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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산업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포스텍 총장 등을 지낸 태재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이 한국 사회의 미래와 교육의 역할을 정리한 책을 잇달아 펴냈다.‘젊은이를 위한 미래 엿보기’에서 저자는 산업 문명에서 디지털 문명으로의 전환이 석기 시대가 청동기 시대로 바뀌는 것 같은 변화라고 진단한다.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었는데도 돌 다루는 방법을 계속 고집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것이 저자의 문제 의식이다. 영어 교육처럼 인공지능(AI)으로 획기적으로 바뀔 분야에 계속해서 많은 자원을 투입해야 하는지 되짚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기계적 점수로 학생을 평가하는 경쟁적 교육, 사교육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주입과 암기 위주의 시험 제도를 지양하고 미래 지향적인 교육을 위한 긴 호흡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문명 전환과 대학교육’은 2023년 개교한 사이버대 태재대를 대학 혁신의 사례로 소개한 책이다. 학생이 자신만의 전공을 설계하도록 하는 등 역량 중심의 교육을 펼치는 이 대학의 철학과 지향점을 여러 공저자가 담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자연의 장미조차/세허르스의 그림 앞에서는/그저 그림자에 불과하다네. (…) 세허르스는 그림으로 장미에 향기를 불어넣었네.’ 17세기 네덜란드 시인 콘스탄테인 하위헌스(1596∼1687)가 화가 다니엘 세허르스(1590∼1661)의 장미 그림을 극찬하며 남긴 시 구절이다. 세허르스는 플랑드르(현 벨기에) 출신의 예수회 수사이자 꽃병이 있는 정물화와 탐스러운 화환(garland) 그림으로 유명한 화가였다.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에는 그의 그림 ‘꽃병에 꽂힌 꽃’이 전시되고 있다. 해당 그림은 유리병에 꽂힌 각양각색 꽃들의 자태가 담겨 있다. 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화려한 줄무늬 튤립이다. 빨강과 하양, 보라 등 다양한 색과 무늬를 자랑하는 튤립은 당시 네덜란드 최고의 사치품이었다. 네덜란드는 16세기 후반 오스만 제국에서 튤립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특히 ‘줄무늬’나 ‘불꽃무늬’가 있는 튤립은 엄청난 고가에 거래됐다. 지금은 튤립 품종 개량이 활발해졌지만, 이때만 해도 무작위로 생겨나는 해당 무늬의 꽃들은 매우 희귀해 인기였다. 요즘 식물 애호가들이 ‘갈라진 잎’이나 무늬가 생기는 식물을 더 높은 값에 사고파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 시기에 줄무늬 튤립을 갖기 위한 사람들의 욕망은 역사적인 대규모 투기와 거품 현상을 낳았다. 바로 1630년대 일어난 ‘튤립 버블’이다. 귀족과 부유층은 앞다투어 줄무늬 튤립을 갖고 싶어 했지만, 꽃은 피우는 데 수년이 걸리니 공급이 부족했다. 이에 아직 피지도 않은 꽃 구근을 미리 계약하는 등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당시 튤립 한 뿌리 가격이 숙련된 장인의 10년 소득이나 집 한 채, 맥주 공장과 맞먹는 정도로까지 올랐다고 한다. 그러다가 튤립의 인기가 시들해지자 어음은 부도가 나고 극심한 혼란이 벌어졌다. 이에 당국이 거래를 일시 보류하면서 튤립 버블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렇게 귀했던 줄무늬 튤립을, 실물은 아니더라도 그림으로 감상하려는 듯 세허르스의 정물에는 줄무늬 튤립이 자주 등장한다. 또 이 그림엔 연분홍·노랑 장미, 푸른 아네모네가 조연으로 그려져 있다. 화려한 튤립이 부유함의 상징이었다면, 장미는 사랑을 상징한다. 들풀 같은 아네모네는 인생의 무상함을 뜻한다. 세허르스의 극도로 사실적이고 섬세한 묘사는 유럽 왕실 귀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과 영국 찰스 1세, 스페인 펠리페 4세,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 등이 세허르스의 정물화를 수집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행복과 이상향을 주제로 현대미술 작품 50여 점을 한자리에 모은 기획전 ‘우리들의 낙원’이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13일 개막했다. 조선 산수화를 소재로 한 미디어 작품부터 아파트 단지 속 가족들의 일상을 포착한 사진 연작 등 다양한 작품이 망라됐다. ‘우리들의 낙원’은 옛 서울역 역사 공간을 활용해 가상현실(VR)과 사진, 설치, 영상, 몰입형 미디어 아트 등 한국 현대 작가 21명(팀)의 작품을 소개한다. 가장 큰 전시 공간인 1층 중앙홀에선 겸재 정선(1676∼1759)의 ‘해악전신첩’에 있는 ‘금강내산(金剛內山)’의 풍경을 직접 여행하듯 컴퓨터그래픽(CG)으로 만든 영상 ‘금강내산: 허(虛)와 실(實)의 조화’가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된다. 1·2등 대합실과 부인 대합실 등 다른 공간에선 문경원·전준호 작가가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축지법과 비행술’, 김기라 작가의 영상 설치 ‘비비디바비디부’ 등이 전시된다. 양정욱 작가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는 플라스틱 페트병, 나뭇조각, 실, 모터와 조명 등 아날로그 재료만을 사용해 움직이는 설치작이다. 새벽 경비 초소에서 졸고 있던 경비원의 모습을 관찰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이 밖에 전통 산수화를 레고로 만든 황인기 작가의 작품, 서울 금천구 시흥동 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30여 가구의 가족사진을 담은 정연두 작가의 연작 ‘남서울 무지개’ 등도 만날 수 있다. 다음 달 2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행복과 이상향을 주제로 현대미술 작품 50여 점을 한자리에 모은 기획전 ‘우리들의 낙원’이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13일 개막했다. 조선 산수화를 소재로 한 미디어 작품부터 아파트 단지 속 가족들의 일상을 포착한 사진 연작 등 다양한 작품들이 망라됐다.‘우리들의 낙원’은 옛 서울역 역사 공간을 활용해 가상현실(VR)과 사진, 설치, 영상, 몰입형 미디어 아트 등 한국 현대 작가 21명(팀)의 작품을 소개한다. 가장 큰 전시 공간인 1층 중앙홀에선 겸재 정선(1676∼1759)의 ‘해악전신첩’에 있는 ‘금강내산(金剛內山)’의 풍경을 직접 여행하듯 컴퓨터그래픽(CG)로 만든 영상 ‘금강내선: 허와 실의 조화’가 대형 스크린으로 상영된다.1∙2등대합실과 부인대합실 등 다른 공간에선 문경원∙전준호 작가가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축지법과 비행술’, 김기라 작가의 영상 설치 ‘비비디바비디부’ 등이 전시된다. 양정욱 작가의 ‘피곤은 언제나 꿈과 함께’는 플라스틱 페트병, 나뭇조각, 실, 모터와 조명 등 아날로그 재료만을 사용해 움직이는 설치작이다. 새벽 경비 초소에서 졸고 있던 경비원의 모습을 관찰해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이밖에 전통 산수화를 레고로 만든 황인기 작가의 작품, 서울 금천구 시흥동 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30여 세대의 가족사진을 담은 정연두 작가의 연작 ‘남서울 무지개’ 등도 만날 수 있다. 다음 달 2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마른 체구와 차분한 성격에 스니커즈 차림으로 출근하는 30대 후반의 기업가와 체스 챔피언 경력이 있는 40대 후반의 게임광 기업가. 이들은 최근 급속도로 발전하며 우리 일상의 모습까지 바꾸고 있는 기술, 인공지능(AI)의 개발을 주도해 온 ‘두 거물’이다. 전자는 오픈AI의 샘 올트먼, 후자는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다.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AI 시대 패권의 행방과 AI 기술이 가져올 변화를 조망한 책이다. 블룸버그의 기술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실리콘밸리와 혁신 기술, AI와 소셜미디어 정책 분야에서 오래 활동하며 얻은 통찰과 13년간 진행한 자료 조사 및 업계 관계자와의 독점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 분야의 격동적인 변화와 이면에 숨은 인간적 드라마를 생생하게 다뤘다. 책에 따르면 올트먼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리더십과 자기 확신이 강했다. 대학생 때 투자자와 창업가를 연결하는 서비스인 와이콤비네이터를 설립하며 실리콘밸리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고, 이후 AI가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도구이자 유망한 신사업이라고 보고 개발에 뛰어들게 된다. 그는 AI를 통해 인류 모두에게 경제적 풍요를 주고 더 나은 삶을 살게 한다는, 실용적이고 공익적인 비전을 갖고 있었다. 허사비스는 게임 개발자이자 과학자로, 학자로서 ‘지능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을 찾는 과정에서 AI 기술과 마주하게 된다. 다만 허사비스 역시 단순한 기술 혁신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인류나 생명의 기원, 우주의 본질을 밝히고 질병을 치료하는 등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에 허사비스가 설립한 딥마인드는 ‘윤리적이고 과학 중심’인 조직을 표방했다. 딥마인드는 AI 기술을 상업적으로, 특히 군사적으로 활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최초의 AI 스타트업이었다. 그러나 AI 기술이 점점 현실화할수록 자본과 자원, 즉 빅테크 기업의 도움이 필요했다. 딥마인드는 결국 2014년 구글에 인수됐고 공격적 개발 끝에 ‘알파고’를 탄생시켰다. 올트먼은 2015년 일론 머스크 등 유명 투자자와 함께 비영리조직 ‘오픈AI’를 설립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 역시 인류를 위한, 안전한 AI를 추구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자금과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머스크는 오픈AI를 테슬라에 흡수해 AI 기술을 상업적으로 활용하려 했고, 올트먼은 머스크와 작별하고 마이크로소프트와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막대한 투자를 유치했다. 이 과정에서 당장 세상에 내놓을 AI를 먼저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탄생한 것이 챗GPT다. 책은 기업의 구조, 의사결정 과정, 투자자와 경영진의 갈등 등을 통해 AI 기술이 실리콘밸리의 기업 논리 아래 어떻게 빅테크 기업의 경영 도구로 변하는지를 보여준다. 허사비스와 올트먼은 모두 고귀한 이상을 품고 AI 개발에 뛰어들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결과적으로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라는 거대 기업이 기술을 장악했고, 부(富)가 집중됐다. 이 과정에서 올트먼과 허사비스가 겪은 인간적인 고민을 조명하며 책은 독자에게 “기술 발전은 누가 주도해야 하는가?” “윤리와 상업, 이상과 실제 사이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 등의 질문을 던진다. AI를 둘러싼 윤리 문제, 데이터 편향, 안전성 논란은 물론 실업, 가짜 뉴스, 인간과 기계와의 관계 변화 등 사회적 리스크를 조명하며 기술 발전 이면의 권력과 이해관계, 인간의 욕망을 포착한다. 이를 통해 AI가 가져올 미래의 위험과 기회를 균형 있게 조명한 책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제주도립미술관이 마르크 샤갈(1887∼1985)의 원화 300여 점을 선보이는 ‘마르크 샤갈: 20세기 그래픽 아트의 거장, 환상과 색채를 노래하다’전을 24일부터 개최했다. 제주도에서 샤갈의 작품을 전시하는 건 처음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샤갈의 유화, 템페라, 구아슈, 드로잉, 오리지널 판화, 아트북 등을 소개한다. 특히 샤갈이 1592년 작업을 시작해 1961년에 완성한 판화집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전 작품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총 42점의 컬러 석판화 작품이 수록된 이 판화집은 프랑스의 유명 출판업자 테리아드가 샤갈에게 의뢰한 것이다. 샤갈은 컬러 석판화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 평균 25개의 색판을 만들었고, 10년 동안 석판 약 1000장을 제작했다. 그리스신화의 가장 오래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판화집은 계절과 자연, 동물, 사랑의 순수함을 환상적인 색채로 표현했다. 전시는 샤갈의 작품을 6개 주제로 나눠 선보였다. △사랑을 노래하다 △환상의 세계에서 △신에게 다가가다 △파리, 파리, 파리 △빛과 색채 △영원한 이방인 등이다. 또 로버트 카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설립한 사진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의 글로벌 디렉터 안드레아 홀저가 선정한 필리프 할스만의 샤갈 초상 사진 6점도 만날 수 있다. 1940년대 샤갈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 작품을 통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영화감독 장유록이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유럽 각지의 성당을 찾아 촬영한 미디어 아트 영상도 전시된다. 장 감독은 영국 켄트 지역 올세인츠 교회, 프랑스 메츠 대성당, 알프스 인근 아시시의 성모 대성당, 독일 마인츠의 성 스테판 대성당을 영상에 담았다. 전시 기간 내내 판화 체험 코너도 운영된다. 관람객이 샤갈의 석판화 기법을 스탬프로 간편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도슨트 프로그램은 수·금·토·일요일에 진행된다. 2층 기획전시실2에는 제주 출신 작가 강태석의 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10월 19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제주도립미술관이 마르크 샤갈(1887~1987)의 원화 300여 점을 선보이는 ‘마르크 샤갈: 20세기 그래픽 아트의 거장, 환상과 색채를 노래하다’ 전을 24일부터 개최했다. 제주도에서 샤갈의 작품을 전시하는 건 처음이다.이번 전시는 샤갈의 유화, 템페라, 과슈, 드로잉, 오리지널 판화, 아트북 등을 소개한다. 특히 샤갈이 1592년 작업을 시작해 1961년에 완성한 판화집 ‘다프니스와 클로에’의 전 작품이 공개돼 눈길을 끈다. 총 42점의 컬러 석판화 작품이 수록된 이 판화집은 프랑스의 유명 출판업자 테리아드가 샤갈에게 의뢰한 것이다. 샤갈은 컬러 석판화 한 점을 완성하기 위해 평균 25개의 색판을 만들었고, 10년 동안 석판 약 1000장을 제작했다. 그리스 신화의 가장 오래된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판화집은 계절과 자연, 동물, 사랑의 순수함을 환상적인 색채로 표현했다.전시는 샤갈의 작품을 6개 주제로 나눠 선보였다. △사랑을 노래하다 △환상의 세계에서 △신에게 다가가다 △파리, 파리, 파리 △빛과 색채 △영원한 이방인 등이다. 또 로버트 카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 설립한 사진가 그룹 ‘매그넘 포토스’의 글로벌 디렉터 안드레아 호저가 선정한 필립 할스만의 샤갈 초상 사진 6점도 만날 수 있다. 1940년대 샤갈의 모습을 포착한 사진 작품을 통해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인 영화감독 장유록이 샤갈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 유럽 각지의 성당을 찾아 촬영한 미디어 아트 영상도 전시된다. 장 감독은 영국 켄트 지역 올세인츠 교회, 프랑스 메츠 대성당, 알프스 인근 아씨의 성모대성당, 독일 마인츠의 성 스테판 대성당을 영상에 담았다.전시 기간 내내 판화 체험 코너도 운영된다. 관람객이 샤갈의 석판화 기법을 스탬프로 간편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도슨트 프로그램은 수∙금∙토∙일요일에 진행된다. 2층 기획전시실2에는 제주 출신 작가 강태석의 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10월 19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소장품을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 100년사를 조명하는 상설 전시의 전체 모습이 MMCA 과천에서 공개됐다. 지난달 1일 MMCA 과천은 상설전 ‘한국근현대미술 I’이 개막하며 1900∼1950년대 미술 작품 145점을 먼저 소개했다. 25일 공개된 ‘한국근현대미술 II’는 1950∼1990년대 작품 110여 점을 전시한다. MMCA가 조명한 20세기 한국 미술은 어떤 작품들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 정의되는 걸까.● ‘작가의 방’을 주목하라 미술관의 20세기 소장품 상설전은 2020∼2022년 MMCA 과천 ‘시대를 보는 눈: 한국근현대미술전’을 통해 선보인 적 있다. 당시 전시와 이번 전시에서 먼저 눈에 띄는 차별점은 전시장 중간마다 마련된 ‘작가의 방’이다. 전시장의 다른 곳에는 한 작가의 작품이 1, 2점 전시되는 것과 달리, 작가의 방은 한 작가의 작품을 최소 5점 이상으로 구성했다. 영상 인터뷰나 도록, 의자를 비치해 진짜 하나의 방처럼 공간을 구성했다. 미술관은 ‘방’으로 초대한 작가들을 앞으로 1년마다 교체할 예정이다. 이번 첫 전시에선 오지호, 박래현, 김기창, 이중섭, 김환기, 윤형근이 선택됐다. 이를테면 오지호의 방에는 인상파 화풍으로 한국의 초가집을 담은 ‘남향집’이나 미완성 유작 ‘세네갈의 소년들’ 등 대표작 15점이 소개됐다. 도록을 볼 수 있는 소파도 마련됐다. 상설 전시를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인데, 백남준이나 이우환처럼 국제적인 명성을 지닌 작가는 왜 ‘작가의 방’ 목록에 오르지 못한 걸까. 이는 미술관의 소장품 규모나 전시 가능 여부 등 현실적인 요소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시대를 보는 눈’ 전시 때는 외부 대여를 받기도 했지만, 이번 전시는 미술관 소장품으로만 구성해 더욱 제한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술관 측은 “1년마다 작가의 방이 교체되는 만큼 향후 보완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불 ‘스턴바우 No.23’ 첫 공개 또 이번 상설전은 근대 초상화나 조선 명승 유적을 담은 풍경화, 1980년대 한국화, 모더니스트 여성 미술 등 평소에 보기 어려웠던 미술관 소장품들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현주 학예연구사는 “전체적으로 전시는 시대나 사조 흐름을 크게 바탕에 두고 있지만, 주요 사조나 양식사에서 배제되거나 주목하지 못한 부분을 ‘주제’로 들여다보고자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남관 ‘태양에 비친 허물어진 고적’과 최욱경 ‘환희’, 이신자 ‘노이로제’, 황창배 ‘20-1’, 서용선 ‘청계천에서’ 같은 작품들을 만나는 즐거움이 크다. 주요 사조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다. 이불의 ‘스턴바우 No.23’은 올해 초 미술관이 새롭게 소장한 작품이다. 아쉬운 점도 명확하다. 작품들을 전시하는 주제는 시간 순서에 따라 배치됐지만 그 기준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시기는 추상이나 구상 등 그림 속 주제를 조명하고, 어떤 때는 한국화와 유화 등 매체에 초점을 맞췄다. 20세기 한국 미술사를 재구성했다기보단 MMCA 소장품을 시대순으로 분류한 전시에 가깝다. 따라서 명확한 가치를 기준으로 정리된 한국 미술사를 살펴보기보다는 미술관이 소장한 작품을 훑어 본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소장품을 다시 연구하고 돌아보며 분류했다는 점이 의미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빠진 작품이 무엇인지 인식하고 비어 있는 것은 적극 소장하려 노력했다. 이불 작품도 그중 하나”라고 했다.과천=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는 물론이고 라파엘 전파와 나비파 화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 ‘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8월 31일까지 이어진다. 이 전시에서 관객의 눈길이 집중되는 작품부터, 놓치기 쉽지만 눈여겨볼 만한 작품을 선별해 매주 지면에 소개한다.》“집에는 동전 한 푼 없고, 냄비에는 오늘 먹을거리조차 없다.” 프랑스 화가 클로드 모네가 1875년 문학가 에밀 졸라에게 보낸 편지에 쓴 글이다. 이 무렵 모네는 파리를 떠나 북서쪽 아르장퇴유에서 부인 카미유, 여덟 살 아들 장과 함께 살고 있었다. 가끔 팔리는 그림과 후원자의 도움으로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시절, 모네는 매일 화구를 들고 들판으로 나가 자연 풍경을 그렸다. 이때 모네가 남긴 그림 ‘봄’이 이번 전시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다.● 봄볕과 산들바람을 담은 그림‘봄’을 자세히 보면 점을 찍듯 짧고 빠르게 그린 붓 터치가 그림에 가득하다. 이를테면 오른쪽 아래 꽃나무는 멀리서 보면 나무 같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콕콕 찍어 넣은 흰 점과 까만 선이 전부다. 만약 당시 잘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면 나뭇가지 뼈대를 그리고 꽃의 형태도 충실히 묘사했을 것이다. 그런데 선을 긋고 점만 찍은 나무라니. 당시 사람들 눈에는 흐리멍덩하기 짝이 없었다. 그 때문에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은 혹평과 비난을 받았다. 모네는 ‘봄’을 그리기 1년 전인 1874년에 르누아르, 드가, 피사로, 세잔, 시슬리, 모리조와 함께 파리에서 첫 번째 인상주의 전시를 연다. 여기에 모네가 출품한 ‘인상, 해돋이’에 대해 평론가 루이 르루아는 “이 작품이 인상에 불과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얼마나 마음대로, 얼마나 쉽게 그렸는가! 벽지도 이 작품보다는 더 완성도가 있겠다”고 악평했다. 당대 평론가조차 이해하지 못했던 ‘인상’이란 이런 것이다. 모네가 점과 선으로 그린 나무는 ‘봄꽃이 어떤 구조와 형태를 지니고 있는지’가 아니라 ‘봄볕을 만난 꽃이 반짝이는 모습이 어떻게 사람들의 눈에 비치는지’를 보여준다. 또 봄이 오면 들판 위로 부는 ‘산들바람’이 주는 선선하고 따스한 느낌을, 모네는 구불구불하게 그린 파란 선과 같은 모습으로 표현했다. 그림 좌측에 멀리 있는 나무는 더 흐리고 간략하게 묘사했는데, 실제로 우리들의 눈이 멀리 있는 것은 흐릿하게 인식한다는 점을 나타낸 것이다. 모네는 1871년부터 1878년까지 아르장퇴유에 머물며 그림 180여 점을 그렸다. 아르장퇴유로 이주한 초기에는 작품을 대량으로 판매해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1874년부터 어려움을 겪었고 이 지역에 도시화가 진행돼 자연 풍경이 사라지면서 결국 아르장퇴유를 떠나게 된다.● 로댕존에서 강의형 도슨트 운영‘모네에서 앤디 워홀까지’전은 평일마다 매일 3차례 무료 도슨트를 운영한다. 참가 인원이 많아지면 1층과 지하 1층 전시장 사이에 있는 계단식 공간인 ‘로댕존’에서 강의형 도슨트를 진행한다. 관객은 앉은 상태에서 프로젝터를 통해 작품 슬라이드를 보며 설명을 듣고, 작품 감상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전시 관계자는 “사람이 많아지면 작품이 잘 안 보이는데 서 있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2주 전부터 강의형 도슨트를 진행했다. 관객의 반응이 좋아 확대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우리는 왜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갈망하는가. 이 무한한 욕망의 뿌리는 어디일까. 음식이나 물건은 물론이고 정보, 권력 등 다양한 분야에서 ‘충분하다’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심리. 저자는 이를 ‘스케어시티 마인드셋(scarcity mindset·결핍의 사고방식)’이라고 정의했다. 인류가 진화하면서 자원이 부족했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본능이지만, 오늘날처럼 풍요로운 시대에는 행복과 건강을 해치는 원인이 된다. 우리의 뇌가 ‘결핍의 고리’에 빠지는 메커니즘을 과학적 연구나 사례를 바탕으로 소개한 책이다. ‘결핍의 고리’는 기회, 보상, 반복 가능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끊임없는 탐닉을 만드는 건 ‘예측 불가능한 보상’이다. 이 고리에 빠진 사람은 예측 불가능한 보상을 기대하며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빠르게 반복적인 행동을 한다. 음식, 쇼핑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 고리는 작동한다. 도박장에서 슬롯머신을 돌리거나 소셜미디어에서 계속 새로고침을 하는 행동도 그중 하나다. ‘결핍의 고리’는 인지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끝없는 탐닉은 집중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저하시키고, 장기적 계획을 세우는 것도 방해한다. 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충동적 행동을 하게 된다. 저자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회복력과 적응력, 마음 챙김(명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 가진 것에 집중하며 충분함을 느끼는 ‘감사 일기’ 쓰기, 명상과 심호흡으로 스트레스 반응 진정시키기, 불편함을 의도적으로 경험하며 두려움과 불확실성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고 중독적 행동에서 물러서기 등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저자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네바다주립대 교수로 현대 과학과 진화론적 지식을 결합해 인간의 행동 변화와 삶의 질을 개선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책은 결핍의 심리를 뇌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한편, 현대 사회가 만들어 내는‘가짜 결핍 신호’에 속지 않을 방법을 담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라시대 선조들이 홍수에 대비해 제방을 만들고 수리했던 과정을 기록한 비석인 ‘영천 청제비’(사진)를 국보로 지정했다고 20일 국가유산청이 밝혔다. 영천 청제비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청못’ 옆에 세워진 2개의 비석이다. 받침과 덮개돌 없이 자연석에 글을 새겼으며 각각 ‘청제축조·수리비’와 ‘청제중립비’로 부른다. 청제축조·수리비는 앞면이 축조비, 뒷면이 수리비다. 축조비는 536년(법흥왕 23년) 2월 8일에 큰 제방을 만들었다는 내용과 함께 공사 규모, 인원, 책임자, 관리자를 기록했다. 수리비는 798년 4월 13일 제방을 수리하면서 제방의 파손, 수리 경과를 보고한 과정과 수리 규모, 공사 기간, 책임자, 동원 인원을 담고 있다. 옆에 있는 청제중립비는 1688년 땅에 묻혀 있던 축조·수리비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내용이다. 국가유산청은 “청제축조·수리비는 신라시대 홍수와 가뭄이 가장 잦았던 6세기와 8∼9세기 자연재해 극복을 위해 국가에서 추진한 토목공사 내용을 통해 신라의 정치·사회·경제상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신라시대 선조들이 홍수를 대비해 제방을 만들고 수리했던 과정을 기록한 비석인 ‘영천 청제비’를 국보로 지정했다고 20일 국가유산청이 밝혔다. 영천 청제비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후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는 ‘청못’ 옆에 세워진 2개의 비석이다. 받침과 덮개돌 없이 자연석에 글을 새겼으며 각각 ‘청제축조∙수리비’와 ‘청제중립비’로 부른다.청제축조∙수리비는 앞면이 축조비, 뒷면이 수리비다. 축조비는 536년(법흥왕 23년) 2월 8일에 큰 제방을 만들었다는 내용과 함께 공사 규모, 인원, 책임자, 관리자를 기록했다. 수리비는 798년 4월 13일 제방을 수리하면서 제방의 파손, 수리 경과를 보고한 과정과 수리 규모, 공사 기간, 책임자, 동원 인원을 담고 있다. 옆에 있는 청제중립비는 1688년 땅에 묻혀 있던 축조∙수리비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는 내용이다.청제비는 1969년 보물로 지정됐는데 이번에 56년 만에 국보로 승격됐다. 국가유산청은 “청제축조∙수리비는 신라시대 홍수와 가뭄이 가장 잦았던 6세기와 8~9세기 자연재해 극복을 위해 국가에서 추진한 토목공사 내용을 통해 신라의 정치∙사회∙경제상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밝혔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텅 빈 공간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고 상상해 보자.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공간은 평온함을 자아낸다. 그런데 여기 사람 형상이 등장하는 순간 긴장감이 생긴다. 저 사람은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을까. 말을 걸어도 안전한 존재일까, 아니면 경계해야 할까.일본 출신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영국 출신 조각가 앤터니 곰리가 텅 빈 동굴에 7명의 ‘철인’을 가져다 놓았다. 두 사람이 협업한 전시 공간 ‘GROUND(그라운드)’ 이야기다. 강원 원주시 뮤지엄 SAN(뮤지엄산)에서 개관하는 ‘그라운드’는 곰리의 작품을 소개하는 상설 전시관. 20일 개관하는 이곳을 하루 전에 먼저 둘러봤다. ● 바위 대신 철인 놓은 ‘명상 정원’‘그라운드’는 내부 지름 25m에 천고는 7.2m에 이른다.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의 4분의 3 규모에 이르는 웅장한 공간이다. 안도가 리모델링한 프랑스 파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를 떠올리게 하는 돔 형태의 지붕이 특징. 동굴 끝에는 입을 벌린 듯 창이 나 있고, 이곳으로 산의 능선이 보인다. 이렇게 광활한 공간 속에 곰리는 인물 철조각 연작 ‘Ground’ 7점을 놓았다. 뿔뿔이 흩어져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듯 우뚝 서 있거나, 앉거나, 누워 있는 작품들. 곰리는 공간에 무게를 더하는 ‘닻’이라고 설명했다. “(철 벽돌을 쌓은 무거운 조각을 놓은 이유는) 거대한 덩어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덩어리가 닻 혹은 에너지를 불어넣는 배터리로 작동하길 바랐어요. 일본 교토 료안지(龍安寺)의 바위 정원에 있는 15개 돌처럼 생각이 머무는 기둥이 되는 거죠.” 료안지 바위 정원은 어떤 방향에서 봐도 전체 15개를 한 번에 볼 수 없도록 설계돼 인간 인식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곰리와 안도의 ‘그라운드’도 이처럼 생각에 잠기도록 만든 ‘명상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차이는 돌 대신 사람을 놓았다는 점이다. 돌은 그저 바라보는 ‘대상’이지만, 사람은 관객처럼 무언가를 느끼고 말한다. 관객은 조각이 사람인 듯 감정 이입하며 옆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관계를 맺는다. 곰리는 “나의 작품은 물질의 형태(조각)로 만든 질문”이라며 “그에 대한 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안도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작품을 바라보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고 죽는가, 생명의 근원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며 “이 작품이 앞으로 100년, 200년 후에도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니 벅차오른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우주, 몸 곰리는 영국 게이츠헤드에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든 500t 무게의 조각 ‘북방의 천사’, 런던 뉴욕 상파울루 등 대도시 고층 빌딩 옥상에 설치한 인체 조각 ‘사건의 지평선’ 등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인간의 몸과 그것이 주변과 갖는 관계를 탐구한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도 “우리의 몸은 돌보아야 하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관이자 미지의 우주”라며 “인류가 스크린에 지배돼 잃고 있는 동물적 감각을 되찾아야 하고, 인간성을 되찾는 마지막 보루가 예술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그런 곰리의 또 다른 조각 연작 ‘경계의 영역’과 드로잉 및 판화 연작 ‘몸과 영혼’, 대형 공간 설치 작품 ‘오르빗 필드 II’도 뮤지엄산에 전시된다. 이 작품들은 청조갤러리 전관(1·2·3관)에서 펼쳐진다. 조각 7점, 드로잉 및 판화 40점, 설치작품 1점으로 구성된 곰리 개인전이다. 특히 ‘오르빗 필드 II’는 허공에 대고 드로잉을 한 듯 전시장 전체에 스틸 원형 구조물을 가득 채워 눈길을 끈다. 관객은 철로 만든 드로잉 사이를 지나다니며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열린다.원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텅 빈 공간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고 상상해 보자. 아무것도 없는 고요한 공간은 평온함을 자아낸다. 그런데 여기 사람 형상이 등장하는 순간 긴장감이 생긴다. 저 사람은 누구이고 왜 여기에 있을까. 말을 걸어도 안전한 존재일까, 아니면 경계해야 할까.일본 출신 건축가 안도 다다오와 영국 출신 조각가 안토니 곰리가 텅 빈 동굴에 7명의 ‘철인’을 가져다 놓았다. 두 사람이 협업한 전시 공간 ‘GROUND(그라운드)’ 이야기다. 강원 원주시 뮤지엄 SAN(뮤지엄산)에서 개관하는 ‘그라운드’는 곰리의 작품을 소개하는 상설 전시관. 20일 개관하는 이곳을 하루 전 먼저 둘러봤다. ● 바위 대신 철인 놓은 ‘명상 정원’‘그라운드’는 내부 직경 25m에 천고는 7.2m에 이른다. 이탈리아 로마 판테온의 4분의 3 규모에 이르는 웅장한 공간이다. 안도가 리모델링한 프랑스 파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를 떠오르게 하는 돔 형태 지붕이 특징. 동굴 끝에는 입을 벌린 듯 창이 나 있고, 이곳으로 산의 능선이 보인다.이렇게 광활한 공간 속에 곰리는 인물 철조각 연작 ‘Ground’ 7점을 놓았다. 뿔뿔이 흩어져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듯 우뚝 서 있거나, 앉거나, 누워있는 작품들. 곰리는 공간에 무게를 더하는 ‘닻’이라고 설명했다.“(철 벽돌을 쌓은 무거운 조각을 놓은 이유는) 거대한 덩어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덩어리가 닻 혹은 에너지를 불어넣는 배터리로 작동하길 바랐어요. 일본 교토 료안지(龍安寺)의 바위 정원에 있는 15개 돌처럼 생각이 머무는 기둥이 되는 거죠.”료안지 바위 정원은 어떤 방향에서 봐도 전체 15개를 한번에 볼 수 없도록 설계돼 인간 인식의 한계를 깨닫게 한다. 곰리와 안도의 ‘그라운드’도 이처럼 생각에 잠기도록 만든 ‘명상 정원’이라 할 수 있다. 차이는 돌 대신 사람을 놓았다는 점이다. 돌은 그저 바라보는 ‘대상’이지만, 사람은 관객처럼 무언가를 느끼고 말한다. 관객은 조각이 사람인 듯 감정 이입하며 옆에 앉아 사진을 찍으며 관계를 맺는다.곰리는 “나의 작품은 물질의 형태(조각)로 만든 질문”이라며 “그에 대한 답은 각자의 마음속에 있다”고 했다. 안도는 영상 메시지를 통해 “작품을 바라보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고 죽는가, 생명의 근원은 무엇인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며 “이 작품이 앞으로 100년, 200년 후에도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니 벅차오른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우주, 몸곰리는 영국 게이츠헤드에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든 500톤 조각인 ‘북방의 천사’, 런던 뉴욕 상파울루 등 대도시 고층 빌딩 옥상에 설치한 인체 조각 ‘사건의 지평선’ 등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쳤다. 인간의 몸과 그것이 주변과 갖는 관계를 탐구한다. 그는 이날 간담회에서도 “우리의 몸은 돌보아야 하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독자적인 기관이자 미지의 우주”라며 “인류가 스크린에 지배돼 잃고 있는 동물적 감각을 되찾아야 하고, 인간성을 되찾는 마지막 보루가 예술이라 믿는다”고 강조했다.그런 곰리의 또 다른 조각 연작 ‘경계의 영역’과 드로잉 및 판화 연작 ‘몸과 영혼’, 대형 공간 설치 작품 ‘오르빗 필드 II’도 뮤지엄산에 전시된다. 이 작품들은 청조갤러리 전관(1·2·3관)에서 펼쳐진다. 조각 7점, 드로잉 및 판화 40점, 설치작품 1점으로 구성된 곰리 개인전이다. 특히 ‘오르빗 필드 II’는 허공에 대고 드로잉을 한 듯 전시장 전체에 스틸 원형 구조물을 가득 채워 눈길을 끈다. 관객은 철로 만든 드로잉 사이를 지나다니며 작품의 일부가 된다. 이 전시는 11월 30일까지 열린다.원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무대는 조선시대 ‘농머리(인천 중구 삼목선착장 일대) 해안’. 황해도 민요 ‘사설난봉가’와 함께 막이 오르면 서린 아씨, 오사룡, 미언, 마름, 북쇠 등 인물이 등장한다. 한복을 변형한 옷을 입은 인물들이 대사를 하고 움직일 때마다 북, 꽹과리, 징 같은 악기가 효과음을 내며 리듬감을 준다. 여기까지 들으면 분명 마당놀이나 탈춤으로 짐작할 터. 하지만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5대 희극 중 하나인 ‘십이야’를 원작으로 만든 국립극단 연극이다. 임도완 연출이 각색·연출을 맡아 지난해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초연했던 ‘십이야’가 12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했다. 이 연극은 일란성 쌍둥이 남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네 남녀의 사랑을 이야기한 셰익스피어 원작의 서사를 그대로 가져왔다. 그 대신 배경을 농머리로 바꾸고, 배가 난파돼 이곳에 떠내려온 쌍둥이 남매의 고향은 경북 포항 구룡포로 설정했다. 경상도와 충청도 사투리 대사를 활용한 웃음 포인트와 한옥을 모티브로 만든 무대 배경, 각종 소품을 이용해 장면을 전환하는 무대 연출 덕에 작품은 전통극처럼 여겨진다. 전 회차 객석을 ‘열린 객석’으로 운영해 마당극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한 것도 특징. 열린 객석이라 조명을 어둡지 않게 유지하며, 공연 중 자유롭게 입장과 퇴장도 할 수 있다. 관객이 어느 정도 소리를 내거나 움직여도 제지하지 않는다. 자폐 스펙트럼이나 발달장애인, 어린이 등도 편히 이용하도록 했다. 공연 전후는 물론이고 중간에도 별도 쉼터를 이용할 수 있고, 현장엔 대본을 비치해 볼 수 있다. 배우들은 관객의 박수나 호응을 유도해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15일 공연에서도 혼자 크게 웃음을 터뜨린 관객에게 배우가 즉석에서 응수하며 한 번 더 큰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임 연출은 “(지난해 연극) ‘스카팽’ 때 객석 조명이 어둡지 않았는데, 배우들이 관객과 눈을 마주치며 호흡하는 게 느껴져 좋았다”며 “이번 ‘십이야’ 공연도 열린 마음으로 많이 보러 와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십이야’는 명동예술극장에서 다음 달 6일까지 공연한 뒤 제주, 김포, 창원, 부산을 순회공연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무대는 조선시대 ‘농머리(인천 중구 삼목선착장 일대) 해안.’ 황해도 민요 ‘사설난봉가’와 함께 막이 오르면 서린 아씨, 오사룡, 미언, 마름, 북쇠 등 인물이 등장한다. 한복을 변형한 옷을 입은 인물들이 대사를 하고 움직일 때마다 북, 꽹과리, 징 같은 악기가 효과음을 내며 리듬감을 준다. 여기까지 들으면 분명 마당놀이나 탈춤으로 짐작할 터. 하지만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 5대 희극 중 하나인 ‘십이야’를 원작으로 만든 국립극단 연극이다. 임도완 연출이 각색∙연출을 맡아 지난해 대전예술의전당에서 초연했던 ‘십이야’가 12일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개막했다.이 연극은 일란성 쌍둥이 남매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네 남녀의 사랑 이야기한 셰익스피어 원작의 서사를 그대로 가져왔다. 대신 배경을 농머리로 바꾸고, 배가 난파돼 이곳에 떠내려온 쌍둥이 남매의 고향은 경북 포항 구룡포로 설정했다. 경상도와 충청도 사투리 대사를 활용한 웃음 포인트와 한옥을 모티브로 만든 무대 배경, 각종 소품을 이용해 장면을 전환하는 무대 연출 덕에 작품은 전통극처럼 여겨진다.전 회차 객석을 ‘열린 객석’으로 운영해 마당극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유도한 것도 특징. 열린 객석이라 조명을 어둡지 않게 유지하며, 공연 중 자유롭게 입장과 퇴장도 할 수 있다. 관객이 어느 정도 소리를 내거나 움직여도 제지하지 않는다. 자폐 스펙트럼이나 발달장애인, 어린이 등도 편히 이용하도록 했다. 공연 전후는 물론 중간에도 별도 쉼터를 이용할 수 있고, 현장엔 대본을 비치해 볼 수 있다.배우들은 관객의 박수나 호응을 유도해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15일 공연에서도 혼자 크게 웃음을 터뜨린 관객에게 배우가 즉석에서 응수하며 한 번 더 큰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임도완 연출은 “(지난해 연극) ‘스카팽’ 때 객석 조명이 어둡지 않았는데, 배우들이 관객과 눈을 마주치며 호흡하는 게 느껴져 좋았다”며 “이번 ‘십이야’ 공연도 열린 마음으로 많이 보러 와 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십이야’는 명동예술극장에서 다음 달 6일까지 공연한 뒤 제주 김포 창원 부산을 순회공연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이 포함된 특별전 ‘일본 미술, 네 가지 시선’이 17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스승으로 유명한 센노 리큐(1522∼1591)의 찻물 항아리 ‘시바노이오리’부터 에도 시대 유명 화가인 오가타 고린(1658∼1716)이 직접 무늬를 그린 옷 ‘가을풀무늬 고소데’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과 도쿄국립박물관의 소장품 62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도쿄국립박물관은 ‘가을풀무늬 고소데’, ‘시바노이오리’와 ‘마키에 다듬이질 무늬 벼루 상자’, 전통 공연예술인 노(能)에 사용된 ‘샤쿠미 가면’ 등 일본 중요 문화재 7점을 포함해 40점을 출품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22점은 대부분 2000년대 이후 수집한 미술품이다. 전시는 이들 미술품을 4가지 주제로 나눠 일본 미술의 특징을 조명한다. △장식 △절제 △아와레(あはれ·자연의 섬세한 변화에 대한 감동) △아소비(遊び·유쾌하고 재치 있는 미적 감각) 등이다. 장식과 절제는 미술품 외형에 집중해 화려한 장식이 특징인 조몬 토기, 채색 자기, 금박 병풍부터 이와 반대로 투박한 다도 도구와 센노 리큐로 대표되는 소박한 다도 문화, 간결한 멋의 칠기나 옷을 소개한다. 센노가 갖고 있었던 물 항아리와 ‘와비(わび·소박함)’ 미의식을 상징하는 라쿠 찻잔 ‘아마데라’ 등을 볼 수 있다. 하이라이트는 일본 미술 특유의 정서를 다룬 ‘아와레’와 ‘아소비’ 전시다. 아와레는 피고 지는 벚꽃, 습기가 가득한 밤공기, 붉게 물든 나뭇잎과 기울어진 그림자 등 자연의 변화 앞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며 오는 애잔함과 감동 등 복합적 감정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한’처럼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미술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풀무늬’로 이를 표현했다.‘가을풀무늬’가 부드럽게 찰랑이는 모습을 담은 금박 병풍과 두루마기 옷 ‘고소데’, 가을풀이 무성한 마당을 앞에 두고 다듬이질하는 사람들을 새긴 벼루 등을 ‘아와레’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또 ‘아와레’ 정서를 담은 문학 작품 ‘겐지모노가타리’와 전통 공연 ‘노’에 사용된 옷과 가면도 전시됐다. 마지막 ‘아소비’ 전시에선 각종 풍속과 명소 풍경을 담은 다색 목판화 ‘우키요에’, 먹의 번짐과 즉흥성을 활용해 자유로운 회화 세계를 펼친 이토 자쿠추의 ‘수묵유도권’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 기간 중인 다음 달 16일에는 박물관 소강당에서 ‘아와레’ 정서와 ‘겐지모노가타리’에 담긴 일본의 미의식을 주제로 한 전문가 강연도 열린다. 8월 1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이 포함된 특별전 ‘일본 미술, 네 가지 시선’이 17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차 스승으로 유명한 센노 리큐(1522~1591)의 찻물 항아리 ‘시바노이오리’부터 에도 시대 유명 화가인 오가타 고린(1658~1716)이 직접 무늬를 그린 옷 ‘가을풀무늬 고소데’ 등을 만나볼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상설전시관 306호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맞아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의 소장품 62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 도쿄국립박물관은 ‘가을풀무늬 고소데’, ‘시바노이오리’와 ‘마키에 다듬이질 무늬 벼루 상자’, 전통 공연예술인 노(能)에 사용된 ‘샤쿠미 가면’ 등 일본 중요문화재 7점을 포함해 40점을 출품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22점은 대부분 2000년대 이후 수집한 미술품이다.전시는 이들 미술품을 4가지 주제로 나눠 일본 미술의 특징을 조명한다. ▲장식 ▲절제 ▲아와레(あはれ∙자연의 섬세한 변화에 대한 감동) ▲아소비(遊び∙유쾌하고 재치 있는 미적 감각) 등이다. 첫 두 주제는 미술품의 외형에 집중해 화려한 장식이 특징인 조몬 토기, 채색 자기, 금박 병풍부터 이와 대조되는 투박한 다도 도구와 센노 리큐로 대표되는 소박한 다도 문화, 간결한 멋의 칠기나 옷을 소개한다. 센노가 갖고 있었던 물 항아리와 ‘와비’(소박함) 미의식을 상징하는 라쿠 찻잔 ‘아마데라’ 등을 볼 수 있다.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일본 미술 특유의 정서를 다룬 ‘아와레’와 ‘아소비’ 전시장이다. 아와레는 피고 지는 벚꽃, 습기가 가득한 밤공기, 붉게 물든 나뭇잎과 기울어진 그림자 등 자연의 변화 앞에서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며 오는 애잔함과 감동 등 복합적 감정을 뜻한다. 우리나라의 ‘한’처럼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으로, 미술에서는 바람에 흔들리는 ‘가을풀무늬’로 이를 표현했다. 이 ‘가을풀무늬’가 부드럽게 찰랑이는 모습을 담은 금박 병풍과 두루마리 옷 ‘고소데’, 가을풀이 무성한 마당을 앞에 두고 다듬이질하는 사람들을 마키에로 새긴 벼루 등을 ‘아와레’ 전시장에서 볼 수 있다. 또 ‘아와레’ 정서를 담은 문학 작품 ‘겐지모노가타리’와 전통 공연 ‘노’에 사용된 옷과 가면도 전시됐다. 마지막 ‘아소비’ 주제는 각종 풍속과 명소 풍경을 담은 다색 목판화 ‘우키요에’, 먹의 번짐과 즉흥성을 활용해 자유로운 회화 세계를 펼친 이토 자쿠추의 ‘수묵유도권’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 기간 중인 7월 16일에는 박물관 소강당에서 ‘아와레’ 정서와 ‘겐지모노가타리’에 담긴 일본의 미의식을 주제로 한 전문가 강연이 열린다. 전시는 8월 10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취향을 형용사가 아닌 누구나 알 만한 브랜드로 말하는 데 익숙하다. 간편하게 자극을 느낄 수 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사람들을 초대해 왁자지껄 떠드는 걸 즐기며, 진지함보다는 장난스러운 재미를 간직하고 싶은 사람을 설명한다면? 프링글스, 발베니, 할리갈리, 스팸 통조림, 그리고 카우스 피규어. 화가 정수영이 음식이나 생활용품을 수납하는 팬트리로 그린 주변 사람들의 초상인 ‘팬트리 연작’을 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공개했다. 지난달 28일 개막한 전시는 신작인 ‘팬트리’ 연작을 포함한 회화 30여 점을 전시한다. 전시장에서는 과자, 와인과 치즈 올리브, 샴페인과 위스키부터 곤충까지 온갖 물건들이 놓인 팬트리를 구경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작가가 주변 사람들에게 개인적인 수납공간을 보여 달라고 한 다음, 이것을 토대로 회화적 언어로 재구성한 것이다. 전시장 입구에는 여행 가방이 놓인 가운데 발끝이 살짝 보이는 작품 ‘내향인’(Introvert)이 걸려 있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 가운데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보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물건’으로 취향과 정체성을 파악하는 소비 사회의 단면이 읽힌다. 전시 제목은 ‘초대받고 싶지만, 참석하고 싶지 않아’(I want to be invited, but I don’t want to attend).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의료 사고는 절대 가볍지 않은 문제다. 의료진의 순간적 실수는 환자 한 사람의 생명을 넘어 가족의 인생까지 뒤흔들 수 있다. 30년 차 현역 내과 의사가 쓴 이 책은 의료 사고가 초래하는 고통을 묘사하는 동시에, 사고의 원인을 단지 의료진 개개인에게서 찾지 말고 의료 시스템과 문화가 얽힌 복합적 문제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도입부부터 충격적이다. “이게 정말 사실인가요?”라는 문장으로 시작한 뒤 “미국 전체 사망 원인 중 세 번째가 의료 사고”라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다. 특히 여기에 저자의 인간적 시선을 더한 것이 매력적이다. 의료 사고에 관한 역사적인 연구나 조치를 소개하면서 의사인 본인의 경험을 담아 공감의 여지를 더한다. 의대 3학년 때 밤늦은 시간 수술을 돕다가 외과 의사의 바늘에 손가락을 찔렸는데, 권위적인 학교 문화 때문에 말도 하지 못하고 몇 달 동안 끙끙 앓았다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식이다. 의료 현장의 혼란스러운 하루하루도 생생하게 소개한다. 책이 묘사하는 병원에는 의료진 1명이 40명이 넘는 환자를 혼자 챙기거나, 전자 기록 시스템이 다운되고, 간호사는 부족한데 피곤한 인턴들이 가득하다. “환자 한 명에게 주어지는 몇 분 안에 진단 가능성이 희박한 모든 잠재적인 병명까지 고려해 환자에게 소견을 이야기해야 하는” 식이다. 이러한 병원의 이면을 보지 못했던 독자는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 하는 의아함과 놀라움으로 책을 읽게 된다. 미국에서 제때 올바른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백혈병 환자 제이와 화상 환자 글렌의 이야기는 적지 않은 울림이 있다. 환자와 가족이 겪는 고통과 무력감, 의료진의 죄책감과 혼란을 함께 느끼며 공감할 수 있다. 저자는 의료 사고의 복합적인 원인을 분석하는 한편 실질적인 대책도 제안한다. 의료진이 지켜야 할 ‘체크 리스트’ 도입, 의료기록의 전자화와 접근성 개선 등이다. 책 마지막엔 환자와 가족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도 정리했다.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의료 문화의 변화와 환자와 의료진 간의 신뢰 회복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