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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던 김명환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위원장(54·사진)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27일 풀려났다. 21일 구속된 지 6일 만이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오상용)는 27일 보증금 1억 원을 내는 조건으로 김 위원장의 석방을 결정했다. 구속적부심은 구속된 당사자 등의 요청으로 구속 결정이 합당한지를 다시 한 번 가리는 절차다. 재판부는 김 위원장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곳에서 이사를 갈 경우 법원에 알려야 하고 해외로 나갈 때도 반드시 법원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김 위원장은 조사나 재판을 위해 검찰과 법원이 정하는 시간과 장소에 출석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법원은 김 위원장을 다시 구속할 수 있고 보증금도 몰수할 수 있다. 재판부는 김 위원장을 풀어주면서 “증거를 없애거나 핵심 증인을 위협할 우려가 없다”고 설명했다. 21일 김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판사가 “도주 우려가 있다”고 한 데 대해서는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오후 6시 45분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에서 풀려난 김 위원장은 “검찰과 경찰이 얼마나 무리하게 민노총의 비판을 가로막으려 하는지 확인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불법 폭력시위를 주도한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구치소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올랐다. 민노총은 지난해 5월 21일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늘리는 데 반발해 집회를 하다가 국회로 들어가 농성했다. 올해 3월 27일과 4월 2, 3일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국회에 난입하려 했다. 경찰이 김 위원장의 주도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있는 이 4차례 집회에서 경찰관 79명이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도예 yea@donga.com·이소연 기자}

“딱 세 잔밖에 안 마셨는데…. 억울합니다.” 25일 0시 20분. 서울 지하철 1호선 영등포역 인근 영등포공원 앞 도로. 흰색 벤츠 차량에서 내린 강모 씨(37)는 음주운전 단속을 하던 경찰관에게 언성을 높였다. 음주측정을 위해 차량 뒤편으로 이동하라는 경찰의 말에 강 씨는 “친구 생일이라 맥주 딱 세 잔 마셨다”고 했다. “대리운전을 부르려고 했는데 50분 넘게 안 잡혀 어쩔 수 없었다. 영등포역에서 집까지 5분밖에 안 걸린다.” 강 씨의 항변은 계속됐다. “면허 취소입니다.” 음주측정기에 뜬 강 씨의 혈중알코올농도를 확인한 경찰관이 말했다. 측정기엔 0.096%라고 찍혔다. 30분 전이었다면 면허 정지 100일에 해당하는 수치다. 하지만 이날부터는 면허 취소에 해당했다. ‘윤창호 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이날부터 시행됐기 때문이다. 개정 도로교통법에 따라 면허 정지 기준은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에서 0.03% 이상으로, 면허 취소 기준은 0.1% 이상에서 0.08% 이상으로 엄격해졌다. “취소 수치 아니잖아!”라며 고함을 치는 강 씨에게 경찰은 단속 기준이 강화된 사실을 설명했다. 하지만 강 씨는 “윤창호가 누군지도 모른다. 시민들 전부 (기준) 강화된 걸 모를 거다”며 “면허 취소는 말이 안 된다. 채혈을 원한다”고 했다.○ “어제까진 면허 정지, 오늘부턴 면허 취소” 본보는 25일 0시부터 오전 2시까지 서울 강남구와 마포구, 영등포구에서 실시된 경찰의 음주단속 현장을 찾았다. 음주단속 현장에서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8∼0.1% 미만으로 나와 면허가 취소된 운전자들이 잇따랐다. 마포구 양화대교 북단 진입로 부근에서 음주단속에 적발된 또 다른 강모 씨(33)는 “한 시간 전에 테킬라 네 잔을 마셨다”고 했다. 강 씨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83%로 측정돼 면허가 취소됐다. 경찰은 “어제 같았으면 면허 정지 100일인데 오늘부터는 면허가 취소됩니다”라고 강 씨에게 설명했다. 25일 하루 전국에서는 운전자 93명이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는데 이 중 32명은 강화된 단속 기준이 적용되면서 면허가 취소된 경우다. 단속 기준이 강화되기 전이라면 훈방 조치됐을 혈중알코올농도 0.03∼0.05% 미만의 13명은 면허가 정지됐다. 단속에 걸리자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는 운전자도 있었다. 0시 20분경 강남구 영동대교 남단에서 단속에 걸린 서모 씨(37)는 혈중알코올농도가 0.076%로 나왔다. 단속 기준 강화 전과 마찬가지로 면허 정지 100일에 해당하는 수치다. 서 씨는 “소주 세 잔밖에 안 마셨다”며 소리를 질렀다. 서 씨는 인적 사항, 음주 측정 결과 등이 담기는 ‘주취운전자 정황진술보고서’를 작성하는 경찰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는 “사람들 없는데 가서 하자니까”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음주운전자들은 단속 구간을 지도에 표시해주는 ‘음주단속 알림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며 단속 구간을 피해가는 ‘꼼수’도 부렸다. 해당 앱에는 음주단속이 진행되는 구간이 표시된다. 실제로 이날 단속이 진행된 강남구 영동대교 남단 구간이 앱에 노출돼 경찰은 단속 구간을 옮겨야 했다.○ “어제 낮에 마신 술인데…” 오전 1시 50분경 오토바이를 몰던 이모 씨(29)는 혈중알코올농도 ‘0.095%’로 면허가 취소됐다. 이 씨는 24일 오전까지 친구와 둘이서 소주 한 병 반을 나눠 마셨다고 했다. 이 씨는 “술이 다 깼는데 이렇게 나올 리가 없다. 어제 마신 술인데 왜 오늘 측정을 해서…”라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30시간 전에 마신 술이 몸속에 계속 남아 면허가 취소될 뻔한 경우도 있었다. 0시 5분경 마포구의 한 단속 현장을 지나던 택시운전사 박모 씨(69)는 음주 측정에서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 정지 수치를 살짝 밑도는 0.022%가 나왔다. 박 씨는 “일요일(23일) 낮 한두 시까지 친구 3명과 소주 대여섯 병을 나눠 마셨고 어제(24일)는 술을 안 마셨다”고 했다. 단속 현장의 마포경찰서 경찰관은 “전날 마신 술이라도 면허 정지 수치가 나올 수 있다”며 “이분도 아슬아슬했다. 숙취 운전도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음주운전 단속 기준이 강화된 첫날 아침 대리운전을 부르는 건수도 증가했다. 전날 밤 술을 마신 직장인들이 직접 운전대를 잡는 대신 대리운전을 찾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울산·부산지역 대리운전업체 A사의 콜센터 관계자는 “25일 출근 시간대인 오전 6시부터 8시 사이 콜이 평소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고 말했다. 변경된 음주운전 단속 기준이 교통경찰업무관리시스템(TCS)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바뀐 기준에 따르면 면허 취소 수치인데도 시스템에서는 면허 정지로 등록되거나, 면허 정지 수치가 나왔는데도 예전의 훈방 조치 기준이 적용돼 입력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0시∼오전 8시 총 153건의 단속 중 26건에서 오류가 발생해 수기로 처리했다. 오전 10시부터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밝혔다.김재희 jetti@donga.com·이소연·박상준 기자}

“그날 이후론 계단 근처에도 못 가요. 무조건 엘리베이터를 타지.” 17일 경남 진주시 가좌동의 한 아파트 3층 복도. 주민 김모 씨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김 씨의 집 한 층 위 406호에 안인득(42)이 살았다. 두 달 전인 4월 17일 새벽. 안인득은 자기 집에 불을 질렀다. 그리고 아파트 2층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화재경보기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대피해 내려오는 주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흉기를 휘둘렀다. 12세 소녀를 포함해 5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당시 김 씨도 화재경보기 소리에 놀라 계단으로 대피하기 위해 비상구 문을 열었다. 김 씨는 바닥에 피가 흥건한 것을 보고 더 놀라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집이 3층이라 운동 삼아 항상 계단으로 다녔었다. 그런데 이제는 무섭다.” 김 씨는 그날 이후 계단으로 다니지 않는다. 안인득에 의한 방화·살인 사건이 있은 지 두 달이 지난 17일. 희생자가 발생한 층 복도와 계단 벽면은 흰색 페인트로 다시 칠해졌다. 아파트 관리사무소는 불안해하는 주민들을 위해 단지 내 조명 밝기를 높였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그날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 벨 눌러도 모른 척…‘경계’가 일상인 주민들 안인득이 살았던 406호는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4층엔 세 집만 남았어.” 한 인부가 화재로 그을린 내장재를 뜯어내며 말했다. 방화·살인 사건이 있기 전 4층엔 모두 8집이 살았다. 다섯 가구가 이사를 간 것이다. 안인득과 같은 동에 살았던 79가구 중 모두 12가구가 이사를 갔다. 희생자가 있었던 다섯 집은 모두 떠났다. 아파트는 정적에 잠겨 있었다. 601호 주민 A 씨(48·여)는 “며칠 전 술에 취한 주민이 소리를 질렀는데 평소 같았으면 창밖으로 한마디 했겠지만 그냥 베란다 창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술 취한 주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지만 무슨 해코지를 당할지 몰라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6층에 사는 다른 주민 강모 씨(76·여)는 “이제는 누가 초인종을 눌러도 집에 아무도 없는 척한다”고 했다. 뇌중풍(뇌졸중)으로 거동이 불편한 106호 주민 편모 씨(54)는 집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다고 했다. 편 씨는 “다른 사람이 언제든지 나를 공격해올 수 있는데 몸이 불편해 달아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집 밖으로 나가는 게 두렵다”고 말했다.○ “그날 일 파노라마처럼 반복” 안인득의 손에 어머니와 열두 살 조카를 잃은 금모 씨(40·여)는 20년간 해온 치위생사 일을 최근 그만뒀다. 금 씨는 2주 전부터 어머니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금 씨는 “환자를 보던 중 저도 모르게 엄마 얘기를 꺼내면서 소리를 지르는 일까지 있었다”고 말했다. 금 씨는 “소방관이 축 늘어진 조카의 두 팔을 잡고 계단으로 내려가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수없이 떠오른다”며 괴로워했다. 사건 발생 당시 안인득과 같은 층에 살았던 금 씨 오빠네 가족 역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금 씨의 오빠는 딸과 어머니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금 씨는 “이름이 안 좋아 우리 집에 이런 비극이 닥쳤나 싶은 생각까지 들어 오빠네 가족과 우리 가족 모두 개명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대피를 돕다가 안인득의 공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던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정모 씨(29)는 그동안 치료를 받아오다가 이달 1일 업무에 복귀했다. 하지만 그날의 악몽은 아직도 몸에 새겨져 있다. 정 씨는 “며칠 전 안인득이 살았던 동의 한 가구 화장실을 점검할 일이 있어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바라보는 순간 근육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고, 머리가 핑 돌면서 숨을 쉬기 힘들었다”고 했다. 16년간 딸처럼 애지중지 키우던 시각장애인 조카 최모 씨(19·여)를 잃은 강모 씨(54·여)는 조카를 보호하려다가 목과 어깨, 얼굴 등에 중상을 입었다. 성대 신경이 손상돼 목소리도 잃었다. 17일 만난 강 씨의 딸(31)은 “엄마는 병원에서 모자를 쓴 사람만 봐도 경기를 일으킨다”며 걱정스러워했다. 안인득은 범행 당시 모자를 쓰고 있었다. 강 씨는 3주 뒤 퇴원하면 딸의 집에서 지낼 예정이다. 강 씨의 딸은 “우리 가족에게 트라우마와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며 눈물을 보였다.진주=김재희 jetti@donga.com / 이소연 기자}

리틀 태극전사의 쾌거를 바라보는 감격과 환희에는 장소와 시간이 따로 없었다. 12일 전국에선 새벽잠을 잊은 축구 팬들이 폴란드 루블린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에콰도르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 4강전을 지켜보며 열띤 응원을 펼쳤다. 1만5243명이 들어찬 현지 경기장 곳곳에서도 “대∼한민국”의 응원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4월 화마에 휩쓸려 고초를 겪은 강원도 산불 피해지역 주민들은 축구대표팀이 세계무대에서 쓰는 드라마에 힘을 보탰다. 동해 시민 200여 명은 이날 동해시 웰빙레포츠타운 종합경기장에 모여 단체 응원을 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주민들은 무릎담요를 덮고 치킨을 함께 먹으며 응원 구호를 외쳤다. 이번 단체 응원은 동해시설관리공단이 강원 산불 이후 처음 기획한 문화행사였다. 오세일 전략기획팀장은 “산불 이후 동해시가 침체돼 있어 시민들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싶었다”며 “결승전 때도 다시 한번 단체 응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팀 주장 황태현(20)이 뛰고 있는 안산은 연고지 시민 100여 명과 단체 응원을 했다. 황태현은 구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늦은 시간까지 응원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우승까지 하고 돌아가겠다”고 화답했다. 대학가는 기말고사 기간이지만 또래들의 세계무대 정복을 응원하려고 뜬눈으로 밤을 새운 학생이 많았다. 경기 고양시 일산의 호프집에서 친구 5명과 경기를 관전한 대학생 이유민 씨(20·여)는 “젊은 선수들이 국가 위상을 높이는 모습을 보며 괜히 나까지 뿌듯했고 대리만족을 느꼈다”고 말했다. 치킨집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치킨업계에 따르면 최근 굵직한 축구 경기가 잇따라 열리면서 6월 주문이 작년 같은 기간 대비 30∼40% 늘어났다. 결승전은 주말인 16일 오전 1시에 열려 치킨집들의 기대감은 더 커졌다. 대표팀 정정용 감독의 모교인 경일대(경북 경산시) 캠퍼스는 12일 대표팀의 결승 진출을 기념해 학생식당에서 재학생 모두에게 점심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었다. 경일대 관계자는 “결승전 때는 학교 단체 응원을 검토하고 있다”며 “대회가 끝나면 정 감독 초청행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폴란드 현장에도 한국 응원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폴란드로 출장을 온 박규정 씨(53)는 “해외 출장 중에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할 수 있었다”며 “결승전까지 보려고 귀국 스케줄 변경을 고민하고 있다”며 웃었다. 교민 오중열 씨(59)는 “티켓을 구하기 어려워 30즈워티(약 9400원)짜리 표를 판매 대행 사이트에서 약 7배 가격에 샀지만 전혀 아깝지 않다. 폴란드 교민 사이에서는 이번 대회가 선물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루블린=이승건 why@donga.com / 이소연·박광일 기자}

“가슴까지 파인 옷 입었으면 쳐다보라는 거 아닌가요?” 수도권에 있는 한 공공기관 인사팀 소속인 40대 여성 A 씨는 올 3월 사내 강사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하다 남성 상사가 여직원 가슴을 쳐다보는 삽화가 담긴 자료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제작한 성희롱 예방 교육 사례모음집이었다. 삽화에는 ‘직원의 몸을 쳐다보거나 평가하면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A 씨가 “쳐다보는 건 괜찮다. 안 그럼 다 잡혀가란 소리냐”고 하자 직원들은 크게 웃었다. 그러나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가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쳐다보는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된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은 2014년부터 모든 직장에서 여가부의 사례모음집을 참고해 1년에 1회 이상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법률상 강사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어 요식행위처럼 이뤄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통상 성희롱 예방교육 경험이 일천한 사내 인사팀 직원이나 고위 간부가 사례모음집을 들고 교육하다 보니 도리어 성희롱적 발언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공기업에 다니는 B 씨(31)는 4월 팀장 주도로 회의를 하다가 시간을 쪼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받았다. 강사를 맡은 팀장은 ‘술자리에는 역시 여직원이 있어야지’라는 발언은 성차별적이라고 적시한 교본을 보더니 “이게 왜 문제냐? 이 말도 못하면 아무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직원들에게 “별게 다 문제네. 너희도 이게 불편하냐”고 따지듯 물었다. B 씨를 비롯한 팀원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교육은 그렇게 8분 만에 끝났다. 디자인 중소기업에 다니는 C 씨(25·여)는 지난해 12월 회사 강당에서 부사장 주도로 열린 성희롱 예방 교육만 생각하면 비참해진다. 부사장이 “‘술은 여자가 따라야 한다’는 말은 성차별적 발언”이라는 교본 내용을 읽었을 때였다. 직원들과 함께 교육을 듣던 대표가 여직원들을 둘러보며 “강제로 시킨 게 아니라 너희들이 알아서 따른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C 씨를 비롯한 여직원들은 마지못해 웃으며 “저희가 좋아서 한 거죠”라고 답해야 했다. 성범죄 피의자를 주로 변호해 온 변호사가 강사로 나서는 일도 있다. 대기업 계열사의 성폭력 예방교육 강단에 선 D 변호사는 “여직원이 아무리 예뻐도 동의 없이 스킨십을 하시면 좀 위험할 수 있다”며 줄곧 가해자 편에서 말했다. 교육 후에는 “혹시 성범죄로 고소당하면 저한테 연락하라”며 남직원 약 80명에게 명함을 돌렸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 건수는 늘고 있다. 직장에서의 남녀평등을 목표로 하는 민간단체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상담 건수는 2014년 416건에서 지난해 763건으로 훌쩍 뛰었다. 여가부의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지난 3년간 여성 근로자의 8.1%가 직장 내 성희롱을 겪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 강사 자격을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은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 장관이 승인한 전문 강사 등에게 성희롱 예방교육을 맡기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전문가가 교육해야 성희롱과 성폭력 개념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소연 always99@donga.com·김재희 기자}

“가슴까지 파인 옷 입었으면 쳐다보라는 거 아닌가요?” 수도권에 있는 한 공공기관 인사팀 소속인 40대 여성 A 씨는 올 3월 사내 강사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진행하다 남성 상사가 여직원 가슴을 쳐다보는 삽화가 담긴 자료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제작한 성희롱 예방교육 사례모음집이었다. 삽화에는 ‘직원의 “을 쳐다보거나 평가하면 안 된다’고 적혀 있었다. A 씨가 “쳐다보는 건 괜찮다. 안 그럼 다 잡혀가란 소리냐”고 하자 직원들은 크게 웃었다. 그러나 피해자가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가슴 등 특정 신체 부위를 쳐다보는 행위는 성희롱에 해당된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은 2014년부터 모든 직장에서 여가부의 사례모음집을 참고해 1년에 1회 이상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법률상 강사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어 요식 행위처럼 이뤄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통상 성희롱 예방교육 경험이 일천한 사내 인사팀 직원이나 고위 간부가 사례모음집을 들고 교육하다보니 도리어 성희롱적 발언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B 씨(31)가 다니는 공기업에서는 4월 팀장 주도로 회의를 하다가 시간을 쪼개 성희롱 예방교육을 했다. 강사를 맡은 팀장은 ‘술자리에는 역시 여직원이 있어야지’라는 발언은 성차별적이라고 적시한 교본을 보더니 “이게 왜 문제냐? 이 말도 못하면 아무 말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여직원들에게 “별게 다 문제네. 너네도 이게 불편하냐”고 따지듯 물었다. B 씨를 비롯한 팀원들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교육은 그렇게 8분 만에 끝났다. 디자인 중소기업에 다니는 C 씨(25·여)는 지난해 12월 회사 강당에서 부사장 주도로 열린 성희롱 예방교육만 생각하면 비참해진다. 부사장이 “‘술은 여자가 따라야 한다’는 말은 성차별적 발언”이라는 교본 내용을 읽었을 때였다. 직원들과 함께 교육을 듣던 대표가 여직원들을 둘러보며 “강제로 시킨 게 아니라 너희들이 알아서 따른 거 아니야”라고 말했다. C 씨를 비롯한 여직원들은 마지못해 웃으며 “저희가 좋아서 한 거죠”라고 답해야 했다. 성범죄 피의자를 주로 변호해온 변호사가 강사로 나서는 일도 있다. 대기업 계열사의 성폭력 예방교육 강단에 선 D 변호사는 “여직원이 아무리 예뻐도 동의 없이 스킨십 하시면 좀 위험할 수 있다”며 줄곧 가해자 편에서 말했다. 교육 후에는 “혹시 성범죄로 고소당하면 저한테 연락하라”며 남직원 약 80명에게 명함을 돌렸다. 성희롱 예방교육이 부실한 만큼 성희롱 피해 건수는 늘고 있다. 직장에서의 남녀평등을 목표로 하는 민간단체 한국여성노동자회에 따르면 직장 내 성희롱 상담 건수는 2014년 416건에서 지난해 763건으로 훌쩍 뛰었다. 여가부의 ‘2018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 지난 3년간 여성 근로자의 8.1%가 직장 내 성희롱을 겪었다.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 자격을 법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은 지난해 8월 고용노동부 장관이 승인한 전문 강사 등에게 성희롱 예방교육을 맡기는 내용의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여전히 계류 중이다. 김경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전문가가 교육해야 성희롱과 성폭력 개념을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2001년 8월 6일 오전 10시. 서울 중랑경찰서 관내 한 파출소로 한 통의 신고전화가 걸려 왔다. “모르는 남자가 흉기로 위협하며 성폭행을 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중랑서 강력2팀 형사는 신고자가 불러준 주소지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청소를 막 끝낸 것처럼 말끔했다. 흉기를 든 남성이 침입한 집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방 한쪽에는 매트리스가 반듯이 깔려 있었다. 선반 위 두루마리 휴지와 TV 리모컨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피해 여성은 신고를 하면서 ‘남자한테 저항하는 과정에서 다쳐 피를 흘렸다’고 했다. 하지만 집 안은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다. 집안 곳곳을 살피던 경찰은 휴지통에서 정액이 묻은 휴지를 발견했다. 경찰은 성폭행이 있었는지 물었다. “흉기로 위협하면서 성폭행을 하려 했지만, 실제 성폭행은 없었습니다.” 경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성폭행 피해는 없었다’고 여성이 딱 잘라 말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정액 묻은 휴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넘겼다. 침입 남성에게는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당시 여성이 거주하던 주택가 골목엔 폐쇄회로(CC)TV가 없었다. 경찰이 남성의 인상착의에 대해 물었지만 여성은 “정신이 없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은 피해 여성 집 주변을 탐문하면서 두 달간 수사했다. 하지만 용의자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그해 10월 이 사건을 미제 사건 리스트에 올렸다. ‘그놈’이 남긴 건 정액과 피가 묻은 휴지가 전부였다.○ 17년 만에 밝혀진 ‘그놈’ 2018년 4월 15일. 중랑서 강력3팀 앞으로 한 통의 공문이 도착했다. 대검찰청이 보낸 것이었다. 공문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2001년 중랑구 강간미수 사건의 성명 불상 피의자 DNA와 수형자 중 한 명의 DNA가 일치한다.’ 강력3팀장은 곧바로 경찰서 지하 1층 서고로 갔다. 미제 사건 서류들을 모아 놓은 캐비닛이 여기에 있다. ‘그놈’은 다른 특수강도강간 범죄로 2010년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살인과 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수형자의 DNA를 수사기관이 보관하도록 하는 ‘DNA 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이해 4월부터 시행됐다. ‘그놈’의 DNA도 데이터베이스(DB)에 올랐다. 국과수가 원래 갖고 있던 DNA 정보와 DB에 등록된 수형자 DNA 대조 작업을 벌이던 중 ‘그놈’ 신원이 17년 만에 밝혀졌다. 2010년부터 DNA 등 가해자와 관련된 과학적 증거가 남아 있는 성범죄의 경우 공소시효가 10년 더 연장돼 잡기만 한다면 처벌할 수 있었다. 법이 바뀌지 않았다면 사건의 공소시효(10년)는 2011년 8월이었다. 수사팀은 재수사에 착수했다. 17년 전 작성한 피해자 진술조서와 현장 증거사진 등을 다시 샅샅이 훑었다. 그런데 수사팀은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사건 당일 피해 여성의 집에서 정액이 묻은 휴지가 발견됐는데도 피해자 진술조서에는 “성폭행은 당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남성에게 저항하다 다쳐 여성이 피까지 흘렸다고 돼 있는데 바닥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신원을 확인한 ‘그놈’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에 대한 여성의 설명이 절실했다. 수사팀은 피해 여성을 찾기 위해 전국 곳곳을 훑었다. 그러다 경찰은 여성이 한국을 떠나 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사팀은 여성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수도권의 한 도시로 찾아갔다. 하지만 어머니도 여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고 없었다. 인근을 수소문하던 중 만난 여성의 한 친척은 “가족들이 모두 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수사팀은 2001년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의 근무지까지 찾아갔지만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만 들었다. 수사팀은 결국 재수사에 착수한 지 넉 달 만인 2018년 8월 ‘그놈’을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그런데 넉 달 뒤 강력3팀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공항경찰대 관계자였다. 2019년 2월 여성이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온다고 알려줬다. 강력3팀장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여성의 친척을 통해 알게 된 어머니 거주지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성의 어머니는 딸보다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따님이 18년 전 서울에서 있었던 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입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어머니는 딸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수사팀은 전화도 하고 문자도 남겼다. 하지만 여성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메시지에 답도 없었다. 그러다 하루 뒤 수사팀 한 형사의 휴대전화에 발신지가 외국인 번호가 떴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여성은 ‘이번에 남편도 한국으로 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만나기 곤란하다’고 했다. 그래도 경찰은 계속 설득했다. ‘그놈’을 처벌하려면 피해자 진술이 꼭 필요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일은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다’라는 말도 건넸다. “인천공항에서 뵈어요.” 5분가량에 걸친 통화 끝에 여성은 수사팀과의 만남을 받아들였다. 여성은 “조용한 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18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그놈’ “처벌을 원치 않으시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처벌을 원하신다면 끝까지 수사하겠습니다.” 강력3팀 수사관 2명은 올해 2월 인천국제공항에서 여성을 만나 이렇게 얘기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처벌을 원합니다.” 여성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168∼170cm의 키에 스포츠머리, 베이지색 반팔티, 흰색 반바지. 여성은 18년 전 ‘그놈’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수사팀은 올해 2월 인천공항에서 여성을 만났다. 그리고 1시간 30분에 걸쳐 18년 전 있었던 일에 대해 들었다. “옷 안 벗으면 죽여 버린다”는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여성은 자신의 얼굴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그놈’과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여성은 반사적으로 오른손으로 칼날을 꽉 쥐었고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고 했다. 수사팀은 “여성이 당시 성폭행이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성폭행은 없었다’던 예전의 진술을 바꾼 것이다. 18년 전 기억을 떠올리던 여성은 진술을 하다 멈추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면서 띄엄띄엄 얘기를 이어갔다고 한다.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피해자 진술을 다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경찰에게 여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18년 전 자신이 왜 ‘성폭행은 없었다’고 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할 것 같았다.’, ‘문단속을 제대로 안 해서, 아침 9시까지 자고 있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나를 질책할 것 같았다.’ 여성은 성폭행 피해를 부인했던 이유를 경찰에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피해자 진술을 확보한 경찰은 3월 ‘그놈’을 소환했다. 특수강도강간 범죄로 10년간 수감돼 있다 2013년 출소해 자유의 몸이 돼 있었다. 경찰서로 온 그는 18년 전 사건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수사팀은 증거자료 하나를 내밀었다. 2001년 중랑구의 한 원룸 휴지통에서 나온 혈흔의 DNA와 ‘그놈’의 DNA가 일치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혐의는 강간미수가 아닌 강간치상이었다. 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그는 지난달 법정에 섰다. 진술을 마친 여성은 자리를 뜨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날 일, 제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이제야 듭니다.”이소연 always99@donga.com·김재희 기자}

“처벌을 원치 않으시면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습니다. 처벌을 원하신다면 끝까지 수사하겠습니다.” 서울 중랑경찰서 강력3팀 수사관들은 올해 2월 인천국제공항에서 한 여성을 만나 이렇게 얘기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처벌을 원합니다.” 여성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18년 전 중랑구의 한 원룸에서 있었던 성폭행 사건의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이 여성은 2001년 8월 자신이 살던 원룸에 침입한 뒤 흉기로 위협한 30대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하지만 여성은 ‘성폭행 시도는 있었지만 실제로 당하지는 않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사실과 달랐다. 이 여성은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 사실에 대한 진술을 확보하지 못한 경찰은 난관에 부닥쳤다. 결국 이 사건은 미제 사건 리스트에 올랐고 영원히 묻힐 뻔 했다. 하지만 ‘2001년 중랑구 강간미수 사건의 성명 불상 피의자 DNA와, 수형자 중 한 명의 DNA가 일치한다’는 한 통의 공문이 강력3팀 앞으로 도착했고 곧바로 경찰의 재수가 시작됐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여성은 만나기를 꺼려했지만 경찰은 끈질기게 설득했다. 여성은 마음을 돌렸다. 2001년 8월의 진실을 확인한 경찰은 18년 전 그놈‘을 붙잡았다. 구속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그놈‘은 지난달 24일 법정 피고인석에 섰다. 2001년 8월 6일 오전 10시. 서울 중랑경찰서 관내 한 파출소로 한 통의 신고전화가 걸려왔다. “모르는 남자가 흉기로 위협하며 성폭행을 하려 했다”는 내용이었다.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중랑서 강력2팀 형사는 신고자가 불러준 주소지 원룸 안으로 들어갔다. 집안은 청소를 막 끝낸 것처럼 말끔했다. 흉기를 든 남성이 침입한 집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방 한 켠에는 매트리스가 반듯이 깔려 있었다. 선반 위 두루마리 휴지와 TV 리모컨도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피해 여성은 신고를 하면서 ‘남자한테 저항하는 과정에서 다쳐 피를 흘렸다’고 했었다. 하지만 집안은 이상할 정도로 깨끗했다. 집안 곳곳을 살피던 경찰은 휴지통에서 정액이 묻은 휴지를 발견했다. 경찰은 성폭행이 있었는지 물었다. “흉기로 위협하면서 성폭행을 하려 했지만, 실제 성폭행은 없었습니다.” 경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성폭행 피해는 없었다’고 여성이 딱 잘라 말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정액 묻은 휴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넘겼다. 침입 남성에게는 강간미수 혐의를 적용했다. 당시 여성이 거주하던 주택가 골목엔 폐쇄회로(CC)TV가 없었다. 경찰이 남성의 인상착의에 대해 물었지만 여성은 “정신이 없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은 피해 여성 집 주변을 탐문하면서 두 달 간 수사했다. 하지만 용의자 신원을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그해 10월 이 사건을 미제사건 리스트에 올렸다. ‘그놈’이 남긴 건 정액과 피가 묻은 휴지가 전부였다. ●17년 만에 밝혀진 ‘그놈’ 2018년 4월 15일. 중랑서 강력3팀 앞으로 한 통의 공문이 도착했다. 대검찰청이 보낸 것이었다. 공문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2001년 중랑구 강간미수 사건의 성명 불상 피의자 DNA와, 수형자 중 한 명의 DNA가 일치한다.’ 강력3팀장은 곧바로 경찰서 지하 1층 서고로 갔다. 미제사건 서류들을 모아 놓은 캐비닛에 여기에 있다. ‘그놈’은 다른 특수강도강간 범죄로 2010년 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살인과 성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수형자의 DNA를 수사기관이 보관하도록 하는 ‘DNA 정보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이해 4월부터 시행됐다. ‘그놈’의 DNA도 데이터베이스(DB)에 올랐다. 국과수가 원래 갖고 있던 DNA 정보와 DB에 등록된 수형자 DNA 대조 작업을 벌이던 중 ‘그놈’ 신원이 17년 만에 밝혀졌다. 2010년부터 DNA 등 가해자와 관련된 과학적 증거가 남아 있는 성범죄의 경우 공소시효를 10년 더 연장하도록 법이 바뀐 것도 수사팀에게는 행운이었다. 법이 바뀌지 않았다면 사건의 공소시효(10년)는 2011년 8월이었다. 법 개정으로 공소시효가 2021년까지로 늘었다. 수사팀은 재수사에 착수했다. 17년 전 작성한 피해자 진술조서와 현장 증거사진 등을 다시 샅샅이 훑었다. 그런데 수사팀은 뭔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 사건 당일 여성의 집에서 정액이 묻은 휴지가 발견됐는데도 피해자 진술조서에는 “성폭행은 당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었다. 흉기를 들고 위협하는 남성에 저항하다 다쳐 여성이 피까지 흘렸다고 돼 있는데 바닥에서는 혈흔이 발견되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신원을 확인한 ‘그놈’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당시 상황에 대한 여성의 설명이 절실했다. 수사팀은 피해 여성을 찾기 위해 전국 곳곳을 훑었다. 그러다 경찰은 여성이 한국을 떠나 외국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사팀은 여성의 어머니가 살고 있다는 수도권의 한 도시로 찾아갔다. 하지만 어머니도 여성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고 없었다. 인근을 수소문하던 중 만난 여성의 한 친척은 “가족들이 모두 외국으로 떠났다”고 했다. 수사팀은 2001년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들의 근무지까지 찾아갔지만 “오래 전 일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단 들었다. 수사팀은 결국 재수사에 착수한 지 넉 달 만인 2018년 8월 ‘그놈’을 기소중지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그런데 네 달 뒤 강력3팀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공항경찰대 관계자였다. 2019년 2월 여성이 인천국제공항으로 들어온다고 알려줬다. 강력3팀장은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여성의 친척을 통해 알게 된 어머니 거주지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성의 어머니는 딸보다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따님이 18년 전 서울에서 있었단 한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입니다. 반드시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어머니는 딸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수사팀은 전화도 하고 문자도 남겼다. 하지만 여성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문자 메시지에 답변도 없었다. 그러다 하루 뒤 수사팀 한 형사의 휴대전화에 발신지가 외국인 번호가 떴다. 여성의 목소리였다. 여성은 ‘이번에 남편도 한국으로 같이 들어가기 때문에 만나기 곤란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경찰은 계속 설득했다. ‘그놈’을 처벌하려면 피해자 진술이 꼭 필요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일은 당신이 잘못한 게 아니다’는 말도 건넸다. “인천공항에서 뵈어요.” 5분가량에 걸친 통화 끝에 여성은 수사팀과의 만남을 받아들였다. 여성은 “조용한 곳에서 만나자”고 했다고 한다. ●18년이 흘러도 잊을 수 없는 ‘그놈’ 168~170cm의 키에 스포츠 머리, 베이지색 반팔티, 흰색 반바지. 여성은 18년 전 ‘그놈’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했다. 수사팀은 올해 2월 인천공항에서 여성을 만났다. 그리고 1시간 30분에 걸쳐 18년 전 있었던 일에 대해 들었다. “옷 안 벗으면 죽여 버린다”는 목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여성은 자신의 얼굴에 칼을 들이대고 있는 ‘그놈’과 눈이 마주쳤다고 한다. 여성은 반사적으로 오른손으로 칼날을 꽉 쥐었고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고 했다. 수사팀은 “여성이 당시 성폭행이 있었다고 진술했다”고 전했다. ‘성폭행은 없었다’던 예전의 진술을 바꾼 것이다. 18년 전 기억을 떠올리던 여성은 진술을 하다 멈추기를 몇 차례나 반복하면서 띄엄띄엄 얘기를 이어갔다고 한다. “한 가지 더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피해자 진술을 다 듣고 자리에서 일러나려던 경찰에게 여성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18년 전 자신이 왜 ‘성폭행은 없었다’고 했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세상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할 것 같았다’, ‘문단속을 제대로 안 해서, 아침 9시까지 자고 있어서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고 나를 질책할 것 같았다.’ 여성은 성폭행 피해를 부인했던 이유를 경찰에 이렇게 설명했다고 한다. 피해자 진술을 확보한 경찰은 3월 ‘그놈’을 소환했다. 특수강도강간 범죄로 10년간 수감돼 있다 2013년 출소한 ‘그놈’은 다시 자유의 몸이 돼 있었다. 경찰서로 출석한 ‘그놈’은 18년 전 사건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수사팀은 ‘그놈’ 앞으로 증거자료 하나를 내밀었다. 2001년 중랑구의 한 원룸 휴지통에서 나온 혈흔의 DNA와 ‘그놈’의 DNA가 일치한다는 내용이었다. 경찰은 ‘그놈’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혐의는 강간미수가 아닌 강간치상이었다. 결국 ‘그놈’은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을 때 범행을 인정했다. 법원은 ‘그놈’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재판에 넘겨진 ‘그놈’은 지난달 법정 피고인석에 섰다. 여성은 2001년 8월 6일 아침의 일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여성은 18년 전 일을 수사팀에 다 털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야 그날 일은 내 탓이 아니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합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거 무전유죄 유전무죄 아닙니까?” 5일 서울남부지법 306호 법정 앞. 생후 2개월 된 딸 하은이(가명)를 학대해 숨지게 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하은이 아버지 김모 씨(42)가 변호사에게 무릎을 꿇은 채 울먹이며 말했다. 변호사가 김 씨를 일으켜 세우며 “감정적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자 김 씨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다. 작가도 그렇게 지어내지 못한다”며 오열했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을 나온 뒤로 그는 계속 억울함을 주장했다. 김 씨는 이날 열린 ‘하은이 유기치사 사건’ 1차 공판에서 “절대 그런 일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검사가 “피고인은 2010년 당시 동거하던 조모 씨가 외도를 해 낳은 아이라고 의심해 하은이에게 예방접종을 하지 않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했고 이 사실을 숨기려 시신을 유기했다”고 말하자 김 씨는 두 손을 흔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판사에게 수차례 요구한 끝에 발언 기회를 얻은 김 씨는 셔츠 소매를 걷고 오른손으로 가슴을 내리치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재판부가 “감정을 과장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공정하게 재판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공범으로 재판에 넘겨진 하은이 친모 조 씨(40)가 모든 혐의를 인정한 것과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조 씨는 하은이가 숨진 지 7년 만인 2017년 3월 경찰서를 찾아 자신의 죄를 자백했다. 조 씨에 따르면 이들은 2010년 12월경 고열에 시달리는 하은이를 방치해 숨지게 했다. 검찰 조사에서 조 씨는 “아이 아빠가 하은이를 때렸다. 숨질 당시 하은이의 몸 곳곳이 멍들어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은이의 시신은 나무상자에 밀봉한 뒤 집에 유기했다고 했다. 그러나 김 씨는 “하은이가 어느 날 사라졌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학대한 적도 유기한 적도 없다”며 “아이 엄마가 하은이를 버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은 로 세상에 알려졌다. 하은이는 태어난 지 2개월 만에 숨을 거뒀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하은이의 죽음을 알아채지 못했다. 하은이의 친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본보는 출생신고 의무를 부모에게만 한정한 현행 가족관계등록법의 허점을 지적했다. 이후 정부는 의료기관도 아이의 출생 사실을 국가기관에 통보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아 가족관계등록법을 개정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김 씨는 재판 내내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가장 억울한 건 자신의 출생과 사망을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던 하은이일 것이다. 재판부가 사건의 실체 규명을 통해 진실을 밝혀 생후 두 달 만에 눈을 감은 하은이의 억울함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를 바란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강서 PC방 살인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아온 김성수(30)에게 징역 30년이 선고됐다. 형의 범행을 도운 혐의(공동 폭행)로 기소된 김성수의 동생(28)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1심 법원인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판사 이환승)는 4일 김성수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선고 형량을 말하는 순간 김성수는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들썩였다. 무죄를 선고받은 동생은 재판 내내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를 흉기로 80차례 이상 공격하는 등 잔혹하게 살해해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재범의 우려가 있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피고인이 범행을 인정했고 반성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점, 가정폭력과 학교폭력으로 인한 우울감이 일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김성수의 동생은) 다툼의 당사자가 아니고 살인을 도운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지난달 16일 열린 결심공판에서 “피고인이 사회에 복귀하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영원히 격리해야 한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하지만 법원이 징역 30년을 선고하자 검찰은 바로 항소 의사를 밝혔다. 피해자 유족 측도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남부지법 관계자는 “재판부는 이 사건이 대법원이 설명하는 ‘사형을 선고할 만한 사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재판부가 피고인에 대한 무기징역과 유기징역을 놓고 굉장히 오래 고민했다”고 밝혔다. 징역 30년은 유기징역의 최상한이다. 김성수는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자신과 말다툼을 한 아르바이트생 신모 씨(20)를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류현진의 에이전트를 지냈던 전모 씨가 류현진의 광고모델 계약금 일부를 가로챈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것으로 31일 확인됐다. 전 씨는 류현진이 2013년부터 2년 정도 모델로 활동한 모 식품업체와의 광고 계약을 대행하면서 실제보다 낮은 금액에 계약했다고 류현진을 속인 혐의를 받고 있다. 광고모델 계약금 가운데 1억여 원을 전 씨가 가져간 것으로 전해졌다. 류현진은 사기 등의 혐의로 전 씨를 고소했고 전 씨는 지난해 말 불구속 기소됐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경제일간지 아시아경제의 사주인 최상주 KMH아경그룹 회장(59)이 한 사업가로부터 수십 차례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 회장은 28일 아시아경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날 KBS 보도에 따르면 최 회장과 사업 파트너 관계였던 A 씨는 “2014년부터 5년간 최 회장에게 31번에 걸쳐 여성들을 소개했다. 최 회장이 이 여성들과 성관계를 하면 내가 대가를 지불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최 회장하고 여자하고 자고 나면 가격을 정한다. 여자가 ‘200(만 원)이다, 300(만 원)이다’ ‘적다 많다’ 이렇게 싸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보도에 따르면 A 씨가 문자메시지로 최 회장에게 여성들의 직업과 연령, 신체적 특성 등을 설명하면 최 회장이 만날지를 결정했다. 최 회장은 만날 여성의 사진을 주고받으며 성적으로 비하하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최 회장은 자신의 성접대 의혹이 보도되기 전 서울남부지법에 방송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원은 “제보자의 주장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이고, 최 회장과 A 씨가 여성들의 몸매 등을 평가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수차례 주고받은 점 등을 볼 때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입장문을 통해 “제 인생을 항상 돌아보고 더 절제하는 삶을 몸소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아직까지 저는 제 스스로를 이기지 못한 것 같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또 “최근 M&A 과정에서 불거진 일련의 사태가 아시아경제의 독립적인 미디어 정체성을 혹시나 훼손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이같이 결심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서울 시내 호텔방에서 12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의 필로폰을 몰래 제조한 외국인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이 2주간 호텔방에 머물며 시가 120억 원 상당의 필로폰 3.6kg을 만드는 동안 주변 어느 누구도 이 같은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서울의 한 호텔에서 필로폰을 제조한 혐의로 중국인 A 씨와 대만인 B 씨를 구속했다고 28일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달 14일 관광비자로 입국한 뒤 ‘상선’의 지시에 따라 역할을 분담해 필로폰을 제조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B 씨가 필로폰 주 원료인 에페드린을 우편으로 보내주면 A 씨가 이 원료를 가공해 필로폰을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마약 제조업자들은 필로폰을 만들 때 특유의 역한 냄새가 나기 때문에 농촌이나 산골의 비닐하우스 등을 이용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이들은 호텔방에서 필로폰을 제조하면서 냄새를 거의 풍기지 않았다. 필로폰을 만들 때 전력 소모가 많다 보니 호텔방이 전기 과부하로 한 차례 정전된 적이 있을 뿐이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도구 역시 전기레인지와 비커 등 간소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의 필로폰 제조 기법을 조사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경찰 관계자는 “A 씨와 B 씨가 입국 전부터 메신저를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치밀하게 필로폰 제조를 준비했다. 작업을 주도한 배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음란행위자 있습니다. 대로변으로 이동합니다.” 19일 오전 6시 30분. 새벽 교대 근무를 위해 사복 차림으로 파출소로 향하던 A 순경이 다급한 목소리로 112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남성의 뒤를 300m가량 따라붙었다. 그러면서도 휴대전화는 계속 켜놓았다. 경찰에게 남성의 도주 방향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A 순경의 전화를 받은 지 10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경찰이 음란행위를 한 남자를 붙잡았다. 20대 후반인 A 순경은 ‘예비 여성 경찰’이다. 지난해 순경 공채 시험에 합격한 그는 중앙경찰학교 학생 신분으로 4월 29일부터 서울 금천경찰서 금천파출소에서 실습교육을 받고 있다. 8월이면 실습생 딱지를 떼고 당당히 ‘여성 경찰관’이 된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 79명으로 출발했던 여자 경찰관은 올해 3월 말 현재 1만3594명까지 늘었다. 전체 경찰관의 11.3%다. 1990년대까지 내근직이 대부분이었던 여자 경찰관은 이제 파출소와 지구대, 수사 분야에서만 7000명 가까이 일하고 있다. 이른바 ‘대림동 여자 경찰관’ 사건으로 최근 여자 경찰관의 현장 대응 능력이 도마에 오르면서 ‘여경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논란이 빚어졌다. 이런 가운데 동아일보가 마약반과 강력계, 파출소 등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여자 경찰들을 만났다.》 “힘 쓰지 마세요. 다칩니다.” 서울 강서경찰서 형사팀 마약반 소속 공자영 경장(34·여)은 건장한 체격의 50대 남성 팔을 뒤로 꺾은 뒤 이렇게 말했다. 공 경장은 새벽 시간 도로가의 포장마차에 잠복해 있다 이 남성이 나타나자 다가가 단번에 제압했다. 다른 곳에 잠복해 있다 달려온 동료 남자 경찰관은 팔이 꺾인 남성에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기술 들어가면 다칠지도 모릅니다”라고 했다. 23일 본보 기자와 만난 공 경장은 아홉 달 전 전과 10범의 마약사범을 잠복 끝에 검거할 당시의 상황을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설명했다. 붙잡힌 마약사범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팔을 꺾은 경찰이 여자라는 걸 확인하고는 멍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공 경장은 2017년 2월 경찰관으로 임용됐다. 무도(武道) 특기자로 채용된 공 경장은 유도 선수 출신이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순경으로 임용된 그는 검거 실적이 뛰어나 1계급 특진을 하면서 2년 만에 경장이 됐다. 최근 한 여성 경찰관이 술에 취한 남성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담긴 이른바 ‘대림동 여자 경찰관 사건’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다. 이 때문에 ‘여경 무용론’까지 제기되면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술 취한 남자 한 명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하는 여자 경찰관은 뽑을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민갑룡 경찰청장은 ‘대림동 여자 경찰관’의 현장 대응은 “나무랄 데 없이 침착했다”며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고 했다. ○ “나약한 여경? 근성의 여경” 올해 3월 말 현재 1만3594명의 여자 경찰관이 전국 곳곳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다. 광복 후인 1946년부터 등장한 여자 경찰은 1990년대 들어서야 수사와 정보, 강력계 등의 분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 내근직이었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강력계 형사로 일하는 ‘워킹맘 형사’들이 있다. 서울 중랑경찰서 강력계 박애화 경사(37·여)는 올해로 강력계 생활 6년째다. 박 경사의 별명은 ‘악바리’다. 용의자를 한번 쫓기 시작하면 검거할 때까지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해서 동료 남자 경찰관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박 경사는 검도 4단, 태권도 3단, 유도 2단 등 무술 단수가 총 12단이다. 초등학생 딸을 둔 박 경사는 이달 10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박 경사는 오전 7시 초등학생 딸에게 아침 식사를 챙겨준 뒤 경찰서로 출근해 10시간 가까이 폐쇄회로(CC)TV 분석 작업에 매달렸다. 박 경사가 속한 강력계는 70대 노인을 보이스피싱으로 속여 2000만 원을 챙긴 사기범을 검거하기 위해 중랑구 일대 CCTV를 전부 뒤지던 중이었다. CCTV 분석으로 용의자를 특정했다. 박 경사는 용의자가 지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텔 인근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운이 좋았다. 자정을 넘긴 무렵 용의자를 붙잡았다. 잠복이 길어질 때는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 박 경사의 초등학생 딸아이는 “밤인데도 엄마는 왜 안 오느냐”며 울며 보챌 때가 있다. 박 경사는 딸을 위해 일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 박 경사는 “남자 경찰은 일을 잘하든 못하든 개인으로 평가를 받는데 여자 경찰은 ‘여경’이라는 집단으로 묶어 평가를 하는 것 같다”며 “‘애 엄마 되더니 별수 없네’ 하는 얘기 듣기 싫어서 이 악물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중랑서 강력팀장 전윤숙 경감(42·여)은 “아무래도 아이 엄마는 외근이나 당직이 많은 강력계와 형사팀을 선뜻 택하기엔 아직까지는 어려움이 많은 실정”이라고 했다. 남자 경찰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분야에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내는 여자 경찰도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순찰대 소속 김수진 경사(40)는 오토바이를 몰면서 VIP(대통령) 근접 경호를 하는 유일한 여성이다. 교통순찰대 근무 9년 차인 김 경사는 ‘삼공열둘’로 불린다. 삼공열둘은 김 경사가 모는 300kg 무게의 대형 순찰 오토바이에 매겨진 번호다. 김 경사가 교통순찰대 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 바로 오토바이를 몰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당시 여자 경찰은 오토바이를 몰 수 없었다. 남자 경찰들이 모는 오토바이 옆에 붙어있는 바퀴 세 개짜리 ‘사이드카’에 앉아야 했다. 김 경사는 “여자도 ‘사이드카’가 아닌 오토바이를 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무언의 시위를 하듯 매일 아침 대형 오토바이를 몰고 출근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자 선배들이 김 경사에게 ‘오토바이를 한번 타보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김 경사가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로 교통순찰대로 발령받은 후배 여자 경찰은 사이드카가 아닌 오토바이를 타게 됐다. 사이드카는 없어졌다. 1만3594명의 여자 경찰관 중 파출소와 지구대에 근무하는 지역 경찰이 4137명으로 가장 많다. 경찰 생활 16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지구대에서 ‘최고령 여성 순찰 요원’으로 일하는 대구 달서경찰서 월배지구대의 최인복 경사(42·여)는 “지구대에서 일하다 보면 밤늦게 술 취한 사람들을 제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민원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설득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 경사는 지난해 3월 자살하겠다며 스스로 신고를 했던 50대 여성을 설득해 목숨을 구했다. 한 달 전에는 자해를 시도한 50대 초반의 여성과 대화를 나눈 끝에 인근 병원으로 보냈다. 최 경사는 “내가 한 것은 ‘많이 외로우셨겠어요’ ‘뭐가 필요하세요’라고 대화를 시도한 것뿐”이라며 “자살을 시도하는 민원인 대부분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주면 스스로 어떻게 해야 할지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 “여경, 없어서 못 써요” 여성 마약 사범이 경찰서 문턱을 넘는 순간, 일선 경찰서에선 ‘여경 구하기’ 전쟁이 벌어진다. 여성 마약 사범의 몸을 수색하거나 소변검사를 진행할 때면 이 과정을 대신해 줄 여성 경찰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근무하는 김소정 경사(37·여)는 2014년 일선 경찰서에서 일할 때 ‘마약 검사’에 여러 차례 동원됐다. 김 경사는 이 경찰서 형사당직팀 경찰관 80명 중 ‘홍일점’이었다. 하루는 마약 수사팀 경찰관이 “여경 빨리 와달라”며 사색이 돼서 달려왔다. 조사실에는 한 여성 마약 사범이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눈썹, 다리털 등 눈에 보이는 곳의 체모를 모두 왁싱한 상태라 모발을 통한 마약 검사가 불가능해 보였다. 김 경사는 여성 사범을 여자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러고는 체모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해 달라고 맡겼다. 검사 결과 이 여성은 필로폰을 투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평택경찰서 마약수사팀에서 여성 마약 사범의 소변검사를 할 때면, 마약수사팀 소속 이승아 경장(33·여)이 밀착 감시에 나선다. 여성 마약 사범들이 소변검사를 받으면서 미리 준비해온 다른 사람 소변으로 바꿔치기 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마약 사범의 집을 급습할 때도 이 경장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선봉’에 서곤 한다. 현장에서 옷을 벗고 있는 여성을 마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장이 집 안에 들어가 여성이 옷을 갈아입도록 하고 내부를 수색한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등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들이 먼저 여경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는 여성 경찰관들의 전문 영역이 된 지 오래다. 대구지방경찰청 곽미경 경감(51·여)은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 수사팀에서 일하던 2017년 4월 새벽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새벽녘 20대 여성이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숙직 당번이었던 남성 경찰관과 곽 경감이 함께 출동했다. 그런데 이 여성은 신고 내용과는 달리 두 경찰관에게 “이 남자가 싸우다가 가슴을 쳤다”고 말했다. 여성의 말대로라면 추행이 아닌 폭행을 당한 것이었다. 한참 뒤 여성은 곽 경감과 둘이 있는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을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남자 경찰한테는 차마 말을 못했다”라며 울먹였다. 곽 경감은 “수치스러운 경험을 한 피해자가 남성 경찰 앞에선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다”며 “그럴 때면 여경들이 피해자 조사를 맡는다”고 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해바라기센터에도 여성 경찰관들이 근무하며 성폭력 피해자 등의 진술을 받는다. 성폭력이나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이곳에서 여경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면, 여경은 진술 내용을 종합해 일선 경찰서로 보낸다. 서울 노원구, 동대문구 등 6개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 북부해바라기센터의 장연심 경감(51·여)은 “여성들이 수치스러웠던 경험을 남성 경찰관이나 국선변호사에게 털어놓기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래서 센터에 여성 경찰관들을 배치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술을 받으려 한다”고 했다. ○ “여성 경찰 위한 실전 교육 있어야” “경찰관의 힘은 ‘완력’만 있는 게 아니에요.”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의 ‘프로파일러’ 한상아 경장(28·여)의 말이다. 한 경장은 “프로파일러는 사건의 논리 구조를 만드는 힘을 가져야 한다”며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는 끈기도 경찰관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강서경찰서의 공 경장도 “경찰이 되기 전에는 나도 경찰관이 범인 잡는 일만 하는 줄 알았다”며 “여성 경찰관들이 여러 분야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여성 경찰들 사이에서는 현장에서 저항하는 상대를 제대로 제압할 수 있도록 실무 체포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울 홍익지구대 A 경사는 “경찰이 되고 나서 체포 훈련을 받을 때 남성과 여성 구분 없이 체포술을 배운다. 하지만 남자 경찰과 여자 경찰의 힘이나 덩치는 완전히 다르다. 여경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지구대 B 경사는 “현장에서 저항하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실전 무술을 가르쳐 줬으면 좋겠다”며 “지금은 여자 경찰들이 개인적으로 체육관에서 주짓수나 복싱을 배우는 수준”이라고 했다. 여성 경찰의 체력 검증 기준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인복 경사는 “일부 누리꾼들 주장처럼 남성과 같은 잣대로 여성의 체력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 대신 여성 경찰이 땅바닥에 무릎을 대고 팔굽혀펴기 시험을 보는 현실은 바꿔야 한다. 팔굽혀펴기 개수는 남성과 달리 평가하더라도 행위 기준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고도예 yea@donga.com·이소연·한성희 기자}

“힘쓰지 마세요. 다칩니다.” 서울 강서경찰서 형사팀 마약반 소속 공자영 경장(34·여)은 건장한 체격의 50대 남성 팔을 뒤로 꺾은 뒤 이렇게 말했다. 공 경장은 새벽 시간 도로가의 포장마차에 잠복해 있다 이 남성이 나타나자 다가가 단 번에 제압했다. 다른 곳에 잠복해 있다 달려 온 동료 남자 경찰관은 팔이 꺾인 남성에게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으세요. 기술 들어가면 다칠지도 모릅니다”라고 했다. 23일 본보 기자와 만난 공 경장은 아홉 달 전 전과 10범의 마약사범을 잠복 끝에 검거할 당시의 상황을 별일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설명했다. 붙잡힌 마약사범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팔을 꺾은 경찰이 여자라는 걸 확인하고는 멍한 표정이었다고 한다. 공 경장은 2017년 2월 경찰관으로 임용됐다. 무도(武道) 특기자로 채용된 공 경장은 유도 선수 출신이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은메달을 땄고, 2010년 광저우 아시아경기에서는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순경으로 임용된 그는 검거 실적이 뛰어나 1계급 특진을 하면서 2년 만에 경장이 됐다. 최근 한 여성 경찰관이 술에 취한 남성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시민의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이 담긴 이른바 ‘대림동 여자 경찰관 사건’ 동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공개됐다. 이 때문에 ‘여경 무용론’까지 제기되면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술 취한 남자 한 명도 제대로 제압하지 못 하는 여자 경찰관은 뽑을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다. 하지만 민갑룡 경찰청장은 ‘대림동 여자 경찰관’의 현장 대응은 “나무랄 데 없이 침착했다”며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고 했다. ●“나약한 여경? 근성의 여경” 올해 3월 현재 1만3594명의 여자 경찰관들이 전국 곳곳에서 임무를 수행 중이다. 광복 후인 1946년부터 등장한 여자 경찰은 1990년대 들어서야 수사와 정보, 강력계 등의 분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는 대부분 내근직이었다. 아이를 낳은 뒤에도 강력계 형사로 일하는 ‘워킹맘 형사’들이 있다. 서울 중랑경찰서 강력계 박애화 경사(37·여)는 올해로 강력계 생활 6년째다. 박 경사의 별병은 ‘악바리’다. 용의자를 한 번 쫓기 시작하면 검거할 때까지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일을 한다고 해서 동료 남자 경찰관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박 경사는 검도 4단, 태권도 3단, 유도 2단 등 무술 단수가 총 12단이다. 초등학생 딸을 둔 박 경사는 이달 10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박 경사는 오전 7시 초등학생 딸에게 아침 식사를 챙겨준 뒤 경찰서로 출근해 10시간 가까이 폐쇄회로(CC)TV 분석 작업에 매달렸다. 박 경사가 속한 강력계는 70대 노인을 보이스피싱으로 속여 2000만 원을 챙긴 사기범을 검거하기 위해 중랑구 일대 CCTV를 전부 뒤지던 중이었다. CCTV 분석으로 용의자를 특정했다. 박 경사는 용의자가 지내는 것으로 추정되는 모텔 인근에서 잠복에 들어갔다. 운이 좋았다. 자정을 넘긴 무렵 용의자를 붙잡았다. 잠복이 길어질 때는 며칠 씩 걸리기도 한다. 박 경사의 초등학생 딸 아이는 “밤인데도 엄마는 왜 안 오느냐”며 울며 보챌 때가 있다. 박 경사는 딸을 위해 일을 그만둬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할 때도 종종 있었다. 박 경사는 “남자 경찰은 일을 잘하든 못하든 개인으로 평가를 받는데 여자 경찰은 ‘여경’이라는 집단으로 묶어 평가를 하는 것 같다”며 “‘애 엄마 되더니 별 수 없네’ 하는 얘기 듣기 싫어서 이 악물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중랑서 강력팀장 전윤숙 경감(42)은 “아무래도 아이 엄마는 외근이나 당직이 많은 강력계와 형사팀을 선뜻 택하기엔 아직까지는 어려움이 많은 실정”이라고 했다. 남자 경찰의 영역으로만 여겨졌던 분야에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내는 여자 경찰도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교통순찰대 소속 김수진 경사(40)는 오토바이를 몰면서 VIP(대통령) 근접 경호를 하는 유일한 여성이다. 교통순찰대 근무 9년차인 김 경사는 ‘삼공열둘’로 불린다. 삼공열둘은 김 경사가 모는 300kg 무게의 대형 순찰 오토바이에 매겨진 번호다. 김 경사가 교통순찰대 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 바로 오토바이를 몰 수 있었던 건 아니다. 당시 여자 경찰은 오토바이를 몰 수 없었다. 남자 경찰들이 모는 오토바이 옆에 바퀴 세 개가 달린 ‘사이드카’가 붙어있었다. 여자 경찰은 이 ‘사이드 카’에 앉아야 했다. 김 경사는 “여자도 ‘사이드카’가 아닌 오토바이를 몰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며 “무언의 시위를 하듯 매일 아침 대형 오토바이를 몰고 출근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보내자 선배들이 김 경사에게 ‘오토바이를 한번 타보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김 경사가 첫 테이프를 끊은 이후로 교통순찰대로 발령받은 후배 여자 경찰은 사이드카가 아닌 오토바이를 타게 됐다. 사이드카는 없어졌다. 1만3594명의 여자 경찰관 중 파출소와 지구대에 근무하는 지역경찰이 4137명으로 가장 많다. 경찰 생활 16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지구대에서 ‘최고령 여성 순찰 요원’으로 일하는 대구 달서경찰서 월배지구대의 최인복 경사(42·여)는 “지구대에서 일하다보면 밤늦게 술취한 사람들을 제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민원인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설득하는 것”이라고 했다. 최 경사는 지난해 3월 자살하겠다며 스스로 신고를 했던 50대 여성을 설득해 목숨을 구했다. 한달 전에는 자해를 시도한 50대 초반의 여성과 대화를 나눈 끝에 인근 병원으로 보냈다. 최 경사는 “내가 한 것은 ‘많이 외로우셨겠어요’ ‘뭐가 필요하세요’라고 대화를 시도한 것 뿐”이라며 “자살을 시도하는 민원인 대부분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어주면 스스로 어떻게 해야할지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여경 없어서 못써요” 여성 마약 사범이 경찰서 문턱을 넘는 순간, 일선 경찰서에선 ‘여경 구하기’ 전쟁이 벌어진다. 여성 마약 사범의 몸을 수색하거나 소변검사를 진행할 때면 이 과정을 대신해줄 여성 경찰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에 근무하는 김소정 경사(37·여)는 지난해 일선 경찰서에서 일할 때 ‘마약 검사’에 여러 차례 동원됐다. 김 경사는 이 경찰서 형사당직팀 경찰관 80명 중 ‘홍일점’이었다. 하루는 마약 수사팀 경찰관이 “여경 빨리 와달라”며 사색이 돼서 달려왔다. 조사실에는 한 여성 마약 사범이 다리를 꼬고 앉아있었다. 눈썹, 다리털 등 눈에 보이는 곳의 체모를 모두 왁싱한 상태라 모발을 통한 마약 검사가 불가능해 보였다. 김 경사는 여성 사범을 여자 화장실로 데려갔다. 그리곤 체모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해달라고 맡겼다. 검사 결과 이 여성은 필로폰을 투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기 평택경찰서 마약수사팀에서 여성 마약 사범의 소변검사를 할 때면, 마약수사팀 소속 이승아 경장(33)이 밀착 감시에 나선다. 여성 마약 사범들이 소변검사를 받으면서 미리 준비해온 다른 사람 소변으로 바꿔치기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마약 사범의 집을 급습할 때도 이 경장이 현관문을 두드리는 ‘선봉’에 서곤 한다. 현장에서 옷을 벗고 있는 여성을 마주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경장이 집 안에 들어가 여성이 옷을 갈아입도록 하고 내부를 수색한다. 성폭력과 가정폭력 등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발생하면 피해자들이 먼저 여경을 찾는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는 여성 경찰관들의 전문 영역이 된지 오래다. 대구지방경찰청 곽미경 경감(51·여)은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 수사팀에서 일하던 2017년 4월 새벽의 경험을 잊지 못한다. 새벽녘 20대 여성이 ‘강제추행을 당했다’고 신고했다. 숙직 당번이었던 남성 경찰관과 곽 경감이 함께 출동했다. 그런데 이 여성은 신고 내용과는 달리 두 경찰관에게 “이 남자가 싸우다가 가슴을 쳤어요”라고 말했다. 여성의 말대로라면 추행이 아닌 폭행을 당한 것이었다. 한참 뒤 여성은 곽 경감과 둘이 있는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을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남자 경찰한테는 차마 말을 못했어요”라고 울먹였다. 곽 경감은 “수치스러운 경험을 한 피해자가 남성 경찰 앞에선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다”며 “그럴때면 여경들이 피해자 조사를 맡는다”고 했다. 여성가족부 산하 해바라기센터에도 여성 경찰관들이 근무하며 성폭력 피해자 등의 진술을 받는다. 성폭력이나 아동학대 피해자들이 이곳에서 여경에게 피해 사실을 털어놓으면, 여경은 진술 내용을 종합해 일선 경찰서로 보낸다. 서울 노원구, 동대문구 등 6개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 북부해바라기센터의 장연심 경감(51·여)은 “여성들이 수치스러웠던 경험을 남성 경찰관이나 국선변호사에게 털어놓기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래서 센터에 여성 경찰관들을 배치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술을 받으려 한다”고 했다. ●“여성 경찰 위한 실전 교육 있어야” “경찰관의 힘은 ‘완력’만 있는게 아니예요.”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과의 ‘프로파일러’ 한상아 경장(28·여)의 말이다. 한 경장은 “프로파일러는 사건의 논리구조를 만드는 힘을 가져야 한다”며 “범인을 끝까지 추적하는 끈기도 경찰관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강서경찰서의 공 경장도 “경찰이 되기 전에는 나도 경찰관이 범인 잡는 일만 하는 줄 알았다”며 “여성 경찰관들이 여러 분야에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다”고 했다. 여성 경찰들 사이에서는 현장에서 저항하는 상대를 제대로 제압할 수 있도록 실무 체포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서울 홍익지구대 A 경사는 “경찰이 되고 나서 체포 훈련을 받을 때 남성과 여성 구분 없이 체포술을 배운다. 하지만 남자 경찰과 여자 경찰의 힘이나 덩치는 완전히 다르다. 여경이 상대를 제압할 수 있도록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지구대 B 경사는 “현장에서 저항하는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실전무술을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며 “지금은 여자 경찰들이 개인적으로 체육관에서 주짓수나 복싱을 배우는 수준”이라고 했다. 여성 경찰의 체력 검증 기준을 지금보다 높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인복 경사는 “일부 누리꾼들 주장처럼 남성과 같은 잣대로 여성의 체력을 평가할 수는 없다. 대신 여성경찰이 땅바닥에 무릎을 대고 팔굽혀펴기 시험을 보는 현실은 바꿔야 한다. 팔굽혀펴기 개수는 남성과 달리 평가하더라도 행위 기준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청소년들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평소 꿈꾸던 바다의 모습을 하얀 도화지에 맘껏 담았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주최한 2019 ‘제5회 생명의 바다 그림대회’가 18일 인천과 부산, 울산, 경남 거제, 충남 서천, 전북 부안, 경북 포항 등 전국 9개 대회장에서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 4500여 명을 비롯해 가족, 교사 등 모두 1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수도권에서는 인천 송도국제도시 솔찬공원과 중구 월미도 문화의 거리, 서구 정서진의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 앞 아라빛섬 등 3곳에서 진행됐다.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 등 2000여 명과 학부모 등 4000여 명이 몰렸다. 솔찬공원에는 오전 9시부터 대회장을 찾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 형형색색의 텐트를 쳐 대회장이 마치 캠핑장 같았다. 이날 오전 9시 반경 솔찬공원 앞바다에 때마침 바닷물이 빠지면서 갯벌이 드러나 장관을 이뤘다. 대회 참가 학생들은 물이 빠진 갯벌과 조개 등 어패류를 잡으려는 어민들의 모습을 즉석에서 자신이 화폭에 담을 그림 주제로 정하기도 했다. 부모의 권유로 대회에 참가했다는 인천 부곡초교 임지후 군(10·4학년)과 인천 마장초교 곽효주 양(12·6학년)은 뿔이 달린 ‘일각 돌고래’의 모습과 해파리를 각각 도화지에 그렸다. 부천에서 아버지와 함께 대회장을 찾은 박지한 군(10·부천 상인초교 4학년)은 “바다 생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바다의 모습을 그렸다. 내년에는 더욱 실력을 갈고 닦아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다짐했다.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나온 참가자들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와 함께 대회장을 찾은 김아인 양(6)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온 가족이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에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 김 양의 할머니 황광자 씨(63·여)는 “손녀는 창의력을 길러서 좋고, 우리는 손녀 덕분에 바람을 쐐서 좋다”며 활짝 웃었다. 학교 친구들이 손을 잡고 대회에 참여해 그림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인천 공항초교 6학년 친구인 홍준선 군(13)과 홍다희 양(13)은 “나중에 커서 화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 양의 아버지 홍순의 씨(45)는 “딸과 친구의 꿈을 이뤄 주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대회에 참가했다”고 했다. 다른 대회장인 인천 서구 정서진에도 다양한 색의 텐트 60여 개가 나란히 놓여 장관을 이뤘다. 텐트 안에서 딸 정소정 양(8)에게 크레파스를 건네주던 정택근 씨(40)는 “오늘은 제가 딸 조수”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정 양은 아버지가 건네주는 크레파스로 바닷속을 여행하는 인어 공주의 모습을 도화지에 그렸다. 학원생 70여 명을 이끌고 정서진 대회장을 찾은 검단 C&C 미술학원 김현정 원장(41)은 “입시 위주의 딱딱한 그림을 그리다가 밖에 나와 바다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니 아이들이 더 창의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적극 후원한 인하대 조명우 총장과 신수봉 교학부총장, 이장현 대외협력처장이 행사장을 찾아 학생들을 격려했다. 서상호 인천시 문화예술과장을 비롯해 인천경제청, 포스코건설 관계자도 함께했다. 인천 중부·서부·연수경찰서 직원들은 현장에서 안전한 대회를 도왔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다음 달 7일 수상작을 발표하며, 전체 수상자는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한다. 시상식은 6월 28일 열릴 예정이다.인천=차준호 run-juno@donga.com / 이소연 기자}

청소년들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평소 꿈꾸던 바다의 모습을 하얀 도화지에 맘껏 담았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주최한 2019 ‘제5회 생명의 바다 그림대회’가 18일 인천과 부산, 울산, 경남 거제, 충남 서천, 전북 부안, 경북 포항 등 전국 9개 대회장에서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 4500여 명을 비롯해 가족, 교사 등 모두 1만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수도권에서는 인천 송도국제도시 솔찬공원과 중구 월미도 문화의 거리, 서구 정서진의 경인아라뱃길 인천터미널 앞 아라빛섬 등 3곳에서 진행됐다. 유치원생과 초중고교생 등 2000여 명과 학부모 등 4000여 명이 몰렸다. 솔찬공원에는 오전 9시부터 대회장을 찾은 학생과 학부모들이 햇볕을 피해 나무 그늘 아래 형형색색의 텐트를 쳐 대회장이 마치 캠핑장 같았다. 이날 오전 9시 반경 솔찬공원 앞바다에 때마침 바닷물이 빠지면서 갯벌이 드러나 장관을 이뤘다. 대회 참가 학생들은 물이 빠진 갯벌과 조개 등 어패류를 잡으려는 어민들의 모습을 즉석에서 자신이 화폭에 담을 그림주제로 정하기도 했다. 부모의 권유로 대회에 참가했다는 인천 부곡초교 임지후 군(10·4학년)과 인천 마장초교 곽효주 양(12·6학년)은 뿔이 달린 ‘일각 돌고래’의 모습과 해파리를 각각 도화지에 그렸다. 부천에서 아버지와 함께 대회장을 찾은 박지한 군(10·부천 상인초교 4학년)은 “바다 생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바다의 모습을 그렸다. 내년에는 더욱 실력을 갈고 닦아 대회에 참가하겠다”고 다짐했다. 가족 단위로 나들이를 나온 참가자들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와 함께 대회장을 찾은 김아인 양(6)이 그림을 그리는 동안 온 가족이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에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 김 양의 할머니 황광자 씨(63·여)는 “손녀는 창의력을 길러서 좋고, 우리는 손녀 덕분에 바람을 쐐서 좋다”며 활짝 웃었다. 학교 친구들이 손을 잡고 대회에 참여해 그림 실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인천 공항초교 6학년 친구인 홍준선 군(13)과 홍다희 양(13)은 “나중에 커서 화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홍 양의 아버지 홍순의 씨(45)는 “딸과 친구의 꿈을 이뤄주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대회에 참가했다”고 했다. 다른 대회장인 인천 서구 정서진에도 다양한 색의 텐트 60여 개가 나란히 놓여 장관을 이뤘다. 텐트 안에서 딸 정소정 양(8)에게 크레파스를 건네주던 정택근 씨(40)는 “오늘은 제가 딸 조수”라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정 양은 아버지가 건네주는 크레파스로 바다 속을 여행하는 인어 공주의 모습을 도화지에 그렸다. 학원생 70여 명이 이끌고 정서진 대회장을 찾은 검단 C&C 미술학원 김현정 원장(41)은 “입시 위주의 딱딱한 그림을 그리다가 밖에 나와 바다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니 아이들이 더 창의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적극 후원한 인하대 조명우 총장과 신수봉 교학부총장, 이장현 대외협력처장이 행사장을 찾아 학생들을 격려했다. 서상호 인천시 문화예술과장을 비롯해 인천경제청, 포스코건설 관계자도 함께 했다. 인천 중부·서부·연수경찰서 직원들은 현장에서 안전한 대회를 도왔다. 동아일보와 채널A는 다음달 7일 수상작을 발표하며, 전체 수상자는 홈페이지(www.solcontest.co.kr)를 통해 공개한다. 시상식은 6월 28일 열릴 예정이다. 인천=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사회에 복귀하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겁니다. 영원히 격리해야 합니다.” 16일 서울남부지법 406호 법정. 검사는 이렇게 말하고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순간 법정 안이 고요해졌다.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김성수(30)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김성수는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 재판을 받아 왔다. 검찰은 이날 결심공판에서 30여 분에 걸쳐 김성수에게 중형을 선고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검사는 “사소한 말다툼으로 피해자를 살해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만약 사형을 선고할 수 없다면 형을 산 뒤 10년 동안 위치추적 장치를 붙이거나 5년 동안 보호관찰을 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수가 피해자를 폭행할 수 있도록 피해자를 등 뒤에서 붙잡은 혐의(공동폭행)로 불구속 기소된 김성수의 동생(28)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이 구형됐다. 김성수는 법정에서 “유족에게 사죄드리고 싶은데 아무도 (법정에) 없으시다”며 “허락해 주시면 찾아뵙고 정식으로 사죄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석 옆자리에 앉은 동생을 바라보며 “형 때문에 네게 많이 피해가 간 것 같아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이들 형제에 대한 선고공판은 6월 4일 열린다.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사회에 복귀하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겁니다. 영원히 격리해야 합니다.” 16일 서울남부지법 406호 법정. 검사는 이렇게 말하고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순간 법정 안이 고요해졌다.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김성수(30)는 고개를 떨어뜨렸다. 김성수는 지난해 10월 서울 강서구 PC방에서 아르바이트생을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1심 재판을 받아왔다. 검찰은 이날 결심공판에서 30여 분에 걸쳐 김성수에게 중형을 선고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검사는 “사소한 말다툼으로 피해자를 살해한 납득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만약 사형을 선고할 수 없다면 형을 산 뒤 10년 동안 위치추적 장치를 붙이거나 5년 동안 보호관찰을 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수가 피해자를 폭행할 수 있도록 피해자를 등 뒤에서 붙잡은 혐의(공동폭행)로 불구속 기소된 김성수의 동생(28)에게는 징역 1년 6개월이 구형됐다. 김성수는 법정에서 “유족에게 사죄드리고 싶은데 아무도 (법정에) 없으시다”며 “허락해주시면 찾아뵙고 정식으로 사죄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또 피고인석 옆자리에 앉은 동생을 바라보며 “형 때문에 네게 많이 피해가 간 것 같아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이들 형제에 대한 선고공판은 6월 4일 열린다. 고도예기자 yea@donga.com이소연기자 always99@donga.com}

건축물 안전진단에서 D·E등급을 받아 재난 위험시설로 분류된 아파트는 서울 시내 곳곳에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긴급한 보수·보강공사가 필요하다고 판정한 D등급 아파트 중에는 당장 입주민을 대피시켜야 할 만큼 위태로워 보이는 곳들도 있다. 6일 본보 기자가 찾은 서울 관악구의 B아파트는 4개 동 중 1개 동이 2006년 D등급 판정을 받았다. D등급을 받은 건물 외벽 곳곳은 콘크리트가 떨어져 나가 철근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아파트 화단은 벽에서 떨어진 콘크리트로 수북하게 덮여 있었다. 이 아파트를 함께 둘러본 안형준 한국초고층도시건축학회연구원장은 “외부 충격이 있으면 바로 무너질지도 모르는 사실상 E등급 아파트”라고 진단했다. 건물 벽에 난 큰 균열마다 ‘균열 계측기’가 설치돼 있었지만 전부 고장 난 상태였다. 역시 D등급을 받은 서울 용산구의 J아파트 외벽 곳곳에서도 균열이 발견됐다. 금이 가면서 생긴 틈 사이가 3cm 이상 벌어진 부분도 있었다. 금 간 틈 사이로 물이 들어갔는지 건물 벽은 울퉁불퉁했다. 인테리어 공사 중인 이 아파트의 한 가구를 방문해 보니 뜯긴 벽지 사이로 가로 2m 길이 균열이 보였다. 이 아파트 주민 강모 씨(63·여)는 “천장에서 돌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붕괴 위험이 있는 아파트에 살던 주민 중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주민들은 하나둘씩 이사를 떠났다. 그 자리에 중국동포나 홀몸노인 등 영세민들이 입주해 목숨을 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중국동포 B 씨(49) 부부는 지난해 6월 E등급 판정을 받은 영등포구 신길동 아파트에 입주했다. 2005년 한국에 온 뒤 고시원과 월세방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마련한 집이었다. 부부는 부동산중개소에서 건물이 낡았다는 설명은 들었지만 붕괴 위험이 있다는 건 알지 못했다. 외환위기 당시 사업에 실패하고 월세방을 옮겨 다니던 문모 씨(49) 부부도 올 2월 같은 아파트에 전세를 얻었다. 문 씨는 “돈 있으면 이렇게 목숨 내놓고 살겠느냐”며 “여러 사람이 살고 있으니까 설마 죽기야 하겠나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했다. 사업성이 낮은 지역의 아파트 단지는 재난 위험시설로 지정되더라도 재건축 시공사가 정해지지 않은 채 방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서울 강남 등 일부 지역 노후 아파트가 즉각 재건축사업이 진행되고 집값이 고공 행진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876가구 규모인 관악구 신림동의 한 아파트는 1996년 D등급으로 진단받은 뒤 20여 년 동안 재건축 사업이 표류했다.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시공사만 수차례 바뀌었다. 결국 2017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동사업 시행자로 참여해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를 연계한 방식으로 사업성을 확보하면서 재건축이 가시화됐다. 구가 재건축에 실패한 붕괴 위험 아파트를 강제 철거하고 주민들을 이주시킬 수는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주민들과 이주비 등을 협의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아 구나 시가 쉽게 나설 수 없다는 게 구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무너질 위험이 크고 재건축이 어려운 아파트에 대해서는 구나 시가 예산을 들여 철거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와 성북구가 2017년 1월 이주민들에게 임대주택과 주거이전비 등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E등급’ 판정을 받은 성북구 정릉 스카이아파트 4개 동을 철거한 전례도 있다. 박주경 한국시설물안전진단협회장은 “정부나 지자체가 E등급 건축물에 대해서는 예산을 들여 강제 철거하고 이주를 도와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일본처럼 아파트 관리주체가 건물에 대해 보험을 들고 보험금으로 건물 철거비나 공사비를 충당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고도예 yea@donga.com·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