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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15일 21명의 여성이 유서를 쓰고 북한으로 향했다. 이들은 북한 주민들의 전쟁 피해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국제민주여성연맹 한국전쟁 조사위원회’ 소속이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반(反)식민주의를 주창하며 만들어진 여성단체로, 6·25전쟁 당시 북한 지역을 조사한 첫 외부 조사단이었다. 저자는 그동안 활동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들의 발자취를 추적했다. 21명의 여성 조사위원은 덴마크와 알제리, 아르헨티나, 중국 등 18개국에서 왔는데, 이 중 6명은 당시 소련, 동독 등 공산권 출신이었다. 이들은 열흘간 신의주, 평양 등 10여 개 도시를 조사했다. 중공군 참전 후 연합군의 전방위 폭격으로 인해 폐허 속 토굴을 파고 사는 주민들을 목격했다. 이들은 정당한 사유로 시작된 전쟁이라도 정밀폭격이 아닌 인구밀집지역에 대한 폭격은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은 매카시즘 등 반공주의로 인해 소련의 선전 팸플릿으로 폄하됐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이 책은 전쟁으로 고통받는 제3세계 여성들과 적극적으로 연대하고자 한 이들을 통해 냉전사와 여성주의, 평화운동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조사위원들은 현장 조사 때 “전쟁이 언제 끝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고 한다. 이들이 한반도를 방문한 지 70년이 지난 현재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tvN 드라마 ‘빈센조’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마 한두 개가 아닐 테다. 다만 분명한 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에 주연인 빈센조 까사노(송중기) 홍차영(전여빈) 장준우(옥택연)만 있지는 않다는 거다. 그 어딘가 ‘금가프라자’의 상인들이 있다. 금가프라자는 드라마의 기둥이었다. 이탈리아 마피아 변호사 빈센조가 애초 한국행을 택한 건 금가프라자 지하에 있는 금괴를 찾기 위해서였다. 재건축을 빌미로 건물을 무너뜨릴 계획이었으나 건물 소유권을 바벨그룹에 빼앗기게 된다. 그 후 바벨의 비리들을 알게 되면서 전면전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빈센조와 협력하는 금가프라자 상인들의 개성과 능력이 빛을 발한다. 앞선 제작발표회에서 송중기가 “우리 드라마의 주인공은 금가프라자 사람들”이라고 말한 이유다. 드라마의 정체성을 품은 이곳 세트장은 한지선 미술감독이 가장 공들인 장소다. 그는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톡톡 튀기에 세트장은 티 나지 않게 자연스러웠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가 해석한 금가프라자는 낡아 보이긴 해도 상인들이 소중히 다뤘을 것 같은 장소였다. 한 미술감독은 프라자 내 빈센조와 홍차영의 근무지인 법무법인 ‘지푸라기’를 정돈된 분위기로 연출하려 노력했다. “통상 서류가 너저분하게 널린 작은 상가의 로펌 느낌이 아니라 애정을 갖고 가꾼 곳이라 생각했다”는 것. 디테일한 해석은 공간별로 확연한 차이를 만들었다. 프라자 내 제일세탁소에는 빛바랜 네임스티커, 이탈리아 식당 아르노에는 고가 와인들, 밀실에는 실제 무게의 8분의 1로 제작된 금괴 소품을 각각 준비했다. 댄스교습소 고스텝의 경우 래리강을 연기하는 김설진 배우가 현대무용가인 걸 감안해 그의 물건을 소품으로 가져왔다. 하지만 금가프라자는 단순히 오밀조밀한 생활공간이 아니다. 강제퇴거 용역과 상인들이 대치하거나 킬러와 빈센조가 추격전을 벌이는 등 신경 쓸 구석이 많았다. 한 미술감독은 액션신 등 동선을 고려해 복도를 일반적인 상가보다 넓게 설계했다. 그는 “약 6600m² 규모의 스튜디오였기에 제작 기간만 두 달 반이 걸렸다”고 말했다. 빈센조의 등장을 알리는 라이터도 그가 만들었다. 한 미술감독은 작가 등과 상의해 빈센조가 마피아임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까사노 가문 문양을 라이터에 새겼다. 그는 “저작권 문제로 칼, 방패, 독수리 날개 등 여러 가문의 상징을 섞어 만든 문양”이라며 “다만 빈센조가 한국에서 사용하는 라이터에는 악마 문양을 넣어 ‘악은 악으로 처단한다’는 드라마 부제를 부각했다”고 설명했다. 세심하고 대담한 공간 연출은 빈센조가 호평을 받는 데 큰 몫을 했다. 이 드라마 연출을 맡은 김희원 감독은 영상미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은 ‘돈꽃’(2017년)과 ‘왕이 된 남자’(2019년)의 메가폰도 잡았다. 한 미술감독은 김 감독과 함께 두 작품 제작에 참여해 영상미의 숨은 주역으로 꼽힌다. 그는 “새로운 작품을 할 때마다 욕심이 난다. 앞으로도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전남 구례 화엄사의 목조비로자나삼신불좌상이 국보로 지정된다. 비로자나불과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의 삼신불(三身佛)로 구성된 유일한 조선시대 불상으로 앞서 2008년 보물로 지정됐다. 17세기 불교 사상과 미술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불상들은 모두 3m가 넘는 대형이다. 1635년(인조 13년) 유명 조각승이던 청헌과 응원, 인균 등이 제작했다. 화려한 연꽃 대좌(臺座)와 팔각형 대좌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있는 불상은 굵은 선으로 중후한 느낌을 살렸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최근 불상에서 발견된 복장 유물을 통해 임진왜란 당시 소실된 화엄사를 재건하면서 대웅전에 봉안하기 위해 삼신불을 제작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때 왕실 인사와 승려 580명 등 총 1320명이 시주에 참여했다. 문화재청은 “17세기 제작된 목조불상 중 가장 크고, 불교 조각사에서 차지하는 위상도 중요한 문화재”라며 “예술성 측면에서도 조선 후기 불상 중 단연 돋보인다”고 평가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이건희 26兆 유산의 60% 내놓는다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이 26조 원에 달하는 유산 중 60%를 사회에 기부하거나 세금으로 납부한다. 상속세 12조 원을 포함해 의료 기부 1조 원,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포함해 총 15조∼16조 원에 달하는 규모다. 28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등 유족은 삼성이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상생 노력을 거듭 강조한 고인의 뜻에 따라 다양한 사회환원 사업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겠다”며 기부 계획을 밝혔다. 1조 원 기부는 한국의 의료 발전에 쓰인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한국 최초의 감염병전문병원 설립 등에 7000억 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3000억 원은 소아암과 희귀질환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며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개인 소장 미술품 2만3000여 점은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기증한다. 국보 14건과 보물 46건, 클로드 모네와 파블로 피카소, 김환기, 박수근 등 국내외 작가의 걸작이 포함됐다. 미술계 관계자는 “실제 경매에 들어가면 5조 원이 넘을 것”이라며 “값을 매길 수 없는 진귀한 컬렉션”이라고 평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예술성, 사료적 가치가 높은 주요 예술품을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한 것은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역대급 수준이다. 6월부터 순차적으로 전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이 내야 할 상속세는 12조 원대로 연부연납 제도를 통해 이달부터 5년 동안 6차례에 걸쳐 낼 계획이다. 상속세 역시 세계적으로도 역대 최대 수준이다. 유족은 “세금 납부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유족은 지분을 지키면서 상속세를 내느라 제2금융권 신용대출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수조 원대의 사회 환원에 나선 것은 이 회장의 뜻을 잇기 위해서라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이고 사회가 기대하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겸재 단원 모네 샤갈… ‘이건희 컬렉션’ 올여름 시민에 공개전시미술품 2만3000점 대규모 기증국보-보물 60건 국립중앙박물관에… 국립현대미술관, 모네 작품 첫 소장지역미술관 5곳-서울대에도 기증, 감정액 2조 추정… 정부도 “역대급”삼성이 기증하는 2만3000여 점의 소장품은 양과 질 모두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선 삼성 측과 기증 논의를 시작한 올 초까지만 해도 이 정도 규모의 컬렉션이 오리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는 반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속될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약 2만1600점은 지금까지 기증된 유물(약 5만 점)의 43%에 달하는 규모다. 이 중 1급 유물로 통하는 국가지정문화재가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다. 이번 기증 전까지 국립중앙박물관의 최대 기증은 고 동원 이홍근 선생이 1980, 81년에 내놓은 4941점이었다. 문화재계에선 박물관 기증품 중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와 단원 김홍도(1745∼?)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를 첫손에 꼽는 이가 많다. 조선 회화사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문화재계 인사는 “겸재와 단원의 그림들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이들의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작품은 거의 없다”며 “기증품들은 이런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걸작”이라고 평가했다. 영조 27년(1751년) 겸재가 그린 인왕제색도는 가로 138.2cm, 세로 79.2cm의 대작으로, 인왕산에 비가 내린 후 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담았다. 거대한 암벽을 그릴 때 아래로 붓을 내리긋는 대담한 필치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중국 산수화를 모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선의 산수를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추성부도는 단원이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시를 읽고 그 감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단원 그림의 상당수가 작자나 연도 미상인 데 반해 이 그림은 단원이 1805년 동지 사흘 후 그렸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은 “단원의 말년 작으로 그의 쓸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시적인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계 일각에선 기증품 수량과 질을 감안할 때 박물관에 별도의 전시실을 두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박물관 관계자는 “별도의 기증관을 만들 계획은 아직 없다”며 “기존의 주제별 상설전시관에 기증품을 분산 전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은 두 그림을 포함해 이건희 컬렉션 중 대표작 40, 50점을 추려서 올 6월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이어 내년 10월경 전시품을 수백 점으로 늘려 이건희 컬렉션 명품전(가칭)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클로드 모네, 마르크 샤갈 등 국내외 거장의 근현대 미술품 1400여 점이 기증된다. 강렬한 붉은색 배경에 울부짖는 듯한 황소가 힘찬 기운을 뿜는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는 작가가 헤어진 가족과 곧 만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시기에 그려 당당한 기세가 돋보인다. 김환기가 한국 전통미에 주목하며 그린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소박한 정취를 풍기는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도 포함됐다. 클로드 모네의 대표작인 수련 연작 중 ‘수련이 있는 연못’(1919∼1920년)도 눈길을 끈다.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은 모네가 그린 대작(가로 2m 세로 1m)으로 미술계에선 400억 원대의 가치를 지녔다는 추정이 나온다. 이로써 미술관은 이중섭의 황소와 모네 그림을 처음 소장하게 됐다. 미술관은 올해 8월 서울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을 시작으로 9월 과천관, 내년 청주관에서 전시를 연다. 이 밖에 삼성은 대구미술관,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등 지역 미술관 5곳과 서울대에도 143점을 기증하기로 했다. “수집 어렵던 근대미술품 대거 보강… 엄청난 선물”전문가 “희소가치 높은 작품들로 박물관-미술관 도약 계기 기대”‘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으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소장품의 수준을 크게 높이게 됐다. 박물관은 보유 문화재의 스펙트럼을 넓히게 됐고, 미술관은 희소가치가 높고 수집하기 어려웠던 근대미술 작품을 대거 보강하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진우 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장은 “발굴 매장 문화재가 대부분이었는데 우리 역사 시대 대부분을 아우르는 회화, 공예 등 문화재를 고루 소장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 작가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거장의 작품을 상설전으로 볼 수 있게 됨에 따라 우리 국민의 문화 향유권이 한층 높아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는 “세계 미술계의 시간표가 어떻게 짜여졌는지 항상 볼 수 있어야 예술적 안목을 키워 한국 미술을 국제화할 수 있다”며 “대단히 중요한 작품들이 기증돼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삼성이 ‘한국의 메디치가’에 비견될 정도의 역할을 해 한국 박물관과 미술관이 큰 도약을 할 수 있는 인프라를 단숨에 마련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미술계 인사들은 이번 기증이 이뤄진 배경에는 이 회장이 일찌감치 기증을 염두에 두고 걸출한 미술품들을 수집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기도 한다. 이 회장은 과거 일본 오쿠라호텔의 뒷마당에 있던 조선 왕조 왕세자의 공부방인 자선당의 기단을 구입해 정부에 기증하기도 했다. 1997년 펴낸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동아일보사)에서 국립박물관을 관람한 경험을 전하며 “상당한 양의 빛나는 우리 문화재가 아직도 국내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실정이다. 이것들을 어떻게든 모아서 국립박물관의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김현수 kimhs@donga.com·손효림 기자 / 김상운 sukim@donga.com·김태언 기자}

8일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받는 이는 tvN ‘나빌레라’ 제작진, 보낸 이는 자신이 60대라고 했다. 이 60대는 가지런한 글씨로 편지 한 장에 자신의 일상을 고백했다. 그는 이렇게 전했다. “최근에 음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예순을 훌쩍 넘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서야 난생처음 피아노, 성악을 배우다 보니 여간 힘들지 않더군요. 너무 늦었단 생각에 포기해야 하나 갈등하던 중에 나빌레라를 봤습니다. 저도 모르게 박인환 배우님에게 동화돼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예전 같지 않은 체력과 사회에서 소외되어 가는 듯한 기분 때문에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용기 내 도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년 배우들의 활약이 중장년층의 생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들은 70세에 발레에 도전하는 심덕출(박인환)을 보고 마음 한구석에 접어놨던 꿈을 꺼낸다. 74세의 나이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을 보며 삶을 버틸 용기를 얻는다. ‘내리막길 인생’으로 치부됐던 이들에게 노년 배우들의 발자취가 희망으로 비치는 것이다. 27일 중장년층이 주를 이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59세 남성이라고 밝힌 이는 “나빌레라를 보다 학창 시절 발레를 전공한 아내가 환갑을 1년 앞두고 다시 발레학원에 등록했다. 참 자랑스럽다”고 썼다. 드라마를 연출한 한동화 PD(49)는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중장년층에게 가벼운 응원보다는 깊은 감동으로 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70년이란 세월을 보낸 ‘진짜 덕출’이 필요했고, 박인환 나문희 선생님 덕에 주름 하나, 대사 한마디로도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나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중장년층 관객들이 많은 것 또한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끼기 위한 이유가 크다. 지난주 미나리를 관람한 김용상 씨(65)는 “한국에선 이미 ‘국민배우’ 반열에 오른 윤여정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기에 궁금해서 영화를 봤다”며 “지금까지 봐 온 윤여정의 연기 중 가장 진짜 같았다. 시간과 연륜이 헛되이 지나가는 게 아니라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생각에 위안이 컸다”고 밝혔다. 최근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최모 씨(66·여)도 “전공이 공학이었는데 젊을 때 한 일은 비서였다. 같은 여성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꾸준히 도전했고, 그걸로 상까지 받은 윤여정이 ‘멋진 동년배’로 보였다. 죽을 날 받아놓은 양 심심하게 살아오던 우리에게 희망이 됐다”고 말했다. 미나리를 향한 중장년층의 관심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28일 CGV 데이터전략팀에 따르면 미나리는 타 영화 대비 50대 이상 예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미나리가 개봉한 지난달 3일부터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인 25일까지 미나리의 50대 이상 예매율은 26%였다. 같은 기간 미나리를 제외한 다른 영화들의 50대 이상 예매 관객은 15%였다. 타 영화에 비해 50대 이상 관객 비중이 11%포인트나 높은 것.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에는 미나리 예매 관객의 50대 이상 비율이 26%에서 27%로 1%포인트 소폭 상승했다. 황재현 CGV 커뮤니케이션팀장은 “50대 이상은 당일 현장 구매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들의 예매율이 전체의 26%에 달하는 건 매우 높은 수치”라고 설명했다.김태언 beborn@donga.com·김재희 기자}

대구 팔거산성에서 7세기 초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 목간(木簡·나무막대로 제작한 문서) 11점이 출토됐다. 대구에서 신라시대 목간이 나온 건 처음이다. 팔거산성이 신라시대 행정·군사거점 중 하나였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자료다. 28일 문화재청에 따르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화랑문화재연구원이 최근 팔거산성에서 출토된 목간 11점에 대해 적외선 사진촬영을 실시한 결과 11점 중 7점에서 글자가 발견됐다. 1호 목간에선 ‘壬戌年’(임술년), 6호 및 7호 목간에서는 ‘丙寅年’(병인년) 글자가 각각 확인됐다. 주변 유물과 문헌을 검토한 결과 임술년은 602년, 병인년은 606년으로 각각 추정됐다. 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이른바 ‘간지(干支) 목간’은 유적 연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돼 의미가 적지 않다. 보리와 벼, 콩과 같은 곡식 이름도 목간에서 확인됐다. 이는 조세 등 물자가 팔거산성에 집중되었음을 보여주는 근거다. 신라시대 왕경(王京)인 경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자리 잡은 팔거산성에 군사기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소는 “팔거산성은 금호강과 낙동강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는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7세기 초반 신라 왕경 서쪽을 방어하기 위한 전초기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삼성이 이번에 기증하기로 한 2만3000여 점의 소장품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 수 있는 컬렉션이라는 게 문화계의 시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속될 소장품 약 2만 점은 지금까지 기증된 유물(약 5만여 점)의 43%에 달하는 규모다. 박물관 소장 유물(43만여 점) 기준으로는 전체의 약 5%에 이르는 수량이다. 이 중 1급 유물로 통하는 국가지정문화재가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문화재들이지만 박물관 안팎에선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와 단원 김홍도(1745~?)의 추성부도(보물 1393호)를 첫 손에 꼽는 이들이 많다. 조선 회화사를 대표하는 두 거장의 그림 중에서도 대표작이자 대작으로 통하는 문화재들이기 때문이다. 문화재계 인사는 “겸재와 단원의 그림들이 이미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지만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작품이 거의 없었다”며 “두 작품은 이런 빈틈을 메울 수 있는 걸작들”이라고 평가했다. 영조 27년(1751년) 겸재가 그린 인왕제색도는 가로 138.2㎝, 세로 79.2㎝의 대작으로, 인왕산에 비가 내린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담았다. 거대한 암벽을 그릴 때 아래로 붓을 내리긋는 대담한 필치가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중국의 산수화를 모방하는데 그치지 않고 조선의 산수를 직접 보고 그린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단원이 그린 추성부도는 중국 송나라 문인 구양수의 시를 읽고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가을밤 책을 읽다가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는 시를 그림 왼쪽에 행서체로 썼다. 단원 그림 상당수가 작자나 연도 미상인데 반해 이 그림은 단원이 1805년 동지 사흘 후 그렸다는 내용이 적시돼 있다. 이수미 국립광주박물관장은 “단원의 말년작으로 그의 쓸쓸한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시적인 그림”이라고 평가했다. 문화재계 일각에선 기증품 수량과 질을 감안할 때 박물관에 별도 기증관을 세우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박물관 관계자는 “현재로선 별도의 기증관을 세울 계획은 없다. 기존 주제별 상설전시관에 기증품을 분산 배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물관은 두 그림을 포함해 이건희 회장 컬렉션 대표작 40, 50점을 추려서 올 6월 특별전을 열 계획이다. 이어 전시품을 수백 점으로 늘려 내년 10월경 명품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국립현대미술관으로는 김환기, 박수근, 이중섭, 클로드 모네,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등 국내외 거장들의 근현대미술 1600여 점이 기증된다.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1950년대),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년)을 비롯해 강렬한 붉은 색 배경에 울부짖는 듯한 황소가 힘찬 기운을 뿜어내는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가 포함됐다. 끌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1919~1920)은 대표작인 수련 연작 가운데 하나다. 가로로 긴 화폭에 연못의 수면과 수련만 담았고, 수면에 반짝이는 빛을 묘사했다. 이로써 미술관은 이중섭의 황소, 모네의 그림을 처음 소장하게 됐다.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년)은 신화 속 존재인 켄타우로스들이 복부 구멍에서 아기들을 꺼내는 장면을 묘사했다. 전교한 기술과 균형감 있는 구도가 돋보인다. 삼성 측은 대구미술관,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등 지역 미술관 5곳과 서울대에도 143점을 기증하기로 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김태언 기자beborn@donga.com}

“닮고 싶은 찐어른”…솔직담백 롤모델, 윤여정에 빠졌다 “노년에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구나”, “고통을 통해 경지에 오른 푸르른 감각”, “또박또박 성실하게 살아온 삶에 경의를 표한다”…. ‘윤여정 신드롬’이 뜨겁다. 한국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윤여정(74·사진)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는 글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달구고 있다. 윤여정의 매력은 솔직하고 매사 최선을 다하며 남을 배려하는 ‘찐어른’의 모습에서 나온다. 남을 속이거나, 자기의 일을 떠넘기거나, 내로남불에 젖은 ‘무늬만 어른’이 많은 시대에 윤여정은 솔직하다 못해 투명하다. 2018년 SBS ‘집사부일체’에서 “나도 맨날 실수하고 화도 낸다. 인품이 훌륭하지도 않다”며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살면 된다. 어른이라고 해서 꼭 배울 게 있느냐?”고 한 게 대표적이다. 윤여정은 한발 물러서며 다른 이를 빛내기도 한다. 올해 tvN에서 방영한 ‘윤스테이’에서 외국인 손님들이 음식을 칭찬하자 “(요리를 한) 친구들이 최선을 다했다. 셰프와 훈련을 했고, 집에서도 연습을 많이 했다”며 후배들에게 공을 돌렸다. ‘진짜 어른’의 면모를 발산하는 그를 보며 젊은이들은 힘을 얻고, 자신도 멋진 어른이 되는 길을 그려보기도 한다. 윤여정은 젊은이들도 어려워하는 도전과 소통에도 거침없이 뛰어든다. 남녀, 세대, 국적을 뛰어넘어 그에게 빠져드는 이유다. 사람들이 윤여정을 보며 마음을 열고 열광하는 지점은 가장 중요하지만 실상 지켜지기 어려운 기본 가치에 대한 것들이다. 약속대로 행동하고 권위주의에 물들지 않는 그를 보며 많은 이들이 존중받는다고 느낀다. 전에 없던 롤모델을 찾아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사람들은 인간사 여러 풍파를 온몸으로 겪어낸 한 여성의 모습에 때론 동질감을, 노력과 품격을 잃지 않는 프로의 모습에 때론 동경을 품는다. 윤여정이라는 인간 자체가 가진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평가다. 그는 영화 ‘화녀’로 충무로 최고의 배우로 떠올랐지만 홀연히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고, 이혼 뒤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제로 상태였다. 배우로서 경력이 단절됐던 그가 다시 바닥부터 시작해 아카데미 트로피를 들고 자신을 일하게 만든 자녀들에게 감사를 전한 것은 다양한 위치에 놓인 사람들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위로를 받았다는 워킹맘과 경력단절여성들, 감사를 느꼈다는 누군가의 아들딸들이 많았다. 원로 배우이기에 편안하게 많은 걸 누릴 수 있지만 낮은 자세로 연기에 임하는 윤여정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돌아보기도 한다. 그는 ‘미나리’ 촬영에 참여하기로 한 후 제작비가 빠듯하다는 얘기를 듣고는 미국행 비행기표를 직접 구입했다. 윤여정은 올해 SBS 웹예능 ‘문명특급’에서 미나리 촬영 당시에 대해 “미국 애들한테 ‘왓(What)?’ 소리 들으면서 난 여기서 진짜 노바디(Nobody)구나, 연기를 잘해서 얘네한테 보여주는 길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이런 작품을 해야 도전이지”라고 했다. 이어 “감독들한테 ‘이렇게 오래 찍으면 나 간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면 발전을 못 한다”고 말했다. 2013년 예능 ‘꽃보다 누나’에서는 “똥 밟았다 생각할 수 있는 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원치 않는 경험에서도 얻는 것이 있다”고 했다. 움츠러든 이들은 낯설고 거친 상황도 피하지 않는 그를 보며 나아가 보라는 용기를 얻는다. “세상은 서러움 그 자체고, 인생은 불공정, 불공평이다. 그런데 그 서러움은 내가 극복해야 한다. 나는 극복했다”(2017년 tvN ‘택시’)는 말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윤여정은 나이를 막론하고 격의 없이 어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통하고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하는 젊은층이 특히 닮고 싶어 하는 모습으로 꼽는다. tvN ‘윤식당’에서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너희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 된다.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한다”고 한 말은 큰 호응을 얻었다. 인생의 숱한 굴곡을 헤쳐 온 그이기에 한마디 한마디에서 진심을 느낀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내 인생만 아쉬운 것 같지만 다 아프고 다 아쉽다”(tvN ‘꽃보다 누나’), “젊을 때는 아름다운 것만 보이겠지만 아름다움과 슬픔이 같이 간다”(tvN ‘택시’)는 말이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다. 특히나 젊은이들이 윤여정에게 열광하는 이유가 이런 굴곡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윤여정은 늘 1등 자리에 머물며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배우가 아니라 지나칠 정도의 굴곡이 있었던 사람”이라며 “최근 박탈감이나 좌절감을 많이 느끼는 젊은 세대들이 꾸준히 노력해 자기 분야에서 끝내 성공하는 윤여정의 모습을 보면서 위안을 얻고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형적인 틀을 거부하는 행보도 신선함을 선사한다. 2005년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에서 그는 주인공 금순(한혜진)의 할머니 역을 맡았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 역에 머무르지 않겠다. 뻔한 역을 할 거면 어머니 역을 건너뛰고 할머니 역을 해도 괜찮다”고 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윤여정은 자신의 생각대로 선택하되 이를 강요하지 않고 각자 판단하게 한다”며 “젊은층이 기성세대에 대해 가졌던 편견을 깨게 돼 즐거워하고 환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며들다.’ 사람들이 윤여정에게 스며드는 현상을 의미하는 말이다.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온 그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노년에 저렇게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구나”, “고통을 통해 경지에 오른 푸르른 감각”, “또박또박 성실하게 살아온 삶에 경의를 표한다”…. ‘윤여정 신드롬’이 뜨겁다. 한국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윤여정(74·사진)에게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내는 글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달구고 있다. 윤여정의 매력은 솔직하고 매사 최선을 다하며 남을 배려하는 ‘찐어른’의 모습에서 나온다. 남을 속이거나, 자기의 일을 떠넘기거나, 내로남불에 젖은 ‘무늬만 어른’이 많은 시대에 윤여정은 솔직하다 못해 투명하다. 2018년 SBS ‘집사부일체’에서 “나도 맨날 실수하고 화도 낸다. 인품이 훌륭하지도 않다”며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살면 된다. 어른이라고 해서 꼭 배울 게 있느냐?”고 한 게 대표적이다. 윤여정은 한발 물러서며 다른 이를 빛내기도 한다. 올해 tvN에서 방영한 ‘윤스테이’에서 외국인 손님들이 음식을 칭찬하자 “(요리를 한) 친구들이 최선을 다했다. 셰프와 훈련을 했고, 집에서도 연습을 많이 했다”며 후배들에게 공을 돌렸다. ‘진짜 어른’의 면모를 발산하는 그를 보며 젊은이들은 힘을 얻고, 자신도 멋진 어른이 되는 길을 그려보기도 한다. 윤여정은 젊은이들도 어려워하는 도전과 소통에도 거침없이 뛰어든다. 남녀, 세대, 국적을 뛰어넘어 그에게 빠져드는 이유다.김기윤 pep@donga.com·김태언 기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이후 윤여정(74·사진)의 차기작을 놓고 관심이 쏠린다. 추후 행보와 더불어 그가 출연한 전작이나 광고도 화제다. 윤여정의 차기작은 미국 드라마 ‘파친코’다. 미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애플TV 플러스가 제작하는 드라마로, 올해 말 8부작으로 방송될 예정이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부터 광복 후 1980년대까지 일본으로 건너가 모진 삶을 산 조선인 4세대의 삶과 정체성을 그린 작품이다. 2018년 한국계 미국 작가 이민진이 쓴 동명의 장편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윤여정은 드라마에서 장애인 부모에게 태어나 일본 야쿠자에 속한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등 산전수전을 겪는 주인공 ‘선자’ 역을 맡았다. 올 2월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미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원하냐’는 질문에 “나는 도전하는 걸 즐긴다. 소설을 읽고 정말 감동받았다. 내가 이 역할을 정말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파친코는 미국, 일본 출연진이 함께 등장하는 대작. 윤여정은 국내 배우 중 이민호, 정은채 등과 지난달 캐나다에서 촬영을 마쳤다. 파친코에 대한 국내외 관심은 높다. 16일 미국 연예지 더 할리우드 리포터는 영화 ‘미나리’와 파친코를 설명하면서 윤여정을 “어느 때보다 밝고 넓은 전망을 가진 70대 한국 여배우”로 소개했다. 원작 소설이 미국 뉴욕타임스에 의해 2017년 10대 도서로 선정된 데다 이민진 작가가 미국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초청 강연에 나서는 등 원작에 대한 기대감도 높다. 국내 소셜미디어에서도 “장편소설을 재밌게 읽었는데 기대된다” “노년 배우들에게 여러 기회가 주어지는 것 같아 보기 좋다” 등의 반응이 나오고 있다. 윤여정의 과거 작품들도 화제다. 독립·예술영화 전문극장 씨네큐브는 ‘하녀’ ‘죽여주는 여자’ ‘바람난 가족’ ‘찬실이는 복도 많지’ 등 윤여정 대표작을 상영 중이며, 한국영상자료원도 다음 달 7일부터 시네마테크 KOFA에서 윤여정 특별전을 개최해 ‘충녀’ ‘어미’ ‘천사여 악녀가 되라’ ‘여배우들’ ‘돈의 맛’ 등 윤여정의 주·조연작 17편을 상영한다. 국내 OTT 플랫폼 왓챠, 웨이브, 티빙도 윤여정 출연 영화를 기획전으로 따로 배치했다. 방송가도 합세했다. KBS는 29일 다큐멘터리 ‘다큐인사이드’를 통해 윤여정의 55년 배우 인생을 조명한다. 한예리, 김고은, 강부자, 이순재 등 윤여정과 호흡을 맞췄던 11명의 동료가 그에 대해 이야기한다. 아카데미 시상식에 앞서 윤여정 특집 다큐 ‘윤스토리’를 내보냈던 OCN도 오스카 수상 당일 이를 재방송해 수상을 축하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젊은이들이 칠순을 넘긴 윤여정(74)의 매력에 빠졌다. ‘쿨’한 매력을 뽐내며 활동적인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의 대명사로 떠오른 윤여정의 솔직담백한 일거수일투족이 젊은 세대에게 긍정적으로 비치고 있어서다. 윤여정은 시원시원하다. 그의 어법은 직설적인 듯 친근하다. 그가 가진 특유의 어투는 ‘휴먼여정체’(한글 프로그램에 쓰이는 휴먼명조체를 패러디한 말)라고 불리며 온라인에서 유쾌하게 소비되고 있다. 예컨대 최근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자 인스타그램에 ‘어우 나 증말, 미쳐. 얘, 너무 더운 거 아니니?’라는 휴먼여정체가 태그로 달리는 식이다. 그는 일찍이 TV 예능 프로그램 ‘윤식당’ ‘윤스테이’ 등에 출연해 마흔 살 이상 차이 나는 젊은 배우들과 소통하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윤스테이에서 외국인 손님에게 영어로 메뉴를 소개할 때는 인터넷 어학사전을 검색하거나 주변에 물어보는 등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이른바 ‘꼰대’들에 지친 젊은층은 당당하지만 자기주장을 강요하지 않는 윤여정의 태도를 높게 평가한다. 2017년 윤식당 시즌1 촬영 후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서진이가 메뉴를 추가하자고 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센스가 있으니 들어야죠.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난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 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이런 열린 가치관에 후배 배우들은 자연스레 존경심을 표한다. 24일 OCN에서 방영된 ‘윤스토리’에서 배우 봉태규는 “윤여정은 개성이 뚜렷하지만 다른 배우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며 “현장에서 엄청 성실하다. 그 성실함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힘은 아닌 거 같다”고 말했다. 위트 있는 입담은 덤이다. 2012년 KBS 연기대상에서 MC를 맡은 윤여정은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희극 여배우들’을 패러디하며 “난 못생기지 않았다. 난 시크하다. 그런데도 못생겼다는 이유로 KBS에서 수십 년 드라마를 했으나 상 한 번 못 탔다. KBS는 각성하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의 트렌디한 개성은 패션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윤여정은 최근 유튜브 채널 ‘문명특급’에 나와 “그냥 입고 우기면 된다. 뭘 소화를 하냐. 내가 내 돈 내고 사 입는 건데”라고 거침없이 말했다. 2013년 TV 예능 프로그램에선 “김민희가 패셔니스타라 옷을 잘 입는다. 김민희에게 쇼핑을 한 뒤 연락하라고 하고 이후 내가 그대로 구입한다”고 했다. 김태언 기자beborn@donga.com}

조선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장수한 영조(1694∼1776)는 이중탕(理中湯)을 즐겨 마셨다. 인삼과 말린 생강, 감초로 끓인 궁중 차다. 배가 아프고 설사할 때 효험이 있는 약물이기도 했다. 영조실록에는 ‘임금의 환후가 조금 나았다. 임금이 이는 이중탕의 공(功)이니 이름을 건공탕(建功湯)이라 하겠다고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조선 왕실에서 전수돼 온 정통 궁중 별식을 경복궁에서 맛볼 수 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와 한국문화재재단은 ‘경복궁 생과방’ 행사를 통해 병과 6종과 약차 6종을 소개하고 있다. 생과방은 왕실 별식을 만들던 전각을 뜻한다. 재단은 조선왕조실록과 원행을묘정리의궤 기록을 토대로 별식을 재현했다. 이 중 이중탕 등 약차(藥茶)는 다양한 병증에 사용됐다. 소화불능을 앓은 순조는 식후에 생강과 꿀로 만든 담강다(淡薑茶)를 마셨다. 정조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노환을 앓자 인삼과 귤피를 넣은 삼귤(蔘橘)차를 들었다. 중종 땐 왕의 몸에서 열이 나고 갈증이 나자 의녀가 오미자(五味子)차를 대령했다는 기록이 있다. 의관은 승하를 앞둔 영조의 마지막 온기를 되살리기 위해 강귤(薑橘)차와 계귤(桂橘)차를 올렸다. 간식 격인 궁중 병과의 대명사는 약과였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1192년 고려 명종은 사치스러운 사회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약과를 금하고 과일을 대신 올리라고 명했다. 고려 공민왕도 약과 금지령을 내렸다. 약과가 사치품으로 여겨질 정도로 값비싼 음식이었던 것. 찹쌀가루에 색을 들여 만두처럼 빚고 기름에 지지는 조악(助岳) 떡은 고종 즉위 40주년 기념 연회에 진상됐다. 형형색색의 궁중 간식은 입뿐만 아니라 눈도 즐겁게 한다. 재단은 이번 재현 행사에서 생과방에서 마음에 드는 병과와 약차를 주문하면 조선시대 궁중 나인의 복장을 한 직원들이 이를 내오도록 했다. 병과는 1000∼2500원, 약차는 4000∼5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6월 30일까지.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알코올 중독과 회복에 관한 회고록이라면 많은 이가 따분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저자는 냉소적 시선은 제대로 된 고백을 힘들게 한다고 말한다. 미국 작가 제임스 프레이는 마약 중독 회고록 ‘백만 개의 작은 조각’(2003년)에 경험담이 아닌 허구의 인물을 써 논란을 일으켰다. 이 책은 파멸보다 회복의 이야기가 더 매력적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전 남자 친구인 데이브와의 만남, 갈등, 이별, 재결합의 과정은 매력적인 서사다. 데이브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폭음하던 저자에게 “겁이 난다”고 했다. 데이브와의 관계는 저자의 알코올 중독과 금주, 재발, 회복의 전 과정과 얽히면서 바뀐다. 체험담이 전부가 아니다. 레이먼드 카버, 찰스 잭슨, 마르그리트 뒤라스 등 알코올 중독에 빠진 천재 작가들의 삶을 통해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다룬다. 1950년대 중반 술을 끊기 위한 알코올 중독자 모임(AA)에 활발히 참석한 찰스 잭슨은 중독으로부터의 회복이 글쓰기에 영감을 준다고 믿었다. 그는 수년째 글을 거의 못 썼지만 이 모임에 참석한 지 몇 달 만에 200쪽 이상을 썼다. 저자는 AA를 통해 회복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중독자 처벌에 대한 역사도 소개한다. 중독에 빠진 유명 작가부터 일반인까지 폭넓게 다룬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든 중독될 수 있고, 또 누구든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 것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2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난 이환 감독(42)은 첫눈에 띄었다. 푸르게 물든 머리와 수가 가늠되지 않는 피어싱. 화려하게 치장하고 구석에 앉은 이 감독은 자신의 작품 속 아이들과 닮아 있었다. 청소년들의 어두운 현실을 그린 이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 ‘어른들은 몰라요’가 15일 개봉한다. 영화는 그의 전작인 ‘박화영’(2018년)에서 조연으로 나온 세진(이유미)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진은 화영(김가희)의 집에서 지내는 가출 청소년인데 극 후반 홀연히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이번 작품에선 임신한 10대 소녀 세진이 동갑내기 친구 주영(안희연)과 만나 낙태를 시도한다. 이 감독은 기획 의도에 대해 “박화영 개봉 당시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청소년 쉼터 선생님이 10대 이야기를 한 번 더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유미 배우가 어떤 연기로 관객을 끌고 갈지도 궁금했다”고 말했다. 리얼리즘은 여전하다. 전작 때도 10대들의 말투와 행동이 리얼해 관객에게 트라우마를 줄 정도라는 평이 많았다. 수십 개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음지에서 행해지는 낙태 실상을 연구했다. “우연히 인스타그램 라이브를 통해 10대가 자해하는 장면을 봤다. 그 자체도 놀랐지만 어른들이 그 아이를 보고 ‘환심을 사려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영화는 전작보다 핏빛이다. 화영의 인간관계에 집중하며 모성애를 은연중 내보인 박화영과 달리 이번에는 낙태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이 감독은 “시나리오를 떠올린 2년 전 떠들썩한 낙태 찬반 논란을 보며 함께 고민해 봤으면 했다”고 말했다. 배경음악에도 신경을 썼다. 엔딩곡으로 점찍어 놓은 빈첸의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신가요’는 자퇴를 다룬 노래로 영화의 맥락과 맞닿아 있다. 그의 영화는 사실 관객을 불편케 한다. 그는 “어른들은 위기 청소년들의 존재를 믿고 싶지 않아 한다. 관심까진 아니더라도 그들을 부정하지 않아 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차기작으로 범죄 드라마를 준비 중이지만 관계라는 키워드를 놓지 않을 작정이다. “박화영도 이번 작품도 일종의 가족 영화라고 생각한다. 끊긴 관계에서 오는 결여나 새로운 관계 만들기 등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영화에 녹이고 싶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단원 김홍도(1745∼?)의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은 뮤지컬, 소설, 연극 등 여러 예술작품의 모티브가 돼왔다. 도첩에 실린 그림 중 ‘무동도’는 정물이지만 역동성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그림 속 무동은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신명나게 팔과 다리를 흔든다. 200여 년간 그림 속에 갇혔던 흥겨운 춤판이 현대로 소환됐다. 10, 11일 국립중앙박물관은 무동도를 소재로 ‘The Line of Scene’ 발레 공연을 열었다. 이 작품을 만든 정형일 안무가는 “풍각쟁이들의 연주와 무동의 춤이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넘치게 표현된 그림을 보면서 자유로움과 해방감에서 나오는 본능적 표현을 생각하게 됐다”며 “엄격히 학습된 정통발레에서 벗어나 춤이라는 본질을 드러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작품은 2019년 안산문화재단의 ‘댄싱키즈’ 공연에서 초연됐다. 정 안무가의 말처럼 작품은 무용수의 선이 특히 돋보인다. 배경과 소품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신체 하나만으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김홍도가 배경을 생략하고 등장인물들이 취하는 자세와 동작에만 집중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또 공연 중간에 정지 동작이 많은데 이는 한 번에 이어지지 않는 붓 터치를 연상시킨다. 연출도 눈여겨볼 만하다. 오프닝은 샤막(무대 전면에 설치되는 반투명의 막) 뒤에서 무용수 아홉 명이 춤을 춘다. 약 20초 뒤 샤막이 걷히는데, 마치 그림 속 주인공이 살아나 춤을 추는 듯하다. 오프닝 음악인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바이올린 피치카토(현을 손가락으로 뜯어 음을 내는 방법) 편곡은 가야금 연주 소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무용수들의 의상은 먹물을 떨어뜨린 한지를 상상케 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막걸리 빚기가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13일 막걸리를 빚는 작업뿐 아니라 생업, 의례, 경조사 등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생활관습까지 무형문화재 지정을 예고했다. 막걸리 빚기는 2019년 국민신문고 국민제안을 통해 국가무형문화재 지정을 예고한 첫 사례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통해 삼국시대부터 막걸리 제조 기록이 확인되고 현재까지도 한반도 전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점이 고려됐다. 농요와 속담, 문학작품 등을 통해 막걸리 문화가 꾸준히 향유된 점도 인정받았다. 막걸리는 쌀밥을 지어 식힌 후 누룩과 물을 넣고 수일간 발효시켜 체에 거르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막걸리는 마구 혹은 빨리를 뜻하는 ‘막’과 거른다는 뜻의 ‘걸리’를 결합한 말로 거칠게 빨리 걸러진 술을 뜻한다. 어원처럼 제조 과정이 간단한 만큼 값이 싸서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쉽게 접한 서민 술의 대명사다. 문화재청은 다음 달 12일까지 30일간 무형문화재 지정 예고 기간 중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무형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칠 예정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땡!” tvN ‘신서유기’ 팬이라면 반사적으로 웃게 되는 소리다. 나영석 PD(45)의 경쾌한 목소리는 이 프로그램의 시그니처다. 이번에 나 PD 앞에 선 건 신서유기 멤버들이 아니다. tvN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조정석, 유연석, 정경호, 김대명, 전미도. 음반공연기획사 안테나의 유희열, 정재형, 페퍼톤스, 권진아, 이진아, 샘김. 예능 프로그램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얼굴들이다. 지난달 12일부터 나 PD는 tvN 예능 ‘출장십오야’의 공식 출연진으로 등장해 방송계 행사 등을 찾아가 게임을 진행한다. 신원호 PD의 예능 ‘슬기로운 캠핑생활’을 촬영 중인 배우들을 대상으로 약 4∼5시간 촬영하고 그 부분을 편집해 올리는 식이다. 슬기로운 캠핑생활이 힐링이라면, 출장십오야 슬기로운 캠핑생활 편은 오락이다. 출장십오야는 나 PD 등이 운영하는 CJ ENM 소속 유튜브 채널에서도 볼 수 있다. 12일 기준 누적 조회수가 약 2200만 회에 이른다. 이승기, 안재현, 송민호, 이서진, 유해진, 차승원…. 나 PD가 ‘예능 원석 발굴가’로 불리면서 이번에 나타날 새 예능캐릭터에 대한 기대도 높아진다. 출연진별 영상은 총 1시간 남짓인데, 이제껏 보지 못했던 이면이 톡톡 드러난다. 특히 큰 반응을 끈 건 정경호와 2인조 밴드 페퍼톤스다.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까칠하고 무뚝뚝했던 김준완(정경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애교 많은 정경호의 본체만 남았다. 비교적 덜 유명했던 페퍼톤스는 탁구 경기 도중 영어를 쓰면 0점 처리되는 ‘훈민정음 탁구’ 게임에서 기발한 어휘력을 구사해 웃음을 줬다. 댓글에는 “예능계 블루칩들 나가신다”, “데려다가 새 프로그램 만들어 달라”는 반응이 많았다. 이 프로그램의 연출을 맡은 신효정 PD(40)는 서면 인터뷰에서 “유연석 씨에게 우연히 걸려온 전화를 받고 첫 출장을 갔고, 이후 다양한 곳으로 출장을 다녀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다”며 “같은 게임을 하더라도 사람이 달라지면 또 다른 재미가 있다는 걸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촬영 후 출연자들의 만족도를 확인하는데 다시 출연하고 싶다는 비율이 매우 높다”며 “음식점에서 별점 5점 받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느끼며 일하고 있다”고 했다. 신 PD는 2007년 KBS ‘해피선데이’ 때부터 나 PD와 인연을 맺어왔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7세기는 조선 유학사에서 전환이 이뤄진 시기로 일컬어진다. 윤휴, 박세당 등 조선왕조의 국가 이데올로기였던 주자성리학과 거리가 있는 경전 해석을 시도한 학자들이 나왔다는 것. 이들은 국내에서 유학사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일제강점기부터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주자성리학 권위에 도전하고 새로운 사상체계를 구축한 조선 후기의 실학은 이들로부터 비롯됐다는 견해가 제시됐다. 한문학자인 저자는 조선 실학자들이 주자성리학을 부정했다는 통설에 반론을 제기한다. 이들은 주자성리학을 인정하는 바탕에서 개선을 시도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저자는 일제에 의해 조선 유학사 연구가 왜곡됐을 가능성을 거론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관변학자들은 조선 유학계가 주자성리학을 추종해 학문적 독창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민족운동계열 학자들이 이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조선에도 실학이나 양명학 등 주자학을 비판한 학맥이 존재했다는 식으로 주장을 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17세기 당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 유학자들도 실상 주자성리학에 대한 비판의식을 지녔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주자학 연구가 더 정밀하게 이뤄진 바탕에서 진전된 견해를 밝혔다는 것. 17세기 조선 유학계에서 어떤 이는 주자의 발언을 실마리 삼아 연역하고 어떤 이는 인용하여 자신의 설을 전개했다. 저자는 조선 유학사에 대한 ‘오해’는 시대의 산물이라며 잘못으로 치부하고 망각해 버리면 안 된다고 말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서울 종로구 송월길의 고갯길을 10분 정도 오르자 붉은색 2층 벽돌집이 툭 튀어나온다. 주변의 잿빛 연립주택과 비교하면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 1층 거실에 들어서자 건물 벽과 같은 색의 벽돌로 만든 벽난로가 놓여 있다. 난로 위에는 중세 유럽풍의 은촛대와 은제 컵이 놓여 있다. 벽면에는 세 마리의 칼새가 그려진 방패 모양의 휘장이 걸렸다. 흡사 유럽 성에 온 것 같다. 분위기는 2층에서 바뀐다. 거실에는 연꽃과 오리, 새를 채색 자수로 장식한 2m 높이의 조선시대 전통 병풍이 놓여 있다. 동서양의 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곳은 미국 언론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가 1923년에 지은 자택 ‘딜쿠샤’다. 딜쿠샤는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라는 뜻이다. 구한말 부친을 따라 조선에 온 테일러는 1919년 3·1 독립선언서를 일제의 눈을 피해 세계에 알린 주인공이다. 이후에도 제암리 학살사건을 취재하는 등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왔다. 서울시는 1942년 일제에 의해 테일러가 추방된 후 방치된 딜쿠샤의 원형을 복원해 지난달 1일부터 일반에 공개했다. 딜쿠샤의 실내 복원을 전담한 최지혜 국민대 예술대 교수(49)는 국내에 드문 근대 서양 앤티크 양식 전문가다. 그는 “방문이 곧 훼손이라고 생각하지만 되레 사람의 손길에서 멀어지면 죽은 공간이 되기 쉽다”고 했다. 그는 2014년 덕수궁 석조전 실내 공간을 비롯해 미국 워싱턴 주미 대한제국공사관 복원에도 참여했다. 최근에는 신간 ‘딜쿠샤, 경성 살던 서양인의 옛집’(혜화1117)을 펴내 딜쿠샤의 복원 과정을 세세히 담았다. 복원 시 핵심 단서는 테일러 부부가 남긴 흑백사진 6장이었다. 최 교수는 사진에 있는 물건을 하나하나 확대해 형태, 재질, 장식을 샅샅이 분석했다. 마치 사건을 해결하듯 제작 시기와 장소를 추적했다. 테일러의 부인 메리가 남긴 유고도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보통 실내는 사적인 공간이라 자료가 많지 않은데 사진 6장이면 해볼 만했다”며 “어려운 건 가구 복원이었다. 근대 가구는 박물관에 보존되기보다 버려지는 경우가 많아 구하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벽난로를 비롯해 실내 물품의 약 70%는 해외에서 구입했고, 붙박이 의자 등 나머지는 국내에서 최대한 비슷하게 제작했다. 최 교수는 복원을 마친 실내 공간을 “마치 흑백이 컬러로, 평면이 입체로 되살아난 것 같다”고 했다. 그가 실내 복원의 매력에 눈뜬 건 우연이었다.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4학년 재학 시절 했던 번역 아르바이트가 계기가 됐다. 고(古)악기를 수입·판매하는 회사에서 일했는데, 사장이 영국을 들를 때마다 경매회사의 도록을 가져왔다. “미술품이나 가구가 경매로 거래된다는 걸 도록으로 처음 알게 됐는데 재밌는 거예요. 사장님이 제게 영국에 있는 미술전문 대학원 ‘소더비 인스티튜트(Sotheby‘s Institute)’에 보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는 1994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2년 뒤 회사가 경영 악화로 문을 닫아 학비 지원이 힘들다는 연락이 왔다. 유학에 반대하는 가족에게 그는 “딱 한 학기 등록만 도와 달라”고 설득했고, 이후 전액 장학금을 받아 장식미술사 석사 과정을 마쳤다. 그때 본 영국의 수많은 하우스 뮤지엄(박물관으로 만들어진 집)은 그에게 적지 않은 자극이 됐다. 귀국한 뒤 장식미술사를 다룬 ‘앤틱가구 이야기’(호미)를 2005년 발간했다. 이 책을 본 박물관 큐레이터의 제안으로 덕수궁 석조전 실내 공간 복원을 맡게 됐다. 그가 네 번째로 복원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건축물은 창덕궁 대조전과 희정당이다. 두 곳은 왕과 왕비의 침전(寢殿)으로 사용되다가 나중에 집무실로 쓰였다. 그는 “복원을 통해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 폐지 이후 중국 자본이 투입됐거나 중국 원작과 관련 있는 드라마들이 뭇매를 맞고 있다. 조선구마사는 중국풍 소품 사용 논란 등으로 2회 만에 전격 폐지됐다. 중국의 고압적인 행태로 쌓여온 반중(反中) 정서가 이 드라마를 계기로 표출됐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창작물에 대한 과잉 대응이라는 반론도 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중국 연관 드라마 리스트가 돌아다녔고 해당 게시물에 “중국 관련 드라마를 보이콧하자”는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이 리스트에 오른 tvN ‘간 떨어지는 동거’는 네이버웹툰 원작으로, 드라마 제작에 중국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아이치이(iQIYI)가 참여한다. 중국 웹툰,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기획 중인 제작사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tvN ‘철인왕후’는 중국 웹드라마 ‘태자비승직기’가 원작이라는 이유로 지난해 방영 당시 시청자들의 항의를 받았다. 하반기 tvN 기대작인 ‘잠중록’도 동명의 중국 베스트셀러 웹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돼 도마에 올랐다. JTBC 드라마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는 중국 추리소설 ‘추리의 왕’ 시리즈 중 하나를 각색한 작품이라고 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중국 원작이 아닌 사극도 중국풍 소품이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요주의 리스트에 올랐다. 홍정은, 홍미란 작가(홍자매)가 천기(天氣)를 다루는 젊은 술사(術士)들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사극 ‘환혼’이 대표적이다. 방송가는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실제로 tvN 드라마 ‘빈센조’는 8회에서 논란이 된 중국 브랜드 비빔밥의 간접광고(PPL) 장면을 국내외 OTT에서 삭제했다. 한중 군주가 연적이 되는 드라마 ‘해시의 신루’의 제작사 스튜디오앤뉴는 “역사 왜곡이 우려되는 부분에 대해 원작자인 윤이수 작가와 논의해 각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퓨전 사극을 만든 드라마 제작사 관계자는 “시청자의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전반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회차별 소품까지 일일이 자문을 해야 한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반중 정서는 드라마를 넘어 문화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을 철회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게시자는 “중국 동북공정에 우리 문화를 잃게 될까봐 불안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도내 차이나타운 건설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썼다. 강원도 차이나타운은 내년 한중 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추진 중인 중국문화 체험공간으로, 규모가 인천 차이나타운의 10배에 달한다. 이 청원에는 6일 현재 42만 명 이상이 동의를 표시했다. 일각에서는 무조건적인 반중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SNS에서는 “한중 교류에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지키는 노력은 해야 하지만 타국과의 교류 자체를 막는 건 위험하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수 문화평론가는 “특정 국가와의 문화 교류를 막으면 불필요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다만 국내 드라마 제작자도 중국이 중화주의를 과도하게 강조하는 상황에서 이를 경계하는 한국인의 시각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중 정서에 따른 과도한 여론몰이가 창작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원천적으로 중국 관련 콘텐츠를 막겠다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콘텐츠를 보기도 전에 여러 제한을 두는 건 작가가 이야기를 펼쳐 나가는 데 있어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시 생활상에 대한 고증은 필요하지만 판타지 장르에까지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