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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미터 앞에서 ‘살려주이소, 좀 살려주이소’ 소리쳐서 어찌든 도울라꼬 움직이려는 찰나에 산 한 개만한 흙더미하고 바위가 확 몰아쳐서 계곡 따라 쏟아지더니 그 자리 집을 그냥 통째로 쓸어가뿌리는기라.”20일 오전 8시 반경 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 마을 산사태 현장 인근에서 만난 황산 스님(62)이 전날 산사태로 이웃주민들을 상당수 잃었다며 망연자실해하고 말했다. 그는 “장대비가 쏟아진 지 5분도 안 돼 암자 옆 컨테이너와 집 채만한 바위덩어리가 토사에 휩쓸려 수십 미터 떠내려 갔다”며 “좀 시간이 있었다면 이웃들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산청에선 이번 폭우로 총 10명이 사망하고 4명 실종됐다.● 눈 앞에서 ‘살려달라’고 하는데도 못 구해이날 오전 찾은 내리 마을은 산사태 당시 처참한 상황 그대로였다. 매몰 주택 마당에는 흰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1대가 찌그러져 있었고, 집은 포탄을 맞은 듯이 한중간이 움푹 패인 상태였다. 마당엔 성인 무릎 높이의 뻘이 가득해 발이 쉬이 빠지지 않을 정도였다.내리 마을에선 전날 오전 10시 46분경 산사태로 주택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해 40대 남성 1명과 7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여성의 남편인 70대 남성만 대피할 곳을 찾기 위해 이동했다가 구조됐다. 사망자는 장모와 사위 사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망자들은 갑자기 벌어진 산사태에 미처 피할 새도 없이 휩쓸렸다. 한 주민은 “1명은 화장실을 향하던 길에, 마당에 있던 다른 1명은 허리 높이까지 몸이 빠친 채로 빠져 나오려다 미처 움직일 수 없었던 상황에 매몰됐다”라고 말했다. 산사태로 도로 곳곳이 끊기며 소방당국이 제때 출동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민들은 “소방대원들이 우회로로 빙빙 돌아오는 동안 살아남은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한 주민은 “‘살려달라’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구할 수 없어 마음이 찢어졌다”고 눈시울을 붉혔다.●759mm 비, 사상 첫 ‘전 군민 대피령’ 내렸지만…이날 역시 산사태 피해를 입은 산청읍 부리 내부 마을도 곳곳에 진흙과 건물 잔해가 가득했다. 도로와 교량은 끊겨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 마을에서는 축사를 운영하던 70대 부부가 사망했다. 인근 부모님 식당에서 부모님을 도우며 작가를 꿈꾸던 20대 여성도 숨졌다. 강민정 씨(53)는 “돌아가신 분을 모두 들어봤거나 아는 사람들이다. 특히 한 분은 어제까지도 ‘옷이 예쁘다’라며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인데 갑작스레 돌아가니까 너무 허탈할 따름”이라고 말했다.산청에는 16일부터 4일간 지난해 전체 강수량의 절반이 넘는 759mm의 비가 내렸다. 군은 산청읍에서 산사태가 난 직후인 오후 ‘전 군민 대피령’을 내렸다. 단일 지방자치단체가 관할 전 지역을 대상으로 대피를 권고한 것은 처음이다. 소방당국은 전날 오전 10시 20분에 대응 1단계를 발령했다가 1시간 뒤 2단계를, 같은 날 오후 1시부터는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해 피해 수습에 나서고 있다.일각에선 전 군민 대피령을 내리기 전 이미 사망자 및 실종자 다수가 발생한 상황인 점을 근거로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주민 대피령은 19일 오후 1시 50분 경 내려졌지만, 이미 산청읍에서 산사태로 사망자가 발생한 이후였다.● 3월 화마-7월 수마, “어떻게 살란 말인가” 3월 역대 최악 산불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산청군은 넉 달만에 수마로 큰 피해를 입으면서 군 전체가 큰 실의에 빠졌다. 1600여 가구, 2100여 명이 임시 대피한 대피소에서는 “우리는 어떻게 살라는 말이냐”는 탄식이 곳곳에서 새어나왔다. 산불로 산림이 훼손되고 나무를 베어내면서 수마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도 나왔다.시천면에서 만난 주민 손경모 씨는 “올 봄 산불 때문에 마을 전체가 아직도 난리도 아닌 상황인데 비 피해까지 갑작스레 닥치니 마을 주민 전체가 한 마디로 ‘멘붕’(멘탈붕괴)인 상태”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산청읍 내리 마을 앞에서 만난 60대 주민은 “산청에 평생 살면서 한 해에 불난리와 물난리가 동시에 난 것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것도 처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산청읍 주민 송모 씨(63)는 “눈 앞에서 사람이 살려달라고 하는 걸 보고 트라우마에 걸려서 정신안정센터로 가신 분도 계시고 지체장애인인 주민이 가까스로 소방대원의 도움을 받아 탈출하기도 했다”라며 “하늘이 참 무심하다”고 말했다.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산청=정서영 기자 cero@donga.com산청=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논란 속에서 상처받았을 보좌진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개최한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제기된 ‘갑질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강 후보자는 쓰레기 분리배출 지시 여부에 대해 “전날 먹던 음식을 먹으려다 차에 남겨 놓은 것”이라고 했고, 비데 수리 지시 의혹에 대해선 “조언을 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의혹을 부인하던 기존 입장과는 달라진 해명을 내놓은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갑질 여왕’은 즉각 사퇴하라”며 총공세를 펼쳤다.● 姜 “전날 먹던 것 차에 남긴 것”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강 후보자의 갑질 의혹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달희 의원은 강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분리배출을 지시했다는 쓰레기가 찍힌 사진을 공개하며 “음식물 쓰레기, 일반 쓰레기가 뒤범벅이 돼 있다. 증거 사진 속 엘리베이터가 후보 자택이 맞느냐”고 물었다. 이 의원은 음식물과 쓰레기가 담긴 봉지를 가져와 강 후보자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대해 강 후보자는 “전날 밤에 먹던 것(음식)을 아침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 먹으려고 가지고 내려갔던 적이 있다. 그것을 다 먹지 못하고 차에 남겨 놓고 내린 건 제 잘못”이라고 해명했다.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 아침 식사였다는 취지다. 이에 앞서 전직 보좌진은 “집에 쓰레기가 모이면 (강 후보자가) 그냥 일상적으로 갖고 내려온다. 상자를 보면 치킨 먹고 남은 것, 만두 시켜 먹고 남은 것, 일반 쓰레기들이 다 섞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당시 강 후보자 측은 “가사도우미가 있어 쓰레기 정리 등 집안일을 보좌진에게 시킬 필요가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청문회에선 보좌진이 쓰레기를 처리한 사실관계는 인정한 것이다. 강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자택의 비데를 수리토록 지시했다는 의혹도 문제가 됐다. 강 후보자는 “지역 사무소 보좌진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하고 부탁을 드렸던 사안”이라며 “(비데) 부품은 관련 업체를 통해 교체했다”고 했다. 이 역시 “‘집이 물바다가 됐다’고 한 보좌진에게 말한 적은 있지만 수리를 부탁한 적은 없다”고 했던 당초 해명과 달라진 것이다. 강 후보자는 “그런 것이 부당한 업무 지시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차마 생각을 못 했다. 보좌진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보좌진 고발 여부 놓고 위증 공방도 강 후보자의 갑질 의혹을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 전직 보좌진 2명에 대한 강 후보자 측의 법적 대응 여부도 논란이 됐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이 “보좌진 2명에 대해 고발 조치를 하겠다고 ‘입틀막’을 하고 계시다”라고 지적하자 강 후보자는 “한 적 없다. 예고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고,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저 고운 얼굴, 고운 목소리로 거짓말을 하고 계시다”라면서 위증 의혹을 제기했다. 전날 강 후보자 측 관계자가 여당 의원실에 배포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에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제보하고 있는 전직 보좌진 2명으로 파악. 모두 법적 조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 근거였다. 그러나 강 후보자는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고 맞섰다. 강 후보자가 퇴직한 보좌진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의원은 “(사직하는 보좌진에게) 권고사직 처리를 안 해줘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퇴직 후 취업 방해까지 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강 후보자는 “본인이 원하는 형식으로 사직이 됐다”고 반박했다. 강 후보자가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면서 지역구인 강서구로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도 논란이 됐다. 강 후보자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기존 친구들과 자주 만날 수 있고 본인이 익숙한 환경에서 조금씩 적응할 수 있도록 광화문 집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이 과정에서 강 후보자는 감정에 복받친 듯 울먹이며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했다.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에서 “감정 잡는다”는 비난이 터져 나오자 민주당 백승아 의원은 “그러지 말라”며 반발하기도 했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아이 하굣길이 불안해서 사설 경호업체를 알아볼까 고민 중입니다.” 서울 서초구에서 7세 자녀를 키우는 양수찬 씨(43)는 최근 자녀가 귀가하는 시간마다 불안하다며 14일 이렇게 말했다. 최근 서초구에서 한 70대 여성이 초등학생에게 현금을 제안하며 집으로 유인하려 한 사건 이후 학부모 사이에서 불안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양 씨는 “맞벌이 부부라 아이의 등하굣길을 직접 챙기지 못할 때가 많다. 돈이 들더라도 믿고 맡길 만한 곳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20만 원’ 경호 서비스에도 문의 최근 서울에서 약취(납치) 및 유인(유괴) 관련 신고가 잇달아 접수되면서 일부 학부모들은 사설 경호업체를 통한 ‘등하교 동행 서비스’까지 알아보는 등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2일 서초구에 있는 초등학교 인근에서는 70대 여성이 “내 부탁을 들어주면 현금 1만 원을 주겠다”며 한 초등학생을 집으로 데리고 가려 했다. 아이의 거부로 무산됐지만, 학부모는 해당 여성을 신고했다. 경찰 조사에서 이 여성은 거동이 불편해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납치나 유괴 등 범죄가 성립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강압이나 고의성이 있었는지 등을 살펴보고 있다. 14일 동아일보가 접촉한 6곳의 사설 경호업체들은 최근 학부모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경호업체 대표 윤문기 씨(57)는 “최근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에서 자녀 등하굣길에 동행해 달라는 요청이 하루에도 여러 건씩 들어온다”며 “하루 최소 20만 원이라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경호를 의뢰하겠다는 학부모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호업체 대표 김형진 씨(45)에 따르면 전체 의뢰 중 70∼80%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 왔다고 한다. 특히 학부모 사이에선 아이의 동선을 따라가며 눈에 띄지 않게 보호하는 방식의 ‘밀착 동행 경호’가 인기를 끌고 있다. 경호업체 대표 이현석 씨(45)는 “아무래도 학부모나 아이들 모두 부담스럽지 않도록 잘 드러나지 않게 보호받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납치·유괴 사건 4년 새 1.5배로미성년자 납치 및 유괴 사건은 증가 추세다. 경찰청 범죄 통계에 따르면 미성년자 납치·유괴 사건은 2019년 171건에서 2023년 258건으로 4년 새 1.5배로 증가했다. 이달 1일 경기 남양주시에서는 초등학생 여아를 간식 등으로 유인해 자신의 차에 태워 유괴하려 한 혐의로 70대 남성이 붙잡혔다. 올 4월 강남구 역삼동에서는 남성 2명이 “음료수 사줄까”라며 초등학교 남학생을 유인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사건은 범죄 혐의점이 없어 마무리됐지만, 일대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컸다. 같은 달 인천 연수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선 초등학생 2명을 차량으로 유인한 뒤 성추행한 혐의로 20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남성이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미성년자 납치·유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가정통신문을 배포하고 있다. 가정통신문에는 ‘낯선 사람의 말에 응하지 않기’ ‘음식이나 선물 등 받지 않기’ 등의 예방책이 안내됐다. 전문가들은 “범행 의도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판단 능력이 부족한 아동을 보호자 동의 없이 데려가려 한 행위는 상황에 따라 납치나 유괴로 간주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실제 납치 및 유괴 상황을 상정한 시나리오 기반의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경우 ‘낯선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아 쉽게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며 “수상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변의 어른이 도울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유괴 아동 구출 매뉴얼 등을 마련해 배포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논란 속에서 상처받았을 보좌진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가 개최한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제기된 ‘갑질 논란’에 대해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강 후보자는 쓰레기 분리배출 지시 여부에 대해 “전날 먹던 음식을 먹으려다 차에 남겨 놓은 것”이라고 했고, 비데 수리 지시 의혹에 대해선 “조언을 구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의혹을 부인하던 기존 입장과는 달라진 해명을 내놓은 것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갑질 여왕’은 즉각 사퇴하라”며 총공세를 펼쳤다.● 姜 “전날 먹던 것 차에 남긴 것”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강 후보자의 갑질 의혹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이달희 의원은 강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분리배출을 지시했다는 쓰레기가 찍힌 사진을 공개하며 “음식물 쓰레기, 일반 쓰레기가 뒤범벅이 돼 있다. 증거 사진 속 엘리베이터가 후보 자택이 맞느냐”고 물었다. 이 의원은 음식물과 쓰레기가 담긴 봉지를 가져와 강 후보자에게 보여주기도 했다.이에 대해 강 후보자는 “전날 밤에 먹던 것(음식)을 아침으로 차를 타고 가면서 먹으려고 가지고 내려갔던 적 있다. 그것을 다 먹지 못하고 차에 남겨 놓고 내린 건 제 잘못”이라고 해명했다. 본인이 들고 나온 음식을 차에 남긴 탓에 보좌진이 처리하게 됐다는 취지다.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당시 강 후보자 측은 “가사도우미가 있어 쓰레기 정리 등 집안일을 보좌진에 시킬 필요가 없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청문회에선 보좌진이 쓰레기를 처리한 사실관계는 인정한 것이다.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은 “가사도우미가 없으면 보좌진이 해야 하는 일인가. 논점을 흐리는 내용”이라고 비판했다.강 후보자가 보좌진에게 자택의 비데를 수리토록 지시했다는 의혹도 문제가 됐다. 강 후보자는 “지역 사무소 보좌진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조언을 구하고 부탁을 드렸던 사안”이라며 “(비데) 부품은 관련 업체를 통해 교체했다”고 했다. 이 역시 “‘집이 물바다가 됐다’고 한 보좌진에게 말한 적은 있지만 수리를 부탁한 적은 없다”고 했던 당초 해명과 달라진 것이다. 강 후보자는 “그런 것이 부당한 업무 지시로 보여질 수 있다는 것은 차마 생각을 못 했다. 보좌진께 사과드린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보좌진 고발 여부 놓고 위증 공방도강 후보자의 갑질 의혹을 제보한 것으로 알려진 전직 보좌진 2명에 대한 강 후보자 측의 법적 대응 여부도 논란이 됐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이 “보좌진 2명에 대해 고발 조치를 하겠다고 ‘입틀막’을 하고 계시다”라고 지적하자 강 후보자는 “한 적 없다. 예고한 적도 없다”고 반박했고, 국민의힘 조은희 의원은 “저 고운 얼굴, 고운 목소리로 거짓말을 하고 계시다”라면서 위증 의혹을 제기했다. 전날 강 후보자 측 관계자가 여당 의원실에 배포한 것으로 알려진 문건에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제보하고 있는 전직 보좌진 2명으로 파악. 모두 법적 조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는 것이 근거였다. 그러나 강 후보자는 “공식 입장이 아니다”라며 “청문 준비단 내부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면서 아이디어를 모았던 것”이라고 맞섰다.강 후보자가 퇴직한 보좌진에게 불이익을 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의원은 “(사직하는 보좌진에게) 권고사직 처리를 안 해줘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퇴직 후 취업 방해까지 했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강 후보자는 “본인이 원하는 형식으로 사직이 됐다”고 반박했다. 강 후보자가 서울 종로구에 거주하면서 지역구인 강서구로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도 논란이 됐다. 강 후보자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가 기존 친구들과 자주 만날 수 있고 본인이 익숙한 환경에서 조금씩 적응할 수 있도록 광화문 집을 그대로 유지했다”고 해명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위장전입 의혹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고 14일 밝혔다.이지운 기자 easy@donga.com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아이 하굣길이 불안해서 사설 경호업체를 알아볼까 고민 중입니다.”서울 서초구에서 7세 자녀를 키우는 양수찬 씨(43)는 최근 자녀가 귀가하는 시간마다 불안하다며 14일 이렇게 말했다. 최근 서초구에서 한 70대 여성이 초등학생에게 현금을 제안하며 집으로 유인하려 한 사건 이후 학부모 사이에서 불안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양 씨는 “맞벌이 부부라 아이의 등하굣길을 직접 챙기지 못할 때가 많다. 돈이 들더라도 믿고 맡길 만한 곳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하루 20만 원’ 경호 서비스에도 문의 최근 서울에서 약취(납치) 유인(유괴) 관련 신고가 잇달아 접수되면서 일부 학부모들은 사설 경호업체를 통한 ‘등하교 동행 서비스’까지 알아보는 등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2일 서초구에 있는 초등학교 인근에서는 70대 여성이 “내 부탁을 들어주면 현금 1만 원을 주겠다”며 한 초등학생을 집으로 데리고 가려 했다. 아이의 거부로 무산됐지만, 학부모는 해당 여성을 신고했다. 경찰조사에서 이 여성은 거동이 불편해 아이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경찰은 납치나 유괴 등 범죄가 성립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강압이나 고의성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 14일 동아일보가 접촉한 6곳의 사설 경호업체들은 최근 학부모 문의가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경호업체 대표 윤문기 씨(57)는 “최근 강남구와 서초구 일대에서 자녀 등하굣길에 동행해 달라는 요청이 하루에도 여러 건씩 들어온다”며 “하루 최소 20만 원이라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경호를 의뢰하겠다는 학부모가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경호업체 대표 김형진 씨(45)에 따르면 전체 의뢰 중 70~80%는 서울 강남 지역에서 왔다고 한다.특히 학부모 사이에선 아이의 동선을 따라가며 눈에 띄지 않게 보호하는 방식의 ‘밀착 동행 경호’가 인기를 끌고 있다. 경호업체 대표 이현석 씨(45)는 “아무래도 학부모나 아이들 모두 부담스럽지 않도록 잘 드러나지 않게 보호받는 것을 선호한다”고 밝혔다. ● 납치·유괴 사건 4년 새 1.5배로미성년자 납치 및 유괴 사건은 증가 추세다. 경찰청 범죄통계에 따르면 미성년자 납치·유괴 사건은 2019년 171건에서 2023년 258건으로 4년 새 1.5배로 증가했다. 이달 1일 경기 남양주시에서는 초등학생 여아를 간식 등으로 유인해 자신의 차에 태워 유괴하려 한 혐의로 70대 남성이 붙잡혔다. 올 4월 강남구 역삼동에서는 남성 2명이 “음료수 사줄까”라며 초등학교 남학생을 유인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사건은 범죄 혐의점이 없어 마무리됐지만, 일대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컸다. 같은달 인천 연수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선 초등학생 2명을 차량으로 유인한 뒤 성추행한 혐의로 20대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남성이 긴급 체포되기도 했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미성년자 납치·유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가정통신문을 배포하고 있다. 가정통신문에는 ‘낯선 사람의 말에 응하지 않기’ ‘음식이나 선물 등 받지 않기’ 등이 예방책이 안내됐다.전문가들은 “범행 의도가 뚜렷하지 않더라도, 판단 능력이 부족한 아동을 보호자 동의 없이 데려가려 한 행위는 상황에 따라 납치나 유괴로 간주될 수 있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실제 납치 유괴 상황을 가장한 시나리오 기반의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생의 경우 ‘낯선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가 정립되지 않아 쉽게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며 “수상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주변의 어른이 도울 수 있도록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납치 유괴 아동 구출 매뉴얼 등을 마련해 배포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법원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의혹을 부정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첫 변론’ 제작자들에게 상영 금지와 함께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을 명령했다.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15부(재판장 윤찬영)는 박 전 시장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영화 ‘첫 변론’의 김대현 감독과 단체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재판부는 피고들이 공동으로 피해자에게 1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2023년 11월 29일부터 판결 선고일인 2025년 7월 3일까지는 연 5%, 이후 완제일까지는 연 12%의 이자를 붙여 지급하라고 판시했다.아울러 영화 ‘첫 변론’의 유·무선 상영과 스트리밍, 다운로드 서비스 제공은 물론, 이를 위한 광고 집행도 모두 금지됐다. DVD, 비디오 CD, 카세트테이프 등의 방식으로 제작·판매·배포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이를 위반할 경우 위반 행위 1회당 2000만 원을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한다.재판부는 영화에 대해 “피해자가 여성단체나 변호인의 영향을 받아 왜곡된 기억으로 고인을 허위로 고소했고, 그 결과 고인이 사망에 이르렀다는 비난을 담고 있다”며 “피해자의 사회적 평가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판단했다.피고 측은 영화가 국민적 관심사였던 사건을 다룬 공익적 표현이라며 위법성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 공공의 이익보다는 고인의 가해 사실을 축소·부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첫 변론’은 박 전 시장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손병관 오마이뉴스 기자의 저서 ‘비극의 탄생’을 원작으로 삼고 있다. 해당 도서와 영화는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문제 삼는 등의 내용으로 2차 가해 논란을 불렀다.이 영화는 앞서 2023년 9월 20일에도 서울시와 피해자 측의 신청에 따라 법원에서 상영·판매·배포 금지 결정이 내려진 바 있다. 당시 법원은 “영화의 주요 내용이 사실이라고 보기 어렵고 피해자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피해자에 대한 성희롱은 국가인권위원회와 행정법원의 판단으로도 반복적으로 인정된 사안”이라고 밝혔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이진숙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교수 재직 시절 논문 130개를 분석한 결과 최소 논문 11개에서 ‘제자 논문 표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10일 확인됐다. 제자 논문에 쓰인 ‘초례(초래)하다’라는 오타까지 그대로 자기 논문에 옮겨 쓴 사례마저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이 후보자가 여러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면 (임명 강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제자 학위 논문 오타 “초례하다” 그대로 써10일 동아일보 취재팀이 이 후보자가 1저자로 등록된 논문 130개를 표절 검사 서비스 ‘카피킬러’를 통해 분석한 결과 이 중 최소 11개는 먼저 발표되거나 지도교수인 이 후보자에게 이미 제출된 제자들의 논문과 내용이 상당히 겹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후보자의 해당 논문들은 제자들의 논문과 20∼45%의 표절률을 보였다. 학계에선 표절률이 20% 이상이면 표절 의혹을 둘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본다.표절 의혹이 있는 논문 중엔 오탈자를 그대로 적은 논문도 있었다. 이 후보자가 지도한 대학원생 A 씨는 2008년 10월 제출한 석사학위 논문 서론에 “역효과를 초례하고 있다”는 오자를 냈다. 그런데 이듬해 2월 이 후보자가 대한건축학회에 발표한 논문 ‘특화가로 조성을 위한 환경디자인 요소의 영향분석’의 서론에도 똑같이 “역효과를 초례하고 있다”는 오타가 발견됐다.이 후보자와 A 씨의 논문은 제목, 서론 부분이 거의 유사할 뿐 아니라 카피킬러 표절률도 45%에 달했다. 그럼에도 이 후보자는 제자 대신 본인의 이름을 1저자로 올렸다. 전문가들은 “이 후보자가 이미 제자의 논문 내용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가로채기했다는 의혹 제기가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 후보자는 표절 대상이 된 다른 제자의 논문에서 나온 오타 ‘10m wjd(정)도’를 그대로 베껴 쓰기도 했고, 또 다른 논문에선 “사용하고 않았으며”라는 비문도 똑같이 썼다.● 제자 논문과 서론-결론 상당히 유사제자의 논문과 결론이 거의 똑같은 경우도 있었다. 이 후보자가 2004년 3월 대한건축학회에 발표한 ‘1970년대 이후 한국 주택 거실의 시대별 실내구성 특성 및 이미지 경향분석’ 논문은 2002년 발행된 제자 B 씨의 석사학위 논문과 결론 부분이 상당히 유사했다. 카피킬러로 비교하니 표절률 37%로 내용이 겹쳤다. 두 논문은 결론 부분이 통째로 거의 똑같았다.전문가들은 이 후보자의 이러한 ‘제자 논문 가로채기’가 연구 윤리 위반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학계 관계자는 “제자의 학위논문과 비슷한 내용을 학술논문으로 발표할 때 제1저자는 통상 학위논문의 저자인 제자가 되는 것이 원칙이자 관례”라고 설명했다. 이어 “연구 목적이 나오는 서론이나 결과물이 포함된 결론이 상당 부분 유사하다면 데이터 중복 사용 등으로 표절 의심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자 측은 “2007∼2019년 (발표된) 논문들은 충남대 내외의 전문가로 구성된 연구윤리위원회의 세밀한 검증을 거쳐 연구 부정행위 없음이 밝혀진 것들”이라며 “개별 논문에 대한 구체적인 소명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소상히 밝히겠다”고 해명했다. 교육부 인사청문회 준비단은 “자꾸 제1저자 이야기하는데, 이공계 쪽에선 이런 게 관행이라 문제없다고 한다”고 밝혔다.● 與 “청문회서 의혹 해소 못 하면 어려울 수도”여권 내부에서도 이 후보자의 각종 의혹과 관련해 “위험한 상황”이라며 “청문회에서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면 어려울 수 있다”며 손절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대통령실과 민주당도 이 후보자의 각종 의혹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통화에서 “여당에서도 이 후보자에게 자료를 성실하게 제출하라고 지적했다”며 “일방적으로 봐주지 않고 엄격하게 청문회에서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논문 표절, 자녀 유학 의혹에 대해 국민의 의구심을 풀어주지 못하면 낙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당 당권 주자인 박찬대 의원도 “그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좀 있는 것 같다. 국민과 함께 눈높이에 맞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10년 넘게 살았는데 이렇게까지 메마른 적은 없었어요. 여기가 강릉의 주 취수원인데 식수까지 고갈되는 거 아닐까 걱정입니다.” 8일 강원 강릉시 오봉저수지에서 카페 겸 식당을 운영하는 최성우 씨(54)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봉저수지는 강릉 일대에 농업용수는 물론이고 식수 등 생활용수까지 공급한다. 하지만 이날 저수율은 32%에 그쳤다. 하루 뒤인 9일에는 30.9%까지 떨어졌다. 여름철 평년 저수율(60%대)의 절반 수준이다. 문제는 이런 물 부족이 오봉저수지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국이 마른장마와 폭염으로 인해 ‘여름 가뭄’을 겪고 있다.● 장마철인데 물 바닥… 때 아닌 ‘여름 가뭄’이날 오봉저수지에는 황톳빛 맨바닥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었다. 물이 마른 지 오래돼 풀까지 자란 곳도 눈에 띄었다. 저수지 인근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원예영 씨(61)는 “물이 안 들어오니 고인물이 썩어서 냄새까지 난다”고 했다. 당분간 비 소식도 없어 저수율 반등은 기대하기 어렵다. 오봉저수지를 관리하는 한국농어촌공사 강릉지사 관계자는 “저수율이 얼마나 더 떨어질지 가늠할 수 없다”며 “지금 상태로는 마을 하천 등으로 물을 방류할 여유가 없다”고 전했다. 강릉시는 지난달 13일부터 대형 건축물에서 나오는 유출 지하수를 하루 1000t가량 보조 수원으로 확보해 사용하고 있다. 이틀은 급수, 이틀은 단수를 하는 제한 공급을 시작한 데 이어 이달 1일부터는 이틀 급수, 삼일 단수를 시행 중이다. 저수율이 25% 밑으로 떨어질 경우 인근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아 저수지에 물을 채우는 ‘비상 급수’도 고려하고 있다. 문제는 다른 지역도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농어촌공사의 농업용 저수지 저수율 현황 자료에 따르면 9일 기준 각 지역 평균 저수율은 강원 49.5%, 제주 53.9%, 전남 57.8%, 전북 58.9%로, 평년 평균(64.2%)보다 많게는 15% 가까이 낮았다. 강릉 사천저수지 저수율은 20.6%, 전남 완도군 노화면 넙도저수지는 26%에 그쳤다. 한 해 중 비가 가장 많이 내리는 장마철에 때 아닌 가뭄이 찾아온 건 장마전선이 평년보다 빨리 북상하면서 ‘비 없는 장마’, 이른바 마른장마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일부 지역의 강수량은 예년 대비 크게 줄었다. 남부지방은 지난달 19일 장마가 시작돼 불과 12일 만인 이달 1일 끝났다. 제주는 14일 만인 지난달 26일 장마가 종료됐다. 두 지역 모두 역대 두 번째로 짧은 장마다. 특히 제주에선 장마 기간 중 비가 온 날이 8.5일뿐이었고, 강수량도 117.8mm로 역대 네 번째로 적었다. 강릉의 올해 누적 강수량은 234.9mm로 평년의 절반에 불과하다. 여기에 이달 상순부터 전국에 기록적인 폭염까지 겹치면서 가뭄이 더 심해졌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김준일 강릉시 구정면 어단2리 이장(72)은 “귀농해서 농사지은 지 18년째인데 이런 가뭄은 처음 본다”고 했다. ● 농가들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마음”폭염과 가뭄이 장기화되며 농민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제주에서 30년 가까이 수박을 재배해 온 김수한 제주시 신엄리 이장은 “작년보다 비가 현저히 적게 내리고, 저수지까지 마르다 보니 수확량 감소가 우려된다”고 했다. 그는 “과실이 햇빛에 타는 일소 피해를 막기 위해 중간 이상 자란 수박에 신문지를 씌워놨다”며 “물을 실컷 뿌리고 싶지만 여건이 안 되니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심정”이라고 했다. 농업용 저수지 외에도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저수지의 수위가 계속 낮아질 경우 식수 공급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강릉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TV 자막, 출퇴근길 홍보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물 절약을 당부하고 있다. 대형 숙박업소와 공공기관 등에도 협조를 요청했다. 완도군은 해수를 식수로 바꾸는 해수 담수화 시설을 가동해 섬 지역에 물을 공급할 예정이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한국은 비가 집중되는 3개월 동안 물을 모아 1년을 사용하는 구조여서, 지금처럼 강수량이 부족하면 다음 해 농사와 식수 공급에도 영향이 간다”고 말했다. 이어 “댐에 모인 물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동시에 풍수 지역의 물을 가뭄 지역으로 보낼 수 있도록 수로를 연결하는 등 중장기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강릉=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강릉=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제주=송은범 기자 seb1119@donga.com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이번 여름 ‘모기 습격’에 대비해 기피제를 세 개나 사뒀어요.” 지난달 30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서 만난 농민 김명하 씨(64)는 분무기로 하수구와 물웅덩이에 살충제를 뿌리며 이렇게 말했다. 파주시는 하루 평균 말라리아 매개 모기 개체 수가 정부 기준을 넘어 지난달 20일 말라리아 주의보가 발령됐다. 김 씨는 “밭에 작업을 나갈 때는 반드시 긴 옷을 입고, 온몸에 모기 기피제를 뿌린다”고 말했다.최근 수도권에서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가 대량 발생한 가운데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얼룩날개모기도 늘어나면서 피해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1년 294명이었던 국내 말라리아 환자는 2022년 420명, 2023년 747명, 지난해 713명 등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6월 말까지 총 201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됐다. 통상 7∼9월에 본격 유행하는 것을 감안하면 연내 환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말라리아 환자는 북한 접경지뿐 아니라 서울 인천 등 수도권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올해 들어 이달 5일까지 서울에서는 26명, 인천에서는 39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질병청은 서울 13개구, 인천 10개구를 ‘말라리아 위험 지역’으로 선정했다. 방제 환경이 열악한 북한에서 말라리아 감염 모기가 넘어와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에서 감염 모기가 넘어올 가능성이 높은 휴전선 인근 일부 지역과 최근 3년간 말라리아 환자가 보고된 적 있는 지역이 말라리아 위험지역으로 선정된다. 전문가들은 남북 협력 방역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질병청이 2030년 국내 말라리아 퇴치를 목표로 모기 감시를 강화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말라리아에 대한 남북 공동 방역이 실시됐던 2008년에서 2011년에는 말라리아 환자 수가 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남북 관계가 경색돼 사업이 중단된 2012년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전문가들은 야외 활동 시 개인 방역을 당부했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짧은 옷뿐만 아니라 몸에 달라붙는 옷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몸에 달라붙는 옷은 2.5mm 정도 길이의 모기침에 의해 뚫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여름철 야외 활동을 하고 싶다면 방충망이 달린 텐트 등을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겸임교수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는 최종 숙주인 사람 특유의 냄새를 좋아한다. 모기 기피제가 이 냄새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파주=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이번 여름 ‘모기 습격’에 대비해 기피제를 세 개나 사뒀어요.”지난달 30일 경기 파주시 문산읍에서 만난 농민 김명하 씨(64)는 분무기로 하수구와 물웅덩이에 살충제를 뿌리며 이렇게 말했다. 파주시는 하루평균 말라리아 매개 모기 개체 수가 정부 기준을 넘어 지난달 20일 말라리아 주의보가 발령됐다. 김 씨는 “밭에 작업을 나갈 때는 반드시 긴 옷을 입고, 온몸에 모기 기피제를 뿌린다”고 말했다.최근 수도권에서 붉은등우단털파리(러브버그)가 대량 발생한 가운데 말라리아를 매개하는 얼룩날개모기도 늘어나면서 피해가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1년 294명이었던 국내 말라리아 환자는 2022년 420명, 2023년 747명, 지난해 713명 등으로 늘어났다. 올해는 6월 말까지 총 201명이 말라리아에 감염됐다. 통상 7~9월에 본격 유행하는 것을 감안하면 연내 환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최근 말라리아 환자는 북한 접경지뿐 아니라 서울·인천 등 수도권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올해 들어 이달 5일까지 서울에서는 26명, 인천에서는 39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질병청은 서울 13개구, 인천 10개구를 ‘말라리아 위험 지역’으로 선정했다. 방제 환경이 열악한 북한에서 말라리아 감염 모기가 넘어와 수도권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으로부터 감염 모기가 넘어올 가능성이 높은 휴전선 인근 일부 지역과 최근 3년간 말라리아 환자가 보고된 적 있는 지역이 말라리아 위험지역으로 선정된다.전문가들은 남북 협력 방역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질병청이 2030년 국내 말라리아 퇴치를 목표로 모기 감시를 강화하고 세계보건기구(WHO)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말라리아에 대한 남북 공동방역이 실시됐던 2008년에서 2011년에는 말라리아 환자 수가 감소 추세를 보였으나 남북 관계가 경색돼 사업이 중단된 2012년 이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전문가들은 야외 활동 시 개인 방역을 당부했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과 교수는 “짧은 옷뿐만 아니라 몸에 달라붙는 옷도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몸에 달라붙는 옷은 2.5mm 정도 길이의 모기침에 의해 뚫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여름철 야외활동을 하고 싶다면 방충망이 달린 텐트 등을 활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영철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겸임교수는 “말라리아 매개 모기는 최종 숙주인 사람 특유의 냄새를 좋아한다. 모기 기피제가 이 냄새를 교란할 수 있기 때문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주=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지난해 7월 1일 서울 시청역 앞에서 차량 역주행 사고로 시민 9명이 사망한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되는 날, 서울에서 또다시 차량 돌진으로 시민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시는 시청역 사고 이후 차량과의 충돌 사고에서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의 가드레일(방호 울타리)을 추가 설치하는 등 보행자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경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인근 도로에서 50대 여성이 운전하는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갑자기 인도로 돌진해 벤치에 앉아 있던 40대 남성이 치여 숨졌다. 경찰은 운전자가 ‘페달을 잘못 조작했다’고 진술한 점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음주나 약물 복용 정황은 없었다고 한다. 사고 현장에는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었지만, 1년 전 시청역 참사 때처럼 차량용이 아니어서 돌진하는 차량을 막지 못했다. 2일 찾은 현장에는 전날 차량 충돌로 쓰러진 가드레일 자리에 ‘안전제일’ 문구가 적힌 띠가 대신 설치돼 있었다. 인근 가드레일들 역시 충격의 여파로 휘어진 채였다.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고 무단횡단을 막는 ‘보행자용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었다. 시청 참사 후 1년이 지났지만 서울 시내 차량용 가드레일은 여전히 부족하거나 부실하다. 서울시는 지난해 시청 참사를 계기로 취약 구간 101곳에 8t 차량이 시속 55km로, 15도 각도로 충돌해도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차량용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으로 서울 전체에 설치된 가드레일 중 80%가 보행자용이고 관리가 부실한 곳이 적지 않았다. 이날 오전 찾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시장 일대 사거리에는 보행자용 가드레일은 있었지만 차량용은 없었다. 관악산 자연공원 인근 일부 가드레일은 지지대 부분이 붉게 녹슬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시청역 사고 현장에도 차량용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긴 했지만, 사고가 난 30m 구간에만 설치돼 있었고, 건너편 도로나 인근 구역에는 여전히 보행자용 가드레일만 있었다. 국명훈 한국교통안전공단 교수는 “차량용 방호 울타리 설치를 빠르게 확대해야 하고, 최소한 인구와 차량이 많이 몰리는 곳에 우선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지난해 7월 1일 서울 시청역 앞에서 차량 역주행 사고로 시민 9명이 사망한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되는 날, 서울에서 또다시 차량 돌진으로 시민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서울시는 시청역 사고 이후 차량과의 충돌사고에서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수준의 가드레일(방호울타리)를 추가 설치하는 등 보행자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했지만,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면서 대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2일 경찰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4시경 서울 마포구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역 인근 도로에서 50대 여성이 운전한 전기 SUV 차량이 갑자기 인도로 돌진해, 벤치에 앉아 있던 40대 남성이 치여 숨졌다. 경찰은 운전자가 ‘페달을 잘못 조작했다’고 진술한 점을 토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음주나 약물 복용 정황은 없었다고 한다. 사고 현장에는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었지만, 1년 전 시청역 참사 때처럼 차량용이 아니어서 돌진하는 차량을 막지 못했다. 2일 찾은 현장에는 전날 차량 충돌로 쓰러진 가드레일 자리에 ‘안전제일’ 문구가 적힌 띠가 대신 설치돼 있었다. 인근 가드레일들 역시 충격의 여파로 휘어진 채였다.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고 무단횡단을 막는 ‘보행자용 가드레일’이 설치돼있었다. 인근에서 만난 직장인 이지희 씨(29)는 “울타리가 있어도 사망 사고가 나다니 1년 전 사고가 떠올라 불안하다”고 말했다.시청 참사 후 1년이 지났지만 서울 시내 차량용 가드레일은 여전히 부족하거나 부실하다. 서울시는 지난해 시청 참사를 계기로 취약 구간 101곳에 8t 차량이 시속 55km로, 15도 각도로 충돌해도 보행자를 보호할 수 있는 차량용 가드레일을 설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기준으로 서울 전체에 설치된 가드레일 중 80%가 보행자용이고 관리가 부실한 곳이 적지 않았다.이날 오전 찾은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시장 일대 사거리에는 보행자용 가드레일은 있었지만 차량용은 없었다. 아현역 앞 일부 가드레일은 이미 15도 가까이 기울어져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관악산 자연공원 인근 일부 가드레일은 지지대 부분이 붉게 녹슬어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시청역 사고 현장에도 차량용 가드레일이 설치돼 있긴 했지만, 사고가 난 30m 구간에만 설치돼 있었고, 건너편 도로나 인근 구역에는 여전히 보행자용 가드레일만 있었다.전문가들은 보행자용 가드레일로는 차량 돌진을 막기 어려운 만큼 차량용을 늘려야 한다고 제안한다. 국명훈 한국교통안전공단 교수는 “차량용 방호 울타리를 설치를 빠르게 확대해야 하고, 최소한 인구와 차량이 많이 몰리는 곳에 우선적으로 설치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오승준 기자 ohmygod@donga.com}

“주방이 어디 있어?” 이모 씨(76)는 지난해 4월 남편 나모 씨(81)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평소처럼 밥상을 주방으로 옮겨 달라고 한 참이었는데, 남편이 주방을 찾질 못했다. 나 씨는 결국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진단됐다. 이 사실에 더욱 절망한 이유는 이 씨도 4년 전 경증 치매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도 치매라는 사실에 삶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저도 갈수록 기억이 흐려지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6월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이 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부부가 모두 치매에 걸린 경우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30일 동아일보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한 가족 내 2번째 치매 환자임을 뜻하는 ‘동반 치매’ 환자는 2019년 2857명에서 2023년 5327명으로 늘었다. 4년 새 약 86%가 증가한 것이다. 대다수는 노부부가 함께 치매에 걸린 경우다. 이들은 양쪽 모두 점차 기억을 잃어가면서 집에 불을 낼 뻔하거나 혼자서 병원을 찾아가는 것도 어려워하는 등 일상에 지장을 겪고 있다. 취재팀이 총 세 쌍의 치매 노인 부부와 이들을 돌보는 자녀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해 보니 “돌봐줄 수 있는 사람도 마땅치 않아 일상 자체가 고통”이라고 토로했다. 부부 중 한 명이 치매일 경우 상대방의 치매 발병 확률이 2배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만큼 국가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노(老老)케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맞춤형 지원체계 강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치매 돌보다 신체활동 부족-우울증… 동반 치매 확률 높아져[늘어나는 부부 ‘동반 치매’] 부부 ‘동반 치매’ 증가세치매 부부, 소통 줄고 다툼 잦아져생계 위협받고 사회적 고립 위험성기존 지원과 완전히 다른 접근 필요노부부의 일상이 달라진 건 10년 전부터였다. 처음 시작은 남편 안무춘 씨(82)였다. 평소 자주 쓰던 한자와 한글이 떠오르지 않거나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2014년 12월 병원을 찾은 안 씨는 경증 치매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이듬해 아내인 김옥태 씨(82)도 치매에 걸렸다. 남편의 말과 집 안 물건 위치를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안 씨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함께 살며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김 씨는 남편과 점심을 먹기 위해 국을 끓이고 있었다. 그러다 솥을 불에 올려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집 밖으로 나섰다. 수십 분이 지났을까, 다행히 남편이 시커멓게 탄 솥을 발견한 덕에 큰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노부부가 사는 집엔 ‘가스자동차단기’가 생겼다.● “치매 탓에 부부 싸움도 잦아져” 6월 18일 오전 11시경 충남 서산시 해미면의 한 가정집에서 만난 안 씨 부부는 “명석했던 전과 달리 생각과 행동이 느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씨는 인터뷰 중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듯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거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라고 되뇌었다. 갑자기 찾아온 치매는 노부부의 생계를 위협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나모 씨(81)는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 알츠하이머병은 가장 대표적인 치매 유형이다. 아내 이모 씨(76)는 2021년 3월 경증 치매에 걸렸다. 서산시에서 수십 년째 소를 키우며 농사를 짓던 나 씨 부부는 치매 진단 이후 키우는 소의 마릿수를 점차 줄였다. 60마리였던 소가 이젠 7마리가 됐다. 이 씨는 “(남편도 나도) 정신이 없으니 제대로 키울 수가 없어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자녀들은 노부부의 잦은 싸움을 걱정했다. 남편 나 씨가 종종 억지를 부리는 탓에 아내 이 씨가 짜증을 내고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물건의 개수를 우기거나, 없던 물건을 ‘있었다’고 우기는 식이라고 했다. 이 씨는 “이틀에 하루는 다투게 되니까 힘들다”면서도 “혹시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을까 걱정돼 (남편을) 따라다닌다”고 말했다.● 부부 중 한 명 치매 시 동반 치매 위험 높아져 이러한 ‘부부 동반 치매’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부부 중 한 명이 치매일 경우 의학적으로 다른 배우자가 동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60세 이상의 한국인 부부 784쌍을 대상으로 11가지 치매 위험 인자를 2년마다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치매 진단을 받은 배우자를 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약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 배우자를 돌보는 노인의 경우 신체 활동이 부족해지고 우울증을 겪게 되면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실제 동반 치매 노부부와 그들의 자녀들은 동거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에서 만난 이 씨는 “남편에게 ‘병든 당신을 치매 걸린 내가 데리고 살지 못한다. 더 심해지면 병원에 보낼 테니 알아서 해라’라고 한 적 있다”며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다”고 했다. 동반 치매 부모와 살고 있는 윤명숙 씨(70)는 “엄마의 치매 진단 이후 부부간 소통이 어려워지다 보니 아빠도 치매를 앓게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윤 씨의 어머니는 약 2년 2개월 전 중증 치매에,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아버지는 지난해 말부터 경증 치매에 걸렸다.● 노노(老老) 케어 가능한 맞춤형 제도 필요 전문가들은 치매에 걸린 노인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환경이 늘어나는 만큼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부부 동반 치매 가구를 돌봄 사각지대 우선 대상자로 보고 ‘맞춤형 사례 관리’를 제공하고 있다. 김기웅 교수는 “부부 치매는 돌봄 서비스의 양이 2배가 필요한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동반 치매 부부는) 요양보험 등 지원 체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특히 시골 등 고령자가 몰린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직접 지원 대상자를 발굴하는 등 찾아가는 서비스를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치매 배우자를 둔 노인을 위한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희진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남편이나 아내를 배우자가 직접 돌보는 과정에서 사회적 고립감이 커지면서, 배우자는 치매 고위험군에 속하게 된다”며 “치매 배우자를 둔 노인의 우울감과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서산=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주방이 어디 있어?”이모 씨(76)는 지난해 4월 남편 나모 씨(81)의 이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했다. 평소처럼 밥상을 주방으로 옮겨 달라고 한 참이었는데, 남편이 주방을 찾질 못했다. 나 씨는 결국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진단됐다. 이 사실에 더욱 절망한 이유는 이 씨도 4년 전 경증 치매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편도 치매라는 사실에 삶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저도 갈수록 기억이 흐려지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6월 19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이 씨는 한숨을 쉬며 이렇게 말했다.국민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부부가 모두 치매에 걸린 경우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30일 동아일보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한 가족 내 2번째 치매 환자임을 뜻하는 ‘동반 치매’ 환자는 2019년 2857명에서 2023년 5327명으로 늘었다. 4년 새 약 86%가 증가한 것이다. 대다수는 노부부가 함께 치매에 걸린 경우다. 이들은 양쪽 모두 점차 기억을 잃어가면서 집에 불을 낼 뻔하거나 혼자서 병원을 찾아가는 것도 어려워하는 등 일상에 지장을 겪고 있다. 취재팀이 이달 총 세 쌍의 치매 노인 부부와 이들을 돌보는 자녀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해 보니 “돌봐줄 수 있는 사람도 마땅치 않아 일상 자체가 고통”이라고 토로했다.부부 중 한 명이 치매일 경우 상대방의 치매 발병 확률이 2배가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는 만큼 국가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노(老老)케어’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맞춤형 지원체계 강화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치매 돌보다 신체활동 부족-우울증…동반치매 확률 높아져노부부의 일상이 달라진 건 10년 전부터였다. 처음 시작은 남편 안무춘 씨(82)였다. 평소 자주 쓰던 한자와 한글이 떠오르지 않거나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2014년 12월 병원을 찾은 안 씨는 경증 치매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이듬해 아내인 김옥태 씨(82)도 치매에 걸렸다. 남편의 말과 집 안 물건 위치를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를 회상하며 안 씨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함께 살며 아찔한 상황도 있었다. 김 씨는 남편과 점심을 먹기 위해 국을 끓이고 있었다. 그러다 솥을 불에 올려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채 집 밖으로 나섰다. 수십 분이 지났을까, 다행히 남편이 시커멓게 탄 솥을 발견한 덕에 큰불을 막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노부부가 사는 집엔 ‘가스자동차단기’가 생겼다.●“치매 탓에 부부 싸움도 잦아져”6월 18일 오전 11시경 충남 서산시 해미면의 한 가정집에서 만난 안 씨 부부는 “명석했던 전과 달리 생각과 행동이 느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안 씨는 인터뷰 중에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듯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거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라고 되뇌었다. 갑자기 찾아온 치매는 노부부의 생계를 위협하기도 했다. 지난해 4월 나모 씨(81)는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다. 알츠하이머병은 가장 대표적인 치매 유형이다. 아내 이모 씨(76)는 2021년 3월 경증 치매에 걸렸다. 서산시에서 수십 년째 소를 키우며 농사를 짓던 나 씨 부부는 치매 진단 이후 키우는 소의 마릿수를 점차 줄였다. 60마리였던 소가 이젠 7마리가 됐다. 이 씨는 “(남편도 나도) 정신이 없으니 제대로 키울 수가 없어서 결정한 것”이라고 말했다.자녀들은 노부부의 잦은 싸움을 걱정했다. 남편 나 씨가 종종 억지를 부리는 탓에 아내 이 씨가 짜증을 내고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가령 물건의 개수를 우기거나, 없던 물건을 ‘있었다’고 우기는 식이라고 했다. 이 씨는 “이틀에 하루는 다투게 되니까 힘들다”면서도 “혹시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을까 걱정돼 (남편을) 따라다닌다”고 말했다.● 부부 중 한 명 치매 시 동반 치매 위험 높아져이러한 ‘부부 동반 치매’가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부부 중 한 명이 치매일 경우 의학적으로 다른 배우자가 동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2년 김기웅 분당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60세 이상의 한국인 부부 784쌍을 대상으로 11가지 치매 위험 인자를 2년마다 추적 조사했다. 그 결과 치매 진단을 받은 배우자를 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에 비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약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 배우자를 돌보는 노인의 경우 신체 활동이 부족해지고 우울증을 겪게 되면서 치매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실제 동반 치매 노부부와 그들의 자녀들은 동거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지난달 19일 서울 강남에서 만난 이 씨는 “남편에게 ‘병든 당신을 치매 걸린 내가 데리고 살지 못한다. 더 심해지면 병원에 보낼 테니 알아서 해라’라고 한 적 있다”며 “사는 게 사는 거 같지 않다”고 했다. 동반 치매 부모와 살고 있는 윤명숙 씨(70)는 “엄마의 치매 진단 이후 부부간 소통이 어려워지다 보니 아빠도 치매를 앓게 된 것 같다”고 토로했다. 윤 씨의 어머니는 약 2년 2개월 전 중증 치매에,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아버지는 지난해 말부터 경증 치매에 걸렸다.●노노(老老) 케어 가능한 맞춤형 제도 필요전문가들은 치매에 걸린 노인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환경이 늘어나는 만큼 맞춤형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부부 동반 치매 가구를 돌봄 사각지대 우선 대상자로 보고 ‘맞춤형 사례 관리’를 제공하고 있다.김기웅 교수는 “부부 치매는 돌봄 서비스의 양이 2배가 필요한 게 아니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동반 치매 부부는) 요양보험 등 지원 체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맞춤형 설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건우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특히 시골 등 고령자가 몰린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직접 지원 대상자를 발굴하는 등 찾아가는 서비스를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치매 배우자를 둔 노인을 위한 지원도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김희진 한양대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남편이나 아내를 배우자가 직접 돌보는 과정에서 사회적 고립감이 커지면서, 배우자는 치매 고위험군에 속하게 된다”며 “치매 배우자를 둔 노인의 우울감과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하기 위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이채완 기자 chaewani@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12·3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수사 중인 내란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28일 검찰청사 출석을 요구한 가운데 윤 전 대통령 측은 출석 방식 협의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윤 전 대통령 측이 ‘출석 의사’를 밝혀 정치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비공개 출석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전략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지하 출입을 시도할 경우 출석 불응으로 간주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조사 무산 뒤 체포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검 “지하 출석은 출석 불응으로 간주”윤 전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27일 “출석 방식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내일 출석 예정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측은 28일 오전 10시 서울고검을 찾은 뒤 현장에서 출석 방식에 대해 특검과 협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윤 전 대통령 측이 끝까지 비공개 출석을 시도하며 꼼수를 쓰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체포영장 재청구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면서도 일정한 정치적 메시지를 고려한 대응인데, 무리한 요구로 보인다”고 밝혔다. 앞서 특검은 25일 법원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기각한 직후 28일 오전 9시 서울고검 출석을 요구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건강상 이유로 10시 출석을 요청했고 특검은 이를 수용했다. 특검은 다만 윤 전 대통령 측이 지하주차장을 통한 출석을 고수하며 28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이를 ‘조사 불응’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박지영 특검보는 이날 “들어올 수 없는 (지하) 문으로 출석하는 것은 출석이 아니다”라며 “윤 전 대통령의 지위와 과거 경력에 비춰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믿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은 27일 오전 서울고검에서 대통령경호처 관계자들과 만나 공개 출석 상황을 전제로 윤 전 대통령의 동선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대면조사가 성사되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 과정에 대해 우선 조사할 계획이다. 앞서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 복도와 국무회의장(대접견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대통령경호처로부터 임의 제출받아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을 조사한 바 있다. 특검은 이 기록을 토대로 질문지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특검은 이날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을 비상계엄 당시 부정선거 의혹 수사를 맡을 ‘제2수사단’을 구성할 목적으로 군사정보를 제공받은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추가 기소하고 관련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지귀연)에 구속영장 발부 필요성에 대한 의견서도 제출했다. 노 전 사령관은 올 1월 6일 기소돼 다음 달 초면 구속기한이 만료되는데, 이를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앞서 특검은 26일 구속기한이 만료돼 석방 예정이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서도 19일 증거인멸 교사 등 혐의로 추가 기소해 구속한 바 있다.● 김 여사 12일 만에 퇴원, 특검 수사 본격화 전망김건희 여사가 27일 퇴원하면서 다음 달 2일 공식적인 수사 개시를 앞둔 김건희 특검팀이 김 여사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부를지도 주목된다. 김 여사는 이날 오후 4시경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신관 후문에서 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휠체어에 앉아 퇴원했다. 윤 전 대통령이 휠체어를 직접 밀며 동행했고, 김 여사의 차량 탑승을 도왔다. 김 여사는 특검 출범 나흘째인 이달 16일 우울증 등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이 병원에 입원했다. 김 여사 측은 “당분간 자택에서 치료를 이어갈 예정”이라며 “특검의 출석 요청이 있을 경우 일시와 장소를 협의해 응하겠다”고 밝혔다. 김 여사의 퇴원으로 민중기 특검팀의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특검은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부터 김 여사 관련 수사기록을 넘겨받고 있다. 최근 공수처로부터 임성근 전 해병대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검찰로부터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관련 자료를 각각 이첩받았다. 특검 안팎에서는 출범 전부터 수사 진척이 상당 부분 이뤄진 명태균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이 우선 조사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건희 특검의 김형근 특검보는 이날 오전 김 여사 대면조사 계획을 묻는 질문에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공개 출석 요구 조사 방침을 내비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송유근 기자 big@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12·3 비상계엄 선포 사건을 수사 중인 내란 특별검사팀이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28일 검찰청사 출석을 요구한 가운데, 윤 전 대통령 측은 출석 방식 협의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윤 전 대통령 측이 ‘출석 의사’를 밝혀 정치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비공개 출석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전략을 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지하 출입을 시도할 경우 출석 불응으로 간주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조사 무산 뒤 체포영장을 재청구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특검 “지하 출석은 출석 불응으로 간주”윤 전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27일 “출석 방식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내일 출석 예정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윤 전 대통령 측은 28일 오전 10시 서울고검을 찾은 뒤 현장에서 출석 방식에 대해 특검과 협의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윤 전 대통령 측이 끝까지 비공개 출석을 시도하며 꼼수를 쓰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체포영장 재청구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면서도 일정한 정치적 메시지를 고려한 대응인데, 무리한 요구로 보인다”고 밝혔다.앞서 특검은 25일 법원이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기각한 직후 28일 오전 9시 서울고검 출석을 요구했다. 윤 전 대통령 측은 건강상 이유로 10시 출석을 요청했고 특검은 이를 수용했다.특검은 다만 윤 전 대통령 측이 지하주창장을 통한 출석을 고수하며 28일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질 경우 이를 ‘조사 불응’으로 받아들이겠단 입장이다. 박지영 특검보는 이날 “들어올 수 없는 (지하) 문으로 출석하는 것은 출석이 아니다”라며 “윤 전 대통령의 지위와 과거 경력에 비춰 그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 믿고 있다”고 밝혔다. 특검 이날 오전 서울고검에서 대통령 경호처 관계자들과 만나 공개출석 상황을 전제로 윤 전 대통령의 동선을 협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검은 대면조사가 성사되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 과정에 대해 우선 조사할 계획이다. 앞서 경찰은 대통령 집무실 복도와 국무회의장(대접견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대통령 경호처로부터 임의 제출받아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을 조사한 바 있다. 특검은 이 기록을 토대로 질문지를 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한편 특검은 이날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비상계엄 당시 부정선거 의혹 수사를 맡을 ‘제2수사단’을 구성할 목적으로 군사정보를 제공받은 혐의(개인정보보호법위반)로 추가 기소하고 관련 재판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법형사25부(부장판사 지귀연)에 구속영장 발부 필요성에 대한 의견서도 제출했다. 노 전 사령관은 올 1월 6일 기소돼 다음달 초면 구속기한이 만료되는데, 이를 막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앞서 특검은 26일 구속기한이 만료돼 석방 예정이었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해서도 19일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추가 기소해 구속한 바 있다.● 김 여사 12일 만에 퇴원, 특검 수사 본격화 전망김건희 여사가 27일 퇴원하면서 다음달 2일 공식적인 수사 개시를 앞둔 김건희 특검팀이 김 여사를 언제, 어떤 방식으로 부를지도 주목된다. 김 여사는 이날 오후 4시경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신관 후문에서 안경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휠체어에 앉아 퇴원했다. 윤 전 대통령이 휠체어를 직접 밀며 동행했고, 김 여사의 차량 탑승을 도왔다. 김 여사는 특검 출범 나흘째인 이달 16일 우울증 등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이 병원에 입원했다. 김 여사 측은 “당분간 자택에서 치료를 이어갈 예정”이라며 “특검의 소환 요청이 있을 경우 일시와 장소를 협의해 응하겠다”고 밝혔다.김 여사의 퇴원으로 민중기 특검팀의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특검은 검찰, 경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부터 김 여사 관련 수사기록을 넘겨받고 있다. 최근 공수처로부터 임성근 전 해병대 사단장 구명 로비 의혹, 검찰로부터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 관련 자료를 각각 이첩받았다. 특검 안팎에서는 출범 전부터 수사진척이 상당 부분 이뤄진 명태균 의혹,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등이 우선 조사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건희 특검의 김형근 특검보는 이날 오전 김 여사 대면조사 계획을 묻는 질문에 “법과 원칙에 따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공개 출석요구 조사 방침을 내비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송유근 기자 big@donga.com최미송 기자 cms@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

지방자치단체장이 싱크홀(땅 꺼짐) 안전지도를 만들어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입법이 추진된다. 잇단 싱크홀 사고에 시민 불안이 커지고 있는데도 서울시, 부산시 등 지자체가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자 국회가 나선 것이다.25일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지하안전법) 일부개정안에는 시도지사가 싱크홀 안전지도를 제작하고 시민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안 의원은 “지반침하 예방은 단순한 안전 문제를 넘어 국민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선행돼야 할 과제”라고 배경을 밝혔다. 같은 당 황명선 의원은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 보호에 필요한 싱크홀 정보의 경우 지자체장이 적극적으로 공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서울시는 강동구 명일2동 싱크홀 사고로 1명이 숨지고 1명이 다친 뒤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공개하라는 요구에도 비공개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도시철도 공사 구간에서 싱크홀이 14차례나 발생한 부산시 역시 ‘지반침하 위험지도’를 만들었지만 시민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도 2014년 서울 송파구 대형 싱크홀 발생을 계기로 785억 원을 들여 ‘지하공간 통합지도’를 만들었지만 일반 시민은 볼 수 없다. 국토부 승인을 받은 일부 개발사업자 등만 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싱크홀 지도 공개와 함께 지자체의 싱크홀 대응을 더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윤종군 민주당 의원은 싱크홀 우려가 있으면 국토부가 지자체장에게 보강, 보수 등을 명령할 수 있고,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전문가와 시민단체들은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싱크홀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지하 안전 평가 전문가인 이재호 지원텍 대표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든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처럼 지반침하에 대한 대응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선 서울시와 정부가 보유한 싱크홀 지도들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부산 시민단체 건강사회복지연대의 이성한 사무처장은 “시민이 가장 궁금해하는 지하 안전지도를 정밀하게 만들어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혈세 들인 싱크홀 지도, 핵심정보 빠져… 건물 기울어도 비공개비공개에 무용지물 된 ‘싱크홀 지도’국토부가 만든 ‘지하공간 통합지도’ 지하수-공동 정보 없고 접근 제한 서울-부산시 제작 지도도 상황 비슷 철도공사장 옆 3년간 14번 싱크홀 현장 본 전문가 “땅속이 갯벌 같아” 시민들 “눈앞 땅 꺼져도 상태 몰라”지난달 28일 부산 사상구 사상∼하단선 도시철도 공사 현장 인근. 새벽시장 바닥에 균열이 여럿 보였다. 길이 5m가량의 균열 틈새에 손가락을 집어넣자 쑥 들어갔다. 주변 화장실, 계단, 건물, 기둥에는 금이 가 있었다. 전봇대가 쓰러질까 봐 보강해 놓은 장치도 보였다.이 주변에서는 최근 3년간 14차례 싱크홀이 발생했다. 지난해는 8차례, 올해는 3차례 있었다. 부산시는 지하 안전 관리를 강화한다며 국비 5800만 원을 지원받아 2년 전 ‘지반침하 위험지도’를 만들었지만 시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사이 땅이 12cm 가라앉아 4층짜리 건물이 기울어지면서 사무실을 급히 이전한 주민도 있었다.● 싱크홀 핵심 요소 빠지고 자료도 비공개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부산에서 만난 새벽시장 상인회 이복용 관리부장은 “눈앞에서 땅이 꺼지고 균열이 늘어나는데 시에서 하는 공사에 대해 우리가 뭘 알겠나. 아는 게 하나도 없다. 불안감만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집과 일터 주변에서 자꾸 싱크홀이 발생하는데 부산시가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자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최소한의 대비를 위해서라도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특히 사상구 공사 현장처럼 싱크홀 사고가 빈번한 지역은 조속한 자료 공개와 이를 통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달 20일 히어로팀과 함께 이 지역 굴착공사 현장을 살펴본 조복래 지하공간연구소장은 “지하 15m 정도를 파 내려갔는데도 여전히 땅이 갯벌 같다. 그만큼 땅이 약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낙동강 하구에 있어 모래 퇴적층이 두껍게 형성돼 있다. 굴착공사장 바닥은 물이 흥건한 진흙 상태였다. 조 소장은 “일반 땅이라면 이 정도 깊이를 파면 비교적 단단한 땅이 나타날 텐데 여기는 아직 수십 m는 더 파야 멀쩡한 땅이 나올 것”이라고 했다.부산시가 만든 싱크홀 지도에는 이 같은 지질 정보가 빠져 있다. 지질, 지하수, 싱크홀 이력 등은 싱크홀 발생 위험을 판단하는 핵심 요소들인데 정작 싱크홀 피해 예방을 위한 지도에는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지도에 반영됐다는 지하시설물 정보 역시 시설물이 매설된 깊이, 노후화 정보 등은 담기지 않아 싱크홀 예방이나 대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국토교통부가 서울 송파구 대형 싱크홀 사건 이후 2022년 만든 ‘지하공간 통합지도’에도 지하수, 공동(空洞·땅속 빈 공간), 과거 싱크홀 이력 등이 빠져 있다. 지도에 표시된 지하시설물 위치와 실제 위치가 다른 곳도 여럿이었다. 게다가 국토부의 지도 자료는 보안상의 이유로 일반 시민이 접근할 수 없다. 국토부가 승인한 일부 사업자에게만 종이 자료 형태로 잠깐 대여해 준다. 최근 싱크홀 사고가 전국에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만큼 자료 공개의 필요성이 커진다는 지적이 나온다.서울시 역시 ‘지반침하 안전지도’를 시민에게 공개하지 않고 있다. 집값, 부동산 민심을 우려해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 지도에는 지하수, 지질, 지하구조물 등 중요 요소들이 빠져 있어 싱크홀 예방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민 불안 커져… 지자체는 ‘네 탓 공방’부산시는 25일 특별대책을 발표하고 이달 말 공동 지표투과레이더(GPR) 탐사 결과를 공개하고 시에 도로안전과를 신설해 지하 안전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시가 공개한다는 GPR 자료는 ‘지반침하 위험지도’와는 다른 것으로, 최대 지하 1, 2m 정도의 상황만 알 수 있다. 시는 싱크홀 사고를 신고한 시민에게 포상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지도에 지하매설물 현황 정도만 반영하고 있어서 실제 싱크홀 위험도를 제대로 구현하기 어려워 공개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며 “현재 ‘도로함몰 안전지도’로 부르며 지반 탐사 우선 구간 등을 정하는 데 보조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부산 싱크홀 사고는 부실한 시공 및 관리·감독 문제까지 겹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공사 현장의 사업 감사 결과에 따르면, 2022년 2월부터 지하수가 공사장에 계속 흘러들어와 한동안 공사가 중단됐다. 지하수 유입은 대표적인 싱크홀 유발 요인이다. 부산시 산하 공공기관인 부산교통공사(시행사)는 건설사업관리단(감리)에 대책을 요구했고, 감리단은 “물막이 기능이 더 좋은 콘크리트 벽체로 바꿔 시공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공사 측은 정부에서 추가 예산을 받기 곤란하다며 사장 등 상부에 이를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공사 현장 인근 지하 우수박스에서 균열까지 발견됐다. 사상구는 지하철 공사가 원인이라고 주장했고, 공사 측은 “공사 때문이 아니다”라며 책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임종철 부산대 토목공학과 명예교수는 “부산같이 지반이 연약한 곳이나 지하 개발사업이 활발한 대도시에선 싱크홀을 예방하기 위한 지도가 더욱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학계 “지하 안전평가 제대로 이뤄지는지 전수조사를”지하안전協, 싱크홀 예방 토론회 본보 제작 지도엔 “위험도 보여줘”“지반조사 결과는 반드시 전문가에게 다시 검증을 받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이종섭 고려대 건축사회환경공학부 교수)“지방자치단체가 지하안전평가를 기준과 원칙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 전수 조사가 필요하다.”(유재성 고려컨설턴트 대표)동아일보가 히어로콘텐츠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를 통해 ‘서울시 싱크홀 안전 지도’를 공개한 이후 전문가들은 싱크홀 사고를 막기 위한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25일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한국지하안전협회 주최로 열린 ‘지반침하사고 예방 대토론회’에서는 지반, 지하안전, 지질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반복되는 싱크홀 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논의했다. 유 대표는 “균열, 침하 등 위험 구간은 설계에도 반영해서 사고 시 즉시 복구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며 “국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종태 엘머스코리아 전무는 “현장에 가보면 이미 싱크홀 사고가 벌어졌던 곳인데도 계측기를 설치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이에 대한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우선 효명이씨에스 부사장은 “장마철이 시작된 현재 지자체와 유관 기관이 협의해 우회수로, 집수정 규모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동 지하정보기술 대표는 “지반침하 진단 기술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엔지니어들이 작업에 몰입할 수 있도록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굴착공사 전 시행하는 지하안전평가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고명상 명동엔지니어링 대표는 “평가를 해보면 ‘지반이 안전하냐’고 물어보는 발주처는 한 곳도 없다. 공사 기한을 맞출 수 있는지에만 관심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한 현장에서 설계 오류를 여럿 잡아냈지만 개선 요구가 묵살됐다고 말했다.협회는 히어로팀과 만든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이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공개했다. 이강근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 “동아일보가 분석한 요소들은 싱크홀 위험도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며 “위험한 지역을 선별했다면 그다음은 계측 등 촘촘한 모니터링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최창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도심을 싱크홀 안전지역과 위험지역으로 나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싱크홀 발생 위험이 높은 지역과 낮은 지역은 서로 지하안전평가 기준을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위험한 지역은 소규모 공사도 정밀하게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용선 한국토질 및 기초기술사회 부회장은 “산에서 깊게 굴착하는 공사와 도심에서 얕게 굴착하는 공사 중 더 면밀히 관리해야 하는 곳은 후자”라며 위험도에 따라 평가 기준을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아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크랙: 땅은 이미 경고를 보냈다’는 ‘서울시 싱크홀 안전지도’를 자체 제작, 공개하고 국토교통부 서울시 부산시 등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싱크홀 자료의 문제점을 파헤쳤습니다. 디지털 인터랙티브 버전 ‘크랙’ 시리즈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전용 페이지인 디오리지널(https://original.donga.com/project/series?c=0311)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크랙 디지털 인터랙티브 기사 보기히어로콘텐츠팀▽팀장: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취재: 공승배 주현우 기자 ▽프로젝트 기획: 임상아 ND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소연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ND ▽인터랙티브 디자인: 정시은 CD 이형주 인턴 부산=공승배 기자 ksb@donga.com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임보미 기자 bom@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원래 반절 정도만 주유하는데 중동 지역 분쟁 때문에 기름값이 더 오를 수도 있다고 해서 오늘은 기름을 가득 채웠습니다.”23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유소에서 만난 취업준비생 김모 씨(27)는 자동차에 기름을 가득 채웠다며 10만2000원의 영수증을 기자에게 보여줬다. 김 씨는 지방에 있는 부모님 댁에 갈 때 주로 자동차를 이용하는데, 이날은 평일임에도 기름값이 더 오르기 전에 주유소를 찾았다고 했다. 그는 “주말에 부모님 집에 갈 땐 장거리 운전을 많이 하는데, 기름값이 더 오르면 앞으로는 기차를 타야 하나 고민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이란-이스라엘 분쟁과 미국의 이란 핵시설 공습 등으로 국제 유가가 불안정해지면서, 기름값 상승을 우려한 소비자들이 주유소로 몰리고 있다. 특히 화물차 운전자나 택배 기사 등 운송업 종사자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미리 주유하러 온 손님들 20% 늘어”23일 취재팀이 찾은 서울 시내 주유소 5곳에서는 기름값이 본격적으로 오르기 전에 주유를 하려는 소비자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주유소 직원 이모 씨(35)는 “중동 분쟁이 시작된 뒤로 미리 주유하려는 손님이 부쩍 늘었다”며 “2주 전과 비교해 약 20% 정도 손님이 많아졌다”고 전했다.또 다른 영등포구 주유소의 60대 직원 유모 씨는 “원래 5만 원어치만 주유하던 단골손님이 오늘은 10만 원어치를 가득 넣어갔다”며 “중동 분쟁이 장기화되면 기름값이 더 오를 텐데, 그럴 경우 손님들이 지갑을 닫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특히 화물차 기사와 택배 기사처럼 유류비에 민감한 직종 종사자들의 우려가 크다. 동대문에서 의류를 운송하는 김모 씨(64)는 “하루 300km 정도 운전하는데, 원래는 하루 주유비가 6만 원 정도 들었지만 중동 분쟁 이후에는 5000원이 더 들고 있다”며 “이걸 한 달치로 계산하면 꽤 큰돈이 된다. 생업을 포기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택배 기사 홍모 씨(41)는 “기름값을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택배를 하러 아파트에 올라갈 땐 꼭 시동을 끄고, 더워도 에어컨을 줄여 틀고 있다”고 말했다.실제로 국내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최근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6월 셋째 주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주 대비 7.8원 올라 리터당 1635.5원으로 집계됐다. 경유 평균 판매가는 전주보다 7.6원 오른 리터당 1498.2원이다.● 전문가들 “중동 분쟁 대비해 원자력 에너지 등 방안 강구해야”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이란 간 분쟁과 관련해 휴전 합의 사실을 밝히며 일단락되는 분위기지만, 중동 정세가 여전히 불안정해 안심하긴 이르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란은 여전히 자국 영토 내 우라늄 농축을 지속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며, 미국은 이를 반대하고 있어 양국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긴장을 더한다.전문가들은 중동 지역에서 분쟁이 반복되는 만큼 유가 급등에 대한 단기적 대비뿐 아니라 에너지 수입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장기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양준석 가톨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이스라엘-이란 간 무력 충돌이 당장은 소강 국면에 접어들더라도, 중동 자체가 갈등이 빈번한 지역인 만큼 국제 유가는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라며 “우리나라는 석유 의존도가 높은 만큼 원자력이나 신재생 에너지의 비중을 장기적으로 높이는 방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

19일 오후 인천 남동구 구월동 시청 삼거리의 한 맨홀. 동아일보 취재팀은 지방자치단체의 협조를 얻어 맨홀 뚜껑을 지렛대로 열었다. 안에는 철망 등 추락 방지 시설이 없었고 지하 공간이 바로 보였다. 뚜껑이 없다면 누구든 추락할 수 있는 상태였다. 50여 m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맨홀도 뚜껑을 열어 봤다. 역시 추락 방지 시설은 없었다.추락 방지 시설은 맨홀 뚜껑 아래 받침대와 옹벽에 설치되는 철망으로, 낙상 사고를 방지하고 폭우 시 하수 역류 억제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시설이 없는 맨홀은 평상시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폭우나 홍수가 발생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물이 넘치면서 수압이 맨홀 뚜껑을 밀어내거나 날려 버리는 경우가 있다. 도로에 물이 가득 찬 상태에서 미처 이를 발견하지 못한 행인이 맨홀 속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장마철마다 잇따랐다. 취재 결과 올해 장마철을 앞둔 시점에도 추락 방지 시설이 설치된 맨홀은 소수에 불과해 인명 피해가 생길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 추락 방지 시설 없는 ‘블랙홀’ 맨홀인천 남동구 맨홀 현장은 도로 왼쪽과 오른쪽의 높이가 서로 달라 비가 오면 한쪽이 자주 침수된다. 그곳에 맨홀이 있다. 주민 김모 씨(77)는 “비가 퍼부을 때면 맨홀 뚜껑이 들썩들썩 들리는 게 종종 보일 때가 있다. 곧 장마여서 불안하다”고 말했다. 인천은 침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해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지정한 ‘집중 강우 중점 관리구역’에도 맨홀 추락 방지 시설이 없었다. 앞서 14일 부산 연제구의 한 거리에서는 폭우로 맨홀 뚜껑이 열려 30대 여성이 추락했다. 이곳에도 추락 방지 시설이 없었다. 추락 방지 시설 설치가 의무화되기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이유에서다. 환경부는 2022년 8월 서울 서초구 강남역 폭우 당시 수압으로 뚜껑이 열린 맨홀 속으로 남매가 추락해 숨진 뒤 그해 12월 추락 방지 시설 설치를 의무화했다. 하지만 그전에 만들어진 맨홀은 추락 방지 시설 설치 여부가 지방자치단체 재량이다. 이번 사고 이후 부산시는 침수 우려 맨홀 총 1만4000여 개에 추락 방지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올해 장마가 끝나기 전에는 100% 설치가 어려운 상황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우재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환경부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6월 기준 전국 맨홀 345만6834개 가운데 추락 방지 시설이 설치된 곳은 6.6%(22만6430개)에 불과하다. 집중 강우 중점 관리구역조차 맨홀 32만2568개 중 19.4%(6만2409개)에만 추락 방지 시설이 있다.● 전문가들 “모든 맨홀에 추락 방지 시설 필요”기상청에 따르면 19일부터 중부지방 등을 중심으로 장마가 시작된다. 20일 저녁부터 21일 오전 사이 수도권 등 중부와 전북을 중심으로 시간당 30∼50mm의 매우 강한 비가 퍼부을 예정이다. 강수량이 시간당 30mm를 넘어가면 우산을 써도 옷이 다 젖고 운전 중 와이퍼를 작동해도 앞이 안 보이는 수준이다. 기상청은 장마전선이 좁은 지역에 머물고 저기압이 강하게 발달할 경우 시간당 강수량이 84mm에 달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21일 예상 강수량은 경기 북부, 강원 영서, 충청 남부와 전북에서 최대 150mm 이상 등이다. 이 정도의 비면 맨홀 뚜껑 중 상당수가 수압에 튕겨 나와 열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전문가들은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해 추락 방지 시설 설치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류상일 동의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본격적인 장마철이 다가오기 전 상습 침수 구역부터 먼저 추락방지 시설을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집중호우가 내리면 물이 차올라 도로의 지형지물이 보이지 않는다. 맨홀이 있는 지점은 되도록 피해 다녀야 한다”고 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어린아이나 고령자의 경우 깊지 않은 맨홀에 빠져도 머리, 척추 등을 크게 다칠 수 있다”며 “깊이와 무관하게 모든 맨홀에 추락 방지 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천=최원영 기자 o0@donga.com인천=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서울대 교수들이 이재명 정부에 “경제 활성화를 위해 노동시장 양극화를 해소하고, 여성과 장년층의 경제 활동 참여를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은 17일 ‘성공하는 대통령의 길: 새 정부에 대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정책보고서를 발간하고 발표회를 열었다. 이재열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12 대 88 사회’, 즉 상위 12%의 대기업 정규직과 나머지 88%의 중소기업·비정규직으로 양극화돼 있다”며 “기존의 연공서열식 보상 체계를 직무급·직능급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활력 제고를 위해 여성과 장년층의 경제 활동 참가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철희 경제학부 교수는 “여성과 장년층의 경제 참여율을 10년 내 현재 일본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남성 대비 여성의 임금 수준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까지 높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 목표를 달성할 경우 2047년까지 약 360만 명의 노동인력 증가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정치적 현안에 대한 조언도 있었다. 강원택 국가미래전략원장(정치외교학부 교수)은 12·3 비상계엄 진상규명 특검 등과 관련해 “정치적 보복이란 인상을 주지 않도록 절차적 정당성과 균형 감각을 갖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같은 날 서울대 공대도 자체 포럼을 열고 과학기술 인재 육성을 위한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서울대 공대는 매년 최우수 공학 인재 40명을 선발해 장학금과 연구비로 3000만 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새 정부에 신진 인공지능(AI) 박사 인재 200명을 선발해 연봉 5억∼10억 원과 함께 주택을 제공하는 파격적 지원 방안도 제언했다. 강 교수는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선 고급 인재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새 정부가 이를 뒷받침할 과감한 인재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