 생겨난 것일 게다”라고 1일 페이스북에 썼다.‘뉴스공장’의 김어준도 가만있지 않았다.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올해 101세가 된 우리나라 명예교수가 ‘일본과 아시아의 향후 50년은 일본의 선택에 따라 향방이 달라질 것이고, 한국은 자유가 없어져 북한이나 중국처럼 되면 인간애도 파괴될 것이기에 정권교체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같은 날 첫 방송 멘트를 날렸다. ‘그 분의 사견은 존중’한다는 ‘김어준의 생각’도 존중한다. 그는 한국의 위상이 일본을 능가하고 있다고 한참 주장하고는 이런 상황임에도 “일본 극우매체의 ‘턱도 없는 기사’를 우리가 포털을 통해 읽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했다. 일본과 산케이는 물론이고 (친일적 냄새가 나는) 101세의 철학자, 심지어 (언론개혁을 당해 마땅한) 포털까지 싸잡아 비난한 김어준의 화법엔 존경을 금할 수 없다. ● 사회적 어른에게 하는 말 “별 꼴 다 본다”그러나 어디서 분명 본 듯한 느낌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바로 문 정권이 전범(典範)처럼 떠받드는 노무현 정부 시절, 이미 해봤던 경험이었다. “사람이 살면서 참 별 꼴 다 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2005년 10월 국무총리 이해찬이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노기(怒氣)를 띠며 터뜨린 발언이다. 그것도 ‘우리사회의 어른’ 김수환 가톨릭 추기경을 겨냥해.국회 본회의가 열리기 사흘 전인 10월 21일 동아일보는 김수환 추기경과의 특별회견을 실었다. 83세의 고령이었던 추기경은 “요즘 나라가 진보와 보수, 개혁과 반개혁으로 갈라져 있어 너무 걱정스럽다”고 우려하고 있었다. 특히 당시 친북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강정구 동국대 교수를 노무현 정부가 싸고도는 데 대해 “우리가 간판만 대한민국이고 지배하는 사람들은 영 다른 생각을 가진 나라에 살고 있는 게 아닌지 분간하기 어렵다”고 했다.● ‘우리 위의 어른은 없다’는 그들의 태도그 무렵 나라는 친북 교수가 촉발시킨 국가 정체성 논란으로 이념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김 추기경이 걱정한 것도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바로 그 문제였다. 사흘 뒤 국회가 열리자 야당 의원이 질타했다. “추기경께서 최근 인터뷰에서 ‘이 정권은 대한민국을 어디로 끌고 가느냐’고 말씀하셨다. 그 취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러자 이해찬은 “종교지도자인 추기경이 정치적 발언을 하신 것 같은데 노 대통령이나 정부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처럼 지적하는 의도가 뭔지 모르겠다”면서 이렇게 독설을 퍼부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유신체제 내내 수배, 감옥생활을 했지만 당시 (우리를) 빨갱이로 몰던 사람들이 요즘 와서 이념, 정체성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보면서 사람이 살면서 참 별꼴 다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싸가지 없음’을 능가하는 그들의 행태과거 이해찬이 김 추기경의 우려를 ‘상당히 정치적인 발언’으로 격하한 것은 최근 정철승, 김어준이 김 명예교수의 우려를 시대착오적 발언으로, 심지어 나이 탓으로 돌린 것과 다르지 않다. 노무현 시절에도 집권세력은 민주화가 다수 국민이 이뤄낸 성과물인데도 자신들만의 업적으로 독점했다. 정부를 비판만 하면 수구보수로 몰았다. 이해찬의 안하무인(眼下無人), 유시민(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싸가지 없음’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막말’과 함께 당시 집권세력의 상징이었다. 노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그랬듯, 어떠한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듯한)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가 유독 눈길을 끈 것도 그 때문이었을 터다. 강준만은 2014년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진보의 최후 집권전략’에서 나꼼수가 결국 민주당에 독이 됐다고 했다. 진보의 한 문화 장르로 머물러야 할 나꼼수가 진보정치를 진두지휘하는 위치로 격상된 것이 문제라는 거다. 그러나 지금은 김어준이 거의 ‘아침의 대통령’이다. 그가 대표하는 B급 문화가 대한민국의 주류문화로 등극한 것이다. ● 결국 태도 때문에 망할 수 있다“어째서 지난 100년 동안 멀쩡한 정신으로 안하던 짓을 탁해진 후에 시작하는 것인지, 노화현상이라면 딱한 일”이라는 소리를 어떻게 ‘100세 철학자’에게 할 수 있는지 보통 국민은 이해하기 어렵다. 김 명예교수에 대한 그들의 공격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범 집권세력이 보여주는 그 형언할 수 없는 태도는 노무현 시절을 가볍게 능가한다. 뒤늦게 사과하긴 했지만 더불어민주당 김승원 의원은 언론중재법 강행 처리가 무산되자 박병석 국회의장에게 날리는 ‘GSGG’라는 욕설을 페이스북에 쓰기도 했다. 패륜(悖倫). 인간으로서 당연히 하여야 할 도리에 어그러짐. 또는 그런 현상. 국어사전은 패륜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인간으로선 도저히 해선 안 될 일 같지만 멀쩡한 사람들, 그것도 집권세력에 가까운 이들이 자행하면 사회적 전범이 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2013년 대선(패배) 회고록에서 “우리가 민주화에 대한 헌신과 진보적 가치들에 대한 자부심으로…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라고 적었다. 내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다면 여당 대선후보는 필시 “우리가 180석을 쟁취했다는 자부심으로…패륜적 진보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라며 처절한 회고록을 쓸지도 모를 일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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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마크롱 혁명과 文혁명, 40% 지지율의 비밀

    2년 전 여름 프랑스로 휴가를 갔었다. 몽생미셸로 가는 길, 우리 가이드는 관광버스에서 손님들을 자게 해줄 생각은 1도 없다며 쉼 없이 프랑스 역사와 문화를 강의했다. ‘노란조끼 시위대’가 고속도로까지 막았을 때는 “한국 관광객들은 배려해 줘야 한국도 당신들 시위에 공감한다”고 협상해 우리 버스만 통과시켰다고 했다. 정치를 해도 잘할 사람이었다. 2018년 말 유류세 인상 발표로 촉발된 노란조끼 시위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24%까지 떨어졌다. 그래도 감세와 공무원 감축, 대입제도 개혁을 멈추지 않은 마크롱의 지지율이 지금 40%다. 8월 셋째 주 갤럽이 조사한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과 같다. 임기 말 40% 안팎인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실은 경이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마크롱과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7일과 9일 당선돼 5년 임기를 시작했다. 두 사람 다 ‘혁명’을 내걸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마크롱은 대선 출마 전 ‘혁명’이라는 책에서 “21세기 번영을 이루고 싶다면 행동해야 한다”며 민주혁명을 이끌겠다고 했고, 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 탄핵을 몰고 온 촛불시위가 촛불혁명이라며 혁명정부를 자임했다. 둘 다 일자리 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꼽은 점도 닮았다. 그러나 두 사람의 국정철학이 너무 다른 나머지 혁명적 조치의 방향부터 결과까지 거의 정반대라는 점은 경이롭다. ‘내 삶을 책임지는 국가’를 내세운 문 대통령이 취임 초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선언한 건 전설로 남을 일이다. 문 정권 첫 경제부총리였던 김동연이 “비정규직이 필요한 자리도 있고 취준생에게는 또 다른 불공정이 될 수 있다”고 저서 ‘대한민국 금기 깨기’에서 뒤늦게 지적했을 정도다. 사회당 정부 출신 마크롱은 달랐다. 내 노동 대가로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장벽을 제거해 주는 국가를 정부의 역할로 봤다. 이를 위해 단행한 노동개혁의 핵심이 노동시장 유연화다. 우리처럼 강성 산별노조가 나라와 경제를 잡아먹지 않게 기업 차원의 재량권과 협상권을 확대했다. 기업 부담을 줄여주자 해외투자와 창업, 40대 고용까지 획기적으로 늘었다. 우리나라 좌파세력이 끔찍하게 저주하는 신자유주의적 개혁이다. 그 결과 프랑스의 고용률은 2016년 64.2%에서 2021년 1분기 66.43%로 올라갔다. 한국은 2016년 66.1%에서 제자리걸음하다 2021년 1분기 66.42%로 프랑스에 역전됐다. 마크롱이 근본적 구조개혁으로 성과를 거둔 반면 우리는 5년 일자리 예산 120조 원을 쏟아붓고도 노인 알바 같은 공공일자리가 고작임을 떠올리면, 왜 입때껏 문 정권의 흰소리나 들어야 했는지 울화가 치밀 판이다. 물론 문 정권은 코로나 위기 속에 우리 경제가 주요국 중 가장 빠른 회복을 기록했다며 하반기 4%대 성장률 전망을 자랑스럽게 내놨다. 하지만 프랑스 중앙은행이 최근 올 성장률 전망을 5.5%에서 5.75%로 상향 조정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렇게 잘난 척하진 못할 것이다. 더 부러운 건 이 모든 일을 마크롱은 자유주의와 법치, 다원주의 같은 민주적 보편적 가치를 존중하며 해왔다는 사실이다. 오만하다, 나폴레옹이냐 비판도 듣지만 국민 사이로 들어가 ‘대토론’도 감행하는 정치다운 정치를 프랑스 대통령은 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의 기회를 빼앗아 국민을 노예처럼 만드는 국가주의, 내로남불의 반(反)법치주의, 생각이 다르면 적폐청산이나 궤멸 대상으로 모는 전체주의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좋은 나라로 도약할 수도 있는 거였다. 내년 대선 재선을 내다보는 마크롱의 모토가 “우리, 프랑스인(Nous, Fran¤ais)”이다. 역시 위대한 프랑스라는 자부심에 프랑스 우파의 절반이, 좌파는 세 명 중 한 명이 마크롱을 지지한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눈물나게 부럽다. 우리나라에선 스스로 진보라는 응답자의 69%가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반면 보수층은 15%만 지지한다는 갤럽 조사다. 민노총 같은 지지층만 위하는 정치로 남쪽을 또 두 쪽으로 분단시킨 문 정권은 감히 ‘우리나라’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한다. 지금과 다른 대한민국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거꾸로 개혁으로 1000조 원 국가채무를 지고도 40% 지지율을 올리는 대통령이 경이롭다며 표현의 자유마저 잃을 때가 아니다.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대통령을 만나면, 우리는 다시 신바람 나게 도약할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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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윤석열 ‘돌고래 대접’은 공정한가

    18일 국민의힘 예비경선 정책토론회가 열렸다면 볼만했을 것이다. 윤석열 예비후보 측 입장 차이 등으로 취소됐다지만 안 나와도 괜찮았다. 12명 주자 중 한두 명쯤 빠져도 열 명이 넘는다. 정권교체 희망이 안 보이던 제1야당에 대통령감 풍년이 들었음을 국민 앞에, 그것도 한목에 보여준다는 의의는 작지 않다. 윤석열만 ‘쫄보’ 된 느낌이다. 국민의힘에선 누가 먼저, 더 잘못했느냐를 놓고 연일 콩가루를 날리고 있다. 이준석 당 대표부터 윤석열,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 등등 따지고 들자면, 대선에서 질 때까지 물고 뜯어도 끝나지 않을 성싶다. 어제 의총에서 서병수 경선준비위원장이 “이 대표를 흔들지 말아 달라”고 하자 성토가 터지는 모습은 거의 도로한국당이었다. 암만 돌려 말해도 핵심은 야권 지지율 1위이자 후발 당원인 윤석열을 어떻게 대우하느냐의 문제다. 어제 국회부의장으로 추대된 정진석 의원은 이달 초 “멸치 고등어 돌고래는 생장조건이 다르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윤석열은 돌고래인데 젊은 당 대표는 가두리 양식장 지킴이고 나머지 주자들은 멸치나 고등어로 보이는 모양이다. 야권 지지층 중에는 될 사람을 밀어줘야 한다며 왜 1위 주자를 흔드냐는 ‘윤파’도 적지 않다. 불온한 조짐이다. 현재 윤석열 지지율이 높다고 같은 당 후보들을 멸치 고등어로 보는 캠프라면, 지지율 40% 문재인 대통령의 제왕적 통치나 내로남불은 당연하다고 해야 한다. 대통령이 된대도 지금 같은 불통의 ‘청와대 정부’를 만들까 겁난다. 무엇보다 윤석열이 출마선언 때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에도 어긋난다. 더 위험한 건 돌고래 다칠까 두려워 수족관 내부에서 싸고도는 권위주의적 행태다. 문 정권의 ‘문파 전체주의’도 끔찍한데 묻지 마 지지를 요구하는 윤파 밑에 또 살 순 없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47%의 여론(갤럽 8월 첫째 주 조사) 속에는 마음 놓고 윤석열을 지지하기 어려운 찜찜함이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최근 한상진 뉴스타파 기자 등이 출간한 ‘윤석열과 검찰개혁’ 책에는 청와대 인사검증에서 윤석열은 문제가 많은 축에 속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두 달 전 다시 불거진 부인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이 한 예다. 윤석열 장모 측 변호사는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명확히 설명된 내용을 재탕 삼탕한 것”이라며 이미 특혜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입장문을 내놨다. 그렇지 않다. 윤석열은 어떤 설명도, 자료 제출도 하지 않았다. 2년 전 청문회에선 집권당이 기를 쓰고 감싸는 바람에 제대로 검증도 하지 못했다. 당시 바른미래당 채이배 의원이 “2013년 후보자의 배우자 주식 매수 관련 서면답변에선 공모절차에 참여했다고 하는데 금융감독원 공시 사이트 자료를 다 검색해도 공모에 대한 공시는 전혀 없다”고 했을 정도다. 2013년이면 윤석열이 결혼한 이후다. ‘쥴리 의혹’에 대해선 결혼 전 일이어서 알 필요도 없다고 본다. 하지만 결혼 뒤는 다르다. 그의 장모가 2013년 요양병원을 불법 설립했고, 2015년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요양급여 22억9000만 원을 편취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아 구속된 것도 불편하다. 사위도 자식이어서다. 물론 윤석열은 대변인실을 통해 “누누이 강조해왔듯이 법 적용에는 누구나 예외가 없다는 것이 제 소신”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적 문법을 모르는 검찰총장 출신이라 해도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국민들께 송구하다” 한마디는 했어야 했다. 그에 비하면 “대한민국은 연좌(제) 없는 나라”라고 해준 이준석이 훨씬 어른스럽고 정치인답다. 두 달 전 이준석이 당 대표에 당선된 것도 이런 쿨함과 획기적 변화를 원하는 민심 때문이다. 아무리 윤석열 캠프가 ‘돌고래 대접’을 원한다 해도, 당 안팎 일각에서 30대 당 대표를 가볍게 본다 해도 이준석과 손잡는 시너지 효과 없이 국민의힘은 정권교체 성공하기 어렵다. 이준석이 주도한 대변인 토론배틀 흥행에 놀라고 절박해졌다며 당초 두 번 예정이던 예비경선 TV토론을 9명이 4번이나 해내는 무서운 정당이 집권 더불어민주당이다. 대세는 없다. 이회창 대세론부터 반기문 대세론까지 통계적으로만 봐도 대세론의 80%는 무너졌다. 예비경선토론이든 진짜경선토론이든 윤석열은 어쩐지 불안한 일부 지지층에 조속히, 성실히 답할 책무가 있다. 그래야 윤석열도, 국민의힘도 대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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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언론중재법도 ‘위헌 운명’ 따라갈 텐가

    꼭 15년 전 동아·조선이 동시에 청와대 취재 거부를 당한 적이 있다. 2006년 7월 28일 동아일보에 ‘세금 내기 아까운 약탈정부’ 칼럼이, 조선일보 1면엔 ‘계륵 대통령’이라는 홍준호 선임기자(현 대표이사 부사장)의 분석기사가 실린 날이었다. 청와대홍보수석은 이날 공개 브리핑에서 “조선일보는 국가 원수를 먹는 음식에 비유했고 동아일보는 대한민국을 약탈정부로 명명했다”며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당연히 두 신문은 가만있지 않았다. 다음 날 동아일보는 1면과 4면에 비판기사를 내보냈고, 7월 31일자엔 ‘국민의 알권리 빼앗는 청와대의 취재 거부’라는 사설로 “청와대는 즉각 위헌적인 취재 거부를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조선도 해외 사례까지 들어 대응한 건 물론이다. ● 문 정권과 비교하면 참여정부는 양반…그 약탈정부 칼럼을 쓴 사람이 바로 이 몸이다. 논설위원실에 입성한 지 4년 차, 그때만 해도 젊었던 나는 ‘나 때문에 회사가 해코지당하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선배들은 은근히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청와대 출입기자는 한 달이나 고생을 했다. 미안하다).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허위·조작보도’를 언론중재법에 규정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개정안을 이달 중 강행 처리할 태세다. 이 법안 2조는 허위·조작보도를 이렇게 정의한다.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 정부를 약탈정부라고 하거나 대통령을 감히 먹는 음식에 비유할 경우, 허위·조작보도로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며 3배 이상 5배 이하 손해배상을 청구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한국 언론의 문제가 가짜뉴스라고?더불어민주당이 이 개정안을 들고 나온 이유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언론수용자 조사’다.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네 명 중 한 명이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를 꼽았다는 거다(둘째 문제는 편파적 기사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순하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수용자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뉴스를 주로 TV(54.8%) 인터넷포털(36.4%) 온라인동영상플랫폼(2.8%)으로 봤지 동아일보 같은 종이신문(1.7%)이나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직접 접속(1.3%)하는 수용자는 많지 않다(이 훌륭한 독자들은 가짜뉴스가 문제라고 답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자유언론을 위한 학자·전문가단체인 미디어연대는 2019년 토론회에서 “지상파방송이 민주노총 산하의 본부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정파성 때문에 당연히 가짜뉴스, 이념 성향의 편파보도가 판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같은 해 선문대 황근 교수도 문 정권 방송정책의 핵심을 ‘공공채널의 정치선전도구화’로, 신문정책은 ‘정부광고에 의한 친여신문사 지원’으로 꼽았다. ● 근대에 이르기까지 언론 자유는 없었다노조가 장악한 공영방송·정부·지자체 소유 방송사, 그래서 판치는 가짜뉴스. 그런데 문 정권은 뉴스 보는 사람들이 가짜뉴스를 문제로 꼽는다며 위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인단다. 노무현 정부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 표현을 빌자면, 호호호 코미디야 코미디다. 그럼 가짜뉴스를 그냥 두란 말이냐? 라고 성내는 분들이 냅다 댓글을 달기 전에 잠깐. 우리가 언론 자유를 중시하는 이유는 언론(인)이 잘나서가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보면 너무나 오랜 시간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못 하고 살았다. 표현의 자유는 물론 사상의 자유도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갈릴레오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은 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혼잣말을 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동화(또는 신화)가 나라마다 존재하겠나. ● 어떻게 얻은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인데자유를 지향하는 인류 역사 발전에 따라, 민주주의 체제가 나타남에 따라 표현의 자유는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다(박용상 ‘언론의 자유’). 문 대통령도 2019년 신문의 날 축사에서 “영국 명예혁명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언론의 자유를 쟁취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87년 6·29선언 이후 비로소 언론의 자유가 신장된 나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문 정권, 그 문 정권이 강행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헌법 제21조에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할 소지가 크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가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뉴스, 수사정보를 흘리는 검찰의 인권침해와 그것을 받아쓰기하던 언론의 횡포에 당하셔야 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천기누설함으로써, 문 정권은 고인의 비극을 검찰‘개혁’에 이어 언론‘개악’에 이용할 모양이다. 다름 아닌 집권세력의 비호를 위하여. ● 종합청사 앞 거대한 신문사가 그리 무섭나문 정권의 ‘노무현 따라하기’가 한둘이 아니지만 검찰 장악에 이은 언론 장악 역시 판박이가 될 공산이 크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살아생전 주요 신문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곤 했다. “행정수도 반대 여론을 앞장서서 주도해가고 있는 기관들이 서울 한복판 종합청사 딱 앞에 거대한 빌딩 가지고 있는 신문사.”(2004년 7월 8일)“삐뚤어진 것을 바로잡는 개혁은 이제 거의 마감질 단계다. 딱 남아있는 데가 정부 바깥에서는 언론 한 군데가 남아있고 정부 안에서는 검찰이 남아있다”(2007년 3월 13일 청와대 업무보고회의)고 했다. 단언컨대 집권세력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처리를 끝내 강행할 경우, 2006년 6월 29일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였던 신문악법처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 2006년 노무현 언론악법 위헌 판결6·29선언으로부터 꼭 19년이 되는 2006년 6월 29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핵심 쟁점이던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 조항과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면 신문발전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신문법 조항에 대해 각각 재판관 7 대 2와 전원 일치로 위헌 판정을 내렸다. 동아일보는 2005년 3월 신문법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었다. 더불어민주당 전신(前身)인 열린우리당은 1개 신문의 시장점유율이 전국 발행부수 기준 30% 이상, 3개 이하 신문의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일 때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해 불이익을 주는 법을 만들었고, 2004년의 마지막 날 야당과 야합해 통과시켜 버렸다. 헌재는 “다른 일반 사업자와 비교해 합리적 이유 없이 신문사업자를 차별하는 것이어서 헌법에 위배된다”고 위헌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민주당이 만든 언론중재법 개정안 역시 합리적 이유 없이 언론사를 차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규정된 다른 법률은 손해액이 최대 3배의 배상책임밖에 부과할 수 없는 반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최대 5배다. 위헌적 운명이 빤히 보이지 않는가. ● 사람만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칠 수 있다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꼭 언론이 아니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믿는다(댓글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월급에는 악플을 감수하는 값도 포함돼 있으므로).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타인의 명예를 침해한 경우 피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그러나 공직자의 경우는 다르다. 2011년 대법원은 광우병을 다룬 MBC PD수첩의 다우너소, 아레사 빈슨, MM형 유전자 보도가 허위라고 판단하면서도 쇠고기 수입 협상을 한 공직자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공무원의 명예는 공무원이 일한 결과에 대해 국민이 인정해주고 칭찬해줄 때에만 외부로부터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공무원에게는 애당초 본인이 나서서 보호하고 지켜야 할 명예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이승선 충남대 교수가 ‘표현자유 확장의 판결’에서 소개한 판결문 일부다(서울남부지방법원이 2010년 2월 16일 선고한 2008가단96240판결). 공직자 방마다 액자로 걸어놓고 외워야 할 명구가 아닐 수 없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동화는 괜히 나오지 않았다. 권력자가 감추려는 진실을 말하지 못하면, 구덩이라도 파고 외쳐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문 정권의 언론중재법은 그걸 못 하게 겁박하는 법이다. 사람이 먼저라던 문 정권. 대체 무엇이 그리 무서워 사람의 입을 막으려 드는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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