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이 책, 이 저자]‘나무 도장’ 펴낸 권윤덕 작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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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사건 아픔 어루만져 ‘평화의 섬’ 제주로 기억되기를”

권윤덕 작가는 “말하기 힘든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알 권리가 있다”며 작업에 나선 이유를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권윤덕 작가는 “말하기 힘든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알 권리가 있다”며 작업에 나선 이유를 말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열세 살 소녀 시리는 누군가의 제삿날 엄마를 따라 산자락 좁다란 동굴로 간다. 어머니는 10여 년 전 일을 두런두런 말하기 시작한다. 토벌에 참가했던 외삼촌이 숨진 여인의 품에 안긴 채 살아있던 어린아이를 데려왔다고. 나무도장을 손에 꼭 쥐고 있던 그 아이는 시리였다.

나무도장/권윤덕 지음/60쪽·1만6800원/평화를 품은 책
나무도장/권윤덕 지음/60쪽·1만6800원/평화를 품은 책
제주4·3사건을 서정적 그림과 절제된 문체로 담아낸 그림책이다. 저자(56)를 서울 종로구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위안부 할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꽃할머니’(2015년)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말 잇기 놀이인 제주도의 꼬리따기 노래를 모아 재해석한 ‘시리동동 거미동동’(2003년)을 내면서 제주와 인연을 맺었다.

실화인 ‘빌레못굴의 학살’을 바탕으로 한 책을 내기 위해 저자는 3년간 취재했다. 제주4·3평화재단, 우당도서관, 탐라도서관을 뒤졌다. 권영옥 도서출판 장천 대표를 비롯해 30명이 넘는 관련 전문가와 관계자들에게 자문을 받았다. 북촌초등학교 교지도 확인하며 제주의 정서를 이해했다. 엄마가 시리에게 이야기를 해 주는 날을 당초 시리의 생일날에서 시리 생모의 제삿날로 바꾼 것도 이유가 있다.

“제주는 생일보다는 제사를 중요시하더라고요. 배를 타다 혹은 물질하다 목숨을 잃는 사람이 많다 보니 제사를 정성껏 올리며 안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기원하는 문화가 강했어요.”

철저한 고증을 통해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당시 풍경을 정확하게 그려냈다. 광복 후 제주로 사람들이 돌아올 때 타고 온 관부연락선은 물론이고 당시 입었던 옷, 보따리 등도 세세하게 확인했다. 경찰과 국방경비대의 복장이 비슷하지만 모자에 붙은 마크가 다른 점도 반영했다.

‘빌레못굴의 학살’에서는 일곱 달 아기가 숨지지만 저자는 아이가 살아남아 토벌군의 누나가 데려가 키우는 것으로 바꾸었다. 감정적인 표현은 자제하고 이념 대립으로 비칠 수 있는 단어도 가급적 쓰지 않으려 애썼다. 피도 푸른색과 갈색으로 그렸다.

끔찍했던 현실을 완곡하고 담담하게 표현해 보는 이의 가슴을 더욱 시리게 만든다. 그리고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인간의 잔인함보다는 냉전 시대에 국가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구조에 주목했어요. 사람들을 총살할 때 비켜 쏜 군인도 있었다고 해요. 그 사람이 갖고 있었던 건 인간에 대한 희망 아닐까요.”

책은 제주4·3평화기념관에 헌정됐다.

“아이들에게 이념 대립보다는 평화의 섬으로 제주가 기억되길 바랍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조정해 나가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나무 도장#권윤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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