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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유현준 홍익대 건축도시대학 교수(52·사진)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 사건 ‘예언자’로 불린다. 유 교수는 정부의 2·4 부동산 대책 발표 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도시 개발을 좋아하는 분들은 두 부류다. 지역 국회의원과 LH 직원”이라고 비판했다. 이후 LH 사태가 터지면서 해당 인터뷰 영상은 유튜브에서 52만 회나 재생됐다. 누리꾼들은 그에게 ‘유 도사’라는 별명을 붙였다. 20일 동아일보와 만난 유 교수는 “내가 한 말은 예언 축에도 안 든다. 신도시 난개발을 반대하며 LH를 언급한 것일 뿐”이라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어 진지한 표정으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우리나라엔 생태계가 있어요.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 신도시 개발한다고 공약을 내걸면 LH 직원들이 정책을 짜주면서 (정치적) 라인이 생겨요. 과거부터 LH는 정치권의 행동대장 역할을 해왔죠.” 유 교수는 25일 발간하는 책 ‘공간의 미래’(을유문화사)에서 정부 주도로 신도시를 만들어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이 LH 사태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주택 문제를 정부가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건 일종의 ‘홍길동 콤플렉스’다”라며 “정의로운 정부가 직접 돈을 거둬 집을 지어주는 방식은 문제를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이런 개발 방식은 권력과 정보의 집중을 낳아 부패 문제를 일으키기 쉬워서다. 그는 “이제 LH의 업무를 최소한으로 축소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책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공간의 변화를 다뤘다. 집단감염 예방을 위한 자발적 자가 격리가 일반화되면서 집이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오래 머무는 곳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것. 이에 따라 그는 외부 공간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마당 같은 발코니를 갖춘 아파트가 인기를 끌 것으로 예상했다. 유 교수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가상공간이 커지고 있지만 대도시는 해체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람들은 여전히 오프라인 공간에서의 교류를 원하기 때문이다. “연인과 만나지 않고 통화만 하면서 연애할 수 있겠어요. 코로나 같은 병에 걸리면 치료를 받기 위해서라도 의료시설이 충분한 서울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아파트가 과거 사회계층 간 이동에 있어 일종의 사다리 역할을 했다고 본다. 이런 측면에서 청년들이 임대주택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집값을 안정화시켜 이들이 자기 집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는 부동산 투기를 부추기는 게 아니다. 실수요를 위한 1인 1주택을 실현해야 한다는 것. 그는 “10년 전부터 1, 2인 가구를 위한 작은 아파트를 대량으로 공급했어야 했다.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오른 건 공급 실패에 기인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법으로 “아파트 공급을 LH와 같은 공공기관에만 맡기지 말고, 공공과 민간이 함께 개발하는 게 좋다”고 제안했다. 그는 그린벨트를 풀어 신도시를 만드는 데 대해선 부정적이다. “서울의 뒷골목을 뒤져 보면 낙후된 다세대주택들이 많아요. 큰 단위로 개발할 필요도 없고, 중소 규모로 재개발, 재건축을 하면 됩니다. 여러 건설사가 중소 단지들을 지으면 다양한 종류의 아파트가 들어설 수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취임 후 부동산 정책을 놓고 정부와 서울시가 이견을 보이고 있는 데 대해선 “지방정부의 힘이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정부가 그동안 지방에 만든 혁신도시들은 거의 똑같이 생기지 않았나요. 지방자치단체의 자치권이 확보돼야 각 도시가 시민들이 선호하는 건축물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작가 고종석(62)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의 소설 ‘어린 왕자’(삼인·사진)를 새로 번역해 30일 출간한다. 국내에는 이미 100편 이상의 어린 왕자 번역본이 나와 있다. 고종석은 기존 번역본을 보완하려는 취지로, 1945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출간된 원서를 번역했다. 고종석은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프랑스어만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며 “특히 프랑스어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명사의 복수 표현을 그대로 담았다”고 말했다. 예컨대 기존 번역서들이 ‘식당이 많다’고 번역한다면 이번 신간은 ‘식당들이 많다’고 썼다. 이에 대해 고종석은 “독자들이 프랑스어 표현을 느끼며 책을 읽었으면 한다”고 했다. 존댓말과 반말은 명확히 구분했다. 소설에서 어린 왕자는 허영심이 많은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는 존중의 의미로 존댓말을 한다. 하지만 그와 대화하며 깔보는 마음이 생기자 반말을 쓰기 시작한다. 고종석은 “기존 번역서는 처음에 존댓말이나 반말을 쓰면 끝까지 같은 말투를 고집했다”며 “이번에는 어린 왕자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어투가 바뀌는 원문의 느낌을 최대한 살렸다”고 설명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어린 왕자를 ‘그 아이’라고 칭한다. 어린 왕자를 ‘그’라고 부르는 기존 번역서와 다르게 쓴 건 어린 왕자를 어린이의 대변자로 봤기 때문이다. “누가 어린아이를 부를 때 ‘그’라고 부르나요. 어린 왕자는 세상의 모든 어린이를 대표하니까 ‘그 아이’라고 불러야죠.”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눈먼 수도사 호르헤가 나온다. 호르헤는 문학의 거장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를 흠모한 에코가 그에 대한 존경을 담아 만든 인물이다. 보르헤스는 유전병으로 말년에 시력을 잃었다. 아르헨티나 태생으로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선구자로 꼽히는 보르헤스는 제임스 조이스, 프란츠 카프카, 마르셀 프루스트와 함께 20세기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소설, 시, 평론 등 다양한 작품을 썼다. 보르헤스의 논픽션 전집 번역본이 한국에서 최근 완간됐다. 박정원 경희대 교수 등 국내 스페인문학 전공자 12명이 번역에 참여한 ‘보르헤스 논픽션 전집’(민음사)이 나온 것. 마지막 7권은 보르헤스가 종교와 문학에 대해 쓴 기고문과 강의집을 모은 ‘세계문학 강의’다. “한국에서 보르헤스의 논픽션 전집이 먼저 번역돼 나온다니 놀랍다.” 대니얼 발더스턴 미국 피츠버그대 스페인어학과 교수는 박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보르헤스의 논픽션 전집이 아직 영어로도 번역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리적 정서적으로 더 먼 한국에서 번역본이 먼저 완간됐기 때문이다. 발더스턴 교수는 보르헤스 문학을 연구하는 기관 중 가장 권위 있는 보르헤스센터를 책임지고 있다. 그는 “보르헤스센터가 매년 세 번 펴내는 잡지에 한국 번역자들이 글을 기고해 주기를 바란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잦아들면 센터 회원들이 한국을 직접 방문하고 싶다”고 했다. 앞서 민음사는 1994∼1997년 5권짜리 보르헤스 픽션 전집을 냈다. 하지만 국내에선 보르헤스에 ‘읽기 어려운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곤 했다. 그의 작품이 거짓과 진실, 환상과 현실을 뒤섞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서다. 문학적으로는 매력적이지만 일반 독자가 읽기엔 까다롭다. 민음사는 보르헤스에 대한 독자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논픽션 전집을 내기로 했다. 이를 위해 2017년부터 국내 스페인문학 전문가들을 번역자로 섭외했다. 2018년 3월 처음으로 논픽션 전집 중 1∼3권을 펴냈다. 지난해 7월 출간한 ‘죽음의 모범’은 소설이지만 보르헤스가 부스토스 도메크라는 필명으로 쓴 작품으로 보르헤스의 기존 작품과 성격이 달라 논픽션 전집에 포함됐다. 7권짜리 논픽션 전집은 4364쪽에 달한다. 박여영 민음사 문학1팀 부장은 “민음사 편집자 7명이 동원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고 말했다. 전집엔 동료 작가나 책에 대한 비평과 대학 강의집 등 다양한 주제와 형식의 산문도 담겼다. 논픽션 속성상 문학 작품보다 난해한 표현이 훨씬 적다. 보르헤스 입문서로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역자 중 한 명인 송병선 울산대 스페인중남미학과 교수는 “말년에 눈이 먼 보르헤스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면 비서가 이를 받아 적은 글도 있다”며 “말을 글로 정리한 작품이라 표현이 비교적 명료해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엄두를 내기 쉽지 않은 이른바 ‘벽돌 책’인데도 반응은 좋은 편이다. 초판이 모두 팔려 추가 인쇄에 들어간 낱권도 있다. 여러 번역자들이 참여한 만큼 글마다 다양한 문체를 감상할 수 있는 매력도 있다. 송 교수는 “국내 연구자들이 보르헤스의 논픽션을 번역하면서 연구의 질이 좋아졌다”며 “특히 작가 지망생과 문학 애호가에게 인기가 많은 작가인 만큼 한국 문학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교보문고는 열린책들 출판사와 함께 단테의 ‘신곡’ 합본 소장판을 제작해 판매하기로 했다. 23일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올해의 인물로 이탈리아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를 선정한 데 따른 것이다. 올해는 단테가 서거한 지 700주년이 되는 해다. 신곡은 중세 이후 최고의 서사시로 평가받는 걸작이다. 이번 합본 소장판은 3권으로 구성된 열린책들의 세계문학전집 신곡 편을 한 권으로 합친 것이다. 구매자에게는 960쪽짜리 책과 더불어 북커버를 함께 제공한다. 교보문고는 책의 날을 맞아 이름난 독서가 16명이 추천한 책을 소개하는 기획전도 연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래퍼 도끼의 곡 ‘내가’의 가사 중에 ‘내가 망할 것 같애?’라는 게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사는 이들이 주인공인 소설을 쓰고 싶었죠.” 가상화폐에 투자한 직장인들의 심리를 실감나게 담은 첫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창비·사진)를 15일 펴낸 장류진 소설가(35·여)가 말했다. 이른바 ‘한 방’에 인생을 거는 주인공들이 벌을 받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14일 만난 그는 “소설은 마음대로 상상해도 되는 곳”이라며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3억 원씩 그냥 공짜로 주고 싶었다”고 했다. 장 작가는 2019년 직장인의 애환을 사실적이고 흡인력 있게 그린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으로 돌풍을 일으키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이번 장편소설은 어떤 마음으로 썼을까. 장 작가는 “직장에 다니던 시절, 지치고 힘들 때면 누군가 내게 돈 좀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 탓에 ‘달까지 가자’를 쓰게 된 것 같다”며 웃었다. 2년 전까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느꼈던 감정을 담았다. 그는 “소설을 쓸 때만 해도 가상화폐 가격(현재 1이더리움이 약 300만 원)이 이렇게 많이 오를지 몰랐다”며 “우연하게도 소설 출간 시점과 가상화폐 가격 급등 시기가 겹쳤다”면서 웃었다. 소설에서 1이더리움은 15만 원에서 등락을 거듭하다가 230만 원까지 오른다. 소설은 한 식품회사에 다니는 20, 30대 여성 3명이 이더리움 투자에 빠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는 이더리움의 가격 그래프에 따라 주인공들의 희비도 오락가락한다. ‘달까지 가자’라는 제목은 가상화폐 가격 폭등을 바라는 투자자들의 은어다. ‘흙수저 여성 청년 3인의 코인열차 탑승기’(한영인 문학평론가)라는 평가처럼 가상화폐에 빠진 젊은 세대의 모습을 발 빠르게 포착했다. 그는 “이전 세대와 달리 평범하게 회사에 다니고, 월급을 받아 집 평수를 차근차근 늘려가는 걸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상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현 세태를 드러내기 위해 이더리움이라는 색다른 소재를 가져왔다는 것. 그의 말대로 소설엔 시대상이 여실히 담겨 있다. 주인공들은 모두 어릴 적부터 부모의 재정적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살아왔다. 회사에선 ‘공채’(공개채용) 출신이 아니라며 푸대접 받기 일쑤다. 주인공들이 이더리움 투자에 빠지는 것도 회사 생활을 열심히 해도 성공하지 못한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여성 청년’의 현실적인 모습도 담았다. 주인공들은 40, 50대 남성 상사의 눈치를 보며 산다. 삼겹살과 소주로 스트레스를 푸는 남성들과 달리 이들은 커피 전문점의 한구석을 아지트로 삼으며 수다를 떤다. 그는 “의도하진 않았지만 제가 여성이니까 여성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며 “어느 땐 돈을 밝히기도 하고, 어느 땐 돈에 대한 욕망을 스스로 경계하기도 하는 제 모습도 담겼다”고 했다. 그는 가상화폐 열풍이 휘몰아친 대한민국에서 유행하는 은어를 사용해 감칠맛을 더한다. ‘떡상’(시세 급등) ‘존버’(흔들리지 않고 버틴다) ‘김프’(한국 거래소의 가상화폐 가격이 외국 거래소보다 높은 현상) 같은 말로 소설과 현실을 뒤섞는다. 그는 “현실감을 높이기 위해 작품의 배경이 된 2017, 2018년 이더리움의 실제 가격 그래프를 그려놓고 글을 쓰고 고쳤다”며 “독자들이 책을 덮고 나서 ‘좋았다’는 감정이 남는 설탕 같은 소설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할머니, 할머니. 저 이 감독이에요….” 16일 밤 영화 ‘집으로…’(2002년)를 연출한 이정향 감독(57·여)은 영화의 주인공 김을분 할머니와 영상통화를 했다. 김 할머니는 기력이 많이 쇠약해져 수년 전부터 아들과 함께 살다 병원에 입원했지만 눈빛만은 여전했다. 이 감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풀리면 꼭 면회 갈게요. 조금만 더 버티세요”라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17일 새벽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향년 95세. 김 할머니의 빈소에 마련된 영정사진으로 2002년 동아일보와 인터뷰 당시 촬영한 사진이 쓰였다. 김 할머니의 며느리는 “연세가 많으셔서 2년간 병치레를 하시다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18일 통화에서 이 감독은 “며칠 버티시면 다시 건강이 좋아질 수 있다고 했는데…”라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 감독은 “우리들의 할머니가 되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추모했다. ‘집으로…’는 7세 서울 꼬마가 TV도 없는 산골의 외할머니 집에 와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김 할머니는 딸이 맡긴 외손자 상우를 돌보는 77세의 언어장애 할머니 역을 맡았다. 당시 손자 역을 맡은 배우 유승호(28)와 긴밀하게 호흡을 맞춰 큰 감동을 선사했다. 430만 명이 관람하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던 김 할머니는 대종상영화제에서 역대 최고령 신인 여우상 후보에 올랐다. 이후 이 감독은 매해 가을 김 할머니를 모시고 식사를 하며 교류했다. ‘집으로…’ 촬영 후 할머니는 영화에 관심이 많아졌다. 이 감독이 할머니를 만나고 싶어 하는 배우나 스태프를 데리고 갈 때면 “(이 감독은) 남자 친구가 자주 바뀌네”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할머니는 영화를 촬영하실 때도, 그 후에도 항상 친절하고 기품 있게 행동하셨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강동성심병원, 발인은 19일 오전 4시 50분. 02-2152-1360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를 대표했던 영화 ‘집으로…’(2002년)의 주인공 김을분 할머니가 1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김 할머니 유가족은 1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연세가 많으신 탓에 약 2년 간 병치레를 하시다 병원에서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영화를 연출한 이정향 감독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병원에 들어가지 못하고 16일 영상통화로 김 할머니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며 “‘코로나19 풀리면 꼭 면회 가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직접 뵙지도 못해 너무 슬프다”고 울먹였다. ‘집으로…’는 7세 서울 꼬마가 TV도 없는 산골의 외할머니집에 와 살면서 벌어지는 일을 잔잔하게 담은 영화다. 말을 못하고 눈도 침침한 외할머니를 ‘벙어리’라며 함부로 대하던 철없던 손자는 모든 것을 넉넉히 감싸 안는 외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된다. 이 영화에서 김 할머니는 딸이 맡긴 외손자 상우를 돌보는 77세의 언어장애 할머니 역을 맡았다. 당시 손자 역을 맡은 배우 유승호(28)와 자연스레 호흡을 맞춰 큰 감동을 선사했다. 영화는 430만 명이 관람해 크게 흥행했다. 연기 경험이 전혀 없었던 김 할머니는 이 영화로 대종상영화제에서 역대 최고령 신인 여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감독은 쪽진 머리를 하고 허리가 굽었으며 일곱 살짜리가 ‘만만하게’ 볼 수 있도록 체구가 크지 않은 모습을 한 할머니를 찾아 다녔다고 한다.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평생 고향에서 호두 농사를 짓고 있던 김 할머니는 그렇게 이 감독에 의해 캐스팅됐다. 영화의 결말을 몰랐던 할머니는 나중에 손자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서 완전히 감정에 몰입해 서운한 마음에 펑펑 울었다고 한다. 극장에서는 이런 할머니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관객이 많았다. 이 감독은 자랄 때 외할머니와의 정이 각별했다. 영화 마지막에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에게 바칩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것도 생전 외할머니한테 한번도 말하지 못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빈소는 서울 강동성심병원. 발인 19일. 02-2152-1360.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59)의 팬이라면 배우 키키 키린의 얼굴이 익숙할 것이다. 키키는 ‘걸어도 걸어도’(2008년)를 시작으로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년),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년) 등 여섯 편의 고레에다 영화에 출연했다. ‘어느 가족’(2018년)에선 한 가족의 할머니 역할을 맡아 투병 중 열연을 펼쳤다. 이 영화는 제71회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2018년 키키는 75세로 별세했다. 그를 추억하는 이는 여전히 많다. 고레에다도 그중 한 명이다. 고레에다는 키키와 생전에 인터뷰한 뒤 잡지에 연재한 글을 묶어 그의 사후에 책을 냈다. 책엔 일상적으로 키키와 나누었던 대화도 들어있다. 키키에 대한 고레에다의 애정 어린 생각도 곳곳에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은 나에게 이제는 수신되지 않는 ‘연애편지’일 것”이라고 고백한다. 고레에다와 키키에겐 통하는 것이 있었다. 두 사람의 출발점이 영화가 아니라 TV라는 점 때문이다. 키키는 TV 드라마에서 주로 활동했다. 고레에다도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TV 방송 제작사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두 사람이 함께 작업한 작품들은 일상을 주제로 했다. 별것 없는 서사와 평범한 연기로 일상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키키는 “특별한 사건이 없으면 드라마가 아니다, 영화가 아니다, 하는 착각이 드는 건 무서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키키는 고레에다의 작품에서 가족을 챙기는 따뜻한 어머니 역할을 주로 맡았다. 사실 키키는 젊었을 때부터 가식 없고 거침없는 언행으로 유명했다. 함께 작업한 프로듀서와 배우의 불륜을 폭로하기도 했다. 그런 키키의 성격은 고레에다와의 대화에도 묻어난다. 인터뷰 중 키키는 고레에다에게 “(여배우를 고르는 기준에) ‘여자로서’라는 건 있어요?” “(여배우에게) 반하는 경우는?”이라고 물으며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키키는 질문에 답할 때도 말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이 오랫동안 연기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비결은 인품이라고 자랑스레 말한다. “나의 작품을 남기자거나 예술 작품이라거나, 그런 사고방식이 없거든”이라고 연기에 대한 지론도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럼에도 키키가 오랫동안 대중에게 사랑받은 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일상을 재현하는 연기 때문일 것이다. 키키는 감독보다 더 연출가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본다. 그런 키키에게 고레에다는 “함께 있으면 ‘제대로 된 감독이 되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다”며 존경을 표시한다. 키키는 마지막 인터뷰에 앞서 고레에다에게 자신이 중병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한다.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더 이상 고레에다와 만나지 않을 거라고 선언한다. 키키는 “이제 할머니는 잊고 당신은 당신의 시간을 젊은 사람을 위해 써”라며 단호하고 냉정하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그 후 둘은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키키가 세상을 떠난 9월 15일은 고레에다 어머니의 기일이기도 하다. 고레에다는 연애편지의 마지막을 작별인사로 마무리한다. “어머니를 잃고 당신과 만났다는 억지는 옳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잃은 것을 어떻게든 작품으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제 작품에서 어머니 역할을 맡은) 키린 씨를 만날 수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저를 만나줘서 고맙습니다. 안녕.”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지난해 4월 19일 가수 이적(47·사진)이 인스타그램에 영상 하나를 올렸다. 어두운 방 안에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 화질이나 음질이 좋지 않았지만, 인스타그램에 ‘방구석 콘서트’를 처음 올린 이적의 진심은 대중에게 오롯이 전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잃어버린 일상을 그리워하던 이들은 “노랫말에 위로 받았다” “코로나19 시대의 힐링곡”이라고 호평했다. 이 음악의 가사를 바탕으로 지난달 27일 그림책 ‘당연한 것들’을 펴낸 이적은 12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코로나로 잃어버린 일상을 되찾길 바라는 마음에 노래를 만들었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진행 중”이라며 “팬데믹이 빨리 끝나서 이 노래가 ‘옛날 노래’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노래 ‘당연한 것들’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지난해 6월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아역배우들이 이 노래를 부르자 다른 배우들이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됐다. 정식 음원이 발매돼 지난해 11월 나온 6집 앨범에 포함됐다. 노래 가사에 3명의 그림 작가들이 그린 삽화를 더해 그림책을 펴냈다. “노래를 좋아하던 지인들이 노래 가사를 읽었으면 좋겠다며 그림책을 내보라고 제안했어요. 그 말을 듣고서 평소 알던 편집자에게 제안했죠.” 그림책은 출간 전 1쇄 예약 판매가 매진돼 2쇄 인쇄에 들어갔다. 출간 직후 주요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적은 가사 외에도 그림책을 구상하는 데 적극 참여했다. 책은 과거의 주인공이 지금의 주인공에게 편지를 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 아이디어를 이적이 냈다. 한 명이 아닌 3명의 그림책 작가들이 나눠 그림을 그리는 방식도 그의 생각이다. 이렇게 하면 이야기에 보편성을 더할 수 있을 걸로 기대했다. “작품에 대한 결정은 편집자와 제가 함께 내렸어요. 가사만 제가 내고 그림을 다른 분들이 알아서 그려 책을 내는 느낌을 독자에게 드리기는 싫었거든요.” 이적이 그림책을 낸 건 이번이 세 번째다. 2017년 11월 ‘어느 날,’(웅진주니어)에 이어 2018년 11월 ‘기다릴게 기다려 줘’(웅진주니어)를 펴냈다.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책을 좋아했다. 만 11세, 8세인 두 딸이 어렸을 때 그림책을 읽어준 기억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두 딸에게 이번 책을 보여주니 ‘참 예쁘다’며 좋아하더라고요. 요즘은 제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기보단 애들이 제게 책을 추천해줄 정도로 컸어요.” 책 작업 방식도 당연한 것들의 가사처럼 코로나 이전의 일상과는 달랐다. 3명의 그림 작가 중 해외에 거주하는 2명이 코로나19로 입국하지 못했다. 국내에 있는 그림 작가, 편집자와도 거의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 전화나 e메일로 논의했다. “책의 작업 방식마저 ‘언택트’였어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완성본은 만족스러웠다. “작가들 모두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분들이었죠. 음악으로 치면 다른 싱어송라이터와 함께 작업한 기분이랄까요. 의견도 많이 내주었어요.” 이적은 “지금은 픽션과 에세이를 섞은 짧은 글을 써서 책으로 내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그림책을 추가로 낼 구체적인 계획이 아직은 없지만 또 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책 읽는 습관은 어릴 때 생기잖아요. 아이들을 위해 책을 구매하고 싶은 엄마들은 지금이 기회입니다.” 최희 아나운서는 6일 네이버 ‘책방 라이브’에서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0권 세트를 판매하며 이렇게 말했다. 책방 라이브는 온라인 북토크와 실시간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상품을 소개하는 이른바 ‘라이브 커머스’다. 포털에서 라이브를 보다 마음에 드는 책을 곧장 온라인으로 주문할 수 있다. 방송 중 한 시청자가 “320권에 달하는 전집을 집에 보관하기 힘들 것 같다”고 댓글을 달자, 최 아나운서는 전집 부피를 보여주며 “보관하기 어렵지 않다”고 답했다. 구독자 17만 명을 보유한 유명 책 유튜버 김겨울 작가도 출연해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은 피해갈 수 없는 시리즈”라고 거들었다. 이날 방송은 2만6000명이 실시간으로 시청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출판사들이 책방 라이브를 통한 책 판매를 확대하고 있다. 그동안 서점에만 의존한 판매처를 다양화하려는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 유행과 온라인 시장 확대도 영향을 끼쳤다. 허진호 민음사 마케팅부 본부장은 “책 유통 방식과 판매처가 변화하는 상황에 발맞춰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라며 “온라인에서 영향력이 큰 인플루언서를 동원해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김지연 위즈덤하우스 홍보담당자는 “새로운 포맷인 책방 라이브는 독자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줄 수 있다”며 “유통구조의 다각화를 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출판사에도 의미가 있다”고 했다. 책방 라이브는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다. TV홈쇼핑과 비슷한데 주로 스마트폰이나 PC로 영상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소통이 가능한 게 강점이다. 시청자들은 책에 대한 소개를 듣다 궁금증이 생기면 바로 질문하고 답변을 받는다. 특히 책을 쓴 작가가 출연해 소통할 경우 반응이 더 뜨겁다. 위즈덤하우스가 지난달 11일 진행한 책방 라이브엔 심리학 에세이 ‘1일 1페이지,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심리수업 365’를 쓴 정여울 작가가 출연했다. 임경선 작가도 에세이 ‘평범한 결혼생활’(토스트)을 펴낸 뒤 책방 라이브에 출연해 독자들과 소통했다. 라이브 커머스 서비스가 독립 서점이나 독립 출판사의 활로가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있다. 가수 겸 작가인 요조는 자신이 펴낸 산문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을 쇼핑 라이브에서 판매했다. 판매자는 독립 서점인 스토리지북앤필름. 할인 없이 정가(1만4000원)로 책을 팔았다. 하지만 독립 서점을 응원하는 시청자 4000여 명이 지켜보며 응원했다. 책방 라이브를 담당하는 이은영 네이버 책·문화 리더는 “책방 라이브를 통해 작가 등 다양한 출판계 전문가와 독자들이 생생하게 소통하도록 할 계획”이라며 “독립 출판사도 독자와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라이브 커머스 ::소비자와 실시간으로 채팅하면서 상품을 소개하는 스트리밍 방송. 모바일 소통에 특화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주된 고객으로 삼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고전(古典)은 참 넘기 힘든 산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두꺼운 고전을 읽다가도 스르르 잠이 든다. 정신이 멀쩡할 때도 제대로 읽기가 쉽지 않다. 눈으로 활자를 따라가면서도 머리에는 딴생각이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산을 넘었을 땐 일종의 희열이 온다. 책을 덮고 나선 여운이 남아 잠에 못 들기 일쑤다. 어느 날 길을 걷다 고전에서 읽었던 문장이 생각나기도 한다. 이 책은 고전 문학 작품을 쉽고 친절하게 소개한다. 특이한 건 작가가 소개를 글로 썼을 뿐 아니라 만화로도 그렸다는 것. 2019년 영화를 소개하는 만화책 ‘부기영화’(씨큐브)가 출간된 것처럼 영화를 소개한 만화책은 있지만 문학 작품을 만화로 소개한 책은 한국에서 처음이다. 재미없게 느껴지는 고전의 문턱을 유머와 ‘드립’(애드리브의 준말)을 통해 낮추겠다는 저자의 포부에 이끌려 책을 열었다. 일단 술술 읽힌다. 저자가 스스로를 모델로 삼아 만들었다는 만화 속 캐릭터는 고전 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한다. 각 고전을 읽게 된 계기와 과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영국 작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가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 ‘멋진 신세계’를 읽고 나서 허무함과 혼란에 빠진다.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중세 유럽 수도원을 배경으로 쓴 소설 ‘장미의 이름’은 이해하기 힘들어서 반년에 걸쳐 읽는다. 고전을 읽는 데 애를 먹고, 읽고 나서도 여러 감정을 느끼는 모습에 마음이 동한다. 고전이 쓰이게 된 배경과 의미도 충실히 전달한다. 영국 작가 조지 오웰(1903∼1950)이 감시 사회를 배경으로 쓴 소설 ‘1984’가 1940년대에 쓰인 의미를 냉전시대와 엮어 설명한다. 영국 작가 조너선 스위프트(1667∼1745)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담긴 당대 풍자의 의미도 짚어준다. 제목에서 밝힌 대로 리뷰의 역할은 충실히 수행하는 셈이다. 저자가 20대 여성이라는 점도 의미 있다. 번외편으로 영국 작가 조앤 K 롤링(56)의 소설 ‘해리포터’를 다룬 것도 저자의 특성이 드러나는 지점이다. 다만 다루는 작품의 절반 이상이 영미권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은 아쉽다. 기존에는 보기 힘들었던 제3국가의 문학 작품으로 고전의 범위를 넓혀가는 최근 세계문학전집의 흐름은 반영이 안 된 것 같다. 유수의 문학 평론가들의 평론집과 해설의 깊이를 비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색다른 해석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 있는 건 문학을 쉽게 설명하려는 태도 때문이다. 적지 않은 고전이 쓰일 때만 해도 대중 소설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복잡한 해설이 덧붙여졌을 뿐이다. 문학 평론이라는 말이 낯설어진 시대, 독자에게 필요한 건 무거움보단 가벼움일지도 모른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기후변화 위기라는 말은 이제 낯설지 않다. 기후변화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외치는 책도 많다. 그러나 일회용품을 많이 써서 환경이 파괴되면 기후변화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도 종이컵을 쓰는 게 사람의 모습이다. 구호는 마음은 움직일지언정 행동을 바꾸게 만들진 못한다. 어쩌면 그 역할을 소설이 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기후변화에 대해 쓴 10편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간의 감정이다. “적어도 내게는 잊을 수 없는 날들이 모두 날씨와 연관돼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감정은 기후와 연관이 있기 때문. 날씨가 좋을 때 사람들은 기쁨을 느낀다. 습한 날엔 기분이 나빠질 확률이 높다. 기후변화로 인해 사람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그 감정은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까. ‘하이 피버 프로젝트’에는 돔시티가 나온다. 기후변화로 사람들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세상이 뜨겁고 건조해진 시대에 고안된 ‘기후 안전 도시’다. 돔시티 안에선 쾌적한 생활을 즐길 수 있다. 문제는 모든 사람이 돔시티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 돔시티 밖으로 쫓겨난 추방자들은 분노를 느낀다. 돔시티를 전복하려 한다. 기후변화는 계급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굴과 탑’은 해수면이 상승한 세계에서 안전한 피난처를 구한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의 처지를 비교한다. 폭염이 심해질수록 사람들이 난폭해지는 모습을 다룬 ‘지구에 커튼을 쳐줄게’에서 더 분노하는 이들은 가지지 못한 자다. 저자는 기후변화를 통해 윤리적 문제를 건드린다. 책을 덮을 때면 인간의 종말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뜨겁게 달아오른 지구에서 사는 소설 속 인간의 모습을 바라보니 어느새 오싹한 기분이 든다. 종이컵을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5일 에세이 ‘나는 식물 키우며 산다’(가지)를 펴낸 정수진 작가(34·여·사진)는 ‘식물 덕후’다. 이 책은 식물에 대한 예찬과 더불어 식물을 잘 키우는 방법을 담았다. 정 작가는 미술작가로 일하다 인스타그램에서 다른 사람들이 식물을 키우는 모습을 본 뒤 빠져들었다. 식물을 사랑해 2015년 8월부터 4년 동안 서울 마포구에서 꽃가게 ‘식물성’을 운영했다. 경영 악화로 가게 문을 닫았지만 여전히 식물에 무한 애정을 쏟는다. 최근 인스타그램에 ‘식물 인테리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글이 54만 건이 넘을 정도로 식물에 대한 관심이 높다. 5일 정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요즘 사람들이 왜 식물 키우기에 빠져들고 있는지, 초보자가 식물을 키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다. ―식물 키우기를 사진으로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리는 이들이 많다. “예쁜 식물이 인테리어나 장식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식물과 인테리어를 합성한 신조어 ‘플랜테리어’라는 용어가 유행할 정도로 식물은 인테리어 소품으로 자리 잡았다.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찍어 올리기도 좋고, 반려동물보다 키우기가 쉽기 때문인 것 같다.” ―SNS에서 선인장 같은 다육식물(건조기후에서 살아남기 위해 줄기나 잎에 수분을 저장할 수 있는 식물)이 특히 인기다. “1인 가구가 늘어난 데 따른 현상으로 보인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은 직장인들이 물을 자주 주거나 신경을 많이 쓰지 않아도 되는 다육식물을 선호하는 것 같다.” ―식물을 키우기 위해 준비물이 많이 필요한가. “장비는 중요하지 않다. 작은 화분에 흙을 퍼 담을 땐 5000원 이하의 플라스틱 숟가락 정도면 충분하다. 그보다 더 작은 화분에 담을 땐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주는 작은 숟가락도 유용하다. 식물에 물을 줄 땐 2L짜리 생수 페트병을 이용해도 된다. 식물 키우기는 큰 준비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취미다.” ―그럼에도 유용한 도구가 있다면 추천해 달라. “질척이는 흙을 다룰 땐 맨손보단 라텍스 장갑을 끼는 게 좋다. 앞치마를 챙겨 입으면 옷이 더러워지는 걸 막을 수 있다. 화분에 물을 주는 물조리개를 사고 싶다면 예쁜 디자인보단 한 손으로 들기에 편한지 살펴본 뒤 결정하는 것이 좋다. 겨울철에는 잎이 마르지 않도록 물을 뿌릴 때 쓰는 압축 분무기를 써볼 만하다. 식물과 흙을 분리하고 먼지를 터는 붓도 유용하다.” ―식물을 잘 키우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건 식물에 대한 애정이다. 부지런하게 돌볼수록 잘 자라는 게 식물이다. 자신에게 맞는 식물이 무엇인지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 한철 아름답게 빛나는 식물을 찾는다면 꽃을 키우는 게 좋다. 꽃이 빨리 시드는 게 마음에 걸리면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식물을 기르는 것을 추천한다.” ―식물은 좋아하는데 키우기가 부담스럽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식물원을 찾으면 된다.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식물원은 규모가 크고 식물 이름표 관리가 잘돼 있어 식물과 가까워지기 좋다. 서울 구로구 푸른수목원, 충남 태안군 천리포수목원은 산책하면서 식물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곳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다들 그림은 완벽히 준비된 상황에서 그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우리가 무섭다고 생각하는 일들, 막상 해보면 상상보다 무섭지 않아요.” 그림 유튜버 이연(본명 이연수·29·여)은 2019년 1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10가지 방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들이 지니면 좋은 마음가짐을 알려준다. 그러면서 자신이 그림을 그리다 겪은 힘든 기억을 털어놓는다. 이 영상은 91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 구독자는 “전 올해 은퇴한 61세 할머니다. 하고 싶었던 그림을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댓글을 달았다. 다른 구독자는 “미대 입시를 오래 준비하다 보니 그림이 싫어졌는데 큰 위로를 받고 간다”고 썼다. 지난달 24일 에세이 ‘겁내지 않고 그림 그리는 법’(미술문화)을 펴낸 이연은 5일 서울 성북구 작업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림 그리기를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유튜브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취미로 도전할 수 있도록 미술의 문턱을 낮추고 싶다는 것. 그는 “어릴 적 학창 시절엔 모두가 빈 종이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며 “낙서를 한다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면 어른이 된 뒤에도 언제든 그림을 즐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대학에서 조형예술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이후 여러 기업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마지막 직장은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스타벅스 텀블러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를 그렸다. 2018년 11월 그림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지난해부턴 직장을 관두고 유튜브 제작에만 몰두하고 있다. 채널을 개설한 지 2년 5개월이 지난 현재 그의 유튜브 구독자는 54만 명에 이른다. 그의 채널이 인기를 끄는 건 영상에서 전하는 위로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그림을 그리며 겪은 일들을 솔직히 이야기한다.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는 이들을 질책하지 않고 응원한다. 구독자들은 “그림 배우러 왔다가 인생을 배우고 간다” “다독여주는 말이 너무 좋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10년 넘게 그림을 공부하며 먹고사는 동안 느낀 고민을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뿐”이라며 “입시 준비를 하다 미술이 싫어진 분들이나 나이가 들어 미술을 처음 시작하려는 분들이 많이 공감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림 그리는 방법을 쉽게 가르쳐주는 점도 인기의 이유다. 그는 유튜브에서 복잡한 풍경을 단순화해서 그리는 법이나, 얼굴과 표정을 간단히 묘사하는 노하우를 알려준다. 대상을 세밀히 묘사하거나, 작품 의도에 대한 해설이 필요한 그림처럼 남들이 따라 하기 어려운 그림은 그리지 않는다. 대부분 사람이나 풍경을 간단히 소묘로 그린다. 사용하는 도구도 스프링 노트, 연필, 펜 정도다. 10여 분 만에 대중이 그리고 싶은 그림을 뚝딱 그려낸다. 아이패드로 그림 그리는 법도 설명해주는 덕에 10, 20대 팬도 적지 않다. 그의 영상은 화려하지 않다. 오직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자극적인 편집도 없다. 이런 그를 1990년대 TV에서 인기를 끈 미국 화가 밥 로스(1942∼1995)와 비교하는 구독자들도 있다. ‘밥 아저씨’처럼 대중이 그림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것. 그는 “나이가 많든 적든 연습하면 누구나 그릴 수 있는 ‘전체 이용가’ 그림을 가르치는 미술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한국신문협회(회장 홍준호),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회장 박홍기), 한국기자협회(회장 김동훈)가 공동으로 주최한 제65회 신문의 날 기념대회가 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홍준호 신문협회장은 “코로나19 등으로 혼돈과 불안이 장기화하면서 신뢰할 수 있는 뉴스에 대한 갈증이 커지자 정통 저널리즘의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다”며 “신문이야말로 ‘진짜 뉴스’의 심장부이자 발신기지”라고 말했다. 홍 회장은 “최근 우리 사회에서 가짜 뉴스를 잡는다는 명분 아래 엉뚱하게 정통 언론을 법과 제도로 옥죄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개탄스럽고 우려된다”며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편집권을 제한하려는 모든 반민주적 시도와 조치에 대해 힘을 모아 단호히 맞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문이 저널리즘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뉴스 저작물의 가치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포털 주도의 뉴스 유통 구조도 언론사 중심으로 재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축사에서 “신문인을 ‘진실 앞으로 국민을 인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며 “언론의 핵심인 신문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했다. 이날 행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규모를 축소해 개최했다. 표완수 한국언론진흥재단 이사장, 류한호 한국신문상 심사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신문의 날 표어 및 한국신문상 시상식도 함께 열렸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017년 아들을 낳았다. 백일잔치를 8일 앞두고 병이 찾아왔다. 아들의 눈에 악마가 보였다. 자신 곁에 악령이 따라다닌다는 망상과 환각 증상이 시작됐다. 남편의 도움으로 병원 응급실로 겨우 갔다. 병원에 도착했으나 증상은 멈추지 않았다. 비명을 질렀다. 입고 있던 옷을 스스로 찢었다. 나흘간 한숨도 자지 못했다. 이 책은 산후정신증을 앓은 저자가 정신병원에 머물며 기록한 에세이다. 산후정신증은 출산 여성의 0.1∼2%만이 겪는 병이다. 극도의 수면장애, 망상, 정서불안을 앓는다. 일부는 출산이나 결혼 자체를 부인한다. 심할 경우 아이를 해치기까지 한다. 일시적으로 슬프거나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산후우울증보다 훨씬 심각하다. 저자는 왜 자신이 산후정신증에 걸렸는지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회상하면서.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강압적이었다. 분노가 폭발하면 이성을 잃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분노는 유달리 저자의 남동생인 테디에게 향했다. 아들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아버지가 그렇게 행동한 것은 아닐까. 그는 “(아버지는) 테디가 아들이기 때문에 기대를 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고민한다. 성인이 된 뒤엔 드류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드류는 한마디로 나쁜 남자였다. 화가 나면 저자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벨트로 때리기도 했다. 폭력의 이유는 다양했다. 잔소리가 많다, 지나치게 대든다. 그는 ‘매 맞는 여자’로 살았다. 광대뼈에 금이 갈 정도로 맞은 날 그는 겨우 드류에게서 도망쳤다. 시간이 흐른 뒤 현재의 남편 제임스를 만났다. 제임스는 좋은 남자였다. 그와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다. 병원에서 아이가 아들이라는 사실을 들었다. 드류가 생각났다. 이 아이가 혹시 폭력적인 남성으로 변해가면 어떻게 할까. 그때부터 정신적으로 힘들어한다. 아들을 낳자 결국 아들의 눈에 악마가 보인다는 망상에 빠진다. 저자는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 책은 지난해 3월 미국과 영국에서 영어로 먼저 출간됐다. 그는 가위 눌린 경험을 말하며 “한국인은 잠에서 깨어날 때 몸을 움직이지 못하거나, 숨을 쉬기 어렵거나, 소리를 지를 수 없으면 귀신이 가슴 위에 앉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고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연달아 세 딸을 낳은 뒤 넷째는 아들이길 바랐던 할머니가 또 딸을 낳자 넷째의 이름을 ‘끝남’이라고 지었던 일을 쓰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그는 과거 한국인들의 남아선호사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그는 산후정신증의 원인을 명확히 밝히진 못한다. 자신의 경험을 고백할 뿐이다. 어쩌면 아들에게 지나치게 기대하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그를 힘들게 했을 수도 있다. 폭력적인 남자친구에 대한 고통이 그를 아프게 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의 남아선호사상이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산후정신증은 아이를 지닌 모든 여성이 겪을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건 원인보다 치유의 과정일 수도 있다. 그의 남편은 그의 곁을 끝까지 지켰다. 망가진 그의 삶을 되돌린 건 곁에 있는 남편이었다. 그는 책 말미 남편 제임스를 향해 감사의 마음을 고백한다. “당신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나의 닻이다. 내 곁을 지켜주고, 병원에서 나와 춤을 춰주고, 내가 당신의 사랑 안에서 언제나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준 것에 감사한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휴…. 아들아, 우리 ‘샘터’가 어디 간 거니?” 최근 김성구 샘터 대표(61)가 새롭게 단장한 월간지 ‘샘터’를 건네자 어머니 이용자 여사(89)는 한숨을 쉬었다. 이 여사는 샘터를 처음 만든 고(故) 김재순 전 국회의장의 부인으로 51년간 샘터를 곁에서 지켜본 인물. 표지와 구성이 기존과 완전히 달라진 샘터를 보고 깜짝 놀란 것이다. 이 여사는 샘터를 며칠 만에 다 읽었다. 그러고선 아들인 김 대표에게 아무런 불만도 말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어머니가 새로운 샘터도 기존 샘터의 정신을 계승했다는 점을 알아봐 주신 것 같다”며 “샘터에 오랫동안 글을 쓰셨던 이해인 수녀님도 ‘예쁜 샘터’로 다시 태어났다며 축하해 주셨다”고 말했다. 국내 최장수 문화 교양 월간지 샘터가 창간 51주년 기념호인 4월호를 3월 23일 펴내며 새 단장을 했다. 샘터는 김 전 의장이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모토로 1970년 4월 창간한 ‘국민 잡지’다. 피천득 시인,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 등을 필진으로 두고 다채로운 글을 실어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 초만 해도 발행부수가 50만 부에 달했다. 그러나 잡지 시장 침체로 수요가 줄면서 최근 발행부수는 3만 부로 떨어졌다. 2019년엔 폐간 위기에 내몰렸으나 독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기사회생했다. 한 30년 독자는 “꼭 샘터를 발행해 달라”는 당부와 함께 사무실에 1000만 원짜리 수표를 놓고 가기도 했다. 가장 눈에 띄는 샘터의 변화는 표지 제호다. 1970년 4월 창간호 당시 서예가 손재형 선생이 붓글씨로 쓴 이래로 50년간 사용한 ‘샘터’ 제호가 사라졌다. 그 대신 영문 ‘SAMTOH’를 하단에 배치했다. 이종원 샘터 편집장은 “샘터의 상징 같은 제호를 바꾸기까지 고민이 많았다”며 “시대가 변한 만큼 젊은 세대들이 좋아할 수 있는 서체로 제호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과거 표지에 ‘○○년 ○월호’식으로 호수를 표시하는 것도 없앴다. 언제 구매해도 좋은 단행본의 성격을 가미하기 위해서다. 기존 샘터가 대학교수나 문인들의 에세이를 담았다면 새 샘터는 일반인의 취향에 초점을 맞춘 글을 싣는다. 4월호에선 ‘취향대로 살고 있나요?’를 주제로 음식, 반려동물 등에 대해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취향을 반영해 이전보다 사진을 더 많이 실었다. 하지만 가격은 바뀌지 않았다. 112쪽인 4월호 가격은 직전 호와 같은 3500원이다. “누구나 사서 읽을 수 있도록 샘터는 항상 담배 한 갑(현재 국산 담배 4500원)보다 싸야 한다”는 김 전 의장의 생전 원칙에 따른 것이다. 변화에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선 바꿔야 했다. 김 대표는 30대 편집자들을 주축으로 샘터를 바꾸라고만 부탁한 뒤 편집 방향에 대해선 일절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혹 잘못 만들어질까 밤잠을 설쳤지만 새 샘터를 받아들곤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단다. 김 대표는 “오랫동안 샘터를 만든 내 노하우가 갇혀 있는 생각이고 오히려 변화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 전혀 참견하지 않았다”며 “이제 새로운 샘터의 주인공들을 받아들이고 싶다”고 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덕수궁 석조전이 품은 역사적 의미와 문화재적 가치를 예술 공연으로 소개하는 온라인 해설 동영상이 공개된다. 석조전은 덕수궁 안에 지어진 최초의 서양식 석조 건물이다. 문화재청 덕수궁관리소는 ‘예술로 들려주는 전각 이야기―석조전’ 동영상을 31일 유튜브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고 30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그동안 궁궐 전각을 공연 무대로 활용한 경우는 많았지만 이번 영상은 전각 하나하나에 깃든 역사를 다양한 예술행위로 표현해 ‘움직이는 문화재 해설판’ 기능을 한다”고 설명했다. 15분 분량의 이 영상은 음악과 각종 사진이 곁들여진다. 석조전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현대무용과 콘트라베이스 연주로 표현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주요 출판사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에 맞춰 ‘북클럽’ 운영 방식을 바꾸고 있다. 북클럽은 일정액을 지불한 회원들에게 자사(自社) 책을 주고, 강연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멤버십 서비스다. 문학동네는 29일부터 모집 중인 북클럽 4기 회원들을 위해 온라인 강연회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오프라인 강연회를 준비했으나 코로나19가 심각해져 급하게 온라인 강연회로 바꾼 바 있다. 올해는 처음부터 언택트 상황에 맞게 강연회를 준비하고, 온라인 강연에 적합한 저자들을 섭외하기로 했다. 또 저자, 번역가, 편집자, 마케터와 함께 책을 끝까지 읽도록 서로 독려하는 온라인 완독 챌린지 ‘독파’를 시작할 계획이다. 함유지 문학동네 기획마케팅부 과장은 “코로나 때문에 오프라인 강연을 열지 못하는 단점도 있지만 책을 읽는 이들이 늘었다는 장점도 있다”며 “코로나 장기화로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올해 북클럽 가입자 수가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2011년 국내 단행본 출판사 중 처음으로 북클럽을 시작한 민음사는 다음 달 시작하는 북클럽 회원들을 위해 온라인 책 판매 행사를 준비했다. 기존 세계문학전집 등을 할인받아 살 수 있도록 회원들을 초대해 열던 오프라인 행사를 온라인으로 바꾼 것. 조아란 민음사 마케팅부 차장은 “기존 오프라인 행사는 장소와 시간 제약 탓에 참여하지 못한 회원들이 많았다”며 “온라인 행사로 바꿔 진행하면서 전국 각지의 북클럽 회원들이 함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근엔 작가들도 온라인 북클럽을 속속 만들고 있다. 코로나로 오프라인 강연이 줄어든 상황을 극복하고 독자들과의 소통을 늘리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작가 김영하는 지난해 12월부터 북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북클럽은 인스타그램 ‘라방’(라이브방송)으로 진행한다. 약 1시간 동안 진행하는 방송에서 작가는 왜 이 책을 추천하는지 설명하고, 실시간으로 독자들의 질문에 답한다. 참가비가 없고 작가와 직접 소통할 수 있어 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김영하가 올 1월 진행한 북클럽 방송의 동시 접속자는 3000명이 넘었다. 김영하가 1, 2월 라방에서 추천한 철학서 ‘자기 결정’(은행나무)과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는 모두 베스트셀러가 됐다. 작가 김금희도 지난달부터 인스타그램에서 북클럽 ‘책보람’을 진행하고 있다. 김금희가 읽을 책을 정하면 팬들이 독후감을 쓴 뒤 해시태그를 달아 자신의 감상을 밝힌다. 그의 인스타그램은 팔로어가 1만 명이 넘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김금희는 “코로나로 자주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언택트에서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며 “앞으로도 제가 완전 좋아하는 책들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출판계는 코로나19에도 북클럽의 인기는 줄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출판평론가인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북클럽은 수없이 많이 쏟아지는 책 중에 좋은 책을 골라주는 ‘선정’의 역할과 작가와 독자, 독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연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며 “북클럽처럼 출판의 영역을 확장한 출판사와 작가들이 더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아시아계 혐오와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입장문을 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총격으로 한국계 등 아시아 여성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미국에서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인종 증오 범죄 우려가 높아진 데 따른 것이다. BTS는 30일 공식 트위터에 한글과 영문으로 각각 작성한 입장문을 올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 슬픔과 함께 진심으로 분노를 느낀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은 아시안으로서 저희의 정체성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며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한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한다. 나, 당신, 우리 모두는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함께하겠다”고 했다. “저희 목소리를 어떻게 전할지 결정하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며 “그러나 결국 우리가 전달해야 할 메시지는 분명하다”고 했다. BTS는 그들이 겪은 인종차별과 그로 인한 고통도 털어놓았다. BTS는 “저희는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기억이 있다”며 “길을 걷다 아무 이유 없이 욕을 듣고 외모를 비하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아시안이 왜 영어를 하느냐는 말도 들어봤다”고 했다. BTS는 “저희의 경험은 바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비하면 아주 사소하지만 그때 겪은 일들은 저희를 위축시켰고 자존감을 앗아가기도 했다”면서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증오와 폭력의 대상이 된다는 건 저희가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BTS는 ‘#StopAsianHate’(아시아인에 대한 증오를 멈추라), ‘#StopAAPIHate’(아시아태평양계에 대한 증오를 멈추라)라는 해시태그도 달았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