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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해소의 유일한 길인 ‘두 국가 해법’이 위기에 빠졌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28일 국무부 연설에서 최근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비판하며 두 국가 해법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거듭 촉구했다. 케리 장관은 미국이 2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중단 촉구 결의안에 기권 표를 던진 것은 두 국가 해법을 지키려는 미국의 가치를 반영하기 위해서라며 이스라엘의 반발을 일축했다. 케리 장관은 미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뼈대로 한 두 국가 해법을 유지시키기 위한 중재자로서 역대 모든 정부가 해 왔던 선택을 했다고 자평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이-팔 국경 문제와 팔레스타인 난민 문제 해결책,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수도 예루살렘 추진 등 향후 평화협상을 이끌어갈 6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정착촌 건설 중단 촉구 결의 채택 이후 이례적으로 미국 대사를 초치하고 대(對)유엔 관계 축소 검토 등 초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향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케리 장관은 “이스라엘은 지금 위험한 미래로 가고 있다”며 “네타냐후 총리가 역사상 가장 우파적인 어젠다를 밀어붙이며 국가를 민주주의의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이스라엘이 두 국가 해법을 외면한다면 유대교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가질 수 없다”고도 했다. 하와이에서 휴가 중인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1일 이집트가 안보리에 제안한 이스라엘 정착촌 관련 결의안에 대해 워싱턴의 국가안보팀과 통화하며 기권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8일 보도했다. 조 바이든 부통령 등이 기권할 경우 미 의회와 이스라엘의 거센 반발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미국이 최근 이스라엘의 급격한 정착촌 확장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밝힐 때가 무르익었다는 데 모두 동의했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기권했을 때 실익을 따져보니 해가 될 만한 것은 이미 다 일어난 것들이라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하고 기권 표를 택했다고 한다. 안보리 결의안 투표에 직접 기권 표를 던진 서맨사 파워 유엔 미국대사는 이런 오바마의 뜻을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통해 전화로 전달받았다. 예상했던 대로 후폭풍이 거셌지만 오바마 정부는 두 국가 해법이 다시 국제사회 어젠다로 돌아온 것에 만족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이 테러리즘에 몰두하는 팔레스타인에 ‘립 서비스’를 해줬다며 케리 장관의 연설이 편향적이었다고 반발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오바마 행정부의 이스라엘 정책을 취임 직후 폐기하겠다는 의지를 다시 밝혔다. 그는 트위터에 “미국의 훌륭한 친구였던 이스라엘이 무시당하는 걸 더는 참을 수 없다”며 “잘 견디고 있어라 이스라엘, (취임일인) 1월 20일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고 적었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덴마크 정부가 시리아로 건너가 ‘이슬람국가(IS)’에 투신한 자국민 최소 36명에게 억대의 실업수당 등 복지 혜택을 제공해 온 사실이 밝혀졌다. 북유럽의 선진적인 복지 제도가 IS의 신종 자금줄로 악용돼 온 것이다. 덴마크 현지 언론이 정보공개 청구로 확보한 고용부 문서로 IS 병사에 대한 복지 혜택이 드러나면서 정부는 바로 환수 조치에 나섰다. 덴마크 출신 IS 병사 36명 중 34명은 지방정부로부터 직접 현금으로 실업수당을 받았고 나머지 2명은 정부가 보조하는 개인 실업보험 혜택을 받아 왔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덴마크 언론 엑스트라 블라데트를 인용해 27일 보도했다. 덴마크 정부는 자국민 IS 병사 36명 중 29명에게 부당 지급한 실업수당 등 복지 혜택 67만2000덴마크크로네(약 1억2000만 원)를 돌려받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나머지 7명은 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받은 총 금액은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덴마크 의회는 여야가 한목소리로 ‘부끄러운 일’이라며 규탄했다. 실업수당을 받는 국민은 반드시 덴마크 노동시장에 즉각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IS에 투신해 시리아로 건너간 이들은 명백하게 부정수급에 해당한다. 덴마크인 실업자는 30세 이상이고 자녀가 없는 경우 매달 생활비 명목으로 1만849∼1만3121크로네(약 185만∼224만 원)를 지방정부로부터 현금으로 받는다. 상황에 따라 주택보조금도 추가된다. 덴마크 정부가 직접 현금을 지원하는 실업자 수는 15만6000여 명이다. 국가가 지원하는 펀드에 기반한 개인 실업보험 가입자는 직장이 없는 최소 2년 동안 평균 1만6720크로네(약 285만 원)를 받을 수 있다. 덴마크에선 최소 135명이 IS에 투신해 유럽에서 벨기에 다음으로 수가 많다. 이번 언론 보도 전까지 36명 중 단 1명의 IS 병사만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파악해 경찰에 신고했을 뿐이다. 지난해 5월에도 IS에 투신한 덴마크인 32명이 실업수당 37만8000크로네(약 6500만 원)를 부정하게 챙긴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됐는데도 같은 사건이 반복된 것이다. 북유럽의 복지 선진국인 스웨덴에서도 IS의 복지 악용 사건이 있었다. IS 수도인 시리아 락까로 건너가 지하디스트로 활동하며 IS 선전 영상에도 자주 등장한 마이클 스크라모가 정부로부터 최소 5만 크로나(약 658만 원)를 받아온 사실이 지난달 밝혀졌다. 한 영국인은 정부로부터 받은 복지수당을 인출해 벨기에 브뤼셀 테러를 감행한 IS 조직원에게 건네 재판을 받기도 했다. IS의 이라크 최대 근거지인 모술 정벌에 나선 이라크군은 당초 ‘연내 토벌’을 장담했지만 거센 저항에 부닥쳐 고전하고 있다. 미군 측은 26일 “IS를 전멸시키려면 최소 2년은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다르 알 압바디 이라크 총리는 27일 “미군이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 본다”며 “3개월이면 이라크에서 IS를 박멸시킬 수 있다”고 반박했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무시하고 동예루살렘 정착촌 주택 건설 추진을 강행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안보리 결의안 통과에 기권 표를 던진 미국이 배후에서 결의를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를 겨냥한 비판을 이어갔다. 예루살렘 도시개발건축위원회는 동예루살렘에 새 주택 618채를 짓는 방안을 승인하고 그동안 추진 중인 동예루살렘 정착촌 용도 신규 주택 5600채에 대한 건설 계획도 앞당기겠다고 밝혔다고 이스라엘 일간 하아레츠가 28일 보도했다. 이스라엘은 이번 결의가 법적 구속력이 없고 제재나 징벌을 담지 않아 상징적인 성격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에 부정적이었던 유럽연합(EU) 내부에서는 이번 안보리 결의를 근거로 이스라엘에 대한 독자 제재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U는 팔레스타인 지역 내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생산된 물건을 원래의 이스라엘 상품과 차별해 자유무역에서 배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정착촌 주민들을 EU 국가에 입국하지 못하게 하거나 EU 기업과 은행이 정착촌에서 영업하는 이스라엘 기관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미국은 내년 1월 15일 70여 개국이 참가하는 프랑스 파리 국제평화회의에서 그동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대해 견지해온 ‘두 국가 해법(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 원칙을 다시 제안할 방침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28일 이-팔 분쟁에 대한 외교담화에서도 이 같은 해법을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측은 오바마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 5일 전에 열리는 이번 회담을 자신이 중동 평화에 기여했다는 업적을 남기는 데 활용하려 한다며 불참을 선언했다. 아비그도르 리에베르만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번 파리 회의를 ‘현대판 드레퓌스 재판’에 비유하며 둘 다 프랑스가 부당하게 기획했다고 주장했다. 드레퓌스 재판은 유대인인 알프레드 드레퓌스 대위만 법정에 세웠지만 이번 회담은 이스라엘 국민 전체와 국가를 재판에 세우려는 시도라는 차이만 있다는 것이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투항해서 이교도에게 성폭행당하고 살해되고 싶니? 너희는 그들을 죽이고 싶지?” 시리아 반군 누스라전선의 전 멤버로 알려진 아부 님르(본명 압둘 라흐만 샤드다드)는 16일경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영상에서 어린 두 딸 파티마(9)와 이슬람(7)을 품에 안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딸들에게 자살 폭탄 테러를 하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쳤다. 이슬람 전통 의상인 검은 부르카로 몸을 두른 부인은 두 딸을 끌어안으며 “신이 우리 딸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딸은 엄마 품에 안겨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라고 외쳤다. 26일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부모로부터 자폭 테러를 종용받은 일곱 살 꼬마 이슬람 양은 16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미단 지역 경찰서에 혼자 걸어 들어갔다. “화장실이 어디 있어요?”라고 물은 소녀는 경찰의 안내에 따라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다 품고 있던 폭탄이 터지면서 숨졌다. 외부에 있던 부모가 원격조종으로 폭탄을 터뜨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테러로 경찰 3명이 다쳤지만 사망자는 소녀뿐이었다. 최근 중동 지역 소셜미디어에는 이들 부부가 두 딸을 끌어안고 자폭 테러를 종용하는 2분 52초 분량의 동영상이 퍼졌다. 자폭 테러 후 이슬람 양의 머리만 남은 끔찍한 영상도 올라왔다. 극단주의 이슬람 사상에 경도된 부부가 ‘지하드(성전·聖戰)’라는 미명 아래 어린 딸들마저 자폭 테러의 도구로 이용했다는 사실에 중동의 무슬림들도 큰 충격을 받았다. 동영상에서 아버지 님르는 알레포에서의 반군 퇴각을 언급하며 “왜 남아서 더 싸우지 않고 녹색버스(반군 탈출용으로 정부군이 제공한 버스)를 타고 도망갔나”라고 성토했다. 이어 그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묻자 부르카를 입은 딸들은 “다마스쿠스로 가서 폭탄 공격을 하겠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우리는 위대한 종교야. 그렇지 아가야?”라며 “무서워하지 마. 넌 신에게 가는 거야”라고 자폭 테러를 성전으로 합리화했다. 딸들은 “응”이라고 답했다. 두 딸은 형형색색의 털모자와 잠바로 갈아입고는 엄마와 함께 ‘최후의 기도’를 했다. 이를 촬영하는 남성이 “왜 어린 딸을 지하드에 보내려고 하느냐”고 묻자 엄마는 “그 누구도 지하드를 하기에 어리지 않다. 지하드는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며 “가족으로서 신께 기도하겠다”고 답했다. 두 딸은 극단주의 사상에 경도된 부모로부터 지독한 세뇌 교육을 받고 자란 것으로 보인다. 경찰서 자살 테러를 감행한 7세 소녀는 아빠 엄마 형제자매 등 가족에게 ‘나를 따라서 자폭 테러를 하라’고 당부하는 손편지를 썼다고 한다. 아버지 님르는 2012년 시리아의 유명 연기자 무함마드 라피를 납치하고 살해하는 데 관여한 극단주의자로 딸들을 테러에 동원한 이후 이달 말 다마스쿠스 외곽 지역에서 전투 도중 사망했다. 나머지 가족의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는 시리아 1100만 난민을 돕기 위해 1억 리얄(약 321억 원) 펀드 모금에 나섰다. 그동안 시리아 반군을 지지해 온 사우디는 이번 펀드 자금으로 난민캠프를 짓고 음식과 담요, 약 등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살만 국왕을 비롯한 왕족들도 펀드에 개인 재산을 내놓았다. 국왕은 2000만 리얄(약 65억 원), 무함마드 빈 나예프 왕세자는 1000만 리얄(약 33억 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자는 800만 리얄(약 26억 원)을 각각 냈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자치령 내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스라엘은 오랜 동맹국인 미국이 결의안 채택을 막을 수 있는 상임이사국으로서의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기권하자 ‘미국이 뒤통수를 쳤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유엔 안보리는 23일(현지 시간) 팔레스타인 영역인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에 이스라엘이 정착촌을 짓는 행위를 전면 중단해야 한다는 결의안을 찬성 14표, 기권 1표로 채택했다. 이번 결의안에서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 행위를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 회복을 명분으로 내걸었다. 이스라엘은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당시 점령한 이 지역에 150곳이 넘는 정착촌을 건설해 왔다. 이 지역 거주민은 팔레스타인 사람이 대다수인 데다 국제법상 이스라엘 국토가 아니지만 사실상 이스라엘이 통제하고 있다. 미국이 이번 결의안에 기권 표를 던지는 과정에서 ‘현재 권력’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래 권력’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힘겨루기가 벌어졌다. 친(親)이스라엘파인 트럼프는 미국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미국이 견지해 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 정책인 ‘두 국가 해법’에 따라 거부권 행사를 포기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결의안 채택 직후 트위터에 “(대통령 취임일인) 1월 20일 이후의 유엔은 달라질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공화당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도 “매우 부끄러운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정부가 이번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어야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을 지지하지 않는 게 역대 모든 미국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었다”며 기권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벤 로즈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도 “도의상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며 “내년 1월 20일까지 미국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라고 트럼프 측의 반발을 일축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결의안을 ‘편파적이고 수치스럽다’고 규정했다. 또 한 달 안에 이스라엘의 유엔 대표부 존치 문제와 유엔기구에 내는 이스라엘의 분담금 등 유엔과의 모든 관계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반면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대통령은 “국제사회가 이스라엘의 불법 정착촌 건설을 우려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며 두 국가 해법에 대한 강한 지지를 보여줬다”며 환영했다. 트럼프 정부의 차기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로 발탁된 데이비드 프리드먼은 “미국은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에 압력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트럼프 당선인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 수도로 인식하고 있다”며 이스라엘 달래기에 나섰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최근 카타르 도하 인근의 한국 식당에 셔츠를 말끔히 차려 입은 북한인 2명이 들어왔다. 2600여 명의 카타르 주재 북한 노동자를 관리·감독하는 간부들이었다. 생일 파티를 한다며 한국 식당을 찾은 두 사람은 아침부터 삼겹살 5인분에 된장찌개와 김치찌개, 소주와 맥주 등 610리얄(약 21만 원)어치의 생일상을 즐겼다. 카타르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의 한 달 치 월급(150∼200달러)을 단둘이 한 끼에 털어 넣은 이들은 숙소에서 먹을 김치도 따로 싸 갔다.○ “건설사 사장 3년 하면 100만 달러 챙겨” 카타르의 북한 노동자는 북한 건설사 사장, 당 간부, 국가안전보위부 간부가 삼각 편대로 관리·감독한다. 북한 당국이 건설사 사장의 빈번한 자금 횡령을 막기 위해 감시 차원에서 당과 보위부 간부를 딸려 보내는 것이다. 셋 다 소속은 다르지만 노동자의 피를 빨아 배를 채우려는 데엔 한통속이다. 북한에서 파견된 간부들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 달러를 넘어 초고가 물가로 악명 높은 카타르에서 중동 부자 부럽지 않게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은 북한 노동자가 카타르 회사로부터 받는 급여를 대신 받아 평양에 충성 자금으로 보내고, 급여의 20% 남짓을 노동자에게 나눠 주는 역할을 한다. 이 과정에서 상당액을 빼돌린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자 사이에선 북한 건설사 사장을 3년만 하면 100만 달러(약 12억5000만 원)를 챙긴다는 이야기가 나돈다. 북한 노동자들의 불만이 거세지자 김정은은 올해 해외 공사 현장에 ‘노동자 임금을 떼먹지 말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쿠웨이트에 파견됐다가 귀국하던 한 노동자가 올해 1월 중간 기착지인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도망친 사건이 계기가 됐다. 베이징에서 붙잡혀 북송된 이 노동자는 “간부들이 하도 임금을 떼먹어 화가 나 도망쳤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노동자 임금을 착취하지 않으면 김정은 정권에 바칠 충성 자금 목표액을 채울 수 없어 김정은의 특별 지시도 무용지물이 됐다. 간부들은 ‘벼룩의 간’까지도 빼먹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악랄하다. 월급 150∼200달러를 받는 노동자들에게 좋은 보직을 대가로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아 챙긴다. 노동 강도가 상대적으로 덜한 데다 뙤약볕이 아닌 실내에서 작업해 노동자들이 선호하는 밀주 제조책이 되려면 간부에게 3000달러를 뇌물로 바치기로 약속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유일한 휴일인 금요일에 외출해도 고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제대로 된 식사 한 끼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하지만 간부들은 도하의 유명 호텔 나이트클럽에도 자주 드나든다. 돼지고기를 금기시하는 이슬람 문화 속에서 1인분에 80리얄(약 2만7000원)이나 하는 삼겹살을 매주 한 번씩 먹으러 온다고 한다. 북한 간부가 자주 찾는 한국식당 관계자는 “대부분 퉁퉁하게 살이 붙어 있고 말끔한 셔츠 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와 한눈에 간부라는 걸 알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숟가락 삼켜 자살 기도하는 노동자 호화생활에 젖은 간부와 달리 ‘21세기 노예’로 살아가는 노동자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도하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김모 씨는 지난해 6월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에 중노동을 견디다 못해 16cm 길이의 숟가락을 삼켰다. 그는 도하의 대형 병원 응급실로 이송돼 장시간 수술 끝에 간신히 살아나 강제 북송됐다. 카타르의 북한 건설사 5곳 중 하나인 1건설(수도건설) 소속 나모 씨는 2014년 7월 도하 중심가인 시티센터의 고층 빌딩 공사 현장에서 대낮에 투신자살했다. 그의 동료는 “나 씨가 고된 노동 환경 때문에 평소 자살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온갖 고난을 견뎌 온 군인들도 해외 건설 현장에 파견된 후에는 열악한 처지를 견디지 못하고 탈출을 시도한다. 민간인으로 신분을 위장한 군인들로 구성된 남강2건설에서 일해 온 신모 씨는 지난해 5월 작업복 차림으로 도망갔다가 4일 만에 수색대에 붙잡혀 강제 북송됐다. 그는 중노동에 윗사람의 구타까지 이어지자 충동적으로 탈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다른 군인 한모 씨는 지난해 2월 사막 황무지에 컨테이너 가건물로 지어진 숙소에서 몰래 빠져나와 도망쳤지만 보위부 요원에게 며칠 만에 붙잡혀 북한으로 송환됐다.○ 중동 부호(富豪)에게 인기 높은 북한 화가 북한 노동자들 가운데 기술이 뛰어난 극소수는 이른바 ‘청부업’을 한다. 주로 건설기술사나 벽화를 그리는 화가들이다. 이들은 집단 숙소생활을 하는 일반 노동자와 달리 따로 나와 살면서 독자적으로 일하는 대신 일정 금액을 간부들에게 꼬박꼬박 뇌물로 상납해야 한다. 한 청부업자는 카타르 항공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여성 승무원과 만나 연애를 하기도 했다. 북한 노동자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인 청부업은 화가다. 이들은 손재주가 좋아 대형 벽화를 좋아하는 카타르 부호들에게 인기가 높다. 대개 m²당 2500리얄(약 83만 원)가량을 받기에 벽화 크기에 따라 손쉽게 수백만∼수천만 원을 벌 수 있다. 1년 반 만에 30만 달러를 벌어 귀국했다는 ‘성공담’이 북한 노동자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도하의 부촌에 위치한 대저택 3층에 북한 화가가 그렸다는 벽화를 직접 확인했다. 가로 8m, 세로 3m 크기에 폭포를 그린 수묵화였다. 북한 화가와 종종 교류했다는 현지 교민은 “북한 화가가 폭포 그림으로 2000만 원 정도를 벌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8월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탈북 소식이 알려지자 청부업을 전면 금지했지만 자금 사정이 열악해 조만간 재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도하=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바지 왼쪽 주머니에 영국산 담배 한 갑을 찔러 넣었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이역만리 사막에서 고생하는 북한 노동자에게 작게나마 위안을 주고자 하는 동포애였다. 반대편 주머니에는 녹음기를 켠 휴대전화를 집어넣었다. 혹시나 북한 노동자에게 끌려가 낭패를 당할 때를 대비해 증거라도 확보하려는 최소한의 보호 장치였다. 아무리 동포라지만 휴전선을 두고 총을 겨누는 사이이지 않은가. 얼마 전 김정은 북한 정권의 돈줄로 혹사당하는 해외 주재 북한 노동자의 인권 유린 실태를 취재하러 북한인 2600여 명이 일한다는 카타르에 갔을 때 ‘분단된 한민족의 역설’을 절감했다. 그동안 탈북자는 여럿 만났지만 대한민국에 핵을 겨누고 위협해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을 눈앞에 두고는 사실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어둠이 짙게 깔린 저녁 북한 노동자가 일한다는 카타르 도하 인근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 앞에서 그렇게 서성거렸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잠시 쉬려는 듯 공사 현장 밖으로 나온 북한 노동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기자와 비슷한 30대 초반 남성으로 보이지만 키가 160cm가 채 안 됐다. 깡말랐지만 눈빛만큼은 강렬했다. “북조선에서 오셨습니까. 저는 남조선에서 왔습니다. 얼굴이나 보려고요.” 거부감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일부러 북한식 표현을 썼다. 잠시 흠칫하던 그는 “혼자 왔습니까?”라고 되묻더니 공사장 뒤편 어둠 속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두려움이 덧없는 선입견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기까지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나눠 피우며 그와 세상 사는 이야기를 했다. 하루 14시간 일하고 잠자리에 누울 때면 부모와 처자식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북한 건설사에서 주는 식사가 형편없어 처음 보름 동안은 거의 먹지 못했다며 속마음을 털어놨다. 고향 생각이 날 때면 국수 한 그릇이 간절한데 50리얄(약 1만7000원)이나 되는 가격에 엄두를 못 낸단다. 김정은 정권에 착취당하는 노동자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만큼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던 건 인민군으로서 남한에 총을 겨눴을 그가 너무나 평범하고 선량해 보이는 남자라는 사실이었다. 기자에게 ‘독신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더니 자기는 결혼을 일찍 해 아이가 있다면서 독신인 기자가 부럽다고 농담을 건넸다. 한국의 내 또래들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동무들이 찾겠다’며 10분 남짓한 대화를 마친 그는 “싫어하지 말라. 남조선 사람 만나는 건 절대 금지지만 이렇게 우연히 만났으니 앞으로 내가 정문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종종 보자”며 돌아갔다. 생애 처음 만난 남한 사람이었을 기자에게 그 역시 동포라는 감정을 느꼈던 모양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른 북한 노동자들도 동포애로 기자를 대해줬다. 공사 현장 앞에서 서성이는 기자에게 “꼬레아?”라며 먼저 말을 걸더니 “안녕하십니까!”라고 목소리 높여 반겨주는 이도 있었다. 유학생이라고 신분을 감춘 기자에게 “통일 되면 공부한 거 우리 대학생들에게 배워주라(가르쳐 주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남한에서 왔다고 하면 집단폭행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카타르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 2600여 명은 임기 3년 동안 월급의 80%를 북한 당국에 떼이고 150∼200달러만 받으며 주 6일 하루 14시간 사막에서 혹사당한다. 처지를 비관해 숟가락을 삼키거나 고층 빌딩에서 투신해 자살할 만큼 인권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더욱 참담한 것은 이런 카타르에서의 삶이 북한에서의 그것보다는 그나마 낫다는 사실이다. 집권 5주년을 맞은 김정은이 입에 달고 산다는 ‘인민 사랑’의 참혹한 실체다. 조동주 카이로 특파원 djc@donga.com}
“우리를 알레포에서 탈출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시리아 알레포의 참상을 트위터로 알려 주목받은 7세 소녀 바나 알라베드 양이 21일 터키 앙카라 대통령궁에서 알레포 탈출 협상을 이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나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분홍색 머리띠를 쓰고 체크무늬 치마와 하얀 스타킹으로 예쁘게 꾸민 알라베드 양은 19일 반군의 알레포 동부지역을 탈출해 이날 터키로 건너왔다.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알레포 참상에 대한 글과 사진, 동영상을 올린 지 3개월 만이다. 알라베드 양이 터키로 가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트위터의 힘 덕분이었다. 소녀는 알레포 전투 종료 후 터키와 러시아의 동부지역 주민 탈출 협상이 잡음을 내며 제대로 이행되지 않자 18일 에르도안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에 메시지를 보냈다. “제발 이 협정이 잘 지켜져 우리를 빠져나가게 해주세요.” 트윗을 받은 터키 정부는 다음 날인 19일 “알라베드 양과 그 가족을 터키로 데려오겠다”고 발표했다. 알라베드 양 가족은 19일 버스를 타고 알레포 동부지역에서 서쪽 이들리브 지방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한 뒤 터키 정부의 도움으로 북쪽인 앙카라로 향했다. 소녀는 21일 터키 관영 아나돌루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탈출할 때 시리아 정부군이 우리를 알아보고 죽일까 봐 스카프로 얼굴을 가리고 덜덜 떨었다”며 “음식과 물 없이 19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버스는 마치 감옥 같았다”고 말했다. 알라베드 양과 동생 무함마드 군(5), 누르 군(3), 어머니 파티마 씨와 아버지 등 다섯 식구는 당분간 터키가 마련해준 새집에서 살 예정이다. 소녀는 5개월 동안 사방이 정부군에 포위당한 알레포에서 쌀과 마카로니만으로 연명했지만 건강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녀는 가장 먹고 싶은 음식으로 과일을 꼽았다. 9월 말 개설된 알라베드 양 트위터는 ‘현대판 안네의 일기’라고 불리며 팔로어가 36만 명을 넘어섰다. 3개월 동안 쓴 715개 트윗에는 폭격이 빗발치는 알레포 현장을 담은 사진과 동영상 등 전쟁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끔찍한 폐허와 더불어 앞니 두 개가 빠진 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소녀 사진이 대비되면서 세계인의 감성을 자극했다. 지난달 27일에는 정부군 폭격에 무너져 내린 집 사진과 함께 “최후의 메시지. 엄청난 폭격에 더 이상 살 수 없을 것 같다. 안녕”이라고 적어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알레포에서의 막판 전투가 치열하던 이달 초에는 갑자기 트윗 계정이 사라져 가족이 사망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알라베드 양의 트윗 계정은 영어 교사인 어머니 파티마 씨가 주도해 운영해왔다. 전쟁 통에 전기가 끊겨 트위터에 글을 쓰는 휴대전화 전력은 태양광 패널로 충전했다. 트윗 중에는 7세 소녀의 글이라고 보기 어려운 정치적인 구호도 눈에 띄어 엄마가 어린 딸을 반군의 선전도구로 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파티마 씨는 “우리가 말하려는 건 우리 같은 평범한 알레포 시민들이 전장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말했다. 당분간 터키에 살게 된 소녀는 “알레포에 꼭 다시 돌아가는 게 꿈”이라며 “미래에 알레포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중동 일대 민주화 열풍을 불러일으킨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 6년 후인 올해 12월. 튀니지 출신 아니스 아므리(24)는 독일 베를린 중심지에서 발생한 트럭 테러의 용의자가 됐다. 12명이 트럭에 치여 숨지고 48명이 다쳤다. 경제난이 극심하던 7년 전 튀니지를 떠난 그는 혁명 후 더욱 열악해진 고향을 등지고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투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IS가 소유권을 주장하는 회사에 다른 튀니지인들과 함께 몸담고 있었다고 한다. 2010년 12월 튀니지 국화(國花)에서 이름을 딴 민주화 운동인 재스민 혁명은 6년이 지난 지금 사실상 실패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24년 동안 장기 집권한 진 엘아비딘 벤 알리 대통령을 축출시키며 일으킨 민주화 바람이 이집트 리비아 등으로 옮겨가 다른 독재정권을 몰락시킬 때만 해도 장밋빛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실업률은 15%를 넘어섰고 절망한 젊은이들은 극단주의에 빠져 IS 등 테러단체에 용병으로 투신하고 있다. 미국 보안 컨설팅 업체 수판그룹의 2015년 11월 통계에 따르면 튀니지인 6000명이 시리아로 건너갔다. 중동 매체 알자지라가 만난 튀니지 남성 메디(가명·26) 씨도 재스민 혁명으로 벤 알리 대통령을 몰아낸 뒤 새로운 세상을 기대했다. 하지만 관광객이 대폭 줄고 국제사회가 불안한 시선을 거두지 못하면서 혁명 이후 경제는 오히려 나빠졌다. 당초 전기기술자 교육을 받았던 메디 씨는 2008년 사회에 나왔지만 일거리를 찾지 못해 백수로 지냈다. 혁명한 지 1년도 안 돼 이웃 젊은이들이 속속 사라졌다. 메디 씨도 2012년 4월 ‘성전(聖戰)의 일원이 되고 싶다’며 리비아 시르테로 건너가 IS에 투신했다. 그는 시르테의 IS 병영캠프에서 군사훈련을 받으며 매달 월급으로 3000달러를 받았다. 튀니지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약 3000달러다. 평범한 국민이 1년간 벌 돈을 한 달 만에 손에 쥐게 된 것이다. 그가 IS로부터 받는 월급은 가족의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다. 메디 씨는 ‘제발 집으로 돌아오라’며 눈물을 흘리는 모친의 호소에 마음이 흔들려 4개월 만에 튀니지로 돌아왔다. 그의 형이 2003년 이라크전쟁 당시 용병으로 나갔다가 사망했는데, 어머니가 메디 씨까지 전쟁 통에 잃을까 봐 걱정했기 때문이다. 메디 씨는 “혁명 이후에도 실업 문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악화되기만 해 튀니지가 정말 싫었다”며 “IS 등 테러 단체에 투신한 젊은이들의 90%가 일하고 싶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한 우리 이웃”이라고 말했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러시아와 이란, 터키가 시리아 사태 해결의 국제사회 보증자 역할을 자처하며 3자회담을 가졌다. 시리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을 적극 지원해온 러시아의 상대역을 맡았던 미국 등 서방은 배제됐다. 러시아와 이란, 터키 외교장관은 20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시리아 평화협상 중재를 위한 3자회담을 갖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3개국은 알레포 사태를 포함한 시리아 내전의 평화적 해결을 중재하고 시리아 내 테러 단체를 척결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러시아와 이란은 아사드 정권을, 터키는 시리아 반군을 대변하는 국제사회 중재자 역할을 맡기로 합의했다. 그동안 반군에게 물자를 지원했던 미국의 역할에 대해선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 회담을 하루 앞두고 러시아의 시리아 정권 조력에 불만을 품은 터키 경찰이 안드레이 카를로프 주터키 러시아대사를 암살했지만 회담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교장관은 회담에 앞서 카를로프 대사 영정에 헌화하며 조의를 표했다. 3개국은 이번 회담에서 시리아의 평화 정착을 해치는 격퇴 대상 테러 단체로 ‘이슬람국가(IS)’와 반군의 일원인 파타흐 알 샴 전선을 포함시키는 데 합의했다. 다만 정부군을 돕는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터키 측은 반군 측 파타흐 알 샴 전선과 정부 측 헤즈볼라를 함께 제거 대상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러시아와 이란은 반대하고 있다. 파타흐 알 샴 전선은 과거 알카에다 연계 단체이긴 했지만 최근까지 알레포 동부지역에 주둔하며 반군의 일원으로 싸워 왔다. 반군 측을 대변해 온 터키가 이들의 격퇴에 동의했다는 건 그만큼 아사드 정권에 대한 강경 태도가 누그러졌다는 걸 뜻한다. 이번 회담에서 미국이 빠진 데 대해 미국이 시리아 사태에서 슬슬 발을 빼려는 징조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시리아 사태에 대해 일절 파병 없이 반군에 물자 지원만 하며 소극적으로 일관해 왔다. 중동 개입에 부정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하면 이마저도 끊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3개국 회담 직후 러시아, 터키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시리아 평화를 위해 실질적으로 의미 있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는 정치적 대화의 재개는 언제든 환영한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당장 나가!” 북한 노동자가 일한다는 카타르 도하 근처 산업단지 인더스트리얼 에어리어의 한 조립식 건물 제작공장. 경비원이 영어로 고함치며 공장 안으로 들어서려는 기자를 막았다. 다른 공장보다 통제 수위가 훨씬 높았다. 의아해하는 기자에게 이종설 카타르한인상공인협의회장은 “북한인들이 공장 내부 숙소에서 밀주를 만들어 파는데 뇌물을 받은 경비가 외부인 접근을 차단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공장에서 숙식하는 북한 노동자들은 지난해 말 밀주를 만들어 팔다가 현지 경찰에 적발돼 강제 추방됐다. 하지만 일명 ‘싸대기’(sadiki·아랍어로 ‘나의 친구’)로 불리는 북한 밀주는 허가증이 없으면 술을 살 수 없는 카타르의 은밀한 음주 수요와 외화벌이에 혈안이 된 북한의 욕망이 맞물려 암세포처럼 번지고 있다. 술이 금지된 이슬람 국가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불법 밀주 제조 현장에 내몰리는 건 돈줄이 말라가는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이곳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2014년 한 해에만 밀주 판매로 1200만 달러(약 143억 원)를 벌어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합법적인 건설노동자 임금으로 벌어들인 수입 800만 달러의 1.5배에 해당하는 돈이다. 카타르가 5월 북한 노동자에 대한 신규 비자 발급을 중단하면서 노동자들은 밀주 제조에 사활을 걸게 됐다. 충성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 밀주 제조로 내몰리는 북한 노동자들은 하루하루가 괴로운 처지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카타르 주재 노동자들이 밀주를 만들다 적발됐다는 보도가 이어지자 밀주 제조를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올해 3월에는 밀주 제조 실태를 감시한다며 국가안전보위부 검열단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검열단은 뇌물을 받고 밀주 제조를 눈감아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밀주 없이는 충성자금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카타르 주재 북한 건설회사들은 한때 잠시 줄였던 밀주 제조를 올해 9월부터 대폭 늘리고 있다.○ 2층 단독주택 통째 빌려 24시간 밀주 생산 북한 건설사들은 회사마다 카타르 외곽에 2층짜리 단독주택 여러 채를 통째로 빌려 24시간 내내 밀주제조 공장으로 가동하고 있다. 5개 건설사 산하 35개 사업소에도 주방 등에 제조시설을 몰래 만들어 놓고 밀주를 생산해 낸다. 제조 과정에서의 악취를 숨기기 위해 공장은 사방이 한적한 곳을 고른다. 단독주택을 빌려 24시간 가동하는 밀주공장에서는 한 곳당 매일 1080L가량의 밀주를 생산한다. 1.5L짜리 페트병 12개를 한 박스로 묶어서 파니 매일 60박스씩 만드는 셈이다. 35개 사업소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밀주 시설에서는 한 곳당 대략 매일 324L, 즉 18박스씩 만들어낸다. 밀주 가격은 알코올 농도가 높은 것은 한 박스에 400리얄(약 14만 원), 물이 많이 섞인 건 200리얄(약 7만 원) 정도로 카타르의 초고가 물가를 고려하면 싼 편이다. 북한 밀주는 물과 설탕, 효모균 가루를 이용해 만든다. 기자가 북한 밀주를 구해 직접 마셔 보니 싸구려 백주(白酒) 같은 맛이 났다. 소주잔으로 한 잔을 마셔도 머리가 아찔할 만큼 도수가 높았다. 조악한 시설에서 만들다 보니 물에 알코올 성분이 깊게 배지 않은 듯한 느낌이었다. 북한 밀주는 북한 노동자와 인도 스리랑카 등 비(非)이슬람 국가에서 온 150만 외국인 노동자가 주 수요층이다. 독주를 선호하는 일부 북한 노동자는 밀주 대신 약국에서 의료용 알코올을 사서 물에 타 마시기도 한다. 카타르 도하 인근 건설현장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 A 씨는 “‘사탕가루 술’은 (도수가) 약해서 잘 안 마신다”며 “약국에서 L당 60리얄(약 2만 원)에 파는 의료용 알코올을 사다가 물을 1 대 1 비율로 타서 마신다”고 말했다.○ 노동자들 “걸리면 추방되지만 막노동보다 낫다” 북한 노동자들은 밀주를 만들다 적발되면 바로 강제 추방된다. 추방당한 동료의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노동자들은 북한 건설사 간부들에게 뇌물로 3000∼4000달러를 바치기로 약속하면서까지 밀주 제조책을 지원한다. 밀주 수익 대부분을 간부들이 챙긴다지만 월 150∼200달러에 그치는 공사장 일보단 수입이 많다고 한다. 밀주가 돈이 되다 보니 중동 주재 북한 외교관들까지 나서 면책특권을 악용해 밀주를 판매한다. 쿠웨이트에 주재하는 한 북한 외교관은 올해 외교차량을 검문검색하지 않는 점을 노려 차량에 가짜 양주를 한 박스 싣고 육로를 통해 카타르로 들어와 팔았다. 지난해 북한으로 돌아간 1건설(수도건설) 사장은 노동자 임금 착취와 밀주 수입으로 100만 달러를 챙겼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창 때는 건설사 1곳당 밀주 제조용 단독주택 공장 5∼10곳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최근엔 카타르 당국의 단속이 강화됐다. 북한의 불법 밀주사업이 합법적인 노동 임금을 뛰어넘는 김정은 체제의 수익원으로 부상하면서 밀주 산업을 뿌리 뽑아야 실질적인 대북제재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종설 회장은 “북한의 노동자 송출 자체를 중단시키지 않는 한 김정은 정권을 배불리는 밀주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인더스트리얼 에어리어=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3만 리얄(약 1000만 원)만 빌려 주시오.” 카타르에서 건설사를 운영하는 한국인 A 씨는 3년 전 북한 건설사 중간 간부라는 한 남성으로부터 이런 전화를 받았다. 일면식도 없던 사이였지만 건설업계에서 A 씨에 대해 듣고 무작정 전화를 건 듯했다. 이 남성은 카타르 현지 업체로부터 공사대금을 받지 못해 평양에 보내야 하는 상납금을 못 채웠다고 털어놨다. A 씨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의문의 북한 남성이 대뜸 거액을 빌려 달라는 요구가 황당해 “생각해 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이틀 뒤 같은 남성에게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걸려 왔다. 자신의 처지가 위태롭게 됐으니 살려달라는 구조 요청이었다. A 씨는 급히 한국 정부 측에 연락을 취했고, 이 남성은 그날 밤 바로 한국으로 망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한동안 북한 말투의 남성에게 ‘밤길 조심하라’는 식의 협박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고 말했다. A 씨처럼 카타르의 한국 기업가들은 북한 건설사 간부로부터 느닷없이 돈을 빌려 달라는 전화를 종종 받는다고 한다. 전화를 거는 이들 대부분이 평양에 보낼 통치자금을 조달하는 데 문제를 겪다가 궁여지책으로 그나마 말이 통하는 한국인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토록 궁박한 상황에서 카타르의 북한 건설사가 불법 사업인 밀주에 ‘다걸기(올인)’하는 건 생존을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카타르 정부가 5월부터 북한 신규 인력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하자 북한 건설사는 기존 근무자들을 귀국시키지 않고 임기를 무기한 연기했다. 신규 비자를 받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기존 비자 보유자를 최대한 묶어둬야 한 푼이라도 더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장기 근무자들의 불만이 폭발 직전에 이르자 북한 당국은 이례적으로 한 달간의 방북 휴가를 줘 이들을 달랬다. 북한 건설사는 계약 위반으로 카타르 업체로부터 해고된 북한 노동자가 불법 체류자로 남아 몰래 일하고 있는데도 이를 묵인할 만큼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지난해 9월 카타르의 한 회사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30명이 몰래 다른 현장에서 일하다 적발돼 계약 위반으로 해고됐는데 이 중 15명이 도망쳐 불법 체류자로 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타르 정부가 이들을 모두 북한으로 돌려보내라고 요구했지만 북한 건설사는 ‘소재를 찾을 수 없다’며 버티고 있다. 북한 건설사가 임금 착취와 불법 밀주로 끌어모은 충성자금은 당 간부가 틈틈이 평양으로 직접 들고 간다. 이전에 한 간부가 1인당 소지 가능 액수를 초과한 거액을 들고 출국하려다 모두 압수당한 적이 있어 요즘은 노동자 일부를 자금 분산 운반책으로 동원한다고 한다.도하=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어둠이 깔렸지만 그는 여전히 작업복 차림이었다. 헐렁한 주황색 작업복 위에 형광조끼까지 걸쳐 입었는데도 160cm가 안 되는 키와 깡마른 몸매는 가려지지 않았다. 북한 건설노동자 A 씨가 일하는 곳은 카타르 도하 인근 아파트 건설 현장. 최근 찾아간 이곳은 근처 다른 공사 현장과 달리 거대한 조명을 켠 채 야간작업이 한창이었다. 북한에서 온 노동자들이 2개 조로 나뉘어 24시간 일하는 곳이다. A 씨는 올해 카타르에 왔는데 북한 건설사가 주는 식사가 너무 열악해 처음 보름 동안은 아예 못 먹었다고 털어놨다. “일이 워낙 힘든 데다 안 먹으면 죽으니까 지금은 주는 대로 먹습니다. 새벽에 나와 하루 14시간 일하고 숙소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면 북에 두고 온 부모님과 처자식 이름만 되뇝니다.” A 씨가 주 6일간 일하고 손에 쥐는 돈은 한 달에 150∼200달러. 그는 2019년까지 임기 3년을 채우고 돌아갈 날만을 그리며 버틴다고 했다. 해외 북한 노동자들은 김정은 체제의 통치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하루 14시간 주 6, 7일 일하고도 정당한 월급은커녕 최소한의 인권도 누리지 못하는 현대판 노예이다. 동아일보는 12월 집권 5주년을 맞는 북한 김정은 체제가 국제사회의 제재로 돈줄이 말라가자 통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중동과 유럽에 노동자들을 파견해 착취하는 실태를 추적했다. 노동자들은 중노동을 하고도 제대로 먹지 못해 쓰레기통까지 뒤지지만 북한 건설사는 현지 발주 회사 몰래 노동자들을 다른 건설 현장에 보내 휴일에도 일을 시키고 있었다. 또 인력 송출로 인한 외화벌이마저 어려워지자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기 위해 온갖 불법적인 사업을 벌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은 한국인과의 접촉이 일절 금지돼 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 중엔 기자에게 먼저 말을 걸어오거나 ‘북조선’ ‘남조선’ 대신 ‘북한’과 ‘한국’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해외로 파견된 이들은 휴대전화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어 세상 물정을 빠르게 접하고 있는 듯했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국제사회에서 대북제재를 주도하는 미국의 일거수일투족이었다.도하=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12세기에 지어진 요르단 유명 관광지에 무장괴한 일당이 침입해 경찰과 총격전을 벌여 캐나다 여성 관광객 등 10명이 숨지고 22∼27명이 다쳤다. 요르단 당국은 반(反)정부 성향의 토착 부족민이나 ‘이슬람국가(IS)’의 소행으로 추정하고 배후를 추적 중이라고 요르단타임스가 19일 보도했다. 첫 총격은 18일 오전 카라크 시 북동부 30km 지점에 있는 사막 마을 까트라나에서 시작됐다. 마을 주택에서 울린 화재 경보를 확인하기 위해 출동한 경찰이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갑자기 복수의 무장괴한이 뛰쳐나와 총격을 가했다. 이들 괴한은 총격 직후 차를 타고 12세기 건축물인 십자군 요새가 있는 카라크 시 방향으로 내달렸다. 요새를 향해 차를 몰고 가던 중에도 순찰 경관과 경찰서를 향해 총기를 난사해 사상자를 냈다. 괴한 일당은 요새 안으로 침입해 탑 하나를 차지하고 경찰과 총격전을 벌였다. 유명 관광지인 이 요새에는 세계에서 온 관광객이 몰려 있었다. 괴한들과 경찰이 5시간여 동안 총격전을 벌이는 과정에서 캐나다 여성 관광객 1명과 요르단 시민 2명, 경찰 7명 등 총 10명이 숨졌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요새 저층부에 고립됐던 관광객 10여 명은 사태가 진압된 후 구출됐다. 총격전 끝에 괴한 4명이 사살됐지만 범행을 저지른 이들의 구체적인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다. 최초 총격전이 벌어진 까트라나는 정부에 저항해온 다양한 부족이 중무장한 채 사는 곳인 데다 밀수 등 범죄가 자주 발생한다. 요르단이 미국 주도 IS 폭격에 가담하는 몇 안 되는 중동 국가라는 점을 감안할 때 IS의 테러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이런 데서 정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카타르의 북한 노동자가 집단 거주하는 사일리야 지역 캠프 일대에 들어서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리는 온통 쓰레기로 뒤덮여 악취가 진동해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맨땅에 대충 세운 컨테이너 가건물이라 최고 기온 50도에 육박하는 사막의 열기가 그대로 전달되는 구조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외딴 지역이어서 건물 앞 곳곳에는 자체 발전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북한 노동자 숙소는 북한 건설사에서 임차료를 댄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 달러(약 7080만 원)가 넘는 카타르의 초고가 임차료를 아끼기 위해 주로 황무지에 지어진 가건물을 빌린다. 허름한 숙소는 4인실에 2층 침대 4개를 놓고 8명이 쓴다. 컨테이너 가건물 외부에는 허름한 티셔츠와 작업복 등이 빨랫줄에 걸려 있었다. 북한 건설노동자를 꾸준히 접해 온 이종설 카타르한인상공인협의회장은 “북한인 캠프 안에는 하수도가 없어 매일 오물을 직접 퍼내야 한다”고 말했다. 밤늦게까지 공사장에서 일하고 동트기 전 숙소를 나서는 일상을 견디다 못해 탈출을 시도하는 북한 노동자도 있다. 이들은 공사 현장이나 숙소에서 몰래 도망치는데, 딱히 갈 곳이 없는 처지인 데다 북한 건설사의 집중 수색에 대개는 일주일 안에 다시 잡혀 온다. 북한 당국은 태영호 전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의 탈북 사건이 알려진 8월부터 모든 노동자가 휴일에 외출할 때 2, 3명이 짝지어 다니게 하고 행선지를 외출 장부에 적도록 한다. 북한 건설사가 노동자들에게 뿌린 행방불명자 수배문을 보니 얼굴 사진과 이름, 생년월일, 키, 입국일, 북한 집 주소, 행방불명 날짜, 작업 현장, 옷차림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이 사내는 공사 현장에서 탈출했다가 4일 만에 붙잡혀 북한에 강제 송환된 것으로 알려졌다.사일리야=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북한 노동자들이 부족한 단백질을 보충하려고 새벽에 패스트푸드점 쓰레기통을 뒤집니다.” 카타르의 북한 건설노동자 실태에 정통한 현지 교민은 이들의 열악한 생활 실태를 이렇게 전했다. 매끼 식사가 너무 부실하다 보니 새벽 시간에 몰래 시내 패스트푸드점 쓰레기통을 뒤져 먹다 남은 닭뼈 등을 가져가 죽처럼 끓여 먹는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해외 노동자 월급에서 매달 50∼60달러를 식비 명목으로 떼어 간다. 하지만 식단은 맨밥에 김치 몇 조각이 전부라고 했다. 한 북한 노동자는 최근 도하의 대형 쇼핑몰 제과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쓰레기통에 버린 빵을 몰래 주워 가다가 식품위생법 위반으로 현지 경찰에게 걸려 추방되기도 했다.○ 900달러 벌지만 손에 쥐는 건 150달러뿐 카타르 사막의 뙤약볕 아래에서 김정은 정권의 외화벌이에 동원되는 북한 노동자는 2600여 명. 북한 노동자 파견 규모로는 중동에서 쿠웨이트(3800여 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북한이 한창 카타르에 노동자를 많이 보내던 2014년에는 3000명에 육박했다. 이들은 매년 800만 달러(약 95억 원)를 벌어들여 북한에는 주요 돈줄 역할을 한다. 최근 어느 토요일 저녁에 찾아간 도하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밤중에도 조명 아래 북한 노동자들이 한창 작업에 매진하고 있었다. 북한 노동자는 고정 일당을 받는 게 아니라 성과에 따라 차등 급여를 받기 때문에 속도에 사활을 건다. 북한 회사 입장에선 노동자가 계약한 공사를 최대한 빨리 마쳐야 다른 업체와 새로운 계약을 맺어 통치자금을 더 많이 벌어들일 수 있다. 일부 공사 현장에서는 2교대로 팀을 짜 24시간 동안 작업하기도 한다. 공사 현장 입구엔 경비가 지키고 있어 북한 노동자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한 접촉하기가 어려웠다. 지난해 7월 영국 가디언 등 외신들이 카타르 내 북한 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를 쏟아내자 북한 당국이 주쿠웨이트 북한대사관을 통해 중동 지역 현장에 일괄적으로 보냈다는 공문 내용을 전해 들은 터라 두렵기도 했다. 공문 내용은 이랬다. “공사 현장에 남조선 사람이 접근해 촬영을 시도하면 단숨에 제압해서 카메라를 부수고, 끝까지 반항하면 폭력을 써서 내쫓아도 좋으니 적극적인 차단 방책을 강구하라.” 공사 현장을 서성인 지 1시간가량 지났을까. 주황색 작업복에 형광조끼를 걸친 북한 남성이 공사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잠시 쉬려는 듯했다. 그에게 접근해 한국인이라고 밝히자 당황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어두운 공사장 뒤편으로 기자를 이끌었다. 어렵게 만난 북한 노동자 A 씨는 매주 6일간 오전 6시 30분∼7시 현장에 도착해 오후 9시까지 하루 14시간 일한다고 했다. 숙소인 사일리야 캠프는 도하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외곽에 있어 출근 시간을 맞추려면 오전 5시에는 눈을 떠야 한다. 매주 금요일은 휴무지만 쉬지 못할 때가 많다고 했다. 북한 노동자가 하루 14시간 동안 뙤약볕 아래에서 몸을 혹사해 손에 쥐는 돈은 월 150∼200달러다. 카타르 건설사와의 계약서에는 월급이 900달러가량으로 적혀 있지만, 이 중 700∼750달러는 북한 건설사가 세금 식비 보험료 등 각종 명목으로 떼어 간다. 군인들로 구성된 남강건설 소속 노동자는 3년간 일절 월급을 못 받고 북한으로 돌아갈 때 일시금으로 3000달러를 받는다. 월평균 83달러가 조금 넘는 돈이다.○ “‘최악’ 북한보단 ‘차악’ 카타르” 카타르 내 북한 노동자는 북한 대외건설지도부 산하 건설사 5곳에 소속돼 있다. 형식적으로는 북한 민간 건설사가 카타르 현지 건설사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인력을 파견하는 구조지만 사실상 북한 당국이 직접 운영한다. 관리를 맡은 건설사 사장과 당 간부, 국가안전보위부 요원은 중간에서 노동자 월급을 갈취하고 뇌물 액수에 따라 보직을 정해 준다고 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강화되면서 언제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은 신세가 된 북한 건설사는 하루빨리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노동자들을 밤낮없이 동원하고 있다. 지난해 5∼8월에는 낮에 계약 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몰래 다른 현장에서 일하던 북한 노동자 198명이 적발돼 계약 위반으로 추방됐다. 카타르는 유엔 대북제재 움직임에 발맞춰 올해 5월부터 북한 신규 노동자에 대한 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미국은 8월 카타르 등에 북한 인력 고용 자체를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그래서인지 카타르에서 만난 복수의 북한 노동자들은 미국의 움직임에 큰 관심을 보였다. 기자가 물어보면 머뭇거리며 대답하던 이들은 유독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거취나 미국 대선에 대해선 거꾸로 기자에게 적극적으로 질문했다. 도하 공사 현장에서 만난 북한 노동자 B 씨도 “오바마 소식 좀 아는 게 있느냐”며 “오바마가 ‘까따르’에서 북조선 사람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해서 걱정”이라고 말했다. 북한인과 수년간 교류해온 현지 교민은 “북한으로 돌아가면 최악(最惡)의 처지에 놓일 거란 걸 잘 알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그나마 차악(次惡)인 카타르에 머물고 싶어 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도하=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사진)이 팔순 생일을 맞아 다양한 국적의 노숙인 8명을 초청해 아침식사를 함께 했다. 2013년 중남미 출신 최초로 교황에 오른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교황은 17일 오전 7시 15분 바티칸 성베드로광장 인근에 기거하는 노숙인들을 바티칸호텔로 초청해 아침을 먹었다고 교황청이 밝혔다. 초대된 노숙인 8명의 국적은 이탈리아 4명, 루마니아 2명, 몰도바와 페루 각 1명이었고 남자 6명, 여자 2명이었다. 이들은 이날 오전 교황이 노숙인을 위해 설치한 샤워 시설 인근에서 섭외됐다고 CNN이 보도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식 케이크와 고기, 빵과 초콜릿 잼 등을 나눠 먹으며 노숙인 한 사람 한 사람과 대화를 나눴다. 노숙인들은 감사 표시로 해바라기 꽃다발 세 묶음을 전했고, 교황은 이를 자신의 처소인 바티칸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 예배당에 꽂아 뒀다. 교황은 바티칸 파올리나예배당에서 주최한 특별미사에서 팔순을 맞이한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지난 며칠간 노년이라는 게 못나 보일까 봐 두렵다는 생각을 했다. 노년은 지혜에 목마른 시기라는데 내 노년도 그랬으면 좋겠다. 평화롭고, 신앙심 깊고, 유익하며 기쁜 노년이 되도록 기도해 달라.” 교황의 팔순을 맞아 교황청이 7개 언어로 개설한 축하 메시지용 e메일 계정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축전을 비롯해 7만 통이 넘는 축전이 쏟아졌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창업은 인구와 자원이 변변찮은 이스라엘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돌파구입니다.” 최근 텔아비브대 창업지원센터 스타타우(starTAU)를 찾은 기자에게 이곳의 교육 담당 엘리야 엘론 디렉터(24·사진)는 이렇게 강조했다. 이스라엘은 인구가 800만 명에 불과하고 사방이 적대적인 아랍 국가에 둘러싸여 지리적으로 고립된 상태라 글로벌 창업을 통해 국가 융성의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취지다. 엘론 디렉터는 이민자에게 타국에서 성공하고자 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있다면 창업가에게는 ‘이스라엘 드림’이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드림의 요체는 ‘후츠파 정신’이다. 히브리어로 뻔뻔함, 당돌함 등을 뜻하는 후츠파는 권위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과 주장을 당당히 개진해 관철하는 이스라엘 특유의 도전정신을 뜻한다. ‘이스라엘인은 고집이 세서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후츠파 정신이 좁은 국토에서 숱한 유명 기업을 탄생시킨 이스라엘만의 저력이라는 평가에는 이견이 별로 없다. 이스라엘에선 매년 1000개가 넘는 스타트업이 생기지만 이 중 매출 1억 달러를 넘는 회사로 성장할 확률은 5% 미만이다. “하지만 도전을 멈추지는 않습니다. 어려서부터 ‘노(No)를 정답으로 받아들이지 마라’, ‘만약 네 생각이 옳다고 믿는다면 정문이 잠겼어도 창문을 넘어서 안에 들어가라’처럼 도전정신을 고양하는 격언을 듣고 자라거든요.” 엘론 디렉터는 “어떤 창업가도 인구 800만 명에 불과한 이스라엘 시장만을 대상으로 스타트업을 창업하지는 않는다”라며 스타타우에서도 글로벌 시각을 심어 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력이 높은 이스라엘에는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삼성 등 세계적인 대기업들의 연구개발(R&D)센터가 250여 곳 자리 잡고 있어 세계시장에 진출할 여건이 마련돼 있다. “이스라엘에는 스타트업 창업 실패의 상처를 영웅시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젊은이들이 취업보다는 창업을 꿈꾸는 원동력이지요.” 텔아비브=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전쟁은 끝난 듯했지만 평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5년째 정부군과 반군의 치열한 전쟁터가 된 시리아 알레포는 동부지역을 장악한 채 저항해온 반군이 전격 철수하기로 하면서 한때 총성이 멈췄다. 경제수도로 불릴 만큼 융성했던 알레포는 정부군과 러시아에 포위당한 채 1년 넘게 집중 폭격을 맞아 앙상한 폐허로 변했고 주민 수십만 명이 집을 잃었다. 여기다 알레포 동부 반군과 정부군 사이의 휴전 합의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아 포격전이 재개되면서 깨졌다. 13일 밤 휴전 합의로 14일 오전 5시부터 시작하기로 한 반군 및 시민 수만 명의 알레포 철수도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정부군에 포위된 채 고립된 반군과 시민들을 퇴각시키기 위해 시리아 정부가 보낸 버스들은 포격이 시작되자 차고로 되돌아갔다. 반군과 정부군은 상대편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며 책임을 떠넘겼다.○ 삐걱대는 알레포 탈출 작전 당초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와 반군 측 터키는 13일 밤부터 알레포 전투를 멈추고 최후의 항전을 펼치던 반군에게 퇴각로를 열어주기로 합의했다. 러시아는 이날 긴급 소집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정부군과 러시아가 지난달 15일 반군이 장악한 알레포 동부지역으로 진격하기 시작한 지 한 달여 만에 알레포 탈환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반군의 철수가 지연되는 사이 교전이 시작됐다. 러시아 국방부는 성명을 내고 반군이 알레포 북서쪽에 있는 정부군 진영을 공격하면서 휴전 합의를 깼다고 비난했다. 반군 측은 이란에 책임을 돌렸다. 시리아 반군의 법률 자문인 오사마 아부 자이드는 이란의 시아파 민병대와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반군 지역에 포격을 재개했다고 AP통신에 말했다. 그는 “이로써 러시아가 이란에 합의 준수를 이행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명백해졌다”고 말했다. 앞서 유엔은 정부군 측이 반군을 도운 주민들에게 ‘피의 보복’을 감행하고 있다며 민간인 피해를 우려했다. 반군과 함께 최후의 저항을 택했던 시민 10만여 명은 점령군의 보복이 두려워 국외로 도망갈 채비를 갖추고 있다. 이미 반군 점령 지역을 탈출해 정부군 지역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알레포 동부 4곳에서 민간인 82명이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으며 정부군 소행으로 추정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고 전했다. 유엔과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과 러시아, 이란 등 친정부 세력에 학살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다. 서맨사 파워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안보리 회의에서 러시아와 이란을 향해 “(알레포 학살이)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일갈했다.○ 러시아의 힘이 만든 승리 알레포 전투를 포함한 시리아 내전은 2011년 중동 일대에 불어닥친 민주화 혁명 ‘아랍의 봄’ 열풍을 정부군이 폭력으로 진압하면서 시작됐다. 2011년 3월부터 시민들이 40년 넘게 이어온 바샤르 알 아사드 부자(父子)의 독재정권을 타도하자는 시위를 벌이자 정부군은 총으로 강경 진압해 숱한 사망자가 나왔다. 이에 반발한 일부 군경이 시위대에 가담해 반군이 형성됐다. 도시를 장악하고 빼앗기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전국적인 내전으로 격화됐다. 경제수도 알레포도 2012년 여름부터 내전에 휩싸였다. 반군이 알레포 동부를 장악하고 정부군과 격전을 벌여 2만 명 넘게 숨지고 수십만 명이 전쟁을 피해 도시를 떠났다. 기세를 탄 반군이 시리아 전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아사드 정권은 아랍의 봄을 겪은 국가들처럼 몰락하는 듯했다. 고사 위기의 아사드 정권을 기사회생시킨 건 러시아였다. 러시아가 지난해 9월 아사드 정권을 도와 본격적인 공습에 나서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미국은 ‘개입은 하되 미국의 모든 역량은 온전히 보존한다’는 외교 전략인 ‘오바마 독트린’에 따라 공중 폭격이나 지상군 투입 대신에 군사 물자를 지원하는 수준의 소극적 대처로 일관했다. 반군의 패색이 짙어지자 미 행정부 내부에선 시리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다자주의 협상을 통한 사태 해결이라는 기본 원칙은 바뀌지 않았다. 정부군은 알레포 전투 승리로 내전 발발 이래 최대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알레포 전투가 재개되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러시아는 합의 중재자이자 보증자인 터키와 긴급 협상을 벌이고 있다. 당초 반군 조직은 알레포를 떠나 서쪽의 반군 지역으로 이동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협상이 결렬된 만큼 향후 행보는 불투명해졌다. 2011년 3월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지금까지 시리아인 31만2000명이 숨졌다. 카이로=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김수연 기자}

이스라엘에서 네 자녀를 키우는 노암 모르긴스틴 씨(43)는 2년 전 클라우드 서비스 개발회사에서 나와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린 네 남매와 전업 주부인 아내를 생각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창업의 꿈을 포기하기는 싫었다. 공대 졸업 후 태양광 산업 마케팅, 제약회사 연구직 등 다양한 회사 경험에서 착안한 사업 아이템으로 꼭 성공할 거라는 자신도 있었다. 또 하나 믿는 구석이 있었다. 텔아비브대 산하 창업지원센터 스타타우(StarTAU)다.○ 회사원에서 창업가 된 네 아이 아빠 모르긴스틴 씨는 2014년 스타타우에서 월급쟁이 생활과는 전혀 다른 창업의 세계를 배웠다. 시작을 뜻하는 ‘스타트(Start)’와 ‘텔아비브대(TAU)’의 합성어인 스타타우는 2009년 창업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두 학생 엘레나 도네츠와 오렌 시마니안 공동대표가 만든 학내 비영리 기관이다. 운영비의 90%를 외부에서 조달할 만큼 재정 자립도가 높고 12만 명에 이르는 텔아비브대 졸업생을 근간으로 한 비즈니스 네트워킹이 강점이다. 스타타우는 이론보다는 ‘창업하려면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집중적으로 가르친다. 창업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전문 교육을 제공하고 회사 설립에 필요한 법무법인과 회계법인 등도 소개해 준다. 창업가와 멘토, 벤처투자사와 개인투자자, 각종 행정 지원 등을 한데 묶어 주는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앙 교차로’인 것이다. 비영리 단체라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는 하지 않는다. 모르긴스틴 씨는 온라인 기반의 소프트웨어 회사에 인터넷 장애가 발생할 때 즉각적인 대처와 재발 방지 등 사후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클라우드 회사를 차리고 싶었다. 온라인 회사의 자체 기술팀은 새벽 시간엔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데다 사건 보고 등 서류 작업이 복잡해 비효율적이라는 사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사고 관련 지식을 공유하지 못해 회사 정보기술(IT) 담당자가 바뀌면 같은 사고가 반복됐던 경험도 창업 아이디어의 착점이 됐다. 스타타우에서 창업 교육을 받은 그는 온라인 장애가 발생하면 관련 정보가 자동 입력되고 원인과 해결책을 분석해 주는 클라우드 시스템을 1년 동안 개발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온라인 회사를 잠재 고객으로 삼고 6개월 동안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 가서 고객의 수요를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10월 ‘엑시전스’라는 클라우드 기반 온라인 서비스 긴급 복구 지원 회사를 차렸다. “창업하려면 개발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직접 듣고 기존 서비스와 차별화할 수 있는 점을 짚어 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스타타우에서 배웠습니다. 직원이 6명인데 온라인 회사여서 사무실이 필요 없어요. 고객과 회의할 필요가 생기면 스타타우로 와서 하지요.”○ 내년부터 스타트업 크게 키우는 교육도 시작 스타타우는 2009년 설립 이후 4800여 명의 창업가가 거쳐 갔다. 60개국 350명이 투자자로 등록돼 있고 커뮤니티 회원이 2만 명을 넘는다. 대표 교육 프로그램 ‘비(BEE·벌)’에는 매년 텔아비브대 학생 300여 명이 지원하는데 35명을 엄선해 창업 아이디어를 스타트업으로 만드는 과정을 가르친다. 창업 전문 멘토 8명이 1년 내내 이들을 집중 조련하고 스타트업 회사 최고경영자(CEO)와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을 초청해 경험을 전수받는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100일 동안 팀 단위로 창업을 집중 교육하는 ‘엘리트 론치’도 있다. 2∼4명이 한 팀이 돼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을 배우는데, 리더 마케터 기술자 등으로 각자 역할 분담이 확실한 팀만 참여할 수 있다. 개발자만 3명으로 구성된 팀이라든가 1인 창업가는 교육받을 수 없다. 스타타우의 교육 담당 엘리야 엘론 디렉터(24)는 “기술 개발, 마케팅, 재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팀이 제대로 된 기업으로 성공할 확률이 높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육을 마친 예비 창업가들은 투자자에게 사업을 설명할 수 있는 발표 기회를 갖는다. 스타타우와 연계된 벤처투자회사나 개인투자자는 이들의 발표를 듣고 보완해야 할 점을 두루 지적해 준다. 최근 이 프로그램 출신이 설립한 스포츠 경기 주요 순간 재생 기술 기업 ‘프리디’가 인텔에 인수되기도 했다. 이 밖에 중국이나 아랍 등 특정 시장을 겨냥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여성 예비 창업가를 위한 코스도 있다. 스타타우는 내년부터 이미 투자를 받아 회사를 차린 창업가에 대한 교육을 시작한다. 지금까지의 창업 교육이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방안과 투자처 유치에 주력했다면 이젠 이미 세운 회사를 크게 키우는 역량을 강화해 창업을 통한 경제 융성이라는 본래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판단에서다. 엘론 교육 담당 디렉터는 “주로 기술 개발자인 창업가에게 제대로 된 경영 방식을 가르치면 스타트업 창업 성공률을 현재의 5%에서 더욱 끌어올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텔아비브=조동주 특파원 djc@donga.com ※이스라엘 텔아비브대1956년 이스라엘 건국 초기 정부 주도로 법률경제학교, 자연과학연구소, 유대학연구소 등을 통합해 설립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연구 중심 대학으로 9개 학부 106개 학과에 학생은 3만 명이다. 차량 공유 서비스 선두 주자 우버에 도전장을 던진 기업 주노의 탈몬 마르코 최고경영자(43), 투자자문사 토포앤코코리아(TCK)의 오하드 토포 회장(37)이 동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