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한국은 중국의 초대에 응했고, 북한은 거절했다.’ 중국의 항일 전쟁승리 70주년 기념행사는 달라진 한중, 북-중 관계를 상징하는 장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대통령은 다음 달 2∼4일 전승절 참석을 확정한 반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사진)는 중국에 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20일 “(북-중 간) 방중을 위한 사전 접촉 등이 전혀 포착되지 않았다”며 “북한에 대한 중국의 냉랭한 기류가 심상치 않은 것 같다”고 전했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중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과 같은 해 12월 장성택 처형 이후부터 냉랭해진 북-중 관계는 이달 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회의에서 양국이 처음으로 양자 회담을 하지 않을 정도로 악화됐다. 이 같은 분위기는 김정은의 대중정책이 ‘항일’의 공통분모로 ‘혈맹(血盟)’의 특수 관계를 맺어온 김일성 김정일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0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김정은이 ‘중국×들에게 역사와 오늘이 다르다는 것을 똑바로 알게 해주겠다’고 발언했다”고 보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김정은이 6월 양쯔(揚子) 강에서 발생한 대형 여객선 침몰 사고 때도 중국 측에 조의를 공식적으로 표하지 말라고 지시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RFA는 “어린 지도자의 미숙한 판단이 북한을 국제적인 고립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내부 소식통의 우려도 전했다. 북한은 중국과 거리를 두는 대신 러시아에 밀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5일 북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조선해방 70돌 경축행사’에서는 유일하게 러시아 연방 평의회 대표단, 국방부 대표단 등 러시아 관계자들만 소개했다. 북한은 이날 양국의 국장과 국기가 담긴 ‘조로(북-러) 친선의 해’ 기념우표를 발행하기도 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중국 전승절에 5월 러시아 전승절 참석자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참석할지, 그보다 직급이 낮은 인사가 참석할지를 지켜보면 앞으로 북-중 관계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20일 오후 3시 53분 우리 군은 경기 연천군 중면 지역으로 날아온 북한의 포탄을 처음 포착했다. 아서(ARTHUR)-K 대포병레이더가 바로 포물선을 그리는 탄도 궤적을 탐지했다. 발사 위치를 역추적해 즉각 155mm 자주포로 대응한 것은 바로 대포병레이더의 활약 덕분이었다. 국방부는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11일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이래 서·중부 전선에 최고 경계태세를 발령하고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화력을 긴급 보강했다. 아서-K 대포병레이더가 이 지역에 배치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대포병레이더는 날아오는 포탄의 포물선을 분석해 발사 위치를 추적한다. 아서-K 대포병레이더의 최대 탐지거리는 60km에 달하고 적의 전파 방해에 대응할 수 있는 대전자전(ECM) 능력을 갖춘 신형 장비다. 고사포부터 박격포까지 다양한 포탄을 탐지할 수 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배치됐던 구형 대포병레이더는 성능이 떨어져 포탄을 탐지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당시 우리 군은 적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다. 아서-K는 스웨덴에서 도입한 이동식 대포병레이더로 대당 가격은 약 130억 원. 국방부는 2009년부터 이를 도입했고 2010년 북한의 연평도 도발 이후 2대를 추가 도입해 모두 6대 배치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정부가 평화통일재단을 설립하고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 통일전담 조직을 신설하는 등 통일 준비를 위한 제도 정비에 나섰다. 통일부는 20일 ‘평화통일기반구축법’을 입법예고하고 올해 정기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먼저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의 설치근거를 마련키로 했다. 다음 정부에서도 통준위가 지속적으로 활동하고 민관이 함께 통일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에도 통일준비 전담조직을 설치한다. 평화통일 기반 구축 업무를 수행할 조직과 인력을 갖추고 필요한 전문인력을 양성해 정부와 지자체 간 일원화된 체계 속에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통일 관련 사업을 수행할 평화통일재단 신설 내용도 포함됐다. 또 통일부 장관은 5년마다 ‘평화통일기반 구축에 관한 기본계획’과 연도별 시행계획을 수립해 실행하게 된다. 통일부는 1월 1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평화통일기반구축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고 최근까지 유관기관의 의견을 수렴해왔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박근혜 대통령 집권 전반기의 외교 노선은 ‘올바른 상대하고만 대화한다’는 원칙 외교였다. 일본에 대해서는 과거사 문제 선(先) 해결을, 북한에 대해서는 비핵화를 전제로 한 대화라는 태도를 고수해 왔다. 그러면서 남북 관계와 한일 관계는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급속히 냉각됐다. 결과적으로 동북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 한국이 움직일 외교적 공간을 잃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박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상대방의 뚜렷한 태도 변화가 없다는 국내 비판 여론을 감수하고도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언급한 것이나, 중국의 항일 전승절 행사 참석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은 이런 위기감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외교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과감하게 ‘실리 외교’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외교 관계에서 근본주의적 접근의 한계가 드러난 것”이라며 “과거와 미래, 경제와 안보를 분리해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리 외교 전환을 요구하는 주변 정세 ‘원칙 외교’로는 지금의 동북아 질서를 유지하려는 미국(아시아 재균형 정책)과 동북아 질서를 바꾸려는 중국(신형대국관계론) 사이에서 다양하고 유연한 전략을 구사하기 어려웠다. 한일 관계가 틀어지면서 미국은 한국의 한미일 협력 강화 의지를 의심했다. 중국은 이때라고 판단해 한미일 협력 축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을 집중 공략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THAAD) 체계 설치부터 항일 전승절 참석까지 한국을 두고 중국과 미국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이유다. 원칙만 고집하는 외교는 중견국 외교를 펼치는 한국의 국력과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일본의 ‘실리 외교’는 치밀했다. 일본과 미국은 4월 28일 ‘미일 공동 비전 성명’을 발표하고 과거 적대 관계에서 부동의 동맹으로 전환됐다고 선언했다. 미일 관계를 다진 일본은 중국을 향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중일 정상회담을 집요하게 타진하는 동시에 9월 3일 항일 전승절에도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일본 신문의 보도가 나왔다. 일본의 패전일임에도 불구하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만나겠다고 나서는 것. 이런 변화 기류 속에서 하반기에 줄줄이 예정된 다자 외교 무대나 한중일 정상회의에서까지 원칙에만 매달리다간 동북아 외교 지형 변화 구도에서 미아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중일 정상회의로 계기 마련되나 요동치는 동북아 질서는 위기지만 동시에 새로운 변화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강대국들의 세력이 조정되는 과정에 한국이 빈틈을 파고드는 외교력을 발휘하면 전략적 공간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는 미국과 중국의 꽉 막힌 틀을 뚫는 또 하나의 새로운 접근법이 될 수 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중국 전승절에 참석하는 대신 한중일 정상회의를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며 “이를 계기로 대북 관계에서 중국이 행동에 나서도록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10월 16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동북아 안정과 평화를 위한 한국의 구상을 적극적으로 설득하면 된다는 것.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은 “중국에 있어 한국은 일본 고립을 유도하는 전략적 카드이자 미국과의 관계에서 완충지대”라며 과거와 미래를 분리한 ‘투 트랙’ 전략을 강화하는 실리 챙기기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일 관계 개선을 요구하는 미국의 주문을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적 요인도 있다. 외교 당국은 ‘실리 외교’ 기조에 맞춰 한중일 정상회의 성사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르면 10월 서울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하고 이를 계기로 하반기 동북아 외교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다자에서 양자로, 비안보 이슈에서 안보 이슈로 점진적으로 관계를 개선하면서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18일 “우리나라는 의장국으로서 일본, 중국 양측과 연내 3국 정상회의 개최를 위한 의견 조율을 계속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과감한 실리외교에 나서라.’ 25일 임기 반환점을 도는 박근혜 대통령의 외교노선이 원칙 중시 외교에서 현실적인 외교로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동북아 외교 지형이 요동치면서 양자 및 다자 외교의 주도권을 쥐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에 전개될 동북아 정상외교의 엄중함을 고려한다면 이보다 과감한 실리외교로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담화에 대해 절제된 비판을 했다. 외교가에선 박 대통령의 ‘원칙 외교’ 스타일에 비춰 보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올해 안에 개최할 한중일 정상외교를 철저히 염두에 둔 행보인 셈이다. 한일관계 개선이 전제돼야 복잡한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이 입지를 다지며 북핵 외교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올해 하반기 첫 무대는 대중(對中) 외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9월 3일 중국의 항일 전승기념절을 앞두고 박 대통령이 참석을 검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도 3일 전격 방중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한중, 중일의 미묘한 탐색전이 이뤄지고 나면 2012년 이후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의도 초읽기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현실이 그 어느 때보다 냉엄하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의 외교 노선의 틀을 장기적인 국익을 염두에 둔 실리외교로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중국의 동아시아 지역 패권 경쟁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한국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특히 미국과 관계를 공고히 한 일본이 중국에 대한 구애에 나서면 한국만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은 한일관계 개선을 시작으로 중국과 미국 양국 사이에서 외교적 입지를 넓힘으로써 동북아 외교 고차방정식을 풀겠다는 전략을 구상 중이다. 한중일 정상회의 성사는 박 대통령 실리외교의 첫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은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대외 관계 개선에 나설 의지가 낮아 보였다”며 “실리외교가 성숙한 외교라는 것을 설득해 나가면서 과감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고 조언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 광복 70년, 분단 70년. 한국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기’를 보냈다. 한국은 유엔 수장을 배출한 나라가 됐지만 광복 당시에는 국제무대에서 존재감조차 미미했다. 70년간 한국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구가했지만 냉전과 남북 대치, 4대 강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외교적 생존을 위한 발버둥을 쳐야 했다. 그런 노력을 통해 6·25전쟁, 냉전과 탈냉전을 견뎌내고 빈곤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국 외교의 고군분투 과정을 ‘광복 70년, 한국 외교사 명장면’으로 소개한다. 》“연내 모스크바 구경 좀 하게 해 주소.” 1990년 2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은 주모스크바 영사사무처장으로 부임할 공로명 외무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고서는 넌지시 말을 건넸다. 소련과 공식 수교를 맺자는 뜻이었다. 10개월이 지난 뒤 노 전 대통령은 실제 모스크바 땅을 밟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2월 취임사에서 “우리와 교류가 없던 저 대륙국가에도 국제협력의 통로를 넓게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북방외교의 신호탄이었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은 한국은 한-소, 한중 수교로 외교 영토를 넓혀야만 했다. 공산권 국가와의 교류가 없던 한국은 물밑에서 박철언 전 의원(당시 대통령정책보좌관) 등 비선(秘線) 라인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1989년 2월 헝가리, 그해 11월 폴란드와 공식 수교한다. 북방외교의 절정은 공산권 종주국인 소련과의 수교였다. “북쪽(중국·소련)으로 우회해 평양으로 가겠다”는 대통령의 북방외교 의지가 확고한 만큼 청와대를 중심으로 소련과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정부, 국회의 경쟁이 벌어졌다. 1990년 3월 20∼27일 김영삼(YS) 당시 민자당 최고위원과 박철언 당시 정무 제1장관이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했다가 불화설이 불거진 것처럼 외교채널에 혼선도 빚어졌다. YS는 “노 대통령의 친서를 가진 줄 몰랐다”고 했고, 박 전 의원은 “고르바초프를 만날 줄 몰랐다”고 서로 딴소리를 했다. 결국 박 전 의원은 청와대를 떠났고 대통령외교안보수석실이 북방외교의 전면에 나섰다. ○ 소련이 먼저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제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나기를 바란다.” 김종휘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1990년 4월 23일 세계정상회의 참석차 서울을 방문한 아나톨리 도브리닌 주미 소련대사로부터 깜짝 메시지를 전달받았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극비리에 만난 도브리닌 대사는 9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안했다. 이 자리에서 김 전 수석과 도브리닌 대사는 청와대, 크렘린궁과 각각 통화해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개최를 확정했다. 그해 6월 한-소 정상회담과 한미 정상회담이 한꺼번에 열린 것도 의미 있는 성과였다. 비밀리에 진행된 한-헝가리 수교, 7·7선언 등으로 한국에 대한 미국의 불신이 커진 상태였다. 김 전 수석은 “미국에서 한-소 정상회담만 하면 서로 불편하다”며 한-소 정상회담 직후 한미 정상회담(6일)을 제안했다. 미국이 이에 응하면서 노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의 정상회담까지 이뤄졌다. “한-소 수교는 부시 미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에 힘입었다”는 도널드 그레그 당시 주한 미국대사의 증언처럼 미국은 측면에서 한-소 수교를 지원했다. 1990년 6월 4일(현지 시간) 페어몬트 호텔에서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이 열렸다. 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가 나란히 서서 환하게 웃는 사진은 동서 냉전 종식의 상징적인 한 장면이었다. 9월 30일 전격적으로 수교했고 12월 13∼16일 노 전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고르바초프와 재회한다. 방문 당시 30억 달러 차관을 약속해 퍼주기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이를 계기로 소련은 북한에 대한 원조를 끊고,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했다.○ “북방외교가 통일 앞당길 것” 기대 1990년 6월 7일 자 일본 마이니치신문에는 창 밖에서 한국 미국 소련이 한편이 되어 놀고 있고, 집 안에서 일본이 혼자 놀고 있는 내용의 만평이 실렸다. 외교적으로 고립됐던 일본은 “중국이나 소련에서 (일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한국에 물어볼 정도였다. 냉전시대의 진영외교를 벗어나는 북방외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의 경제력 덕분이었다. 당시 소련을 방문했던 외교안보라인 관계자들은 ‘사회주의 실패’를 직감했다고 한다. 김 전 수석은 “1988년 러시아행 비행기 안에서는 무거운 합판 식판에 식사를, 두꺼운 양은 주전자에 물을 담아 줬다”고 했다. 그만큼 소련 경제는 비효율적이었다. 서울에서 개최된 88올림픽이 생중계되면서 한국을 보는 동유럽권 국가들의 눈이 달라졌다. “한국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북방외교에 탄력이 붙었다. 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수교국은 100개국에서 130개국으로 늘었다. 김 전 수석은 “북방외교가 성공하면서 국방대신 국내 경제와 복지에 투자할 여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공 전 장관은 “북한과 대화가 안 되면 모스크바를 통해 평양으로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회고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김종휘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과의 인터뷰 및 박철언 전 의원 회고록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경제·문화는 우수, 사회는 보통, 정치는 미흡.’ 광복 70년 한국이 받아든 성적표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지만, 남북 분단과 이념 갈등으로 사회는 정체되고, 정치는 극한 대립을 반복하는 후진적인 문화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설문조사를 한 우리 사회 리더 70명의 평가다. 그렇지만 광복 100년 한국의 모습은 밝다고 봤다. 경제 성장도, 민주화도 가장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이뤄낸 ‘한국의 저력’ 때문이다.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70년이란 시간 동안 한국만큼 국력을 키운 나라는 없다”고 단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늘의 한국 기초 다져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 내는 데 기여도가 높은 대통령을 순서대로 3명을 배열해 달라는 질문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압도적 1위(60%)였다. “오늘 한국의 경제 기적을 일으킨 주역이다”(박관용 전 국회의장), “산업화를 통해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중산층이 형성됐다. 국가로부터 독립된 사회가 창출됐고, 민주주의의 기반이 됐다”(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평가가 나왔다.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떠나 한강의 기적이 시작됐다는 얘기다. 2위는 이승만 전 대통령(22.9%)이 차지했다. “대한민국을 혼자 세운 것이나 마찬가지다”(소설가 복거일 씨), “(광복 이후) 국가가 생존해야 하는 상황에서 국제정세를 읽는 뛰어난 외교적인 감각으로 독립 국가를 유지했다”(이재열 서울대 교수). 건국의 혼란기에 탁월한 외교 감각으로 한국을 지켜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어 실질적으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10%)과 노무현 전 대통령(4.3%)의 기여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경제 발전에 비해 정치, 사회 발전 속도는 더뎠다. 응답자의 절반은 대한민국 정치가 후진적인 이유로 ‘타협 없이 극한 대립을 반복하는 정치문화’(48.6%)를 꼽았다. 남궁영 한국국제정치학회장은 “한국은 ‘나는 옳은 정의, 상대는 틀린 정의’라는 정치문화가 팽배해 에너지가 낭비된다”며 “여야와 좌우가 우리 사회 발전을 위해 존재하는 행위자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가장 심각한 한국병으로는 ‘남북 분단과 좌우 이념 갈등’(62.9%)이 꼽혔다. 사회 통합이 절실하다는 뜻이다.○ 30년 뒤에도 부유한 한국 한국이 30년 뒤 더욱 부유해질 것이라는 데는 응답자의 97%가 동의했다. 2045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5만 달러(35.7%) △5만 달러 이상(34.3%) △3만∼4만 달러(27.1%) 순으로 예상됐으며 모두 현재(2만8000달러)보다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국가 발전을 위한 신성장동력 확보’(38.6%)가 앞으로 30년간 한국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과제로 지적됐다. 지속적인 성장은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전제된다는 의미다. 한국의 10대 기업 가운데 30년 뒤에도 살아남을 기업으로는 삼성(59명)→현대차(21명)→LG(19명)→SK(17명)→CJ(11명) 순으로 꼽혔다. 복수응답을 받은 이 항목에서 응답자(70명)의 84.3%가 삼성을 꼽았다. “미래를 위한 연구와 투자가 가장 적극적”(김황식 전 국무총리)이고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그룹으로 사람이 바뀌어도 지속 가능하다”(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자산규모 기준 재계 순위는 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순이었다. 하지만 롯데그룹을 30년 뒤 살아남을 기업으로 꼽은 응답자는 단 3명뿐이었다. 최근 경영권 분쟁을 겪은 파장인 것으로 보인다. 총수 일가가 사이좋게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유지해 ‘총수 리스크’가 적은 LG가 높은 순위에 오른 것과 비교된다. ○ “미국보다 중국” 양국 간 줄타기 계속될 듯 광복 100년을 맞을 2045년, 한국에 가장 중요한 국가로 미국(44.3%)을 제치고 중국(51.4%)이 부상했다. 근소한 차이지만 미국의 쇠락, 중국의 부상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며 전략적 중요성이 다시 평가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지금까지 대다수 조사에서는 미국이 우위를 점해 왔다. 중국이 더욱 중요한 이유로 “지리적, 경제적으로 밀접한 데다 남북통일에서도 중국의 역할이 클 것으로 판단된다”(지훈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이사장), “안보적 관점의 동맹의식은 희석되고 경제적 관점의 관계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김황식 전 총리) 등의 의견이 제시됐다. 반면 미국의 지위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이번 세기까지는 미국의 영향력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할 것이다. 한중일의 복잡한 이해관계에서 떨어져 있는 미국이 우군으로 활용 가치가 높다”(김상균 서울대 교수), “미국이 유지해 온 경제력, 군사력, 외교력은 중국이 당장 따라잡을 수 없고 한국과 오랜 기간 우방을 맺어 왔다는 점에서도 미국이 중요하다”(이진강 대법원 양형위원장), “일당 독재가 변화하지 않는 이상 중국과 한국이 가치관을 공유하기는 어렵다”(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등 국익을 철저히 따져봐야 한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설문조사에 참여해 주신 분들분야별 가나다순.<정치> 김광웅 전 중앙인사위원장·명지전문대 총장, 김병준 국민대 교수·전 대통령정책실장, 김상민 국회의원, 김황식 전 국무총리, 남궁영 한국국제정치학회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 박영선 국회의원, 박찬욱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위원장,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언주 국회의원,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외교안보> 김성한 고려대 교수·전 외교부 차관,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경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장,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산업>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이근 서울디자인재단 대표,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 함승종 블루베리코리아 대표<사회>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대표, 김시명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회장,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문경란 서울시 인권위원장, 박덕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연구실장, 박만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성낙인 서울대 총장,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이원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진강 대법원 양형위원장, 지훈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이사장, 한주형 50+코리안(은퇴연구소) 회장<교육·복지>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민행복연금위원장,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전 한국연금학회장,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문화·스포츠>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 기술위원장, 문정희 시인·한국시인협회장,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복거일 소설가, 서현 한양대 건축과 교수,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 윤제균 영화감독, 윤호진 에이콤 인터내셔날 대표, 이용수 세종대 교수·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지원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장,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박민규 인턴기자 고려대 교육학·사회학과 4학년}

‘한반도의 미래는 통일에 달렸다.’ 우리 사회 리더들은 광복 100주년까지 한국이 추구해야 할 바람직한 미래국가의 모습으로 ‘통일국가’(44.3%)를 첫손에 꼽았다. 과연 통일국가가 되면 우리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적 과제가 해결될 것인지를 주목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가장 심각한 한국병인 ‘좌우 이념 갈등’(62.9%)은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남북의 체제 경쟁으로 중도는 설 자리를 잃었다. 문경란 서울시 인권위원장은 “이념이나 계층 갈등이 사실은 분단에서 유래했다. 노동, 인권 등 모든 문제가 좌우 문제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박덕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연구실장은 “통일이 되면 이념 갈등은 물론이고 지역 갈등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통일국가는 곧 주요 8개국(G8) 모델이나 평화국가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인구 7000만 명의 자생력 있는 국가는 진정한 평화국가가 될 수 있다”며 “내수만으로 소비가 가능하고, 자원 인구 등에서 강소국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통일”이라고 강조했다. 남궁영 한국국제정치학회장은 “만약 통일국가가 되지 못한다면 다른 복지, 평화, 도덕 등의 분야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일에 집중하는 국가전략이 필요하다는 것. 한국이 앞으로 해결해야 할 ‘신성장동력 확보’(38.6%) 역시 통일이 해법이 될 수 있다. 김도훈 산업연구원장은 “남북통일로 유라시아 지역이 새로운 수요처로 떠오르면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 역할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30년간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 ‘남북의 군사적 대치 해소’(28.6%)나 ‘좌우 이념 갈등 해소’(24.3%)도 통일이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제시됐다. 상대적으로 고령화가 늦은 북한과 통일이 되면 저출산 해소(5.7%)도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새벽처럼 다가올 통일’을 낙관해서는 안 된다. 점진적으로 치밀하게 다가올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상대가 무너질 것으로 가정하고 우리 희망만 이야기하는 것은 통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상대에 대한 인정을 전제로 철저한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해 주신 분들분야별 가나다순.<정치> 김광웅 전 중앙인사위원장·명지전문대 총장, 김병준 국민대 교수·전 대통령정책실장, 김상민 국회의원, 김황식 전 국무총리, 남궁영 한국국제정치학회장, 박관용 전 국회의장,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 박영선 국회의원, 박찬욱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가인권위원장, 이내영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언주 국회의원, 최진우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외교안보> 김성한 고려대 교수·전 외교부 차관, 류길재 전 통일부 장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 천영우 전 대통령외교안보수석·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경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김도훈 산업연구원장, 김종석 여의도연구원장, 김주형 LG경제연구원장,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장,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박형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신성환 한국금융연구원장,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산업>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 권오갑 현대중공업 사장,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박서원 오리콤 부사장, 이근 서울디자인재단 대표,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정진행 현대자동차 사장, 정철길 SK이노베이션 사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 함승종 블루베리코리아 대표<사회> 강신섭 법무법인 세종 대표, 김시명 대한민국순국선열유족회 회장,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문경란 서울시 인권위원장, 박덕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연구실장, 박만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성낙인 서울대 총장,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 이원우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진강 대법원 양형위원장, 지훈상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이사장, 한주형 50+코리안(은퇴연구소) 회장<교육·복지> 김상균 서울대 명예교수·전 국민행복연금위원장, 김용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전 한국연금학회장,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문화·스포츠>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 기술위원장, 문정희 시인·한국시인협회장,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복거일 소설가, 서현 한양대 건축과 교수, 안규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 윤제균 영화감독, 윤호진 에이콤 인터내셔날 대표, 이용수 세종대 교수·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지원 스님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장, 최광식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박민규 인턴기자 고려대 교육학·사회학과 4학년}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한반도 주변 외교안보 환경이 요동치고 있다. 외교 지형이 재편될 때마다 시련을 겪었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한국은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 이를 위해 세종연구소는 12일 서울 종로구 서머셋팰리스에서 동아일보 후원으로 ‘세종국가전략포럼’을 개최했다. 2030년 한국의 미래를 전망하고 통일·외교·안보 전략을 점검하기 위해서다. 핵개발이 가까운 미래에 중단되지 않는다면 북한은 2030년 핵 강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2020년 핵무기가 100개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핵 강국이 되면 한국이 경제력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해도 남한 주도의 통일을 실현하기는 어려워진다”며 “북한 내부에서 민주화가 이뤄지거나 갑자기 붕괴될 가능성이 낮은 만큼 경제·사회 분야에서 작은 통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남북 대화의 제도적 단계→남북연합→연방제 통일의 3단계가 바람직하다는 것. 참석자들은 섣부른 북한 붕괴론이나 흡수 통일론을 경계하고 점진적인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 양윤철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이질적인 경제체제가 통합되는 부작용을 줄이려면 남북한 장점을 살린 분업을 통해 산업 협력을 추진해야 한다”며 “북한의 경제특구를 활성화시키면 점차 개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을 위해 외교력도 집중돼야 한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통일 한국이 주변 국가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한다”며 “통일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충돌 완충지대 역할을 하며 비핵화를 선언한다면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하드파워가 없는 중견국으로서 능란한 외교술이 중요하다”며 “한중일, 한미일 등 각종 채널을 활성화해 우리 외교의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엄상윤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가속화하고, 북핵 등 안보위협이 고조되는 가운데 ‘한국형 헤징전략’을 제안했다. 국방력을 강화하고 한미동맹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같은 한반도 평화구조를 정착시켜 나가는 유연한 전략을 의미한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A 씨는 학원을 새로 열기 위해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을 찾아봤으나 강의실 크기 등 시설 기준은 조례로 정해져 있었다. 하지만 법제처 홈페이지에서는 조례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시청에 전화로 문의해야만 했다. 앞으로 이런 불편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국가 법령과 지방자치단체 조례를 한번에 확인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법제처와 행정자치부는 12일부터 국가법령정보센터(law.go.kr)에서 국가 법령 4500건, 지자체 조례 9만1000건의 정보를 통합해 제공한다. 지금까지는 국가 법령은 법제처가, 조례는 지방자치단체가 각각 공개해 왔다. 상위 법 개정 알림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도로법 시행령’은 도로점용료가 토지 가격의 2%로 완화됐는데도 이를 몰라 토지 가격의 2.5%를 부과하는 지자체가 45곳이나 됐는데 이를 바로잡게 된다. 또 전국 234개 지자체의 조례를 비교할 수 있어 건폐율을 60%로 완화한 지역을 찾기가 쉬워진다. 이는 정부의 규제 개혁에 따른 효과가 지자체 조례에 가로막혀 체감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또 지자체 간 조례를 비교해 규제 개혁 경쟁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정부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방북한 5일 북한에 남북 고위급 회담을 제의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는 10일 불가피한 사정이 있었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당국 대화 의지가 없는 북한에 정부의 대화 제의를 이 여사 방북과 연관해 거부할 핑계를 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기에 비무장지대(DMZ) 지뢰 폭발이 북한 소행으로 드러나자 정부는 당분간 대북 대화 동력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에 8·15 전 남북관계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대북 제안 시점을 결정했다. 시점은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5일 경원선 남측 구간 기공식 직후로 확정됐다. 북한이 중단을 요구하는 한미 연합 군사연습인 을지프리덤가디언이 17일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시간 차를 둔 것이다. 지난해 8월 남북 고위급 접촉을 제의하면서 회담 개최 시점을 을지프리덤가디언 시작 이후인 19일로 정했다가 북한이 반발한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았다. 기공식 직후로 잡은 이유는 기공식 전에 대북 제의를 했다가 거부당하면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박 대통령 기공식 대북 메시지가 퇴색될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이 여사 방북이 기공식과 겹치자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대화 의지가 있다면 정부-민간이 동시에 대화 뜻을 밝혀 윈윈할 수도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정부는 5일 오전 11시 반 판문점 남북 연락관 직통전화를 통해 “홍용표 통일부 장관 명의로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앞으로 보내는 고위급 회담 제의를 담은 서한을 전하겠다. 오후 1시에 만나자”고 했다. 서한에는 한국이 원하는 이산가족 상봉, 광복 70주년 공동기념 행사 개최와 북한이 원하는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양측 관심사를 포괄적으로 논의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금강산 관광은 북한의 눈길을 끌 만한 유연한 제안. 관례에 따라 북한에 미리 의제를 알리지는 않았다고 한다. 북한 연락관은 이날 오후 1시 “상부의 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서한 접수를 거부했다. 10일까지 같은 답을 되풀이했다. 대화 거부의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남북관계에 대한 초보적 예의조차 없는 것으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북측은 대화 제의 시점을 두고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 이 여사 측 관계자는 “방북 다음 날인 6일 맹경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이 여사 방북 기간에 대화 제의가 온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안 받겠다고 했다”며 “첫날부터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 면담이 어렵다는 뉘앙스를 보였던 북측은 6일 면담을 못한다고 구체적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통일부는 “이 여사 방북과 대화 제의는 연관관계가 전혀 없다”며 “북한이 자기들 주장을 합리화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애초 남북 대화에 나올 생각이 없었던 북한이 이 여사 방북을 연결해 남남(南南) 갈등을 일으키려 한 것으로 보고 있다. 통일부는 ‘이 여사를 통해 대화 제의를 할 수 있었지 않느냐’는 지적에 “정부가 관여하는 것에 북한이 부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앞서 북한은 정부가 김대중평화센터를 통해 정부 관계자 1, 2명의 동행 의사를 묻자 “이 여사 일행에 왜 끼어서 오느냐”며 거부했다고 한다. 일각에선 4일 지뢰 폭발이 일어난 다음 날 대화를 제의한 데 대해 외교안보 부처 간 엇박자를 의심하기도 한다. 지뢰 폭발 이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대화 제의 시점에는 북한의 관련성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우경임 기자}

동네를 고치고 다듬어 공동체까지 되살리는 ‘도시재생’이 전면 철거한 후 새로운 동네를 조성하는 뉴타운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서울시는 지난해 12월 도시재생 시범구역 5곳을 지정했다. 각각 100억 원씩 4년간 투자한다. 서울 성북구 장위13구역은 뉴타운 해제 지역으로 유일하게 도시재생 시범구역에 포함됐다. 뉴타운 수습 방안으로 도시재생의 가능성을 실험하게 된 장위13구역(장위동 232-17번지 일대)을 지난달 직접 찾아봤다.○ 개발 기대에 10년 ‘허송세월’ 장위13구역(31만8425m²)은 2005년 뉴타운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 추진이 사실상 중단됐다. 10년 동안 집도, 도로도 그대로 방치됐다. 20년 이상 된 노후주택 비율은 75.8%. 주민들은 철거될 집이라며 수리도 하지 않았다. 동네를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 최근 5년간 인구는 10% 가까이 줄었다. 사실 장위13구역은 ‘뉴타운 광풍’이 없었다면 개발이 쉽지 않은 곳이었다. 왕복 2차로 도로가 가까운 아랫동네에는 1970년대 군 장성들이 살던 고급 주택이 늘어서 있다. 북서울꿈의숲에 인접한 윗동네로 올라가면 경사길에 연립주택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뉴타운이 지정됐을 당시부터 “도로도 넓히고 낙후된 동네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과 “멀쩡한 집을 부수고 왜 아파트를 새로 짓느냐”는 의견이 대립했다. 그러나 서울시 조사 결과 사업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로를 대부분 새로 만들고 아파트 옹벽도 세워야 했다. 추가 분담금은 계속 늘어났고 “새 아파트보다 월세를 받는 편이 낫다”며 반대하는 주민이 과반수였다. 결국 지난해 11월 뉴타운에서 해제됐다. 주민 송모 씨는 “10년 동안 집값은 반 토막이 났고, 동네는 발전을 멈췄다”며 “10년 세월만 날려버린 셈”이라고 말했다.○ 사업성 낮고 원주민 내쫓는 뉴타운 장위13구역 주민은 재개발이 시작된 근처 장위2구역과 장위5구역에 살다 싼 집을 찾아 밀려든 주민이 대다수다. 이처럼 뉴타운의 원주민 재정착률은 매우 낮다. 서울시에 따르면 뉴타운 지구 재정착률은 20%에 미치지 못한다. 뉴타운 지정이 활발하던 2004∼2008년 서울시 땅값 상승률은 평균 7.6%였지만 뉴타운 지구는 48∼258% 올랐다. 주민들을 외곽으로 몰아낼 뿐 주거 안정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주택 재건축·재개발과 도로, 편의시설 확충까지 포함하는 뉴타운은 물리적인 환경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반면 도시재생은 소규모 개발이 이뤄지는 데다 일자리 창출이나 공동체 활성화 같은 소프트웨어에 초점을 맞춘다. 성북구는 도시재생사업 과제로 △한부모 지원센터, 마을도서관 등으로 이뤄진 커뮤니티센터 설치 △빗물을 저류조에 저장하는 빗물공동체 △감나무 공동수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의 사업을 제안했다.○ 도시재생 ‘실험’ 성공할까 그러나 ‘단기간’에 ‘대규모’로 주거환경이 바뀌는 데 익숙한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마치 고립된 섬처럼 낙후된 동네로 남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주민 이모 씨는 “‘우리 동네만 재개발이 안되면 어떡하느냐’며 걱정하는 이웃들이 많다”고 말했다. 도시재생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오래된 주택을 철거하고 다가구·다세대 주택을 짓는 곳도 늘고 있다. 도시재생으로 집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에 임대업자들이 더 빨리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도시재생이 성공하려면 주민 참여가 필수다. 공공이 예산을 투입하고 주민을 동원하는 사실상 관 주도의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인프라를 바꿔 새로운 동네를 만드는 것이 아닌 만큼 주민들이 스스로 공동체 복원에 나서야 한다. 서울시와 성북구는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설치하고 도시재생 전문가를 영입했다. 공무원과 마을주민 사업시행자 등으로 구성된 도시재생운영위원회도 설치했다. 행정적인 체계는 갖춰졌지만 아직 주민들은 도시재생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다. 도시재생을 재개발, 재건축의 다른 이름 정도로 아는 주민도 많았다. 이재우 목원대 교수는 “낡은 집을 주고 새 집을 얻는 과정에서 재산 증식의 경험이 있는 한국에서는 도시재생이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먼저 마을 리더를 길러내고 이들의 역량을 키우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서울 성북구 정릉동의 스카이아파트도 처음에는 고급 주거지였다. 당시에는 4, 5층짜리 연립주택이 신주거지로 인기를 모았다. 주채순 씨(77·여)는 1977년 당시 1500만 원에 아파트를 사서 입주했다. 주 씨는 “그때까지만 해도 정릉 일대에서 여기만큼 좋은 집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지금은 떠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3000만 원 융자 지원을 받아 이사를 하더라도 갚을 길이 막막하다. 임대주택에서 낼 임차료조차 감당할 자신이 없다. 주 씨를 포함해 이곳에 남은 주민 대부분은 형편이 어려운 노인이다.○ 강북 구도심에 몰린 노후 주택 스카이아파트를 비롯해 서울 저층 주택 가운데 72.3%는 2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이다.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20년 이상 된 저층 주택이 많은 곳은 성동구(86.3%), 동대문구(82.6%), 중랑구(81%) 순이다. 모두 2008년부터 부동산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아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멈춘 곳이다. 서울에는 무려 683곳이 재개발과 재건축 뉴타운으로 지정됐었다. 이 가운데 245곳(36%)이 해제됐다. 본격적으로 뉴타운 출구전략이 언급된 이후인 2012∼2014년에만 184곳이 해제됐다. 남아 있는 구역도 사실상 사업 추진이 어려워졌다. 올 4월 서울시가 나머지 구역 가운데 사업 추진위원회가 있는 327개를 전수 조사했더니 절반 이상은 사업이 정체되거나 진행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주민 간 이해관계가 달라 사업에 진척이 없거나 사업성이 낮아 나서는 시행사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 주택의 평균 수명은 약 27년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매우 짧다. 주택 수명은 기존 건물이 지어진 때부터 새로운 건물을 짓기까지의 기간이다. 한국은 미국(71.95년), 프랑스(80.23년) 등의 3분의 1, 일본(54.25년)의 절반 수준이다. 서울에는 지은 지 30년 이상 돼 사실상 ‘수명을 다한’ 저층 주택이 34.9%나 된다. 오래돼 낡은 주택의 보수가 미뤄지면 사람이 떠난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교육 여건도 나빠진다. 다시 사람이 떠나고 주택은 비어 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실제로 서울 곳곳의 정비 사업이 줄줄이 중단되면서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시엔 1만5000여 채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뿐 아니라 지역 전체가 점차 ‘슬럼화’되는 것이다.○ 한국형 도시 재생 가능할까 1980년대 이후 도시화에 따른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가 대거 개발됐다. 반면 주택 공급과 기반 시설 투자가 멈춘 구도심은 점점 쇠락했다. 이른바 ‘쇠퇴하는 도심’이 곳곳에 나타나고 있다. 이들 지역은 농촌보다 열악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쇠퇴하는 도심의 노후 주택 비율은 56.4%로 농어촌(55.8%)보다 높다. 사회복지시설이나 문화체육시설도 농어촌보다 오히려 적었다. 이런 지역에 단순히 주택을 새로 짓거나 수리한다고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학교가 없고, 편의시설이 없고, 교통이 불편한 곳에 새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사람들이 돌아오지는 않는다. 먼저 부동산 버블을 겪었던 선진국 역시 도심 노후 주거지에 빈집이 늘면서 슬럼화되는 과정을 겪었다. 실업 홀몸노인 보육 건강 범죄 등 사회적 문제가 동반됐다. 이에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도시 재생이다. 일본 시가(滋賀) 현 나가하마(長濱) 시, 영국 런던 템스 강변 코인스트리트 등은 낙후된 공장 및 주택 리모델링과 함께 콘텐츠를 개발해 관광객을 모으는 경제적 효과까지 얻었다. 한국은 2013년 ‘도시재생법’을 제정했다. 한국형 도시 재생은 아파트 건설 위주의 개발을 버리면서 낙후된 구도심을 살려야 한다. 또 ‘베드타운’이 아닌 일자리 창출 등 지속적 자생이 가능한 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른 나라보다 훨씬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다. 현재는 서울 강북 등 일부 지역의 문제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강남과 신도시도 마주해야 하는 문제다. 서울시 관계자는 “저성장 시대에는 대규모 개발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 이제 동네를 고쳐 가며 사는 방식으로 개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우경임 woohaha@donga.com·이철호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3박 4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8일 귀국했지만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를 만나지 못했다. 이날 낮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이 여사는 “(남북 1차 정상회담의) 6·15 정신을 기리며 사명감을 가지고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고 밝힌 뒤 서둘러 공항을 떠났다. 동행한 방북단의 표정은 착잡했다. 이번 방북은 김정은이 지난해 12월 “내년 좋은 계절에 꼭 평양을 방문해 달라”는 내용의 친서를 보내 성사된 것이다. 그래서 방북단은 내심 면담이 성사될 것이라 기대했다.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이사는 “맹경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순안공항 영접부터 마중까지 모든 일정을 수행했고 환대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여사가 만난 최고위급 인사가 차관급이었던 셈이다. 방문 첫날인 5일 맹 부위원장은 김정은과의 만남이 없을 것이라고 알려줬다고 한다. 그는 김정은을 대신해 “이희호 여사님은 선대 김정일 위원장,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6·15선언을 하신 고결한 분이기에 정성껏 편히 모시라고 말했다”고 전했을 뿐이다. 김정은의 메시지도 없었고, 김양건 노동당 대남비서 같은 중량감 있는 인사의 영접도 없었다. 결국 김정은이 아흔이 넘은 이 여사를 직접 초청하고도 외면한 것이나 다름없어서 ‘홀대 논란’도 나온다. 이 여사는 이런 반응을 의식한 듯 8일 “민간 신분인 저는 이번 방북에 어떤 공식 업무도 부여받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 일각 “北의 홀대, 방북 힘 안실어준 정부 탓” ▼면담 불발은 김정은의 다음 행보를 가늠할 수 있는 방향타로 보인다. 우선 김정은이 당분간 남북관계에서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를 계기로 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도발에 나선다면 남북관계 악화가 불가피하다. 당장 17일부터 이달 말까지 이어질 을지프리덤가디언 연합 군사훈련에도 북측은 민감하다. 과거 북한이 남북 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경제가 어려웠던 시기와 겹친다. 지금은 상황이 조금 나아져 인도적 대북 지원에 소극적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박한수 김대중평화센터 기획실장은 “2011년 김정일 조문 당시와 비교해 평양에 주상복합 같은 고층 건물도 늘고, 휴대전화 사용도 자유로웠다”고 활기찬 평양 표정을 전했다. 김정은이 홀대 논란을 통해 남남(南南) 갈등을 노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선 정부가 민간 차원의 방북이라고 미리 선을 그었기 때문에 북한의 푸대접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통일부 관계자는 9일 “당초 면담 성사 가능성이 낮았다”고 반박했지만 야권과 일부 시민단체는 “정부가 민간 차원의 방북이라 강조하고, 정치인 방북을 배제하면서 방북에 힘이 실리지 못했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개인의 방북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3일 이 여사를 직접 찾아가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등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던 정부도 곤혹스러운 처지다. 하반기 남북관계 개선의 호재가 물 건너감에 따라 광복 70주년을 앞둔 정부의 운신의 폭도 더욱 좁아질 것으로 전망된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서울에 이런 집이 남아 있다니….” 1969년에 지은 서울 성북구 정릉3동 언덕 위 스카이아파트. 지난달 찾아간 스카이아파트는 세월을 혼자서만 맞은 듯했다. 외벽은 여기저기 갈라졌고 녹슨 철근은 끊긴 채로 벽면 밖으로 튀어나왔다. 손으로 벽체를 훑자 새하얀 시멘트 조각과 가루가 우수수 떨어져 나왔다. 스카이아파트는 이미 20년 전 건물안전점검에서 재난위험 최하등급인 E등급을 받았다. 서울 성북구는 이 아파트 5개동 가운데 붕괴 위험이 가장 컸던 1개동만 먼저 철거했다. 남은 4개동에는 16가구가 살고 있다. 정릉3동 한복판에 위치한 스카이아파트의 재개발 지연은 동네 전체의 슬럼화를 불러왔다. 낡은 집들만 남아있고, 도로에는 가로등조차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거환경이 낙후되자 사람들은 떠나갔다. 이곳에서 만난 한 주민은 “흉물(스카이아파트)이 떡하니 서 있으니 동네 전체가 죽는 건 당연지사”라고 말했다. 스카이아파트는 2000년대 들어 불기 시작한 ‘개발 광풍’이 지나간 뒤 쇠락해 가는 서울 도심의 모습을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시내 단독주택과 연립주택, 다가구, 다세대 등 4층 이하의 저층 주거지 가운데 72%(2014년 말 기준)가 지어진 지 20년이 넘었다. 한국의 주택 수명은 평균 27년. 인구 고령화 못지않게 ‘주택 고령화’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나 건설업체, 개인들은 여전히 재개발의 ‘신기루’에 홀려 도심 슬럼화를 방치하고 있다. 현재 서울 저층 주거지(111km²)에는 약 164만 가구가 살고 있다. 이들 지역은 재개발 재건축이 지연되거나 무산되면서 교통 위생 등의 주거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빈집이 늘어나 우범지대로 전락하기도 한다. 한꺼번에 모든 건물을 부순 뒤 고층아파트를 세우는 방식이 실패로 돌아간 만큼 새로운 재개발 대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김호철 단국대 교수(한국도시재생학회장)는 “노후 주택을 방치하면 동네 전체가 슬럼화된다”며 “이런 경험을 먼저 한 영국 일본 등은 소규모 정비와 함께 해당 지역에 맞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는 도시재생을 선택했다”고 말했다.우경임 woohaha@donga.com·이철호 기자}
농림축산검역본부 소속 공무원 A 씨는 지난해 9월 동물용 탈취제 업체로부터 제조업 신고서류를 제출받았다. A 씨는 동물용 탈취제 업체 직원 B 씨에게 세 차례나 보완을 요구하며 신청서류를 반려했다. ‘밀린 민원이 100건인데 해당 업체로부터 먼저 진행해도 된다는 동의를 받아 오라’ ‘공장등록증명서 주소지가 공장이 아닌 상가 건물이다’ ‘일반건축물 대장의 용도를 제조업소로 변경해 오라’ 등 대부분 필수 서류가 아닌 것들이었다. A 씨는 또 허가심사 도우미를 문의하거나, 신고 처리 기간을 알려 달라는 요구도 번번이 묵살했다. 직원 B 씨가 “신고 처리가 지연되면 파산한다”고 항의하자 공무원 A 씨는 “그쪽 사정”이라고 막말을 하기도 했다. 결국 A 씨는 감사원 조사가 시작되자 두 달이 지난 11월에야 신고를 수리했다. A 씨의 ‘갑(甲)질’에 제조업 신고 처리 기간(10일)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정부는 연일 ‘규제 혁파’를 외치고 있지만 공무원의 이 같은 무사안일한 ‘갑질’ 관행은 여전했다. 감사원은 4일 60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같은 ‘소극적 업무처리 점검’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의 ‘행정에 관한 국민 인식조사’에 따르면 국민 57.8%는 공무원이 무사안일하다고 평가했다. A 씨는 “교육과 출장으로 바빴다”고 변명했으나 감사원은 “고작 17쪽인 서류를 검토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기 어렵다”며 징계 처분을 통보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3일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일본 민주당 대표 일행 접견을 시작으로 공식 일정에 복귀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닷새간의 여름휴가는 일종의 ‘계절학기’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 관저에 머무르면서 임기 반환점(25일)을 앞두고 남은 임기 동안 중점 추진할 국정과제를 점검하고 정국 구상을 가다듬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여름휴가 기간 내내 매일 보고서 검토로 시작해 보고서 검토로 마무리하는 생활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매일 오전 6시 반 눈을 뜨자마자 참모진이 건넨 당일 언론보도 스크랩을 펼쳐들었다. 관심 있는 기사들은 해당 신문을 찾아 재차 꼼꼼히 확인했고, 특정 신문은 아예 처음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통독’했다고 한다. 2시간여의 신문 읽기로 여론을 살핀 뒤 본격적인 정책 보고서 검토 작업을 시작했다. 노동, 금융, 공공, 교육 등 4대 구조개혁과 24개 핵심 국정과제에 관한 보고서가 주를 이뤘다. 광복 70주년 경축사와 특별사면도 중점 검토 대상이었다. 이해가 안 되거나 보고서에서 문제점을 발견하면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수석비서관들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이렇게 하루 종일 보고서와 씨름을 하고도 모자라 가끔 잠자리에까지 보고서를 들고 간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었다. 박 대통령의 휴가 때의 구상은 4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국무회의에서 내수 진작 등을 위해 광복절 전날인 14일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할 경우 14, 15일 양일간 고속도로 통행을 무료화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카다 대표와의 접견에서 “곧 발표될 아베 신조 총리 담화가 식민지배와 침략을 반성했던 무라야마, 고노 담화의 역사인식을 확실하게 재확인해 양국 관계가 미래로 가는 데 기반이 마련되길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피해자들이 고령인 점을 생각하면 사실상 지금이 해결을 위한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하자, 오카다 대표는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생각하면 죄송하고 수치스럽다”고 답했다.박민혁 mhpark@donga.com·우경임 기자}
정부가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14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31일 여권과 관계부처에 따르면 국무조정실은 최근 인사혁신처에 임시공휴일 지정 절차를 문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혁신처는 ‘국무회의에 상정해 의결하면 임시공휴일 지정이 가능하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에도 임시공휴일을 지정한 선례가 있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정부는 2002년 월드컵 축구대표팀의 ‘4강 신화’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월드컵 폐막 이튿날인 그해 7월 1일(월요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방법을 강구 중”이라며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광복절 특별사면을 계획하는 등 광복 70주년의 의미를 살리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임시공휴일 지정 검토는 이런 분위기를 더욱 확산시켜 박근혜 정부 후반기를 맞아 새 출발을 다짐하는 계기로 삼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또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침체된 내수를 진작하기 위한 취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광복절인 15일이 토요일이어서 14일이 임시공휴일로 지정되면 사흘 연휴가 되기 때문에 관광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우경임 woohaha@donga.com·홍수영 기자}

“친한(親韓) 지한(知韓) 외국인이 늘어나면, 한국의 힘도 커지게 됩니다.” 전직 기업 주재원, 공무원, 교수 등으로 구성된 시니어공공외교단 2기 발대식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유스호스텔에서 열렸다. 공공외교는 상대국 정부를 상대로 했던 전통적 외교와 달리 상대국 민간을 상대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는 활동이다. 외교부가 지원하는 시니어공공외교단은 해외 근무 경험이 있고 외국어에 능통한 50대 이상 ‘시니어’ 37명으로 구성됐다. 영국 독일 등 해외에서 17년 동안 근무한 최하경 단장(70·전 현대상선 미국 LA법인 총괄사장)은 “전통외교 무대에서 한국은 강대국이 아니지만 공공외교 무대에서는 충분히 힘을 가질 수 있다”며 “공공외교를 통해 한국을 매력적인 나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아직도 국가 브랜드 인식은 낮은 편이다. 외국인은 대한민국 하면 아직도 6·25전쟁, 남북 분단, 북핵 등을 떠올린다. 최 단장은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외국인에게 호소력이 있다”며 “정(情), 케이팝 등 한류, 한식은 우리의 대표적인 힘”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 그릇에 담긴 음식을 서로 나눠 먹으며 정을 느낄 수 있는 한식은 외국인이 선호하는 체험이다. 건강식이라는 강점도 있다. 시니어공공외교단은 주한 외국인에게 한국을 정확히 알리고 각국에 네트워크를 만들어 왔다. 세계에 한국을 보는 시각을 제공하는 CNN 알자지라 등 각국 언론인, 블로거와 함께 남한산성 수원화성 등을 함께 돌아봤다. 베트남 및 몽골 유학생 등을 대상으로 삼성전자 같은 최첨단 산업 현장과 인근 문화 유적을 함께 돌아보며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소개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 밖에 외국인 노동자나 다문화가정 등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한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시니어공공외교단 2기 단원인 최선길 씨(55·한일우호교류협회장)는 “부산에서 공부하는 가나 유학생 등에게 부산을 소개해 줬더니 나중에 가나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하더라”며 “이들은 본국에 돌아가 고위 관료나 교수가 된다. 한국을 제대로 알려야겠다 싶어서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동기 외교부 문화외교국장은 “공공외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3,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시니어공공외교단이 전국 각지에서 헌신적으로 활동하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다.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인천국제공항 운항정보관리시스템이 감사원의 모의해킹에 뚫렸던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운항정보관리시스템은 항공기 이착륙 시간, 입출국 게이트 등을 승객에게 안내하는 전광판 정보를 총괄하는 시스템. 감사원은 2∼4월 인천국제공항의 정보시스템 보안 실태를 점검하기 위해 모의해킹을 실시했다. 외부 e메일을 이용해 내부망에 침투한 뒤, 시스템을 관리하는 관리자의 권한을 탈취했다. 실제 해킹이었다면 공항 전광판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혼란이 초래됐을 수도 있다. 또 인터넷 체크인시스템을 개발한 뒤 확보한 승객 113만 명의 여권번호 관리가 부실해 외부 협력업체가 복사할 수도 있는 상태로 방치하기도 했다. 이런데도 국가정보원은 인천공항에 보안 최고등급을 부여했다. 이에 대해 인천공항공사 관계자는 “감사원이 정보보안시스템을 점검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해 시스템에 접근 가능한 IP주소를 부여해 일종의 실험을 한 결과”라며 “이후 취약점은 모두 보완을 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