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박제균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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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제균 고문입니다.

phark@donga.com

취재분야

2024-03-26~2024-04-25
칼럼97%
선거3%
  • [박제균 칼럼]北-美 외교전쟁 열린다

    우리도 남북관계의 운전석에 앉았던 때가 있었다. 북한은 1974년 김일성이 북-미 평화협정 체결을 제의한 이래 집요하게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추구했다. 그러나 미국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표현이 적확할 것이다. 당시 북한은 핵무기는커녕 미국의 관심(?)을 끌 만한 대량살상무기(WMD)를 보유하지 못했다. 미국은 남북관계에 관한 한 남측에 전권을 부여했다. 노태우 정부 시절 한반도 문제의 핵심 쟁점을 망라한 남북기본합의서와 분야별 이행합의서는 그런 분위기에서 탄생됐다. 당시 통일원 출입기자였던 나는 1992년에 무수히 많은 날을 판문점 취재 현장에서 보냈다. 남북기본합의서 이행 방안을 협의할 각종 공동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열렸기 때문이다. 그대로 가면 통일이 꼭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그 역사의 현장을 취재하는 사명감도 충만했다. 하지만 그땐 몰랐다. 북한이 남북 화해의 몸짓 뒤에서 무슨 일을 벌이는 줄을. 남북대화를 철저히 북-미 대화의 마중물로 쓰려던 계략을. 한국에 남북관계의 전권을 줬던 미국에는 1991년을 기점으로 미묘한 기류 변화가 생겼다.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사실상 ‘일방적인 비핵화’를 선언할 정도로 핵문제보다는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이 많았다. 미국으로선 직접 북한과 만날 필요성을 처음으로 느꼈다. 북-미 직접협상에 거부감을 느꼈던 노태우 정부는 미국에 몇 가지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접촉은 단 한 차례여야만 하고 △북한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반응을 듣되, 협상을 벌여서는 안 되며 △북한에 전달할 메시지는 사전에 한국 정부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미국은 이 조건들을 모두 수용했다. 그래서 성사된 것이 1992년 1월 뉴욕에서 아널드 캔터 미 국무부 정무차관과 김용순 노동당 국제부장이 만난 1차 북-미 고위급 접촉이었다.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에 마냥 끌려다니는 오늘날과는 180도 다른 광경이었다. 그러나 일단 미국과 대화의 물꼬가 트이자 북한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남북관계를 북-미관계의 서자(庶子) 취급하기 시작했다. 북-미관계가 잘나갈 때면 남쪽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북-미관계가 교착되거나 파국에 이르면 남쪽으로 눈을 돌렸다. 그럴 때도 북이 남에 원하는 것은 거의 항상 변함이 없었다. 험악해진 북-미관계의 증기를 빼거나, 미국이 해줄 수 없는 경제적 이득을 바라거나, 아니면 한미관계를 이간질시키는 것이었다. 지금도 바로 그런 때다. 김정은이 올해 들어 깜짝 놀랄 정도의 화해 제스처를 보내는 것은 위에 말한 세 가지 중 한두 개를, 아니 세 가지를 다 원하는 것일 공산이 크다. 특히 북한이 지난해까지는 당장 미국과 전쟁이라도 벌일 듯, 치킨게임을 벌인 뒤여서 더욱 그렇다. 미국과 북한이 치킨게임을 벌이면 한국 정부는 곤혹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을 거들면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이냐’는 내부 비난과 함께 국민이 불안해하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동맹을 놔두고 북한 편을 들 수도 없다. 그래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면 당장 미국 내에서 한국의 동맹 역할이 실종됐다는 비판론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가 상대적으로 북한에 유화적 자세를 취하기는 했지만, 이런 고민은 이 정부뿐 아니라 역대 한국 정부가 모두 짊어진 부담이었다. 바야흐로 북-미대화의 서막(序幕)이 열릴 조짐이다. 우리는 남북관계의 운전석에 앉을 수 없는 현실부터 인정해야 한다. 남북관계 상대방인 북쪽부터 남측에 운전대를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미국도 남북관계의 전권을 줄 뜻이 없고,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설혹 남북 정상회담이 열려도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는 북-미 협상의 보조 역할밖에 할 수 없다. 그것이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지금으로선 북-미대화가 열려도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불꽃만 피식거리다 다시 군사 옵션과 전쟁 위기로 치달을 수도 있다. 협상이 잘된다면 북한 핵·미사일 동결 등 핵문제의 진전과 함께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합의할 수도 있다. 협상이 훨씬 멀리 간다면 주한미군 철수와 북-미 수교를 통한 한반도 평화체제 전환까지 의제에 포함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북한 정권에 평화체제 구축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점이다. 북의 일관된 최종 목표는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무력이든, 선거를 통해서든 한반도를 제패(制覇)하는 데 있다. 김일성에서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는 한시도 이 목표를 잊은 적이 없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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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南=현금’인 北, 또 거액 내라는데

    아니나 다를까.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남쪽에서 정권만 바뀌면 되풀이해온 행태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이 문제된 이후에도 북한 정권은 노무현 정부에 돈을 요구했다. 보수정권인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측에서 새로 정권을 잡은 세력은 북측과 비선접촉 라인을 열고 싶어 하는 게 상례다. 대통령들은 저마다 ‘회담을 위한 회담은 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강하게 희망한다. 5년이라는 임기의 한계 때문에, 정상회담을 통해 다른 대통령이 못하는 큰 거 한방을 날리겠다는 정치적 야망을 불태운다. 이 야망에 부응할 비선접촉 라인으로는 2009년 당시 임태희 노동부 장관처럼 대통령 특사가 나서는 때도 있고, 국가정보원이나 통일부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나 통일전선부와 통하는 경우도 있다. 사전 정지(整地) 작업은 북한을 자유롭게 드나드는 재미(在美)교포나 사업가, 조선족 사업가가 나설 때도 있다. 최근 모종의 경로를 통해 북측의 메시지가 온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대화와 핵 동결을 할 용의가 있다는 것. 그 대가는 수십조 원에 달하는 현금이나 현물 지원이다. 이런 내용은 관계당국에 보고됐다. 남북 사이에 얘기가 잘된다면 9일 평창 올림픽 개막을 전후해 북한 실세이자 김정은 복심(腹心)인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 방남(訪南)할 가능성이 높다. 최룡해가 온다면 평창 올림픽의 관심은 온통 그에게 쏠릴 것이다. 북한에서 누가 오든 북측이 한국과 미국에 원하는 것은 언제나 똑같다. 미국에는 안전, 한국에는 돈이다. 더구나 김정은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채권증서까지 들고 있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인 10·4 합의문서다. 거기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약속한 △남북경협 투자 △기반시설 확충과 자원개발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한강하구 공동 이용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 수송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안변 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농업 보건의료 환경보호 협력사업 등 수백조 원의 ‘채무’가 들어 있다. 김정은 자신이 아버지의 채권을 물려받았듯, 노무현을 계승한 문 대통령이 채무도 승계하라는 것이다. 수십조 원, 아니 수백조 원이 든다고 해도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영영 포기한다면 못해 줄 이유가 없다. 그러나 김정은은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핵을 포기하는 순간, 남쪽의 부자 나라에 빌붙어 살아야 하는 빈국(貧國)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니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고 동결하는 선까지만 갈 수밖에 없다. 남쪽이 수십조 원을 댄다면 남북대화와 정상회담 선물까지는 줄 수 있다는 것이다.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은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통일대박론’을 구체화할 방안을 제시했다. 남북관계를 재설정하자는 취지였지만, 그해부터 북측도 우리와는 전혀 다른 남북관계 재설정론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핵을 가진 북한과 핵이 없는 한국이 평등할 수 없으므로 남북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특히 올해부터 북측이 말하는 남북관계 재설정 구도에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지난해 핵과 ICBM 실험을 통해 가공할 능력을 보여준 김정은 정권을 두려워하고, 심지어 어려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 와중에 북한에 마냥 끌려다니는 문재인 정부가 그런 불평등 관계로의 진입을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 주변 4강을 돌아보라.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지도자들은 모두 ‘힘을 통한 평화’를 외친다. 하물며 북쪽의 지도자도 ‘힘을 통한 평화’다. 문 대통령만 ‘대화를 통한 평화’다. 전쟁하자는 게 아니다. 평화를 지킬 힘이 없이 벌이는 대화는 불평등만 심화시킬 뿐이란 게 동서고금의 진리다. 더구나 북측은 남북대화보다는 대화 테이블 밑에서 오갈 현찰에만 관심 있다. 막상 대화를 열어 남북이 합의한다고 해도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기 어려운 것이 작금의 국제정치 현실이다. 진정 평화를 원한다면 남북관계에서 머리를 들어 주변 4강의 이해(利害)관계와 역학구도까지 더 넓게 봐야 한다. ‘대화를 통한 평화’에만 집착하다간 북한의 현금인출기 노릇을 면치 못할 것이다.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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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대통령이 ‘분노’를 말할 때

    “A가 화냈다면 B가 잘못한 거지….” 당신 주변을 돌아보라. 오랜 친구나 직장 동료 가운데 A 같은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착하다고 소문난 A. 그래서 누가 A와 다퉜거나 A를 화나게 했다면 그 사람이 잘못한 게 되는…. 문재인 대통령 주변에선 그 A가 대통령 자신 아닌가 싶다. 문 대통령의 착한 성품은 정평이 나 있다. 바로 이런 성품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를 ‘정치가 전혀 안 맞는 사람’으로 봤다. 그런 품성을 극적으로 보여준 때가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영결식이었다. 백원우 현 대통령민정비서관이 분향하는 이명박(MB) 당시 대통령에게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을 해. 정치적인 살인이다”라고 고함치다 경호원들에게 끌려 나갔다.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이었던 문 대통령은 영결식이 끝난 뒤 MB에게 “결례가 됐다”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문 대통령은 회고록 ‘운명’에서 “노 대통령의 죽음은 정치적 타살이나 진배없었다”고 썼다. 심정적으로는 백 비서관과 마찬가지인데도 “조문 오신 분한테 예의가 아니게 됐다”며 고개 숙일 줄 아는, 문재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이런 성품이야말로 정치에 뜻이 없던 그를 친노들이 똘똘 뭉쳐 대통령으로 밀어준 원동력이었다. 그랬던 ‘우리 이니’가 변한 걸까. 측근들이 구속되고, 자신을 향한 사법의 올가미가 점점 목을 조여 오는 상황에 몰린 전전(前前) 대통령이 내뱉은 한마디에 ‘분노’를 입에 담았다.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 보복 운운한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역대 대통령이 그랬듯, 권력의 최정점에 오르자 변한 것인가. 아니면 그가 ‘운명’에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에 대해 “너무 조심스럽게 대응한 게 아닌가. 후회가 많이 남는다”고 한 데 대한 해원(解寃)인가. 어쨌거나 ‘분노’란 표현은 권력자가 그렇게 입에 올릴 단어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8월 “북한은 세계가 본 적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6월 총기난사 사건 때 “미국인으로서 우리는 슬픔과 분노, 국민을 지키자는 결의로 함께 뭉칠 것”이라고 웅변했다. 대통령이 분노를 말할 때는 국민의 공분(公憤)을 대변하거나 국익이 걸린 때여야 한다. 대통령의 분노가 사적인 원한을 암시한다면 분노의 대상이 된 당사자는 물론 국민에게도 무서운 겁박이다. 문 대통령은 ‘분노’의 이유에 대해 ‘청와대가 정치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이는 것처럼 표현한 것은 정부에 대한 모욕이자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라고 부연했다. 하지만 그가 노 전 대통령 죽음과 관련해 MB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정치적 타살’ ‘정치보복’ 운운한 회고록에 충분히 표현돼 있다. MB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아무리 궁지에 몰렸다고 노 전 대통령의 죽음까지 거론한 것은 잘못이다. 평소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해도 전직 대통령으로서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할 말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청와대와 여당이 나서서 문 대통령 내면의 ‘휴화산’을 건드린 MB가 잘못이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위험하다. 노 전 대통령, 특히 그의 죽음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말란 것인가. 전례 없는 대통령의 분노는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을 줄 뿐 아니라 노무현을 금기로 만든다는 점에서 더 걱정스럽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나치리만치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과(功過)에 집착했다. 총격으로 아버지를 보낸 트라우마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그 집착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을 비운(悲運)에 보낸 트라우마 때문에 노무현에 집착한다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로마 공화정의 창시자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집정관 당시 아들 두 명이 왕정복고 음모에 가담하자 직접 사형을 결정하고 처형 장면까지 목도했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사적인 인연을 칼같이 끊어야 하기 때문에 권력이 위험하고 권력자의 길이 고독한 것이다. 요즘 세상에 그렇게까지 지독한 절연(絶緣)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최고 권력자라면 사적인 분노를 자제하는 것이, 아니 분노했어도 표출하지 않는 것이 나라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8-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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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謹弔 대한민국 외교부

    20여 년 전 현 외교부의 전신인 외무부 출입기자였던 나는 인사철이 다가오자 이상한 장면들을 목도하게 됐다. 통상 인사운동이란 것은 물밑에서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외교관들은 아예 드러내 놓고 인사 청탁을 했다. 국내외의 같은 라인 선후배들끼리 똘똘 뭉쳐 끌어주고 밀어줬다. 심지어 기자들에게도 인사 청탁이 들어왔다. 공개적인 인사운동이 용인되는 분위기는 외무부의 특수 사정 때문이란다. 인사명령에 따라 가족들도 미국부터 아프리카 오지까지 함께 가야 하기 때문에 인사에 목을 매는 것은 당연하다는 논리였다. 그 업보(業報) 때문일까. 최근 외교부 대사 인사를 보면 인사운동이고 뭐고 필요 없는 조직이 돼버렸다는 느낌이다. 4강 대사에도 무자격 인사들이 내리꽂히더니, 이번에는 영어나 주재국 언어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들이 대사 자리를 꿰찼다. 주요국 대사가 아니라면 꼭 외교관일 필요는 없다. 미국만 봐도 그렇다. 그래도 이건 도가 넘었다. 잘나가던 사람들이 아무 보직도 못 받고, 혹은 옷까지 벗게 되면서 외교관들 사이에선 살아남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자조가 번지고 있다. 졸지에 물먹은 인사들은 어떤 인물을 떠올렸을 법하다. 윤병세. 서울대 법대 출신에 23세에 외무고시 패스. 북미1과장과 주미(駐美) 공사를 거쳐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장과 대통령통일외교안보수석비서관까지. 근면과 명석함으로 정권에 관계없이 잘나갔던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자 하루아침에 옷을 벗었다. 오지의 대사 자리 하나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5년의 절치부심. 박근혜 캠프에 몸담은 그는 장관으로 권토중래(捲土重來)했다. 윤병세의 드라마틱한 컴백은 그만큼 외교부의 정치화를 가속화시켰다. 지난 대선 때 수십 명의 전·현직 외교관들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줄을 섰다. 반 전 총장이 중도하차하자 황망해하면서도 곧바로 문재인 캠프를 비롯한 각 진영의 문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았다. 외교관이 정치화하면 그 대가는 결국 한국 외교가 치러야 한다. 박근혜 청와대는 취임 후 미국보다 중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을 검토했을 정도로 중국에 꽂혔다. 임기 전반 박근혜 정부의 중국 경사(傾斜)는 당연히 미국의 반발을 불렀다. 이런 친중(親中) 행보가 우리의 안보 국익을 심각하게 침해한다는 사실을 미국통인 윤 장관이 몰랐을 리도 없다. 이어진 한일 위안부 졸속 합의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널뛰기…. 연달아 청와대 주도의 외교 실책들이 나왔지만 윤 장관은 외교부 수장이 당연히 해야 할 견제와 균형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것이 5년의 와신상담 끝에 박 전 대통령에게 발탁된 윤 장관의 태생적 한계라면 한계였다. 똑같은 일이 강경화의 외교부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강 장관은 외교관 직역 이기주의를 타파하기 위해 발탁된 신데렐라다. 이 태생적 한계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문재인 청와대의 ‘외교부 건너뛰기’는 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 심해졌지만 할 말을 못 한다. 문제는 청와대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국가안보실장과 차장들도 북핵 전문가가 아니라는 점. 이들과 강 장관은 모두 동북아 외교 현장에서 10년 이상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외교부의 카운터파트인 미국 국무부도 렉스 틸러슨 장관의 약한 입지 때문에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외교부-국무부 라인이 사실상 마비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외교부가 안팎으로 휘청거리니까 문정인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의 말이 결국은 외교정책이 된다는 구설이 나오는 것 아닌가. 강 장관이 발탁됐을 때 속으로 응원했다. 국회에서 외교통상부로 옮길 때 2계급 강등을 감수하면서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삶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외교부 이기주의를 타파하고 실력으로 승부하길 바랐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 이하다. 리더십이 흔들리는 조직, 인사운동을 위해 바깥을 두리번거리는 조직의 사기는 바닥일 수밖에 없다. 인간 승리의 드라마는 충분히 보여준 강 장관. 취임 반년이 지난 만큼 이제는 실력과 결기를 보일 때다. 그것도 안 되면 거취를 고민해야 한다. 외교부가 이리저리 휘둘릴 만큼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 상황이 한가하지 않다. 이도저도 아니면서 자리보전에만 급급한다면 대한민국 외교부에 조종(弔鐘)을 울린 장관으로 기록될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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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中國夢, 한국부터 깨야

    불편하지만 치욕의 역사를 들춰보자. 1882년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체결된 최초의 무역협정이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商民水陸貿易章程)이다. 여기에는 조선을 청의 ‘속방(屬邦)’으로 명기하고 있다. 종주국과 종속국의 관계를 분명히 한 것이다. 같은 해 미국과 조미수호통상조약(朝美修好通商條約)이 체결됐다. 청의 이홍장이 조선을 대리해 조약을 체결했다. 이홍장은 조약 1조에 조선이 청의 속방임을 명기하려 했으나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러자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서한을 통해서라도 조선이 속국이라는 점을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 미중(美中)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했다는 말이다. 무려 1세기 하고도 35년이 됐지만 중국 지도자들이 미국에, 한국에 대한 권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행태는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왕조 시절 중국은 한국을 식민지로 여기지 않고 내치에도 간여하지 않았지만, 독립국으로 인정하지도 않았다. ‘인민이 주인’이라는 사회주의 혁명으로 세운 나라의 지도자가 왕조 시절의 세계관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비이성적인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은 도무지 현대 국제사회의 상식에 맞지 않는다. 중국이 단순히 안보 측면에서 이렇게 반발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무리한 사드 보복의 근저에 아직도 중국과 주변국을 대국(大國)과 소국(小國)으로 나누고 소국은 대국의 질서에 편입돼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세계관이 짙게 묻어난다. 중국이 이렇게 한국을 막 대하는 데는 우리 잘못도 크다. 한국의 집권자들은 조선 국왕이 중국의 책봉을 받던 폐습의 DNA라도 물려받은 듯, 중국을 의식하고 어려워했다. 자유한국당이 문재인 대통령의 방중(訪中) ‘굴욕 외교’에 난리를 쳤지만, 전임 박근혜 대통령도 집권 중반기까지 문 대통령 못지않게 중국에 치우쳤다. 문 대통령이 방중 기간 한국을 ‘작은 나라’라고 지칭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미국에 가서도 그런 표현을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문 대통령이 중국의 서민식당에서 ‘혼밥’을 한 데 대해 청와대는 사드 문제로 돌아선 중국인의 마음을 잡기 위한 이벤트라는 설명을 내놓았다. 시진핑과 같은 중국 최고 지도자들도 종종 보이는 서민행보인 것은 맞다. 자국 지도자의 서민행보는 감동과 화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나라 정상이 찾아와 그러는 건 다소 뜬금없다. 세계 최강 미국의 대통령 정도라면 모를까. 우리보다 국력이 떨어지는 나라의 정상이 해장국집에서 한국 초청자도 없이 식사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대통령의 혼밥 행보가 어색하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정치인들뿐이 아니다. 2000년 ‘마늘 분쟁’을 돌아보자. 한국 정부가 중국산 마늘에 대해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하자 중국은 한국산 이동전화 등에 대해 수백 배의 보복조치를 단행했다. 결국 한국은 굴복하고 말았다. 한국을 무릎 꿇려본 경험이 있는 중국이 사드 보복으로 ‘길들이기 외교’를 자행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북한은 어떨까. 김정은은 지난달 시 주석이 모처럼 보낸 특사를 냉대해서 돌려보냈다. 집권 초 권력 기반이 다져지지 않아 중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도 친중(親中) 세력의 태두인 장성택을 무자비하게 처형했다. 어쩌면 할아버지 김일성 때부터 내려온 수법인지도 모른다. 김일성은 중국군의 6·25 참전으로 친중 세력인 연안파가 득세하자 전쟁 직후임에도 보란 듯이 숙청을 단행했다. 중국에 북한은 혈맹이자 국경을 맞댄 나라다. 중국의 생존과 국익에 한국보다 더 중요한 나라일 수 있다. 그렇다고 주북한 대사는 차관급을 보내고 경제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한국에는 국장급 이하를 보내는 외교적 결례를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가. 그럼에도 주한 대사를 만나려는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줄을 선다. 이러니, 굳이 격을 높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닌가. 중국은 우리에게 중요한 나라다. 수천 년의 역사가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특히 지금은 우리의 목덜미를 물고 있는 북핵 문제의 열쇠를 쥔 나라다. 당연히 잘 지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무시당하면서까지 잘 지내려 해선 안 된다. 함부로 해도 찍소리 못 내는 사람이나 나라의 목소리는 묻히기 십상이다. 중국은 2050년까지 미국을 앞서겠다는 중국몽(中國夢)에 빠져 있다. 정작 한국이 중국에 대한 미몽(迷夢)에 더 깊이 빠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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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中은 경쟁국” 트럼프 新안보전략이 뒤흔들 東北亞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현지 시간) 새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한다. 미국 언론들은 16일 새 안보전략의 골자가 중국을 ‘경쟁국(competitor)’으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미국에서 열린 첫 미중(美中) 정상회담 이후 대북제재와 무역적자 해결에 소극적인 중국에 ‘분노’를 키워왔으며 트럼프 행정부 내에는 중국을 적(adversary)으로까지 간주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강 미국 대외전략의 바로미터로 여겨지는 국가안보전략을 대통령이 취임 첫해에 내놓는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후반기인 1987년 처음 안보전략을 공표해 냉전 상황에서 미국 외교의 청사진을 선보였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2년 차인 2002년 9월과 2010년 5월에 안보전략을 공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첫해 이를 천명하는 것은 지난달 베이징 정상회담 결과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워 굴기(굴起)하는 중국은 미국의 잠재적인 ‘위협국(threat)’일뿐더러 중국이 사실상 방치하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의 해결에 시간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안보전략 보고서 작성을 지휘한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도 12일 “중국이 규칙에 기반을 둔 경제 질서에 도전하는 ‘경제침략(economic aggression)’을 하고 있다”며 중국과 러시아를 국제질서를 훼손하는 ‘수정주의 패권국가’라고 지목했다. 보고서는 백악관 NSC와 미 의회 의원, 싱크탱크 및 산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이 두루 참여해 9개월간 준비한 것이다. 안보전략은 ‘미국 우선주의’ 원칙에 따른 ‘고립주의’ 노선을 벗어나 미국이 국제질서 변화를 유도하는 ‘개입주의’로 전환할 것임을 예고한다. 이에 따라 국제질서는 요동칠 것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달 제19차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2050년까지 세계적 지도국가로 부상하겠다며 사실상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선언했다. 미국은 이미 ‘인도 태평양 전략’을 구체화함으로써 일본 호주 인도 등과 연대해 중국의 세계 확장 전략인 ‘일대일로(一帶一路)’의 봉쇄에 나섰다. 2018년 동북아는 미중 패권의 격전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중 협력이 필수적인 우리에게 직격탄이 될 것이다. 미국으로부터는 안보를 보장받고, 중국을 최대 교역국가로 둔 한국은 두 나라가 힘겨루기를 본격화하면 북핵 문제는 물론이고 무역과 경협에서도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 있다. 패권국가가 되려면 군사력과 경제력 외에 문화의 힘과 설득력 있는 정치적 가치 표방, 대외정책의 정당성을 포함한 ‘소프트파워’를 갖춰야 한다. 이 모든 걸 감안해도 중국이 미국에 필적하는 패권국이 되려면 요원하다. 따라서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더라도 우리 안보의 보루인 한미동맹에 최우선 가치를 두는 데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다만 지정학적으로 안보와 경제, 남북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중국을 어떻게 다루느냐가 내년도 한국 외교가 맞닥뜨릴 중대한 도전이 될 것이다.}

    • 2017-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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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韓美동맹 아니면 韓中동맹, 중간은 없다

    2005년 3월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 외교안보 정책의 새 기조로 동북아균형자론을 내세웠다. 요약하면 한국이 동북아에서 균형자(Balancer)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것이었고, 더 쉽게 말하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잡겠다는 뜻이었다. 통상 A와 B 사이에 균형자 역할을 하려면 A와 B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나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럴 능력이 없는 한국의 선언에 미국도 중국도 황당해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에서는 대선 때부터 ‘반미면 어때?’라고 했던 노 대통령이 중국 쪽으로 경사(傾斜)되는 신호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당시 리처드 롤리스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주미 한국대사를 찾아가 “동맹을 바꾸고 싶다면 언제든 말하라.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쏘아붙였다. 비단 노 전 대통령뿐이 아니다. 임기 초 한국 대통령들은 천하를 거머쥔 듯한 승리감에 들떠 불안정한 동북아의 평화 정착을 위해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했다. 노태우의 ‘동북아평화협의회의’, 김영삼의 ‘동북아 다자안보협력’, 박근혜의 ‘동북아 평화협력구상’이 모두 그런 착각에서 나온 것들이다. 특히 임기 초부터 친중(親中) 노선을 드러냈던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톈안먼(天安門) 성루에 섰다. 이는 미국이 결정적으로 한일 양국 가운데 일본과 밀착하는 계기가 됐다. 더구나 진보좌파 정권의 경우엔 ‘반미(反美)=친중(親中)’이란 운동권 식 논리까지 가미돼 미국과 거리를 두는 것이 무슨 훈장이라도 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두 가지 중대한 사실이 간과됐다. 하나는 한미동맹도 불변의 상수(常數)는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혈맹이라도 동맹으로서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동맹이 온전하게 유지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 적의 동맹국이란 사실이다. 1961년 체결돼 아직도 유효한 북중 동맹조약(조중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에 따라 중국은 한반도 전쟁 재발 시 파병을 포함한 군사원조를 해야 한다. 이른바 ‘자동개입 조항’이다. 유사시 중국이 적국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전통적으로 북한을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관계로 본다. 북한의 생존이 전적으로 중국의 안보와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에 6·25전쟁에도 참전한 것이다. 중국에 한국은 이익관계이고, 북한은 안보관계다. 이익관계는 때에 따라 버릴 수 있어도 안보관계는 그럴 수 없다. 2000년 중국의 마늘분쟁 보복과 최근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은 이런 한중관계의 본질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외교에서 균형자 역할은 무엇보다 군사적 균형을 강제할 수 있는 강대국의 몫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세력균형(Balance of Power)’ 외교를 펼쳤던 영국이 그랬다. 그런 의지와 능력도 없는 나라가 하려 한다면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다. 줄타기는 자칫 추락으로 이어진다. 무엇보다 균형 외교를 하려면 동맹 관계가 없어야 한다. 당시 영국이 그랬듯이. 동맹을 맺고도 균형 외교를 추구하는 것은 동맹 상대방에 대한 배신 행위다. 동맹은 중립적일 수 없다. 일각에선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되, 외교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우리처럼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는 나라에서 외교와 안보를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길은 세 가지다. ①한미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든지 ②동맹을 파기하고 미중 사이에서 균형외교를 하든지 ③한미동맹 대신 한중동맹을 맺는 길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갈 길은 자명해진다. ①이 아니라 ②, ③을 선택한다면 우리가 중국으로부터 얻는 것보다 미국으로부터 잃는 것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데 이견을 달 전문가는 거의 없다. 13일 중국을 방문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동맹이란 반석 위에 자리 잡고 앉아 남의 집이나 기웃거린 전임자의 실패를 반복해선 안 된다. 중국은 무차별 사드 보복을 가하고도 모자라 주권침해 소지가 있는 ‘3불(不)’까지 강요한다. 이는 한국을 한미일 삼각 고리 중 가장 약한 고리로 보고 흔들겠다는 뜻이다. 중국이 한국을 이해관계에 따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나라로 보는데, 우리만 미중 사이에서 배회한다면 결국은 미국도 중국도 다 잃게 될 것이다.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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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주한미군 없는 나라에 살 준비 됐나

    북핵과 미사일 위기는 어디로 갈까? 그렇게 복잡할 것은 없다. 경우의 수를 따져보면 된다. 첫째, 북한이 미국 영토나 근해에 핵탄두를 장착한 미사일을 날리는 경우. 김정은이 미치지 않고서야 가능성 제로다. 미국이 미사일을 요격해서 피해를 보지 않는다고 해도 김정은은 정권은 물론이고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 미국이 자국을 직접 공격한 정권이나 지도자를 살려둘 리 없다. 김정은은 당연히 미치광이가 아니다. 독재자이지만 비범한 데가 있다고 나는 본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토록 미국의 관심을 끌려고 애썼지만, 미국은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을 제1의 국가과제로 삼게 된 건 북한이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놀라운 속도로 미국을 위협할 기술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제재 국면에서도 경제사정은 오히려 선대(先代)보다 나아졌다. 미국을 공격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할 김정은이 아니다. 둘째,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시설을 선제타격하는 경우다. 여기서 질문 하나. 북한이 공격을 받으면 핵미사일로 한국이나 주일(駐日) 미군기지, 미국 본토에 보복 공격을 할까?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게 대다수 인식이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북한이 보복 공격을 하는 순간 전면전이고, 역시 김정은 정권과 그의 생명은 끝난다. 김정은은 보복 공격 단추를 누르기 전에 절멸(絶滅)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할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주한 미국인 소개(疏開) 등의 징후 없이 북한을 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의 선제타격 징후는 한국의 엄청난 반대에 부닥칠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에선. 정권 초에는 북한에 유화책을 썼으나 나중에 강경해진 김영삼 정부도 정작 빌 클린턴 정부가 북폭(北爆)을 검토하자 한사코 막았다. 미국으로선 공격을 받은 것도 아닌데, 선제타격을 하는 것은 너무나 외교적 부담이 큰 선택지다. 셋째, 대북 압박으로 김정은이 핵을 포기토록 하는 방법이다. 미국이 현재 쓰는 방식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 정도의 압박으론 전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국은 아직도 이란 핵 문제를 해결할 때 썼던 전면적인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 즉 합법이든 불법이든 북한과 거래하는 모든 국가 기관 기업에 무차별 제재를 가하는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이란과 달리 대북 거래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국과의 외교·경제적 전면전을 감수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사실 미국이 작심만 한다면 중국이 대북 송유관을 잠그도록 밀어붙일 복안은 있다. 중국의 제1국익이 걸린 대만 문제를 건드린다면 중국도 움직일 것이다. 중국 국익에 북한의 현상유지가 중요하다고 해도 대만 문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이 역시 미국이 중국과의 일전을 각오해야 꺼낼 수 있는 카드다. 무력 해상봉쇄 같은 군사적 압박 카드도 남아 있다. 흔히들 군사적 압박을 전쟁의 일환으로 보는데, 그렇지 않다. 군사적 압박도 외교의 방편이다. 압박을 최고조로 높여야 유리한 조건에서 협상할 수 있다. 하지만 군사적 압박이든, 외교·경제적 압박이든 압박만으로 김정은이 다 만들어 놓은 수소폭탄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기할 것이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넷째, 이도저도 안 된다면 미-북 직접 협상이 남는다. 이 경우 두 가지 시나리오가 가능하다. 하나는 미국이 인도나 파키스탄처럼 북한이 핵을 갖는 것은 사실상 용인하고 ICBM 폐기를 관철하는 방식이다. 북이 ICBM을 폐기하면 북핵이 미국을 직접 위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국 일본은 핵보유국 북한을 이고 살아야 한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협상을 통해 북핵과 ICBM 폐기를 모두 관철하려 할 경우다. 그러려면 미국도 북한에 그에 상응하는 카드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 카드는 주한미군 철수를 빼곤 생각하기 어렵다. 미국이 과연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느냐고? 당연히 그럴 수 있다. 주한미군은 냉전 시절 서방세계 방어의 최전선이었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미가 컸다. 그러나 지금은 주일미군만으로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수행하는 데 지장이 없다. 주한미군 철수 카드를 쓸까 말까 고민하는 선택의 순간, 미국 최고 수뇌부는 이렇게 자문(自問)할 것이다. ‘과연 대한민국은 미합중국에 어떤 동맹인가?’ 앞으로 우리 국민과 정부가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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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몰론 라베’

    스파르타엔 ‘스파르타’가 없었다. 지난달 말 찾아간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깊숙이 자리한 스파르타는 지방 소도시에 불과했다. 이른 저녁이었지만 불 꺼진 거리는 한산했고, 손바닥만 한 도심에만 주말을 즐기러 나온 젊은이들이 눈에 띄었다. 어디를 봐도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와 패권을 다퉜던 도시국가의 영광, 영화 ‘300’이 웅변한 전사(戰士) 나라의 자취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에 찾은 고대 유적지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사학자들이 왔다가 ‘여기가 과거 스파르타 맞아?’라고 실망한다는 곳이 됐을까. 고대 스파르타는 아이들도 병영생활로 키우고 살인까지 요구하는 성인식을 거칠 정도로 지나치게 무(武)를 숭상했다. 일체의 기록이나 문화를 사치로 여겨 별로 남길 것이 없었다는 설명을 들었지만, 허전하긴 매일반. 유적지 앞에 세워진 ‘300’의 주인공 레오니다스 왕의 동상조차 다소 뜬금없어 보일 정도였다. 동상 기단부에는 그리스어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몰론 라베(Molon Labe)’. 기원전 480년 8월 레오니다스가 지휘하는 그리스 연합군 1만 명은 테르모필레에서 20만 명의 페르시아 대군과 맞닥뜨렸다. 1만 명이라고는 하지만 보조병력이 대부분이었고, 전사로 키워진 스파르타의 300명이 정예군이었다.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왕은 가소로운 병력으로 막아서는 그리스 진영에 이렇게 전했다. “무기를 거두면 돌아가도 좋다.” 페르시아 사절을 맞은 레오니다스의 답변. “몰론 라베(와서 가져가라).” 역사적인 테르모필레 전투의 결과는 영화에 표현된 그대로다. 왼쪽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산, 오른쪽으로는 바다로 떨어지는 낭떠러지의 협로(峽路)에서 대군을 맞은 그리스 전사들은 페르시아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전멸했다. 에피알테스라는 그리스인이 크세르크세스 왕에게 산을 돌아 레오니다스 진영의 배후를 칠 수 있는 샛길을 알려줬다. 포위공격을 당한 그리스군은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에피알테스는 오늘날 그리스어로 ‘악몽’이라는 뜻. 배신자의 오명(汚名)은 2500년이 돼도 선명하게 남았다. 테르모필레 전투의 현장은 애써 찾지 않으면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방치됐다. 도로 옆에 조그맣게 마련된 게시판과 레오니다스 동상만이 동서양이 쟁패(爭覇)했던 그날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우선 지형부터 확 달라졌다. 바다로 떨어지던 절벽은 2500년이 지나면서 육지화돼 해안선이 몇 km나 바다 쪽으로 전진했다. 전장은 더 이상 협로가 아니라 평원이었다. 스파르타든 테르모필레든 나 같은 한국인도 애써 찾을 정도의 역사 현장이 방치된 것은 오늘날 그리스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듯했다. 국가 부도를 맞은 그리스의 관광수입 대부분이 부채를 갚는 데 쓰인다고 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입장료도 채권국 독일로 간다는 게 현지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다시 고대로 돌아가면, 테르모필레 전투는 개전 초 페르시아의 예봉과 전의(戰意)를 꺾고 도시국가 연합인 그리스를 단결시켰다. 이 점에서 2차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견인차였다. 거기서 승기를 잡은 그리스가 페르시아를 패퇴시킨 것이 그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 당시 그리스 안에도 ‘흙과 물을 바쳐 충성맹세를 하라’는 페르시아에 굴복하려는 기류가 팽배했다. 이를 설득해 전의를 다지고 해전을 승리로 이끈 또 다른 영웅이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였다. 늘 그렇듯, 역사는 해피엔드로만 끝나지 않는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아테네 중우(衆愚)정치의 대명사인 도편추방의 희생자가 돼 그리스 전역을 전전하게 된다. 결국 적국 페르시아에 몸을 의탁하는 처지로 전락해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기원전 490년 1차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끈 밀티아데스에게 닥친 운명도 비슷했다. 밀티아데스는 “우리 자식을 페르시아의 노예로 만들 거냐”는 사자후로 두려움에 떠는 아테네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마라톤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그런 밀티아데스도 정적들의 고발로 막대한 벌금형을 선고받아 죄인으로 죽었다. 2500년 전 서양의 일이지만, 사람 사는 세상의 이치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 안에도 페르시아의 무력에 떨었던 그리스인들처럼 “그럼 전쟁하자는 거냐”며 공포를 부추기는 지도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주권국가로서의 당당한 결의를 다지는 목소리는 미미하다. 국내 정치적으로도 포퓰리즘과 중우정치가 만연돼 토사구팽(兎死狗烹)과 정치보복의 칼춤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스는 민주주의 발상지이자 고대 세계의 최고 선진국이었다. 그런 나라가 이후 2000년 동안 국가도 없이 헤매다 오늘날 빚더미에 허덕이는 현실은 남의 얘기로만 치부할 수 없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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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칼은 찌르되 비틀지 말라

    전두환 정권 말기에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 블랙모어가 방한했다. 그런데 전 대통령이 덜컥 블랙모어 과장을 만나겠다고 한 것이다. 한국 대통령과 미 국무부 일개 과장의 ‘잘못된 만남’은 결국 성사됐다. 그만큼 한국이 미국이라면 껌뻑 죽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4·13 호헌 조치로 미국의 ‘민주화 압박’에 직면한 전 대통령으로선 미국의 지지가 절실했기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과장을 만나고 나니, 정부와 국회의 요인들이 블랙모어를 만나려고 줄을 섰다. 외교 의전을 아는 외무부에선 국장이 만나려고 했으나 “대통령을 능멸하는 거냐”는 ‘상부’의 압박에 결국 차관이 만나야 했다. 돌아보면 얼굴이 후끈할 정도의 과공(過恭)이요, 사대주의다. 지금이야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크게 나아진 것도 없다. 국무총리를 지낸 주미대사가 미 국무부의 동아태차관보 정도를 만난다. 중국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그것이 우리의 능력과 처지를 반영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대통령과 과장의 만남은 너무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분명한 교훈 한 가지. 위 단추를 잘못 채우면 아래 단추까지 계속 잘못 채우게 된다는 것이다. 촛불집회 1주년이 지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덕을 크게 봤지만, 얼떨결에 집권한 것은 아니다. 2012년과 올해 대선 캠프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2012년에 집권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나았다. 그만큼 준비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선 패배 1년 후부터는 대선뿐 아니라 집권도 준비했다는 것이다. 집권 이후 시나리오와 국정 운영 프로그램을 점검했다고 한다. 대통령직 인수 기간도 거치지 않은 문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숨 가쁘게 정책을 쏟아내고 각종 화두를 던진 것은 오랜 준비의 결과였다. ‘적폐청산’ 구호나 검찰 국가정보원 개혁 프로그램도 급조된 것이 아니라 수년간 묵히면서 논의를 진전시켜 온 데 따른 것이다. 서훈 국정원장이 국내 정보 파트의 핵심 부서인 정보보안국과 정보분석국을 폐지한 것도 이미 준비된 개혁 프로그램에 들어 있었다. 남북관계와 관련해선 가능한 한 연내에, 안 되면 집권 1년 내에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2007년의 10·4선언을 복원하고 임기 내 한반도 평화체제를 정착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반년이 다 된 지금, 뭔가 첫 단추부터 잘못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선 남북관계부터 예상과는 크게 빗나갔다. 서른세 살의 김정은은 놀라운 속도로 수소폭탄을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완성 단계에 다다랐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압박 국면에 한국만 발을 빼기 어려운 상황이다. 더구나 김정은은 문 대통령을 대화 상대로 쳐다보지도 않는다. 이대로라면 김정은은 핵보유국의 자격으로 미국과 ‘빅딜’을 한 뒤 돈이 필요하면 남쪽을 바라볼 것이다. 외부의 큰 그림이 깨지면서 문 대통령은 내부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여권에서도 걱정이 나올 정도로 ‘적폐청산’에 집착하는 것은 조급증의 발로는 아닐까. 문제는 대통령이 이렇게 위 단추를 채우면서 아래 단추들이 계속 잘못 채워지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윗사람의 집착은 아랫사람에게 엄청난 압력으로 작용하고, 때론 ‘오버’로 나타난다. 급기야 문 대통령의 ‘잘 드는 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의 입에서 이명박(MB) 전 대통령 실소유주 논란이 있는 자동차부품업체 다스의 실제 소유주가 누군지 확인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대선도 아니고 지지난 대선, 10년 전 쟁점까지 까뒤집겠다는 건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정치 보복’ 이외의 다른 표현을 찾을 수 없다. 다시 말해 현 여권 내에 윤석열의 오버를 제어할 만한 정치의 순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특수 수사의 대부로 일컬어지는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은 “칼은 찌르되 비틀지 말라”는 말을 남겼다. 수사를 하더라도 불필요한 인격 모독이나 압박용 계좌추적, 별건(別件)수사 등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MB 청와대와 국정원의 여론 조작은 수사하되, 그 종착역을 ‘MB 욕보이기’로 정해 놓고 몰아가선 안 된다. 단추를 잘못 채웠을 땐 풀고 위 단추부터 고쳐 채우는 방법밖에 없다. 문 대통령부터 과거를 향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아래 단추들은 저절로 바르게 채워질 것이다. 지난해 이맘때 촛불이 타오르며 하야 요구가 들끓었지만 결국 헌정질서와 법치주의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다. 그리고 촛불의 선택은 문재인이었다. 질서 있었기에 힘 있었던 촛불은 누구를 공격하기 위한 횃불과는 달랐다는 점을 문 대통령이 기억했으면 한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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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분노를 國政의 불쏘시개로 삼지 말라

    직접민주주의와 관련해 흔히들 하는 착각 또는 오해가 있다. ‘대중이 직접 정치적 의사결정을 하는 직접민주주의가 최고의 정치체제다. 하지만 국가의 규모가 커지면서 모든 국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代議) 기관이 민의(民意)를 반영하는 간접민주주의, 즉 대의민주주의가 나온 것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전제부터 잘못됐다. 민주주의의 이상향처럼 여겨지곤 했던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 시절부터 직접민주주의는 실패한 정치체제임이 판명된다.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포퓰리즘을 불렀고 결국 중우(衆愚) 정치로 타락했다. 그리스의 맹주였던 아테네가 지중해 패권을 로마에 뺏기고 몰락한 주원인이 직접민주주의 때문이었다는 것이 사가(史家)들의 평가다. 로마가 그리스 전성기에 원로원 의원 3명의 ‘신사유람단’을 보내고도 결코 따라 배우지 않은 것이 직접민주주의였다. 플라톤이 저서 ‘국가’에서 철인왕을 우두머리로 하는 수호자 집단이 다스리는 과두정(寡頭政)을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제시한 것도 직접민주주의 폐해를 봤기 때문이다. 뒤에는 저서 ‘법률’에서 한 사람과 소수와 다수의 권력이 균형을 이루는 혼합정체(政體)가 이상적이라고 했다. 그리스 로마사에 정통한 미국의 칼 J 리처드 교수에 따르면 플라톤의 혼합정체론은 미국의 정치체제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은 신생 미국에 이상적인 정치체제가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이들은 헌법제정회의에서 플라톤의 혼합정체론을 다듬은 제자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론하며 한 사람(대통령)과 소수의 대표자(상원), 그리고 다수의 대표자(하원)가 권력의 균형을 이루는 혼합정체를 도입했다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강한 집착이 걱정스럽다. 문 대통령부터 새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직접민주주의가 정부의 주요 국정운영 기조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문 대통령은 정권인수위원회 격인 국민인수위원회의 대국민 보고회에서 ‘국민은 간접민주주의를 한 결과 우리 정치가 낙오되고 낙후됐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을 차용해 직접민주주의에 애착을 드러낸 대통령은 그 대표적 사례로 촛불집회를 들었다. 촛불에 힘입어 집권한 대통령의 인식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국정을 언제까지나 촛불식으로 운영할 순 없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12일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세월호 사고 당일 대통령에게 보고한 시간은 물론이고 법령까지도 조작했다고 발표했다. 많은 국민이 그날 박 전 대통령의 행적에 개탄하거나 분노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 여부 결정이 임박한 상황에서 오해 소지가 충분한 발표였다. 여권 관계자는 “자료가 전날 발견돼 당일 아침 회의에 보고됐다. 사심 없이 있는 그대로를 국민께 알리라는 것이 대통령의 뜻이었다”며 정치적 계산이 일절 없었음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해도 ‘국정의 사실상 2인자’로 불리는 대통령비서실장이 큰일이라도 난 듯 마이크를 잡을 일은 아니었다.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분노의 정치’를 키워서는 곤란하다. 여권 내에서 원세훈 국정원이 선거 민심을 조작하려 한 데 대해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사과라도 해야 넘어갈 수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MB가 사과할 리 없는 데다 전직 대통령이 감옥에 있는 터에 전전(前前) 대통령까지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을 봐야 하는가. 한국 정치의 황폐화를 부추길 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MB에게 분노한다고 그들의 분노를 국정의 불쏘시개로 삼아선 안 된다. 물론 직접민주주의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금 청와대 홈페이지에선 방위사업청의 결정을 재고하라는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다. 작년 7월 차세대 군단급 정찰용 무인기 1대가 시험비행 도중 추락했다. 방위사업청은 이 무인기를 개발한 국방과학연구소(ADD) 비행제어팀 연구원 5명에게 무인기 가격 67억 원을 배상하라고 통보했다. 연구원들의 과실이 있다고 해도 무인기를 팔아 금전적 이득을 취한 것도 아닌데, 1인당 13억 원씩 물어내라고 한 것은 가혹하다. 이런 국민청원이야말로 간접민주주의의 허점을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의 미덕이다. 문제는 권력이 필요에 따라서 직접민주주의를 손 안 대고 코 푸는 정치적 수단으로 차용하는 것이다. ‘촛불 잔치’는 끝났고, 문재인 정부도 반년이 다 됐다. 잔치가 끝나면 계산서가 날아온다. 그 계산서는 박근혜 정권에 분노한 민심이 새 정부 출범에 환호하며 ‘처갓집 말뚝’까지 예뻐 보이던 허니문 때와는 분명 다를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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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중국, 우방 키워야 大國이다

    대륙의 스케일은 달랐다. 예부터 실크로드의 관문이었던 중국 서쪽의 변경도시 둔황(敦煌). 이 사막의 오아시스 도시 근교에는 서울의 세종문화회관만 한 공연장과 컨벤션센터, 전시장, 아파트 등이 속속 들어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 변방 사막도시에 저 건물들을 채울 만한 사람이 몰려들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가 지난달 하순 개최한 ‘2017 일대일로(一帶一路) 미디어 협력 포럼’에는 세계 120여 개국에서 언론인 300여 명이 참석했다. 일대일로의 일대(One Belt)는 중국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뻗는 육상 실크로드를, 일로(One Road)는 동남아를 경유해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해양 실크로드를 뜻한다. 시진핑 주석이 2013년 주창한 일대일로는 중국의 균형발전 전략인 동시에 세계로 뻗어나가기 위한 확장 전략이다. 시 주석의 숙원사업이자 국가 목표인 일대일로에 중국 당국은 천문학적인 돈과 인력을 쏟아붓고 있다. 그 거점도시의 하나인 둔황에서 열린 이번 포럼은 행사 규모와 프로그램 등 외형(外形)은 분명 대국다웠다. 그러나 자발적 참여를 저해하는 관(官) 주도의 진행 방식은 갑자기 커진 몸집을 못 따라가는 내실(內實)을 드러내는 듯했다. 오랜만에 베이징과 상하이 같은 중국 대도시를 방문한 사람은 빽빽이 들어선 놀라운 사이즈와 참신한 디자인의 고층건물에 놀란다. 그러나 빌딩 내부의 화장실 등 구석구석의 마감은 아직 어설프다. 하드웨어로는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G2지만 소프트웨어는 따라가지 못하는 중국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그렇다고 중국이 아직 멀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한국 사람들이 중국의 열악한 환경에 일종의 자부심(?)을 느끼며 달러 자랑을 하던 때가 불과 20년도 안 됐다. 지금 중국에선 똑똑하고 음식 잘한다는 한국 여성, 심지어 백인 원어민 여성을 가정부로 쓰는 부자들도 늘고 있다. 과거 많은 이민족을 동화시켰듯, 중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의 첨단기술과 노하우를 중국화(中國化)하는 방식으로 중국 시장은 이미 숱한 다국적기업의 무덤이 되고 있다. 한국에선 규제 때문에 설 자리를 못 찾은 우버도 이미 편리한 중국판 우버로 대체됐다. 그럼에도 중국에서 만난 많은 언론인과 기업 관계자, 심지어 중국인들 자신도 중국이 미국에 도전할 날은 아직 멀었다고 입을 모았다. 2016년 중국의 국방예산은 1928억 달러로 미국(6171억 달러)의 3분의 1 수준이다. 그동안 축적해온 국방력을 감안할 때 중국의 전쟁수행능력은 미국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지만 이런 완력보다 심각한 것이 인구 문제다. 미국은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중국의 생산가능인구는 한국보다도 2년 앞선 2015년부터 감소세로 접어들었다. 같은 해 기준 중국의 독신자는 2억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중국도 한국처럼 아이를 낳지 않을뿐더러 결혼 자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을 맞고 있다. 최근 중국 젊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최고 신랑감의 조건으로 ‘본인 능력’보다 ‘부모 재산’을 꼽았다. 돈이 없어 결혼 못 하는 처지는 한국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의 또 다른 치명적 약점은 우방(友邦)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중국의 국경선은 2만2457km로 지구 둘레의 반을 넘는다. 기나긴 국경선에 14개국과 맞대고 있지만, 거의 모든 나라와 국경 분쟁을 비롯해 크고 작은 갈등을 겪고 있다. 한국에도 비이성적이고 무차별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친구를 잃어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인접한 캐나다와 멕시코는 물론 영국과 한국 일본 등 유럽과 아시아에 수많은 우방을 키워왔다. 만에 하나 미국과 중국이 격돌하는 상황이 온다면 세계가 어느 편을 들지는 안 봐도 훤하다. 따라서 우리 사회 일각에서 나오는 ‘중국의 미국 대체론’은 공허하다 못해 위험하다. 반미(反美) 정서에 휩싸여 국제정세 판단을 그르친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 중국이 한국을 의식하는 것도 다분히 한미동맹 때문이고 한국과 미국이 멀어진다면 중국이 보는 한국의 전략적 가치는 크게 떨어진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귀국하는 날, 공항으로 가는 차에 한국에서 근무하는 중국의 젊은 여성 외교관과 동승했다. 그는 “한국과 중국은 기나긴 역사적 문화적 공감대를 갖고 있다. 지금의 한중 갈등은 그 장구한 시간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하다. 두 나라가 머지않아 갈등을 극복하고 함께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중국의 물리적 보복보다 이런 젊은이들이 훨씬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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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文대통령의 4계명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개발은 체제의 안정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서 귀를 의심했다. 이 발언은 2004년 11월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미국 방문 중 파문을 일으켰던 발언과 사실상 같다. 노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해 ‘핵과 미사일이 자위 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에 일리 있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사전에 발표문을 알게 된 당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윤병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장은 누구보다 발언의 폭발력을 잘 알았다. 심지어 ‘자주파’로 불리는 NSC 관계자도 파장을 우려했다. 하지만 주위의 만류를 물리치고 노 대통령은 소신대로 하고야 말았다. 13년이 지난 뒤 문 대통령의 발언에 파문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이 발언한 때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기도 전이었다. 그때는 북한의 핵 개발 의도가 초미의 관심이었지만, 이미 핵보유국 문턱을 넘어선 터에 개발 의도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아직은 문 대통령 지지율이 높은 임기 초인 데다 이미 북핵과 남북관계에 대해 너무나 많은 얘기를 쏟아내 묻혀버린 측면도 있다. 비단 북한 문제뿐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취임 4개월여 만에 경제·사회 전반에 수많은 정책과 어젠다를 던져 밀어붙이고 있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이용해 사회 전반의 이른바 ‘주류세력 교체’도 착착 진행하고 있다. 서두른다는 감을 주지만, 노무현의 실패와 비극적 최후를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본 문 대통령은 알 것이다. 5년 단임 대통령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돌아보면 민주화 이후 역대 대통령 누구 할 것 없이 엄청난 박수와 환호 속에 당선돼 일이 손에 잡힐 만하면 여소야대든, 여대야소든 국회에 발목이 잡혀 휘청거리다 막판에는 가족 또는 측근 비리, 심지어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본인 비리로 불행한 결말을 맞았다. 주술(呪術)이라도 걸린 듯 비슷한 길을 걸었다. 그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전직들의 실패를 들여다봐야 한다. 측근 비리 같은 주변의 실패는 걷어내고 본인의 가장 큰 실패를 살펴보자. 김영삼은 외환위기를 불렀고, 김대중은 햇볕정책의 ‘대북 퍼주기’로 북핵 개발의 토양을 제공했다. 노무현은 편 가르기와 이념 갈등, 이명박은 양극화 심화를 들 수 있다. 박근혜는 제왕적 국정 운영과 인사 실패다. 다시 요약하면 안보와 경제의 정책 실패, 국민 통합 실패, 자기 관리와 인사 실패로 정리된다. 따라서 문 대통령은 첫째, 안보 실패의 덫을 피해야 한다. 전직들의 실패가 응축된 탓이기도 하지만, 안보 실패의 폭탄은 자칫 문 대통령 임기에 터질 가능성이 있다. 이를 방지하려면 전술핵이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든, 공격무기든 방어무기든 우리의 무기 곳간을 든든히 채워 북과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게 급선무다. 무기가 실제 효과가 없다느니, 주변국의 반발을 부른다느니 하는 말은 야당 지도자면 몰라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진 군 통수권자의 언어는 아니다. ‘대화와 제재의 병행’이라는 현 시점과 맞지 않는 옷도 벗어던져야 한다. 국민도 북한과 대화를 원하지만 두들겨 맞을까 봐 벌벌 떨며 하는 대화는 바라지 않는다. 전쟁이 두렵지만 인질이 될 생각은 없다. 둘째, 경제는 두말이 필요 없다. ‘양극화 해소’니 뭐니 아무리 분식(粉飾)하고 포장해도 국민들은 경제가 좋은지 나쁜지 피부로 느낀다. 당장의 복지가 달콤하지만, 지속 가능한 복지가 되려면 성장이 뒤따라야 한다. 공공 일자리를 늘려봐야 일부 또는 한시적 혜택이라는 걸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민간의 고용 창출 능력을 키워줘야 지속 가능한 양질의 일자리가 양산(量産)될 것이다. 셋째, 문재인 정부의 편 가르기는 벌써 위험신호를 울리고 있다. 정권을 잡았으니 ‘코드 인사’를 하는 건 다소 용인한다고 치자. 하지만 전임 박근혜 정부를 넘어 이명박(MB) 정부에까지 보복의 칼을 겨누는 것은 상궤를 벗어난다. MB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믿는 친노(친노무현)의 구원(舊怨)은 안다. 그래도 또 한 명의 불행한 대통령을 만들려는 것은 국격(國格)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넷째, 이 모든 걸 잘 해내도 집권 3년 차부터 스멀스멀 찾아오는 필연적 레임덕은 대통령을 실패로 몰아간다. 권력구조를 바꿀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대로라면 대통령이 약속한 내년 6월 개헌은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될 것이다. 문 대통령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도 개헌은 반드시 필요하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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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김정은, 어떻게 核장착 ICBM 갖게 됐나

    “여기서 서울은 멀지 않다. 전쟁이 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되고 말 것이다. 송 선생 당신도 살아남지 못해!” 지금이야 북한이 툭하면 퍼붓는 ‘서울 불바다’ 발언의 연원은 1994년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북 특사 교환을 위한 판문점 실무접촉에 나온 북측 박영수 단장이 남측 송영대 대표에게 쏘아붙인 말이다. 현장 취재 중이던 나는 그날따라 북측 기자들의 공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조선중앙통신 기자는 거만한 표정으로 내게 “우리가 서울을 점령하면 박 선생은 내가 특별히 봐주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가소로웠다. 당시 남북한은 경제력은 물론이고 군사력에서도 확연한 격차가 있었다. 북한엔 핵무기가 없었고, 장거리 미사일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었다. 첨단 주한미군을 기반으로 한 한미 합동전력이 압도적 우위였다. 그러나 지금 북측의 ‘서울 불바다’ 협박은 그때와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미국 본토 불바다’ 발언에 세계 최강 미국마저 위협을 느낄 정도다. 어제는 ‘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이라는, 사상 최대 규모의 6차 핵실험까지 감행했다. 지난 20여 년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자, 여기서 눈을 잠깐 경제로 돌려보자. 산업과 기술 혁신 분야에서 화제가 된 책 ‘축적의 시간’은 한국의 산업 경쟁력이 한계에 다다른 이유를 ‘개념설계 역량 부족’이라고 진단한다. 개념설계 역량이란 산업 기술에서 창의적이고 근본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는 역량을 말한다. 그런데 이 역량은 교과서나 논문에서는 배울 수 없고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거쳐 습득한 지식과 노하우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산업화 역사가 오래된 선진국들은 긴 시간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이 역량을 축적해왔다. 그런데 산업화 역사가 일천한데도 광대한 공간의 장점을 이용해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념설계 역량을 축적하는 나라가 있다. 중국이다. 중국은 2016년까지 1만9000km 이상의 고속철을 자국 내에 부설했다. 단연 전 세계에서 가장 길다. 대형 참사를 비롯해 많은 사고가 잇따랐지만, 그 실패를 통해 압축적으로 배웠다. 그것이 2015년 선진국을 물리치고 샌프란시스코 고속철 사업을 수주하는 결과로 나타났다.(이정동의 ‘축적의 길’)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자. 핵과 미사일 개발 역사가 짧을뿐더러 중국처럼 공간도 넓지 않은 세계 최빈국 수준의 북한이 어떻게 소형화한 핵탄두를 장착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을까. 그 비결은 ‘실패의 축적’이라고 나는 본다. 북한의 독재 3대는 핵 미사일 개발을 국가의 제1 목표로 삼고 대를 이어가며 내부 역량을 총동원했다. 그 결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개발 시간을 압축했다.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북한은 철저하게 자기 시간표대로 핵과 미사일을 개발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과 비핵화 협상을 하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든 내부적으로는 개발 시간표를 지켜 왔다는 것이다. 외부에는 “비핵화는 김일성 수령의 유훈(遺訓)”이라고 떠들면서도 내부적으로 핵 미사일을 만지작거려온 것이다. 목표 달성 시점이 되니, 이제는 그 얘기마저 쏙 들어갔다. 과거 미사일 실험을 ‘평화적인 인공위성 발사’라고 하던 주장이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이 그러는 사이 우리의 과거 정권은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북한 같은 나라가 어떻게 ICBM을 개발할 수 있겠느냐’는 편의적 낙관론(wishful thinking)에 빠져 보고 싶은 것만 봐 왔다. 2012년에도 북한의 장거리 로켓 파편을 회수해 분석했지만 ICBM 개발을 먼 얘기로 치부했다. 북한의 실패만 보고, ‘실패를 통한 축적’에는 눈을 감아 버린 것이다. 1983년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을 시작하자 일본 미쓰비시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 사업에서 성공할 수 없는 5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냈다. 보고 싶은 것만 본 탓에 오늘날 세계 1위에 오른 삼성 반도체의 미래를 상상조차 못한 것이다. 지금도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은 확보하지 못했을 것이란 관측이 있다. 그러나 곧 확보하거나, 아니 이미 확보했을 수도 있다. 국가의 역량을 쏟아 부어 ‘한 놈만 패는’ 데는 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북한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편의적 낙관론’이 과거 정권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는 데 있다. 대화로 북핵·미사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냉엄한 현실을 한쪽 눈만 뜨고 보는 것은 아닌가. 남쪽이 그러거나 말거나 어제도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무섭게 축적했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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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세상을 바꾸겠다”는 文대통령

    이제야 말한다.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나는 민주당 김대중(DJ) 후보에게 투표했다. 민주자유당 김영삼(YS) 후보가 당선된 12월 18일, 밤새 통음했다. 3당 합당이라는 ‘야합(野合)’이 낳은 정당의 후보가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때 내 나이 30대 초반. 이제는 안다. 그 대선에서 DJ보다는 YS가 당선된 것이 역사의 순리(順理)였음을. YS는 임기 말 외환위기 탓에 낙인이 찍혔지만, 대한민국을 군부 쿠데타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 이 땅에 민주주의의 초석을 깔았다. 김영삼 대통령이 없었다면 김대중 대통령도 없었고, 당연히 노무현 대통령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길지 않은 우리의 대통령사(史)에서 누구누구만 없었다면 나라가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 일이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수준은 민도(民度)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자조(自嘲)하는 게 아니다. 국민의식이 단계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그에 걸맞은 대통령을 선택했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조금씩 발전해 왔다. 지금 박근혜 전 대통령은 로마의 ‘기록 말살형’처럼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대통령이 된 듯하다. 하지만 그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룬 산업화 시대의 명암(明暗) 가운데 어두운 유산을 털고 제왕적 대통령의 종언(終焉)을 고했다는 점에서 시대적 의미가 있다고 나는 본다. 어떤 대통령의 시대건 좋든 싫든 그 자체로 역사다. 이 당연한 진리를 권력자들만 모르는 것일까. 새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전임 또는 과거 정권을 부정하고, 심지어 역사에서 지우려는 시도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시도는 실패하게 돼 있다. 역사는 지우거나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문화계의 판을 바꾸고 국정 교과서까지 만들어 역사관을 ‘정리’하려 했지만 결과는 어떤가.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주자 때 “세상을 바꾸고 싶다”며 “대통령이 되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수단”이란 말을 자주 했다. 노무현을 ‘실패한 대통령’으로 만든 세력, 바로 그 세력이 득세했다는 보수정권 9년을 부정하는 의식의 발로다. 더 멀리는 자신이 표현한 대로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 뒤집힌 역사’를 바로잡고 싶다는 의지의 표출이다. 그는 1월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친일과 독재, 사이비 보수 세력을 청산하는 것이야말로 혁명의 완성’이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이 과거사를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의 뿌리가 친일 문제에 닿아 있다는 점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다. 아니, 1980년대 해전사(해방전후사의 인식)류의 운동권 시각이 그 진정한 뿌리다. 다른 사람도 아닌 대통령이 70년도 넘은 과거에 천착해 우리 역사를 부인하고 바꾸려는 것은 걱정스럽다. 이런 대통령의 인식이 정부기관마다 진보좌파 일색인 개혁위원회,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적폐청산’이란 이름의 과거 뒤집기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세상을 바꾸고 싶어 했다. 임기 말에는 장황한 ‘역사 강의’를 즐겼다. “세종은 성군이었지만 세상을 바꾸지 못했다”며 “조선 500년을 지배한 혁명을 성공시킨 사람은 정도전이었다”는 말도 했다. 노무현과 문재인 두 사람 모두에게 정치를 하는 목적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문 대통령이 대담집에서 말한 ‘혁명의 완성’이다. 촛불집회는 철저하게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졌고, 그래서 더 값진 결과를 얻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기존의 법과 제도, 질서를 부정하는 혁명이란 단어를 붙여 ‘촛불혁명’으로 부른다. 촛불이 혁명이어야 세상을 바꾸는 명분이 되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을 바꾸는 것은 5년 집권하는 정권의 몫이라기보다는 전쟁이나 혁명, 혹은 종교의 영역에 가깝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세상을 바꾸려다가 실패했다. 누구보다 노무현의 실패를 가까이서 지켜본 문 대통령은 훨씬 더 정교하고 조직적으로 이를 해 나가려 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에게 5년의 권력을 위임한 국민이 바라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게 아니라 내 삶이 더 낫게 바뀌는 것이다. 과거를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바뀌는 것이다. 무엇보다 적폐청산이든 뭐든 인위적으로 과거를 헤집어 뒤집으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우리 정치사의 교훈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권 핵심은 ‘하고 싶은 일’과 임기 내에 ‘할 수 있는 일’의 균형과 경중(輕重)을 따져보고, 어떻게 하면 그 시간 안에 국익과 국민행복을 최대로 키울지부터 깊이 고민하길 바란다.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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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문재인은 오너인가

    한명숙 전 국무총리(73)가 23일 석방된다. 한 전 총리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현금과 수표, 달러 등 9억 원을 받은 혐의로 2015년 8월 20일 대법원에서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300만 원의 형이 확정됐다. 나흘 뒤인 8월 24일부터 역대 총리 가운데 처음 수감생활을 시작했으니 만기 출소다. 출소를 앞둔 한 전 총리가 수감된 의정부교도소에 면회객이 쇄도하고 있다고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환경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뒤 이명박 정부에서 기소돼 박근혜 정부에서 수감된 한명숙. 친노(친노무현) 진영에서 ‘이명박근혜 보수정권’ 박해의 아이콘이다. 칠십 노구를 이끌고 징역 만기를 채웠으니 그 애틋함이 더 절절하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는 2013년 9월 16일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현직 국회의원인 점 등이 참작돼 법정구속되지 않았다. 그 후로도 수감될 때까지 임기의 절반가량인 1년 11개월 동안 19대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는 특혜를 누렸다. 실제 한명숙을 만나보면 온화한 얼굴에 차분한 말투로 전혀 투쟁적인 인상이 아니다. 그러나 진보좌파 진영에서 그가 갖는 상징성은 크다. 한명숙의 남편 박성준 전 성공회대 교수(77)는 통일혁명당 간첩 사건으로 1968년부터 13년간 형을 살았다. 한명숙이 박 전 교수로부터 사상의 세례를 받았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친노 원로로 한국 좌파의 명맥을 잇는 정통성(?)을 가진 데다 ‘감옥 계급장’까지 딴 한명숙이 진보좌파 진영에서 차지하는 몸값은 출소 후 상한가를 칠 것이다. 그러나 석방돼도 피선거권이 제한돼 복권(復權)을 받지 않는 한 10년 동안 선거 출마가 불가능하다. 2027년이면 그의 나이 83세.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이 머지않아 한 전 총리를 복권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한명숙을 복권시켜 준다 해도 문 대통령을 좌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눈보라 휘날리는 흥남부두에서 철수한 피란민의 자식이자 특전사 출신인 그는 태생적으로 좌파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그의 집권으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의심하는 좌파들의 활동공간이 넓어진 것은 사실이다. 이미 좌파 진영에선 대한민국을 폭력으로 전복하려고 선동했던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나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해 3년형을 받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양심수’로 둔갑했다. 공공연히 이들의 사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그런 오판은 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북한이 지난달 28일 밤 2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 도발을 감행하자 문 대통령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1개 포대의 나머지 발사대 4기의 추가 배치를 지시했다. 진보좌파는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반발이 나왔으나 정권 오너의 면목을 처음으로 보여준 순간이라고 나는 본다. 사실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친노가 얼굴로 내세운 ‘대선용 기획상품’이었다. 대선 뒤 4년여를 거치며 친문(친문재인) 세력이 성장했지만, 문 대통령이 이 정권의 진정한 오너냐는 물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너란 무엇인가. 단적으로 말하면 지지세력 내부의 반발에도 자기가 옳다고 믿는 일을 밀어붙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이 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 평택 주한미군기지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밀고 나간 노무현은 오너였다.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였으나 오너 출신은 아니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은 허약한 오너십을 보였다. 오너인 줄 알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에 놀아난 ‘가게무샤’였다. 문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밀린 숙제라도 하듯, 4대강 청산과 비정규직 및 최저임금 문제, 탈(脫)원전 등 진보좌파의 어젠다를 100대 과제니 뭐니 하면서 쏟아냈다. 오너라면 자신만의 변주(變奏)와 독주(獨奏)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보이질 않았다.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도 알레르기를 보이는 지지자와 군통수권자의 역할 사이에서 오락가락했다. 군왕무치(君王無恥)라고 했다. 국가통치와 국익을 위한 대통령의 변신은 무죄다. 사드 추가 배치를 언명(言明)했듯, 문 대통령은 훨씬 더 많은 분야에서 진보좌파의 합창과는 다른 독창을 할 필요가 있다. 기업에서 흔히 보듯 창업 2세는 창업자의 가신들을 쳐낸 뒤에야 비로소 명실상부한 오너가 된다. 필요하다면 친노일지라도 읍참마속(泣斬馬謖)해야 한다. 꼭 한명숙 사면 문제가 아니어도 좋다. 탈원전이든, 대북정책이든 문 대통령이 자신만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 더 많은 국민이 그를 이 정권의 진정한 오너로 믿고 힘을 보태줄 것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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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죽으나 사나 대통령만 바라보는 나라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이 된 뒤 개인차를 사려 했었다. 유엔에서 나오는 관용차는 있지만 사적인 일이나 부인 유순택 여사가 처리할 집안일에 쓸 요량이었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오랜 관료생활의 자기관리가 몸에 뱄기 때문. 그런데 웬걸, 당장 유엔 경호팀에서 반대하더란다. “개인차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정 개인차를 사고 싶으면 30만 달러(약 3억3500만 원)짜리 방탄차를 사라.” 결국 개인차를 포기한 반 전 총장이 철통경호에서 풀려난 것은 2월 1일 대선 출마 포기 선언 이후다. 지금도 요인 보호 차원에서 경찰 경호원이 있기는 하나 과거와는 비교가 안 된다. 2004년 외교통상부 장관이 돼 수행비서가 따라붙은 이후 올 1월까지 그에게 사생활이란 거의 없었다. “1980년 외무부 과장이 된 뒤 37년 만에 처음 부하 직원이 없는 삶에 적응하는 중”이라고 했다. 사생활이 없기는 한국 대통령도 결코 유엔 사무총장보다 덜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비교적 사적인 시간을 많이 가졌던 대통령은 극히 예외적인 사례다. 더구나 임기 초 대통령에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린다. 오죽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트위터의 야당 비판 글에 ‘좋아요’를 누른 것이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했을까.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처럼 트위터를 한다면 나라가 뒤집어질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에게 쏠린 국민적 관심을 무기로 다종·다양한 국정 어젠다를 밀어붙이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감사원에 4대강 정책감사 지시를 내렸는가 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탈(脫)원전, 반부패기관협의회 복원, 증세 등 하루가 멀다 하고 굵직한 이슈를 생산하고 관철시키려 한다. 대통령의 ‘올라운드 플레이’가 너무 두드러지는 바람에 대선 공약인 책임총리-책임장관제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문 대통령은 듣는다. 19일 야당 지도부와의 대화에서도 특유의 경청 능력이 돋보였다. 만기친람(萬機親覽)식 국정에도 거부감이 덜한 이유다. 상대편의 얘기를 경청하는 것만으로도 갈등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다는, 변호사 시절부터 터득한 지혜다. 필요하면 이견(異見)에 일단 수긍하는 방식으로 폭발성 있는 이슈의 김을 빼는 능력도 뛰어나다. 최저임금은 일단 1년 시행해보고 속도 조절 여부를 보겠다느니,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환경영향평가가 배치 번복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식이다. 문제는 문 대통령의 경청과 수긍이 입장 변화로 이어지는 일이 드물다는 점이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부터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까지 인사에 대한 숱한 비판이 야권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쏟아졌다. 그래도 대통령이 인사를 철회한 경우는 두서넛 손에 꼽을 정도다. 문 대통령은 대선주자 시절인 1월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자신과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공격에는 “정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스타일이 대통령이 돼서도 지속될까 봐 걱정이다. 문 대통령은 1기 내각 인선을 ‘대탕평’은커녕 ‘코드 인사’로 채워 넣다시피 했다. 그럼에도 인사에 대한 국민적 반감은 크지 않다. 그것이 문 대통령의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내가 옳다’는 식으로 외치면서 인사와 정책을 밀어붙여 국민적 저항에 부닥쳤다. 문 대통령은 이견을 경청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해야 할 인사와 정책은 놓치지 않고 밀고 나간다. 노무현 정권의 실패를 연구해 노 정권보다 훨씬 진화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앞장서는 국정운영 방식은 지지율이 높을 때나 가능하다. 일이 잘못되거나 지지율이 떨어지면 고스란히 ‘대통령 탓’으로 돌아갈 위험이 크다. 지금은 주홍글씨가 찍혀 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임기 초에는 문 대통령 못지않게 빛났다. 이제는 박 전 대통령 주변을 둘러싸고 입에 담기조차 민망한 얘기들이 각종 매체에까지 등장할 정도다. 국정을 농단하고 권력을 사유화한 그를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던 사람을 얼마나 더 끌어내려야 속이 시원하겠는가. 임기 초 용비어천가를 부르던 사람들도 임기 말엔 ‘모든 게 대통령 탓’을 하는 세태다. 조선 세종 시절 자기 토지를 억울하게 뺏긴 조원이란 사람이 있었다. 관에 소송을 걸었으나 수령이 제대로 처리해주지 않았다. 분한 마음에 “지금 임금이 착하지 못해 이 따위를 수령으로 임명했다”고 소리쳤다. 임금을 욕한 죄는 사형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처벌하지 못하게 했다. 세종 같은 성군(聖君)도 ‘임금 탓’을 들었다. 매사에 대통령만 바라보는 우리의 의식구조. 그때보다 얼마나 진화했을까. 이제는 개헌이든 뭐든 바꿔야 할 때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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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제균 칼럼]나라는 외적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지난달 중순에 찾은 일본 규슈의 나고야(名護屋). 중부 혼슈의 나고야(名古屋)와는 다른 이곳은 역사적으로 한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장소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곳에 거대한 성을 쌓고 조선 출병을 지휘했다. 그만큼 한국과 바다 거리가 가깝다. 지금은 성벽만 남은 성터에 올랐다. 탁 트인 바다에 5세기 백제 무령왕(武寧王)이 태어났다는 섬이 보였다. 무령왕은 아키히토 일왕이 피가 섞였다고 했을 정도로 고대 일본 왕가와의 관련설이 분분하다. 분명한 것은 고대부터 이곳이 한국과의 교통 요지였다는 점이다. 성터 아래엔 나고야성 박물관이 있다. 장소가 장소이니만치 ‘일본 열도와 한반도의 교류사’를 주제로 상설 전시실을 운영한다. 한국어 가이드북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이를 반성하는 마음으로 박물관을 만들었다’고 돼 있다. 그러나 박물관의 팸플릿에선 ‘반성’이란 단어를 찾아볼 수 없다. 그 전쟁을 ‘한일 양국의 우호관계를 일시적으로 단절시킨 불행한 사건’으로 기술하고 있을 뿐이다. 7일 한일 양국의 첫 정상회담에서도 드러났듯, 과거사를 보는 두 나라의 시각은 다르다.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도 근세를 보는 양국의 시각이 첨예하게 갈리는 상징적인 장소가 있다. 혼슈 서남단의 야마구치현 하기시(市). 일본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을 키운 스승 요시다 쇼인의 사숙 쇼카손주쿠(松下村塾)가 있던 곳이다. 이곳에서 쇼인은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일본 근대화를 이끈, 우리에겐 원흉(元兇)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영웅’인 인물을 많이 길러냈다. 막부(幕府) 체제에 대항했던 쇼인이 옥중에서 쓴 유수록(幽囚錄)은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근거가 된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의 이론적 토대가 됐다. 쇼인은 29세의 젊은 나이에 처형됐다. 일본인들은 쇼인을 신격화하는 신사(神社)를 세웠다. 쇼인 신사 입구에는 얼핏 지나치기 쉬운 기념비가 하나 있다. ‘삿초동맹’을 협의했던 비밀 회합 장소였다는 비석이다. 삿초동맹은 1866년 사쓰마번(현 가고시마현)과 조슈번(현 야마구치현)이 맺은 정치군사 동맹. 막부체제를 무너뜨리고 메이지 유신을 이끌어 낸 역사적 사건이다. 앙숙처럼 지내던 사쓰마와 조슈의 동맹을 이끌어 낸 인물이 바로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한다는 사카모토 료마다. 료마는 동맹을 성사시킨 이듬해 암살당한다. 그의 나이 32세였다. 이 기념비의 문구를 쓴 사람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아베의 지역구이자 고향이 바로 이곳 야마구치현. 아베가 가장 존경한다는 인물이 요시다 쇼인이다. 이쯤 되면 아베의 군국주의 성향이 어디서 발원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베는 주변국에서 보면 ‘큰일 낼 위험한 인물’이다. 하지만 대다수 일본인에겐 ‘아베노믹스’로 자식들 일자리 걱정을 없애준, 경제를 살린 지도자다. 일본의 근대화 성공은 아시아 각국에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일본인에겐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게 해준 자랑스러운 역사다. 거기엔 사카모토 료마나 요시다 쇼인, 쇼인의 제자들처럼 젊은 나이에 목숨을 바친 이들이 있었다. 우리도 냉정하고 차분하게 인정할 건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극일(克日)의 출발이다. 영국 보수주의 연구가 박지향 서울대 교수는 보수주의의 주요 특징 중 하나로 애국주의를 꼽는다. 거창한 애국이 아니어도 좋다. 한국의 보수 정치세력이 사(私)보다 공(公), 계파 이익보다 국익을 앞세워 희생을 보인 기억이 나질 않는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 사유화’는 그 편린일 뿐이다. 좌(左)라고 다르지 않다. 입으로는 온갖 고상한 얘기를 다 떠들고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민망한 불·탈법을 저지른 이들이 이미 장관(급) 자리를 꿰찼다. 누가 뭐라고 하든 앞으로도 내각에 입성할 것이다. 오죽하면 현 정부 고위 당국자가 사석에서 “군인은 10명 중 8명, 교수 출신은 10명이면 10명 다 문제가 있다”고 했을까.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온 군인과 교수들이 들으면 통탄할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6·25 이후 최고 위기’라고 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그러나 외교안보 위기보다 치명적인 게 좌우 가릴 것 없는 공(公)의 부재라고 나는 본다. 나라는 외부의 적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다. 지도자들의 무능과 사욕 추구, 그에 따른 국가 기강 해이로 성벽이 먼저 허물어진 뒤에야 백성들은 이미 성문 앞에 도달한 외적의 말발굽 소리를 듣게 된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 2017-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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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日-EU 자유무역, 美보호주의·中보복 이은 삼각파도 온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어제 자유무역협정(FTA)의 일종인 경제동반자협정(EPA)을 체결했다. 2013년 시작한 일-EU EPA 협상 타결에 따라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30%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권이 열렸다. 일본과 EU 간 교역품 중 99%의 관세가 사라지고 공공조달시장이 열리며 일부 비관세 장벽도 없어진다. 일본은 가장 망설였던 농산물시장을 내줬고, EU는 제일 반대가 컸던 자동차업계의 진입 문턱을 없애 ‘윈윈’의 길을 찾았다. 이번에 일본이 일부 항목에 대한 합의가 되지 않았음에도 협정 체결을 밀어붙인 것은 그만큼 자유무역을 통한 수출 확대가 절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EU가 10%인 자동차 관세를 7년 뒤 완전히 폐지하면 일본 자동차의 가격경쟁력이 올라간다. 역으로 한국 자동차업계에는 그늘이 드리울 수밖에 없다. 한국이 2011년 EU와 FTA를 체결해 누려왔던 무관세 선점효과가 사라지는 것이다. 관세 철폐의 날개를 달게 된 일본은 유럽시장을 장악하겠다고 벌써부터 벼르고 있다. 한국은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보호무역을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한미 FTA 재협상 요구를 받았다.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보복으로 한국의 대중국 자동차 수출도 위축됐다. 유럽시장마저 일본의 공세가 강해진다면 한국의 3대 주력시장이 모두 어렵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현대차 노조는 어제 임·단협 결렬을 선언하고 투쟁 절차에 돌입할 태세다. 기아차 노조는 이미 쟁의 발생을 결의했다. 정부와 기업, 노(勞)와 사(使)가 힘을 모아 우리 경제에 몰아치는 삼각파도를 헤쳐 나가도 모자랄 판에 참 답답하다.}

    • 2017-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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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무디스의 경고…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달린 경제성적표

    세계 3대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가 5일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끌어내릴 수 있는 첫 번째 요인으로 구조개혁의 후퇴를 지목했다. 정부 재정 악화, 북핵 위험 고조와 함께 한국 경제의 3대 위험요소라는 것이다. 경제적 위험 요인이 가시화할 경우 현재 프랑스와 동급이고 일본보다 2단계 높은 한국의 신용등급(Aa2)을 내릴 수 있다는 경고다. 무디스가 주시하는 구조개혁의 첫째 대상은 노동시장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생산성이 낮은 데다 신규 채용과 퇴출이 어려워 생산요소의 핵심인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고령화와 저출산 등 인구 문제, 고용 창출력이 높은 서비스업을 육성하지 못하는 현실도 한국 경제가 극복해야 할 구조개혁 대상이다. 이런 구조를 방치한 채로는 정부가 재정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일시적인 효과에 그칠 뿐, 같은 문제가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 희망이 있다면, 한국이 구조개혁에 속도를 낼 경우 국가신용등급이 지금보다 더 높아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개혁을 통해 안정적이면서도 빠른 경제 성장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 무디스의 전망이다. 구조개혁에 우리 경제의 성패가 달렸다는 얘기다. 과거 정부는 국가신용등급 상승을 정권의 치적으로 홍보했지만 등급 자체에 너무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무디스만 해도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 10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당시로서는 최고인 A1으로 유지하다가 불과 2개월 만에 6단계 낮은 투기등급(Ba1)으로 강등시킨 전력이 있다. 뒷북치는 경향이 있는 신용평가에 대응하는 최선의 방법은 경제의 체질을 선제적으로 개혁하는 것이다. 노동 교육 금융 공공 등 분야별 개혁과 관련해 지난 정부에서 넘어온 과제가 산적해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팀이 정권과 상관없이 계속 추진할 과제와 개편할 과제를 선별하는 작업부터 시작하기 바란다.}

    • 2017-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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