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박제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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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제균 고문입니다.

phark@donga.com

취재분야

2024-03-25~2024-04-24
칼럼97%
선거3%
  • [박제균의 휴먼정치]‘아줌마 박근혜’가 우리의 딸들에게 지은 죄

     퀴즈 하나. 마초적인 한국 문화에서 자란 기성세대 남자가 여성을 이해하게 되는 때는? ①첫사랑에 빠졌을 때 ②결혼할 때 ③딸을 낳았을 때. 내 경우 답은 ③이다. 감히 여성을 ‘이해’하게 됐다고 느낄 때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적어도 내 딸이 내 어머니 같은 삶을 살아서는, 내 아내처럼 남성 우위 문화에서 자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흉터도 한 줌 흙 된다더니 오해 마시라. 딸이 없으면 여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내 경우 그렇다는 얘기다. 다행히 여권(女權)은 때론 버거울(?) 정도로 많이 신장됐고, 아들에겐 막말에 가까운 큰소리를 쳤던 나도 딸에겐 큰소리를 낸 일이 없다. 올해 고3인 딸의 대입 논술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다른 두 딸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통령이 됐으나 국정을 말아먹은 박근혜 대통령과 아버지의 후광(?)으로 박 대통령을 말아먹은 최순실. 그런 후광이라면 물려주지 않는 편이 낫다고 자위하면서도 크든, 작든 물려줄 후광이라고는 없는 아버지들은 왠지 작아진다. 정치부장으로 2012년 대선 취재를 지휘한 나는 그해 초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 대통령을 뚜렷이 기억한다. 그는 얼굴에 남아 있는 커터 칼 피습사건의 흉터에 대해 “그때 조금만 상처가 깊었다면 죽을 수도 있었다. 그 이후의 삶은 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 줌 흙으로 돌아가면 (흉터는) 없어진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여성답지 않게 외모에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발언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태도는 그가 남겼다는 “전방은요?” “대전은요?”라는 단문과 결합돼 위기에 강한 지도자상을 부각시켰다. “영국 대처 내각의 유일한 남자는 대처”라는 말이 있듯 “박근혜 캠프의 유일한 남자는 박근혜”라는 말도 돌았다. 모두가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피습 이후 삶은 덤’이라고 했던 박 대통령이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돈 많고 막돼먹은 ‘강남 아줌마’와 어울려 혈세로 사들인, 이름도 처음 듣는 미용주사제를 맞고 함께 드라마를 즐기다 국정까지 말아먹었다니…. 세칭 ‘아줌마’는 가족, 특히 자식을 위해서 억척이고 때론 염치없을 때도 있다. 자식도 없이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던 대통령이 공사(公私)를 구분하지 못하고 최순실 일가를 위해 벌인 행태는 자식에게 목숨 거는 아줌마 못지않다. 최순실 일가만이 유일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런 최순실이 박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끝내고 “지가 아직도 공주인 줄 아나 봐”라고 ‘뒷담화’까지 했다니, 이런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개인적으로는 참을 수 있다. 박 대통령도 여성이니 외모에 신경 쓸 수도, 드라마에 빠질 수도 있다. 대통령의 개인용품에 세금이 들어가는 게 어디 미용주사제뿐이겠는가. 그래도 딱 하나만은 참을 수 없다. 이 땅의 딸 가진 아빠로서 여성 리더십을 희화화(戱畵化)시킨 것만은 용서할 수 없다. 오죽하면 뉴욕타임스가 ‘첫 여성 대통령의 스캔들로 한국민들 사이에서 여성을 지도자로 뽑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번져 여성의 지위가 더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보도했겠는가.女리더십 희화화 용서 못해 우리의 딸들에게 지은 죄만으로도 박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것이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국민적 신뢰를 잃은, 아니 국민에게 배신의 상처를 안겨준 지도자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권력을 완전히 내려놓거나, 권좌에서 내려오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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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김기춘·우병우 국정농단도 규명하라

     A는 직업군인이었다. 전방부대 근무 시절, 짧은 일정으로 휴가를 나와도 가장 먼저 충남 공주를 찾곤 했다. 치료감호소에 있는 친구부터 면회했다. A의 부모는 고등학교 때 단짝인 친구와 함께 육군사관학교에 가라고 권유했다. 이후 친구가 방황해도 우정은 이어졌다. 그런 A를 친구 누나는 무척 고맙게 여겼다. 동생에게 직접 말 못 하는 동생 걱정도 A에게 털어놓았다. A는 군인으로 승승장구했고, 누나는 대통령이 됐다.치료감호 박지만부터 면회 A는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다. 이재수 중장은 기무사령관이었음에도 단 한 번 박근혜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 대통령 주위를 최순실 일파와 청와대 3인방이 꽁꽁 둘러싸 철벽을 쳤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내시’를 자처했던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도 그 철벽을 뚫지 못했다. 진짜 내시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 2월 국회를 방문한 대통령에게 “저, 여기 있어요”라고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렸던 윤상현 의원도 ‘이너 서클’에 끼지 못했다. 3인방은 박 대통령의 표정만 봐도 어디가 불편한지, 뭘 원하는지 알아차렸다는 게 청와대 근무자들의 전언이다. 여왕을 모시듯 했다고 한다. 대통령 보좌라는 청와대 업무를 철저히 하기 위해 3인방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 한 ‘늘공’(직업공무원)들도 있었다. “간과 쓸개를 빼놓고 출근했다”는 사람도 있다. 희귀하게 그 철벽을 뚫은 이들이 있다.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이다. 김 실장은 지난해 2월 물러났고, 우병우는 직전인 1월에 민정수석이 됐다. 이 둘이 사실상 바통 터치를 하며 최순실에게 휘둘린 박 대통령의 밀지(密旨)를 이행했다. ‘최순실→박근혜→김기춘’으로 이어지던 인사 라인이 ‘최순실→박근혜→우병우’로 바뀐 것이다. 나는 올 4·13총선 직후 본 칼럼에서 “인사위원회까지 통과된 인사안이 막판 ‘어디선가’ 뒤집히는 일이 적지 않다”고 썼다.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 공직 인사는 민정수석실에서 다 했다. 인사수석실은 막판 서류작업만 했다고 한다. 이제야 장관과 청장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등 공무원 인사가 정상화됐다는 게 관가 얘기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부르짖던 대통령 아래서 자행되던 비정상이 사실상 대통령 부재 상태가 돼서야 정상화됐다니…. 시쳇말로 ‘웃픈’(웃기면서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 부재’ 상황에서도 김기춘과 우병우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금의 박 대통령 대응을 김 전 실장이 총괄하고 있다는 소문이 청와대 주변에 파다하다. 최재경 민정수석도 김 전 실장이 천거했다는 것이다.최순실 사태 후 인사 정상화 최순실이 대통령의 배후였다면, 인사의 칼을 휘둘러 실행에 옮긴 사람은 우병우다. 얼마 전 한 신문에 그가 검찰청사에서 조사받는 사진이 실려 화제가 됐다. 그는 사무실용 점퍼 같은 걸 입고 있었다. 검찰 일각에선 대검 수사기획관 시절 입던 작업복이란 얘기도 나온다. 어느 피의자가 건물만 봐도 살 떨리는 검찰청사에서 편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조사받을 수 있겠는가. 검찰의 수사 의지를 짐작하게 한다. 검찰도 제 살 길을 찾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에 열의를 보인다. 그러나 국정농단 배후인 최순실-박근혜 고리 못지않게 실행에 옮긴 박근혜-김기춘, 박근혜-우병우 고리가 규명돼야 한다. 나중에 ‘절름발이 수사’ 소리를 듣지 않으려거든.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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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거국내각의 책임총리라는 신기루

     대통령은 억울할지 모르겠다. 내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나, 독재를 했나, 누구처럼 외환위기를 불러오기를 했나, 그렇다고 부정축재를 했나.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개인사’를 도와준 사람에게 ‘경계의 담장’을 조금 낮추고, 일부 국정 정보를 줘 조언을 들었을 뿐인데, 하야(下野)까지 하라니…. 朴만 모르는 국민의 모욕감 박근혜 대통령만 왜 국민이 이토록 분노하는지 모르는 것 같다. 어느 정권에나 국민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위임한 권력을 맘대로 가져가 국정을 농단한 비선 실세들은 있었다. 대개는 대통령의 형제나 아들 같은 가족이나 측근이었다. 이들은 결국 단죄됐고 대통령은 사과했으나 하야 위기까지 몰리진 않았다. 가족이라면 약해지는 게 한국인의 정서고, 측근이라도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브레인들이었다. 이런 ‘듣보잡’(듣지도 보지도 못한 잡놈)들은 없었다. 배경을 입으로 옮기기도 불편한 사람들이 박근혜 정부 4년을 말아먹었다니…. 국민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수치심이다. 특히 박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그보다 더한 모욕감에 무너진다.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평생 보스에게 개처럼 충성한 오른팔도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라는 한 가지 이유로 버림받지 않았던가. 더 심각한 문제는 ‘박근혜 정부’인지 ‘최순실 정부’인지, 박근혜와 최순실 중 누가 상전인지 모를 권력 아노미까지 겹친 상황이다. 진시황이 죽자 내시 조고는 조서(詔書)를 조작해 막내아들 호해를 황제로 세웠다.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휘두르자 권력을 시험해볼 양으로 황제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말(馬)이라고 했다. 황제가 ‘이게 무슨 말이냐’며 신하들에게 묻자 이구동성으로 ‘말이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유명한 지록위마(指鹿爲馬) 고사다. 2000여 년 전 고사에나 등장할 법한 기막힌 일이 한국에서 벌어졌다는 데 국민은 황당하고, 또 분노한다. 대통령의 권위와 헌법적 정당성이 이 정도로 훼손됐다면 대통령으로선 하야를 고민하는 것이 순리(順理)다. 국회도 대통령이 ‘그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했기 때문에 탄핵 절차에 돌입하는 것이 헌법(65조 1항) 정신에 맞다. 그러나 권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대통령과 내년 대선을 겨냥한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공감대를 이룬 것이 요즘 말하는 ‘거국내각의 책임총리제’ 운영이다. 프랑스에선 의회를 장악한 야당 당수가 총리가 돼 내각을 구성하고 실질적으로 내정(內政)을 총괄한 ‘동거(同居) 정부’가 3번 있었다. 그러나 내정과 외치(外治)가 칼로 무 자르듯이 구분되는 것은 아니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자크 시라크 대통령과 나란히 유럽 내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웃지 못할 일은 프랑스와 경제·산업의 이해관계가 걸린 유럽 정상들이 대통령보다 총리를 만나려고 줄 섰다는 것이다.내정과 외치 구분 되겠나 여야가 합의해 책임총리를 세우고, 그 총리가 다시 여야와 합의해 내각을 구성해 내정을 총괄하는 거국내각의 책임총리제는 프랑스에서도 시험해 본 적이 없다.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 사막을 걷고 있다. 거국내각 책임총리제가 신기루로 흩어질지, 분권형 대통령제를 실험해보는 개헌의 오아시스가 될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고단한 행군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권력을 감시하지 못한 언론인으로서 참담한 심정이다. 박 대통령의 표현을 빌려 말하면 이렇다. ‘내가 이러려고 기자를 했나.’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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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대통령의 길, 박근혜의 길

     대통령이 아프다. 정신적으로 균형감을 잃었다. 나는 올 1월 본 칼럼에 “박 대통령의 대면접촉 기피가 업무 효율보다 고독에 인이 박여 굳어진 성격에서 비롯됐을 것”이라고 썼다. 말미를 “대통령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았는지, 수시로 전문의 상담을 받는 미국의 예를 참고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로 끝냈다. 칼럼이 게재된 날 오후 청와대 관계자의 전화를 받았다. “음…. 마지막 문장이 걸리네요. 대통령께 정신과 전문의 상담을 받으라고 하는 건 좀….”청와대 항의 전화 걸려와 2003년 프랑스에서 당시 71세이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보청기 사용 여부를 두고 정가가 발칵 뒤집힌 일이 있었다. 시라크가 보청기를 상시 착용하느냐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지만, 국가수반의 건강은 서구 선진국에선 초미의 관심사다. 그러나 한국에선 대통령에 오른 다음의 건강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에 가깝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 말에는 격무인 대통령직을 수행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래도 대통령의 건강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대통령의 정신 건강 문제는 더 조심스럽다. 한국에선 일반인도 신경정신과 진료 사실은 쉬쉬하는 터에 대통령의 정신 건강은 금단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현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의 정신 건강은 육체적 건강보다 더 중요하다고 나는 본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박 대통령이 대인관계에 장애가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정치부 기자 시절 “박근혜 의원이 올림머리를 풀고 나면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얘기가 있었다. 실제 현직 대통령(이명박)과 현직 당 총재(이회창)도 급한 일로 저녁에 박 의원과 연락하려 했으나 끝내 통화가 되지 않은 일도 있다. 그런 박근혜 의원·대통령을 최태민 일족과 정윤회, 문고리 3인방이 둘러싸 장막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공주로 지내다 부모를 모두 총탄에 보낸 트라우마, 10·26부터 정계 데뷔까지 이어진 18년의 ‘절대 고독’이 그를 정상적인 대인관계를 맺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했다. 보수 유권자들은 그런 대통령이 ‘짠’했다. 취임 초부터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임명, 문창극 국무총리 내정 같은 황당한 인사를 해도, 아마추어처럼 국정을 운영해도 최후의 지지를 거두지 않은 데는 그런 연민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뒤에 최태민과 그 딸들이 있었다니, 연민은 하루아침에 배신의 쓰나미로 밀려들었다. 당장 잘라야 할 사람을 ‘정권 흔들기’라고 지켜내고, 이상한 사람들을 중용하며 ‘결정 장애’라고 불릴 정도로 주요 결정을 미뤄 국정을 망친 대통령의 뒤에 최순실이 있었다니…. ‘배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대통령에게 국민이 배신당한 것이다.대통령의 ‘정신적 下野’ 본 칼럼에서 박 대통령의 애독서 ‘정관정요(貞觀政要)’를 인용해 “군주가 밝은 것은 두루 여러 사람의 말을 듣기 때문이고, 우매한 것은 한쪽 말만 편벽되게 듣기 때문”이라고 쓴 바 있다. 정관정요 10권 군덕론(君德論)에는 이런 말도 나온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주는 배,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정관정요’를 깊이 새겼다면 물(국민)이 배(대통령)를 뒤집는 이런 상황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다. 지금은 대통령의 ‘정신적 하야(下野)’ 상태다. 그럼에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것이 현행 헌법상 대통령제의 한계다. ‘덜컥 개각’으로 현 난국이 수습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박근혜, 과연 어떤 길을 갈 것인가.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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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두 父女의 10·26

     역사는 때론 잔인한 얼굴로 다가온다. 아버지가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날, 그 딸의 비극에 대해 글을 쓰려니 마음이 무겁다. 37년 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의 아버지 최태민을 증오했다. 동아일보가 장기 연재했던 시리즈 ‘남산의 부장들’(김충식 기자)을 보자.김재규, 최태민에 분노해 “그(김재규)는 박근혜 양을 붙잡은 ‘목사’ 최태민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김재규는 각하(박정희)에게 최의 비리를 보고했으나 박근혜 양이 최를 비호해 각하 앞에서 대질 친국(親鞫)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천하의 정보부장이 ‘사이비’ 목사와 나란히 앉아 우김질을 했다는 것은 참으로 굴욕이었다. … 대통령 식구들, ‘로열패밀리’ 때문에 생긴 김의 스트레스도 10·26의 한 원인이었다고 당시 정보부 국장들은 증언하고 있다.” 시해 사건을 조사한 합동수사본부의 기록에 나타난 정보부 국장의 진술은 이렇다. “김 부장은 ‘최태민 같은 자는 백해무익하므로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 없어져야 한다’고 증오를 표시했다….” 아버지(박정희)의 기일(忌日)에 그 딸(박근혜)이 아버지 죽음의 한 원인을 제공한 아버지(최태민)의 딸(최순실) 때문에 초유의 위기를 맞은, 역사의 기막힌 우연을 어떻게 봐야 할까. 박정희 대통령 말기 국정을 농단한 차지철 경호실장이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았다면 박근혜 대통령 시대에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은 딸을 정치적 죽음으로 몰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는 1972년 10월 유신을 기점으로 ‘영 박정희’와 ‘올드 박정희’로 구분된다. 그가 무력으로 집권한 독재자란 사실은 같지만, ‘영 박정희’는 민족을 가난에서 구하고 근대화를 달성하겠다는 열정으로 나라의 기틀을 세워 나갔다. 남의 말을 충분히 들었고, 때론 반대 의견도 수용하며 능률적인 통치를 해나갔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듯, ‘올드 박정희’는 권력에 취했다. 74년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에는 더 나빠져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통치보다 권력 유지에 집착했다. 대통령 주변의 호가호위(狐假虎威)에 대해 진언하면 비판받은 당사자에게 ‘내부 고발자’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식이었다. 권력 핵심부가 곪을 대로 곪아 갔다. 10월 유신 때 박근혜 대통령은 스무 살이었다. 육 여사 서거 이후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아버지에게서 정치를 배웠다. 통치에 능했던 ‘영 박정희’보다 권력에 집착했던 ‘올드 박정희’에게서 정치를 배운 것이 오늘날 박 대통령 비극의 출발점이다. ‘올드 박정희’는 고독했고, 그럴수록 몇몇 측근들과 어울려 술을 마셨다. 부모를 모두 총탄에 보낸 박근혜 대통령도 고독했고, 그럴수록 최태민-최순실 부녀 같은 ‘사이비류(流)’에 의지했다.차기 대통령의 자격 이번 ‘최순실의 난(亂)’을 겪으며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한국적 대통령제가 지속되는 한 차기 대통령은 무엇보다 심각한 ‘트라우마’가 없어야 하며,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대통령직의 스트레스를 견디며, 국민과 같은 눈높이에서 정상적으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 때 언론사는 각 대선후보의 신상명세표 같은 걸 작성한다. 물론 후보 본인이 아니라 캠프에서 답해 준다. 지난 대선 때 측근이 신상명세표를 채우기 위해 박 후보에게 ‘친구 관계’를 묻자 돌아온 답은 이랬다고 한다. “친구?… 없어요.”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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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노무현의 나라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인생에 불만이 있다. 나도 불만이 있다. 그런데 인생이 불만스러운 이유를 남 탓으로만 돌리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한 발짝 더 나가 우리가 태어나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탓이라고 돌리면 앞이 안 보인다. 그는 ‘당신의 삶이 힘든 것은 반칙과 특권이 판치는 대한민국 탓’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그때부터 국가가 성립하고 존속하기 위해 필요한 질서의식과 권위체계가 바닥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회고록 파문도 盧의 유산 돌아보면 공권력이 시민의 발아래 깔린 촛불시위부터 오늘의 백남기 부검 영장 집행 거부 사태까지, ‘기존 질서는 얼마든 무시해도 좋다’는 노무현의 유산이라고 나는 본다. 대선 후보 시절 그가 “반미주의자면 어떠냐”고 들이받은 것은 차라리 신선했다. 하지만 집권 이후에도 ‘큰 정부 맞다. 큰 정부면 어떠냐’ ‘코드인사면 어때’라며 정당한 비판도 정면으로 맞받았다. 정당한 비판이, ‘팩트의 힘’이 먹히지 않는 작금의 세태는 노무현의 또 다른 유산이다. 노 전 대통령은 국가 존망이 걸린 대북정책에서도 ‘북한으로서 핵은 자위수단’이라느니, ‘북한은 테러를 자행하거나 지원한 일이 없다’ 같은 황당한 북한식 주장을 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회고록으로 촉발된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기권 ‘대북 결재’ 의혹도 따지고 보면 대통령이 되고도 반미친북 운동권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무현의 산물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논란의 핵심인 ‘결의안 기권 전에 북의 의견을 물었느냐’에 대해선 아직도 입을 다물고 있다. 친노(親盧) 인사들과의 대책회의에서 나온 ‘역할 분담’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러니 아직도 문 전 대표를 두고 ‘노무현의 아류(亞流)’라는 말이 가시질 않는다. 정치권에는 ‘문재인의 딜레마’란 얘기가 있다. ‘문재인이 본선(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려면 노무현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노무현을 극복하면 예선(당내 경선)을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대 대선을 돌아보면 본선 경쟁력이 결국 당내 경선의 당락을 갈랐다. 문 전 대표가 야권 유력 대선주자답게 ‘친노의 고용사장’ 소리나 들었던 2012년 대선의 구각(舊殼)을 깨려면 송민순 회고록 파문에서도 당당히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 자리는 맞지 않는 옷과 같았다. 단적으로 그는 세상을 바꾸려 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건 대통령의 몫이 아니다. 시대의 정신적 스승이나 종교 지도자의 몫에 가깝다….” 2012년 7월 내가 쓴 칼럼의 서두다. ‘실패한 대통령’ 노무현은 2009년 5월 부엉이바위 아래로 몸을 던짐으로써 ‘종교 지도자’로 부활했다.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했다. 지금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실패와 좌절의 기억”이라고 실토했다. 그럼에도 ‘노무현의 실패’를 말하는 것은 금기나 다름없다. 노 전 대통령 가족이 받은 수십억 원의 금품은 환수되지 못했다. 그래도 감히 그걸 입에 올릴 분위기가 아니다.文, 자기 목소리 내야 인간 노무현의 비극은 안타깝다. 하지만 그는 대한민국을 부정했던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이 나라의 저력을 인정했어야 옳다. 대통령이라면 보다 자랑스러운 국가로 만들려고 노력해야 했다.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 7년여. 이제 그를 놓아줄 때가 됐다. 그의 그림자에서도 벗어날 때다. 노무현의 유령과 싸우는 한 우리는 미래로 나갈 수 없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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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정치교수’들의 ‘5년장(場)’이 섰다

     오랜만에 신문 지면에서 그분을 봤다. 촉망받는 민중사회학자였던 그는 군부독재에 항거하다 서울대 교수에서 두 차례나 해직됐다. 김영삼 정부 초대 통일부총리를 맡은 한완상은 비전향장기수 이인모의 송환을 성사시켰다. 당시 통일부 출입기자였던 나는 판문점 현장을 취재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 후기 교육부총리와 노무현 정부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거친 한완상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싱크탱크인 ‘정책공간 국민성장’ 상임고문으로 등장했다. 올해 여든 살이다.팔순 원로 내세운 ‘국민성장’ 한 전 부총리와 나란히 손을 잡고 나온 ‘국민성장’ 자문위원장이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 박승이다. 노태우 정부에서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과 건설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역시 올해 여든이다. 정책 자문을 하는 데 나이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역대 정권에서 누릴 만큼 누린 팔순 원로들이 새롭게 출범하는 야권 유력주자 싱크탱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보기가 좀 민망하다. 두 분을 보면서 ‘아직도 자리 욕심이 있으신가’ 하고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국민성장’에 참여한 교수와 전문가만 500명이 넘는다고 한다. ‘이회창 대세론’이 풍미하던 2002년 대선 때 직간접으로 이 후보를 도운 교수가 100명이 넘었다. 그때 벌써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조어(造語)와 함께 대학사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2007년 대선 때 동아일보가 ‘폴리페서의 계절’이란 시리즈를 연재하며 취재한 결과 1000명도 넘는 교수들이 각 캠프에서 뛰었다. 이제는 ‘국민성장’에만 내년까지 1000명에 가까운 교수들이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은 폴리페서에게 ‘5년장(場)’이 서는 대목이다. 교수들이 대선캠프에 뛰어드는 것은 시장논리로 간단히 설명된다. 첫째 리스크가 없다. 각 캠프에서 일하다가 정권을 잡으면 좋고, 못 잡아도 대학으로 돌아가면 된다. 지명도가 떨어지는 대학에선 교수들의 대선캠프 참여를 권장한다. 대학의 성가를 높이고 정권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둘째, ‘투입 대비 산출’이 크다. 교수는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캠프에 투입하며 대선주자와 눈을 맞출 여지가 많다. 정권을 잡으면 장차관이나 공공기관장 자리가 기본이다. 미국 등 서구 선진국에서 학자에게 처음 돌아가는 자리는 국·과장 정도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이던 이종석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이 됐다. 직제상 열네 살 많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휘했다. 성공한 교수 출신 장관은 드물다.  폴리페서 과열 현상은 국가 발전의 기초체력인 아카데미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권력 맛을 본 교수들이 학교로 돌아오면 학문은커녕 ‘권력 금단 현상’에 시달리며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교수사회를 피폐하게 만들기도 한다. 폴리페서는 대선주자의 ‘정책 한탕주의’와 교수의 권력욕, 대학 이기주의가 합작해 만들어낸 한국적 현상이다.학문으로 말하는 원로교수 한국 나이로 올해 여든 살의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정치권엔 눈도 돌리지 않은 채 최근에도 노블레스 오블리주(특혜는 책임을 수반한다)를 강조하는 ‘특혜와 책임’이라는 저서를 펴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송 교수는 “자식은 부모 앞에서가 아니라 부모 뒤에서 큰다”고 말한다. 부모가 앞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부모의 발자취를 보면서 자란다는 뜻이다. 학자도 눈앞의 출세보다 학문적 발자취로 남는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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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제균]광화문 땜질 광장

     내비게이션이 일상화되기 전, 유럽 소도시나 마을에서 길을 찾으려면 중심의 교회부터 더듬어 가면 됐다. 작은 마을에도 대개는 수백 년 된 교회 앞에 광장이 있다. 고딕 양식 교회의 첨탑은 멀리서도 잘 보이고, 광장은 사통팔달(四通八達)이다. 주변에선 1, 2차 세계대전 당시 그 지역 출신 전사자 명단을 빼곡히 적은 기념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광장은 전통을 계승하고 애국·애향심을 고취하는 통합의 장(場)이다. ▷한국에는 광장 문화가 없다. 시대 흐름에 따라 정치색을 변주해왔을 뿐이다. 현 서울광장인 서울시청 앞 광장은 1961년 5·16군사정변을 성공시킨 박정희 소장이 선글라스를 끼고 기세가 시퍼렇게 등장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현 여의도공원인 과거 5·16광장에서는 국군의 날 퍼레이드나 대규모 정치 유세를 했다. 민주화 이후 서울광장은 시위와 집회의 메카로, 이후 조성된 광화문광장은 세월호 천막으로 상징된다. 지금도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광화문광장 입구로 들어서면 분향소의 향 냄새부터 맡아야 한다. ▷광화문광장 양쪽 차도의 화강암 돌길을 아스팔트 포장 도로로 교체한다는 소식이다. 2009년 70억 원을 들여 조성한 돌길의 보수비용이 공사비의 40%인 28억 원이나 들었기 때문이란다. 유럽에선 로마 때 조성한 돌길을 아직까지 차도로 쓸 정도로 멀쩡한데 7년 만에 땜질하는 것은 한국형 인재(人災)다. 지금도 유럽에선 높이가 50cm도 넘는 막대형 화강암을 촘촘히 박아 반(半)영구적인 돌길을 만든다. 가로 12cm, 세로 18cm에 높이가 10cm에 불과한 납작 화강암을 깔고도 버텨내길 바랐다니, 문외한이 봐도 한심하다. ▷유럽의 고풍스러운 돌길을 흉내 내려면 땅속까지 들여다봤어야 했다. 그나마 광화문 차도의 일부는 아스팔트로 덮고 일부는 돌길로 남겨놓는다니, 얼마나 더 누더기로 만들려나. 이제라도 제대로 된 돌길을 만들거나, 영국의 트래펄가 광장처럼 차량 유입을 제한하거나, 아니면 한국 전통 방식을 복원해 제대로 조성하길 바란다. 한국도 대표 광장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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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낭떠러지에 걸린 대한민국의 國運

     민심이 흉흉하다. ‘국운(國運)이 쇠했다’는 말이 돈 지 오래다. 최근에는 ‘미국의 북핵 선제타격이 임박했다’는 괴담까지 돈다. 괴담은 ‘휴전 이래 가장 많은 미군 수뇌부가 한꺼번에 한국을 방문한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는 그럴듯한 추론까지 따라붙는다. 실제 8월에만 미국 태평양사령관과 육군참모총장, 육군 장관과 해군 장관, 미사일방어청장이 방한했다. 북핵 정책 실패를 자인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다음 달 8일 대통령 선거 전에 선제타격을 결행해 힐러리 클린턴 후보의 승리에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는 정치공학까지 난무한다. ‘선제타격 임박’ 괴담 돌아 꼭 미국 대선 전은 아닐지라도 북핵 선제타격을 괴담으로만 치부해버리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외교안보 핵심 당국자의 얘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려는 미국의 첫 번째 목적은 한국에 주둔하는 2만8500명의 주한미군을 지키는 것이다. 미국 조야(朝野)는 왜 미국 아들딸을 지키려는 방어 무기의 배치 지역이 공개됐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한국인들이 들고 일어나서 시위하는 데 배신감까지 느낀다. 미군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미국의 선택은 두 가지다. 선제타격, 아니면 미군 철수다.” 선제타격을 한다면 북의 핵·미사일 공격체계가 완성되기 전에 단행할 것이다. 동북아 패권을 놓고 굴기(굴起)하려는 중국에 본보기를 보이는 데도 효과적인 수단이라는 것이다. 군사력으로는 중국이 아직 미국의 10분의 1도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달 3일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국군의 날 기념사에선 ‘북한 군인과 주민 여러분’에게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라”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만일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실전배치해 선제타격을 당하고도 반격할 수단을 갖추면 얘기는 달라진다. 북한 정권이 입으로는 ‘미국 본토 공격’을 주워섬겨도 실질적인 타깃은 남쪽일 수밖에 없다. 주한미군의 직접적인 핵 피해가 가시화하면 철수를 할 수도 있다. 북한 위협이 상존하는 가운데 미군이 철수하는 날은 대한민국의 ‘둠스데이(doomsday·운명의 날)’다. 외국 기업과 외국인 투자를 필두로 탈(脫)한국 러시가 벌어질 것이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 한미동맹 역시 공짜가 아니다. 국운이 벼랑 끝에 걸려 있음에도 내부를 돌아보면 기가 막힌다. 박근혜 정부는 4년 다 되도록 국회와 싸운 기억밖에 나질 않는다. 실적을 내지 못한 관료들은 여의도 탓 좀 그만해야 한다. 누란(累卵)의 위기에 마음을 기댈 지도자도 없다. 국내에선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런 대북제재 국면에 북한에 쌀을 지원하자고 김을 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위 진압용 경찰 살수차에 물을 공급하지 않겠다는 황당한 얘기도 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의 지지율을 꾸어 빚으로 정치를 시작한 사람이 지지율이 안 오르니 별소리를 다 한다.한미동맹 공짜 아니다 대통령 주변에는 눈을 흐리는 내시(內侍)만 보이고, 심지어 ‘내시’를 자처한 사람도 있다. 대한제국 말기 고종의 총애를 받은 내시 강석호는 막강한 권세를 누렸다. ‘대한매일신보’ 논설이 “일인지하(一人之下)요, 만인지상(萬人之上)인 대신들이 강석호가 오면 애걸하고…”라고 개탄할 정도였다(‘제국의 황혼’). 나라가 망하기 2년 전이었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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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제균]대통령 선물과 김영란법

     파리 특파원 시절 유럽의 한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어렵게 약속을 잡아 처음 만나 악수를 하는데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인터뷰가 끝난 뒤 액자에 담긴 사진을 받으며 든 생각. ‘정치인이 사진 좋아하는 건 외국도 똑같구나.’ 한국에서도 대통령이 언론인을 초청한 간담회에 몇 번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행사 뒤에는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을 담은 액자를 받았다. ▷액자를 선물한 청와대 측에선 ‘대통령과 단둘이 사진을 찍었으니 가문의 영광’이란 취지일 게다. 그러나 받는 사람 생각은 다를 수 있다. ‘굳이 이런 권위주의적 선물을 일률적으로 돌릴 필요가 있나?’ 대통령 행사는 대개 식사를 겸하는데, 특급 호텔의 출장 서비스였다. 요즘 같으면 당연히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을 떠올렸을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대통령이 공직자 등을 초청해서 식사를 내거나 선물을 줄 때는 상급 공무원인 대통령이 하급자에게 주는 것이므로 3만 원, 5만 원 조항에 제한받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언론인도 ‘공직자 등’에 포함되므로 ‘하급자’가 되는 셈. 그러나 법감정이란 묘한 것이어서 앞으로 1인당 3만 원 이상 식사를 하려면 합법이라도 이런저런 눈치를 살피게 되지 않을까. 청와대도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 당선 축하 식사 때처럼 ‘바닷가재와 송로버섯, 샤크스핀을 대접했다’는 얘긴 못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9일 ‘2016 지역희망박람회’에 참석해 지역 특산품 등 9개의 선물을 받았다. 대통령에게 선물하는 것 자체가 홍보효과가 있는 만큼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 청와대에선 “공직자 직무와 관련된 공식행사에서 제공하는 금품은 문제될 게 없다”고 했다. 그러나 청와대 설명은 틀렸다. 공식행사 금품은 일률적으로 제공해야지, 특정인에게만 하면 김영란법에 걸린다. 국민권익위에 물어보니 “대통령이 국가원수로서 받는 건 직무관련성이 없어서 괜찮다”고 한다. 대통령이 받은 선물에 대한 해석마저 청와대 다르고, 권익위 다르니 혼란스럽다.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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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권력기관 동요 잠재운 반기문의 힘

     “정치는 허업(虛業)이다.” 김종필(JP·90) 전 국무총리의 이 말은 곱씹을수록 멋지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에 군사정변을 기획해 정권을 잡았지만 ‘자의 반 타의 반’의 길을 걸어야 했던 ‘2인자’, ‘3김’의 반열에 올라 평생 한국 정치를 쥐락펴락했지만 유일하게 대통령이 되지 못한 그가 한 말이기에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JP ‘훈수정치’ 내려놓기를… 말로는 ‘허업’이라면서도 아흔 살이 돼서도 정치를 놓을 수 없는 것이 노정객(老政客)의 본능일까. 이달 여야 원내대표단이 미국을 방문하기 전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자택을 찾았을 때 기력이 쇠한 JP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정 원내대표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만날 예정’이라고 하자 “반 총장을 만난다고?”라며 비로소 고개를 들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가서 전해. 유종지미(有終之美) 거두시라고. 돌아오셔서 뜻 세우신 대로 하시되, 이를 악물고 하시라고. 내가 비록 힘은 없지만 마지막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돕겠다고….” 지난해 부인 박영옥 여사가 타계했을 때 그가 보여준 ‘빈소(殯所) 정치’는 오로지 JP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구순의 JP가 이제는 ‘훈수 정치’마저도 놓았으면 한다. 휠체어에 탄 채로 골프를 칠 정도로 골프 사랑이 유별난 그가 다시 라운딩에 나설 만큼 건강을 회복하길 바란다. 노쇠한 JP가 고개를 드는 것처럼 정권 재창출 기대를 사실상 접었던 보수 유권자들도 ‘반기문’이라는 이름에 활력을 되찾고 있다. 반 총장이 여야 원내대표단에 ‘내년 1월 초순에 귀국해 국민께 귀국보고를 할 기회가 있으면 영광’이라고 말한 것이 알려지자 ‘귀국보고회=대선 출정식’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5월 반 총장이 방한해 대선 출마를 시사하자 관가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정권교체를 내다보고 술렁이던 관료들의 동요가 잠잠해진 것이다. 늘 그렇듯, 집권 4년 차에는 관료들의 ‘줄 대기’가 본격화한다. 정치부 기자 시절 유력 대선주자 캠프를 취재하다가 얼굴을 아는 관료들을 마주쳐 어색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청와대 파견 관료는 갖은 핑계를 대며 ‘원대 복귀’하려 한다. 그런데 여권 주자 중에 유력한 미래권력이 안 보인다면 이들의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특히 줄 대기에 가장 민첩한 곳은 검찰과 경찰, 군(軍)과 국가정보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이다. 권력의 향배에 따라 고위직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다. 5월 이후 권력기관의 동요 또한 잠잠해졌다. 기실 박근혜 대통령이 반 총장에게 가장 고마워해야 할 대목이다. 올 초부터 권력기관의 물밑에선 야권 유력 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선을 대려는 움직임이 꿈틀거렸다. 아직 대선 출마도 불확실한, 이역만리의 반 총장이 한국의 관료사회를 잠재우는, 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관료 출신 반 총장도 이를 모를 리 없다.귀국보고회가 대선 출정식? 그렇다면 반기문은 과연 JP의 표현대로 ‘이를 악물고’ 뛸 수 있을까. 야권에서는 이미 노무현 대통령 때 사무총장에 오른 반 총장과 노 전 대통령의 측근 박연차의 연루설을 흘리는 등 검증 리스트를 준비하고 있다. 이 점에서 반 총장이 방한 때 남긴 “국가 통합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말이 심상찮게 들린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을 가진 반기문. 과연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을까. 내년 대선의 향배를 가를 물음이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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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좌파 세력’과 ‘기득권 언론’, 그리고 최순실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60). 본 칼럼에 이런 이름까지 쓰게 될 줄은 몰랐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의 관계는 ‘여왕’과 ‘시녀’로 비유된다. 최순실은 박 대통령이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유폐(幽閉)된 공주’ 시절에도 지극정성으로 모셨다. 그런 시녀가 박 대통령이 숱한 신산(辛酸)을 딛고 여왕으로 등극하던 날 입을 한복을 주문했기로서니 무슨 흠이랴. 구중심처(九重深處)에 들어가 가족과도 사실상 절연(絶緣)하고 ‘셀프 유폐’를 하는 대통령의 말벗이 돼주는 것도 문제 될 게 없다.최순실, 靑 드나들어 그러나 취임식 한복 디자이너가 대기업들이 480억 원을 뚝딱 출연해 일사천리로 설립된 미르 재단의 이사를 맡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기업이 한류 증진을 위해 자발적으로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했다’는 청와대 설명은 소가 웃을 소리다. 최근 만난 대기업 관계자에게 ‘청와대가 돈 내라고 했냐’고 묻자 “다 알면서 뭘 묻냐”며 웃었다. 최순실과 청와대 핵심이 대기업을 움직여 두 재단을 설립했느냐는 질문에 청와대 관계자의 대답은 정해져 있다. “언급할(일고의) 가치가 없다.” 그런데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는 답이 달라진다. “전혀 듣지 못했다.” 청와대 근무자가 정말로 최 씨와의 관계를 듣지 못했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최 씨가 비교적 자주 청와대를 드나든다는 사실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항간에는 최 씨가 청와대를 출입할 때 몰라본 파견 경찰이 ‘원대 복귀’ 조치됐다는 얘기도 돈다. 2014년 말 ‘정윤회 동향문건 파문’으로 불거진 소위 ‘비선(秘線) 실세’ 의혹은 대통령을 진노케 했다. 최 씨를 매개로 명맥으로나마 이어졌던 정 씨와의 관계는 그해 5월 이혼으로 완전히 끊어졌다. 그런데도 ‘비선 실세’니, 뭐니 하는데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대통령의 역린(逆鱗)을 건드린 이 사건을 깔끔하게 정리한 게 당시 우병우 민정비서관이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듬해 1월 민정수석으로 초고속 승진했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 우 수석에 대해 보수 신문이 1300억 원대 처가 강남 땅 거래 개입 의혹을 처음 보도했을 때 청와대가 보인 반응은 대통령의 인식을 반영한다. “일부 언론 등 부패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며 ‘우병우 죽이기=대통령 흔들기’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주필의 일탈로 보수 신문이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청와대에 의해 ‘좌파 세력’으로 낙인찍힌 진보 신문이 나섰다. 보수 신문 자회사인 종합편성채널이 처음 보도한 미르·K스포츠 재단 논란에 최순실의 개입 의혹을 보탠 것이다. 청와대의 눈으로만 보면 ‘부패기득권 세력’과 ‘좌파 세력’의 ‘적대적 합작’이다.박 대통령, 조카들 만나기를 군왕무치(君王無恥)라고 했다. 국가 통치를 위해선 아무리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 사람이라도 버릴 땐 버려야 한다. 대통령은 사람 하나 자른다고 흔들리는 자리가 아니다. 장관은 물론 국가정보원장도 독대하지 않는 대통령이 특정인, 그것도 과거에도 구설에 올랐던 집안과 비밀스러운 관계를 지속한다면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음모론이 창궐하지 않도록 두 재단 문제도 규명하고 잘못이 있다면 인정해야 한다. 이제 혼자 사는 여성 대통령을 둘러싼 산케이신문류의 ‘소설’은 그만 들었으면 한다. 최순실 같은 사람을 만나기보다는 어린 조카들의 재롱을 보며 활짝 웃는, 그런 대통령을 보고 싶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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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이정현의 스크린 골프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2012년 12월 19일. 오후 4시쯤 문재인 후보가 승기를 잡았다는 가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돌았다. 당시 박근혜 후보 공보단장이던 이정현은 실망한 나머지 집으로 가버렸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이놈, 지금 자고 있을 때냐”는 목소리가 들려 번쩍 잠에서 깨 보니 박 후보가 승리했다는 진짜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었더란다.여의도만 가면 왜? ‘믿거나, 말거나’ 같은 얘기지만 박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박 대통령을 따라 청와대에 들어간 이정현 수석비서관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었다. 귀가 직전 혼자 즐기는 스크린 골프였다. 그 얘길 들으면서 ‘박근혜 정부 실세의 스크린 골프라, 참 이정현스럽다’는 생각을 한 일이 있다. 집권당 최고위원과 대표가 된 뒤에도 마을회관이나 군대 내무반에서 아무렇게나 자는 그는 어쩌면 특권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 이 대표가 5일 첫 국회 연설의 일성(一聲)으로 국회의원 특권 개혁을 부르짖은 것은 울림이 있다. 이 대표는 연설에서 “처음 국회의원이 되고 나서 선배의원들 따라 하다 보니 걸음걸이가 달라지고 말의 속도와 말투조차 달라졌다”고 토로했다. 초선 의원들은 과거 운동권의 ‘의식화 교육’ 못지않은 ‘특권화 교육’ 과정을 거친다. 공개석상에서는 ‘존경하는 ○○○ 의원’이라고 부르지만 커튼 뒤에서는 철저하게 선수(選數) 순이다. 재선은 돼야 상임위 간사가 돼 관련부처에 말발이 커지고 3선이라야 상임위원장을 맡아 정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초선은 당선될 때는 천하를 얻은 것 같지만, 과거엔 다선(多選)들 눈치 보여 의원 사우나도 제대로 들어가지 못했다. 지역구 의원의 비례대표 하대(下待)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오죽하면 18대 비례대표를 지낸 박선영 전 의원이 ‘무수리’라고 표현했을까. 그렇게 다져지는 나름의 위계(位階)는 ‘그들만의 리그’를 공고히 하는 콘크리트 역할을 한다. 똑똑해 보이던 사람이 여의도에만 입성(入城)하면 이상(?)해지는 이유는 단단한 특권화 교육 과정이 만드는 ‘집단적 사고’에 빠지기 때문이다. 최근 국회에서 국민통합을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석한 적이 있다. 국회의장이 인사말만 하고 떠난 것은 이해되지만, 토론자였던 여야 의원도 중간에 자리를 뜨거나 한참 뒤에야 나타났다. 방청석에서 “토론 주제가 국민통합인데, 여야 의원부터 한자리에서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니 국민통합이 되겠느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얼굴만 들이밀고 가는 국회의원만 욕할 일도 아니다. 국회의원급은 되는 사람이 참석해야 행사의 격이 올라간다고 믿는 이 사회의 속물근성이 뒤늦게 나타나 일찍 떠나는 결례를 범해도 괜찮다는 특권 의식을 키운다. 우리 안의 ‘특권 선망’부터 내려놓아야 셀프 개혁이 사실상 불가능한 ‘특권 내려놓기’를 밀어붙일 수 있다.단단한 ‘특권화 교육’ 어느 사회든 특권계층은 있게 마련이다. 사회가 특권을 용인하려면 특권층의 자기희생이 선행돼야 한다. 자기희생은커녕 고급 외제차에 대박 주식도 모자라 남의 돈으로 내연녀에게 줄 오피스텔 선물까지 챙기는 특권층을 보면 자식들의 미래가 걱정된다. 하기야 다른 정부 같으면 열두 번도 바뀌었을 사람이 아직도 청와대 핵심 요직을 지키며 ‘특권의 끝판왕’으로 군림하는 한 특권 개혁은 요원하다. 정녕 이 나라에 미래가 있는가.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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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횡설수설/박제균]지자체장들의 ‘대권 꽃놀이패’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국민이 놀랄 만한 세대교체를 실현한다는 것이다.” 1995년 10월 당시 김영삼(YS) 대통령의 한마디에 정가가 발칵 뒤집혔다. 이 말로 하루아침에 뜬 사람이 ‘작은 YS’ 또는 ‘리틀 박정희’로 불리던 이인제 경기지사였다. 이듬해 대선 주자 취재를 위해 지사 관저를 방문했던 나는 그에게서 두 가지를 읽었다. 복잡한 정치판을 단순명료하게 풀어내는 고수의 내공과 어떤 경우에도 출마를 포기하지 않을 거란 권력욕을…. ▷1995년 6월 초대 민선 자치단체장으로 당선된 그가 1997년 3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당시로선 새로운 정치 사건이었다. 지금은 지자체장 감투를 쓰자마자 자천타천으로 ‘대권’을 주워섬기는 시대가 됐다. 북미를 순방하며 ‘정권 교체’를 외치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필두로 1일 “친노 친문 비문도, 고향도, 지역도 뛰어넘겠다”며 사실상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안희정 충남지사, 경기도정과는 아무 상관없는 모병제(募兵制) 도입으로 군불을 때는 남경필 경기지사에 원희룡 제주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까지 들썩이고 있다. 급기야 6일 기초단체장(이재명 성남시장)까지 광주를 방문한 뒤 “대한민국의 혁명적 변화” 운운하며 숟가락을 얹었다. ▷지자체장들이 너도나도 대선에 발을 들이미는 것은 돼도 그만, 안 돼도 그만인 꽃놀이패기 때문이다. 대선 출마 공직 사퇴 시한은 선거 90일 전. 내년 여름 당내 경선 때까지 현직을 갖고 지자체 예산으로 대선놀음을 하며 한껏 몸값을 올려놓은 뒤 경선에 떨어져도 감투는 유지된다. ▷어느 때부턴가 광역단체가 지역구민의 피로감에 몰린 중진 의원의 피난처, 또는 대선 출마를 위한 경유지가 되고 있다. 서울시 안팎에선 박 시장의 대선 출마를 전제로 후임 시장 하마평까지 돌고 있다니 시정(市政)이 제대로 돌아갈 리 없다. 미국에서도 대선 후보 자질로 주지사 행정경험을 평가하지만 대선 때마다 한두 명 정도가 고작이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표현대로 ‘개나 소나’ 대권을 넘겨다보면 소는 누가 키우겠는가. 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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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내부자들’의 주술에 걸린 사회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 사건’ 이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이 말을 수없이 되뇌었을 한 사람이 떠오른다.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 그가 이 지경에 처한 것은 ‘민중은 개돼지’ 막말 때문만은 아니다. 기자들과의 논쟁에서 지지 않겠다는, 오만이 부른 승부욕 탓이 훨씬 더 크다.막말보다 오만으로 추락해 그는 술자리를 함께한 기자들이 자리를 뛰쳐나가고, 녹음을 시작했을 때도 ‘녹음을 중단하라’고 했을 뿐, 끝까지 자기가 옳다고 설득하려 했다. ‘취중에 실언을 했다’고 사과했거나, 차라리 술상에 엎어졌다면 일이 그토록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1% 엘리트’(본인은 ‘1%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지만)가 흔히 범하는 실수다. 나름의 성공신화에 빠진 그들은 잘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내 탓’보다는 ‘네 탓’에 익숙하다. 파면 처분에 불복해 소청심사를 청구한 그가 이젠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알까. 우리 사회가 영화 ‘내부자들’의 주술에 걸린 듯한 요즘이다. 영화에서 ‘민중은 개돼지’란 대사를 읊은 이가 ‘조국일보’ 논설주간이다. 이름도 비슷한 신문의 주필이 논설주간 시절 기업의 돈으로 1인당 1억 원이 든다는 초호화 유럽 여행을 한 행적 등이 드러나 물러났다. 영화를 본 뒤 ‘재미있는 픽션이지만, 언론의 현실을 너무 모른다’고 평가했던 나도 할 말이 없다. 국민이 언론인을 어떻게 볼까 생각하면 참담한 기분조차 든다. 조선일보 송희영 전 주필의 부적절한 행적의 공개 경위를 두고 ‘청와대의 기획’이라는 음모론이 있다. 추후 규명돼야 할 일이지만 본 칼럼에서 구구하게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어느 때부턴가 잘못이라곤 인정하지 않고, 요즘엔 ‘내 편’ ‘네 편’까지 가르는 청와대가 걱정이다. 나향욱의 추락은 실수나 삐뚤어진 소신보다는 잘못을 저지르고도 밀리지 않겠다는 오만 때문이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그림자가 겹치는 일이 많아 놀랍다. ‘금수저’ 보수우파와 ‘흙수저’ 진보좌파 출신인 두 대통령.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아무리 언론이 지적해도 꿈쩍 않는, 그 무서운 소신(?)이 닮았다. 두 분 다 상상하기 어려운 신산(辛酸)을 거쳐 그 자리까지 갔다. 그만큼 ‘자기 확신’도 강하기에 남의 말을 잘 안 듣는다. 최후의 버팀목인 골수 지지층이 있는 것까지 닮았다. 노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참여정부는 절반의 성공도 못 했다”고 토로한 것까지 닮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과거 정권에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인사들은 가장 진언하기 어려운 것이 인사 문제라고 한다. “기업 오너에게 돈 문제를 진언하면 ‘그게 네 돈이냐’라고 생각하듯, VIP(대통령)에게 인사 문제를 꺼내면 ‘너나 잘하세요’라는 반응이 나오기 십상이다.” 그래서 언론의 역할이 있는 것이다. ‘정권 흔들기’니 뭐니 하면서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 집착하는 청와대를 보면 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남의 말 안 듣는 두 대통령 ‘제왕학의 교과서’라는 ‘정관정요(貞觀政要)’ 1권 ‘군치론(君治論)’에서 당 태종이 신하 위징에게 묻는다. “명군(明君)과 암군(暗君)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오?” 위징의 답. “군주가 밝은 것은 두루 여러 사람의 말을 듣기 때문이고, 우매한 것은 한쪽 말만 편벽되게 듣기 때문입니다….”(‘창업과 수성의 리더십 정관정요’·신동준 옮김) 알다시피 정관정요는 박 대통령의 애독서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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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식물정부’와 ‘일부 부패기득권 언론’

    조선 전기 국왕들은 불교 문제로 유신(儒臣)들과 언쟁을 벌이곤 했다. 성리학자였던 신진사대부 세력을 주축으로 건국된 조선의 척불(斥佛)정책과 왕실 신앙이었던 불교가 충돌하는 지점이었다. 역사학자 임용한의 저서 ‘조선국왕 이야기’는 국왕의 특성에 따른 대응법의 차이를 비교했다.왜 ‘부패’란 단어 썼나 ‘훌륭한 무장이었지만 학문이 부족했던 태조’는 고려 말 문신이자 뛰어난 성리학자였던 목은(牧隱) 이색을 들먹이며 효과적으로 제압한다. “이색도 불교를 믿었다. 네가 이색보다 잘났느냐.” ‘술수를 좋아했던 태종’은 절묘한 핑계로 빠져나간다. “나도 불교가 허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중국이 불교를 신봉하고 있으니 우리가 탄압할 수는 없다.” ‘터프가이를 지향했던 세조’는 단순명료(?)했다. “칼을 가져와라. 내 저놈을 죽여 부처께 사죄하겠다.” 세종 때는 훈민정음 창제 반대 상소가 빗발쳤다. 최만리가 ‘자기 문자를 가진 나라는 모두 오랑캐’라며 차라리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한 이두(吏讀)를 써야 한다고 상소했다. 신하들보다 학문이 뛰어났던 세종은 학문으로 기를 죽였다. “네가 음운학에 대해 알기나 하느냐.” 독립적인 언론이 없던 조선에선 중신들이 언관(言官)의 역할을 겸했다. 지금이야 조선 같은 왕정은 아니지만 언론의 비판을 접한 대통령의 대응법에 따라 그릇의 크기가 짐작된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2년 차인 2004년 1월 연두기자회견에서 ‘보수언론과의 전쟁’을 선언했다. 급기야 임기 말엔 기자실 폐쇄의 대못까지 박았다. 그런데 보수정권인 박근혜 정부에서 ‘일부 보수언론’에 대해 노무현 정권 때 못지않은 성토가 나올 줄은 몰랐다. 청와대 관계자는 21일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 대한 첫 의혹 보도 이후 일부 언론 등 부패기득권세력과 좌파세력이 ‘우병우 죽이기’에 나섰다”며 “우병우 죽이기의 본질은 집권 후반기 대통령과 정권을 흔들어 식물정부를 만들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일부 언론’이 친박 세력으로는 보수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보고, 정권 재창출 세력을 교체하기 위해 대통령 흔들기에 나섰다는 뜻이다. ‘일부 언론 등 부패기득권세력’은 우 수석의 1300억 원대 처가 강남 땅 거래 개입 의혹을 처음 보도한 A신문을 지칭하는 듯하다. 그런데 ‘부패’란 단어가 묘하다. 청와대 관계자가 밑도 끝도 없이 이런 말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파장이 번지는 것이다. 청와대에선 A신문 자회사인 종합편성채널이 ‘박근혜 정부 들어 건립된 B문화재단과 C체육재단에 대기업들이 900억 원에 가까운 출연금을 내는 데 청와대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연속 보도하는 것까지 ‘정권 흔들기’로 받아들인다.‘우병우 살리기’가 정권 흔들어 ‘우병우 죽이기=대통령 흔들기’라는 청와대의 인식이 딱하다. 과도한 ‘우병우 살리기’가 정권을 흔드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감찰 결과 누설 의혹을 받고 있는 이석수 특별감찰관은 사퇴 여부를 묻는 질문에 “의혹만으로는 사퇴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 정부 방침 아닙니까”라며 우병우 비호를 사실상 조롱했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민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은 자신의 권한을 잠시 맡겨둔 대리인에 불과하다”고 했다. 지당한 말씀이지만, 대통령이 임명했거나 우군이던 인사들의 입에서 더 험한 소리를 듣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려면 대통령이 ‘읍참(泣斬) 우병우’ 해야 한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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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大國’ 앞세우는 중국, 대국 자격 없다

    1992년 8월 한중(韓中)수교 직전, 상하이(上海)를 방문한 나는 황푸(黃浦) 강가를 걷고 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헐벗은 아이는 상의도 입지 않았다. 손을 벌리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1달러짜리를 꺼낸 게 화근이었다. 정말 ‘눈 깜짝할 새’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벌떼처럼 나를 에워쌌다. 손 내밀며 달려드는 아이들에게 밀려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아뿔싸, 중국 여행 시작 전 “구걸하는 아이에게 적선하지 말라”는 가이드의 말을 잊다니….反美가 ‘親中사대주의’로 가이드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오긴 했지만, 당황했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이야 ‘차이나 머니’가 세계를 호령하고 한국인들도 중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지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그랬다. 2001년 1월 다시 찾은 황푸 강가. 거지는 없었고, 거리는 깨끗이 정비돼 있었다. 그해 1월 개혁·개방에 관심을 가진 북한 김정일이 상하이를 방문했고 나는 취재차 출장을 갔다. 김정일의 동선(動線)은 철저히 보안에 부쳐졌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기자는 그래도 김정일 행적을 알까 싶어 아는 중국통의 주선으로 만났다. 그런데 대화를 이어가다 김정일 얘기만 나오면 “중국과 남북한이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 운운하며 말을 돌렸다. 이게 기자 맞나, 싶었다. 잘나가는 공산당원이었던 그가 초면인 내게 깊은 얘기를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두고 중국 언론이 나팔수처럼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러나 말끝마다 ‘대국(大國)’을 들먹이는 걸 보면 실소가 나온다. 언제부터 먹고살게 됐다고 ‘대국 타령’인가. 중국이 큰 나라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대국’을 앞세우는 나라는 대국 자격이 없다. 중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인 한국에 여전히 ‘대국 놀음’을 하려 드는 것은 과거 조공을 바쳤던 나라라는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아서일 게다. 우리 내부의 뿌리 깊은 친중(親中) 사대주의자들이 그 기억을 되살려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냈다는 사람이 중국 관영매체와 “사드 배치 결정은 박근혜 정부의 외교 실패”라는 인터뷰를 하더니, ‘사드 배치를 철회할 경우 미국과 마찰이 생겨도 중국과 손을 더 잡으면 굶어 죽을 걱정이 없다’는 궤변을 한다. 리영희의 ‘8억인과의 대화’류의 세례를 받은 수구 반미·진보좌파세력이 친중 사대주의에 경도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대한민국이 이만한 번영이라도 누리게 된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한 한미동맹에 힘입은 바 크다. 사람 좋아 보이는 중국 지도자 시진핑(習近平)의 미소에는 2009년 위구르 폭동의 무자비한 진압을 밀어붙인 칼이 숨겨져 있다. 중국의 선의(善意)에 기댔다가 여지없이 배신당한 역사적 사례는 무수히 많다.시진핑, 무자비한 폭동 진압 임진왜란 때 원군(援軍)이라고 달려온 명나라 군대는 한두 번 패전에 싸울 의지를 잃고 왜(倭)와의 강화(講和)에 매달렸다. 그것도 모자라 조선을 분할하거나 직할통치하려고 획책했다. 왜군을 추격하지 말라는 명군의 명령을 어겼다고 권율 장군을 잡아갔으며, 조선군 선봉장의 목에 쇠사슬을 매어 땅바닥에 끌면서 중상을 입히고 피를 토하게 했다. 다 쓰러져가던 명의 군대가 이런 만행을 저지를 수 있었던 것은 선조 임금과 중신 등 허울 좋은 ‘의명파(依明派)’의 비겁함 때문이었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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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無수저’ 이정현의 인간극장

    1997년 신한국당 출입기자였던 나는 이회창 대선 후보의 ‘마크맨(전담기자)’이었다. 당시 기자들의 취재 지원을 담당하는 대변인행정실의 한 당직자는 꽤나 인상적이었다. 일단 눈 코 입과 얼굴형이 모두 둥근 데다 기사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면 언제나 ‘기대 이상’을 해주었다. 흠(?)이 있다면 너무 다혈질이었다. 이 후보에게 유리한 기사가 나오면 가뜩이나 둥근 얼굴이 더 보름달처럼 환해졌다. 불리한 기사가 나오면 바쁜 기자들을 붙잡고 왜 기사가 안 되는지, 침을 튀겨 가며 열변을 토했다.‘못 말리는 충성因子’ 말단 당직자인 ‘간사병(丙)’부터 출발해 집권당 대표의 신화를 이룬 이정현 새누리당 신임 대표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이 후보 측근들이 알아주지도 않았다. 시키지도 않았다. 이회창을 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타고난 충성심이랄까. 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충성 인자(因子)’가 정치인 박근혜를 만나 꽃을 피운 것이다. 이 대표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 시절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를 건 것이 문제가 됐지만, 한나라당-새누리당 출입기자나 담당 데스크를 하면서 이정현의 전화 한 통 안 받아본 기자가 있을까. 2013년 민주당 양승조 최고위원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해 사건을 언급하며 “박 대통령이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발언한 일이 있다. 당시 야당에선 분개한 이 수석이 ‘울먹였다’고 했고, 이 수석은 “울먹인 적 없다”고 반박했다. 실제 ‘폭풍 토로’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울먹인다는 오해를 살 만큼 열정적이다. 이정현의 e메일 주소 앞부분은 2007년 대선후보 경선까지 ‘geunhyevictory2007’(근혜빅토리2007)이었다. 박 후보가 그해 경선에서 패한 뒤에는 ‘geunhyevictory2012’로 바꿨다. 박근혜의 승리를 위해 메일 주소까지 바꿨던 이 대표가 과연 박 대통령에게 직언을 하고 수평적인 당청 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나는 어렵다고 본다. 다혈질에 ‘못 말리는 충성심’은 종종 청와대 근무 시절에도 잡음을 불렀다. 2014년 6월 그가 홍보수석에서 물러난 것이 7·30 재·보선 출마를 위한 자의만은 아니었다. 충성심과 열정에 지략까지 겸비해 참모로는 최적인 그가 과연 리더로, 그것도 집권당의 리더로 잘 해낼 수 있을까? 이 대표가 답할 차례다. 이정현의 당선을 친박(친박근혜)의 집중 지원 때문으로만 본다면 단견(短見)이다. 그에게는 다른 후보들이 갖지 못한 스토리가 있었다. ‘흙수저’도 아닌 ‘무(無)수저’에서 출발해 새누리당 불모지 호남에서 연거푸 당선됐다는…. 스토리는 정치인이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거름이지만, 그가 극복해야 할 또 다른 난관이기도 하다. 바닥에서 출발해 성공 스토리를 만든 주인공에게 밖에서는 찬사를 보낼지 몰라도 안에서는 ‘많이 컸네’라며 인정하지 않으려는 게 한국 사회 풍토다. 당장 정당 생활을 같이 해 온 친박의 서청원 최경환, 비박의 김무성 유승민 의원, 당직을 맡은 정진석 원내대표가 내심 대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특권 타파’ 적임자다 이를 극복할 길은 있다. 특유의 무기를 살려 국민의 지지를 얻으면 된다. 이 대표는 유세 과정부터 “국회의원들이 하는 셀프 개혁은 특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개혁”이라며 “국민의 눈으로 기득권을 철저히 때려 부수겠다”고 열을 올렸다. 한국 정치의 특권과 기득권을 타파하는 데 ‘무수저’인 이정현만 한 적임자는 없다. ‘특권 내려놓기’, 이거 하나만 해내도 이정현은 성공한 대표로 남을 것이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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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朴대통령 “사드 지역 재검토” TK의원 만나 밝혀야 했나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지역을 경북 성주의 성산포대 대신 ‘성주군 내 다른 지역’으로 옮길 수도 있다고 시사했다. 새누리당 TK(대구경북) 지역 초·재선 의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 성주 군민의 ‘유해성 논란’을 고려해 “새로운 곳을 검토·조사하도록 해보겠다”고 말한 것이다. 사드 배치 자체를 재검토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초미의 외교안보 현안을 대통령이 지역구 의원들에게 ‘선물’이라도 주듯 밝힌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확한 사드 부대 배치 지역은 미국과 중국, 일본도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대한 문제다. 이 정도 사안이라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나 국무회의, 아니면 대통령의 특별담화로 밝히는 것이 옳다. 국방부는 지난달 “기존에 결정된 부지(성산포대)가 최적의 적합지”라며 부지 교체 가능성을 배제한 바 있다. 더구나 박 대통령 자신도 지난달 NSC와 이틀 전 국무회의에서 “안전성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의 말, 특히 국가 안보에 관한 발언은 산처럼 무거워야 한다. 당장 사드 반대론자들 사이에선 ‘배치 결정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뤄졌는가를 자인했다’는 비난이 나온다. 대통령 발언에 “검토”를 밝힌 국방부에 대한 신뢰까지 깎일 우려가 있다. 새누리당 전당대회를 5일 앞둔 시기에 박 대통령이 TK 의원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모습에 TK 기반의 친박(친박근혜)계 결집을 촉구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라는 뒷말도 나오게 됐다. 박 대통령은 의원들이 아닌 성주 군민을 청와대로 초청하거나 직접 만나러 갔어야 했다.}

    • 2016-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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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의 휴먼정치]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릴 사람은 없다

    한나라당 이회창 대선후보가 의심의 여지없는 ‘미래 권력’이던 시절, 아침마다 그의 책상엔 밀봉된 보고서가 올라갔다. 겉봉엔 ‘對外秘(대외비)’라는 붉은 한자 도장이 찍혀 있었다. 대통령 보고서 양식을 본뜬 것이다. 작성자는 국가안전기획부 출신 A 의원. 그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정보통이었다. 이 후보에게 ‘보험’을 들려는 정보기관 관계자들은 A 의원에게 몰렸고, 그만큼 보고서의 신빙성이 높았다.국정원장 獨對 검토해야 권력에 누수가 생길까 봐 의심 많은 권력자들은 너나없이 정보의 마력에 빠진다. 1997년 대선에서 이 후보에게 이긴 김대중(DJ) 대통령도 보고서 중독 수준이었다. 해외 순방이라도 다녀오면 밀린 보고서부터 찾기 바빴다. DJ는 작성자의 판단이 개입된 보고서는 신뢰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일과를 마치고 관저에까지 보고서를 들고 간다. 보안을 중시하는 박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직접 손으로 쓴 보고서를 신뢰했다. 타이프로 친 보고서는 복수로 출력됐을 것이란 의심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서엔 인간의 육성(肉聲)이 없다. 역대 대통령들은 여러 채널의 만남으로 이를 보완했다. 중요한 회동이 정보기관장 독대(獨對)였다. DJ 때까지 이어진 국정원장 주례보고는 노무현 대통령 때 끊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매주 금요일 국정원장을 독대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에 와서 다시 끊겼다. 국정원에서 매일 올리는 보고서 역시 다른 부처 보고서와 마찬가지로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같은 측근을 거쳐 대통령에게 전달된다. DJ 정부에서 민정수석비서관을 지낸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박 대통령도 국정원장을 독대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국정원장이 무슨 보고를 할지 몰라 공직사회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통치에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누가 뭐래도 국정원은 대한민국 최고 최대의 정보기관이다. 측근의 손을 거친 문건으로 보고받기보다는 이병호 원장의 육성을 들을 필요가 있다. 군과 검찰을 신뢰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 대통령이지만, 그쪽 사람들을 따로 만나는 일도 드물다. 군 정보기관인 기무사령부는 독재 시절 나는 새도 떨어뜨렸던 보안사의 후신. 그러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사령관 시절 박 대통령과 독대한 일이 없다고 한다.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과 육사 37기 동기이자 ‘절친’이어서 오히려 불이익을 받았다고나 할까. 박 대통령은 최근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고 말했다. 참모들에게는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나가라”며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 가지 말라”고 당부했다. 우병우 민정수석비서관을 비호하는 말이 아니냐를 두고 논란이 있었지만, ‘비난’ ‘저항’ ‘고난’ ‘소명’ 등 마치 ‘성전(聖戰)’에 임하는 듯한 단어 선택은 심상치 않다.권력자의 자기 합리화 위험 임기 말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진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사 얘기를 많이 했다. “세종은 성군이었지만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 “조선 500년을 지배한 혁명을 성공시킨 사람은 정도전이다”…. 국민은 안 알아 줘도 역사는 평가해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을까. 권력자가 민심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합리화를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비난’이나 ‘저항’으로 받아들여, 현재의 ‘고난’을 극복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여겨선 곤란하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은 대통령 자신이다.박제균 논설위원 phark@donga.com}

    •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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