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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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17~2025-12-17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공연 리뷰]부천필-사라장과 함께한 푸짐한 음악잔치

    서울 예술의전당이 15일 개관 25주년 기념음악회로 생일을 자축했다. 무대에 선 주인공은 임헌정 지휘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다. 각자 연주곡마다 평범에 머물지 않고 오묘한 색채를 더해온 이 두 주역은 이날 흔히 맛보기 힘든 조합의 묘미를 선사했다. 그 색깔은 저녁의 기습 추위를 날리는 ‘따뜻함’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라 장이 협연한 새뮤얼 바버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악단이 가진 따스한 음색과 결이 잘 맞았다. 넓은 대로에 한없이 햇살이 내리쬐는 듯한 미국 시골풍 정서가 현의 유장한 기복으로 살아났다. 천변만화하는 곡상의 변화에 솔리스트가 ‘잡혀 먹힐’ 수도 있는 곡이지만 이날의 독주자는 오히려 곡을 맛나게 먹어치웠다. 큰 폭의 강약 변화와 큰 비브라토, 활을 끝까지 다 쓰며 볼륨을 마음껏 방사하는 모습은 ‘눈 감고도 사라 장’이었다. 구석구석까지 볼륨을 전하려는 듯 상체를 젖히는 특유의 동작이나 앞뒤로 두세 발짝씩 걷는 모습도 새삼 반가웠다. 빠른 3악장에서도 그는 연주자들이 흔히 빠지는 기계적 민활함에 유혹되지 않았다. 극단적 템포를 버리고 앞 악장들에서와 같은 풍성한 강약의 대조를 마음껏 과시했다. 후반부 부천필이 연주한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관현악단 기량의 시금석과도 같은 작품이다. 부천필은 1970년대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떠올리게 하는 백열(白熱)합주를 선보였다. 지휘자와 공감이 느껴지는 단원들의 열기에, 충분히 시간을 들였음이 분명한 세공의 묘미가 더해졌다. 티끌 같은 미세한 장식음 하나 흐트러짐 없이 일사불란 부풀었다. 총 합주의 색깔이 잘 연마된 금속처럼 휘황했다. 이 악단은 최근 부천시의회와의 마찰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술궂게 제3자의 판결을 내려본다고 상상하니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악단의 바람대로 시의회는 예산을 풀어 마음껏 활동할 수 있게 해주었으면. 대신 임헌정 상임지휘자는 시의회의 요구대로 임기 끝까지 연주에 더 많이 참가하고 지휘봉을 더 오래 잡았으면.” 이날 연주회 무대는 ‘생일잔치’답게 빈 음악동우회 황금홀을 연상시키는 꽃다발로 장식됐다. 대통령 당선인 축전 낭독과 각계 인사들의 축하 메시지 상영도 이어졌다. 부천필은 앙코르 첫 곡으로 관객들의 ‘하 하 하!’ 웃음을 곁들이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폴카를 ‘근심 없이’ 연주했다. 언제나 이날 연주대로, 모습대로라면 근심이 없을 것이다.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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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상교향곡이 아니라 상상교향곡을 연주한다고요?

    프랑스의 바로크 전문 지휘자 마크 민코프스키와 그가 이끄는 ‘루브르의 음악가들’이 첫 내한연주를 갖는다. 3월 5일 오후 8시 경기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라모의 ‘상상교향곡’과 글루크의 ‘돈 주앙의 향연’을 연주한다. 익숙하지는 않은 곡목. 궁금증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보았다. Q: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이나 생상스의 교향곡은 알지만 ‘상상교향곡’이라니. 낯선데요. A: 이 ‘상상교향곡(Une Symphonie Imaginaire)’은 라모가 아니라 지휘자 민코프스키가 구성한 거예요. 장필리프 라모(1683∼1764)의 시대에 오늘날과 같은 교향곡은 초창기에 머물러 있었고 라모는 교향곡을 쓰지 않았죠. 이 ‘교향곡’은 라모의 주요 오페라에 나오는 관현악 부분들을 조합해 고전 낭만주의 교향곡과 비슷한 길이로 만들어낸 겁니다. Q: 독일인 바흐와 헨델, 이탈리아인 비발디는 잘 알지만 프랑스 바로크라, 역시 낯선데요. 라모의 음악이 친근하게 다가올까요? A: ‘루브르의 음악가들’이 연주한 ‘상상의 교향곡’은 다행히 CD로 나와 있어요. 들어보면 구조적이고 건축적인 독일 바로크 음악보다 오히려 친근하고 편하게 다가온다는 점을 아시게 될 거예요. 회화적인 매력까지 있어서 처음 들어도 쉽게 이해되죠. CD는 17개 트랙으로 되어 있는데, 특별히 언급할 만한 트랙이 두 개 있어요. ‘에베의 축제’ 중 ‘탕부랭(손북)’은 우리나라 중고교 교과서에 ‘우박들의 축제’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곡이에요. 김건모가 부른 가요 ‘짱가’와도 비슷하다는 별난(?) 분석을 제가 내놓은 일도 있죠. 그 앞에 나오는 ‘수탉’은 이탈리아 20세기 작곡가 레스피기가 관현악 모음곡 ‘새’의 세 번째 악장으로 편곡해 실은 동명의 작품이에요. 원곡은 건반악기 작품이지만 바로크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이 곡과 레스피기의 후기낭만주의 스타일 편곡을 비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이 밖에 ‘보레아의 자손들’ 중 목가적인 ‘가보트’나, ‘플라테’의 휘몰아치는 폭풍 장면도 매력적입니다. 한편 라모는 ‘화성학의 아버지’로도 알려져 있어요. 음악 작품에 화음을 채워 넣고 이를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는 기법은 그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이를 하나의 확립된 체계로 완성한 주인공이죠. Q: 민코프스키는 어떤 지휘자인지 더 설명해 주세요. A: 민코프스키는 바순 연주자 출신이지만 지휘 신동으로 이름나 19세 때 ‘루브르의 음악가들’을 창단했습니다. 음반 활동도 활발해서 나이브사에서 내놓은 슈베르트 교향곡 전집, 아르히프 레이블로 내놓은 모차르트 교향곡 40, 41번은 폭풍과 같이 활력 있는 연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죠. 성남아트센터는 ‘루브르의 음악가들’에 대해 “프랑스 특유의 아기자기하면서 색기(?) 넘치는 사운드”라고 설명했는데, 맞는 말인 듯해요. 19세기 프랑스 음악 연주에도 정평이 있으며 2008년부터 관현악단 ‘신포니아 바르소비아’의 음악감독을 겸하고 있어요. 물론 바로크 음악의 경우 옛 악기와 그 시대를 되살린 연주법으로 연주하죠. Q: 이날 함께 연주될 글루크의 ‘돈 주앙의 향연’은 어떤 작품인가요? A: 라모보다 약간 늦게 살았던 독일의 무대음악 거장 글루크의 발레곡을 연주회용으로 정리한 거예요. 바로크 극음악 특유의 ‘틀에 얽매인 듯하면서 틀을 벗어나는 환상’을 경험할 수 있을 겁니다. 5만∼15만 원. 031-783-8000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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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밸런타인데이, 초콜릿만큼 달콤한 음악 선물을

    밸런타인데이. 연인들의 날입니다. CD나 MP3가 나오기 전 사람들은 좋아하는 음악을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 연인에게 주기도 했죠. 저도 그랬냐고요? 음… 날씨가 춥네요…. 요즘엔 어떻게 하죠? 파일을 구름(cloud)에 올려 공유하나요? 형태야 어찌됐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들을 만한 명곡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해볼까 합니다. 사랑을 다룬 노래야 넘쳐날 정도로 많죠. 오페라 아리아도 많습니다. 문제는, 일단 열렬히 사랑을 찬양했는데 결말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싸우고 헤어지고…. 그러니 오페라 아리아를 선물로 주는 것은 조심해야 하겠습니다. 벨리니의 오페라 ‘청교도’(사진) 중 테너 아리아 ‘사랑하는 이여’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사랑 고백을 담은 노래입니다. 단 오페라의 막이 내릴 때까지 연인들의 마음고생은 피할 수 없습니다. 고난을 딛고 열렬히 사랑하는 연인들에게는 권할 만합니다. ‘그대를 사랑해’라고 직설적으로 밝힌 노래도 있죠. 결혼 축가로도 쓰이는 베토벤의 ‘이히 리베 디히(Ich liebe dich)’입니다. 이 노래에도 ‘우리 둘이 근심을 나누지 않은 날이 없었다’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태평하게 맺어지는 커플에게는 어울리지 않네요. 브람스의 ‘영원한 사랑에 대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대작곡가들을 성인(聖人)으로 정한다면 사랑과 결혼의 성인은? 로베르트 슈만과 클라라 커플이 어울리겠죠. 슈만에게는 ‘시인의 사랑’이라는 연가곡(여러 노래가 줄거리를 갖고 이어지는 가곡)이 있네요. 하지만 이루지 못한 사랑으로 끝나는 작품입니다. 그 대신 슈만의 ‘헌정(Widmung)’을 권할 만합니다. “그대는 나의 안식, 나의 평화, 나를 천상으로 끌어올리는 이….” 사랑 고백 노래는 아니지만 슈만의 ‘호두나무’도 미풍이 살랑살랑 부는 듯한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하지만 조심. 이 노래 속 주인공은 ‘내년에’ 결혼하기로 예정돼 있답니다. 민요에 반주를 붙여 편곡한 노래 중에도 아름다운 연가가 많습니다. 프랑스 ‘깡촌’의 풍경을 그린 캉틀루브 ‘오베르뉴의 노래’ 중에서 ‘바일레로’를 권하고 싶습니다. “목동아, 풀밭에 꽃이 피었네? 냇물을 건너서 내게 와!” ‘어려운’ 작곡가란 선입견이 있는 말러에게도 누구나 친근하게 이끌리게 되는 작품이 있습니다. 교향곡 5번의 4악장 ‘아다지에토’입니다. 말러가 연인 알마에게 바치는 연가로 작곡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례식에서 연주되기도 하죠. 이유도 없지 않습니다. 훗날 이 악장의 바탕이 된 말러의 가곡 ‘나는 세상에서 잊혀졌다’를 보면 사랑과 죽음이 함께 암시됩니다. 상관없지 않습니까. “죽을 때까지 너를 사랑하겠다는 뜻이야”라고 말한다면.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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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용기타]‘남성’을 버리고 천사의 목소리를 얻은 사람들

    “진짜 천사가 그의 형상을 하고 노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작곡가 스카를라티가 카스트라토인 프란치스켈로의 노래를 듣고 한 말이다. 카스트라토. 거세(去勢)가수. 남자로 태어났으나 수술로 중성(中性)이 되어 여성의 음역을 노래한 17∼19세기 성악가들을 말한다.오늘날 우리는 20세기 초 녹음을 남겼던 ‘마지막 카스트라토’ 모레스키의 노래를 유튜브에서 들어볼 수 있다. 그러나 전성기 전통에서 단절돼 일개 성가대원으로 살았던 그의 노래만 듣고 카스트라토의 전모를 알 수는 없다. 이 책은 카스트라토의 기원과 몰락, 그들의 평균적인 일생, 훈련 방법, 예술사에 끼친 영향까지 ‘카스트라토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 진지하고 분석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적절한 일화를 배치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배려한 균형 감각이 책의 큰 미덕이다.오늘날 카스트라토를 향한 시선은 대부분 부자연스러웠던 그들의 성(性)을 향한다. 그러나 카스트라토의 전성기에 그 같은 관심은 적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대 위에서의 존재감이 다른 관심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왜 ‘부자연스럽게’ 만들어낸 가수가 그토록 빛나는 존재가 되었을까. 그들은 여성과 아이의 목의 장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후두’를 갖고 있었다. 가슴은 보통 남성보다 둥그스름하게 더 커 공명에 유리했다. 성장판이 늦게 닫히기 때문에 몸집도 다른 가수들보다 머리 하나씩 컸다. 부연하자면 이들은 고환만 절제하고 음경은 남겨두어 성행위가 가능한 경우도 많았다.카스트라토의 노래라고 하면 우리는 영화 ‘파리넬리’에서 접한 고음의 화려한 기교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의 진정한 경쟁력은 오히려 낮은 음의 따뜻하고 관능적인 선율 진행에 있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여성이나 남성 가수가 따라오지 못하는 영역이었다.최고의 카스트라토 스타였던 파리넬리에 대해서도 책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절한 관심을 보인다. 역사에 나타난 그는 ‘대리석같이 완벽하고 힘이 넘치면서 낭랑한’ 목소리를 가졌을 뿐 아니라 계약을 성실히 지키고 최선을 다하는 예술가이자 인격자였다. 영화 ‘파리넬리’에도 등장하는 스페인왕 펠리페 5세의 우울증 치료를 사서는 이렇게 기록했다. “무엇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왕의 얼굴에 처음으로 빛이 났다. 소원을 묻자 파리넬리의 청은 단 한 가지였다. ‘일어나서 면도를 하시고 왕국의 지도자로서 자리에 앉으시길 청하나이다.’” 이후 그는 장관급인 대공이 되어 타호 강 배후공사와 아란후에스 궁 보수공사를 지휘했다.권위 있는 오페라사(史) 학자인 저자는 역사적 사실을 파헤쳐 나열하는 데서 임무를 그치지 않는다. 카스트라토가 각광받았던 정신사적 배경에 대해 ‘바로크 시대는 인위적으로 나무를 깎은 정원이나 별을 대신한 불꽃놀이처럼 인공적인 것들이 인기를 끌었던 시대’라고 설명한 부분이나, 오늘날 보위, 프린스, 마돈나가 가진 ‘양성적 관능과 에로티시즘’을 상기시키는 내용이 그의 직관력을 신뢰하게 만든다. 꼼꼼하고 유려한 번역도 돋보인다.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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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高1 비올리스트 이화윤양 바슈메트 국제 콩쿠르 대상

    비올리스트 이화윤 양(서울예고 1년·사진)이 2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폐막한 제7회 유리 바슈메트 국제 비올라 콩쿠르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상금은 1만5000달러(약 1600만 원). 바슈메트 콩쿠르는 비올라계 현역 최고 거장으로 꼽히는 유리 바슈메트(60)가 1990년 창설했으며 1993년 1회 대회부터 6회까지 대상 수상자를 내지 않아 이 양은 이 콩쿠르의 첫 번째 대상 수상자가 됐다. 이 양은 김상진 연세대 교수를 사사했으며 2010년 오스트리아 브람스 국제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했고 2012년 안네조피 무터 재단의 최연소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 201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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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코더 매력? 원하는 소리 다 낼수 있죠”

    “초등학교 3학년 때였죠. 담임선생님께 리코더를 처음 배웠어요. 반 아이들 다 같이.” 장년층 이하 한국인, 아니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만의 남다른 이야기가 그날 시작되었다. “호흡과 입 모양에 따라 새로운 소리가 나오는 게 너무 신기했죠. 며칠 뒤 선생님 옆에서 가르치는 ‘조교’가 됐어요. 하하.” 그렇게 염은초(21·스위스 바젤 스콜라칸토룸 석사과정)는 리코더와 만났다. 지난해 3월 그는 독일 작센 국제 리코더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6명 만장일치로 우승했다. 심사위원장은 “반드시 무대에서 만나야 하는 ‘스테이지 몬스터’”라고 격찬했다. 한 심사위원은 “평이 필요 없는 연주”라며 심사평을 내지 않았다. 리코더는 ‘바로크 목관악기의 챔피언’으로 유럽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악기였다. 최근 바로크 르네상스 고(古)음악 부흥 열풍에 따라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14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라이징 스타 시리즈’ 일환으로 독주회를 갖는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5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합격했죠. 동급생 언니오빠들이 3, 4세 많았어요.” 중2 때는 일본 야마나시 고음악 콩쿠르 3위.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뉴질랜드 캔터베리대 예비학교 리코더 과정에 들어갔다. 2년 뒤 교수가 말했다. “가르칠 게 없다. 넌 유럽으로 가야 해.” 야마나시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던 케스 뵈케가 취리히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의 권유로 치른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2011년 고음악 연주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바젤 스콜라칸토룸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리코더과정 입학정원은 단 한 명. 19세. 석사과정 최연소 합격이었다. 지난해 작센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 고음악계가 주목하는 신예로 떠올랐다. 줄이고 줄인 그의 ‘라이프 스토리’다. 리코더의 어떤 점이 매력인지 물었다. “다양한 소리죠.” 의외의 대답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악기를 ‘목가적이지만 음역도, 연주법도 제한된’ 악기로 생각한다. “그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귀엽고 소박한 소리부터 시크하고 세련된 소리까지 다 펼쳐 보일 수 있어요. 연주자가 원하는 대로 다 받아들이죠.” 그런 그의 생각은 그의 연주가 가진 매력이기도 하다. 16세기 르네상스시대 곡부터 현대 창작곡까지, 그의 연주는 작품에 적합한 소리를 화려하게 펼쳐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완벽한 호흡과 손가락의 테크닉이 뒷받침하는 그의 연주는 이 단순한 구조의 악기로부터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음색과 상상을 이끌어낸다. 리코더로 이미 수많은 고봉(高峰)을 정복한 그의 포부는 무엇일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린 시절 열 시간이 훌쩍 넘는 그의 연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아버지의 당부이기도 하다. 그 밖의 계획? …스물한 살에 6월 석사과정까지 끝내는 그를 위해 학교는 바로크 앙상블 리딩(leading)과정을 열어주었다. 합주단을 이끄는 지휘자의 역할이다. 5년, 10년 뒤에는 리코더를 불면서 악단을 이끄는 ‘리더’ 염은초의 모습을 서울 무대에서 만날지 모른다. 14일 연주회에서 그는 바사노의 르네상스 곡, 텔레만의 바로크 레퍼토리부터 현대 창작곡까지 두루 선보인다. 지난해 쓴 자작곡 ‘비주얼 아트 10Y’도 무대에 올린다. “악기 부딪치는 소리, 악기를 조립하는 소리까지 리코더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시각 효과와 함께 만날 수 있는 곡이에요. 재미있을 걸요. 후훗.” 3만 원. 02-6303-1977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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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멘델스존, 거미 독 빼는 춤에 빠지다

    “이탈리아 남부 지방엔 타란튤라라는 흉측한 독거미가 있단다. 물렸다간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지. 그런데 옛날부터 내려오는 치료법이 있어. 몸을 쉴 새 없이 움직여서 땀에 흠뻑 젖을 정도가 되면 나을 수 있다는 거야. 그래서 이 거미에 물린 사람에겐 빠른 춤을 추게 했단다. 그 춤을 타란텔라라고 했어.” 이탈리아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땀에 흠뻑 젖게 만드는 춤이라면 얼마나 빨라야 할까요. 오늘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연주회에 참석할 관객은 어느 정도 그 실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이 악단이 연주할 멘델스존 교향곡 4번 ‘이탈리아’ 마지막 악장은 이탈리아 남부의 빠른 춤곡인 ‘살타렐로’와 ‘타란텔라’ 리듬을 담고 있습니다. 이름이 다르지만 살타렐로와 타란텔라가 귀에 전해지는 느낌은 서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양쪽 모두 빠른 3박자, 또는 이의 변형인 6박자나 12박자로 되어 있습니다. 멘델스존은 20대 초반 이탈리아 여행 중에 이 빠른 춤곡들을 듣고 강한 인상을 받아 이를 23세 때 작곡한 네 번째 교향곡에 넣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타란텔라는 리스트를 비롯한 다른 음악 거장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차이콥스키도 이탈리아 여행 중에 이 춤곡에서 감명을 받은 나머지 ‘이탈리아 기상곡’ 끝 부분을 타란텔라로 장식했습니다. 빠른 12박자가 등장하는 그의 마지막 교향곡 ‘비창’ 3악장도 타란텔라 춤곡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고전음악 하면 부유한 귀족이나 시민들의 보호를 받는 창백한 작곡가의 모습을 연상하기 쉽지만 이처럼 고전 낭만 시대의 음악도 평범한 사람들의 춤곡이나 길거리 노래들과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타란튤라 거미 이야기에서 보듯 각국의 춤곡에는 흥미로운 뒷얘기도 많습니다. 이런 점이 고전음악의 역사를 풍요롭고 더 친숙하게 해준다는 데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탈리아 남부에 빠른 3박자 춤곡이 많다 보니 유럽 사람들은 빠른 3박자가 나오면 반사적으로 지중해 연안의 강렬한 햇살을 연상하곤 합니다. 여기 흥미로운 이야기가 또 있습니다. 1886년, 22세의 소장 작곡가였던 독일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이탈리아에서 빠른 타란텔라 또는 살타렐로 풍의 ‘민요’를 듣고 강한 인상을 받아 이를 교향시 ‘이탈리아에서’에 녹여 넣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뜻밖에도 루이지 덴차라는 이탈리아 작곡가로부터 고소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선율은 전래 민요가 아니라 덴차의 창작곡으로서 나폴리 베수비오 화산을 오르는 열차의 광고음악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널리 불리는 이 노래의 제목은 ‘푸니쿨리 푸니쿨라’입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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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화’와 국악의 만남… 눈과 귀가 다 즐겁네

    갓 쓴 사내가 여인네가 들고 있는 바구니를 슬쩍 당기며 들여다보고 있다. 여인네도 싫은 눈치가 아니다. 근처 집에는 기와가 불뚝 솟아 있다. 왜 바구니를 들여다볼까. 왜 기와는 솟았을까. 미술 전시회가 아니라 13, 14일 오후 8시 서울 중구 필동 남산국악당에서 열리는 ‘화통((화,획)通) 콘서트-봄날의 상사는 말려도 핀다’에서 만날 혜원 신윤복의 춘색만원(春色滿園)이다. 남녀의 춘정(春情) 가득한 조선시대 그림 10여 점을 소개하고, 국악기와 어쿠스틱 밴드를 결합해 전통 국악과 창작곡을 연주하는 에스닉(ethnic) 팝그룹 ‘프로젝트 락’이 ‘제망매가’를 비롯한 창작곡과 판소리 ‘춘향전’ 중 사랑가, 진도아리랑을 연주한다. 미술평론가 손철주 학고재 주간이 그림 해설을 맡는다. 옛 그림에 나타난 조상들의 ‘사랑법’은 어떠했을까. “조상들의 춘정에는 작위적인 ‘이벤트’가 따르지 않았습니다. 은근한 실마리에서 시작되죠. 곰살맞고 익살과 해학이 넘쳐나는 것이 그림에서 보이는 조상들의 사랑입니다.” 손 씨는 신윤복의 ‘소년전홍(少年剪紅)’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사내가 몸종처럼 보이는 여인의 팔목을 잡아끌고 있다. 여인은 엉덩이를 뒤로 뺐지만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림에 혜원은 ‘빽빽한 잎에 초록이 짙게 물드니/가지마다 붉은 꽃잎을 떨어뜨리네’라는 한시를 적어두었다. “이 시에서 보듯 조상들은 인간 욕망의 근원을 생명의 자연스러운 순환에서 찾았다”고 손 씨는 설명했다.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잘 알려지지 않은 19세기 작자미상의 조선 미인도도 공개할 예정이다. 손 씨는 “웃는 표정과 팽팽한 몸매가 ‘조선의 팜 파탈’에 가장 가까운 이미지의 미인”이라고 귀띔했다. 3만5000원. 1588-1544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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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란드 피아니스트 블레하치, 독감으로 13일 내한공연 취소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폴란드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치(사진)의 내한 공연이 그의 독감 발병으로 취소됐다. 기획사인 마스트미디어는 “예매 티켓에 대해서는 예매처를 통해 조속히 환불 조치하겠으며 빠른 시일 내 공연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6, 7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을 지휘하기로 했던 이탈리아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가 독감과 탈장 증세로 내한을 취소해 지휘자가 미국의 로린 마젤로 변경된 바 있다. 070-8680-1277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3-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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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사위원 “15개국 56명 놀라운 기량”

    동아일보사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하는 ‘LG와 함께하는 제9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성악 부문) 본선 대회에 참가할 15개국 56명이 가려졌다.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0층 CC큐브 회의실에서 열린 DVD 예비심사에는 김영환 추계예술대 교수, 박미자 이화여대 교수, 박정원 한양대 교수, 윤현주 서울대 교수, 최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등 5명이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심사위원들은 22개국 184명의 지원자가 제출한 DVD 영상을 보며 출전 가능 여부를 ○, ×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채점한 뒤 합산해 예비심사 합격자를 결정했다. 주요 국제 콩쿠르 입상 경력에 따른 예심 면제자를 포함한 합격자 56명 가운데는 한국인이 30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중국인 8명, 미국인 3명 순이었다. 합격자 가운데는 지난해 프랑스 툴루즈 국제성악콩쿠르 우승자인 김주택 씨(바리톤), 2009년 그리스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에서 3위 입상한 윤정난 씨(소프라노), 2010년 제6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4위 입상한 이명현 씨(테너) 등이 포함됐다. 심사에 참가한 윤현주 교수는 “참가자 대부분이 놀라운 기량을 나타냈다. 본선 대회에서 세계적인 경연을 기대하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예비심사 합격자 56명은 4월 19∼27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본선 대회에 참가한다.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예비심사 결과는 4일 콩쿠르 홈페이지(www.seoulcompetition.com)에 공지한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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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루티스트들이 연주하는 오카리나 7중주의 ‘마술’

    플루트 앙상블 아디나 음악감독 문록선 씨(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가 고개를 끄덕 하는 순간, 기대를 뛰어넘는 정교한 합주가 터져 나왔다. 로시니 ‘세비야의 이발사’ 중 ‘나는 마을의 일인자’. 플루티스트 일곱 명이 손에 든 것은 플루트가 아니라 조개를 연상시키는 자그마한 악기 ‘오카리나’였다. 앙상블 아디나는 다음 달 23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동 영산아트홀에서 열리는 제3회 정기연주회에서 이 곡을 오카리나 7중주로 선보인다. 다른 네 곡은 플루트 합주나 4중주로 연주한다. 왜 플루티스트들이 오카리나를? “제가 있는 학교에 오카리나 전공 과정이 있는지 묻는 사람이 많았어요. 그때 관심을 가졌는데, 이탈리아인 에밀리아노 베르나고치가 편곡한 오카리나 7중주 음반을 접했죠. 안쪽 성부가 꽉 찬 소리, 멋진 합주에 깜짝 놀랐어요.” 음악감독 문 교수의 설명. 일단 ‘완벽한 악보’에 매료됐지만 플루티스트들이 이 새로운 악기를 익혀야 했다. 전문 연주자 홍광일 씨(한국 오카리나강사협회 회장)를 초청해 매주 지도를 받기 시작한 것이 4개월 전이었다. ‘소프라노 C’부터 ‘베이스 C’까지 일곱 개 오카리나가 서로 다른 음높이를 담당한다. 손가락 짚는 법(핑거링)이 다르지만 목관의 원리를 잘 이해하는 연주자들이라 적응하기 어렵지는 않았다고. 텅잉(혀를 이용하는 주법) 등 플루트의 고유한 연주법으로 알려진 기법들은 오카리나에서도 비슷하다고 한다. 앙상블 아디나가 오카리나에 주목한 이유는 또 있다. 사람들은 플루티스트들이 오카리나를 연주한다면 눈을 반짝 빛냈다. 장난감처럼 친근한 이미지 때문이다. 출판사 김영사의 초청으로 27일 파주출판단지에서 가진 연주에서도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들이 열띤 반응을 보였다. 홍광일 회장은 “오카리나는 취미용 악기로만 알려져 있는데, 앙상블 아디나의 활동으로 더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오카리나를 통해 플루트 합주를 비롯해 목관악기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앙상블 아디나는 2008년 창단연주를 가졌다. 이번 연주회에는 20명이 플루트를 합주한다. 현악 합주는 오케스트라 연주를 통해서도 친숙하지만, 여러 명의 목관악기 합주는 흔하지 않다. 멤버인 조승환 씨(숭실 콘서바토리 강사)는 “플루트 앙상블은 현악 합주와 다른, 합창이나 오르간의 다양한 음색을 연상시키는 색다른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정기연주회에서는 헨델 ‘시바 여왕의 도착’, 맨시니 ‘핑크 팬더’ 주제곡, 아모스 ‘서들리 캐슬’, 모차르트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를 연주한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곡가 김인현의 창작곡 ‘붉은 침묵’도 선보인다. 문 교수는 ‘붉은 침묵’에 대해 “리드미컬하고 화성 진행도 현대곡으로는 무척 흥미롭다. 퍼포먼스적 요소도 갖춰 감상하기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석 2만 원. 1544-1555, 02-586-0945오카리나19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발명된 관악기. ‘작은 거위’라는 뜻이며 주로 흙을 구워 만든다. 리코더처럼 호루라기와 같은 원리로 소리를 내며 손가락을 열고 닫아 높낮이를 조절한다. 일본인 노무라 소지로가 연주한 NHK 다큐멘터리 ‘대황하’ 테마음악, KBS ‘걸어서 세계 속으로’ 주제음악인 ‘물놀이’도 오카리나 연주곡이다.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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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이름을 말하는 순간 나는 죽어요” 생명의 불꽃으로 울린 감동 미학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1926년 초연)에서 주인공 칼라프 왕자는 ‘내 이름을 누군가 알아내면 목숨을 빼앗겨도 좋다’는 내기를 겁니다. 전 세계의 민담과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금문(禁問)의 동기, 말하자면 ‘묻지 마 동기’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보다 30년 앞서 발표된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에서 여주인공이 이름을 밝히는 순간 비극적인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된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시인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첫 막 소프라노 아리아 ‘내 이름은 미미’는 여리고 병약한 여성을 표현합니다. 특히 ‘네, 저는 미미라고 불립니다만’이라고 노래하는 시작 부분의 반음계 상승 음형(音形)은 조심스러우면서 쓸쓸한 인상으로 강렬하게 기억됩니다. 여기서 미미의 운명도 짐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오페라보다 6년 앞서 푸치니가 작곡한 현악4중주 ‘국화(Crisantemi)’ 시작 부분에는 이 노래와 비슷한 음형이 나옵니다. 푸치니가 친우였던 사보이 공작의 죽음을 애도해 쓴 작품입니다. 두 곡 모두 서두의 다섯 음이 온음 또는 반음씩 서서히 올라가다가 여섯 번째 음에서 살짝 들린 뒤 내려오는 점이 비슷합니다. 더 들어가 볼까요. 푸치니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작품이 ‘라보엠’보다 3년 앞서 발표된 그의 세 번째 오페라 ‘마농 레스코’입니다. 두 작품은 생일이 같습니다. ‘라보엠’은 1896년 2월 1일, ‘마농 레스코’는 1893년 2월 1일 토리노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됐습니다. 내일은 ‘마농 레스코’의 만 120세 생일인 셈입니다. 두 작품의 연관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마농 레스코’ 4막에도 ‘국화’나 ‘내 이름은 미미’와 비슷한 음형이 등장합니다. 이 막은 연인과 함께 황야로 도망친 여주인공 마농이 기진함과 갈증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 마농은 연인에게 있는 힘을 다해 ‘내 곁으로 와줘요’라고 말한 뒤 정신을 잃습니다. 이 음형은 이 막 곳곳에 등장합니다. 이는 푸치니가 병약함, 죽음, 애도를 그리는 데 사용해 온 ‘생명 소실의 동기’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음형을 미미의 첫 아리아 서두에 넣은 순간, 그의 운명은 정해졌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요. 오늘 서울 강남구 삼성동 포니정홀에서는 ‘라보엠’ 하이라이트를 감상할 수 있는 갈라 콘서트가 열립니다. 소극장 무대와 대학 내 무대를 포함하면 일 년 내내 전국 어디선가 ‘라보엠’이 무대에 오르지 않는 달은 없다시피 합니다. 국립오페라단도 지난해에 이어 12월 5∼8일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립니다. 유윤종 gustav@donga.com}

    • 2013-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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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 누가 될까?

    지난해 재단법인으로 새로이 출발한 KBS교향악단이 다음 달 22일 체코 지휘자 레오스 스바로프스키가 지휘하는 스메타나 ‘나의 조국’ 전곡 연주로 신년 정기연주회 일정을 시작한다. 상임지휘자가 공석인 만큼 상반기는 객원지휘자 체제로 운영한다. KBS교향악단 측은 “상반기에 상임지휘자를 선임할 것이며 객원지휘자들은 모두 유력한 후보군”이라고 밝혔다. 눈 밝은 음반 수집가들에게 낯익은 이름들이라는 점이 흥미를 더한다.○ 3월 22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지휘하는 이란 출신 지휘자 알렉산데르 라바리(65)는 최대 클래식 음악 라이브러리를 보유한 음반사 낙소스에서 광대한 레퍼토리를 선보여 왔다. 슈베르트, 쇼스타코비치, 베토벤, 슈만의 교향곡에서 푸치니 ‘토스카’, 베르디 ‘리골레토’를 비롯한 오페라까지 음반과 음원으로 내놓고 있다. 테헤란에서 성장한 그는 이슬람혁명 전인 1977년 유럽으로 이주했다. 2008년에도 KBS교향악단을 지휘해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10번을 들려줬다. 작품의 구조에 충실한 연주를 들려준다는 평.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에서는 미국 예일대 음대 교수 보리스 베르만이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4번을 협연한다.○ 5월 10일 지휘대에 서는 네덜란드의 케이스 바컬스(68)는 1997∼2005년 말레이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초대 음악감독을 지낸 인물. 말레이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말레이시아의 국영 석유회사 데완페트로나스가 당시 세계 최고층 빌딩 ‘페트로나스타워’ 안에 콘서트홀을 개관하면서 창단한 상주악단이다. 단원 대부분을 유럽인으로 충원한 이 악단은 초기부터 완숙한 연주력으로 화제를 모으며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부러움을 샀다. 이 악단의 계관지휘자가 된 바컬스는 BIS 레이블로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관현악곡을, 낙소스 레이블에서 본윌리엄스 교향곡 시리즈를 내놓았다. 연주 곡목은 미정.○ 5월 31일에는 폴란드 지휘자 야체크 카습시크(61)가 지휘봉을 잡는다. 1990년대 초반 영국 음반사 ‘콜린스’에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프랑크 교향곡, 베르디 서곡집 등을 내놓아 인기를 끌었던 주인공이다. 콜린스는 당시 최소한의 마이크로 연주회장의 자연스러운 음향을 살려 주목을 받았다. 거칠 것 없이 몰아붙이는 박력이 카습시크의 매력으로 꼽힌다. EMI에서 구레츠키와 시마노프스키 교향곡 음반을 내놓기도 했다. 전 공연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02-6099-7400, kbsso.kbs.co.kr 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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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감성 차이콥스키 굵직하게 울리겠다”

    약속한 시간에 뉴욕에서 전화를 걸어온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김대진(51·수원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의 목소리는 밝았다. 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22·줄리아드음악원)의 졸업연주회 반주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금호 영재오디션 반주를 할 때 크게 싸운 뒤 절대 함께 연주하지 말자고 했는데, 저를 또 불렀네요. 하하.” 김화라는 그의 딸이다. 김대진과 수원시향의 올해 화두는 러시아의 거장 차이콥스키다. 20일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협연 이지혜)와 교향곡 5번을 시작으로 11월 14일까지 여섯 차례 콘서트에서 교향곡 6곡 전곡(번호 없는 ‘만프레드’ 교향곡 제외)과 피아노협주곡 전 3곡, 콘서트 판타지 G장조,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로코코 변주곡’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한다. 예술의전당이 매년 악단을 바꿔 진행해 온 ‘그레이트 컴포저(작곡가) 시리즈’의 올해 순서이기도 하다. ―왜 차이콥스키인가. “2009년 예술의전당 ‘3B’ 시리즈 첫 차례였던 베토벤 시리즈를 통해 수원시향의 연주력이 발전했고 소리가 단단해졌어요. ‘앞으로 어떤 낭만 대곡 시리즈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굵직한 소리’는 수원시향 고유의 사운드와도 좋은 매치를 이룰 것 같습니다.” ―시리즈를 맡은 지휘자로서 차이콥스키 음악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가장 순수하게 감성을 표현한다고 할까. 가려지거나 포장되지 않은 그대로의 감정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멜로디와 화성으로 풀어낸 작곡가죠.” 그와 수원시향은 2009년 뉴욕 카네기홀 무대에서 차이콥스키 마지막 교향곡인 6번 ‘비창’을 연주했다. “악단이 제 마음에 둔 색깔을 갖추지 못했을 때였죠. 혹독하게 연습시켰고, 너무나 산고가 커서 연주 뒤 비올라 단원들이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습니다. 질려서 ‘당분간 차이콥스키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달라진 모습으로 시도하는 거죠.” ―‘김대진’이라면 정돈된, 모범생 같은 이미지가 있다. 격정을 마구 쏟아내는 차이콥스키와 잘 맞을까. “(웃음) 쇼스타코비치의 사진을 생각해 봅시다. 그 파리한 얼굴로 그렇게 격동적인 대곡을 쓸 걸 상상할 수 있나요.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게 예술의 매력이죠. ‘김대진은 모차르트’라는 식의 인상이 있겠지만 대중의 인식에 너무 신경을 쓰면 예술적 자아를 지키지 못합니다.” 피아노곡집 ‘사계절’과 소품 ‘둠카’ 등도 피아니스트로서 앙코르용으로 자주 연주했던 작품이라고 그는 말했다. ―차이콥스키의 후기 교향곡(4, 5, 6번)과 바이올린협주곡,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모든 클래식 레퍼토리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작품에 속하지만 교향곡 2, 3번이나 피아노협주곡 2, 3번은 아는 사람이 적다. 대중성의 편차가 큰데…. “누구나 잘 아는 곡을 ‘더 잘’ 하는 것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곡에 새로운 빛을 비추는 것이 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교향곡 2, 3번의 경우 스코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초기 작품이어서 작법이 완숙하지 않은 면도 있지만 친근한 선율과 구성이 매력적입니다. 낯설어도 다가가기 쉬운 작품들이에요.” 여섯 차례의 연주는 실황녹음을 통해 소니 클래시컬 레이블로 국내 발매된다. 그는 “현장녹음의 묘미를 살리기 위해 악단에 더 ‘진하게’ 표현하도록 주문하려 한다. 굳이 녹음으로 남기기 위해 ‘깔끔하게’ 연주하는 데만 힘을 쏟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와 수원시향은 경기도문화의전당 행복한대극장에서도 같은 프로그램으로 ‘차이콥스키 사이클’을 진행한다. 첫 순서인 2월 15일 콘서트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민재가 협연자로 나선다.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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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지함과 건조함 사이… 정공법의 미학

    정명훈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4월에 도이체그라모폰(DG) 레이블로 다섯 번째 음반을 낸다.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하는 베토벤 협주곡 5번 E플랫장조 ‘황제’다. 수많은 명연이 있는 두 작품의 음반 목록에 아시아 ‘신흥’악단과 25세 피아니스트가 어떤 새로움을 더할까.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서울시향 마스터피스 시리즈 I 연주회와 17일 특별연주회에서 이를 읽어낼 수 있었다. 앞선 네 장처럼 연주회 실황을 음반으로 담아내기 때문이다. ‘황제’에서 김선욱과 서울시향은 정공법을 택했다. 강약 대비나 길고 짧은 맥락의 완급 변화 모두 두드러지지 않았고 상당 부분 개성을 지운 연주였다. 김선욱이 곡을 장악하는 호흡은 완숙했고 손가락 터치는 깔끔했다. 그러나 표정은 잘 읽히지 않는 편이었다. 3악장 론도에서 상행(上行)으로 폭발하듯 굴러가는 악구들에서조차 강약의 대조를 억제했다. 진지함과 건조함의 사이를 줄타기하는 인상이었다. 교향곡 5번 역시 정공법에 가까왔다. 자주 백열적(白熱的)일 정도로 기복을 강조해 해외에서 ‘카라얀적’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던 정명훈은 개성을 뚜렷이 하기보다는 그 나름의 ‘전범(典範) 만들기’를 시도했다. 2악장의 극적인 클라이맥스에서조차 총주(總奏)를 구름으로 덮듯 안으로 폭발시켰다. 서울시향의 현은 최근 합주의 완숙을 넘어 살짝 휘황한 색채가 얹히고 있다. 다만 단원들 사이 음량이 균질하지 않은 부분이 언뜻 언뜻 보였다. 노래하듯 입까지 벌려가며 리듬을 장악한 팀파니스트의 역연은 인상적이었다. 최종 편집 결과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팀파니에 트럼펫의 고음역이 얹히는 부분의 상쾌한 질감이 음반의 전체 인상을 지배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서울시향과 DG가 국내 음반시장에 크게 신경을 썼다면 중용과 전체적인 균형에 신경 쓰는 전략은 유리하다. 반대로 세계 음반계의 주목을 고려했다면 개성적인 표현에 더 유의했을 것이다. 물론 이보다는 연주가의 평소 철학이 더욱 중요하다. 콘서트에 앞서 김선욱은 “완벽한 질량의 베토벤을 너무 화려하지도, 밋밋하지도 않게 연주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18일 연주회에서는 ‘깜짝 이벤트’가 열렸다. 커튼콜에 응하던 정 감독 앞에서 갑자기 서울시향이 비제 ‘아를의 여인’ 모음곡 중 ‘파랑돌’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제이슨 크리미 트럼본 부수석이 한국어로 “마에스트로 정명훈 선생님의 귀빠지신 날을 축하 드린다”고 말하자 정 감독과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축하 메시지 영상에 이어 서울시향의 반주로 관객들이 다 함께 ‘해피 버스데이’ 노래를 불렀다. 정 감독은 협연자 김선욱에게서 케이크와 꽃다발을 받고 “서로 사랑하며 일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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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안군 ‘천사섬’에 서울 예술선생님 오셨네

    “서울에서 선생님들이 오셔서 자세히 가르쳐주시니까 정말 좋아요. 또 오셨으면 좋겠어요.” 어린 타악기 연주자 양준범 군(11·전남 신안군 안좌초등학교 5)의 볼은 발갛게 상기돼 있었다. 준범이는 18일 오후 안좌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이 학교 사나래 윈드 오케스트라(지도 송화영) 연주회에서 작은북(스네어 드럼)을 협연해 이 섬에 사는 주민 100여 명의 박수를 받았다. “동네 어른들도 잘했다고 하시니까 신이 났어요.” 이날 연주회는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가 7일부터 신안군 내 6개 초중학교에서 개최한 ‘천사섬의 천사들을 위한 아트캠프’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천사(1004)섬’이란 신안군 일대 1000여 개의 섬을 상징하는 말. 한예종 연극원, 미술원, 음악원, 영상원 재학생으로 구성된 강사진 30명은 7∼11일, 14∼18일 두 차례로 나누어 신안군의 암태도와 팔금도, 안좌도를 찾았다. 이들은 이곳에서 스토리텔링, 미술 조형, 관악 앙상블, 영상제작 교육을 진행했다. 목포에서 여객선으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안좌도의 안좌초등학교에도 14일 슈퍼맨, 스파이더맨, 산타클로스 같은 튀는 복장을 한 관악기와 타악기 강사 9명이 찾아왔다. 처음엔 눈이 휘둥그레졌던 아이들은 강사들의 닷새에 걸친 지도에 종이가 물을 흡수하듯 반응했다. 18일 연주회에서는 오광호 전 한예종 음악원장의 지휘 아래 4, 5학년생 트럼펫, 트럼본, 플루트, 색소폰, 타악기 단원들이 각각 솔리스트로 나서 한예종의 ‘선생님’ 금관 5중주가 합세한 사나래 윈드 오케스트라와 협연 무대를 펼쳤다. 동네 어린이들의 연주 솜씨에 부모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환호와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박종원 한예종 총장은 “아이들의 오케스트라에 전문 연주가들의 금관 5중주단이 함께 연주하니 솔로를 맡은 어린이들이 훨씬 자신 있게 표현을 잘하더라. 이렇게 기술과 함께 자신감을 불어넣는 것이 ‘선배 예술가’의 역할이다”라고 말했다. 연주회를 지휘한 오 전 원장은 “책상 앞에만 갇혀 지내는 도시 아이들보다 자연을 호흡하고 자란 아이들 사이에서 더 감수성이 풍부한 예술가가 자라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연주회 뒤 인근 팔금도의 팔금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열린 ‘오감을 깨우는 상상놀이터’ 현장을 찾았다. 한예종 미술원 학생들의 조언을 들으며 아이들은 종이와 비닐 조형물, 그림 등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도서관 공간을 4개의 ‘비밀 아지트’로 만들어냈다. 아이들은 “미술 하면 본 대로 그리는 것만 생각했는데, 생각대로 뭐든 만들어내 장식하니 너무 신이 났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예종은 앞으로 초중학생들의 교육 프로그램에 그치지 않고 전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섬 & 아트 프로그램’을 신안군 일대에서 펼칠 계획이다. 주민과의 교류를 통한 지역원형 탐구, 연희단 구성, 예술가 캠프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한예종 재학생과 이 학교를 졸업한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지역에는 친환경 문화 관광 개발의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예종 측은 밝혔다.신안=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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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카르도 무티, 독감 걸려 내한 취소

    다음 달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SO)를 이끌고 내한 공연할 예정이었던 세계 최정상급 지휘자 리카르도 무티(72·사진)가 독감에 걸려 내한 일정을 취소했다. 그 대신 로린 마젤 전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83)이 지휘한다. 내한 공연 주최사인 현대카드는 무티가 최근 미국에서 유행한 독감으로 건강이 악화돼 다음 달 6, 7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예정이던 공연을 포함한 아시아 투어 전체 일정을 취소했다고 18일 밝혔다. 당초 무티는 CSO와 함께 25일부터 타이베이 홍콩 상하이 톈진 등을 돌며 첫 아시아 순회공연을 할 계획이었다. 한편 CSO는 다음 달 6일 공연 연주곡 중 드보르자크 교향곡 5번을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로 변경했다. 현대카드는 지휘자와 프로그램 변경에 따라 예매 취소를 희망하는 예약자에게는 수수료 없이 환불 조치한다고 밝혔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3-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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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품의 시대를 뒤바꾼 감수성의 융합

    《프랑스 피아니스트 엘렌 그리모(44)가 2009년 12월 이후 3년여 만에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열정과 이지적 면모를 함께 갖춰 ‘불과 얼음의 연주자’로 불리는 그는 앨범 ‘레조낭스(공명·2010년)’ 수록곡인 모차르트, 베르크, 리스트, 버르토크의 작품들을 이번 리사이틀에서 선보인다. 음반을 통해 이번 독주회의 전모를 조감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피아니스트 김주영 조은아, 음악 칼럼니스트 노태헌 류태형 박제성 이영진 황장원 씨에게 음반에 대한 간략한 평을 부탁한 뒤 가상 좌담 형식으로 정리했다.》▽사회=이 음반에는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실었군요. ▽류=앨범 전체가 한 사람의 시인이 엮은 단상집처럼 다가옵니다. 연주에 일관된 ‘문체’가 있기 때문이죠. ▽박=다양한 요소를 개성 있는 감수성으로 융합해 작품들의 시대를 뒤바꿔 놓은 듯한 느낌도 듭니다. ▽황=제목의 ‘공명’은 ‘질풍노도 한가운데 자리한 서정성’의 공명과 같이 생각됩니다. 태풍까지 일으키지는 못합니다만, 감각적 표현과 사색이 돋보입니다. ▽사회=역순으로 끝에 연주될 버르토크 ‘루마니아 민속 무곡’부터 들여다볼까요. ▽박=소박하면서 명징한 리듬, 세련된 완급 변화와 분절(分節)이 짙은 격정과 감수성을 자아냅니다. ▽이=상쾌하면서 감미롭고도 미묘한 연주죠. ▽사회=두 번째 곡인 리스트의 소나타 b단조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강인한 힘보다 날카로운 감각과 즉흥성이 부각되네요. 신들린 무당의 헐떡거리는 신음 소리가 섞여있는 듯합니다. ▽노=베르크의 소나타처럼 극단으로 나아간 연주입니다. 광기어린 다이내믹이 종종 아슬아슬한 장면을 연출합니다. ▽박=최근 이 곡의 음반 가운데 가장 독창적입니다. 고색창연한 중세적 분위기와 스토리를 다큐멘터리처럼 펼쳐내고 있군요. ▽황=다만 힘과 스케일이 얼마간 부족한 점은 아쉽습니다. ▽사회=첫 곡으로 실린 모차르트의 소나타 8번은 독특한 작품이죠? ▽조=모차르트의 ‘질풍노도적’ 감성을 그려낸 작품이죠. 베토벤에 가까운 해석이라는 비판을 들을 위험도 큰 곡입니다. ▽이=옛 시대의 연주 스타일에 익숙해서인지, 유화처럼 덧칠이 많이 들어간 이 연주에 놀랐습니다. ▽노=왼손과 오른손의 교차지점에서 시간차를 두어 음향이 ‘절뚝거리는 듯한’ 환영을 빚어내는 점이 독특하군요. ▽조=왼손이 오른손보다 미세한 차이로 뒤에 등장하곤 하죠. 화성의 배경이 메아리처럼 반사되는 환청 효과를 자아내고 있어요. ▽사회=공연장에서도 이 음반에서 받은 인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김=음반을 구성한 감각이 탁월합니다. 베르크의 촘촘한 구성이 리스트의 복합적 구조와 연관되고, 고전파적 판타지인 모차르트가 버르토크의 무곡에서 언어적 메시지로 변화하죠. 이런 유기적 구조가 미래의 음악을 향해 열려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연주회장에서도 동일하겠죠. ▽박=한층 원숙해진 그리모의 균형감과 중심 잡힌 표현력을 볼 수 있고 극적인 효과도 커진 음반입니다. 이대로라면 꽤 가치 높은 음의 향연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황=그리모의 연주는 사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같은 큰 공간보다 더 아담하고 내밀한 공간에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여러분이 알려주신 정보 전문을 싣지 못했고, 전문 용어 일부를 쉬운 말로 풀어낸 점 양해바랍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i : :29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만∼10만원. 02-751-9606∼10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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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쇼팽은 나의 심장… 마주르카 녹음이 꿈”

    쇼팽의 모국인 폴란드에서 피아니스트 라파우 블레하치(28)는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다. 200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과 함께 특별상 4개 부문을 석권하며 깜짝 등장한 뒤 도이체 그라모폰(DG)레이블로 쇼팽 전주곡집과 피아노 협주곡집, 빈 고전파 소나타집, 드뷔시와 시마노프스키의 작품집 등 내놓는 앨범마다 ‘허식과 과장 없는 원숙한 연주’라는 찬사를 받았다. 다음 달 13일 첫 내한 리사이틀 무대에 오르는 그를 15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바흐 파르티타 3번, 베토벤 소나타 7번, 쇼팽 녹턴 작품 32-2, 폴로네즈 작품 40의 두 곡, 마주르카 작품 63 세 곡, 스케르초 3번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쇼팽의 경우 작품 40-1 ‘군대’ 폴로네즈를 제외하면 각 장르의 대표곡은 아닌 것 같은데…. “쇼팽은 내 심장에 가장 가까운 작곡가다. 그의 음악을 접할 때마다 다양한 캐릭터와 감정들을 발견하는 만큼, 손에 잡히는 다양한 곡을 골랐다. 바흐를 첫 곡으로 선택한 것도, 바흐의 음악이 쇼팽에게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리고 싶어서였다.” ―고국인 폴란드의 선배 피아니스트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과 비교되는 일이 많다. 연주가 내면 지향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독립된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불편하게 느끼지는 않는가. “존경하는 피아니스트인데 불편할 이유는 없다. 몇 년 전인가, 그가 스위스 바젤의 자택으로 나를 초대해 닷새 동안 함께 지내며 작업하고 많은 예술적 영감을 교환한 일도 있다.” ―대학에서 철학과 음악미학을 전공했다. 피아니스트로서 흔치 않은 이력이다. “철학과 미학, 특히 현상학을 깊이 있게 연구한 것이 큰 도움을 주었다. 독일 철학자 에드문트 회퍼는 폴란드에서도 영향력이 큰데, 그의 학파에서 나온 음악 언어 연구가 내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20대 피아니스트로서 드물게 음반 활동이 활발해 팬들이 기대를 많이 갖고 있다. “얼마 전 쇼팽 폴로네즈 일곱 곡을 녹음했다. 가을에 발매될 걸로 안다. 쇼팽의 마주르카 전곡을 녹음하는 것이 꿈인데, 곧 이뤄질 걸로 생각한다.”: : i : :2월 13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3만∼9만 원. 02-541-3183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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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비에서]부천필-시의회의 기싸움… 시민의 즐길 권리는 어디로

    1999∼2003년 국내 최초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로 주목받으며 교향악단 명가로 떠올랐던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 임헌정)가 새해 상반기 일정을 잡지 못했다. 3월 15일 이대욱 지휘 ‘불멸의 클래식’ 시리즈 연주회, 4월 12일 불가리아 지휘자 에밀 타바코프 지휘 콘서트 등 4월까지 경기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예정된 4개 공연이 일정표에서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부천시립예술단 측은 “부천시의회가 2013년도 예산 68억 원 중 6억 원을 삭감해 예정된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솔리스트 협연료, 객원지휘료, 객원연주료를 예산에 배정하지 않아 외부 지휘자, 외부 협연자는 물론이고 편성이 큰 작품에 외부 단원도 데려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부천필과 시의회의 긴장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 시의회가 임헌정 예술감독을 행정감사에 불러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예술 활동이 부족하다”고 잔소리를 하면서부터다. 지난해 11월 행정감사에서는 김관수 의원(민주통합당)이 임 감독에 대해 가족(부인)이 부천필 단원인 점을 들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사직해야 한다”고 문병섭 문화예술과장에게 말하자 임 감독이 자신이 답변하게 해달라며 “상식적으로 일하세요”라고 말해 정회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 사건 한 달여 뒤 확정된 예산에 이 같은 갈등이 반영됐다는 시각이다. 김 의원은 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예술감독이 객원지휘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나눔예술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객관적 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 예술감독이 직접 지휘하면 객원지휘료 등을 아낄 수 있지 않은가”라며 “추경을 통한 예산 배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감독은 “의회의 결정은 비상식적”이라며 악단이 객관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행정권을 쥔 총감독이 아닌 예술감독을 감사에 불러 행정적 문제를 추궁하는 것부터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부천시립예술단 관계자는 “나눔예술 활동은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정기연주회 일정 등과 중복되는 부분만 대상 기관의 양해를 얻어 취소 또는 순연했다”고 말했다. 양측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가장 피해를 보는 이는 예술 혜택의 대상이어야 할 부천시민들과 부천필의 팬들이다. 최소한 연주활동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여건을 조성한 뒤에 인식차를 좁혀야 하지 않을까. 그것만이 2000년대 초 ‘국내 3대 교향악단’ 중 하나로 불렸던 부천필이 명성을 유지하고 부천시의 명성에도 계속 기여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유윤종 선임기자 gustav@donga.com}

    • 2013-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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