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운

김상운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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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학술 분야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단행본 ‘국보를 캐는 사람들’(글항아리)을 냈고, 고고학 유튜브 채널 ‘발굴왕’을 제작했습니다.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sukim@donga.com

취재분야

2026-01-09~2026-02-08
칼럼51%
문학/출판17%
역사10%
미국/북미7%
국제일반3%
중동3%
국제정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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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은자, 용처럼 훨훨 날다… 마한 특별전 열려

    사자(死者)가 하늘을 훨훨 날아갈 수 있도록 그의 발에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던 걸까. 금동신발의 코앞으로 삐죽이 머리를 내민 용머리가 장인의 간절한 소원을 담고 있는 듯하다. 신발바닥은 연꽃과 도깨비 모양 무늬가 새겨져 화려함을 더한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12월 전남 나주시 복암리 정촌고분에서 발견한 ‘용머리 장식 금동신발’을 국립나주박물관의 ‘마한의 수장, 용신을 신다’ 특별전에서 선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마한시대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신발은 총 18점. 이 가운데 발등에 용머리 장식을 부착한 금동신발은 정촌고분의 것이 유일하다. 길이 32㎝, 너비 11.5㎝의 신발바닥은 일반적인 장례용 금동신발이 그렇듯 투조(透彫·구멍을 뚫어 문양을 새기는 것) 방식으로 다채로운 문양을 담아냈다. 나주문화재연구소 개소 10주년을 기념한 이번 특별전에서는 용머리 장식 금동신발을 비롯해 마한의 대표 유물인 옹관(甕棺)과 순창 농소고분에서 나온 금가루 범자(梵字·고대 인도 문자)편 등 총 45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된다. 이 중 나주 복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각종 목간들이 눈길을 끈다. 백제 도성이 아닌 지방에서 처음 발견된 이들 목간에는 촌락 이름과 관직명이 적혀 있어 백제사 연구의 핵심자료로 평가된다. 이밖에 고흥 야막고분에서 출토된 갑주(甲胄·화살이나 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쇠나 가죽으로 만든 전투복)를 3차원 영상으로 복원해 마한 시대 장수가 입었을 당시의 모습을 생생히 보여준다. 특별전이 열리는 기간에 ‘마한문화 축제’(30, 31일)와 ‘마한문화 아카데미’(17일~11월 초)‘도 함께 열린다. 다음달 20일까지. 061-339-1123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 201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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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비롭고 온화한 미소, 살아있는 부처 만나는 듯

    2t이 넘는 거대한 돌덩이가 스르르 흘러내린다. 반가좌(半跏坐)로 다리를 꼰 무릎 밑으로 법의(法衣) 자락이 마치 커튼처럼 하늘거린다. 정녕 돌로 만든 것이 맞는가. 단단한 화강암을 마치 나무나 대리석을 깎듯 자유자재로 다룬 신라인들의 솜씨에 탄성이 흘러나온다. 국립중앙박물관이 25일 개막하는 ‘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 특별전에 전시된 석조반가사유상(보물 997호)은 1.7m 높이의 하체만 남아있지만, 이것만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불상 제작 당시 추정 높이가 약 3m의 세계 최대 반가사유상이다. 전시에 앞서 박물관 측이 건물 바닥이 내려앉을 가능성을 따로 점검했을 정도다. 석조반가사유상을 한참 바라보다 오른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어딘가 비슷하면서도 전혀 색다른 느낌을 주는 인도 반가사유상이 눈길을 끈다. 눈을 내리깔고 깊은 명상에 잠긴 불상의 표정은 우리 반가사유상을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그리스 조각상을 닮은 서구식 얼굴과 머리에 두른 터번 등은 전형적인 인도 간다라 불상이다. 자세도 한국이나 중국, 일본의 반가사유상이 공통으로 따르는 반가좌가 아니라 두 발을 자연스럽게 X자로 교차시킨 모습이다. 양희정 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인도 반가사유상은 자세뿐 아니라 표현 대상도 다양하다”며 “석가모니의 깨달음을 방해하는 마왕(魔王)의 반가사유상을 만든 곳은 인도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중앙박물관의 이번 특별전은 용산 이전 10주년을 맞아 8개국 30개 박물관에 걸쳐 인도와 동남아시아, 중국,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각국의 불교 조각상을 총망라했다. 전시 수준이나 규모로 봤을 때 사상 최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아시아 각국의 반가사유상을 비교 관람하는 재미가 쏠쏠한 마지막(4부) 전시실에서 단연 압권은 국보 78호 반가사유상과 국보 83호 반가사유상이다. 평상시 중앙박물관에서 교대로 순환 전시하는 두 반가사유상이 나란히 한 전시장에 등장한 것은 11년 만이다. 특히 1분 30초 간격으로 지붕에 달린 특수조명이 점멸하면서 해가 동쪽에서 떠올라 서쪽으로 지는 장면을 연출했다. 다양한 방향에서 비추는 조명을 머금은 두 반가사유상을 관람할 때 주변을 360도 돌면서 감상할 것을 권한다. 불상의 신비하면서 온화한 미소를 마주한 순간, 마치 살아있는 미륵불을 만난 것 같은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유독 이 전시장에만 불상 주위에 카펫을 깔아놓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도 간다라와 마투라 지방의 불상이 동남아시아와 중국, 한반도, 일본 등을 거치면서 어떤 변화를 보였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상대적으로 두툼한 법의를 입은 엄격한 분위기의 간다라 불상과 달리 몸의 윤곽이 드러나는 얇은 법의를 입은 마투라 불상은 표정도 한결 생동감 있다. 이와 관련해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래된 초기 중국 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은 5세기 북위 시대 ‘금동미륵불입상’(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에서 잘 드러난다. 곱슬머리와 허리에 착 달라붙는 법의가 인도 양식을 반영한 것이라면 가슴과 팔뚝, 무릎 부위의 일정한 원형 주름은 중국식 요소다. 이 불상은 현존하는 중국의 초기 금동불상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상 최대 전시회답게 기획특별전에서 처음으로 어린이를 위한 별도 도록 ‘야단법석 부처님 박물관’을 따로 발간했다. 11월 15일까지. 02-2077-9284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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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유물 보고 송편도 빚고… 보름달처럼 알찬 한가위로구나!

    추석 연휴 교통지옥에 갇혀 도로 위에서 시간을 허비하기보다 근처 박물관에서 전통을 되새기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전국의 13개 국립 박물관에서는 추석을 맞아 다양한 문화 공연과 전통 체험 행사 등을 준비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27, 28일 진주 검무 공연이 펼쳐진다. 진주 검무는 여성이 벌이는 전통 칼춤으로, 궁궐 잔치 때 행해지곤 했다. 궁중 검무의 원형을 잘 보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진주검무보존회(중요무형문화재 제12호)가 공연을 맡았다. 추석 때 국립경주박물관을 찾는 방문객이라면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특별전을 보기를 강력 추천한다. 최근 월성과 금관총 발굴로 주목받고 있는 신라 왕도(王都) 경주에서 의욕적으로 준비한 전시회답게 1급 신라 유물들이 총출동했다. 계림로 보검(보물 635호)을 비롯해 금동 반가사유상(국보 제83호), 금관총 금관(국보 제87호), 보문동 합장분 금귀고리(국보 제90호) 등 신라 문화재 600여 점(국가지정문화재 30점 포함)을 대거 선보인다. 아이들을 대동한 관람객이라면 경주박물관 신라역사관 앞마당에서 ‘민속놀이 체험’ 행사를 즐길 수 있다. 26∼29일 투호놀이와 윷놀이, 제기차기, 비사치기 등의 다채로운 체험도 할 수 있다. 이 밖에 경주박물관은 어린이 국악 뮤지컬 공연으로 ‘얼씨구나, 용궁 가자!’를 비롯해 송편 빚기 경연, 다식 만들기, 전통 차 시음 등으로 구성된 전통음식 체험 행사를 준비했다.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 풍물단’의 줄타기, 풍물공연도 펼쳐진다.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남도 문화전 Ⅵ―담양’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26∼29일 광주박물관 정원에서는 윷놀이, 제기차기, 팽이치기, 도롱테 굴리기, 칠교놀이 등 전통놀이 체험 행사가 벌어진다. 추석 전통놀이인 강강술래, 소싸움, 씨름 등을 주제로 한 목판 찍기 행사도 눈에 띈다. 타악기 퍼포먼스와 슬랩스틱 마임 등 어린이 참여 놀이극 ‘오즈를 찾아서’도 볼 수 있다. 국립전주박물관은 26∼29일 야외 뜨락에서 대형 윷놀이와 연날리기, 제기차기, 가족 줄넘기 등 전통 민속놀이와 국악 마당을 진행한다. 어른들의 동심 속 추억으로 남아 있는 딱지치기, 공기놀이, 비사치기, 맷돌 돌리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국립부여박물관은 ‘백제의 색’ 테마전을 마련했다. 부여 왕흥사지에서 출토된 ‘석재사리공뚜껑’과 부여 능산리사지에서 나온 ‘금박채색칠기편’ 등 고대 안료 사용 유물 40점을 선보인다. 비파괴 성분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알아낸 안료들의 원재료(광물 원석)도 함께 전시된다. 특히 ‘금박채색칠기편’은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공개되는 유물이다. 이 밖에 부여박물관 야외마당에서 ‘추석 유래와 풍습 알기’와 윷놀이, 투호, 제기차기, 팽이치기, 사물놀이 공연 등이 어우러진 ‘전통놀이 한마당’ 행사가 벌어진다. 또 26일 ‘전통 활 만들기’에 이어 27일 ‘송편 만들기’, 28일 ‘솟대 만들기’ 프로그램도 눈여겨볼 만하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조식과 정인홍’ 특별전을 최근 개막했다. 전시실과 앞마당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박물관을 찾는 가족들을 대상으로 즉석사진을 찍어 주는 ‘우리 가족 인증 사진’ 행사를 진행한다. 추석맞이 가족영화로 ‘슈퍼배드 2’를 비롯해 ‘검정고무신’ ‘다이너소어’ ‘라이프 오브 파이’ 등을 잇달아 상영한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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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자왕 증손녀 부여태비 묘지석 일반에 첫 공개

    ‘태비는 부여 씨다. 원래 동방의 귀한 자손으로 태어났다. 남국 사람의 얼굴처럼 아름다우니 봄날의 숲과 가을의 단풍과도 같았다.’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증손녀 부여태비(扶餘太妃·690∼738)의 묘지석에 새겨진 구절이다. 백제 멸망 직후인 서기 660년 의자왕과 그의 아들 부여융 등 1만2000여 명의 백제인이 당나라로 끌려갔다. 부여태비는 711년 당나라 황족 이옹의 두 번째 부인으로 들어가 718년 사괵왕비에 책봉됐다. 2004년 중국 산시(陝西) 성 시안(西安) 시 당나라 왕릉에서 발굴된 부여태비 묘지석이 국립공주박물관의 ‘백제 이후, 백제’ 특별전에서 일반에 처음 공개된다. 11월 15일까지. 041-850-6364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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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 김상운]견강부회 야당, 영혼 없는 문화재청

    “‘궁(宮) 스테이’를 하면 숙박비를 얼마나 받을 건가?”(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세계적 명사(名士)들의 숙박 체험은 국민에게 위화감만 조성할 뿐이다.”(박홍근 새정치연합 의원)1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국정감사 현장에서 야당 의원들은 궁 스테이에 대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문화재청이 추진하는 궁 스테이는 전통문화의 정수인 궁궐을 활용하는 차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창덕궁 석복헌과 수강재를 외국 VVIP를 위한 숙박 체험 장소로 삼는 것이다. 대상을 외국인 VVIP로 한정한 것은 저평가된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를 홍보하면서도 문화재 훼손을 막아 보려는 취지다. 충분히 검토해 볼 만한 정책인데도 야당 의원들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고가(高價)의 숙박비를 집중 거론하며 궁 스테이에 대해 부자용 특혜 프로그램처럼 취급하거나 ‘문화재청이 특권층을 상대로 돈벌이에 급급하다’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야당의 견강부회식 파상 공세 못지않게 나선화 문화재청장의 무기력하고 모호한 태도도 문제였다. “궁 스테이를 계속 추진할 생각인가?”(유 의원) “그렇지 않다. 활용 프로그램으로 계획하고 있다.”(나 청장) “그럼 중단할 건가?”(유 의원) “문화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진행할 생각이다.”(나 청장) “할 건지, 말 건지 명확히 입장을 밝혀라.”(유 의원) “숙박 체험 시 안전 관리에 대해선 문화재위원들의 의견대로 보완하겠다.”(나 청장) 현장에서 듣고 있던 기자들은 물론이고 문화재청 직원들조차 나 청장이 궁 스테이를 계속 추진할 뜻이 있는지 헷갈려했다. 나 청장은 이날 주무 부처 수장으로서 책임감을 전혀 보여 주지 못했다. 보다 못한 유인태 새정치연합 의원이 “궁 스테이 추진을 왜 자꾸 감추려고만 드느냐. 쉬쉬하지 말고 당당하게 전문가들의 판단을 받아라”라고 훈수를 둘 정도였다. 논란이 되는 정책을 추진할 때는 담당 부처가 취지와 효과에 대해 명확한 목표 의식을 갖되 전문가와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이해득실에 얽매인 정치권의 눈치를 살피거나 여론에 일방적으로 휘둘려서도 안 된다. 문화재청은 궁 스테이에 대해 잘못 알려진 대목이 있다면 자신 있게 설명하고 추진 의사를 확실히 밝히든지, 아니면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새로운 궁궐 활용 프로그램을 국민 앞에 내놓아야만 한다.김상운·문화부 sukim@donga.com}

    • 201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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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레지스탕스’를 보는 두가지 시각… 저항의 상징인가 기억의 조작인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와 한국은 모두 제국주의 점령지 신세였다. 프랑스는 레지스탕스, 한국은 독립투사들이 각각 침략자와 맞서 싸웠지만, 종전 이후 역사는 천양지차였다. 한국은 승전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채 열강에 의해 분할됐지만, 프랑스는 레지스탕스의 활약을 내세워 당당히 승전국 대열에 올라설 수 있었다. 레지스탕스의 빛나는 역사를 토대로 전후 드골 정부는 나치 협력자 800여 명을 처형하고 4만 명을 징역형에 처한 과거사 청산에 나설 수 있었다. 여기까지가 프랑스의 레지스탕스를 바라보는 통상적인 역사적 시각이다. 그런데 이 책은 레지스탕스 역사의 아름답지만은 않은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우선 전 국민의 저항운동이었다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 조직 규모가 나치 협력자 수와 엇비슷한 30만∼50만 명에 그쳤다. 노선이나 운영방식도 일치되지 못하고 상당 기간 분열돼 있었던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레지스탕스의 분열상은 비시 정부 수반이던 필리프 페탱(1856∼1951)에 대한 시각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독일 점령 초기 상당수 레지스탕스 세력들은 비시 정부나 페탱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심지어 민족해방 조직을 이끈 앙리 프르네는 1차 세계대전의 영웅 페탱을 찬미하기까지 했다. 물론 나치와 비시 정부의 탄압이 노골화된 이후에는 페탱을 비난했지만 초기의 오판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시종일관 페탱과 비시 정부를 비판한 프랑스 공산당 역시 떳떳한 기억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괴뢰정부보다 더 거악(巨惡)이랄 수 있는 나치에 대해 잠시나마 모호한 태도를 보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레지스탕스의 치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 르네 아르디 재판. 노조 간부 출신으로 레지스탕스로 활동한 아르디는 독일 게슈타포에 레지스탕스 수뇌부를 넘겼다는 혐의를 받았지만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저자는 숱한 유죄 증거에도 불구하고 그가 무죄로 풀려난 원인을 시대의 변화에서 찾는다. “바뀐 시대, 조국에 대한 배반 여부가 더이상 뜨거운 열정과 분노를 야기하지 않고 단죄와 응징보다 화합과 용서가, 기억보다 망각이 촉구된 시대의 산물이 아닐까.”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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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선화 문화재청장 “궁스테이 보완해 계속 추진”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궁 스테이’를 보완해 계속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와 관련, 당초 계획한 VIP급 숙박체험보다 일반대중을 위한 숙박체험 프로그램으로 바꿀 가능성을 시사했다. 17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문화재청 국정감사에서는 창덕궁 석복헌과 수강재를 개조해 숙박하는 궁 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해 야당 의원들의 질의가 계속됐다. 유기홍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궁 스테이 추진과 관련해 목조건물에 대한 화재 위험성 등이 지적되고 있다. 계속 추진할 생각이냐”고 추궁했다. 설훈, 박홍근 의원도 궁 스테이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하지만 나 청장은 “궁궐 문화재의 가치를 국민들이 제대로 알려면 활용이 필요하다”며 “창덕궁 숙박체험의 안전관리에 대해선 문화재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보완해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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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쪽방서 입신의 꿈 불태운 청춘의 잔상들

    ‘D―23 엄마를 위해 성공하자! 합격하자!’ 권영성 헌법학원론, 이준구 미시경제학 등 두꺼운 고시 기본서들 사이로 검정색 사인펜으로 꾹꾹 눌러쓴 포스트잇이 책상에 붙어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정책학 수험서에는 페이지마다 요점이 빼곡히 정리돼 있다. 1990년대 행정고시를 준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에 익을 풍경이다.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의 ‘신림동 청춘-고시촌의 일상’ 전시회는 신림동 고시원의 내부를 실제와 똑같이 복원한 책상부터 식당 식권까지 고시생들의 고단한 일상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고시생들이야 식당, 고시원, 독서실만 오가다 보니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위로받고 싶은 거죠.”(녹두거리 토크바 종업원) 고시촌에는 미래를 위해 청춘을 유예한 젊은이들의 고독과 좌절도 진하게 녹아 있다. 전시장 한쪽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시촌의 토크바 사진이 대표적이다. 토크바는 말 그대로 종업원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곳. 옆자리의 수험생조차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삭막한 현실에서 소통에 목마른 고시생들의 자화상이다. 2008년 로스쿨 도입 전까지 입신양명의 통로이자 헝그리 정신의 상징이었던 서울 관악구 신림9동 고시촌. 1960년대 강제이주에 따른 철거민들의 삶의 터전이던 이곳은 1975년 서울대 이전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한쪽에서 체제의 중심에 들어가기 위해 고시 공부에 청춘을 불태우고 있는 동안 근처 녹두거리에서는 군부독재에 맞선 학생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전시장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녹두거리를 가득 메운 서울대생들의 시위 사진이 게시돼 있다. 2017년 사법시험 폐지로 수험생들이 밀물같이 빠져나가고 있는 고시촌의 현재 모습도 담겼다. 이들이 떠난 빈자리를 취업준비생과 저임금 노동자 등 다양한 1인 가구가 채우면서 고시촌의 외형도 바뀌고 있다. 수박, 바나나 등 각종 과일을 1인분씩 잘라서 파는 가게를 촬영한 전시 사진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1월 8일까지. 무료. 02-724-0274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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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헝그리 정신 상징 ‘신림 9동 고시촌’ 역사 한눈에

    ‘D-23 엄마를 위해 성공하자! 합격하자!’ 권영성 헌법학원론, 이준구 미시경제학 등 두터운 고시 기본서들 사이로 검정색 사인펜으로 꾹꾹 눌러쓴 포스트잇이 책상에 붙어있다. 책상 위에 펼쳐진 정책학 수험서에는 페이지마다 요점이 빼곡히 정리돼 있다. 1990년대 행정고시를 준비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눈에 익을 풍경이다. 15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의 ‘신림동 청춘-고시촌의 일상’ 전시회는 신림동 고시원의 내부를 실제와 똑같이 복원한 책상부터 식당 식권까지 고시생들의 고단한 일상을 고스란히 옮겨놓았다. “고시생들이야 식당, 고시원, 독서실만 오가다보니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위로 받고 싶은 거죠.”(녹두거리 토크바 종업원) 고시촌에는 미래를 위해 청춘을 유예한 젊은이들의 고독과 좌절도 진하게 녹아있다. 전시장 한켠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시촌의 토크바 사진이 대표적이다. 토크바는 말 그대로 종업원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곳. 옆자리의 수험생조차 경쟁자일 수밖에 없는 삭막한 현실에서 소통에 목마른 고시생들의 자화상이다. 2008년 로스쿨 도입 전까지 입신양명의 통로이자 헝그리 정신의 상징이었던 신림 9동 고시촌. 1960년대 강제이주에 따른 철거민들의 삶의 터전이던 이곳은 1975년 서울대 이전으로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 한쪽에서 체제의 중심에 들어가기 위해 고시공부에 청춘을 불태우고 있는 동안 근처 녹두거리에서는 군부독재에 맞선 학생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전시장에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녹두거리를 가득 메운 서울대생들의 시위 사진이 게시돼 있다. 2017년 사법시험 폐지로 수험생들이 밀물같이 빠져나가고 있는 고시촌의 현재 모습도 담겼다. 이들이 떠난 빈 자리를 취업준비생과 저임금 노동자 등 다양한 1인 가구가 채우면서 고시촌의 외형도 바뀌고 있다. 수박, 바나나 등 각종 과일을 1인분씩 잘라서 파는 가게를 촬영한 전시 사진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11월 8일까지 관람료는 무료. 02-724-0274김상운 기자sukim@donga.com}

    • 201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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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바닥 크기 ‘우물모양 명기’에 담긴 삼라만상

    지붕 밑에 물 긷는 수차와 항아리가 앙증맞게 자리 잡은 후한(後漢)시대 우물의 축소 모형. 수차와 항아리 모두 성인 손톱보다 약간 크다. 우물의 전체 크기도 너비 23.7cm, 길이 23.8cm에 불과해 두 손바닥에 올리면 쏙 들어간다. 이 조그마한 미니어처에 없는 게 없다. 우물 난간 밑 벽면에 부조(浮彫)로 새겨진 말과 소는 성난 근육이 디테일하게 묘사돼 마치 살아 있는 것 같다. 이 걸작은 후한 시대 낙양성(洛陽城) 보장유적 무덤에서 발굴된 ‘우물모양 명기’다. 당시에는 망자들의 실생활을 묘사한 도기를 무덤에 부장하는 풍습이 있었다. 중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백제 역시 밥그릇과 동경(銅鏡) 모양을 본뜬 소형 토기를 무덤에 넣었다. 한성백제박물관은 ‘중국 고대 도성 문물전’ 특별전을 최근 열고 ‘우물모양 명기’를 비롯해 중국 위진 남북조 시대 유물 270점을 선보이고 있다. 이 중 한 무제의 형이었던 유승의 묘(만성한묘)에서 출토된 ‘표범모양 누름쇠’와 ‘옥 장식 동검’도 전시된다. 중국의 위진 남북조 시대는 백제 한성 도읍기(기원전 18년∼서기 475년)와 겹친다. 이번 전시 대상은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60년에 걸쳐 발굴한 유물들이다. 이 연구소가 한국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은 처음이다. 최근 한층 활발해진 한중 문화교류의 일면을 보여준다. 김기섭 한성백제박물관 전시기획과장은 “이번 전시는 삼국 가운데 중국과 가장 활발하게 교류한 백제가 얼마나 중국의 영향을 받았는지 보여주는 기획”이라며 “백제가 왕성에 해당하는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각각 북성(北城)과 남성(南城)으로 조성한 것도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12월 6일까지 열리며, 중국과 한국의 고대 도성에 대한 무료 강연도 열린다. 02-2152-5913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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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 일제 강제동원 피해 기록 세계유산 등재 추진

    정부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작업을 본격 추진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2016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 기록물 공모’를 마감한 결과 국무총리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회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낸 강제동원 피해 기록물 33만여 건 등 12개가 접수됐다”고 13일 밝혔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이들 12개 기록물을 심사해 다음 달까지 유네스코에 최종 신청할 기록물 2개를 선정한 뒤 내년 3월 이전까지 유네스코에 제출한다. 33만여 건의 기록물은 대일 항쟁기 위원회가 2004년 이후 11년간 생산 및 수집한 강제동원 피해 기록을 총망라한 것이다. 국가기관이 만든 문서를 공모 신청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기록물이 2개의 최종 후보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염희진 salthj@donga.com·김상운 기자}

    • 2015-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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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공산당 탄압에 스러져간 지식인의 삶

    최근 한반도 전문가라는 중국의 한 명문대 교수와 인터뷰하면서 몹시 실망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과 관련해 중국 학계의 속내가 궁금했지만, 그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할 법한 얘기만 잔뜩 늘어놓았다. 중국 사정에 밝은 국내 교수는 “전승절 행사에 대한 중국 정부의 관심이 높은 데다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외신을 포함한 모든 기사를 검열하고 있어 그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중국 최고 학부인 베이징대에서 샤예량(夏業良) 교수와 자오궈뱌오(焦國標) 교수는 체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2013년과 2005년 각각 해임됐다. 중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중국 공산당과 마오쩌둥 체제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 책을 만난 것은 어쩌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에서는 중앙선전부가 모든 신간에 대한 검열과 판매금지 권한을 쥐고 있다. 실제로 이 책도 검열로 일부 내용이 삭제된 대륙판과 그렇지 않은 홍콩판이 따로 발간됐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홍콩판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1957년 마오쩌둥의 ‘반우파 투쟁(중국 공산당을 비판한 인사들을 우파로 지목해 탄압한 정치 공작)’ 당시 희생된 중국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희생자 중에는 저자의 아버지이자 우파 수괴로 지목된 장보쥔(章伯鈞·1895∼1969) 교통부 장관이 포함돼 있다. 장보쥔은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에서 허수아비 야당에 불과한 중국민주동맹 부주석과 광밍일보 사장을 역임했다. 책에 언급된 나머지 인사는 저자가 어린 시절 자주 보았던 부친의 정당 동료들이다. 보통의 전기 작가는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이들에 대한 깊이 있는 내면묘사가 가능했던 배경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대의 아픔이 각자의 가슴을 후벼 파는 건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 때문일 것이다. 반우파 투쟁 당시 장보쥔도 수십 년 동안 고락을 같이하면서 흉금을 털어놓았던 동지 스량(史良·1900∼1985)의 비판연설로 한순간에 정계에서 축출된다. 장보쥔의 정적이었던 뤄룽지(羅隆基·1896∼1965) 삼림공업부 장관 역시 평생지기에게 52가지에 걸친 비판을 받고 우파로 지목돼 숙청된다. 이들의 고난은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우파라는 꼬리표가 평생 쫓아다녀 취업조차 하지 못했고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홍군의 폭력 대상이 됐다. 장보쥔 밑에서 광밍일보 편집장으로 일했던 언론인 추안핑(儲安平)은 반우파 투쟁 이후 양을 치면서 살았다. 심지어 그는 생존을 위해 약간의 월급을 받는 대가로 이전 직장의 사회주의 학습에 정기적으로 불려나가 대중비판을 당하고 자아비판을 요구받아야 했다. 이쯤 되면 거의 ‘인격 살인’ 수준이다. 장보쥔 등 이른바 ‘우파’들이 평생 처절한 고통을 당한 것은 오직 마오쩌둥과 공산주의 독재에 반대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특히 1957년 6월 1일 중국 공산당 통일전선부에서 추안핑이 “당천하(黨天下·공산당이 모든 것 위에 군림하는 것)의 사상이 모든 종파주의 현상의 근원이자 당과 당 밖 사이에 모순의 출발점”이라고 발언한 게 결정적이었다. 하지만 환갑을 훌쩍 넘긴 저자는 스량 등 부친을 배신한 과거 동지들을 무턱대고 비난하지 않는다. 숙청의 칼날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산당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있었다는 것이다. 오히려 죽음을 앞둔 스량의 노쇠한 모습에서 역사의 질곡과 권력의 허무함을 볼 뿐이다. 저자는 스량과 마지막 만남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썼다. “바람처럼 흐르는 세월 속에서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직 기억뿐, 그래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것은 기억뿐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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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배경 풍수지리 소설 쓰기 위해 古書 섭렵하고 있어요”

    일본 추리소설 대가의 첫인상은 상상과 달랐다. 중년의 나이에도 단발머리에 앳된 얼굴의 온다 리쿠(51)는 목소리마저 수줍은 소녀처럼 조용하고 나긋나긋했다. 약간의 음험함이 감도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를 연상한 것은 어리석은 편견이었다. 그러나 부드러운 외모와 달리 작가의 답변은 허를 찌르는 반전이 숨어 있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짐작할 수 없게 지었다는 그의 필명(온다 리쿠)처럼 미스터리 작가는 남달랐다. 온다 리쿠는 ‘밤의 피크닉’과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상 북폴리오) 등으로 국내에도 많은 고정 팬을 거느린 인기 작가다. 그는 추리, SF, 판타지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순문학적 요소를 가미한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방한한 온다 리쿠가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팬들이 솔깃할 만한 이야기를 하나 풀어냈다.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소재로 한국을 무대로 한 첫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 그의 기존 작품들 가운데 한국을 배경으로 한 것은 아직 없다. 신작 집필에 앞서 풍수지리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고서(古書)를 섭렵하고 있다는 그에게 다양한 질문을 던져봤다. ―원래 풍수지리에 관심이 많은가. “홍콩에서는 회사나 가게 위치를 정할 때 풍수지리를 중시한다. 일본에서는 오키나와 지역에서 묏자리를 고를 때 풍수지리를 따진다. 고도(古都)인 교토도 옛 수도로 정해질 때 풍수지리에 바탕을 뒀다. 이런 점들이 개인적으로 상당히 재밌게 다가온다. 마을 역사와 잘 버무리면 재밌는 소설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풍수지리 하면 한국을 빼놓을 수 없는데…. “2년 전 여름에 풍수지리 공부차 한국을 찾은 적이 있다. 조선시대 때 서울을 수도로 정한 이유도 배산임수의 풍수 명당이기 때문 아닌가. 이쪽을 연구하는 교수님과 함께 국립민속박물관을 비롯해 서울 각지와 수원, 화성 등을 두루 돌아다녔다.” ―한국 소설이나 영화에도 관심이 있나. “이정명 작가의 ‘뿌리 깊은 나무’를 재밌게 읽었다. ‘다빈치 코드’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영화는 예전부터 김기덕 감독이나 박찬욱 감독 작품을 좋아한다. 최근 김 감독의 ‘뫼비우스’를 봤는데 마지막 장면을 인상 깊게 봤다. 자극적인 현실을 뚫고 나오는 판타지 요소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체험할 수 있는 독특한 작품이었다.” ―대표작 ‘밤의 피크닉’이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2005년 번역 출간된 ‘밤의 피크닉’은 지금까지 국내에서 10만여 부가 팔렸다). “일본뿐 아니라 한국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노스탤지어(향수) 감성의 책이라서 인기를 끈 것 같다. 누구에게나 학창 시절은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지 않은가.”(‘밤의 피크닉’은 학교를 배경으로, 자신의 고민을 성숙하게 풀어가는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다.) ―일본 장르문학이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데 그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본에서는 갈수록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간격이 좁아지는 추세다. 과거엔 일본도 한국처럼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확실히 구분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이젠 책이 재미있어야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대체적으로 순문학은 작가 자신을 중심에 놓고 쓰는 반면 장르문학은 상대적으로 독자를 더 의식하는 측면이 있다. 일본에서 순문학 작가들이 장르문학의 요소를 적극 수용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작가진이 풍부해서 다양한 창작물이 나올 수 있는 것도 일본 문학계의 강점인 것 같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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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 영빈관 ‘大觀亭’ 유구 보존 논란

    대한제국 영빈관이었던 대관정(大觀亭) 유구가 훼손될 위기에 처했다. 대관정은 현재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건너편 주차장에 있었다. 대한제국 영빈관으로 쓰이다가 을사늑약 전 일본군 사령부가 들어섰다. 일제강점기엔 경성부립도서관으로 이용됐고 광복 후에는 민주공화당 당사로 쓰이기도 했다.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2일 심의에서 대관정 터에 호텔을 짓겠다는 부영의 건축허가 신청을 조건부로 통과시켰다. 최근 발견된 초석과 벽돌 등 대관정 유구를 호텔 2층에 이전해 복원하는 조건이다. 9일 열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도 통과되면 호텔 건립은 조만간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학계에선 대한제국의 흔적과 을사늑약의 강압성을 보여주는 대관정의 유적을 사적으로 지정해 원형대로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화재위의 이전 복원안은 유구를 파내는 것인 만큼 훼손은 불가피하다는 것.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이토 히로부미와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가 대관정에 머물면서 1905년 을사늑약 체결을 총지휘했다”며 “국권 침탈의 핵심 장소인 대관정 유적을 역사 교육의 현장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세가와는 을사늑약 체결 당일 대관정에 있던 병사들을 이끌고 고종이 머물던 수옥헌으로 쳐들어가 무력으로 압박했다. 하지만 문화재청 관계자는 “사적 지정 시 땅 소유주인 부영에 지급해야 할 토지보상금이 3000억 원”이라며 “완전한 원형 보존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종로 피맛골처럼 전체 유구를 유리로 덮어 보존하자는 의견도 제기된다. 이 교수는 “호텔 설계 변경을 해서라도 전시 공간을 조성해 유적을 보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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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월성 신라왕궁 발굴현장도 40년만에 찾아

    박근혜 대통령은 7일 오후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조사를 맡고 있는 경주 월성(月城) 신라 왕궁 발굴 현장을 둘러봤다. 박 대통령은 1975년 7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주 황남대총 발굴 현장을 방문할 때 동행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은 나선화 문화재청장의 보고를 받은 뒤 “경주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데 월성 복원 사업은 정부의 문화 융성 정책과도 잘 맞는다”며 “월성 외 다른 유적지도 문화재청이 인력과 예산을 최대한 투입해 가시적 성과를 내 달라”고 당부했다. 박 대통령은 특히 “찔끔찔끔 하다 보면 잘 안 되니 집중적으로, 지금부터라도 분발해 달라”며 속도를 내 줄 것을 주문했다. 사적 제16호인 월성은 서기 101년 신라 5대 파사왕(婆娑王)이 세운 궁성이다. 올해 월성 발굴 조사에는 전체 신라 왕경 발굴 예산 400억 원 중 70억 원이 투입됐으며 내년에는 210억 원이 편성됐다. 정부는 신라 왕경 발굴 조사와 복원을 위해 2025년까지 총 945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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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가장 오래된 한민족 얼굴은 ‘상투 튼 고조선인’

    가장 오래된 한민족의 얼굴을 찾았다. 동아일보와 경희대 한국고대사·고고학연구소 답사팀은 중국 랴오닝(遼寧) 성 랴오양(遼陽) 박물관에서 기원전 5, 6세기 청동 도끼(銅斧·동부) 거푸집에 새겨진 고조선인의 얼굴을 최근 확인했다. 강인욱 경희대 교수(북방 고고학)는 “거푸집 얼굴은 기원전 5, 6세기 고조선인의 것으로 보이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민족의 얼굴”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우리 민족의 얼굴로 알려진 서기 2, 3세기 부여 금동 가면보다 최소 700년 이상 시기가 앞서는 것이다. 이 거푸집은 길이 12.7cm, 너비 7.6cm, 두께 5cm의 활석(滑石)으로 만들어졌으며, 1990년 랴오양 시 타완(塔灣) 촌에서 발견됐다. 내부에는 부채 도끼(扇形銅斧·선형동부)와 동끌(銅鑿·동착)을 주조할 수 있는 틀이 갖춰져 있다. 특히 상투를 틀기 위해 머리를 묶어 올린 인물상이 거푸집 표면에 양각으로 조각돼 눈길을 끈다. 튀어나온 광대뼈와 낮은 코, 전체적으로 두툼한 얼굴 윤곽 등이 전형적인 북방 몽골로이드형 얼굴이라는 평가다. 이종수 단국대 교수(고고학)는 “기원전 5, 6세기 고조선을 제외하고 중원이나 다른 북방 민족들은 상투를 틀지 않았다”며 “거푸집에 표현된 인물은 고조선 사람”이라고 말했다. 거푸집과 더불어 비파형동검이 함께 출토된 것도 고조선인의 얼굴임을 뒷받침한다. 비파형동검은 미송리식 토기, 탁자 모양 고인돌과 더불어 고조선의 대표적인 유물로 꼽힌다. 랴오양 박물관은 이 거푸집을 한동안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으나, 2009년 박물관을 새로 개관하면서 처음 전시했다. 이 유물은 현재 우리나라의 보물급에 해당하는 중국 1급 국가문물로 지정돼 있다. 거푸집이 제작된 기원전 5, 6세기경 고조선은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요하(遼河) 동쪽 지역의 중심지였던 랴오양은 이 시기 고조선 강역에 포함돼 있었다. 당시 청동기 주조 기술은 지배층이 독점하고 있었다. 조진선 전남대 교수는 “중원과 달리 한민족 문화권에서는 무기용 거푸집을 활석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었다”며 “거푸집에 묘사된 인물은 청동 장인 혹은 이들이 섬긴 고조선 지배층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고조선 거푸집의 인물 모습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부여 금동 가면과 여러 점에서 비슷한 특성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강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 ‘고고자료로 본 고조선-부여의 인물상과 함의’에서 “고조선 거푸집 인물상에서 발견되는 상투와 강조된 광대뼈, 낮고 넓은 코, 간략하게 마무리된 입술 등의 특징은 부여 금동 가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민족 얼굴의 원형이 고조선에서 부여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강 교수는 “인물상에는 옛 사람들의 정체성이 함축적으로 표현돼 있다”며 “고조선에서 부여로 이어지는 한민족의 문화적 유사성이 인물상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고 덧붙였다.랴오양=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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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국지사 의거-순국소식 상세히 전해

    “사방이 온통 동아일보 기사뿐이군요.” 중국 랴오닝(遼寧) 성 다롄(大連) 시 뤼순(旅順) 감옥. 최근 이곳을 찾은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감옥 안에 별도로 마련된 ‘뤼순감옥의 국제 전사들(國際戰士在旅順)’ 특별전시실을 둘러본 뒤 이렇게 말했다. 특별전시실에는 이곳에서 순국한 안중근 의사와 우당 이회영 선생, 단재 신채호 선생의 흉상과 유품, 관련 신문기사가 대거 전시돼 있다. 또 백범 김구 선생이 조직한 한인애국단 단원 최흥식 유상근 의사도 전시 대상에 포함돼 있다. 20여 건의 한국 신문기사가 전시돼 있었는데 대부분이 동아일보 기사다. 이 가운데 우당의 순국 소식을 알린 1932년 11월 22일 자 동아일보(사진) 보도가 눈길을 끈다. ‘대련경찰서 취조 중 이회영 씨 영면’이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우당이 30년 동안 민족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로 다롄에서 고문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우당은 허리가 부러지는 모진 고문을 당한 끝에 1932년 11월 17일 65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우당은 그해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를 보고 더욱 치열한 독립운동을 위해 일본군 점령지인 만주행을 강행했으나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 동아일보는 이 기사 이후로도 우당의 시신이 한국으로 돌아오기까지 4건의 기사를 연속 보도했다. 특히 영결식을 보도한 동아일보 11월 29일 자 기사는 “조선의 세도문벌에서 태어난 우당이 조선을 떠난 지 30여 년 만에 유해가 돼 귀국한 데 대해 친척들은 더 슬퍼하고 (중략) 유해를 맞는 이들의 창자를 끊는 곡성이 엄숙한 영결식장에 낭자했을 뿐”이라고 적었다. 기사에서 우당을 세도문벌이라고 언급한 것은 조선시대 일곱 정승을 배출한 명문가 후손이기 때문. 우당은 해외 독립투쟁 기지를 건설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40만 원(현 가치로 600억 원)의 막대한 가산을 정리한 뒤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떠났다. 뤼순 감옥 특별전시실은 다롄 시 근대사연구소와 다롄대 한국학연구원, 한국광복회 등이 후원해 세워졌다. 뤼순 감옥은 1902년 러시아가 처음 지은 것을 1905년 러일전쟁 직후 일본이 접수해 수많은 독립투사를 감금하고 고문한 곳이다. 다롄=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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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교회가 유령을 불러냈다, 구원이란 이름으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 보통 사람은 영생을 누릴 것처럼 산다. 자신이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애써 외면한다. 목숨을 걸고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심리도 비슷하다. 하지만 상당수 종교는 메멘토 모리를 힘써 강조한다. 죽음 이후의 삶을 바로 지금 대비하라는 거다. 이 책은 유럽 중세사회가 유령을 다루는 태도의 변화를 세밀하게 추적했다. 저자는 유령을 보는 중세사회의 시각은 곧 메멘토 모리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장례식이 결국 산 자를 위한 행사인 것처럼 산 자의 꿈과 욕망, 죄의식이 죽은 자(유령)를 불러냈다는 것이다. 중세 초기 교부(敎父)들은 유령이 게르만족의 미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이단시했다. 성경은 예수와 소수의 성인만이 죽은 자를 살려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묘사했다. 초기 교회는 유령에 대한 언급조차 꺼렸다. 하지만 12세기 말부터 교회는 공공연하게 유령을 말하기 시작했다. 지옥과 구별되는 연옥이 등장하면서 구원을 부탁하기 위해 살아있는 친척을 찾아오는 ‘죽은 자’ 이야기가 떠돌았다. 종교와 도덕, 이데올로기에서 대중을 통제하려던 교회는 이런 흐름에 편승했다. 교회의 방향 전환은 경제적 측면과도 맞물려 있었다. 죽은 친척의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는 산 자의 노력은 교회에 대한 기부로 이어졌다. 중세 연구에 천착해온 저자는 “중세의 유령 이야기는 신앙심을 높이고 종교기관으로의 기부를 촉진해 교회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적었다. 이 책은 단순히 중세 문헌만 인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그림과 조각에 담긴 유령의 이미지를 포착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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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抗日독립의 심장부 찾아 “대한민국 법통이 시작된 곳”

    “안타깝다. 너무 고생들 하셨다. 고난을 무릅쓰고 나라의 법통을 지키려는 비장한 결의가 느껴져 숙연했다. 그분들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겠다.” 2005년 5월 23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중국 충칭(重慶)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해 이같이 말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이번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상하이(上海) 임정 청사를 찾았다. 박 대통령은 4일 상하이 임정 청사 재개관식에서 “비록 3층의 소박한 건물이었지만 그곳에서 대한민국의 법통이 시작됐다”며 “중국 내 독립 항쟁 유적 보존과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서 진정한 광복을 완성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방문으로 1992년 8월 한중 국교 정상화 이후 역대 한국 대통령 5명이 모두 재임 중 한 번씩 상하이 임정을 방문하게 됐다. 이날 행사에는 임정 수반이었던 이승만, 박은식, 이상룡, 김구 선생의 후손과 기념사업회 대표, 김우전 원로 애국지사, 중국인 독립유공자 추푸청(저輔成) 선생의 후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윤봉길 의사의 친손녀인 윤주경 독립기념관장도 함께했다. ○ 동아일보, 윤봉길 의거에 2차례 호외 발간 ‘폭탄현행범인은 조선인 윤봉길(25)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는데 범인의 근본은 아직 판명되지 안엇스나(않았으나) ○○○○(상해정부)의 일파라고도 한다. 군사령부 발표에 의하면 백천(白川) 군사령관은 좌안(左顔), 대퇴부 등 전신 수개처에 파편을 바덧는대(받았는데)….’ 1932년 4월 29일 동아일보는 윤봉길 의사의 훙커우 공원 의거를 당일 호외를 발간해 보도했다. 의거가 일어난 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첫 번째 호외에서 거사자가 ‘조선인’, 부상자는 ‘시라카와 대장 및 시게미쓰 공사’라고만 했으나 두 번째 호외에서 ‘윤봉길 이십오세’, ‘시라카와 안면 중상, 시게미쓰 오른쪽 다리 중상, 노무라 사령관 실명 염려…’라고 정확히 보도했다. 당시 열악한 통신 사정과 조선총독부의 언론 검열을 고려하면 신속하고 과감한 보도였다. 재개관된 중국 상하이 임정 청사 3층에는 다음 날인 4월 30일 발간된 동아일보 호외 기사가 전시돼 있다. 전시물의 위치는 윤봉길, 이봉창 의사가 거사 직전 한인애국단 선서문을 목에 두른 채 찍은 사진 두 점 바로 밑이다. 상하이 임정 청사에서 윤봉길 의거 관련 기사는 동아일보 보도가 유일하다. 당시 국내에서 동아일보가 가장 먼저 호외를 발행해 윤봉길 의거 소식을 알렸기 때문이다.○ 달라진 한중 관계 반영한 유적 복원 이번에 재개관한 임정 청사는 1919년 임정 수립 이후 1926년부터 1932년까지 가장 오래 사용한 임정 건물이다. 중국 내 임정을 대표하며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중국에는 상하이 외에 항저우, 창사, 충칭 등에 임정 청사 원형을 복원해 전시실을 운영 중이다. 중국 상하이 황푸(黃浦) 구에 있는 임정 청사는 3층짜리 벽돌 건물로 한때 도시계획에 따라 훼손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상하이를 방문해 탕지핑 황푸 구청장과 청사 전시물 개선에 합의하면서 재개관 사업이 본격화됐다. 상하이 임정 청사 재개관 사업 등은 대부분 시진핑(習近平) 정부가 들어선 뒤 진행됐다. 2013년 6월 한중 정상회담 때 중국 내 독립운동 유적지 보존 합의가 성사된 것이 계기였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의 관계가 얼마나 우호적인지 잘 보여 주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2014년 5월 한국의 요청에 따라 산시(陝西) 성 시안(西安)에 광복군 제2지대 표지석을 세웠고 그해 6월에는 하얼빈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설치했다. 당초 한국은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한 현장에 표지석을 세우자고 요청했지만 중국이 한발 더 나아가 아예 기념관을 만든 것. 그동안 중국은 중일 관계 악화와 소수민족의 역사의식 고취를 우려해 심드렁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한국의 항일 관련 역사 현장 보존에 나서고 있다. ○ 복원비 7억 원도 중국이 지원 중국은 이번 상하이 임정 건물 재개관 작업에 든 예산(약 7억 원) 전액을 지원했다. 충칭(重慶)에서는 광복군총사령부 건물의 원형 복원 사업도 진행 중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축사에서 중국 정부와 상하이 시, 황푸 구에 감사를 표했다. 재개관식에 이은 동포간담회에서는 “임정 청사는 조국의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했던 선열의 숨결이 담긴 곳”이라며 “한중 양국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하는 상하이에서 당당히 삶의 터전을 가꾸고 있는 동포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또 “한반도 통일 시대를 열어 가는 길에도 동포 여러분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여러분이 우리의 통일 염원과 정책을 적극 알려 주셔야 중국의 더 큰 협력과 지원도 끌어낼 수 있다”고 호소했다.조숭호 shcho@donga.com·김상운 기자}

    • 201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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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녕서 5세기 중반 추정 가야 고분 21기 새로 확인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경남 창녕군 교동과 송현동에서 가야 고분 21기를 새로 확인했다고 3일 밝혔다. 이곳은 지표조사 결과 총 217기의 고분이 몰려 있는 비화가야(非火加耶) 시대 지배층의 집단 묘역이다. 비화가야는 여섯 가야 가운데 지금의 창녕 지역을 차지했던 나라를 가리킨다. 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4월부터 발굴조사를 실시해 봉토분(封土墳·흙이나 돌을 쌓아 봉분을 올린 무덤) 6기와 돌덧널무덤(석곽묘·石槨墓) 15기를 발견했다. 유구와 유물의 형태로 미뤄볼 때 교동 고분군이 조성되기 시작한 5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무덤으로 추정된다. 무덤 안에서는 둥근고리자루큰칼(환두대도·環頭大刀)과 철제 화살촉, 재갈, 말띠드리개(행엽·杏葉) 등이 출토됐다. 연구소 측은 이번 발굴을 통해 △돌덧널 벽체 사이에 나무기둥을 세운 방식 △고분 가장자리에 눈썹형 도랑(주구·周溝)을 판 흔적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201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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