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개인적으로 여러분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15일 오후 3시경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사진)의 목소리에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4월 대선 출마 선언 후 처음으로 지지자들과 비공개 합동 전화통화(콘퍼런스 콜)를 가진 자리에서다.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광풍에 치이고 최근에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돌풍으로 일부 지역에서 민주당 후보 1위 자리까지 내주며 대세론이 흔들리자 ‘SOS(긴급구조신호)’ 모임을 가진 것이다. 기자는 클린턴 전 장관 지지자의 도움으로 비밀번호 6자리를 받아야 연결되는 통화에 참여할 수 있었다. 클린턴 전 장관은 10여 분간 이어진 통화에서 미 전역에서 연결된 수천 명의 지지자에게 어느 때보다 낮은 자세로 도움을 요청했다. ‘진심으로(sincerely)’ 같은 단어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는 “선거를 치르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 저소득층이 미국에 아직 많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대선 공약과 정책을 가다듬고 있다”고 했다. 특별히 내세울 수 있는 ‘힐러리 이슈’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게 최대 약점이라는 지지자들의 조언을 감안한 듯했다. 발언 곳곳에서도 ‘집토끼’인 지지자들을 모으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그는 “여러분 가족과 이웃, 주변 누구에게라도 내 홈페이지(www.hillaryclinton.com)를 알려 지지자를 늘려 달라. 우선 온라인으로 결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홈페이지 주소를 또박또박 불러주기도 했다. 그러더니 “선거를 치러 보니 돈이 중요하더라.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큰 도움이 된다”며 “소액이라도 기부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최근 샌더스 의원에게 아이오와, 뉴햄프셔 주 여론조사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듯 “나는 다시 힘을 내서 민주당 대선 경선은 물론이고 내년 11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시대착오적인 공화당 세력이 다시 미국을 장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나를 믿고 따라와 달라”며 트럼프를 공격하기도 했다. 워싱턴 정가에선 클린턴 전 장관이 다음 달 13일 민주당 첫 대선 주자 토론회를 앞두고 본격적으로 반전을 모색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주로 ‘월가 금융기관 해체’ 등 부자들의 탐욕을 겨냥하고 있는 샌더스 의원 공약의 허구성을 비판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한편 이날 발표된 미 몬머스대의 뉴햄프셔 주 여론조사에서도 클린턴 전 장관은 민주당 지지자로부터 37%를 얻어 샌더스 의원(43%)에게 6%포인트 뒤졌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자, 정치 혁명을 즐길 준비가 됐습니까?” 14일 오후 8시 미국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주 매나사스 시의 한 박람회장 앞 공터. 월가 금융자본에 대한 신랄한 비판으로 진보 성향 유권자를 흡수하며 민주당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대세론을 무너뜨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이 사회자의 소개로 등장하자 4000여 명의 지지자들은 열렬하게 박수를 쳤다. 곳곳에서 “버니를 백악관으로” 등의 구호가 끊이지 않아 샌더스 의원의 인사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샌더스 의원은 74세의 나이를 무색게 하는 열정으로 1시간 넘게 월가와 기성 정치권에 돌직구를 날렸다. 그는 “내가 대선에 나서자 아무도 월가와 워싱턴 정치를 변화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요즘 (여론)조사를 봐라. 이미 미국 시민들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여론조사에서 샌더스 의원과 클린턴 전 장관의 지지율 격차는 점점 커지고 있다. CBS가 3일부터 10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아이오와에서 샌더스 의원은 민주당 지지자들에게서 43%를 얻어 33%의 클린턴 전 장관을 10%포인트 차로 이겼다. 클린턴 전 장관은 14일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의 공동 여론조사에서도 7월 63%였던 지지율이 두 달 만에 42%로 떨어지는 등 유권자의 외면을 받고 있다. 특히 민주당 여성 유권자의 클린턴 전 장관 지지율은 71%에서 42%로 29%포인트나 급락했다. 이날 집회에서 샌더스 의원은 “전체 인구의 1%가 미국 경제 과실의 99%를 차지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이제는 바로잡아야 한다. 이게 바로 정치 혁명”이라며 자신의 선거 구호인 ‘더는 안 된다(enough is enough)’를 지지자들과 함께 외쳤다. 지지자들은 샌더스 의원의 기성 정치권 비판에 통쾌해하는 듯했다. 대학생 캐런 맥라렌 씨는 “부의 편중 현상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샌더스 의원이 이를 성공적으로 이슈화했고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샌더스 의원의 집회는 소통과 공감형 캠페인으로 눈길을 끌었다. 샌더스 의원은 오후 9시를 훌쩍 넘겨 연설을 마쳤지만 지지자들의 손을 일일이 붙잡고 사진을 찍으며 30분 넘게 스킨십을 했다. 연설 도중 “형제자매 여러분”이라고 외치며 정치적 동질감을 불어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 이날 집회를 앞두고 샌더스 의원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집회 참여 방식과 유의할 점, 심지어 차가 막힐 수 있으니 ‘카풀’을 하라는 안내문까지 고지할 정도였다. 현장에선 대부분 자원봉사자가 행사 전반을 관리했다. 언론 기피증이 있을 정도로 여전히 불통 논란에 시달리는 클린턴 전 장관이 ‘풀뿌리 정치’에 기반하며 소통형 대선 행보에 나선 샌더스 의원에게 맥을 못 추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매나사스(버지니아)=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3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중국 고위 관계자를 통해 한국 측에 “한반도 평화통일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발표는 한국이 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도 진지하게 이를 논의하고 고민할 것”이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담 과정에 정통한 미국 워싱턴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시 주석은 이같이 밝힌 뒤 “우리가 (북한도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평화통일을 논의하겠다는 발표를 직접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내용으로 박 대통령의 이해를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박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 후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측과 평화통일 논의를 곧 시작하겠다”고 밝혔고 청와대는 “시 주석과 교감이 있었다”고 언급했지만 한중 정상 간 구체적으로 어떤 교감이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었다. 이 소식통은 “박 대통령이 회담 후 ‘평화통일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한국의 기대만 담긴 게 아니라 시 주석도 통일 이슈를 어느 정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통일 이슈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도 이런 교감이 바탕이 된 것으로 워싱턴 외교가는 이해하고 있다”고 전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9일 오후 1시경 미국 워싱턴 의회 의사당 인근 ‘캐피톨 사우스’ 지하철역에서 내린 승객 20여 명은 의사당 앞 잔디광장으로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늦여름 더위에 섭씨 32도가 넘었지만 뛰어가는 사람도 있었다. ‘티파티 패트리엇’ 등 보수단체 주최로 열린 이란 핵협상 반대 집회에 참석하는 공화당 대선 선두 주자 도널드 트럼프를 보러 가는 사람들이었다. 행사 시작 30분이 지나자 요란한 음악과 함께 트럼프가 연단에 등장했다. 그는 찬조 연설자였지만 이날 모인 2000여 명의 시선은 온통 트럼프에게 쏠렸다. 트럼프는 15분간 이란 핵협상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인들이 승리할 것”이라고 열변을 토해 환호를 받았다.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그가 6월 대선 출마 선언 후 처음 참석한 워싱턴 공개 행사가 사실상 그의 ‘워싱턴 출정식’이 된 셈이다. 직접 본 트럼프는 특유의 거침없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쉬운 화법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는 “미국이 이란 핵협상을 엉망으로 했다. 내 평생 이렇게 무능한 협상 결과는 처음 본다”며 “우리는 얻을 게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아주, 아주 멍청한(stupid) 사람들이 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며 “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여러분은 지겨울 정도로 미국의 많은 ‘승리’를 보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선거 구호도 잊지 않았다. 일부 지지자들의 반응은 종교 집회를 방불케 했다. 메릴랜드 주에서 왔다는 제임스 불런 씨는 연신 “아멘”을 외쳤고, 중년 백인 남성들은 “도널드, 제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어줘 젠장(damm it)”이라며 환호했다. 연설을 마친 트럼프는 연단을 빠져나가는 데 20분 넘게 걸렸다. 동아일보를 비롯한 내외신 기자 50여 명이 동시에 그를 에워쌌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 특파원들이 ‘북핵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북핵 협상에 근본적으로 반대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무기를 허용하는 어떤 협상에도 반대한다는 것으로 공화당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이 돈을 많이 벌면서도 주한미군의 도움으로 안보를 공짜로 지키고 있다”는 기존 주장에 대해서는 “나는 한국을 좋아한다(I like South Korea)”며 얼버무린 뒤 전용차를 타고 사라졌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북한의 지난달 20일 포격 도발 직후 평안북도 영변 핵시설에서 기존에 없던 대형 차량들의 이동이 감지됐으며 새로운 플루토늄 생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미 존스홉킨스대 산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가 9일 밝혔다. 북한이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당 기념일을 맞아 미사일 발사 등 추가 도발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나온 분석이라 주목된다. 38노스의 윌리엄 머그퍼드 연구원은 지난달 22일 촬영한 상업용 위성사진을 분석한 결과 영변 핵시설 내 5MW급 원자로 앞에 대형 차량들이 지나다닌 흔적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차량 흔적은 원자로 인근 부속 건물의 지하로에도 연결되어 있는데 무언가를 실어 나르기 위해 대형 트럭들이 정차하고 있는 것도 감지됐다고 덧붙였다. 영변 핵단지의 5MW 원자로는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북한의 대표적 핵시설이다. 이와 함께 머그퍼드 연구원은 “우라늄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핵시설 내 연구소에서도 차량이 오간 흔적이 이전과 달리 발견되었으며 특히 일부 트럭은 사용후핵연료 저장소로 이동한 흔적도 있었다”고 밝혔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에서 무엇인가를 하역한 흔적들도 발견됐는데 이게 정확히 무슨 물질인지는 추가 분석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머그퍼드 연구원은 사진 분석 결과를 토대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현대화 작업을 벌이고 있거나 △원자로의 오래된 설비 일부를 보수하거나 △특히 사용후핵연료봉을 원자로에서 꺼내 새로운 플루토늄 생산을 준비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움직임이 맞다면 이는 북한 핵무기 비축량의 중대한 진전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고 이 사이트는 덧붙였다. 앞서 38노스는 7월 위성사진 판독 결과 영변 핵시설에서 핵무기용 고성능 폭발물을 조립하거나 보관하기 위한 건물을 짓고 있어 핵무기 소형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고성능 기폭장치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관측을 제기한 바 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 민주당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한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지지율 마지노선으로 여겼던 50% 선이 무너지더니, 이제는 민주당 후보 지지율 1위 자리를 버니 샌더스(무소속)에게 내주고 말았다. 대세론은커녕 민주당 후보 자리까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 NBC 방송과 여론조사기관 마리스트 폴이 뉴햄프셔 주에서 이달 초 실시해 6일 공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클린턴은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 32%를 얻어 41%를 얻은 샌더스에게 9%포인트 차로 뒤졌다. 클린턴이 올 4월 대선 출마 선언 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1위 자리를 내주기는 처음이다. 7월 같은 조사에서 클린턴은 42%로 32%의 샌더스를 오히려 10%포인트 앞섰다. 뉴햄프셔는 내년 2월 미국에서 처음으로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각 당의 프라이머리(당원과 일반인이 함께 참여하는 경선)가 열리는 곳이다. 앞서 클린턴은 지난달 19일 CNN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서 48%를 얻어 처음으로 지지율 50% 선이 무너졌다. 미국 언론과 정치 전문가들은 클린턴의 추락엔 3가지 악재가 동시에 작용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은 e메일 스캔들 등에 따른 호감도 급감. 미 정치 여론조사에서 지지율만큼 중요한 항목이 호감도인데, 정치인에 대한 여론이 출렁일 경우 이성적 판단이 작용하는 지지율보다 감성적 판단에 가까운 호감도가 먼저 반응해 민심의 ‘선행 지표’로 통한다. 이번 NBC 조사에서 클린턴에 대한 호감도는 36%에 불과한 반면 비호감도는 두 배에 가까운 60%에 달했다. 반면 샌더스는 호감도 46%, 비호감도는 33%였다. 오랜 대중 노출에 따른 정치적 신선도 하락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클린턴은 22년 전인 1993년 대통령 부인으로 백악관에 입성한 이래 줄곧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왔고, 2008년에 이어 이번에 두 번째로 대선에 출마하지만 그를 다시 보게끔 만드는 차별화된 행보나 이슈를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언론과의 고질적인 갈등도 문제다. 공화당 1위인 도널드 트럼프도 언론과 사이가 좋지 않지만 이민법 개혁 등 중요 이슈를 놓고 공개적으로 격론을 벌이는 유형이어서 오히려 언론을 이슈 메이킹에 활용한다. 반면 클린턴은 언론 인터뷰를 피하거나 대선 관련 정보를 제때 제공하지 않아 갈등을 유발한다.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한미 관계에 해가 되지 않겠지만 도움도 안 될 것이다(No hurt, but no help).”(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선임연구원) 박근혜 대통령의 한중 정상회담과 열병식 참석으로 한중 관계가 긴밀해지는 것과 관련해 미국 내에서 걱정스러운 시선이 퍼져 가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방중을 마친 뒤 한 기내 기자간담회에서 “평화통일을 위해 중국 측과 다양한 논의가 시작될 것”이라고 한 게 알려지면서 한미동맹에 대한 근원적인 우려까지 감지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박 대통령 방중 직후인 4, 5일 e메일과 전화로 워싱턴의 한반도 및 동북아 전문가 8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해 동북아 정세 변화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응답자들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동북아 정책에 영향력을 미치거나 정부 내 기류를 잘 아는 이들이다.○ “중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나설 징후는 없다” 이들은 이번 박 대통령의 방중으로 북핵 해결을 위한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북핵 해결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근거나 정황은 아직 없다고 했다. 워싱턴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존 햄리 소장은 “중국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역할을 얼마나 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며 “이 문제는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자국 이익과 어떻게 연계시켜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잭 쿠퍼 CSIS 동북아담당 선임연구원도 “중국이 북핵이든 통일 문제든 한국이 원하는 수준으로 협력할 가능성은 낮다”며 “다만 한미 정상회담에선 방중 과정에서 이런 논의가 오간 것까지 감안해 동북아 정세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외교협회(CFR)의 한반도 전문가인 스나이더 연구원은 “박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주석으로부터 중국 정부가 북핵 문제를 해결에 얼마나 노력할지에 대해 무엇을 얻어 냈는지는 불투명하다”고 평가한 뒤 “오히려 이런 메시지를 국내 정치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방중을 계기로 만든 ‘북핵 및 통일 이슈’로 국정 주도권을 더욱 쥐려고 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존 틸럴리 전 주한미군사령관은 “중국은 이전에도 북핵 문제 해결과 남북통일을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할 기회가 많았는데 제대로 역할을 한 적은 없었다”며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방중만으로 중국의 기류가 바뀔지 의문이라는 것. 칼 베이커 CSIS 태평양포럼 소장은 아예 “중국의 대북정책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에 미국 우려 해소해야” 전문가들은 한중 밀착에 대한 미국의 우려가 분명히 존재하는 만큼 다음 달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한미 양국은 ‘열병식 참석이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국내외의 다양한 관측에 잘 대응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 간의 전략적 가치를 재확인하고 공조를 강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레그 브레진스키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미 정부 당국자들은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회의적으로 봤고 실제로 다소 걱정스러운 점도 있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아직은 한국이 동맹인 미국보다 중국에 더 가까워진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은 “한미일 관계에서부터 북핵 문제까지 한미 현안이 어느 때보다 치밀하게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인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우선 겉으로는 대단히 친절하고 예의바르다. 어릴 때부터 ‘감사합니다(Thank you)’와 ‘실례합니다(Excuse me)’가 입에 밴 사람들이다. 동시에 계산이 정확하다. 친구들끼리 화기애애하게 식사한 뒤에도 각자 지갑을 꺼내 밥값을 사람 수대로, 센트 단위까지 계산하는 게 일상화됐다. 무슨 문제가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의사 표현을 해 분명히 짚고 넘어가는 편이다. 이런 미국인들의 특징이 떠오른 것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 알래스카 주 앵커리지 북극 외교장관회담에서 만난 존 케리 미 국무장관에게 소나무 묘목이 담긴 사진을 전달했을 때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열병식(3일) 참석 같은 변수에도 한미 동맹은 상록수인 소나무처럼 변치 말자는 염원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이에 감사를 표한 케리 장관은 윤 장관에게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한국 정부가 나름대로 성의를 보인 만큼 미 정부도 이번 방중을 수긍한 듯했다. 하지만 중국의 사상 최대 ‘군사 쇼’를 접한 미국의 표정은 ‘소나무 이벤트’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뉴욕타임스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인민해방군 30만 명 감축안에 대해 “동북아 군사적 긴장 완화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박 대통령이 미국의 우방 정상 중 유일하게 열병식에 참석해 중국에서 미 본토를 공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둥펑-31A) 등을 관람한 데 대해서도 매체 불문하고 비판 일색이다. 물론 박 대통령이 중국을 활용해 ‘북핵 해결 모멘텀’을 만들고 주요 2개국(G2)인 미중 사이에서 외교적 공간을 창출하려는 노력에 미국이 딴죽을 걸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이란 핵협상 등 다른 외교 현안 때문에 북핵 문제에 사실상 손놓고 있는 만큼 이번 일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문제는 이런 노력도 굳건한 한미동맹이 근간이어야 하는데, 이제는 대놓고 간과되고 있다는 분위기가 워싱턴에서 뚜렷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 상황에서 아직은 미국이 중국보다 한국 편이라는 사실은 북한의 8월 도발 과정에서 재확인됐는데도 말이다. 방중을 마친 박 대통령은 이제 다음 달 16일 워싱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미국은 벌써부터 답을 기다릴 것이다. 중국과 가까이하면서 한미동맹을 어떻게 유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 말이다. 그러면서 동맹 유지비가 적힌 ‘계산서’를 들이밀 수도 있다. 다양한 목록이 가능할 것이다. 한미일 삼각 협력 강화를 위해 빨리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라는 것일 수도 있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 건 같은 것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워싱턴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북한이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당 기념일에 맞춰 미사일 발사라도 하면 그나마 북핵 문제를 놓고 한미 공조 강화라도 논의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서로 서먹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거의 여왕’인 박 대통령에게 중국과의 협력 강화는 정치적으로 풀면 ‘표의 확장성’, 그러니까 산토끼(중국)까지 잡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집토끼인 미국이 제자리에 있지 않고서는 소용없는 일이다. 집만 나서면 각양각색의 상록수가 지천인 미국인들에게 매일 보는 나무와 엇비슷한 사진 하나 주면서 “이것저것 계산 말고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한국 편이 되어 달라”는 부탁이 통할 거라고 기대했다면 너무 안이하다. 박 대통령 취임 후 가장 어렵고 고차원의 외교 방정식이 필요한 정상회담이 40일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
첨단 신무기를 대거 공개하며 군사력을 과시한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에 대해 미국 국방부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미 국방부 피터 쿡 대변인은 3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왜 미국은 열병식을 통해 신무기를 선보이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미군은 세계 최강의 군대”라며 “열병식은 우리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다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현재의 중국군은 절대 미군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평가를 깔고 얘기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이어 “사람들은 미국의 힘, 우리 군대의 힘을 알고 있으며 이를 의심하지 않는다. 우리가 군사 퍼레이드를 통해 우리의 능력이 어떻다는 것을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 열병식에 첨단 신무기들이 등장한 것에 대해선 “놀랄 일이 아니며, 예측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다”라고 평가 절하했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도 중국 열병식과 관련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병력 30만 명 감축을 선언하고 과거에 당한 것을 다른 국가에 강요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주변국들이 이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FT는 “시 주석의 부드러운 외교적 언어에도 불구하고 군사력 과시 속에 숨은 깊은 뜻을 가릴 수는 없다”며 “주변국들이 중국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지적했다. FT는 이어 6년 만에 진행된 이번 열병식은 중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어느 때보다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는 가운데 나왔다면서 중국의 비타협적인 자세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갈등 속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중국의 열병식을 ‘일본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이며 강하게 반발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시진핑 정권이 ‘항일’ 열병식을 열고 역사문제와 힘을 통한 위협으로 일본을 흔들려는 자세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며 “열병식은 미국과 일본이 동중국해나 남중국해에서 유사시 개입하면 상응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의 열병식 참석에 대해선 “미국의 동맹이면서 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의 박 대통령이 참석한 것은 돌출행동이며 유감”이라고 각을 세웠다. 산케이신문은 열병식을 ‘중국 반일 외교의 집대성’이라고 표현했으며 중국을 ‘질서의 파괴자’라고 비아냥거렸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은 4일 기자회견에서 “중국 측에 행사가 반일적인 것이 아니라 일중 화해의 요소를 포함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그런 요소를 볼 수 없었다”며 유감의 뜻을 나타냈다.베이징=구자룡특파원 bonhong@donga.com·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
미국 등 서방 주요국과 이란이 만들어낸 핵협상 합의안(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 원안대로 미 의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커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를 지키는 데 사실상 성공하면서 큰 외교적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바버라 미컬스키 상원의원은 2일 상원에서 34번째로 이란 핵협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컬스키 의원은 성명을 내고 “미 의회가 합의안을 부결시킨다고 해서 이란이 일부 정치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미국을 주축으로 서방 주요국들이 힘을 합칠 때 이란의 핵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핵협상에 부정적인 기류가 다수인 상원에서 핵협상을 부인하는 결의안을 내놓을 경우 거부권으로 맞설 방침이었다. 그런데 미컬스키 의원의 지지 선언으로 상원 내 이란 핵합의안 지지 의원 수가 모두 34명으로 증가하면서 상원이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킬 방법이 사라졌다. 상원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키려면 전체 100석의 3분의 2가 넘는 67석 이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서 민주당 크리스 쿤스, 밥 케이스 상원의원도 1일 이란 핵협상 지지를 선언했다. 지금까지 핵협상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상원의원 34명 중 32명은 민주당, 2명은 무소속이다. AP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과 이스라엘의 거센 반대에도 기념비적인 외교 정책의 승리를 지켜낼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이날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를 방문한 자리에서 “만일 의회가 이란 핵합의안을 거부한다면 중동지역은 훨씬 더 위험해질 것”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제는 하원이 어떻게 나올지가 관건이다. 공화당의 하원 의석수는 246석으로, 민주당(188명)과 무소속(1명)으로부터 44표의 이탈표를 끌어내야 오바마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킬 수 있으나 쉽지 않은 상황이다. 낸시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이날 핵합의안에 대한 지지를 밝히면서 소속 의원들에게도 하루빨리 지지 입장을 공개 천명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핵합의안에 대한 미 의회의 검토 시한이 17일로 끝나기 때문에 그 전에 합의안의 의회 최종 통과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중국 열병식에 일본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으며 서방 국가들도 급팽창하는 중국의 군사력을 경계하는 반응을 보였다. 일본 정부 대변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3일 “행사에서 반일(反日)이 아닌 화해의 요소를 담길 바란다는 내용을 전달했는데, 이런 요소가 보이지 않아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또 “과거 불행한 역사에 집중할 게 아니라 국제사회가 직면한 공통 과제에 미래지향적으로 임하는 자세를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에 대해서는 “코멘트를 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고 한중일 정상회의에 대해서는 “상대가 요청하면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스가 장관은 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참석을 두고 “쓸데없이 과거에 초점을 맞출 일이 아니다. 극도로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집권 여당인 자민당은 “유엔에 항의문을 보내겠다”고 했다. 미국은 일본 껴안기에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일 태평양전쟁 종전 70주년 기념 성명을 내고 “태평양전쟁의 종전 이후 70년을 거쳐 온 미일 관계는 화해의 힘을 보여주는 모델”이라며 “과거의 적이 견고한 동맹이 되어서 아시아와 글로벌 무대에서 공통의 이해와 보편적 가치를 증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존 케리 국무장관도 성명에서 미일의 지속적 동반자 관계를 강조했다. 미 언론들은 중국 열병식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냈다. 뉴욕타임스(NYT)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열병식은 시진핑 체제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여긴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중국이 비둘기와 무기를 뒤섞어 제2차 세계대전 승리를 기념한다”며 “이번 열병식은 2차대전으로 고통받았던 과거의 중국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 영국 프랑스 대통령 등이 참석하지 않은 것은, 참석 시 또 다른 우방인 일본을 자극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한편 미 국방부는 중국 해군 함정 5척이 러시아와 미국 알래스카 사이의 베링 해에 나타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2일(현지 시간) 밝혔다. 중국 함정이 알래스카 앞바다인 베링 해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중국 군함들로부터 어떠한 종류의 위협이나 위협적인 행동을 감지하지 못했다면서 중국의 의도에 대해선 “여전히 불분명하다”고 브리핑했다. 중국의 이번 행동은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 목적이라기보다는 해군력 확장을 널리 알리고 북극 진출에서 뒤지지 않으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미국 등 서방 주요국과 이란이 만들어낸 핵협상 합의안(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이 사실상 원안대로 미 의회를 통과하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란 핵합의를 지키는데 사실상 성공하면서 큰 외교적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 바버라 미컬스키 상원의원은 2일(현지 시간) 미 상원에서 34번째로 이란 핵협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핵협상에 부정적인 기류가 다수인 미 의회에서 핵협상을 부인하는 결의안을 내놓을 경우 거부권을 행사할 방침이었다. 그런데 미컬스키 의원이 이날 지지로 돌아서면서 상원 내 이란핵합의 지지 의원 수가 모두 34명으로 늘어났다. 미 상원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시키려면 전체 100석의 3분의 2가 넘는 67석 이상이 필요하다. 결국 미컬스키 의원의지지 선언으로 거부권 무력화에 필요한 67석 확보가 불가능해진 셈이다. 미컬스키 의원은 이날 성명을 내고 “미 의회가 합의안을 부결시킨다고 해서 이란이 일부 정치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미국을 주축으로 서방 주요국들이 힘을 합칠 때 이란의 핵 활동을 억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 크리스 쿤스, 밥 케이스 상원의원도 1일 이란 핵협상 지지를 선언했다. 지금까지 핵협상을 지지하겠다고 밝힌 상원의원 34명 중 32명은 민주당, 2명은 무소속이다. 미 상원이 이란 핵협상을 부결시킬 가능성이 극히 낮아지면서 이번 협상은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하반기 최대 외교 치적으로 남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이에 따라 공화당은 합의를 부결하는 결의안을 낼 지조차 불투명한 상황. 이와 관련해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은 지난달 17일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가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원하는 방향으로 (의회 분위기가) 진행되고 있고 그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 바 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ddr@donga.com}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사진)은 박근혜 대통령이 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전승절 기념행사와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다”는 입장을 한국 정부에 전했다. 케리 장관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 알래스카 주 앵커리지 시에서 열린 북극 외교장관회의에 참석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국의 건설적인 역할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외교부가 밝혔다. 두 장관은 또 9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미 워싱턴 방문, 10월 워싱턴에서 진행될 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등 정상 외교 일정 속에서 긴밀한 전략적 대화를 계속하기로 했다. 이는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이 북한에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한 만큼, 한미 양국이 이를 유도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겠다는 의미여서 주목된다. 특히 윤 장관은 북한 핵 능력의 고도화를 막기 위해 한미중 차원의 협의를 강화하자는 방안을 제시했고 케리 장관도 이를 경청한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미 정부는 당초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불쾌감을 갖고 있었지만 최근 행사 자체는 인정하는 등 미래 지향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황준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이날 오후 우다웨이(武大偉)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 만나 정상회담 주요 의제인 북핵 문제에 대한 입장을 조율했다. 미 국무부는 대니얼 러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가 이달 6∼8일 베이징을 방문해 고위 관리들을 만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러셀 차관보는 남북한 합의와 한중 정상회담 직후에 한중 관계 및 북한 관련 동향 등을 중국 측과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윤 장관은 이날 케리 장관에게 ‘늘 푸른 동맹’을 상징하는 소나무 묘목을 선물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윤 장관은 실물 사진을 보여 줬고 케리 장관은 크게 웃으며 사의를 표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와 버니 샌더스(민주당)에 이어 또 다른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신경외과 의사 출신 벤 카슨 후보(공화당·사진)가 미국 대선 정국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미 현지 언론은 기성 워싱턴 정치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가 역대 어느 미 대선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으로 분출된 결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앵그리 아메리칸(Angry American)’이 미 정치판을 뒤흔들고 있는 것.○ 트럼프에 이은 또 다른 아웃사이더 카슨 미 몬머스대가 지난달 27∼30일 아이오와 주의 공화당 성향 유권자 405명을 상대로 실시해 지난달 31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카슨은 23%의 지지를 얻어 트럼프와 공동 1위를 차지했다. 아이오와 주는 내년 2월 1일 미국에서 대선 주자 선출을 위한 첫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대선 민심의 ‘바로미터’로 통하는 곳이다. 또 다른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칼리 피오리나 전 HP 최고경영자(CEO)도 10%를 얻어 트럼프와 카슨의 뒤를 이었다. 반면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는 5%,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9%를 얻는 등 기성 정치인은 부진을 면치 못했다.○ 공화당원들의 불안감 증폭 미 언론은 이 같은 이변이 달라진 정치 지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특히 공화당 아웃사이더들의 약진은 미 유권자 구성이 점점 더 민주당에 유리한 쪽으로 변하는 데 대한 공화당원들의 불안감이 반영됐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뉴욕과 로스앤젤레스(LA) 등 동·서부 해안 대도시는 민주당, 중남부 소도시는 공화당이 우세였다. 그런데 금융위기 등으로 일자리와 소득이 줄자 대도시에 살던 민주당 지지층이 물가가 싼 공화당 주(州)로 이동하면서 전통적인 레드 스테이트(red state·공화당 지지주)가 줄어들고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인구통계국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00년 이후 민주당 텃밭인 뉴욕 주에서 태어나 살던 미국인 2000만 명 중 무려 16.7%가 남부로 이동했다. 50년 전만 해도 4%에 불과했다. 공화당 지지세가 강하던 노스캐롤라이나 주만 해도 현재 전체 인구의 41%가 민주당 지지주(blue state)에서 이주한 사람들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39%), 유타(34%), 조지아(30%) 등도 마찬가지다. 수도 워싱턴 인근의 버지니아 주는 원래 보수 성향이 강했지만 워싱턴에 일자리를 보고 몰려든 민주당 성향의 북동부 출신 젊은이들로 인해 민주당 지지 주로 바뀌었다. 블룸버그는 공화당 대선주자들의 이른바 ‘리포미콘(reformicon)’ 움직임을 주목했다. 리포미콘은 ‘개혁(reform)’과 ‘보수주의(conservatism)’의 합성어로 이민법, 최저임금 인상, 동성결혼, 남부기 퇴출 등 핵심 현안에서 공화당이 진보 색채를 가미하는 현상을 말한다.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가 “인종주의의 상징인 남부기를 퇴출해야 한다”고 말하거나 공화당 대선주자 중 강경파로 꼽히는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 등이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연설 주제로 삼는 것이 대표적이다.○ 확산되는 기성 정치 혐오 미 대선은 아직 1년이나 남아 있지만 요즘 미국 언론은 “누가 됐든 ‘워싱턴 아웃사이더’가 대선에서 승리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급상승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앞서 언급한 몬머스대 조사에서 ‘워싱턴 밖 인물이 집권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6%로, ‘기성 정치인이 집권해야 한다’(23%)는 응답보다 3배가량 많았다. 아이오와 주도 디모인 시의 현지 매체인 ‘디모인 레지스터’가 블룸버그와 공동으로 실시해 지난달 30일 공개한 조사 결과에서도 공화당 지지자의 91%, 민주당 지지자의 82%가 현 정치권에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의 29%, 민주당 지지자의 22%는 현 정치권에 ‘미치도록 화가 난다(Mad as Hell)’고 답해 여야를 불문하고 미 대중의 정치 혐오가 극에 달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예외가 아니다. 디모인 레지스터 여론조사 결과 민주당의 아웃사이더 버니 샌더스와의 지지율 격차가 5월 57% 대 16%에서 37% 대 30%로까지 좁혀졌기 때문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또 선거자금 모금에 핵심적 역할을 해온 이마드 주베리(45)가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수백만 달러를 받고도 법무부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최근 포린폴리시 보도로 궁지에 몰렸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 하정민 기자}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들이 ‘막가파’식 이민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돌풍의 주역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자”라는 발언에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아시아인 등 소수 인종에 대한 백인 주류 사회의 잠재된 불만을 자극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8월 29일 뉴햄프셔 주 타운홀 미팅에서 “(세계적 물류 회사)인 페덱스는 당신의 화물이 어디 있는지 실시간으로 알려주지만 우리는 사람(외국인)들이 입국하는 순간 그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없게 된다”며 “외국인 입국 후 비자 기한이 끝날 때까지 추적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민자를 ‘페덱스 화물’ 취급한 발언이 알려지자 트위터 등에는 “지지율을 올리려고 트럼프 따라 하기에 나섰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지지율이 정체된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는 8월 30일 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캐나다 국경에도 장벽을 설치하는 것을 지지하느냐’는 질문에 “논의해볼 만한 아이디어”라고 답했다. 이어 “미국이 공항과 항만 경비에 수백만 달러를 쓰는데 국경에 대해서도 비슷한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현상에 대해 “트럼프 돌풍 후 공화당 주자들이 보수적 이슈를 서슴지 않고 꺼내 드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다음 달 3일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리 70주년(전승절) 열병식에 참석하려는 계획에 반대한 일본 정부에 대해 29일 “역사의 교훈을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것”이라며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앞서 일본 언론들은 28일 유엔 사무총장이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중립성에 문제가 있다며 일본 정부가 반 총장에게 항의했다고 보도했다. 유엔 소식통에 따르면 반 총장은 일본의 항의와 관련해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로부터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며 “중국에서 열리는 열병식에 참석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유엔 관계자는 “올해 세계 각국에서 2차 대전 종전 70주년 기념행사가 열리는데 반 총장이 특정 국가의 행사에만 참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중립성에 문제가 생긴다”고 전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20일 새벽(현지 시간) 북한이 서부전선에서 포격 도발을 가했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가 나온 직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방부, 국무부 등을 중심으로 신속한 대응태세에 돌입했다. 각 부처는 한미연합사령부 등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분석해 매사추세츠 주 마서스비니어드 섬에서 휴가 중인 오바마 대통령에게 상황을 긴급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이번 도발을 감행한 김정은 정권의 불가측성을 가장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동아일보 기자에게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보다 더 예측하기 어렵다”며 “추가 도발을 감행해 한반도에 긴장을 장기화시킬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번 도발이 2012년 김정은 체제 출범 후 첫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인 만큼 오바마 행정부는 도발의 구체적 정황과 배경을 분석하는 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 발표 후 거의 5시간이나 지나 국무부가 “북한은 동북아 역내 평화와 안정을 해치는 언행을 자제하라”는 공식 논평을 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 과정에선 미중 간 핫라인도 가동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는 박근혜 정부의 대응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한 관계자는 “미국은 한반도의 긴장을 원하지 않지만 ‘북한 도발에는 응징할 수밖에 없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의 괴팍한 기질로 인해 정권 차원의 ‘오판’이 나올 수 있고 ‘레드라인’을 넘어 한미동맹 차원의 대응을 촉발하는 상황이 조성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김정은이 잇단 실정(失政)과 잔학성으로 커진 내부 갈등을 바깥으로 분출시키기 위해 대외 도발을 감행했다”고 분석했다. CNN 등 주요 언론은 전날 북한 포격에 이어 이날 북한의 준전시상태 선포와 전방 화력 배치를 머리기사로 전하며 “북한의 호전적 언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 우려할 만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고 전했다.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신석호 특파원}
이쯤되면 이제 ‘힐러리 대세론’은 없던 일이 됐다고 할 수 있다. ‘워싱턴 아웃사이더’인 공화당 선두 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광풍과 민주당 주자로 나선 버니 샌더스의 돌풍으로 미 유권자의 지지 성향 자체가 변하고 있다. CNN은 여론조사기관 ORC와 공동으로 13일부터 16일까지 미 성인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최신 여론조사를 19일 공개했다. 동아일보가 여론조사자료 전체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이런 흐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① 지지율 50% 무너진 힐러리 이번 조사에서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민주당 성향 유권자로부터 48%의 지지를 받았고, 샌더스 상원의원은 27%로 추격했다. 지난달 22~25일 실시된 같은 기관조사에선 클린턴 57%, 샌더스 18%로 클린턴은 한달도 안돼 9%포인트가 떨어졌다. CNN이 지난해 11월부터 공식 대선 여론조사를 실시한 이래 클린턴이 지지율 50% 아래로 추락한 것은 처음. 공화당 주자와의 가상 양자 대결에서도 클린턴의 추락과 트럼프의 도약은 도드라졌다. 클린턴과 트럼프의 양자 대결에선 각각 51%, 45%를 얻어 두 주자 간 차이는 6% 포인트에 불과했다. 지난달 조사에선 클린턴 56%, 트럼프 40%로 16%포인트 차였고, 6월에는 59%, 35%로 24% 포인트 차였다. 둘의 격차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것. 반면 클린턴이 트럼프 돌풍으로 고전하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와 대결하면 상황이 달랐다. 클린턴은 52%, 부시는 43%로 9%포인트 차였다. 지난달에는 51% 대 46%로 5%포인트 차. 이는 ‘클린턴 대 부시’ 대결 시에는 클린턴을 지지하던 부동층 중 일부가 ‘클린턴 대 트럼프’ 대결에선 트럼프로 옮겨가는 것으로 CNN은 분석했다. ② 힐러리 호감도, 22년 만에 사상 최악 클린턴에 대한 호감도는 44%, 비호감도는 53%로 비호감도가 9%포인트 더 높았다. 지난달 조사에선 호감 45%, 비호감 48%였다. CNN은 클린턴이 영부인으로 백악관에 입성한 1993년부터 매년 호감도 조사를 해왔는데 호감도 44%는 22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 비호감도는 처음으로 50%를 넘었다. 여기에는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 계정으로 국가 기밀을 주고받았다는 ‘이메일 게이트’ 등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CNN이 이번 조사에서 이메일 게이트와 관련해 클린턴이 잘못했다는 응답은 56%, 잘못 없다는 39%였다. 5개월 전인 3월 조사에선 잘못했다가 51%, 잘못 없다가 47%로 큰 차이가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 의혹과 관련한 클린턴 옹호론은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③ 기성 정치에 분노한 유권자, 대선 투표 의지 급증 이런 미 유권자들 중 내년 대선에서 꼭 투표하겠다는 비율은 급증하고 있다. 내년 대선에 꼭 투표하겠다고 응답한 유권자는 56%로 지난달 48%보다 8%포인트 증가했다. 클린턴이 판세를 뒤집을 이슈를 내놓지 못하면 기성 워싱턴 정치에 분노한 유권자들의 트럼프와 샌더스에 대한 지지가 더 강해질 수 밖에 없다. 이 조사가 공개되자 클린턴 측은 당황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이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컬럼비아 시에서 열린 행사에서 클린턴 지지자들은 “염려를 넘어 실망스럽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WP는 전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미국 대선 경선의 공화당 선두 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요즘 자신의 캐치프레이즈인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자(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적힌 모자를 자주 쓴다. 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선거캠프 관계자들은 ‘힐러리를 대통령으로(Hillary for America)’라는 구호가 적힌 티셔츠를 자주 입는다. 이 제품들은 선거캠프 관계자들이 입는 ‘비매품’이 아니다. 대선 주자 홈페이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 중인 공식 선거상품이다. 대선 주자들이 쇼핑몰을 통해 물건을 팔아 선거자금을 모으고 인지도도 높이는 미국만의 독특한 선거문화다. 우리로 치면 ‘박근혜 모자’ ‘문재인 티셔츠’를 파는 셈이다. 이전 대선 때에도 유사한 쇼핑몰이 있었지만 어느 때보다 ‘돈 선거’ ‘이미지 캠페인’이 강조되는 2016년 대선에선 더욱 경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대선 주자들이 판매하는 상품은 모자, 티셔츠 등으로 엇비슷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차이점이 있다. 막말 논란의 트럼프는 선거 메시지가 분명한 만큼 상품 이미지나 구성도 간결하고 분명하다. 티셔츠의 경우 미국인이 가장 즐겨 입는 라운드, 브이넥으로 스타일을 한정해 남녀 구분 없이 20달러(약 2만3000원)에 판다. 이미 자신의 이름을 내건 남성 의류를 출시한 경험이 있는 만큼 전문 모델을 동원해 고급 상품 못지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모자도 야구 모자, 군 스타일 모자 두 종류를 25달러(약 2만9000원)에 판다. 클린턴 전 장관의 상품 카테고리는 훨씬 다양하다. 티셔츠도 라운드, 브이넥은 물론이고 탱크톱, 클린턴 전 장관 얼굴이 프린트된 박스 티셔츠 등 13종이나 된다. 가격은 20달러에서 30달러(약 3만5000원)까지 좀 더 비싸다. ‘Grillary(Grill+Hillary)’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는 바비큐용 앞치마까지 있다. 그러나 종류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막상 손이 가는 제품은 별로 없는 뷔페식당 같은 느낌을 준다. 중산층 경제 활성화 대책 등 다양한 정책을 발표했지만 아직 대표 어젠다가 없어 지지율이 흔들리는 클린턴 전 장관의 캠페인과 비슷하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클린턴 전 장관을 맹추격하고 있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의 쇼핑몰은 ‘중산층 경제 살리기’에 집중하는 그의 선거전략만큼이나 파는 제품도 간소하다. 의류는 티셔츠 한 종류를 색깔만 달리해 15달러(약 1만7000원)에 전시해놓고 있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민하고 있는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의 쇼핑몰은 판매 제품이 너무 많을 뿐 아니라 관리 상태도 허술하다. 25달러인 티셔츠 중 일부는 구겨진 제품이 쇼핑몰에 그대로 전시돼 있어 트럼프 돌풍에 직격탄을 맞아 정신없는 부시 선거캠프의 속내를 짐작게 한다. 칼리 피오리나 전 HP 최고경영자, 벤 카슨 전 신경외과 의사 등 다른 주자들은 아직 온라인 쇼핑몰을 개설하지 않았다. 아직 주자별 쇼핑몰 판매액은 집계되지 않았다. 미 언론들은 이르면 다음 달에는 쇼핑몰을 통한 선거자금 모금 중간 집계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야, 트럼프다!” 15일 오후 미국 아이오와 주 디모인 시의 주 박람회장 상공에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전용 헬기를 탄 채 모습을 보이자 많은 사람들이 올려다보며 이렇게 환호했다. 아이오와는 내년 2월쯤 미국에서 가장 먼저 코커스(당원대회)가 열려 ‘대선 풍향계’로 불리는 만큼 후보들에게는 ‘유세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이날 행사에는 공화당의 트럼프와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무소속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등 대선 주자들이 총출동했지만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후보는 다름 아닌 트럼프와 샌더스였다. 많은 사람이 주위로 몰리자 트럼프는 “내 곁에 모인 사람이 힐러리보다 10배쯤 더 많다”고 떠벌렸다. 샌더스 의원이 박람회 한쪽 연단에서 정치개혁을 역설하자 1000여 명의 관중이 몰려들어 박수를 쳤다. 이날 디모인 시의 현장은 미 정치의 뿌리인 공화 민주 양당 체제의 이방인인 비주류 아웃사이더 후보인 두 사람의 인기가 새삼 확인된 자리였다. 가장 최근인 12일 여론조사에서도 두 사람의 약진은 두드러진다. 트럼프는 CNN이 아이오와 주 공화당 성향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23%로 1위를 차지하며 벤 카슨 전 신경외과 의사(14%),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9%), 젭 부시(5%) 를 여유 있게 제쳤다. 트럼프 광풍에는 못 미치지만 샌더스 돌풍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샌더스는 12일 보스턴헤럴드가 실시한 뉴햄프셔 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유권자 중 44%의 지지를 얻어 37%의 클린턴 전 장관을 제치는 이변을 연출했다. 15일 기자가 방문한 워싱턴 인근 레스턴 지역의 한 ‘파머스 마켓’(농산물 직거래 장터)에서도 샌더스 돌풍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샌더스 지지자들은 자원봉사자로 나서 유권자들의 서명을 받고 있었다. 내년 3월 버지니아 주 민주당 대선 경선(프라이머리)에 나서기 위해선 주 유권자 1만 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를 조직이 아니라 자원봉사자들이 맡고 있는 것. 자원봉사자 3명은 이날 3시간 만에 1000여 명의 서명을 거뜬히 받아냈다. 기자에게도 서명을 권유한 샌더스 지지자 제니퍼 아나킨 씨는 “오랫동안 공화당원이었는데 요즘 워싱턴 돌아가는 것을 보니 도저히 믿을 수도 기대할 것도 없다”고 열변을 토했다. 12일 미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시에서 열린 지지 집회에는 2만7500명이 모이기도 했다. 클린턴 전 장관이 이번 대선 출마 선언 후 가장 많이 군중을 모은 행사는 이의 5분의 1에 불과한 5500명이었다. 트럼프와 샌더스 같은 ‘워싱턴 이방인’이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기성 정치에 실망한 미국의 유권자들이 급속히 무소속화되어 가고 있으며 기성 정치에 대한 심각한 경고음을 발신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퓨리서치센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미국인 중 자신이 무소속이라고 밝힌 비율은 39%였고 민주당은 32%, 공화당은 23%였다. 39%는 1950년대 이후 가장 높은 무소속 비율이다. 미국민들은 왜 기성 정치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 우선 중산층 경제가 여전히 침체인 것과 닿아 있다. 트럼프가 중국, 인도와의 통상 마찰을 감수하면서라도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며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외치는 구호가 먹히는 것도 백인 중산층의 심리를 꿰뚫은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는 분석했다. 또 샌더스 의원은 2월 브루킹스재단 세미나에서 현재 미국 사회를 ‘억만장자에 의한, 억만장자를 위한, 억만장자의 사회’라고 비판했다. 트럼프, 샌더스 모두 ‘워싱턴의 때’가 덜 묻었다는 이유로 일종의 ‘묻지 마 지지’ 현상이 벌어지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이 최후의 승자가 될지는 아직 섣부른 판단이다. 비판만 난무할 뿐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오바마 케어,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이 무조건 잘못됐다고만 비판하면서 대안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샌더스 의원도 월스트리트 금융권 개혁에 집중할 뿐 국제정치 지형에서 향후 미국의 역할 등 다른 주요 이슈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이들이 롱런할지는 향후 내놓을 다양한 분야의 정책과 비전을 보고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워싱턴=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