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 10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의 문화재 복원을 담당하고 있는 피렌체 문화유산보존진흥연구소(ICVBC). 실험복을 입은 연구원들이 각종 첨단 실험장비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주사전자현미경(ESEM)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던 스쿠디에리 씨(21)는 자신1을 인근 의과대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의대 학생이 문화재 복원 연구소에는 왜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곳은 의학뿐만 아니라 지질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분야의 과학자들이 함께 연구한다”고 말했다. 》 이탈리아 문화재 복원의 높은 경쟁력은 여러 연구소의 긴밀한 협업 시스템에서 나온다. 갈수록 문화재 보수나 복원에 고도의 과학기술이 접목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ICVBC는 전국 108개 연구소를 거느린 국립연구위원회(CNR) 소속으로 다른 산하 연구소와 실험장비와 인력을 공유한다. 유물의 연대 측정에 필요한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의 경우 물리학 연구소의 장비를 함께 사용한다. ICVBC 입주 건물에만 12개의 기초과학 연구소가 함께 있다. 최근 ICVBC의 문화재 관리 화두는 정보기술(IT)이다. 특히 문화재 보수나 복원은 현장에서 진행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다른 연구기관과 손잡고 IT를 활용한 모바일 기기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예컨대 소량의 샘플을 채취해 즉석에서 성분을 분석할 수 있는 ‘X선 구조분석기’ 등을 들고 문화재 복원 현장으로 출동한다. 마리아 벨라 콜롬비니 소장은 “각종 IT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2년 전 로마 주변 카타콤 유적에 대한 정밀조사를 마쳤다”며 “15km에 이르는 카타콤 곳곳에 200개의 센서를 설치해 실시간으로 균열 여부 등을 체크한다”고 설명했다. IT에 특화된 외부 연구기관과의 협업도 빼놓을 수 없다. 이탈리아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14세기 치마부에 벽화의 경우 피사대가 3차원(3D) 복원을 시도하고 있다. 1997년 대지진으로 부서진 치마부에의 벽화 조각 5만 개를 일일이 3D 카메라로 찍은 뒤 특수한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원래의 모양을 맞추는 작업이다. 전통 방식으로 복원하기 어려울 때에는 과감하게 신재료를 개발한다. 최근 노르웨이 오슬로대와 ICVBC가 공동으로 진행 중인 바이킹 선박 보존 프로젝트에서는 배 표면에 바르는 도료를 3년간 개발했다. ICVBC 연구진이 현장에 수년간 머물며 새로 개발한 도료의 착색 상태를 면밀히 점검했다. 꾸준히 실험데이터를 수집하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ICVBC 내 미생물실험실에서는 여러 개의 대리석 위에 물을 뿌리고 시간 흐름에 따라 이끼 등 미생물이 얼마나 번식하는지를 두 달째 실험하고 있었다. 특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 얻은 2개월간의 실험데이터를 분석하면 실제 문화재 현장에서 2년간의 환경 변화를 예상할 수 있다. 수산나 브라치 연구원은 “건축 문화재에 들어가는 모르타르의 부식 정도를 측정하면 복원 시 어떤 재료를 써야 할지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피렌체=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세계 5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우피치. 8일(현지시간)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작 '비너스의 탄생 (보티첼리 작)' 앞에서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방 울렸다. 몇 년 전 로마 박물관에서 사진촬영을 하다 제재를 받은 경험이 떠올랐다. 그러나 작품 바로 옆에 서 있는 직원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조심스레 묻자 "플래시만 터트리지 말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탈리아 문화재 당국은 지난달부터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상업적 목적을 제외한 일반인들의 촬영을 전면 허용했다. 저작권 침해 우려도 나왔지만 관람객을 늘려야한다는 현실적인 필요가 더 컸다. 블로그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전시 사진이 올라가면 일종의 '바이럴 마케팅(입소문 판매전략)'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유럽 경제위기와 무관치 않다. 올 상반기 이탈리아 청년실업률은 46%까지 치솟을 정도로 경제상황이 심각하다. 이에 따라 박물관 입장 수입이나 기부금도 크게 줄었다. 현재 피렌체 소재 27개 박물관 가운데 몸집이 큰 우피치, 아카데미아를 제외하고 25개가 모두 적자에 빠졌다. 일부 박물관은 인건비를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아예 표 판매원마저 두지 않고 사실상 무료 전시로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반대로 입장 수입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전시 시간을 자정까지 늘린 곳도 있다. 이들 박물관은 최근 중국 일본 등으로의 해외전시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작품을 빌려주고 대여료나 문화재 수리비용 등을 받을 수 있어서다. 최근 경제적으로 부상한 중국이 대여전시에 적극적인 편이다. 우피치 박물관 관계자는 "르네상스 주요 미술품을 제대로 즐기려면 유럽보다 중국으로 가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했다. 최근 중국은 이탈리아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등 주요 박물관 등과 5년 단위의 장기계약을 맺고 작품을 들여와 매년 전시회를 벌이고 있다.피렌체·로마=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국내에서 육식 공룡의 두개골 화석이 처음 발견됐다. 기존에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종일 가능성이 제기돼 주목된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경남 하동군 금성면 가덕리에서 육식 공룡의 골격 화석 한 점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연구소는 두 발로 걸으며 사냥을 하는 육식 공룡인 ‘수각류(獸脚類)’에 해당된다고 설명했다. 공룡화석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쉬싱(徐星) 중국학술원 교수로부터 수각류 공룡의 두개골로 보인다는 확인을 받았다. 국내에서 수각류 공룡의 두개골과 아래턱이 한꺼번에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또 척추뼈와 갈비뼈가 연결된 상태로 발견된 것도 희귀하다. 이 화석은 지난달 8일 낚시를 하던 주민이 우연히 발견해 신고한 것이다. 아직 골격을 암석에서 분리하지 못해 어떤 종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연구소 측은 소형 육식 공룡인 ‘미크로랍토르’(그림)와 비슷한 종이거나, 새로운 종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화석이 발견된 지층은 중생대 백악기 전기인 1억1000만∼1억2000만 년에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화석에서 두개골 크기는 길이 5.7cm, 폭 2.6cm이며, 발견된 골격의 전체 몸길이는 약 28cm. 이 공룡이 생존했을 때의 전체 몸길이는 50cm로 소형 공룡인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향후 1년간 화석 보존처리 작업을 거쳐 뼈와 암석을 분리해 낼 예정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6일(현지 시간) 로마에서 차로 2시간 반 거리의 이탈리아 중세도시 아시시. 고풍스러운 성벽을 지나 언덕을 오르자 좌우로 긴 회랑을 거느린 ‘성 프란치스코 성당’이 나왔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존경받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유해가 잠든 이곳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대예배당에 들어서자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 주변으로 사방의 벽은 물론이고 5m 높이의 천장에까지 거대한 벽화가 빼곡히 그려져 있었다. 치마부에, 조토, 시모네 마르티니, 피에트로 로렌체티 등 13, 14세기 르네상스 미술의 거장들이 남긴 벽화다. 군데군데 벽화가 떨어진 흔적도 보였지만 오히려 700년 전 원형을 간직했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벽화들이 17년 전인 1997년 9월 26일 대지진으로 무너져 30만 개의 조각으로 부서진 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당시 보수 책임자로 이곳을 찾았다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세르조 푸세티 씨는 “첫 지진이 발생한 지 9시간 뒤 여진이 일어났는데 볼트(궁륭·穹륭,·아치형 천장)에 금이 좍 가더니 벽이 순식간에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며 “순간 출구 쪽으로 뛰었지만 결국 천장에 깔렸는데, 함께 내부를 점검하던 네 명은 숨지고 나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성당의 붕괴는 즉각 국민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복구를 위해 자원봉사자가 몰렸고 거액의 성금도 걷혔다. 이탈리아 정부와 바티칸 측은 문화재 복원 전문가 300명을 불러 모았다. 2년간 2800만 유로(약 388억 원)가 투입된 대역사의 시작이었다. 우선 무너진 구조물과 벽화 조각들이 뒤섞인 참사 현장을 정사각형으로 나눠 번호를 부여한 뒤 잔해를 밖으로 퍼 날랐다. 벽화 조각의 낙하지점을 알아야 짜 맞출 때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어 자원봉사자 500명이 벽화 조각과 건물 잔해를 일일이 수작업으로 분리해냈다. 걸러진 벽화 조각들은 회화 복원 전문가들 손에 맡겨졌다. 이들은 사고 이전 성당 내부를 촬영한 사진과 각종 문헌자료를 참조해 벽화 조각 30만 개 중 25만 개를 맞춰내는 데 성공했다. 꼬박 2년이 걸렸다. 아직 맞추지 못한 5만 개는 치마부에의 작품으로 현재 피사대에서 복원 중이다. 복원 과정에서는 전통 방식만 고집하지 않았다. 맞춰낸 벽화를 벽체에 붙일 때 전통 모르타르나 시멘트 대신 특수 개발한 ‘접착제’를 사용했다. 시멘트 등에는 벽화에 손상을 주는 소금 성분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접착제는 21번의 테스트 끝에 겨우 완성됐다는 뜻에서 ‘21아시시’로 명명됐다. 복원된 벽체에도 첨단과학이 대폭 적용됐다. 지진에 강한 벽체를 만들기 위해 탄소섬유로 골조를 세우고 길이 13m짜리 독일산 철강 띠를 벽 안에 둘렀다. 철강 띠 중간에는 상하좌우로 약간씩 움직일 수 있는 철강 판을 설치해 지진파를 흡수할 수 있도록 했다. 정수희 프랑스 문화유산보전복원센터 연구원은 “1970, 80년대부터 성당 곳곳에 대한 사진이나 조사 자료를 풍부하게 만들어 놓아 벽화 복원이 가능했다”며 “벽화는 원형대로, 구조물은 첨단과학으로 적절히 복원했다”고 설명했다.아시시=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3∼13일 이탈리아에서 진행한 ‘KPF 디플로마-건축 문화재의 보존과 복원’ 연수과정을 통해 취재가 이뤄졌습니다.}

섬나라 일본이 근대 초기 대륙침략의 첫 단추로 여긴 것은 해군력 강화였다. ‘해군의 탄생과 근대 일본’(그물)의 저자는 막부 말기부터 메이지정부 초기까지 진행된 일본의 해군 창설을 추적해 근대화 과정을 분석하고 있다. 일본의 근대화를 다룬 수많은 연구가 나왔지만 이 책처럼 해군에 초점을 맞춘 것은 드물다. 사관학교 교관을 거쳐 현재 국방대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의 경력이 독특한 연구를 가능케 했다. ―왜 하필 해군에 초점을 맞췄나. “석사과정을 마치고 군 복무를 위해 사관학교에서 전쟁사를 가르쳤는데 자료가 주로 서구 전쟁사 위주였고 동아시아 전쟁사는 거의 없었다.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동아시아 전쟁사 연구를 했다.” ―육군이나 공군도 근대화가 이뤄졌을 텐데…. “19세기 일본 근대화에선 해군력 증강의 사회적 파급력이 더 컸다. 당시 군함에 들어가는 산업적, 학문적 수준은 현대의 정보기술(IT)처럼 첨단을 달렸기 때문이다. 서구에서도 목조 범선에서 철제 군함으로의 혁신이 1860년대에 일어난다. 바야흐로 ‘해군 혁명’의 시대였다.” ―일본 ‘해군 혁명’의 원인은 뭔가. “원래 막부는 반란을 막기 위해 대선(大船) 제조를 금지했다. 하지만 막부 말기에 이르면 아시아로 밀려들어오는 서구 열강에 맞서기 위해 금지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결국 막부는 물론이고 지방의 번(藩)들이 독자적으로 대형 군함을 만드는 등 해군력 강화에 나섰다. 그러다 1853년 미국 페리함대의 출현으로 서구 군함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 우위에 섰다. 반면 우리나라에도 제너럴셔먼호 같은 이양선이 들어왔지만 이를 배척하는 데 급급했다.” ―당시 조선이나 청은 왜 해군 혁명에 성공하지 못했나. “일본은 단순히 군함만 도입한 것이 아니다. 항해술과 지리학, 조선공학, 관료제 등 다양한 근대 지식과 제도를 꾸준히 축적해 나갔다. 반면 조선은 성리학 체계에 갇혀 새로운 지식 습득에 뒤처졌다. 중국은 1860년대에 근대적 해군 함대인 북양함대를 만들었지만 황제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전시용에 그쳤다. 이로 인해 예산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청일전쟁에서 북양함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지금 서울역사박물관에 가면 ‘응답하라 1994, 그 후 20년’이라는 독특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곳은 고색창연한 유물로 꾸며진 기존 박물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1990년대 중반 유행했던 인기가요가 흐르고, 그때 청년들이 사용했던 일상 용품들이 관람객의 향수를 자극한다. 수백, 수천 년 전 유물이 도저히 줄 수 없는 사적인 체험을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것이다. 이 책은 특권층에서 서민 중심으로, 보관에서 보여주기 위주로, 과거 유물 전시에서 현재적 체험 중심으로 바뀐 박물관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저자는 프랑스 파리1대학 팡테옹-소르본 미술사학과 교수로 박물관의 역사를 예술, 건축사적 흐름과 연결지어 설명한다. 저자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을 현대 박물관의 분기점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국립박물관이 잇달아 세워지면서 귀족과 지식인의 전유물이 아닌 시민의 공간으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접어들자 민족주의의 여파로 박물관은 국가나 공동체의 상징이 되어갔다. 특히 파시즘이 기승을 부린 20세기에 박물관은 정치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됐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포스트모더니즘이 대두되면서 박물관의 개념도 좀 더 개성적이고 대중적인 실험에 나선다. 대표적인 흐름이 ‘보관하는 박물관’에서 ‘보여주는 박물관’으로의 변화다. 유물을 끌어모아 수장고에 가둬 두는 게 능사가 아니라 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가치 있게 관람객에게 보여줄지가 화두가 됐다. 박물관은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거의 유물을 보여주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현재’를 담아내고 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같은 초군(병사)끼리 서로 죽였으니 군법에 의해 마땅히 목을 베어야 하는 사안입니다. 신해룡의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달아 놓고 뭇사람에게 보여 군율(軍律)을 엄숙하게 바로잡는 게 어떻습니까?”(1643년 10월 21일) 인조 21년에 훈련도감이 기록한 업무일지 ‘훈국등록(訓局謄錄)’에 나오는 한 장면이다. 당시 초병이던 신해룡이 동료 김진성을 조총으로 쏘아 죽인 일을 놓고 훈련도감이 수사를 벌인 기록이 자세히 적혀 있다. 신해룡은 “술을 마시고 춤을 추다 실수로 조총에 불심지가 떨어져 오발탄이 발사됐다”고 해명했지만 훈련도감은 동료 병사들과 주변인 조사를 통해 ‘계획된 살인’으로 결론지었다. 신해룡이 사건 직후 김진성을 내버려두고 도망을 친 데다 평소 둘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병사들의 진술이 있었다. 또 수가 틀리면 신해룡 스스로 자해를 일삼는 등 성격이 포악했다는 증언까지 더해졌다. 일자마다 진술 내용이 자세히 적힌 훈국등록을 보고 있노라면 왜 이 책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과 더불어 대표적인 조선시대 기록유산으로 꼽히는지 이해가 간다. 원창애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은 한중연 장서각이 20일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한국문화 스토리텔링의 보고 훈국등록’ 논문을 발표했다. 16∼19세기의 300년 동안 훈련도감의 업무내용을 매일 기록한 ‘훈국등록’은 총 94책에 달한다. 원 연구원은 “조총 살인사건에 나오는 여러 진술 내용을 통해 당시 병사들의 생활상을 들여다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특히 어의(御醫) 이동형의 일가와 얽힌 뒷이야기(훈국등록 1705년 10월 6일)도 흥미를 끈다. 이동형은 현종의 핵환(核患·종기)을 치료해 2품관인 동지중추부사에 오른 인물이다. 이동형 사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그의 아내와 아들은 훈련도감에서 은 300냥을 대출받았다. 군사기관인 훈련도감이 민간을 상대로 ‘이자놀이’를 한 셈이다. 빈털터리가 된 모자는 빚을 갚지 못해 관노비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이들의 딱한 사정은 조정에까지 알려졌고 약방 도제조로 있던 신완(申琓)이 숙종에게 선처를 호소했다. 숙종은 세자 시절 이동형이 자신의 병을 치료한 걸 기억해내고 빚을 모두 탕감해줬다고 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숙모님 앞. 서릿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 알고자 합니다. (큰외숙모님을) 뵌 지 오래돼 섭섭하고 그리웠는데 어제 편지 보니 든든하고 반갑습니다.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고 하니 기쁘옵니다. 원손(元孫)’ (1755∼1756년 추정) 정조가 원손 시절인 4∼5세 무렵 큰외숙모인 여흥 민씨에게 보낸 편지다. 삐뚤삐뚤한 글씨여서 한눈에 봐도 어린아이가 쓴 편지임을 알 수 있다. 추운 날씨에 외숙모와 외할아버지의 안부를 챙기는 내용만 놓고 보면 어린이가 썼다고 보기 힘들 정도로 의젓하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정조의 한글 편지첩과 정조의 비인 효의왕후 김씨의 ‘곤전어필’, 서포 김만중의 딸인 김씨 부인의 한글 ‘상언(上言·국왕에게 올리는 탄원서)’ 등을 엮은 ‘소장자료 총서’를 21일 발간한다. 모두 조선후기인 18세기 왕실 관련 한글 필사본이다. 특히 정조의 한글 편지첩은 그가 원손 시절부터 재위 22년까지 쓴 편지 16통으로 기존에 알려진 3통 외에 13통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고은숙 학예연구사는 “어린이 필체로 된 조선시대 한글 편지가 드물고 정조의 편지 중 한글로 쓴 것은 편지첩이 유일해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총서에 포함된 ‘곤전어필’은 전문이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효의왕후 김씨가 한문소설 ‘만석군전’과 ‘곽자의전’을 번역해 한글로 직접 옮겨 쓴 책이다. ‘한글상언’은 신임옥사 때 목숨을 잃은 이이명의 부인인 김씨가 손자와 시동생을 구명하기 위해 영조에게 올린 탄원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여러 식물 중에 사용함에 이롭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南靈草·담배)만 한 것이 없다. (중략) 그대들은 들은 것을 모두 동원해 남령초의 이점을 자세히 증명해보라’(1796년 ‘초계문신(抄啓文臣) 친시(親試)’) 정조가 초계문신(37세 이하 관리 중 유능함을 인정받아 선발된 신하들)들에게 몸소 출제한 시험 문제의 한 구절이다. 정조는 시험 문제에서 “마음과 몸에 쌓인 피로로 가슴속이 항시 막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며 “백방으로 약을 구했지만 오직 남령초에서만 힘을 얻어 밤잠을 편히 잘 수 있었다”라는 내용도 적었다. 흡연의 폐해가 널리 알려진 요즘 상황을 비춰볼 때 국왕이 담배 예찬론을 펴는 모습이 사뭇 이채롭다. 정조는 초계문신 한 기수당 5∼7명을 모아놓고 직접 강의를 하거나 시험 문제를 내고 채점까지 맡았다.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은 정조가 출제한 시험 문제지 ‘전책제초(殿策題草)’와 과거 답안 중 우수작을 모아놓은 임헌공령(臨軒功令) 등 총 107점을 ‘귀한 나무처럼, 어린 싹처럼: 조선시대 인재양성’ 전시회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연구원은 남령초 문제 등 총 7장의 시험 문제지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엔 1797년 성균관에서 출제된 내용을 공개했다. 이들 책문은 응시자들이 멀리서 볼 수 있도록 폭이 4m에 이른다. 과거시험 답안지에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장치가 마련된 점도 흥미롭다. 응시자 이름과 부친의 신원 등을 기록하는 부분을 접어서 봉한 뒤 도장을 찍어 펴보지 못하도록 했다. 황재문 연구원 교수는 “점수를 매길 때 인적사항이 기재된 부분을 답안과 분리하고 채점이 끝나면 이들을 다시 꿰매서 합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1월 15일까지. 무료. 02-880-6030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여러 식물 중에 사용함에 이롭고 사람에게 유익한 것으로는 남령초(南靈草·담배)만한 것이 없다. (중략) 그대들은 들은 것을 모두 동원해 남령초의 이점을 자세히 증명해보라' (1796년 '초계문신(抄啓文臣) 친시(親試)') 정조가 초계문신(37세 이하 관리 중 유능하다고 선발된 신하들)들에게 몸소 출제한 시험 문제의 한 구절이다. 정조는 시험문제에서 "마음과 몸에 쌓인 피로로 가슴 속이 항시 막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며 "백방으로 약을 구했지만 오직 남령초에서만 힘을 얻어 밤잠을 편히 잘 수 있었다"라는 내용도 적었다. 흡연의 폐해가 널리 알려진 요즘 상황을 비춰볼 때 국왕이 담배 예찬론을 펴는 모습이 사뭇 이채롭다. 정조는 초계문신 한 기수 당 5~7명을 모아놓고 직접 강의를 하거나 시험문제를 내고 채점까지 맡았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정조가 출제한 시험문제지 '전책제초(殿策題草)'와 과거답안 중 우수작을 모아놓은 임헌공령(臨軒功令) 등 총 107점을 '귀한 나무처럼, 어린 싹처럼: 조선시대 인재양성' 전시회를 통해 선보이고 있다. 연구원은 남령초 문제 등 총 7장의 시험문제지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번엔 1797년 성균관에서 출제된 내용을 공개했다. 이들 책문은 응시자들이 멀리서 볼 수 있도록 폭이 4m에 이른다. 과거시험 답안지에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장치가 마련된 점도 흥미롭다. 응시자 이름과 부친의 신원 등을 기록하는 부분을 접어서 봉한 뒤 도장을 찍어 펴보지 못하도록 했다. 황재문 연구원 교수는 "점수를 매길 때 인적사항이 기재된 부분을 답안과 분리하고 채점이 끝나면 이들을 다시 꿰매서 합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1월 15일까지. 무료. 02-880-6030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한국문학번역원이 주관하는 제12회 한국문학번역상 수상자로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등 5명이 선정됐다. 서 교수는 김원일 작가의 장편소설 ‘마당 깊은 집’을 지난해 영어로 번역했다. 또 마리야 쿠즈네초바(러시아어·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조희선 명지대 교수와 마흐무드 아흐마드 압둘 가파르 이집트 카이로대 부교수(아랍어·김광규 ‘상행’), 임윤정 씨(포르투갈어·한강 ‘채식주의자’)도 수상했다. 상금은 1만 달러.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동학당에 대한 처치는 엄렬함을 요한다. 향후 모조리 살육할 것.’ 1894년 10월 27일 오후 9시 30분 도쿄의 일본군 대본영이 인천 파병부대에 하달한 전신 명령이다. 이날 조선 공사 이노우에 가오루는 동학농민군 토벌을 위해 2개 중대를 추가 파병해 달라는 전신을 도쿄에 보냈다. 상관인 외상을 건너뛰고 총리 이토 히로부미에게 직보할 정도로 다급했다. 다음 날 이토는 오히려 3개 중대로 파견 규모를 늘리면서 동학농민군의 재기가 불가능하도록 아예 싹을 잘라버리라는 ‘살육 지시’를 내린 것. 20여 년간 동학농민전쟁을 연구한 일본 역사학자 나카쓰카 아키라 나라대 명예교수와 이노우에 가쓰오 홋카이도대 명예교수는 신간 ‘동학농민전쟁과 일본’(모시는사람들·사진)에서 “동학농민전쟁은 일본군이 저지른 최초의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라고 규정했다. 우발적 충돌에 따른 살상이 아닌 철저히 계획된 ‘대량학살’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군 3개 중대는 세 방면에서 동학농민군을 포위해 한반도 서남부로 몰고 들어간 이른바 ‘3로 포위 섬멸작전’을 펼쳤다. 이들은 그 증거로 일본군 사이에서 오간 전신 명령뿐만 아니라 도쿠시마 현 출신 참전병사의 개인 일지까지 찾아냈다. ‘우리 부대는 서남 방면으로 추격해 농민군 48명을 죽이고 부상자 10명을 생포했다. 살아남은 포로는 고문한 다음 불에 태워 죽였다.’(1895년 1월 장흥) ‘동학당 7명을 잡아와 그들을 성 밖의 밭 가운데 일렬로 세우고 총에 검을 장착해 모리타 일등 군조의 호령에 따라 일제히 그들을 찔러 죽였다.’(1895년 1월 해남) 이 시기에 보수적으로 잡아도 동학농민군 3만∼5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두 역사학자는 청일전쟁에서 일본이나 청나라군의 희생자 수를 넘어서는 규모라고 말한다. 두 역사학자는 동학농민전쟁이 또 하나의 청일전쟁이면서도 기억 속에서 철저히 잊혀졌다고 지적한다. 일본군은 특히 학살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학은 민간의 저속한 미신’이라는 견해를 퍼뜨렸다. 하지만 이 같은 학살은 일본 군인에게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한 병사는 충북 옥천에서 쓴 일기에서 ‘60리에 걸쳐 민가에는 사람이 없었고 수백호가 불에 타 없어졌으며 많은 사체가 노상에 버려져 개와 새의 먹이가 되고 있다’며 ‘그날 밤 (동료를 만나) 지금까지의 고통스러움을 서로 이야기하는 데 수시간을 보냈다’고 적었다. 섬멸작전에 참가했던 한 일본군 대위는 작전 직후 경동맥을 끊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저자들은 이 학살의 최종 책임은 학살을 지시한 대본영의 이토 히로부미 총리 등 최고지도자에게 있다고 지적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케냐 전통음악 은춘고와 한국 농악은 분위기가 비슷하더군요.” 케냐 아프리카문화부흥원 제시 무라우키 이타이 연구원(27)은 최근 열린 한국문화재재단의 국제 심포지엄에서 ‘케냐 은춘고와 한국 농악의 비교 연구’를 발표했다. 논문 발표 뒤 만난 이타이 씨는 “농악과 은춘고는 둘 다 풍년을 비는 음악인 데다 신명을 구하는 장단이나 타악기 중심의 악기 구성, 지방마다 지니는 고유의 향토성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농악은 지난달 29일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사실상 등재됐다. 이타이 씨는 우리나라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의 일환으로 6월 문화재재단에 파견됐다. 고국에서 그는 영국 식민지 시절 파괴된 전통문화를 조사하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는 일을 맡아 왔다. 그는 “일제강점기를 거친 한국처럼 케냐도 전통문화는 뒤떨어지고 낡은 것이라는 인식을 식민지 정부에 의해 강요당했다”며 “과거 한때 법으로 전통음악 공연 자체가 금지되기도 했다”고 했다. 그동안 국내 문화재 관리현장을 두루 살폈다는 그는 한국의 무형문화재 보호제도에 대해 부러움을 표시했다. 6개월 과정을 마치고 4일 출국하는 그는 “무형문화재 전승자를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등 정부가 나서 무형유산을 보호하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첨단 기술은 과연 축복인가 저주인가. ‘노동의 종말’을 쓴 제러미 리프킨 등 많은 미래학자들이 첨단 기술의 도래에 따른 고용시장의 영향을 다양하게 분석했다. 이 책의 저자도 테크놀로지 발전으로 급변하는 사회에서 ‘뜨는’ 일자리가 무엇이며 개인은 이에 맞춰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지 분석한다. 미래의 산업 트렌드를 미리 알고 대비하는 사람들에게 첨단 기술은 오히려 성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면서 필름사진 현상소들이 대거 문을 닫았지만 포토샵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스튜디오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마찬가지로 미래 첨단 기술의 최대 화두인 인공지능이 발달할수록 개인의 잠재력은 커지며 이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미래 사회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경쟁상대가 아니라 인간 두뇌의 보조도구라는 인식을 가져야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이런 변화에 대비하려면 ‘미래형 탐구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지식을 그저 외우는 게 아니라 제대로 이해해서 지혜로 습득하는 자세를 뜻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금융의 특성 때문에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라는 비난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소 섭섭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우리의 운명입니다.” 우리나라 금융을 총괄하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의 올해 신년사다. 한마디로 은행의 안전성을 위해 경기 불황 시 서민이나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는 ‘우산 걷어 들이기’ 식 금융관행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신 위원장의 신년사 어디에도 ‘가계부채’라는 단어를 찾아볼 수가 없다. 불과 지난해까지 1000조 원에 육박한 가계부채를 해결하겠다며 정부가 부산을 떨었던 게 언제냐 싶다. 이 책의 두 저자는 신 위원장의 신년사를 들었다면 당장 우려를 쏟아냈을 것이다. 이들은 한국어판 서문에서 “가계부채에 의존한 성장은 매우 위험하다. 한국 경제가 당면한 위험은 우리가 해외의 여러 역사적 사례에서 살펴본 경우와 유사하다”고 경고한다. 두 저자는 ‘21세기 자본론’으로 유명한 토마 피케티와 더불어 국제통화기금(IMF)이 선정한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45세 이하 경제학자 25인’에 선정됐다. 로런스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전 미국 재무장관)는 이 책을 “2008년 금융위기와 뒤이은 대침체에 관한 가장 중요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이들의 주장은 간명하다. 역사적으로 심각한 경기침체의 근원에는 늘 가계부채가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1930년대 대공황과 2008년 경기침체 직전 가계부채가 급증했다. 또 두 사건 모두 가계지출이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급감하면서 시작됐다”고 적고 있다. 가계부채가 특히 위험한 건 자산가격 급락 시 채무자에게 일방적 손실을 안겨주는 금융제도 속성상 저소득층의 급격한 소비 위축을 부르기 때문이다. 소비 위축은 결국 기업 이윤 악화와 투자 감소, 상환 불능으로 이어져 금융기관은 물론이고 거시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입히게 된다. 이와 관련해 채무자에게 가혹하리만치 상환을 몰아붙이는 금융시스템이 경기 침체를 더 악화시켰다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스페인 정부의 경우 채무자에 대한 빚 탕감 등 채무 조정이 은행의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러나 저자는 은행이 흔들리는 것보다 채무자들의 소득 감소에 따른 악영향이 경제에 훨씬 큰 부담을 안긴다고 지적한다. 심각한 가계부채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견해도 눈여겨볼 만하다. 경기 침체로 자산 가격이 떨어지면 돈을 빌려 집을 산 서민층의 순자산은 감소하게 된다. 최악의 경우 빚을 갚지 못해 집을 압류당하는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은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다. 저자는 경기 침체 이후 서민층의 자산 손실이 금융기관의 주식이나 채권을 보유한 고소득층의 수익으로 이전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거시경제에 독소로 작용하는 가계부채의 해법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집값이 떨어졌을 때 자산 손실을 채권자와 은행이 함께 나누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책임 분담 모기지(shared responsibility mortgage)’다. 채무자 일방이 손실을 보도록 설계된 현 대출시스템의 경직성을 탈피해 집값이 떨어진 만큼 금리를 낮춰주자는 것이다. 단, 집값이 오를 때에는 금융기관에 일정 수준의 추가 수익을 보장해준다는 조건이 붙는다. 그럴싸한 해법 중 하나이긴 한데 금융기관에 자산가격 하락으로 인한 손실을 나눠 지도록 하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될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경북 의성에서 5세기 후반 신라시대 금동관모가 출토됐다. 장식봉이 달린 금동관모가 신라지역에서 발굴된 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발굴기관인 성림문화재연구원이 경북 의성군 금성산 고분군에서 금동관모 등 유물 1000여 점을 수습했다”고 30일 밝혔다. 이번에 조사한 흙무덤 4기는 시신을 묻는 공간인 주곽(主槨)과 부장품 창고인 부곽(副槨)으로 구성됐다. 구조상 덧널 주변을 돌로 채운 적석목곽묘의 일종으로 보인다. 이번에 발견된 금동관모는 머리꼭지 부분에 주걱 모양의 장식 봉이 올라가 있다. 금동관모 외에도 장식품인 관식(冠飾), 은제 허리띠, 굵은 고리 귀걸이, 유리 목걸이, 은으로 만든 삼각형 고리의 칼인 규두대도(圭頭大刀), 둥근 손잡이 고리 안에 이파리 세 개를 형상화한 칼인 삼엽문환두대도(三葉文環頭大刀), 금동안장 등 최상위 신분을 상징하는 유물이 한꺼번에 나왔다. 특히 박광열 성림문화재연구원장은 “관모와 관식이 이번처럼 함께 발견되는 건 드물다”며 “신라 중앙 정부에 대해 비교적 독자적인 정치 세력이 의성 지역에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25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동아시아도서관 희귀도서 서고. 일반인의 출입이 일절 금지된 이곳은 미 연방수사국(FBI)의 특별 감시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담당 사서가 출입카드를 대고 두꺼운 철문을 열자 첨단 항온·항습장치와 폐쇄회로(CC)TV가 눈에 들어왔다. 서고 안에는 한중록 필사본 등 한국 고문헌 2000여 종이 빼곡히 보관돼 있었다. 입구에 걸린 명패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풍윈와 희귀서고(FONG YUN WAH RARE BOOK ROOM)’. 중국인 고액 기부자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1층 입구 벽면은 물론이고 열람실 곳곳에 중국계 기부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한국 기부자의 이름은 한 명도 없고 일본 이름도 드물었다. 장재용 버클리대 동아시아도서관 부관장은 “이름이 동아시아도서관이지만 전체 기부금 중 중국계 비중이 70%에 달해 중국 도서관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고 말했다. 버클리대 동아시아도서관은 90만 권의 도서를 보유해 하버드대 옌칭도서관과 더불어 미국 내 동아시아 고전자료의 메카로 통한다. 특히 버클리대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판사로 일한 아사미 린타로(淺見倫太郞)가 수집한 고문헌 2000여 종을 1950년경 사들였다. 이날 기자가 서고에 들어가서 펼쳐본 ‘아사미 문고’ 중 ‘한중록’ 한글본은 질 좋은 종이에 마치 기계로 찍어낸 듯 유려하고 정연한 궁서체가 아름다웠다. 서체를 전공하는 학자들이 이 책을 즐겨 찾는다고 했다. 바로 옆 칸에는 조선 건국공신 정도전이 쓴 ‘삼봉선생 불씨잡변’의 1456년 목판 초간본이 있었다. 유학자의 시각에서 불교를 정면으로 비판한 이 책 초간본은 국내에는 없다. 1960년대 해인사 대장경판으로 찍어낸 종이 불경은 마치 어제 찍어낸 듯 선명했다. 이처럼 양질의 자료가 많다 보니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아사미 문고를 스캔해 인터넷으로 공개하는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한국학 연구에서 중요한 고문헌이 많지만 정작 이를 열람하는 한국학 연구자는 갈수록 줄고 있다. 오히려 최근 중국 학자들이 본토에서 이곳까지 비행기를 타고 와 각종 한국 고문헌을 집중적으로 열람하고 있다. 버클리대 동아시아도서관 관계자는 “중국인 학자들이 조선시대 연행록은 물론이고 양반들이 지은 문집 등을 폭넓게 찾아보며 연구하고 있다”며 “해외 한국학 분야에서 ‘신동북공정’이 본격화되고 있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 주요 대학의 한국학 연구는 한국 이민자 그룹에서 현지에서 태어난 2, 3세 그룹으로 중심축이 바뀌는 상황. 그러다 보니 영어구사 능력은 뛰어나지만 고전 번역에 필수인 한자나 한국어 실력이 따라주지 못해 고전 원문을 보기 어렵다. 또 미국 대학들이 근현대사 전공자 위주로 한국학 전공 교수를 뽑는 것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장 부관장은 “해외의 한국 고문서의 활용과 연구에 정부와 기업의 적극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버클리=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한국 농악(사진)의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가 사실상 확정됐다. 이로써 한국은 아리랑과 판소리, 김치, 줄타기 등에 이어 17번째 인류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우리나라가 신청한 농악에 대해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 산하 심사보조기구가 등재권고 의견을 제시했다”고 29일 밝혔다. 최종 등재 여부는 다음 달 24∼28일 프랑스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열리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결정된다. 지금까지 등재가 권고된 무형유산이 유네스코 본심사에서 탈락한 전례가 없어 이변이 없는 한 농악은 최종 등재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심사에서는 ‘북한의 아리랑’도 인류무형유산 등재권고를 받았다. 북한이 신청한 아리랑은 평양과 평안남도, 황해남도, 강원도, 함경북도, 자강도 지역의 아리랑을 묶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아리랑이 최종 등재되면 북한의 첫 인류무형유산으로 기록된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박물관이라면 왠지 고색창연한 유물로 채워져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전시장에 온통 흔해빠진 청바지만 걸린 박물관이 있다면? 박물관에 대한 편견을 깨는 ‘청바지’ 특별전이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내년 2월 23일까지 열린다. 청바지를 주제로 한 대규모 전시회는 국내 박물관에선 유례가 없다. 청바지 특별전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문화인류학자 대니얼 밀러 런던대(UCL) 교수의 ‘글로벌 데님(세계의 청바지) 연구’에서 나왔다. 그는 일상의 도구를 통해 사람들의 행태를 분석하는 ‘물질문화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민속박물관 주최 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밀러 교수를 최근 만났다. 짙은 청색의 블루진을 입은 밀러 교수는 “서울 거리를 지켜보니 런던처럼 행인의 절반 이상이 청바지를 입고 있더라”며 운을 뗐다. 그는 “연구하면서 사람들에게 청바지를 즐겨 입는 이유를 처음 물었을 때 아무도 적절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며 “우린 특별한 데에만 관심을 쏟을 뿐 정작 중요한 일상은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밀러 교수는 2007년부터 3년간 우리나라를 비롯해 영국 미국 브라질 인도 터키 중국 등 12개국에 걸쳐 광범한 청바지 이용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청바지는 남성과 여성, 부자와 빈자, 격식과 비격식의 구애를 받지 않는 이른바 ‘탈 기호학적(post-semiotic)’ 의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어디서나 어떤 옷과 함께 입어도 어울리는 독특한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밀러 교수는 “조사 결과 사람들이 데님 소재이면서 청색인 청바지라야 중성적이고 중립적인 옷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청바지가 글로벌 문화의 상징인 동시에 지역마다 고유성을 갖고 있다는 연구 결과도 흥미롭다. 예컨대 인도 카누르 지역에선 청바지 입은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성적 타락으로 간주해 여성들은 헐렁한 블라우스로 청바지를 가린 채 입는다. 반면 브라질에서 청바지는 몸의 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시대마다 청바지에 대한 개념도 바뀐다. 밀러 교수는 “1950년대 런던 거리에서 청바지를 입은 여성이 보수적인 남성에게 해코지를 당했다”며 “요즘 영국 여성들은 입다가 손톱이 부러질 정도로 몸에 꼭 끼는 청바지만 선호한다”고 말했다. 청바지의 인기는 경쟁 위주의 현대사회와 관련이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밀러 교수는 “우린 누군가에 의해 끊임없이 판단을 당하는 데 지쳐 있다”며 “청바지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손쉽게 걸치는 데 유용하다”고 했다. 값싸고, 심지어 해지거나 찢어져도 멋으로 입을 수 있는 청바지는 끊임없는 소비를 주장하는 자본주의 문화와 거리가 있다. 그는 “경제적 논리로 사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바로 청바지”라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엄마한테 이 책을 선물할 건데 (엄마가 이 책을 보고) 저처럼 많이 울까봐 걱정이에요.” 24일(현지 시간)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동창회관에서 열린 ‘신경숙과 한국 문학’ 국제 심포지엄. 파란 눈의 미국인 여학생이 신경숙 작가에게 ‘엄마를 부탁해’의 영어판 ‘Please Look After Mom’을 수줍게 내밀었다. 그는 자신이 받은 감동을 어머니에게 전하고 싶다며 작가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순간 심포지엄 내내 긴장한 표정이 역력했던 작가의 입에 맑은 미소가 번졌다. 3년 전 미국에서 출간된 ‘엄마를 부탁해’는 당시 미국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양장본 소설 부문 14위에 오르기도 했다. 현재 영국과 일본, 프랑스 등 35개국에 소개됐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한국학센터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준비한 150여 개 좌석이 가득 찰 정도로 미국 팬들의 열정이 뜨거웠다. 올 6월 미국에서 출간된 신 작가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영어 제목 I'll Be Right There)’를 읽었다는 한 청년은 “영어책을 먼저 읽고 원작의 표현이 궁금해 한국어판을 구해 비교하면서 읽어봤다”며 “영문 제목과 한국어 원제목의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다”고도 했다. 작가 사인회에 앞서 한국 문학을 전공한 교수들과 외국인 번역자 등이 신 작가 작품의 번역 상황과 작품의 특징 등에 대한 다양한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각 지역은 물론이고 캐나다와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참석자도 있었다. 로라 넬슨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한국학센터장은 “우리 대학에서 한국 작가 한 명만을 집중 조명하는 국제 심포지엄을 연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 대학 동아시아어문학과 초빙교수로 행사를 기획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는 “한국 문학의 영역이 세계를 향해 넓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했다. ‘엄마를 부탁해’의 이탈리아어판을 편집한 마르셀라 마리니 씨는 신 작가의 소설이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보편적 매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신경숙은 한국의 특수한 과거사를 다루는 동시에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담아내 이탈리아의 가톨릭 문화와도 잘 맞는다”며 “특히 ‘엄마를 부탁해’의 부모와 자식 간 갈등은 유럽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마리니 씨는 이례적으로 영어판을 거치지 않고 한국어 원문을 이탈리아어로 직접 번역했다. 그는 “이탈리아어는 한국어와 달리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가 풍부하지 않아 신 작가의 길면서도 우아한 문체를 소화해 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문 번역자인 정하연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교수는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 교수는 “신 작가의 소설은 독특한 어조와 인물의 개성적인 목소리가 중요한데 이를 외국어로 전달하기는 까다롭다”며 “소설 속 문체의 아름다움을 살려내는 게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한국학센터는 올해 신 작가를 시작으로 매년 한국 작가를 초청해 세미나와 강연회, 낭독회를 가질 계획이다. 한국 고전을 포함한 다양한 문학작품과 연구서를 지속적으로 번역 출판하고, 고급 번역자를 양성하기 위한 ‘국제 한국 문학 번역 워크숍’도 개최할 예정이다. 신 작가는 29일 스탠퍼드대를 방문해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의 영어판 낭독회에 참석한다. ▼ “타국서 내 작품 얘기 들으니 나도 독자가 된 듯” ▼심포지엄 참석 신경숙 작가24일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4시간 넘게 이어진 심포지엄을 지친 기색도 없이 지켜본 신경숙 작가는 평소보다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는 로라 넬슨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한국학센터장과의 대담에서는 간간이 농담을 던지며 청중을 즐겁게 했다. 신 작가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내 작품을 얘기하는 걸 듣고 있으니 나도 독자가 된 것 같아 신선했다”고 말했다. ―이곳에 직접 와보니 어떤가. “국내 독자랑 만날 때와는 다른 느낌이더라.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해외 독자에겐 낯설면서 새로운 목소리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독자들이 다양하게 작품을 해석해주는 건 작가로서 기쁜 일이다.” ―외국인들이 작품 속 한국의 토속적 요소를 제대로 이해할까. “문학을 이해하는 것은 독자가 자기를 열어놓겠다는 얘기다. 다른 것을 공감하고 받아들이고 느끼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있는 것이다. 주인공의 삶을 통해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고 인간의 새로운 면모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해외에 가장 먼저 소개되었으면 좋았겠다 싶은 작품이 있나. “내가 작품을 선택했다면 아마 ‘외딴방’(1995년)을 골랐을 것이다. 이 작품이 끝난 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작가로 살겠다고 결심했다. ‘외딴방’은 아직 영어 번역이 안 됐다. 고단한 ‘외딴방’의 주인공들이 국경 너머 새 친구를 갖게 되면 좋겠다.”버클리(캘리포니아)=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