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의 휴먼정치]‘노’라고 말 못하는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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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균 논설실장
박제균 논설실장
 20년 전인 1997년 대통령 선거. 나는 신한국당을 취재하는 정치부 기자로 이회창 후보의 마크맨(전담기자)이었다. ‘대세론’을 풍미했던 이회창. 그만큼 이 후보 진영에는 정권을 다 잡은 듯한 분위기가 있었다. 그것은 이 후보에 대한 비판을 금기시하는 압박으로 작용해 진영 내부의 폐쇄성을 증폭시켰다.

검사 출신 의원의 협박

 한두 번인가, 이래서는 안 된다는 비판 기사를 썼던 나를 검사 출신 A 의원이 불렀다. “박 형, 지켜보고 있어. 우리가 (정권) 잡으면….” 일종의 협박이었다. 그래도 비판 기사를 더 썼더니 다른 이 후보 측근이 불렀다. “도대체 왜 그래?” 협박받은 사실을 말해줬더니 한 시간 정도 있다가 A 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농담한 걸 갖고 뭘 그래. 이제 제발 좀 풀어….”

 농담이 아니었다는 건 협박을 당해 본 사람은 안다. 기자도 사람이다. 자신이 쓴 기사에 반발하는 세력을 접할 때 부담스럽고, 때론 두렵기도 하다. 가족이나 회사에까지 여파가 번지면 시쳇말로 ‘내가 이러려고 기자를 했나’라는 생각도 들 수 있다.

 20년 사이 사회가 더 민주화된 만큼 비판자를 힘으로 찍어 누르는 ‘심리적 폭력행사’는 줄었을까.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 않았다고 나는 본다. 지금도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에게 휘둘린 박근혜 대통령 비판 기사를 쓰면 태극기 집회에선 ‘종북 언론’ 소리가 나온다. 그렇다고 박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진보좌파에서 좋은 얘기를 듣는 것도 아니다. ‘박근혜에게 줄 섰던 언론이 차기 정권에 줄 섰다’는 비아냥이나 듣기 십상이다.

 보수 정권이 만든 문화계 블랙리스트나 문재인 지지자들이 자행하는 ‘문자 테러’는 결국 본질이 같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권력이나 돈, 위력으로 겁박하는 폭력이다. 한국과 일본의 위안부 합의는 여러 가지 미흡한 점이 있음에도 한일관계의 미래를 진전시키기 위한 고육책(苦肉策)이었다. 그럼에도 대선주자들은 입을 맞춘 듯 ‘전면 재검토’와 ‘폐기’ ‘재협상’을 외치고 있다.

 국가 간 합의 파기를 손바닥 뒤집듯, 쉽게 입에 올리는 사람들에게 과연 나라를 맡길 수 있을지 걱정이다. 최고위 외교관인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 전 총장마저 합의를 높이 평가했다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만나서는 “합의 내용을 환영한 게 아니다”라고 말을 바꿨다. 국민감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적어도 나라를 경영하겠다고 하는 사람 중에는 국민 대다수가 감정에 휩쓸릴 때 분연히 ‘노(No)’라고 말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친일 언론인’으로 찍힐까봐 두려움을 느끼게 만드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다.

 50년 전 중국은 문화대혁명의 광기에 휩싸였다. 아버지가 숙청된 14세 시진핑(習近平)도 고초를 겪었다. 훗날 시진핑 국가주석의 회고. “‘100번의 총살로 죄를 반성하라’는 간부들에게 내가 ‘총살은 한 번이면 죽는데, 어떻게 100번까지 총살당하느냐’고 묻자 ‘그래서 너는 악당의 자식’이라는 말과 함께 호되게 얻어맞았다.”

‘우리 안의 독재’

 독재의 핍박을 받았던 시진핑이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가장 강력한 1인 독재 체제를 구축했으니 역사의 반전이 아스라하다. 한국도 군사독재로부터 민주화를 쟁취한 지 30년. 제도적 민주화는 진전됐을지언정 ‘인식의 민주화’는 갈 길이 멀다. ‘우리 안의 독재’로부터 자유롭게 ‘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지 않는 한 백날 ‘권력 분산’을 외쳐도 헛일이다.

박제균 논설실장 phark@donga.com
#대통령 선거#협박#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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