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우

박민우 차장

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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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에서 정책팀 데스크를 맡고 있습니다.

minwoo@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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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7년 독재도 모자라… 부인에게 권력 물려주려다 쫓겨나

    현존 세계 최장기 독재 지도자인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93)이 군부 쿠데타로 37년간 지켜온 권좌에서 쫓겨났다. 무가베 대통령이 최근 국방장관 출신 에머슨 음낭가과 부통령(75)을 숙청하고 자신의 부인인 그레이스 무가베 여사(52)에게 권력을 승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부통령을 지지해온 군부가 개입했다. AP, AFP,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짐바브웨 군부는 15일 국영방송사인 ZBC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고 밝혔다. 시부시소 모요 짐바브웨 방위군 소장은 성명에서 “무가베 대통령 주변에서 국정을 농단하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통을 초래한 ‘범죄자’들을 겨냥한 것”이라며 “임무를 마치고 나면 상황은 정상화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군부는 “무가베 대통령과 그 가족은 무사하며,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고 덧붙였다. AFP는 이날 오전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의 무가베 대통령 사저에서 총성이 울렸다고 보도했다. 무가베 대통령의 맨션과 가까운 곳에 사는 한 주민은 “오전 2시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각에 그(무가베 대통령)의 집 쪽에서 3∼4분 사이 30∼40발의 총성이 들렸다”고 전했다. 전날에는 하라레 인근에서 탱크 여러 대가 목격됐다는 증언도 잇따랐다. 국회의사당과 무가베 대통령의 집권 여당인 ‘짐바브웨아프리카민족동맹애국전선(ZANU-PF) 당사 앞에서도 군용 차량이 포착됐다. 이날 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자 등 구체적인 피해 상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짐바브웨의 군부 쿠데타는 이틀 전 이미 예고됐다. 짐바브웨 방위군 수장인 콘스탄티노 치웽가 장군은 13일 기자회견을 열어 “해방전쟁 참전용사 출신 정당 인사들을 겨냥한 숙청을 당장 멈추라”고 요구하며 “군대가 혁명을 보호하는 문제에 개입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음낭가과 부통령을 경질한 무가베 대통령에게 보내는 메시지였다. 무가베 대통령은 6일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던 음낭가과 부통령을 전격 해임했다. 그레이스 여사를 후계자로 앉히기 위한 포석이었다. 그레이스 여사는 앞서 5일 공개 연설을 통해 “무가베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물려준다면 기꺼이 받겠다”며 후계자 지명을 요청했다. 이번에 경질된 음낭가과 부통령은 무가베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동반자였다. 그는 1977년 해방전쟁 당시 무가베의 특별보좌관으로 활동하며 백인 정권에 맞서 독립운동을 함께했다. 국방장관 출신이기도 한 그는 군 장성과 참전용사들의 지지를 받아왔다.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망명한 음낭가과 전 부통령은 향후 짐바브웨로 돌아와 무가베 대통령에게 맞서겠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권력을 장악한 군부는 이그나티우스 촘보 재무장관을 구금했다. 촘보 장관은 집권여당 내 그레이스 여사의 파벌인 ‘G40’의 핵심 인물로 알려졌다. 군부가 그레이스 여사의 측근 숙청에 본격적으로 나섰다는 분석이다. 세계 최고령 지도자인 무가베 대통령은 1980년 짐바브웨가 영국에서 독립한 뒤 독립 영웅으로 초대 총리에 올랐다. 하지만 개헌을 통해 무제한 연임이 가능한 6년 임기 대통령제를 채택하면서 독재자의 길로 들어선 뒤 온갖 폭정과 경제 파탄 등으로 비난을 받아왔다. 무가베 대통령은 사무실 속기사였던 그레이스 여사와 10여 년간 불륜을 이어간 끝에 1996년 결혼했고, 이후 그레이스 여사는 ZANU-PF의 여성연맹을 이끌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그러나 그레이스 여사는 잦은 스캔들과 사치스러운 쇼핑 습관으로 ‘디스그레이스(망신)’ ‘구치 그레이스’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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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0개 이상 마을 폐허로… 강추위속 맨손 구조

    이란과 이라크 국경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해 그에 따른 사상자가 이틀 새 크게 늘었다. 집을 잃은 수만 명의 이재민은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혹독한 추위와 싸우고 있다. 14일 이란 관영 IRNA통신은 12일 밤 이란 북서부 케르만샤주와 이라크 북동부 술라이마니야주 국경지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최소 530명이 사망하고 7460여 명이 부상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가장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한 곳은 진원지에서 가까운 이란 케르만샤주의 쿠르드족 마을 사르폴레자하브시로 알려졌다. 당국은 사망자의 대다수가 인구 3만여 명이 사는 이 도시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을 위해 지어진 아파트들이 완전히 붕괴돼 피해가 컸던 것으로 나타났다. 설상가상으로 지역 병원까지 크게 파손돼 부상자들이 필요한 응급치료도 받지 못하고 있다. 피해 지역을 둘러본 모하마드 알리 자파리 이란 혁명수비대 소장은 “신축 건물들은 그나마 버텼지만 흙으로 지어진 오래된 집들은 완전히 무너졌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인구 밀도가 낮은 이라크 북동부의 쿠르드 자치지역에서는 10명 미만이 죽고 500여 명이 다친 것으로 이라크 보건당국은 집계했다. 이란 적신월사(한국의 적십자사)는 이번 지진에 따른 이재민이 7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당국은 가옥 3만여 채가 파손된 것으로 보고 텐트 2만2000여 개, 담요 5만2000개 등을 설치, 배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르폴레자하브시의 이재민들은 음식과 물, 의복, 텐트를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있다. 만수레 바게리 이란 적신월사 대변인은 “500개 이상의 마을이 파괴됐다”고 전했다. 적신월사 30개 팀이 재난 지역에 파견됐지만 대부분의 지역에서 물과 전기 공급이 끊기고 도로마저 단절돼 구호물자를 보급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조대원들도 변변한 손전등이나 횃불이 없어 야간에는 휴대전화 불빛에 의존해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악지대인 케르만샤주는 밤 기온이 최저 영하 10도를 밑돌지만 이재민들은 여진에 대한 공포로 이틀째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노숙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최초 지진 발생 후 150회 이상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주성하 기자}

    •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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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탄 터진줄”… 이란-이라크 국경서 강진 6400여명 사상

    “아이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강력한 폭탄이 터진 줄로 알았죠. 하지만 밖으로 대피했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지진이야’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사는 마지다 아미르 씨는 큰 진동을 느끼고 세 자녀와 함께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거리에는 수많은 주민들이 겁에 질린 채 몸을 떨고 있었다. 13일 영국 BBC와 타스님통신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밤 이란과 이라크 국경지대를 강타한 지진으로 400여 명이 숨지고 6000명 이상 다쳤다. 올해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지진이다. 이번 지진으로 최대 7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12일 오후 9시 18분께 이란 북서부 케르만샤주와 이라크 북동부 쿠르드 자치지역 술라이마니야주의 국경지대에서 규모 7.3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이번 지진의 진앙은 이라크 술라이마니야주 할라브자에서 남남서쪽으로 32km 지점, 깊이 23.2km로 관측됐다. 로이터통신은 이란에서만 348명 이상이 사망하고 이라크에서도 최소 6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피해는 이란 북서부 케르만샤주에 집중됐다. 로이터통신은 이라크 국경에서 약 16km 떨어진 케르만샤주의 사르폴레자하브시에서만 최소 300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건물 밖에 임시 캠프를 설치한 이 마을의 이재민들은 여전히 여진의 공포에 사로잡혀 있다. 케르만샤주에서는 지진 발생 3시간 뒤 규모 4.5의 여진이 이어졌다. 모즈타바 니케르다르 케르만샤 주지사는 “아직도 잔해에 깔린 사람들이 있다”며 “사상자가 크게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만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라크 술라이마니야주에서도 대부분의 건물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특히 주요 콘크리트 건물과 벽들이 무너져 내린 다르반디칸시에서는 4명이 죽고 수백 명이 부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쿠르드 보건 당국 관계자는 “부상자를 치료할 병원 건물마저 심하게 훼손됐다”며 “매우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쿠르드 자치정부는 술라이마니야주의 피해 파악과 복구를 위해 이 지역에 하루 임시휴일을 선포했다. 지진의 여파로 이란과 이라크 전역에서 전기가 끊기는 도시도 속출했다. 언제 다시 지진이 날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 수천 명의 주민들은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거리와 공원에서 추운 밤을 지새웠다. 이번 지진은 터키,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전역에서 감지될 정도로 강력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지진 발생 직후 모든 당국자와 관계기관에 “최대한 빨리 피해지역에 대한 구조작업에 착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아직 구조의 손길이 닿지 못한 지역이 많아 사상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란은 유라시아와 아나톨리아, 아라비아, 인도 등을 구성하는 지각판이 끊임없이 부딪치는 위치에 있어 크고 작은 지진이 빈발하는 지역이다. 이란 북부 카스피해 인근에서는 1990년 규모 7.4의 강진이 발생해 4만 명이 숨지고 30만 명이 다쳤다. 순식간에 마을 2000개가 쑥대밭이 돼 50만 명이 집을 잃었다. 2003년에는 이란 남동부 밤시에서 규모 6.8의 지진으로 3만여 명이 숨졌고, 비교적 최근인 2012년에도 지진으로 300명이 사망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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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러국 이미지 벗고 중동무역 관문으로”

    “이 부드러운 욕실 가운은 유럽에서 최고 150달러에 팔리는 제품입니다. 우리는 15달러에 공급할 수 있어요. 평균 소매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죠.” 9일 파키스탄 카라치 엑스포 센터에서 만난 우바이드 라자크 씨의 얼굴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부스에 전시된 수건은 한눈에 보기에도 풍성하고 고급스러웠다. 그는 “한국 업체인 신세계인터내셔날에서도 조금 전에 이곳을 방문해 눈여겨본 제품”이라고 자랑했다. 이날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열린 ‘엑스포 파키스탄’에는 섬유 제품을 비롯해 대리석과 보석, 식품, 기계, 가죽, 스포츠용품 등 온갖 제품들로 가득했다. 올해로 10회를 맞는 이번 행사에는 파키스탄의 150여 개 수출업체가 참가했고, 85개국에서 700여 명의 바이어가 몰렸다. 한국에서도 신세계인터내셔날을 포함해 8개 업체에서 11명이 이곳을 찾았다. 전시장의 수많은 부스들 가운데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곳은 섬유 제품을 전시한 곳이었다. 파키스탄 상무부에 따르면 파키스탄 국내총생산(GDP)의 18%를 제조업 부문이 차지하는데, 제조업의 46%를 섬유 및 의류 산업이 담당하고 있다. 이순규 에이스무역 대표는 “파키스탄 원사(실)는 좋은 품질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춰 30년 넘게 거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리켓의 나라’로 불리지만 각종 운동용품을 전시한 부스에 다양한 종류의 축구공이 특히 눈에 띄었다. 현대·기아자동차그룹에 판촉용 축구공을 납품하는 최봉식 제일C&P 대표는 “전 세계에서 연간 생산되는 축구공의 65%가 파키스탄 시알코트에서 만들어진다”며 “값싼 제품뿐만 아니라 기술력을 갖춘 고급 제품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함마드 요우나스 다가 파키스탄 상무장관은 “엑스포 파키스탄의 유일한 목표는 좋은 상품을 전시해 파키스탄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며 “이곳에 온 많은 바이어들이 파키스탄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테러리즘을 경제의 최대 위험요소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파키스탄이 테러범들과 과격단체들을 제거하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고 파키스탄을 압박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은 탈레반을 비롯한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수년간 테러를 자행해 왔다. 파키스탄은 잦은 테러로 굳어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이번 엑스포를 통해 바꾸기를 희망하고 있다. 파키스탄 상무부는 해외 바이어들이 이동할 때마다 무장 경찰차량을 붙여 안전을 보장했다. 그러나 파키스탄 정부는 시아파 최대 종교행사인 아르바인이 열린 10일 하루 동안 테러를 예방할 목적으로 이동통신을 완전히 끊는 바람에 바이어들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아르바인은 시아파가 추앙하는 이맘 후사인이 서기 680년 수니파 우마이야 왕조와의 전투에서 져 참수당한 추모일(아슈라)에서 40일이 지난 뒤 진행되는 행사다. 카라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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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박민우]파키스탄의 북한 외교관들은 술고래?

    “술은 먹고 다니냐?” 중동 지역 특파원으로 지내다 보니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서 왕왕 이런 애틋한 문자 메시지를 받곤 한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집트 인구의 90%가 술을 먹지 않는 무슬림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한국에서보다 더 풍족한 음주생활을 즐기고 있다. 웬만한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드링키스’라는 주류 판매점에서 맥주와 위스키, 보드카, 와인 등 각종 주류를 팔고 있기 때문이다. 12일까지 출장차 머물렀던 파키스탄도 사정이 비슷했다. 1860년에 영국이 만든 양조업체 머리가 맥주와 위스키를 생산하고 있어 외국인들은 술을 접할 수 있었다. 무슬림 인구가 97%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탓에 제한 규정이 엄격했다. 술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고품질 술을 찾기 어렵다 보니 파키스탄은 암시장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최근 파키스탄에서는 황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수도 이슬라마바드 주재 북한대사관에 근무하는 현기영 1등 서기관은 지난달 3일 자신의 집에 보관하던 조니워커 블랙 위스키 1200병, 와인 200상자, 맥주 60상자, 데킬라 수십 병, 다이아몬드 2개와 현금 3000달러(약 336만 원) 등을 도난당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암시장 거래가를 고려할 때 도난당한 물품의 가치는 15만 달러가 넘는다. 면세점에서 보통 35달러인 조니워커 블랙은 파키스탄 암시장에서 80달러에 팔린다. 더 웃긴 건 현 서기관의 집을 턴 일당들이 현직 파키스탄 경찰관이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현 서기관의 집사인 부타 마시와 짜고 그가 집을 비웠을 때를 노렸다. 당시 폐쇄회로(CC)TV에 포착된 경찰관 말릭 아시프는 도피 중에 “북한 외교관들은 오랫동안 주류 밀매 사업을 해왔다”고 로이터에 털어놨다. 절도범이 경찰이란 사실이 확인되자 현 서기관은 수사를 원치 않는다며 신고를 취소했다. 파키스탄에 주재하는 1등 서기관은 분기당 위스키 등 증류주 120L, 와인 18L, 맥주 180L를 면세로 들여올 수 있다. 대사의 경우 면세 주류의 할당량이 1등 서기관의 2배 수준이고, 북한 외교관이 최대 14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알려져 반입 규정을 어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그 많은 술을 자기들끼리만 마시려고 보관했을까. 파키스탄에는 북한 교민이 거의 없는 데다 양국 간의 무역은 지난해 8월 공식 중단된 상황이다. 미심쩍은 게 또 있다. 파키스탄 주재 북한대사관은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10개월 동안 아랍에미리트(UAE)의 트루벨이라는 회사에 주류를 주문했는데 그 양이 웬만한 유통업체 이상이었다. 이들은 4차례에 걸쳐 프랑스 보르도 와인 1만542병, 하이네켄과 칼스버그 1만7322캔, 샴페인 646병 등 총 7만2867달러어치를 수입했다. 그 많은 술이 어디로 갔을까. 파키스탄 현지 언론은 북한 외교관들의 주류 밀매 의혹을 수년째 단골로 다뤄왔다. 올해 4월에는 파키스탄 남부 카라치 소재 북한 외교 공관에서 보관 중이던 불법 양주가 세무경찰에 압류되는 사건이 있었다. 당시 일부 세무경찰은 북한 외교관이 주류 밀매조직과 결탁해 불법 반입된 막대한 양의 술을 공관에 숨겨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불법 주류를 가로챌 목적으로 소속 부서와 관계 기관에 알리지 않고 북한 공관을 급습해 일부 주류를 압류해갔다. 그러나 강성군 북한 무역참사는 “세무경찰 10명이 북한 공관을 무단으로 침입해 외교관과 배우자를 학대했다”며 세무경찰청장에게 항의 서한을 보내 빼앗긴 술을 돌려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외교관의 주류 밀매 실태를 탐사 보도한 데일리 오사프의 무나와르 피르자다 기자는 “북한 외교관들은 주류를 밀매하는 것뿐만 아니라 밀수업자가 반입한 주류를 공관에 보관해줌으로써 수수료까지 받아 챙기고 있다”고 말했다. 카라치에 주재하는 한국 외교관이 3명인 데 반해 북한 파견 인원은 7명이나 된다. 파키스탄의 최대 교역국인 중국(10명)과 큰 차이가 없다. 이쯤 되면 북한 외교관들의 주류 밀매는 공관 운영비와 생활비 등 단순히 생계 활동 차원이 아니라 충성 자금 상납을 위한 조직적인 활동이라는 데 무게가 실린다. 파키스탄뿐만이 아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수출길이 막히면서 전 세계에 주재하는 북한 외교관들과 무역회사가 주류와 마약 등 각종 밀매 사업에 더욱 열을 올릴 게 뻔하다. 목숨을 걸고 외화벌이에 나선 그들에게 묻고 싶다. 밥은 먹고 다니냐고. ―파키스탄 카라치에서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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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우디 vs 이란 ‘포스트 IS’ 주도권 다툼… 중동에 다시 戰雲

    이슬람국가(IS)가 마지막으로 점령하고 있는 도시인 시리아 동부 아부카말을 놓고 치열한 격전이 펼쳐지고 있다. 12일 시리아 내전 감시단체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와 현지 언론에 따르면 반(反)IS 진영(시리아 정부군과 민병대)이 9일 아부카말을 장악했으나, 10∼11일 IS가 반격을 통해 도시를 재장악했다. 또 IS 최고지도자 아부 바크르 바그다디가 아직 아부카말에 남아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비록 IS의 마지막 도시 점령지를 놓고 치열한 교전이 벌어지고 있지만 IS는 자칭 수도였던 시리아 락까와 경제 중심지였던 이라크 모술을 잃는 과정에서 전력이 크게 약화됐다. 사실상 ‘포스트 IS 시대’가 개막됐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중동은 다시 위험한 화약고가 되어가고 있다. 중동의 핵심 세력이며 지역패권·영토·종교 등을 놓고 서로가 주적 관계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수, 자원 보유 규모, 군사력 등에서 월등한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아랍의 대표 주자 사우디가 아랍권의 ‘공통의 적’ 이스라엘과 사실상 협력에 나서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이란은 IS 퇴치 과정에서 시리아, 이라크, 예멘 등 주변국들에 파격적인 군사, 자금 지원을 하며 ‘작은 이란’ 만들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 레바논·이라크 등서 부딪치는 사우디와 이란 현재 가장 부각되는 건 각각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 맹주인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다. 두 나라는 아직 군사적으로 직접 충돌하진 않았다. 그러나 레바논과 예멘을 시작으로 이라크와 사우디 동부같이 종파 혹은 지리적으로 ‘중간 지대’에서 지속적으로 충돌할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특히 레바논이 뜨겁다. 4일 사우디는 자국과 교전 중이며 이란이 지원하고 있는 예멘 후티 반군이 이란산 미사일을 수도 리야드의 국제공항에 발사했다고 주장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친(親)사우디파이며 사우디 이중 국적자이기도 한 사드 하리리 레바논 전 총리가 4일 사우디 방문 중 갑작스럽게 사퇴를 발표한 배경에도 이란과의 갈등이 있다. 하리리는 이란의 간섭과 이란이 지원하는 헤즈볼라(레바논을 중심으로 활동 중인 시아파 무장단체)의 암살 위협을 사퇴 이유로 꼽았다. 일각에선 이란과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레바논에서 계속 커지자 사우디가 하리리를 물러나게 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실제로 사우디는 하리리 사퇴 뒤에도 노골적으로 헤즈볼라와 이란을 비판하고 자국민의 레바논 탈출을 지시하는 등 긴장을 키우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사우디는 10일 예멘 후티 반군이 장악한 수도 사나에 있는 국방부에 전투기들을 동원해 두 차례 공습을 진행하는 등 강경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와 이란 사이에 위치해 있어 두 나라가 동시에 ‘자기편’ 만들기 작업을 진행 중인 이라크와 시아파 인구 비율이 높은 사우디 동부 지역에서도 갈등이 벌어질 수 있다. 특히 사우디 동부 지역은 이 나라의 유전과 담수화 시설이 집중돼 있는 곳이다. 동시에 시아파들의 반정부 정서도 강하다. 이란으로선 사우디 동부의 시아파들이 사우디의 돈줄(원유)과 생명줄(물)을 동시에 흔들 수 있는 카드인 것이다. 해외의 한 사우디 전문가는 “이란은 사우디와 갈등이 커질수록 사우디 동부 지역 민심 흔들기를 시도할 것”이라며 “이 경우 원유와 물 확보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어 사우디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리아, 헤즈볼라와 충돌 가능성 커진 이스라엘 사우디가 이스라엘을 이용해 군사적 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두 나라는 최고위급 인사들 간 비밀 회동과 정보 교환을 공공연히 늘리고 있다. 국경을 헤즈볼라 통제 지역과 맞대고 있어 이들을 피부에 와 닿는 주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적극적으로 헤즈볼라 공격 또는 견제에 나설 수 있다.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은 2006년에 전쟁을 치른 경험도 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 아래 그동안 군사적, 정치적 역량이 커져 이스라엘로서는 큰 부담”이라며 “이스라엘은 언제든 강한 대응을 고민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 김수연 기자}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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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란의 역습… 美-사우디에 ‘초승달 벨트’로 맞서

    올해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선택한 것은 전통적 우방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다녀간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는 아랍에미리트(UAE), 예멘, 바레인, 이집트, 리비아 등과 함께 카타르와의 단교를 선언했다. 사우디 등은 단교 이유에 대해 카타르가 테러단체를 지원했다고 주장했지만 진짜 속내는 따로 있었다. 시아파 맹주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친이란 노선을 걷고 있던 카타르를 손본 것이다. 당시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스티브 배넌은 “중동국가 지도자들이 리야드(사우디 수도)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난 뒤 카타르와 단교를 선언한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랍권의 ‘반(反)이란’ 결집을 위해 수니파 주연의 ‘카타르 단교 사태’를 직접 연출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카타르가 예상외로 굳건히 버티고,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이슬람국가(IS)가 연이어 패퇴한 이후 이란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는 등 중동 정세가 트럼프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미국과 사우디의 견제구가 먹혀들지 않는 상황에서 이란은 본격적인 역습에 나섰다. ‘포스트 IS’의 승자는 이란이나 다름없다. IS 격퇴전에서 미국은 공습을 주도했지만 지상에선 이란의 지원을 받는 시아파 민병대가 큰 역할을 했다. 이란을 견제하려는 미국은 지난달 시아파 민병대를 철수시켜야 한다고 이라크 정부에 공개적으로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이란은 시아파 이라크 정부를 도와 전후 재건 사업도 빠르게 추진하면서 입지를 넓히고 있다. 이란은 이라크―시리아―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동맹인 ‘초승달 벨트’를 거의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란은 또한 러시아와 함께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해 시리아 재건을 주도하고 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붕괴를 막기 위해 러시아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도록 설득한 것도 이란이었다. 시리아를 발판으로 삼아 중동에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러시아와 손잡고 미국을 고립시키려는 전략이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이달 1일 테헤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IS 이후 ‘시리아 플랜’을 논의했다. 이란은 시아파 벨트의 비교적 약한 고리로 여겨졌던 레바논에서도 영향력을 확보했다. 레바논은 시아파와 수니파, 기독교계 마론파가 권력을 균점하도록 헌법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최근 힘의 고리는 완전히 시아파 쪽으로 기울어졌다. 수니파인 사드 알 하리리 총리가 4일 사우디에서 전격 사임한 것이 그 반증이다. 하리리는 헤즈볼라를 지원하는 이란이 레바논의 내정을 간섭하고 있으며 자신이 암살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주장했다. 공교롭게도 하리리가 사우디에서 사임을 발표한 날 이란이 지원하는 예멘의 후티 반군이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를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다. 사우디는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이란이 후티 반군의 미사일 발사를 지휘했다며 비난했다. 시아파 후티 반군의 쿠데타 이후 사우디가 내전에 개입하면서 예멘은 사우디와 이란의 대리전에 휘말려 300만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700만 명이 굶어 죽을 위기에 처해 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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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사조’ 베를루스코니

    이번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방선거의 주인공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81)였다.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처럼 보였던 그는 불사조처럼 살아나 우파 연합의 승리를 이끌었다. 6일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전날 열린 시칠리아 지방선거 결과 우파 연합 후보인 넬로 무수메치가 39%의 표를 얻어 35%에 그친 제1야당 오성운동 후보 잔카를로 칸첼레리를 꺾고 당선됐다. 집권 민주당 후보 파브리치오 미카리는 18%에 그치며 참패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전진이탈리아(FI)는 북부동맹(LN), 이탈리아형제당(FDI)과 함께 우파 연합을 구성하고 무수메치를 단일 후보로 내세워 총력 지원했다. 특히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메시나대교 등 시칠리아의 인프라 건설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는 등 선거 유세에 발 벗고 나서 전세를 뒤집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승리가 확정되자 “온건한 유권자들의 승리”라고 말했다. 세 차례나 총리를 지낸 베를루스코니는 잇따른 성추문과 탈세 혐의로 2013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다. 지난해 6월 심장판막 교체 수술을 받은 뒤 30년간 운영해 오던 프로축구팀 AC밀란을 중국계 컨소시엄에 넘기고, 본인 소유의 미디어그룹인 메디아세트의 지분 일부를 매각해 사업에서도 손을 떼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민주당 대표인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추진한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 반대하며 다시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올해 6월에는 제노바, 라퀼라 등에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도 우파 연합의 구심점 역할을 했고 이번 시칠리아 선거에서 승리를 견인하며 인기가 급등하고 있다. 조반니 오르시나 로마 루이스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번 선거로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여전히 건재하고, 우파가 다시 경쟁력을 찾았음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이르면 내년 3월 실시될 총선에서도 우파 연합이 이어질 경우 오성운동과 민주당을 제치고 집권할 가능성이 높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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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우디 왕세자, 정적 제거 칼바람속… 만수르 왕자, 의문의 헬기추락死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 알사우드(32)가 ‘피의 숙청’을 감행하는 가운데 왕자들이 잇달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AP통신,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사우디 내무부는 5일 만수르 빈 무크린 왕자와 정부 고위 관료 7명이 남서부의 아시르 주도 아브하 인근에서 헬리콥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고는 사우디와 분쟁 중인 예멘으로부터 100마일(약 161km)가량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다. 사우디 당국은 헬리콥터 잔해에 대한 수색을 진행 중이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왕위 계승 상위 서열인 만수르 왕자의 죽음이 빈 살만 왕세자의 숙청 작업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만수르 왕자는 아시르주의 부지사로 아버지인 무크린 빈 압둘아지즈는 한때 왕세제였다. 그러나 현 살만 국왕이 2015년 즉위한 뒤 3개월 만에 그를 폐위시키고 조카인 무함마드 빈 나예프를 왕세자에, 아들인 빈 살만을 부왕세자에 책봉했다. 살만 국왕의 두터운 신임을 얻은 빈 살만은 올해 6월 사촌형인 빈 나예프를 밀어내고 결국 왕세자 자리를 차지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앞서 4일 자신이 이끄는 사우디 반부패위원회를 통해 왕자 11명과 전현직 장관 수십 명을 부패 혐의로 체포했다. 사우디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압둘아지즈 빈 파드 왕자가 체포 시도에 저항해 총격전을 벌이다 부상을 입었고, 다음 날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둘아지즈 왕자는 6월 폐위된 빈 나예프 전 왕세자의 측근이었다. 사우디 왕가는 전통적으로 군부 권력을 분점했지만 빈 살만은 왕세자 몫인 국방부(상비군)뿐만 아니라 내무부(경찰 및 정보조직)와 국가수비대(정예군)를 모두 장악했다. 앞서 그는 빈 나예프 내무장관을 경질했다. 이번에 체포된 무타입 빈 압둘라 왕자는 압둘아지즈 전 국왕의 아들이자 국가수비대 장관으로 한때 왕세자 후보로도 거론됐던 인물이다. 무타입 왕자를 제거함으로써 빈 살만 왕세자는 쿠데타를 막을 국가수비대까지 손에 넣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빈 살만 왕세자의 이번 숙청 작업은 부패 척결이 아닌 사우디 내 보안 세력을 자신의 통제하에 두려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본인이 추진하고 있는 개혁과 권력 강화를 위해 사우디 내에 가장 강력한 인물들을 겨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디언은 이를 ‘정치적으로 위험한 모험’이라고 평가했다. 빈 살만 왕세자가 탈석유 경제 개혁을 추진하고 여성의 운전을 허용하는 등 놀라운 개혁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내부 숙청 작업을 마무리한 사우디는 대중의 관심을 외부의 적에 돌리고 있다. 사우디는 4일 수도 리야드를 겨냥한 예멘의 시아파 반군 후티의 미사일이 이란에서 공급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의 무기 유입을 막는다는 이유로 예멘의 국경과 영공, 항구를 모두 봉쇄했다. 또 후티의 지도자 압둘 말리크 바데르 알다인 알후티에게는 3000만 달러(약 335억 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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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바논 총리 “암살 위협” 전격 사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 중이던 사드 하리리 레바논 총리가 4일 이란의 내정 간섭을 비난하며 전격 사임했다. 그는 또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며 위협의 배후로 레바논의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그 동맹 세력인 이란을 지목했다. 하리리 총리는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서 TV 연설을 통해 “불행히도 이란이 우리 내정에 간섭하고 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나는 국민을 실망시키기를 원치 않고 또 내 원칙에서 후퇴하고 싶지 않기에 총리직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는 시리아 사태에 개입해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고 있는 헤즈볼라를 겨냥해 시리아 국민을 상대로 헤즈볼라의 무력을 동원하는 데 반대한다는 뜻도 밝혔다. 그러면서 “라피크 하리리 암살 직전과 비슷한 분위기가 팽배하다. 내 목숨을 노리는 음모가 진행되는 것을 감지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부친인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는 2005년 2월 헤즈볼라 추종 세력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폭탄 테러로 숨졌다. 건설업을 하던 하리리는 부친의 암살 직후 레바논 정계에 입문해 수니파 정당인 미래운동을 이끌었다. 그는 반(反)시리아 연대의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지난해 11월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에 의해 총리로 지명됐다. 레바논은 종파 간 권력 안배를 위해 대통령은 기독교 마론파, 총리는 이슬람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맡도록 헌법에 규정돼 있다. 그러나 헤즈볼라가 시리아 내전 최고의 승자로 급격히 부상하면서 수니파 중심의 연대가 급속히 약화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하리리 총리의 사임 결정이 헤즈볼라가 장악한 레바논 정세를 뒤집기 위한 사우디의 작품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레바논의 종파 갈등이 격화돼 친사우디 정당과 친이란 정당의 대결 구도가 심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란 외교부는 “하리리의 사임은 레바논과 중동에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미국과 사우디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워싱턴 중동연구소의 랜다 슬림 연구원도 “하리리 총리 사임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약화시키기 위한 사우디의 결정”이라고 지적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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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지데몬 카탈루냐 前 수반, 시민 불복종 외치더니 백기투항

    카를레스 푸지데몬 전 자치정부 수반의 도피 행각에 카탈루냐의 독립 열기가 급랭하고 있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지난달 3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럽연합(EU)의 심장부에서 카탈루냐가 당면한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 이곳을 찾았다”고 밝혔다. 또 “망명을 요청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과 발언은 카탈루냐의 독립을 지지했던 시민들에게 찬물을 뒤집어씌운 셈이 됐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스페인 검찰이 반역죄 등을 적용해 압박해 올 것을 알고 치밀하게 탈출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당초 그는 지난달 30일 자치정부 청사 출근을 강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그날 아침 “좋은 아침”이라며 집무실 창밖 풍경을 찍은 사진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하지만 이 시각 그는 프랑스 마르세유로 건너가 벨기에행 비행기에 탑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푸지데몬 전 수반은 “공정한 사법절차가 보장되면 귀국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변호사 파울 베카르트 씨는 “EU의 시민권자로서 그가 이곳에서 정치적 망명을 신청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푸지데몬 전 수반이 중앙정부가 제시한 12월 21일 조기 선거를 수용하겠다는 의사까지 밝혀 그를 지지하던 시민들은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스페인 정부에 의해 해임되면서 ‘민주적 저항’이 필요하다며 시민 불복종을 촉구하던 그가 제일 먼저 꽁무니를 뺀 것은 물론이고 지방자치 선거에 참여할 것을 선언해 사실상 스페인 정부에 백기 투항했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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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검찰 “카탈루냐 수반-각료들 반역혐의로 기소”

    카탈루냐는 독립을 선포했지만 자치정부는 홀로 서지 못했다. 자치정부가 독립을 선언(27일)하고 맞은 첫 평일인 29일 카를레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은 청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독립 움직임이 사실상 힘을 잃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카탈루냐의 홀로서기를 지지하는 여론도 점차 약해지고 있다. 이날 오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자치정부 청사 정문 앞에는 출입을 통제하는 철제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바리케이드 양쪽 끝 입구를 막고 선 카탈루냐 자치경찰 ‘모소스 데에스쿠아드라’를 통과해야 했다. 어깨에 총을 멘 경찰이 굳은 표정으로 “오늘 푸지데몬 수반이 출근할지는 알 수 없지만 오더라도 결코 안으로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르셀로나 시청과 카탈루냐 자치정부 청사가 마주보는 산 하이메(자우메) 광장엔 이른 아침부터 카메라 수십 대가 늘어섰다. 취재진의 공통된 관심사는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의 출근 여부였다. 혹시나 푸지데몬 수반의 출근 장면을 놓칠까 뒷문에서도 기자들이 소위 ‘뻗치기’(현장 지키기)를 하고 있었다. 푸지데몬 수반은 스페인 중앙정부에 의해 해임됐지만 연설을 통해 민주적으로 저항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그의 측근은 “자치정부 요인들이 월요일에 평소처럼 출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푸지데몬 수반은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분리·독립 주민투표 전에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놓으며 독립을 선포하는 즉시 국경 통제에 들어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지만 정작 자신의 집무실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푸지데몬 수반은 전날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에서 헤로나가 레알 마드리드를 안방에서 꺾자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헤로나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팀 중 하나를 상대로 승리한 것은 다양한 상황에 대한 예와 참조가 될 것”이라는 글을 남겼을 뿐 주말 내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페인 검찰은 이날 푸지데몬 수반과 자치정부 각료들을 반역 및 내란선동 혐의로 기소할 방침을 밝혔다. 반역죄는 최고 징역 30년형을 선고할 수 있다. 검찰은 이들의 체포 계획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카탈루냐 깃발을 두르고 산 자우메 광장에서 독립을 외치던 존 코레아 씨는 “나는 카탈루냐 사람이지 한 번도 스페인 사람이라고 느낀 적이 없다. 오늘 푸지데몬의 출근 여부와 상관없이 그를 지지한다는 걸 알리고 싶어 이곳에 왔다”고 말했다. 일부 지지자는 광장 한편에서 푸지데몬 수반을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독립을 주도했던 카탈루냐 수뇌부가 힘없이 붕괴되면서 지지 세력의 독립 의지도 눈에 띄게 줄어든 모습이다. 그동안 독립파에 묻혀 침묵하던 다수는 반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전날 카탈루냐 광장 인근에서 열린 반독립 집회엔 주최 측 추산 130만 명이 모였다. 집회에 참가한 아나 로드리게스 씨는 “오늘날 모든 나라가 장벽을 허물고 통합으로 나아가고 있다. 카탈루냐의 독립은 세계로부터 고립되는 것이며 역사에서 뒷걸음치는 행위”라며 “또한 유럽연합(EU)에 반하는 것이고, EU는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다른 참가자인 콘치 가르세아 벨라세라나 씨는 “우리가 EU를 떠나면 수많은 기업을 잃게 될 것이다. 독립 투표 이후 1200개가 넘는 회사가 카탈루냐를 떠났다”고 말했다. 카탈루냐의 독립파 정당들의 입지도 줄어들고 있다. 카탈루냐 자치의회는 해산되기 전 푸지데몬 수반의 소속당인 카탈루냐유럽민주당(PDeCAT)과 공화좌파당(ERC), 민중연합후보당(CUP) 등 독립파 정당이 전체 135개 의석 가운데 과반인 72석을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카탈루냐 정치권이 스페인 중앙정부의 직접 통치를 받아들이고 12월 21일 조기 선거를 치를 경우 실각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카탈루냐 정치권은 아직 조기 선거에 대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중도 우파 PDeCAT와 중도 좌파 ERC는 이날 선거에 대한 입장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극좌 성향의 CUP가 자신들의 자치권을 몰수한 중앙정부와 타협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바르셀로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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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이슈/박민우]사우디 여성들이여, 자유의 액셀을 밟아라

    올해 6월 신혼여행을 다녀온 지 사흘 만에 이집트 카이로 특파원으로 부임했다. 감사하게도 아내가 1년 휴직을 신청하고 함께 와줬다. 처음 타국살이를 경험하는 나와는 달리 아내는 해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내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쉽게 적응하지 못할까 봐 더 불안했다. 하지만 아내의 이집트 생활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함께 나갔다 올 때면 “이집트인들이 나를 투명인간 취급한다”며 불만을 터뜨린다. 상점의 일부 점원들은 아내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한다. 불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에서다. 이곳 교민들은 “혼자 나가면 더 큰 멸시를 당할 게 뻔하다”며 “아내를 혼자 내보내지 말라”고 충고한다. 최근 톰슨로이터재단의 국제여론조사에 따르면 유엔이 지정한 31개 대도시 가운데 카이로가 여성이 살기에 가장 위험한 도시로 꼽혔다. 이집트 언론인 사리아 아민은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여성은 괴롭힘과 학대에 노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내의 카이로살이가 어쩌면 나의 특파원 생활보다 더 큰 도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집트 친구들은 “부임지가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기라”며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건넨다. 실제로 여성 인권이 더 열악한 곳은 사우디라는 것이다. 사우디의 여성들은 ‘마흐람’이라고 불리는 남성 보호자 없이는 일상적인 생활이 아예 불가능하다. 주로 아버지나 남편, 아들이 마흐람이 되는데 이들의 허락 없이는 학교에 다닐 수 없고 직장에서 일을 할 수도 없다. 얼마 전에는 사우디 여성의 인권이 로봇보다 못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사우디 정부는 24일 수도 리야드에서 대규모 국제투자회의를 열고 토론의 대담자로 나선 인공지능(AI) 여성 로봇 ‘소피아’에게 시민권을 부여했다. 소피아는 마흐람 없이 무대에서 단독 연설을 하고 히잡조차 쓰지 않았다. 하지만 사우디에도 분명 변화의 바람은 불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2015년 4월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한 데 이어 올해 7월에는 공립학교에 역사상 처음으로 여학생을 위한 체육수업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사우디 여성들이 그토록 원하던 운전을 허용한 것이다. 사우디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운전이 금지된 국가다. 사우디 정부는 조만간 여경과 여성 운전강사 등 관련 인프라를 마련해 내년 6월부터 여성에게도 운전면허증을 발급할 예정이다. 운전은 자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자동차야말로 자유주의의 아이콘과 같기 때문이다. 개인이 자동차를 소유하면서부터 이동의 자유와 편의가 최대한 보장받을 수 있게 됐다. 또 자동차 안에서는 밥을 먹고 화장을 고치는 사소한 일은 물론이고 연애와 같은 은밀한 사생활도 누릴 수 있다. 자동차는 이동의 자유를 누릴 수단인 동시에 남에게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 공간인 셈이다. 그래서 미국 청소년들은 자동차를 소유함으로써 자유인, 즉 독립된 성인으로서의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운전의 자유를 갈망해 온 여성 소비자 덕분에 사우디의 자동차 시장은 내년 하반기(7∼12월)부터 급격히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의 20세 이상 여성 인구는 1000만 명이 넘는다. 전 세계 유명 자동차 업체들이 잠재적 고객들을 잡기 위해 이미 치열한 마케팅 열전에 들어갔다. 포드는 니깝(눈을 제외하고 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여성 전통의상)을 착용한 여성의 눈을 차량 룸미러에 비친 모습으로 표현한 광고로 눈길을 끌었다. 일각에서는 이번 조치의 진짜 목적은 산업 부흥에 있다고 말한다.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왕세자가 탈석유 시대에 국가를 경영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 언론은 외국인 운전기사를 통해 매년 빠져나가는 880억 달러 규모의 외화 유출을 줄이는 동시에 여성 취업률과 경제적 생산성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담겼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경제적인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운전을 맛본 사우디의 여성들은 더 큰 자유와 권리를 열망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것은 사우디의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모멘텀이 될 것이다. 운전석에 앉은 사우디 여성들이 자유의 액셀을 더욱 힘차게 밟기를 기대해 본다.  박민우 카이로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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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장으로 몰려나온 반대파 “독립하면 먹고살기 힘들어져”

    카탈루냐 자치의회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지 이틀이 지난 29일(현지 시간)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광장을 뒤덮은 건 카탈루냐 국기가 아닌 노랑과 빨강이 섞인 스페인 국기였다. 부모님의 어깨에 올라탄 꼬마 아이들부터 백발이 성성한 노부부까지 스페인 국기를 어깨에 망토처럼 두르고 그라시아 거리로 하나둘 모여든 이들은 모두 카탈루냐 독립에 반대하는 시민이었다. 광장에는 집회 예정 시간보다 두 시간 앞선 오전 10시에 이미 수천 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나는 스페인 사람”이라고 구호를 외쳤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을 감옥으로”라는 구호도 간간이 터져 나왔다. 반독립 집회 참가자 수는 이날 최대 100만 명까지 불어났다. 스페인을 상징하는 스티커를 참가자에게 나눠 주던 프란시스코 히메네스 씨는 “카탈루냐의 독립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다수고, 독립을 지지하는 이들이 소수”라고 말했다. 독립을 선언한 카탈루냐 자치정부에 맞서 중앙정부는 28일 카탈루냐에 대한 직접 통치가 시작됐다고 관보에 게시하고, 카를레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과 자치경찰청장, 내각 12명을 해임하면서 자치권 박탈을 행동으로 옮겼다. 이에 푸지데몬 수반은 이날 연설을 통해 “우리는 자유로운 국가 건설을 위해 계속해서 나아갈 것”이라고 자치정부 해산을 수용하지 않을 뜻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저항할지는 밝히지 않았다. 카탈루냐 여론은 양분돼 있다. 스페인 일간지 엘파이스가 28일 공개한 카탈루냐 주민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가 독립 선언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찬성한다고 응답한 이는 41%에 불과했다. 1일 카탈루냐 독립 찬반 주민투표를 실시한 이후 기업과 은행이 물밀듯이 빠져나가면서 불안감이 엄습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투표 이후 3주 동안 약 1700개 회사가 카탈루냐 밖으로 본부를 옮겼다. 이번 달 카탈루냐행 항공기 예약률도 지난해 같은 달보다 22% 줄었다. 카탈루냐 광장에서 만난 마리아 다실 씨는 “지금 스페인 경제는 위기인데 분리되면 더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된다”고 우려했다. 카탈루냐 자치정부와 자치의회를 해산한 중앙정부는 조기 선거로 새 자치정부를 구성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미 12월 21일 조기 선거 시행을 예고했다. 멘데스 데 비고 중앙정부 대변인은 이날 “푸지데몬이 12월 조기 선거에 출마하는 걸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푸지데몬 수반을 향한 반역죄 기소까지 언급해 왔던 것에 비하면 충돌보다는 정면대결을 선언한 셈이다. 그러나 푸지데몬 수반이 이를 수용할 경우 독립 선언이 무효라는 점을 인정하는 꼴이어서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카탈루냐 시민들조차 여론조사에서 자치의회 해산과 선거 개최에 찬성한다는 의견(52%)이 반대(43%)보다 많아 마냥 거부하기 힘든 상황이다. 양측 모두 최악의 충돌은 막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쉽사리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이라는 게 문제다. 바르셀로나=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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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폭우 뿌린 신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평창의 불꽃은 화려하게 타올랐다

    잿빛 구름 뒤로 숨었던 태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성화(聖火) 채화식이 굵은 빗줄기 속에서 치러진 지 불과 몇 분 지나지 않아서였다. 평창 올림픽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3분만 더 기다렸더라면”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24일 낮 12시(현지 시간)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평창 올림픽 성화 채화행사가 시작할 무렵 빗방울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고대로부터 올림픽 성화는 불의 여신인 헤라의 신전에 내리쬐는 빛을 오목한 거울 그릇에 모아 불꽃을 피워낸다. 이 때문에 구름이 해를 가리거나 비가 내리면 성화를 얻을 수 없다. 행사 당일 오락가락하던 날씨는 아쉽게도 자연 채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성화는 타올랐다. 전날 리허설에서 채화해놓은 ‘예비 불꽃’ 덕분이었다. 리허설 때도 해가 구름에 가려 세 번이나 채화를 시도한 끝에 불씨를 만들 수 있었다. 리허설이 끝나고 나서는 곧바로 세찬 폭우가 쏟아져 관계자들을 흠뻑 적시기도 했다. 19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 여름올림픽 때도 예비 불꽃을 사용했다. 이날 비로 인해 성화의 불씨가 만들어지는 장면은 없었지만 의식은 아름답고 신성했다. 오랜 신화를 간직한 돌 제단 뒤편으로 보드라운 연옥빛 드레스를 입은 여사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제사장이 항아리에 담긴 불꽃을 성화대에 옮겨 붙였다. 대제사장의 역할을 맡은 그리스의 여배우 카테리나 레후는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았고, 불꽃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성화가 헤라 신전 바로 앞에 있는 스타디움에 도착하자 그때서야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었다. 성화를 기다려온 한국 대표단과 관광객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무릎을 꿇고 성화를 건네받은 평창 올림픽 첫 번째 성화 봉송 주자인 그리스의 크로스컨트리 스키 선수 아포스톨로스 앙겔리스는 근대 올림픽 창시자 피에르 쿠베르탱 기념비까지 달렸다. 여기서 평창 올림픽 홍보대사인 박지성이 성화를 건네받았다. ‘PyeongChang 2018’이 새겨진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채 한글 자음과 모음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은 박지성은 성화를 들고 약 200m를 달렸다. 점화 때까지 109일간의 여정을 시작한 성화는 일주일간 그리스 각지를 누빈 뒤 다음 달 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도착한다. 올림피아=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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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화 첫주자 박지성 “2002년처럼… 국민 응원이 기적 만들죠”

    “중요한 건 성화를 떨어뜨리지 않고 얼마나 잘 옮기느냐다. 그래서 과거에 성화를 떨어뜨린 사람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참고하려 하는데 아직 답을 못 들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한국인 첫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는 한국 축구 레전드 박지성(36)은 혹시나 성화를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신중한 모습이었다. 23일 성화 채화 리허설이 열린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만난 그는 “성화를 들고 특별한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다. 기본에 충실할 생각”이라며 평소의 그답게 소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릎이 좋지 않아 은퇴를 결심했던 그는 “200m 정도 뛰는 걸로 안다. 그 정도는 무릎에 무리 없이 뛸 수 있을 것 같아 따로 달리기 연습을 하지 않았다. 카메라 기자분들이 쫓아올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뛰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첫 번째 주자가 된 데 대해 “올림픽이라는 큰 축제를 보면서 자라 왔다.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소감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축구대표팀 선수로 참가했던 때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그는 “올림픽 축구 종목이 주경기장에서 열리지 않아 올림픽에 참가하고도 성화를 보지 못하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그래도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모여서 친분을 쌓다 보니 말 그대로 스포츠 축제라는 기분을 느꼈다”며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열리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나 자세가 남달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당시 역대 최고 성적인 2승 1패를 하고도 탈락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이 지금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큰 대회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박지성은 올림픽과 월드컵 등에서 국민의 열정과 응원이 선수들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강조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팬들의 굉장한 힘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런 성원이 없었다면 2002년 4강의 기적은 있을 수 없었다. 제가 어렸을 때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1988년 서울 올림픽도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치러져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우리 국민과 팬들이 얼마나 많은 성원을 보내주느냐에 따라 선수들의 성적이 달라질 수 있다.” 평창 올림픽에서 꼭 보고 싶은 종목이나 선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종목별로 기대와 관심을 일으키는 상황이 많다. 과연 피겨에서 김연아 다음으로 어떤 선수가 나타날지, 아이스하키가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올림픽에서도 이어갈지, 봅슬레이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너무나 잘하고 있는데 올림픽에서도 선전할지 궁금하다. 각기 다른 종목 선수들이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 모두 선전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최근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평창 올림픽 안전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나오는 말들이다. 많은 사람이 불안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올림픽과 월드컵을 너무나 훌륭하게 잘 치러냈다.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각 나라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에게는 북한 문제가 가장 큰 문제다. 그만큼 만반의 준비를 해왔고 그만큼 노하우가 쌓였다고 본다. 그런 점들이 평창에서도 안전하게 올림픽을 열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알지만 그만큼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근황을 여전히 궁금해하는 팬들을 위해 자신의 진로와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올해 7월 국제축구연맹(FIFA) 마스터스 코스를 졸업하며 축구 행정가로 나설 토대를 마련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네덜란드 명문구단 아약스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에드빈 판데르사르와 비슷한 길을 가길 원한다. 판데르사르에게 조언도 들었다고 했다. “첫 번째 조언은 축구선수는 운동을 해야 하지만 행정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해야 한다는 고충이 있다는 걸 알라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도 많이 공부해야 현장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선수 출신으로 CEO가 됐다는 건 그만큼 행정 역량을 보여줬다는 건데, 저 역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입증하고 싶다. 그게 제가 가고 싶은 길이다.” 당분간은 선진 축구 시스템과 행정 능력을 갖춘 유럽에 최대한 머물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축구 행정인으로서 많은 경험을 하고 충분히 능력을 입증하고 나서 아시아로 돌아왔을 때 아시아의 현실과 유럽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유럽의 좋은 점을 아시아와 한국에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구단들로부터 구체적인 러브콜은 없다. 하지만 “유럽 구단들을 견학하면서 구단별로 다른 목표가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지 그런 차이점을 배우고 있다. 여러 사람을 만나 조언을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축구의 위기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그는 “현재 축구대표팀에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그만큼 대표팀이 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질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다음 경기에서도 내가 경기를 한 뒤 또 질타를 받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서 플레이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며 “개인뿐만 아니라 팀으로서 얼마나 빨리 자신감을 찾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올림피아=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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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칼럼/박민우] ‘신화의 땅’ 올림피아로 가는 길

    그리스의 10월 햇살은 아직 뜨거웠다. 코린토스만의 쪽빛 바다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의 경계가 모나리자의 입술처럼 묘했다. 길을 따라 하늘로 솟아오른 측백나무들이 늘어섰지만 멀리 산등성이에는 듬성듬성 낮게 자란 올리브 나무가 헐벗은 땅을 가리고 있었다. 평창 겨울올림픽을 밝혀줄 성화를 보기 위해 22일 아테네에서 필로폰네소스 반도의 심장부인 올림피아로 향했다. 아테네 서쪽으로 반도를 연결하는 코린토스 지협을 지나면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북부 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항구도시 파트라스를 지나는 여정을 선택한 덕분에 오른쪽으로 푸른 바다와 그리스 북부 산맥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도 오래도록 보고 있자니 밋밋하게 변했다. 필로폰네소스 반도 둘레를 거의 반 바퀴나 돌고 나서야 올림피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올림피아로 가는 최단거리는 내륙을 가로지르는 것이지만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은 오히려 더 길다. 필로폰네소스 반도 중앙부에 험준한 산악지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필로폰네소스의 주도 트리폴리스를 지나 나타나는 지방도로는 마주 오는 차량 2대가 지나기 어려울 정도로 폭이 좁고 낙후됐다. 헤라클레스의 근육처럼 굴곡진 산길은 대관령 옛길보다 험해 현지인들도 기피할 정도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신화의 땅 올림피아로 가는 길은 지금보다 훨씬 더 고달팠다. 험준한 산악지대를 걸어서 넘어야 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인들은 올림피아에 도착하기 위해 최소 일주일은 길 위에서 보내야 했다. 소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의 그리스 식민도시에서 출발하는 선수들은 바다를 건너는 데만 몇 달이 걸렸다. 이런 제약 속에도 고대 그리스에서는 4년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올림피아로 몰려들었다. 무엇이 고대 그리스인들을 필로폰네소스의 깊은 산골로 불러 모았을까. 헤르도토스가 저술한 ‘역사’에 기록된 일화를 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다. 과거 그리스를 침공한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크세르크세스가 그리스인을 심문하며 “어떤 상을 타려고 경기를 하느냐”고 묻자 “올리브 가지로 엮은 관을 타기 위해 경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자 페르시아 장군 트리탄타이크메스가 “왕이시여, 어찌하여 돈이 아니라 명예를 위해 경기를 하는 이런 종류의 인간들과 싸우자고 우리를 끌고 왔습니까”라며 한탄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스포츠는 순수한 열정의 대상이었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 플라톤도 최고의 레슬링 선수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몇 번이나 올림피아로 가는 여정에 올랐다. 과거 올림피아로 가는 길은 고달프기도 했지만 또 평화로웠다. 에케케이리아(Ekecheiria)로 불리는 올림픽 휴전 덕분이었다. 에케케이리아는 그리스어로 ‘무기를 내려놓다’라는 뜻이다. 도시국가간 전쟁이 끝이질 않았던 기원전 776넌 엘리스의 이피토스 왕, 피사의 클레오스테네스 왕, 스파르타의 리쿠르고스 왕은 델피의 유명한 예언자의 조언에 따라 4년마다 올림피아 제전을 열기로 하고 일시적인 휴전을 선포했다. 휴전 기한은 올림피아로 가는 선수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약 3개월이었다. 이와 같은 의미로 올림픽 개최국은 1993년 이후 유엔 총회에 올림픽 휴전 결의안을 제출한다. 다음달 13일 유엔 총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평창 올림픽 휴전 결의안이 채택되면 올림픽 개막 일주일 전부터 폐막 일주일 후까지 휴전이 성사된다. 북한의 핵이 전 세계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에케케이리아 정신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24일부터 타오를 성화를 바라보며 전 세계인들이 평창으로 오는 길이 평화롭기를 기원할 생각이다. 안타깝게도 현장에 도착하자 24일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신전에서 열리는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 채화식에서 ‘비 주의보’가 내려졌다. 그리스 현지 기상당국은 채화식 당일 강수확률을 80%로 예보했다. 오목거울에 태양 빛을 모으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채화는 구름이 많거나 비가 오면 진행이 어렵다. 실제로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과 2000년 시드니올림픽 성화 채화는 날씨 때문에 태양 빛을 모아 점화하지 못했다. 23일 열린 채화 리허설에서도 해가 구름에 가려져 3번의 시도 끝에 채화에 성공할 수 있었다. 리허설이 끝난 뒤 5분 뒤에는 폭우가 쏟아져 관계자들의 옷이 비에 홀딱 젖기도 했다. 하지만 평창을 향한 성화의 정신은 결코 훼손되지 않는다. 그리스 올림픽위원회는 22일 미리 예비 채화를 해뒀다. 채화 당일 비가 내릴 경우 이 예비 채화 불꽃을 활용해 ‘올림픽 아카데미’에 마련된 실내에서 채화식이 약식으로 진행된다. 채화된 성화의 첫 봉송 주자는 그리스 선수가 맡는 관례에 따라 그리스 크로스컨트리 스키선수 아포스톨로스 앙겔리스가 맡는다. 두 번째 성화 봉송은 한국인 첫 봉송 주자이기도 한 평창 겨울올림픽 홍보대사 박지성이 한다. 이 성화는 그리스 현지에서 7일간 봉송행사 후 다음달 1일 국내에 들어와 101일 동안 전국을 누빈 뒤 평창 성화대에서 불타오른다.올림피아=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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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러시아의 패리스 힐턴’ 내년대선 출마 선언

    러시아의 유명 여성 앵커 크세니야 솝차크(35·사진)가 내년 3월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18일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솝차크는 이날 유튜브와 독립 방송 채널 등을 통해 내년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선거운동 계정을 개설하고 “다른 모든 러시아 시민과 마찬가지로 나도 대선에 입후보할 권리가 있으며 그 권리를 사용하려 한다”며 러시아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솝차크는 모스크바국립대 국제관계학과 출신으로 화려한 배경을 갖고 있다. 그의 아버지인 고(故) 아나톨리 솝차크 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장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치적 멘토였고, 어머니 역시 러시아 상원의원 출신이다. 솝차크는 또한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520만 명에 달할 만큼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외모가 출중한 솝차크는 누드 사진 촬영, 재벌과의 시한부 결혼 등으로 화제를 뿌려 ‘러시아의 패리스 힐턴’(힐턴호텔 상속녀)이란 별명도 갖고 있다. 일각에선 ‘반(反)푸틴’ 슬로건을 내세운 솝차크가 최근 유죄 판결로 대선 출마가 좌절된 알렉세이 나발니를 대신해 푸틴 대통령의 4선 도전을 저지할 다크호스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솝차크의 출마 선언이 ‘정치적 쇼’라는 비판도 있다. 그를 조연으로 내세워 야권을 분열시키고 선거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려는 고도의 전략이라는 것이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2017-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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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락까는 함락됐지만… “IS 완전퇴치 이제 시작단계일뿐”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IS가 2014년 1월 장악한 뒤 3년 9개월 동안 최대 거점지로 삼아 왔던 시리아 락까에서 17일 패퇴했지만 IS로 인한 위험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핵심 거점지였던 락까와 이라크 모술(올 6월 탈환) 탈환은 IS의 물리적 기반이 붕괴됐다는 것을 보여줄 뿐 완전 퇴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마크 린치 조지워싱턴대 중동학연구소장은 이달 초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IS에 대한 군사적 승리 뒤 또 다른 반란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꼭 정치적, 경제적 재건 전략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락까 탈환 등이 IS 퇴치를 위한 첫 단계에 불과할 뿐 구조적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란 점을 시사한 것이다.○ IS 잔당이 전 세계로 퍼진다 가장 가시적인 위험은 IS 잔당들의 지속적인 저항과 테러다. 당장 락까 종합운동장 지하 터널에서 최후의 저항을 했던 IS 전투대원 수십 명이 전부 제거됐는지는 불분명하다. 국제동맹군 대변인인 라이언 딜런 미군 대령도 “우리는 이 도시의 작은 주머니 안에 IS 전투대원들이 아직 숨어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락까에 남아 있는 수천 개의 지뢰와 부비트랩(위장폭탄), 난민들에 대한 식량과 의료 지원도 만만찮은 숙제다. 중·장기적으로는 더 큰 위험도 있다. 이른바 ‘외국인 테러 전투원(FTF·Foreign Terrorist Fighter)’으로 불리는 시리아와 이라크 이외 지역 출신 지하디스트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것. 이미 FTF들이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한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파키스탄 등으로 대거 이동해 현지의 극단주의 단체와 연합함으로써 새로운 국가 형태의 조직을 세울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중앙정부는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하지만 경제 침체나 부의 불평등 같은 사회불안 요소가 많은 튀니지와 모로코 출신 FTF들이 자국에 돌아가 소요 사태 등을 기획하는 것도 가능하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4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국방은 물론이고 법, 화폐, 교육 제도까지 자체적으로 운용했던 ‘칼리프 국가’가 존재했다는 건 포기할 수 없는 성과”라며 “어떤 형태로든 이를 재현하려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발성 테러 위협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IS의 영향력은 ‘2015년 프랑스 파리 테러’와 ‘2016년 벨기에 브뤼셀 테러’ 같은 대형 테러들을 통해 확대됐다. FTF들의 확산은 언제든지 세계 각지에서 불특정 다수를 노린 테러가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IS는 오랜 기간 자발적으로 테러를 저지른 뒤 중앙에 보고하는 ‘선 테러, 후 보고’ 시스템을 인정해 왔다”며 “IS 중앙지도부가 무너진 건 통제나 협상이 더 어려워졌다는 걸 뜻한다”고 말했다.○ IS가 남겨 놓은 상처의 부작용은 계속된다 락까와 모술 같은 거점지에서 잔인하게 주민들을 처형하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는 극단주의를 세뇌시키는 교육을 강하게 실시한 것도 IS로 인한 구조적인 후유증으로 꼽힌다. IS는 자신들이 장악했던 지역에서는 비(非)이슬람교도를 증오하고, 중앙정부를 적으로 여기는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수학 교과서에서는 기독교 상징인 십자가를 연상시킬 수 있다고 ‘더하기(+)’ 표시를 없애기도 했다. 이라크에서는 모술 탈환 뒤 일부 어린이들이 이라크의 국기를 보고 ‘적의 깃발’이라고 외치는 장면이 큰 충격을 줬다. 유니세프 등은 IS 점령지역 어린이들의 학습능력 저하나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한 사회 부적응을 우려하고 있다. 중동에서 IS 확산 억제에 큰 역할을 해온 이란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고, 쿠르드족 독립 등 새로운 리스크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IS 붕괴 뒤 재정비 작업’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꼽힌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 2017-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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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계 위협하던 IS, 칼리프국가 선포 3년 만에 무너져

    쿠르드·아랍연합 시리아민주군(SDF)은 지난 주말 이슬람국가(IS) 조직원 275명과 그 가족이 락까에서 항복해 철수한 이후 IS의 최후 보루였던 락까 국립병원과 종합운동장에 대한 총공세를 펼쳤다. SDF는 16일 IS의 마지막 보루로 꼽히는 락까 국립병원을 해방하고 IS 외국인 대원 22명을 사살했다. 그러나 300여 명의 IS 대원은 항복을 거부한 채 락까 종합운동장 지하에서 최후의 항전을 하고 있었다. IS의 악명 높은 감옥으로 사용됐던 운동장 등에는 마지막 교전 이후인 17일 쿠르드 인민수비대의 깃발이 내걸렸다. SDF는 외국 출신 IS 대원들에 대해서는 협상 항복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고 15일까지 300명 정도의 IS 요원이 락까 도심의 한 블록에 은신하며 저항했다. SDF는 하루 뒤인 16일 IS의 복면 대원들이 사람들을 잔인하게 처형, 참수하던 락까 광장을 접수한 데 이어 17일 새벽 IS 사령부로 쓰이던 국립병원을 장악하는 것으로 군사작전을 사실상 끝냈다. 국제동맹군 대변인인 라이언 딜런 미군 대령은 “SDF가 지난 몇 시간 동안 무력을 쏟아부었다”며 “우리는 IS 잔여세력이 향후 며칠간은 더 남아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고 말했다. SDF의 지휘관 탈랄 셀로 준장은 “락까에서 군사작전을 끝냈지만 비활동 조직원을 색출하고 있다”며 “지뢰 제거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SDF는 곧 공식적인 해방 선언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SDF는 올해 6월 초부터 미군의 공중 지원을 받아 락까에 진입한 뒤 물샐틈없는 포위전을 펼쳤다. 미군 주도의 국제동맹군은 IS를 상대로 4000회에 육박하는 공습을 가했다. 약 4개월간의 락까 탈환전에서 30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락까 탈환전이 시작된 이래 1130명의 민간인 주민을 포함해 총 3250명이 숨지고 수백 명이 실종됐다. 이 과정에서 락까는 90% 가까이 파괴됐다. 앞서 이라크 정부군은 6월 29일 IS의 또 다른 주요 거점 도시인 모술을 탈환했으며 이후 IS는 중동지역에서 급속히 쇠퇴했다. 최근에는 이라크 북부의 하위자까지 정부군에 빼앗기면서 IS는 시리아 동부의 유프라테스 계곡과 사막 지대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 현재 남아있는 IS 거점은 시리아 동부의 데이르에즈조르 유전지대가 거의 유일하다. 이마저도 국제동맹군의 군사작전이 본격화될 경우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락까 함락 이후에도 IS의 실체가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IS가 반군 성격을 가진 수니파 이슬람 과격단체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시리아에서 반군에 흡수돼 끈질긴 저항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모술 탈환 이후의 이라크처럼 내부 분열이 격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탈환은 쉬웠을지 모르지만 향후 통치와 처우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며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 정부군과 미국이 지원한 SDF, 특히 쿠르드 인민수비대 간의 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 김수연·위은지 기자}

    • 2017-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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