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구독 112

추천

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4월, 봄의 노래

    3주 전 우리 가곡 ‘동무 생각’과 슈만이 쓴 교향곡 ‘봄’을 소개했죠. 그렇게도 그립던 봄은 이제 완연히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4월에 관한 가곡을 소개하겠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가곡과 이탈리아 작곡가 토스티의 가곡입니다. 요즘처럼 꽃이 피어나고 대지가 뭉근한 기운을 띠기 시작하면 라디오에서는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 첫 곡인 ‘아름다운 5월에’가 나오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4월에 듣는 5월의 노래라니, 가사는 ‘아름다운 5월, 온갖 싹들이 돋아날 때’라고 노래합니다. 독일의 봄은 우리나라보다 늦게 오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봄과 관련한 계절감이 우리와 비슷한 나라라면 이탈리아를 들겠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프란체스코 파올로 토스티(1846∼1916)의 가곡 ‘4월(Aprile)’은 피아노의 나는 듯한 분산화음 위에 마치 첫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열렬하게 봄의 환희를 노래합니다. ‘그대는 느끼지 못하나/봄이 흩뿌리는 향기를?/그대는 느끼지 못하나/새롭게 들리는 새의 노래를?/봄이 왔다! 사랑의 계절이다!/오라, 내 사랑이여, 꽃이 피어난 들판으로!’ 박목월의 시에 김순애가 곡을 붙인 우리 가곡 ‘사월의 노래’는 이보다 한결 차분하고 그윽하게 사월의 환희를 노래합니다. 마치 이탈리아어 ‘프리마베라’가 주는 톡 튀는 느낌과 우리말 ‘봄’이 전해주는 다소곳한 느낌의 차이 같기도 합니다.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아, 멀리 떠나와 이름 모를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든다/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토스티는 ‘왕의 남자’였습니다.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 왕실의 성악교사로 채용되어 왕족에게 노래를 가르쳤죠. ‘이상’ ‘기도’를 비롯한 그의 가곡들이 이탈리아적인 열정뿐 아니라 차분함과 명상을 같이 전하는 데도 북쪽 나라 영국에서 활동했던 그의 이력이 영향을 미치는 듯합니다. 이탈리아에 있던 그의 동료들은 대작 오페라를 쓰느라 열심이었지만, 오페라를 쓰지 않은 토스티의 아름다운 가곡들도 지금 세계 곳곳에서 애창되고 있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4-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트럼프 외손녀가 시진핑을 위해 부른 노래

    최근 ‘여섯 살 외교사절’의 활약이 세계인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외손녀인 아라벨라 쿠슈너 양이 7일 미중 정상회담을 위해 만난 외할아버지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앞에서 중국 민요 모리화(茉莉花)를 불러 갈채를 받은 것입니다. ‘아라벨라’는 음악팬들에게 얼마간 친근한 이름입니다.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문호 후고 폰 호프만슈탈의 희곡에 음악을 붙인 희가극 제목이자 그 여주인공 이름이죠. 이방카 트럼프와 남편이 이를 의식하지 않고 아이 이름을 짓지는 않았을 듯합니다. 슈트라우스를 사랑했던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막내딸 이름을 아라벨라에서 온 ‘아라벨’로 지은 바 있습니다. 여섯 살짜리 아라벨라 양이 높으신 어른들 앞에서 부른 ‘모리화’ 또한 오페라 팬들이 잘 아는 선율입니다. 자코모 푸치니가 마지막 오페라이자 유작인 ‘투란도트’ 1막에서 어린이들이 부르는 합창으로 차용한 멜로디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민요이지만 시 주석이 이 노래를 듣고 마음이 편했을지는 의문입니다. 모리화는 재스민 꽃을 뜻합니다. 아랍의 민주화 열풍을 가져왔던 ‘재스민 혁명’을 중국에서는 모리화 혁명이라고 부릅니다. 2011년 아랍 혁명 당시 중국에서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중국판 모리화 혁명을 이루자’는 글이 잇따라 올라와 중국 당국이 긴장했던 바 있습니다. 아라벨라 양이 부른 노래는 어른들이 ‘전략적으로’ 골라준 것이었을까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에 나오는 주인공과 이름이 같은 소녀가 푸치니 오페라에 나오는 선율을 부른 일도 새삼스럽습니다. 푸치니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이탈리아 오페라계를 대표하는 인물이었고, 슈트라우스는 같은 시대 독일 오스트리아권의 오페라계를 대표하는 주인공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깍듯이 예의를 차리면서도 서로를 무척 의식했다고 지인들은 훗날 전했습니다. 슈트라우스는 농담조로 ‘푸치니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 매력적인 선율들을 무의식적으로 따라 할까 봐’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4-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푸치니의 ‘이상한 노스탤지어’

    푸치니 오페라 ‘외투’는 파리 센 강의 바지선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선장의 아내인 조르제타의 노래 중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파리 교외의 아름다운 마을에서 보낸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내 꿈은 달라요(‘E ben altro il mio sogno)’입니다. 곡의 클라이맥스에서 조르제타는 고향 마을을 떠올리는 마음이 ‘이상한 노스탤지어(strana nostalgia)’라고 외칩니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가사이지만, 이 부분은 들을 때마다 그야말로 ‘이상하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푸치니 자신이 평생 ‘이상한 노스탤지어’를 간직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푸치니를 만나본 사람은 너나없이 그가 사교적이고 친절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지만, 정작 푸치니 자신은 사람을 두루 만나기를 피곤해했고 소수의 친한 사람들과만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중에는 자신의 집이 있었던 호숫가 마을 토레델라고의 사냥꾼들과 화가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이 유명한 작곡가가 유쾌하고 명랑하다가도 어느 순간 이유 없이 먼 데를 바라보며 눈물을 글썽이곤 했다고 훗날 회상했습니다. 푸치니 자신도 “나는 멜랑콜리의 거대한 짐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수수께끼 같은 멜랑콜리 또는 노스탤지어는 그가 작곡가로서 사랑받는 동력의 큰 부분이 되었습니다. 푸치니는 대본작가들에게 갖가지 주문이 많았습니다. 이미 완성된 장면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고치도록 요구하거나, 심지어 자기가 먼저 써놓은 멜로디에 가사를 붙이라고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외투’에 나오는 조르제타의 아리아에도 그가 자신의 기질을 나타내는 ‘이상한 노스탤지어’를 넣어 달라고 요구했을 것입니다. 국립오페라단이 6∼9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푸치니의 이 ‘외투’와, 같은 시대 작곡가인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를 공연합니다. 둘 다 짧은 작품이므로 다른 오페라와 묶어 공연하는 일이 많습니다. 두 작품은 내용도 비슷합니다. 아내가 젊은 남자와 바람피우는 것을 알게 된 남편이 복수하는 내용이죠. 무대 위에서 여러 주인공이 쓰러질 겁니다. 끔찍하지만 두 눈 크게 뜨고 보아야죠. 예술의 이름으로.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4-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세상을 깨우는 슈만의 교향곡 ‘봄’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나는 흰 나리꽃 향내 맡으며/너를 위해 노래, 노래 부른다….’ 이은상 시, 박태준 곡의 가곡 ‘동무 생각’입니다. ‘푸른 담쟁이’를 뜻하는 ‘청라(靑蘿)’ 언덕은 대구에 있는 실제 지명이지만, 이 시에서 노래하는 ‘봄의 교향악’이 특정한 교향곡 작품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아마도 언덕 위에 피어오르는 거룩한 봄의 기운을 ‘교향악’에 비유한 것이겠지요. 그렇지만 실제 ‘봄의 교향악’도 있습니다.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이 1949년에 쓴, 합창과 독창자 두 명까지 들어가는 큰 규모의 교향곡 제목이 ‘봄 교향곡(Spring Symphony)’입니다. 이보다 훨씬 널리 알려진 곡으로는 로베르트 슈만의 첫 번째 교향곡 ‘봄’이 있습니다. 슈만은 이 곡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곡 시작에 트럼펫의 연주가 나오는데, 그것은 잠을 깨라고 부르는 소리와 같지. 이어 도입부가 시작되면, 세상이 초록빛을 띠고, 나비가 대기 속을 날기 시작해. 이윽고 알레그로 파트에서는 봄이 되어 모든 것이 생생해진다네.” 때는 슈만의 인생에 있어서도 봄이었습니다. 피아니스트 지망생이었던 슈만은 당대 명피아노 교수인 프리드리히 비크 집에 제자로 들어갔고, 비크의 딸인 클라라와 사랑을 꽃피우게 됩니다. 그러나 스승은 두 사람의 결합을 맹렬히 반대했고, 슈만은 소송전까지 간 끝에 1840년 서른 살 나이로 결혼에 골인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음악사에서 손꼽히는 사랑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 곡이 세상에 나오게 된 시기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슈만은 결혼에 성공한 해 가을에 작곡에 착수해 겨울 내내 작업을 이어갔지만 다가오는 새봄에는 꼭 이 곡을 선보이려고 마음먹었죠. 그래서 이 첫 교향곡은 3월의 마지막 날인 31일에 친구인 작곡가 멘델스존의 지휘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처음 세상에 선보였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인 31일은 바로 이 곡이 나온 지 176년째 되는 날이군요. 창을 활짝 열고 신선한 봄의 공기를 맡으며 처음 피어난 목련, 개나리와 함께 이 아름다운 교향곡을 즐겨보면 어떨까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3-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지휘봉 때문에 죽은 작곡가 ‘륄리’

    음악가들은 각기 자신의 악기(Instrument)를 가지고 있죠. 지휘자도 도구를 갖고 있지만 그것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없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지휘봉(Baton)이 그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지휘봉은 대체로 1810년에서 1840년 사이에 확산되었습니다. 낭만주의 초기 시대죠. 작곡가이자 지휘자로도 이름이 높았던 멘델스존이 이 지휘봉의 보급에 큰 역할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휘봉을 쓰면 지휘자의 박자 및 강약 지시가 크게 잘 보이고, 어두운 조명 아래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손가락의 섬세한 표정을 살릴 수 없다는 등의 이유로 지휘봉을 사용하지 않는 지휘자도 많습니다.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총감독이자 영국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인 발레리 게르기예프는 딱 이쑤시개만 한 크기의 지휘봉을 들고 지휘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지휘봉은 낭만주의 시대보다 훨씬 이전인 바로크 시대에도 쓰였습니다. 이 시기에는 악단의 합주 자체가 정밀하지 않았기 때문에, 박자가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악단의 큰 과제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휘자는 크고 무거운 나무봉으로 연주회장의 바닥을 쿵쿵 찧어 박자가 일정하게 유지되도록 독려했습니다. 이 때문에 음악사상 유명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1687년,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궁정음악가였던 작곡가 장바티스트 륄리가 자신의 찬미가(Te Deum)를 지휘하다가 그만 이 크고 무거운 지휘봉에 발가락을 찧어버린 것입니다. 상처는 곪아 패혈증으로 이어졌고, 프랑스 고전가극과 발레의 개척자였던 륄리는 결국 지휘봉에 생명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륄리처럼 ‘음악의 아버지’ 바흐나 ‘음악의 어머니’로 불린 헨델 이전의 음악가들의 작품을 들을 기회는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 개막 이후 여러 나라의 초중기 바로크 음악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 재발견되어 오늘날에는 그를 죽음으로 이끈 ‘테 데움’을 비롯해 음반도 여러 가지가 나와 있습니다. 내일(22일)은 ‘태양왕의 남자’였던 륄리가 지휘봉 때문에 사망한 지 33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3-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뜨거움의 소나타, 베토벤 ‘비창’

    클래식 명곡을 대중음악으로 편곡하는 걸 환영하는 편은 아닙니다. 원곡이 가진 성격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껍데기만’ 가져왔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서죠. 그런데 예외도 있습니다. 오래전 일이지만, 오락실 게임기에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3악장 선율이 나오는 걸 듣고는 한참 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했습니다. 이 곡이 가진 역동감과 끓어오르는 혈기를 전자음이 잘 표현해냈다 싶어서였습니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이 편곡음악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 소나타 1악장도 멋지게 편곡한 소리를 듣고 탄복했는데, 같은 업체의 솜씨라고 하는군요. 그러고 보니 이 소나타는 유난히 대중문화와 접촉면이 넓습니다. 2악장의 느릿한 선율은 팝송 ‘미드나잇 블루’로 편곡되어 유명해진 바 있습니다. 앞서 말한 1, 3악장의 주선율도 세계 각국에서 댄스 음악이나 가요 선율로 쓰이고 있습니다. 젊은 감성이 이 곡에 특별히 끌리는 이유가 있을까요? 베토벤이 27세 때 발표한 이 소나타는 그의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리는 출세작이었습니다. 이 곡을 들은 젊은 귀족과 중산층이 앞을 다투어 악보를 샀습니다. 이제까지의 음악에서 들을 수 없었던 끓어오르는 정열이 음악팬들을 자극한 것입니다. 그러나 경계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피아니스트였던 모셸레스는 이 작품을 쳤더니 스승이 ‘기괴한 걸 좇지 말고 배울 만한 곡을 쳐라’고 화를 내더라고 회상했습니다. 이 외에도 당대에는 이 곡을 ‘소란스러운 음악’이라고 치부해 연주하지 못하도록 하는 음악 교사가 많았다고 합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소나타에 친숙한 기성세대가 이 곡의 뜨거움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던 것입니다. 세월은 흘렀고 베토벤은 ‘기성’의 작곡가가 되었을 뿐 아니라 그중에서도 ‘음악의 성자’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으로부터 9년 뒤에 그가 내놓은 격동의 소나타 ‘비창’은 지금도 사람들의 피를 끓게 만들고 있습니다. 뜬금없이 게임음악 얘기로 글을 시작했습니다만, 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김선욱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베토벤의 대표 소나타인 14번 ‘월광’, 23번 ‘열정’과 함께 이 곡이 연주됩니다.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 2017-03-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봄을 부르는 슈베르트 가곡 ‘봄의 믿음’

    주말 내내 바람이 포근했습니다. 이제 봄이 온 것일까요? 새로운 주가 열리자마자 찬 아침 바람이 옷깃을 다시 여미게 만드는군요. 되돌아보면 어느 해 3월이나 반짝 따뜻함과 반짝 추위가 반복되며 마음을 조급하게 했습니다. 봄이 세 발짝쯤 다가왔다가 다시 두 발짝 뒤로 물러나고…. 오는 계절은 조급할 게 없죠. 기다리는 사람이 조바심 날 뿐이죠. 분명한 것은, 오다 말다 하는 것처럼 보이는 봄이 결국 오지 않은 해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계절에 집어 들게 되는 음반이 슈베르트의 가곡 ‘봄의 믿음(Fr¨uhlingsglaube)’입니다. ‘봄의 신앙’이라고 번역되기도 하지만, 종교적 신앙이 아니라 결국 봄은 오고 말리라는 믿음을 표현한 것이니 ‘봄의 믿음’으로 부르는 것이 더 적당하겠군요. 독일 낭만주의 시인이자 문학사가, 언어학자인 루트비히 울란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눈을 떠서/밤낮으로 살랑이며 불어온다/만물에 끝맺음을 짓는다/오 신선한 향기, 새로운 소리!/이제 가련한 마음이여, 불안해하지 말아라/이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날마다 세상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 이 노래에는 유난히 ‘미래’와 ‘확신’을 강조하는 조동사(助動詞)들이 눈에 뜨입니다. 모든 것은 새로워질 것임에 틀림없고(muss), 모든 것이 새로워질 것이며(wird) 꽃의 피어남은 끝이 없을 것(will)입니다. 시인의 눈으로 보아도 아직 오지는 않은 일이지만, 의심할 필요 또한 없습니다. 매년 반복되어 온 일이자 매해 거듭해 경험했던 환희이고, 이 세상이 끝나지 않는 한 바뀌지 않을 일이니까요. 슈베르트는 이 아름다운 시에 달콤하면서도 엄숙한 기운이 묻어나는 멋진 선율을 붙였습니다. 가련한 마음을 표현할 때 살짝 어두운 단조로 바뀌었다가 다시 피어나는 봄을 노래할 때는 계절에 대한 이 ‘믿음’이 일종의 종교적인 신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예전처럼 ‘봄의 신앙’으로 불러도 괜찮은 것일까요? 노래 마지막에 확인하듯 되풀이되는 가사를 다시 한 번 곱씹어 봅니다. ‘이제 모든 것이 바뀔 것이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3-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발레 대국 러시아

    북유럽의 대국 러시아에 와 있습니다. 기온이 영하 7도에서 영상 3도 정도이니 서울보다 딱히 춥지는 않군요. 제 성장기에는 공산주의의 총본산이자 ‘동토의 왕국’으로 알려진 음험한 이미지로 떠오르는 곳이었고, 더 자라서는 차이콥스키의 아름다운 음악들로 인해 훨씬 친근한 인상으로 다가온 곳입니다. ‘동서 진영의 화해가 이뤄져서 나도 차이콥스키의 나라를 가볼 수 있는 때가 올까’라고 막연히 상상했었던 기억도 납니다. 일요일에는 소련 시절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소비에트를 대표하는 작곡가였던 프로코피예프의 발레 ‘폭군 이반(Ivan the Terrible)’을 볼쇼이 대극장에서 관람했습니다. 소련을 대표하는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의 화려하고도 효과 높은 안무와 비장미를 한껏 높이는 의상, 황후 역을 맡은 스베틀라나 자하로바의 열연이 오래도록 머리에 남았습니다. 자하로바는 ‘발레의 황후(차리나)’라는 별명으로 러시아인들에게 사랑받는 발레리나이기도 합니다. 오늘(28일)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 극장에서 역시 소비에트 발레의 대표작 중 하나이자 그리고로비치가 안무한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출신 작곡가 멜리코프의 ‘사랑의 전설’을 관람할 예정입니다. 역시 그리고로비치 안무이며, 20세기 발레를 대표하는 명작 중 하나입니다. 어떻게 소비에트가 화려한 예술의 대명사인 발레에서 세계를 압도하게 되었을까요? 그 첫 단추를 끼운 19세기 제정 러시아 시절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그중에서도 첫 작품인 ‘백조의 호수’(1877년)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아련한 감상주의가 빛을 발하는 이 작품은 이후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으로 이어지면서 러시아가 프랑스를 압도하는 세계 최고의 발레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3월 4일은 ‘백조의 호수’가 볼쇼이 극장에서 초연된 지 140년이 되는 날이로군요. 호수는 아니지만 호수만큼 넓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네바 강을 바라보며, ‘백조의 호수’ 대표 선율인 ‘정경’ 장면의 애틋한 오보에 선율을 떠올려 봅니다. 강은 얼어 있지만, 곧 봄 햇살이 강물을 녹이겠죠. 그것이 자연의 이치이니까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2-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푸치니의 ‘나비부인’, 초연 땐 관객 야유 받았다

    “오페라 공연하기 좋은 계절이군!” 생뚱맞게 들리나요? 유럽 유수의 오페라극장들은 가을에 시즌을 시작해서 늦은 봄까지 이어갑니다. 한겨울인 2월은 시즌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많은 명작 오페라들이 2월에 초연되었습니다. 어제(2월 20일)는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가 로마 아르젠티나 극장에서 1816년 초연된 날짜고, 지난주인 2월 17일은 푸치니의 ‘나비부인’이 밀라노 라스칼라 극장에서 1904년 초연된 바로 그 날짜였죠. 이렇게 써놓고 보니 이 계절이 오페라 작곡가들에게 행운을 가져오는 때는 아니었군요. 이 두 개의 ‘2월의 오페라’는 오페라 역사상 최악의 초연을 맛본 작품으로 유명합니다. ‘세비야의 이발사’ 초연 때는 방해꾼들이 연신 휘파람을 불어댔고 객석에 고양이가 뛰어다녔습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극작가 보마르셰의 걸작으로 명성이 높았던 연극 ‘세비야의 이발사’에 이미 로시니의 선배 작곡가인 조반니 파이시엘로가 곡을 붙여 공연되고 있었습니다. 같은 소재로 다른 작곡가가 오페라를 썼다는 얘기를 들은 파이시엘로의 팬들이 심술을 부렸던 것입니다. ‘나비부인’ 때도 객석에서 난리가 벌어졌습니다. 관객들이 휘파람과 야유를 퍼붓는 통에 무대 위의 주연 가수들 귀에 관현악의 반주부가 들리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푸치니는 대대적인 개작에 들어갔고, ‘나비부인’은 선배 작곡가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가 그랬던 것처럼 걸작 오페라의 대열에 올랐습니다. 두 작품은 오페라 정보 사이트 ‘오페라베이스’가 집계한 2015∼2016시즌 세계 최다공연 오페라 각각 6위(나비부인) 7위(세비야의 이발사)에 들어갑니다. ‘나비부인’의 초연 당시 악보는 지난해 12월 라스칼라에서 리카르도 샤이 지휘로 공연되어 이탈리아 전역에 TV로 중계되며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작품이 초연에서 야유를 받는다는 건 작곡가들에게 악몽이겠죠. 그렇지만 그런 시절이 부럽기도 합니다. 맞건 그르건 작품에 대한 올바른 감식안을 갖고 있다는 관객 나름의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했기 때문이죠. ‘큰 박수’와 ‘작은 박수’만 있는 오늘날 대부분의 오페라극장과 연주회장은, 얼마간 관객과 사이가 오히려 멀어진 것 아닐까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2-2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브람스가 가곡으로 만든 고린도전서의 ‘사랑’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 믿음, 소망, 사랑은 늘 함께 있을 것인데 그중에서도 으뜸은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에 나오는 ‘사랑’에 대한 글입니다. 특정의 신앙이 있고 없고를 떠나 이 아름다운 글은 늘 큰 울림을 전해줍니다. 이 글을 가사로 만든 가곡도 있습니다. 요하네스 브람스가 63세 때인 1896년에 쓴 ‘네 개의 엄숙한 노래’ 중 마지막 네 번째 곡입니다. 이해, 브람스가 평생 사모했던 여성이자 스승 슈만의 부인이었던 클라라 슈만이 76세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클라라를 사랑한 나머지 ‘내 머리에 총을 쏘고 싶다’고까지 친구에게 고백했던 브람스였지만,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깊은 정신적 교류로 발전했고 브람스는 늘 자신의 작업 방향을 클라라와 서신으로 논의하곤 했습니다. 그런 클라라가 죽음의 자리에 들었음을 알았을 때, 브람스의 손끝에서 나온 것은 쓸쓸한 감상주의가 아니라 진지해서 장엄하기까지 한 사랑의 노래였습니다. 오늘 2월 14일은 ‘사랑의 날’로 알려진 밸런타인데이입니다. 달콤한 사랑의 노래도 좋지만, 깊이 있게 사랑에 대해 성찰하는 이 노래도 한번 듣는 기회를 마련했으면 좋겠습니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사형선고를 받은 날이니 상업적인 밸런타인데이는 버리고 안중근의 날로 기리자’는 목소리도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공감하지만 100퍼센트 찬성의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안 의사에게 선고를 내린 주체는 일본 제국주의 법정이었고, 결국 이 선고일은 그들의 손에서 결정된 날짜이기 때문이죠. 안 의사 의거일(10월 26일)을 지금까지보다 더 의미 있게 지내는 것이 옳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쨌거나 사랑에는 여러 갈래가 있죠. 연인에 대한 사랑도, 은인에 대한 존경이 담긴 사랑도, 민족에 대한 안 의사의 사랑도 모두 귀한 사랑입니다. 오늘 하루라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심으로 사랑의 말을 건네 본다면 그 의미가 클 듯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2-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카니발의 달 2월, 화려한 순간을 표현한 곡들

    위도가 높은 유럽의 겨울은 낮이 매우 짧습니다. 오후가 되는가 싶다가는 금방 사방이 어두워져 버리죠. 이 ‘어두운 시기’를 유럽인들은 다양한 사교 모임과 축제로 이겨냅니다. 핼러윈과 긴 크리스마스 시즌, 2월의 카니발(사육제)을 지내면서 이들은 나름대로 우울함을 이겨낼 동력을 얻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여러 서양 겨울축제가 들어왔지만 유독 카니발은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한 듯합니다. 카니발은 사순절(四旬節) 기간에 들어가기 직전 진탕 마시고 노는 축제입니다. 사순절이란 부활절에 이르기까지 예수가 고난을 당한 40일간의 기간을 뜻하죠. 이 기간에 육식과 향락을 금하기 때문에 미리 잘 먹고 놀아두는 전통이 생긴 것입니다. 사순절의 기준이 되는 부활절이 매년 다르기에 카니발 기간도 매년 일정치 않으며 지역에 따라서도 날짜에 차이가 있습니다. 유명한 ‘베네치아 카니발’의 경우 올해는 이달 11일에 시작합니다. 마지막 주말 산마르코 광장에서 펼쳐지는 가면 경연대회는 베네치아의 대표 상징 중 하나입니다. 카니발을 소재로 한 음악 작품도 많죠. 예전 이 코너에서 소개한 일이 있는 ‘베네치아의 카니발’ 노래에 의한 수많은 변주곡이 있고요, 슈만의 피아노곡인 ‘카니발(사육제)’도 있습니다. 모두 21곡의 소품을 묶은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카니발을 직접 묘사한 것은 아니며 마치 카니발과 같이 화려한 환상들을 펼쳐놓는다는 뜻에서 붙인 제목입니다. 9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열리는 이진상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이 ‘카니발’을 비롯한 슈만과 브람스의 피아노곡들이 연주됩니다. 슈만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경험한 카니발을 묘사한 소품집 ‘빈 카니발의 어릿광대’를 쓰기도 했습니다. 베를리오즈의 ‘로마의 카니발’ 서곡은 작곡가가 로마에서 겪은 광란적인 축제 분위기를 떠들썩하게 묘사했습니다. 드보르자크도 고향 체코의 카니발 풍경을 묘사한 ‘카니발’ 서곡을 쓴 바 있죠. 멘델스존은 교향곡 4번 ‘이탈리아’ 마지막 악장에서 떠들썩한 살타렐로 리듬을 사용해 이탈리아의 카니발 풍경을 담았습니다. 차이콥스키 ‘이탈리아 광시곡’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살타렐로 역시 이런 카니발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2-0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31일 슈베르트 220회 생일… 그는 과연 불행했을까

     예술가들은 그 삶이 불운할수록 사랑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기 작가들도 예술가의 여러 측면 중에서 유독 동정받을 만한 면을 강조합니다. 모차르트는 삶의 대부분을 호사스럽게 살았는데도 만년에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써 보낸 편지들이 유독 자주 인용되고, 말러는 빈 국립오페라 감독이라는 당대 음악계 최고의 지위를 누렸는데도 유난히 그의 교향곡이 당대 청중에게 이해받지 못했다는 점이 강조됩니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1797∼1828)의 삶도 ‘불행’의 아이콘을 주렁주렁 달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음악계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만년에 쓴 야심적인 교향곡들(8번 ‘미완성’, 9번 ‘더 그레이트)도 그가 죽고 한참 지나서야 발견되었다고 하죠. 소극적인 자세와 못생긴 외모 때문에 생전에 연애 한번 제대로 못 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이런 얘기들은 사실일까요? 1827년, 세계 음악계를 대표하는 거장 베토벤이 세상을 떠났을 때 슈베르트는 그의 관을 운구했습니다. 옆에서 횃불만 들었다는 설도 있지만 베토벤의 마지막 길에 ‘주요 음악가’로 대접받은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 곳곳에서 초청받는 ‘명사’였습니다. 그의 작품들이 작은 애호가 그룹 ‘슈베르티아데’에서만 한정적으로 발표되었다고 한탄하는 문헌들이 있지만, 대부분의 음악가는 그런 애호가 그룹조차 갖지 못했습니다. 유명한 ‘송어’ 오중주도 그의 가곡 ‘송어’를 들은 음악가들이 “우리 동네를 찾아주시고 ‘송어’를 실내악곡으로 만들어 주십시오”라고 제안한 덕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런 그가 왜 ‘불행’의 표상을 갖게 되었을까요? 그 모든 모순은 오직 한 가지, 만 31세에 닥친 때 이른 죽음에서 비롯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초년’으로 불릴 나이가 그에게는 ‘만년’이었습니다. 그가 더 오래 살았다면 교향곡 8번, 9번도 생전에 초연을 보았을 뿐 아니라 훨씬 더 많은 완숙한 교향곡을 썼을 것입니다.  결혼도 했겠죠. 사실 여러 초상화로 보는 그는 ‘못생기지’ 않았습니다. 오늘, 1월 마지막 날은 슈베르트의 220회 생일입니다. 어쨌든 그는 요절이라는 확실한 불운으로 삶을 마친 것이 사실입니다. 그를 위해 오늘 밤 작은 촛불을 켜두고 싶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1-3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낭만주의 문호 호프만 소설에서 온 음악들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 들리브의 발레 ‘코펠리아’, 슈만의 피아노 모음곡 ‘크라이슬레리아나’, 그리고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 이 네 음악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우선 엉뚱할 정도로 환상적인 얘기가 펼쳐진다는 점을 들 수 있겠군요. 호두를 깨는 도구가 왕자로 변신한다거나, 사랑을 느꼈던 여인이 알고 보니 인형이었다던가 하는 줄거리를 담았으니까요. 한층 더 구체적으로 이 작품들의 공통점을 들자면, 독일 낭만주의 문호 E T A 호프만(1776∼1822)의 소설에서 소재를 땄다는 점입니다. 호프만은 이른바 ‘요정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 문인으로 불립니다. 베토벤의 생애와도 대체로 겹치는 호프만의 시대에는 이웃 나라 프랑스에서 자유 평등 박애로 상징되는 혁명의 기운이 불어오고 있었지만 독일은 완고한 보수적 체제에 머물러 있었고, 답답함을 느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환상 세계에서 구원을 찾고자 했던 시기였습니다. 발레와 오페라는 무대를 통해 그 내용을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슈만의 작품인 ‘크라이슬레리아나’가 무엇을 뜻하는지는 음악 팬들이라고 해도 누구나 알지는 못하죠. 여덟 곡의 소품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호프만의 소설에 종종 등장하는 ‘크라이슬러’라는 주인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 크라이슬러는 음악가로서, 호프만의 ‘또 다른 자아’, 요즘 말로는 그의 ‘아바타’로 불립니다. 실제로 호프만은 작가이면서 음악에 능통해 밤베르크 시의 극장 매니저 겸 이 도시 관현악단의 악장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악단이 지난해 내한하기도 했던 ‘밤베르크 교향악단’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밤베르크 교향악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설립된 악단이거든요. 지금도 중부 독일의 ‘물의 도시’로 알려진 관광지 밤베르크에 가면 어깨에 고양이를 얹은 채 여행자들을 맞이하는 호프만의 동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근처에는 호프만이 작품들을 썼던 작업실도 복원되어 창문을 통해 그의 생전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1월 24일)은 환상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던 낭만주의 문호 호프만의 241번째 생일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1-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눈발 날리는 모습 떠오르는 패르트의 ‘칸투스’

     ‘소리가 높다’ ‘음이 낮다’. 우리가 흔히 쓰는 표현입니다. 일정한 시간 동안 여러 번 떨리는 소리를 ‘높은 소리’, 적은 횟수로 떨리는 소리를 ‘낮은 소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소리의 높낮이는 본디 땅이나 물의 ‘높고 낮음’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왜 우리는 주파수가 큰 소리에서 ‘높음’을, 주파수가 작은 소리에서 ‘낮음’을 연상하게 되었을까요? 인류학자나 음악학자 일부는 옛날부터 큰 동물 발자국처럼 쿵쿵 울리는 소리는 ‘낮은’ 땅바닥에서 왔고, 날카로운 새나 날벌레의 소리는 ‘높은’ 하늘에서 왔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쓰이게 됐다고 말합니다.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높은’ 음부터 서서히 내려오는 멜로디는 분명 뭔가 서서히 떨어지는 느낌을 줍니다. 러시아의 대가 차이콥스키가 ‘떨어지는’ 멜로디를 즐겨 썼죠. ‘비창’ 교향곡 4악장 첫 주제가 대표적입니다. 무엇이 떨어질까요? 마치 사람의 고개가 떨어지면서 한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떨어지는’ 선율은 대개 비탄과 절망을 암시합니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1935∼)는 현악합주곡 ‘벤저민 브리튼을 기리는 칸투스(Cantus in Memoriam Benjamin Britten·1977)’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집요하게 ‘떨어지는’ 선율을 들려줍니다. 종소리와 함께. 처음 창백하다시피 여리게 시작된 현의 노래는 점차 강하고 세차지며 느려집니다. ‘라-솔-파-미-레-도-시-라…’ 마치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다가 차츰 세찬 눈발이 퍼붓는 듯한 느낌입니다. 왜 이런 곡을 썼을까요? 이 곡은 작곡가 패르트 자신이 존경한 영국의 선배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이 별세하자 그를 기리는 뜻에서 작곡한 작품입니다. 차이콥스키에게 그랬던 것처럼, 현대의 작곡가에게도 하행(下行) 선율은 비탄과 애도의 이미지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이 곡에서 ‘눈발’을 떠올린 사람이 저뿐만은 아닌 모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랑받은 레오 카락스 감독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에서도 두 남녀가 재회하는 밤 장면에 이 음악이 흐르면서 눈발이 날립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1-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네 마음은 얼음…’ 겨울을 노래한 사연들

     대학 시절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지금처럼 추운 겨울날이었고, 집에 돌아온 저는 늘 그랬듯이 라디오 전원부터 켰습니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토스티의 가곡 ‘더 이상 사랑하지 않으리(Non t'amo piu)’였습니다. 음반도 갖고 있어 익숙한 노래였지만 가사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들었는데, 갑자기 이탈리아어 가사가 돋보기로 확대하기라도 한 듯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너의 마음은 얼음으로 되어 있으니(perch´e l'anima tua fatta `e di gel).’ 갑자기 코가 시큰하더니 눈물이 맺혔습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빨리 꽃이 피어나는 봄을 보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겠죠.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바로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추위와 얼음의 계절입니다. 크리스티나 로세티의 시에 구스타브 홀스트가 곡을 붙인 영국 캐럴 ‘음산한 한겨울에(In the bleak midwinter)’는 ‘눈 위에 눈이 쌓였구나/오래전, 음산한 한겨울’이라고 노래합니다. 그래도 숭고함까지 느껴지는 이 노래는, 눈이 걷히고 이뤄질 찬란한 구원을 암시합니다. 저는 일본 북부 홋카이도의 삿포로에 와 있습니다. 2015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의 리사이틀이 일본 팬들에게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궁금해서죠. 3, 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공연을 본 팬들이 이미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군요. 그가 한국과 일본 무대에서 들려준 쇼팽의 전주곡집도 한 곡 한 곡 번갈아 장조와 단조 곡이 교차하면서 봄꽃 같은 밝음과 얼음 같은 암울함이 번갈아 이어집니다. 세상에 무한한 꽃의 계절이 이어질 수 없듯이,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얼음의 시절도 무한정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 이 겨울도 살짝, 환경미화원과 재해대책 공무원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아름다운 눈발의 추억만 남기고 어서 가버렸으면 싶습니다. 대형 출판유통업체 부도로 출판계의 친구들이 내뱉는 한숨 소리도 들립니다. 사회 여러 분야가 갖가지 악조건에 처한 불안한 신년 벽두이지만, 이 또한 빨리 사라지기를 기원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1-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한겨울에 만나는 봄, 슈트라우스의 왈츠

     새해를 우아한 왈츠와 폴카 리듬으로 장식하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가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습니다. 올해에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대에 올라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천일야화’를 비롯한 슈트라우스 부자의 왈츠와 폴카, 발퇴펠의 왈츠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 주페의 ‘스페이드 퀸 서곡’ 등을 들려주었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축하하는 빈의 음악회는 1939년 12월 31일 송년음악회로 시작되어 1941년 1월 1일 첫 신년음악회가 열렸습니다. 1955년에서 1979년까지 25차례는 빈 필 악장 출신인 빌리 보스코프스키가 바이올린 연주까지 곁들이면서 지휘대에 섰습니다. 이후 로린 마젤이 7년간 지휘한 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을 위시한 세계 톱클래스의 지휘자들이 매년 번갈아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빈 신년음악회라면 누구나 머리에 떠올리는 작품이 본 프로그램 종료 후 지휘자의 인사말에 이어지는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왈츠, 그리고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의 ‘라데츠키 행진곡’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제게는 어린 시절 보스코프스키의 우아한 바이올린 활 지휘와 함께 들려주었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 ‘남국의 장미(Rosen aus dem S¨uden)’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유럽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본격적인 추위는 1, 2월입니다. 그 황량하고 삭막한 시기가 시작되려는 시점에 꽃으로 장식된 빈 무지크페라인 홀 무대를 보며 듣는 ‘남국의 장미’ 왈츠라니! 곡은 꿈꾸는 듯이 온화한 관악기와 낮은 현의 도입부로 시작해서 꽃 한 송이씩 펼쳐 보이듯 전아하고 따뜻한 왈츠가 하나씩 등장합니다. 한겨울의 정점을 앞두고 꿈꾸는 봄의 느낌에는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습니다. 이 곡은 빈 신년음악회에 곧잘 등장하는 인기곡이지만 아쉽게도 올해에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1998년, 2009년에 연주곡목에 오른 바 있군요. 인터넷에서도 지난 연주 실황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새해 첫 주, 국내외에 걸쳐 불안한 조짐도 많지만 이 곡을 비롯한 슈트라우스 가족의 왈츠와 함께 아름다운 봄과 새해를 꿈꾸어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1-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바흐와 함께 생전에 큰 인기 누린 텔레만

     ‘바흐 생전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했던 작곡가.’ ‘음악사상 가장 많은 작품을 작곡한 인물.’ 누구일까요? 바흐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인물로는 헨델과 비발디가 있었고, 헨델은 독일 땅을 넘어 영국에 진출해 큰 인기를 끌었으니 헨델이 그 주인공일까요? 하지만 헨델의 작품 수는 바흐의 1100여 곡보다 훨씬 적은 600여 곡에 머물렀으니 답은 헨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사랑받는 클래식 음악 1위’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사계’의 작곡가 비발디일까요? 하지만 비발디는 삶의 대부분을 베네치아에서 ‘로컬 음악가’로 보냈습니다. 그러니 비발디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곡가의 영광을 누려보지는 못한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면 모차르트나 베토벤? 이들의 활동 연대는 바흐 시대보다 두 세대 정도나 뒤입니다. 과연 정답은 무엇일까요? 답은 독일 작곡가 게오르크 필리프 텔레만(1681∼1767)입니다. 바흐와 헨델보다 네 살 위, 비발디보다 세 살 아래군요. 그는 바흐의 두 배 가까운 2000여 곡의 작품을 써서 기네스북에도 ‘가장 많은 곡을 쓴 작곡가’로 당당히 등재됐습니다. 그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폴란드 음악의 매력을 두루 받아들여 어느 나라에서나 환영받는 스타일을 정립했고, 그의 명성은 전 유럽에 퍼져 나갔습니다. 그런 그가 오늘날 다소 먼(Tele) 남자(Mann)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느 정도는 바흐 때문입니다. 19세기 중반에 멘델스존과 슈만이 바흐 재인식 운동을 일으키면서, 논리적으로 완벽한 바흐의 음악에 비해 텔레만의 작품은 가치가 덜한 것처럼 여겨지게 됐습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불어닥친 바로크 음악 재인식 붐에 힘입어 작품집 ‘식탁음악(Tafelmusik)’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이 고유의 매력과 가치를 다시 인정받게 됐습니다. 2017년은 이 텔레만의 서거 2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누가 가장 뛰어났는지 견주어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겠고, 바흐 헨델 비발디와 나란히 한 시대를 빛냈던 이 작곡가를 우리나라에서도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됐으면 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6-12-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라모가 묘사하고 레스피기가 편곡한 ‘닭’

     유난히 길고 어지럽던 한 해도 저물어가고 정유년(丁酉年), 붉은 닭의 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왜 ‘붉은’ 닭이라고 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닭은 아침을 알리는 동물이며, 아침 해는 붉게 떠오르기 마련이죠. 닭 울음이 알리는 상서로운 새 아침 새 햇살처럼, 내년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기준과 척도들이 정립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십이지를 알리는 동물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면, 다른 동물을 묘사하는 음악은 그다지 생각나는 것이 없는데도 닭을 묘사한 음악으로는 생각나는 게 몇 곡 있습니다. 생상스 ‘동물의 사육제’에 묘사된 동물들도 사자, 당나귀, 거북, 코끼리, 캥거루, 물고기, 노새, 뻐꾸기, 백조로 ‘유난히도’ 십이지와 겹치지 않지만, 유독 두 번째 악장에 ‘암탉과 수탉’이 들어 있습니다.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는 1928년 ‘새(鳥) 모음곡’을 발표했습니다. 전주곡에 이어 비둘기, 닭, 나이팅게일, 뻐꾸기의 울음과 자태가 묘사됩니다. 그런데 세 번째 악장 ‘닭(La Gallina)’을 들으면서 ‘이거 라모 작품 아냐’라며 놀라는 음악 팬도 있습니다. 이 모음곡은 레스피기가 바로크시대 선배 작곡가들의 건반음악을 관현악으로 편곡한 것이고, ‘닭’의 원곡은 프랑스 작곡가 장필리프 라모의 건반악기곡집에 나오는 닭(La Poule)이기 때문입니다. 레스피기가 활동하던 시절에는 바로크 작곡가들의 소품이 연주회에 오르는 경우가 적었던 데 착안해 레스피기는 이 아름다운 선율들을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새’ 모음곡을 썼습니다. 그렇지만 오늘날에는 옛 건반음악들도 연주가들이 자주 리사이틀에서 소개하고 있고, 여러 연주가가 필요한 레스피기의 모음곡이 오히려 더 듣기 힘들게 됐습니다. 그런데 라모가 표현하고 레스피기가 관현악으로 표현한 닭이 그다지 ‘상서롭지는’ 않습니다. 꼬끼오∼ 하고 힘차게 하루를 알리는 닭 울음보다는, 마당을 분주하게 다니며 꼭꼭거리는 닭을 묘사한 것 같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독자께서도 추운 연말에 건강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닭 사육 농가를 울리는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도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6-12-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전공학과 이기주의 버리고 교양교육 확대해야 기초학문 발전”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회환경 속에서 세분화된 대학 전공과 기술의 의미가 감소하는 시대. 습득과 암기보다 응용과 소통이 중요한 시대에 교양교육은 어떤 새로운 의미를 지닐까. 우리나라 대학 교양교육의 현실적 문제점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그동안 이 문제에 천착해 온 전문가들의 진단을 들어봤다.    ▽사회=교양교육에 대한 우려가 많은데 무엇이 문제인가요.  ▽손 교수=현재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국제 경쟁력 부문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초학문 분야가 소홀하다는 점입니다. 교양교육을 손쉽고 가볍게 생각한 결과 ‘잡비학(雜卑學·잡스럽고 비천한 학문)’이란 자조적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전공 교수들이 자기 학과 학생만 챙기고 교양과목 강의는 피하기 때문입니다. 시각을 넓혀 여러 전공 학생을 대상으로 한 기초 교양과목 확대에 힘을 쏟아야 기초학문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윤 원장=교양교육은 전공교육과 함께 대학교육을 이끄는 두 기둥입니다. 그런데도 교양교육의 개념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엔 교육부가 시행하는 ‘학부교육 선진화사업(ACE)’과 ‘산업연계교육 활성화 선도대학사업(PRIME)’에 교양 부문 평가가 들어갔어요. 외부의 자극에 의해 교양교육 개선 움직임이 일어나는 셈입니다. ▽홍 회장=교양교육이 중요한 이유는 10년 후 사회의 직업 상황이 어떨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빠르게 습득해 산업 현장에 투입할 수 있는 표준적 지식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습득한 지식이 10년 뒤 현장에서 응용 가능한 것인지 알 수 없죠. 따라서 바로 응용 가능한 지식보다 창의적 교육이 필요하게 되었죠. ▽윤 원장=각 대학의 교훈에는 대체로 ‘세계관, 도덕, 인격, 애민, 문화, 진리, 창조’와 같은 가치가 들어 있습니다. 이 가치들은 대부분 교양교육을 통해 길러져야 할 가치들입니다. 따라서 교훈들은 이미 교양교육의 강화를 요구하고 있는 셈입니다. ▽사회=내년 인문한국(HK)지원사업 10년을 앞두고 학문 후속세대의 교수 임용 여부를 놓고 대학에 회오리가 불 것이라고 하는데요. ▽손 교수=인문학 전공자들이 중간에 좌절하는 이유는 전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학위를 끝내면 일자리가 있어야 하는데, 대학 말고는 없죠. 공대도 철학을 가르치고 의대도 역사를 가르쳐 이들에게 자리를 제공해야 합니다. 현재의 정부 재정지원사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원이 끊기면 그걸로 끝입니다. 사범대학 제도도 학문 인구의 저변 확대 관점에서 보면 문제입니다. 사범대 학과들을 보면 모두 기초학문을 담당하는 학과와 중첩돼 있습니다. 과를 나누기보다는 수학과 졸업생이 교육대학원에 가서 교원자격 과정을 밟아 교사가 될 수 있다면 수학과에 가는 학생도 늘겠죠. ▽홍 회장=학령인구가 크게 주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문과와 이과가 통합되면 8 대 1, 심지어 9 대 1 수준으로 이과 계열이 압도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현재도 취업에 취약한 인문·사회·자연대는 더욱 위축되겠죠. ▽사회=위기라고 말하지만 문사철(文史哲) 학과들이 정원 감축이나 전공 융합 같은 자구노력에 소홀하지 않았나요. ▽손 교수=교양교육 과정을 보면 인문학이 절반 이상입니다. 전국에 철학과가 10여 년 전 57개였는데 지금은 많이 줄었지요. 현 제도로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10개 정도로 줄여야 합니다. 그 교수들은 교양교육을 담당하면 됩니다. ‘겨우 교양교육을 가르치란 말이냐’고 반발한다면 그것이 잘못이죠. 철학 교수는 철학과에 소속돼야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교양교육에 대한 인식이 낮기 때문입니다. 학과 이기주의를 고집하다가 학생이 줄어 결국 폐과되는 상황을 극복해야죠. ▽윤 원장=정원 감축도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정원 감축에 대해서는 학내 반발이 무척 큰 데, 교수들로 하여금 전교생을 내 강의의 수강자로 만들겠다고 인식을 전환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 정원 감축도 큰 어려움 없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융합은 기초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을 때 가능한 것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기초를 얼마나 탄탄하게 만들 것이냐를 논한 연후에 융합을 이야기하여야 한다고 봅니다.  ▽홍 회장=강의 수요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현재 교양교육이 파행인 겁니다. 현재 교수들은 시야가 자기 학과에만 치중돼 있습니다. 대학원 등록금을 지원해 준다고 기초학문이 활성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등록금이 없어 대학원에 못 가는 게 아니죠. 강의 수요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대학들은 재정지원을 받기 위해 ‘튀는’ 제목의 인문학 지원서를 내놓기에 급급합니다. 시간강사 비율도 교양교육 쪽이 가장 높습니다. 강사료도 국공립 대학은 그나마 나은 편인데 지방, 사립으로 갈수록 차이가 크고 열악합니다. ▽사회=기초 교양학문 전공자들의 진로가 별로 없는 것도 큰 문제 아닙니까. ▽손 교수=제자들이 대학원에 진학하겠다고 하면 ‘오지 말라’고 합니다. 외국에 가서 공부하라고 해요. 국내 대학은 학업의 양과 질이 모두 떨어집니다. 일본을 보면 1950년대부터 외국에서 취득한 학위가 오히려 잘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 나름대로 지식생태계가 일본 안에서 정립되었기 때문이죠. 반면 우리나라는 21세기가 왔는데도 여전히 지식식민지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 교수를 충원할 때도 국내 학위는 별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윤 원장=대부분의 대학이 교양 전담교수를 비정년으로 임용하고 있는데 연봉이 3000만∼3600만 원밖에 안 됩니다. 이는 그들의 진로가 별로 없다는 것과 대학에서는 특히 글쓰기 교수가 필요하지만 재정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결합되어 나타난 문제입니다. 글쓰기 교수는 보통 과목당 학생 30명을 담당하는데 학생들의 글을 봐주고 토론, 첨삭지도를 하다 보면 교육 부담이 상상외로 큰데 그들에 대한 처우가 열악하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자리가 제한되어 있으니 이를 타개할 정책 지원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홍 회장=일본 도쿄대는 교양대학 출신이 사회에서 유능한 제너럴리스트로 인정을 받습니다. 이런 부분이 70년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한때 일본도 교양교육을 폄하하는 시기가 있었지만 잘 이겨냈고 현재까지 잘 지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에도 시카고대 같은 매우 오래되고 성공적인 교양교육의 사례들이 있습니다. ▽손 교수=윌리엄스대, 웰즐리대, 애머스트대 같은 미국 대학들은 유명 대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기초학문 분야를 4년간 집중 교육합니다. 미국의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의 학부 이력을 조사해 보니 작은 칼리지를 나온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홍 회장=교양교육은 평생교육입니다. 앞으로의 직업세계는 수시로 변해 개인이 평생 4, 5개 직업을 갖게 된다고 합니다. 평생 본인이 새롭게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기초 교양교육입니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의 경우 한국 학생들이 최상위권이지만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을 해서 직장에 가면 학업능력이 떨어지는 것도 기초교육이 부실하기 때문입니다. ▽사회=한국교양기초교육원이 2011년 설립됐는데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손 교수=초대 원장을 맡아 아무것도 없는 데서 정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회에서 교양교육 강화 이야기가 나와 교육부가 예산 10억 원을 마련해 기구가 탄생했죠. 기구는 대학교육협의회에 있는데 활동은 한국연구재단을 통해야 하는 등 행정적으로 좀 복잡하게 시작했습니다. 첫해에는 교양교육 연구비에 대한 지원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범대학적인 기구가 돼야 하기 때문에 노하우 확산에 중점을 뒀습니다. 대학들이 교양교육에 대해 노하우가 적은 교수들을 상대로 컨설팅을 했습니다. 몇 년 지나다 보니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합니다. 교양기초교육원은 법적 토대가 없는 임의 기구라는 취약점이 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안 주면 없어지는 겁니다.  ▽윤 원장=124개 대학에 대한 컨설팅 사업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3개 대학은 재신청해서 재차 실시했습니다. 컨설팅 효과의 증거입니다. 지방대의 경우 기초 교양학문 분야의 교수 초빙이 어렵습니다. 이를 지원하는 사업을 강화할 계획입니다. 강의 내용을 개발해 인근 대학들이 공동으로 교수를 위촉 관리하는 것입니다. ▽손 교수=‘담당 교수 강사 워크숍 지원사업’ 같은 것이 한 예입니다. 방학 때 철학이면 철학 과목 교양교육을 담당하는 교수, 강사가 모여서 어떻게 하면 더 잘 가르칠지 논의하는 모임에 지원이 필요합니다. ▽홍 회장=앞으로 할 일도 많습니다. ‘고전 아카이브’ 같은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외국의 경우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같은 아카이브를 통해 고전 텍스트를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마련해 놓으면 중고교생을 비롯해 누구나 고전을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죠. ▽사회=교양교육 활성화를 위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손 교수=‘소프트웨어 리터러시(literacy)’ 같은 디지털 기술도 기초학문의 개념에 넣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이제는 디지털 기술도 생활과 현업에서 꼭 배워야 하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윤 원장=기초학문을 인문학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자연과학 물리학 같은 이과 계통의 기초학문도 포괄하는 것이 기초학문이라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교양교육의 분류체계가 교육학의 하위 개념으로 되어 있어 각종 연구 지원 등에서 불리한 점도 개선됐으면 합니다.   정리=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6-12-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탄탄한 기초학문 교육… 문제 해결력-시대흐름 읽는 능력 키워

     미국 메릴랜드 주의 ‘세인트존스 칼리지’는 전교생이 45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대학이지만 뉴욕 월스트리트에서 이 학교 졸업생을 앞다퉈 스카우트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대학의 인기 비결은 고전 독서를 통한 독특한 교양교육 덕분이다. 4년 동안 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는 과정을 전교생이 똑같이 밟는다. 특별히 교육과정이라고 정한 것도 없고 교수와 학생의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상호 지적 작용이 가장 큰 원칙이다. 평가도 A, B, C학점 같은 상대평가가 아니라 세미나에 참가한 교수 서너 명이 학생 한 명을 놓고 집중 질문을 던져 다양한 능력을 종합 평가하여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가 성적표인 셈이다. 이런 평가 과정은 너무 힘들어 ‘교수가 달달 볶는다’는 뜻의 ‘돈 래그(Don Rag)’로 불리기도 한다. 이 대학이 고전 읽기에 중점을 두는 이유는 문학, 역사 등 다양한 독서를 통해 기초학문 능력을 쌓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시대 흐름을 읽어내는 창의력을 길러줄 수 있다는 교육 철학 때문이다. 교수들은 연구 성과를 학생 교육에 쏟고 싶은 동기가 강하고, 다른 전공 교수들과 토론을 즐기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업무 부담을 불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미국 대학들은 학교 특성에 맞는 다양하고 탄탄한 교양교육을 바탕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학의 공통점은 교양교육이 특정 학과 중심이 아니라 다양한 전공의 교수들이 참여하고 학문 간 경계가 없다는 점이다. 하버드대는 30년간 유지해 오던 학부의 기존 핵심 교양 체계를 2009년부터 해체하고 ‘새 교양교육(New General Education)’을 도입했다. 기초학문을 골고루 배우는 것만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기 어렵다는 진단 때문이었다. 종전의 교양교육이 학생들을 학문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면 새 교양교육은 거꾸로 학문을 삶 속으로 초대해 삶을 학문적으로 성찰하는 힘을 키워 주자는 것이다. 이에 따라 교양교육은 학문 단위가 아니라 삶의 단위 또는 주제 영역으로 진행된다. ‘미학적 해석적 이해’ ‘문화와 신념’ ‘생명체계의 과학’ ‘세계 속의 미국’ 등 8개 영역을 제시하고 각 영역에서 한 과목 이상 이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 주변의 통계: 당신이 행복하거나 불행할 가능성’이란 강좌는 재정투자, 온라인 데이트, 의료실험, 초콜릿 와인 시음 등 통계원리와 추론을 실생활과 연계하는 흥미로운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언뜻 실용 강좌 같아 보이지만 수준이 매우 높다. 학생 평가는 필기시험 대신 구두시험을 권장한다. 예일대는 전통적 교양교육으로 유명하다. 전공과목 진입 이전에 기초학문 과목을 저학년 때 모두 이수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배분필수’ 과목을 더 듣게 함으로써 교양과정과 전공과정이 융합되고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우수 학생들의 지적 호기심을 심화 계발하기 위한 ‘지도 탐구(Directed Study)’를 운영한다. 신입생의 10% 정도는 문학, 철학, 정치역사사상 등 3개 분야의 교과과정을 1년 동안 수강하고 있다. 서울대 기초교육원 김지현 교수는 “미국 대학들은 학부교육 자체가 기초학문 교육과정인데 책을 많이 읽고 토론하는 교육을 통해 우수한 학생으로 키워낸다”며 “하버드에서도 새 교양교육의 연성화(軟性化)에 대한 우려가 있기도 하지만 획일성을 탈피하고 시대 변화를 선도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 대학들도 교양교육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미 시대에 늦은 교육방법인 경우가 많다”며 “교양교육 정착 노력은 계속하되 새로운 교육 방법을 개발하고 확산시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대학은 미국과 달리 엘리트 교육의 성격이 강해 교양교육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하다. 영국에선 이미 고교 단계에서 수준 높은 교양교육을 받고 대학에 진학하기 때문이다. 세계적 연구력을 자랑하는 일본도 교양교육을 놓고 시행착오가 있었다. 1980년대 많은 대학이 교양학부의 효용성을 낮게 보고 줄줄이 폐지하고 각 단과대학에 통합시켰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교양교육 부실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자 많은 대학이 이를 후회했지만 일본 대학의 보수적인 제도 탓에 되돌리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도쿄대는 교양교육을 가장 잘 하는 학교로 부러움을 사고 있다. 교양교육을 위한 독립적인 학사 구조를 갖고 전공, 대학원과 연계해 유기적으로 운영해 온 덕분이다. 도쿄대는 고마바(駒場)와 혼고(本鄕) 두 곳에 캠퍼스를 두고 있다. 고마바 캠퍼스가 1, 2학년 때 기초학문 교육을 전담하고 3, 4학년 때 혼고 캠퍼스에서 전공을 가르친다. 교양교육에 관심을 갖고 3, 4학년 때도 교양 전공을 계속하는 학생도 많은데 대부분 우수 학생들이다. 도쿄대 교양학부의 성공은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젊은 교수가 많고, 교양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의 연구 성과가 학생 교육에 반영되게 교육과정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도쿄대는 2010년 새로운 교육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교양교육고도화기구(KOMEX)를 설립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학생 교육을 강화하고 자연과학, 기술 분야의 융합적인 연구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홍성기 한국교양교육학회장은 “일본에서 외국 대학 학위보다 일본 대학의 학위를 높게 평가하는 자신감은 탄탄한 학문 배경과 지식생태계가 갖춰져 있기 때문”이라며 “교양교육의 힘이 바로 대학 경쟁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유윤종 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16-12-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