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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잘 어울리는 찰스 디킨스의 대표작 ‘위대한 유산’이 무대에 오른다. 3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시작하는 연극 ‘위대한 유산’에는 핍 역을 맡은 김석훈을 비롯해 오광록(매그위치) 길해연(해비셤) 조희봉(재거스) 등이 출연한다. 이 작품은 크리스마스이브에 탈출한 죄수에게 선행을 베푼 시골 소년 핍이 이후 큰 보답을 받게 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물질에 대한 집착,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 사랑에 대한 갈망 등을 통해 인간과 인생을 깊이 있게 성찰한다. 최용훈 연출은 “원작은 사실적인 묘사가 많은 건조한 작품이지만 이번 무대는 영국적인 냉랭함보다는 한국적인 정서를 반영해 인간에 대한 따뜻함과 희망을 담아내려 했다”고 말했다. 김석훈은 5년 만에 연극 무대에 선다. 선한 이미지가 강한 배우로 시골 청년의 순박한 모습과 세련된 신사의 모습을 둘 다 선명하게 잘 표현해 낼 것이라고 생각돼 캐스팅했다는 것이 최 연출의 말이다. 오광록 길해연 조희봉 등은 개성 강한 연기로 무대에 힘을 불어넣을 예정이다. 각색을 맡은 김은성 작가는 “디킨스가 던졌던 ‘우리가 지켜야 할 위대한 유산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음미하며 작업했다”고 했다. 28일까지. 2만∼5만 원. 1644-2003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마지막 수요일인 26일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이날 연극 ‘월남스키부대’는 4만 원인 티켓을 50% 할인해준다. 연극 제목만 보고도 어떤 내용인지 대략 짐작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월남스키부대는 허풍의 대명사 아니던가. 주인공 김 노인은 입만 열면 월남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그의 아들은 영화배우 지망생으로 집안 살림에는 도무지 보탬이 되지 않는다. 며느리는 점점 지쳐간다. 어느 날 이들 집에 들어온 어설픈 도둑은 김 노인에게 붙들리고 점점 김 노인의 이야기에 빠져 들어간다. 능청스러운 김 노인(이한위 서현철 심원철), 어수룩한 도둑(손종범 진태이), 대책 없는 아들(최재원 이석) 등을 맡은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작품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허무맹랑한 김 노인의 이야기에 도둑이 침입한 후 갈수록 꼬여가는 상황이 웃음을 자아낸다. 김 노인이 간직했던 비밀이 밝혀지면서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웃음으로 몰고 가다 마지막에 감동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전형적인 한국식 코미디물의 공식을 따랐다. 고엽제 피해, 월남 파병 군인의 희생 등도 짜임새 있게 녹여냈다. 2012년 지방에서 공연돼 입소문을 탔고, 올해 서울 대학로에 입성했다. 영화 판권도 팔린 상태다. ‘7번방의 선물’ ‘변호인’ ‘숨바꼭질’ ‘신세계’ 등으로 영화계 큰손으로 떠오른 엔터테인먼트 기업 ‘뉴’의 연극 진출작이다. 뉴는 지난해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디셈버: 끝나지 않은 노래’를 선보였다. 2015년 1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 3관. 4만 원. 1544-1555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 여자 혹은 한 남자가 있다. 여장 남자인 샤로테는 동베를린 출신으로, 나치 시대와 동독 사회주의 체제를 겪은 인물이다. 작가 더그는 샤로테의 인생을 연극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인터뷰하고, 잊혀졌던 역사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다음 달 2일 시작하는 연극 ‘나는 나의 아내다’는 극적인 삶을 살았던 실제 인물을 소재로 만든 1인 35역의 모노드라마다. 샤로테는 자신과 어머니를 핍박하는 나치당원 아버지를 살해하고 소년원에 수감된다. 소년원은 러시아군의 폭격을 받고 샤로테는 이를 틈타 탈옥한다. 1890년대 생산한 축음기, 시계, 가구를 수집해 만든 그의 박물관 지하는 동성애자들의 비밀 아지트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반전을 거듭하는 그의 인생이 다큐멘터리 같은 구성을 통해 펼쳐지면서 개인에게 드리운 역사성을 짚어낸다. 10대부터 70대까지를 연기하고, 홀로 두 시간을 끌고 가야 하는 만큼 배우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작품이다. 언어 연기는 물론이고 신체 연기도 뛰어난 지현준이 단독으로 무대에 올라 온몸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변신한다. 지현준은 이 작품으로 2013년 동아연극상 유인촌신인연기상, 2013년 대한민국 연극대상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독특한 몸의 사용과 실험적인 무대로 알려진 강량원이 연출했다. 지난해 첫 공연에 비해 35명의 캐릭터를 더욱 또렷하게 구축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강량원은 “어느 곳에 속하길 간절히 원했지만 평생 내쳐졌던 한 사람을 통해 인정하고 보듬어 안기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했다. 12월 2∼27일 서울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3만 원. 1544-1555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탈리아 밀라노 인근 시골 동네에서 열린 댄스 파티. 우아하면서도 관능적인 스텝을 밟으며 춤추는 남녀 한 쌍이 모든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남자는 몇 년 전까지 인근 성당의 신부였다. 우연한 계기로 마을 축제에서 왈츠를 추게 된 신부는 다음 날 성당에 면직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 후 사람들의 혼을 쏙 빼놓는 댄스 스타가 됐다. 일본 여성인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30여 년간 살면서 겪은 일상생활과 현지 사람들과의 인연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세상 어디나 사람 사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애정이 담겨 있다. 댄스 스타가 된 신부에 대해서도 사람을 돕고 구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여긴다. 특유의 호기심으로 선술집에서 만난 경찰에게 밀라노 암흑가에 대한 정보를 듣고 그곳을 혼자 취재하기도 한다. 친구의 잃어버린 개를 찾으며 벌어진 소동, 오랜 꿈이었던 배를 마련했지만 끝내 마지막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남성 등 때론 유쾌하고 때론 묵직한 에피소드가 색색의 모자이크를 이룬다. 이탈리아에서의 삶을 환상적으로만 써 내려가지 않은 것이 매력이다. 화장하지 않은 맨얼굴의 이탈리아를 만나는 기분이다. 제59회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과 제27회 고단샤 에세이상을 사상 최초로 동시 수상했다. 저자의 두 번째 이탈리아 에세이인 ‘밀라노의 태양 시칠리아의 달’은 전작에 소개했던 인물들의 근황이 여럿 소개돼 반가움을 더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안중근 의사 서거 105주년을 기념해 안 의사의 삶을 조명한 연극 ‘나는 너다’가 27일 막이 오른다. 세 쌍둥이 아빠로 방송 육아프로그램을 통해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송일국이 안 의사와 아들 안준생 등 1인 2역을 단독으로 맡았다. 2010년 초연돼 올해 세 번째로 공연된다. 송일국은 초연 때부터 계속 안 의사와 준생을 연기했다. 윤석화 연출로 박정자, 예수정, 배해선, 한명구, 원근희 등 베테랑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선다. 배우들과 제작진은 안 의사가 항일 운동을 벌였던 중국 유적지를 직접 답사하며 작품을 준비했다. 작품은 안 의사를 영웅으로만 그리지 않고 아버지이자 아들, 남편인 한 인간의 고뇌도 함께 짚어낸다. 친일파, 변절자로 손가락질 받는 준생을 통해 영웅의 가족이 겪어야 했던 빛과 그림자를 또렷하게 비춘다. “왜 무엇 때문에 이토를 저격했느냐”고 절규하는 준생에게 안 의사가 “너, 너를 위해서”라고 답하는 장면은 큰 울림을 준다. 영웅의 가족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만든 우리의 모습도 돌아보게 한다. 짜임새 있는 구성과 밀도 높은 배우들의 연기, 은유적인 무대 장치로 초연 때부터 호평을 받았다. 11월 27일∼12월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5만∼10만 원. 1544-1555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국내 최대 규모 연극제인 서울연극제가 내년에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학로예술극장을 사용하는 대관 심의에서 탈락해 논란이 일고 있다. 1977년 시작된 서울연극제는 5회부터 올해까지 30여 년간 줄곧 아르코예술극장(옛 문예회관)을 중심으로 개최돼 왔다. 연극제는 18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연극 탄압에 대한 성명서’를 내고 “어떠한 협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탈락 사유에 대한 설명도 없이 대관 심사에서 탈락시킨 것은 서울연극제의 35년 전통을 순식간에 말살하는 처사”라며 강력 반발했다. 연극제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서울연극제 대관 신청의 탈락 사유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재심의할 것과 문화체육관광부와 감사원의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의 반(反)문화융성적 행정에 대한 즉각적인 조사를 촉구했다. 올해 제35회 서울연극제는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소극장,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소극장에서 열렸다. 대관 심의를 맡은 곳은 문예위 산하 한국공연예술센터(한팩)로 심의 결과는 14일 발표됐다. 연극제는 내년에도 이 4개 공연장 대관을 신청했지만 단 한 군데도 선정되지 못했다. 서울연극제는 아직까지 탈락 사유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박장렬 서울연극제 집행위원장은 “14일 유인화 한국공연예술센터장을 만났지만 ‘최종 결재권자는 권영빈 문예위원장’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권 위원장을 만나려 했지만 이번엔 ‘유 센터장과 이야기하라’는 이야기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팩은 대관 심사를 강화한 결과 서울연극제가 탈락했다는 입장이다. 유 센터장은 18일 “올해 5월 문예위와 한팩이 통합되면서 대관 운영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기로 했다. 서울연극제는 공연할 작품과 연출가 등에 대한 기본 자료조차 내지 않아 심의 근거가 될 내용이 불충분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연극제는 매년 제출하던 방식대로 대관 신청 자료를 냈다는 입장이다. 박 집행위원장은 “심의가 강화돼 작품에 대한 자료가 필요하면 보완해서 내라고 언질이라도 해줄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런 말도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5월 세월호 성금 모금을 둘러싼 서울연극제와 문화체육관광부, 한팩이 빚어온 갈등이 대관 탈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공연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연극제 중에 세월호 성금 모금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방침에도 불구하고 모금이 진행돼 괘씸죄로 대관심사에서 탈락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고 했다. 공연이 끝난 후 공연장 인근에서 모금이 진행돼 한팩 현장 직원들과 충돌이 빚어지기도 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미국 고교 농구부 선수였던 동창 4명이 그들을 가르쳤던 농구부 감독(박용수)의 집에 모여 20년 전 우승을 추억한다. 이들은 친구이자 현 시장인 조지(김동완)의 재선 전략을 세우지만 곧 자신만 살기 위한 몸부림을 펼친다. 연극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은 미국 배우이자 극작가인 제이슨 밀러의 작품으로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이다. 극 중 중년의 동창들 사이에 우정이란 없다. 사업가 필(김태훈)은 조지의 경쟁자가 당선 가능성이 높다며 그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하려 하고, 중학교 교장 제임스(이종무)는 자신이 시장 후보가 되겠다고 나선다. 급기야 필과 조지 아내의 불륜 사실이 폭로된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컷들을 연기하는 다섯 남자 배우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달군다. 감독은 “지는 것은 죄악이다. 오직 이겨라!”라고 제자들을 몰아붙인다. 이들이 이기려 발악할수록 처연함은 짙어진다. 이들에게 이기는 것은 그저 살아남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 시대 가장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유일한 자유인이었던 톰(박완규)이 떠났다 결국 돌아오는 것은 현실을 조롱하더라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극단의 분열로 질주하던 이들을 한순간에 결집시키는 것은 감독이 튼 고교 농구 결승전 마지막 10초의 중계방송이다. 승리라는 목표 아래 모든 갈등과 증오는 우스꽝스럽게도 눈 녹듯 사라진다. 목표를 향해 마구 내달리게 만드는 사회와 피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질주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냈다. 채승훈 연출, 23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88-5966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그 거짓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그런 바람은 없나요?”(우현주·로나 역) “나 스스로 내 가정의 행복과 사회적 위치를 포기하란 말이오?”(박지일·베르니크 역) 14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연습실. 19일 막이 오르는 연극 ‘사회의 기둥들’ 연습 현장은 팽팽하면서도 꽉 찬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장면마다 사실적인 이야기가 빠른 속도로 진행돼 금방 극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김광보 연출이 연습 중간에 “붕붕 떠가는 느낌이에요” “너무 조였어요. 숨통을 틔워주세요”라고 지적했다. 다시 연기하는 배우들에게서는 변화가 즉각 느껴졌다. 국내 초연되는 헨리크 입센의 ‘사회의 기둥들’은 노르웨이 소도시에서 선박회사를 운영하는 베르니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는 사회적 존경을 받고 있지만 실은 도시 개발로 부당한 이익을 챙기고, 그의 실수를 대신 덮어쓰고 떠났던 처남과 옛 연인이 돌아오자 고장 난 배에 이들을 태워 보내려고 한다. 137년 전의 작품이지만 오늘날의 한국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적지 않다. 선체가 완전히 녹슨 배를 선주가 ‘최소한 수리하고 지체 없이 출항시킬 것, 비상시 화물로 수평을 유지할 것’을 요구하거나 베르니크가 직원에게 “배를 모레까지 출항시키지 못하면 해고야”라고 몰아붙이는 장면은 세월호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작품의 소재뿐 아니라 중견 연출가와 박지일 우현주 이석준 정재은 이승주 등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들이 결합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한 건 세월호 사건이 터지기 전이었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이 터지자 너무나 마음이 무거웠다고 김 연출은 털어놓았다. 극 중에서는 베르니크의 참회 과정도 그려진다. 김 연출은 “참회도 위선이라고 여겨져 결말을 바꾸려고 했지만 고민 끝에 그대로 가기로 했다”며 “누구도 반성하고 책임지지 않는 이 시대에 치유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대극장 무대를 2시간 동안 대사와 세밀한 심리 묘사로 채워 넣어야 하기에 에너지를 잘 조절하는 것이 관건이다. 박지일은 “베르니크는 본질적으로 나쁜 사람은 아닌데 물질과 과시욕에 사로잡혀 부정을 저지르는 인물”이라며 “우리 사회에 이런 인물이 흔하다 보니 감정 이입이 이렇게 금방 되는 역할도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우현주는 “인간의 내면을 밀도 있게 묘사하는 데다 서사의 힘이 배우를 강하게 끌고 간다”고 했다. 19∼30일 LG아트센터, 3만∼5만 원. 02-2005-0114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미국 고교 농구부 선수였던 동창 4명이 그들을 가르쳤던 농구부 감독(박용수)의 집에 모여 20년 전 우승을 추억한다. 이들은 친구이자 현 시장인 조지(김동완)의 재선 전략을 세우지만 곧 자신만 살기 위한 몸부림을 펼친다. 연극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은 미국 배우이자 극작가인 제이슨 밀러의 작품으로 토니상과 퓰리처상을 받은 작품이다. 극중 중년의 동창들 사이에 우정이란 없다. 사업가 필(김태훈)은 조지의 경쟁자가 당선 가능성이 높다며 그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하려 하고, 중학교 교장 제임스(이종무)는 자신이 시장 후보가 되겠다고 나선다. 급기야 필과 조지 아내의 불륜 사실이 폭로된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컷들을 연기하는 다섯 남자 배우는 폭발적인 에너지로 무대를 달군다. 감독은 "지는 것은 죄악이다. 오직 이겨라!"라고 제자들을 몰아붙인다. 이들이 이기려 발악할수록 처연함은 짙어진다. 이들에게 이기는 것은 그저 살아남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 시대 가장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유일한 자유인이었던 톰(박완규)이 떠났다 결국 돌아오는 것은 현실을 조롱하더라도 그 울타리를 벗어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극단의 분열로 질주하던 이들을 한 순간에 결집시키는 것은 감독이 튼 고교 농구 결승전 마지막 십초의 중계방송이다. 승리라는 목표 아래 모든 갈등과 증오는 우스꽝스럽게도 눈 녹듯 사라진다. 목표를 향해 마구 내달리게 만드는 사회와 피폐해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질주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춰냈다. 채승훈 연출. 23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88-5966}

서양이 세계를 장악한 이유는 무엇일까. 서구가 인종 문화 정치 경제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에? 미국 휘티어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를 서구 중심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실은 흑사병, 노예, 은, 아편, 총, 전쟁과 더 많은 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동양은 1400년부터 1800년까지 세계 경제와 무역을 장악했다. 이 시기 전 세계 총생산의 80%가 동양에서 이뤄졌다. 서구에 역전당한 것은 불과 200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문명이 발달했던 중국은 식량 의복 연료 등을 토지에서 확보했다. 하지만 토지는 제한돼 있었고, 이 한계를 타개할 수단이 없었다. 이에 비해 서구는 생산의 한계를 타개할 석탄을 가지는 행운이 따랐다는 것.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것도 증기기관의 연료가 된 석탄을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후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져온 은으로 중국 인도를 대상으로 한 무역에 나섰고 다시 아편을 이용해 아시아로 유입된 은을 회수했다.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강철과 증기기관을 활용해 철로 만든 증기선을 전쟁에 투입함으로써 아시아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삼았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산물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견해는 흥미롭다. 이런 변화를 가져왔던 동서양의 시대적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보여주는 것도 장점이다. 그러나 환경적 요인만으로는 산업혁명을 일구고 식민지를 개척한 서양의 발전이 모두 명쾌하게 설명되지는 않는다. 저자는 최근 중국 인도의 발전으로 아시아의 세기가 다시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아시아의 일원인 한국이 아시아 부활의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형, 이거 아이티의 작가가 펜으로 그린 그림이에요. 형에게 선물하려고 가져왔어요.”이광기(45)가 11일 조재현(49)에게 세밀하게 그린 그림이 담긴 까만 액자를 내밀었다. 조재현이 대표로 있는 서울 대학로 수현재컴퍼니 사무실 분위기와 딱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선물을 받아 든 조재현은 “오, 멋진데!”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임호(44)도 두 형 사이에 고개를 내밀고 그림을 들여다봤다. 》이들은 드라마 ‘정도전’에서 각각 정도전(조재현) 정몽주(임호) 하륜(이광기) 역을 맡아 권력을 둘러싼 애증을 연출했지만 사실 형제 뺨치게 가까운 남자들이다. 이들이 조재현의 제안으로 연극에서 다시 뭉쳤다. 다음 달 12일 시작하는 연극 ‘민들레 바람되어’에서 남편 안중기 역으로 트리플 캐스팅된 것. 2008년 초연된 ‘민들레…’는 아내의 무덤가를 찾은 남편이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며 삶과 사랑, 가족의 의미를 짚어보는 잔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이미 해 본 두 배우와 달리 임호는 꼼꼼하게 대본을 분석하고 있다. ‘담배도 가지가지, 성냥도 가지가지∼’라는 가사의 해병대 군가가 실제 음이 어떻게 되는지도 찾아볼 정도다. 극 중 안중기는 약간 철없지만 따뜻한 남편이다. 이광기는 “아내가 제게 ‘나이 들어도 똑같이 철없다’고 자주 말하는데 제가 안중기와 비슷한 것 같다”며 웃었다. 이들은 작품을 하면서 아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아이가 셋이다 보니 밤늦게 들어가면 아내는 늘 지쳐 잠들어 있어요. 작품을 연습하면서 아내에게 얼마나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했는지 돌아보고 있어요.”(임호) “동갑인 아내와 24세에 결혼해 곧바로 아이를 낳았어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돼 정신없이 살아온 아내에게 연민을 많이 느껴요. 지금이라도 아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하게 해주려고 애쓰고 있답니다.”(조재현) 중년에 접어든 이들은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바르고 따뜻한 이미지를 지닌 임호는 제대로 된 악역 연기에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트랜스젠더, 성추행하는 직장 상사를 연기한 적이 있는데도 반듯한 이미지는 변함이 없어요. 고도의 지능을 지닌 악역을 꼭 해보고 싶어요. 아주 ‘칼’을 갈고 있다니까요.”(임호) 조재현은 멜로 작품을 꿈꾸고 있다. 이광기가 “형, 멜로야 에로야?”라며 농담을 건네자 조재현은 “파격적인 멜로”라고 되받아쳤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젊은 아이와 사귀는 거죠. 해피엔딩은 아니고 결혼과 행복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면 어떨까요?”(조재현) 노출 연기도 자신 있느냐고 묻자 조재현은 씨익 웃으며 “물론이죠”라고 말했다. 미술에 관심이 많은 이광기는 백남준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 했다. 이광기는 드라마 촬영 때와 달리 제작사 대표 조재현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고 전했다. 어지간히 어둡지 않아서는 연습실에 불도 켜지 않는다는 것. 조재현이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와”라고 엄살을 떨자 임호가 천장을 가리키며 “여기 전구 하나 빼죠”라고 농담을 던졌다. 세 남자의 웃음소리가 한가득 퍼졌다. 12월 12일∼2015년 3월 1일, 서울 DCF대명문화공장 수현재씨어터, 4만∼5만5000원. 1544-1555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그리운 그대/아름다운 모습으로/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청와대 경호처 부장 정학(유준상 이건명 최재웅 강태을)이 산 한가운데 서 있다가 ‘거리에서’를 부르며 천천히 걸어 내려온다. 산은 서서히 낮아지고 정학이 무대 한가운데로 내려오면 무대 배경은 전봇대와 가로수 영상이 비치는 거리로 변한다. 검은색 대형 천을 아래위 두 조각으로 찢어낸 듯 만든 산이 무대를 꽉 채워 스크린이 된 것이다. 고 김광석이 부른 노래를 엮어 장유정 씨가 극본을 쓰고 연출한 창작 뮤지컬 ‘그날들’은 무대가 88번 전환된다. 창작 뮤지컬의 경우 무대 전환이 보통 20∼30번인데 ‘그날들’은 3, 4배 더 바뀌는 셈이다. 무대디자이너 박동우 씨는 “극본을 본 순간 영화 시나리오 같았다”고 말했다. ‘그날들’은 한중 수교 2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대통령의 딸과 경호원이 함께 실종되는 사건과 정학의 파트너 무영(김승대 오종혁 지창욱 규현)이 20년 전 경호를 맡은 여성과 사라진 사건이 교차된다. 지난해 초연돼 현재 재공연되고 있다. ‘이등병의 편지’ ‘변해가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서정성 짙은 노래는 강하고 남성적인 느낌으로 편곡됐다.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무대는 작품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연주회장이 경호훈련장으로 바뀌고, 청와대 내 비밀 자택이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덧 책이 빽빽이 꽂힌 도서관이 펼쳐진다. 사건의 핵심 장소인 산은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져 수많은 무대 전환이 가능하게 한 일등 공신. 산을 조형물로 만드는 것도 검토했지만 이동시키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 천으로 만들었다. 벨루어 소재로 만든 폭 12m, 높이 8m 산은 아래위 두 조각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곧바로 나타나고 사라져 ‘산→경호원 샤워실→산’ 등의 변화가 수월해졌다. 산 아래 조각 일부에는 천 뒤에 합판을 대 조형물처럼 단단한 느낌을 준다. 벚꽃, 악보 등 영상을 비출 때는 굵은 실로 만든 커튼을 산 앞에 드리워 하얀색 스크린이 되게 했다. 박 씨는 “산의 가로로 갈라진 공간은 경호 시범을 보일 때는 푸른색, 쫓기던 경호원 무영이 홀로 서 있을 때는 붉은색 조명으로 채워 냉철함과 긴박감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1월 18일까지 서울 대학로뮤지컬센터 대극장, 6만6000∼11만 원. 1544-1555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가수 서태지(사진)의 노래가 대형 창작 뮤지컬로 태어난다. 가요를 엮어 만드는 이른바 ‘주크박스’ 뮤지컬로 서태지는 뮤지컬 대본과 편곡 작업의 감수를 맡는 방식으로 작품에 참여할 계획이다. 서태지컴퍼니의 자회사인 ‘스포트라이트’는 서태지의 노래를 토대로 한 창작 뮤지컬 ‘페스트’를 내년 하반기 무대에 올릴 예정이라고 10일 밝혔다. 스포트라이트는 음반 제작, 공연 기획 등을 해왔다. 뮤지컬 ‘페스트’는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를 현대적으로 각색했다. 서태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2011년부터 준비한 만큼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태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뮤지컬에는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에 서태지가 작곡한 ‘너에게’ ‘발해를 꿈꾸며’ ‘컴백홈’ 등 초창기 음악은 물론이고 ‘테이크 6’ ‘틱탁’ 등 솔로 앨범 수록곡 등 주요 히트곡 대부분이 등장한다. 카뮈의 ‘페스트’는 알제리의 해안 도시 오랑에 갑작스럽게 질병이 퍼지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 뮤지컬 ‘페스트’는 오랑의 자유로운 풍경 등 공간적 배경은 그대로 가져오지만, 시대적 배경은 현재의 이야기로 바꿀 예정이다. 스포트라이트 송경옥 책임 프로듀서는 “우리 삶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 공감을 이끌어내는 한편 공존의 의미를 짚어볼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연 배우는 오디션을 통해 선발할 예정이다. 스포트라이트는 이번 뮤지컬을 위해 서태지와 음악저작권 계약을 체결했다. 서태지의 히트곡은 그동안 공연기획자들 사이에서 주크박스 뮤지컬로 만들어보고 싶은 노래 중 하나로 꼽혀왔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만들어진 특정 가수의 주크박스 뮤지컬로는 고(故) 김광석이 부른 노래를 엮어 만든 ‘그날들’ ‘바람이 불어오는 곳’ ‘디셈버’와 고 이영훈 작곡가의 노래로 만든 ‘광화문 연가’, 7080 히트가요를 엮어 만든 ‘젊음의 행진’ 등이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자유가 돌아오는 날 제 희곡을 세상에 내놓겠습니다.” ‘레미제라블’을 쓴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가 자유로운 세상에서 공연되길 희망했던 연극 ‘1000프랑의 보상’(사진)이 국내 관객을 만난다. 프랑스 툴루즈 국립극장 오리지널팀이 25, 26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다. 연출은 연극, 오페라 연출가로 유명한 로랑 펠리가 맡았다. 이 작품은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완성한 지 4년 후인 1866년 망명지인 건지 섬에서 집필했다. 어린 시절 가난 때문에 저지른 범죄로 범법자가 된 글라피외가 자신을 도와준 가족이 가난으로 궁지에 몰리자 이를 돕는 내용이다. 4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사회적 불의와 부의 불평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동시에 휴머니즘과 풍자적 유머를 담고 있다. 위고가 희곡을 완성했다는 소식에 프랑스 여러 극단은 앞다퉈 공연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위고는 이를 정중히 거절했다. 그는 극단 대표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검열이 존재하는 프랑스 현실을 비판하며 온전한 자유가 보장되는 날에 작품을 출판하고 공연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이 작품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인 1934년에 출판됐고, 1961년 처음 공연됐다. 국내에 선보이는 연극은 툴루즈 국립극장이 2010년 초연한 작품으로 눈 내리는 파리를 몽환적으로 연출했다. 빛과 그림자를 사용해 흑백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하는 등 로랑 펠리는 현대적인 감각의 무대를 선보였다. 2011년 ‘프랑스 비평가상’ 연출가상과 무대미술상을 받았다. 26일 공연 뒤 연출가와 관객의 대화가 마련돼 있다. 원작 희곡은 최근 출판사 열화당에서 책으로도 펴냈다. 1만∼11만 원. 031-783-8042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문화가 있는 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관심만큼이나 문화계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이달로 문화가 있는 날이 시작된 지 10개월을 맞았지만 참여 단체들은 여전히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공립 단체 및 시설에 집중돼 있다. 9월 기준으로 1474개 참여 단체 중 민간단체의 수는 569개로 38% 수준에 그쳤다. 문화계 전문가들은 민간단체의 동참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주로 해외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을 기획하는 빈체로 송재영 부장은 “클래식 공연은 단 하루만 진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할인 폭이 큰 문화가 있는 날 행사에 참여하면 손익분기점을 못 맞출 가능성이 크다”며 “정부 차원에서 참여하는 기획사에 세제혜택이나 보조금 지원 등의 ‘당근’을 마련해 주지 않는 이상 참여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아일보가 문화계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45%가 문화가 있는 날 활성화를 위해 ‘참여 단체에 대한 세제 지원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할인액과 거의 같은 금액을 정부가 지원하는 ‘매칭 그랜트’ 방식의 보조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응답자의 35%가 ‘홍보 확대’를 문화가 있는 날 활성화의 주요 방안으로 꼽았다. 실제 15일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이 문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문체부가 8월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문화가 있는 날 인지도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들어본 적도 없다’는 응답이 63.7%에 달했다. 뮤지컬 ‘위키드’ ‘오페라의 유령’ 등을 제작한 설도윤 설앤컴퍼니 대표는 “홍보 캠페인이 동반되지 않은 정책이다 보니 문화가 있는 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상당하다”며 “이 정책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홍보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 밖에 전문가들은 문화가 있는 날 활성화 방안으로 현재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로 고정돼 있는 문화가 있는 날의 탄력 운영, 관람객에게 연말정산 등 세제혜택 제공, 문화가 있는 날 행사와 청소년 문화 체험학습 연계 등의 의견을 내놨다. 김정은 kimje@donga.com·손효림 기자}

《 10월은 ‘문화의 달’. 셋째 주 토요일인 18일은 ‘문화의 날’이다. 정부는 올해 1월부터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을 ‘문화가 있는 날’로 정해 미술관, 공연장, 박물관 등의 관람료를 할인해주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가 있는 날’에 영화 ‘넛잡’, 뮤지컬 ‘김종욱 찾기’ 등을 관람하며 문화의 날 알리기에 나섰다. ‘문화 융성’을 국정 4대 기조 가운데 하나로 내건 현 정부의 주요 문화 정책인 문화가 있는 날의 성과와 나아갈 길을 진단한다. 》#1.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반신’의 9월 24일 공연표는 일찌감치 매진됐다. 일본의 유명 연출가 노다 히데키가 연출한 이 공연은 작품성도 있지만 ‘문화가 있는 날’을 맞아 표를 40% 할인해줬기 때문이다. 한태숙 연출가의 연극 ‘유리동물원’도 마찬가지였다. 8월 27일 표(40% 할인)가 순식간에 매진되는 등 명동예술극장은 문화가 있는 날이 되면 관객들로 붐빈다. #2. 인터파크에서 월별 뮤지컬 티켓 예매 순위 1∼10위를 차지하는 작품(15일 현재) 가운데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는 작품은 단 한 개에 불과하다. 서울 디큐브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황태자 루돌프’가 유일한데 선착순 100명에 한해 관람료를 50% 할인해주고 있다. 1월부터 시행된 문화가 있는 날이 차츰 성과를 내고 있지만 문화계 전반으로 활발하게 확산되지는 않은 상황이다. 참여 프로그램 수는 늘고 있지만 정작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콘텐츠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부담 줄자 관객 반색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한 프로그램 수는 올해 1월 883개에서 빠르게 늘어나 9월 1474개로 집계됐다. 국공립 문화단체는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9월의 경우 전체 1474개 프로그램 가운데 905개가 국공립, 569개가 민간단체의 프로그램이었다. 장르별로는 전시가 438개로 가장 많았고, 인문학강좌를 개설하거나 책을 추가로 대출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 도서관(418개), 영화(275개), 공연(175개) 순이었다. 동아일보가 문화계의 분야별 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문화가 있는 날 효과에 대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느리지만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의견이 8명으로 가장 많았다. 효과가 상당하다는 의견도 7명이었다. 눈에 띄는 효과를 낸 대표적인 장르는 영화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영화관에서는 문화가 있는 날에 오후 6시부터 8시에 시작하는 영화를 5000원에 관람할 수 있다. 평일 영화표 값이 8000∼9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큰 폭으로 할인해 주는 것. 신기범 CGV 영업지원팀장은 “1∼8월 문화가 있는 날 좌석 점유율은 다른 수요일의 두 배에 가까워 관객이 늘어난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무용단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정오의 춤’ ‘국악콘서트 잔치’ 등 기존 작품을 무료로 공연한 결과 좌석 점유율이 평균 103.9%로 나타났다. 준비한 좌석이 모두 매진돼 추가로 좌석을 마련했을 정도로 호응이 높았다. 40∼50%를 할인한 뮤지컬 ‘시카고’ ‘고스트’를 비롯해 연극 ‘엄마를 부탁해’ ‘가을소나타’도 모두 매진됐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난타’와 ‘뮤직쇼 웨딩’은 평소에 비해 한국인 관객이 10% 정도 늘었다. 1만 원인 관람료를 5000원으로 할인해주는 삼성미술관 리움 역시 관람객 수가 다른 평일의 1.2배로 증가했다.○ 경쟁력 있는 콘텐츠 확보해야 하지만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는 프로그램 중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작품은 충분치 않은 상황이다. 인터파크에서 요즘 티켓 예매 순위 1∼5위에 오른 ‘레베카’ ‘지킬 앤 하이드’ ‘조로’ ‘마리 앙투아네트’ ‘헤드윅’은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지 않았다. ‘프라이드’ ‘슬픈 연극’ 등 인기가 많은 연극 역시 마찬가지다. 매달 한 편 이상 공연을 관람하는 최보라 씨(31)는 “문화가 있는 날에 할인을 많이 해준다고 해서 반가웠는데 막상 보고 싶은 작품은 해당 사항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결국 문화가 있는 날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관객들이 찾는 콘텐츠를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획사의 참여를 독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문화계의 지적이다. 설문 응답자 20명 가운데 11명은 문화가 있는 날에 참여하기 힘든 이유로 기획사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윤택 연출가는 “정부 차원의 문화정책이면서도 민간 분야의 제작사나 공연장에 아무런 혜택이 없는 것은 문제”라며 “문화가 있는 날이 제대로 꽃피우려면 정부가 의지를 갖고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는 제작사의 참여를 유도하고 실질적인 지원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손효림 aryssong@donga.com·김정은 기자}

“연극 ‘나는 너다’는 제게 선물 같은 작품이에요. 연기에 대한 회의감에 허우적거릴 때 연기에 다시 눈뜨게 해 준 작품이거든요.” 11월 막을 올리는 연극 ‘나는 너다’에 세 번째 출연하는 송일국(43·사진)의 눈이 반짝였다. 윤석화가 연출한 ‘나는 너다’는 아버지로서의 안중근 의사와 변절자로 손가락질 받았던 아들 안준생의 굴곡진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 그는 2010년 초연돼 올해 세 번째로 공연되는 이 작품에서 안중근과 안준생, 1인 2역을 맡았다.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14일 만난 그는 이미 안중근 의사로 분장해 있었다. 제작발표회가 열리는 이날 작품의 의미를 잘 알리고 싶다며 안 의사 복장을 한 것이다.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인 그는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통해 영웅의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그림자를 지켜봤기에 준생을 좀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이 각별한 이유는 또 있다. “이 작품 공연 전 매일 배우와 스태프들이 무사히 공연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기도 마지막에는 아이가 생기게 해달라고 빌었고요. 두 번째 공연이 끝나고 거짓말처럼 아이가 생겼어요. 그것도 셋이나요!(웃음)” 그의 세 아들 대한, 민국, 만세는 그렇게 태어났다. 육아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과 해보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하다는 그는 아버지로서의 안 의사에 대한 이해도 깊어졌다고 말했다. “준생이 ‘왜, 무엇 때문에 그랬느냐’고 절규하며 물어요. 안 의사가 ‘너를 위해서’라고 답해요. 자식을 낳아보니 이 말이 뭔지 가슴에 와 닿더라고요. 저 역시 조상들이 잘 살아주신 축복을 받고 있고요.” 그는 ‘나는 너다’의 배우들과 함께 다음 주 중국으로 항일 유적지를 답사하러 떠난다. 항일 유적지 답사는 그가 매년 하는 일이다. 11월 6일에는 그가 출연한 저예산 영화 ‘현기증’이 개봉한다. “배우의 길은 어디에 정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역이든 다 해보고 싶어요. 연기에 대한 갈망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데 그걸 채우려면 갈 길이 멀거든요.(웃음)” 11월 27일∼12월 31일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5만∼10만 원. 1544-1555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산장 창문 너머로 잔잔한 물결이 이는 황금연못이 보인다. 이곳은 다정한 노부부 노만(이순재 신구)과 에셀(나문희 성병숙)이 여름을 지내는 공간이다. 에셀이 어릴 적 갖고 놀던 인형을 비롯해 평생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별장이다. 캐서린 햅번과 헨리 폰다, 제인 폰다가 출연한 동명 영화로 잘 알려진 연극 ‘황금연못’은 황금연못 옆 산장에서 벌어지는 가족의 갈등과 화해를 따뜻하게 그렸다. 은퇴한 대학교수 노만은 딸 첼시와 냉랭한 관계다. 첼시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아버지로부터 어릴 적 받았던 상처를 지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완고한 성격의 노만이 첼시가 데려온 남자친구 빌과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면서 부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스르르 녹아내린다. 이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은 노만 가족의 일상을 지켜보는 황금연못이다. 연극에서는 연못 이미지를 가로 10m, 세로 8m 크기의 대형 천에 출력해 설치했다. 무대 양쪽에 6m 높이로 제작된 느티나무는 실제 가지에 모형 잎을 달아 숲이 주는 풍성함을 살렸다. 김혜지 무대디자이너는 “관객이 황금연못의 느낌을 공유하는 게 필요해 창 뒤로 연못을 배치했다”고 말했다. 이순재는 “영화에서 본 황금연못과 비슷하다”고 반겼다. 노만에게 황금연못은 삶의 또 다른 이름이다. 딸기를 따러 나갔다 수없이 지나 다녔던 옛길이 갑자기 기억나지 않자 노만은 황금연못을 다시 못 볼 것 같아 두려움에 휩싸인다. 황금연못을 또 본다는 것은 생이 이어짐을 의미하는 것이다. 여름이 끝나고 노만과 에셀은 내년에도 황금연못을 볼 수 있길 고대한다. “당신이랑 낚시질도 하고, 난 또 쿠키도 만들고…. 인생은 그렇게 계속될 거예요, 그렇죠?”(에셀) “그러면 좋지만 죽고 사는 건 아무도 몰라.”(노만) “그래요, 하느님밖에는.”(에셀) 마지막 장면에서 황금연못을 향해 “안녕”이라고 거듭 외치며 산장을 떠나는 노부부의 뒷모습은 생에 대한 아쉬움과 기대감으로 짙은 여운을 남긴다. 11월 23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대명문화공장 비발디파크홀. 4만∼6만5000원, 02-766-6506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 “박은석 배우님 나오는 회차 티켓을 구할 수 없을까요? 유보석도 좋아요. 정가에 살게요.” 연극 ‘프라이드’ 제작사인 ‘연극열전’에는 요즘 이런 문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다. 박은석(30)이 등장하는 공연이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프라이드’는 남성 동성애자의 사랑을1958년과 2014년을 넘나들며 다룬 작품이다. ‘대학로의 아이돌’로 불리는 그는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올리버 역에 더블 캐스팅됐다. 매진이 이어지면서 11월 2일 막을 내릴 예정이던 ‘프라이드’ 공연은 일주일 연장됐다. 연극계에서 탄탄한 연기력에 매력적인 외모까지 갖춘 ‘훈남’들이 팬을 몰고 다니고 있다. 연극은 소극장 공연이 많아 좋아하는 배우를 바로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 세련미에 귀여움까지 ‘히스토리 보이즈’ ‘모범생들’ ‘이기동 체육관’ 등 남성미를 발산하기 쉬운 작품들은 훈남 배우들이 팬들에게 또렷이 각인되는 일종의 등용문이 됐다. 박은석을 비롯해 윤나무(29)와 홍우진(34)이 대표적이다. 박은석은 ‘히스토리 보이즈’에서 자신감 넘치는 남학생 데이킨 역을 맡았다. 키 180cm에 손바닥만 한 귀여운 얼굴이 매력으로 꼽힌다. 회사원 최승연 씨는 이 작품에서 박은석을 보자마자 팬이 됐다. 최 씨는 “서구적인 신체 비율, 세련된 분위기에 매료됐다”며 “미국에서 오래 살았는데도 무대에서 전혀 티 나지 않을 정도로 한국말을 또박또박 발음하는 것도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현재 공연 중인 ‘우리 노래방 가서… 얘기 좀 할까?’에서 아들 역을 맡은 윤나무는 ‘찌질남’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오뚝하고 긴 콧날, 갸름한 얼굴선을 지닌 그는 어딘지 모르게 상처를 가진 듯한 분위기로 여성의 보호 본능을 자극한다는 평이다. 역시 ‘우리 노래방…’에서 노래방 주인을 연기하는 홍우진은 동네 오빠처럼 친근하고 편안한 이미지로 주가를 올리고 있다.○ 야성미에 두근두근 훈남 중 터프한 스타일로는 박해수(33)와 박훈(33)이 꼽힌다. 10일 개막하는 ‘프랑켄슈타인’에서 괴물 역을 맡은 박해수는 온몸으로 동물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배우라는 평가를 받는다. 회사원 정혜영 씨는 “‘됴화만발’을 보고 박해수의 강렬한 눈빛에 완전히 꽂혔다.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는 마스크를 지닌 ‘상남자’ 그 자체다”라고 말했다. 중극장 이상의 무대를 꽉 채울 수 있는 선 굵은 카리스마를 지녔다는 분석이다. 박훈은 올해 상반기 화제를 모은 연극 ‘유도소년’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반항적이면서도 순박한 이미지를 지닌 박훈은 흐트러진 도복 사이로 드러난 다부진 몸매로 여심을 설레게 했다. 팬들은 현재 박훈이 출연하는 뮤지컬 ‘완전보험주식회사’ 연습실로 호텔 출장 뷔페를 보내기도 하고, 공연마다 앞좌석을 꽉꽉 채우고 있다. 연극계에서는 훈남 배우들의 파워로 관객층이 확대되는 것을 반기는 분위기다. 특정 배우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았다가 다른 배우나 작품으로 관심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 ‘공연배달서비스 간다’의 안혁원 프로듀서는 “여성 마니아층이 차츰 늘면서 작품들이 부흥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극계가 동성애 코드나 남성성을 부각하는 내용 등 여성 관객의 취향에 맞는 작품으로 편중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자신들을 ‘기막힌 행운아’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시각장애로 빛을 잃었지만 무대에 서는 꿈을 이뤘기 때문이란다. 관현맹인전통예술단원들의 이야기다. 이 예술단은 조선시대 재능이 뛰어난 시각장애인에게 궁중 잔치 등에서 음악을 연주하게 했던 ‘관현맹인제도’를 본떠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든 것으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운영하고 있다. 2일 서울 관악구 복지관 연습실에는 가야금, 대금 등의 반주에 맞춰 소리꾼 이현아 씨(26)의 청아한 음색이 울려 퍼졌다.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정가(正歌·전통 가곡과 시조를 노래로 부르는 것)를 전공한 이 씨는 지난해 ‘온 나라 국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예술단 단원 7명은 모두 쟁쟁한 실력을 갖췄지만 오랜 기간 꿈을 접어야 했다. 거문고를 전공한 김수희 씨(43)는 악보를 보지 못해 일반 예술단 오디션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 단원을 지낸 타악기 연주자 이진용 씨(42)와 정철 씨(41)도 10년간 무대에 서지 못하고 생계를 위해 점자 악보 교정 일 등을 했다. 정 씨는 “사물놀이 연주를 들을 때마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는데’ 하는 생각만 맴돌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하지만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의 창단 이후 이들은 국내외에서 연간 100여 회나 되는 공연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5월에는 미국 카네기홀에서 단독 공연을 했다. 무대에 대한 간절함이 깃든 이들의 연주는 진지하고 강렬한 에너지를 내뿜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단의 변종혁 예술감독은 “자만하지 않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를 내는 단원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예술단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손잡고 예술나무포털(www.artistree.or.kr)을 통해 11월 15일까지 기획 모금을 벌이고 있다. 소록도를 포함해 문화소외지역을 찾아가 나눔 공연을 열기 위해서다. 대금 연주자 문종석 씨(23)는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며 “공연을 즐기기 어려운 분들과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출중한 실력을 가졌지만 장애로 인해 무대에 설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차단된 이들에게 기회의 문이 좀 더 넓어지길 기원하며 연습실을 나섰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