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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땀 한 땀 갓을 짜는 장인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엿보였다. 갓을 얹어 돌리는 단단한 나무 ‘골걸이’ 표면에도 깊은 주름이 졌다. “골걸이에 갓 모자 모양인 ‘일골’을 얹고 돌려가며 짜는데, 수십 년 돌리다 보니 일골 모서리 따라 홈이 파인 거쥬.” 85년간 총모자만 만들어온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갓 만드는 일) 명예보유자 김인 씨(91)가 반들반들해진 골걸이 나무 표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80년 넘게 전통공예품을 만들어온 중요무형문화재 명예보유자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12일부터 26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2011 무형문화재초대전-평생 외길: 명예로운 그 이름’ 전시회를 연다. 총 24명에 이르는 명예보유자 가운데 공예부문 명예보유자 7명을 초청했다. 갓일 명예보유자 김인 씨, 한산모시짜기 문정옥 씨, 소목장 설석철 씨, 장도장 박용기 씨, 망건장 이수여 씨, 탕건장 김공춘 씨, 한지장 류행영 씨가 자신들의 작품과 평생 함께한 제작도구들을 선보였다. 이날 전시는 명예보유자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대부분 명예보유자의 가족이나 친지인 2, 3대 전승자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해 ‘가족전’ 형태를 띠었다. 12일 개막식에 대표로 참석한 갓일 명예보유자 김 씨는 ‘핸드프린팅’ 행사를 마치고 함께 온 딸 강순자 씨(65·갓일 기능보유자), 외손녀 양윤희 씨(36·갓일 전수장학생)와 총모자 짜는 모습을 시연했다. 김 씨는 현존 무형문화재 가운데 탕건장 명예보유자 김공춘 씨(93)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걷는 것은 물론이고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을 나이지만, 말총을 고르고 다듬어내는 김 씨의 손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김 씨가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총모자 짜는 일을 배운 것은 일곱 살 때부터. “골걸이가 너무 높아 베개를 깔고 앉아 일을 했쥬. 그때만 해도 10개 맨들어 놓으민 부모가 25전에 팔아서 모았다가 송아지도 사오고 사탕도 사오고… 도포 채려 입고 갓집에 갓 넣고 아끼는 양반들이 많았으니까.” 김 씨가 태어난 제주도 도두동은 말이 많이 나는 제주도에서도 갓 장인이 많기로 유명한 동네였다. 여자들은 낮에는 밭일이나 해녀 일을 하고 밤에는 초롱불 곁에 둘러앉아 새벽까지 갓을 짰다. 갓은 매우 섬세한 공예품이라 모자 부분을 짜는 총모자장과 차양 부분을 짜는 양태장, 모자와 차양 부분을 잇는 입자장 등 장인 3명을 따로 뒀다. 총모자만 짜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보통 하나 맹그는 데 사나흘이 걸려.” 김 씨가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이수하려는 사람이 자꾸 줄었다. 갓 수요는 급격히 떨어지는데 일까지 고되니 기능을 이수하려고 제 발로 찾아온 사람들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국가가 돈까지 주고 내가 밥까지 해 맥이면서 가르쳐준 대도 안 와.” 최근에도 외손녀 양 씨를 포함한 이수자 4명 가운데 2명이 다른 길을 찾아 나갔다. “중요한 전통기술인데 이렇게 놔둘 수는 없어 저와 제 딸이 나섰어요.” 김 씨의 딸 강 씨가 말했다. 강 씨는 서른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입문해 어머니에 이어 2대 기능보유자가 됐다. 생업을 접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어느덧 의무감으로 시작한 갓일은 사명이 됐다. 강 씨의 권유에 못 이겨 5년간 전수장학생 과정을 다닌 외손녀 양 씨도 직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갓일을 배워나가고 있다.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눈과 허리가 많이 아프고 장인들 가운데는 망막이 찢어진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전통기술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커요.” 양 씨가 말했다. 김 씨는 그런 외손녀와 딸이 자랑스럽다. “고맙죠. 이거 꼭 이어나가야 하는 기술이거든. 내 평생을 담아 이어왔는데, 내가 죽어서도 이 일을 이어서 해줄 사람들이 생긴 게 얼마나 다행인지.”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경희대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와 아동문학평론사는 제21회 방정환문학상 수상자로 동시 부문 전병호 씨, 동화 부문 서석영 씨, 특별 부문 박근칠 씨를 12일 선정했다. 수상작은 전 씨의 동시집 ‘봄으로 가는 버스’와 서 씨의 동화집 ‘소원을 들어주는 마법 과자’, 박 씨의 동시조집 ‘서로 웃는 닭싸움’이다. 시상식은 28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동숭동 흥사단 3층 강당에서 열린다.}

주사위 놀이는 운(運)에 좌우된다. 체스나 장기 같은 판 놀이는 지혜를 겨루는 싸움이다. 주사위와 판이 합쳐지면? 운과 지혜를 모두 필요로 하는 인간사가 펼쳐진다. 국립민속박물관 어린이박물관이 4일 ‘말과 판, 주사위의 세계’ 특별전시회를 개막했다. 동서고금의 전통 판 놀이(Board Game)를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소개하는 전시회다. 전시는 네 영역으로 나뉜다. 첫 번째 ‘행운은 어디로?’는 운과 우연에 의해 이뤄지는 다양한 놀이와 활동을 소개한다. 주사위 달리기,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수로 음악 작곡하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두 번째 ‘지혜를 찾아라!’는 말과 판을 이용한 놀이의 공간. 체스의 기원인 ‘차투랑가’를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의 판 놀이를 비교한다. 세 번째 ‘즐거운 놀이마당’은 주사위와 판을 합친 놀이 세계다. 말, 판, 주사위를 합친 놀이 가운데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윷놀이를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마지막 전시 ‘세상을 담다’는 여러 놀이가 어떻게 당대 사회와 소통했는지 알려준다. 고대인의 우주관을 담은 윷판, 옛 선조들의 생활풍습을 읽을 수 있는 뱀 주사위 등을 전시한다. 신라시대 14면체 주사위 ‘주령구’도 직접 만들어 즐길 수 있다. 일반인에게 생소한 우리 전통놀이도 여럿 소개해 눈길을 끈다. 인현왕후가 만든 ‘규문수지여행지도’는 본받아야 할 인물로 중국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태임’을 설정해 말을 몰아가는 판 놀이다. 태임에 도달하면 정경부인으로 신분이 상승하고, 잘못해 ‘금수(짐승)’로 가면 놀이에서 탈락한다. 전시를 준비한 이은미 학예연구사는 “가정의 달을 맞아 운과 지혜를 합친 다양한 놀이를 경험하며 전통놀이가 가진 의미와 재미를 배워 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4월까지 계속된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서예가 고 일중 김충현(一中 金忠顯)의 묘비 제막식이 지난달 30일 경기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그의 묘에서 열렸다. 일중은 한글 훈민정음판본체와 궁서체를 개발 및 보급했으며 경복궁 건춘문(建春門) 현판과 이승만 대통령, 박정희 대통령, 백범 김구 선생의 비문을 쓴 당대 최고 서예가다. 제막식을 지켜보는 일중선생기념사업회 회원들의 눈빛에는 슬픔과 ‘안도감’이 교차했다. 그동안의 우여곡절 때문이다. 일중은 2006년 11월 19일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그가 대표로 있던 백악미술관과 문하생들이 모여 발족한 기념사업회가 본격적으로 묘비 제작에 들어간 것은 4년 전인 2007년. 사업회는 장례를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문 글자를 쓸 서예가로 고인의 수제자인 초정 권창륜 씨(68)를 선정했다. 문제는 비문 문장이었다. 사업회는 일중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지인들 가운데 한문과 우리 고문에 능한 전문가를 선정해 비문 집필을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당사자는 “매우 영광”이라며 흔쾌히 수락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번복했다. “영광이긴 한데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업회는 이후에도 몇 명의 한문학자에게 의뢰했지만 대부분 ‘심리적 중압감’과 ‘바쁜 일정’을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3년여를 표류하던 비문 작성은 지난해 봄에야 완수할 수 있었다.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최완수 연구실장이 작성을 수락한 지 석 달 만에 결과물을 내놓은 것이다. 완성된 비문은 한자와 한글을 합쳐 모두 3000자에 이른다. 전면은 일중의 이름과 그를 치하하는 말을, 나머지 세 면은 그의 전 생애를 담았다. 최 실장은 “우리 역대 비문을 다 섭렵하고 수차례 남의 비문을 써보기도 했지만 이런 대가의 비문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전 생애를 넣으면서 가치평가도 해야 하고, 아름다운 문장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고충을 전했다.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정주성 백악미술관 관장은 “당대 최고 서예가의 비문이어서 누가 지었다는 사실이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기 때문에 비문 작성 부탁을 받은 사람들의 부담이 매우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한국은 세계무형유산 보존 관리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형유산 보존과 관리 실태가 열악한 다른 국가에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입니다.” 아시아인 최초로 1999년부터 두 차례 유네스코(UNESCO) 사무총장을 지낸 마쓰우라 고이치로 씨(74·사진)가 사흘간의 한국방문을 마치고 2일 출국했다. 그는 자신의 재임 중 이뤄진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의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세계무형문화유산)’ 선정 1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방한했다. 2일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에서 만난 마쓰우라 전 사무총장은 전날 왕실의례 ‘종묘대제’ 재현 행사를 보았다며 “중국과 일본에는 대대적인 유교 제례가 없다. 종묘라는 유형유산과 제례라는 무형유산이 결합해 있는 점도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마쓰우라 씨는 유네스코 사무총장 재직 중인 2003년 무형문화유산협약을 체결하고 2006년부터 본격 시행해 무형유산 보호를 위한 국제적 노력의 기틀을 세웠다. 임기를 마친 2010년부터는 유네스코 특사를 맡아 유네스코 산하 각종 문화재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에 무형유산의 중요성을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해왔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두 딸의 엄마이면서 28년간 연합뉴스 기자로 근무한 베테랑 여기자가 2006∼2009년 런던특파원을 지내며 겪은 영국을 이야기한다. 양파처럼 벗겨도 벗겨도 새로운 모습이 나오는 나라라는 뜻에서, 영국 국기 유니언 잭(Union Jack)을 비틀어 ‘어니언 잭(Onion Jack)’이라고 제목을 달았다. 영국에 대한 오해와 진실, 영국살이의 지혜 등을 소개하고 있지만 단순한 설명서나 여행안내서는 아니다. 특파원이자 엄마, 며느리인 지은이가 일과 가사를 병행하며 좌충우돌한 경험이 책의 곳곳에 녹아 있다. 이 시대 모든 ‘워킹 맘’이 공감하며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신명과 흥이 넘치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 우리나라를 설명할 때 흔히 쓰는 수식어다. 신명과 흥이 넘치지만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니. “뭔가 이상하잖아요. 도대체 어쩌다 이런 모순적인 표현이 붙은 건지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한성대 예술대 지상현 교수(사진)의 말이다. 지 교수의 신간 ‘한국인의 마음’(사회평론)은 전통미술작품을 통해 한국인의 기저 심리를 살핀 책이다. 스스로 ‘미술심리학자’라고 부르는 저자의 8번째 저서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문화가 신명, 흥이 넘치는 ‘조(躁)’와 조용하고 순응하는 ‘울(鬱)’이 함께 있는 ‘조울증(manic)의 문화’라고 분석했다. 사람도 즐거울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는데 미술품이라고 그렇지 않을까. 어느 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워 ‘회색론’을 택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지 교수가 웃으며 답했다. “크게 두 가지를 검증했어요. 임상심리연구자들을 만나 한국인의 정서 감정을 부탁했고, 일본과 중국 등 다른 나라 전통미술작품들과 비교분석을 시도했습니다.” 지 교수는 이 책에 소개한 작품 가운데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한중일 세 나라의 ‘흉물’을 비교하면 우리 ‘조’ 문화의 특징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귀물(鬼物)은 무섭고 역겨운 느낌이 들죠. 중국 사천왕상도 무서운 느낌이 강하고요. 그와 달리 용주사(경기 화성시) 사천왕상은 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뭉툭한 입술과 파마처럼 머리 옆으로 말린 기운이 해학적이기까지 하죠. 한편 신윤복의 그림은 ‘울’을 보여줍니다.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강박적인 기하학적 구성과 곡선이 그것입니다.” 지 교수가 말하는 조적 특징은 화려함과 동적임, 해학과 능동성이다. 반대로 울적 특징은 절제, 압축, 섬세함과 규칙성이다. 다른 나라 어디 미술품을 봐도 두 상반된 양식이 수시로 혼재하는 곳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조울증 감성을 현대미술의 특징과도 같은 것으로 평가한다. “현대미술은 안정보다는 불안, 작위보다는 우연, 기하학적 단순함과 기능주의, 감성을 드러내는 표현주의 등이 특징입니다. 한국 미술의 조울증 감성과 일맥상통하죠.” 지 교수에 따르면 이런 감성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고 사용한 민예품 속에서 잘 드러난다. 도쿄 민예관이 소장한 높이 12cm의 석제 약탕관은 현대 미니멀리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같은 곳에 소장된 3단함은 현대미술의 특징인 작위(반듯한 함의 형태)와 비작위(표면의 흐트러진 붓질)의 대비를 드러낸다. 지 교수는 “이런 평범한 것들에서 현대성이 엿보인다는 것은 한국문화 전반에 현대성이 내재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홍익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미술을, 연세대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졸업한 지 교수는 앞으로도 “어떻게 아름다움을 느끼며, 어떤 미술이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가”를 꾸준히 연구할 계획이다. “관념 수준의 미를 현실로 끌어와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한 미술과 인간 연구를 동시에 하고 있는 저는 참 행복한 사람 같아요.”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임성근 백암고 진로상담부장 정근 삼성생명 전주법인팀장 종근 전북타임즈 정치부장 경근 씨(사업) 모친상=28일 전북 전주시 금성장례식장, 발인 30일 오전 9시 063-276-4444}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한국으로 반환되는 외규장각 도서 2차분 73권이 29일 국내에 도착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8일 “외규장각 의궤 2차분이 29일 오전 8시 40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차분으로는 73권의 의궤가 상자 4개에 나뉘어 들어오며 이 중 유일본도 10권이 포함돼 있다고 국립중앙박물관은 밝혔다. 의궤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옮겨져 보관될 예정이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학계, 가치 재조명 움직임 활발 고산자 김정호(1804년경∼1866년경)의 ‘대동여지도’가 올해로 150세를 맞았다. 우리나라 지도 역사의 새 시대를 연 대동여지도와 김정호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한 학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10월 서울대서 대규모 학술대회 지난해 한국고지도연구학회와 한국문화역사지리학회, 한국지도학회가 발족한 ‘대동여지도 150주년 기념 학술사업 준비위원회’는 전국의 대동여지도 소장기관들을 순회하는 전시와 학술대회를 기획하고 있다. 1861년 초판을 낸 대동여지도는 목판인쇄본으로, 국내외에 흩어진 인쇄본이 총 25점에 이른다. 위원회는 올해 3월 일부 소장기관과 첫 회의를 열고 국립중앙박물관을 시작으로 하는 전시와 학술대회 일정을 확정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6일부터 7월 24일까지 기획전 ‘대동여지도, 지도에 담은 동방의 큰 나라’를 중·근세관 테마전시실에서 연다. 대동여지도 인쇄본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숭실대와 중앙박물관만 유일하게 소장한 목판(보물 제1581호) 등 16건 55점의 유물을 전시한다. 5월 2∼13일에는 부산대 도서관이 ‘대동여지도, 지도를 함께 나누다’를, 6월 13일∼7월 8일에는 국립중앙도서관이 ‘김정호의 꿈, 대동여지도의 탄생’을 학술대회와 함께 개최한다. ‘김정호의 꿈…’에서는 김정호를 주제로 한 소설, 김정호가 지도를 만드는 데 참고한 도서들도 함께 전시할 계획이다. 7월에는 거창박물관, 8월에는 성신여대 박물관, 9월에는 서울대 규장각이 행사를 이어간다. 10월 20, 21일엔 서울대에서 ‘대동여지도에 길을 묻다’란 주제로 종합학술대회를 열 예정이다.○ 국가독점 국토지리정보, 대중화시대 열어 우리 고지도의 백미인 대동여지도는 국토를 남에서 북으로 120리씩 잘라 총 22개의 긴 책으로 엮은 지도다. 한 책을 동서로 80리씩 끊어 접고 펼 수 있도록 했는데, 22책을 이어 붙이면 전체 크기가 약 4×7m에 이른다. 19세기 이웃 일본과 중국이 유럽 지도학을 받아들여 지구가 둥글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한 경위선(經緯線) 지도를 사용했던 데 비해 한국은 여전히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 사상에 입각한 전통 지도를 쓰고 있었다. 대동여지도는 실측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통 지도이지만 그 구성은 현대 지도책에 가깝다. 김정호를 연구해온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전문원 이기봉 박사는 “대동여지도의 가치는 정확성에 있는 게 아니다. 목차와 색인을 둔 점, 배율을 적은 점 등 현대 지도책이 가진 요소들을 이미 갖췄다는 점에서 놀라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도 대중화의 문을 연 점도 높이 평가받는다. 목판인쇄본으로 만들어져 국가가 독점하던 국토지리정보를 대중화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큰 지도를 지역별로 나누고 잘라 이용과 휴대가 편리하도록 만든 점 역시 일반 사용자를 위한 획기적인 배려였다. 대동여지도 외에도 김정호는 ‘청구도’ ‘동여도’ 등 7종의 대형지도와 4종의 낱장지도를 냈고 ‘대동지지’ ‘동여도지’와 같은 지리지도 출간했다. 당대 국토 정보를 집대성하고 체계화한 조선 최고 지리학자이지만 평민이었던 탓에 전해지는 기록은 다 합쳐야 A4용지 한 쪽 분량에 불과할 정도다. 위원회는 순회 전시 및 학술대회를 통해 그동안 대동여지도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김정호의 생애와 다른 업적도 조명할 계획이다. 대동여지도 또한 미술적 가치 등 다양한 측면을 새로 조명한다. 실무위원장을 맡은 부산대 지리교육과 김기혁 교수는 “각 기관과 협조해 시민 답사, 강좌 등도 열 것”이라고 말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충무공 이순신 장군(1545∼1598)이 전사한 해 사돈에게 쓴 것으로 보이는 편지가 발견됐다. 충무공의 친필로 밝혀질 경우 그가 생전에 쓴 편지 가운데 알려진 것으로는 가장 마지막 편지여서 진위가 주목된다.충남 아산시 순천향대(총장 손풍삼) 이순신연구소 노승석 교수는 26일 “서울의 고문서 수집가가 소장한 초서체 편지 한 통을 확인했다”며 “내용과 서체를 기존 저서 및 친필과 비교한 결과 충무공의 편지가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49.5×32.5cm 크기의 한지에는 초서체로 쓴 18줄의 편지글이 세로로 적혀 있다. 마지막 줄에 ‘李舜臣(이순신)’이라는 이름과 함께 선조 31년인 무술년(1598년) 3월 22일이라는 날짜가 보인다. 지금까지 알려진 충무공 편지 중 마지막 편지는 1598년 2월 19일 친척인 현건에게 보낸 것이었다. 충무공은 같은 해 11월 19일 왜군과 벌인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편지는 어머니의 1주기 제사를 며칠 앞둔 필자가 전쟁을 수행하느라 한동안 왕래하지 못한 사돈과 사위에게 안타까운 마음과 자신의 근황을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 교수는 “사료에 따르면 충무공은 1597년 4월 11일 어머니를 여의는데, 이번 편지를 보면 ‘상기(祥期·1주기 제사)가 한 달 남았다’는 내용이 있어 충무공의 편지임을 증명한다”고 설명했다.서체를 분석한 서화문화연구소 손환일 박사는 “왕희지 초서법에 기본을 둔 충무공 필법의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기존 필적과 비교해도 같은 서법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손 박사는 “붓은 섬세한 필기도구라 필자의 손놀림에 따라 필획과 글자의 기울기 등에서 확연히 차이 날 수 있다. 난중일기 필적과 비교해 보면 쓴 시기가 달라 글자 모양에 약간 차이는 있지만 필획과 글자의 기울기 등이 동일해 같은 사람의 서법임을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이번 편지는 충무공이 전사하던 해 남긴 난중일기 무술년 편 중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1월 4일∼9월 14일 사이에 쓰인 것이라 그 가치가 더하다. 충무공의 기록을 연구해온 노 교수는 “진짜일 경우 당시 충무공의 심정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고 강조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조선왕조실록 말인데요, 좀 와서 봐주셔야겠어요.” 1998년 가을, 서울대 규장각으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그것이 시작이었다. 퇴근 후 서울대 규장각 서고를 찾은 이규식 문화재청 연구사(현 국립문화재연구소 복원기술연구실장)는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이 ‘줄줄 녹아내리고’ 있었다.》“그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 후 13년째 여기 매달려 있죠.” 이 실장은 태조∼명종대 실록 ‘밀랍본’ 복원사업 총괄담당자다. “왜 오래 걸리느냐”는 질문에 이 실장은 겸연쩍게 웃으며 “하나(밀랍)는 없애고, 하나(종이)는 살리는 모순을 동시에 수행할 방법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한지에 벌집의 성분 ‘황랍’을 입혀 만든 밀랍본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희귀본이다. 1998년 문화재연구소는 인천 강화군 정족산사고에서 서울대 규장각으로 옮겨진 실록 1299권에 대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여 131권의 밀랍본이 심각한 손상 상태임을 밝혀냈다. 본래 보존을 위해 발랐던 천연밀랍 성분이 녹아 한지가 찢어지고 색이 바랬다. 딱딱하게 굳은 부분은 곰팡이마저 슬어 건드리면 당장에 바스러질 지경이었다. 조사를 거쳐 2006년 본격 복원기술 개발을 시작했다. 복원사업의 핵심은 한지에서 밀랍을 제거하고 흩어진 종이들을 접합해 원상태로 돌리는 것. 문화재연구소는 강원대 제지공학과 조병묵 교수팀과 함께 2008년 실록 원지와 밀랍, 먹, 아교 등 재료 분석을 마치고 곧바로 밀랍을 제거하는 탈랍(脫蠟)실험에 들어갔다. 연구진이 개발한 탈랍법은 세 가지. 클로로포름에 종이를 넣고 밀랍을 녹이는 ‘용매 탈랍법’, 열과 압력을 가해 밀랍을 빼내는 ‘가온·가압 탈랍법’, 액체 상태의 이산화탄소에 밀랍을 녹여내는 ‘초임계 유체 탈랍법’이다. 문제는 종이였다. 밀랍을 제거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실험 과정에서 종이도 상하기 일쑤였다. “용매인 클로로포름에 종이를 넣으면 밀랍이 녹지만 종이도 바스러집니다. 열과 압력을 가할 때도 마찬가지죠.” 조 교수가 설명했다. 밀랍본 제작과정이 불분명한 점도 복원을 어렵게 하고 있다. “실록 관리기록인 ‘형기안’이라는 고서에는 ‘어느 지방에서 한지 몇 묶음이 왔다’ ‘어디 콩을 썼다’ 정도의 기초적인 정보만 적혀 있어요. 밀랍이 어떤 종이에 어떤 방식으로 뿌려졌는지 알아야 안전한 방식으로 떼어낼 수 있는데 말이죠.” 연구진은 첨단기기를 동원해 밀랍본 조각에서 나오는 미세가스를 분석하고, 실록 재현품에 수백 년 분량의 열과 압력을 가한 뒤 원본과 비교해 보는 방법으로 원래 제작기법을 하나하나 역추적하고 있다. 그나마 실험에 쓸 수 있는 원본은 새끼손톱 절반만 한 조각. 이마저도 규장각 측이 몇 년에 한 번씩만 제공할 뿐이다. “열악하죠?” 이 실장이 멋쩍게 웃었다. 다른 나라 고문서 중에도 초(醋) 등 인공 파라핀을 바른 밀랍본이 있지만, 한지에 천연 파라핀을 입힌 밀랍본은 세계에서 단 하나뿐이라는 게 연구진 설명이다. 차용하거나 참고할 만한 탈랍기술이 없다는 뜻. 그야말로 ‘전 세계 유례없는 단 하나의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남은 과제는 많다. 연구진은 일단 탈랍기술을 원본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가다듬고, 원지의 강도를 보강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다. 실록의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큰 숙제다. 이 실장은 “정기점검을 통해 규장각 서고 항온·항습기능을 강화하고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불활성가스를 개발하는 일을 별도로 계획 중이다. 2014년까지 작업을 완료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교육과학기술부가 내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정하자 편향된 내용을 먼저 고쳤어야 한다는 지적이 학계에서 나오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필수로 지정하지 않으면 역사교육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의견과 다른 사회탐구 과목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새 한국사 교과서도 편향적 이주호 교과부 장관은 한국사 필수화의 배경으로 “역사를 잘 모르면 중국과 일본의 왜곡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이주영 건국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현행 교과서를 일단 제대로 잡아놓고 시행했어야 했다. 이 상태에서 하면 학생들에게 잘못된 사관을 주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사 필수화를 조금 연기하더라도 준비과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도 “독도 문제 때문에 정부가 여론에 밀려 일을 너무 급하게 처리한 느낌”이라며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에 대한 지적이 계속됐던 만큼 올바른 교과서를 먼저 개발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는 “필수화 지정 과정에서 행정부와 입법부 사이에 제대로 된 합의도 없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올해부터 사용 중인 고교 한국사 교과서들이 편향적인 기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본보가 전문가와 함께 6종을 검토했을 때도 드러난 바 있다.▶2월 16일자 A3면 참조 예를 들어 미래엔컬처그룹의 교과서는 단독정부에 대한 이승만 대통령의 정읍발언(1946년 6월) 이전에 북한이 사실상 독자적 정부를 구성했다(1946년 2월)는 설명을 충분하게 하지 않아 남한이 분단 원인을 제공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북한의 공개처형과 정치범수용소, 아웅산 국립묘소 테러사건은 각각 1곳만 다뤘다. KAL기 폭파사건이나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뉴라이트 역사서의 집필자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현행 한국사 교과서는 개항 이후나 조선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편향적인 서술도 문제인 데다 현재 우리 삶과 관련 있고 애국심을 고양하는 데 필요한 부분이 부족하다”며 “이러한 문제를 그대로 두고 필수화를 강행하면 역사 교육의 문제점을 증폭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능 필수 아니면 누가 공부? 한국사를 수능에서 필수로 지정하지 않으면 선택하는 수험생이 적어 역사교육 강화라는 효과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사탐 과목보다 시간이나 양적으로 부담되는 한국사를 선택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수험생이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사가 수능 선택과목으로 바뀐 2005학년도부터 응시자가 계속 줄었다. 2005학년도에는 전체 응시자의 27.7%였지만 2008학년도 10.5%, 2011학년도에는 9.5%였다. 3월 고3 전국연합학력평가에서도 국사를 선택한 학생은 전체의 10.2%였다. 비상에듀 강민성 국사 강사는 “실제 수능에서는 국사를 선택하는 수험생이 더 줄어든다. 지난해에도 3월 고3 학력평가에서는 16.3%가 국사를 봤지만 수능에서는 9.5%만 봤다”고 말했다. 현재 입시에서 국사를 필수 과목으로 반영하는 대학은 서울대와 부산대뿐. 교과부는 한국사 반영을 확대하도록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권장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한 대학 관계자는 “주요 10개 대학만 필수로 해도 응시자 수가 늘 테지만 타 대학은 어려울 것이다. 수험생 대부분이 어려워하는 국사를 필수로 하면 지원율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사탐 과목과의 형평성도 문제다. 김기봉 교수는 “현 교육과정은 가뜩이나 국영수 위주고, 사회탐구라는 작은 파이 안에 12개 과목이 모여 있는데 한국사만 필수로 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지리 등 다른 과목의 반발이 심하다”고 말했다.최예나 기자 yena@donga.com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전통의복 하면 한복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모자와 신발도 옷만큼이나 중요한 의복의 구성요소다. 국립민속박물관이 20일부터 6월 13일까지 ‘머리에서 발끝까지-모자와 신발 특별전’을 연다.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모자와 신발의 변천사, 속담·전설·그림 속 모자와 신발 이야기를 담았다. 전통 모자와 신발 제작 시연회도 볼 수 있다. 시연을 펼칠 장인 4명을 만났다.》 ‘갓’ 무형문화재 박창영 씨-옛날엔 갓 하나에 장인 4명 ‘갓집’ 만들어 따로 보관도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입자장(笠子匠) 박창영 씨(68·사진)는 50년 넘게 갓을 만들었다. 고향집은 어려서부터 ‘갓방’을 했다. “우리 마을서 갓을 떼다 통영과 안동에 팔았죠.” 갓은 매우 섬세한 공예품이다. 입자장은 갓의 테두리 ‘양태’와 머리 부분 ‘총모자’를 연결해(갓 모으기) 완성하는 사람. 양태장과 총모자장, 갓에 옻칠을 하는 칠장은 따로 있다. 박 씨는 “지금은 내가 다 하지만, 원래 입자장도 네 종류라 옛날 어르신들 중에는 세죽사로 양태를 잡아 연결하는 ‘버렁잡이’만 하다 돌아가신 분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런 만큼 사대부들은 갓을 소중히 모셨다. “한복 두루마기에 갓을 써야만 풍채가 나는 거라. 비 오면 비 맞지 말라고 ‘갈모’를 덮어썼고, 애들이 손댈까 봐 갓집을 높이 걸어놓고 보관했죠. 옷보다 중하면 중했지, 못하지는 않았어.” 족두리-화관 장인 박성호 씨-先人작품 보고 제작법 익혀 보석 장식 기술은 못 따라가‘서울시 사라져가는 문화재’ 관모장 박성호 씨(75·사진)는 전통혼례 때 쓸 족두리와 화관을 만들어왔다. “어디 가서 배울 데도 없으니 옛날 어르신들 만든 거랑 유물 보고 재주를 익혔어요.” 벌써 40년째다. 합지(合紙)로 관의 틀을 만들고 공단을 바른 뒤 안에 솜을 넣고 겉은 보석, 금종이로 마무리하는데, 장식이 완성도의 8할을 차지한다. “박물관에서 조상들의 작품을 보면 보석과 수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지경이에요.” 불과 100년 전까지만 해도 맨머리로 외출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박 씨는 “계급과 행사별로 머리에 쓰는 것들이 있었잖아요. 그만큼 중요하고 또 아름다운 우리 머리쓰개인데, 많은 사람이 잊고 사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라고 말했다. 가죽-비단신 무형문화재 황해봉 씨-조부가 조선왕실 소속 장인 옷 못지않게 신발에 禮 담아중요무형문화재 제116호 화혜장 황해봉 씨(59·사진)는 5대째 전통 가죽신 ‘화(靴)’ ‘혜(鞋)’를 만든다. 할아버지인 고 황한갑 선생은 조선왕실 마지막 화장(靴匠)이었다. 모시와 삼베에 쌀을 곱게 빻은 풀을 먹여 신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가죽이나 비단을 덮어 신발을 완성한다. 색은 신나무 같은 천연염료로 들였다. “화혜는 왕이나 관리, 상궁 등 특수한 계급들이 신는 신발이었지만 관리가 신는 목화, 여자가 신는 수혜, 기생이 신는 기혜 등 종류가 10가지 이상이에요. 발이 편하면 몸이 편하다고 하잖아요. 옛 선조들도 발의 중요성을 알고 옷 못지않게 신발에 예를 담았죠.” 짚신 등 짚공예 전승자 임채지 씨-평생 새끼 꽈 손 성한데 없지만 조상 지혜 전승에 아픈줄 몰라화혜가 특별한 사람들의 신발이었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짚신을 신었다. 짚풀공예 국가기능전승자 임채지 씨(74·사진)는 “짚을 이용한 신발, 모자야말로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가 담긴 대표적 유물”이라고 말했다. 수확을 한 뒤 나오는 부산물 짚을 이용한 생활용품은 끝이 없다. 짚신, 소쿠리, 모자, 초가지붕, 접사리, 외형마름 등. 특히 짚신은 남녀노소 모두가 신는 ‘국민신발’이었다. “질감이 좋고 가벼운 데다 통풍도 잘돼 발 건강에 좋아요. 수시로 만들 수 있는데다 모양도 아름답고요. 평생 새끼를 꽈 손이 많이 상했지만, 조상들의 지혜를 후대에 전한단 생각에 아픈 줄도 모르겠어요.”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대통령 직속 사회통합위원회(위원장 송석구)와 동아일보가 ‘함께 찾는 공정사회의 조건과 과제’를 대주제로 연속 세미나를 시작했다. 사회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공정’과 ‘정의’의 한국적 의미와 가치를 살펴보고 그 실현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다. 1차 세미나는 15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은행회관에서 ‘한국적 공정사회론의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열렸다. 앞으로 2차 ‘공정한 한국경제를 위하여’(6월), 3차 ‘공정한 사회의 국가와 정치’(9월), 4차 ‘미디어와 공정성 지표’(11월) 순으로 진행된다. 》 “공정성 담론이 지나치게 분배를 강조함으로써 ‘부의 생산’에 관한 사회적 관심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신중섭 강원대 교수) “공정과 정의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다. 정부와 국가에서 시작된 논의가 이제 겨우 지식인사회에서 거론될 뿐 시민사회는 아직 참여도 못하고 있다. 논의 방식에 대한 평가보다 논의를 더욱 활성화해야 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하는 시점이다.”(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 이날 세미나는 공정과 정의를 주창하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평가, 올바른 논의 전개 방식, 과도한 공정 담론의 부작용 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참석자 대부분은 우리 사회의 압축 성장이 빚어낸 불공정과 부조리가 최근 불고 있는 ‘공정 열풍’의 정치·사회적 배경이라는 것에 동의를 표했다. 발제자로 나선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이명박 정부가 공정한 사회를 주창한 것에 대해 시민들은 ‘너나 잘하세요’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하면서도 “공정 사회를 국정 이념 지표로 내놓은 것은 한국 사회 진화 과정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짚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한 세대 만에 성취하면서 과속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런 시점에서 지금 공정과 정의를 짚은 것은 시의적절하다는 평가다. 윤 교수는 이어 “공정 사회에 대한 논의는 이념이나 특정 정권에 국한될 이유가 없는 보편적 호소력을 갖고 있다”며 “공정과 정의에 대한 논의를 담대하게 이끌어야 미래의 희망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토론자인 박준식 한림대 교수는 “공정성과 정의라는 추상적인 담론을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의식적 성찰 수준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말해 주는 문화적 현상”이라며 “극단화된 경쟁 사회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균열과 모순의 현실을 추상적인 개념으로라도 이야기해 보려는 의미 있는 몸부림으로 독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공정성 담론이 야기할 수 있는 문제점을 살폈다. 신 교수는 “공정성 논의가 자칫 분배의 강조로 흘러가면 부의 생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소홀해질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대기업 등 강자에 대한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불공정을 해결할 수 있는 절차와 이의 제도화”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강자에 대한 시민의 비난에는 현실적 요구뿐만 아니라 역사적 맥락이 있다. 감정과 논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을 수 있지만 그 속에는 보다 공정한 사회가 되기 위한 ‘질료’들이 숨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박 소장은 또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이제 겨우 정부를 벗어나고 있어 시민사회는 논의 공간에 아직 참여조차 못하고 있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어떤 종류의 논의냐가 아니라 논의 그 자체의 확장에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최근 TV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몇몇 오디션 프로그램이 공정성의 사례로 거론되기도 했다. 윤 교수는 ‘나는 가수다’ 프로그램에서 당초 합의한 룰을 지키지 않고 출연자들끼리 즉석에서 룰을 바꾸자 시청자들이 들고 일어나 결국 담당 프로듀서가 교체된 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에 계속되고 있는 공정성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만약 ‘슈퍼스타 K2’에서 허각이 아니라 존박이 우승을 했더라도 우리 사회가 ‘공정했다’고 평가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공정은 약자의 승리나 분배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절차와 기회의 공정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발제1: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의 담론 분석과 공정한 사회 ▼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 신드롬이 갑작스러운 돌출현상 같아 보이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포말처럼 꺼지기 쉬운 다른 사회문화 현상과 차별화되는 점은 ‘정의’ 현상이 그에 상응하는 사회·경제·정치·문화 인프라의 변환 욕구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분단과 전쟁의 폐허 위에 한국사회는 시민들의 땀과 눈물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뤘다. 그러나 화려해 보이는 양적 성과 옆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최고의 자살률과 형편없이 낮은 행복지수, 미래에 대한 총체적 불안, 극심한 국론 분열과 사회적 불신이 혼재한다. 폭발적인 발전과 성장의 뒤안길에서 편법이 횡행하고 반칙이 구조화됐던 것이다.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했던 개발독재 시대의 어두운 관행은 과거의 일만은 아니다. 외교통상부 장관 딸 특채 사건이나 다수의 고위 공직후보자가 낙마하는 인사청문회는 성공한 사람일수록 불법과 반칙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나라 전체가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릴 때, 정의와 공정성은 너무 홀대받았다. 어느 정도 숨을 고르게 된 지금, 정의라는 가치와 공정한 사회제도의 중요성에 다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공정한 사회’는 한국사회를 도약하게 할 무형의 가치이자 사회 운영의 원리이며 공동체적 삶의 질서다. 민주주의를 이뤘다고 하지만 시민적 우정과 신뢰 대신 정의와 불신이 넘치는 나라가 선진화를 말하기는 어렵다.지금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관심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쌓여온 편법과 반칙을 광정(匡正)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의 발전이 어렵다는 인식이 폭발한 결과다. 진보적 의제인 공정성과 정의를 신보수 정부가 선창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는 공정성과 정의의 실현이 좋은 나라의 보편적 운명이라는 점에서 한국사의 진화 단계가 이제 불가역의 지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을 웅변하는 사태이기도 하다. ‘공정한 사회’의 이념은 특정 정권에 제한된 것으로 이해할 필요는 전혀 없다. 대한민국 헌법은 국가가 패자부활전을 확립해야 하고, 사회경제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공정 의무를 진다고 명령하고 있다. 보편화한 ‘공정한 사회’의 이념은 대한민국 헌법 질서와 부합하며, 선진국의 규범적 표준이자 근본 가치인 사회정의론의 지향과도 일치한다.윤평중 한신대 철학과 교수 ▼ 발제2: 왜 지금 여기서 공정사회인가 ▼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한 ‘공정한 사회’는 그 이전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공정사회의 구체적 실천 방식으로 제시한 시장경제를 위한 규제 개혁, 사교육비 절감을 포함한 교육 개혁,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학자금 지원,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는 보금자리 주택, 소상공인을 위한 미소금융과 햇살론 등을 볼 때 기존 친서민 중도실용 정책에 공정성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부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공정한 사회’를 평등과 분배가 강조된 롤스의 정의론과 비교해 현 정부가 공정과 정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롤스 이론의 가치는 그가 제시한 개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개념을 만든 사고 절차에 있다. 단순하게 평등의 정도가 높은 사회를 더 ‘공정한’ 사회로 오인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경제적으로 불평등한 사회는 불공정한 사회라는 단정은 이런 오해에서 나온다. ‘평등’과 ‘공정’은 엄연하게 구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정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힘 있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논리적 모순이다. 우리 사회에서 힘 있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힘 있는 자들의 도덕심에 호소해 공정한 사회를 이룩할 수 있겠는가. 힘 있는 사람이든 힘없는 사람이든 그들의 도덕심에 호소해 공정한 사회를 성취하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정성 담론의 초점은 공정성에 대한 사람들의 판단이 아니라 제도로 옮겨져야 한다. 공정성 담론의 ‘지나침’이 불러올 수 있는 부작용도 유의해야 한다. 공정이 미래를 위한 동력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판단하는 잣대로만 작동하면 이는 오히려 우리 사회를 분열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정한 사회’가 사회적 부조리의 척결을 넘어 부와 직책의 평등한 분배까지 요구하면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 또 과도한 정부의 개입으로 경제의 자율성을 해쳐 ‘이념’이 경제를 압도할 수 있다. 이념이 경제를 압도하면 경제 정책은 경제 논리가 아니라 이념에 종속돼 국가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아울러 공정성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최소주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공정에 대한 가치와 평가는 신념이나 이념에 따라 크게 다르다. 국가는 ‘공정한 사회’와 같은 추상적 의제가 아니라 합의가 쉬운 구체적인 사회악의 제거를 자신의 역할로 삼아야 한다.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참석자 :: 발제자: 윤평중 한신대 교수, 신중섭 강원대 교수토론자: 박준식 한림대 교수,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사회자: 이병혜 명지대 교수}

그는 2007년 ‘예수 석가를 만나다’라는 책을 쓰고 동아일보와 인터뷰했다. 인터뷰 기사 옆에는 인도 델리의 한 박물관 앞에서 합장을 하고 찍은 그의 사진이 실렸는데 다음 날 그가 강사로 일하던 신학대 측에서 연락을 해왔다. 해고 통보였다. “그래서 결국 중국에 오게 됐지만 종교 간 대화는 계속됩니다.” 중국 지린사범대 교환교수인 신학자 이명권 씨(사진)는 이렇게 이야기하며 멋쩍은 듯 웃었다. 기자는 ‘마음의 빚’을 안고 있었지만 15일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이 씨의 목소리는 밝고 친절했다. ‘예수 노자를 만나다’(2006년) ‘무함마드와 예수 그리고 이슬람’(2008년) ‘공자와 예수에게 길을 묻다’(2008년) 등 꾸준히 타 종교와 대화를 시도해온 이 씨가 신간 ‘우파니샤드’(한길사)를 냈다. 다른 저작과 달리 이 책은 온전히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만을 위한 해설서다. “우파니샤드는 서양의 성경에 비견되는 ‘동양의 성경’으로, 동양 철학과 이상의 뿌리입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경전이기 때문에 일단 소개를 하는 데 주안점을 뒀어요.” 힌두교 경전 ‘베다’의 4개본 중 최종판인 우파니샤드는 앞선 경전과 달리 제사나 율법보다 내면의 수양을 강조한다. 나의 진짜 자아인 ‘아트만’과 전 우주의 본령인 ‘브라만’은 결국 둘이 아닌 하나로,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깨달으면 곧 우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연세대 신학과를 졸업하고 감리교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이 씨는 동국대 불교대학원에 진학해 처음 우파니샤드를 만났다. 기독교인에 신학자였지만 시대를 앞서 간 경전의 매력은 이 씨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기복적 사고에서 내면적 사고로의 전환은 ‘사랑 믿음 소망’을 강조한 예수의 새 율법 창시에 비교할 수 있습니다. 초기 경전인 ‘리그베다’가 구약성서라면 우파니샤드는 전통적 사고에 혁명적 전환을 불러온 신약성서라 볼 수 있습니다.” 우파니샤드의 철학은 불교, 공자·노자의 수신(修身)사상의 원류다. 이 씨는 이것이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우파니샤드에 따르면 진리는 곧 내 안에 있습니다. 우리 내면을 수양해 사랑과 평화에 이르면, 오늘날 시리아나 리비아, 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사는 없겠죠.” 그는 조만간 리그베다 해설서도 출간한다. 힌두철학에 푹 빠진 신학자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경구는 뭘까. “우파니샤드에 ‘그가 바로 너다’라는 문구가 있는데, ‘네가 곧 진리다’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이 ‘자타불이(自他不異)’의 베다 철학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최광식 문화재청장은 15일 “다음 달 문화재청에 생기는 해외문화재팀을 컨트롤타워 삼아 민간과 함께하는 문화재 환수전담 재단 설립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 청장은 이날 ‘해외문화재 환수를 위한 정부 차원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라’란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최 청장은 “환수 대상은 공권력을 통해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에 한정될 것”이라며 “해외로 유출된 문화재는 어디에 소장돼 있는지 현황 파악이 대강 이뤄진 정도이며 해외문화재팀의 인원이 6명밖에 되지 않아 민간 전문가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외규장각 도서 환수를 계기로 해외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를 되찾기 위한 정부 차원의 기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외규장각 의궤 문제를 최초로 제기한 프랑스 거주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와 마무리 협상에 역할을 한 박흥신 주프랑스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했다.}

“자칫하면 삼성도 10년 뒤에는 구멍가게가 된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한 말이다. 갤럭시S를 중심으로 스마트폰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데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스마트폰이 계속 발전을 거듭해 새 수요를 창출하고 한국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테지만 이 책의 저자는 착각이라고 단언한다. 이 회장은 삼성이 휴대전화에만 치중한다면 삼성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깨닫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갤럭시폰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삼성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을 찾으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말을 이건희 회장의 오라클이라고 본다. 오라클이란 무엇인가. 그리스 중부 파르나소스 산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도시 델피의 아폴론 신전에는 엄청나게 많은 보물창고가 있다. 보물창고들이 차지하는 대지가 신전보다도 넓다. 이 보물창고 속의 보물은 미래예측에 대한 대가였다. 델피는 험준한 산비탈에 신전을 짓고 자신의 미래를 알고 싶은 인근 도시국가의 왕이나 귀족들이 찾아오면 이를 예측해 주는 오라클(신탁)을 내렸다. 일종의 ‘오라클 비즈니스’였다. 그 덕분에 델피는 교역에 유리한 지리적 이점도, 비옥한 농지도 없었지만 800년 가까이 번성했다. 페르시아전쟁 때 그리스가 승리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은 델피의 명성은 더 널리 퍼졌고, 오늘날 미래예측 방법으로 각광받는 ‘델파이 기법’의 어원도 여기에 있다. “분쟁이 잦고 상거래가 위험했던 이 시기에 정확한 미래예측은 큰돈을 가져다주는 보증수표나 다름없었다. 도시국가들끼리의 충돌이 자주 일어나던 당시, 델피는 미래를 예측해 주는 것만으로 부국을 유지했다. 예측은 정확성이 높았고, 덕택에 거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오라클 비즈니스는 뭘까. 무디스 골드만삭스 아서앤더슨 같은 회사들은 오라클, 즉 미래예측의 대가로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고 있는 걸까. 오라클에 대한 관심은 현대에 더 커지고 있다. 미래예측 기관이 특정 업종을 유망하다고 예측하면 그 분야에 투자가 몰릴 정도로 예측력의 효과는 크다. 저자는 예측을 잘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는 현상을 ‘오라클 이펙트’라고 명명했다. 이 책은 바로 이를 분석하고 다양한 사례를 제시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중소기업 전문가인 저자는 한국이 정보기술(IT)이 아니라 MT(media technology)로 방향을 틀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미래예측에 대한 콘텐츠를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미디어 산업에 투자해야 한다는 저자의 오라클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 경제학을 리콜하라현대 경제학의 이론은 모두 틀렸다이정전 지음408쪽·1만4000원·김영사 인간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으로 움직이는가? 수요와 공급 이론은 여전히 유효한가? 한국자원경제학회장, 경실련 환경개발센터 대표인 저자는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현대 경제학의 핵심 가설이 모두 틀렸다고 주장한다. 경제학자들의 예측과 설명이 빗나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를 고백한 경제학 대가들과 현실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실패 사례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경제학 교과서에 나온 논리의 허점과 애덤 스미스로부터 시작된 ‘중상주의’ 시각의 문제점도 지적한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일반의 오해와 그것이 현 경기 변동과 성장 정책에 줄 수 있는 시사점, 혼합경제학의 대가 케인스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소개했다. 경제학은 2008년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다. 사후 진단 및 처방도 시원스럽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경제학이 이렇게 현실과 동떨어지게 된 이유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시각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 아이리더십잡스가 떠나도 애플 마법은 계속될까제이 엘리엇·윌리엄 사이먼 지음·권오열 옮김336쪽·1만7000원·웅진 지식하우스 애플은 다른 모든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애플의 제품은 사용자를 열광적인 추종자로 변모시키고 혁신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조직에 어떤 특별함이 있는 것일까. CEO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떠나더라도 애플의 마법은 계속될까. 이 책은 1980년 애플에 합류해 20여 년 애플의 수석부사장을 지낸 제이 엘리엇이 내부인의 시각으로 소상히 풀어낸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제품 개발, 인재 채용, 조직 문화, 브랜딩(branding)이라는 4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잡스의 리더십, 조직의 강점을 촘촘히 짚었다. 삼성을 포함한 타 기업 경영자들에 주는 이 책의 시사점을 축약하면 ‘창의적인 조직원을 뽑아 이들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하라’는 것. 저자는 1987년 제너럴일렉트릭(GE)의 한 공장에 애플의 조직문화를 성공적으로 이식한 사례를 들어 ‘어디나 적용 가능하다’고 말한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
10시간 35분. 프랑스 파리의 샤를드골 공항을 이륙한 아시아나항공 B777-200 비행기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인천공항에 착륙했다. 비행거리 8100km. 145년이 걸린 귀향이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해군이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일부는 14일 오후 고국 땅을 밟았다. 도서는 프랑스 현지 시간으로 13일 오후 1시 반 흰색 대형 트럭에 실려 프랑스국립도서관(BNF)을 출발해 한 시간 만에 샤를드골 공항 화물터미널에 닿았다. 1∼5번까지 번호가 매겨진 살구색 나무상자가 하나씩 차례로 차에서 내려져 터미널 안으로 운반됐다. 나무판 네 겹에 온습도 조절을 위한 스티로폼, 방수패드까지 두른 나무상자는 사람 하나가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크기는 각각 달랐다. 상자들은 터미널에서 6시간을 머무른 뒤 비행기 화물칸으로 옮겨져 오후 8시 14분 이륙했다. 승무원이 승객 155명에게 “여러분은 145년 만에 조국으로 귀환하는 외규장각 도서와 함께 타고 계시다”는 안내방송을 했다. 비행기는 한국시간 14일 오후 1시 49분 인천공항 활주로에 닿았다. 활주로 아지랑이 사이로 도서를 실은 비행기의 모습이 나타나면서 43번 게이트 앞에 모여 있던 취재진이 분주해졌다. 비행기는 천천히 바퀴를 굴려 게이트에 안착했고, 곧이어 흰 장갑을 낀 인부들이 몰려나와 비행기 앞 화물칸을 열었다. 화물칸 문이 열리고 ‘외규장각 도서 귀향을 환영한다’는 문구를 두른 3.1×2.2×1.6m 흰색 컨테이너 두 개가 로더에 실려 활주로로 내려왔다. 약탈당한 외규장각 도서 반환 1차분이 145년 만에 고국 땅을 밟는 순간, 취재진은 물론 도서를 맞으러 나온 공항 직원들과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사진기와 휴대전화를 꺼내 감격적인 순간을 담았다. B777-200기를 무사히 운항한 배정곤 기장(60)은 “수송을 맡게 돼 정말 영광이고 아무런 탈 없이 정시에 도착해 다행”이라고 소감을 말했다. 10여 분간의 기념촬영을 마친 특수컨테이너는 차에 실려 2.5km 떨어진 화물터미널로 향했다. 이곳에서 인부들은 도서를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된 녹색 무진동차에 상자 5개를 실었다. 도서를 실은 차량은 오후 4시 5분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 하역장에 도착했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영나 국립중앙박물관장, 로랑 에리셰 프랑스국립도서관 큐레이터가 도서들을 맞았다. 차 짐칸에서 모습을 드러낸 살구색 상자들은 쉴 틈 없는 일정에도 불구하고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말끔했다. 인부들이 수레에 상자를 옮겨 바닥에 내렸고, 세월의 무게를 짐작하게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상자가 땅에 닿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어 곧 상자들은 수장고로 이동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사라져가는 한국의 모습을 담아두고 싶었습니다.” 상명대 디지털이미지학과 양종훈 교수(사진)가 사진집 ‘강산별곡’을 냈다. 아프리카 스와질란드의 에이즈 환자들, 내전이 끝난 동티모르 사람들, 호주 원주민 등 세계 곳곳에 사는 소수민족의 일상을 조명해온 양 교수가 고국의 표정을 담은 사진집을 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원 정선군 인제군, 경북 봉화군, 전북 장수군, 전남 순천시, 제주도 등에서 산과 들, 바다를 터전으로 소박하게 사는 사람들의 흑백사진 220장이 책에 담겨 있다. 양 교수가 3년 동안 틈날 때마다 전국 오지를 돌며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 속 땀내 나는 일터, 벽촌에서 평생을 함께한 부부, 삶의 동반자 가축, 손때 묻은 전통가옥 등에서 사람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을 읽을 수 있다. 양 교수는 “사진작가로서 사진을 찍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엮어 하나의 사진집으로 완성하는가이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사진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전국 방방곡곡의 소박하고 정겨운 일상을 찍어 ‘한국의 속살’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출판기념회는 15일 오후 6시 반 서울 종로구 동숭동 상명대 문화예술디자인센터 갤러리.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