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하

주성하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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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사이트 ‘서울에서 쓰는 평양이야기’(http://nambukstory.com)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zsh75@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남북한 관계64%
칼럼23%
경제일반10%
사회일반3%
  • [北 3차 핵실험 후폭풍]북핵 몸통은 ‘131부대’… 28년간 비밀시설 건설-우라늄 농축

    북한의 3차례 핵실험 배후에는 북한 주민들이 ‘원자력 아이들’이라고 부르는 28년 노하우의 핵실험 전담 군부대가 있다. 공식 명칭이 ‘131원자력지도국’인 이 부대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핵 시설 건설과 우라늄 채취 및 가공에 이르기까지 숨은 주역의 역할을 해왔다. 국방과학원 산하 10여 개의 연구소가 핵무기 개발 이론과 연구를 진행하는 머리 역할을 한다면 131지도국은 핵 개발의 몸통 역할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핵무기 개발 연구소들도 131지도국이 직접 관리한다는 탈북자들의 증언도 있다. 북한이 지난 수십 년 동안 국제사회와 핵을 둘러싼 숨바꼭질을 벌이는 동안 131지도국은 북한 전역에 비밀 핵시설을 건설하고 관리했다. 1990년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때 방사성물질이 누출되지 않도록 납으로 주요 핵시설을 꽁꽁 숨겨 놓는 일도 이들의 몫이었다.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실질적으로 관리하는 것도 이 부대다. 131지도국은 김정일의 지시로 1985년 창설됐다. 과거 사회안전부 건설국 소속 부대에 전방 군단에서 당성 등이 입증된 우수 하사관들을 뽑아 만들었다. 당시 김정일은 “내가 핵개발의 총사령관이며 핵개발 부대는 나의 친위대”라며 이들의 충성심을 고취했다. 실제로 131지도국은 창설 당시 노동당 군사위원회에 직속된 유일한 군부대였다.지금은 노동당 군사위 산하에 전국의 김일성, 김정일 별장을 건설 관리하는 ‘조선인민경비대 1여단’과 북한군 후방물자를 보급하는 ‘군수동원총국’이 추가로 배속돼 있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당 중앙의 직속 부대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131지도국 소속 군인들은 1980년대 황해북도 평산군의 우라늄 광산을 개발할 때 방호복도 없이 작업해 피폭되는 등 맹목적인 충성심을 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131지도국은 산하에 여러 개의 여단을 두고 핵시설 건설, 운영, 우라늄 개발 등을 직접 집행하고 있다. 영변 핵시설, 금창리 핵시설 등 국제사회에 공개된 시설 외에도 북한은 여러 곳에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우라늄 농축시설을 운영하고 있어 131지도국의 활동은 베일에 싸여 있고 소속 군인들 역시 북한 내에서 특권을 누리고 있다.131지도국은 1990년대 중반부터 풍계리에 들어가 지하 핵 실험장을 건설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핵실험 관련 물자를 함경북도 길주에서 혜산으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세 번째 정거장인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재덕역을 통해 운반해 갔지만, 인근 주민들은 관련 내용을 전혀 몰랐다. 풍계리에서 살았던 한 탈북자는 “주민들도 2006년 이전에 핵실험장이 건설되는 줄 몰랐는데, 인근 주민들에겐 장군님을 모시기 위한 시설을 건설한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핵실험이 진행된 만탑산 인근에는 2006년 1차 핵실험 전까지도 주민들이 살았고 통행도 단속하지 않았지만 핵실험 이후에 초소들이 생기고 현지 주민들에 대한 감시도 강화되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특이한 점은 풍계리에서 작업하던 군부대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부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특정 작업자가 핵 관련 정보의 전체 그림을 파악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 당국이 신경 쓰고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핵을 다루는 부대의 특성상 131지도국에선 방사능 피폭자들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탈북자는 “고향에 131지도국에서 일하다 방사능에 피폭돼 감정제대(의병제대)로 고향에 돌아온 병사가 있었다”면서 “겉은 멀쩡했지만 특급 영예군인 대우를 받았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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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진 퇴위라니… 전체 위해 쉽지않은 결정”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퇴위가 발표된 11일 국내를 포함해 전 세계의 가톨릭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허영엽 신부(대교구장 수석비서)는 “약 600년 전 교회가 외부적 요인으로 곤경에 처했던 시기를 빼면 현직 교황께서 자진 사임한 것은 첫 사례여서 한국은 물론 세계 가톨릭교회 전체가 놀라움에 휩싸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가톨릭 신자는 교구 게시판에 외신 내용을 올린 뒤 “교황 베네딕토 16세께서 2월 28일자로 교황직을 사임하시겠다는 뉴스인데요. 이유로는 더이상 교황직을 지속할 여력이 없다는…아! 아!…”라는 댓글로 아쉬움을 표시했다. 대구대교구의 한 중견 신부는 “전통을 중시하는 교황청 분위기를 감안할 때 자진 퇴위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교황의 결정은 교회 전체를 위한 선택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자진 퇴위는 가톨릭 교회사에서 보기 드문 ‘혁명적 선택’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인사이드 바티칸’의 저자이자 가톨릭대에서 교회법을 강의하는 이경상 신부는 “가톨릭교회 전체의 합리적 운영과 새로운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결정으로 본다”며 “베네딕토 16세가 독일 출신으로 매우 합리적인 성향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임 요한 바오로 2세는 파킨슨병을 앓는 육체적 고통에도 2005년 선종 때까지 재임했다. 이 신부는 “두 교황의 퇴임이 대조적이지만 모두 가톨릭교회를 사랑하는 모습이다”고 덧붙였다. 교황의 사퇴 소식이 발표되자 아시아 최대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은 대통령 대변인 성명을 통해 “가톨릭 신자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선량한 국가들과 사람들은 교황의 퇴임에 깊은 아쉬움과 감사, 연민을 느낄 것”이라고 밝혔다. 아시아 최대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은 인구 1억 명 중 85%가 로마 가톨릭 신자다.김갑식·주성하 기자 dunanworld@donga.com}

    • 2013-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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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주성하]북한 언제까지 재입북 대우할까

    일요일에 혼자 몰래 골프 치는 목사에게 하나님이 내린 벌이 홀인원이란 말이 있다. 봐줄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평생의 자랑거리가 평생의 아쉬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에 혈연단신 입국한 탈북자들도 봐줄 사람이 없어 불행하다. 일반적 관점에서 볼 때 탈북자들은 취직도 어렵고 사회적 편견과 냉대에 시달리는 집단이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한번 보자. 입국한 지 몇 년 안 된 탈북자라도 임대아파트 보증금과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돈을 합치면 최소한 수천만 원의 재산은 있다. 이 돈이면 북한에서 평생 먹고살 수 있다. 먹고살기 어려워 북한을 떠났는데 불과 몇 년 만에 북한에선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재산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러니 혈육과 떨어져 이 땅에서 빈곤계층으로 살기보단 북한에 돌아가 가족친지들 앞에서 부자로 살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욕망이다.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되는 어떤 탈북자는 몇 달 전 중고차 거래 사이트에서 수백만 원짜리 중고 벤츠를 찜해놓고 꼭 사겠다고 별렀다. 그렇게 낡은 차는 타지 못한다고 설명했는데도 “내일이라도 북한 체제가 무너지면 단 한 번만 타도 좋으니 벤츠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고 이유를 댄다. 북한에서 벤츠는 최고위급만 타는 가장 좋은 차로 인식된다. 대다수 탈북자에게 탈북의 가장 큰 동기는 생활고이다. 고향에서 이집 저집 먹을 것을 꾸러 다니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을 과거 정도는 누구나 있다. 이들에겐 고향에 ‘금의환향’해 부자로 대접받는 일은 매우 중요한 삶의 동기이다. 지금은 갈 수 없어 못 갈 뿐이다. 그런데 북한이 최근 다시 돌아온 탈북자는 용서해 준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 선전을 믿고 지난해 6월 박정숙 씨를 시작으로 이달 24일까지 갓난아기 2명을 포함한 8명의 탈북자가 재입북했다. 북으로 돌아가기 전 이들이 돈부터 챙겼을 것은 당연한 일. 미리 북한에 밀반입시켰을 수도 있고 중국에 숨겨두었을 수도 있다. 임대주택 보증금을 포함해 1인당 2000만 원 가까운 정착금을 의무적으로 주었더니 그걸 홀랑 들고 북한으로 넘어간 탈북자가 한국인으로선 큰 배신감이 들 것이다. “다시 돌려줘”라는 말이 나올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 돈을 가장 빼앗고 싶은 사람은 누구보다도 김정은일 것이다. 심지어 한국에 다시 고스란히 돌려주고 싶을지도 모른다. 쌀 꾸러 다니던 아무개가 남쪽에서 몇 년 만에 평생 먹고살 돈을 갖고 돌아왔다는 소문만큼 북한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수조 원의 대북 지원도 이런 효과는 못 낸다. 북한은 지금 재입북 탈북자들을 탈북 방지 선전용으로 활용하고 대접도 잘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호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만약 김정은이 한국의 탈북자들을 정말로 돌아오게 만들고 싶다면 국제사회에 “재입북 탈북자의 신변은 나와 노동당, 공화국의 이름으로 보장한다”는 선언이라도 하면 어떨까. 얼마나 돌아갈진 모르겠지만….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201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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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신 다이제스트]이란, ‘개종’ 미국인 목사에 징역 8년형 선고

    이란에서 포교활동을 해 온 미국 국적의 이란인 목사가 27일 이란 테헤란 혁명재판소에서 8년형을 선고받았다. 사람들에게 이슬람에 대한 적개심을 부추겨 국가 안보를 위협했다는 것이 판결 이유다. 형을 선고 받은 사에드 아베디니 목사(32)는 잔인하기로 악명 높은 테헤란 에빈교도소에 수감될 예정이다. 아베디니 목사는 2000년 이슬람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으며 2004년 이란 출신 미국 여성과 결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2008년엔 미국 전도협회에서 목사로 임명됐고 2010년 미 시민권을 얻었다.}

    • 201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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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탈북자 재입북 기구한 삶뒤엔 ‘두얼굴 브로커’

    북한 조선중앙TV는 24일 밤 한국에 정착했다 재(再)입북한 탈북자 4명의 기자회견을 방송했다. 재입북 탈북자의 기자회견은 지난해 6월 박정숙 씨(여) 이후 벌써 3번째다. 탈북자 사회에서는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재입북한 4명 중 3명은 2010년 4월 전남 목포시에 정착한 김광호(사진)-김옥실 씨 부부와 10개월 된 딸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중국으로 여행을 간다며 출국한 뒤 소식이 사라졌다. 남한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딸까지 낳아 행복한 일만 있을 것 같던 이들이 2년 반 만에 목숨을 걸고 찾아온 ‘자유의 품’을 떠난 이유는 뭘까.○ 정착금부터 브로커에게 빼앗겨2010년 4월 탈북자 정착 지원기관인 하나원에서 3개월간 정착 교육을 받고 나선 김 씨 부부 앞에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건 중국에서 이들을 데려온 소위 ‘탈북 브로커’. 그는 중국에서 약속한 대로 1인당 250만 원씩 모두 500만 원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함께 온 탈북자들은 순순히 250만 원씩 줬다. 중국에서 쓴 계약서엔 하나원을 나올 때는 250만 원, 지불을 늦추면 최대 400만 원까지 내겠다고 돼 있었다.탈북자들은 하나원을 나올 때 정부에서 1000만 원이 조금 넘는 임대주택 보증금과 300만 원의 정착금을 받는다. 보증금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내기 때문에 300만 원이 사실상 탈북자들이 쥐고 사회에 나오는 재산의 전부다. 이 중 브로커에게 250만 원을 떼어 주면 50만 원밖에 남지 않는다. 여기에 매달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30만 원을 보태 살아 나가야 한다. 직업을 구하기도 어려운 탈북자들에겐 혹독한 조건이다. 하지만 탈북자 대부분이 이렇게 시작한다. 브로커 없이 홀로 남한에 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김 씨는 다른 탈북자와 달리 200만 원씩만 주고 나머지는 거부했다. 하지만 브로커는 나머지도 달라며 재판을 걸었고 법원은 지불이 늦어졌으니 계약서대로 1인당 400만 원씩 주라고 판결했다. 김 씨 부부는 항소했지만 브로커가 김 씨의 주택보증금마저 차압하려 하자 결국 남한을 떠났다. 목숨을 걸고 ‘자유의 품’을 찾아왔지만 결국 ‘자유’를 포기한 셈이다.○ 브로커는 탈북 도우미? 사기꾼?김 씨는 얼핏 보면 피해자로 보이지만 브로커를 가해자라고만 보기 어려운 게 탈북자 문제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가 탈북자 입국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탈북자들은 이런 브로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브로커가 탈북자를 입국시키는 데는 돈이 든다. 중국에서 숨겨 주고 먹여 줘야 하고,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데 드는 교통비며 심지어 제3국에서는 벌금도 내야 한다. 운이 나빠 체포되면 감옥에 가야 하고, 김 씨처럼 한국에 들어온 뒤 약속한 돈을 안 주고 잠적하면 끊임없이 찾아내 독촉해야 한다.▼ 北, 탈북자 회유 전문 공작기관까지 만들어 ▼이런 브로커가 없다면 90% 이상의 탈북자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 브로커들은 탈북자에게서 받은 돈을 밑천으로 또 다른 탈북자들을 데려오고 생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탈북 브로커는 필요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문제는 비용이 적정한가이다. 이동수단과 통로가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100만∼250만 원 선이라는 말이 많다. 250만 원을 넘기면 탈북자 사회에서 ‘악덕 브로커’로 분류된다. 비록 극소수이긴 하지만 300만∼400만 원을 요구하는 브로커도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 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거액을 요구한 후 받지 못하면 여성의 경우 성폭행까지 하는 브로커도 있다고 한다.탈북자는 대부분 이 비용을 지불하고 매우 어렵게 정착생활에 들어간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점차 자리를 잡는다. ○ 재입북은 절망 끝 결단 아닌 새로운 희망?김 씨 부부가 북한으로 돌아간 것은 단순히 브로커의 횡포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그 나름대로 영악한 사람이다. 그는 과거 수차례 중국을 넘나들며 밀수를 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체포돼 처벌받기 직전 약혼녀를 데리고 탈출했다.그는 북한에 있을 때 소를 훔치기도 했고, 중국에서 지프를 훔쳐 팔아먹기도 했다고 지인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소도둑은 북한에서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중범죄다. 탈북의 그 위험한 순간에 중국에서 약혼녀와 방을 함께 쓸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고 칼을 들고 위협까지 했다고 한다. 탈북 과정에서 잠잘 때 방은 보통 남녀로 구분해 사용하게 한다. 이 때문에 지인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김 씨 부부는 공식 결혼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한에서 임대주택을 각각 받았다. 김옥실 씨는 곧 임대주택을 반환하고 임대보증금을 받아 김광호 씨와 살림을 꾸렸다. 이후 이들은 2년 동안 여기저기서 돈을 벌었다. 보통 재입북하는 탈북자는 임대주택은 국가에 반환하고 임대보증금을 되찾은 뒤 시중은행 및 지인 등에게서 최대한 돈을 빌려 나간다. 김 씨도 그랬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남한 생활 2년이면 최소 3000만 원 안팎의 재산을 모았을 것으로 추측된다.북한에서 3000만 원은 엄청난 돈이다. 50만 원이면 4인 가족이 어렵게나마 1년을 먹고살 수 있는 북한 실정을 감안하면 이들은 북한에서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수중에 넣었을 것으로 보인다. ○ 북한의 새로운 탈북자 정책과거엔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려움에 봉착해도 그냥 버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북한에 돌아가면 처벌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북한은 탈북자를 회유해 재입북시키는 수법으로 남쪽으로 간 탈북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들이 돌아와 남한 사회를 비난하면 남쪽에 대한 주민들의 환상을 막을 수 있고 탈북도 그만큼 줄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를 위한 전문 공작부서까지 생겨나 북한의 가족을 동원해 남한의 탈북자를 회유하고 있다. 한 탈북자는 “김 씨 부부를 회유한 탈북 여성이 있지만 수사 당국이 증거가 없어 체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탈북자 사회에선 앞으로 이런 재입북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 탈북자 재입북 북한 정권에 이롭지만은 않아하지만 탈북자들이 계속 돌아오면 북한으로서도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정숙 씨 귀환 때도 말로는 남쪽에서 온갖 핍박을 다 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정작 주민들은 “까무잡잡한 여자가 5년 만에 귀부인이 돼 나타났다”고 쑥덕댔다. 거기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몰래 숨겨 온 돈으로 잘살게 되면 주민 여론이 문제다. 그렇다고 처벌하면 용서를 강조했던 당의 정책에 큰 흠집이 생긴다.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 때문에 최근 북한 당국에선 새로 회의를 열고 탈북자 정책의 방향을 수정했다고 한다. 북한으로 되돌아오게 하지 말고, 어려움에 빠진 탈북자를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로 꾀어 보낸다는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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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신 다이제스트]그리스 통계청장, 재정적자 부풀린 혐의로 피소

    안드레아스 게오르기우 그리스 통계청장이 재정적자 규모를 고의로 부풀린 혐의로 수사 당국에 의해 형사 고발됐다. 게오르기우 청장은 2009년 재정적자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12%에서 15.8%로 부풀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이 수치에 기초해 2차 그리스 구제금융 프로그램을 만든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의 조치도 그 타당성이 의문시되게 됐다. 유죄가 인정될 경우 게오르기우 청장은 5∼10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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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린턴 美국무, 빚더미에서 해방

    2008년 미국 대선 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 고배를 마셨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사진)이 당시 졌던 빚 2500만 달러(약 267억 원)를 최근에야 완전히 갚았다. 2008년 당시 ‘힐러리 대선캠프’ 측은 22일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지난해 9월 말 7만3000달러 정도 남아있던 빚을 최근 다 청산하고도 오히려 20만5000달러가 남았다고 밝혔다. 힐러리 장관이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경쟁하면서 진 선거 빚 2500만 달러는 미국 경선 사상 최다 액수였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도 약 3000만 달러의 자금이 남았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당내 경선에선 패했지만 정식 본선에선 자신을 적극 밀어준 힐러리 장관에게 ‘보은’하기 위해 빚을 대신 갚아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실제 오바마 대통령은 이 빚을 갚아주지 않았다. 오바마 지지층 내에서 경선 때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하느라 쓴 돈을 왜 갚아줘야 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그 대신 오바마 대통령은 힐러리 장관을 도와주라는 몇 번의 지지 발언은 해주었다. 힐러리 장관은 2008년 말 2500만 달러 중 1320만 달러는 선거캠프에 넘기고 나머지만 떠안았다. 이후 자신의 주요 연설을 CD에 담아 장당 50달러를 받고 파는가 하면 선거 운동 기간 중 확보한 e메일 명단을 팔기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힐러리 장관의 빚을 갚기 위해 제일 수고한 사람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공직자로 모금활동을 할 수 없는 아내를 대신해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지자들에게 후원을 당부하는 e메일을 지속적으로 보냈다. 또 매년 5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보내준 사람 중 한 명을 선정해 뉴욕에서 야구경기나 공연 등을 보면서 하루 동안 자신과 보낼 수 있는 이벤트도 꾸준히 열었다. 이 부부의 4년이 넘는 각고의 노력 끝에 힐러리 장관은 국무장관직 사퇴를 앞두고 드디어 빚더미에서 해방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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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준영 전남지사, 도의회 업무보고 도중 ‘물세례’ 봉변

    박준영 전남지사가 23일 도의회 본회의 임시회에서 도의원에게 물세례를 받았다. 이에 도의회는 개회 첫날부터 정회했으며 도는 규탄성명을 내는 등 파행을 빚고 있다. 도지사가 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의원에게 봉변을 당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통합진보당 안주용(비례) 도의원은 이날 오전 11시 20분께 제274차 도의회 본회의 임시회에서 2013년 도정업무 보고를 하던 박준영 지사에게 "도지사를 인정할 수 없다"며 다가가 컵에 들어 있는 물을 끼얹었다.안 의원은 "8일 박 지사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대선 후보에 대한 충동적 호남 몰표' 발언에 대해 선(先) 사과가 없었으며 의사진행 발언과 5분 발언 등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물세례를 맞은 박 지사는 잠시 발언을 중단하고 물을 닦고 나서 준비한 도정업무 보고를 마쳤다. 이후 김재무 도의회 의장은 "불미스런 폭력사건이 발생했다"며 정회를 선언하고 20여분 뒤 안 의원을 질서 유지차원에서 본회의장 출입제한 조치를 한 후 의사일정을 진행했다.안 의원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하고 "사과와 반성 없이 도정연설을 진행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으며 전남도민과 호남을 무시한 오만과 독선의 극치다"고 비판했다. 그는 "박 지사에 대한 사과는 아직 마음의 정리가 되지 않았다. 추후 되돌아 보겠다"며 "(하지만) 의회 운영 과정에서 절차를 무시하고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에 대해 도의회와 도의원께 사과드린다"고 덧붙였다.도의회는 본회의장에서 의사진행 과정에서 물컵 투척 사건이 발생한 점에 주목, 정확한 진위를 파악하는 한편 안 의원을 의회 윤리위원회에 넘길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전남도는 성명을 내고 "신성한 민주주의 상징과 토론의 심장부인 의사당에서 불법 폭력행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그야말로 의회정치를 포기한 심각한 도전행위로 개탄을 금할 수 없다"며 "안 의원은 도민의 대표인 도지사에게 폭력을 행사한 점에 대해 도민 앞에 사과하라"고 촉구했다.이어 "안 의원에 대한 상응한 조치가 이뤄지고 앞으로 이런 사태의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도의회 임흥빈 의원도 "이유를 막론하고 민의의 전당에서 벌어진 폭력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재발방지 약속, 도의회 차원의 진상 규명, 윤리위원회 통한 징계 등을 요구한다"며 "이같은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말했다.한편, 박 지사는 8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대선에서 보여준 호남 몰표에 대해 "무겁지 못하고 충동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 201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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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힐러리, 2008년 경선 빚 267억원 드디어 다 갚았다

    2008년 미국 대선 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 고배를 마셨던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당시 졌던 빚 2500만 달러(약 267억 원)를 최근에야 완전히 갚았다. 2008년 당시 '힐러리 대선캠프' 측은 22일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면서 지난해 9월 말 7만3000달러 정도 남아있던 빚을 최근 다 청산하고도 오히려 20만5000달러가 남았다고 밝혔다. 힐러리 국무장관이 2008년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경쟁하면서 진 선거 빚 2500만 달러는 미국 경선 사상 최다 액수였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그해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고도 약 3000만 달러의 자금이 남았었다. 이 때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당내 경선에선 패했지만 정식 본선에선 자신을 적극 밀어준 힐러리 장관에게 '보은'하기 위해 빚을 대신 갚아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실제 오바마 대통령은 이 빚을 갚아주지 않았다. 오바마 지지층 내에서도 경선 때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하느라 쓴 돈을 왜 갚아줘야 하느냐는 비판도 나왔다. 대신 오바마 대통령은 힐러리 장관을 도와주라는 몇 번의 지지발언은 해주었다. 힐러리 장관은 2008년 말 2500만 달러 중 1320만 달러는 선거캠프에 떠넘기고 나머지만 떠안았다. 이후 자신의 주요 연설을 CD에 담아 장 당 50달러를 받고 파는 가하면 선거 운동 기간 중 확보한 e메일 명단을 팔기도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힐러리 장관의 빚을 갚기 위해 제일 수고한 사람은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공직자로 모금활동을 할 수 없는 아내를 대신해 클린턴 장관은 지지자들에게 후원을 당부하는 e메일을 지속적으로 보냈다. 또 매년 5달러 이상의 후원금을 보내준 사람 중 한명을 선정해 뉴욕에서 야구경기나 공연 등을 보면서 하루 동안 자신과 보낼 수 있는 이벤트도 꾸준히 열었다. 이들 부부의 4년 반이 넘는 각고의 노력 끝에 힐러리 장관은 국무장관직 사퇴를 앞두고 드디어 빚더미에서 해방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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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한국 ‘탈북자 간첩’ 딜레마] 학력-경력 위조

    북한 화교 출신 유모 씨(33)의 ‘탈북자 위장입국 및 간첩사건’은 한국 내 탈북자 사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경력 사기와 관계 당국의 부실한 관리 실태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례다.유 씨는 서울시에 제출한 인사 서류에 함경북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고 적었다. 언론 인터뷰에선 청진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유 씨는 경성의전에 입학은 했지만 졸업하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유 씨의 말은 둘 다 거짓이었지만 탈북자들이 유 씨처럼 경력을 속였다고 불이익을 받은 전례는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이런 일부 탈북자의 거짓말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내막을 아는 탈북자들 사이에서 비난을 받을 뿐이다.탈북자들의 경력 사기에는 몸값을 부풀리려는 일부 탈북자의 그릇된 사고와 자극적인 증언이나 고위급 탈북자에게만 신경을 쓰는 한국 사회의 풍토, 거짓인 줄 뻔히 알면서도 팔짱 끼고 지켜보기만 한 정보 당국의 무책임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짓 권하는 사회“유명 예술대를 나와서 김정일 앞에서 공연한 유능한 예술인.”“북한 주요 기관에서 비밀을 많이 다뤘던 탈북자.”한국의 언론에는 이와 비슷한 유형의 탈북자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하지만 실제 그들의 말이 맞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북한에서 대단한 일을 했다고 주장할수록 다른 행사에 초청받을 기회와 개인 수익이 늘어난다는 점이다.물론 언론을 상대로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탈북자가 많지는 않다. 또 북한이 한국 언론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그대로 다 드러낼 수 없는 탈북자들로서는 일부 자신의 과거를 가공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동정론도 없지 않다. 그러나 몸값을 높이려고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일부 탈북자로 인해 북한의 실상이 한국 사회에 왜곡돼 전달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두고 탈북자만 탓할 수는 없다. 자극적인 소재만 찾는 한국 사회의 인식이 이들에게 ‘생계형’ 거짓을 권하는 경우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때때로 교회에 간증하러 다닌다는 한 탈북자는 “북에서부터 모태신앙을 가졌다거나 중국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기적을 경험했다는 등의 소재가 없으면 다시 불러주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생활고에 허덕이는 탈북자들에게 수십만 원의 강연비는 매우 큰돈이다.점점 자극적인 소재에만 관심이 쏠리게 되니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거짓말쟁이라는 굴레를 쓰고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이는 탈북자 사회 전체의 신뢰성을 동반 하락시키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탈북자의 경력 위조는 한국의 ‘학벌 중시 풍조’와도 연관이 있다. 적어도 북한의 그럴듯한 경력이나 학벌이 있어야 쉽게 취직할 수 있다는 것은 탈북자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렇다 보니 검증되지 않는 경력을 자꾸 만들어내는 것이다. 탈북자들이 거짓 행세를 할 때 이를 적발하거나 정정할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은 한국의 정보기관이다. 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해 조사받을 때 증언했던 경력 자료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북자들이 사회에 나가서 주장하는 경력이 다르다는 것은 쉽게 비교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은 신원 확인에 매우 인색하다. 경력을 과장해도 처벌받을 확률은 제로이고 오히려 이득을 취할 수 있는 확률은 큰 상황에서 탈북자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는 뻔한 일이다.○ 몇 번 신문으로 결정되는 북한 경력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한 뒤 일차적인 신문을 받는 합동조사기관 역시 인력과 전문성 부족 문제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엔 탈북자들이 한 달 평균 100명 남짓 입국하지만 과거에 많이 입국할 때는 200∼300명씩 오기도 했다. 많이 입국할 때는 조사 인력이 부족해 진짜 의심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신문 몇 번으로 대충 넘어가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한 뒤 가장 많이 숨기는 것이 학력이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더라도 대학 졸업자라고 하면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필요한 4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탈북자는 “솔직히 말하면,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집 근처 대학을 나왔다고 주장하면 넘어가는 사례들도 있다”고 말했다.한국에 이미 정착한 가족이 있는 탈북자는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아예 탈북 단계에서부터 대학 졸업생으로 위장해서 입국하는 사례가 최근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증빙서류를 갖고 한국에 오는 탈북자가 드물기 때문에 진술에 의존해 경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약점을 파고드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조사관의 전문성이 높지 않으면 이를 쉽게 밝혀내기 힘들다. 정보기관의 한 전직 직원은 “탈북자 조사관은 승진이 잘 안 되는 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 우수한 수사 인력들이 기피하는 자리”라고 말했다.정작 더 큰 문제는 관계 기관에서 처음 조사하는 과정에 밝힌 경력은 나중에 거짓임이 밝혀지더라도 수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탈북자는 “나중에 서류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게 돼 정정하려고 했더니 ‘한번 작성된 서류는 고칠 수 없다’고 말해 지금도 못 고치고 있다”며 “잘못된 기록은 재조사 과정을 거쳐 고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유 씨의 사례는 앞으로 비슷한 사건 재발을 막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이 어떤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만약 전문성을 갖춘 수사관이 조사를 했다면 유 씨가 화교라는 사실을 초기에 밝혀냈을 가능성이 크다. 그가 조사 과정을 통과한 뒤라도 유 씨가 경력을 부풀리는 것을 보고 주의를 주거나, 유 씨가 화교라는 주위 탈북자의 신고를 접한 뒤 재수사를 거쳐서 유 씨의 탈북자 자격을 박탈했다면 그가 공무원으로 취직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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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한국 ‘탈북자 간첩’ 딜레마]“혹시 내 정보도 샜나… 北가족 괜찮을까”

    “아침에 사무실에 들어가 기분 좋게 인사했는데 저를 보는 시선이 이상했습니다. 한 직원이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이었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혹시 나도 같은 사람으로 보는 것이 아닌지 신경이 쓰여 업무를 제대로 볼 수 없었어요. 오늘 완전히 ‘멘털 붕괴’입니다.”서울시 공무원 유모 씨가 간첩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한 탈북자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다. 최대 1만 명 이상의 신상정보가 북한으로 빼돌려져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여기에 유 씨가 성공한 탈북자로 과거 여러 차례 언론에 나왔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탈북자 사이에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서울 강서구 전영수(가명·53) 씨는 21일 “북한에 자식을 두고 왔고 북한 당국은 내가 한국에 온 줄도 모른다”며 “내 정보도 넘어가 북한 자식들이 큰 화를 당할 것 같아 가슴이 너무 떨린다”고 말했다.이번 사건으로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다른 탈북자들이 사회적 편견의 희생물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국내 모 정부 산하 연구기관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김혁 씨(31)는 “최근 들어 탈북자들에게 공직 진출의 길이 확대되는 분위기였는데 이번 사건은 그 분위기를 한꺼번에 잠재울 수 있는 충격적 사건”이라며 “탈북자 전체를 잠재적 간첩으로 보는 사회적 시각이 만들어질 것 같아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탈북단체들도 큰 우려를 나타내며 현재 탈북자 정보 관리 시스템의 재정비를 촉구했다. 북한민주화위원회 홍순경 위원장은 “중국을 통해 북한에 접촉한 흔적을 철저히 조사하고 탈북자 정보 관리와 관련된 시스템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요즘은 보험회사도 탈북자 명단을 갖고 있고 탈북자 관련 책자나 언론 등을 통해 탈북자들의 정보가 많이 새나가고 있다”며 “이런 부분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간첩 몇 사람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열심히 한국 사회에서 생활하는 많은 탈북자가 고립될 수 있다”며 “탈북자들을 감싸 안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주성하·박희창 기자 zsh75@donga.com}

    • 201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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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한국 ‘탈북자 간첩’ 딜레마]간첩 정체는 ‘탈북자 행세한 화교’였다

    탈북자들의 인적 정보를 북한으로 빼돌리다 체포된 서울시청 공무원 유모 씨(33)는 탈북자로 가장해 위장 입국한 북한 화교 출신인 한족(漢族)으로 21일 알려졌다. 이번 사건이 ‘탈북자 간첩사건’이 아닌 ‘화교의 탈북자 위장 입국 및 간첩활동’ 사건임을 명백히 보여주는 대목이다.한 소식통은 “국가정보원이 약 5년 전부터 유 씨가 탈북자가 아니며 북한도 몰래 다녀온다는 신고를 받고 감시하다 이번에 증거를 잡고 체포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2011년경에도 경찰과 기무사가 신고를 받고 유 씨의 내사에 착수했다가 손을 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보당국이 주시하는 기간에도 유 씨는 탈북자 담당 공무원에 버젓이 임명돼 수천 명의 목숨과 직결될 수도 있는 민감한 탈북자 정보들을 빼돌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보당국이 탈북자 정보 유출의 파장보다는 ‘실적 만들기용’ 덫을 놓는 데 집착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한 탈북단체장은 “유 씨처럼 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정착한 북한 출신 화교들이 여러 명 있는 것으로 안다. 이를 관계당국에 제보했지만 별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자신이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유 씨는 최근 여동생까지 탈북자로 위장해 북한에서 빼내 한국에 데려왔으며 이 여동생은 현재 관계기관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의 북한 및 한국 내 행적을 관련 소식통들의 설명을 빌려 종합해 재구성한다.유 씨가 한국에 도착한 것은 2004년 4월.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 57기로 졸업한 그는 대전에 정착했다. 싹싹한 성격에 반한 담당 형사는 그를 양아들로 삼았다. 이후 서울 소재 모 명문사립대 중국어과에 입학하면서 서울 서대문구와 송파구에서 살았다. 유 씨는 서울시 공무원이 되기 전 중국에서 장뇌삼이나 그림을 가져와 북한산이라고 주장하며 팔았다. 2008년엔 환치기 수법으로 26억 원을 중국에 보내려다 적발돼 서울동부지검의 조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환치기 업자들은 벌금형을 받았지만 유 씨는 단순 가담자라는 이유로 큰 처벌은 면했다.유 씨는 한국에 정착한 뒤에도 북한에 3, 4번 밀입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첫 밀입국은 2006년경으로 어머니 사망 소식을 듣고 방북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화교인 유 씨는 중국 여권을 보유하고 있고, 북한엔 화교로 등록돼 있어 중국을 거쳐 남북을 오가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유 씨는 이때 북한 보위부에 포섭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과 중국을 넘나들며 장사하는 화교 중엔 북한 보위부 첩자로 암약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북한 보위부는 이들의 통관 편의를 봐주는 대신 중국과 한국의 탈북자 정보 등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 역시 부친의 장사 편의를 봐주고 아무 때나 북한에 와서 가족을 만나도 된다는 회유에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 유씨, 청진의대 나왔다는 말도 거짓말 ▼이후 유 씨는 한국에서 한 남북청년모임 회장을 맡는가 하면 한국의 각종 북한 인권단체에 가입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 유 씨가 화교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한 탈북자는 “그는 북한인권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태국까지 갈 정도로 열성이었다”며 “화교가 탈북자 인권활동을 벌인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 씨의 북한 생활유 씨는 모범적인 정착 사례로 한국의 여러 언론매체에 자주 등장했다. 유 씨는 함경북도 청진시를 고향이라고 소개했고 청진의대를 나온 뒤 외과의사를 1년간 하다 탈북했다고 주장했다.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유 씨의 고향은 두만강 옆 함경북도 회령시 오봉리이며 1990년대 초반 회령시내 성천동으로 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한족인 유 씨의 할아버지 이름은 류린당이며 부모 역시 한족으로 알려졌다. 유 씨의 본명은 류광일이다. 북한에서는 유 씨의 성을 류 씨로 표기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에서 화교들은 일반 북한 주민과 별반 다를 바 없이 가난했다. 하지만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급격한 경제성장을 한 뒤 화교들도 1990년대부터 급속히 부를 축적했다. 지금은 북한에서 가장 선망받는 집단으로 떠올랐다. 자유롭게 중국을 왕래할 수 있는 화교들은 중국 공산품과 북한 농수산물을 거래하는 무역업으로 큰돈을 벌었다.성천동에는 화교가 세 가족이 살고 있었는데 유 씨 집안은 크게 사업을 벌인 다른 두 가족보다는 사정이 좋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높은 담장을 세우고 사나운 개를 키울 정도로 동네 주민들과는 다른 삶을 살았다. 유 씨는 청진시 포항구역 수북동의 화교 학교에서 6년간의 중학교 과정을 마쳤다. 북한에선 중국 국적자인 화교는 일반 중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다. 또 원칙적으로 대학도 다닐 수 없다. 유 씨가 졸업했다고 거짓 증언한 청진의대는 화교 학교 바로 옆에 있다.유 씨는 중국의 친척집을 방문했다가 한국의 발전 소식을 접한 뒤 다른 탈북자들 틈에 섞여 한국으로 왔다. 북한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실정을 잘 알고 있어 관계기관을 속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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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상 노출 탈북자 협박대상 될수도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 유모 씨가 간첩 혐의로 구속되면서 탈북자 지원과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공안당국은 유 씨가 관리하던 서울 소재 탈북자 명단과 주소가 북한에 넘겨졌을 경우 탈북자 사회를 붕괴시킬 수 있을 정도로 파급력이 큰 사안으로 보고 있다. 유 씨가 관리해 온 탈북자 정보는 1만여 명분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2만4000여 명의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다. 주소 및 신상정보가 노출되면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이 우선 위협받게 된다. 북한은 가족을 인질로 삼아 탈북자를 회유하거나 협박해 간첩활동을 지시할 가능성이 크다. 가족을 죽인다고 협박하면서 간첩활동을 강요하면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어렵다. 과거 탈북자 간첩사건들도 북한 보위부가 가족을 인질로 삼아 협박한 사례가 대다수다. 지난해 북한으로 재입국한 박인숙 씨와 김광혁 고정남 부부도 가족을 처벌한다는 압력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이 주시하는 몇몇 주요 탈북자는 1997년 이한영 씨 피살사건 같은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탈북자 대다수는 임대아파트에서 살기 때문에 쉽게 이사 갈 처지도 못 된다. 이번 사건으로 말단 계약직공무원이 국가 안보에 중요한 극비 정보를 빼낼 수 있도록 방치된 관리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보안유지를 위해서는 탈북자 정보를 소수의 제한된 공무원만 다루도록 해야 하는 게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탈북자의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선 지자체 단위의 행정업무가 필요해 정보가 지자체 단위에까지 공유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우선적으로 계약직원에게 맡겨진 탈북자 정보관리 업무를 상위 정규직에게 맡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유 씨가 어떤 이유로 간첩활동을 했는지도 중요한 포인트다. 당국은 “간첩 임무를 위해 위장 탈북했다”는 주변 탈북자들의 참고인 진술로 미뤄 유 씨가 처음부터 위장 탈북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탈북 이후 유 씨 가족이 있는 함경북도 보위부에 의해 포섭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국정원은 유 씨가 탈북자 정보를 북한에 넘기려는 목적으로 서울시 공무원에 지원했는지, 공무원이 된 뒤 포섭이 됐는지를 중점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유 씨는 서울시에 취직한 뒤 야간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주말에는 ‘영한우리’라는 남북 청년모임을 만들어 탈북 대학생들의 정착을 돕기도 했다. 여러 차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름을 알린 것도 탈북자 정보 수집에 도움을 준 것으로 당국은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은 탈북자들의 정착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잇따라 터지고 있는 탈북자 간첩사건과 재입북사건은 편견과 불신에 시달리는 탈북자들의 입지를 더욱 좁게 만들고, 궁지에 몰린 탈북자들을 간첩으로 활동하게 만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최예나·주성하 기자 yena@donga.com}

    • 20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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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외국인 휴대전화 반입-통화 허용”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이 앞으로 휴대전화를 갖고 들어가 외부와 통화할 수 있게 된다고 중국 관영 신화(新華)통신이 20일 보도했다. 지금까지 북한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은 세관에 휴대전화를 맡겼다 출국할 때 찾아가야 했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과 이집트 합작 휴대전화 업체 ‘고려링크’의 한 이집트인 기술자는 “7일부터 북한 세관에 휴대전화기 식별번호를 등록하기만 하면 휴대전화를 갖고 들어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광대역부호분할다중접속(WCDMA) 방식의 3세대(3G) 휴대전화 사용자는 북한에서 판매하고 있는 외국인 전용 50유로(약 7만 원)짜리 ‘고려링크 유심(USIM)카드’를 사서 끼우면 국제전화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외국인이 휴대전화를 갖고 들어가더라도 ‘국내 전용 유심카드’를 사용하는 북한 주민과 통화는 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휴대전화 반입 허용은 해외의 대북 투자자들이 가장 큰 불만을 나타내는 이른바 ‘3통(통행 통신 통관)’ 문제 중 하나가 풀리게 된 것으로 매우 주목되는 조치이다. 북한이 외국인 휴대전화 반입 허용 방침을 개성공단에 출입하는 한국 국민들에게도 적용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3-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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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주성하]리처드슨 ‘순진한 방북’… 결국 北에 놀아났다

    빌 리처드슨 전 미국 뉴멕시코 주지사가 평양에 찾아갔던 9일 북한 TV에선 ‘내가 본 나라’라는 영화가 방영됐다. 2009년 5월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한 직후 일본이 미국과 공동으로 북한을 강경 제재하려다 실패한다는 줄거리의 이 영화에 바로 리처드슨 전 주지사가 등장한다. 영화 속에서 핵실험에 따른 제재를 천명한 미국과 일본에 맞서 김정일이 “추출한 플루토늄을 전량 핵무기로 만들겠다”고 강경대응하자 이에 굴복한 미국은 대화로 방향을 선회해 리처드슨 당시 뉴멕시코 주지사를 특사로 보내려 한다. 영화에는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의원들이 “그런 높은 급의 특사를 파견하면 안 된다. 당장 막아야 한다”고 격앙돼 소리치는 장면도 나온다. 북한이 이 영화를 방영한 속셈은 뭘까. 영화 속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2009년 핵실험 이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에 항복을 표시하기 위해 선정한 특사다. 북한은 그런 목적의 대북 특사가 지난해 12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로켓 ‘은하 3호’를 발사한 직후 다시 북한에 찾아온 것처럼 선전하려 한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 주민들에게 주입시키려는 메시지는 영화의 맨 마지막에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남성합창단의 노래 가사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정일 장군님 온 세계를 이끄신다. 김정일 장군님 만만세….” 리처드슨 전 주지사 일행은 자신들의 평양 방문을 계기로 이런 영화가 방영된 사실을 전혀 몰랐을 것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 성공에 한껏 들떠있는 북한은 마침 제 발로 찾아온 이들을 김정은 시대에도 북한이 세계 정치를 좌우한다는 것을 선전하는 홍보모델로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리처드슨 전 주지사는 이번 방북 목적이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한국계 미국인 배모 씨 억류 사태로 교착상태인 북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귀국길에 오른 10일 베이징 공항에서 “배 씨의 석방과 관련한 긍정적인 답변을 듣는 등 성과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욕타임스는 이날 “이번 방북으로 거둔 한 가지 성과가 있다면 억류된 배 씨에게 그의 아들이 쓴 편지를 전달해주겠다는 약속을 북한에서 받은 것”이라고 꼬집었다. 신문은 또 방북단을 ‘쓸모 있는 바보’ ‘김정은의 정당성을 확인시키려는 북한 선전당국의 먹잇감’이라고 비난한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과 존 볼턴 전 유엔 대사의 말을 소개하기도 했다. 미 국무부도 이번 방북에 대해 “우리는 거기에 관여하지 않았다. 시점이 부적절했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남쪽에도 북한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명분으로 어떻게든 평양을 찾아가 몸값을 높이려는 인사가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은 리처드슨 일행의 초라한 방북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201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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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룸/주성하]북한 신년사 한줄로 요약하기

    김일성대 시절, 겨울방학 뒤 의례적으로 진행되던 문답식 학습경연이라는 연례행사가 있었다. 대학 내 14개 학부가 3일 동안 수업도 안 하고 강당에 모여 월드컵처럼 토너먼트를 치러 승자를 가린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각 학부는 다시 방학이 끝나기 며칠 전부터 학생들을 지방에서 불러올려 밤새 모범답안을 외우게 한다. 정식 경쟁이 시작되면 제비뽑기로 선택된 ‘운 없는’ 학생들이 연단에서 수천 개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땀을 빼며 상대가 낸 질문에 대답해야 했다. 대답을 잘못한 학생은 ‘미제’보다 더 큰 증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살벌한 사상투쟁회의 대상이 되고, 졸업할 때까지 찍혀버린다. 하긴 그 학생 때문에 학급 소대장부터 학부 당비서까지 수십 명이 줄줄이 연좌제로 비판무대에 서야 한다. 문답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제 중 하나가 신년사 관련이었다. 살기 위해선 지난해 성과와 올해의 각종 과제를 열거한 신년사 분량보다 결코 적지 않은 답안을 줄줄 외워야 했다. 그렇게 혹독하게 신년사 공부를 하고 나니 6년 뒤 대학을 졸업할 때쯤 ‘득도’의 경지에 이르게 돼 한 가지 깨달음은 얻었다. “신년사는 현실과 동떨어진 헛소리다”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신년사 내용대로라면 북한은 오래전에 선진국이 돼 있어야 한다. 과장되고 거창한 문장과 추상적인 목표 제시로 가득 찬 신년사 정도는 나도 하루면 쓸 자신이 있다. 올해는 김정은이 직접 신년사를 낭독해서인지 주민들에게 한 달 기간을 주고 이를 몽땅 외울 것을 요구한다고 한다. 내가 일찍 탈북한 것이 참 다행스럽다. 남쪽에도 북한 신년사가 발표되면 단어 사용 빈도까지 따지며 열심히 분석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심지어 수십 쪽짜리 보고서도 있다. 그런데 신년사와 현실은 어떤가. 2010년 북한 신년공동사설에는 “북남관계 개선의 길을 열어야 한다.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적극 실현해야 한다. 민족공동의 이익을 첫 자리에 놓고 화해를 도모하며 협력사업을 추동해야 한다”는 온갖 좋은 말이 다 있었다. 이를 보고 남쪽의 박사 8명이 “남북관계의 개선과 경제협력의 증진을 위한 의지를 강하게 표명함. 매우 유화적인 대남태도를 보임”이라는 공동 분석보고서를 내놓았다. 하지만 그 순간 서해 어디쯤에선 북한 특공조가 잠수함 공격 맹훈련을 벌이고 있었다. 불과 석 달도 안 돼 천안함이 공격당했고 연말엔 연평도 포격으로 한반도가 전쟁 직전까지 갔다. 북한이 핵실험을 한 2006년에도 전문가들은 “극단적인 대결구도나 관망보다는 실용적인 접근태도를 견지할 것으로 전망됨”이란 공동사설 분석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올해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2013년을 ‘사회주의강성국가 건설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거창한 창조와 변혁의 해’라고 규정했다. 이런, 신년사마저 꼭 빼닮은 3대 세습이라니. 그러니 오래전에 내가 얻은 깨달음도 여전히 유효할 것 같다. 그냥 안들은 셈 치는 거다.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 2013-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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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신년사는 朴당선인에 정책전환 촉구한 것”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향한 북한의 화해 제스처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2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2013년 신년사는 동족대결로 초래될 것은 전쟁뿐이라고 경종을 울렸고 이는 이명박 정권과의 차별화를 강조한 (박근혜) 당선자에게 대담한 정책전환을 촉구한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한 달간 북한이 대남기조에 점진적인 변화를 보여 왔으나 박 당선인을 향해 대북정책 전환을 직접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1일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대결인가 대화인가, 전쟁인가 평화인가, 제2의 이명박인가 아닌가 선택하라”는 공개질문장을 발표했다. 이후 북한은 박근혜 당선인에 대한 실명 비난을 자제해 왔다. 대선 이튿날인 12월 20일 조선중앙통신은 이례적으로 ‘새누리당 후보의 당선’ 결과를 보도했다. 같은 달 27일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은 국방백서 발간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를 비난하면서도 “차기 정부는 이명박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며 이 대통령과 박 당선인 사이에 선을 그었다. 1일 신년사에서 북한은 남한 정부에 대한 비난 내용을 아예 담지 않았다. 노동신문도 2일 “김정은 동지의 신년사를 높이 받들자”며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여 나가야 한다”고 선동했으나 대남 비방 내용은 없었다. 북한 국방위원회는 이날 담화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전날 북방한계선(NLL) 사수 발언 등을 언급하며 “반역의 무리들은 그대로 숨쉬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북남관계는 지난 5년처럼 또다시 대결과 전쟁이냐, 대화와 평화냐 하는 엄숙한 기로에 놓여 있다”고 말해 대북정책 기조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떠보기’ 성격이 큰 것 같다”며 “북한은 대화 공세를 펼치다가도 언제든 도발과 대남 위협으로 방향을 선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신들도 북한 신년사와 최근의 변화 기조에 주목했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그동안 박근혜 당선인을 ‘광적인 대립주의자’나 ‘파시스트’로 불렀지만 대선 이후 박 당선인에 대한 공격을 삼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신년사의 대부분을 경제발전에 할애했다”고 보도했다. 조숭호·주성하 기자 shcho@donga.com}

    • 2013-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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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북아 패권경쟁]주변국과 인적 네트워크 강화… 틈새외교 펼쳐야

    한국의 전문가들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미국 중국 일본의 분쟁과 마찰이 심화될수록 한반도의 긴장 역시 고조돼 경제와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런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여건은 결국 현명한 외교와 리더십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종욱 동아대 석좌교수는 한국 정부가 특정 이슈에 경직된 태도를 보이지 말고 주변국과의 협력과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미중일은 물론 북한까지 포함한 다양한 대화 외교를 복원시켜 신뢰를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안보의 초석인 한미동맹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중국과의 대화를 더욱 강화해 한국의 외교적 공간을 확대시키는 전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동북아 다자안보질서 구축에 힘을 쓰고 예방외교를 벌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외교안보는 미국에 크게 의지하지만 경제적으론 중국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인 한국은 미중 간 갈등 시 어느 한편을 택하기보다는 갈등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국과 주변국의 다양한 인적 네트워크 강화를 주문했다. 윤 교수는 “동북아 국가들 간의 인적네트워크 강화와 경제 문화적 협력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며 세계 3대 경제권의 지위를 굳히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는 “누구도 양보하기 힘든 영토분쟁이 계속되면 동북아의 미래는 없다”면서 “미래를 위해 민감한 이슈는 잠시 접어두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 소장은 철저한 계산에 기초한 틈새 외교를 주문했다. 이 교수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현실을 직시하고 틈새를 치고 들어가 국익을 극대화시키는 철저히 계산된 외교가 필요하다”며 “너무 공세적이거나 반대로 너무 위축되는 외교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 실력에 맞는 균형 외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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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의 여인’ 英 대처 前총리 비밀기록 공개

    1982년 1월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 총리(사진)의 아들인 마크 대처는 ‘죽음의 레이스’로 불리는 파리-다카르 랠리에 참가했다가 아프리카 사막에서 6일간 실종됐다. 그를 찾기 위해 알제리와 프랑스의 비행기 8대가 동원됐고 마크는 무사히 구조됐다. 2월 12일 대처 총리는 외교부에 “아들 구출에 소요된 비용은 내가 개인적으로 지불하겠다. 그래야 영국 납세자들에게 (개인적 필요 때문에) 한 푼의 세금도 사용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구에게 청구서를 내민단 말인가.” 외교부는 전체 구출 비용 2359파운드 중 국민 보호를 위한 공식적인 활동이라고 간주할 수 있는 비용을 뺀 1789파운드만 대처 총리에게 청구했다. 이 같은 내용은 28일 영국 국립문서보관소가 30년 만에 공개한 비밀기록에서 확인됐다고 AP통신 등 외신이 전했다. 1982년 영국의 가장 큰 사건은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전쟁이었다. 공개된 비밀문서는 대처 총리가 전쟁 승리에 대한 확신이 거의 없음에도 군을 포클랜드로 파병했음을 보여줬다. 대처 총리는 종전 뒤 “전쟁은 나에게 최악의 순간이었고 영국군이 (실패해) 돌아왔을 경우 ‘영국에 최악의 모욕이 됐을 것’”이라고 두려움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그는 영국이 영토도 지키지 못하는 종이호랑이 신세로 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기록 속에는 대처 총리의 ‘철의 여인’다운 강단도 나타났다. 전쟁 중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이 국제기구를 통한 협상을 제언하자 “알래스카가 침략을 당해 전쟁을 벌인다면 그땐 나도 이를 국제기구에 넘기겠다”고 되받았다. 또 아르헨티나군이 발사한 것으로 영국 군함을 침몰시킨 프랑스제 ‘엑조세’ 미사일을 당장 훔쳐오라고 지시했던 일도 이번에 공개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2012-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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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3 절반 “광복-6·25전쟁 발발 연도 모른다”

    올해 고등학교 졸업생 중 절반 이상이 광복을 맞은 해 또는 6·25전쟁 발발 연도 등 기초적인 역사도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남북 해상경계선인 북방한계선(NLL)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학생은 불과 12%에 불과한 반면 전혀 모르거나 관심이 없다는 학생은 44%에 이르러 통일안보 교육 개선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단법인 북한민주화위원회가 6·25전쟁 종전 60주년(2013년)을 앞두고 지난달 15∼30일 서울 경기 지역 12개 고교 3학년생 1168명을 대상으로 통일안보관을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고 25일 밝혔다. 광복을 맞은 해와 6·25전쟁 발발 연도를 아는 학생은 49%에 불과했다. 31%는 ‘하나만 안다’고 답했고 20%는 ‘둘 다 모른다’고 응답했다. NLL에 대해 ‘잘 안다’가 12%, ‘조금 안다’가 44%였다. ‘전혀 모른다’와 ‘관심 없다’는 대답도 각각 28%와 16%였다. 6·25전쟁에서 한국을 도운 유엔 16개 참전국을 모두 아는 학생은 6%에 그친 반면 ‘전혀 모른다’거나 ‘관심 없다’는 대답은 30%나 됐다. 통일과 관련해 ‘통일을 원한다’는 학생은 48%였으며 ‘통일이 안됐으면 좋겠다’는 대답은 34%였다. ‘통일이 되든 안 되든 별 관심이 없다’는 응답도 18%나 됐다. 애국가를 4절까지 다 아는 학생은 43%였지만 ‘1절만 안다’는 학생이나 ‘1절 일부만 안다’는 학생도 각각 20%와 3%로 조사됐다. 외국 언론도 이에 관심을 나타냈다. 미국 시사월간지 애틀랜틱 최신호는 “한국전쟁의 상처가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지만 전쟁은 젊은이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잊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잊혀진 전쟁’을 보여주는 사례로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군 복무기간을 ‘낭비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들었다.주성하·백연상 기자 zsh75@donga.com}

    • 2012-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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