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욱

이기욱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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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익숙해질 때쯤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습니다. 유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71wook@donga.com

취재분야

2026-01-08~2026-02-07
사건·범죄35%
정치일반20%
사회일반15%
인사일반12%
정당5%
교통5%
건강2%
검찰-법원판결2%
지방뉴스2%
노동2%
  • 황룡사 백자 항아리에 있던 건 사리 아닌 조개껍데기

    1974년 7월 28일 경북 경주시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心礎石·목탑을 지탱하는 중앙 기둥의 주춧돌) 아래에서 사리기(舍利器)로 추정되는 중국제 백자 항아리와 청동 거울, 금동 귀고리, 유리구슬 등 유물 3000여 점이 발견됐다. 예부터 목탑 아래는 사리를 주로 봉안한 장소였다. 신라의 왕실 거찰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신라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황룡사 출토 유물을 포함해 신라 주요 사찰에서 나온 유물 530여 점을 모아 선보이는 불교사원실을 최근 공개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라시대 경주는 ‘절이 별처럼 많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던 곳’이었다. 새로 단장한 불교사원실은 신라미술관 2층 황룡사실을 확장해 분황사, 감은사, 흥륜사 등의 출토품을 포함했다. 전시에서는 일부 유물을 대상으로 진행한 과학 조사 결과, 새로 밝혀진 사실을 공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백자항아리와 그 안에 들어 있던 하얀색 물질. 당초 학계에서는 이 물질을 승려 자장이 중국에서 들여온 골(骨)사리로 추정했다.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 아래 깊숙이 숨긴 정황상 중요한 성물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 이 물질은 사리가 아닌 조개껍데기로 밝혀졌다. 신광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진단구(鎭壇具·액운을 막기 위해 땅에 묻는 예물)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사리기 안에 봉안품으로 담긴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기록에만 나오는 유물을 실제로 확인하기도 했다. 서기 872년 황룡사 9층 목탑 중수 당시를 기록한 ‘황룡사 찰주본기’에는 “금은고좌(金銀高座·금과 은으로 된 승려가 앉는 높은 좌석) 위에 사리유리병이 안치돼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목탑 심초석 출토 유물 중 금은고좌가 무엇인지가 그동안 확실치 않았다. 박물관은 심초석 사리공(舍利孔·사리를 넣는 네모난 구멍)에서 발견된 금동 연꽃 모양 받침의 재질을 조사한 결과 받침 가운데 부분이 은, 바깥 부분이 금으로 구성된 사실이 확인됐다. 이 받침이 찰주본기에 나오는 금은고좌임이 밝혀진 것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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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도성서 길이 19m ‘치성’ 발견

    남한의 고려시대 도성(都城·도읍을 둘러싼 성곽)인 강화도성에서 치성(雉城·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을 공격하는 시설)이 처음 발견됐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2일 인천 강화군 강화도성 중 중성(中城) 남쪽 성벽 구간에서 길이 19m, 너비 4.5∼4.7m, 높이 1.3∼2.6m의 치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확인된 남한 내 고려 치성 중 가장 큰 규모다. 전남 진도군 용장성과 충북 충주시 호암동토성 등 고려 산성에서도 치성이 발견됐지만 길이가 10m도 되지 않는다. 강화도성의 치성 주변에서는 기와, 문확석(門確石·문을 고정시키는 돌), 주춧돌 등 건물부재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나왔다. 몽골 침략에 맞서 1232년 수도를 강화로 옮긴 고려는 1232∼1270년의 항몽 기간에 방어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강화도성을 외성(外城) 중성(中城) 내성(內城)의 3중으로 쌓았다. 이번에 발견된 치성은 성벽 축조기법과 같은 판축(板築·나무로 만든 틀에 흙을 켜켜이 다져넣는 것) 기법으로 조성됐다.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장은 “강화도성 중성은 고려 토성 중 가장 완성된 공법으로 지어졌다. 토루(土壘·흙무더기)에 나무틀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을 정도로 치성을 견고하게 쌓았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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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다케시마 말뚝 뽑고 ‘독도’ 표석 세우다”… 한국산악회의 독도상륙기

    1953년 10월 13일 오전 6시. 당시 22세로 서울대 공대생이던 김연덕 씨(90)를 비롯한 한국산악회원 16명이 울릉도에서 독도로 향하는 해군 함정에 몸을 실었다. 일본에 맞서 독도 수호운동을 펼친 한국산악회의 국토구명 학술조사 활동이었다. 당시 정부는 일본과의 외교마찰 등을 우려해 군대가 아닌 민간단체의 독도 상륙을 지원했다. 출발 4시간 후 독도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상륙은 쉽지 않았다. 소형 배를 띄웠지만 거센 파도에 휩쓸려 뱃머리가 부서졌다. 파도가 잔잔해질 때를 기다리기 위해 울릉도로 뱃머리를 돌린 지 한 시간. 정체불명의 배가 산악회원들이 탄 함정을 추격해왔다. 독도를 순찰하던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이었다. 우리 해군이 전투태세를 갖추고 일본 영해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자 순시선은 물러섰다. 6·25전쟁 직후 독도 측량을 위해 학술조사대를 파견한 한국산악회 기록이 최근 새로 발견됐다. 김 씨가 모교인 경기고 산악회 동문회보에 1953년 기고한 글 ‘독도행각(獨島行脚)’을 통해서다. 여기에는 그해 김 씨가 한국산악회원들과 독도 상륙에 나선 과정이 담겨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지난달 29일 한국산악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과거 산악회 활동이 담긴 자료들을 기증받았다. 독도행각에 따르면 산악회원들은 1차 상륙 시도가 실패하고 이틀 후인 1953년 10월 15일 오전 1시 재출항해 6시경 독도 동도 상륙에 성공했다. 이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시마네현 오치군 고케무라 다케시마(島根縣 隱地郡 五箇村 竹島)’라는 일본 행정구역이 적힌 나무 말뚝이었다. 앞서 한 해 전인 1952년 5월 일본 어선이 세운 것이었다. 산악회원들은 말뚝을 뽑아버리고 독도 측량과 탐사에 나섰다. 다음 날인 16일 오후 9시 이들은 울릉도로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이들은 승선 전 한글로 ‘독도’라고 새긴 표석을 구릉지대에 세웠다. 광복 후 한일 양국 정부는 독도를 놓고 지속적으로 갈등을 벌였다. 일본 정부는 1947∼1953년 주일미군이 독도에서 폭격 연습을 벌인 것을 근거로 영유권을 주장했다. 미일 양국 정부가 합동위원회를 구성해 독도를 폭격 연습지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미국 정부가 자신들의 영유권을 인정했다는 것. 그러던 중 1948년 6월 8일 미 공군의 일본 오키나와 기지를 출발한 B29폭격기의 폭격 연습으로 독도 해상에서 조업 중이던 한국 어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미군은 특별조사단을 독도로 파견하고, 어선을 바위로 착각해 폭격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1952년에는 9월에만 세 차례에 걸쳐 미 공군 폭격기가 독도 해상에 폭탄을 투하했다. 이로 인해 그달 22일 학술조사단 36명을 독도로 파견한 한국산악회가 상륙을 포기했다. 우리 어민들이 사망한 데다 민간인들의 상륙까지 불발되자 한국 정부는 1952년 11월 10일 주한미대사관을 통해 주일미군의 독도 폭격 연습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이듬해인 1953년 3월 19일 미일 합동위원회는 주일미군의 폭격 연습지에서 독도를 제외하기로 했다. 홍성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한국산악회의 독도 상륙 기록은 민관이 힘을 합쳐 독도를 지키려고 노력한 모습을 생생히 보여주는 중요 사료”라고 평가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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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룡사지 부처 ‘골(骨)사리’ 추정 유물 알고보니…조개껍데기

    1974년 7월 28일 경북 경주시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心礎石·목탑을 지탱하는 중앙 기둥의 주춧돌) 아래에서 사리기(舍利器)로 추정되는 중국제 백자호(白磁壺·달 모양의 백색 항아리)와 청동거울, 금동 귀고리, 유리구슬 등 3000여점의 유물이 발견됐다. 목탑은 승려 자장(590~658)이 643년 당나라 오대산에서 가져온 부처의 사리를 봉안한 뒤로 13세기 고려시대 몽골 침입으로 소실되기까지 중요한 사리 봉안 장소였다. 대표적인 왕실 사찰에서 출토된 유물은 신라 연구에 새로운 활로를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황룡사 출토 유물을 포함해 신라 주요 사찰에서 나온 문화재 530여 점을 한데 모아 선보이는 불교사원실을 지난달 24일 공개했다. 삼국유사에는 ‘절이 별처럼 많고 탑이 기러기처럼 늘어서 있었다’며 신라시대 경주를 그린 기록이 있다. 이번 불교사원실은 이에 맞춰 신라미술관 2층 황룡사실을 확장해 분황사, 감은사, 흥륜사 등을 아울렀다. 전시에서는 일부 유물을 대상으로 진행한 과학적 조사 결과 새로 밝혀진 사실을 공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결과는 백자호와 그 안에 들어있던 세 개의 하얀색 물질과 관련돼있다. 학계에서는 이 물질을 자장이 중국에서 들여온 부처 골(骨)사리로 추정했다.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 하부의 안전한 공간에 숨겼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사 결과 해당 물질은 조개껍데기로 밝혀졌다. 신광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진단구(鎭壇具·액땜을 위해 땅에 묻는 예물)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사리기 안에 봉안품으로 담겼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기록에만 등장하던 유물을 실제로 규명하기도 했다. 872년 황룡사 9층 목탑 중수 당시를 기록한 ‘황룡사 찰주본기’에는 “금은고좌(金銀高座·금과 은으로 된 승려가 앉는 높은 좌석) 위에 사리유리병이 안치돼 있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심초석 출토 유물 중 유리병이 없어 금은고좌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박물관은 심초석 사리공(舍利孔·사리를 넣는 네모난 구멍) 안에서 발견된 금동 연꽃 모양 받침을 대상으로 재질 조사를 한 결과, 받침 가운데 부분이 은, 바깥 부분이 금으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인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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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번 출항해 20개월 바다위에… 원양어선 선원들의 생활상 담아”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매일 참치를 사 먹을 수 있는 시대예요. 하지만 우리는 그 생선을 어떤 바다에서 누가 어떻게 잡는지 거의 모르죠.” 최희철 씨(60)는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어업학과를 졸업하고 1984년부터 7년간 원양어선 항해사로 근무했다. 하지만 한 번 항해를 떠나면 최소 2년은 육지를 밟을 수 없는 답답함과 힘든 생활에 하선을 결정했다. 20년 넘게 닭 도매업을 하던 그는 6년 전 다시 배에 올랐다. 국제수산기구나 개별 국가의 지정을 받아 원양어선에 승선해 불법 어업을 감시하고 해양생태계 정보를 수집하는 옵서버 자격으로 바다로 돌아온 것. 최 씨가 최근 발간한 ‘동부태평양어장 가는 길’(해피북미디어)은 그가 2016년 8월부터 4개월간 동부태평양어장에서 눈다랑어를 잡는 연승어선(延繩漁船·낚싯바늘을 여러 개 매단 낚싯줄을 바다에 던져 생선을 잡는 어선) 517 남궁호에 탑승해 바라본 어업 현장을 담은 해양 체험 문학이다. 그는 지난달 2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도 3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선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며 “다른 직업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원양어선 선원들의 생활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동부태평양어장 원양어선은 최소 20개월을 바다에서 보낸다. 최 씨는 물 부족을 원양어선 생활의 가장 어려운 점으로 꼽았다. 조수기로 바닷물의 염분을 제거해 물을 얻지만, 선박 노후화로 조수기 성능이 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먹을 물도 부족하다 보니 씻고 빨래하는 데는 바닷물을 쓴다. 빨랫감을 노끈에 묶어 바다로 던지고, 달리는 배의 힘으로 빨랫감을 바다 표면에 두드려 찌든 때를 빼는 식이다. 원양어선에 2인용 텐트 서너 개 크기의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상추, 방울토마토 등의 채소를 재배하기도 한다. 채소는 유통기한이 짧아 출항 후 한 달이면 동나기 때문이다. 배의 무게중심을 해칠 수 있어 시설물을 설치하는 게 법적으로는 금지돼 있지만 망망대해에 놓인 선원들의 생존방법이다. 최 씨가 항해사로 근무했던 30년 전과 달라진 점은 어업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일일이 손으로 낚시를 바다에 내리던 수동 방식에서 이제는 기계가 수천 개의 낚시를 한 번에 자동으로 내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또 배에 무선인터넷 시스템이 생겨 먼바다에서도 가족과 연락하고 육지 소식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최 씨는 어업과 해양생태계의 관계도 강조했다. “어획량이 수입과 직결되다 보니 선원들은 휴일 없이 일하고 가까운 항구에 입항하지도 못해요. 배에 쌓이는 폐기물은 아무도 모르게 바다에 버려지죠. 해양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선 어획량과 무관하게 선원들의 임금을 올려주는 등 개선이 필요합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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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야인도 반려견 키웠을까

    경남 창녕군의 5, 6세기 가야 고분에서 무덤 주인과 함께 순장된 개 사체들(사진)이 발견됐다. 이전에도 동물을 무덤에 매장한 사례는 나왔지만, 별도 석곽을 만들어 개를 묻은 사실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경남 창녕군의 교동 63호분에서 나란히 묻힌 세 마리의 개 사체가 나왔다. 개들의 어깨높이는 약 48cm로 진돗개와 비슷하다. 개가 묻힌 석곽은 가로세로 각 1m 크기로 무덤 주인의 북서쪽 모서리에 있었다. 무덤 출입구의 바로 앞에 놓여 무령왕릉의 진묘수(鎭墓獸·무덤을 지키는 동물)를 연상시킨다. 연구소는 개들이 무덤 조성 당시 순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개 석곽이 고분과 동시에 조성된 흔적이 나온 데다, 뼈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한 개체로 온전히 발견돼서다. 가야고분인 경북 고령군 지산동 44호분 내 석곽에서도 말 이빨이 나왔지만 순장 여부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교동 7호분과 14호분에서는 별도 석곽 없이 개 뼈가 무덤 입구 근처에서 나왔다. 연구소는 “무령왕릉처럼 진묘수의 의미로 개들을 순장한 걸로 추정한다”며 “유전자 분석으로 견종을 밝히고 유사한 사례를 더 찾아볼 예정”이라고 밝혔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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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야인들도 진돗개 닮은 반려견 키웠나

    경남 창녕군의 5, 6세기 가야 고분에서 무덤 주인과 함께 순장된 개 사체들이 발견됐다. 이전에도 동물을 무덤에 매장한 사례는 나왔지만, 별도 석곽을 만들어 개를 묻은 사실이 확인된 건 처음이다.문화재청 산하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 따르면 경남 창녕군의 교동 63호분에서 나란히 묻힌 세 마리의 개 사체가 나왔다. 개들의 어깨높이는 약 48㎝로 진돗개와 비슷하다. 개가 묻힌 석곽은 가로, 세로 각 1m 크기로 무덤 주인의 북서쪽 모서리에 있었다. 무덤 출입구의 바로 앞에 놓여 무령왕릉의 진묘수(鎭墓獸·무덤을 지키는 동물)를 연상시킨다.연구소는 개들이 무덤 조성 당시 순장된 것으로 보고 있다. 개 석곽이 고분과 동시에 조성된 흔적이 나온 데다, 뼈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한 개체로 온전히 발견돼서다. 가야고분인 경북 고령군 지산동 44호분 내 석곽에서도 말 이빨이 나왔지만 순장 여부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교동 7호분과 14호분에서는 별도 석곽 없이 개 뼈가 무덤 입구 근처에서 나왔다.연구소는 “무령왕릉처럼 진묘수의 의미로 개들을 순장한 걸로 추정한다”며 “유전자 분석으로 견종을 밝히고 유사한 사례를 더 찾아볼 예정”이라고 밝혔다.이기욱기자 71wook@donga.com}

    • 2021-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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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테네에서 유독 천재가 많이 나온 이유는?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는 에디슨의 명언은 역설적으로 아무리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1%의 영감이 없으면 천재가 될 수 없다는 뜻과도 같다. 천재를 만드는 1%의 영감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저자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그리스 아테네, 중국 항저우, 이탈리아 피렌체 등 역사상 천재를 많이 배출한 도시 7곳을 둘러봤다. 그에 따르면 천재를 탄생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 요인은 각 도시 환경이 만들어낸 문화다. 이 책은 올 4월 출간돼 화제를 모은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어크로스)의 저자가 2018년에 쓴 ‘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의 개정판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14명의 철학자를 만나는 여정을 기차여행을 하듯 쉽게 풀어 써 한때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번 개정판은 표지와 제목을 바꾸는 한편 초판 본문의 오역과 어색한 표현들을 바로잡았다. 표지에 각 도시의 상징물과 더불어 비행기 삽화를 넣어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살렸다. 실제로 ‘위드 코로나’ 이후 해외여행 길이 본격적으로 열리면 이 책을 가이드 삼아 떠나는 것도 방법일 듯싶다. 이 책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인구가 10만 명이 채 되지 않았고, 다른 도시국가인 코린트나 시라쿠사보다 부유하지도 않았다. 이런 곳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시대를 초월한 천재들을 대거 배출해낼 수 있었던 건 아테네의 개방성 덕분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항구도시 아테네에는 외국 문물이 쉽게 들어왔고, 아테네인들은 이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예컨대 당시 도자기 공예를 시작한 집단은 코린트인들이었지만 아테네인들은 여기에 색을 입히고 끌어안은 연인, 놀이를 하는 아이 등 서사를 담은 그림을 그려 넣어 한층 업그레이드했다. 또 페니키아로부터 알파벳을, 바빌로니아로부터 수학을 각각 받아들였다. 이처럼 각지에서 수용한 문물들을 아테네화하는 과정은 도시에 창의성을 불어넣었다.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산드로 보티첼리 등 위대한 천재들을 여럿 낳았다. 이들이 등장할 수 있던 배경에는 당시 피렌체를 지배한 메디치 가문의 막대한 부가 한몫했다. 많은 이들을 착취하는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쌓은 메디치 가문은 지옥에 떨어지는 걸 두려워했다. 마침 로마 교황청이 교회 관련 건축물이나 미술품 제작에 비용을 대면 면죄부를 주겠다고 제안해 메디치 가문은 이를 수락한다. 이들의 꾸준한 후원 덕에 예술가들은 그들의 열정을 펼칠 수 있었다. 르네상스가 꽃을 피우는 데 메디치 가문의 죄책감이 원동력이 된 셈이다. 옛 스코틀랜드 왕국 수도였던 영국 에든버러에서는 데이비드 흄, 애덤 스미스 등 천재 사상가들이 자랐다. 저자는 에든버러의 한 술집에서 지적 결투가 벌어지는 광경을 목격한다. 손님들은 국제관계, 역사, 종교 등 다방면에 걸친 주제를 놓고 맥주잔을 기울이며 열띤 토론을 펼쳤다. 토론의 목적은 오직 한 가지, 현 상황에 대한 개선으로 귀결됐다. 그렇기에 다른 의견으로 논쟁이 과열돼도 인신공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실용 학문을 추구하는 스코틀랜드 특유의 문화는 경제학, 의학 등이 발전한 바탕이 됐다는 게 저자의 견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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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찌 흙을 밟으랴” 경술국치때 목숨 끊은 운암의 시

    ‘객이 와서 전하기를 나라가 없어졌다 하기에 미칠 듯한 심사에 눈물 흘리며 처참해지네. 발꿈치 들고 어찌 청산의 흙을 밟으랴. 문 걸어 닫고 대낮 하늘의 해를 보지 않네.’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들은 운암(雲巖) 정두흠(1832∼1910)은 이런 내용의 한시 손명사(損命詞)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운암은 조선시대 임금에게 직언하는 관직인 사간원 정언(正言)과 사헌부 지평(持平)을 지냈다. 홍순석 강남대 국문과 명예교수는 25일 ‘장흥 지역의 순국지사와 절의 정신의 발현: 정두흠의 손명사’ 논문을 발표했다. 홍 명예교수는 올 8월 운암집(사진)을 번역하면서 손명사를 발견했다. 운암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아 운암의 생전 활동상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9월 현장답사 때 운암이 집 뒤에 지은 정자인 망화대(望華臺)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발견했다. 이곳에는 ‘망화대’라고 적힌 돌비석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경술국치 직후 순국한 매천 황현(1855∼1910)이나 일완 홍범식(1871∼1910)과 달리 운암은 현존 기록이 부족해 아직까지 독립유공자로 지정되지 못했다. 한시준 독립기념관장은 “운암의 사적을 조속히 정리해 독립유공자로 추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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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쥐에 물린 증상 비슷” 고양이 그려 ‘콜레라 부적’

    ‘울타리 밖 인가에서 전염병에 걸린 자가 있어 사흘간 앓았다. 그의 부인은 도망갔다고 하므로 염려스러웠다. 붉은 글씨로 ‘(벽,피)瘟’(벽온·역병을 피함)이라고 써서 창문에 붙였다.’ 조선 중종 때 문신 묵재(默齋) 이문건(1494∼1567)이 1535년부터 17년간 쓴 묵재일기(默齋日記)의 1547년 1월 26일 기록이다. 부인마저 남편을 버리고 도망갈 만큼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역병은 두려운 대상이었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 해볼 수 있는 일이라곤 주술적 의미의 글씨 쓰기뿐이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감염병 와중에 일상을 영위한 선조들의 이야기를 담은 ‘역병, 일상’ 특별전을 24일 열었다. 조선시대 역병에 대한 인식이 잘 드러나 있는 묵재일기를 비롯해 정조 때 무관 노상추(1746∼1829)가 1763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기록한 노상추일기(盧尙樞日記) 등 약 350점을 선보인다. 한글 번역을 마친 묵재일기와 노상추일기 원본이 일반에게 공개되는 건 처음이다. 전시자료에 따르면 팬데믹으로 결혼이 연기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노상추는 1767년 4월 25일 일기에 ‘김순을 만나 혼사를 의논했는데 내가 두창(천연두) 때문에 속히 진행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자 가을까지 기다리겠다고 약속해 집으로 돌아왔다’고 썼다. 앞서 4월 17일 노상추가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퍼진 사실이 알려졌다. 노상추는 감염을 우려해 여동생의 혼인을 주선한 김순과 만나 혼례를 미루기로 했다. 그러나 이후 여동생은 천연두에 걸려 발병한 지 보름 만인 6월 30일 숨을 거뒀다. 마치 전시처럼 피란을 떠나기도 했다. 경남 고성군에 살던 구상덕(1706∼1761)이 쓴 일기 승총명록(勝聰明錄)에 따르면 1748년 1월 그가 살던 마을에 천연두가 퍼졌다. 이에 구상덕은 자신의 부모를 경북 갈산의 누이 집으로 긴급히 피신시켰다. 구상덕 자신도 앞서 1740년 역병이 발생했을 때 제자 집으로 몸을 피했다. 조선인들이 감염병 사태에 무력하게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감염병 치료를 위한 약제 개발도 이뤄졌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등 각종 의학서에는 천연두나 홍역 증상인 열을 낮추기 위해 미나리아재빗과 승마(升麻), 갈근(葛根·말린 칡뿌리) 등을 달인 승마갈근탕 조제법이 담겨 있다. 감염병에 얽힌 풍속도 눈여겨볼 만하다. 1889년 조선을 방문한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 바라(1842∼1893)가 남긴 조선기행에 따르면 당시 사람들은 콜레라에 걸리지 않으려는 염원을 담아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였다. 콜레라 증상이 쥐에 물렸을 때와 비슷한 데 따른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충북 청주시 청주백제유물전시관에서 개최된 ‘기록으로 본 치유와 염원’ 특별전에 전시된 9세기 일본 의학서 대동유취방(大同類聚方) 내용도 주목된다. 이에 따르면 신라에서는 나병(癩病) 치료제로 물개 지방을 이용한 연고를 개발해 사용했다. 이 연고는 분석 결과 현재 사용되고 있는 나병 치료제와 화학 성분이 거의 같은 것으로 조사됐다.조선시대 사람들의 팬데믹 대응▲남편이 발병한 지 사흘 만에 그를 버리고 도망간 부인(이문건의 ‘묵재일기’)▲마을에 천연두가 번지자 여동생의 혼사를 미룬 오빠(노상추의 ‘노상추일기’)▲천연두를 피해 부모를 누이 집으로 피신시킨 아들(구상덕의 ‘승총명록’)▲콜레라 증상이 쥐에 물렸을 때와 비슷해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임(샤를 바라의 ‘조선기행’)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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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현실참여 문학사조, 조조가 창시… 간웅은 꾸며낸 이미지”

    “조조는 문인으로서 공로가 큽니다. 중국 전통문학이 조조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2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자택에서 만난 원로 중문학자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87)는 조조(155∼220)에 대한 평가를 이렇게 밝혔다. 김 명예교수는 중국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 시대 문학사를 정리하다가 조조가 현실참여의 문학사조를 중국에서 처음 창시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는 세상에 간웅으로만 알려진 조조의 일생을 재평가한 책 ‘조조의 재발견’(연암서가)을 20일 출간했다. 김 명예교수는 조조 이전 중국 시는 문인들이 황제에게 잘 보여 출세하기 위해 지은 게 다수라고 말한다. 중국 전한시대 문인 사마상여(기원전 179∼기원전 117)가 한 무제(기원전 156∼기원전 87)에게 사냥하는 황제의 위엄을 칭송하는 시 ‘상림부(上林賦)’를 바치고 중랑장(中郞將·황제 근위병을 통솔하는 장수) 벼슬에 오른 게 대표적이다. 이에 비해 조조는 ‘역적이 나라의 권세를 잡아 왕을 죽이고 도읍을 부수었네’라는 문구를 담은 한시 ‘해로(해露)’를 통해 당대 실권자 동탁(137∼192)을 비판했다. 그는 시에서 동탁이 한나라 수도 낙양(洛陽)을 불태우고 장안(長安)으로 도읍을 옮기도록 헌제(181∼234)에게 강요한 사실을 애통해했다. 김 명예교수는 “조조의 현실참여 문학에 감동한 문인들이 모여 중국 최초의 문단이랄 수 있는 건안칠자(建安七子)를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조조의 간악한 이미지는 유씨가 아닌 조씨가 한나라를 계승한 데 대한 반발에서 비롯됐다는 게 그의 견해다. 예컨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아버지의 의형제인 여백사의 일가족을 죽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 명예교수는 “사서 ‘삼국지’를 보완하는 주석마다 여백사 관련 기록이 서로 다르다. 몰살 자체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북위 사서 위서(魏書)는 여백사의 아들들이 조조를 위협하며 그의 말과 소지품을 빼앗아 조조가 반격한 것이라는 기록을 담고 있다. 김 명예교수는 “조조는 중국에서 정치, 문학적 업적뿐 아니라 인간성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며 “이 책이 조조를 올바르게 평가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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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박신혜-최태준 내년 1월 결혼

    배우 박신혜(31)와 최태준(30)이 오랜 열애 끝에 결혼한다. 박신혜 소속사 솔트엔터테인먼트는 23일 “두 사람이 내년 1월 22일 서울 모처에서 부부의 연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결혼식은 비공개로 진행될 예정이다.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2017년 교제를 시작해 2018년부터 공개 연애를 해왔다. 박신혜는 이날 공식 팬클럽 커뮤니티에 “긴 시간 저의 버팀목이 되어주었고 인간 박신혜의 부족한 모습들까지도 감싸주었던 사람과 부부로서의 삶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소중한 생명이 찾아왔습니다”는 글을 올렸다. 최태준도 같은 날 자신의 팬클럽 커뮤니티에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책임감 있는 모습을, 그리고 배우 최태준으로서 여러분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연기로 인사드리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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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혼자-경단녀-다둥이맘 뭉쳤다…귀농 여성들이 꾸린 ‘공동경비부엌’

    전북 완주군 고산면에는 9명의 여성이 모여 운영하는 식당 ‘모여라땡땡땡’이 있다. 여타의 다른 식당과는 다르다. 요일마다 요리사가 다르고, 점심 한 끼만 판다. 지역사회의 요청이 있으면 케이터링을 진행하기도 한다. 19일 출간한 신간 ‘공동경비부엌 모여라땡땡땡’(소일·1만4000원)은 즐겁게 농촌살이를 해 나가는 여성 9명의 이야기다. 공동 저자 9명의 이름은 키키 별나 시루 바비 수작 햇살 슨배 로제 하하. 자급자족을 꿈꾸며 귀촌한 이들은 완주군 문화예술협동조합에서 만나 2016년부터 식당을 운영했다. 30대부터 50대까지 폭넓은 연령대의 전업주부, 비혼자, 경력단절녀, 다둥이 엄마는 서로 의지하며 농촌살이에 적응해왔다. 이들은 9명 모두가 사장이면서 각자 맡은 요일에 자신의 방식으로 식당을 운영한다. 운영비를 함께 모으고(경비·經費), 공동책임제로 공간을 지켜왔다(경비·警備)는 의미를 담아 책 제목에 ‘공동경비부엌’을 넣었다. 손수 농사지은 수확물로 음식을 만들고, 식당을 직접 꾸미고 수리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생동감 넘치는 농촌 적응기는 농촌살이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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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 아름다운 바다가 사라지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서 세계 79개국 정상은 2014년 7월 지구 대기온도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위해 개발된 인공냉각제 ‘CW-7’을 대기에 살포하기로 결정한다. 하늘에 뿌려진 냉각제는 강력한 한파를 불러왔고, 지구는 빙하기에 돌입한다. 영화는 기후 위기를 소재로 극단적 상황을 그렸지만, 지구 온난화는 이미 현실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과학계는 21세기 말까지 해수면이 최소 1.8m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도네시아와 같은 섬나라들의 해안 도시 대부분이 물에 잠기게 되는 것이다. 작가 겸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기거나 폭풍우, 홍수 등 기상 이변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을 지난 10여 년간 찾아다니며 그곳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아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경고한다. 특히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며, 더는 이러한 위기를 외면해선 안 된다고 전한다. 저자는 지금의 상황을 야기한 인류의 탐욕을 먼저 꼬집는다. 대표적 휴양지인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해변은 미국 중서부 출신 사업가 칼 피셔(1874∼1939)가 20세기 초 바다에서 모래를 퍼 올려 만든 땅이다. 건물을 세울 수 있게 되자 마이애미에는 부동산 광풍이 불어 간척 30여 년 만에 호텔 56개, 주택 858채, 상점 및 사무실 308개 등이 들어섰다. 하지만 이를 비웃듯 1926년 마이애미에 찾아온 시속 200km의 허리케인은 높이 3m의 폭풍해일을 불러와 113명의 사망자와 1570억 달러(약 185조 원)의 손실을 불러왔다. 1992년, 2016년에도 도시를 뒤덮는 허리케인이 찾아왔지만 여전히 마이애미에는 새로운 콘도가 지어지고 있다. 개발 욕심이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지난 20년 동안 그린란드가 있는 북극권의 온도를 1.6도 이상 상승시켰다. 이는 세계 평균보다 2배가량 빠르다. 심지어 2010년에는 그린란드에서 가장 큰 빙하 중 하나인 페테르만 빙하가 깨지기 시작했다. 2012년에서 2016년까지 불과 4년 만에 그린란드에선 1조 t의 얼음이 사라졌다. 만약 2100년까지 해수면이 2m 상승한다면 마이애미의 절반이 바다에 잠긴다. 문제는 기후 위기에 책임이 없는 국가들에 피해가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미국의 핵폭탄 실험장이었던 섬나라 마셜제도에서 지난 50년 동안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총량은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시의 1년 배출량보다 적다. 하지만 해수면이 상승함에 따라 마셜제도는 서서히 물에 잠기고 있다. 마셜제도에는 이를 피할 만한 고지대도 없어서 그들의 언어와 문화, 정체성까지 전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저자는 부유한 국가들이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손놓고 있기보다는 화석연료의 사용을 중단하고 더 높은 땅으로 옮겨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해수면 상승 속도를 조금이라도 낮춰 사람들이 그에 적응할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냉정하고 비관적인 분석이지만 그만큼 기후 위기를 더는 외면할 수 없음을 절감할 수 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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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툴러도 얼굴엔 웃음 가득… 발달장애인 무용단 ‘희망의 몸짓’

    “얘들아, 연습 시작하자.” 15일 오후 7시 경기 안양시 대림대 한림관 지하 1층 연습실. 임인선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장(대림대 스포츠지도과 교수)의 한마디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무용단원 11명이 두 줄로 섰다. 한국창작음악이 흘러나오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단원들이 율동을 시작했다. 단체 무용이지만 대형이 체계적이지 않고, 동작도 일사불란하지 않았다. 두 개의 대열이 앞뒤로 교차할 때 단원들끼리 엉키기도 하고, 손에 들고 있던 꽃 소품을 떨어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필로스 장애인 무용단은 200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달장애인으로만 단원을 구성해 창단됐다. 장애인도 무용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14년간 교도소, 병원, 각종 사회복지시설 등에서 공연해 왔다. 초등학생이던 단원들은 어느새 성인이 됐다. 이들은 몸짓이 정교하지 않고, 섬세한 표현을 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임 단장은 비장애인의 기준에 맞춰 안무를 구성하지 않는다. 단원들은 공연을 하는 것 그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무용단 창단 멤버인 조동빈 씨(27)는 “무용을 계속하는 게 꿈이다”라고 말했다. 연습실에는 단원들의 부모와 자원봉사를 나온 대림대 스포츠지도과 학생들도 있었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상 10분짜리 작품의 안무를 익히는 데 2∼3년가량 필요하다. 자원봉사자들이 이 긴 과정을 함께한다. 부모들은 매주 월요일 오후 6시에 단원들을 연습실로 데려온다. 자녀를 바라보는 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조 씨의 어머니 우미숙 씨(54)는 “동빈이가 운동 삼아 무용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흥미를 느껴 계속하게 됐다. 아이가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 기쁘다. 힘이 닿는 데까지 동빈이의 꿈을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임 단장은 “어떤 몸을 가졌든 무용을 할 수 있다”며 “무용단의 공연으로 힘든 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19일 오후 2시 경기 수원시 호매실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창작 한국무용 작품 4개와 발레 공연 1개를 선보인다. 무료.안양=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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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에 갇힌 역사는 좁다… 가자, 실크로드로

    곱슬곱슬한 머리카락과 수염, 근육질의 상반신이 돋보이는 남성이 위엄 있는 모습으로 옥좌에 앉아 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국박) 중앙아시아실에 상설 전시돼 있는 이 좌상(坐像)은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이집트 남신(男神) 세라피스. 지중해를 중심으로 헬레니즘 세계에서 널리 신봉됐다. 2, 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20세기 초 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허톈(和田) 지역에서 출토됐다. 고대 지중해 문화가 실크로드를 거쳐 중앙아시아 동쪽 지역까지 전해진 것이다. 실크로드는 국내로도 이어졌다. 이달 5, 6일 열린 제45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에서 박천수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는 ‘유리기(琉璃器)로 본 유라시아 실크로드’ 논문을 통해 1973년 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5세기 제작 추정 그물무늬 유리잔과 카자흐스탄 카라아가치 지역 훈족 무덤에서 출토된 유리잔을 비교했다. 잔 밑받침을 제외하면 녹색빛 바탕의 잔 형태와 푸른색 그물무늬 등 두 잔이 거의 똑같다. 박 교수는 “지중해에서 제작된 유리기가 흑해와 인접한 카자흐스탄 북부 초원지대를 거쳐 신라로 유입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 고고학계가 실크로드에 주목하고 있다. 한반도 내에서만 고고학 자료를 찾았던 경향을 벗어나 한반도 너머로 외연을 넓히기 위함이다. 특히 이번 전국대회에서는 그해 전국대회의 핵심 주제를 보여주는 제1세션을 ‘실크로드 고고학’으로 정했다. 국내 고고학계 학술대회 중 최대 규모인 전국대회에서 실크로드를 제1세션으로 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순발 한국고고학회장(충남대 고고학과 교수)은 “한국 고고학의 영역이 좀 더 확대될 필요가 있다”며 “한반도 외부에서 우리와 관련된 것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 이번 대회의 기획 의도”라고 말했다. 고고학계의 이런 흐름은 국박이 6월부터 중앙아시아실에서 진행 중인 ‘투루판 지역의 한문자료―실크로드 경계의 삶’ 테마전에서도 읽을 수 있다. 국내 역사를 실크로드 관점에서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리와 꾸준히 교류했던 중국 문화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번 전시는 일본 부유층 출신 승려 오타니 고즈이(1876∼1948)를 중심으로 실크로드 일대를 조사한 ‘오타니 탐험대’가 1912년 중앙아시아 타클라마칸 사막 투루판 지역 무덤에서 수집한 유물 19점을 통해 중국과 서역의 교류를 보여준다. 투루판 국씨고창국(麴氏高昌國)과 당나라 귀족 무덤인 아스타나 고분군 230호 무덤에서 출토된 시신깔개에는 당시 당나라 서주도독부(西州都督府)였던 고창국에 679년 당 조정이 전국 예산 집행 지침을 하달하는 문서와 675∼676년 도주한 병사의 처분과 관련한 문서가 붙어 있었다. 당 중앙정부가 서역과 직접 교류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투루판 가오창고성(高昌故城)에서 출토된 비석도 있다. 이 비석은 강국(康國·현 사마르칸트) 출신으로 7세기 중반 당으로 귀화한 소그드인 지도자 강거사(康居士)가 투루판 지역에서 불교 경전을 제작한 업적을 기리고 있다. 주 종교가 조로아스터교였던 소그드인이 중국식 불교 경전을 만들었다는 점은 당시 당나라와 서역이 문화적으로도 교류했음을 알려준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삼면이 바다인 한국에서 대륙과의 관련성은 필연적으로 북쪽 지역과 관련돼 있다”며 “이제는 유라시아라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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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최초로 자화상 그린 여성 화가는?

    17세기 네덜란드 미술 황금기를 이끈 유딧 레이스터르(1609∼1660)의 ‘즐거운 술꾼’(1629년)은 19세기 말까지 그의 스승 프란스 할스(1582∼1666)의 작품으로 알려졌다. 불과 24세에 당시 여성이 가입하기 힘들었던 네덜란드 화가조합 회원이 되는 등 걸출한 실력을 갖췄다. 하지만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탓에 미술사에서 그의 이름은 잊혔다. 미술사학자인 저자는 16세기부터 현재까지 한동안 조명되지 못한 여성 미술가들의 삶과 이들의 대표작 60점을 소개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소포니스바 안귀솔라(?∼1625)는 여성의 미술수업이 금지된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살았다. 그의 작품 ‘이젤 앞의 자화상’은 여성화가가 그린 최초의 자화상으로 기록됐다. 팔레트와 붓을 들고 정면을 당당히 응시한 그의 모습에서 오직 실력으로 인정받고자 한 작가의 의지가 느껴진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로부터 300년이 흐른 19세기 말까지도 여성은 공립학교에서 미술수업을 받을 수 없었다. 프랑스의 쉬잔 발라동(1865∼1938)은 화가들의 모델로 일하며 어깨 너머로 그림을 배웠다. 그의 대표작 ‘푸른 방’(1923년) 속 인물은 줄무늬 파자마와 캐미솔을 입은 채 침대에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다. 강한 색채와 활기찬 붓 터치는 자신 만의 작품세계를 탄탄히 구축한 발라동 예술을 그대로 보여준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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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징어게임’ 연출 황동혁 감독, 아름다운예술인상 수상자 선정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50·사진)이 제11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사장 안성기)은 올해의 영화예술인상에 황 감독을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재단 심사위원회는 황 감독이 오징어게임을 세계 흥행 순위 1위에 올리며 K문화의 연출 저력을 과시해 영상예술 발전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재단은 황 감독과 함께 공로예술인상에 이장호 감독, 굿피플예술인상에 배우 정우성, 독립영화예술인상에 윤단비 감독을 각각 선정했다. 재단은 2011년부터 영화, 연극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하고 기부 등 선행으로 귀감이 된 예술인을 선정해 상금 1억 원과 상패를 수여하고 있다. 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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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인 노예 5명 겨우 12이스쿠두에 사”

    “조선에서 모든 연령대의 수많은 남녀가 노예로 몰려왔다. 그중에는 아름다운 여인들도 있었다. 나도 조선인 노예 5명을 겨우 12이스쿠두(포르투갈의 옛 화폐단위)에 살 수 있었다.” 1598년 일본 항구도시 나가사키에 머물던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카를레티가 쓴 ‘나의 세계 일주기’ 중 일부다. 당시 유럽 상인들이 드나들던 나가사키에서는 조선인을 비롯해 일본인, 중국인, 벵골인, 흑인 등 다양한 인종의 노예들이 거래됐다. 흑인 남자 노예가 100이스쿠두에 거래된 걸 감안하면 조선인 노예의 값이 현저히 낮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임진왜란 때 왜군이 조선인을 많이 끌고 와 노예시장에 공급이 넘친 데 따른 것이다. 당시 일본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수는 약 10만 명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일부 여성들은 유곽에 팔려가 외국 상인이나 뱃사람들을 상대했다. 이들을 따라 마카오, 인도 등을 떠돈 조선인 여성도 있었다. 최근 발간된 ‘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산지니)는 16세기 포르투갈 등 서구 식민제국들에 의해 이뤄진 아시아인 노예매매 실태를 다룬다. 포르투갈인 저자 루시오 데 소우사 도쿄외대 특임 준교수(국제지역학)는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뿐만 아니라 필리핀, 멕시코 등으로 팔려간 일본인 노예 기록도 책에 담았다. 일본에 끌려온 조선인 중 상당수는 도공(陶工)이었다. 당시 일본에서 다도(茶道)가 인기를 끌면서 찻잔 등 다기(茶器)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영향이 컸다. 조선 침략을 결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1536∼1598)는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해 황금 다실을 만들기도 했다. 그는 전쟁을 벌이면서 조선인 장인들을 데려올 것을 직접 지시했다. 일본 사가현 등에 자리 잡은 조선인 도공들은 일본을 대표하는 ‘히젠(肥前) 자기’를 꽃피웠다. 일본은 약 700만 개의 도자기를 서양에 수출하고 거둔 막대한 이윤을 바탕으로 근대화에 나설 수 있었다. 나가사키에는 일본인 상인에 의해 납치된 일본인 노예도 많았다. 한 일본인은 11세에 오이타현에서 납치돼 포르투갈 상인 루이 페레스에게 팔려 가스팔 페르난데스로 개명했다. 당시 포르투갈에서는 유대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유대인들도 이단으로 잡아들였다. 이에 페르난데스는 주인과 함께 필리핀 마닐라, 멕시코 등으로 도피하며 가사노동을 했다. 페레스는 마닐라에서 조선인 노예 가스팔 코레이아를 사들였다. 코레이아는 주인을 도와 뼛조각과 십자가를 섞어 위조한 순교자 유골을 팔았다. 나중에 그는 페레스가 가톨릭에서 신성시하는 성모상을 침대 아래 둔 사실을 증언해 이단 혐의로 체포되도록 했다. 저자는 “16세기 대항해시대 아시아인 노예 연구는 사료 부족으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못했다. 후속 연구를 통해 역사에서 이들의 존재가 밝혀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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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운명은 기후가 결정했다

    지구 기온이 3도가량 오르면 세계에서 약 300만 명이 기근으로 사망하고 동식물의 20∼50%가 멸종위기에 처한다. 지난달 말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현 추세라면 2030년까지 지구 기온이 평균 2.7도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방안이 논의됐다. 이 책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기후가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인 저자는 역사학과 지리학을 통합한 ‘빅 히스토리’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기후가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해왔다고 주장한다. 이런 과거 사례들을 바탕으로 미래의 기후변화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약 700만 년 전 등장한 고인류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 때부터 기후변화가 지구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아프리카 기후가 건조해지면서 숲이 줄고 열대초원은 늘었다. 숲보다 식량을 구하기 어려운 초원지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인류는 더 많이 움직여야 했고, 에너지 소비 측면에서 네 발로 걷는 것보다 효율적인 직립 보행을 선택했다. 한반도에 인류가 처음 등장한 때는 약 2만5000년 전. 약 11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유라시아로 퍼져나간 호모 사피엔스는 5만 년 전 만주지방에 도착했다. 이들 중 일부는 2만9000년 전 빙하기가 시작되자 추위를 피해 한반도로 남하했다. 인류 이동에 기후변화가 핵심 변수였던 것. 따뜻한 기후에 힘입어 한반도에서는 약 5000년 전부터 농경이 시작됐다. 저자는 한국 고고학계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인 송국리 문화의 갑작스러운 소멸 원인을 기후변화에서 찾는다. 송국리 문화는 3000년 전부터 금강 중하류의 충청권을 중심으로 생성된 국내 최대 청동기 유적으로, 2300년 전 갑작스레 종적을 감췄다. 저자는 전남 광양 섬진강 일대의 퇴적물 연구를 바탕으로 2800년 전과 2400년 전에 각각 발생한 극심한 가뭄이 송국리 문화의 소멸을 가져왔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두 시기에 퇴적된 꽃가루 중 나무에서 만들어진 꽃가루 비율이 현저히 낮았다. 이는 당시 가뭄으로 나무의 꽃가루 생산성이 크게 줄었음을 뜻한다. 2800년 전 가뭄으로 식량이 부족해진 송국리 문화 집단은 전라도 지역으로 이동했다. 이때 일부 세력은 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에서 야요이 문화를 생성했다. 이어 2400년 전 2차 가뭄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송국리 문화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저자는 조선왕조의 흥망성쇠도 기후와 연관짓는다.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등을 낳은 영·정조 시기는 ‘조선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저자는 이때 태양 흑점 수가 증가해 지표로 유입되는 태양 복사에너지가 증가하면서 기온이 생활에 알맞게 높아졌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직전인 현·숙종 때는 봄철 냉해와 여름철 홍수로 인해 1670년 경신 대기근, 1695년 을병 대기근이 발생했다. 이 시기에는 태양의 흑점 수가 영·정조 시기보다 적어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것. 저자는 “기후변화가 필연이라면 새로운 환경을 오히려 발전의 기회로 삼는 역발상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송국리 문화가 국내에서는 사라졌지만 일본에서 꽃을 피운 것처럼 인류는 기후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왔다. 지구 온난화에 대비해야 하는 현 인류에게 필요한 해법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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