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수

정원수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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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원수 부국장입니다.

needju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14~2025-12-14
칼럼97%
사회일반3%
  • [광화문에서/정원수]청와대와 가까운 검찰국장… 검찰의 방패? 정권의 창?

    ‘혁명적인 인사 태풍이 불어… 검찰 조직을 활성화해 보려는… 이번 인사에서 가장 각광받는 케이스는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발탁된 ○○○.’ 영락없이 22일자로 단행된 검찰 인사에 대한 촌평 같다. 하지만 1981년 4월 25일자 동아일보 3면 기사 중 일부다. 전두환 정권이 경력 10년 이상 검사 200여 명에게 반강제로 집단 사표를 받는 천지개벽 수준의 인사를 분석한 기사였다. 당시 정해창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 2차장은 검사장 승진과 동시에 검찰국장이 됐다. 검찰 인사와 제도 개선, 수사 및 정보의 통로인 법무부 검찰국장은 말이 필요 없는 최고의 요직이다. 통상 검사장 3, 4년 차가 맡는 검찰국장을 1년 차에게 바로 맡긴 적이 있는지 수소문해 찾아낸 유일한 선례였다. 정해창은 이 인사를 시작으로 서울지검장과 법무부 차관을 거쳐 5공화국과 6공화국의 법무부 장관, 노태우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까지 지냈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심장”이라는 평가가 나올 만했다. 그러나 정해창도 평검사 시절 “검찰과에서 검찰국장의 ‘가방잡이’ 역할을 했다”고 회고하고, 그 뒤 검찰과장까지 지낸 만큼 법무부 근무 이력이 아예 없는 윤대진의 발탁이 더 놀랍다. 문재인 대통령이 윤대진 검찰국장 카드를 꺼낸 진짜 이유는 뭘까. 미국 월드컵 열기가 한창이던 1994년 여름, 사법연수원생 모임 ‘공을 차는 사람들’(공차사)이 한강 둔치에서 축구 경기를 했다. 한 연수원 동기는 “280여 명의 연수원생 중 30여 명이 소속된 가장 파워풀한 모임”이라고 자랑했다. 여기엔 최전방 공격수 윤대진과 수비수이자 감독 역할을 종종 한 김인회 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있었다. 1964년생 동갑으로 서울대 법대 83학번 동기인 둘은 학창 시절 운동권에 몸담았고, 입학 10년 만인 1993년 뒤늦게 사법시험에 나란히 합격했다. 진보적 연구모임에서도 함께 활동한 단짝이었다. 윤대진과 김인회는 노무현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도 각각 사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장과 법무비서관실 행정관으로 근무했다. ‘적폐청산’ 드라이브의 설계자로 알려진 백원우 민정비서관도 당시 민정비서관실 행정관 출신이다. 이들의 관계를 ‘효자동 술친구’라고 수군대는 검사들이 아직 있다. 직속상관은 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이던 문 대통령이다. 단순히 함께 일했다는 인연을 넘는, 정치적 동질감 비슷한 게 있는 셈이다. 문 대통령이 2011년 김인회와 함께 쓴 ‘검찰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보면 윤대진의 발탁 이유를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다음 보직을 걱정하는 검사”에게 “검찰 개혁을 추진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무기”가 인사였지만 “개혁성에 문제가 있었던 고위직” 탓에 제대로 쓰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이어 “기득권에 근거한 검사들의 항명”에 정권이 불이익 조치를 하고, “검사들의 불만을 압도할 만한 도도한 논의의 틀이나 흐름”을 통해 검찰을 바꿔야 한다고 처방을 내린다. 노무현 정부 때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청와대가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등을 추진하면서 검찰을 어떻게 대할지 유추할 수 있다. 37년 동안 축적된―또는 잘못된 관행이 누적된―법무 행정 시스템의 상징, 거기에 가장 최적화된 엘리트 검사가 독점해온 검찰국장 자리에 처음으로 이방인이 앉았다. 야전 수사 사령관으로서는 여러 차례 성과를 냈지만 인사와 검찰개혁의 설계자로서는 아직 기대보다는 반신반의하는 내부 시선이 더 많다. “윤대진만 확실한 자기편이고, 나머지는 못 믿기 때문” “수사가 여권으로 향하지 않도록 막는 중앙통제장치”라는 말도 들린다. 그가 외압을 막는 검찰의 방패가 될지, 정권의 창으로서 내부에 칼을 먼저 들이댈지 앞으로의 행보가 벌써부터 궁금하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 2018-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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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 잃은 보수… 여당 사상최대 압승

    13일 치러진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다. 민주당은 14일 오전 1시 현재 광역단체장 17곳 중 14곳에서 당선이 확실시된다. 특히 부산과 경남, 울산 등 PK 지역 3곳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첫 광역단체장이 동시에 탄생했다. 서울 25곳 중 최소 23곳 등 전국 기초단체장 226곳 중에서도 민주당이 145곳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미니총선’급 국회의원 재·보선도 민주당은 12곳 중 후보를 낸 11곳 모두에서 당선이 유력하다. 자유한국당은 경북 김천 재·보선에서도 무소속 후보에게 고전하고 있다. 1995년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이후 여당이 광역단체장 과반을 획득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국정 지지율로 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가 사라져 전례가 없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반면 한국당은 2016년 총선과 지난해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까지 3연패하면서 당 해체 수준의 정계 개편 블랙홀로 급속히 빨려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대표는 이르면 14일 대표직에서 사퇴할 예정이다. 바른미래당도 한국당과의 합당 등을 놓고 진통이 예상된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전국 17곳 중 13곳에서 진보 성향 후보의 당선이 확실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신 후보 11명 중 8명의 당선이 확실하다. 진보진영이 4년 전에 이어 다시 압승을 거둔 것이다.정원수 needjung@donga.com·김호경 기자}

    • 201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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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 사상최대 ‘압승’…광역 13곳, 재보선도 10곳 앞서

    13일 치러진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압승했다. 민주당은 13일 오후 10시 30분 현재 광역단체장 17곳 중 최소 13곳에서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특히 부산과 울산 등 PK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첫 광역단체장이 동시에 탄생했다. ‘미니총선’으로 불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도 민주당은 12곳 중 최소 10곳의 당선이 유력하다. 1995년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 이후 여당이 광역단체장 과반을 획득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국정 지지율로 여당에 대한 견제 심리가 사라져 전례가 없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2016년 총선과 지난해 대선에 이어 이번 지방선거까지 3연패하면서 당 해체 수준의 정계 개편 블랙홀로 급속히 빨려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홍준표 대표는 이르면 14일 대표직에서 사퇴할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에 안철수 후보를 내세웠지만 광역단체장 1석도 건지지 못한 바른미래당도 한국당과의 합당 등을 놓고 진통이 예상된다. 지방선거 투표율은 60.2%로 1995년(68.4%) 이후 역대 두 번째로 높았다. 교육감 선거에서는 전국 17곳 중 13곳에서 진보 성향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 특히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출신 후보 11명 중 9명이 1위이며, 11명까지 늘 수 있다. 진보진영이 4년 전에 이어 다시 압승을 거두며 ‘진보 교육감 전성시대’ 2기가 시작된 것이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 2018-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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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원수]포렌식 수사전문가 배제, 수상한 ‘드루킹 특검’ 추천

    “제가요? 몰랐어요. 뜻밖인데요.” 검사 출신 A 변호사에게 6일 전화를 걸어 대한변호사협회(변협)의 이른바 ‘드루킹 특별검사’ 추천위원회에서 두 번째로 많은 득표를 한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더니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금시초문이라는 거다. 디지털 장비를 분석해 범죄 정보를 수집하는 디지털포렌식이라는 용어마저 생소하던 2000년 검사로 재직하면서 대기업 분쟁 수사 때 모바일포렌식으로 실체를 밝혀낸 이력이 있다. 차명 휴대전화 170여 대를 동원하고, 비밀 대화방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댓글 여론조작 사건 수사의 적임자일 수 있다. 그런데 왜 A 변호사 이름은 국회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제1야당 원내대표의 단식투쟁과 천막농성, 그로 인한 42일간 국회 마비는 사실 특검 도입 여부보다는 수사의 키를 쥐게 될 특검 추천권에 대한 이견이 핵심적인 이유였다. “최순실 특검법처럼 야당 몫”이라는 자유한국당 주장에 더불어민주당이 “태극기 부대 변호인이 특검이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맞섰다. 바른미래당이 변협 추천이라는 대안을 제시해 양당은 중간 지점에서 타협했다. 이 결단이 국회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긴 했지만 한 교섭단체 원내대표의 자화자찬처럼 ‘정의의, 진실의, 국민의 특검’으로 이어질까. 의문이 가시지 않아 추천 과정에 현미경을 들이댔다. 3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변협 사무실. 특검 후보를 뽑기 위한 특검추천위원회 회의가 소집됐다. 추천위원 11명 중 참석한 10명이 보안각서에 서명했다. 회의는 3시간 반 걸렸지만 규정을 정하는 데 2시간이 지났고, 추천 논의는 후반부 절반 이하였다. 국회 합의 직후인 지난달 16일부터 21일까지 변협은 전국 2만4000여 명의 회원과 각 지방변호사회 등에서 추천을 받았지만 14명을 추천한 기관과 이유를 추천위원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검사 출신이 낫다”는 변협 지도부 방침에 따라 각계 추천 65명 중 검사 출신 변호사 14명의 프로필과 관련 언론 보도만 제공됐다. 투표 직전 1명이 추가로 거부 의사를 알려와 13명으로 줄었다. 추천위원 10명이 각자 13명의 후보 중 추천될 만한 4∼6명을 골라 이름 옆에 ‘○’ 표시를 했다. ‘1위 임정혁 전 대검찰청 차장, 공동 2위 A 변호사와 허익범 전 인천지검 공안부장, 공동 4위 김봉석 전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장과 오광수 전 대구지검장, 6위 B 변호사….’ 추천 숫자 없이 순위만 공개했다. 그런데 여기서 후보 4명을 최종 선정하는 과정이 더 석연찮다. A 변호사가 아무런 설명 없이 제외됐다. “김 전 부장검사는 특검 수사 대상인 민주당 김경수 경남도지사 후보와 동향(同鄕)”이라는 이의 제기는 무시됐다. 만약 김 전 부장이 빠졌다면 자금 흐름을 추적하는 대형 사건 수사 경험이 풍부한 B 변호사가 추천될 수 있었다. 2007년 이후 11년 만에 역대 7번째 특검 추천권을 갖게 된 변협은 “성역 없는 수사로 한 점 의혹 없이 진상 규명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러나 이후 “이사회 승인 없는 추천은 위법” “일부 인사에 대한 정치권 또는 변협 집행부의 사전 낙점 의혹” 등 공정성 시비는 끊이지 않고 있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건 변협 추천을 기다렸다는 듯 검증도 하지 않고, 다음 날 4명 중 2명을 곧바로 청와대에 전달한 야3당이다. “하루빨리 수사가 이뤄져야 해 대승적으로 결단했다”고 한다. 이런 사정을 정말 몰랐을까, 알고도 모르는 척한 건 아닐까라는 의심도 든다. 흔히 “정치는 타협의 예술”이라고 한다. 그러나 타협의 성과가 그다지 ‘예술’ 같진 않다. 그동안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싸운다고 했는데, 이게 과연 최선의 결과인가. 정치권의 부끄러운 민낯이 따로 없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 201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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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원수]국회의 17년 ‘시간 끌기’… 특수활동비 내역 공개를

    “교섭단체나 위원회 등의 고도의 정치활동과 의원외교 등의 특수한 의정활동에 지원되는 경비로서 상세 내역이 공개되는 경우 국회 본연의 정치 및 정책 형성 등의 기능에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2015년 5월 참여연대가 국회 사무처에 ‘2011∼2013년도 18·19대 국회의 의정지원, 위원회 운영지원, 의회외교, 예비금 명목의 특수활동비 상세 지출 내역을 달라’는 정보공개청구를 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 같은 답변을 보내면서 비공개했다. 2004년 대법원이 “기밀유지가 필요한 내용이 없어 공개하더라도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없다”고 했지만, 국회가 이를 다시 무시한 것이다. 이 때문에 매년 90억 원 안팎의 지출 내역이 여전히 베일 속에 있다. 비공개 사유도 매번 똑같았다. 그러나 사실 이는 의도적인 지연 전략일 뿐이다. ‘비공개 결정→이의신청 기각→소송 불복→대법원 확정 판결 뒤 공개 거부’라는 절차를 통해 2, 3년 정도 시간을 끌 수 있다. 그 사이 국회는 임기가 끝나 다시 국회의원을 뽑기 때문에 현직 신분으로 치부가 드러나는 것을 미룰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국회가 조세 분야에서 국내 최고 로펌 소속 변호사까지 변호인단에 포함시켰다는 점이다. 세금 낭비를 감시하려는 소송에, 세금으로 방패막이 변호사를 구한 것이다. 재판 과정을 되돌아보면 납세자이자 주권자인 국민을 더 뿔나게 만드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관련 항소심 재판 때 국회 측 변호인단은 국회 속기록에 “특수활동비는 비공개해야 한다”는 취지의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에 아예 증거로 제출하지 않았다. 이 재판은 결국 한 차례 변론만으로 끝났다. 참여연대와는 별도로 20대 국회의 특수활동비 사용 내역 공개 소송을 진행 중인 한 변호사는 “국회는 재판 때 늘 궤변만 늘어놓았다”고 했다. 심지어 재판장이 국회 측 변호인단에 “어떻게 세금을 쓰면서 증빙을 안 하려고 하느냐”고 핀잔을 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대법원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하급심 판결을 그대로 인용했다. 심리불속행은 쉽게 말해 대법원에서 더 판단할 사유가 없어 기각하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즉시 효력이 있지만 국회는 공개를 계속 미루고 있다. 참여연대 문의에 국회는 처음에 “개인정보를 가리는 문제로 단시일 내에 어렵다”고 답했다. “시간이라도 정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항의를 받고서야 최근 “24일, 언제까지 공개가 가능할지만 알려주겠다”고만 했다고 한다. 국가정보원과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불법 사용한 두 전직 대통령이 수사를 받았고, 이에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일부 특수활동비를 일자리기금으로 전환했다. 2001년 국회 특수활동비 공개를 처음 주장했던 참여연대 공동대표였던 박은정 변호사는 현 정부 들어 김영란법 위법 여부를 관리 감독하는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데도 국회는 다른 기관의 특수활동비는 정비하겠다고 하면서 국회 내부 문제는 함구하고 있다. 그 대가로 20대 국회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 있다. 시민단체는 국회가 공개를 미루는 기간만큼 이행강제금을 물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만약 국회가 공개한 내용이 부실하고, 국회가 공적인 사용 목적을 입증하지 못한다면 수사기관에 고발될 수 있다.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약속한 20대 국회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이제라도 모든 관련 소송을 먼저 취하하고, 특수활동비 상세 내역을 공개한 뒤 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 2018-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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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원수]국회의 19년째 직무유기… 13번째 특검 충돌의 비극

    “특별검사 수사는 법리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일반 검찰의 임무와 중복되고, 경제적으로는 나라의 국부를 낭비하는 것으로… 다시는 또 다른 특검이 임명되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999년 12월 20일 이른바 옷로비 의혹사건의 특검인 최병모 변호사가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전달한 보고서 중 일부다. 2개월 동안 4억1400만 원을 투입한 수사 결과를 종합한 326쪽 분량 보고서에서 국내 1호 특검인 최 변호사는 역설적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특검을 강하게 희망했다. 그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 “형사사법이 오로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 표현인 헌법과 법률에 따라 올바르게 행사된다”는 한 가지 전제조건만 달았다. 국민적 의혹을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성역 없이 수사해 주기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한 역사’는 이후 19년째 이어지고 있다. 요즘 국회는 13번째 드루킹 사건 특검 도입 문제로 두 달째 마비 중이다. 두 야당은 단식투쟁과 철야농성을, 여당은 “대선불복 특검”이라며 대치하고 있다. 댓글 여론조작 사건 특검이 출범한다면 국정농단 특검 사무실이 아직 문을 닫지 않았으니, 역대 세 번째 ‘쌍(雙)특검’ 시대를 맞게 된다. 현 정권 실세 주변을 수사하는 특검과 전 정권 비리를 설거지하는 또 하나의 특검이 동거하는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다. 잦은 특검이 검찰이나 경찰의 무능 탓일까. 특검 무용론이 처음 나온 건 재임 중 5번이나 특검을 마주한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이었다. 취임식 다음 날 국회에서 대북송금 특검법이 통과된 데 이어 취임 만 9개월을 앞둔 2003년 11월 노 전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이 야3당 주도로 통과됐다.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좀 더 지켜보자”며 거부권을 행사하자 야당은 “하야”까지 언급하며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의 동의가 필요한 재의결을 강행했다. 헌정 사상 법안 전체에 대한 첫 재의결은 이듬해 3월 사상 첫 대통령 탄핵 가결의 복선과도 같았다. 그러나 18억 원을 들여 90일 동안 수사한 특검 성적표는 초라했고, 특검 무용론만 불거졌다. 대선을 이틀 앞둔 2007년 12월 17일엔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개인비리 특검법이 육탄전 끝에 통과됐다. 우리보다 21년 먼저 특검을 도입한 미국에선 “대통령직 탈환을 노리는 정당만 지지하는 제도”라는 비판이 있다고 한다. 마치 우리 정치권을 향한 촌평 같다. 국정농단 특검 등 몇 차례를 제외하곤 여당은 수비수로, 야당은 공격수로 역할을 나눠 충돌했다. 특검의 추천권은 대한변협→대법원장→국회 등으로 법이 생길 때마다 바뀌었다. 국회 권한으로 정리하더라도 야당으로 할지, 여야 합의로 할지를 놓고 또 의견이 갈렸다. 미국은 특검 대상자 관련 모든 의혹을 철저히 수사하는 게 원칙이지만 우리는 법 제정 때마다 ‘관련’이나 ‘직접’을 넣고 뺄지에 대해 건건이 다툰다. 이번에도 똑같다. 어쩌면 특검법 정비보다 더 중요한 건 기존 수사기관의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 방안이다. 그게 어렵다면 좀 더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새 수사기관을 마련할 궁리를 해야 한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 등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 계류 중이지만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최병모 특검의 보고서는 이렇게 끝난다. “여야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태어난 것인 바, 불완전한 부분이 많이 있다 … 그 문제점에 대한 충분한 토론과 정리가 요구된다.” 19년째 국회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는 바로 그 대목이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 2018-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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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원수]김경수의 ‘시그널’… 철통보안의 역설

    “암호화는 중요합니다. 스파이나 바람둥이한테만 필요한 조치가 아닙니다.” 2013년 미국 국가안보국(NSA) 도·감청 문건을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 전 NSA 요원이 문서를 폭로하기 위해 접근한 저널리스트에게 보안을 유독 강조하면서 했던 말이다. 스노든은 대화 내용을 추적하지 못하게 하는 암호화 기능에 있어 세계 최고 보안등급 메신저인 ‘시그널’로 대화하면서 기자들과 접촉해 정보기관의 추격을 따돌렸다. 스노든이 얘기한 직업 외에 한국에선 정치인을 추가해도 될 것 같다. 댓글 여론조작 사건에 연루된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이 ‘텔레그램’을 사용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성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도 ‘텔레그램’을 사용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은 청와대 내부자와 텔레그램보다도 보안 등급이 낮은 ‘바이버’를 사용한 사실이 최근 재판 과정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시그널은 다르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지금도 쓰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일부 있다”고 말했다. 텔레그램을 주로 사용한 지 1년여가 흐른 뒤 당내에 시그널 이용자가 생겼다고 했다. 2015년 11월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가장 안전한 등급으로 분류했다는 외신 보도가 계기였다. 만약 김경수 의원이 시그널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지금은 실체적 진실과는 무관하게 그렇게까지 감추고 싶은 게 무엇이었나라는 오해를 받고 있다. 사실 국내에서 암호화나 보안 메신저가 유행처럼 번진 건 보수정권 시절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의 사찰 의혹 탓이다. 2014년 10월 카카오톡이 검찰의 대화내용 압수수색에 협조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100만여 명이 이른바 ‘사이버 망명’을 했다. 이때 여의도 정치권, 특히 당시 야당인 민주당 국회의원과 보좌진, 사무처 직원 등이 주로 텔레그램으로 옮겼다. 아이러니한 것은 권력기관 감시의 최대 피해자인 야당 시절 소통 수단이던 메신저가 권력을 잡은 뒤에도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이다. 요즘 청와대 인사들은 직급에 관계없이 텔레그램 단체방에서 메신저로 대화를 나눈다. 일반전화보다 통신조회나 디지털 포렌식에서 상대적으로 안전한 메신저 음성통화도 자주 이용한다고 한다. 보안 메신저 이용이 곧 보안 유지로 연결되진 않는다. 전문가들은 △휴대전화 운영체제(ISO)와 보안 메신저를 최신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야 하고 △휴대전화를 최신 기종으로 바꿔야 하며 △휴대전화 단말기 내 환경설정에서 보안등급을 최고 수준으로 관리하는 3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만약 한 가지라도 빈틈이 생기면 추적당할 수 있다. 더 중요한 건 외부 보안만 강조하다가 자칫 내부 소통의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2012년 대선 때 안철수 캠프에선 “외국에 서버를 두고 있는 메신저(바이버)를 사용하고, 정해진 시간에 e메일을 보내면 읽고 바로 지운다”는 지침이 있었다. 그러나 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당시를 회고하며 책에 이렇게 적었다. “지나치게 보안을 강조하다 보면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불신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되고, 이것은 역설적으로 보안을 지키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된다.” 김 의원도 비밀 대화방에 초대받지 못해 박탈감을 호소하는 당 관계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김 의원에겐 안팎으로 좋지 않은 시그널이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 201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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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원수]MB가 조용히 있었다면 검찰은 그 서류 찾았을까

    올해 1월 25일, 서울 서초구 영포빌딩 지하 2층. 이곳을 압수수색한 검찰의 이명박 전 대통령(MB) 수사팀이 웅성거렸다. 일부는 “MB가 운(運)이 다한 것 같다”고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스 실소유주 의혹으로 MB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쉽지 않다”는 게 검찰의 분위기였는데, 이날 이후 상황이 급반전됐기 때문이다. 사실 이날 오전 검찰 수사팀이 영포빌딩에서 처음 압수수색 영장을 제시했을 땐 집행을 거부당했다. “영장에 적힌 자료는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검찰은 곧바로 법원에 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압수수색 영장에서 ‘다스 관련 자료’를 아예 빼버린 것이다. 밤늦게 나온 이 영장으로 예상치 않게 ‘비밀창고’의 문을 열 수 있었다. 수사팀이 들어간 빌딩 주차장 옆 사무실 곳곳엔 서류 뭉치가 있었다. MB가 현대건설 사장으로 발탁된 이듬해인 1978년 자료를 시작으로 기업인(1978∼1992년)과 두 번의 국회의원(1992∼1998년), 서울시장(2002∼2006년), 대통령(2008∼2013년) 재임 시절 자료 등이다. 1990년대 중반 MB가 인연을 맺은 사람과의 만남을 직접 메모한 것부터, ‘집사’ 김백준 전 대통령총무기획비서관이 청와대 재직 시절 MB 지시를 받아 적은 놓은 것도 있었다고 한다. 검찰은 이 서류 더미에서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찾았다는 후문이다. 심지어 MB에 대한 영장범죄사실의 뼈대가 된 100억 원 안팎의 수뢰 단서도 여기서 찾아냈다고 한다. 다스의 미국 소송비 대납(67억7400만 원),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22억6230만 원) 관련 내용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 들어 검찰의 MB에 대한 끈질긴 적폐청산 수사가 그야말로 분수령을 맞은 순간이었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여직원 횡령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동부지검이 이미 한 차례 이곳을 압수수색했고,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상납 사건을 수사 중이던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이 사무실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된 직후였기 때문이다. 첨단범죄수사부가 다시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굳이 다시 해야 되겠느냐”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무실이 ‘불법자금의 저수지’라는 김성우 전 다스 사장의 진술을 무시하긴 어려웠다. 올해 1월 초 그는 “MB가 다스의 실소유주”라며 기존 주장을 뒤집는 자수서를 검찰에 냈다. ‘측근의 배신’으로 불리지만 남모를 사정이 있었다. 김 전 사장이 100억 원 가까운 다스 돈을 개인적으로 빼돌린 게 적발되자 검찰은 강하게 압박했다. 공교롭게도 그 압수수색 일주일 전 MB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검찰 수사를 “정치 보복”이라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정부에 대한 모욕”이라며 분노를 표시했다. 검찰은 정신을 차리고 수사력을 더 집중했을 것이다. 역사엔 가정이 없다지만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이 없었고, 검찰의 그 압수수색도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10개월 동안 이어진 검찰 수사는 지금과 같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퇴임 뒤 4년 11개월 동안 방치되어 있던 그 서류 더미는 계속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MB가 정치 보복이란 말 대신 “대통령이 바뀐 것 외에는 달라진 게 없는데, 수사 결과가 (2007년 검찰 수사 후) 11년 만에 정반대여서 납득하기 어렵다”고만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검찰도, 정권도 지금과는 표정이 달랐을 것 같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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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원수]‘총리선출’ 권한문제 풀 수 있는 묘수있다

    “나더러 벼슬을 사라는 말이냐? 나는 너를 이런 식으로 교육하지 않았다.” 6·25전쟁 휴전협정 협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이승만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로 이윤영을 지명했다. 비서가 “국회 인준 동의를 얻으려면 돈을 써야 한다”며 정치자금 1억 원을 갖고 오자 이윤영은 타일러 그 자리에서 돌려보냈다. 국회의원 2명이 찾아와선 “2억 원을 주겠다. 그것을 국회에 뿌리면 인준은 문제없다. 그 대신 내무부 장관 자리를 달라”고 제안했다. 전쟁 직전 1억 원은 현재 가치로 21억 원 정도다. 전쟁 중이어서 화폐 가치가 10분의 1 이하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큰돈이었다. 비서가 이렇게 나온 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이윤영 정치 인생에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총리 도전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초대 총리가 될 수 있었던 1948년 7월에도, 2대 총리에 도전했던 1950년 4월에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 동의가 그만큼 절박했다. 결국 그는 총리 임명장 대신 헌정 사상 세 번째 총리서리(署理)에 만족해야 했다. 백사(白史) 이윤영 선생이 생전에 회고록에서 공개한 일화다. 갑작스러운 첫 후보 지명과 불의의 낙마, 재도전 뒤 4표 차 부결, 세 번째 도전 끝 가부동수 좌절…. 출발부터 대통령과 국회의 정면충돌로 이어졌던 총리 제도의 허점이 그대로 드러난 극단적인 사례다. 공교롭게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도 각 정당 간에 엇갈리는 총리 선출 개선 방안이다. 이윤영도 책에서 “역사적 경험이 주는 교훈이 적지 않다”고 한 막전 막후를 되짚어서 개헌안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는 세 가지 코드를 찾아봤다. 잘만 운용한다면 한국만의 독특한 총리 제도가 계륵이 아니라 의원내각제 요소로 대통령제를 보완할 수 있는 묘수가 될 수도 있다. 첫째, 총리는 출발부터 국회의원 또는 정치인 중에서 뽑는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대통령 스스로 제헌국회에서 인사 배경을 이같이 설명했고, 당시 정당 추천 인사도 거물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이낙연 총리와 서리까지 포함해 역대 총리 55명 중 정치인은 10명을 넘지 않는다. 처음 설계한 것과 달리 역대 대통령은 총리를 국회나 정치인 몫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인 총리가 행정부와 입법부의 가교 역할을 상대적으로 잘해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원점으로 돌아가 앞으로 총리는 국회의원이나 국회의원 출신 중에서 지명하도록 하면 어떨까. 법적으로도 총리를 겸직하는 데 문제가 없다. 더구나 국회의원 출신은 인사청문회에서 한 번도 낙마한 적이 없지 않나. 둘째, 세력 없는 정치인을 위한 상징적인 자리였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석에서 총리를 미국의 부통령과 다른, ‘별 의미가 없는 자리’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2대 총리인 장면은 “모든 일에서 내 소신을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간다”고 말했다가 국무회의 때 대통령에게 무시당했고 결국 단명했다고 이윤영은 기억했다. 그는 국회에 총리 후보자가 공개되는 당일 오전 2시 지명을 통보받았다. 행정부를 둘로 쪼갤 게 아니라면 대통령과 충돌할 총리를 굳이 둘 필요가 있을까. 마지막이자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부분은 대통령 바로 아래 2인자 인사권을 세 번씩이나 거절하는 의회의 견제 방법이다. 국회에 대한 낮은 신뢰도, 법안과 예산 심사 과정의 불투명성이 그대로인데 총리의 권한을 늘리고, 국회가 총리를 선출하는 것까지 국민들이 동의할까. 그 전에 총리 후보 복수추천제, 권력기관장 및 장관의 의회 인준부터 우선 시행해 보자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 미국 대통령을 지내고, 정당도 창당했던 토머스 제퍼슨은 대통령제 도입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입법부의 폭정이야말로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위험 요소”라고 한 적이 있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 2018-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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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원수]우병우의 ‘자치통감’ 읽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영장청구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이었다. 지난해 12월 구속 수감된 그의 근황이 궁금했다. 몇몇 지인들에게 물었더니 “1심 판결을 기대했지만 뜻대로 안 됐다. 지금은 책을 열심히 읽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런데 책 제목이 의외였다. 중국 송나라 때 사마광이 쓴 역사책 ‘자치통감’. 송나라 전까지 1362년간의 중국 역사를 294권으로 엮은 이 책은 한글 번역본만 31권이다. 우 전 수석은 이미 1독을 끝내고, 2독째라고 했다. 중국의 저우언라이(周恩來) 전 총리, 일본의 근대화를 열었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가 애독했다는 ‘제왕의 지침서’다. 왜 이 책을 읽고 있을까. 30년 넘게 이 책을 연구해온 권중달 중앙대 명예교수는 “개혁이라는 것이 겉으로는 참으로 좋고, 시원하게 느껴지지만 급진적인 변화는 실제에 있어서 모두 실패한다는 안타까움이 녹아 있는 책”이라고 한 적이 있다. 사마광이 동시대 왕안석이 주도한 개혁을 비판하기 위해 쓴 책이라는 설명이다. 권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역사는 빨리 가고 싶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게 아니다. 급진적 개혁은 웃기는 얘기고, 그건 정치적인 프로파간다”라고 했다. 최근 우 전 수석이 다시 보수로 정권교체가 된 미래를 언급했다는 얘기가 검찰 안팎에서 돌고 있는데, 책 이야기를 접하니 괜한 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의 정점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뒤 ‘급진적 개혁을 비판하는 제왕의 지침서’에 빠져 있다는 얘기다. 1심 선고 전 최후 진술 때도 그는 “1년 6개월 동안 저에 대한 표적수사” “과거 제가 검사로서 처리했던 사건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며 사과보다는 현실 부정에 초점을 맞췄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 검사로 그는 변호인 문재인 대통령과 조사실에서 같이 있었다. 물불 가리지 않는 수사 실력으로 박연차 게이트의 주임 검사로 발탁됐는데, 하필 수사 대상에 친박계도 있었다. 이로 인해 나중에 검사장 승진이 막혀 옷을 벗었다. 그런데 뒤늦게 입성한 박근혜 청와대에서 그는, 판결문에 따르면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비위행위 진상 은폐에 가담해 국정농단 사태를 더욱 심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대통령 참모의, 대통령을 위한 불법이라는 점에서 그와 비슷한 인물이 하나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리처드 닉슨 대통령 특별법률고문이던 찰스 콜슨. 백악관 재임 시절 언론은 그를 ‘대통령의 살인청부업자’로, 정치권은 ‘필요하다면 자동차로 할머니를 치고 지나갈 인물’이라고 평했다. 베트남 전쟁 관련 펜타곤 문서 유출자를 ‘반역 그 자체’로 몰기 위해 수사기관의 문서를 들추고, 정부 경기 회복 정책에 반대하는 관료를 비난하기 위해 허위 사실도 유포했다. 그런 그는 워터게이트 스캔들의 책임자로 지목되자 집을 폭파하겠다는 협박도 받았고, 청문회에 불려가선 의원들에게 주먹으로 맞을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8개월의 수감 생활을 거치면서 그는 달라졌다.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다. 석방 뒤 이때의 특별한 경험을 ‘거듭나기(Born again)’라는 책으로 엮었다. 콜슨처럼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해 구치소에 들어간 한국 정치인들이 종종 이 책을 찾는다고 한다. 이 책에는 콜슨을 바꾼 결정적 조언이 나온다. “궁극적으로 실패할 것들을 위해서 잠시의 성공을 기뻐하는 자가 되기보다는, 궁극적으로 성공할 것들을 위하여 지금 겪는 잠시의 실패를 감사하라.” 자신의 성공을 위해 앞만 보고 질주했던, 그래서 사방에 적뿐이었던 우 전 수석이 자치통감 대신 꼭 한번 읽었으면 한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 2018-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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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원수]세상을 바꾼 스웨덴에 관한 기억

    2015년 8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강당. 미국 연방대법관 9명 중 가장 진보적인, 그래서 일부에겐 ‘악명이 높은’ 여성 인권의 대모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관의 강연에 참석한 적이 있다. 첫 한국 방문이어서 강당이 가득 찰 만큼 관심이 높았다. 한 청중이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라고 물었다. “스웨덴에서 살 때 관심을 갖게 된 것 같다. 사법제도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여성에게 주어진 동등한 기회라는 면에서 스웨덴이 미국보다 상당히 앞서 있었다. 스톡홀름 신문에는 ‘왜 여성은 두 개의 일을 가져야 하고, 남자는 하나의 일만 가져야 하나’라는 논평이 실렸다. 1960년대에 맞벌이 가정이 안정화되고 있었던 거다. 논평을 쓴 기자는 ‘왜 오후 7시만 되면 아내는 남편 밥을 차려야 하느냐’, ‘남편들은 쓰레기를 버리는 자잘한 집안일보다 자녀 육아에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 시절인 1970년대에 ‘생물학적 성(sex)’을 대체하는 ‘사회적인 성’ 젠더(gender)의 개념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를 바꾼 곳이 미국이 아니라 스웨덴이었던 것이다. 그 에피소드에 대한 기억이 잊히기 전인 2016년 10월 미국에서 연수를 할 때 하버드대 앞 서점에서 ‘나 자신의 말들(My Own Words)’이라는 신간을 산 적이 있다. 긴즈버그가 직접 서문을 쓰고, 지인인 교수 2명이 그의 말과 글을 묶은 자서전 격이었다. 이 책에서도 스웨덴은 인상 깊게 등장한다. 왜 스웨덴이었을까. 긴즈버그가 하버드 로스쿨에 다닐 때는 재학생 500명 중 여학생은 9명뿐이었다. 건물 두 곳 중 한 곳만 여성 화장실이 있었는데, 없는 건물에서 시험을 보면 화장실에 못 갔다. 그때 딸이 태어났다. 육아 도우미가 집에 있는 오후 4시까지 로스쿨에 다녔고, 그 뒤에는 딸을 돌봤다. 딸이 잠들고서야 법전을 다시 펼칠 수 있었다. 졸업 때 로펌 14곳에 입사원서를 냈지만 “여성은 뽑지 않는다”며 거절당했다. 그 직후인 1962년 스웨덴 룬드에서 민사소송을 연구할 기회가 생겼다. 1933년생인 그는 20대 후반 길잡이(v¨agm¨arken)라는 스웨덴 말을 처음 접했고, 그 뒤 자신의 분야에서 길잡이가 됐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스웨덴을 다시 떠올린 건 평창 겨울올림픽 때문이다. 결승전에서 한국 여자 대표팀을 꺾은 스웨덴 컬링팀의 이력을 찾아봤다. ‘스킵’ 안나 하셀보리는 부모, 삼촌, 오빠, 사촌이 모두 컬링 선수다. 일곱 살 때 입문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링크에 자주 갔고, 그걸 사랑하게 됐다”고 했다. 간혹 4대(代)가 팀이 된다는, 그래서 가족 스포츠라는 컬링의 본질에 매우 가깝고, 오랜 시스템 축적의 결과다. 신화를 쓴 우리 대표팀과는 큰 차이가 있다. 스포츠뿐이 아니다. “한국과 스웨덴은 너무 다르다”고 말하는 정치인도 자주 만났다. 그러나 스웨덴은 분명 영감을 주는 분야가 많은 ‘북극성 같은’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불평등과 차별, 복지, 핵발전소, 미국 의존 외교 등 우리 사회가 지금 풀어야 할 난제들을 해결한 선례도 있다. 낮은 봉급을 받으면서도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밤낮없이 일하는 정치인이 한국에 없는 건 다르다고 할까. 스포츠 격언 중에 “승리에서는 작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패배로부터는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스웨덴의 가치를 벤치마킹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 2018-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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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원수]마을버스로 출근한 감사원장

    미세먼지가 최악이던 지난달 중순 아침 서울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 앞. 중절모와 마스크를 쓴 60대 노신사가 마을버스에 올라탔다. 서울 북촌로 중앙중학교 근처 정류장에 내려 그가 걸어간 곳은 감사원 본관 2층의 감사원장 집무실. 미세먼지 저감 대책으로 서울시가 차량 2부제를 시행하자 관용차 대신 지하철과 마을버스로 출근했다. 같은 버스에 탄 감사원 직원들도 눈치 못 챘다고 한다. 지난달 2일 임기를 시작한 최재형 감사원장 얘기다. 판사 출신인 그는 국회 인사청문회 때 ‘미담 제조기’로 불렸다. 두 아이를 입양한 게 뒤늦게 화제가 됐지만 그는 사석에서 늘 “민법에는 혼인과 입양으로 가족을 구성하게 되어 있다”며 별일 아닌 것처럼 답한다. 6·25전쟁 때 해전에 참전한 아버지, 해군 복무 중인 아들을 거론하며 의원들이 “병역 명문가 아니냐”고 하자 그는 “장조카가 척추 이상으로 복무를 안 해서 그 표현은 좀 어렵지 않나”라고 했다.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졌다”고 뿌듯해하는 판사들도 개인적으로 여럿 만났다. 최 원장은 신년 인사를 겸한 감사원 직원 특강 때 “누구든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한 자세로 일하자” “저뿐만 아니라 말단 직원들까지 함께 대한민국을 위해서 가자” 등 기본과 원칙을 강조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소박한 된장국에 밥 한 그릇 정갈하게 먹은 기분이었다”고 했다. 감사원에선 그를 ‘살아 있는 법과 원칙’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행동으로 본인이 한 말에 책임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차량 2부제에 대비해 홀짝 번호 두 대였던 관용차를 한 대로 줄이라고 지시하고, 개인 약속이 있으면 콜택시로 퇴근하는 에피소드들이 최근 관가와 정치권에서도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최 원장이 넘지 못하는 난관이 하나 있다. 개헌 시 감사원의 지위와 소속에 관한 입장을 밝히지 못한 것을 국회가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이다. 감사원의 핵심 가치를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라고 답했지만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감사원은 헌법기관이다. 헌법에 감사원 관련 조항이 총 130조 중 4개가 있다. 그런데 순서가 헌법에서 대통령, 국무총리와 국무위원, 국무회의, 행정각부에 이은 정부 분야의 맨 끝이다. 형식은 대통령 산하, 내용은 독립기관이라는 모순이 여기서 잉태된 것이다. 그나마 이것도 5·16군사정변 직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개헌할 때 처음 들어갔다. 1963년 이후 4차례 개헌 때는 감사원장 궐위 관련 대목이 삭제된 것을 빼고 나머지는 토씨 하나 바뀌지 않았다. 삼권분립, 견제와 균형이라는 원칙 아래 설계된 미국은 이와 좀 다르다. 감사원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회계감사원(GAO)은 의회 산하기관 중 조직과 예산이 가장 방대하다. 국민 세금 낭비를 막는 ‘일하는 국회’의 상징 같은 존재다. 여당은 얼마 전 감사원을 국회 소속으로 바꾸는 대안을 내놨다. 대통령 권한 축소에 관심이 큰 야당도 호응할 수 있다. 국회 권한을 찾고, 감사원을 둘러싼 해묵은 논란을 국회가 모처럼 앞장서 해결할 기회다. “감사원의 독립을 확고히 지켜 나가겠다. 외부로부터의 어떠한 부당한 간섭에도 흔들림 없이 독립하여 감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 최 감사원장이 다짐한 제1원칙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그는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기도를 한다고 한다. 입양 때도 그랬고, 감사원장직을 수락하면서도 그랬을 것이다. 기자가 덧붙이고 싶은 말은 한마디뿐이다. 아멘.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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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원수]오동나무 관(棺)의 저주

    약 5년 전인 2013년 3월 하순. 보수 정권이 재집권에 성공하고, 군인 출신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취임한 직후였다. 기자는 국정원 고위 간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얼마 전 일본으로 출국하려다 인천공항에서 발길을 돌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단연 화제였다. 혼잣말처럼 내뱉는 말에 솔깃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이후 최장수 정보기관장이 망명을 하려고 하나.” 4년 1개월 동안 재임하다 퇴임 사흘 만에 출국을 시도한 게 다소 생뚱맞긴 해도 ‘망명’이라니, 잘 납득이 안 됐다. 게다가 박정희 정부 때 6년 3개월간 중정부장을 지내고 미국으로 망명했던 김 전 부장과 비교하다니…. 원 전 원장은 왕복 항공편까지 공개하며 세간의 망명설을 부인했다. 일본에서 5박 6일 머물다 귀국할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 내부에서 먼저 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건 예사롭지 않았다. 그 후 머지않아 원 전 원장은 검찰 수사라는 늪에서 허우적댔다. 개인 비리와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첫 구속→만기출소→법정구속→보석→구속’이라는 ‘롤러코스터’를 탔다. 최근에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상납 의혹으로 추가 수사를 받았다. 화불단행(禍不單行)이 따로 없다. 그런데 그의 비극을 대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더 놀랍다. “수감 중인 게 차라리 다행이다. 서울 시내를 활보했다면 직원들부터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원 전 원장을 향한 국정원 직원들의 저주에 가까운 분노는 어디서 오는 걸까. 직원 상당수가 ‘진실로 믿고 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원 전 원장 부부가 무척 아끼던 애완견이 어느 날 죽었다. 장례 준비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직원들은 정성껏 준비했다. 그런데 불호령이 떨어졌고, 한 직원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지방으로 좌천됐다. 알고 보니 오동나무 관을 쓰지 않았던 게 주된 이유였다. 오동나무는 사람 장례용으로도 최고급 재료다. 좌천된 직원은 지방 숙소 앞에 키우던 강아지가 짖을 때마다 원 전 원장의 애완견이 떠올랐고, 분을 삭이지 못해 애꿎은 숙소 앞 강아지를 발로 걷어찼다고 한다. 이 사연을 듣고 기자는 어이가 없어서 국정원 관계자 여러 명에게 진위를 물었는데, 돌아온 대답이 “진실에 가깝다”였다. 이는 국회 정보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병기 의원이 최근 폭로한 내용과도 일맥상통한다. “원 전 원장의 패악질에 가까운 인사로 많은 직원이 고통을 당했고, 발병해 숨진 케이스도 있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5명 이내”라고 했다. ‘케이스’ 중에는 공교롭게도 직원들이 애완견을 돌보느라 시간을 허비한 얘기도 있다. 그 뒤 원 전 원장의 부인이 김 의원의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자 김 의원은 “모든 의혹은 사실”이라고 되받아쳤다. 김 의원은 국정원 출신으로 인사 분야에서만 20년 동안 근무했다. 과도한 정치 개입과 대북 정보라인의 붕괴, 특활비 상납, 거기에 개인비리까지 원 전 원장 시절 국정원은 가히 ‘눈길 위에서 가속페달을 밟듯’ 미끄러졌다. 그 대가는 “(정보와는 무관한) 서울시 공무원 출신 원 전 원장 재임 시절 국정원이 완전히 망가졌다”(이종찬 초대 국정원장)는 혹평들이다. 파산 선고를 받고, 수술대에 오른 국정원의 앞날은 오리무중이다. 아이로니컬하지만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이병호 전 원장이 이스라엘의 모사드가 세계 최고 정보기관이 된 이유를 설명한 기고문 중 일부분을 소개한다. “마법이나 비법이 아니었다. 이들은 정보기관 운영의 기본에 충실하고,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적 정보 운영의 원칙과 논리를 일관성 있게 적용했을 뿐이다.” 이 전 원장과 모사드 관련 책을 공동 번역한 문재인 정부의 서동구 국정원 1차장만이라도 이 격언을 제대로 실천했으면 한다.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 201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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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에서/정원수]목회장님의 ‘정무생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S주점 P 대표 휴대전화가 울린다. “저녁에 ‘목 회장님’이 귀한 손님 2명과 함께 찾을 것이다.” 단골인 시행사 E업체 이모 회장의 예약 전화다. P 대표는 4번방을 비워둔다. 곧바로 장부에 예약 현황을 메모한다. ‘목 회장님 2名(R4) 이.’ 그날 밤 가게에 들른 목 회장은 거침없이 주문한다. “실버오크와 치즈.” 미국 캘리포니아주 내파밸리의 와이너리 이름에서 따온 실버오크.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으로 병당 60만 원짜리다. 뉴욕 맨해튼에서도 백만장자들이 주로 마시고, 국내 골프클럽에서도 VIP 고객들만 찾는다고 한다. 얼마 전 목 회장은 같은 업소에서 셰이퍼, 덕혼 등 병당 40만 원짜리 내파밸리 와인을 주문한 적이 있다. 같은 가격대의 호주산 와인 데드암을 고르는 날도 있었다. 질병에 걸려 죽은 포도나무 중 살아남은 가지에서 딴 열매로만 만든 것이다. 동 페리뇽을 찾을 때도 있다. 스파클링 와인을 개발한 수도승 이름에서 유래한 동 페리뇽은 와인 애호가들이 꼽는 최고급 샴페인 중 하나다. 1952년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대관식 때 공식 샴페인이었다.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 등장해 유명해진 이 와인도 병당 60만 원이다. 나폴레옹이 즐겨 마셨다는 모에 로제(병당 50만 원)도 목 회장의 주문 목록에 있었다. 프랑스인 클로드 모에가 루이 15세 만찬 때 제공해 귀족들에게 유명해진 샴페인 중 하나다. 목 회장은 당시 서울 목동에 거주한 현기환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별칭이다. 실명을 적을 수 없어 술집 종업원이 그렇게 불렀다고 했다. 재임 때 그는 밤의 직장처럼 이곳을 자주 들렀다. 2015년 9월 7일부터 이듬해 6월 3일까지 38주 동안 33번을 찾았다. 여야 대치 때, 대통령이 순방 중일 때,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198만 원어치를 마셨다. 장부상 비용은 모두 3249만 원. 계산은 이 회장의 법인카드 또는 외상 장부에 달아 이 회장이 나중에 현금으로 일괄 처리했다. 이곳의 초대 손님은 대부분 여당 내 ‘내 편’이었다고 한다. 재임 때 야당 대표의 박근혜 당시 대통령 생일 축하 난을 3번씩이나 거절해 ‘완장수석’으로 불리던 그다. 그러나 재판 때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오랜 친구로부터 술 좀 얻어먹었는데…”라며 억울해했다고 한다. 3, 4차례 이 회장 몫을 빼야 한다며 검찰이 한 계산(2120만 원)에 시비를 걸어 결국 1946만 원만 유죄로 인정받았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수뢰죄 기준(2000만 원 이상)은 피했지만 3년 6개월의 징역형이 선고됐다. 현 전 수석의 지인에게 “와인 애호가였나”라고 물어봤다. “위스키를 좋아했다. 언제 눈이 높아졌나”는 답이 돌아왔다. 주문 내용을 점검했더니 아주 가끔 17년산 위스키를 찾긴 했다. 고향 부산의 양조회사가 제조한 것으로 병당 20만 원이다. 수감 중인 현 전 수석을 포함해 박근혜 대통령 시절 정무수석들이 모두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첫 정무수석인 전병헌 전 의원도 수사를 받았다. 한병도 정무수석이 임명된 지 50일이 됐다. 스스로 “술을 ‘한 병도’ 못해서…”라고 말하는 그가 꼬인 여의도 정치를 ‘목 회장’처럼 접대로 푸는 구태 정치를 할 리는 없을 것이다. 다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유인태 첫 정무수석 이후 그 자리를 없앤 것과 달리 문재인 대통령은 정무수석을 그대로 남긴 의중을 제대로 읽었으면 한다. 개헌과 권력기관 재편, 민생 등 국회가 처리해야 될 일이 산적해 있는데, 여의도엔 짙은 미세먼지만 자욱하다. 정원수 정치부 차장 needjung@donga.com}

    • 201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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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10명중 7명 “개헌 필요하다”

    국민 10명 중 7명 이상이 1987년 만들어진 현행 헌법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헌 시기에 대해 10명 중 8명 이상은 어떤 식으로든 문재인 정부 내에 개헌 투표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 동아일보가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해 12월 29, 30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현행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72.3%)는 의견이 ‘필요하지 않다’(13.2%)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다. 개헌 시기는 ‘6·13지방선거 동시 투표’(27%), ‘2020년 국회의원 총선거 동시 투표’(18%), ‘문재인 정부 임기 내인 2020년 이전 투표’(36.2%) 등 81.2%가 현 정부에서 개헌이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답했다. 개헌 시 바람직한 권력구조는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26.4%)보다 4년 중임 대통령제(40.8%)를 더 선호했다. 문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에 대해서는 긍정 평가(75.3%)가 부정 평가(20.7%)보다 3배 이상으로 높았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해 핵심 국정 과제였던 적폐청산 드라이브에 대해 ‘특별한 기간을 두지 않고 계속되어야 한다’(56.2%)가 ‘조속히 마무리해야 한다’(34.6%)는 의견보다 높게 나타났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가상 통합정당 지지도는 14.2%로 자유한국당(10.1%)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더불어민주당은 40.8%로 1위였다. 서울 거주자를 대상으로 한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3선에 도전하는 민주당 소속 박원순 현 시장이 32.1%로 가장 높았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11.1%), 한국당 후보로 거론되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8.6%),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7.2%) 등의 순서였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2018-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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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AE 왕세제 최측근 내년초 방한 추진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의 아랍에미리트(UAE) 방문을 둘러싸고 각종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UAE 왕세제의 최측근인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원자력공사(ENEC) 이사회 의장이 내년 초 방한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26일 “한국과 UAE 간 전략적동반자관계 강화를 위한 실행계획을 논의하기 위해 내년 초 알 무바라크 의장을 비롯한 UAE 고위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하는 방안을 양국이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알 무바라크 의장은 임 실장이 최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UAE 왕세제를 예방했을 당시 배석했던 인물로 사실상 UAE 권력서열 2위의 실력자로 꼽힌다. 특히 한국이 수주한 바라카 원전 건설사업을 총괄하는 UAE 원자력공사를 책임지고 있고, 세계 최대 국부펀드 중 하나인 무바달라펀드 최고경영자(CEO)를 겸하고 있다. 알 무바라크 의장의 방한은 임 실장의 UAE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양국 방위산업 협력과 정보 교류는 물론 원전 및 에너지 협력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알 무바라크 의장은 양국 관계 증진을 위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인물로 최근 특사 방문으로 확실한 파트너십을 맺기로 한 바 있다”고 말했다. 그의 방한이 성사되면 UAE 특사 방문을 둘러싼 논란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알 무바라크 의장은 2009년 이명박 정부가 UAE 원전을 수주했을 당시 이 전 대통령과도 직접 원전사업에 대해 논의하는 등 이번 논란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청와대는 이날 자유한국당이 UAE 특사 방문 의혹을 ‘원전게이트’로 규정하면서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자 재차 해명에 나섰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을 자청해 “원전 건설이 우리 측 실수로 지연돼 2조 원의 보상금을 내야 한다든지, 중소업체들이 대금을 못 받고 있다든지 하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다. 더 이상의 추측성 의혹 제기는 자제해 주길 당부한다”고 말했다. 한병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도 비슷한 시간 국회에서 국민의당, 바른정당 지도부를 면담한 뒤 기자들과 만나 ‘정치권에서 UAE 관련 사정을 설명해 달라는 요청이 있으면 어찌하겠나’는 질문에 “국익 차원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해보자면 못할 게 없다”고 답했다. 의혹 확산을 막기 위해 비공개를 전제로 얼마든지 야당 지도부에 임 실장의 UAE 방문 건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청와대가 다시 UAE 관련 해명에 나선 것은 정부가 UAE 원전 건설 지연으로 발생한 피해를 감추고 있다는 의혹이 재차 불거지면서다. 이에 초기부터 UAE 원전 건설 과정에 관여한 조환익 전 한전 사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공사가 지연돼서 관련 업체들이 철수한다든지 그런 건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정부 때 UAE와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청와대의 해명에 대해선 “공사 스케줄이 조금 늦어지기는 했지만 상식적인 범위였다. 한전은 아무런 차질이나 굴곡 없이 UAE 원전 공사를 해왔다”고 강조했다. 한국당은 이날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임 실장의 UAE 특사 방문에 대한 국정조사를 촉구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국민적 의혹이 일파만파로 증폭되고 있는 UAE 원전게이트 국정조사에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은 즉각 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입장 변화가 없다면 제1야당인 한국당은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도 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정원수 기자}

    • 2017-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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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재인 정부 명운 가를 ‘지방선거 6개월’

    15일로 내년 지방선거가 꼭 6개월(180일) 앞으로 다가왔다. 6·13지방선거는 지방 권력의 교체 외에도 5·9대선 승리 이후 적폐 청산과 복지 강화 등의 개혁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해온 문재인 정부에 대한 사실상의 중간평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문재인 정부 2기를 끌어갈 수 있는 국정동력을 얻을 수도 있고, 반대로 힘이 빠지는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사실상 현 정부의 명운이 향후 6개월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4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선거 패배, 진보교육감 13곳 당선이란 성적표를 받고 지지세가 꺾였다. 여권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대통령 5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1987년 헌법’ 개정을 통해 이른바 ‘촛불혁명’을 완성하려고 한다. 야권도 그동안 개헌 필요성 자체에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권력구조 개편은 물론이고 헌법 전문, 지방분권 등 구체적인 내용에선 의견이 제각각이다. 더욱이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 문제까지 얽혀 있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지방선거 때 개헌 동시 투표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야가 내년 2월까지 합의하지 못하면 대통령 발의를 요청할 것”이라고 했지만 이낙연 국무총리는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대통령이 발의해도) 국회에서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개헌 국민투표를 부치려면 국회 재적의원(298명)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지만 사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한 여권이 주도하는 개헌안을 116석을 가진 한국당이 찬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내년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완성이 임박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도 중대 국면에 들어선다. 북-미 관계가 대화와 무력 충돌 사이에서 복잡 미묘하게 돌아가는 시기에 평창 겨울올림픽이 열린다. 북한 선수단 참여가 성사될지, 평창 올림픽 전후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할지 등 취임 이래 문재인 정부를 괴롭혀 온 외교안보 이슈도 지방선거 판세에 영향을 미칠 주요한 변수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행정정책학)는 “대체로 여당이 압승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가변성이 너무 커서 사건, 사고 등에 휘둘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원수 needjung@donga.com·최고야 기자}

    • 201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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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종찬 “국정원 일탈은 대통령의 잘못… 다신 정권 노예 되지 말아야”

    초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 전 원장(81·현 우당기념관장)은 17일 최근 검찰의 국정원 특수활동비와 댓글 사건 수사에 대해 “‘다시는 정권의 노예가 되지 말자, 누구의 사물화가 되지 말자’고 다짐하는 마지막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국정원의 일탈은 정보 사용자(대통령)의 잘못”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 전 원장은 박정희 정부 시절인 1965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중정)에 공채 1기로 들어갔다. 1981년 전두환 정부 시절 중정이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로, 1999년 김대중(DJ) 정부 시절 안기부가 국정원으로 바뀔 때 기조실장과 원장으로서 개혁 작업에 관여했다. 검찰 수사와 조직 개편, 명칭 변경 등 큰 변화를 앞둔 시점에 이 전 원장을 서울 종로구 우당기념관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 전 원장과의 일문일답. ―한 정부의 국정원장 2명이 동시에 구속된 건 처음이다. “정보 사용자인 대통령의 문제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내가 모사드의 기관장이다’라고 했다. 대통령은 국가 정보가 얼마나 절박하고 중요한지 느끼고 있어야 한다. 정보기관이 실제 해야 되는 일이 아닌, 자신(대통령)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정보를 요구하고 사유화하려니까 타락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그만 괴롭히고 국정원이 본연의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정보 신뢰도가 떨어질까 걱정도 된다.” ―검찰의 국정원 수사는 어떻게 보고 있나. “국정원의 본래 목적과 다르게 댓글을 다는 등 국내 심리전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상대로 하는 것인데 ‘국민이 빨갱이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국민을 깔보는 것이다. 북한에서 대남공작을 하면 방어를 댓글로 하지 말고 ‘북한이 대남공작을 하니까 경계하자’고 하면 된다. 그러면 댓글을 단 사람이 북한 사람인지 국민들은 다 안다. 댓글로 방어한다는 건 일종의 변명이다.” ―검찰 수사가 국정원 개혁에 도움이 된다고 보나. “일종의 적폐청산은 불가피하다고 본다. 이번에 국정원 직원들이 재판에서 문성근 씨에 대해 왜 합성했냐고 하니까 상사의 지시로 부득이 했고 후회한다고 하더라. 이제는 부당한 지시가 내려왔을 때 본연의 임무와 다르고 법에 저촉이 된다면 거부해야 하고, 안 되면 사표를 내야 한다. 이번에 그런 것이 체계화됐으면 좋겠다. 초법적인 것은 할 수 없다는 풍토가 있어야 한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문제가 되고 있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는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짐바브웨에 접근하려는데 2인자는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부인 그레이스다. ‘구치’를 좋아해서 ‘구치 그레이스’라고 불린다. 접근을 하려면 뇌물로 구치를 사줘야 하는데 어떻게 일일이 사용처를 적나. 이때 접촉하면서 쓰는 돈이 특수활동비다. 특수활동비를 없애면 정보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다만 어디에다 썼냐는 것이다. 문고리 3인방(박근혜 정부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전 비서관)에게 용돈으로 줬다면 그건 안 된다.” ―대통령에게 국정원장의 특수활동비를 일부 주는 건 괜찮나. “대통령이 그걸 어떤 데 쓴다고 분명히 해줘야 한다. 내가 재임했을 때도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한국 노트북이 좋다고 요구해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로 사 드렸다. 어떻게 컴퓨터를 사줬다고 예산 비목에 넣을 수 있겠나. 특수활동비는 고도의 양심적인 게임이지 이것을 기록할 수는 없다.” ―DJ 정부 시절에는 어땠나. “이강래 전 의원이 당시 기획조정실장이었다. 딱 보니까 특수활동비가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비목이 많았다. 대통령에게 ‘활동에 필요하면 쓰시라’고 하니까 ‘우리는 합목적 외에는 쓰지 말자’고 딱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끊어버렸다.” ―국내 정치 개입 문제가 왜 계속 논란이 되나. “나 같은 사람이 원장으로 가는 게 문제다. 정치인 출신은 안 된다. 대통령에게 보고가 끝나고 가끔 ‘그건 요새 어떻게 돼가’라고 얘기하면 본업무가 아닌 잡담을 하게 된다. 프로들이 하면 그런 잡담도 없을 것이다. 국정원장은 정보활동을 할 수 있도록 수양이 돼 있느냐가 중요하다. 원세훈 전 원장은 서울시 공무원 하고 구청장 하던 사람이다. 그때 완전히 국정원이 망가졌다.” ―국내 정치 개입을 어떻게 막아야 하나. “문제는 사람이지 시스템이 아니다. 우리 국정원법은 미국 국가정보국(ODNI)과 같은 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국정원법 위반을 일반 공무원의 정치 개입보다 가중 처벌하도록 고치면 된다. 국정원에는 충실한 일꾼이 90%다. 국가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 집단을 무너뜨리는 것은 국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 ―민간인 위주의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활동은 어떻게 평가하나. “비밀취급 인가를 받은 사람이 활동을 해야 한다. 교수 등 너무 외부에서 투입하면 국가의 정보기관인데, 공개하지 못할 많은 얘기가 노출이 된다. 영국은 상원을 중심으로 사문(査問)위원회를 만들어서 개혁을 한다.” ―국정원 개혁의 방향은 어떻게 가야 하나. “댓글부대니 심리전이니 그런 건 혹이다. 내가 (국정원장 시절) 얼마나 고민스러웠으면 원훈을 ‘정보는 국력’이라고 했겠나. 정보는 개인의 것이 아니니 사유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국가의 일을 하기 위해 있는 것이지 정권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가 국력 신장을 하는데 대외적으로 뻗어 나가자고 정문에 광개토대왕비(이명박 정부에서 철거)를 세웠고, 이제 사람 뒤를 캐는 데 열을 올릴 게 아니라 나라를 사랑하는 게 우선이라는 개념으로 독립운동 과정에서 제일 애쓴 김구와 신채호 두 사람의 초상화를 강당에 붙였다. 그런데 뒤에 둘 다 사라졌다.” ―지금 국내 파트를 사실상 없애고 있다. “국내 파트 가운데 대공수사는 있어야 한다. 또 강화해야 할 것이 사이버 분야다. 북한의 해킹을 방어할 수 있게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 북한이 간첩을 침투시켜서 이지스함 관련 정보를 빼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나. 북한의 해킹 능력이 엄청나게 발달됐고 해커가 침투하는 게 더 빠르다. 국방부와 국정원이 (사이버 부대를) 댓글부대로 악용해 버린 것은 국력을 약화시킨 것이다. 일종의 반역이다.” ―국회의 국정원 견제는 어떤가. “국회 정보위원회는 보안을 지켜줘야 한다. 정보위에 보고하면 바로 공개가 된다. 과거 김정일이 아팠다가 이제는 칫솔을 쓸 정도의 건강은 회복됐다고 보고했는데 정보위에서 발표를 해버렸다. 김정일이 칫솔질을 하는 것을 알 정도의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중 하나가 보고했을 거 아닌가. 그러면 요원을 죽이는 일이다. 독일 의회에 가면 정보위가 지하실이 두꺼운 벽으로 돼 있어서 감청이 안 된다.” ―대통령이 국정원장 독대를 안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만나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정원장과 안 만나는 게 최고다’라고 했는데 국가 안보엔 관심이 없다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대통령을 만나서 정치 얘기를 안 하고 국가 안보에 필요한 부분만 보고를 하면 된다. 국정원으로부터 매일 보고를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3NO 정책’을 갑자기 터뜨리지 말고 국정원으로부터 중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보고를 받아야 한다. DJ 정부 때는 매일 보고를 했고 1주일에 한 번씩 대통령을 만났다.” ―국정원 직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정보 사용자가 잘못해서 국정원이 모든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국정원의 잘못이라기보다 정보 사용자의 잘못이다. ‘다시는 정권의 노예가 되지 말자’, ‘누구의 사물화가 되지 말자’, ‘개인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말을 지켜야 한다. 서훈 원장도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국정원의 사람이라 생각하고,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도 국정원에 남아 운영한다는 각오로 해야 한다. 문 대통령이 그만두면 나도 그만둔다고 생각하면 정권의 시녀가 된다. 국정원장은 정권이 아니라 국가의 파수꾼이다.”정원수 needjung@donga.com·송찬욱 기자}

    • 2017-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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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B, 참모들 불러 주말 5시간 회의… “결기 있게 정면대응”

    12일 낮 12시 인천국제공항 귀빈실 입구 앞. 이명박 전 대통령이 2박 4일 강연 일정으로 바레인 출국을 위해 공항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100여 명의 기자가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렸다. “기자 여러분들이 많이 나오셨기 때문에 짧게 몇 말씀만 드리겠다”며 입을 연 이 전 대통령은 원고 없이 3분 36초 동안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강하게 비판했다. ○“감정 풀이와 정치 보복”→“갈등, 분열 깊어져” 이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글자 수로만 보면 1000자가 조금 안 된다. 그러나 그 주제는 문재인 정부의 제1국정과제인 ‘적폐청산’에만 초점을 맞췄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은 “우리 외교안보에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군의 조직이나 정보기관의 조직이 무차별적이고 불공정하게 다뤄지는 것은 우리 안보를 더욱 위태롭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바레인행에 동행한 이동관 전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잘못된 것이 있다면 메스로 환부를 도려내면 되는 것이지 전체 손발을 자르겠다고 도끼를 드는 것은 국가안보 전체에 위태로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군 사이버사령부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댓글 지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이 전 대통령은 “상식에서 벗어난 질문은 하지 마세요. 상식에 안 맞아”라며 불쾌해했다. 권재진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명박 정부)은 통화에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구속된 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좀 더 심각해진 상황이라고 보고 있다. 이제 가만히 있을 단계가 아니라 할 얘기는 해야 할 단계라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 5시간 구수회의 “평소 울분의 반만 담아” 이 전 대통령은 토요일인 11일 오전 8시부터 5시간 동안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옛 청와대 참모진을 불러 구수회의를 했다. 메시지의 강도나 분량, 구체적인 문구를 놓고 장시간 회의가 이어지면서 일부 참모는 도시락을 배달시켰다고 한다. 당초 결정된 메시지는 공개된 것보다 강도는 더 세고, 길이는 짧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핵심 참모는 “이 전 대통령이 이런 사안에 대해선 결기 있게 해야 한다, 정면 대응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시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메시지 강도가 당초 회의 때보다 낮춰졌고 분량은 좀 더 길게 조정되긴 했지만 추석 때에 비하면 수위가 크게 높아졌다. 적폐청산에 대해 ‘감정 풀이’ ‘정치 보복’을 언급한 이 전 대통령은 “한 국가를 건설하고 번영케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파괴하고 쇠퇴시키는 것은 쉽다”고 했다. 적폐청산을 사실상 나라를 건설하기보다는 파괴하는 국정운영으로 규정지은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부가 들어와서 오히려 사회 모든 분야가 갈등이, 분열이 깊어졌다고 생각해서 저는 많은 걱정을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최금락 전 홍보수석은 통화에서 “평소엔 더 울분을 갖고 있었다. 이 정도면 그 반 정도밖에 안 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은 추후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추가 입장을 밝힐 가능성도 있다.○ 청와대 무대응 속 상황 예의주시 청와대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현안점검회의를 가졌지만 무대응 방침을 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을 수행 중인 윤영찬 국민소통수석비서관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가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 문제가 ‘보수 대 진보’의 전면 대결 양상으로 번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분열된 보수 진영이 빠르게 결집하는 것은 청와대에도 부담이다. 자칫 ‘전(前) 정권을 넘어 전전(前前) 정권까지 겨냥하는 정치 보복’이라는 프레임을 부각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면 충돌로 치달으면 정치 공방에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 내년부터 본격적인 정책 드라이브로 나서야 하는데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1일 국회 시정 연설에서 적폐청산 대신 ‘국가 혁신’을 새롭게 꺼내 든 바 있다. 그러나 검찰 수사가 어느 쪽으로 흐르든 정치적 부담은 고스란히 청와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정원수 needjung@donga.com / 영종도=송찬욱 / 한상준 기자}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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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종석 “전병헌-탁현민 사건, 靑 내부 알력과 무관”

    10일 내년도 청와대 예산안 심사를 위해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장. 자유한국당 이은권 의원은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에게 “대통령을 보좌하는 책임자로서 대통령에게 누가 돼선 안 된다”, “비서실장은 반대편 집단도 함께하는, 온 국민도 함께하는 자리”라고 충고하듯 얘기했다. 6일 청와대 국정감사 때 야당이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경력을 거론하자, “그게 질의냐”고 야당 의원을 몰아세웠던 임 실장의 태도를 문제 삼은 것이다. 임 실장은 웃으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변하면서 넘겼다. 야당 의원들은 임 실장에게 전병헌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사퇴를 강하게 압박했다. 전 수석의 옛 보좌진 3명은 9일 수뢰 혐의로 구속돼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전 수석은 같은 시각 국회 다른 회의실에서 열린 예산결산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했다. 한국당 민경욱 의원이 “새로 출범한 정권에 부담을 주고 있는 만큼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한 것에 대해 임 실장은 “아직 예단할 일이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임 실장은 “청와대 직무와 관련해서 벌어진 일은 아니다. 본인의 직접 관련성 여부조차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민 의원이 “전 수석이 임 실장보다 나이도 많고 의원 선수도 높다. 핵심 실세와 성향이 달라 의견이 충돌한다는 보도가 있다. 맞느냐”고 질의하자 임 실장은 “그럴 리가 있나”라고 부인했다. 임 실장은 “그런 문제 없이 대통령을 보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임 실장은 전 수석보다 8세 아래다. 전 수석은 3선 의원을 지냈지만 임 실장은 재선 국회의원 출신이다. 최근 탁현민 대통령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올해 초 대선 때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것이 “청와대 내부 알력 다툼을 감추기 위한 구색 맞추기용 응급조처 아니냐”고 따지자 임 실장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 실장은 “지난 대선 캠페인 과정에 있었던 일이고,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드리고 싶은 말이 많지만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한국당 정태옥 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사시설과 무기에 대해서 (한국이) 미국 측 입장을 들어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한 점을 상기시키며 이면합의 여부에 대해 질의했다. 임 실장은 “(한미 정상회담 때) 국익을 저해할 만한 이면합의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검찰이 수사 중인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의 청와대 상납 사건에 대해 임 실장은 “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이 부분은 대통령께서 분명하게 하셨다. 지금까지 그런 일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광화문으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기 위한 예산 항목이 없다”고 하자, 임 실장은 “집무실 이전은 내년에 발표될 개헌안에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담기는지 본 뒤 복합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답했다.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2017-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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