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택

정성택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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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성택 기자입니다.

ne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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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14~2025-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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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부, ‘세계 장병·청년 통일안보 비전 발표대회’ 개최

    “여름훈련 기간과 겹쳐 힘들었지만 매일 새벽 2시까지 연습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28일 서울 잠실 롯데월드몰에서 열린 ‘2015 세계 장병·청년 통일안보 비전 발표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한 육군3사관학교 팀의 원영선 생도(22·4학년)는 이 같이 소감을 밝혔다. 원 생도는 팀에서 ‘그래피티(스프레이 페인트로 낙서처럼 자유롭게 그리는 그림)’를 맡았다. 이 팀은 통일 한반도의 모습을 그래피티와 비보잉, 팝핀 등 춤으로도 표현해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올해 처음 열리는 이번 행사는는 국방부가 광복 70주년을 맞아 통일의 주역인 청년들의 통일·안보에 대한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도록 마련한 자리. 발표 형식도 제한을 두지 않았다. 300여개 출전팀 중 예선을 거쳐 최종 본선에 오른 24개 팀은 토크쇼, 뮤지컬, 연극, 콩트, 연주, 마술쇼 등 다양한 형식을 선보였다. 최우수상을 수상한 해병대 연평부대 팀은 연극을 통해 국가와 개인의 삶이라는 선택을 놓고 고민하는 군인이 나라를 위해 희생한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깨닫는 과정을 그려냈다. 이날 행사장은 600석의 자리가 빈 곳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붐볐다. 대회에 참석한 장병들의 부모와 일반 시민 등도 함께 했다. ‘분단 없는 청년회’팀의 공군 제2방공유도탄여단 소속 은다빈 일병(20)의 어머니 박순영 씨(43)는 “아무 것도 모르던 아들이 통일과 안보의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이 대견했다”고 말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이날 행사에 참석해 입상한 팀들을 시상했다. 대상 1팀은 1000만원, 최우수상 1팀 500만원, 우수상 4팀 300만원, 장려상 2팀 200만원, 특별상 4팀에 100만원의 상금도 주어졌다. 이번 대회의 실무를 맡은 국방부 정신전력정책과 총괄 김이호 육군 중령은 “그동안 젊은 세대들에 대한 통일·안보 교육은 기성세대에 의한 주입식이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대회를 통해 우리 젊은이들도 그들만의 자유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통일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주역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경욱 정신전력정책과장은 “앞으로 통일을 이루는 날까지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통일안보 비전 발표대회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박민규 인턴기자 고려대 교육·사회학과 4학년}

    • 2015-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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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리지 않는다” 매일 아침 낭독하는 해병대

    ‘해병은 해병을 때리거나 다치게 하지 않는다’ ‘해병대는 해병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는다’ ‘해병은 선임을 존경하고 후임을 사랑한다’ ‘해병은 약자를 보호하고 힘든 일에 앞장선다’ ‘해병은 전우를 지키며 끝까지 함께한다’. 해병대가 최근 제정한 ‘5대 해병생활신조’다. 5월 해병대 2사단에서 발생한 폭행·가혹행위 사건 이후 부대 내 악습을 뿌리 뽑기 위한 조치다. 26일 해병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상훈 해병대사령관은 이 같은 해병생활신조를 제정해 23일부터 모든 예하부대에 실천하도록 지시했다. 앞으로 모든 해병부대는 매일 아침 해병생활신조를 낭독하고 일과를 시작한다. 해병대 관계자는 “생활신조에 반하는 장병이 확인되면 관련자 전원을 소속 변경 및 현역복무 부적합 심의 회부 등 인사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 해병대 2사단 소속의 A 일병(20)은 선임병들로부터 “군기가 빠졌다”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한 뒤 투신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이는 지난달 A 일병 부모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알리면서 뒤늦게 밝혀졌다. 해병대 관계자는 “해당 부대에서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A 일병을 보살피다 사고가 발생했다”며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 전 지휘관이 사소한 사건도 엄벌한다는 각오로 관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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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리지 않는다”…‘해병 5대 생활신조’ 첫 제정, 효과 있을까

    ‘해병은 해병을 때리거나 다치게 하지 않는다’ ‘해병대는 해병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는다’ ‘해병은 선임을 존경하고 후임을 사랑한다’ ‘해병은 약자를 보호하고 힘든 일에 앞장선다’ ‘해병은 전우를 지키며 끝까지 함께 한다’. 해병대가 최근 제정한 ‘5대 해병생활신조’다. 5월 해병대 2사단에서 발생한 폭행·가혹행위 사건 이후 부대 내 악습을 뿌리 뽑기 위한 조치다. 26일 해병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상훈 해병대사령관은 이 같은 해병생활신조를 제정해 23일부터 모든 예하부대가 실천토록 지시했다. 앞으로 모든 해병부대는 매일 아침 해병생활신조를 낭독하고 일과를 시작한다. 해병대 관계자는 “생활신조에 반하는 장병이 확인되면 관련자 전원을 소속 변경 및 현역복무 부적합 심의 회부 등 인사 조치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 해병대 2사단 소속의 A 일병(20)은 선임병들로 부터 “군기가 빠졌다”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한 뒤 투신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이는 지난달 A 일병 부모가 국가인권위원회에 알리면서 뒤늦게 밝혀졌다. 해병대 관계자는 “해당 부대에서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마음으로 A 일병을 보살피다 사고가 발생했다”며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 전 지휘관이 사소한 사건도 엄벌한다는 각오로 관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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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전협정 62주년]밴 플리트 장군이 극찬한 ‘백마고지 전투’는?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은 6·25전쟁에서 치른 전투 중 ‘백마고지(395m) 전투’를 가장 높게 평가했다. 그는 6·25전쟁 중에 이 전투에 대한 연구를 미 육군에 지시하고 미 제9군단 작전처는 사후검토보고서(AAR)를 작성해 전 미군 부대에 배포했다. 미군이 치른 전투가 아닌 한국군이 승리한 백마고지 전투를 밴 플리트 장군이 눈여겨봤던 것은 승리는 화력이 아닌 정신력이 이끈다는 교훈을 백마고지 전투가 일깨워줬기 때문이다. 백마고지 전투는 국군 9사단과 중공군 3개 사단이 강원 철원군 북쪽의 요충지를 놓고 1952년 10월 6일부터 10일간 치른 전투다. 휴전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판문점에서 열린 포로회담이 해결되지 않자 중공군의 공세로 시작된 대표적인 고지 쟁탈전이었다. 고지의 주인이 무려 24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지만 결국 우리 군이 방어에 성공한다. 중공군은 6·25전쟁을 기록한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저항해 북한을 지원했다는 뜻) 전쟁 경험 총결’에서 유일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있다. 백마고지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은 철원평야 지대를 끼고 있을 뿐 아니라 서울 및 후방에서 이어지는 국군의 주요 보급로가 통과하는 곳이었다. 아군과 적군 모두에 중요한 요충지였다. 중공군은 10월 6일 저녁 이곳에서 기습 공격을 개시했다. 기습 공격과 동시에 아군의 후방 쪽에 있던 봉래호의 둑을 파괴해 역곡천을 범람시켰다. 국군의 증원과 군수 지원을 차단한 것으로 압도적인 병력으로 고지를 지키고 있던 국군을 몰살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전쟁 막바지에 철원평야 일대는 적에게 절대 뺏겨서는 안 되는 곳임을 알고 있었기에 9사단 장병들은 총알이 떨어지면 적을 물어뜯어서라도 물리쳤다. 적 기관총에 전우들이 쓰러지면 자신의 몸에 폭약을 두르고 적 기관총 진지에 뛰어들었다. 이 전투에서 한국군은 3416명의 사상자를 냈다. 중공군은 무려 1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해 한동안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였다고 한다. 전쟁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자 밴 플리트 장군은 미군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불굴의 정신’이라고 판단했다. 그랬던 그에게 백마고지 전투는 더없는 모범사례였다. 미 육군의 사후검토보고서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한국군이 보여줬던 ‘사전불퇴(死戰不退)’, 즉 죽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정신이 승리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 백마고지 전투는 외신에 소개되기도 했다. 혁혁한 전과를 인정받은 국군 제9사단은 1966년 5월 맹호부대에 이어 베트남전 파병부대로 선정되었으며 그해 8월 베트남으로 이동해 닌호아 뚜이호아 깜라인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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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저균 관련 곧 현장조사… 다른 기지 반입의혹도 밝힐 것”

    5월 주한미군 오산 공군기지에서 발생한 ‘탄저균 배달사고’와 관련해 한미합동실무단이 조만간 주한미군기지에 대한 현장조사에 들어간다. 11일 구성된 한미합동실무단은 현장조사를 위한 사전 준비를 진행해 왔다. 백승주 국방부 차관은 24일 미 국방부가 발표한 탄저균 배달사고 진상조사 결과에 대해 “현장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안전을 고려해 탄저균 샘플 취급 및 처리 절차를 지켰는지, 탄저균 포자가 남아 있는지 등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7일 미 화생방어합동사업단장으로부터 미국의 조사 결과에 관한 사전 설명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미국 국방부는 이날 주한미군 오산 기지에 ‘살아 있는 탄저균’이 배달된 것에 대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실수(inexcusable mistake)였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는 ‘살아 있는 탄저균의 우연한 배달: 검토위원회 보고서’라는 제목의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지난 10년간 미국과 전 세계 7개국의 86개 실험실에 ‘살아 있는 탄저균’을 배달한 사실이 있고 이는 심각한 규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보고서는 탄저균이 살아 있는 상태로 배달된 배경과 책임 소재는 밝히지 않았다. 프랭크 켄들 미 국방부 조달·군수담당 차관은 이날 보고서를 공개한 뒤 가진 브리핑에서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었다”며 “주한미군 시설 중 오산 공군기지 연구실에만 실험용으로 보내졌고 다른 주한미군 시설에는 배달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백 차관은 “조사 대상을 오산 기지에만 국한하지 않고 과거 다른 주한미군 기지에도 맹독성 세균이 반입됐다는 의혹까지 포함해 광범위한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도 “주한미군 측에서 탄저균 배달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지만 이번 현장조사에서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주한미군사령관은 이날 “한미 합동실무단이 한미 생물 방어 프로그램 발전을 위한 지속적인 협의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 201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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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전협정 62주년]6·25영웅 밴 플리트 장군 戰時서신 첫 공개

    27일은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총성은 멈췄지만 전쟁이 법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아 여전히 기술적으로 남북은 전쟁 상태에 있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군은 군사분계선(MDL)과 서해 북방한계선(NLL) 주변에서 군사 도발에 나설 징후를 보이고 있다. 한미 군사정보 당국은 9월 또는 10월에 북한이 국지적인 무력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6·25전쟁 당시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1892∼1992)은 대한민국을 지켜낸 가장 위대한 전쟁영웅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쟁 후에도 그는 우리 군을 현재의 모습으로 키워내는 데 많은 기여를 했고 폐허가 된 한국을 재건(再建)하기 위해 미국 주요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당시 밴 플리트 장군이 한국 재건을 위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주고받았던 서신과 6·25전쟁 당시 탄약을 확보하기 위해 힘썼던 그가 미 육군으로부터 받았던 서신 등을 단독 입수했다.대한민국 근대화 초석을 다지다 24일 최초로 공개되는 밴 플리트 장군의 서신은 미 버지니아군사학교(VMI)의 마셜 도서관에 마련된 ‘밴 플리트 컬렉션’에 보관돼 있던 자료다. 밴 플리트는 1953년 전역한 뒤 1962년 3월 21일 당시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편지를 보냈다. 밴 플리트는 편지에서 “한국에 제철소를 짓기위한 미국 내 논의가 진전되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한 미 뉴욕타임스 기사스크랩을 동봉하게 돼 매우 기쁘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는 스틸 밀 외에도 미 전력 업체인 ‘웨스팅하우스 일렉트릭 인터내셔널 컴퍼니’, 펄프 및 종이 생산 업체인 ‘파슨스 앤드 위트모어’, 비료 업체인 ‘아머 앤드 컴퍼니’도 한국에 투자하고 공장을 짓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국 재건에 관해 당시 박 의장이 밴 플리트에게 보낸 서신도 함께 발굴됐다. 박 의장은 1962년 10월 19일 밴 플리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울산의 정유공장 건설 계약을 10월 17일에 성공리에 마쳤다고 전하고 있다. 이와 함께 박 의장은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을 특사로 미국에 보내니 그가 미국에서 많은 사람과 다양한 의견을 나누길 바란다”고 쓰고 있다. 군사편찬연구소 남보람 소령은 “밴 플리트 장군은 전역 후에도 자신의 영향력을 총동원해 끊임없이 미국 기업의 한국 투자 유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했다”며 “한국의 근대화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외국인 중 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밴 플리트는 메모광에 수집광이기도 했다. 이번에 최초로 발굴된 자료 중엔 그가 6·25전쟁 중에 지녔던 수첩도 있었다. 이 수첩은 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썼던 것이다. 이 수첩엔 당시 썼던 일기도 있다. 1945년 2월 2일 룩셈부르크에서 썼던 일기엔 다른 부대로 전출이 결정돼 옮기기 전에 “미지의 곳으로 향하는 것은 꽤나 슬픈 느낌”이라는 개인적 소회를 담기도 했다. 그가 버지니아군사학교에 기증한 자료에는 당시 주요 한미 부대 지휘관 이름부터 작전계획서, 한국군이 북한군에 뿌렸던 전단(삐라)까지 포함돼 있다.남다른 결단력 보여준 ‘밴 플리트 탄약량’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는 밴 플리트가 6·25전쟁 당시 미군의 탄약량을 늘리기 위해 로턴 콜린스 미 육군참모총장과 주고받은 서신도 포함돼 있다. 당시 밴 플리트 장군은 와해된 한국군을 미군과 함께 재편성하면서 미 육군 규정의 기준량을 5배 이상 초과하는 탄약 사용을 승인했다. 이후 미 48포병대대의 경우 하루 동안 1만2000발의 화력을 퍼붓기도 했다. 비용으로 환산하면 하루에 50억 원을 쓴 것이다. 이러한 엄청난 물량 공세는 ‘밴 플리트의 탄약량’이라는 말로 불리고 있다. 콜린스 참모총장은 1952년 7월 1일 서신에서 “유럽 나토군이 보유하고 있던 탄약 비축량까지 줄여가며 한국에 탄약을 공급했다”고 적고 있다. 콜린스 참모총장은 “지난 4개월간 주한미군이 쓴 탄약량은 54만5000발에 달한다”며 “미 탄약공장의 생산량도 앞으로 1년 안에 매달 10만 발에서 65만 발까지 늘리기로 했다”고 적고 있다. 당시 이러한 결정은 미 육군 수뇌부의 심기를 건드리는 위험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밴 플리트 장군은 중공군 개입 후 수적 열세를 극복하는 길은 화력을 강화하는 방법뿐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본국에 소환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직책을 걸고 군 수뇌부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남 소령은 “6·25전쟁 당시 아군의 전략은 초기 땅을 내어주고 시간을 버는 전략이었지만 전쟁 중반 이후 밴 플리트 장군에 의해 물량공세로 전환해 아군이 승기를 잡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밴 플리트 장군의 결단력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최선봉 부대장을 맡았던 다양한 전투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미식축구팀 감독 출신의 뛰어난 전략가 밴 플리트 장군의 뛰어난 전술은 소령 시절 미식축구팀 감독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는 평가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밴 플리트 장군은 미국으로 돌아간 뒤 학군단(ROTC)을 비롯한 여러 대학의 미식축구팀 감독을 맡았다. 1923년에는 플로리다대 감독으로 남부대학리그에서 2위를 차지했다. 밴 플리트 장군은 미식축구의 경험이 장교로서의 리더십과 전장 지휘에 매우 중요하다고 믿었다고 한다. 네덜란드계 미국인인 밴 플리트 장군은 1892년 3월 19일 뉴저지 주 코이츠빌에서 태어났다. 1893년 플로리다로 이사한 뒤 아버지의 권유로 미국의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에 입학했다. 그는 웨스트포인트를 졸업한 뒤 26세의 나이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보여준 지휘능력으로 그는 단 8개월 만에 부사단장과 사단장을 거쳐 군단장까지 승진했다. 유럽 대륙에서 보여준 그의 탁월한 야전지휘능력을 눈여겨본 조지 마셜 미 국방장관은 맥아더 장군 해임 3일 후인 1951년 4월 14일에 밴 플리트 장군을 미8군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6·25전쟁이 한창인 시기였다. 밴 플리트는 1953년 2월까지 22개월간 미8군 사령관 자리를 지켰다. 6·25전쟁 기간에 미8군 사령관을 지낸 인물 중 가장 오래 자리를 지킨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6·25전쟁에서도 탁월한 전투지휘능력을 발휘했다. 밴 플리트 장군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공군은 대규모 공세를 감행했다. 중공군과 북한군은 51개 사단을 동원해 서울을 공격하는 등 1952년 4월과 5월 두 차례 총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나 밴 플리트 사령관은 물러서지 않고 전선을 지켜냈다. 이후 밴 플리트 사령관 재임 기간에 더 이상의 대규모 공세는 없었다. 밴 플리트 장군은 6·25전쟁에서 하나뿐인 아들을 잃었다. 그는 1952년 4월 4일 아들이 몰고 출격한 B-26 폭격기가 그날 북한 해주 부근에서 북한군의 대공포에 맞아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들의 실종 소식을 들은 밴 플리트 장군은 얼마 후 아들을 찾기 위한 수색작전을 중단했다. 더 이상의 희생을 막기 위한 조치이자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한 냉철한 지휘관의 모습이었다.‘제2의 조국’ 대한민국에 헌신 밴 플리트 장군은 한국군 발전의 기틀을 다지는 데도 기여했다.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한 후 밴 플리트는 6·25전쟁을 계기로 와해된 한국 군사학교 체제를 다시 정비하자고 이승만 대통령에게 건의했다. 그의 노력으로 1951년 10월 30일 경남 진해에 육군사관학교가 설립됐다. 그는 국군 20개 사단을 증설하고 한국군 장교들의 미국 유학을 추진하기도 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대한민국 육군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밴 플리트 장군은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53년 1월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2월 미 제8군사령관 이·취임식에서는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생전 대한민국을 ‘제2의 조국’이라 불렀던 밴 플리트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제주도에 대규모 축산목장을 만드는 데 적극 지원하는 한편 1957년에는 ‘코리아소사이어티’ 결성을 주도했다. 코리아소사이어티는 대표적인 한미 친선협회다. 한미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밴 플리트의 노력은 밴플리트상(賞)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한미관계 증진에 기여한 인물에게 코리아소사이어티가 1992년부터 매년 수여하고 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이 역대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밴 플리트는 1992년 9월 23일 100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뉴욕타임스는 다음 날 실은 부고기사에서 6·25전쟁 당시 그의 부하 장교였던 사람의 입을 빌려 이렇게 전했다. “밴 플리트 대장은 그야말로 발로 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진창에서 장병들과 함께 뒹굴었고, 참호 속에서 지휘했습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강성휘 인턴기자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한기재 인턴기자 미국 컬럼비아대 정치학과 졸업 }

    • 2015-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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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백범김구기념사업협회장 취임

    김형오 전 국회의장(68·사진)이 백범김구기념사업협회 신임 회장에 취임했다고 국가보훈처가 24일 밝혔다. 김 전 국회의장은 경남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동아일보 기자를 거쳐 14~18대 국회의원(5선)을 지냈다. 김 신임 회장은 “백범 선생이 품었던 꿈과 희망, 비전은 우리 5000만 국민, 나아가 7000만 동포에게 지금도 살아 있는 이정표”라며 “청소년과 미래 세대에게 그 정신과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정성택기자 neone@donga.com}

    • 201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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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장진호전투 기념비, 美해병대 박물관에 선다

    6·25전쟁 당시 ‘기적의 흥남철수’로 유명한 장진호전투 기념비가 미국에 세워진다. 23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미 버지니아 주 콴티코 시에 있는 해병대 국립박물관에서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2주년인 27일 장진호전투 기념비 기공식이 열린다. 기념비는 약 2m 높이의 8각 모양으로 맨 위에는 장진호전투가 벌어졌던 함경남도 장진군 고토리 지역을 기념해 ‘고토리의 별’ 장식이 달린다. 당시 미 해병대는 눈보라가 그친 밤에 밝은 별이 뜬 날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은 것을 기념해 이 별을 배지로 달기 시작했다. 보훈처 관계자는 “기념비 건립을 통해 장진호전투 참전용사를 기릴 뿐 아니라 동포사회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한미 양국 우호관계 증진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장진호전투는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2주 동안 영하 30도∼영하 40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미 제1해병사단 1만5000명이 중공군 7개 사단 12만 명의 포위망을 뚫고 함흥 지역으로 철수하는 데 성공한 전투다. 이 전투는 6·25전쟁 최대의 동계전투이자 미군 전사에서도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로 기록되고 있다. 기공식 행사에는 해병대 이등병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스티븐 옴스테드 장군을 비롯한 장진호전투 참전자와 한국정부 대표 최완근 보훈처 차장 등이 참석한다. 내년 완공 예정으로 보훈처는 기념비 건립에 필요한 사업비 6억여 원 중 3억 원을 지원키로 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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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동창리 발사대 60m이상으로 증축… 黨창건일 전후 ‘ICBM 도발’ 움직임

    북한이 최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의 서해 미사일 발사대를 60여 m까지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국방부에 따르면 북한은 2012년 12월 이곳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 미사일 ‘은하 3호’(사거리 8000km)를 발사했다. 당시 쓰였던 발사대 높이는 50m였다. 북한은 2013년 말부터 장거리 미사일 발사대 증축 공사를 시작했다. 지난해 11월엔 60m 가까이 중축했다. 2년여 만에 발사대 높이를 10m 이상 높인 것이다. 발사대 높이가 10m가량 높아지면 쏘아 올릴 수 있는 미사일의 크기도 더 키울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정보당국은 이 발사대로 북한이 은하 3호(30m)보다 2배 가까운 크기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현재 북한이 발사할 가능성이 높은 ICBM은 KN-08이다. 2012년 4월 김일성 생일(태양절) 10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처음 공개된 미사일이다. 최대 사거리는 1만2000km로 추정된다. 동창리에서 미국 본토 서부지역까지 타격할 수 있는 거리다. 군 당국은 노동당 창건 70주년인 10월 10일을 전후로 이 발사대에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최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노동당 창건일을 기념해 ‘인공위성’을 발사하라고 지시했다는 첩보를 입수했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현재 평양 주변의 군수공장에서 장거리 미사일과 관련된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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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5년만에… 6·25 유엔군 전쟁영웅 4명에 태극무공훈장

    6·25전쟁에 참전한 유엔군 용사들이 65년 만에 대한민국 최고 영예인 태극무공훈장을 받는다. 헥터 캐퍼라타 씨(86)와 토머스 허드너 주니어(91), 에드워드 존 마스트로나르디(90), 윌리엄 스피크먼 씨(88) 등 4명이 그 주인공이다. 국가보훈처는 27일 6·25전쟁 정전협정 체결 62주년 기념식에서 훈장을 수여한다고 21일 밝혔다. 6·25전쟁 당시 미 해병대 소총수였던 캐퍼라타 씨는 ‘기적의 흥남철수’를 가능케 했던 장진호 전투에서 자신의 부대가 중공군에게 완전히 포위됐을 때 혼자 진지를 지켜냈다. 미 해군 소속 전투기 조종사였던 허드너 주니어 씨는 장진호 전투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비행기를 동체 착륙시켜 전우를 구했다. 스피크먼 씨는 6·25전쟁에 참전해 영국 최고 무공훈장인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1951년 휴전선 부근에서 중공군과 대치하면서 수류탄을 던지며 4시간 넘게 육탄전을 감행해 방어선을 지켰다. 그는 4월 보훈처 초청으로 방한했을 때 자신의 빅토리아 십자훈장을 한국에 기증하기도 했다. 캐나다 왕립연대 소속 중위로 참전했던 마스트로나르디 씨는 1951년 경기 연천군 고왕산 전투에서 “캐나다 형제여, 오늘밤 죽을 각오를!”이라고 외치며 소대원들과 함께 백병전을 펼친 끝에 단 한 명의 부하도 잃지 않고 중공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보훈처는 이와 관련해 23∼28일 15개국 유엔군 참전용사와 가족 등 150여 명을 초청하는 유엔군 참전용사 재방한 행사를 연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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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방위백서 11년째 ‘독도 억지’… 정부 “강력대응”

    일본 정부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일방적인 주장을 11년째 되풀이한 2015년도 방위백서를 21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방위백서는 제1부 ‘우리나라를 둘러싼 안전보장 환경’ 개관에서 “우리나라 고유 영토인 북방영토(쿠릴 4개 섬의 일본명)와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된 채로 존재하고 있다”고 명기했다.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내용이 방위백서에 담긴 것은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 이후 11년째다. 3월 교과서 검정, 4월 외교청서, 7월 방위백서 순으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독도에 영유권 갈등이 있다는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전략이다. 백서의 ‘자위대 주요 부대 등의 소재지’ 지도와 한중일 방공식별구역(ADIZ) 표시 지도에서도 독도는 ‘다케시마’로 표기됐다. ADIZ 지도에서 독도를 한국의 ADIZ 범위에 넣으면서도 독도 주위에 동그라미를 그려 자국의 영공이라고 표시했다. 독도에 관한 기술 내용과 지도 표시는 지난해 방위백서와 동일하다. 백서는 북한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우리나라가 사정권에 들어가는 핵탄두 탑재 미사일이 배치될 위험이 증대하고 있다”며 “5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실험 성공은 일본의 안전에 중대한 영향이 있다”고 강조했다. 백서는 집단자위권 강화를 위해 ‘미일동맹의 강화’ 항목을 신설해 “미일 안보체제를 중핵으로 하는 미일동맹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 더 나아가 세계 전체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공공재’로 기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서는 중국의 위협을 집중 부각했다. 올해 방위백서는 전체 쪽수(424쪽)가 작년(498쪽)보다 74쪽 줄어 최근 10년 새 가장 얇았지만 중국에 대한 기술은 오히려 늘었다. 중국을 겨냥해 제1부 ‘우리나라를 둘러싼 안전보장 환경’에 ‘해양을 둘러싼 동향’이라는 항목을 신설했다. 중국에 대해 “고압적”이라는 기술에 머물렀던 작년 백서와는 달리 올해 백서에서는 지난해 8월 중국 전투기가 미군 초계기에 바짝 접근한 사례를 들며 “일방적인 주장을 타협 없이 실현하려는 자세” “예측 못 한 사태를 초래할지 모르는 위험한 행위” 등 고강도 비판을 추가했다. 백서에 따르면 자위대 병력은 올해 3월 31일 현재 22만6742명, 방위예산은 2015회계연도(2015년 4월∼2016년 3월)에 4조9801억 엔(약 46조2327억 원)이다. 병력은 한국의 63만 명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방위예산은 한국의 37조4560억 원에 비해 23.4% 많은 액수다. 해상자위대는 항공모함급 헬기 호위함 ‘이즈모’를 비롯한 호위함 47척, 잠수함 16척, 기뢰함정 27척, 초계함 6척, 수송함 11척 등 총 137척의 함정과 대잠초계기 P-3C 69대를 보유하고 있다. 항공자위대는 F-15 201대, F-4 55대, F-2 92대, E-2C 조기경보기 13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육해공 통틀어 1000대 가까운 항공기를 확보하고 있다. 일본은 자국의 방위 정책을 알리고자 매년 7월 국제 정세에 관한 인식과 과거 1년간의 주요 방위 정책, 주요 사건 등을 정리해 방위백서로 펴내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방위백서 내용에 강력 항의했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독도에 대한 허황된 주장을 포함시킨 것은 일본 제국주의의 침탈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일본의 도발은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아 한일 양국의 미래를 열어 가려는 한국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도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로 일본의 어떤 군사력도 한국의 승인 없이는 독도에 들어올 수 없다. 현재로선 일본과는 정보보호협정이나 군수지원협정을 위한 어떤 논의도 없다”고 말했다. 21일 오후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국장은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해 한국 정부의 입장을 전달하고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박철균 국방부 국제정책차장(육군 준장)도 고토 노부히사(後藤信久·육군 대령) 주한 일본 국방무관을 국방부 청사로 초치해 항의문을 전달했다. 도쿄=배극인 특파원 bae2150@donga.com / 조숭호·정성택 기자}

    • 2015-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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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軍 검찰, ‘GOP 총기난사’ 임 병장에 항소심서도 사형 구형

    지난해 강원 고성군의 육군 22사단 일반전방전초(GOP)에서 총기를 난사해 기소된 임모 병장(23)이 항소심에서도 사형을 구형받았다. 군 검찰은 21일 국방부 고등군사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임 병장의 항소심 결심공판에서 1심에 이어 사형을 구형했다. 임 병장은 이날 최후 진술에서 “깊은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며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병장은 지난해 6월 22사단 GOP에서 동료를 향해 총기를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뜨려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는 같은 해 8월 구속 기소돼 올 2월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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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분 심폐소생술… 현역하사, 심장마비 시민 구해

    현역 육군하사가 심장마비로 쓰러진 시민을 구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19일 육군에 따르면 수도군단 방공대대의 이동건 하사(24·사진)는 11일 경기 안양시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가 50대 남성을 심폐소생술로 구했다. 이날 이 하사는 영화표를 끊고 나오다 로비에 쓰러져 있는 한 남성을 목격했다. 주위 사람들이 119에 신고했지만 아무도 선뜻 응급조치를 못하고 있었다. 이 하사는 옆에 있던 부인에게 평소 남편이 앓고 있는 지병을 물었고 “천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천식은 급성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질병. 이 하사는 호흡이 멈춘 것을 확인하고 즉시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잠시 후 이 남성은 서서히 호흡이 돌아왔다. 15분 뒤 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 남성은 호흡과 맥박이 정상에 가까운 수치로 회복됐다. 안양 롯데시네마 김민호 관장은 “사고 당시 병원 응급실 담당의사가 ‘골든타임 내에 응급조치를 못했다면 위험했을 것’이라고 했다”며 “이 하사 덕분에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이 하사는 “쓰러져 있는 시민을 본 순간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평소 부대에서 익힌 심폐소생술로 생명을 지켜 뿌듯하다”고 밝혔다. 수도군단은 부대 전 장병에게 심폐소생술 등 기본 응급처치 교육 훈련을 정기적으로 하고 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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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군 하사, 영화관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시민 살려내

    현역 육군 하사가 영화관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시민을 구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19일 육군에 따르면 수도군단 방공대대의 이동건 하사(24·사진)는 11일 경기 안양의 한 영화관을 찾았다가 50대 남성을 심폐소생술로 구했다. 이날 이 하사는 영화표를 끊고 나오다로비에 쓰러져 있는 한 남성을 목격했다. 주위 사람들이 119에 신고는 했지만 아무도 선뜻 응급조치를 못하고 있던 상황. 이 하사는 이 남성의 옆에 있던 부인에게 평소 남편이 앓고 있는 지병을 물었고 “천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천식은 급성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질병. 이 하사는 즉시 인공호흡과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잠시 후 이 남성은 서서히 호흡이 돌아왔고 이 하사는 119 구급차가 올 때까지 15분간 응급조치를 계속했다. 119소방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 남성은 호흡과 맥박이 정상에 가까운 수치로 회복됐다. 안양 롯데시네마 김민호 관장은 “사고 당시 병원 응급실 담당의사가 ‘골든타임 내에 응급조치를 하지 못했으면 위험했을 것’이라고 했다”며 “이 하사 덕분에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고 말했다. 이 하사는 “쓰러져 있는 시민을 본 순간 반드시 살려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평소 부대에서 익힌 심폐소생술을 통해 생명을 지켜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수도군단은 부대 전 장병이 심폐소생술 등 기본 응급처치 능력을 갖도록 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교육 훈련을 해오고 있다.정성택기자 neone@donga.com}

    • 2015-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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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기술품질원 박재훈 박사 세계인명사전 등재

    국방기술품질원 분석평가부 선임연구원인 박재훈 박사(37·사진)가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 인 더 월드’ 2016년판에 등재됐다. 박 박사는 미국 우스터폴리테크닉대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MIT)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쳤다. 현재 해상장비 및 수리온 헬기를 대상으로 신뢰성 분석 및 평가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10편,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논문 10편, 국내 특허 등록 4편 등 연구 실적을 갖고 있다.정성택기자 neone@donga.com}

    • 2015-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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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방부 9월 서울안보대화 北초청

    국방부는 9월 9∼11일 개최하는 서울안보대화(SDD)에 북한을 초청했다고 17일 밝혔다. 차관급 아시아태평양 국제안보 회의체인 SDD에 북한을 초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는 이날 오전 10시 25분경 서해 군 통신선을 통해 백승주 국방부 차관 명의의 통지문을 북한 인민무력부 앞으로 보냈다. 통지문엔 초청 대상을 인민무력부 부부장급(한국의 차관급) 인사로 명시했다. 인민무력부 부부장급은 5, 6명 정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지문에는 회의의 구체적인 의제에 관한 설명은 없고 세계 평화·안보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한다는 수준의 내용이 담겼다. 북한이 국방부의 초청을 수용할지는 미지수다. 올해 첫 남북 당국회담이었던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회의도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아무래도 비핵화 등 북한이 민감해하는 주제가 거론될 안보 회의에는 북한이 더욱 소극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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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때 켈로부대 요원이 美서 받은 희귀 ‘태극기 모양 공로기장 증서’

    6·25전쟁 당시 미 극동군사령부 소속 한국인 특수부대였던 8240부대(켈로부대) 요원에게 수여된 태극기 모양의 희귀 공로기장 증서가 국방부의 ‘태극기, 소중한 기억·영원한 맹세’ 기획 사진전을 통해 대중에 공개된다. 공로기장 증서는 당시 대북첩보 임무를 맡았던 켈로부대와 전술연락사무소(TLO) 부대에서 활약했던 홍성운 씨(81)가 받은 것이다. 홍 씨는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이 증서를 국방부가 주최하고 동아일보가 후원하는 ‘태극기, 소중한 기억·영원한 맹세’ 사진전에 내놓겠다고 16일 밝혔다. 이 증서는 미군이 수여한 문서 중 희귀하게 태극기 모양으로 돼 있다. 1952년 1월 당시 미 극동군사령부 한국 파견대 지휘관이던 찰스 브레브너 대령이 준 것이다. 이번 사진전은 8월 13∼19일 서울 광화문광장 등에서 열린다. 사진 공모전은 31일까지 진행되며 e메일 또는 우편으로 응모할 수 있다. 국방부 홈페이지(www.mnd.go.kr) 참조.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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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월부터 뚱뚱하면 현역 입대 못해

    체중이 무거운 사람은 현역으로 입대하기 어려워진다. 국방부가 이르면 8월 징병검사 기준을 강화하는 내용의 훈령 개정을 통해 9월부터 체중이 무거운 사람은 현역(신체등급 1∼3급)이 아닌 보충역(4급)으로 전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역 입영 대기자가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2만4000명에 이르는 입영적체를 해소하기 위한 조치다. 15일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현역에 해당하는 체질량지수(BMI)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다음 달 관련 훈령을 개정하면 현재 군에서 운용하고 있는 비만소대도 폐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BMI는 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이다. 분자에 해당하는 몸무게가 많이 나갈수록 BMI는 커진다. 병무청은 2009년부터 159∼195cm의 남성의 경우 BMI가 16∼34.9면 신체등급 3급 이하 판정을 내려 현역으로 입대시키고 있다. 이 기준의 상한선을 34로 낮춰 7000∼1만 명을 보충역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고의로 체중을 늘려 입대를 피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나 신체검사를 다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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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승씨, 65년만에 참전유공자 인정받아

    6·25전쟁 당시 학도의용군을 창설한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93)이 65년 만에 6·25전쟁 참전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이사장은 이르면 이달 안에 참전유공자로 정식 등록될 예정이다. 15일 국방부에 따르면 6·25전쟁 관련 기록을 조사한 결과 이 이사장이 학도의용군을 창설한 사실이 공식 확인됐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1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사실확인서를 전달받았다. 그동안 이 이사장은 6·25전쟁 참전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았다. 본인이 직접 참전 사실을 입증해 신청해야 한다는 점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6·25전쟁 65주년 및 광복 70주년을 맞아 참전유공자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지인과 참전유공자들이 신청을 적극 권유했다고 한다. 이 이사장은 이달 안에 국가보훈처에 참전 사실확인서와 함께 참전유공자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국방부의 공식 인정을 받은 만큼 다른 결격사유가 없으면 참전유공자로 정식 등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전국학련구국대중앙위원장이었던 이 이사장은 수원과 대전지역의 학생들을 규합해 대전에서 학도의용군을 조직했다. 학도의용군은 낙동강방어선에서 벌어진 안강·기계전투에 참전했고 많은 학생이 목숨을 바쳤다. 이 이사장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집했던 것처럼 대한민국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섰으니 나라를 지키는 학도의병을 모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매년 서울 수복일인 9월 28일이면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 마련된 반탁반공순국학생 충혼탑을 찾아 순국학생 및 전몰학생을 위한 합동 위령제를 지낸다. 이 이사장은 일제강점기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온 뒤 대한민국의 건국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2011년 펴낸 회고록 ‘대한민국과 나-이철승의 현대사 증언’에서 동아일보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 덕분에 대한민국 정통세력에 서게 됐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인촌 선생이 교장으로 있던 보성전문학교의 학생이었다. 1945년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3상회의)에서 미국 영국 소련 중국이 한국을 5년간 신탁통치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반발한 그는 당시 미-소공동위원회가 있던 덕수궁 앞에서 이에 반대하는 반탁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는 “항일 독립운동의 막둥이 세대로서 김구 선생 등을 직접 모셨다”며 “신탁통치 결정을 뒤집은 것은 당시 유엔을 상대로 맨주먹으로 이룬 성과”라고 평가했다. 이 이사장은 “살아오면서 대한민국의 건국에 헌신한 것을 가장 큰 자부심으로 삼고 있다”며 “광복 70주년을 맞아 지금 정부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후세들에게 제대로 교육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7선 국회의원과 신민당 총재 등을 지낸 이 이사장은 국회부의장과 헌정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올해 5월 대한민국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에 선출됐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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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軍 입대자 적체 해소” 2015년 9300명 늘리기로

    올해 군 입대자가 1만 명 가까이 늘어난다. 군대를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입영 적체자가 올해 3만여 명에 이르는 점을 감안한 조치다. 14일 국방부에 따르면 당초 입영 적체 해소를 위해 올해 초부터 9300명에다 5000여 명을 추가 입대시키는 방안을 검토했다. 하지만 추경예산 편성이 끝나고 입대자를 수용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면서 추가 입대자는 9300명으로 확정됐다. 2년 전부터 2만 명을 넘어선 입대 대기자는 올해 누적 기준으로 5만2000명에 이른다. 앞으로 2년 안에 이 같은 입영 적체를 해소하지 않으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게 국방부의 판단이다. 특히 국방부는 올해 해소해야 할 입영 적체 인원이 가장 많은 것으로 판단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한국국방연구원(KIDA)은 특별한 조치가 없을 경우 2022년까지 입영 적체 누적 규모는 연평균 21만3000명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처럼 최근 입영 적체가 심해진 건 특정 연령대 출생률이 높고 취업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이 조기에 군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군대를 가장 많이 가는 20대 초반부터 중반에 해당하는 1991∼95년생 남성의 출생률이 다른 출생연도 남성보다 많다. 여기에 최근 경기 침체로 청년실업률이 1999년 이후 최고치인 10.2%(올해 2월 기준)에 달하면서 예년보다 군대에 가려는 젊은층이 늘어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대를 가고 싶어도 1년 이상 입영통지서를 기다려야 해 ‘입대 전쟁’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국방부는 입대자 확대뿐 아니라 현역 대상자도 가능한 범위로 줄일 계획이다. 이르면 다음 달 비만 등 징병 신체 기준 관련 훈령을 개정해 현역 판정률을 현 90% 수준에서 85%로 낮출 예정이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에도 군 입대 희망자가 늘어나자 국방부는 정부의 ‘경제 살리기 정책’의 하나로 한시적으로 입대자를 늘린 적이 있다. 하지만 전례를 참고해 사전에 입대자 인구 분포를 예측하지 못해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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