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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한복판에 북한이 쏜 핵미사일이 떨어지기 5분 전. 카운트다운과 함께 영상에는 경극 배우처럼 얼굴을 하얗게 칠한 정체불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BJ ‘체리장(Cherry Jang)’. 스스로 ‘한민족 평화통일 홍보대사’ ‘FBI 국가비상사태 자문위원’이라고 칭하던 그는 “오빠들도 얼른 대피하셔야 한다. 천국 시민이 될 준비를 해야 한다”며 운을 띄운다. 얼마 뒤 은행 계좌번호를 슬며시 자막으로 띄운 그는 “계좌로 돈을 저축하셔야만 천국에서 쓸 금은보화를 저축할 수 있다”며 천연덕스럽게 입금을 요구한다. 카운트다운 시계가 0초가 된 순간, 조잡한 그래픽으로 꾸며져 있던 화면은 온통 검게 변하며 영상은 끝난다. 영상을 보고 나면 그야말로 뇌가 찌릿해진다. 시청자들은 “내 정신도 이상해진다. 아무 것도 못 하겠다”며 댓글로 본인의 감상평을 털어놨다. 2018년 말 홀연히 영상으로 나타난 체리장은 천국에서 ‘일등시민’이 된 본인 소식을 2020년 12월 영상을 통해 전하며 현재 자취를 감췄다. 이 영상은 도대체 뭐고, 체리장은 누구일까. 정체부터 먼저 밝히자면 이 영상을 직접 기획하고 체리장을 연기한 건 미술작가 류성실(29·사진)이다. 올해 3월 에르메스재단은 19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로 역대 최연소인 류 작가를 선정했다. 유튜브에서 그가 펼친 ‘1인 미디어 쇼’를 높이 사 신선한 예술로 인정한 것. 온라인에선 류 작가의 예술 세계에 환호하는 이가 늘면서 이미 체리장을 ‘숭배’하는 팬덤까지 생겼다. 그를 사칭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까지 나타날 정도다. 그를 실존 인물로 착각해 “저를 구원해 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 이도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체리장의 본체’인 류 작가는 “실험적으로 도전한 영상에 많은 분이 반응하고 좋아해주실 줄 정말 몰랐다”며 “많은 이가 제 작품을 볼 수 있는 유튜브에서 예술 실험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K키치’라고 불릴 만큼 토속적 가치나 가부장적 권위를 비틀어 해석한다. 1인 미디어 세태, 음모론, 구시대적 전통 등이 모두 풍자 대상이다. “실체 없이 뜬구름 잡는 예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가 일민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등에서 선보였던 전시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가 유튜브에 발을 들인 건 나름의 승부수였다. 젊은 미술가로서 상대적으로 설 곳이 좁은 미술 판에서 이름을 빠르게 알리고, 작품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딱 3년만 해 보겠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전시가 어려워지면서 영상 작업에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됐다. 그는 이색적이고 차별적인 영상을 만들기 위해 구글에서 ‘exotic(이국적)’이라는 키워드로 이미지를 검색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이미지에 그래픽, 사진을 덕지덕지 넣은 영상은 촌스럽고 조악해 불편함마저 느끼게 한다. 전부 류 작가가 의도한 감성이다. “기성 사회의 노골적이고 천박한 마케팅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향후 전시 작업과 유튜브에서도 그는 이 주제를 계속 다룰 예정이다. 영상 속 체리장의 스토리 설정상 그는 현재 ‘하늘나라’에 있다. 팬들은 지금도 “언제 돌아오시는 거냐”며 그의 부활과 다음 영상을 원하고 있다. 류 작가가 답했다. “여러분! 체리장은 절대로 공짜로 돌아오지 않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남한 한복판에 북한이 쏜 핵미사일이 떨어지기 5분 전. 카운트다운 시작과 함께 영상에는 경극배우처럼 얼굴을 하얗게 칠한 정체불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BJ ‘체리장(Cherry Jang)’. 스스로 ‘한민족 평화통일 홍보대사’ ‘일등시민’ ‘FBI 국가비상사태 자문위원’이라고 칭하는 그는 “오빠들도 얼른 대피하셔야 한다”며 “이제 천국 시민이 될 준비를 하셔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 뒤 은행 계좌번호를 슬며시 자막으로 띄운 그는 “오빠들이 아래 계좌로 돈을 저축하셔야만 천국에서 쓸 금은보화를 저축할 수 있다”며 천연덕스럽게 입금을 요구한다. 카운트다운 시계가 0초가 된 순간, 조잡한 그래픽으로 꾸며져 있던 화면은 온통 검게 변하며 영상은 끝난다. 영상을 보고 나면 그야말로 뇌가 찌릿찌릿해진다. 시청자들도 “내 정신도 이상해진다. 아무 것도 못하겠다”며 댓글로 감상평을 적었다. 2018년 말 홀연히 영상으로 나타난 체리장은 천국에서 먼저 일등시민이 된 본인의 소식을 2020년 12월 마지막 영상을 통해 전하며 현재 자취를 감췄다. 이 영상은 도대체 뭐고, 체리장은 누굴까. 먼저 정체부터 밝히자면 시리즈 영상을 기획하고 직접 체리장을 연기한 건 미술작가 류성실(29·여)이다. 올해 3월 에르메스 재단은 19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로 역대 최연소인 류 작가를 선정했다. 유튜브에서 그가 펼친 ‘1인 미디어 쇼’를 높이 사 신선한 예술로 인정한 것. 온라인에서는 체리장을 ‘숭배’하는 열성 팬덤까지 생기고 사칭 SNS 계정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류 작가의 예술 세계에 환호하는 이가 늘고 있다. 체리장을 실존 인물로 착각해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는 저를 구원해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 이도 있다고.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체리장의 본체’ 류 작가는 “실험적으로 도전한 영상에 이렇게 많은 분이 반응하고 좋아해주실 줄 몰랐다”며 “젊은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기 위해 최대한 많은 관객이 볼 수 있는 플랫폼인 유튜브에서 예술실험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K-키치’라고 불릴 만큼 토속적 가치나 가부장적 권위를 비틀어 해석한다. 1인 미디어 세태, 음모론, 구시대적 가치 등이 모두 그의 풍자 대상이다. 평소 “이 사람은 왜 이러지?”라고 류 작가가 느끼게 만든 여러 경험들이 예술적 소재가 되기도 한다. “실체 없이 뜬구름 잡는 예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는 여러 영상, 전시에서 체리장을 비롯한 흥미로운 캐릭터와 구체적 세계관을 만들어냈다. 그간 일민미술관, 북서울미술관, 백남준 아트센터서 선보였던 전시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가 유튜브 작업에 발을 들인 건 승부수이기도 했다. 젊은 미술가, 조각가, 아티스트로서 상대적으로 설 곳이 좁은 미술 판에서 이름을 알리고, 작품성을 증명하고 싶었다. “딱 3년만 해보겠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예술을 수치로 증명하긴 어렵잖아요. 어려서부터 원했던 상을 받으면서 제 가능성이 인정받은 것 같아 기뻐요.” 지난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오프라인 전시가 어려워지면서 영상 작업에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됐다. 유튜브 영상이 넘쳐나는 시대에서 그는 이색적이고 차별적 영상을 만들기 위해 구글에서 무작정 ‘이국적(exotic)’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며 이미지를 찾았다. 그의 영상에서처럼 촌스럽고 조악한 그래픽이 덕지덕지 붙은 영상은 불편함마저 느끼게 한다. 전부 류 작가가 의도한 감성이다. “기성사회의 노골적이고 천박한 마케팅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거든요.” 여기에 그가 읽고 연기할 대략적 스크립트를 만들고 조명 설치와 분장까지 마치고 나면, 그의 쇼를 시작할 준비는 끝난 셈이다. 그는 “저도 모르게 제 안에서 체리장의 모습이 나온다. 내가 흑화 했을 때 나오는 모습을 과장해서 연기했다”고 털어놨다. 영상 속 체리장 캐릭터 설정 상 그는 현재 ‘하늘나라’에 있다. “하늘나라에서 먼저 일등시민이 됐으니 여러분도 나를 믿고 따라오라”는 메시지가 마지막이다. 팬들은 지금도 “언제 돌아오시는 거냐”며 다음 영상을 갈구하고 있다. 류 작가가 답했다. “여러분들, 체리장은 절대로 공짜로 돌아오지 않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극작가이자 1세대 공연기획자인 김지일 씨(사진)가 7일 오후 별세했다. 향년 80세.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고와 한양대를 졸업했다. 마당놀이 명가로 꼽히는 극단 미추에서 ‘심청전’ ‘춘향전’ ‘흥보전’ ‘이춘풍전’ 등 대본 20여 편을 집필했다. 뮤지컬 ‘영웅만들기’, 총체극 ‘하늘여자, 땅남자’, 신창극 ‘천명’ 등 여러 장르 공연 분야의 극작을 맡기도 했다. 예그린악단 홍보부장, 국립가무단 총무, 국립극장 선전기획실장, 마당세실극장 극장장, 서울시립극단 기획실장, 공연문화산업연구소 소장 등을 지내며 예술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극단 미추의 손진책 대표와는 50년 연극 인생 대부분을 함께 했다. 유족은 부인 김상희 씨가 있다. 빈소는 경기 구리시 원진녹색병원, 발인은 9일 오전 6시. 031-552-5119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국내 최대 발레 축제 ‘제11회 대한민국발레축제’가 15∼3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국내 정상급 무용수들과 해외 유명 무용단에서 활동 중인 국내 무용수들이 대거 무대에 오른다. 대한민국오페라·발레축제추진단과 대한민국발레축제조직위원회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올해 ‘혼합된 경험과 감정’을 주제로 현 시대의 고민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과 환경 문제, 세월호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룬 12개 작품을 선보인다. 개막작인 국립발레단의 코믹 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와 더불어 유니버설발레단의 신작 ‘트리플 빌’을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을 빛내는 해외 무용스타 스페셜 갈라’ 공연에서는 미국 뉴욕 할렘 댄스시어터의 이충훈을 비롯해 보스턴발레단의 김석주, 독일 헤센 위즈바덴 국립발레단의 이지영, 일본 다이라쿠다칸컴퍼니의 양종예, 에스토니아 바네뮤스 오페라 발레 시어터의 이주호 등이 무대에 오른다. 이 밖에도 와이즈발레단의 ‘유토피아’, 조주현댄스컴퍼니의 ‘디-홀릭’, 김용걸댄스씨어터의 ‘하늘, 바람, 별 그리고 시’, 다크서클즈 컨템포러리 댄스의 ‘In your Sleep(너의 꿈에서)’ 등 국내 작품들도 선보인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가수 김민기(사진)의 대표곡 ‘아침이슬’의 앨범 발표 50주년을 기념한 헌정 앨범 일부 곡들이 6일 공개됐다. ‘아침이슬 50년 김민기에게 헌정하다’ 제목의 앨범 중 5곡이 이날 오후 음원사이트에 올라갔다. 이날 발표된 곡은 한영애의 ‘봉우리’를 비롯해 유리상자의 ‘늙은 군인의 노래’, 아카펠라 그룹 메이트리의 ‘철망 앞에서’, 밴드 이날치의 ‘교대’ 등이다. 아이돌 그룹 NCT의 태일이 부른 ‘아름다운 사람’도 포함됐다. 모두 김민기가 발표했던 곡들로, 다양한 세대와 장르를 아우르는 뮤지션들이 참여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한영애가 부른 봉우리는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당시 TV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주제곡으로 만들어졌다. 늙은 군인의 노래는 김민기가 군 복무 시절 퇴직하는 선임하사의 푸념을 듣고 그 자리에서 작곡해 선물한 곡. 철망 앞에서는 노태우 정부의 남북 예술단 교류사업 때 쓰였다. 밴드 이날치가 재해석한 교대는 1978년 김민기가 공연한 음악극 ‘공장의 불빛’의 도입부에 사용된 곡이다. 이번 앨범 음원은 매주 4, 5곡씩 묶여 순차적으로 발표된다. 추후 공개될 곡 작업에는 권진원, 박학기, 윤도현, 윤종신, 이은미, 장필순, 크라잉넛, 웬디(레드벨벳) 등이 참여했다. 마지막 4주 차에는 참여 가수들이 함께 부르는 ‘아침이슬’이 공개될 예정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경남 합천 해인사의 팔만대장경판(국보 제32호)이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19일부터 주말마다 일정 인원이 관람할 수 있다. 그간 대장경판은 불교 행사나 법회에 한해 불자들을 대상으로만 공개됐었다. 해인사 총무국장 진각 스님은 3일 기자간담회에서 “팔만대장경 사전예약 탐방제를 19일부터 실시한다”며 “장경판전 내부를 순례할 수 있는 탐방 프로그램을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와 오후 2시 하루 두 번 운영한다”고 밝혔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은 고려 고종 24∼35년(1237∼1248년)에 만들어졌다. 고려 현종 때 몽골군의 침입을 부처의 힘으로 막기 위해 새긴 초조대장경이 불타 없어지자 다시 만든 것이다. 현존 대장경판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2007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탐방은 해인사 일주문 맞은편에 있는 세계문화유산 기념표지석에서 시작한다. 이어 봉황문, 국사단, 해탈문, 법계탑, 대적광전, 대비로전, 수다라장, 법보전 순으로 진행된다. 관람객들은 법보전 안에서 팔만대장경판을 볼 수 있다. 탐방 소요 시간은 약 40∼50분이다. 탐방 신청은 해인사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할 수 있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 회당 참가 인원이 10∼20명으로 제한되며, 본인만 신청할 수 있다. 초등학교 취학 전 유아는 관람할 수 없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취업 서류전형 탈락, 공모전 낙방, 고된 아르바이트….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펭귄의 본체로 알려진 배우가 첫 뮤지컬 무대에 도전해 청년의 애환과 꿈을 노래한다. 사회로 막 발돋움하려는 청년들은 과연 무인도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달 개막한 뮤지컬 ‘무인도 탈출기’는 햇볕 한 줌 들지 않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지하창고 단칸방에 사는 청년들의 삶을 그렸다. 이들은 취업난과 무한경쟁 속에서 소외감을 느끼고 자책감에 방황한다. 2016년 연극으로 처음 선보인 작품은 지난해 뮤지컬 버전으로 탈바꿈했다. 올해가 뮤지컬로는 두 번째 시즌. 전체 줄거리는 유지하되 넘버와 연기를 가다듬으며 수작으로 거듭났다. 등장인물 3인은 실제 청년들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막 서른 살을 넘긴 ‘동현’은 대학 문예창작과 출신으로 방에 누워 자신이 쓰고픈 이야기를 상상한다. 하지만 글은 잘 써지지 않고 취업시장에 뛰어들기도 망설여진다. 단칸방에 같이 사는 친구 ‘봉수’는 시간을 1초도 낭비하지 않을 정도로 성실히 살지만 매번 취업 문턱에서 좌절해 삶의 목표를 잃었다. 인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수아’는 공모전 상금 500만 원을 타기 위해 두 사람과 함께 연극을 만들기로 한다. 작품이 ‘극 중 극’의 형태로 나아가면서 허름했던 단칸방은 인물들의 상상 속에서 북태평양의 무인도로 바뀐다. 이번 공연에는 특히 배우 김동준이 봉수 역할로 참여해 화제다. 연극배우 출신인 그의 첫 뮤지컬 도전이다. 유쾌하면서도 진심 어린 그의 연기에 객석에서는 쉴 새 없이 잔잔한 웃음과 눈물이 터져 나온다. 물론 작품을 감상할 때 남극 출신 펭귄과 대학로에서 열연 중인 그를 굳이 연관지을 필요는 없겠다. 극단 섬으로 간 나비 관계자도 “우리 작품에 펭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펭귄은 펭귄일 뿐. 작품의 극 중 극에서 공간적 배경이 되는 무인도는 의미심장하다. 무인도에 표류한 이들은 처음에 고독감에 몸부림치며 탈출을 꿈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경쟁과 주변인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무인도에 애착을 느낀다. 구조선이 다가와도 ‘꼭 여기를 탈출해야 할까’라며 고민한다. 공간적 차원에서 무인도는 현실에서 고립된 단칸방을 의미하고, 험난한 사회로부터의 안식처로 읽히기도 한다. 혹은 누구든 마음 깊은 곳에 품어둔 자신의 진짜 모습이나 인간의 근원적 외로움을 뜻할 수도 있다. 극은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게 청년들의 삶을 노래한다. 동현 역에 박영수 안재영 박건, 수아 역에 박란주 손지애 이휴, 봉수 역에 김동준 박정원 강찬이 각각 연기한다. 배우들의 노래 이상으로 연기력이 돋보이는데 객석에 위로를 건네기에 충분하다. 8월 1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드림아트센터 2관, 6만 원, 13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주로 보고서에 사용하는 바탕체와 굴림체, 궁서체만 쓴다면. 글자가 뜻만 전하면 충분하지 글씨체(폰트)가 왜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면. 당신은 아마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개성 넘치는 글씨체에 환호하고 인기 폰트의 정보를 활발하게 공유하는 건 이들에게는 이미 익숙한 풍경. MZ세대에게 폰트는 자신을 드러내는 하나의 명함이자 디지털 상품이 됐다.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제공하는 기본 폰트를 바꾸거나, 유료로 폰트를 구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특수문자와 폰트를 활용해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에서 제공하는 기본 글씨체를 변경하고, 기분에 따라 여러 폰트를 사용한다. 디자인 업계도 MZ세대의 늘어난 폰트 수요에 맞춰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색다른 글꼴을 고민하고 있다. 넷플릭스 애청자인 대학생 김대영 씨(27)는 그날 기분이나 콘텐츠 분위기에 따라 자막 글씨체를 수시로 바꾼다. 최근에는 극장에 간 듯한 기분을 내고 싶어 영화관 자막과 유사한 무료 폰트 ‘a시네마L’을 내려받았다. 그는 “콘텐츠 성격에 맞는 폰트를 찾아 사용하는 건 소소한 재미다. 작은 변화지만 몰입에 큰 도움이 된다. 맛있는 음식을 더 멋지게 플레이팅해 즐기는 기분이다”라고 말했다. 고윤성 씨(25)도 “좋아하는 글씨체로 유튜브, 넷플릭스 자막을 바꿨더니 눈이 편해진 기분”이라고 했다. 이들은 주로 인터넷 사이트 ‘눈누’나 ‘네이버 소프트웨어 폰트’ ‘산돌구름’ 등에서 폰트를 내려받는다. 별도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할 때도 있다. 자신의 SNS 프로필을 독특한 폰트로 꾸미고, 휴대전화의 기본 글씨체를 바꾸는 것도 유행이다. 예쁜 폰트를 발견하면 커뮤니티에 캡처 화면을 올리고 “이 폰트 정보 좀요”라고 문의하는 이도 적지 않다. 회사원 박재웅 씨(30)는 “최근 입사지원서 작성 시 SNS 주소를 요구하는 회사들이 많다. 개성 있는 폰트로 공을 들인 SNS는 일종의 명함”이라고 설명했다. 브이로그, 유튜브 등의 콘텐츠나 아이돌 팬덤 굿즈를 만드는 MZ세대에게 폰트는 차별성을 꾀할 수 있는 핵심 요소다. 무료 폰트에 만족하지 못한 이들은 유료 폰트를 찾아 나선다. 폰트 플랫폼 업체 산돌의 황남위 마케팅팀 PD는 “싸이월드 도토리로 글씨체를 구매하던 당시 폰트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후 모바일로 매체 환경이 변한 후 매년 20∼30%씩 폰트 매출이 늘고 있다”며 “기업 외에 개별적으로 폰트를 구입하는 고객은 누적 기준 75만 명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월 4900원을 내고 12가지 스타일, 29종의 폰트를 사용하는 유료 서비스도 내놓았는데 이용자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1인 폰트 제작 스튜디오 ‘한글씨’의 김동관 디자이너가 내놓은 폰트 ‘꼬딕씨’도 MZ세대에게 인기가 높다. 폰트를 연구하는 심우진 서울출판예비학교 출판디자인 책임교수는 “온라인 공간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려는 MZ세대의 욕구와 글씨 자체를 즐기는 놀이문화가 결합한 현상”이라며 “중소기업들도 브랜딩을 위해 전용 서체를 만드는 등 향후 폰트 시장은 급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텅 빈 무대에 선 다양한 국적의 무용수 네 명이 온몸으로 호흡한다. 들이마신 산소가 폐와 심장을 거쳐 온몸의 세포로 전해지듯 몸을 꿀렁거린다. 어딘가 삐걱대며 불편해 보이는 몸짓은 무언가 꺼내고 싶은 말이 있다는 호소로 들린다. 무용단 ‘12H Dance’가 2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에서 선보이는 ‘360°’는 집 떠난 이들의 정체성에 대해 말하는 작품이다. 작품명 360°는 바퀴가 굴러가듯 회전하는 원 혹은 지구를 뜻한다. 작품은 하나의 지구 안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민자들, 한발 더 나아가 알 수 없는 경계에 선 우리 모두를 다룬다. 작품을 만든 이는 12H Dance의 공동 안무가 최문석(40)과 샤밀라 코드르(37). 이들은 부부 무용수로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 국제현대무용제(MODAFE) 측의 초청을 받아 국내 첫 무대를 앞두고 있다.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 안무가는 “팬데믹으로 외국인 혐오가 늘었다. 이주자, 이민자와 관련된 사회 갈등도 늘고 있다”며 “인간은 모두 떠도는 존재라는 걸 생각하면 결국 서로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춤을 통해 공존의 가치를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두 안무가에게 이민자 혹은 경계인으로서의 고민은 어쩌면 당연했다. 각자 모국인 한국과 아르헨티나를 떠나 독일에서 활동했다. 둘은 독일 자를란트 주립 무용단에서 동료로 만나 결혼했다. 2012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2018년 12H Dance 무용단을 세웠다. 무용단 이름은 한국과 아르헨티나의 시차(12시간)에서 착안했다. 최 안무가는 “전혀 다른 문화권에 살다 유럽으로 이주한 뒤 새 문화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고 ‘붕 떠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016년부터 아내와 이런 고민을 나누다 불안한 감정을 춤으로 창작했다”고 밝혔다. 2019년 독일 무대에서 이 작품을 처음 선보인 순간을 그는 잊지 못한다. 공연 후 몇몇 관객이 그를 찾아왔다. 출신 국가는 서로 달라도 느낀 바는 비슷했다. 이들은 “마음 깊은 곳에 혼자만 품고 있던 무언가를 건드렸다” “당신이 다 얘기하지 않아도 춤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고 했다. 최 안무가는 “앞으로도 시리즈 작품을 통해 경계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독일 연방정부로부터 예술인 장학기금과 연구개발 지원 프로그램 대상자로 선정된 12H Dance는 향후 기후변화를 주제로 다룰 예정이다. 이번 작품의 무대 구성은 단조롭지만 무용수들은 화려한 원색 의상을 입는다. 최 안무가는 “실제 이민자로 살아온 무용수들 각자의 개성과 정체성을 밝고 화사한 색으로 드러냈다. 무거운 주제의 작품에 다른 공기를 불어넣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무대 음악의 제목도 의미심장하다. ‘No soy de aqui ni soy de alla(스페인어로 ‘나는 이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온 것이 아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미국 5대호 주변 공업지대를 일컫는 러스트벨트(Rust Belt). 그 일대 인디애나주 게리라는 공업도시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한 소년이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유년기는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로 불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인종차별, 심각한 불평등, 노동쟁의가 만연한 때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소년이 마주한 가슴 아픈 불평등의 모습들은 물리학자가 되고 싶었던 그를 경제학도의 길로 인도했다. “불평등은 어릴 적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항상 더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 소년은 성장해 학자로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 박사, 예일대 교수, 세계은행 부총재, 컬럼비아대 석좌교수, 대통령 경제고문, 노벨경제학상 수상까지. 경제학자로서 철저히 주류의 위치에 섰던 그는 “경제 시스템이 왜 그렇게 자주 무너지는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천착하며 주류 경제 체제를 강하게 비판해왔다. 이번 저서도 그가 이어온 불평등 연구와 궤를 같이한다. ‘세계화와 그 불만’ ‘불평등의 대가’ ‘거대한 불평등’ ‘끝나지 않은 추락’ 등을 펴냈던 저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가 절반쯤 지난 2019년 초 이 책을 내놨다. 미국 경제가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서 점차 길을 잃고 있다고 보고 경종을 울리기 위함이었다. 저자는 ‘금융화(financialization)’가 지나친 상태에 이르렀고, 정부가 세계화에 대처하지 못했으며 시장의 지배력을 통제하지 못한 점들이 불평등을 심화시킨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트럼프 정부를 향해 “레이건 시절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과학이 아닌 자기 충족적 미신에 기반을 둔 경제 정책”을 쓴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불평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주류 경제 체제를 향해 쓴소리를 날리는 저격수 역할도 자처했다. 그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부를 가져오는 ‘부의 추출’이 아니라 ‘부의 창조’가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봤다. 부의 추출은 상위 1%에게도 궁극적으로 피해를 줄 것이라고 봤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사회 제도의 정비가 부를 창조할 토대라고 분석한 저자는 “공공사업을 확대하고 정부의 시장개입을 강화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의제를 21세기 형태로 결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물러난 뒤에도 세계 경제가 여전히 불평등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점을 떠올리면 그의 분석과 대안들은 여전히 가슴에 새길 만하다. 저자는 기존 저서처럼 미국 경제의 불평등 규모가 나날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의료제도, 노동법의 결함을 비판하며 정부의 개입 강화와 소득의 공정한 분배를 외친다. 그의 비판만 조목조목 열거해도 세계 경제가 곧 무너질 것만 같은 위기감이 든다. 하지만 그는 희망적 미래도 가능하다고 단언한다. 단, 자신이 지적한 문제들을 해결한다면 말이다. “내가 제시한 의제는 미국이 직면한 재정적 한계 안에서 성취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모든 가구의 삶을 더 좋게 만들고 경제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 수 있다” 불평등과 불확실의 시대, 자신감과 확신으로 가득한 대학자의 말에 한 번 더 눈길이 간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겹쳐지고 포개진 저마다의 궤도를 돌던 행성들. 이 천체들이 마침내 어느 한 시공간에서 충돌하려는 순간, 우린 곧 이어질 거대한 폭발이나 거친 격정을 떠올린다. 하지만 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우주에서 이 충돌은 따뜻한 포옹으로 그려진다. 단, 충돌 이후는 알 수 없다. 서로를 소개하고 만나며 살짝 느껴본 맛보기 단계, 딱 거기까지다. 이 과정을 우린 영어로 ‘인트로덕션(introduction)’이라 부른다. 홍상수 감독의 25번째 장편이자 제71회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각본상) 수상작인 흑백영화 ‘인트로덕션’은 인물들의 소개와 첫 만남의 순간을 담은 작품이다. 주인공이 아버지, 여자친구, 어머니를 찾아가는 여정을 따라가며 인물 사이를 감도는 묘한 분위기를 표현했다. 홍 감독의 작품 중 첫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 예고편에서 공개한 서문을 통해 홍 감독은 “(한국어에는) 영어의 인트로덕션에 하나의 단어로 대응하는 말이 없다”며 “소개, 입문, 서문, (새것의) 도입 등의 뜻을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66분 러닝타임은 3개의 이야기로 구성됐다. 1부에서 주인공 영호(신석호)는 한의사 아버지(김영호)의 전화를 받고 한의원에 찾아가 아버지 대신 간호사(예지원)를 만난다. 2부서 독일로 유학 간 영호의 여자친구 주원(박미소)은 엄마(서영화)와 엄마 친구(김민희)를 만나고, 자신을 따라 독일을 찾아온 영호와 재회한다. 3부에는 영호가 엄마(조윤희)의 전화를 받고 친구(하성국)와 함께 대배우(기주봉)를 만난다. 느슨하게 얽히고설킨 구성은 전작 ‘도망친 여자’와도 비슷하다. 인물들의 만남에는 형언하기 힘든 어색함이 흐른다. 불편한 정적과 여백은 ‘홍상수 코드’로 점철된 말과 은유가 가득 채운다. 피식거리는 실소도 자주 터져나온다. 그의 영화 문법에서 빠지지 않는 술자리 장면은 3부의 기주봉 조윤희 신석호 하성국이 맡았다. 작위적 줌인, 줌아웃에 뻔하고 밋밋한 전개를 예상하고 봐도 긴장감은 생각보다 길게 이어진다. 세 이야기에는 공통적으로 포옹 장면이 한 번씩 나온다. 수많은 소개, 만남의 순간에서 홍 감독은 조금이나마 인간들 사이 ‘온기’에 대해 말하고 싶어 했음이 보인다. 막 인생의 도입부에 선 청년 영호를 놓고 본다면, 불안한 미래와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그에겐 어딘가 늘 안길 곳이 있음을 말하는 듯하다. 영화는 기승전결을 따르지 않고 종잡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일부 외신은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 대해 많은 내용을 함축한 시나 문학작품 같다고 평했다. 얄밉지만 이번에도 홍 감독의 비유를 짚어내려면 꽤나 힘을 쏟아야 할 듯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춤추며 배운 끈기와 인내는 제 연기 인생에 큰 버팀목이 됐습니다. 우린 누구나 각자의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미나리’의 여주인공인 배우 한예리(37·사진)가 1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40회 국제현대무용제(MODAFE·모다페) 기자간담회에 홍보대사로 참여했다. 지난달 25일 배우 윤여정과 함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뒤 이번이 첫 공식석상이다. 그는 “귀국 후 자가격리 기간을 잘 마쳤다. 국제현대무용제 40주년을 맞아 학생 때부터 동경하던 축제에 홍보대사로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이해준 조직위원장, 김혜정 예술감독을 비롯해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등이 참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한예리는 무용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을 한껏 드러냈다. 그는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게 바로 무용”이라며 “무용이 주는 에너지는 다음에 다시 극장을 찾게 할 만큼 정말 크다. 연극이나 뮤지컬 관람처럼 공연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무용을 너무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즐겨 달라”고 당부했다. “스스로 무용수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만큼 무용을 게을리했던 사람”이라고 자신의 학창 시절을 떠올린 한예리는 “동료, 선후배 무용수들은 매일매일 누구보다 성실하게 삶을 일궈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무대에 대한 욕심도 내비쳤다. 그는 “많은 무용수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작게나마 공연을 올려보려 한다. 꼭 무대에 서지 않더라도 춤과 관련해 도움을 드리거나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축제는 25일부터 6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중구 국립극장, 마포구 서강대 메리홀 등에서 진행된다. 한예리가 가장 좋아하는 안무가로 꼽은 안성수와 안은미의 안무작도 ‘모다페 초이스’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춤추며 배운 끈기와 인내는 제 연기 인생에 큰 버팀목이 됐습니다. 우린 누구나 각자의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 ‘미나리’의 여주인공인 배우 한예리(37·사진)가 18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제40회 국제현대무용제(MODAFE·모다페) 기자간담회에 홍보대사로 참여했다. 지난달 25일 배우 윤여정과 함께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한 뒤 그의 공식석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귀국 후 자가 격리 기간을 잘 마쳤다. 국제현대무용제 40주년을 맞아 학생 때부터 동경하던 축제에 홍보대사로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는 소회를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이해준 조직위원장, 김혜정 예술감독을 비롯해 남정호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강수진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등이 참석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한 한예리는 무용에 대한 애정어린 마음을 한껏 드러냈다. 그는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는 게 바로 무용”이라며 “무용이 주는 에너지는 다음에 다시 극장을 찾게 할 만큼 정말 크다. 연극·뮤지컬 관람처럼 공연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무용을 너무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하지 말고 가벼운 마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즐겨 달라”고 당부했다. “스스로 무용수라고 말하기엔 민망할 만큼 무용을 게을리 했던 사람”이라고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린 한예리는 “동료, 선후배 무용수들은 매일매일 누구보다 성실하게 삶을 일궈 나가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무대에 대한 욕심도 내비쳤다. 그는 “많은 무용수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작게라도 공연을 올려보려 한다. 꼭 무대에 서지 않더라도 춤과 관련해 도움을 드리거나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축제는 25일부터 6월 13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중구 국립극장, 마포구 서강대 메리홀 등에서 진행된다. 한예리가 가장 좋아하는 안무가로 꼽은 안성수와 안은미의 안무작도 ‘모다페 초이스’ 무대에서 만날 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공연이 공연장 밖으로 나서고 있다. 아직 뻗는 힘은 약하지만, 문학 게임 영화 정보기술(IT) 등 여러 갈래로 촘촘하게 외연을 확장 중이다. 한정된 관객 수요를 넘어 폭넓은 관객층을 끌어모으고, 공연산업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건 업계의 오랜 과제였다. 과제를 해결하지 못한 와중에 팬데믹까지 덮친 상황에서 공연업계의 다양한 시도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읽히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아르코예술극장은 개관 40주년을 맞아 4월부터 월간 ‘읽는 극장’ 시리즈를 선보였다. 지금껏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공연한 작품 중 하나를 택해 이를 관람한 평론가, 작가 등이 대화를 나누는 콘텐츠다. 흔히 공연이 끝난 뒤 제작진, 배우 등이 출연하던 ‘관객과의 대화’와는 성격이 다르다. 4월에는 출범을 맞아 행사가 두 번 진행됐다. 1회에는 연극 ‘물고기로 죽기’의 희곡을 쓴 김비 소설가와 김현 시인이 나섰다. 2회에는 시인이자 건축가인 함성호와 선우은실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27일 열리는 3회 행사에는 연극 ‘다른 여름’을 관람한 안희연 시인과 양경언 문학평론가가 ‘여름’을 주제로 대담을 나누고 시도 낭독할 예정이다. 4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이 선보인 기획 공연 ‘롤 콘서트(리그 오브 레전드 라이브: 디 오케스트라’는 관객층을 넓힌 대표 사례. 인기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를 테마로 한 콘서트는 게임 마니아들을 공연장으로 대거 불러 모았다. 기존 공연은 여성 관객의 비중이 80%였던 반면 이 공연은 남성 관객이 60%를 넘기며 연일 매진을 기록했다. 게임 캐릭터 의상을 입은 관객들이 함께 모여 공연 소회를 나누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공연과 IT·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의 연계도 늘고 있다. 팬데믹 초기에는 포털, 유튜브 등을 통해 공연을 생중계하기에 급급했으나, 최근에는 그 통로와 방식이 다변화하고 있다. 안방 관객을 공연 관객층으로 흡수하려는 공연업계와 가입자를 늘리려는 플랫폼업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콘서트, 발레, 클래식 등 다양한 공연 영상을 제공하는 LG유플러스는 인터넷TV(IPTV) 사업자 중 이 분야 선두주자다. ‘집으로 온 공연’ 시리즈로 선보였던 ‘대학로LIVE’는 시청자 25만 명을 기록하며 시즌2를 준비 중이다. 29, 30일 미국의 인기 팝 밴드 ‘마룬5’의 공연 실황 영상도 제공한다. 김세규 LG유플러스 IPTV서비스기획팀 책임은 “오프라인 관객의 몇 배에 달하는 온라인 관객에게 공연의 매력을 알릴 수 있다”고 효과를 설명했다. 국립극장도 SK텔레콤과 OTT 플랫폼인 웨이브(wavve)를 통해 고품질 공연 실황 영상을 제공할 예정이다. 최근 개막한 뮤지컬 ‘태양의 노래’는 공연장과 공연 전문 온라인 플랫폼 ‘메타씨어터(MetaTheater)’에서 동시 개막했다. 모든 회차의 공연을 온라인에서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극장에서 공연을 상영하는 건 이제 익숙한 풍경. 2019, 2020년 인기를 끈 뮤지컬 ‘스웨그에이지’는 13일부터 롯데시네마 상영관에서 실황 영상을 상영 중이다. 장경진 공연칼럼니스트는 “아직 관객층이 크게 변했다고 보기는 힘드나, 공연업계가 대형 콘텐츠 기업과 협업해 공연에 대한 대중 인식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했다. 박병성 공연평론가는 “공연계의 색다른 시도가 공연장과 거리가 멀던 이들을 새로운 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가수 겸 배우 아이유(사진)가 자신의 생일(5월 16일)을 맞아 희귀질환 아동, 미혼모, 홀몸노인을 위해 5억 원을 기부했다. 아이유의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는 아이유가 한국소아암재단, 희귀질환 아동 지원단체 여울돌,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푸르메재단, 아동복지협회 등에 총 5억 원을 전달했다고 17일 밝혔다. 소속사는 “아이유가 20대 내내 꾸준히 받아온 큰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자 (한국 나이 기준으로) 20대의 마지막 생일에 ‘아이유애나’ 이름으로 따뜻한 일을 하고 싶어했다”며 “그간 받아온 사랑을 부지런히 갚으며 살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유애나는 아이유의 이름과 팬클럽 ‘유애나’를 합친 것이다. 기부금은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동 및 청소년의 수술비와 치료비에 사용될 예정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부모 가정, 홀몸노인 등의 자립을 위한 지원금으로도 쓰인다. 아이유는 데뷔 후 각종 기념일마다 팬클럽과 함께 나눔을 꾸준히 실천해 왔다. 앞서 3월에도 정규 5집 앨범 발표를 기념해 한부모 가정과 청각장애인을 위해 1억 원을 기부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누군가의 여행기를 듣는 건 설레는 일이다. 한 발 더 나가 기타 연주, 랩, 탱고를 곁들인 여행기는 어떨까. 무대 위 세 남자는 남미에서 겪은 일들을 실감나게 풀어놓는다. 여행지에서 찍은 날것의 영상들도 펼쳐진다. 진짜 겪은 일인지, 약간의 허풍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전하는 흥겨운 이야기들은 여행의 설렘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연극도 해야겠고, 여행도 가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박선희 연출가(51)는 2008년 처음 ‘여행 연극’이라는 장르에 도전했다. 태국, 인도, 터키, 히말라야 여행 시리즈를 내놓더니 이번엔 남미 이야기를 한 보따리 싸들고 나타났다. 배우 3명이 90분 동안 자신의 여행기를 ‘스탠드업 연극’ 형태로 선보이는 ‘라틴 아메리카 프로젝트Ⅲ’를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작품은 여행 마니아와 관객들을 ‘극장 속 남미’로 이끌고 있다. 10일 연우소극장 인근 카페에서 만난 박 연출가는 “여행지의 바에서 처음 본 이에게 속 이야기를 술술 털어놓듯 관객들에게도 여행 중 떠올린 이야기를 건네고 싶다”고 밝혔다. 박 연출가의 여행 연극을 이해하려면 독특한 작업방식부터 알아야 한다. 박 연출가와 제작진, 배우들은 2016년 6주 동안 남미로 떠났다.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를 둘러봤다. 각자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나 나라가 있으면 더 있다가 언제든 일행에 합류했다. 한 배우는 아르헨티나에 오래 머물며 탱고 강습을 받다 ‘탱고 전도사’가 됐다. 일행이 페루 오지의 수녀원 내부 보육원을 방문했을 땐 아이들을 위해 즉석 스페인어 연극도 선보였다. 펍에서 1인극을 한 배우도 있었다. 여유로운 듯 치열하게 남미를 누빈 이들의 여정은 저절로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박 연출가는 “극을 써야 하는 과업 때문에 제가 마음 편히 여행을 못할 때도 있었다. 결국 모든 걸 내려놓고 여행하듯 작품을 만든다. 대신 공연 1주 전까지 대본을 쓰고 고친다”며 웃었다. 극 제작 과정은 작품의 메시지를 끄집어내는 토론이 핵심이다. “작업 기간의 대부분은 서로 대화만 한다”고 했다. 귀국 전 마지막 7박 8일은 아르헨티나 한 숙소에서 밤샘 토론했다. 그는 “배우들이 이제는 직접 하고 싶은 이야기를 빼곡하게 써내기도 한다. 제 부담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이번 작품의 주제는 여행 그 자체다. 어느 때보다 여행에 대한 감상을 많이 나눴기 때문이다. 앞선 시리즈에선 사랑, 우정, 삶과 죽음 등 여러 주제를 논했다. 박 연출가는 “제겐 여행이 일종의 도피였는데 각자 의미가 달랐다”고 전했다.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박 연출가는 다큐멘터리, 영화, 연극에 관심이 생겨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다시 입학했다. 그가 연극 연출을 택한 일도 마치 여행 같다. “2002년 이탈리아 여행을 가서 안 돌아오려 했다. 그런데 여행 중에도 끝내 가슴 속에 남아있던 게 연극”이라고 했다. “무대 암전 때는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걸 보면 선택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다. 그의 작업들은 평단과 관객 호응을 얻었다. 연우무대, 우란문화재단은 작품의 여행 경비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 “여행 연극은 결국 나를 보는 일이다. 다만 팬데믹으로 여행할 수 없어 관객을 약 올리는 작품이 될 것 같다”며 웃었다. 다음 목적지는 독일 베를린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 소목장 이수자인 정재훈 작가(51)의 ‘정재훈 목가구전―새로운 시작’이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렸다. 목수이자 작가로 전통가구를 연구한 그가 처음 여는 개인전시회로 20일까지 열린다. 정 작가는 전통 목가구의 조형성과 제작 기법을 발전시키기 위해 10년 이상 노력한 흔적을 전시에 담았다. 사방탁자, 탁자장을 비롯해 전통짜임 기법으로 제작한 넓은 탁자 등 25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관람객은 여닫이문, 미닫이문 등 전통가구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하고 다양한 문짝 구조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소목장 보유자 박명배 선생을 사사한 정 작가는 “전통적인 사랑방 가구를 재해석해 현대적인 주거 공간에 어울릴 방법을 고민한 끝에 전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 ‘레미제라블’ 속 혁명의 노래들이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맞는 광주를 적신다. 프랑스 뮤지컬 공연단 내한 콘서트 ‘레미제라블’은 15일부터 부산을 시작으로 광주, 서울에서 공연을 한다. 17일 광주에서는 ‘5·18민중항쟁 전야제’ 특설무대에 오른다. 이번 공연은 프랑스 출신 배우들이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작품 속 넘버들을 콘서트 형태로 선보인다. 프랑스 혁명의 자유, 평등, 박애정신을 일깨우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을 각색한 뮤지컬을 토대로 주인공 장 발장이 마주한 프랑스 혁명의 이야기를 노래로 풀어낸다. 주역 배우들이 부를 애달픈 솔로곡과 ‘One Day More’ ‘Do You Hear the People Sing?’ 같은 대표곡을 웅장한 합창으로 선보인다. 공연은 모두 프랑스어로 한다. 장 발장 역은 뮤지컬 ‘아마데우스’ ‘노트르담 드 파리’로 유명한 로랑 방이 맡는다. 형사 자베르 역은 뮤지컬 ‘알라딘’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한 롤랑 카를이 맡는다. 팡틴 역에는 노에미 가르시아, 코제트 역에는 안마린 쉬르가 출연한다. 33명으로 구성된 아르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공연은 부산 KBS홀에서 15, 16일 시작한다. 이어 출연진은 광주로 이동해 17일 오후 7시 반부터 열리는 제41주년 5·18민중항쟁 전야제에 참석한다. 광주시청 앞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배우들은 ‘레미제라블’의 주요 넘버들을 선보인다. 전야제 행사 전에는 광주 금남로 일대에서 진행하는 ‘코로나 극복, 대한민국 그리고 세계인의 평화’라는 메시지를 표현하는 ‘플래시 몹’ 행사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로랑 방은 “광주에서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듣고 프랑스 혁명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불의와 부정에 맞서 민주주의를 위해 쓰러져간 수많은 민중의 희생을 기리고 싶어 전야제 공연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팬데믹으로 지친 많은 이들에게 공연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롤랑 카를을 포함한 다른 배우들도 “언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역사의 전진을 막을 수 없는 점은 같다. 이 땅의 평화, 공존, 희망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도 5·18과 함께 노래하겠다”고 했다. 이들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이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난 1980년 프랑스에서 처음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5·18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분들께 애도와 경의를 표하고 팬데믹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광주에서는 별도의 공연장에서 공연을 하지는 않는다. 서울에서는 19∼23일 강서구 KBS 아레나에서 공연을 펼친다. 6만∼15만 원(예스24, 티켓링크), 7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을 설계한 미국 건축가 아트 겐슬러(사진)가 10일(현지 시간) 별세했다. 향년 85세. 미국 뉴욕 태생의 고인은 미국 코넬대를 졸업한 뒤 자신의 이름을 딴 건축 설계회사 ‘겐슬러’를 1965년 세웠다. 세계 최대의 건축설계사로 도약한 겐슬러는 미국 뉴욕 JFK 공항과 싱가포르 창이공항 설계에도 참여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페이스북과 영국 런던 버버리 본사도 그의 작품. 고인은 환경과 조화를 이룬 대학, 호텔 등 대형 건축물 설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과는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설계로 인연을 맺었다. 2011년 국제 현상설계 공모에서 겐슬러가 참여한 ‘희림컨소시엄’(희림, 겐슬러, 무영) 설계안이 당선됐다. 공사에만 8년이 걸렸다. 인천국제공항 내 현대카드사 에어라운지도 겐슬러의 손을 거쳤다. 이 라운지는 2012년 미국건축가협회가 시상하는 ‘인테리어 디자인상’을 받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 ‘맨오브라만차’에서 죽어가는 돈키호테를 보며 “내 이름은 둘시네아예요”라고 결연히 고백하는 ‘알돈자’. 뮤지컬 ‘시카고’에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올 댓 재즈(All that jazz)”를 섹시하게 부르는 ‘벨마 켈리’. 배우 윤공주(40)는 무대 위 여배우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두 배역을 동시에 소화하고 있다. 노래, 안무, 연기까지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만능 캐릭터로 평가받지만, 정작 본인은 “나만의 색깔이 없어서”라며 두 작품을 매끄럽게 오가는 ‘비결’을 겸손하게 표현했다. 하루는 알돈자로, 다음 날은 벨마 켈리로 사는 윤공주를 최근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났다. 지난해 개막할 예정이었던 ‘맨오브라만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 차례 연기되면서 윤공주는 격일로 두 공연을 소화해야 했다. 그는 “오늘 빨갛게 손톱 매니큐어를 칠하면, 내일은 매니큐어를 말끔히 지우고 무대에 오른다. 내 안에는 알돈자의 한(恨)도, 벨마의 화려함도 있다. 변신하느라 힘들 틈이 없다”며 웃었다. 윤공주가 맡은 두 역할은 판이하다. 알돈자는 죽지 못해 살아가는 비운의 여주인공. 사람들의 멸시 속에서 버티다 유일하게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대하는 돈키호테를 보고 비로소 희망을 품는다. 반면 쇼 뮤지컬의 정점인 시카고에서 벨마 켈리는 남편을 살해해 복역 중인 죄수다. 진한 검정 가발을 쓰고 격하게 춤추며 강렬한 퇴폐미를 뽐내는 게 포인트다. 윤공주는 “보기와 달리 알돈자가 훨씬 힘들다”고 했다. 특히 “알돈자는 주인공인 돈키호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매개가 된다. 감정을 후반부까지 끌어올리는 과정은 격한 춤보다 현기증이 난다. 공연 전 더 든든히 먹어둬야 한다”고 했다. 그는 26세인 2007년 처음 알돈자와 인연을 맺었다. 당시 어린 나이에 대작에 발탁된 파격적 캐스팅이었다. 올해까지 다섯 번째로 알돈자 역할을 맡으며 그의 대표 캐릭터로 키워냈다. “14년 전 첫 공연 때는 장면마다 잘 해내느라 급급했죠. 지금은 아무래도 표현의 여유, 자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맨오브라만차의 상대역은 류정한 조승우 홍광호다. 윤공주는 “대한민국 최고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 자체가 제겐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조승우는 무대가 끝나면 “역시 뮤지컬은 윤공주지”라며 자주 칭찬한다고. 윤공주는 “‘윤공주 스타일’의 알돈자를 조금이나마 좋아해 주신 것 같다. 물론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다”며 웃었다. 시카고에 대해선 “체력 소모는 분명히 심한데 이상하게 점점 더 숨이 안 찬다. 즐겁게 춤추고 노래하는 작품”이라고 했다. 공연 당일에도 매일 혼자 장거리 달리기를 하며 체력 관리를 해온 덕분이다. 동경의 대상이던 최정원 배우와 같은 배역을 맡았다. “언니를 절대 따라갈 순 없겠지만 ‘제2의 최정원’이라는 수식어는 마냥 좋다”고 했다. 2001년 뮤지컬 ‘가스펠’로 첫 무대에 선 윤공주는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음정 하나만 틀려도 혼자 펑펑 우는 건 다반사였다. “남들은 저를 완벽주의에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만큼 치열하게, 독하게 20, 30대를 보냈다”고 떠올렸다. “언젠가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덕분에” 한 번도 그만두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자신감과 책임감을 갖춘 윤공주는 지금 한국에서 ‘프로’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배우다. 최근 대작 뮤지컬에서 윤공주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이유다. “나만의 색이 없는 게 윤공주의 색깔”이라는 그의 색채는 올해 뮤지컬계를 어느 때보다 짙게 물들이고 있다. 맨오브라만차, 16일까지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6만∼15만 원, 14세 관람가. 시카고, 7월 18일까지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 6만∼14만 원, 14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