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형문화재 초대전 참가 91세 명예보유자 김인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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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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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 한땀 갓일 84년 외길

중요무형문화재 4호인 갓일을 3대째 이어가고 있는 김인 씨 가족이 11일 서울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시연행사를 벌였다. 갓의 재료인 말총을 다듬고 있는 명예보유자 김인씨(가운데), 갓 짜는 바늘 ‘바농대’로 갓의 모자 부분인 ‘총모자’를 짜고 있는 김 씨의 딸 강순자 씨(기능보유자·왼쪽)와 외손녀인 전수장학생 양윤희 씨.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중요무형문화재 4호인 갓일을 3대째 이어가고 있는 김인 씨 가족이 11일 서울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시연행사를 벌였다. 갓의 재료인 말총을 다듬고 있는 명예보유자 김인씨(가운데), 갓 짜는 바늘 ‘바농대’로 갓의 모자 부분인 ‘총모자’를 짜고 있는 김 씨의 딸 강순자 씨(기능보유자·왼쪽)와 외손녀인 전수장학생 양윤희 씨.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인 씨가 만든 총모자
김인 씨가 만든 총모자
한 땀 한 땀 갓을 짜는 장인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엿보였다. 갓을 얹어 돌리는 단단한 나무 ‘골걸이’ 표면에도 깊은 주름이 졌다.

“골걸이에 갓 모자 모양인 ‘일골’을 얹고 돌려가며 짜는데, 수십 년 돌리다 보니 일골 모서리 따라 홈이 파인 거쥬.”

85년간 총모자만 만들어온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갓 만드는 일) 명예보유자 김인 씨(91)가 반들반들해진 골걸이 나무 표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80년 넘게 전통공예품을 만들어온 중요무형문화재 명예보유자들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은 12일부터 26일까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2011 무형문화재초대전-평생 외길: 명예로운 그 이름’ 전시회를 연다. 총 24명에 이르는 명예보유자 가운데 공예부문 명예보유자 7명을 초청했다.

갓일 명예보유자 김인 씨, 한산모시짜기 문정옥 씨, 소목장 설석철 씨, 장도장 박용기 씨, 망건장 이수여 씨, 탕건장 김공춘 씨, 한지장 류행영 씨가 자신들의 작품과 평생 함께한 제작도구들을 선보였다. 이날 전시는 명예보유자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대부분 명예보유자의 가족이나 친지인 2, 3대 전승자들의 작품도 함께 전시해 ‘가족전’ 형태를 띠었다.

12일 개막식에 대표로 참석한 갓일 명예보유자 김 씨는 ‘핸드프린팅’ 행사를 마치고 함께 온 딸 강순자 씨(65·갓일 기능보유자), 외손녀 양윤희 씨(36·갓일 전수장학생)와 총모자 짜는 모습을 시연했다. 김 씨는 현존 무형문화재 가운데 탕건장 명예보유자 김공춘 씨(93)에 이어 두 번째로 나이가 많다. 걷는 것은 물론이고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을 나이지만, 말총을 고르고 다듬어내는 김 씨의 손길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김 씨가 외할머니와 어머니에게서 총모자 짜는 일을 배운 것은 일곱 살 때부터.

“골걸이가 너무 높아 베개를 깔고 앉아 일을 했쥬. 그때만 해도 10개 맨들어 놓으민 부모가 25전에 팔아서 모았다가 송아지도 사오고 사탕도 사오고… 도포 채려 입고 갓집에 갓 넣고 아끼는 양반들이 많았으니까.”

김 씨가 태어난 제주도 도두동은 말이 많이 나는 제주도에서도 갓 장인이 많기로 유명한 동네였다. 여자들은 낮에는 밭일이나 해녀 일을 하고 밤에는 초롱불 곁에 둘러앉아 새벽까지 갓을 짰다.

갓은 매우 섬세한 공예품이라 모자 부분을 짜는 총모자장과 차양 부분을 짜는 양태장, 모자와 차양 부분을 잇는 입자장 등 장인 3명을 따로 뒀다. 총모자만 짜는 데도 며칠이 걸렸다. “보통 하나 맹그는 데 사나흘이 걸려.” 김 씨가 말했다.

그러다 보니 이수하려는 사람이 자꾸 줄었다. 갓 수요는 급격히 떨어지는데 일까지 고되니 기능을 이수하려고 제 발로 찾아온 사람들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떠났다. “국가가 돈까지 주고 내가 밥까지 해 맥이면서 가르쳐준 대도 안 와.” 최근에도 외손녀 양 씨를 포함한 이수자 4명 가운데 2명이 다른 길을 찾아 나갔다.

“중요한 전통기술인데 이렇게 놔둘 수는 없어 저와 제 딸이 나섰어요.” 김 씨의 딸 강 씨가 말했다. 강 씨는 서른한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입문해 어머니에 이어 2대 기능보유자가 됐다. 생업을 접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어느덧 의무감으로 시작한 갓일은 사명이 됐다. 강 씨의 권유에 못 이겨 5년간 전수장학생 과정을 다닌 외손녀 양 씨도 직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갓일을 배워나가고 있다.

“작업을 오래 하다 보면 눈과 허리가 많이 아프고 장인들 가운데는 망막이 찢어진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전통기술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커요.”

양 씨가 말했다. 김 씨는 그런 외손녀와 딸이 자랑스럽다.

“고맙죠. 이거 꼭 이어나가야 하는 기술이거든. 내 평생을 담아 이어왔는데, 내가 죽어서도 이 일을 이어서 해줄 사람들이 생긴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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