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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제균 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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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4-03-28~2024-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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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3%
  • [박제균 칼럼]문재인의 채무 김정은의 채권

    사람은 비슷하다. 자기가 꾼 돈은 잊어도 꿔준 돈을 잊는 사람은 드물다. 돈을 갚을 때 꿔준 사실을 잊었다고 하는 사람도 기실 잊은 척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국가관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더구나 세습체제라면 권좌를 물려받은 자식에게 아버지의 채권은 반드시 챙겨야 할 유산이나 다름없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2007년 10월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합의한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선언)’은 일종의 유업(遺業)이다. 한반도에서 전쟁 위험을 없애고 항구적인 평화를 달성할 모든 방안이 거기에 담겨 있다고 보는 듯하다. 정권 말 합의여서 생명력을 갖지 못한 것이 당시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았던 문 대통령에게는 통탄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에게 10·4선언은 아버지가 남겨준 채권증서다. 선언 5항에는 구체적인 채권목록이 나온다. △남북경협 투자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한강하구 공동 이용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 수송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안변 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협력사업 등이다. 사실상 북한의 사회간접자본(SOC)을 깔아주는 것으로 수백조 원이 소요될 수도 있는 사업이다. 물론 그 돈은 남측이 내는 것이다. 끝나는 남쪽 정권과 정상회담을 해준 대가였다.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북측에서 ‘남북 합의를 지키라’는 반응이 연달아 나오는 이유는 자명하다. 빚을 갚으란 얘기다. 북한당국 발표의 문면(文面)을 들여다보면 ‘먹튀’한 노무현 정권에 대한 배신감이 짙게 깔려 있다. 노무현 정권을 계승한다는 새 정권이 들어섰으니, 본전 생각이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비롯해 집권 이후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라인 인사는 하나의 분명한 목표를 가리킨다. 연내 남북정상회담 개최다. 10·4선언이 정권 말 합의여서 무위로 돌아간 만큼 정권 초 정상회담을 열어 이를 부활시키고 임기 내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의 방미 중 그를 접촉한 패트릭 크로닌 미국신안보센터 아시아태평양안보 소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워싱턴에선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10월 4일 전후를 주목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문 특보는 귀국 후 “문 대통령이 10·4남북정상회담 10주년이 되는 10월 4일 북한 문제와 관련해 큰 그림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의 주목이 근거 없는 게 아니란 얘기다. 문정인이 문 대통령의 통일외교안보 멘토라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북핵 동결 검증 시 한미훈련 축소’를 말한 것도 애초에 문정인의 구상에서 나온 것이다. 문 특보가 말한 ‘10월 4일 큰 그림’과 관련해 문 대통령 측이 원하는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10월 4일 남북정상회담 개최다. 이를 위해 8·15 광복절에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8월 15일까지 회담 제의 여건이 성숙되지 않으면 10월 4일에는 제의하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바로 이 지점에서 문 대통령 측과 김정은의 계산이 엇갈린다. 정상회담 하면 남측 정부로부터 받을 돈부터 떠올리는 김정은은 한 번 속지, 두 번 속냐는 태도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도 이를 모를 리 없다. 문 대통령이 6·15남북선언 17주년 기념식에서 ‘남북합의 법제화’를 말한 것은 빚 갚을 의향이 있음을 1차로 확인한 것이다. 청와대는 향후 정상회담 공식 제의 또는 북측과의 직·간접 접촉을 통해 ‘남북 기존 합의 이행’을 강조할 것이다. 빚을 받고 싶으면 정상회담에 응하라는 뜻이다. 문제는 김정은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사석에서 “당신이 김정은이라면 핵·미사일의 고도화가 거의 완성된 마당에 포기하겠느냐”고 반문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려도 핵·미사일 문제에는 별 진전 없이 김정은으로부터 청구서만 잔뜩 받아온다면 국내 여론이 가만있을 리 없다. 남쪽에서 뭐라고 하든 오로지 미국만 쳐다보는 북한이야말로 친미 사대주의자가 아닌가 싶을 때가 많다. 미국이 나서지 않으면 북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한 이유다. 그런 북을 향해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며 남북만 합의하면 한반도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을 순진하다고 해야 할까, 어리석다고 해야 할까. 짝사랑은 대개 실패한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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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보수 살길은 ‘새 얼굴’… 누구인가

    ‘의문의 1패’란 방송 신조어를 아는가. 출연자들이 개그 소재로 그 자리에 없는 연예인 ○○○ 씨의 흉을 보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자막으로 ‘○○○ 의문의 1패’라고 뜬다. ○○○이 자신도 모르는 새 억울하게 당했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 때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를 보면서 이 말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짓곤 했다. 유승민이 추구하는 보수의 지향점은 말 그대로 ‘바르다’. 누구보다 안보관이 뚜렷하면서도 개혁 보수, 따뜻한 보수로 지평을 넓히려 했다. 콘텐츠도 풍부하고, 무엇보다 경제에 해박하다. TV토론도 가장 잘한 축이다. 그럼에도 지지율은 땅에 붙어서 도무지 뜰 줄 몰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걸어놓은 ‘배신자’의 주술이 그만큼 강력했던 걸까. 오죽 안 뜨면 “얼굴이 대통령감이 아니다”는 인신공격성 분석까지 난무했을까. 누구보다 절치부심했을 유승민이 “대선 패배의 책임은 후보가 제일 큰 것”이라며 당권 도전에 선을 그은 것은 역시 그답다. “바른정당이 진짜 새 모습을 보이려면 새 얼굴들이 나와야 한다”고 진단한 것도 맞다. 취임 한 달을 갓 넘긴 문재인 대통령은 80%가 넘는 지지율의 힘으로 ‘이명박근혜 보수정권 9년’을 뒤집는 이른바 적폐 청산을 착착 실행해가고 있다. 4대강 사업부터 국정 농단 사건까지, 검찰 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부터 방송까지 망라해 파헤치는 작업을 로드맵대로 시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보수 야당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은 구심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문 대통령은 행운아다. 김대중 노무현 집권 때는 보수 야당에 이회창과 박근혜가 있었다. 이명박 집권 때는 좌파세력이 광우병 시위로, 박 대통령 때는 국정원 댓글사건으로 집권 초부터 정권을 흔들었다. 새로 취임한 대통령을 흔드는 행위야말로 이제는 사라져야 할 적폐 중의 적폐다. 그래도 지금처럼 보수의 미래가 안 보이는 것은 한국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그 정도 참패를 했으면 당연히 보수 야당 내에서 땅을 치는 자성(自省)의 소리가 높아도 시원찮을 터. 그럼에도 일부 초·재선만 말로만 정풍(整風) 운동을 되뇌며 여전히 웰빙이다. 문 대통령의 집권은 이명박 당선 과정과 비슷하다. 당시 ‘노무현’ 소리만 나오면 백약이 무효였듯, 이번에는 ‘박근혜’ 소리에 보수 후보들은 추풍낙엽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은 교수 출신 류우익을, 문 대통령은 51세 정치인 임종석을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에 앉혔다. 보수, 도대체 사람 키울 줄을 모른다. 박근혜 정부 비서실장들은 60대 후반이 상대적으로 젊은 축이었으니 말 다했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키웠다. 지금도 진보에는 대선 주자였던 안희정 이재명, 문 대통령이 자리를 주어 예비 주자로 키우는 임종석 김부겸 김영춘 등이 포진하고 있다. 반면 보수에 누가 보이는가.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유승민은 이미 흘러간 물이다. 홍 전 후보는 당권에 마음이 있어 보이지만, 유승민처럼 보수를 살릴 얼굴을 키우는 게 순리다. ‘박근혜 보수’에 질린 민심은 그 밥에 그 나물 같은 인물이 다시 나선다면 마음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 일약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같은 새 얼굴이 필요하다. 보수 새 얼굴의 조건을 뭘까. 첫째, ‘보수=기득권’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현재 자천타천으로 자유한국당 당권 후보로 거론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점에서 결격이라고 나는 본다. 유권자는 당의 얼굴이 달라져야 당이 달라졌다고 느낀다. 둘째, 인물에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자기희생의 스토리라면 더 좋다. 보수 야당에는 상대적으로 여권에 비해 스토리 있는 인물이 적다. 집안 좋고 공부 잘해서 입신양명(立身揚名)한 것 말고,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그만의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 이 점에서 오렌지족 이미지를 풍기는 재력가 출신 정치인들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수 야당이 획기적으로 변하려면 어쩔 수 없다. 셋째, 품격과 책임감, 콘텐츠는 기본이다. 국민은 품격 없는 보수, 대통령과 당이 망가져도 책임지지 않는 보수, 자기 언어로 설득도 못하는 맹탕 보수에 질릴 대로 질렸다. 보수에 이런 걸 갖춘 사람이 있겠냐고? 어디서 이런 물건을 찾았나 싶은 문 대통령의 한 달 인사를 보면 그런 말은 못 할 것이다. 인물이 없는 게 아니라 못 찾는 것, 아니 찾고 싶지 않은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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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점령군’의 正義

    강원 철원에 가면 승일교라는 다리가 있다. 지금은 노후화해 쓸 수 없는 다리지만, 아치형 교각을 살펴보면 북쪽과 남쪽의 모양이 다르다. 철원은 6·25전쟁 이전에는 38선 이북의 북한 땅이었다. 1948년 북한 당국이 착공했으나 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1952년 미군 공병대가 공사를 재개해 1958년 완공됐다. 처음에 러시아식, 나중엔 미국식 공법을 적용해 아치 모양이 달라진 것이다. 다리 하나에 전쟁과 분단의 기억이 담겨 있다. 이름이 승일교인 것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의 ‘승’과 북한 김일성(金日成)의 ‘일’을 따왔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58년 개통할 때 6·25전쟁에서 큰 공을 세운 박승일(朴昇日) 연대장의 이름에서 따왔다는 설이 더 유력하다. 김영규 철원역사문화연구소장은 “철원 사람들의 정서에는 전자가 더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6·25전쟁이 나자 철원 주민의 80%는 북으로 피란을 갔다”고 했다. 북쪽으로 피란을 갔다? 생전 들어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전쟁이 났을 때 철원은 북한 땅이었고, 전쟁터는 남쪽이었다. 전쟁을 피하려면 북쪽으로 갈 수밖에. 피란 가지 못한 일부 주민은 산에다 토굴을 파고 생활했다고 한다. 철원 토박이인 김 소장은 토굴에서 지냈던 어른들께 한국군과 유엔군, 북한군 중 어느 쪽이 철원에 진주했을 때 내려가야 안전할까, 피 말리는 고민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김 소장은 “철원은 38선과 휴전선에 갇힌 섬”이라고 규정했다. 지난 주말 철원 답사여행을 했다. 남과 북, 38선과 휴전선 사이에서 갈등했던 철원의 역사를 들으며 작금의 정치 상황이 머리를 스쳤다. 대한민국은 대선 때마다 정치적 전쟁을 치른다. 바로 지금이 승자와 패자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리는 시기다. 전 정권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부정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치를 봐야 하는 위험한 시기다. 통일부는 제재와 압박 위주로 흘렀던 전 정권의 대북정책에 대한 ‘반성문’을 쓰는 부인(否認)의 시절이다. 집회 안전을 우선시해야 할 경찰청이 스스로 ‘시위 현장에 살수차와 차벽을 없애겠다’고 고해성사를 하는 혼돈의 계절이다. 취임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를 보면 ‘더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슬로건이 들어맞는다는 생각까지 든다. 그는 전임 대통령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소탈·파격 행보로 국민의 마음을 얻으며 준비한 국정 플랜을 쏟아내고 있다. 양복 상의를 경호원 도움 없이 손수 벗고 커피를 직접 따라 마시며 가족 식비를 대통령 월급으로 충당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 당연한 일들이 당연하지 않게 행해졌던 때 느꼈던 국민의 갈증을 문 대통령은 사이다처럼 풀어주고 있다. 인사 발표도 직접 하고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마자 대책회의를 소집하며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대통령을 보면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박 전 대통령이 얼마나 할 일을 안 했는지, 이제 알겠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이명박·박근혜 보수정권 9년을 겨냥한 소위 ‘적폐청산’은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소탈과 파격 행보 속에 숨겨진 칼날, 그것이 문 대통령의 무서운 점이다.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과 어긋나는 발언을 한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회장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사회 양극화를 만든 주요 당사자 경총은 반성하라’고 경고했다. 취임 보름이 갓 지난 대통령으로부터 공개 경고를 받았으니 김 부회장은 모욕감과 함께 공포감까지 느꼈을 법하다. 불현듯 2004년 3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좋은 학교 나오시고 크게 성공하신 분들’이 형인 노건평 씨에게 로비한 사실을 들먹인 뒤 대우건설 사장이 자살한 사건이 떠올랐다. 서슬 퍼런 임기 초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그만큼 무섭다. 문 대통령은 1월 펴낸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우리 진보진영 내부의 비판이나 진보언론의 비판에는 굉장히 아파하고 귀를 기울였다”면서도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공격에는 “전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제 전 국민의 대통령이 된 만큼 입장이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도 아파해야 한다. 그래야 정권이 바뀌고 새 ‘점령군’이 들어설 때마다 가치가 전도(顚倒)되고 심지어 사회 정의의 개념까지 흔들리는 혼돈의 대한민국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통령이 바뀐다고 모든 것이 뒤집히는 건 제왕적 대통령제의 또 다른 얼굴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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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文대통령, 盧 극복해 정부성공 이끌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아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봤다면 깜짝 놀랐을 것이다. 무엇보다 문재인이 19대 대통령이라는 사실에 입이 딱 벌어졌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을 ‘정치에 전혀 안 맞는 사람’으로 봤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총선에 출마시키라는 주변의 천거에 “저 사람은 정치할 사람이 아예 아니야”라고 말했다. 그런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자마자 인사와 정책을 쏟아낸 것에 한 번 더 놀랄 것 같다. 문 대통령은 오랜 시간 준비한 듯 속도감 있게 문재인 정부의 틀을 짜 나가는 중이다. 적어도 인사에 관한 한 시작은 괜찮은 편이라고 나는 본다. 골수 친문·친노로 주변을 에워싸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일정 부분 덜어낸 것만으로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전임 박근혜 대통령 당선 직후 인사 하나하나를 질질 끌다가 발표가 나면 ‘어? 이건 뭐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던 기억이 생생한 터다. 문 대통령이 출입기자들과 등산을 하거나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모습은 여러모로 노 전 대통령과 겹친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 말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점심 배식을 받다가 식판에 떨어진 콩나물밥을 무심코 집어 먹었다. 하필 그 장면이 찍혀 신문에 실렸다. ‘대통령이 소탈하다’는 게 중평이었지만 밥 먹는 데 소탈한 것과 국정 운영은 달랐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했다.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참담하게 토로했다. 그가 실패를 자인한 것과 달리 사후 노무현 주변에선 다른 목소리가 주(主)를 이룬다. 이른바 ‘주류세력’이라는 친일·부패·기득권 세력이 사사건건 노무현 정부의 발목을 잡아 노무현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들었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1월 펴낸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우리 정치의 주류세력을 교체하는 것이 ‘역사적인 당위성’이라고 주장했다. 1945년 해방과 1987년 6월항쟁 때가 친일·독재세력과 그 부역자 집단을 단죄할 기회였는데, 그 두 번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친일→반공·산업화세력→지역주의를 이용한 보수세력’으로 화장만 바꿔가며 우리 사회를 계속 지배하고 있다는 논리다. 이런 역사관이 소위 ‘적폐 청산’의 논거다. 선거 과정에서 ‘대통합’을 말했던 문 대통령의 본심은 선거운동 전 집필한 책에 더 오롯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게 맞다. 문 대통령의 역사관은 재임 시절 틈만 나면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대한민국 역사’ 강의에 열중했던 노무현의 역사 인식과 일치한다. 노 전 대통령이 선거 전략상 ‘재미 좀 봤다’던 행정수도 이전 공약도 주류 교체와 무관치 않다. 동서고금의 집권자가 기득권세력 교체를 기도할 때 내놨던 것이 천도(遷都)였다. 이 대목에서 ‘정치에 안 맞는 사람’이자 정치를 좋아하지도 않았던 문 대통령이 정치에 뛰어들고 대권까지 잡은 이유가 새삼 궁금해진다. 노무현의 실패와 좌절, 비극적 최후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봤던 문 대통령. 혹여 ‘노무현의 실패’를 성공으로 뒤집기 위해 정치하는 것은 아닌가. 이를 위해 그토록 주류 교체와 적폐 청산에 집착하는 것이라면 위험하다. 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탄핵안 가결 직후 성명을 내고 국정 교과서 등 ‘박근혜표 정책’ 집행을 중단하라고 촉구하며 △비리와 부패와 관련된 공범자 청산 △사유화한 공권력 바로잡기 △권력기관 개조 △재벌 개혁 △언론 개혁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6대 과제’로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이 로드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재벌과 검찰 개혁에 이어 우병우 민정수석실과 ‘정윤회 문건’, 세월호 재조사와 국정 교과서 중단 카드를 벌써 꺼냈다. 아직 안 나온 것은 언론 개혁이지만, 문 대통령 성격상 언제 가시화할지 모른다. 무릇 과거와 싸우면 미래를 잃기 십상이다. 필요한 개혁은 당연히 해야 한다. 하지만 개혁의 목적은 과거를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여는 데 있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하고 박정희 시대 대통령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실패했다. 문 대통령도 노무현을 극복해야 성공할 수 있다. ‘노무현 실패’를 성공으로 뒤집으려다 다시 실패의 전철을 밟을까 봐 걱정이다. 국민이 새 대통령에게 바라는 것은 노무현 아닌 문재인 정부 성공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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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美에 ‘No’하라, 은밀하게 위대하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8일 뒤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공로패 하나쯤은 줘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트럼프의 대북 강경책에 북한이 반발해 6차 핵실험이라도 감행했다면 선거판에 북풍(北風)이 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항공모함까지 배치하는 미국의 무지막지한 압박에 바짝 언 김정은은 모험을 하지 않았다. 최근 방한한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문 후보 측에 “북한이 한국 진보진영에 곤란한 상황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북이 한국 대선을 의식해 도발을 자제한다는 뉘앙스다. 그러나 북이 남쪽을 의식해 핵개발의 페이스를 조절할 것으로 믿는 것은 단견(短見)이다. 그랬다면 세계 최빈국 수준의 나라가 사실상 핵보유국이 되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직전까지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상대의 예측을 불허케 하는 트럼프의 ‘미치광이 협상전략(Madman Negotiation Strategy)’에 간을 보는 단계일 것이다. 트럼프의 대북 강경책은 문 후보 지지자를 결집시켰을 뿐 아니라 일부 중도층 사이에서 전쟁 불안감을 부추기기도 했다. 여론조사에서 외교안보 위기와 남북관계를 잘 다룰 대선 후보 1위에 문재인이 꼽히는 것은 전쟁 불안이 일등공신이다. 트럼프는 10억 달러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청구서와 ‘끔찍한(horrible)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폐기’ 카드로 문 후보에게 ‘애프터서비스’까지 해줬다. 누구도 예기치 못했던 ‘문재인-트럼프 연대’다. 그럼에도 문 후보가 집권한다면 한미 정부는 궁합 나쁜 파트너가 될 공산이 크다. 한미관계사를 돌아보면 한국 보수-미국 공화당 정부, 한국 진보-미국 민주당 정부는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 한국 보수-미국 민주당 정부도 관계가 썩 나쁘진 않았다. 최악은 한국 진보-미국 공화당 정부의 궁합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가 그랬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김 대통령을 ‘이 양반(this man)’이라고 불렀고,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노무현과 부시의 관계가 “역대 최악에 가까웠다”고 평가했다. 로버트 게이츠 전 미 국방장관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약간 정신 나간(crazy) 인물”이라고 자서전에 썼다. 문 후보가 그의 저서에서 “미국에 노(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반미주의자면 어떠냐”고 주장했던 노무현 발언의 문재인 버전이다.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은 미국 아니라 미국 할아버지라도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끄럽게 떠들어서 문제를 키울 필요는 없다. 노무현은 대통령이 돼서도 “미국은 일절 오류가 없는 국가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따져야 한다고 장관들에게 코치까지 했다.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언행이었다. 문 후보든, 누구든 차기 대통령은 트럼프의 사드 청구서에 당연히 ‘노’라고 해야 한다. 다만 트럼프가 동맹국에 예의를 차리지 않는다고 그대로 따라할 일은 아니다. 적어도 우리 안보가 한미동맹으로부터 ‘홀로 서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는. 반공포로 석방으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이끌어낸 이승만처럼 ‘위대한 노’를 할 줄 알아야 한다. 핵개발 역사를 돌아보면 차기 대통령 임기에 동북아 핵무장 이슈가 불거질 것은 자명하다. 미국의 핵개발은 소련을, 소련의 핵개발은 영국 프랑스를 자극해 핵보유국으로 만들었다. 이어 중국→인도→파키스탄으로 핵 도미노는 이어졌다. 핵 도미노의 연결고리는 적국 혹은 인접국이 ‘절대 무기’ 핵을 보유할 때 느끼는 위협이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발돋움하는 터에 일본을 필두로 한국과 대만도 ‘핵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당장 한국에선 전술핵 재배치 이슈부터 불거질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미국의 ‘핵 확산 금지’ 정책에 순순히 ‘예스’를 말해선 안 된다. 소련 붕괴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러시아의 집단안전보장과 지원 약속을 믿고 갖고 있던 핵무기를 전량 폐기한 뒤 러시아로부터 침공을 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타국의 ‘선의’만 믿고 자강을 게을리했던 나라가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트럼프의 출현은 우리가 언제까지나 미국의 선의에만 기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줬다. 이 점에서 역설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국에 ‘노’하라. 단, 은밀하게 위대하게….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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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대한민국 자긍심 높일 대통령 누군가

    공항 검색대 앞에 선 스트로블 중령은 자신이 소지한 붉은색 주머니의 X레이 검사를 한사코 마다했다. 금속제 훈장이 주렁주렁 달린 제복 상의를 벗기도 거부했다. 결국 격리된 장소에서 별도 검색을 받는다. 그에게 붉은색 주머니와 제복을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 검색대를 통과시키는 일은 국가에 대한 모욕이었다. 붉은색 주머니엔 자신이 운구를 책임진 챈스 일병의 유품이 들어 있었다. 2009년 개봉된 ‘챈스 일병의 귀환’(원제 ‘Taking Chance’)의 한 장면이다. 영화는 2004년 이라크에서 전사한 19세 챈스 펠프스 일병의 시신을 고향인 와이오밍까지 운구하는 미국 내 3000km의 여정을 담고 있다. 전사자 운구의 행로는 존엄, 그 자체다. 관이 비행기에 들고 날 때마다 중령의 거수경례에 공항 하역 직원은 손을, 조종사는 모자를 가슴에 얹는다. 관이 경유지에 머무는 동안 중령은 호텔에 가지 않고 관 옆에서 밤을 보낸다. 영화에 챈스 일병은 등장하지 않는다. 중령도 생전의 챈스를 본 일이 없다. 단지 동향이라는 이유로 운구 업무에 자원했다. 운구 여행 막바지에 ‘전장을 피해 행정 업무를 자원했다’며 자책하는 중령에게 향군 관계자는 이렇게 위로한다. “당신 같은 증인마저 없다면 전사자들은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다.” 우리 같으면 ‘국뽕(국가+히로뽕)’ 소리가 나왔겠지만, 영화는 별 대사 없이 운구 과정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영화는 스트로블 중령의 글을 바탕으로 만든 실화다. 미국의 진정한 파워는 가공할 군사력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이들과 유족의 존엄성을 보장해주는 데서 나온다. 미국에선 공항 대합실 같은 공공장소에서 생면부지의 군인들에게 박수를 치고, 자리를 양보하며, 돈을 대신 내주는 일도 허다하다. 세계 어디선가에서 항상 전쟁 중인 ‘전쟁 국가’로서 군인 우대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러나 ‘MIU’(Men In Uniform·제복 입은 공무원)를 존중하고 그들의 희생에 국가적 조의를 표하는 데는 안보와 치안 유지 차원을 넘어서는 뭔가가 있다. 그것은 국가 공동체 속의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는 접착제 역할이랄까. 공동체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제1원소’ 같은 것이다. 9·11테러 때 현장에 출동했던 미국 소방관 343명이 희생됐다. 이들은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불에 타 무너지는 건물 위층으로 향하는 ‘죽음의 계단’을 올랐다. 먼저 오른 소방관이 희생됐지만, 누구도 아래층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았다. 국가가, 정부가 뒤에 남겨질 가족을 돌봐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죽음의 행진’이었다. 가까운 후배가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겪은 일이다. 속칭 ‘노인 유모차’로 불리는 보행 보조기에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앉히고 가다가 넘어졌다. 순식간에 행인 10여 명이 자신들을 둘러싸 도와주려고 해 놀랐다고 한다. 애국심과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 고양은 자연스럽게 봉사와 희생정신으로 귀결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결여되어 있고, 그래서 가장 필요한 게 바로 이것이다. 위기다. 이미 미국과 일본은 한국 내 자국민에게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비상벨을 울렸다. 미국 시민권자는 주한 미국대사관으로부터 비상시 15kg 이내로 짐을 꾸리고, 긴급연락망을 등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만큼 상황이 위중하건만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 중 자신보다 나라를 중히 여기는 이가 보이지 않는다. 원래 우리에게도 서구의 노블레스 오블리주(특권은 책임을 수반한다) 못지않은 유구한 전통이 있었다.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선비 정신이다. 대한민국의 역사와 정통성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국민의 자긍심을 키워줄 대통령이라야 선공후사 정신을 되살릴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총성이나 포성이 울리면 반대편으로 몸을 피하게 마련이다. 청와대 경호실에선 이런 본능을 거스르는 훈련부터 한다. 총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던지는 ‘조건반사’ 훈련이다. 자신의 몸이 인간방패가 돼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것이다. 대통령이란 이런 존재다. 그 대통령을 뽑는 날이 20일 남짓 남았다. 오늘도 묵묵히 나라를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위해 몸을 던지는, 그런 대통령을 보고 싶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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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보수가 무너져도 아닌 건 아니다

    한국 정치에서 직전 대통령 선거의 2위는 엄청난 정치적 자산이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이 직전 대선의 2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사실상 본선이었던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2위를 하고 대통령이 됐다. 2012년 대선 2위였던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번 대선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린다. 당시 야권 후보 자리를 놓고 문 전 대표와 사실상 단일화를 한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지지율 2위로 부상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여기엔 여러 함의(含意)가 있다. 한국 유권자의 투표 성향이 대체로 관성(慣性)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변화를 바라면서도 한번 지지했던 후보는 잘 바꾸려 하지 않는다. 또 ‘대권 재수’에 관대하다는 의미다. 재수 후보 또한 대선에서 석패(惜敗)하면서 금쪽같은 ‘대권 노하우’에 접할 기회를 가졌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금 아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요즘 누구보다 땅을 치고 후회할 사람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일지 모른다. 반 전 총장이 중도하차하지 않고 지금까지 대선 주자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면 어땠을까. 문 전 대표와 자웅을 겨루는 유력 주자가 됐을 것이라고 나는 본다. 실제 반 전 총장 주변에선 강한 후회의 기류가 감지된다. 반 전 총장이 미국으로의 출국을 연기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때를 놓칠세라 안 전 대표 측에서 ‘반기문 외교특사 영입’ 카드를 던졌다. 문 전 대표에 앞서 반기문이라는, 철은 지났지만 명품 이미지 상품에 먼저 침을 발라놓는 동시에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반 전 총장의 회군(回軍) 통로를 막는 다목적 카드다. 아무리 그래도 아닌 건 아니다. 반 전 총장이 다시 대선판에 돌아오려 한다면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만큼이나 명분 없는 일이다. 황 권한대행은 사석에서 ‘대통령 코스프레’를 한다는 오해를 받기가 싫어서 방탄차를 타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군 통수권자가 그러면 되느냐’는 질문에 “총 맞지 뭐…”라고 농을 했다가 “우리나라는 그렇게 총 쏘기 쉬운 나라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불출마 선언으로 대통령 코스프레 논란이 사라진 지금은 방탄차를 타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보수 유권자들은 반기문의 경륜과 황교안의 대쪽 성품이 아쉽다. 그래도 번복은 안 된다. 정치를 희화화(戱畵化)할뿐더러 보수가 한 번 더 죽는 길이다. 공동화(空洞化)된 보수 표심을 노려 곁불을 쬐려는 사람들도 있다. 좌우 진영을 3번이나 넘나들었던 김종인 전 민주당 대표(77)가 이번에는 ‘킹메이커’와 ‘킹’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보수층의 ‘문재인포비아’에 기대어 보수·중도를 엮어내면 킹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김종인의 정치판을 읽는 탁월한 능력과 국정 경험을 존중한다. 그러나 킹메이커와 킹은 다르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 전력(前歷)에 뇌물죄 유죄 판결까지 받은 분이 나설 때와 안 나설 때를 가렸으면 한다. 탁월한 킹메이커였으되, 대권에는 철저하게 선을 그었던 허주(虛舟·김윤환 전 신한국당 대표)의 ‘빈 배 정신’을 배웠으면 한다. 김종인과 ‘제3지대’ 후보 단일화를 추진한다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장(71)은 또 어떤가. 2007년 대선부터 출마를 저울질하더니 이번에도 다시 나타나 별 관심도 끌지 못하는 단일화를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가벼운 언행은 접어두더라도 대법원 판결을 남겨둔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원내 2당(93석)인 자유한국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많은 보수 유권자들이 허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대선 운동장이 아무리 기울었어도, 보수 쪽에 쓸 만한 선수가 보이지 않아도 게임은 공정하게 치러야 한다. 2007년 8월 한나라당 경선에서 박근혜는 선거인단 선거에서 이기고도 여론조사에서 밀려 이명박에게 대선 후보 자리를 내줬다. 그러고도 즉각 “경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한다”고 선언해 큰 울림을 남겼다. 이 승복이야말로 그 뒤 연달아 두 개의 보수정권을 여는 정치적 맹아(萌芽)가 됐다. 오늘날 박 전 대통령의 비극은 객관적 사실을 합리적으로 받아들이는, 바로 그 승복의 정신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됐다. 보수도 설령 대선에서 패할지언정 마지막 존엄마저 잃어버린다면 다신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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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野경선 동원 의혹… 무책임한 ‘꼬리 자르기’

    검찰이 어제 우석대 태권도학과 최모 교수의 사무실과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 학교 관계자 4명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지 모임에 학생들을 동원한 의혹으로 전북선거관리위원회에 의해 고발됐다. 우석대 태권도학과 학생 172명은 지난달 12일 전주 화산체육관에서 열린 ‘새로운 전북포럼’ 출범식에 대절한 버스로 참석한 뒤 한 사람당 3만6000원 상당의 뷔페식 식사를 대접받고 영화관람비 7000원을 따로 받았다. 전북포럼의 공동대표는 문 캠프의 전북 지역 총괄 선대위원장인 우석대 문예창작과 안도현 교수가 하고 있고, 최 교수는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적폐 청산’을 구호로 내세운 문 전 대표 측에서 선거철마다 고질적으로 등장하는 동원의 악습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율배반적이다. 학생들의 참석을 위해 지출된 비용은 830만 원으로 학교 측이 630만 원을 지불했다. 이 중 330여만 원은 태권도학과가 특성화사업으로 지원받은 국고보조금이다. 불법으로 드러나면 학생들은 1인당 최고 250만 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문 캠프 측은 “캠프와 상관없는 개인의 일탈”로 치부했다. 캠프 측이 일단 책임지고 사과하지 않고 개인의 일탈로 몰아붙이는 것도 늘 봐오던 꼬리 자르기의 모습이다. 국민의당 경선에서도 불법 동원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25일 전남 경선에서 유권자에게 찍을 후보를 미리 정해 주고 단체로 차로 실어 나른 정황이 채널A에 포착됐다. 박지원 대표는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나면 즉각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의혹은 당의 가장 유력한 후보인 안철수 전 대표를 상대로 제기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안 전 대표도 어제 자신의 싱크탱크 격인 ‘정책네크워크 내일’의 활동을 대선 기간 중지한다고 밝혔다. ‘내일’은 법에 의해 지정기부금을 받을 수 있는 단체로 선거운동이 금지돼 있는데 안 전 대표를 위한 선거운동을 한다는 의혹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유력한 후보에게 지지자들이 몰리고 지지 조직이 방대해지다 보면 후보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나는 책임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후보야말로 대통령이 될 자질이 없다. 문 전 대표는 일단 안 교수를 선대위원장 자리에서 해임하고 국민의당은 동원 의혹에 대한 수사를 자처함으로써 ‘깨끗한 선거’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꼬리 자르기만 하려다간 일이 의외로 커질수도 있다.}

    • 2017-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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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포승줄 묶인 박근혜를 보고 싶은가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 아니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 캠프를 출입하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듣고 의아해했다. 기자는 “캠프 내에서 ‘독재자 딸이 아니라 독재자’라고 한다”며 웃었다. 권력을 잡은 뒤에도 그랬지만, 박 후보의 캠프 운영도 ‘당내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독재자 딸 아니라 독재자” 한 인사의 회고. “대선 승리를 위해선 박 후보가 아버지의 유신 독재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후보에게 박정희 전 대통령은 종교이자 ‘금단의 영역’이었다. 호텔 비즈니스룸에서 ‘저승의 아버지가 자신을 부정하고 대선에서 승리하는 것을 바라겠느냐, 자신을 지키려다 패배하는 것을 원하겠느냐’는 논리로 한 시간가량 설득했다. 아무런 대답도 않고 레이저를 쏘는데, 어디 무서운 심연에서 끄집어낸 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한번 맞아 보면 머리털이 쭈뼛 설 정도다.” 돌이켜 보면 박 전 대통령이 반대 의견을 말하기보다 레이저 발사를 애용(?)한 것도 소통 장애의 반증이었다. ‘썰렁 유머’로 헛웃음을 유발한 것도 대화 상대와 교감에 약하다는 뜻이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 뒤 아직 탄핵소추가 되기 전, 당시 박 대통령이 공식행사에 참석했다. 자칫 낭떠러지로 추락할 운명에 처한 대통령이 수행 인사의 양복 맵시에 대해 품평을 했다. 주변의 반응은 뜨악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저렇게 대범한 건가, 아니면 아예 모르는 건가?’ 그런 박 전 대통령이 12일 청와대를 떠나면서 많이 울었다고 한다. 관저에서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눈이 부은 상태로 말을 잇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38년 전인 1979년 11월 21일 청와대에서 나올 때가 생각나서였을까. 당시 27세였던 박 전 대통령은 15년 11개월을 청와대에서 살았다. 이번 재임기간 4년 1개월을 합치면 20년이나 청와대에 머물렀지만, 나올 때는 두 번 다 쫓겨나왔다. 박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사저에 매일 미용사가 출입하는 것을 두고 뒷말이 많다. 반대로 묻고 싶다. 평생 단정한 올림머리를 보여줬던 전직 대통령이 파면된 지 며칠 되지도 않아 풀어헤친 머리로 나타나길 바라는가. 보통 여성이라면 자신이 머리를 다듬을 줄 알겠지만, 다 아는 바와 같이 박 전 대통령은 다른 삶을 살았다. 그에게도 일반인의 삶에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나는 본다.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도수 높은 안경에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묶인 채 구치소와 검찰청사를 오가는 모습이 TV에 나오곤 한다. 이제 박 전 대통령까지 그런 모습을 봐야 하나. 물론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그러나 대통령을 파면한 우리 헌법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66조 1항)고 규정한다. 얼마 전까지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를 지낸 사람의 처절한 몰락을 보는 건 국격(國格) 훼손 여부를 떠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 자존심부터 상처 받을 것이다.불구속 재판으로 정의 세워야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사법 절차를 중단하자는 게 아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정의를 세우는 것이 가능하다. 다른 사람도 아닌 전직 국가원수를 끝까지 몰아붙여야 직성이 풀리겠는가. 박 전 대통령은 민주 법치국가의 대통령답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 바뀌는 건 아니다.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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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제왕적 대통령觀’부터 탄핵하자

    내일이다.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나라가 두 동강 날 것 같은, 말 그대로 폭풍전야다. 격동의 북소리가 들려온다. 북소리가 커질수록 내면의 소리도 들린다. ‘이런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과연 우리는 이래야 하는가. 도대체 대통령이 뭐길래….대선 때마다 나라 두 동강 내게 박근혜 대통령은 젊은 날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에 사는, 그래서 무능하지만 때론 짠한 인물이었다. 적어도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 전까지는. 아내를 비롯해 주변의 여성 동료 선후배 등이 성형 시술 의혹 등을 운운할 때도 ‘대통령을 뭘 안다고 그러느냐’고 깔아뭉개기 일쑤였다. 이제 확실히 여자가 여자를 잘 꿰뚫어 본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단지 여성이라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의 시대는 지났지만, ‘대통령은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봉건의식의 잔재가 나의 뇌리에, 우리 잠재의식에 남아 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유독 대통령에 대해서만은 차가운 머리로, 시쳇말로 ‘쿨하게’ 판단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젊은 시절, 내가 찍은 대통령이 당선되지 못한 날 밤새워 통음한 적이 있다. 하늘이 무너지고, 나라가 금방 망할 것 같은 심정으로. 그러나 그 또한 지나갔고, 대한민국은 여기까지 왔다. 탄핵 여부로 나라가 쪼개질 것 같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 대통령이란 말은 원래 통령(統領)에서 나왔다. 근대 일본에서 고대 로마나 프랑스 제1공화국의 집정관(Consul)을 ‘통령’으로 번역했다. 영어의 ‘프레지던트(president)’를 번역하면서 ‘대(大)’자를 붙여 ‘대통령’이란 단어도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상하이임시정부 수반을 ‘대통령’으로 명하면서 굳어졌다. 영어의 프레지던트는 회의나 의식을 주재한다는 ‘preside’에서 나왔다. 서구에는 기업이나 소규모 클럽에도 무수히 많은 프레지던트가 있다. 한국에서는 오직 한 명의 최고권력자가 용어만 들어도 주눅이 드는 ‘대통령’으로 불린다. 언어가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굳이 이번 탄핵정국이 아니라 대선 때만 되면 나라가 두 동강 나온 데는 ‘대통령=제왕’으로 동일시하는 전근대적인 대통령관(觀) 탓도 크다고 나는 본다. 선진국민의 대통령관은 우리와 다르다. 대통령은 그들에게 영웅도 구세주도 아니다. 유권자가 보기에 국정 운영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대선 때 지지자들은 치열하게 선거운동을 벌이지만 우리처럼 생사를 걸고, 가정불화도 무릅쓰며, 심지어 칼부림 벌이는 황당한 일은 없다. 제왕적 대통령제보다 더 큰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관’이다. 우리에게도 새로운 대통령의 시대가 오고 있다. 과거 정치인은 소년기나 학창시절 지역이나 학교의 군계일학(群鷄一鶴)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지금 여의도에 그런 정치인이 얼마나 될까. 대통령도 그렇다. 나 같은 86세대들은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64) 말고는 동년배나 연하 대통령을 맞이할 수도 있다.담담하게 내일을 맞자 ‘영웅적 대통령’은 가고 친구나 동료, 선후배 같은 대통령의 시대가 온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구시대의 의식을 붙들고 있다. 어쩌면 그런 의식이 아버지 대통령 시대에 익숙한 박 대통령을 과거에 살게 해줬고, 결과적으로 오늘의 비극을 낳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를 격동시켰던 ‘내 안의 대통령’부터 내려놓자. 그리고 담담하게 내일을 맞자.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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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文포비아

    삼성 임원을 지내고 외국계 회사 임원으로 전직한 지인을 얼마 전에 만났다. 더불어민주당 국민경선에 선거인단으로 등록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놀라진 않았다. 보수 색채를 띤 사람들의 민주당 경선 참여 움직임은 이미 뉴스가 아니다. 친문(친문재인)계에선 ‘역선택으로 경선을 교란하려는 행위’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따지고 보면 역선택도 아니다. 경선에서 안희정을 찍고, 대선에서도 안희정을 찍겠다는 것이다. 지지율 1위의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보수층의 불안감은 생전 근처에도 가보지 않은 당의 문턱을 넘나들 정도로 심각하다.탄핵 찬성해도 ‘태극기’ 참가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강남 아파트에 사는 노부부는 자식에게 이민을 종용하고 있다. 자신들은 살 만치 살았지만, 손자손녀들은 어떻게 될지도 모를 불안한 대한민국에 살게 해서는 안 된다면서. 이쯤 되면 ‘文포비아(phobia·공포증)’ 또는 ‘공문증(恐文症)’이라고 부를 만하다. 내가 아는 전직 대사와 언론인 선배, 중견기업 경영자와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적지 않게 태극기 집회에 참석한다. 이들이 꼭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문재인 집권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집안에만 있을 수 없었다는 얘기다. 공통적으로 가장 불안하게 느끼는 것은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이 깨질 수 있다는 점이다. 태극기 집회에 성조기와 영어 구호가 난무하는 이유다. 이쯤 되면 문 전 대표가 직접 나서 불안감을 감싸줄 만도 하지만 요지부동이다. 오히려 ‘친일독재 사이비보수 세력 청산’이나 ‘대청소’를 들먹이며 불안을 부추긴다. 민주당 내에선 그가 “친노가 문제지, 문재인은 괜찮다”는 평가를 듣던 지난 대선 때와 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1500만 표에 가까운 득표의 기억이 패권의식을 너무 키웠다는 관측이다. 이런 불안감의 반사이익은 안희정 충남지사가 챙긴다. 안 지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한 의지’ 발언으로 집토끼들로부터 뭇매를 맞은 뒤 다시 기수를 왼쪽으로 돌렸다. 그래도 갈 곳 없는 보수는 안희정의 ‘선한 의지’를 믿고 싶어 한다. ‘노무현의 적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그런 발언을 했다면 진보 진영에선 벌써 매장됐을 것이다. 뿌리가 같은 문재인과 안희정은 어느 지점에서 다른 길을 걷게 됐을까. 노무현 정권 내내 대통령 곁을 지켰던 문재인은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토로한 ‘실패와 좌절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으리라고 나는 본다. 그 실패는 노무현 정부 잘못이 아니라 ‘친일독재보수 세력’이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고 억울해할 것이다. 반면 안희정은 대선자금 문제로 옥고를 치르는 등 노 정권 때 권력 주변에 가보지 못했다. 정권 핵심에서 한발 떨어져 나름대로 신산(辛酸)을 겪으며 새로운 길이 보였을 수 있다.불안감 없애지 못한다면… 문재인이 내 편 네 편을 가르고, 집권하면 노 정권 실패의 한풀이를 할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은 집토끼를 확실히 잡으려는 경선 전략일 수 있다. 하지만 당 대선 후보가 돼서도 그런 불안감을 불식시키지 못하면 의외의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금은 경선만 통과하면 대통령 당선이 따 놓은 당상처럼 보이겠지만, 한 달에도 열두 번 바뀌는 게 한국정치다. 문 전 대표 측에선 미국 주류사회로부터 ‘트럼포비아(trumphobia)’ 소리를 들었던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에 안도할지 모른다. 그러나 트럼프는 적어도 국가관이나 안보관을 의심 받은 적은 없다.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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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트럼프의 장벽, 문재인의 장벽

    미드 ‘왕좌의 게임’ 시리즈가 나올 때마다 놓치지 않고 본다. 이 대하드라마엔 허구의 세계인 웨스터로스 대륙의 7왕국과 야만의 세계를 구분하는 북쪽 장벽(The Wall)이 등장한다.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길이가 500km쯤 되고, 높이는 200m가 넘는 무지막지한 스케일이다. 장벽 이북에 두 부류의 족속이 산다. 야만인쯤 되는 ‘야인(野人)’과 ‘화이트 워커’로 불리는 좀비다.장벽을 쌓는 자, 공포를 쌓다 드라마를 볼수록 서구문명의 시원(始原)에 대한 메타포가 숨어 있음을 느낀다. 우선 장벽은 로마가 ‘미개한 야만인’들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현재의 독일과 영국 내 제국 국경에 쌓았던 ‘게르마니아 방벽’과 ‘하드리아누스 방벽’을 연상케 한다. 야인은 당시에는 야만인이었으나 결국 로마에 동화돼 문명화된 게르만 앵글로색슨 골족(族) 등을 상징하는 듯하다. 공포의 상징인 좀비는 서구인들의 눈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인 데다 저항할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훈족, 몽골족을 생각나게 한다. 서구인들의 핏속엔 게르만 대이동이나 아틸라의 훈족, 칭기즈칸의 몽골에 철저히 유린당했던 공포의 기억이 유전된다. 훈족의 침략으로부터 파리를 구한 성(聖) 준비에브가 국가 재난 시 구원의 성인으로 신성시되거나, 2000년 밀레니엄을 맞아 워싱턴포스트와 타임지가 칭기즈칸을 1000년의 역사를 바꾼 ‘밀레니엄 맨’으로 선정한 데는 그런 공포의 유전이 깔려 있다. 이방인에 대한 알 수 없는 공포와 적대는 서구의 기독교 백인우월주의와 결합돼 극우 포퓰리즘의 양상으로 표출된다. 프랑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상징은 성 준비에브의 ‘중세판’인 잔 다르크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멕시코 국경에 3000km의 장벽을 세우는 것도 모자라 헌법의 ‘정교(政敎) 분리’ 원칙을 파기해 기독교 신정(神政)국가로 만들려는 움직임마저 보인다. 현대의 제국인 미국의 황제 트럼프가 세우려는 물리적 장벽을 비롯해 정치·경제·통상·사회·종교 전방위 장벽에 벽 바깥의 세계가 소용돌이친다. 지도자와 국민이 단합해 견뎌내야 할 이 위기에 지지율 1위의 대선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또 다른 ‘장벽’을 쌓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청산돼야 할 박정희 체제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강고하게 지배한다”며 ‘친일과 독재, 사이비 보수세력 청산이 혁명의 완성’이라고 했다. 그의 머릿속엔 아직 대한민국은 ‘친일·군부독재 세력이 강고하게 지배하는 사회’다. 말로는 ‘화쟁(和諍)과 화합’을 주장하지만, 민주당도 분열시킬 정도로 친노·친문의 벽을 높이 쌓았다. 집권해서도 이런 장벽을 쌓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재검토’ 같은 운동권식 반미친중(反美親中) 논리로 트럼프의 무지막지한 장벽 앞에 맞설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다.내 편, 네 편 가르는 文의 장벽 무릇 벽을 세우는 자, 벽으로 망한다. 로마도 방벽을 세우고, 제국다운 관용을 잃으면서 쇠락했다. 트럼프가 겹겹의 장벽을 세우는 한 미국은 더 이상 ‘안전한 제국’이 될 수 없다. ‘왕좌의 게임’에서 장벽을 지키는 존 스노 사령관은 사생아 출신이다. 그는 장벽의 문을 열어 야인을 받아들여 가공할 좀비들과의 일전에 대비한다. 트럼프든, 문재인이든 ‘내 편 순혈주의’를 고집하며 벽을 세운다면 지도자 자격이 없다.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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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노’라고 말 못하는 사회

     20년 전인 1997년 대통령 선거. 나는 신한국당을 취재하는 정치부 기자로 이회창 후보의 마크맨(전담기자)이었다. ‘대세론’을 풍미했던 이회창. 그만큼 이 후보 진영에는 정권을 다 잡은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것은 이 후보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압박으로 작용해 진영 내부의 폐쇄성을 증폭시켰다.검사 출신 의원의 협박 한두 번인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비판 기사를 썼던 나를 검사 출신 A 의원이 불렀다. “박 형, 지켜보고 있어. 우리가 (정권) 잡으면….” 일종의 협박이었다. 그래도 비판 기사를 더 썼더니 다른 이 후보 측근이 불렀다. “도대체 왜 그래?” 협박받은 사실을 말해줬더니 한 시간 정도 있다가 A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농담한 걸 갖고 뭘 그래. 이제 제발 좀 풀어….” 농담이 아니었다는 건 협박을 당해 본 사람은 안다. 기자도 사람이다. 자신이 쓴 기사에 반발하는 세력을 접할 때 부담스럽고, 때론 두렵기도 하다. 가족이나 회사에까지 여파가 번지면 시쳇말로 ‘내가 이러려고 기자를 했나’라는 생각도 들 수 있다. 20년 사이 사회가 더 민주화된 만큼 비판자를 힘으로 찍어 누르는 ‘심리적 폭력행사’는 줄었을까.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 않았다고 나는 본다. 지금도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에게 휘둘린 박근혜 대통령 비판 기사를 쓰면 태극기 집회에선 ‘종북 언론’ 소리가 나온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진보좌파에서 좋은 얘기를 듣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에게 줄 섰던 언론이 차기 정권에 줄 섰다’는 비아냥이나 듣기 십상이다. 보수 정권이 만든 문화계 블랙리스트나 문재인 지지자들이 자행하는 ‘문자 테러’는 결국 본질이 같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권력이나 돈, 위력으로 겁박하는 폭력이다.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합의는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있음에도 한일관계의 미래를 진전시키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었다. 그럼에도 대선주자들은 입을 맞춘 듯 ‘전면 재검토’와 ‘폐기’ ‘재협상’을 외치고 있다. 국가 간 합의 파기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에게 과연 나라를 맡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최고위 외교관인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 전 총장마저 합의를 높이 평가했다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만나서는 “합의 내용을 환영한 게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국민감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하는 사람 중에는 국민 대다수가 감정에 휩쓸릴 때 분연히 ‘노(No)’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친일 언론인’으로 찍힐까봐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50년 전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광기에 휩싸였다. 아버지가 숙청된 14세 시진핑(習近平)도 고초를 겪었다. 훗날 시진핑 국가주석의 회고. “‘100번의 총살로 죄를 반성하라’는 간부들에게 내가 ‘총살은 한 번이면 죽는데, 어떻게 100번까지 총살당하느냐’고 묻자 ‘그래서 너는 악당의 자식’이라는 말과 함께 호되게 얻어맞았다.”‘우리 안의 독재’ 독재의 핍박을 받았던 시진핑이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가장 강력한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했으니 역사의 반전이 아스라하다. 한국도 군사독재로부터 민주화를 쟁취한 지 30년. 제도적 민주화는 진전됐을지언정 ‘인식의 민주화’는 갈 길이 멀다. ‘우리 안의 독재’로부터 자유롭게 ‘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지 않는 한 백날 ‘권력 분산’을 외쳐도 헛일이다.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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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논설위원이 만난 사람/박제균]유승민 “준비 안 된 대통령 가장 위험…나라 바꾸고 싶다”

    《 유승민(59). 참으로 논쟁적인 남자다. 2005년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을 지낸 ‘친박(친박근혜)’ 핵심이었다. 2007년엔 사실상 대선이었던 박근혜-이명박의 당내 경선 때 박 캠프에서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은 핵심 참모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유일한 남자는 박근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권이 박 대통령에게 휘둘릴 때 유일하게 고개를 쳐들고 공개적으로 반기(反旗)를 든 것도 유승민이다. 그는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의 아이콘으로 찍혔지만, 역설적으로 그 덕에 정치적으로 성장했다. 올 조기 대선 국면에서 정치적 진폭을 키울 진자 역할을 할 개혁보수신당의 핵심도 유승민이다. 김무성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의 깃발을 들었지만, 유승민이 참여하지 않았다면 원내교섭단체 구성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배신 이미지 때문에 아직도 보수 일각에선 그에 대한 ‘사상적 우려’를 거두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야말로 ‘진짜 보수’라고 당당히 밝히는 유승민을 지난해 12월 2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났다. 》  ―부친(고·故 유수호 13·14대 의원) 얘기부터 해보자. 부친의 정치 참여가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됐나. “지난해 돌아가신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던 해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판사였는데, 내가 고등학교 진학 무렵 법관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김정길 전 의원이 부산대 총학생회장 시절 권력기관에서 구속하라는 걸 구속적부심에서 풀어주기도 해 박정희 정권에 미운털이 박혔다. 노태우 대통령과 경북고 동기인 인연으로 13대 민정당 국회의원이 됐으나 정치가 별로 체질에 안 맞아 하셨다. 사실 나도 아버지 성질을 많이 닮아서 정치는 별로 체질에 안 맞는다.”(웃음) ―정치에 안 맞는데, 4선 의원을 하고 있나. “아버지보다는 맞는 셈이다. 정치 할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1997년에 외환위기 터지고 98년에 김대중(DJ) 정권 들어서고 국책연구소(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경제정책 연구하는 학자로서 정부, 청와대와 갈등도 많이 빚었다. 2000년 초에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가 여의도연구소장 자리를 제안해서 직장 그만두고 왔다. 아버지께서 절대 비굴하지 말라고, 늘 의협심을 가지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그것에 영향을 받았다.”  유승민의 좌우명은 ‘초지일관(初志一貫), 불요불굴(不撓不屈)’이다. ―존경하는 인물이 에드먼드 버크(1729∼1797·영국의 보수정치 이론가)와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라는데 ‘따뜻한 보수’를 주장하는 사람으로선 다소 의외다.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혁명이라는 게 올바른 관습이나 전통, 질서까지도 다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면서 영국이 어떻게 프랑스 대혁명 같은 것을 피하면서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그런 것이 보수의 정신이다. 대처는 정책을 지지하기보다는 지도자로서의 강단이라고 할까, 의지를 존경한다.”보수는 헌법 가치 지키는 것 ―‘따뜻한 보수’가 유승민의 트레이드마크처럼 돼 있는데,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나.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이 양극화라는 화두를 꺼냈다. 그때는 양극화라는 말로 부자와 가난한 사람, 빈부격차로 사회를 또 편 가르기 해서 2007년 대선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했다. 그해 한나라당 경선을 치르고 2011년까지 경제학자이자 현실 정치인으로 지역구에서 많은 사람들과 직접 만나게 됐다. 그러면서 양극화 문제가 대한민국 공동체를 완전히 붕괴시키고 박살낼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걱정을 하게 됐다.” ―그래서 2011년 최고위원 출마하면서 전당대회에서 ‘따뜻한 보수’를 내세운 건가. “‘정의로운 보수, 따뜻한 보수를 위해 용감한 개혁을 하자’고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양극화 불평등을 그대로 놔두면 기득권을 누리는 부자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무책임한 좌파 포퓰리스트들에게 정권이 넘어가면 남미 국가들처럼 추락할 것이다. 이런 주장을 2011년 최고위원 출마선언문부터 한 것이다. 2015년 4월 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 내용은 최고위원 출마선언문과 맥이 같다.” ―‘내가 말하는 보수는 이런 것이다’를 요약하면…. “보수는 지키는 것이다. 첫째, 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둘째,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어 사회 분열로 공동체가 깨지지 않게 지키는 것이다. 셋째는 안보를 지키는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안에는 성장, 자유도 있지만 공화, 공동체, 법치, 평등도 있다. 헌법 안에 보수가 보고 싶어 했던 시장 자유 성장만 쏙쏙 뽑아내서 보는 것은 외눈박이 보수다.”이·박 정부, 국방력 제고 소홀 ―안보에서만은 아주 강한 보수의 면모를 보이는 이유는…. “나는 태생적으로 보수다. 2008∼2016년 8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으로 간사를 하고 위원장을 했다. 안보에서는 역대 통틀어서 김용갑 전 의원만큼이나 내가 오른쪽일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서 자주국방력 높이는 데 상당히 소홀히 했다. 노무현 정부보다 오히려 소홀히 했다.” ―이번 대선에 출마할 건가. 왜 대통령이 되려는 건가.  “출마 선언을 언제 할지 최종적으로 고민하는 단계다. 선언하면 끝까지 도전해 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선을 세 번 겪어보니 준비 안 된 대통령만큼 위험한 게 없다. 정치 하는 사람은 최종적인 의사 결정에 참여해서 그것을 통해 나라를 바꿔보고 싶어서 하는 거다. 나도 나라를 바꿔보고 싶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어떻게 평가하나. “그분이 개혁보수신당 와서 경선 치르는 데 참여한다면 대환영하는 입장이다. 그분 개인에 대해서는 경쟁 상대로서, 국민으로서도 의문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처한 문제가 외교 안보 문제도 있지만 외환위기에 맞먹는 경제위기도 심각하다. 수십 년 동안 구조적으로 키워온 양극화, 불평등, 불공정, 이런 문제들에 대해 그분이 고민했을까. 해법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별로 없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지율이 고공행진 중이다. 보수 재집권의 복안은…. “조기 대선이 있더라도 다섯 달 정도 남았다. 중도에 있는 분들이 이번 사태와 지난 10년의 실정(失政)으로 진보화됐다. 그런 구도에서 선거 치러야 하니까 보수에서 마음 떠난 분들의 마음을 잡아오는 게 관건이다. 문재인이나 민주당 세력이 정권을 맡을 때 어떻게 된다는 걸 국민들도 대강 짐작을 할 테니까.” ―박근혜 대통령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먼저 어떤 사람인가. “나와는 2007년 대선 경선 이후 거리가 많이 멀어졌다. 그때는 전문성, 즉 정책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이나 고민은 부족하지만 옆에서 좋은 사람들이 도와주면 기본기는 상당히 돼 있는 분 아니냐는 믿음을 가졌었다. 2007년 경선 과정, 그 이후에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고민해서 건의하고 제안하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자꾸 멀어졌는데 그 내부가 이럴 줄은 몰랐다.”  ―당시에는 최순실의 그림자를 못 느꼈나. “최순실이 최태민의 딸이고 정윤회 씨의 부인이라는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 알 만한 사람들은 알았다. 정윤회 씨가 2004년 3월 박 대통령이 당 대표 됐을 때 공식 라인에서 물러났다. 2005년 내가 비서실장 할 때도 정윤회 씨가 강남에 사무실 차려놓고 문고리 3인방과 저녁만 되면, 주말이면 회의 한다는 루머는 있었다. 최순실 얘기는 대통령이 취임한 뒤에야 슬금슬금 나왔다.” ―결국 박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의 정치’ 아이콘으로 찍힌 것은 공무원연금법과 국회법 개정안을 거래했다는 것 아닌가. 그 결정에 대해서는 지금도 후회 없나.  “후회 전혀 없다. 공무원연금법은 스스로 생각해도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는 되는 개혁안이다. 요새는 그게 대통령 업적으로 둔갑되더라. 공무원연금 개혁은 50점이라도 했어야 했다. 그래야 국민 세금 줄일 수 있다. 국회법 개정안이 위헌이라고 대통령도 그랬는데, 내가 만난 헌법학자들은 국회가 정한 법률을 위배하는 시행령에 대해 수정을 요구하는 것은 위헌이 아니라고 했다.” ―정치는 세력이고, 대선 경선 출마도 해야 하는데 아직도 유승민은 독불장군이다, 따르는 사람이 없다는 평가가 있다.  “내가 17대부터 20대까지 의원을 했는데 17, 18대는 초·재선이라 세력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19대 들어와서 국방위원장 하고 원내대표 하면서 친하고 뜻을 같이할 수 있는 동지들이 생겼다. 그런데 그분들이 다 ‘공천학살’당했다. 김무성 전 대표와 가까운 사람들 많이 살아남고, 박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들은 다 살아남았다. 개혁보수신당 와서 저하고 뜻을 같이하는 의원들 10명 정도 있다. 다 새로 사귄 사람들이다.” 박 대통령에 가슴 아픈 회한 ―그만큼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으면 대선 주자로서 유승민의 지지율이 뜰 법도 한데, 아직도 미미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라고 보는가. “이제까지 정치하면서 승패를 미리 계산해서 도전한 적이 한 번도 없다. 국방위원장을 할 때도, 원내대표 할 때도 그렇게 해서 됐다. 이번에 대선에 도전한다면 승패보다는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역할이 뭔지를 보고, 역할이 있다면 도전할 거다. 도전하면 뒤도 안 보고 몰두하는 스타일이라서 지금 지지율은 신경 별로 안 쓴다.”  박 대통령과의 애증을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그에게 끝으로 “나중에라도 박 대통령을 만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유 의원은 “2015년 7월 원내대표에서 물러나기 직전에 대통령을 직접 만나고 싶었다. 민심도 전하고 당청 관계에 대해 느낀 점도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었다. 나에 대한 오해도 풀고 싶었으나 전달이 잘 안 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개인적으로 그분에 대한 인간적인 도리랄까, 가슴 아픈 회한이 있다. 지금도 참 아쉽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7-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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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보수는 반기문이어야 하는가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 당시 반기문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났다. 그때 김영삼(YS) 대통령은 지지율 6%를 기록할 정도로 ‘공공의 적’이었다. 그런데 반 수석이 YS의 업적을 칭찬해 장내가 일순 뜨악해졌다. 더구나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된 뒤였다. 의전수석에 이어 2년이나 정권 말 청와대에 근무한 것도 모자라 ‘YS 찬가’까지 부르는 건 ‘기름장어’라는 별명에 어울리지 않았다. 오죽하면 같이 식사하던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YS 칭찬은 안 하시는 게 좋겠다”고 걱정할 정도였다. 행운을 만드는 사람 반 총장이 남의 험담을 하는 걸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다. 외교가에서 그의 손편지는 유명하다. 정성 들여 쓰되, 받는 사람에 대한 역지사지(易地思之)가 담겨 있다. 그의 멘토인 노신영 전 국무총리에게 배운 용인(用人)의 노하우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탄도탄요격미사일(ABM)조약 파문으로 외교통상부 차관에서 경질됐으나 특유의 근면과 배려로 구축한 인맥으로 돌파했다. 행운도 따랐다. 노무현 정부가 유엔 사무총장으로 염두에 두었던 홍석현 주미 대사가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낙마하자 그에게 기회가 왔다. 이번 대선에서 ‘보수의 희망’으로 떠오른 것도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옥죄며 후계자의 싹을 잘라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운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지낸 이종석의 회고에 따르면 외교통상부 장관이던 반기문은 청와대에 3배수의 한국인 총장 후보를 내면서 ‘3순위’에 자기 이름을 올렸다. 권력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이번 대선의 구도 또한 나쁘지 않다. 반 총장은 뉴욕을 방문한 충북 의원들과 만나 대통령이 된다면 임기 초에 개헌할 것이며, 2020년 총선에 맞춰 임기도 3년으로 단축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이념적으로는 보수, 지향점은 개헌으로 ‘반(反)문재인’ 세력을 규합하고, 지역적으로 충청과 TK(대구경북)를 묶으면 충분한 승산이 있다는 게 반 총장 측 계산인 듯하다. 4·13총선 전에 “호남이 지지를 거둔다면 정치에서 은퇴하고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공언했던 더불어민주당 문 전 대표는 아직도 호남에서 불안하다. 그러나 보수에 쓸 만한 주자가 없다고, 반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이라는 영예로운 자리를 지냈다고 보수층은 반기문에게 지지를 보내야 하는가. 반 총장은 ‘통합’과 ‘포용적 리더십’이란 화두를 던진 것 외에 나락으로 추락한 대한민국의 국격을 일으켜 세울 어떤 비전도 아직 보여주지 못했다. 충북 음성의 평범한 집안에서 유엔 사무총장까지 오른 스토리는 드라마틱하지만, 출세가도를 달린 성공담일 뿐이다. 한국의 대통령이 되려면 ‘대한민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면 제 한 몸 불사르겠다’는 말뿐인 각오만으론 안 된다. 나라를 위해 어떤 자기희생을 할 수 있는지 몸으로 보여야 한다.귀국 보고회에 비전 내놔야 지난 대선은 최선도 차선(次善)도 아닌 차악(次惡)을 고르는 투표였다. 적잖은 보수 유권자도 박 대통령의 과거 행적과 통치능력에 의문을 표시했지만, 문재인 후보의 좌편향과 북에 우호적인 태도를 더 걱정해 박 대통령을 지지했다. 그런 투표가 ‘손가락을 잘라 버리겠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실패로 판명 난 만큼 반 총장도 보수 표심에 ‘무임승차’하려다간 낭패를 볼 것이다. 1월 중순 귀국 보고회에서도 자기희생과 비전의 청사진을 내놓지 못하면 더 이상 ‘행운’을 만들 수 없을 것이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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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4당 체제 대선… 검증 실패의 비망록

     이 글을 쓰는 오늘, 즉 2016년 12월 21일. ‘촛불혁명’이 한국 민주주의의 밭을 갈아엎은 이후 맞는 첫 대통령 선거의 구도가 짜여졌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 30여 명의 탈당 선언으로 조만간 ‘신(新)4당 체제’가 닻을 올린다. ‘정치는 생물’이라 단언할 순 없지만, 대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비박 신당’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潘, ‘비박 신당’ 합류 가능성 알려진 것과는 달리 국내 정세에 밝은 반 총장이 ‘친박(친박근혜)당’으로 졸아든 새누리당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적 미래가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의당? 의석이 호남에 편중돼 ‘호남당’ 색채를 벗지 못한 당과 반 총장은 정체성과 노선이 맞지 않는다. 자신의 지지율의 보루인 보수표의 균열을 감수하고 국민의당으로 갈 리 없다. 신4당 체제가 내년 상반기에 치러질 조기 대선까지 유지될지도 불투명하다. 무엇보다 친박 새누리당이 내세울 대선주자가 마땅치 않다. 대선 때 쓸 만한 주자를 내세우지 못하는 ‘불임(不姙) 정당’은 지리멸렬하게 돼 있다. 보수가 ‘헤쳐 모여’하려 하면 진보에서도 야권 단일화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든 누가 됐든, 야권 제2후보가 15% 이상의 ‘의미 있는 지지율’을 얻지 못하는 한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흡수될 수도 있다. 지난 대선에 이어 다시 양자 구도가 재연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대선 구도니, 이합집산이니 하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만의 정치공학’이다. 여기서 4년 전 오늘로 눈을 돌려 보자. 2012년 12월 21일자 동아일보의 1면 톱기사 제목은 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다음 날 대국민 인사다. 4년 전 신문을 들춰보며 나도 놀랐다. 지금은 ‘역사의 죄인’으로 전락한 박 대통령이 그때는 새 시대 희망의 상징이었다. 당시 정치부장이던 나는 ‘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라는 장기 시리즈를 기획해 다음 날부터 내보냈다. 하지만 딱 이틀 뒤. 박 대통령이 윤창중 당선인 수석대변인을 포함한 첫 인사를 발표했다. 불안한 예감이 스쳤다. ‘이 정권도 실패할지 모른다’는. 그래도 그때는 몰랐다. ‘수첩 인사’로 포장됐던 대통령의 ‘황당 인사’ 시리즈의 뒤에 최순실이 있었다는 사실은. 대선 취재를 지휘했던 사람으로 참담한 일이다. 당시도 ‘박 대통령은 문고리 3인방을 통해야만 접근할 수 있고, 3인방 뒤에 정윤회가 있다’는 얘기 정도는 들렸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최순실은 박 대통령의 폐쇄적인 성격을 꿰뚫어 보고 주변에 3인방이라는 장막을 세웠다. 그리고 3인방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수법으로 대통령을 독점했다. 아랫사람에게 쌀쌀한 박 대통령 대신 3인방을 챙겨준 사람이 최순실이다. 과연 3인방은 누구를 주군(主君)으로 생각했을까.‘내 편, 네 편’ 가르다 검증 실패 박 대통령이 희망의 아이콘에서 죄인으로 전락하는 데 딱 4년이 걸렸다. 19대 대통령도 그런 전철을 밟지 말란 보장이 없다. 대선 때만 되면 온 나라가 ‘내 편, 네 편’으로 나뉘어 싸워온 대한민국. 어떤 대선구도가 돼야, 어느 바람이 불어야 ‘내 편’이 승리할까에만 골몰하다 검증의 칼날이 무뎌졌던 것은 아닐까. 이번 대선은 바뀌어야 한다. 누구 편을 떠나 검증의 칼을 시퍼렇게 벼려야 한다. 그것이 한국 정치를 바꾸라는 촛불민의의 시대적 요구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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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차기 주자, ‘임기 1년 내 개헌’을 제1공약 내걸라

     개헌? 복잡할 것 없다. 일이 뭔가 복잡하게 느껴질 때는 안 되는 것, 할 수 없는 것부터 쳐내면 된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던져보자. 첫째, 개헌은 안 하면 안 되나? 안 된다, 해야 한다. 그동안 정치권에서 수많은 개헌 논의가 나왔지만, 일반 국민들에겐 ‘강 건너 불구경’ 수준이었다. 그런 개헌의 필요성을 한 방에, 그것도 가장 드라마틱하게 국민의 뇌리에 각인시킨 사람이 박근혜 대통령이다.대선 전 개헌, 능력 안 돼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따로 없다. 18년을 권력자의 딸로 살며 스물둘에 어머니를, 다시 5년 만에 아버지를 총격으로 잃었다. 이어진 18년의 은둔. 그 옆에서 끊임없이 ‘너는 한국 최초 여성 대통령’이라고 속삭인 무당 같은 부녀. 예언(?)대로 됐으나 그들 일가에 휘둘려 정치 입문 18년 만에 권좌에서 끌려 내려오다. 그리고 더 흥미진진한 그 이후…. 문제는 이게 궁중 드라마라는 점이다.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에는 ‘민주공화국’이라고 박혀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왕정시대를 살고, 궁중 드라마를 찍을 수 있는 구조였다면 그 틀을 바꿀 때가 된 것이다. 드라마를 좋아했던 대통령이기에 복잡한 개헌 필요성을 드라마로 쉽게 설명해줬다. 그것이 박 대통령의 공이라면 공이다. 둘째, 대선 전 개헌 가능한가? 못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은 3월 이정미 재판관의 퇴임 이전에 나올 공산이 크다. ‘60일 내 대선’ 규정을 적용하면 5월 대선이다. 탄핵이 각하돼도 박 대통령은 ‘4월 퇴진’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몰릴 것이다. 그러면 6월 대선이다. 고작 5, 6개월에 대선과 개헌을 해낸다고? 작금의 정치권은 그런 능력이 없다. 일각에서 권력구조나 차기 대통령의 개헌 발의 의무를 규정하는 ‘원 포인트 개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것도 엄격한 헌법 개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은 매한가지라 무리다. 셋째, 개헌으로 20대 국회의원 임기를 줄이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할 것이다.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달라진 권력구조에 따라 국회를 바꿔야 한다. 그러나 20대 국회의원들이 자기 임기를 줄이는 개헌에 찬성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20대 의원 임기는 2020년 5월 29일까지다. 21대 총선은 그해 4월 15일에 예정돼 있다. 결국 조기 대선으로 선출되는 차기 대통령이 임기 초 개헌을 통해 자신의 임기를 3년으로 줄이고, 신헌법에 따라 21대 총선을 치러야 한다. 넷째, ‘4년 중임제’ 개헌은 어떤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박근혜의 궁중 드라마’가 가능했던 것은 아직 국민의식이 ‘민주공화국’에 이르지 못했다는 방증(傍證)이다. 이런 터에 4년 중임제 개헌을 한다면 제왕적 대통령의 궁중 드라마를 시즌2까지 봐야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남는 선택지는 내각제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다.임기 3년의 ‘개헌 대통령’ 결론을 내자면, 대선 전 개헌이 불가능한 만큼 차기 대선 후보가 자신의 개헌안을 ‘제1공약’으로 내걸어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단, ‘임기 1년 내 개헌’이어야 한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모두 임기 4년 차에 개헌을 제안했으나 동력을 잃은 뒤였다. 지상 과제인 개헌은 차기 대통령이 임기를 3년으로 줄일 각오를 해야 가능하다. 임기는 줄겠지만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꾼 ‘개헌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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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황교안, 法治 살려야 산다

     황교안 국무총리 하면 호사가들의 입방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관상(觀相)과 가발이다. 그의 관상은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허영만 화백의 만화 ‘꼴’의 감수자이자 작중 인물이었던 당대의 관상가 신기원 선생(77)이 극찬하면서 유명해졌다. “김종필 씨는 세상에 없는 귀상(貴相)이다. 그런데도 그가 최고 권좌에 못 오른 것은 탁성(濁聲) 때문이다. 최근 공직자 중에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목소리까지 갖춘 귀상이다.” 실제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때 정부 측 청구인으로 변론에 나선 그의 낭랑한 목소리는 전달력이 좋다는 평가를 들었다.“목소리까지 갖춘 貴相” 신기원이 한 신문 인터뷰에서 관상을 극찬한 것이 2013년 9월이다. 이후 관가에서는 “황 장관은 차기 총리감”이란 ‘믿거나, 말거나’ 하마평이 돌았다. 그러나 2015년 초 이완구 전 충남지사가 국무총리에 지명되자 총리설은 묻히는 듯했다. 하지만 그해 4월 이 총리가 ‘성완종 리스트’에 연루돼 낙마한 뒤 그가 총리에 오르자 “역시 관상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가결이 유력해지면서 그가 대통령권한대행을 맡을 공산이 커지자 다시 관상 얘기가 돈다. 가발은 프라이버시에 관한 문제라 조심스럽지만 네이버 검색창에 ‘황교안 가발’이 연관검색어로 뜰 정도로 호사가들의 관심거리다. 하지만 가발 착용 여부는 관상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한다. 그의 ‘귀상’은 이제 대통령권한대행을 넘어 ‘황교안 대망론’으로까지 연결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때 권한대행을 맡아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던 고건 전 국무총리는 2006년 지지율이 30%를 넘자 이듬해 대선 출마를 검토하다 중도하차했다. 일각에선 탄핵이 가결되면 여야 합의로 새 총리를 만들어 권한대행을 바꿔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그 경우 황교안 권한대행이 사실상 새로운 권한대행을 임명하는 헌법적 모순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기실 작금의 여야는 새로운 총리를 합의해낼 능력도 없다. 야당 일각에선 새로운 실세 총리보다 만만한 황 권한대행을 세워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것이 차기 대선에 유리하다는 계산도 한다. 그러나 이래선 이미 한 달여의 국정 공백으로 도탄에 빠진 민생만 결딴난다. 대통령중심제인 현행 헌법체계에선 대통령권한대행이 중심이 돼야 국정이 돌아가게 돼 있다. 황 총리는 권한대행이 되면 박 대통령이 송두리째 망가뜨린 법치를 살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탄핵 가결 이후 이어질 특검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과정에서 엄정 중립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순실이 ‘박근혜 인치(人治)’의 배후였다면 우병우는 ‘집행자’였다. 그럼에도 청문회 출석요구서나 동행명령장을 수령하지 않는 방법으로 출석을 피하고 있다. ‘법률 미꾸라지’로 불리는 그를 단죄할 수 없다면 한국은 법치주의 국가라고 할 수 없다.권한대행이 국정 중심 돼야 “진정한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국왕의 목을 매단 뒤에 싹튼다”는 말이 있다. 과거 왕정이던 유럽 국가들은 대개 이런 과정을 거쳤다. 오늘 우리 사회는 이걸 평화적으로 해내느라 산통(産痛)을 겪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광장의 민심으로 나라를 이끌 순 없다. 법치주의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살아나야 정치를 정치권에 맡길 수 있다. 헌정질서를 부정한 통진당 해산의 주역인 황 총리가 그 역할을 했으면 한다. 더 이상 ‘이게 나라냐’ 소리가 안 나와야 대한민국이 산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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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문재인의 ‘최순실’은 없나

     ‘대통령비서실 보좌관.’ 지금 돌아보면 직책치고는 황당하다. 도대체 뭘 보좌한다는 건가. 실제 이런 이상한(?) 직책을 맡았던 이가 허화평(79)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비서실장 출신으로 전두환 정권의 실세 중 실세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호성 전 제1부속비서관처럼 대통령 집무실 앞에 앉아 사실상 국정을 총괄했다. 이상한 직명의 속뜻은 대통령의 모든 걸 보좌한다는 의미다.야권 단일, 1위 후보 될 듯 정 전 비서관과의 차이는 단순한 ‘문고리 심부름꾼’이 아니라 전두환 정권 출범과 수성(守成)을 기획한 ‘5공 디자이너’였다는 점이다. 전 전 대통령은 집권 전반기에는 보좌진과 관료에게 충분한 재량권을 줬다. 허화평의 파워가 막강할 수밖에 없었다. 후임 노태우 대통령 때 허화평 같은 실세가 박철언(74)이다. 직책도 ‘대통령비서실 정책담당보좌관’으로 비슷하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오랜 정치 경험으로, 이명박 대통령은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국회의원 서울시장 등을 거친 경륜으로 특정인에게 의존하지는 않았다. 1998년부터 무려 18년이나 정치를 한 박 대통령이 정치 경험이 일천했던 군 출신 대통령들처럼 특정인에게 쏠린 것은 아이러니다. 아마도 그 전의 ‘18년 은둔’이 만든 폐쇄적인 캐릭터 탓이리라. 다만 전, 노의 실세는 박근혜의 ‘비선 실세’와 달리 비선이 아니라 공식 라인에 있었다. ‘강남 아줌마’가 아니라 적어도 그 시대 브레인들이었다. 현재로선 차기 대통령 자리에 가장 가까이 간 듯한 문재인은 어떤가. ‘정치는 생물’이지만 그가 차기 대선에서 야권의 단일, 또는 1위 후보가 될 것이라고 나는 본다. 직전 대선의 2위 후보라는 타이틀은 ‘하늘이 내려주는’ 정치적 자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초선 문재인’으로 불릴 정도로 정치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다. 지난 대선의 2위 성적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로 부활한 친노(친노무현)와 진보좌파 세력이 ‘기획상품’으로 내세워 얻은 것이다. 대통령비서실장과 민정수석 등을 지냈으나 노 전 대통령도 인정했듯, 태생적으로 정치와 안 맞는 사람이다. 야권의 율사 출신 의원은 “문재인은 노무현의 ‘새끼 변호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선배 변호사 사무실에서 동업을 시작한 초짜 변호사를 ‘새끼 변호사’라고 부른다. 대개 새끼 변호사는 몇 년 안 돼 독립해 나가지만, 문재인은 노무현 변호사가 정치에 뛰어들 때까지 사무실을 지켰다. 조기 대선 실시가 유력해지면서 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말 한마디, 행동거지 하나에 초미의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나는 아직 그가 친노로부터 독립했는지, 친문(친문재인) 세력의 진짜 오너인지 모르겠다. 지지율 1위 주자답지 않게 불안하고 선동적이다. 박 대통령에게 ‘군 통수권까지 내놓으라’는 위헌적인 주장을 하더니, ‘시민사회 세력과 비상기구를 만들어 전국적 퇴진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래서 ‘국민주권운동본부’를 급조했지만, 무슨 정치적 동력을 얻기라도 했는가.文, 친문의 진짜 오너인가 정치 경험이 깊지 않은 데다 ‘정치적 홀로서기’가 불확실하면 특정 인사에 의존하기 쉽다. 아직도 그가 ‘3철’(이호철, 전해철, 양정철)에 휘둘리고 3철 중에서도 노무현 정권의 ‘기자실 대못’ 정책을 주도했던 양정철의 말발이 가장 세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이러다 ‘문재인의 최순실은 누구인가’라는 말이 나올까봐 겁난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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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제균]고건 전 대통령권한대행의 ‘국정은 소통’

     “내 친구, 즉 이 두 형제의 아버지 되는 사람은…단연코 아우 되는 건이를 사랑한다. 어떤 때는 곁에 있는 사람이 아주 딱하도록 편벽되게 건이를 사랑한다.” 중학교 시절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수필가 이양하 선생의 ‘경이와 건이’를 다시 읽었다. ‘건이’가 고건 전 국무총리(78)라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아버지인 철학자 고(故) 고형곤 전 전북대 총장이 고 전 총리를 편애했다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둘째 형 ‘경이’, 즉 고경 씨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고 전 총리는 지금도 두주불사(斗酒不辭)다. 1961년 고시에 합격한 그에게 아버지가 주었다는 3계명이 “남의 돈 받지 마라” “줄 서지 마라” “술 잘 마신다는 소문나지 않게 하라”다. ‘술 마시지 마라’가 아니고, ‘소문나지 않게 하라’인 걸 보면 부친도 주량을 알았던 모양이다. 애주가였지만 박정희 정권 때 37세 전남도지사를 필두로 이명박 정권의 사회통합위원장까지 7개 정권에서 세 번의 장관과 두 번의 서울시장(관선·민선), 두 번의 국무총리를 역임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공직 생활의 하이라이트는 노무현 정권의 대통령권한대행(2004년 3월 12일∼5월 14일). 사실상 대통령 부재 상황에서 너무나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했다. 영국 BBC방송이 ‘미스터 안정(Mr. stability)’으로 표현했을 정도다. 2006년 지지율이 30%를 넘자 그는 이듬해 대통령 선거를 준비했다. 노 대통령은 ‘고건 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라고 폄훼했고, 결국 중도 하차했다. 관료 출신의 한계였다. “좋은 대통령감이지만 좋은 대통령 후보는 아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 전 총리는 박근혜 정부 초기 ‘국정은 소통이더라’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출간했다. “소통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귀로 하는 것”이라는 그의 공직관을 박 대통령이 새겨들었더라면…. 야당 뜻대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내달 초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권한대행이 된다. 황 총리는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탄핵안 통과 즉시 고건 전 권한대행의 경험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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