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지금의 시련을 이겨내라’는 어머니의 뜻으로 알고 희망을 갖겠습니다.” 경남 하동군에서 찻집을 하는 김영철 씨(59)는 12년 전 고이 간직하고 있던 어머니의 유품(사진)을 잃어버렸다. 직접 쓴 손편지와 옛날 지폐, 그리고 사진까지. 김 씨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이었다.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8일 하동군 일대가 폭우로 물에 잠겼고 김 씨가 사는 집과 가게에도 물이 찼다. 다음 날, 육군 39사단 장병들이 김 씨의 집에 지원을 나왔다. 쓰레기 더미를 치우고 집 안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가재도구를 정리하던 중 서재에 있던 박기수 중사(26)가 비닐팩 하나를 발견했다. 편지와 사진을 보고 예사롭지 않다고 생각한 박 중사는 곧바로 김 씨에게 건넸다. 김 씨는 비닐팩을 손에 꼭 쥐고 “단칸방에 가족 8명이 살았을 때 어머니가 힘들게 남겨주신 유품”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 김 씨는 “장사가 안돼 끼니를 굶을 때도 ‘이 돈만은 쓰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며 울먹였다. 박 중사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소중한 물건을 찾았다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고 말했다. 12일 기자를 만난 김 씨는 조심스레 비닐팩을 열고는 잠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에 잠겼다. 아직 편지와 유품은 젖어 있었다. 글자는 번져 있었고 찢어질까 봐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했다. 김 씨는 “편지에 적힌 ‘열심히 또 성실히 살아라’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말은 또렷이 생각난다”며 “앞으로 좋은 일 하며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하동=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우리 집 생계가 이것뿐인데 어쩌겠어요. 깨끗하게 빨아서 반값에라도 팔아보려고 이렇게 빨고 있어요.” 11일 전남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에서 옷 가게를 하는 조모 씨(69·여)는 흙탕물에 물들어버린 옷 수백 벌을 일일이 손으로 빨고 있었다. 사흘 전 섬진강 하류가 범람해 시장이 침수되면서 조 씨의 가게 안으로 흙탕물이 가득 들어찼다. 당시 어른 키 높이까지 물이 차올라 조 씨는 몸만 겨우 대피했다. 이날 조 씨는 수도꼭지 옆에 딸, 며느리와 둘러앉아 오전 내내 빨래에 방망이질을 했지만 빨랫줄에 널린 옷은 수십 벌이었다. 그는 “옷에 얼룩이 져서 팔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빨아봐야죠”라고 말했다.○ 복구 인력 부족한데 물, 전기까지 끊겨 500mm 이상 폭우가 쏟아진 구례군에서 주요 피해지역 중 하나인 이 시장에 10, 11일 이틀간 공무원, 소방대원, 군인, 경찰, 자원봉사자 등 복구 인력 1300여 명이 투입됐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은 인력 부족을 호소했다. 그릇 가게를 하는 박모 씨(47)는 “가게 안의 쓰레기를 모아서 내놓는 데에만 이틀이 걸렸다. 이제 가게 안을 물청소 하고 내다 팔 그릇을 씻고 있는데, 자원봉사자 5명이 와서 돕고 있는데도 끝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는 복구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3일째 물과 전기가 끊겨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주방용품을 파는 차모 씨(67)는 “흙에 범벅이 된 제품들을 씻어야 하는데 물이 없으니 소방차가 가져다주는 물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약초 가게를 하는 김모 씨는 “복구할 게 아직 산더미인데 전기가 안 들어와서 오후 5, 6시까지밖에 작업을 못 한다”며 답답해했다. 산사태로 1명이 사망했던 경기 안성시 일부 지역은 피해 발생 열흘째인 11일까지도 복구 작업이 이어지고 있었다. 죽산면에서는 165가구가 산사태와 침수 피해를 입었다. 5일부터 피해 복구에 615명이 투입됐지만 상당수는 추가 산사태 피해를 막기 위해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리는 작업에 매달렸다. 자원봉사자 이규강 씨(45)는 “비가 계속 오고 있어 모래주머니로 막지 않으면 다시 산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 복구 작업에 전력해도 모자랄 텐데 일단은 응급처치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죽산면 일대에는 산사태로 떠내려온 큰 나무들이 교량과 도로를 막고 있어 복구 장비를 동원하는 데 애를 먹고 있었다. 안성시 관계자는 “유실된 도로를 모래로 채워야 해 시간이 걸린다. 폐기물 처리도 용역업체를 통해 분리수거를 해야 해 상당한 예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치워도 치워도 흘러드는 쓰레기11일 충북 제천시 수산면 능강리 충주호 주변은 폐타이어와 스티로폼, 플라스틱 병이 둥둥 떠다녀 거대한 ‘쓰레기섬’으로 보였다. 쓰레기 더미에서 새어나오는 악취에 숨쉬기도 힘들었다. 굴착기 4대가 동원돼 호수에 떠있는 쓰레기 더미를 육지로 걷어냈지만 육지에서 수십 m 반경까지 퍼져 있는 쓰레기를 걷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굴착기 기사 이모 씨(55)는 “치워도 치워도 쓰레기가 상류에서 계속 내려온다. 10일째 꼬박 치우고 있는데 아직도 저렇게 많이 남았다. 악취도 힘들지만 언제 끝날지 까마득한 상황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최근 집중호우로 인해 충주호로 떠내려온 부유물은 약 3만 m³에 달한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이 쓰레기를 모두 걷어낸 뒤 처리하는 데 2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강 주변의 댐들도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환경부는 이번 장마로 10일까지 댐에 유입된 고사목과 풀, 생활쓰레기 등이 충북 충주댐 3만 m³, 강원 소양강댐 2만6000m³, 한탄강댐 1만 m³, 횡성댐 300m³에 달한다고 밝혔다. 수해로 생긴 쓰레기는 바다까지 흘러들어 갔다. 영산강 상류 집중호우로 전남 목포 앞바다가 쓰레기로 뒤덮이면서 선박을 동원한 수거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영산강 수위 조절을 위해 7일부터 하굿둑 수문을 개방하면서 평화광장과 남항, 여객선터미널 등 목포 앞바다 10만 m²에 걸쳐 쓰레기가 넘쳐나고 있다. 목포지방해양수산청은 9일부터 청항선과 어항관리선, 해경방제정 4척의 선박과 100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 쓰레기 160t을 수거했지만 역부족이다.하동=김태언 beborn@donga.com / 안성=이청아 / 제천=박종민 기자}

“전남 구례군으로 지금 당장 봉사활동을 하러 갑시다. 피해가 너무 심각해요.” 10일 오후 9시 뉴스를 보던 정관훈 씨(63)는 갑자기 휴대전화를 꺼내더니 단체 대화방에 글을 남겼다. 남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져 마을과 시장까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다. 정 씨가 글을 올린 곳은 서울 강동구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는 회원들과 주민들이 모인 봉사회 대화방이다. 정 씨의 갑작스러운 제안에도 회원 10명이 흔쾌히 응했다. 정 씨는 1998년부터 22년간 이 지역에서 봉사단체를 이끌고 있다. 제5호 태풍 ‘장미’의 영향으로 서울에도 많은 비가 내렸다. 하지만 이들은 11인승 차량 1대와 조리가 가능한 트럭 2대를 급하게 구했고, 조리 도구와 재료를 챙긴 뒤 오후 11시경 구례군 구례읍 5일시장으로 향했다. 한 번도 쉬지 않고 4시간 거리(290km)를 꼬박 달려 시장에 도착한 시간은 다음 날 오전 3시경. 비는 추적추적 내렸고 시장에는 껌껌한 어둠이 깔려 있었다. 요리 경력이 20년이 넘는 베테랑들이지만 배식 시간을 맞추려면 눈 붙일 틈이 없었다. 정 씨와 회원들은 트럭 2대에 나눠 타고 조리를 시작했다. 밀가루를 반죽해 삶고, 불 세기를 조절해가며 양념을 볶았다. 습한 날씨에 불 앞이라 그런지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점심시간에 맞춰 짜장면 1000그릇을 만들고 나서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오후 2시. 정 씨와 회원들은 다시 조리 도구와 재료를 챙겨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로 달려갔다. 화개장터의 비 피해가 심각하다는 말을 듣고 저녁 배식에 맞춰 이동한 것이다. 정 씨와 회원들은 준비한 재료를 탈탈 털어 짜장면 1000그릇을 정성스레 만들어 냈다. 복구에 나섰던 자원봉사자들이 짜장면을 받아 들기가 무섭게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그릇에는 짜장면과 빗물이 범벅이 됐다. 면은 퉁퉁 불었지만 “그래도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현장에서 만난 정 씨는 “수해로 힘든 분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바로 달려왔다”면서 “현장에서 맛있게 드셔주시면 그걸로 감사할 따름”이라고 미소 지었다. 회원 고원영 씨의 딸 소연 양(12)은 큰 소리로 “짜장면 드시고 가세요”라며 현장 분위기를 띄웠다. 고 양은 “뉴스에서 영상을 보고 같이 오게 됐다. 아빠가 만든 짜장면을 드시고 다들 힘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하동=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8일 오전 10시 50분경 전남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 인근 서시천 제방이 갑자기 무너졌다. 전날부터 290.5mm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봉동리 일대는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물은 인근 아파트 2층 높이까지 차올랐다. 주민들은 창밖으로 “구해주세요” “살려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아파트가 물에 잠길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이때 검은색 모터보트를 타고 최봉석 씨(43)와 손성모 씨(37)가 나타났다.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아파트 계단 옆 창문에 보트를 댔다. 그러고는 창문을 창틀째 뜯어냈다. 이곳으로 포대기에 싼 갓난아기를 안고 있던 여성이 간신히 빠져나와 보트에 올랐다. 두 사람은 오후 7시까지 마을 일대 아파트와 연립주택, 빌라, 상가 등을 돌며 고립됐던 40여 명의 생명을 구했다. 최 씨는 1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오전에 지인이 ‘아파트가 물에 잠겼다. 아내와 4세 아이가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했다. 당장 도우러 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지인 가족만 구하고 돌아오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이 필요했다. 구조에 나서기 전 최 씨는 자신의 농기계 공장에 물이 차는 것을 막고 있었다. 발목까지 찼던 물은 순식간에 무릎까지 차오르는 등 긴박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웃들이 아파트에 고립됐다는 소식에 숨 돌릴 틈도 없이 후배 손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낚시용 보트를 갖고 있던 손 씨가 떠올랐던 것이다. 건설업을 하는 손 씨도 창고에 있던 자재가 물에 젖지 않게 옮기느라 정신이 없었다. 막 창고 정리를 끝내고 보트를 정비하던 중에 최 씨의 전화를 받았다. 손 씨는 “선배가 의협심이 강한 분이다. ‘배 있지’라고 묻길래 바로 트럭에 싣고 달려갔다”고 했다. 폭우 속에 노약자를 보트에 태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파트에 갇혔던 한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해 혼자 보트에 오를 수 없었다. 손 씨가 물에 들어가 할아버지를 들쳐 업고서야 겨우 보트에 태웠다. 손 씨는 “어린아이가 있는 가족도 있었고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을 구했다”고 회상했다. 119구급대도 두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최 씨는 “우리가 사람을 구하고 있으니까 구급대원들도 ‘저기에 갇힌 사람이 있다’고 외쳤다. 119대원들은 더 위급한 환자를 구하느라 바빴고 기꺼이 구조를 도왔다”고 했다. 두 사람은 또 119구호품을 보트에 싣고 건물에 갇힌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물과 전기가 끊겨 불편을 겪던 주민들은 두 사람이 준 휴대용 가스레인지와 생수, 보조 배터리로 밤을 버텼다. 수해 현장을 누빈 두 영웅은 정작 자신의 주변은 살피지 못했다. 구조를 마친 최 씨를 기다린 것은 수해로 망가진 공장이었다. 손 씨도 침수된 집을 뒤늦게 정리하느라 바빴다. 아끼던 구명보트도 망가져 못쓰게 됐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라며 덤덤히 말했다.구례=김태언 beborn@donga.com·조응형 기자}

전남 담양군에 612mm가 내리는 등 남부지방에 7∼9일 3일간 폭우가 쏟아져 최소 13명이 숨지고 3명이 실종됐다. 제5호 태풍 ‘장미’까지 10일 한반도에 상륙해 11일까지 최대 300mm 이상의 비를 남부와 중부지방에 뿌릴 것으로 보여 이번 장마의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9일 오후 10시 기준 7∼9일 전남에서 8명, 전북에서 3명, 광주와 경남에서 각각 1명이 목숨을 잃었다. 13명 중 9명이 산사태로 숨졌다. 전남 곡성군의 한 마을에선 7일 밤 산사태로 5명이 사망했다. 8일엔 전북 장수군에서도 산사태로 주택이 매몰돼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담양에선 약해진 지반 탓에 전봇대가 넘어지면서 주택에 불이 나 1명이 사망했다. 경남 거창군에선 야산의 토사가 무너지면서 1명이 경운기와 함께 매몰됐다. 급류에 휩쓸려 목숨을 잃거나 실종되기도 했다. 8일 담양에선 침수를 피해 대피소로 이동하던 어린이(8)가 물에 휩쓸려 숨졌고 전남 화순에선 논 배수로 작업 중에 60대 남성이 물에 휩쓸려 사망했다. 담양과 경남 밀양시에선 배수로 급류에 휩쓸려 각각 1명이 실종됐다. 광주에선 광주천에서 1명이 실종됐다. 주말 집중호우로 광주와 전남, 전북 지역에선 49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섬진강 하류의 제방이 무너져 전북 남원 순창, 전남 구례 곡성, 경남 하동의 주택 2000여 채가 침수됐다. 하동에선 화개장터가 32년 만에 물에 잠겼다. 금강 상류의 용담댐 방류로 폭우가 내리지 않은 충북 영동과 옥천에서도 물난리가 났다.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에 태풍까지 북상하면서 관계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한반도에 처음 상륙하는 태풍 장미는 10일 오후 3시경 경남 통영시 부근으로 올라올 것으로 전망된다. 태풍 등의 영향으로 서울과 경기 북부, 전남과 경남 등에 11일까지 최대 300mm 이상의 비가 내릴 것으로 보인다. 중대본과 소방당국에 따르면 1일 이후 호우로 인한 누적 사망자는 31명, 실종자는 12명으로 집계됐다. 2일 충북 단양에서 딸, 사위와 함께 급류에 실종됐던 70대 여성이 7일 만에 실종 지점에서 38km 떨어진 제천 청풍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재민은 1만3489가구 5971명이다. 지난달 수해로 인한 사망자 8명과 의암댐 선박 전복 사고로 발생한 사망자 3명 및 실종자 3명을 더하면 9일로 47일째인 올해 장마 기간 동안 최소 57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중대본부장인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9일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이번 집중호우는 과거와 다른 양상의 대규모 자연재난 위기 상황인 만큼 기존 대책과 경험에 의존하지 말고 과하다 싶을 정도의 선제 조처를 해 달라”고 주문했다.담양=이형주 peneye09@donga.com / 남원=김태언 / 강은지 기자}

“20년 전 맨손으로 일군 펜션인데…콘크리트만 남았네요.” 9일 오후 전남 구례군 토지면 외곡리. 김택균 씨(60)는 자신의 펜션 앞에 서서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리산 자락인 이곳은 주말마다 수백 명이 찾아오는 ‘펜션촌’. 하지만 7일부터 9일 아침까지 구례군에만 비 351.5mm가 쏟아지며 섬진강이 범람해 이곳은 물바다가 됐다.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물에 젖은 가구 등을 길에 내놓고,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온 흙 더미를 퍼내고 있었다. 김 씨는 “살림살이가 물에 잠겨 당장 갈아입을 옷도 없다. 식량도 그나마 남겨둔 걸 거의 다 먹었다. 생필품이라도 우선 지원해주면 좋으련만…”이라며 말을 삼켰다.○ “아침 장사 준비하다 도망쳐” 8일 오전 섬진강이 범람해 침수됐던 구례읍 일대 17개 마을은 9일 오전 대체로 물이 빠졌지만 강물이 휩쓸고 간 상처가 뚜렷했다. 구례읍내 5일장은 온통 진흙으로 뒤덮였다. 검붉은 진흙 더미에 발이 푹푹 빠져 걷기도 힘들었다. 인근 대피소에서 밤을 보낸 주민들은 물이 빠지자 이날 새벽부터 터전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집은 무너지고 가재도구는 망가진 참상에 말을 잇지 못했다. 봉동리 시장에서 과일 가게를 하는 임종선 씨(66)는 8일 아침 장사를 준비하다가 부리나케 도망쳤다고 한다. “새벽 5시부터 장사를 준비하는데 7시경 강가에서 물이 차오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어요.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빨리 대피하라’고 야단이었죠. 급한 대로 과일이라도 냉장고에 넣어두려는데 순식간에 물이 무릎까지 차올랐어요. 빠져나올 땐 가슴 높이까지 물이 올라왔죠.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습니다.” 구례읍은 특히 봉동리와 봉서리의 경계인 양정마을이 큰 피해를 입었다. 9일 오전 다른 지역은 그나마 물이 빠졌지만 이곳은 여전히 황톳물에 잠긴 채였다. 50여 농가가 소 1500여 마리와 돼지 2000여 마리를 키웠는데, 이번 수해로 소만 약 400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소를 사육하는 주민 이모 씨(63)는 “15마리 키우는데 아직 축사에 가보지도 못했다. 죽은 돼지 한 마리가 우리 축사 지붕에 올라가 있더라. 집도 소도 모두 잃어버렸다. 앞으로 어떻게 살지 막막하다”며 답답해했다.○ 남원 하동도 강 범람으로 큰 피해 전북 남원시도 7일부터 총 432.8mm의 집중호우로 섬진강 제방이 무너져 금지면 일곱 마을이 물에 잠겼다. 귀석마을 주민 박서운 씨(75·여)는 “열아홉 살에 시집와서 평생 살았는데 이런 수해는 처음”이라며 “자식들 주려고 창고에 넣어둔 쌀이며 곡식이 다 못쓰게 됐다”며 망연자실했다. 박 씨 옆엔 집 안에서 꺼내 놓은 가재도구 등이 진흙범벅으로 널려 있었다. 박 씨는 “소식을 듣고 자녀들이 서울과 광주에서 오늘 급하게 내려왔다. 같이 치우는데 다 물에 젖어버려 쓸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며 울먹였다. 박 씨의 집은 8일 낮 12시 50분경 인근 섬진강 제방이 무너지며 금지면 7개 마을과 마찬가지로 물에 잠겼다. 9일 비구름이 조금씩 걷히면서 주민들도 돌아왔지만, 여전히 마을 도로는 온통 진흙이 가득했다. 축사가 무너져 갈 곳 없는 소들이 길거리를 배회하기도 했다. 농작물 피해도 심각했다. 용석마을에 4년 전 귀농했다는 이완재 씨(62)는 “코로나19로 멜론 수입이 안 돼 올해 추석에 큰 기대를 갖고 멜론을 키웠는데 다 날아가 버렸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6개동이 모두 침수된 이 씨는 “응급 복구를 하려 해도 일손이 부족하다. 피해 상황을 빨리 파악해 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복구 대책도 시급하게 세워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화개장터로 유명한 경남 하동군도 32년 만에 429mm의 기록적 폭우로 섬진강 인근 화개천이 범람해 화개면 포함 5개 마을이 물에 잠겼다. 300여 가구 6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영호남 화합의 장’으로 불리는 화개장터도 완전히 물에 잠겨버렸다. 하동군은 현재 500여 명을 투입해 긴급복구에 나서고 있으나 인근 하동취수장이 침수돼 생활용수마저 나오지 않고 있다. 화개장터의 한 상인은 “화개장터가 침수된 것은 1988년 이후 처음”이라며 “지리산 자락이라 값비싼 약재를 많이 취급하는데 다 물에 휩쓸려 재산 피해가 엄청나다”고 하소연했다.구례=조응형 yesbro@donga.com / 남원=박영민·김태언 기자}

지난달 23일 올해 전국의 수해가 심각할 수 있다는 조짐을 보여주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했다. 이날 부산 동구 초량동 지하차도가 침수돼 시민 3명이 탈출하는 과정에서 숨졌고 울산 울주군과 경기 김포시에서도 사망자가 나와 5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나흘 뒤인 27일 “관련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장마철 호우 피해와 관련해 사전 점검과 대책 마련을 꼼꼼하게 해달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지시에도 주말인 1, 2일 중부지방에 집중호우가 쏟아지자 이틀 만에 7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청와대는 3일 오전에서야 경남 양산시 사저에 내려가 있는 문 대통령이 여름휴가(3∼7일)를 취소했다고 밝혔다. 국가 재난 상황에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청와대는 4일에야 문 대통령이 주재한 가운데 ‘긴급 상황점검회의’를 열었다.○ 인명 피해 속출하는데 ‘컨트롤타워’는 뒷북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6일 오후 7시 반 기준으로 올해 7, 8월 집중호우로 발생한 인명 피해는 41명에 이른다. 26명이 목숨을 잃었고 15명이 실종됐다. 특히 1∼6일 중부지방의 집중호우로만 18명이 숨졌고 15명이 실종됐다. 지난달에도 남부지방 등에 집중호우가 내려 8명이 사망했다. 중대본이 호우 피해에 따른 대응 수위를 ‘비상 3단계’로 올린 것은 2일 오후 3시다. 1일부터 시작된 중부지방의 폭우로 불과 하루 반 만인 2일 오후 3시 전까지 14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뒤였다. 행안부 관계자는 “2일부터 경기, 충북지역을 중심으로 비 피해가 커지면서 위기 상황을 종합해 3단계 대응 수위를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상 3단계로 대응 수위를 강화한 뒤에도 3일 오후에는 경기 평택시 청북읍에서 공장 뒤편에서 토사물이 쏟아져 3명이 사망했고 충남 아산시에선 하천 급류에 2명이 쓸려 실종되는 등 인명 사고가 이어졌다. 이번 피해는 2011년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78명의 인명이 희생된 이후 9년 만에 최악의 상황이다. 당시에는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와 강원 춘천시의 펜션 매몰 사고로 인명 피해가 컸다. 한국방재학회장인 박무종 한서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가을철 태풍이 오기도 전에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장마가 언제 종료될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앞으로 더 많은 피해가 발생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재난 대응 최전선’ 지자체도 우왕좌왕 지방자치단체 역시 부실한 예방 조치와 초동 대응으로 피해를 키웠다. 3일 경기 가평군 가평읍에서 흘러내린 야산의 토사가 펜션을 덮쳐 3명이 사망한 사고가 대표적이다. 펜션 위쪽 토지는 지표면 기준으로는 경사가 15∼20도 수준으로 산지관리법 시행령과 가평군 조례인 25도 기준에 부합했다. 하지만 위쪽 토지 아래 암석을 포함하면 경사는 35도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건축 허가를 내주는 지자체가 암석의 경사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평읍 펜션 사고 현장을 찾았던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가파른 경사 바로 근처에 펜션을 짓도록 허용해주니 토사 붕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23일 3명이 사망한 부산 동구 지하차도의 침수 사고도 지자체가 시설 관리에 더 신경을 썼다면 막을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 이 지하차도에는 분당 20∼30t의 물을 빼내는 배수펌프가 있었지만 사고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또 사고 1시간 반쯤부터 호우경보가 내려 침수 가능성이 예상된 상황이었지만 지하차도 입구에서 출입 통제가 이뤄지지 않았고, 출입구에 부착된 전광판에 침수 여부를 알리는 안내 문구도 없었다. 1일 서울 관악구 도림천에서 급류에 휩쓸려 1명이 사망한 사고도 지자체가 신속히 현장 통제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오전 11시경 이미 서울시 전체에 호우주의보가 발효됐지만 시민들은 낮 12시 20분까지 도림천 부근 산책로를 자유롭게 오갔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지자체가 재난 상황의 최전선에서 민첩하게 대응해야 하는데 인력도 부족하고 전문성이 부족한 탓에 각종 사고가 발생하고 있다”며 “자체 대응 역량을 키우기 위한 투자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지민구 warum@donga.com·김태언 기자}

검찰이 태양광발전기 설치 업체인 녹색드림협동조합의 허인회 전 이사장(56·사진)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서인선)는 4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허 전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허 전 이사장의 구속 여부는 7일 오전 10시 반 서울북부지법의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거쳐 결정된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허 전 이사장은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맥을 통해 도청 탐지 장비 제조업체 G사가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 등에 제품을 납품하도록 돕고, 그 대가로 수억 원의 수수료를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허 전 이사장은 2015년부터 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이 G사의 도청 탐지 장비를 납품받도록 국회의원 등에게 청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 전 이사장이 국회의원 등에게 도청 탐지 장비에 관한 질의서 등을 전달해 해당 국회의원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에 도청 탐지 장비 매입 여부를 질의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관련 도청 탐지 장비는 정부 예산으로 매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허 전 이사장의 임금 체불 및 불법 하도급 혐의 등과 별개로 납품 알선 의혹에 관한 내사에 착수해 최근 허 전 이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허 전 이사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허 전 이사장에 대해 임금 체불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영장이 기각됐다. 1980년대 고려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허 전 이사장은 ‘운동권의 대부’로 불리며, 2000년 새천년민주당, 2004년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아 총선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3일 경기 가평군 가평읍에서 빗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야산 토사가 흘러내려 펜션을 덮치며 3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은 소극적인 행정이 낳은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경사가 높은 지역 근처에 건물을 짓는 것을 허가한 데다 펜션 위쪽 토지를 과수원으로 개간해 지반이 약해졌는데도 불법이 아니란 이유로 별다른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35도 가파른 암석 아래 펜션 4일 가평읍 펜션 사고 현장을 찾은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사고를 당한 펜션 위쪽 경사도가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전 교수는 “펜션 위쪽에 있는 토지 아래 돌의 경사가 35∼40도다. 가파른 경사 바로 옆에 펜션을 지으니 지반이 약해서 토사 붕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행 산지관리법 시행령은 산지의 평균 경사도가 25도 이하면 지자체 허가를 받아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임업정보서비스 시스템에 따르면 사고가 난 가평읍 펜션의 경사도는 10∼15도였다. 시행령에서 허용한 경사도 기준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 경사도 기준은 지표면을 기준으로 해, 해당 펜션처럼 인근 토지에 가파른 암석이 들어있는 경우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이 전 교수는 “산지에 건물을 지을 때는 내부 암석의 경사도가 훨씬 중요하다”며 “지반 구조를 명확히 살펴서 위험 요소를 따져볼 수 있도록 규제를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펜션 위쪽에 있는 땅이 토사가 흘러내리기 쉬운 형태였다는 점도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주변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펜션 뒤편 산지는 지난해 2월 가평군의 허가를 받아 임야에서 과수원으로 토지 용도(지목)가 변경됐다. 일반 임야를 과수원으로 변경하려면 2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산지복구준공검사’를 통해 임야 등 산지를 다른 목적으로 개발하는 것이 적절한지 지자체가 살핀다. 또 지자체가 관개 시설 등을 만들기 적합한지도 따져본 뒤 ‘개간준공허가’를 내준다. 문제는 가평군이 과수원 아래에 펜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지목 변경 허가를 내줬다는 점이다. 가평군 관계자는 “토지 용도를 변경할 때 주변 주택과의 거리 등을 고려하는 규정은 없다. 과수원 허가를 낸 것에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과수원은 임야보다 물 흡수량이 2배 가까이 높아 토사 붕괴, 산사태 사고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가평군에 따르면 사고 당일 폭우로 흘러내린 토사는 과수원보다 위쪽에서 시작됐다. 지반이 약한 과수원은 이 토사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함께 무너져 내려 펜션을 덮쳤다. ○ “우면산 산사태 후에도 개선 없어” 가평군 홈페이지에 보면 189개의 펜션이 등록돼 있다. 대부분 산지와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았다. 홈페이지 등록은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가평군에만 수백 개의 펜션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펜션 사고의 원인을 명확히 밝혀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가 또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2011년 폭우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뒤 서울시는 “과수원 등으로의 지목 변경이 토사 붕괴나 산사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이후에도 비슷한 문제점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건물을 지을 산지의 지반 구조나 특성을 꼼꼼하게 살피고, 토사 붕괴를 예방할 배수로 등의 보호 장치가 잘 갖춰졌는지 파악해야 유사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가평=김태언 beborn@donga.com / 지민구 기자}

3일 경기 가평군 가평읍에서 빗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야산 토사가 흘러내려 펜션을 덮치며 3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소극적인 행정이 낳은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경사가 높은 지역에 건물을 짓는 것을 허가한 데다, 펜션 위쪽 토지를 과수원으로 개간해 지반이 약해졌는데도 불법이 아니란 이유로 별다른 안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35도 가파른 암석 위 펜션… “지자체 관리 소홀”4일 가평읍 펜션 사고 현장을 찾은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사고의 가장 큰 원인으로 사고를 당한 펜션 위쪽 경사가 높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전 교수는 “펜션 위쪽에 있는 토지 아래 돌의 경사가 35~40도다. 가파른 경사 바로 옆에 펜션을 지으니 지반이 약해서 토사 붕괴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현행 산지관리법 시행령은 산지의 평균 경사도가 25도 이하면 지자체 허가를 받아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임업정보서비스 시스템에 따르면 사고가 난 가평읍 펜션의 경사도는 10~15도였다. 시행령에서 허용한 경사도 기준에 부합한다. 하지만 이 경사도 기준은 지표면을 기준으로 해, 해당 펜션처럼 인근 토지에 가파른 암석이 들어있는 경우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이 전 교수는 “산지에 건물을 지을 때는 내부 암석의 경사도가 훨씬 중요하다”며 “지반 구조를 명확히 살펴서 위험 요소를 따져볼 수 있도록 규제를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펜션 위쪽에 있는 땅이 토사가 흘러내리기 쉬운 형태였다는 점도 이번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주변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펜션 뒤편 산지는 지난해 2월 가평군의 허가를 받아 임야에서 과수원으로 토지용도(지목)가 변경됐다. 일반 임야를 과수원으로 변경하려면 2가지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산지복구준공검사’를 통해 임야 등 산지를 다른 목적으로 개발하는 데 적절한지 지자체가 살핀다. 또 지자체가 관개 시설 등을 만들기 적합한지도 따져본 뒤 ‘개간준공허가’를 내준다. 문제는 가평군이 과수원 아래에 펜션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토지를 지목변경 허가를 내줬다는 점이다. 가평군 관계자는 “토지 용도를 변경할 때 주변 주택과의 거리 등을 고려하는 규정은 없다. 과수원 허가를 낸 것에 법적으로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조원철 연세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과수원은 임야보다 물 흡수량이 2배 가까이 높아 토사 붕괴, 산사태 사고에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사고 당일 폭우로 흘러내린 토사는 과수원보다 위쪽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지반이 약한 과수원은 이 토사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함께 무너져 내려 펜션을 덮쳤다. ● “우면산 산사태 후에도 개선 없어”가평군 홈페이지에 보면 가평군에만 189개의 펜션이 등록돼 있다. 대부분 산지와 가까운 위치에 자리 잡았다. 홈페이지 등록은 의무사항이 아니어서 가평군에만 수백 개의 펜션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펜션 사고의 원인을 명확히 밝혀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이후에도 비슷한 사고가 또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2011년 폭우로 서울 서초구 우면산 산사태가 발생한 뒤 서울시는 “과수원 등으로의 지목변경이 토사 붕괴나 산사태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비슷한 문제점이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안형준 전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정부와 지자체가 건물을 지을 산지의 지반 구조나 특성을 꼼꼼하게 살피고, 토사 붕괴를 예방할 배수로 등의 보호 장치가 잘 갖춰졌는지 파악해야 유사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평=김태언 기자beborn@donga.com지민구기자 warum@donga.com}

“쿵쿵 소리에 내다봤더니 펜션이 아예 사라져버렸어요.” 3일 오전 10시 37분경 경기 가평군 가평읍. 빗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야산에서 토사가 흘러내려 2층 높이의 펜션을 덮쳤다. 1층 기둥이 무너진 건물은 마당에 있던 차량 위로 폭삭 주저앉았다. 테라스에 파라솔을 펴고 휴가철 분위기를 냈던 펜션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주말부터 많게는 시간당 최대 100mm에 이르는 기록적인 폭우로 수도권과 중부지방 곳곳에서 산사태가 잇따랐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발생한 산사태는 3일 오후 7시 반 기준 200건. 가평과 평택에서 산사태로 최소 6명이 매몰돼 숨졌으며, 충남 아산 등에선 6명이 급류나 토사에 휩쓸려 실종됐다. ○ 할머니와 두 살 손자 등이 참변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가평 펜션에 머무르던 숙박객 30여 명은 대피했으나 펜션을 운영하는 일가족 3명이 참변을 당했다. 소방대는 사고 현장을 수습해 매몰됐던 할머니(65)와 딸(37), 손자(2)의 신원을 파악했다. 소방대 관계자는 “당초 펜션 직원 1명도 매몰됐다고 알려졌으나, 오후 8시경 완료된 현장 수색에 나오지 않아 해당 직원은 사고 현장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무너진 건물은 카페 등 부대시설이 있는 관리동이라 이곳에 머물던 운영자 가족만 피해를 입었다. 경기 평택의 한 반도체 부품 제조 공장에도 흙더미가 덮쳤다. 오전 10시 49분경 6명이 작업하던 천막으로 지어진 가건물에서 산사태로 4명이 매몰됐다. 소방 당국은 약 1시간 반 만에 매몰자들을 구출했지만 3명은 결국 사망했다. 1명은 골절 등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 “산사태, 부처 협업 체계화해야” 폭우로 산사태가 잇따르자 전문가들은 “산사태의 취약 지역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현재 산 위쪽은 산림청, 산 중턱 도로는 국토교통부, 아래쪽은 행정안전부 관할인데 협업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각 부처에서 선정한 위험 지역이 총 6만여 곳인데 실제 사고 지역을 보면 취약 지역으로 관리되지 않는 곳이 허다하다”고 지적했다. 사고가 난 평택과 가평도 취약 지역에 포함되지 않았다. 폭우로 인한 산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시설 점검도 중요하다. 평택 산사태는 가건물과 인접한 야산에 설치된 약 3m 높이의 옹벽이 무너져 내리며 발생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특히 장마가 발생하는 7∼9월이 위험한 시기다. 콘크리트로 지은 옹벽이라도 내부 철근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식되며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 집중호우로 실종자도 6명 산사태로 흘러내려온 토사로 인해 물에 빠진 실종자도 나왔다. 3일 오후 2시 3분경 충남 아산시 송악면에선 70대 주민 2명이 흙더미에 휩쓸려 온양천에 빠졌다는 신고가 접수돼 구조팀이 행방을 찾고 있다. 오전 1시경 경기 포천시 관인면의 한 저수지 낚시터에선 수문을 살펴보려고 보트를 타고 나간 관리인(55)이 물살에 휩쓸려 실종됐다. 오전 10시 27분경 가평군 청평면 대성리 계곡에서도 한 남성(75)이 급류에 떠내려갔다는 신고가 접수돼 수색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의 한 승마장 인근에선 폭우로 떠내려 온 부유물을 걷어내는 작업을 하던 남성(55)이 수압을 이기지 못하고 맨홀에 빠져 사라졌다. 오후 7시 54분경 충북 진천군 문백면에 있는 봉죽교에선 1t 트럭이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 운전자 한모 씨(62)가 실종됐다. 산림청은 3일 산사태 위기경보를 ‘경계’ 단계로 격상했다. 경계는 4단계 위기경보에서 최고인 ‘심각’ 아래 단계다. 가평=김태언 beborn@donga.com / 평택=김태성 / 이청아 기자}

18일경 북한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되는 탈북민 김모 씨(24)가 범죄 피의자로 지목된 건 지난달 12일. 자신의 집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과 술을 마신 뒤 성폭행한 혐의였다. 김 씨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관련 증거물에서 김 씨의 DNA를 찾아냈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약 1개월 동안 김 씨는 월북할 준비를 해나갔다. 임대아파트 보증금을 빼 달러로 환전했고 TV 등도 모두 처분했다. 심지어 주변 지인들에게 “북한에 돌아가겠다”고 공공연히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지난달 21일 한 차례 불러 조사한 것 외에는 김 씨에 대한 관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탈북민 신변보호담당관도 전화 통화 한 번 한 게 전부였다. 심지어 이미 월북한 뒤조차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다음 날쯤에야 출국 금지 조치했다. ○ 성범죄 피의자를 월북 이틀 뒤 영장 신청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이 김 씨의 소재 파악에 나선 건 18일경. 이날 새벽부터 행방이 묘연해진 김 씨는 이미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다. 심지어 경찰이 움직인 건 김 씨가 ‘피해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는 주변 제보 때문이었다. 뒤늦게 대응에 나선 경찰은 피해자 신변보호를 강화한 뒤 20일 출국 금지 조치했다. 그때까지 불구속 수사하던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한 건 21일이었다. 이후 위치 추적 등 신병확보 수사를 진행한 건 24일 전후. 거의 1주일이 지난 시점까지 김 씨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던 셈이다. 경찰 감시가 느슨했던 동안 김 씨는 월북 준비를 착착 진행했다. 17일 자신의 차를 타고 인천 강화군 교동도에 갔다가 김포로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월북 경로를 미리 사전 답사했단 뜻이다. 김포에선 인근 마사지업소에 들르기까지 했다. 다음 날 새벽 택시를 타고 강화읍 월곳리로 간 김 씨는 오전 2시 20분경 내린 뒤 종적을 감췄다. 27일 이 인근에선 김 씨가 놓고 간 것으로 보이는 가방도 발견됐다. 가방엔 물안경과 옷가지, 환전 영수증 등이 들어있었다. 김 씨는 살던 집의 임대보증금을 빼고 그걸 달러로 환전까지 하면서도 어떤 제지도 받지 않았다. 경찰 측은 “(김 씨의 범죄에 대한) 증거가 확보됐고 조사도 잘 받아서 별다른 소재 파악을 하지 않았다”며 “수사가 거의 마무리된 상태여서 조만간 불구속 송치할 예정이었는데 월북을 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군 경계초소 인근 배수구로 빠져나가 김 씨가 월북한 출발점으로 알려진 월곳리에는 군의 경계초소 인근에 여러 개의 배수구가 있다. 사각형의 배수구는 가로세로 약 1.5m 크기로 성인 남성이라도 몸을 움츠리면 충분히 지나다닐 수 있는 구조다. 바로 위에 철조망이 설치돼 있지만 이 배수구를 따라가면 곧장 한강으로 연결됐다. 군 등은 김 씨가 18일에서 19일 사이 이 배수구 중 하나를 통해 한강 하구로 나간 뒤 헤엄을 쳐서 월북한 것으로 보고 있다. 27일 둘러본 현장엔 약 10∼20m 옆에 경계초소가 있지만 지키는 병력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주민도 “평소에도 경계 근무를 하는 군인은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2017년 8월 탈북해 남한으로 올 때도 이 인근으로 건너왔다. 강화도에서 북한 땅은 최단 거리가 1.3km 정도로, 당시 김 씨는 페트병 등을 몸에 두르고 헤엄쳐 왔다고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군사전문가는 “일반인이 2번이나 남북으로 헤엄쳐 건널 정도라면 훈련을 받은 전문가라면 제 집처럼 드나들 수 있을 것”이라며 “가장 경계가 삼엄해야 할 지역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됐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라고 말했다.강승현 byhuman@donga.com / 수원=이경진 / 김포=김태언 기자}
북한이 26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린 것으로 의심되는 탈북민이 개성으로 입북(入北)해 개성을 봉쇄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코로나19가 발생했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우리 군 당국은 월북(越北) 일주일 만인 이날 북한의 공개 이후에야 탈북민의 월북 정황을 시인하면서 군 경계 태세와 탈북자 관리에 심각한 허점이 드러났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오전 “개성시에서 악성 비루스(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되는 월남 도주자가 (탈북) 3년 만에 불법적으로 분계선을 넘어 7월 19일 귀향하는 비상사건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5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비상확대회의를 열어 24일부터 봉쇄에 들어간 개성 지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가비상방역체계를 최대비상체제로 이행하는 특급 경보를 발령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전했다. 공개보도가 나온 뒤인 26일 오후에야 합동참모본부는 “군은 일부 인원을 (재입북자로) 특정해 관계 기관과 긴밀히 공조해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군 당국은 2017년에 귀순한 김모 씨(24)가 최근 재입북을 위해 경기 김포, 인천 강화 교동도 일대를 사전 답사한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정황을 파악 중이다. 김 씨는 지상 철책이 아닌 한강 하구를 통해 헤엄쳐 북한으로 넘어갔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6월 북한 어선의 동해 ‘삼척항 노크 귀순’ 이후 1년여 만에 군사분계선(MDL) 경계 실패가 재발하면서 군 수뇌부 등 관련 책임자들에 대한 문책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 씨는 최근 성폭행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앞두고 종적을 감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출국 금지 상태였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비상확대회의를 주재하면서 “해당 지역 전연부대(접경지역 부대)의 허술한 전선경계근무 실태를 엄중히 지적했다”며 “당 중앙군사위원회가 사건 발생에 책임이 있는 부대에 대한 집중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엄중한 처벌을 적용하며 대책을 강구할 것을 토의했다”고 보도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최지선·김태언 기자}

북한이 탈북 3년 만에 재입북했다고 주장한 탈북민으로 추정되는 김모 씨(24)가 임대아파트 보증금 등을 빼서 달러로 환전하고, 탈북 루트를 사전 답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 씨의 지인인 탈북자 A 씨는 26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개성아낙’을 통해 “김 씨가 얼마 전 억울하게 성폭행 사건에 연루됐다고 털어놨다”고 밝혔다. 이어 “남한 정부가 제공하는 임대아파트 보증금 1500만 원을 비롯해 미래행복통장과 취업 장려금 약 2000만 원, 자동차를 대포차로 팔아넘긴 금액 등 3000만∼4000만 원을 달러로 사전에 바꾼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평소 A 씨의 승용차를 자주 빌려 이용했고, 월북하기 이틀 전인 17일 오후 4시 55분경 해당 차량이 일산대교를 통과한 하이패스 기록도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경기 김포시와 인천 강화군 일대를 사전 답사한 정황이 포착됐다. 김 씨는 3년 전 강화군 교동도 해상을 통해 월남한 것으로 알려져 비슷한 경로로 월북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A 씨는 김 씨가 자신의 차량을 빌려가 돌려주지 않고 처분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평소 김 씨가 자신의 차량을 자주 빌려 썼는데 돌려주지 않아 18일 저녁 차량을 찾아달라며 김포경찰서에 신고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 씨가 월북을 할 것 같다’고 했지만 경찰이 이를 묵살했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김포경찰서 관계자는 “차량 절도 신고를 하기는 했지만 따로 월북 얘기는 하지 않았다”면서 “월북 가능성에 대해 신고했다는 것도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또 다른 경찰 관계자는 “성폭행 혐의로 경찰 수사가 시작된 후 김 씨가 주변에 ‘월북하겠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강승현 byhuman@donga.com·김태언 기자}
인터넷방송에서 생방송을 하고 있던 여성 진행자(BJ)를 한 20대 남성이 몰래 불법 촬영하는 장면이 화면에 담겨 덜미가 잡혔다. 이 남성은 25일 구속 수감됐다. 경기 시흥경찰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미수) 혐의를 받고 있는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25일 발부됐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이 남성은 24일 낮 12시 13분경 시흥에 있는 한 PC방에서 아프리카TV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던 여성 BJ의 치마 아래를 스마트폰으로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시 BJ는 뒤돌아 서 있어 상황을 몰랐다가 방송을 시청하던 누리꾼들이 “방금 도둑 촬영 당한 것 같다”고 채팅창으로 제보해 PC방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막내는 아직도 아빠를 기다리는데…. 이번 수상이 아이들이 아빠를 더 영예롭게 여길 수 있는 귀한 계기가 된 것 같아요.” 고 김종필 기장(중앙119구조본부)은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생각했다. 부인 이현숙 씨(43)는 “남편은 인명 구조를 다녀온 뒤엔 언제나 ‘벅차고 뿌듯하다’고 말했다”고 회상했다. 도움이 절실한 긴급환자를 이송한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가족들을 볼 때마다 그는 가슴이 벅차올랐다고 한다. 고된 업무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고인은 지난해 10월 31일 중앙119구조본부 영남119특수구조대원 4명과 함께 소방헬기 ‘영남1호(EC-225)’에 탑승해 어둠이 깔린 바다로 출동했다. 독도에서 긴급환자를 태운 헬기는 오후 11시 25분경 이륙 직후 추락했다. 헬기에는 소방대원 5명과 사고를 당한 환자, 동료 선원 등 7명이 타고 있었다. 김 기장 등 3명은 끝내 시신마저 찾지 못했다. 유명을 달리한 김 기장 등 구조대는 23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제9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김 기장(46·이하 당시 나이)과 서정용 검사관(45), 이종후 부기장(39), 배혁 소방장(31), 박단비 소방교(29·여) 등 5명이다. 시상식에 참석한 김 기장의 아들 김수호 군(17)은 “정말 가정적인 분이셨다. 우리를 위해 헌신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여전히 크다”며 울먹였다.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제복 공무원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동아일보와 채널A가 2012년 제정했다. 올해는 국방부 경찰청 해양경찰청 소방청이 추천한 후보 가운데 대상 5명과 제복상 6명, 위민경찰관상 3명, 위민소방관상 1명 등 모두 15명에게 시상했다.강승현 byhuman@donga.com·김태언 기자}
새벽에 마약을 투약한 채 자신의 11개월 된 딸을 차에 태우고 운전한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 가평경찰서는 “20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및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운전자 A 씨(39)를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의 부인은 이날 오전 3시 11분경 ‘남편이 마약을 하고 차를 몰고 나갔다’고 112에 신고했다. A 씨는 자택인 가평군 청평면에서 출발해 약 45km를 운전했으며 오전 4시 반경 하남시 미사대교에서 순찰차를 들이받고 멈췄다. 차에 타고 있던 딸은 다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에 있던 마약을 투약하고 부부싸움을 한 뒤 “딸을 본가에 맡기겠다”며 나갔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A 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상태가 회복되는 대로 필로폰을 구입한 경로 등도 조사할 방침”이라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날인 8일 오후 9시 이후부터 시장 공관 밖에서 약 3시간 넘게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와 변호사 출신의 비서실 직원, 또 다른 비서실 직원 등 총 3명과 함께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한석 전 시장비서실장은 이 회의에 참석하라는 지시를 받았으나 다른 일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직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대책회의의 내용 등을 묻는 질문에 “저는 할 말이 없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임 특보는 “박 전 시장과 관련해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8일 오후 3시경 박 전 시장에게 직접 찾아가 어떤 일인지 물어봤다”고 스스로 밝혔다. 본보는 임 특보에게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박 전 시장이 9일 극단적 선택을 한 경위 등을 수사 중인 서울 성북경찰서는 15일 고 전 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3시간 동안 조사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가 경찰에 출석한 건 처음이다. 경찰은 조만간 박 전 시장의 수행비서 등 비서실 관계자를 추가로 조사할 계획이다. 고 전 실장은 박 전 시장이 실종된 9일 오후 1시 39분부터 약 5분 동안 박 전 시장과 휴대전화로 통화를 했다. 박 전 시장이 당시 소지하고 있던 휴대전화가 오후 3시 49분경 끊기기 전에 마지막으로 통화를 한 상대방이다. 고 전 실장은 이날 오전 9시경 공관에서 박 전 시장을 독대하고, 오전 10시 10분경 나왔다. 박 전 시장은 약 30분 뒤인 오전 10시 44분경 등산복 차림으로 공관을 나선 뒤 숨진 채 발견됐다. 고 전 실장도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의 인지 여부에 대해 “나중에 (따로) 조사가 있으면 거기서 말하겠다”고 했다. 고 전 실장은 서울시 산하 서울디지털재단 이사장으로 재직하다가 올 4월부터 비서실장으로 근무했으며, 10일 면직 처리됐다. 서울시는 15일 “시 관계자와 여성단체, 인권·법률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지 6일 만에 서울시가 처음 밝힌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민관합동조사단에 강제수사 등 실질적 권한이 없어 조사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미래통합당 의원들은 “경찰은 적극적인 수사로 실체적 진실을 조속히 밝혀야 한다”고 요구했다. 지민구 warum@donga.com·박창규·김태언 기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 등으로 고소한 서울시 직원 피해자 A 씨가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조사를 받고 있던 8일 오후 9시 이후 박 전 시장은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 변호사 출신의 비서실 직원, 또 다른 비서실 직원 등 3명과 함께 서울 시내 모처에서 3시간 넘게 회의를 했다. 임 특보가 같은 날 오후 3시 박 전 시장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처음 알린 지 6시간 정도 지난 시간이었다. A 씨는 변호인과 함께 경찰에 철저한 수사 보안 유지를 당부하면서 피해 사실을 털어놓고, 관련 증거를 제출했다. ○ 비서실 직원 등과 3시간 넘게 심야 대책회의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오후 9시 10분경 서울 시내 구청장 10여 명과 만찬을 가진 박 전 시장은 종로구 공관에 밤 12시를 넘겨 귀가했다. 그 사이 박 전 시장은 제3의 장소에서 측근들과 심야 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는 3, 4시간가량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박 전 시장이 대책회의를 가진 시점이다. 피해자 A 씨는 당일 오후 4시 반경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장을 접수시켰다. A 씨의 법정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는 “증거인멸 등을 우려해 경찰에 철저한 보안 유지를 부탁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A 씨는 다음 날 새벽 2시 반경까지 조사를 받았다. 박 전 시장 등은 거의 동시간에 대책회의를 했다. 앞서 8일 오후 3시경 임 특보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청사 집무실에서 박 전 시장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는데, 실수한 게 있느냐’고 물어봤다”고 밝혔다. 임 특보는 “당시에는 성추행 관련 구체적인 내용이나 피소 사실 등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임 특보가 불미스러운 일을 언급한 당일 저녁 박 전 시장이 임 특보, 변호사 출신 비서실 직원 등과 심야 회의를 한 것은 피소 사실을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황이다. A 씨 입장에서 가해자인 박 전 시장에게 ‘불미스러운 일’을 처음으로 알리고 대책회의에 참석한 임 특보는 피해자 A 씨를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이 때문에 임 특보가 어떤 경로로 불미스러운 일을 인지했는지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비서실장, 심야회의 참석 요청받았지만 불참사망 전날과 당일 박 전 시장의 동선에는 고한석 전 서울시장비서실장이 거의 매번 등장했다. 고 전 실장은 심야 대책회의에 참석하라는 요청을 받았지만 다른 일정을 이유로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한 9일 고 전 실장은 오전 9시경 서울 종로구 공관을 찾아가 박 전 시장과 1시간 10분 동안 독대했다. 고 전 실장을 만난 후 34분 뒤 박 전 시장은 홀로 공관을 나섰고 오후 1시 39분경 고 전 실장과 전화 통화를 했다. 이 통화를 마지막으로 박 전 시장은 실종됐다. 15일 경찰에 출석한 고 전 실장은 9일 박 전 시장과 나눈 대화와 마지막 통화 내용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경찰에 다 얘기했다”고만 답했다. 고 전 실장은 조사 직후 “9일 오전 시장님 만나뵐 때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성추행 피해 사실을 9일 오전 처음 인지했고 그 전까지는 해당 내용을 보고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고 전 실장이 심야 대책회의 참석을 요청받은 데 이어 비서실 직원 2명이 대책회의에 참석했다는 점에서 피소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고 전 실장 등 비서실 직원들은 박 전 시장이 연락두절되자 딸이 실종신고를 하기 6시간 전인 오전 11시경 북악산 안내소 등에 전화해 박 시장의 행적을 수소문한 것으로 알려졌다.강승현 byhuman@donga.com·박종민·김태언 기자}

13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 박원순 전 서울시장(64)의 성추행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재련 변호사가 휴대전화 화면이 담긴 대형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김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서울시 직원 A 씨의 법률 대리인이다. “시장님 님이 나를 비밀 대화에 초대했습니다.” 보안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의 비밀 대화방 화면에 이 같은 안내 메시지가 찍혀 있었다. 해당 대화방 상단에는 박 전 시장의 얼굴이 담긴 프로필 사진이 있었다. 김 변호사는 “올해 2월 6일 박 전 시장이 A 씨를 이 대화방에 초대한 증거”라며 “당시는 (A 씨가) 비서실에서 근무하지 않고 다른 부서에서 근무할 때다. 텔레그램으로 비밀 대화를 요구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은 당사자 중 한 명이 ‘대화내용 지우기’ 버튼을 누르면 이전까지 나눈 모든 대화 기록이 지워진다. ○ 집무실 침실로 불러 “안아 달라”며 신체 접촉김 변호사 등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A 씨가 2017년 비서로 근무하기 시작한 이후 4년간 A 씨를 성추행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이 집무실 안에 있는 침실로 A 씨를 불러 ‘안아 달라’며 신체 접촉을 했다”고 주장했다. A 씨 측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즐겁게 일하기 위해 ‘셀카’를 찍자”면서 A 씨를 집무실로 불러 셀카를 찍는 동안 신체를 밀접 접촉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이 (A 씨의) 무릎에 난 멍을 ‘호’ 해주겠다며 자신의 입술을 A 씨의 무릎에 접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추행은 A 씨가 퇴근한 뒤에도 이어졌다고 한다. 김 변호사 등이 이날 공개한 ‘범죄사실 개요’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퇴근한 A 씨를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초대해 사생활을 언급하고, 음란문자를 보냈다. 박 전 시장이 이 대화방에 속옷 차림을 한 자신의 사진을 올린 적도 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A 씨가 (박 전 시장이) 음란한 문자와 개인적인 사진을 보내온 것에 대해 친구와 동료 공무원들에게 보여주며 피해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A 씨, 시장 비서 지원한 적 없어”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은 A 씨가 지난해 다른 부서로 이동한 뒤에도 지속됐다는 게 A 씨 측 주장이다. A 씨가 비서로 일하는 동안 텔레그램으로 음란한 문자와 사진을 보냈던 박 전 시장이 업무적으로 연관이 없는 A 씨를 또다시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초대했다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가해 수위가 점점 심각해져 A 씨가 부서 변경을 요청했지만 시장이 승인하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일반 공무원으로 서울시에 임용돼 다른 기관에서 근무하던 A 씨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시장 비서실로 오게 된 배경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김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A 씨가 서울시장 비서직으로 지원한 사실이 없다. 서울시 측 전화를 받고 당일 오후 시장실 면접을 봤는데 같은 날 비서실에서 비서로 근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서울시장이 갖는 엄청난 위력 속에서 어떠한 거부나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위력 성폭력의 특성을 그대로 보였다”며 “이 사건은 결코 진상 규명 없이 넘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이미 피해자가 사과받고 책임이 종결된 것 아니냐는 일방적인 해석이 피해자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주고 있다”며 “형사 사법절차상 수사와 재판을 거쳐 제대로 응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소연 always99@donga.com·김태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